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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예슬 성명서 논란…에릭, 촬영복귀 비판 트위터 글 (전문)

    한예슬 성명서 논란…에릭, 촬영복귀 비판 트위터 글 (전문)

    KBS 2TV 월화드라마 ‘스파이 명월’ 스태프 및 연기자들이 ‘한예슬 사건의 전모’라는 공동성명서를 발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남주인공 에릭이 한예슬의 촬영 복귀에 비판적 시각을 표출했다. 에릭은 17일 밤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한예슬 촬영복귀에 대해 용서 아닌 용납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털어놨다. 또 이미 자기 일에 대한 보수를 받고있는 배우들보다, 함께 고생하면서도 적은 월급으로 더 많은 시간 고생하는 스텝들의 열악한 제작환경을 지적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앞서 17일 밤 SBS ‘한밤의 TV 연예’가 전한 성명서는 한예슬의 행동에 대해 진실을 규명한다면서 “한예슬은 잦은 지각과 늦은 촬영 준비로 스태프 및 상대 연기자들을 자주 대기 시켰으며 지난달 13일에는 다른 배우들에게 잠적을 권유하며 제작진이 배우 말을 듣게 하자고 권유했다. 또 8월 13일 한예슬은 담당 PD에 공식적으로 촬영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며 크게 다툰 뒤 이후 14일 현장에 나타나지 않으며 촬영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에릭 트위터 글 전문 극적인 화해라...명월씨가 출국하고나서 그래도 방송은 나가야하고 시청자와의 약속과 금전적인 계약서의 약속도 현실적으로 있기에 다시 열심히 끝까지 잘 마무리하자 모두 화이팅을 했지만, 막상 이렇게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촬영을 이어가는 모두의 마음은 편치않을듯 싶습니다. 여태 어느 신문사에도 이번사건에 대한 견해는 밝힌 적이 없지만, 제 견해에 대한 기사도 꽤 나갔더군요. 사실 이런 큰 사건들에 관해서는 견해보단 사실들을 가지고 여러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에 맞게 생각하시면 되고, 어느 쪽이든 백프로의 선과 백프로의 악은 없다고봅니다. 가장 오해받는 사실들에 대한 제가 본 입장들은, 쪽대본? 없습니다. 작가님 바뀌면서 미리 찍어둔 싱가폴씬의 연결 개연성 문제로 한두 차례 수정씬 대본 나온 적은 있어도 매주 책대본으로 받아보고, 팀카페에선 더 일찍도 볼라면 볼 수 있습니다. 감독님 욕설로 인한 불화설? 감독님 항상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해도 매순간 존대하십니다. 밤샘 촬영으로 인한 명월씨의 노고. 사실입니다. 드라마 초반에 힘들어 링겔 맞고있어 촬영장 좀 늦는다고 포토메일 보낸 적도 있습니다. 스텝 성명서?사실입니다. 전스텝과 촬영장에서 어제 그제 촬영한 배우들은 사실 인정하고 서명한 걸로 압니다. 아무래도 전국민이 보는 신문이니 실명을 적은 성명서는 공개하지 않은 듯합니다. 끝까지 서로 덮어주고 잘 마무리했으면 좋았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공개된 마당에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고 잘잘못 따질 필요도 없지만, 오해로 인한 누명은 있어선 안돼고, 그 부분은 스텝들과 작가님의 오해입니다. 현장에서 매일 지켜본 사람 중 하나로써 증명될 수 있었음 합니다. 제작 여건에 관한 아쉬움은 모든 스텝과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아쉬운 점입니다. 제 견해를 한번 말씀드리자면, 제작환경 개선이 누구를 위해서인가?가 먼저 설정되어야할 것입니다. 이미 자기 일에 대한 보수를 받고있는 상황에서 “내”가 편하고자 함인가. 함께 고생하고 적은 월급으로 배우들보다 많은 시간 고생하는”스텝”들을 위해서인가. 미래에 “후배”들이 편하게 일하게 해주기 위함인가. 이 세가지가 될 수 있겠네요. 많은 분들이 사전제작을 얘기하지만, 현실적으로 제작비나 편성문제로 인해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사전제작되어도 편성되지못해 손해보는 드라마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미래의 후배들이 좋은 여건속에서 촬영했으면 하는마음은 있지만, 사실 매일 살 부딪히는 동생들 같은 때론 형님들 같은 스텝들이 누군지 모르는 제 미래의”후배”보단 제 견해로썬 더 소중합니다. 현실적으로 제가 고위층 방송관계자가 되던, 제작사를 차려 손해볼 각오하고 제작하지 않는 이상, 또는 그런 천사같은 분이 나오지 않는 이상 고쳐지기 힘든 부분임을 알기에, 힘없는 배우로썬 그저 현장에서의 위로와, 때론 팀 단체복같은 선물, 혹은 회식대접 등등 더 많은 돈을 받고 같이 고생해서 일하는 입장에선 그런 성의를 보이는 것 외에는 많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 많은 작품들을 경험해봤다고 말하기엔 이르지만, 분명 지금이 내 연기인생에서 최악의 여건은 아닙니다. 하물며 저와는 비교도 할수없을 만큼 많은 작품과 경험이 있으신 이순재선생님의 발언과 현장의 이덕화선배님의 조언을 듣고자면, 더 힘든 것들을 겪으신 지금의 저보다 훨씬 대단하셨던 당대 최고의 연기선배님들앞에서, 감히 개혁을 외치기엔 제 자신은 너무 작습니다. 윗분들도 좀더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한 인간의 과오를 덮어주는 건 분명 신실한 일이지만, 용기있게 그 잘못을 지적해 바로잡아주지 않거나, 그 과오로 인해 아직도 피흘리고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그건 그사람의 실수의 “용서”가아니라 “용납”이 될 것입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성경속 대제사장 계보 정리…박윤식 목사 ‘…대제사장’ 내

    구약시대 제사를 주관하던 ‘제사장’의 족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출간돼 기독교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보수) 증경 총회장인 박윤식 목사가 낸 ‘맹세 언약의 영원한 대제사장’(휘선 펴냄)이 그것으로 구속사(救贖史·인류를 속죄하고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의 관점에서 성경을 조망하는 작업에 천착해온 저자의 여섯번째 성과물이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일부 대제사장을 추적해 엮은 책이 나온 적이 있지만 성경 속 대제사장의 기록을 모두 추적해 계보를 통시적으로 완성하기는 처음이다. 박 목사가 정리한 대제사장은 기원전 1445년 초대 제사장 아론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한 서기 70년, 마지막 대제사장 파니아스까지 1500년에 걸친 77명.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아론부터 앗두아까지 29대, 오니아스 1세부터 안티고스까지 19대, 헤롯왕이 임명한 아니넬부터 예루살렘 멸망까지의 29대 등 세 시기에 걸친 제사장의 역사·업적과 과오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네로 황제 통치 말엽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무장투쟁을 벌였던 제사장 집안 출신 요세프스를 비롯해 하스몬 왕가와 유대 통치자 헤롯 가문의 가계도를 붙여 세계사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수 있도록 도표로 정리한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저자가 성경의 기록으로만 전해 오는 대제사장의 예복을 고증을 통해 그림으로 재현한 것은 흔치 않은 성과로 기록된다. 박 목사는 책 말미에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인생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는 제사드리는 제단을 통한 구속운동이었다.“며 “잃어버린 자를 찾아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사명에 충성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日의원 입국 기도] 국내 정치권 반응

    [日의원 입국 기도] 국내 정치권 반응

    일본 자민당 보수우익 의원들이 독도 시찰을 위해 한국 입국을 강행한 1일 여야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이들을 규탄하며 양국 정부에 철저한 대책을 촉구했다. 김기현 한나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명백한 영토 침략 행위이며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전근대적 발상으로, 광복절을 앞두고 또 하나의 상처를 줬다.”고 비판했다. 국회 독도영토수호대책특위 한나라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앞으로도 일본 의원들이 이런 목적으로 불법 입국을 할 때는 강력히 규탄, 체포해 국내법에 따라 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서 “일본의 일부 몰지각한 국회의원들 때문에 한·일 관계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단호하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배숙 최고위원은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면서 “정치적 수명을 연장하려는 꼼수”라고 꼬집었다. 특히 신도 요시타카 의원이 “독도는 일본땅이며 다시 방한하겠다.”고 말한 데 대해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부끄러운 과거사에 일말의 반성을 찾아볼 수 없는 오만하고 경거망동한 행동”이라며 일본 정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 정부의 강력 대처를 촉구했다. 한편 3박 4일 일정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한 이재오 특임장관은 이날 일본 의원들의 입도를 저지하겠다며 독도에서 일일 초병 체험을 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맹비난했다. 이 장관은 “서울~울릉도 직항 비행노선을 놔 울릉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김국진 1억 대신 얻은 성공과 실패의 교훈

