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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진보의 적은 ‘진보’다/김종면 논설위원

    [서울광장] 진보의 적은 ‘진보’다/김종면 논설위원

    한국의 좌파를 진짜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좌파정당이라고 하면 곧 진보정당인가. 흔쾌한 답이 안 나온다. 종북좌파처럼 도무지 진보하지 않는 세력까지 진보라는 이름의 월계관을 쓰고 활개치고 있으니 말이다. 진보, 그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말이냐. 그 속엔 이미 변화를 모색하고 발전을 추구한다는 긍정적인 뜻이 담겨 있다. 진보의 특권이요 한편으론 부담이다. 그런데 진보 가치를 지향한다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요즘 통합작업을 보면 그들이 과연 특권을 누릴 줄 아는 만큼 부담도 질 줄 아는 집단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진보신당이 엊그제 당대회에서 민노당과의 통합을 위한 최종합의문 승인을 유보했다. 북한의 3대세습 등 주요 쟁점에 대한 합의를 둘러싸고 내홍을 겪어온 만큼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다. 민노당이 지난주 합의문을 채택하면서 가시권에 들었던 진보 통합작업은 다시 안개에 휩싸였다. 알다시피 진보신당은 2008년 종북주의 논란 끝에 민노당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후 ‘북한 핵개발·3대세습 반대’를 당 노선으로 택했다. 당대회 당일에도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북에 대해 국민이 보기에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비판해야 한다.”며 민노당과 사뭇 다른 입장을 보였다. 한때 무늬로나마 한몸이었던 두 당으로서는 숙명과도 같은 분열의 멍에를 하루빨리 내던져 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분당의 원인은 제쳐두고 엉거주춤 다시 하나가 되겠다는 건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3년이 아니라 10년이 걸리더라도 결별 원인부터 다스려야 한다. 병통을 감춘 채 겉으로 꿰매어 붙여봤자 또 다른 균열의 예고편이다. 내년에 큰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무조건 합치고 보자는 심사라면 정치불신만 키운다. 가치를 떠난 이익담합형 통합은 진보가 할 짓이 아니다. 두 당의 합의문은 ‘둥근 네모’ 같다. 모순의 극치다. “북한의 체제를 존중하고, 북한의 권력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권력승계 비판 입장도 존중하겠다니 말장난도 지나치면 언어폭력이 된다. 통합을 하겠다면 적어도 대북문제만큼은 성역 없는 공개 논의가 필요하다. 권력과 사람의 문제가 걸린 통합작업에 곡절이 없을 수 없다. 그 지난한 과정은 때론 희망만큼이나 큰 절망을 안겨준다. 그래도 국민의 기대수준이라는 게 있다. 더구나 지난 과오를 딛고 새 정치를 하겠다는 마당이면 뭔가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진보란 범박하게 말해 자유를 사랑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약자를 끔찍이 여긴다. 그런데 우리의 진보 현실은 그런 소중한 가치를 동경하는 자생적인 진보세력마저 떠나게 만든다. 자유와 평등을 소리 높이 외치면서 북한의 폭압적 3대 세습체제에 대해선 애써 입을 다무는 이상한 진보가 존재한다면 환멸을 느낄 만도 하다. 진보를 참칭하는 사이비 진보, 반(反)진보가 판치고 있다. 진보통합 작업의 중심은 단연 민노당이다. 지지율 3% 안팎의 군소정당이지만 조직력을 갖춘 민노당은 선거연합은 물론 야권 전체의 정책과 노선에도 무시 못할 영향력을 미친다. 이 당을 책임진 이가 이정희 대표다. 그는 북한의 3대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것이 진정 침묵으로 답할 사안인가. 지난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엔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를 정부는 똑똑히 봐야 한다.”고 퍼부어댔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라고 했지만, 이쯤 되면 차라리 악의 편에 섰다고 해야 옳다. 불퇴전의 종북정신만으로 진보 대통합은 가능하지 않다. 가능해서도 안 된다. 진보의 적은 ‘진보’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세상과 담 쌓은 갈라파고스 섬에서 외곬으로 진화한 희귀종을 닮아가는 자칭 진보의 모습이 안쓰럽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시장에 간여할 도리는 없다. 다만 권고할 뿐이다. 이제라도 진보는 종북에게, 종북은 진보에게 이별을 고하라. jmkim@seoul.co.kr
  • “교회주의 버려야 교회가 산다”

    “교회주의 버려야 교회가 산다”

    원로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김형석(91) 연세대 명예교수가 한국교회와 교회 지도자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다름 아닌 “교회 지도자가 교회주의를 버려야 교회가 산다.”는 고언이다. 김 교수는 16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매스컴위원회·천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회장 최정기)가 주관해 열릴 제11회 가톨릭 포럼에서 이 같은 내용의 쓴 소리를 정색하고 낼 예정이어서 개신교계의 반응이 주목된다. 김 교수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기독교는 교회로 시작해서 교회로 끝나며, 교회의 존재목표와 목적은 교회에 있다는 전통적 고정관념과 성직자들의 의식구조에 변화가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그리스도가 한 가장 큰 업적은 구약적 전통과 신앙을 신약적인 것으로 새로 태어나게 한, 구약에 대한 탈 교회운동이었다.”며 “그런데 많은 성직 지도자들이 교회 안에 안주하며 교회 제도와 의식이 사회적 책임보다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면 교회는 폐쇄성을 면치 못하며 신약에서 구약신앙으로 되돌아가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특히 “전 세계가 인간의 인간다움을 위해 인권운동에 동참하고 있는데 교회가 교권을 인권보다 앞세우거나 사회에 요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못 박았다. 따라서 김 교수는 “인간은 모두가 스스로를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고 있으며 사회는 사라지지 않는 희망의 약속을 (교회에)기대하고 있다.”며 “성직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은 인간을 알면서 인간성을 넘어서는 위상과 책임을 갖추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번 가톨릭 포럼에서는 ‘한국 리더십의 위기를 말한다’라는 주제 아래 김 교수를 비롯, 장달중 서울대교수(‘한국정치의 패러독스와 정치적 리더십’)등이 한국 사회의 리더십 위기에 대한 진단과 제언을 한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기고] 지천명의 생일을 맞은 국정원/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기고] 지천명의 생일을 맞은 국정원/문순보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국가정보원(국정원)이 10일로 개원 50주년을 맞았다. 두 차례 명칭 변경이 있었지만 1961년 6월 10일 창설된 중앙정보부의 후후신(後後身)으로 지천명(知天命)의 생일을 맞은 것이다. 50세 생일을 맞는 국정원에 바라는 국민의 기대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국가 안전보장, 국익 실현, 자유민주적 가치의 수호라는 기존 임무와 더불어 대한민국 선진화를 위한 주요 기능을 수행해 달라는 내용일 것이다. 50년 국정원 역사는 현대 한국정치의 진화 과정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다. 국정원의 지향점은 원훈(院訓)에서 잘 나타난다.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37년간의 부훈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였다. 여기에는 비(秘)조직으로서의 위상을 상징하는 뉘앙스가 다분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6월 ‘정보는 국력이다’로 원훈이 바뀌었다. 1990년대 인터넷 혁명 이후 정보의 중요성을 국력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려 인식해 왔다는 것이다. 2008년 현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은 원훈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변경하면서 자유주의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이처럼 50년 국정원 역사는 음습한 권력의 시녀라는 부정적 인식에서 민주적 정보기관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후 자유주의 실현으로 그 실천 목표를 옮겨간 점진적 진화의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간 국정원의 기능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가 뒤따랐다. 국정원은 개인에 대한 불법 사찰과 대선 등 주요 정치과정에 대한 개입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조직에 부여된 일차적 목표를 잊은 적은 없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했다면 대한민국의 국가적 실체는 이미 소멸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국정원의 과오는 보다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경향이 짙다. 지난 2월 발생한 국정원 직원들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 도처에서 국가안보를 위한 비밀공작을 수행하다 불의의 사고로 희생되는 직원들도 다수 존재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실로 목숨을 건 ‘총성 없는 정보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주변적인 과오 때문에 국정원의 본질적 기능을 간과하고 조직 전체에 부정적 낙인을 찍는 행위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향후 국정원은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한 도정에서 더욱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안보의 튼튼한 뒷받침 없이는 선진화는커녕 선배들이 애써 일궈놓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업적마저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버릴 수 있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 환경과 주변 강대국들의 정세를 고려할 때 국가안보와 실리외교를 위한 국정원의 업무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 가령 예측불허의 북한 사이버 테러와 관련하여 국정원의 예방적 보완조치가 강화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 국정원의 국가안보 관련 업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김형준 정치비평] 진정성 없는 쇄신은 기만이다