    김국진 1억 대신 얻은 성공과 실패의 교훈

    김국진 1억 포기 사연이 김국진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개그맨 김국진이 전성기 시절 방송을 중단했던 이유를 털어놓은 것. 1일 오후 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재미있는 스타특강쇼’ 에서 김국진은 자신의 과오와 그를 통해 얻은 교훈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날 김국진은 “많은 사람들이 내가 골프를 치기 위해 방송을 중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실은 내가 살기 위해서 방송을 그만뒀다”고 밝혔다. 한창 잘 나가던 전성기 시절 1주일에 1억원씩 벌기도 했지만 몸이 완전히 지쳐가 치료비가 더 걱정됐다는 것. 그는 또 7전8기의 정신으로 프로골퍼에 도전했으나 결국 실패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골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부러 ‘깨져보자, 실패해보자’는 생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면서 프로테스트에 15번 이상 도전했지만 한타 차로 아쉽게 떨어지게 된 아픈 실패의 경험을 들려줬다. 한편 김국진은 배워야 할 성공 모델로 박경림을 제시했다. 16살이던 경림이가 찾아와 MC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속으로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경림아 넌 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줬다는 것. 현재 박경림은 어려운 조건들을 극복하고 MC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꿈을 멋지게 가꾼 것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中 공산당 90주년] 中 청년들이 본 ‘90세’ 공산당

    [中 공산당 90주년] 中 청년들이 본 ‘90세’ 공산당

     1921년 창당 당시 57명에 불과했던 중국 공산당원은 지난해 말 현재 8029만 9000명으로 90년 만에 140만배 이상 늘었다. 전체 중국인 17명당 1명꼴로 공산당원인 셈이다. 35세 이하 당원 비율이 아직 24.3%에 불과하지만 매년 300만명 이상씩 늘어나는 신규 당원의 81.8%가 35세 미만이고, 40%가 대학생이라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은 오히려 점점 젊어지고, 고학력화되고 있다. 중국 교육부는 최근 베이징, 상하이 등 전국 15개 성·시, 140개 대학, 2만 5000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80%가 공산당 입당을 희망했다고 밝혔다. 90회 생일을 맞은 중국 공산당은 이런 조사 결과에 고무돼 있다. 신화통신 등 관영언론들은 신세대들이 개혁·개방 이후 공산당의 주도로 놀라운 발전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 감동하고 있으며, 이것이 청년학생들을 공산당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 같은 조사에서 89%가 넘는 대학생들은 공산당의 집정 능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것을 낙관했다.  중국인민대 대학원생 천레이(陳雷)는 “유사 이래 전체 중국 인구를 먹여 살린 정권은 공산당뿐”이라면서 “공산당은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등의 과오도 저질렀지만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켰다.”고 공산당의 국가경영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정식 입당을 기다리고 있는 예비당원인 가오젠(高健)은 “중국 공산당은 중국에서 가장 수준 높은 조직”이라고 평가한 뒤 “많은 당원들이 입당 전에는 열심히 당과 국가의 개혁 문제에 대해 공부하지만 일단 입당하면 나태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당원들의 학습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애정을 담아 충고했다. 상당수 젊은이들은 ‘공산당이 없었다면, 신중국도 없었다’(沒有共産黨, 沒有新中國)는 공산당의 구호처럼 현재 중국에 공산당을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 젊은이들은 체제 내 점진적 개혁이 빈부격차 등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대학원생 팡자웨이(房佳僞)는 “중국의 많은 문제는 성장 과도기의 불가피한 진통이지 공산당 집권에 따른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젊은이들은 체제를 비판만 하기보다 체제 안에 들어가 중국의 발전을 도모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방자웨이의 친구인 천위레이(陈聿雷)도 “농민공 등의 문제는 빨리 해결돼야 한다.”면서도 “중국의 발전은 공산당의 영도하에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산당에 대한 쓴소리도 흘러나온다. 베이징 지역의 한 명문대생은 중국 공산당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대해 ‘대충 생각해서 결정한 뒤, 가슴을 탕탕 쳐 가며 보장하지만, 결국 다리를 탁 친 뒤 후회하고, 엉덩이를 때리며 집으로 돌아간다.’며 ‘중국 특색의 의사결정시스템’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법치나 민주주의 의사결정이 아니라 후진적인 인치(人治)시스템에서 모순이 돌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사범대 4학년생인 류젠궈(劉建國)도 “중국 공산당은 권력과 돈이 특정계급에 집중되면서 국민들의 불신이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기득권층이 아닌 새로운 개혁주도 세력이 나와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주링허우(90後·1990년대 이후 출생자) 세대 가운데 상당수는 공산당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베이징 시내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허스원(何世文)은 “지금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라면서 “정치나 공산당에는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中 공산당 90주년] ‘中공산당 현재·미래’ 문답

    “중국 공산당도 승자의 함정에 빠졌나.” 두 자릿수 경제 성장으로 일당 독재의 명분과 정당성을 쥐어 왔던 중국 공산당이 번영의 성취에 따른 국민들의 욕구 분출이라는 부메랑을 맞으면서 갈등하고 있다. 문답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중국에서 공산당의 위상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중국은 공산당이 창당한 뒤 30년 가까이 지나서야 국가(중화인민공화국)가 세워졌다. 흔히 ‘말 위에서 총으로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때문에 공산당의 주인의식은 강렬하다. 초기 지도자들은 당원이자 정부 고위 관료이며, 군인인 ‘3위일체형’ 지도자들로서 나라를 지배해 왔다. 지금도 군과 정부, 기업과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은 당원이고, 공산당은 주요 조직마다 별도 조직을 갖고 영향을 끼친다. ●공산주의를 포기한 것 아닌가 1978년 덩샤오핑이 극좌파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뒤 개혁개방 정책을 펼쳤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해 왔다. 외국 투자 유치, 수출주도형 경제, 농촌 희생과 저임금에 기반을 둔 산업화 등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를 닮은 경제정책을 펴 왔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정치 시스템이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를 유지할 뿐이다. 자본주의로 길을 바꿨지만 표지판은 여전히 공산주의를 표시하고 있는 ‘간판만 공산주의’란 주장도 비아냥만은 아니다. ●‘간판’ 공산주의 유지가 되나 원칙적으로는 사회주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회·경제상황으로 인해 사회주의 실현을 미뤄 놓은 ‘사회주의 초급단계’로 합리화했다. 최근 들어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을 내세운 편협한 민족주의에 기대는 경향이 커졌다. 장쩌민의 ‘3개 대표론’ 발표 이후 자본가와 기업인들에게도 공산당의 문호를 열었다. 젊은 세대 충원과 정권 교체도 순조로워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당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마오쩌둥 초상화는 언제까지? 대장정과 국공내전 속에서 지도력을 확립한 마오쩌둥은 신중국을 세운 핵심 인물이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실시했지만 “마오의 공은 칠, 과오는 삼”이라면서 그의 위상을 훼손시키지 않았다. 벌어지는 빈부격차 속에 공산당이 엘리트정당이 되고, 고위지도자들이 그들만의 서클을 만들어 통치하는 현대판 귀족정치 상황 속에서 오히려 마오에 대한 향수는 강해지고 있다. ●언제까지 생명력을 유지할까 타이완의 국민당이 지난 199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당 내부가 몇몇의 주요 인물을 따라 분열돼 다당제로 나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차기 당서기 겸 국가주석으로 내정된 시진핑 부주석과 ‘중국주식회사의 이사회’ 격인 차기 정치국의 상무위원 9인의 집단지도체제 실험에 미래가 달려 있다. 이들이 오는 2022년 시진핑 이후의 세대 교체와 권력 승계를 원만히 이뤄낼 수 있을지 여부가 중국 공산당 및 중국 미래를 좌우하게 된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서울광장] 진보의 적은 ‘진보’다/김종면 논설위원

    [서울광장] 진보의 적은 ‘진보’다/김종면 논설위원

    한국의 좌파를 진짜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좌파정당이라고 하면 곧 진보정당인가. 흔쾌한 답이 안 나온다. 종북좌파처럼 도무지 진보하지 않는 세력까지 진보라는 이름의 월계관을 쓰고 활개치고 있으니 말이다. 진보, 그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말이냐. 그 속엔 이미 변화를 모색하고 발전을 추구한다는 긍정적인 뜻이 담겨 있다. 진보의 특권이요 한편으론 부담이다. 그런데 진보 가치를 지향한다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요즘 통합작업을 보면 그들이 과연 특권을 누릴 줄 아는 만큼 부담도 질 줄 아는 집단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진보신당이 엊그제 당대회에서 민노당과의 통합을 위한 최종합의문 승인을 유보했다. 북한의 3대세습 등 주요 쟁점에 대한 합의를 둘러싸고 내홍을 겪어온 만큼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다. 민노당이 지난주 합의문을 채택하면서 가시권에 들었던 진보 통합작업은 다시 안개에 휩싸였다. 알다시피 진보신당은 2008년 종북주의 논란 끝에 민노당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후 ‘북한 핵개발·3대세습 반대’를 당 노선으로 택했다. 당대회 당일에도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북에 대해 국민이 보기에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비판해야 한다.”며 민노당과 사뭇 다른 입장을 보였다. 한때 무늬로나마 한몸이었던 두 당으로서는 숙명과도 같은 분열의 멍에를 하루빨리 내던져 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분당의 원인은 제쳐두고 엉거주춤 다시 하나가 되겠다는 건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3년이 아니라 10년이 걸리더라도 결별 원인부터 다스려야 한다. 병통을 감춘 채 겉으로 꿰매어 붙여봤자 또 다른 균열의 예고편이다. 내년에 큰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무조건 합치고 보자는 심사라면 정치불신만 키운다. 가치를 떠난 이익담합형 통합은 진보가 할 짓이 아니다. 두 당의 합의문은 ‘둥근 네모’ 같다. 모순의 극치다. “북한의 체제를 존중하고, 북한의 권력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권력승계 비판 입장도 존중하겠다니 말장난도 지나치면 언어폭력이 된다. 통합을 하겠다면 적어도 대북문제만큼은 성역 없는 공개 논의가 필요하다. 권력과 사람의 문제가 걸린 통합작업에 곡절이 없을 수 없다. 그 지난한 과정은 때론 희망만큼이나 큰 절망을 안겨준다. 그래도 국민의 기대수준이라는 게 있다. 더구나 지난 과오를 딛고 새 정치를 하겠다는 마당이면 뭔가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진보란 범박하게 말해 자유를 사랑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약자를 끔찍이 여긴다. 그런데 우리의 진보 현실은 그런 소중한 가치를 동경하는 자생적인 진보세력마저 떠나게 만든다. 자유와 평등을 소리 높이 외치면서 북한의 폭압적 3대 세습체제에 대해선 애써 입을 다무는 이상한 진보가 존재한다면 환멸을 느낄 만도 하다. 진보를 참칭하는 사이비 진보, 반(反)진보가 판치고 있다. 진보통합 작업의 중심은 단연 민노당이다. 지지율 3% 안팎의 군소정당이지만 조직력을 갖춘 민노당은 선거연합은 물론 야권 전체의 정책과 노선에도 무시 못할 영향력을 미친다. 이 당을 책임진 이가 이정희 대표다. 그는 북한의 3대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것이 진정 침묵으로 답할 사안인가. 지난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엔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를 정부는 똑똑히 봐야 한다.”고 퍼부어댔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라고 했지만, 이쯤 되면 차라리 악의 편에 섰다고 해야 옳다. 불퇴전의 종북정신만으로 진보 대통합은 가능하지 않다. 가능해서도 안 된다. 진보의 적은 ‘진보’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세상과 담 쌓은 갈라파고스 섬에서 외곬으로 진화한 희귀종을 닮아가는 자칭 진보의 모습이 안쓰럽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시장에 간여할 도리는 없다. 다만 권고할 뿐이다. 이제라도 진보는 종북에게, 종북은 진보에게 이별을 고하라. jmkim@seoul.co.kr
  • “교회주의 버려야 교회가 산다”

    “교회주의 버려야 교회가 산다”

    원로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김형석(91) 연세대 명예교수가 한국교회와 교회 지도자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다름 아닌 “교회 지도자가 교회주의를 버려야 교회가 산다.”는 고언이다. 김 교수는 16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매스컴위원회·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회장 최정기)가 주관해 열릴 제11회 가톨릭 포럼에서 이 같은 내용의 쓴 소리를 정색하고 낼 예정이어서 개신교계의 반응이 주목된다. 김 교수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기독교는 교회로 시작해서 교회로 끝나며, 교회의 존재목표와 목적은 교회에 있다는 전통적 고정관념과 성직자들의 의식구조에 변화가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그리스도가 한 가장 큰 업적은 구약적 전통과 신앙을 신약적인 것으로 새로 태어나게 한, 구약에 대한 탈 교회운동이었다.”며 “그런데 많은 성직 지도자들이 교회 안에 안주하며 교회 제도와 의식이 사회적 책임보다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면 교회는 폐쇄성을 면치 못하며 신약에서 구약신앙으로 되돌아가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특히 “전 세계가 인간의 인간다움을 위해 인권운동에 동참하고 있는데 교회가 교권을 인권보다 앞세우거나 사회에 요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못 박았다. 따라서 김 교수는 “인간은 모두가 스스로를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고 있으며 사회는 사라지지 않는 희망의 약속을 (교회에)기대하고 있다.”며 “성직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은 인간을 알면서 인간성을 넘어서는 위상과 책임을 갖추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번 가톨릭 포럼에서는 ‘한국 리더십의 위기를 말한다’라는 주제 아래 김 교수를 비롯, 장달중 서울대교수(‘한국정치의 패러독스와 정치적 리더십’)등이 한국 사회의 리더십 위기에 대한 진단과 제언을 한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기고] 지천명의 생일을 맞은 국정원/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기고] 지천명의 생일을 맞은 국정원/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국가정보원(국정원)이 10일로 개원 50주년을 맞았다. 두 차례 명칭 변경이 있었지만 1961년 6월 10일 창설된 중앙정보부의 후후신(後後身)으로 지천명(知天命)의 생일을 맞은 것이다. 50세 생일을 맞는 국정원에 바라는 국민의 기대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국가 안전보장, 국익 실현, 자유민주적 가치의 수호라는 기존 임무와 더불어 대한민국 선진화를 위한 주요 기능을 수행해 달라는 내용일 것이다. 50년 국정원 역사는 현대 한국정치의 진화 과정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다. 국정원의 지향점은 원훈(院訓)에서 잘 나타난다.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37년간의 부훈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였다. 여기에는 비(秘)조직으로서의 위상을 상징하는 뉘앙스가 다분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6월 ‘정보는 국력이다’로 원훈이 바뀌었다. 1990년대 인터넷 혁명 이후 정보의 중요성을 국력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려 인식해 왔다는 것이다. 2008년 현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은 원훈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변경하면서 자유주의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이처럼 50년 국정원 역사는 음습한 권력의 시녀라는 부정적 인식에서 민주적 정보기관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후 자유주의 실현으로 그 실천 목표를 옮겨간 점진적 진화의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간 국정원의 기능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가 뒤따랐다. 국정원은 개인에 대한 불법 사찰과 대선 등 주요 정치과정에 대한 개입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조직에 부여된 일차적 목표를 잊은 적은 없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했다면 대한민국의 국가적 실체는 이미 소멸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국정원의 과오는 보다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경향이 짙다. 지난 2월 발생한 국정원 직원들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 도처에서 국가안보를 위한 비밀공작을 수행하다 불의의 사고로 희생되는 직원들도 다수 존재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실로 목숨을 건 ‘총성 없는 정보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주변적인 과오 때문에 국정원의 본질적 기능을 간과하고 조직 전체에 부정적 낙인을 찍는 행위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향후 국정원은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한 도정에서 더욱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안보의 튼튼한 뒷받침 없이는 선진화는커녕 선배들이 애써 일궈놓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업적마저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버릴 수 있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 환경과 주변 강대국들의 정세를 고려할 때 국가안보와 실리외교를 위한 국정원의 업무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 가령 예측불허의 북한 사이버 테러와 관련하여 국정원의 예방적 보완조치가 강화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 국정원의 국가안보 관련 업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김형준 정치비평] 진정성 없는 쇄신은 기만이다