    [김형준 정치비평] 진정성 없는 쇄신은 기만이다

    한나라당에 쇄신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완패한 이후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함과 두려움의 반작용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지도부 총사퇴, 새로운 원내대표 선출, 비상대책위 구성 등 전형적인 쇄신 수순을 밟고 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과거에도 선거에 지면 상투적으로 쇄신을 주장했지만 결국 공허한 메아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푸른색을 탈색하고 때로 ‘붉은 한나라’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변한 것은 없고 시종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는 초식 공룡의 이미지만 고착화되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진정성과 감동을 주는 쇄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한나라당의 실질적 지배자인 이명박(MB)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진정성 있게 변해야 한다. 첫째, 한나라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현 상황에 대해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물론 국정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의 과오가 훨씬 크지만 박 전 대표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본인 스스로가 4·27 재·보선 다음 날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 방문길에 오르기 전 “이번 선택은 한나라당 전체의 책임이며, 저도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MB는 “박 전 대표를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대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 세종시 수정안과 같이 민감한 정치 현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 정치는 더럽고 비생산적이라며 비하하고 멀리한 점, 여당을 무시하면서도 여당을 통해 국회를 장악하려고 한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향후 대선 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과욕도 버려야 한다. 동시에 정치를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는 정치로 푸는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무 판단 능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는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를 줘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표의 경우, 당이 어려워 도움을 요청할 때 “선거는 당 지도부 위주로 치러야 한다.”고 매몰차게 거절한 점, 세종시와 동남권 신공항 문제들을 제외하고는 정부에 부담을 주기 싫다고 침묵한 점, 망국적인 계파를 해체하기보다는 계파 수장의 역할에만 충실했던 점을 반성해야 한다. 더 나아가 차기 대권을 노린다면 눈앞의 득실만을 따지는 근시안적 시각을 버리고, 침묵 정치를 버리고, 대세론을 버려야 한다. 동시에 한나라당 쇄신을 비대위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당권·대권 분리 문제에 대해 조속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비대위 의견이 나온 다음에 뒷북치는 식의 발언을 하면 혼란만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이 목숨을 걸고 지킬 수 있는 비전과 가치·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고, 한나라당에 실망해서 이탈하는 세력들을 다시 모을 수 있다. 미국 공화당과 연계된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보수가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보수주의 철학의 정립’, ‘철학의 대중화’, ‘철학의 정치화’, ‘자선 활동’ 등 4가지 운동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한나라당이 쇄신을 통해 한국 보수주의를 재구조화하려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셋째,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 이반과 몰락의 원흉인 계파를 실질적으로 해체하는 선언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에서 계파가 존속하는 한 그 어떤 쇄신안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설혹 젊은 대표가 등장하고, 새로운 계파로 권력 중심이 옮겨진다고 해도 당이 쇄신되는 것은 아니며, 밝은 미래가 저절로 보장되지 않는다. 양극화가 심화되어 중산층이 무너지고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친이-친박으로 나뉘어 또다시 싸운다면 그것은 쇄신이 아니라 기만이다. 이제 한나라당에 쇄신의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무늬만 쇄신’이 아니라 시대를 주도하는 역동적이고 매력 있는 정당, 상황에 좌우되는 변화가 아니라 미래를 이끌며 변화를 주도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 [박명재 세상 추임새] 너 자신 외에 모든 이를 용서하라

    [박명재 세상 추임새] 너 자신 외에 모든 이를 용서하라

    1년 중 가장 좋은 5월을 맞으면서 지나간 4월에 우리 역사상 아물지 않았던 상처 하나가 아름답게 매듭지어졌으면 하는 아쉬운 사건이 있었다. 다름 아닌 쉰한 번째 맞는 4·19혁명 기념일에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가 4·19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고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사죄를 하려 했으나 관련 단체의 저지로 무산된 일이다. 유족들의 원통하고 한 맺힌 심정을 잘 알 수 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 섣불리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망설여지는 일이다. 다만 눈여겨볼 대목은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쪽에서는 사죄가 진정성이 없고 사전에 적절한 절차나 교감 없이 갑작스레 이루어졌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죄의 가장 본질적 요소인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죄과”라고는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참배와 사죄를 거부당한 이씨 쪽에서도 “그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더 늦어지기 전에 역사의 잘못을 사죄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뜻”이라고 밝혀 계속해서 사죄를 해나갈 뜻임을 분명히 했다. 잘하면 쉽사리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질 것 같다는 희망 섞인 생각을 하면서 몇 가지 이유로 역사의 한 매듭과 당사자 간의 응어리가 풀리기를 기대한다. 첫째, 사죄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사건의 당사자가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즉, 당사자의 적격성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리할 사람은 양자인 이인수씨밖에 없다. 그분은 엄연한 법적 후계자 내지 대리인으로서 아비의 죄를 자식이 비는 법적, 윤리적, 인간적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정치적 사면과 용서·화해는 역사가와 국민들의 몫이며, 그가 어떤 정치적 사면과 용서를 바라지는 않고 있다.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80을 넘은 그의 생전에 사죄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뒷날 다른 어떤 자연인이나 단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죄는 그만큼 당사자 적격성에 치명적인 흠결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가 어떤 잘못과 과오에 대한 용서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용서가 잘못을 예방하고 근절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또 다른 잘못과 과오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반복성의 효과에 대한 의문과 염려 때문이다. 프랑스 격언 중 ‘쉽사리 용서해 주면 잘못을 반복시킨다.’라는 말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국민적·정치적 역량과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더 이상 이 땅에 또 다른 독재의 망령을 부활시키거나 학생운동을 무자비하게 총칼로 탄압하고 희생을 되풀이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4·19혁명의 숭고한 이념과 발전적 미래가치의 정립 그리고 역사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양자 간에 사죄와 용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의 건국과 4·19혁명의 민주화, 5·16의 산업화, 현재의 선진화 그리고 미래의 통일 한국으로 나아가야 할 역사적 맥락과 정체성 측면에서 꼭 매듭지어야 할 역사적 과제이자 필연이기 때문이다. 용서와 화해는 논리나 사변의 이성적 차원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의 인간적 차원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우리 속담에 ‘귀신도 빌면 듣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머리 허연 80 노인이 살아생전에 양부의 역사적 과오와 허물을 빌기 위하여 묘역에 나왔다가 이리 밀치고 저리 떠밀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 노인이 세상 떠나기 전에 진정한 사죄와 용서 그리고 역사적 화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은 비단 필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숱한 전쟁과 보복의 왕조사가 점철된 영국에 유난히 용서에 관한 격언이 많다. 그중 아래 두 가지를 인용하면서, 늦어도 내년 4월까지는 양쪽 간에 아름다운 사죄와 용서가 이루어져 우리 역사의 한 매듭이 마무리 되기를 희망한다. ‘너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 ‘용서는 가장 고귀한 승리이다.’
  • 용산 내부고발 핫라인 개설

    용산구가 ‘내부고발 핫라인’을 개설한다. 내부고발을 활성화해 조직의 자정 능력을 향상시키자는 취지다. 구는 2일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실시한 청렴도 측정 결과 업무지시의 공정성 분야와 예산 위법·부당 집행 분야에서 내부 청렴도가 낮게 나왔다.”며 “향상 대책의 일환으로 내부고발 핫라인을 개설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감사담당관 내 직통전화를 설치해 내외부 비리나 상급 직원의 부당한 업무지시 등에 대해 직접 상담하고 접수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내부 전산망에 감사담당관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배너를 설치하고 신고자 신분 보호를 위해 타인은 열람하지 못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 전화국에 별도의 통신망 설치를 요청하고 보안 메일을 마련, 철저하게 신고자 비밀을 유지해 신분상 불이익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송정환 구 감사담당관은 “핫라인을 통해 접수된 고발사항은 비리신고 조사 전담반을 구성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억울함이 없도록 공정하게 처리할 것”이라면서 “또 자신의 비리나 업무상 과오를 핫라인을 통해 신고할 경우 경중에 따라 징계수위를 낮춰 주는 ‘플리바게닝 제도’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시론] 수사권 조정, 검찰 결단이 요구된다/김재광 선문대 법학과 교수

    [시론] 수사권 조정, 검찰 결단이 요구된다/김재광 선문대 법학과 교수

    최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6인 소위) 합의안이 발표되어 많은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합의안 중 특히 관심을 끈 것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것이었다. 6인 소위의 합의안은 수사권 조정과 관련하여 수사권 조정 단계가 아니라는 점, 경찰에 수사개시권이 있음에도 형사소송법에는 없는 것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명문화해 주는 것이라는 점,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에 수사지휘권한이 명시되어 있으므로 중복된 검찰청법 제53조(명령복종의무)를 삭제하는 것이라는 점, (이번 합의는) 현실에 어떠한 변동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생각건대, 현재 발표된 합의안만으로는 수사 현실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에는 미흡하여 진정한 수사권 조정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수사권 조정의 완결이 아니며 앞으로 본격적인 수사권 조정 논의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수사권 조정은 해방 이후 60년 넘게 계속된 역사적 논제로서 경찰이 수사주체이고 검·경이 상호협력하는 ‘세계 표준’과 합치되어야 할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수사구조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검찰권한 집중형태이다. 즉, 영국·미국 등 영미법계는 수사·기소 분리원칙에 따라 경찰이 수사주체이고, 검찰은 기소주체로서 상호협력관계를 정립하고 있다. 독일·프랑스 등 대륙법계에서도 경찰은 독자적 수사주체이고, 검사는 수사지휘를 하되 직접수사는 하지 않고 수사 통제와 기소에 주력한다. 일본은 경찰이 1차적·본래적 수사주체이고, 검찰은 2차적·보충적 수사 및 기소주체로서 상호협력관계를 정립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법제도의 개혁을 위해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형사사법의 3권(수사·기소·재판) 분립을 통해 후행하는 절차가 선행절차에서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본질적이고 현실적이며 국민정서에 들어맞는 개선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헌법상 사법권은 중립적인 법관의 권한으로 되어 있다. 남은 것은 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권과 기소권의 귀속을 하루빨리 정상화하는 것이다. 사법개혁의 큰 틀에서 볼 때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영미식 수사구조가 바람직하나, 급격한 제도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하여 먼저 일본식의 절충형 수사구조를 도입, 수사·기소 분리의 연착륙을 꾀할 필요가 있다. 즉, 수사 개시부터 송치까지는 경찰이 ‘1차적·본래적 수사기관’으로서 책임수사하고, 검찰은 송치 후부터 ‘2차적·보충적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기소권’으로 경찰수사를 객관적·중립적 입장에서 철저히 통제하는 방식이다. 경찰이 범죄사건의 98%를 수사하는 현실에 들어맞게 책임과 권한이 상응하도록 법제화하는 최소한의 필요 수준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엘리트 계층이다. 검찰이 사법정의를 실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검찰도 선진국의 권력분립 원칙에 입각한 형사사법 개혁 노력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 대원칙인 권력분립의 원칙이 형사사법 영역으로 확장되어 수사·기소·재판을 분리,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체제로 이행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여 수사단계에서의 과오를 기소단계에서 필터링하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수사권을 구조적으로 통제하는 개혁 방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검찰 스스로 수사권 조정에 대한 ‘맑고 향기로운’ 결단이 절실히 요구된다. 법원이 검찰권을 존중하면서도 재판권으로 검찰을 통제하듯이, 검찰도 명령·지배가 아니라 기소권을 가지고 경찰수사를 통제하는 선진 형사사법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늘 ‘맑고 밝고 바른’ 국민의 검찰로서 대한민국의 사법정의 실현을 위해 더한층 매진해 주기를 바란다.
  • “北내부 김정은 세습 두고 세력다툼 시끌”

    “北내부 김정은 세습 두고 세력다툼 시끌”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은 “북한 내부에서도 김정은 3대 세습에 이견이 있는 세력들의 다툼으로 매우 시끄럽다.”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대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수명이 짧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설명하면서 걸음걸이를 직접 흉내내기도 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국가정보원 산하의 외교·안보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으로 이 분야의 최신 정보가 총집결하는 곳이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 도곡동 연구소에서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연평도에 대한 사과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다고 했다. -정상회담은 필요하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북한 체제 구조상 최고 책임자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군사실무회담이나 장성급 회담으로 풀 수는 없다. 사전에 물밑 작업이 조율되어야 한다. →북한이 천안함·연평도에 대해 사과를 할까? -사회주의자들도 한번은 사과를 한다. 우리가 벤치마킹할 두 가지 전례가 있다. 우선 1972년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7·4남북공동성명이다. 또 하나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김정일 위원장의 평양선언이다. 사회주의자들이 과오를 한번은 인정하지만 두번은 하지 않는다. 북한도 전례를 볼 때 천안함·연평도에 대해 고백을 할 수 있다.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김정은 후계 세습은 예정대로 이뤄지고 있나. -김정일이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에 올랐던 것처럼 내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에 4차 대표자 회의나 7차 당대회를 열어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천명할 것이다. 3대 세습의 포인트는 워싱턴에서의 책봉, 공인이다. →워싱턴에서의 책봉은 무엇을 말하나? -국제정치적 측면으로는 우선 평화협정을 얻어낸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제재를 풀 수 있고 경제적인 자금회전이나 무기수출 등을 할 수 있다. 리비아 사태에서 봤듯이 미국과의 관계가 안 좋으면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소한 공격은 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다. 또 북핵문제의 카운터파트는 미국이다. 핵을 10개 개발했다면 절반은 막대한 경제적 보상을 받기 위해, 절반은 핵보유국으로서 자위권 확보에 이용할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식량지원을 빨리 받을 수 있는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김정일·김정은 정권의 서바이벌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다. →김정은의 후계체제 구축은 순조롭게 진행될까? -28살 젊은이가 세습하는 데 대해 물 위에서는 평온해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이견을 가진 세력들이 만만치 않다. 세습 반대라기보다는 김정은 체제 때의 자신의 위치를 계산하는 것이다. 김정일 입장에서는 ‘내가 살아 있는데도 저렇게 시끄러운데, 사망하면 어떻게 될지’ 불안감이 크다. 내년 4월까지 소프트랜딩을 시키기 위해서는 대내적 관심을 대외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연평도 포격은 그런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김정은 방중은 언제쯤이 될 것으로 보고 있나. -4월 15일 이후 6월 사이엔 언제든지 갈 수 있다. 내년 4월 15일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단독 방중으로 젊지만 지도자다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북한 붕괴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켜야 한다. 중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절반은 만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인관계능력, 사물 판단 능력이 나오게 된다. 좀 더 파격적이라면 상하이를 방문해 개혁·개방 이미지를 부각시킬 것이다. 물질적 지원을 받아내는 것도 중요한데 매년 받는 식량 15만~20만t, 연료(코크스 등) 15만t보다 좀 더 받아낼 수 있다. 새 지도자에 대한 축하의 의미도 있다. →김정일의 현재 건강은 어떤가? -3주 전에 평양에 근무 중인 유럽국가 대사와 저녁을 했다. “얼마나 오래 살 것 같느냐. 나는 5년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했더니, “3년을 못 넘길 것 같다.”고 했다. 그와 악수도 하고 3m 거리에서 움직이는 것을 지켜봤는데 걸음걸이가 앞으로 채 10㎝도 걷지 못한다고 했다. →김정일의 건강이 좋아질 가능성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주치의 100명이 관리는 하고 있지만 결국뇌졸중은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 김정일은 3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첫째 3대 세습이 안정적으로 이뤄질지 최근 중동사태를 보면서 스트레스가 늘었을 것이다. 둘째 정권 창설 63주년이 되도록 해결이 안 되는 경제난, 셋째 핵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지원과 협상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다. 3대 스트레스가 잘 해결되면 수명이 길어질 테고, 잘 안 되면 짧아질 것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妻子와 愛人을 음독시킨 아, 내이름 家長”