    [김형준 정치비평] 진정성 없는 쇄신은 기만이다

    한나라당에 쇄신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완패한 이후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함과 두려움의 반작용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지도부 총사퇴, 새로운 원내대표 선출, 비상대책위 구성 등 전형적인 쇄신 수순을 밟고 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과거에도 선거에 지면 상투적으로 쇄신을 주장했지만 결국 공허한 메아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푸른색을 탈색하고 때로 ‘붉은 한나라’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변한 것은 없고 시종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는 초식 공룡의 이미지만 고착화되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진정성과 감동을 주는 쇄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한나라당의 실질적 지배자인 이명박(MB)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진정성 있게 변해야 한다. 첫째, 한나라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현 상황에 대해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물론 국정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의 과오가 훨씬 크지만 박 전 대표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본인 스스로가 4·27 재·보선 다음 날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 방문길에 오르기 전 “이번 선택은 한나라당 전체의 책임이며, 저도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MB는 “박 전 대표를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대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 세종시 수정안과 같이 민감한 정치 현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 정치는 더럽고 비생산적이라며 비하하고 멀리한 점, 여당을 무시하면서도 여당을 통해 국회를 장악하려고 한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향후 대선 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과욕도 버려야 한다. 동시에 정치를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는 정치로 푸는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무 판단 능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는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를 줘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표의 경우, 당이 어려워 도움을 요청할 때 “선거는 당 지도부 위주로 치러야 한다.”고 매몰차게 거절한 점, 세종시와 동남권 신공항 문제들을 제외하고는 정부에 부담을 주기 싫다고 침묵한 점, 망국적인 계파를 해체하기보다는 계파 수장의 역할에만 충실했던 점을 반성해야 한다. 더 나아가 차기 대권을 노린다면 눈앞의 득실만을 따지는 근시안적 시각을 버리고, 침묵 정치를 버리고, 대세론을 버려야 한다. 동시에 한나라당 쇄신을 비대위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당권·대권 분리 문제에 대해 조속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비대위 의견이 나온 다음에 뒷북치는 식의 발언을 하면 혼란만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이 목숨을 걸고 지킬 수 있는 비전과 가치·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고, 한나라당에 실망해서 이탈하는 세력들을 다시 모을 수 있다. 미국 공화당과 연계된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보수가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보수주의 철학의 정립’, ‘철학의 대중화’, ‘철학의 정치화’, ‘자선 활동’ 등 4가지 운동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한나라당이 쇄신을 통해 한국 보수주의를 재구조화하려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셋째,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 이반과 몰락의 원흉인 계파를 실질적으로 해체하는 선언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에서 계파가 존속하는 한 그 어떤 쇄신안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설혹 젊은 대표가 등장하고, 새로운 계파로 권력 중심이 옮겨진다고 해도 당이 쇄신되는 것은 아니며, 밝은 미래가 저절로 보장되지 않는다. 양극화가 심화되어 중산층이 무너지고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친이-친박으로 나뉘어 또다시 싸운다면 그것은 쇄신이 아니라 기만이다. 이제 한나라당에 쇄신의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무늬만 쇄신’이 아니라 시대를 주도하는 역동적이고 매력 있는 정당, 상황에 좌우되는 변화가 아니라 미래를 이끌며 변화를 주도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 [박명재 세상 추임새] 너 자신 외에 모든 이를 용서하라

    [박명재 세상 추임새] 너 자신 외에 모든 이를 용서하라

    1년 중 가장 좋은 5월을 맞으면서 지나간 4월에 우리 역사상 아물지 않았던 상처 하나가 아름답게 매듭지어졌으면 하는 아쉬운 사건이 있었다. 다름 아닌 쉰한 번째 맞는 4·19혁명 기념일에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가 4·19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고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사죄를 하려 했으나 관련 단체의 저지로 무산된 일이다. 유족들의 원통하고 한 맺힌 심정을 잘 알 수 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 섣불리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망설여지는 일이다. 다만 눈여겨볼 대목은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쪽에서는 사죄가 진정성이 없고 사전에 적절한 절차나 교감 없이 갑작스레 이루어졌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죄의 가장 본질적 요소인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죄과”라고는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참배와 사죄를 거부당한 이씨 쪽에서도 “그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더 늦어지기 전에 역사의 잘못을 사죄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뜻”이라고 밝혀 계속해서 사죄를 해나갈 뜻임을 분명히 했다. 잘하면 쉽사리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질 것 같다는 희망 섞인 생각을 하면서 몇 가지 이유로 역사의 한 매듭과 당사자 간의 응어리가 풀리기를 기대한다. 첫째, 사죄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사건의 당사자가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즉, 당사자의 적격성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리할 사람은 양자인 이인수씨밖에 없다. 그분은 엄연한 법적 후계자 내지 대리인으로서 아비의 죄를 자식이 비는 법적, 윤리적, 인간적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정치적 사면과 용서·화해는 역사가와 국민들의 몫이며, 그가 어떤 정치적 사면과 용서를 바라지는 않고 있다.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80을 넘은 그의 생전에 사죄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뒷날 다른 어떤 자연인이나 단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죄는 그만큼 당사자 적격성에 치명적인 흠결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가 어떤 잘못과 과오에 대한 용서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용서가 잘못을 예방하고 근절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또 다른 잘못과 과오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반복성의 효과에 대한 의문과 염려 때문이다. 프랑스 격언 중 ‘쉽사리 용서해 주면 잘못을 반복시킨다.’라는 말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국민적·정치적 역량과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더 이상 이 땅에 또 다른 독재의 망령을 부활시키거나 학생운동을 무자비하게 총칼로 탄압하고 희생을 되풀이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4·19혁명의 숭고한 이념과 발전적 미래가치의 정립 그리고 역사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양자 간에 사죄와 용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의 건국과 4·19혁명의 민주화, 5·16의 산업화, 현재의 선진화 그리고 미래의 통일 한국으로 나아가야 할 역사적 맥락과 정체성 측면에서 꼭 매듭지어야 할 역사적 과제이자 필연이기 때문이다. 용서와 화해는 논리나 사변의 이성적 차원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의 인간적 차원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우리 속담에 ‘귀신도 빌면 듣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머리 허연 80 노인이 살아생전에 양부의 역사적 과오와 허물을 빌기 위하여 묘역에 나왔다가 이리 밀치고 저리 떠밀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 노인이 세상 떠나기 전에 진정한 사죄와 용서 그리고 역사적 화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은 비단 필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숱한 전쟁과 보복의 왕조사가 점철된 영국에 유난히 용서에 관한 격언이 많다. 그중 아래 두 가지를 인용하면서, 늦어도 내년 4월까지는 양쪽 간에 아름다운 사죄와 용서가 이루어져 우리 역사의 한 매듭이 마무리 되기를 희망한다. ‘너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 ‘용서는 가장 고귀한 승리이다.’
  • 용산 내부고발 핫라인 개설

    용산구가 ‘내부고발 핫라인’을 개설한다. 내부고발을 활성화해 조직의 자정 능력을 향상시키자는 취지다. 구는 2일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실시한 청렴도 측정 결과 업무지시의 공정성 분야와 예산 위법·부당 집행 분야에서 내부 청렴도가 낮게 나왔다.”며 “향상 대책의 일환으로 내부고발 핫라인을 개설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감사담당관 내 직통전화를 설치해 내외부 비리나 상급 직원의 부당한 업무지시 등에 대해 직접 상담하고 접수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내부 전산망에 감사담당관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배너를 설치하고 신고자 신분 보호를 위해 타인은 열람하지 못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 전화국에 별도의 통신망 설치를 요청하고 보안 메일을 마련, 철저하게 신고자 비밀을 유지해 신분상 불이익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송정환 구 감사담당관은 “핫라인을 통해 접수된 고발사항은 비리신고 조사 전담반을 구성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억울함이 없도록 공정하게 처리할 것”이라면서 “또 자신의 비리나 업무상 과오를 핫라인을 통해 신고할 경우 경중에 따라 징계수위를 낮춰 주는 ‘플리바게닝 제도’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시론] 수사권 조정, 검찰 결단이 요구된다/김재광 선문대 법학과 교수

    [시론] 수사권 조정, 검찰 결단이 요구된다/김재광 선문대 법학과 교수

    최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6인 소위) 합의안이 발표되어 많은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합의안 중 특히 관심을 끈 것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것이었다. 6인 소위의 합의안은 수사권 조정과 관련하여 수사권 조정 단계가 아니라는 점, 경찰에 수사개시권이 있음에도 형사소송법에는 없는 것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명문화해 주는 것이라는 점,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에 수사지휘권한이 명시되어 있으므로 중복된 검찰청법 제53조(명령복종의무)를 삭제하는 것이라는 점, (이번 합의는) 현실에 어떠한 변동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생각건대, 현재 발표된 합의안만으로는 수사 현실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에는 미흡하여 진정한 수사권 조정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수사권 조정의 완결이 아니며 앞으로 본격적인 수사권 조정 논의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수사권 조정은 해방 이후 60년 넘게 계속된 역사적 논제로서 경찰이 수사주체이고 검·경이 상호협력하는 ‘세계 표준’과 합치되어야 할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수사구조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검찰권한 집중형태이다. 즉, 영국·미국 등 영미법계는 수사·기소 분리원칙에 따라 경찰이 수사주체이고, 검찰은 기소주체로서 상호협력관계를 정립하고 있다. 독일·프랑스 등 대륙법계에서도 경찰은 독자적 수사주체이고, 검사는 수사지휘를 하되 직접수사는 하지 않고 수사 통제와 기소에 주력한다. 일본은 경찰이 1차적·본래적 수사주체이고, 검찰은 2차적·보충적 수사 및 기소주체로서 상호협력관계를 정립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법제도의 개혁을 위해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형사사법의 3권(수사·기소·재판) 분립을 통해 후행하는 절차가 선행절차에서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본질적이고 현실적이며 국민정서에 들어맞는 개선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헌법상 사법권은 중립적인 법관의 권한으로 되어 있다. 남은 것은 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권과 기소권의 귀속을 하루빨리 정상화하는 것이다. 사법개혁의 큰 틀에서 볼 때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영미식 수사구조가 바람직하나, 급격한 제도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하여 먼저 일본식의 절충형 수사구조를 도입, 수사·기소 분리의 연착륙을 꾀할 필요가 있다. 즉, 수사 개시부터 송치까지는 경찰이 ‘1차적·본래적 수사기관’으로서 책임수사하고, 검찰은 송치 후부터 ‘2차적·보충적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기소권’으로 경찰수사를 객관적·중립적 입장에서 철저히 통제하는 방식이다. 경찰이 범죄사건의 98%를 수사하는 현실에 들어맞게 책임과 권한이 상응하도록 법제화하는 최소한의 필요 수준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엘리트 계층이다. 검찰이 사법정의를 실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검찰도 선진국의 권력분립 원칙에 입각한 형사사법 개혁 노력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 대원칙인 권력분립의 원칙이 형사사법 영역으로 확장되어 수사·기소·재판을 분리,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체제로 이행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여 수사단계에서의 과오를 기소단계에서 필터링하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수사권을 구조적으로 통제하는 개혁 방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검찰 스스로 수사권 조정에 대한 ‘맑고 향기로운’ 결단이 절실히 요구된다. 법원이 검찰권을 존중하면서도 재판권으로 검찰을 통제하듯이, 검찰도 명령·지배가 아니라 기소권을 가지고 경찰수사를 통제하는 선진 형사사법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늘 ‘맑고 밝고 바른’ 국민의 검찰로서 대한민국의 사법정의 실현을 위해 더한층 매진해 주기를 바란다.
  • “北내부 김정은 세습 두고 세력다툼 시끌”

    “北내부 김정은 세습 두고 세력다툼 시끌”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은 “북한 내부에서도 김정은 3대 세습에 이견이 있는 세력들의 다툼으로 매우 시끄럽다.”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대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수명이 짧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설명하면서 걸음걸이를 직접 흉내내기도 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국가정보원 산하의 외교·안보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으로 이 분야의 최신 정보가 총집결하는 곳이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 도곡동 연구소에서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연평도에 대한 사과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다고 했다. -정상회담은 필요하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북한 체제 구조상 최고 책임자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군사실무회담이나 장성급 회담으로 풀 수는 없다. 사전에 물밑 작업이 조율되어야 한다. →북한이 천안함·연평도에 대해 사과를 할까? -사회주의자들도 한번은 사과를 한다. 우리가 벤치마킹할 두 가지 전례가 있다. 우선 1972년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7·4남북공동성명이다. 또 하나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김정일 위원장의 평양선언이다. 사회주의자들이 과오를 한번은 인정하지만 두번은 하지 않는다. 북한도 전례를 볼 때 천안함·연평도에 대해 고백을 할 수 있다.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김정은 후계 세습은 예정대로 이뤄지고 있나. -김정일이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에 올랐던 것처럼 내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에 4차 대표자 회의나 7차 당대회를 열어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천명할 것이다. 3대 세습의 포인트는 워싱턴에서의 책봉, 공인이다. →워싱턴에서의 책봉은 무엇을 말하나? -국제정치적 측면으로는 우선 평화협정을 얻어낸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제재를 풀 수 있고 경제적인 자금회전이나 무기수출 등을 할 수 있다. 리비아 사태에서 봤듯이 미국과의 관계가 안 좋으면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소한 공격은 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다. 또 북핵문제의 카운터파트는 미국이다. 핵을 10개 개발했다면 절반은 막대한 경제적 보상을 받기 위해, 절반은 핵보유국으로서 자위권 확보에 이용할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식량지원을 빨리 받을 수 있는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김정일·김정은 정권의 서바이벌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다. →김정은의 후계체제 구축은 순조롭게 진행될까? -28살 젊은이가 세습하는 데 대해 물 위에서는 평온해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이견을 가진 세력들이 만만치 않다. 세습 반대라기보다는 김정은 체제 때의 자신의 위치를 계산하는 것이다. 김정일 입장에서는 ‘내가 살아 있는데도 저렇게 시끄러운데, 사망하면 어떻게 될지’ 불안감이 크다. 내년 4월까지 소프트랜딩을 시키기 위해서는 대내적 관심을 대외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연평도 포격은 그런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김정은 방중은 언제쯤이 될 것으로 보고 있나. -4월 15일 이후 6월 사이엔 언제든지 갈 수 있다. 내년 4월 15일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단독 방중으로 젊지만 지도자다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북한 붕괴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켜야 한다. 중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절반은 만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인관계능력, 사물 판단 능력이 나오게 된다. 좀 더 파격적이라면 상하이를 방문해 개혁·개방 이미지를 부각시킬 것이다. 물질적 지원을 받아내는 것도 중요한데 매년 받는 식량 15만~20만t, 연료(코크스 등) 15만t보다 좀 더 받아낼 수 있다. 새 지도자에 대한 축하의 의미도 있다. →김정일의 현재 건강은 어떤가? -3주 전에 평양에 근무 중인 유럽국가 대사와 저녁을 했다. “얼마나 오래 살 것 같느냐. 나는 5년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했더니, “3년을 못 넘길 것 같다.”고 했다. 그와 악수도 하고 3m 거리에서 움직이는 것을 지켜봤는데 걸음걸이가 앞으로 채 10㎝도 걷지 못한다고 했다. →김정일의 건강이 좋아질 가능성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주치의 100명이 관리는 하고 있지만 결국뇌졸중은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 김정일은 3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첫째 3대 세습이 안정적으로 이뤄질지 최근 중동사태를 보면서 스트레스가 늘었을 것이다. 둘째 정권 창설 63주년이 되도록 해결이 안 되는 경제난, 셋째 핵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지원과 협상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다. 3대 스트레스가 잘 해결되면 수명이 길어질 테고, 잘 안 되면 짧아질 것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妻子와 愛人을 음독시킨 아, 내이름 家長”