    “妻子와 愛人을 음독시킨 아, 내이름 家長”

    [선데이서울 73년 7월 8일호 제6권 27호 통권 제 247호]  귀여운 두 아이들의 영혼은 지금 어느 곳을 헤매고 있을까? 꿇어 엎드린 그 젊은이의 뺨에는 하염없이 회한의 눈물만 흘러내린다. 아내는 복역 중에 있고 연인은 영원히 떠나버렸다. 사랑과 미움의 갈림길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천애의 골짜기로 굴러 떨어진 어떤 가장. 재기의 몸부림과 속죄의 절규로 썼다는 애독자 김모씨(기사 원본엔 풀 네임 적시돼 있음)의 수기를 싣는다.   아마 기억하고 있는 독자는 흔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지난 해(1972년) 9월8일자 각 일간지 사회면에는「일가족 집단 음독자살」 제하의 기사가 난 일이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의 일가족 가장이다. 이제 내 나이 30살. 그리하여 나는 이 사건으로 귀여운 아이들을 잃고 속죄의 몸부림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건의 시초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독자살 미수에 그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鄭京淑(25·가명)이라는 여인 이야기를 신문을 통해 보고 왠지 동정심에 이끌려 찾아가 치료와 퇴원 수속까지 자비로 해준 일이 있었다. 동정은 사랑으로 변하여 결국 부모와 친척이 없다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 동거하게 되었다.  그 뒤 나는 군에 입대했고 파월(월남 파병을 말함) 되었다가 69년 8월에 귀국, 제대했다.  제대를 한 뒤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어머님과 가족들에게 얘기했으나 과거가 있는 그 여자(실연 후 음독했다고 함)와는 절대로 결혼시킬 수 없다는 완강한 반대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끝내 69년 8월27일 나의 집이 있는 서울을 도피해 인천시내 K예식장에서 가족들이라고는 한 사람도 참석치 않은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약 1년 동안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 서울 금호동 변두리에 셋방을 얻어 생활했다. 아내가 첫딸을 낳자 어머니도 어느 정도 이해하여 집으로 들어 가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녀와의 결혼을 극력 반대하던 어머니의 감정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은 탓인지 어머니와 아내는 서먹서먹 했고 보이지 않는 불화가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아내는 또 아들을 낳아 우리는 1남1녀를 두었다.  당시 나는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인천으로 전근이 되어 그곳으로 출퇴근을 했다.  교통이 불편해서 나는 직장 부근에 하숙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집에는 일주일에 한두번 갈 정도가 되었다. 그 즈음 나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지(池)모양(20)과 사귀게 되었다.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 졌으면 결국 몸을 하락하게 되었다.  나는 아내가 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池양은 펄쩍 뛰며 아내와 헤어질 것을 요구해 왔다. 결국은 아내와 본격적인 이혼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때 나는 장님이 되었던 것 같았다.  아내도 설마 내 말이 거짓이겠지 하며 『사실이라면 사귀고 있는 여자와 직접 만난 다음에 합의해 주겠다』고 얘기했다. 그 후 두 여인은 몇차례 만났으며 그때마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두 여인의 사이는 외면적으로는 사이가 좋아보였다.  그러나 막상 아내가 이혼 조건으로 요구하는 위자료를 그 당시 나의 입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어 어렵게 되어 하루 하루 이혼문제는 지연되었으며 자연 池양과 나는 시내 여러 곳으로 남의 눈을 피해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나 池양의 가족들은 나의 환경을 알게 된 후 자기 딸을 집에다 감금하다시피 꼼짝 못하게 했다. 더우기(더욱이)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머리까지 가위로 빡빡 깎아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머리를 수건으로 쓰고서라도 또 집을 뛰쳐나와 나에게 빨리 이혼할 것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해 9월4일 아내는 이혼 조건을 대폭 완화하여 9월5일 합의이혼 수속을 끝내자고 말해 池양은 이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하지만 깊은 정이 든 아내와 막상 헤어지자니 망설여졌다. 나는 나의 확실한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아는 선배를 찾아가 나의 입장을 설명하고 어떠한 판단이 옳은 지를 상의했다.  선배는 두 자식을 위해서 절대로 아내와 이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나도 그것이 옳은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두 여인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池양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池양은 여태껏 미루어 온 결정을 눈 앞에 놓고 무슨 얘기냐고 흥분하여 서로가 옥신각신 심한 언쟁을 했다.  이 광경을 옆에서 보고있던 아내는 池양이 처녀의 몸으로 당신과 사귄 것인만큼 또 한 여인을 희생시킬 수 없으니 자기가 물러나겠다고 했다. 나는 아내의 말에 지금의 내가 말한 것은 심중히 생각한 결론이며 움직일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얘기가 쉽게 끝나지 않아 그날 밤 10시경 두 여인과 나는 집 부근에 있는 여관으로 장소를 옮겨 밤 늦도록 얘기를 나누었지만 결론을 못 얻었다.  밤이 늦어 잠깐 잠이 들어 새벽 5시경 눈을 떠보니 두 여인은 어린 것을 데리고 내가 풀어논 팔뚝시계와 외투에 든 돈 등을 꺼내 가지고 행방을 감춰버렸다.  나는 혹시 집으로 간 것이 아닌가 하여 집으로 가본즉 池양이 새벽 4시경 집에 들어와 잠자고 있던 맏딸 주현(3세)을 마저 업고 나갔다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불길한 예감에 하루 온종일 두 여인의 행방을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밤 9시가 조금 못되어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금 집 근방에 있는 여관마다 두 여인을 찾아 헤맸다. 겨우 신림동에 있는 K여관 101호실에 투숙한 사실을 알고 방문을 「노크」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여관 종업원이 창문으로 들어가 방문을 열었다.  방에는 싸늘한 체온의 두 자식과 시체와도 흡사한 두 여인이 눈 앞에 뒹굴고 있었다.  나는 즉시 인근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급히 S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날 밤 자정이 조금 지나 주현이가 숨지고 다음 날 하오 2시경 장남 재훈이마저 숨이 끊어졌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심정으로 그때까지도 의식불명인 두 여인의 회복을 미칠 것같은 심정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약 46시간만에 점차 의식이 회복되는 두 여인을 뒤로 하고 나는 당면한 병원비와 입원비를 마련코자 집으로 뛰어가 세간살이와 집을 헐값에 급히 팔아 가지고(내놓고의 뜻으로 보임) 병원으로 돌아오니 이미 대기했던 각 신문사 기자와 방송사 기자들의 취재가 어지러울 정도로 시작되었다. 동시에 관할 경찰서 형사가 두 여인과 나에게 조서를 받아가고 다음 날 아내는 (직계)비속 살인죄로 기소되었으며 회복되는대로 구속된다는 사실을 형사로부터 들었다.  그 후 두 여인의 건강은 놀라울이(놀라울) 만큼 빨리 회복돼 갔으며 음독을 하게 된 경위를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벽에 여관을 나선 그들은 시계를 팔아 받은 돈으로 수십 곳의 약방을 돌아 음독할 약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이혼을 해주고 어린 자식들을 다른 여자에게 주느니 차라리 자식과 함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池양은 나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닥쳐올 가족들의 비난과 자신의 운명을 비관한 나머지 각자의 이유는 달랐으나 죽는다는 것에 합의를 보아 기묘한 동반자살을 (시도)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며칠 뒤 池양의 가족들은 나를 혼인빙자 간음죄로 고소했으나 웬일인지 고소를 취하, 나는 풀려났으며 그 해 10월27일 두 여인은 노량진경찰서에 구속되었다.  나의 잘못으로 죄 없는 어린 두 자식이 희생됐고 또 두 여인이 구속된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는 수차 자살을 기도했으나 뜻을 못 이룬채 두 여인이 구속돼 있는 경찰서로 면회를 갔었다. 그러자 아내가 그 전 내가 자기 오빠뻘이 되는 사람 집에 있을 때「타이어」 2개를 갖고 간 일이 있다고 해서 절도죄로 피소, 나 역시 11월1일 구속되어 한 경찰서 감방 안에는 뭇사람들의 웃음과 조롱거리가 된 두 여인과 내가 마주 쳐다보이는 쇠창살문 안에서 고통스런 3일을 함께 지냈다.  11월5일 두 여인은 먼저 영등포구치소로 넘어가고 나 혼자 있다가 11월10일 나도 구치소로 넘어가 영등포구치소로 내에 3인이 같이 수감됐다. 검치가 시작되어 매일 검사 앞에 푸른 수의를 걸친 두 여인과 나는 같은 검사실에서 취조를 받았다.  그러나 아내는 범행을 순순히 시인하나 池양은 내가 약을 사줬으며 자기는 절대 간여한 사실이 없다고 끝내 부인했다. 그러나 나는 살인죄에는 간여한 사실이 없다고 인정되어 절도죄로 10월 구형에 6월형을 선고받아 머리를 깎고 기결수로 노역장에 출역을 했으며 복역 중에는 두 여인의 공판 하루 전날 증인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두 연인은 구형에서 징역 5년씩을 선고받았다. 池양 측에서는 변호인을 선정하여 변론을 했으나 아내는 변호인도 없이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으며 池양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되어 석방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나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며 돌이킬 수 없는 과오인가를 뉘우치며 짧은 복역기간 동안이나마 열심히 반성하고 일했다.  나는 형기가 만료되어 지난 5월3일 구치소의 육중한 철문을 나와 자유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 날 나는 아직도 구치소 안에 혼자 남아있는 아내를 면회하였다.  아내는 슬프게 흐느끼면서 『당신을 전과자로 만들고 두 자식을 죽인 내가 죄가 많아요. 이제라도 당신의 행복을 위해 池양과 결혼하라』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당신이 석방되어 나오는 날까지 나는 꼭 당신만을 기다리겠소. 당신의 깊은 사랑을 나는 이해할 수 있으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몸 건강히 있으라』고 일러둔채 말문이 막혀 돌아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첫날 면회를 간 후 이틀이 멀다 하고 나는 면회를 가며 매일 편지를 띄우고 있다. 이제 오직 나에게는 아내가 나오는 날까지 과거의 아픔을 거울삼아 힘껏 못다 이룬 둘만의 행복을 향해 줄달음칠 결심이다. 그래서 참되게 살겠다.  ■한 가족 음독자살 당시의 보도  「선데이서울」제207호 72년 9월24일자 P16에 보면 9월8일 金모여인과 정부 池모양이 신림1동 C여관에서 함께 음독자살을 꾀한 사건이 났다고 보도되었다. 여기에는 물론 金씨의 수기에서와 같이 金씨의 아들(1살) 딸(3살)도 함께 어른들에 의해 음독, 72년 9월8일 현재 아들만 죽고 나머지 3명은 가료 중이라고 되어 있다. 이 기사에는 池양과 金씨가 동거하는 곳에 나타난 金씨의 아내 鄭여인이 『위자료를 내면 양보하겠다』고 요구하여 옥신각신 하던 끝에 집에 돌아온 金씨가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라. 둘 다 꼴보기 싫다』며 내쫓아 버렸는데 엉뚱하게 본처와 정부가 동반자살을 하려다 실패, 딸만 절명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 환자 앞에서 방귀 ‘뿡뿡’ 치과의사 퇴출

    환자 앞에서 거침없이 방귀를 뀌고 트림을 하는 등 무례한 행동을 했던 영국의 한 치과의사가 퇴출 위기에 놓여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슈루즈버리의 한 치과병원에서 2006년 8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근무한 매튜 월튼(35)은 잦은 방귀와 트림, 욕설 등으로 환자와 동료 간호사들에게 모욕감과 불쾌감을 안겨줬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속적인 불만 및 신고가 접수되자 영국 치과협회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뒤 지난 6일(현지시간) 공공보호를 위해 그를 즉각 정직 처분했다. 월튼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4월께부터 월튼의 치과의사 자격은 영구적으로 취소된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월튼의 행각은 상식 밖이었다. 월튼은 환자의 치아를 뽑으면서 욕설을 하거나 방귀를 뀌거나 트림을 하는 등의 무례한 행동을 했다. 또 행색이 초라하거나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돈을 먼저 달라.”고 해서 모욕을 주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함께 근무한 간호사 니콜라 그룸은 “동료들 앞에서는 물론 환자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했다.”면서 “한번은 5살짜리 어린 환자에게 비키라고 밀어 다치게 한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법정에 선 월튼은 자신의 과오를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간호사들 앞에서 무례한 행동을 했을 뿐 환자들에게 모욕을 준 일은 없다.”고 변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http://twitter.com/newsluv) 
  • [사설] 23년 걸린 의료분쟁법 공정운영 기대한다

    23년 동안 표류해온 의료분쟁조정법이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의료사고에 대한 합리적인 조정과 신속한 피해구제가 가능하게 됐다. 그동안 의료사고에 대해 병원과 환자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송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의료분쟁으로 인한 소송건수는 한해 1000건이 넘는다. 소송기간의 장기화(평균 26.3개월)로 인한 개인·사회적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이 법에 따라 소송 전 중재를 거칠 수 있게 됨으로써 의료분쟁 해결은 한층 합리적인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소송만능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우여곡절 끝에 의료계와 정부, 시민단체 등 이해당사자가 입장차를 좁히고 상생의 길을 마련한 만큼 성숙한 제도적 운영이 요구된다. 법이 시행되면 새로 설립될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의료사고를 조사해 분쟁 중재를 맡게 된다. 정보 접근이 어려워 의료 과오를 입증하는 데 곤란을 겪어온 환자로서는 퍽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의료사고 발생시 의사가 스스로 무죄를 입증해야 처벌을 면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 조항이 제외된 데 대해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입증책임 전환과 관련, 피엘(product liability)법을 원용하기도 한다. 제품에 하자가 있을 때 제조사나 판매사가 제품에 결함이 없음을 증명해야 배상책임을 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제품 소비자와 의료 소비자를 동일 선상에서 재단하는 것은 무리다. 의료분쟁의 원인이 의료인의 과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엔 진료 결과에 대한 환자의 불만족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예도 적지 않다. 의료인이 의료사고를 피하기 위해 방어진료나 위축진료에 안주하거나 응급의료를 기피하려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그런 점에서도 입증책임 논란은 별 실익이 없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요컨대 신설될 중재원이 독립기구로서 얼마나 제3자적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어렵사리 마련된 이 법이 의료분쟁 문화의 선진화, 나아가 의료허브 대한민국의 꿈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내년 총선·대선…‘올 넘기면 남북관계 개선 어렵다’ 판단