    “妻子와 愛人을 음독시킨 아, 내이름 家長”

    [선데이서울 73년 7월 8일호 제6권 27호 통권 제 247호]  귀여운 두 아이들의 영혼은 지금 어느 곳을 헤매고 있을까? 꿇어 엎드린 그 젊은이의 뺨에는 하염없이 회한의 눈물만 흘러내린다. 아내는 복역 중에 있고 연인은 영원히 떠나버렸다. 사랑과 미움의 갈림길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천애의 골짜기로 굴러 떨어진 어떤 가장. 재기의 몸부림과 속죄의 절규로 썼다는 애독자 김모씨(기사 원본엔 풀 네임 적시돼 있음)의 수기를 싣는다.   아마 기억하고 있는 독자는 흔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지난 해(1972년) 9월8일자 각 일간지 사회면에는「일가족 집단 음독자살」 제하의 기사가 난 일이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의 일가족 가장이다. 이제 내 나이 30살. 그리하여 나는 이 사건으로 귀여운 아이들을 잃고 속죄의 몸부림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건의 시초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독자살 미수에 그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鄭京淑(25·가명)이라는 여인 이야기를 신문을 통해 보고 왠지 동정심에 이끌려 찾아가 치료와 퇴원 수속까지 자비로 해준 일이 있었다. 동정은 사랑으로 변하여 결국 부모와 친척이 없다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 동거하게 되었다.  그 뒤 나는 군에 입대했고 파월(월남 파병을 말함) 되었다가 69년 8월에 귀국, 제대했다.  제대를 한 뒤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어머님과 가족들에게 얘기했으나 과거가 있는 그 여자(실연 후 음독했다고 함)와는 절대로 결혼시킬 수 없다는 완강한 반대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끝내 69년 8월27일 나의 집이 있는 서울을 도피해 인천시내 K예식장에서 가족들이라고는 한 사람도 참석치 않은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약 1년 동안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 서울 금호동 변두리에 셋방을 얻어 생활했다. 아내가 첫딸을 낳자 어머니도 어느 정도 이해하여 집으로 들어 가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녀와의 결혼을 극력 반대하던 어머니의 감정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은 탓인지 어머니와 아내는 서먹서먹 했고 보이지 않는 불화가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아내는 또 아들을 낳아 우리는 1남1녀를 두었다.  당시 나는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인천으로 전근이 되어 그곳으로 출퇴근을 했다.  교통이 불편해서 나는 직장 부근에 하숙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집에는 일주일에 한두번 갈 정도가 되었다. 그 즈음 나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지(池)모양(20)과 사귀게 되었다.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 졌으면 결국 몸을 하락하게 되었다.  나는 아내가 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池양은 펄쩍 뛰며 아내와 헤어질 것을 요구해 왔다. 결국은 아내와 본격적인 이혼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때 나는 장님이 되었던 것 같았다.  아내도 설마 내 말이 거짓이겠지 하며 『사실이라면 사귀고 있는 여자와 직접 만난 다음에 합의해 주겠다』고 얘기했다. 그 후 두 여인은 몇차례 만났으며 그때마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두 여인의 사이는 외면적으로는 사이가 좋아보였다.  그러나 막상 아내가 이혼 조건으로 요구하는 위자료를 그 당시 나의 입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어 어렵게 되어 하루 하루 이혼문제는 지연되었으며 자연 池양과 나는 시내 여러 곳으로 남의 눈을 피해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나 池양의 가족들은 나의 환경을 알게 된 후 자기 딸을 집에다 감금하다시피 꼼짝 못하게 했다. 더우기(더욱이)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머리까지 가위로 빡빡 깎아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머리를 수건으로 쓰고서라도 또 집을 뛰쳐나와 나에게 빨리 이혼할 것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해 9월4일 아내는 이혼 조건을 대폭 완화하여 9월5일 합의이혼 수속을 끝내자고 말해 池양은 이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하지만 깊은 정이 든 아내와 막상 헤어지자니 망설여졌다. 나는 나의 확실한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아는 선배를 찾아가 나의 입장을 설명하고 어떠한 판단이 옳은 지를 상의했다.  선배는 두 자식을 위해서 절대로 아내와 이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나도 그것이 옳은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두 여인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池양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池양은 여태껏 미루어 온 결정을 눈 앞에 놓고 무슨 얘기냐고 흥분하여 서로가 옥신각신 심한 언쟁을 했다.  이 광경을 옆에서 보고있던 아내는 池양이 처녀의 몸으로 당신과 사귄 것인만큼 또 한 여인을 희생시킬 수 없으니 자기가 물러나겠다고 했다. 나는 아내의 말에 지금의 내가 말한 것은 심중히 생각한 결론이며 움직일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얘기가 쉽게 끝나지 않아 그날 밤 10시경 두 여인과 나는 집 부근에 있는 여관으로 장소를 옮겨 밤 늦도록 얘기를 나누었지만 결론을 못 얻었다.  밤이 늦어 잠깐 잠이 들어 새벽 5시경 눈을 떠보니 두 여인은 어린 것을 데리고 내가 풀어논 팔뚝시계와 외투에 든 돈 등을 꺼내 가지고 행방을 감춰버렸다.  나는 혹시 집으로 간 것이 아닌가 하여 집으로 가본즉 池양이 새벽 4시경 집에 들어와 잠자고 있던 맏딸 주현(3세)을 마저 업고 나갔다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불길한 예감에 하루 온종일 두 여인의 행방을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밤 9시가 조금 못되어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금 집 근방에 있는 여관마다 두 여인을 찾아 헤맸다. 겨우 신림동에 있는 K여관 101호실에 투숙한 사실을 알고 방문을 「노크」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여관 종업원이 창문으로 들어가 방문을 열었다.  방에는 싸늘한 체온의 두 자식과 시체와도 흡사한 두 여인이 눈 앞에 뒹굴고 있었다.  나는 즉시 인근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급히 S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날 밤 자정이 조금 지나 주현이가 숨지고 다음 날 하오 2시경 장남 재훈이마저 숨이 끊어졌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심정으로 그때까지도 의식불명인 두 여인의 회복을 미칠 것같은 심정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약 46시간만에 점차 의식이 회복되는 두 여인을 뒤로 하고 나는 당면한 병원비와 입원비를 마련코자 집으로 뛰어가 세간살이와 집을 헐값에 급히 팔아 가지고(내놓고의 뜻으로 보임) 병원으로 돌아오니 이미 대기했던 각 신문사 기자와 방송사 기자들의 취재가 어지러울 정도로 시작되었다. 동시에 관할 경찰서 형사가 두 여인과 나에게 조서를 받아가고 다음 날 아내는 (직계)비속 살인죄로 기소되었으며 회복되는대로 구속된다는 사실을 형사로부터 들었다.  그 후 두 여인의 건강은 놀라울이(놀라울) 만큼 빨리 회복돼 갔으며 음독을 하게 된 경위를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벽에 여관을 나선 그들은 시계를 팔아 받은 돈으로 수십 곳의 약방을 돌아 음독할 약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이혼을 해주고 어린 자식들을 다른 여자에게 주느니 차라리 자식과 함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池양은 나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닥쳐올 가족들의 비난과 자신의 운명을 비관한 나머지 각자의 이유는 달랐으나 죽는다는 것에 합의를 보아 기묘한 동반자살을 (시도)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며칠 뒤 池양의 가족들은 나를 혼인빙자 간음죄로 고소했으나 웬일인지 고소를 취하, 나는 풀려났으며 그 해 10월27일 두 여인은 노량진경찰서에 구속되었다.  나의 잘못으로 죄 없는 어린 두 자식이 희생됐고 또 두 여인이 구속된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는 수차 자살을 기도했으나 뜻을 못 이룬채 두 여인이 구속돼 있는 경찰서로 면회를 갔었다. 그러자 아내가 그 전 내가 자기 오빠뻘이 되는 사람 집에 있을 때「타이어」 2개를 갖고 간 일이 있다고 해서 절도죄로 피소, 나 역시 11월1일 구속되어 한 경찰서 감방 안에는 뭇사람들의 웃음과 조롱거리가 된 두 여인과 내가 마주 쳐다보이는 쇠창살문 안에서 고통스런 3일을 함께 지냈다.  11월5일 두 여인은 먼저 영등포구치소로 넘어가고 나 혼자 있다가 11월10일 나도 구치소로 넘어가 영등포구치소로 내에 3인이 같이 수감됐다. 검치가 시작되어 매일 검사 앞에 푸른 수의를 걸친 두 여인과 나는 같은 검사실에서 취조를 받았다.  그러나 아내는 범행을 순순히 시인하나 池양은 내가 약을 사줬으며 자기는 절대 간여한 사실이 없다고 끝내 부인했다. 그러나 나는 살인죄에는 간여한 사실이 없다고 인정되어 절도죄로 10월 구형에 6월형을 선고받아 머리를 깎고 기결수로 노역장에 출역을 했으며 복역 중에는 두 여인의 공판 하루 전날 증인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두 연인은 구형에서 징역 5년씩을 선고받았다. 池양 측에서는 변호인을 선정하여 변론을 했으나 아내는 변호인도 없이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으며 池양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되어 석방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나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며 돌이킬 수 없는 과오인가를 뉘우치며 짧은 복역기간 동안이나마 열심히 반성하고 일했다.  나는 형기가 만료되어 지난 5월3일 구치소의 육중한 철문을 나와 자유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 날 나는 아직도 구치소 안에 혼자 남아있는 아내를 면회하였다.  아내는 슬프게 흐느끼면서 『당신을 전과자로 만들고 두 자식을 죽인 내가 죄가 많아요. 이제라도 당신의 행복을 위해 池양과 결혼하라』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당신이 석방되어 나오는 날까지 나는 꼭 당신만을 기다리겠소. 당신의 깊은 사랑을 나는 이해할 수 있으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몸 건강히 있으라』고 일러둔채 말문이 막혀 돌아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첫날 면회를 간 후 이틀이 멀다 하고 나는 면회를 가며 매일 편지를 띄우고 있다. 이제 오직 나에게는 아내가 나오는 날까지 과거의 아픔을 거울삼아 힘껏 못다 이룬 둘만의 행복을 향해 줄달음칠 결심이다. 그래서 참되게 살겠다.  ■한 가족 음독자살 당시의 보도  「선데이서울」제207호 72년 9월24일자 P16에 보면 9월8일 金모여인과 정부 池모양이 신림1동 C여관에서 함께 음독자살을 꾀한 사건이 났다고 보도되었다. 여기에는 물론 金씨의 수기에서와 같이 金씨의 아들(1살) 딸(3살)도 함께 어른들에 의해 음독, 72년 9월8일 현재 아들만 죽고 나머지 3명은 가료 중이라고 되어 있다. 이 기사에는 池양과 金씨가 동거하는 곳에 나타난 金씨의 아내 鄭여인이 『위자료를 내면 양보하겠다』고 요구하여 옥신각신 하던 끝에 집에 돌아온 金씨가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라. 둘 다 꼴보기 싫다』며 내쫓아 버렸는데 엉뚱하게 본처와 정부가 동반자살을 하려다 실패, 딸만 절명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 환자 앞에서 방귀 ‘뿡뿡’ 치과의사 퇴출