    내년 총선·대선…‘올 넘기면 남북관계 개선 어렵다’ 판단

    ■3·1절 기념식서 만난 MB-손학규 MB “언제 한번 봐요” 孫 “건강하시죠” “언제 한번 봐요.” 이명박 대통령이 1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3·1절 기념식이 열린 세종문화회관에서다. 기념식에 앞서 오전 9시 40분쯤 이 대통령은 대기실에 있던 손 대표 등과 20여분간 환담을 나눴다. 영수 회담이 결렬된 뒤라 이 대통령과 손 대표의 조우는 분위기가 다소 어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대기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손 대표에게 악수를 하며 “아이고,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언제 한번 봐요.”라는 말을 건넸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건강하시죠.”라며 회동 제안에 “네”라고 답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제가 손 대표를 잘 모셔야죠.”라면서 준비된 케이크를 덜어 주는 등 친근감을 표시했다. 박희태 의장이 “두분이 과거부터 가까운 사이 아니냐.”고 묻자 이 대통령은 “정치만 안 했으면 되게 친했을 텐데 마음에 없는 얘기도 하고 그래서….”라면서 웃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도 “조건을 걸지 말고 무조건 만나야죠.”라고 거들었다. 손 대표는 특별한 언급 없이 내내 미소를 짓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념식이 끝난 뒤 “언제 한번 보자.”는 이 대통령의 언급이 직접적인 영수회담 제의로 해석되면서 민주당은 발끈했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어제(2월 28일) 청와대에서 손 대표의 경축식 참석 의사를 타진했고 ‘오늘 밥 한번 먹자.’라는 식으로 말한 것을 영수회담 제의라고 한다면 계획적인 것 같다.”면서 “‘몰래카메라’ 아니냐. 영수회담은 밥 한번 먹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 대표도 웃고 말았다. 우리로서는 진지하게 영수회담을 제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성수·구혜영기자 sskim@seoul.co.kr 이명박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북한의 태도변화를 촉구하면서 올해가 남북 간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최적기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북한이 핵개발과 무력도발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언제든 열린 마음으로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이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남북대화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대화의 문이 아직 닫히지 않았다.”(1월 3일·신년 특별연설), “북한이 변화할 시기가 아니겠는가 하는 기대를 잔뜩 하고 있다.”(2월 1일·신년 방송좌담회), “금년을 놓치지 않고 진정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2월 20일·기자 오찬간담회) 등이다. 올해 기념사에서는 특히 “많은 나라들을 돕는 대한민국이 같은 민족인 북한을 돕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북한이 지난해 발생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한다면 경제적인 원조도 해줄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임기를 2년 남겨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남북대화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은 올해 안에 의미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총선·대선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는 내년에는 남북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된 데 이어 한·미 합동군사 훈련에 대해 북한이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강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긴장국면을 완화할 필요성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지만, 좀 더 전향적인 대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일관계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나 반성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대신 한일병합이 강제적으로 이뤄졌음을 시인했던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지난해 담화문을 언급하면서, 일본이 진정성 있는 행동과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 총리는 지난해 담화문에서 “역사와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가지고 스스로의 과오를 솔직하게 되돌아보겠다.”고 밝혔다. 또 3·1운동의 정신이 세계 개조의 이상을 표출한 ‘세계주의’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의 주역인 ‘G20 세대’가 이를 계승해 당당히 세계와 경쟁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지자체 ‘부당행정’ 뿌리 뽑는다

    앞으로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감사가 강화된다. 감사 결과, 수사의뢰나 고발조치할 사안이라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사법당국에 고발 등의 조치를 하기로 했다. 또 지역현안과 기업애로 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컨설팅 감사’시스템도 도입한다. 1일 서울신문 취재결과,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지자체 감사보완책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정부 합동감사에서 지자체 행정에 문제점이 있으면 시정, 주의, 경고 등 행정처분을 하고 사법당국에 고발할 사항이 있더라도 거의 고발하지않았다.”면서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 같은 경우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수사의뢰 및 고발 조치 등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감사과정에서 적발한 공무원의 업무과오가 주민 이익에 크게 배치되고 큰 예산낭비로 이어지는 등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하면 해당 공무원과 기관에 대한 고발조치까지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행안부는 이와 함께 컨설팅 감사방식도 도입한다. 일반적인 회계감사와 직원 복무감찰 차원을 넘어 지역현안과 기업애로 등을 해결해 비리를 차단할 수 있도록 감사과정에 컨설팅 업무를 새로 도입하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컨설팅 감사’를 통해 오래 방치된 지역사업이나 중앙정부의 반대로 추진이 어려웠던 사업들을 관련 부처와 직접 조정하는 역할도 할 것”이라고 말해 주목됐다. 동남권 신공항이나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 등 현재 지자체 간 이견이 있는 사업에 대해 행안부가 나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행안부는 또 지난해 5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시범운영해온 ‘내부통제시스템’을 다음달부터 24개 기초단체에 확대적용하고 내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내부통제시스템은 지방 공무원의 비리와 탈법, 태만, 업무 오류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자체가 자체 감사 및 실시간 모니터링하게 하는 공무원 비리 방지책이다. 시스템 운영 실적이 우수한 지자체에는 정부합동감사나 시·도 종합감사를 생략하는 혜택을 줄 방침이다. 한편 행안부는 오는 17일 인천광역시를 시작으로 충남(5월), 경북(6~7월), 부산(9~10월), 경남(11~12월) 등 5개 시·도에 대한 정부합동감사를 실시한다. 앞서 대전·광주·울산 광역시, 강원·전남도 등 5개 광역 및 기초 지자체들에 대한 정부합동감사에서는 인사특혜와 건축시설 분야에서의 부적절한 계약 등 공무원 비리 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실시된 이 감사에서 모두 788건의 부당사례가 적발됐다. 처분 건수가 가장 많은 곳은 전남(208건), 강원(171건), 광주(146건), 대전(135건), 울산(128건) 순이었다. 행안부는 문제가 있는 공무원 96명을 인사조치하고 664억여원을 회수·추징하거나 감액조치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열린세상] 사랑의 열매란 무엇인가?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열린세상] 사랑의 열매란 무엇인가?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오래된 미풍양속으로 이웃에 대한 따뜻한 손길과 배려를 들 수 있다. 우리 정신문화의 큰 맥을 이루어온 불교문화의 경우에도 보시(布施)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어 이를 열반에 이르는 첫 번째의 길로 평가했다. 유교문화의 경우에도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자손에게도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고 말하며 이웃에 대한 선행을 장려했다. 조선왕조시대 마을 사람들이 지켜야 할 약속 가운데에는 “환난을 서로 구제한다”(患難相救)는 조항이 있었다. 그들은 어려운 이들에 대한 배려를 사회적 의무로 생각했다. 전근대 역사에서는 사회의 안전망이 미비되어 있었다. 그 결과로 일반인들은 환난에 처해 곤란한 사람들을 구호하는 일의 일차적인 책임을 감당해야만 했다. 반면에 근대국가들은 점차 복지사회를 지향해 갔다. 이때에는 국가가 환난 구제의 책임을 당연히 짊어져야 했다. 그러나 국가라는 거대조직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국가의 복지정책이 간여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필연적으로 있게 마련이라는 말이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은 국가가 아닌 마음이 따뜻한 민간의 몫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의 사회에서도 불우 이웃에 대한 베풂은 숭고한 자기희생이며 선행으로 높이 평가되었고, 여러 종류의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불우 이웃에 대한 민간의 선의를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불행을 겪게 된 사람들에게 이를 효과적이며 합리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되어 갔다. 아마도 지금의 공동모금회는 이 과정에서 조직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금의 정신을 널리펼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를 알리기 위해 앙증맞은 빨간색 사랑의 열매를 줄창 가슴에 달고 다녔다. 지 난해 11월이었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의 공동모금회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결과 직원 공채 과정에서 탈락자를 편법으로 채용했고, 업무용 법인카드를 부당하게 사용한 점 등이 지적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장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공동모금회가 편법과 부정으로 얼룩진 부도덕한 행동을 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비리에 국민들은 실망했고, 상당수가 공동모금에 등을 돌렸다.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공동모금회는 연말연시에 ‘희망 2011 나눔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러나 캠페인은 목표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결과를 드러냈다. 올해의 모금액은 2072억원이었다. 이는 지난해보다 170억원이 줄어든 금액이었고, 목표액의 92%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목표액의 149%를 모금한 바 있다. 그때와 올해의 성과를 비교해 보면, 비리 사건에 대한 국민의 채찍이 매서웠음을 알 수 있다. 모금된 기금의 운용과 집행과정 등에서 일부 직원들이 저지른 일탈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따뜻한 마음에 대한 배반이었다. 또한 그것은 이웃을 도와 왔던 우리 문화의 아름다운 전통을 모독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불우이웃돕기 운동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공동모금회는 사건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뼈를 깎는 반성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이웃돕기의 방법과 운영 및 집행과정의 투명성을 점검하고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불행한 그 사건이 공동모금 자체의 의미를 부정하거나 약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랑의 열매란 무엇인가. 그것은 착한 마음이 모여 이뤄진 아름다운 결정이다. 앙증맞은 빨간색 사랑의 열매는 이웃과 함께 삶을 나누려는 정신의 상징으로 다시 자리 잡아야 한다. 이제는 똑바른 눈으로 공동모금회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지켜볼 시점이다. 진흙 속에서도 연꽃은 피지 않는가. 이제 나도 불행한 과오를 딛고 우뚝 일어설 공동모금운동의 힘찬 모습을 다시 그려보고자 한다.
  • CEO형 영웅 조조 어떻게 탄생했나