    환자 앞에서 거침없이 방귀를 뀌고 트림을 하는 등 무례한 행동을 했던 영국의 한 치과의사가 퇴출 위기에 놓여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슈루즈버리의 한 치과병원에서 2006년 8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근무한 매튜 월튼(35)은 잦은 방귀와 트림, 욕설 등으로 환자와 동료 간호사들에게 모욕감과 불쾌감을 안겨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속적인 불만 및 신고가 접수되자 영국 치과협회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뒤 지난 6일(현지시간) 공공보호를 위해 그를 즉각 정직 처분했다. 월튼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4월께부터 월튼의 치과의사 자격은 영구적으로 취소된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월튼의 행각은 상식 밖이었다. 월튼은 환자의 치아를 뽑으면서 욕설을 하거나 방귀를 뀌거나 트림을 하는 등의 무례한 행동을 했다. 또 행색이 초라하거나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돈을 먼저 달라.”고 해서 모욕을 주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함께 근무한 간호사 니콜라 그룸은 “동료들 앞에서는 물론 환자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했다.”면서 “한번은 5살짜리 어린 환자에게 비키라고 밀어 다치게 한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법정에 선 월튼은 자신의 과오를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간호사들 앞에서 무례한 행동을 했을 뿐 환자들에게 모욕을 준 일은 없다.”고 변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http://twitter.com/newsluv) 
  • [사설] 23년 걸린 의료분쟁법 공정운영 기대한다

    23년 동안 표류해온 의료분쟁조정법이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의료사고에 대한 합리적인 조정과 신속한 피해구제가 가능하게 됐다. 그동안 의료사고에 대해 병원과 환자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송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의료분쟁으로 인한 소송건수는 한해 1000건이 넘는다. 소송기간의 장기화(평균 26.3개월)로 인한 개인·사회적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이 법에 따라 소송 전 중재를 거칠 수 있게 됨으로써 의료분쟁 해결은 한층 합리적인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소송만능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우여곡절 끝에 의료계와 정부, 시민단체 등 이해당사자가 입장차를 좁히고 상생의 길을 마련한 만큼 성숙한 제도적 운영이 요구된다. 법이 시행되면 새로 설립될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의료사고를 조사해 분쟁 중재를 맡게 된다. 정보 접근이 어려워 의료 과오를 입증하는 데 곤란을 겪어온 환자로서는 퍽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의료사고 발생시 의사가 스스로 무죄를 입증해야 처벌을 면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 조항이 제외된 데 대해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입증책임 전환과 관련, 피엘(product liability)법을 원용하기도 한다. 제품에 하자가 있을 때 제조사나 판매사가 제품에 결함이 없음을 증명해야 배상책임을 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제품 소비자와 의료 소비자를 동일 선상에서 재단하는 것은 무리다. 의료분쟁의 원인이 의료인의 과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엔 진료 결과에 대한 환자의 불만족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예도 적지 않다. 의료인이 의료사고를 피하기 위해 방어진료나 위축진료에 안주하거나 응급의료를 기피하려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그런 점에서도 입증책임 논란은 별 실익이 없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요컨대 신설될 중재원이 독립기구로서 얼마나 제3자적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어렵사리 마련된 이 법이 의료분쟁 문화의 선진화, 나아가 의료허브 대한민국의 꿈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지자체 ‘부당행정’ 뿌리 뽑는다

    앞으로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감사가 강화된다. 감사 결과, 수사의뢰나 고발조치할 사안이라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사법당국에 고발 등의 조치를 하기로 했다. 또 지역현안과 기업애로 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컨설팅 감사’시스템도 도입한다. 1일 서울신문 취재결과,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지자체 감사보완책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정부 합동감사에서 지자체 행정에 문제점이 있으면 시정, 주의, 경고 등 행정처분을 하고 사법당국에 고발할 사항이 있더라도 거의 고발하지않았다.”면서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 같은 경우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수사의뢰 및 고발 조치 등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감사과정에서 적발한 공무원의 업무과오가 주민 이익에 크게 배치되고 큰 예산낭비로 이어지는 등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하면 해당 공무원과 기관에 대한 고발조치까지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행안부는 이와 함께 컨설팅 감사방식도 도입한다. 일반적인 회계감사와 직원 복무감찰 차원을 넘어 지역현안과 기업애로 등을 해결해 비리를 차단할 수 있도록 감사과정에 컨설팅 업무를 새로 도입하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컨설팅 감사’를 통해 오래 방치된 지역사업이나 중앙정부의 반대로 추진이 어려웠던 사업들을 관련 부처와 직접 조정하는 역할도 할 것”이라고 말해 주목됐다. 동남권 신공항이나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 등 현재 지자체 간 이견이 있는 사업에 대해 행안부가 나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행안부는 또 지난해 5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시범운영해온 ‘내부통제시스템’을 다음달부터 24개 기초단체에 확대적용하고 내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내부통제시스템은 지방 공무원의 비리와 탈법, 태만, 업무 오류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자체가 자체 감사 및 실시간 모니터링하게 하는 공무원 비리 방지책이다. 시스템 운영 실적이 우수한 지자체에는 정부합동감사나 시·도 종합감사를 생략하는 혜택을 줄 방침이다. 한편 행안부는 오는 17일 인천광역시를 시작으로 충남(5월), 경북(6~7월), 부산(9~10월), 경남(11~12월) 등 5개 시·도에 대한 정부합동감사를 실시한다. 앞서 대전·광주·울산 광역시, 강원·전남도 등 5개 광역 및 기초 지자체들에 대한 정부합동감사에서는 인사특혜와 건축시설 분야에서의 부적절한 계약 등 공무원 비리 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실시된 이 감사에서 모두 788건의 부당사례가 적발됐다. 처분 건수가 가장 많은 곳은 전남(208건), 강원(171건), 광주(146건), 대전(135건), 울산(128건) 순이었다. 행안부는 문제가 있는 공무원 96명을 인사조치하고 664억여원을 회수·추징하거나 감액조치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내년 총선·대선…‘올 넘기면 남북관계 개선 어렵다’ 판단

    내년 총선·대선…‘올 넘기면 남북관계 개선 어렵다’ 판단

    ■3·1절 기념식서 만난 MB-손학규 MB “언제 한번 봐요” 孫 “건강하시죠” “언제 한번 봐요.” 이명박 대통령이 1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3·1절 기념식이 열린 세종문화회관에서다. 기념식에 앞서 오전 9시 40분쯤 이 대통령은 대기실에 있던 손 대표 등과 20여분간 환담을 나눴다. 영수 회담이 결렬된 뒤라 이 대통령과 손 대표의 조우는 분위기가 다소 어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대기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손 대표에게 악수를 하며 “아이고,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언제 한번 봐요.”라는 말을 건넸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건강하시죠.”라며 회동 제안에 “네”라고 답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제가 손 대표를 잘 모셔야죠.”라면서 준비된 케이크를 덜어 주는 등 친근감을 표시했다. 박희태 의장이 “두분이 과거부터 가까운 사이 아니냐.”고 묻자 이 대통령은 “정치만 안 했으면 되게 친했을 텐데 마음에 없는 얘기도 하고 그래서….”라면서 웃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도 “조건을 걸지 말고 무조건 만나야죠.”라고 거들었다. 손 대표는 특별한 언급 없이 내내 미소를 짓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념식이 끝난 뒤 “언제 한번 보자.”는 이 대통령의 언급이 직접적인 영수회담 제의로 해석되면서 민주당은 발끈했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어제(2월 28일) 청와대에서 손 대표의 경축식 참석 의사를 타진했고 ‘오늘 밥 한번 먹자.’라는 식으로 말한 것을 영수회담 제의라고 한다면 계획적인 것 같다.”면서 “‘몰래카메라’ 아니냐. 영수회담은 밥 한번 먹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대표도 웃고 말았다. 우리로서는 진지하게 영수회담을 제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성수·구혜영기자 sskim@seoul.co.kr 이명박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북한의 태도변화를 촉구하면서 올해가 남북 간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최적기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북한이 핵개발과 무력도발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언제든 열린 마음으로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이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남북대화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대화의 문이 아직 닫히지 않았다.”(1월 3일·신년 특별연설), “북한이 변화할 시기가 아니겠는가 하는 기대를 잔뜩 하고 있다.”(2월 1일·신년 방송좌담회), “금년을 놓치지 않고 진정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2월 20일·기자 오찬간담회) 등이다. 올해 기념사에서는 특히 “많은 나라들을 돕는 대한민국이 같은 민족인 북한을 돕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북한이 지난해 발생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한다면 경제적인 원조도 해줄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임기를 2년 남겨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남북대화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은 올해 안에 의미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총선·대선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는 내년에는 남북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된 데 이어 한·미 합동군사 훈련에 대해 북한이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강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긴장국면을 완화할 필요성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지만, 좀 더 전향적인 대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일관계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나 반성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대신 한일병합이 강제적으로 이뤄졌음을 시인했던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지난해 담화문을 언급하면서, 일본이 진정성 있는 행동과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 총리는 지난해 담화문에서 “역사와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가지고 스스로의 과오를 솔직하게 되돌아보겠다.”고 밝혔다. 또 3·1운동의 정신이 세계 개조의 이상을 표출한 ‘세계주의’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의 주역인 ‘G20 세대’가 이를 계승해 당당히 세계와 경쟁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열린세상] 사랑의 열매란 무엇인가?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열린세상] 사랑의 열매란 무엇인가?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오래된 미풍양속으로 이웃에 대한 따뜻한 손길과 배려를 들 수 있다. 우리 정신문화의 큰 맥을 이루어온 불교문화의 경우에도 보시(布施)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어 이를 열반에 이르는 첫 번째의 길로 평가했다. 유교문화의 경우에도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자손에게도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고 말하며 이웃에 대한 선행을 장려했다. 조선왕조시대 마을 사람들이 지켜야 할 약속 가운데에는 “환난을 서로 구제한다”(患難相救)는 조항이 있었다. 그들은 어려운 이들에 대한 배려를 사회적 의무로 생각했다. 전근대 역사에서는 사회의 안전망이 미비되어 있었다. 그 결과로 일반인들은 환난에 처해 곤란한 사람들을 구호하는 일의 일차적인 책임을 감당해야만 했다. 반면에 근대국가들은 점차 복지사회를 지향해 갔다. 이때에는 국가가 환난 구제의 책임을 당연히 짊어져야 했다. 그러나 국가라는 거대조직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국가의 복지정책이 간여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필연적으로 있게 마련이라는 말이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은 국가가 아닌 마음이 따뜻한 민간의 몫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의 사회에서도 불우 이웃에 대한 베풂은 숭고한 자기희생이며 선행으로 높이 평가되었고, 여러 종류의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불우 이웃에 대한 민간의 선의를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불행을 겪게 된 사람들에게 이를 효과적이며 합리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되어 갔다. 아마도 지금의 공동모금회는 이 과정에서 조직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금의 정신을 널리펼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를 알리기 위해 앙증맞은 빨간색 사랑의 열매를 줄창 가슴에 달고 다녔다. 지 난해 11월이었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의 공동모금회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결과 직원 공채 과정에서 탈락자를 편법으로 채용했고, 업무용 법인카드를 부당하게 사용한 점 등이 지적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장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공동모금회가 편법과 부정으로 얼룩진 부도덕한 행동을 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비리에 국민들은 실망했고, 상당수가 공동모금에 등을 돌렸다.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공동모금회는 연말연시에 ‘희망 2011 나눔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러나 캠페인은 목표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결과를 드러냈다. 올해의 모금액은 2072억원이었다. 이는 지난해보다 170억원이 줄어든 금액이었고, 목표액의 92%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목표액의 149%를 모금한 바 있다. 그때와 올해의 성과를 비교해 보면, 비리 사건에 대한 국민의 채찍이 매서웠음을 알 수 있다. 모금된 기금의 운용과 집행과정 등에서 일부 직원들이 저지른 일탈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따뜻한 마음에 대한 배반이었다. 또한 그것은 이웃을 도와 왔던 우리 문화의 아름다운 전통을 모독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불우이웃돕기 운동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공동모금회는 사건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뼈를 깎는 반성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이웃돕기의 방법과 운영 및 집행과정의 투명성을 점검하고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불행한 그 사건이 공동모금 자체의 의미를 부정하거나 약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랑의 열매란 무엇인가. 그것은 착한 마음이 모여 이뤄진 아름다운 결정이다. 앙증맞은 빨간색 사랑의 열매는 이웃과 함께 삶을 나누려는 정신의 상징으로 다시 자리 잡아야 한다. 이제는 똑바른 눈으로 공동모금회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지켜볼 시점이다. 진흙 속에서도 연꽃은 피지 않는가. 이제 나도 불행한 과오를 딛고 우뚝 일어설 공동모금운동의 힘찬 모습을 다시 그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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