    중국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시점은 한나라 말기, 무대는 낙양이다. 한 사내가 술에 취해 비틀대며 인적 끊긴 거리를 걷고 있다. 당시는 야간통행 금지가 있던 시절. 덜컥 낙양북부위(陽北部尉), 요즘으로 치면 경찰서장에게 걸리고 만다. 그런데 사내가 잘못했다고 싹싹 빌기는커녕, 되레 북부위를 향해 강짜를 부린다. 사내의 정체는 당대의 세도가였던 환관(宦官) 건석의 숙부다. ‘거세당한 남자’ 건석은 당시 황제였던 영제의 총애를 받으며 나라를 쥐락펴락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이다. 쉽게 말해 조카의 ‘빽’만 믿고 북부위에게 행패를 부렸던 것. 하지만 이 사내, 사람 잘못 만났다. 북부위는 눈도 깜짝 않은 채 사내를 사형시키고 만다. 주색잡기와 수탈에만 몰두하는 권력층에 신물이 났던 백성들 사이에서 약관(弱冠)의 북부위는 단박에 스타로 떠오른다. 그가 바로 삼국지의 영웅 조조다. 대다수 장삼이사들이 알고 있는 조조는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인 유비의 상대 인물일 뿐이다. 그러나 조조만큼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도 흔치 않다. 수많은 업적과 복잡한 인생 역정, 독특한 성격으로 인해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고, 시대와 평가자의 이해 관계, 논점 등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치세지능신, 난세지간웅’(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평화로울 때는 유능한 신하, 난세에는 간교한 영웅)이란 평가에만 가둬둘 인물은 아니란 얘기다. ‘조조’(장야신 지음, 박한나 옮김, 휘닉스드림 펴냄)는 조조의 삶을 최대한 기록에 근거해 복원하는 한편, 껄렁한 ‘동네 장난꾸러기’였던 그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영웅이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출생 과정의 미스터리부터 정계 진출과 한나라 말기의 정치·군사적 투쟁, 개혁과 지략, 인재 등용 등의 다양한 면모를 드라마틱하게 담았다. 저자는 이를 통해 국가를 경영하는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조조에 주목한다. ‘아Q정전’의 저자 루쉰(迅)은 1927년 광저우에서 열린 학술강연회에서 “조조가 누렸던 시대가 아주 짧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그의 나쁜 점들을 많이 기록했다. 역사적 인물 조조와 소설·희곡의 조조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실 조조는 다재다능한 장수이자 군주였고,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전장을 누비면서도 부하들을 아꼈고, 인재를 귀하게 여겼다. 물론 잔인하고 교활한 면모도 보였다. 또 여색을 좋아해서 처첩들 중 성씨가 분명한 사람만 15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일부 과오 때문에 조조의 전부가 폄하돼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특히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적국 출신까지 포용했던 능력 우선의 인재 등용은 오늘날 CEO들이 본받아야 할 점으로 평가한다. 6만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골목 대장형’ 가장 꼴불견 ‘지혜로운 선장형’ 좋아요

    ‘골목 대장형’ 가장 꼴불견 ‘지혜로운 선장형’ 좋아요

    “본인이 써야 할 보고서를 맡겨 놓고 출장을 가는 과장은 싫어요.” “순전히 보고를 위한 정책기획 주문은 피해 주세요.” “업무에 지나치게 관여하거나 개인적 친소관계로 좋은 직원만 챙기고 싫은 부하는 왕따시키는 골목대장 스타일은 질색입니다.” 중앙공무원교육원(중공교)이 과장 승진대상 서기관들에게서 청취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명 ‘과장 매뉴얼’을 만들어 눈길을 끌고 있다. 제목은 ‘과장 Do and Don’t’(가칭). 지난해 과장후보 핵심역량교육을 받은 32개 부처 서기관 369명이 직접 겪었던 상사 유형 중 싫었던 사례와 본받고 싶은 사례들을 골라 추려낸 자료다. 일과 조직·성과관리, 의사소통, 동기부여 등 4가지 측면에서 각각 바람직한 과장상과 더불어 절대 따르면 안 될 모형도 제시했다. 일할 때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과장은 ‘지혜로운 선장’형이었다. 부서 목표에 들어맞는 실용적인 기획을 세우고 정책과제에 대해 명확히 방향제시를 해 주는 타입을 원했다. 조사에 답한 한 직원은 “일일이 참견하기보다 방향설정만 하고 불필요한 보고는 최대한 줄여 주는 상사가 좋다.”면서 “대신 주기적으로 업무점검을 하고 성과·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상사 후보”라고 평했다. 직원들 사이 이해관계를 잘 조정해 주는 ‘눈치형’도 환영받았다. 다른 부서와 협력을 잘하는 과장, 중요한 일정을 미리 공지해 주는 과장, 색다른 회식 등 의사소통에 신경 쓰는 과장 등이 이런 유형이었다. 칭찬과 질책은 그 자리에서 바로 구체적으로 하고 올바른 호칭을 사용해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반면 무조건적인 ‘나를 따르라’형 과장, 우유부단 스타일은 대표적인 기피대상으로 꼽혔다. 직원 업무에 지나치게 관여하거나 독단적인 의사결정, 내 부서만의 업무추진, 친소관계로 직원 평가하기 등은 과장 금기사항으로 제시됐다. 한편 신세대 직원들은 비교당하는 것에 반기를 들었다. “예전에는 더 어려운 상황에서 이렇게 일했다.”는 식으로 과거 잣대를 직원들에게 들이밀거나 일 잘하는 직원에게만 일을 몰아주는 과장은 싫다는 답이 많았다. 이 밖에 상부 지시내용을 확대해서 부하에게 지시하거나 공은 빼앗고 과오는 덮어씌우는 형도 ‘욕먹는 과장’ 유형이었다. 행정안전부 황모 서기관은 “대개 팀장급인 서기관이 과장 업무를 옆에서 가장 가까이 지켜보는데 늘어지는 회의, 우유부단한 의사결정를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꽤 많다.”고 말했다. 중공교 관계자는 “과장 매뉴얼을 3월 시작되는 과장후보자 핵심역량교육 때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한편 현직 과장들에게 참고자료로 전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내 얼굴 돌려내”…성형의사에 960억원 소송女

    “내 얼굴 돌려내”…성형의사에 960억원 소송女

    성형수술을 받은 뒤 안면 근육이 잘 움직이지 않고 눈이 감기지 않는 등 극심한 후유증으로 고통받아온 영국 여성이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서리 주에 사는 페니 존슨(49)는 성형수술을 시술한 의사를 상대로 960억원(5400만 파운드)의 기록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지난 7일(현지시간) 고등법원에 제출했다. 수술을 받기 전까지 존슨은 연봉 10억 원(60만 파운드)을 자랑하는 촉망받는 IT기업 컨설트 전문가였다. 하지만 2003년 받은 주름제거 수술이 신경손상을 일으키면서 존슨의 인생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고소장에 따르면 존슨은 수술 뒤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서 발음이 불분명해졌을 뿐 아니라 시도 때도 입에서 침을 흘리게 됐다. 이런 외모 때문에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으며, 잠을 자더라도 오른쪽 눈꺼풀에 테이프를 붙여야 눈이 감긴다. 존슨은 “성형수술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었다. 아들들은 ‘괴물 눈’을 가졌다고 나를 피하고 남편과의 사이도 망가졌다.”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성형외과 의사가 검증되지 않은 수술로 내 인생을 망쳤다.”고 주장했다. 1000억 원에 달하는 기록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 존슨은 “앞두고 있던 세계적인 컴퓨터 제조업체와 유럽최고의 은행 등과의 중요한 컨설트를 포기해야 했으며, 망가진 얼굴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워 일을 그만두는 등 금전적 피해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수술을 집도한 의사 리 룩스 퍼리(66)는 성형수술로 인한 환자의 후유증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검증되지 않은 수술을 했다는 과오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사진설명=페니 존스의 수술 전과 후(왼쪽부터)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54) 루소의 ‘고백록’

    [고전 톡톡 다시 읽기] (54) 루소의 ‘고백록’

    1762년 6월 파리.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루소의 책 ‘에밀’이 교회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압수당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루소는 밤을 틈타 해외로 망명한다. 연이어 ‘사회 계약론’도 판매금지 처분이 내려지고, 같은 해 가을 파리를 시작으로 유럽의 각 도시에서 그의 책이 불태워짐과 동시에 루소를 비난하는 글이 쏟아져 나온다. ●막다른 길에서 고백을 시작하다 그중 가장 심한 비방은 루소와 함께 ‘백과전서’를 편찬했던 옛 친구의 글로, “루소는 다섯 아이를 거리에다 버렸으며, 위병 초소에 출입하는 갈보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방탕한 몸은 쇠약해지고 매독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익명으로 발표된 이 글은 루소가 머물던 망명지 사람들을 자극했다. 마을 사람들은 루소의 집에 몰려와 돌을 던졌고 아침이면 깨진 유리창 아래로 돌이 수북이 쌓였다. 루소가 머물던 지역 의회는 결국 그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이때 루소의 나이는 쉰셋이었다. 신변의 위협, 연이은 추방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쏟아내는 알 수 없는 비난들. 루소는 이 ‘정당하지 않은’ 비난을 참을 수 없었다. 그의 감정은 소용돌이쳤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기 감정이 삶을 집어삼킬 판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방이 막힌 상황에서 출구를 찾듯 ‘고백록’을 쓰기 시작한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고백, 정신의 사체(死體) 일반적으로 고백은 사제, 판사, 의사 앞에서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고 해석과 처분을 기다리는 행위다. 그러나 루소의 고백은 해야 할 말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며, 타자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가 듣고 싶은 이야기다. 즉 루소가 ‘고백록’을 쓰면서 고려하고 있는 독자는 자기 자신이다. 이 고백을 듣고 루소의 삶을 단죄하고, 용서하고,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자신뿐이다. 루소는 자신이 누구인지 해석할 권리를 타인에게 넘겨주지 않는다. 그는 타인의 판단을 기다리는 수동적 위치를 거부하고 자기 스스로 삶을 해석하고자 했다. ‘고백록’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루소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 잘못이라고 했다가, 당시 풍속이 그랬다고 변명하다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합리화하기도 한다. 루소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사건들은 이렇게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등장한다. 하나의 사건은 단 한 사람의 죄로 귀결될 수 없다. 루소는 매번 다른 회상을 통해 사건의 새로운 인과를 만듦으로써 자기 기억을 정화한다. 그의 고백은 설명할 수 없었던 것, 도저히 어떤 인과 속에서 생겨났는지 모를 일들을 새롭게 계열화하면서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내는 일종의 치료 행위였다. “이것은 자연 그대로, 진실된 모습 그대로 정확하게 그려진 유일한 인간상으로서, 아마 이러한 인간상은 앞으로는 다시 없을 것이다. (……) 이것은 뒤에 반드시 착수되지 않으면 안될 인간 연구에 있어 가장 먼저 필요한 참고 서적이 될 것이다.” 인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시체를 해부하듯 인간을 연구하려는 자들 역시 인간 정신을 해부해야 한다. 루소는 자기가 겪은 일을 서술할 때 사건의 사실 관계보다 자기 느낌과 감정을 정확하게 담으려고 애썼다.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흥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동시에 두 여자를 사랑했던 소년 시절의 첫사랑, 욕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연인이자 어머니였던 바랑부인에 대한 복합적 애정. 루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줄 수 있을 법한 객관적인 메모와 기록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는 감정의 연쇄(連鎖)를 풀어놓는다. 루소의 지극히 ‘주관적인’ 내면의 기억, 혹은 그의 ‘영혼의 역사’가 마치 ‘정신의 사체(死體)’처럼 해부시간을 기다리는 독자 앞에 놓인 것이다. 어린 시절의 사소한 일화부터 자신의 치부가 될 만한 과오와 애정 행각, 거기에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치부까지, 온갖 사건을 오장육부를 내보이듯 고백하고 나서 그는 기세등등하게 외친다. “나는 진실을 말했습니다. 만일 누군가 내가 말해 온 것과 반대되는 내용을 알고 있어서 그 내용에 무수한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거짓말이며 조작일 것입니다.” 루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했지만, 시체를 해부해도 생명과 죽음에 대해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루소의 고백을 다 듣고도 우리는 루소라는 ‘인간’에 도달할 수 없다. ●자기 시대의 이성과 합리성에 질문하기 루소가 살던 18세기에는 과학과 수학의 발전에 힘입어 ‘이성’으로 세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팽배했으며, 그 이면에는 완벽한 앎을 통해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욕망이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지식인들은 다양해 보이는 심적 현상을 면밀히 조사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예컨대 콩디야크는 모든 정신활동을 철저히 분석하면 단순한 요소를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으로부터 모든 정신활동이 합성된다고 주장했다. ‘고백록’ 역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루소 나름의 답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계몽주의자들의 영토를 벗어나는 루소의 또 다른 질문이기도 했다. 과연 인간의 삶이 과학적으로 추론될 수 있는가? 인간의 이성과 문명은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고백록’에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시작한 방랑, 사교계의 파티보다 고요한 사색을 더 좋아했던 자신의 욕망, 도저히 길들여지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 그리고 루소 스스로도 예상할 수 없었던 ‘우연’의 순간들이 실타래처럼 얽힌 채 기술되어 있다. 루소는 언제나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던 이들의 예상을 빗나갔으며, ‘보편적 인간형’으로 파악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시대에 자기 심성을 판단의 준거로 삼아 자기에게 밀려드는 사건들을 돌파해 갔다.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하는 자만이 진실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 이성의 ‘바깥’을 상상하는 자만이 자신의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루소가 우리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고백’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루소의 ‘고백록’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서 ‘인간의 진실’에 대해 질문하는 어느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다. 구윤숙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사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정신나간 주장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이 또 구설수에 올랐다. 이번엔 일본 좌파성향의 월간지 세카이(世界) 2월호에 기고한 글이 문제다.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 조성된 한반도 긴장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 탓이라는 논조를 폈다고 한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우리 정부의 조사결과를 국민의 30%만 믿는다는 출처 불명의 무책임한 말도 남겼다. 연평도 포격을 ‘연평패전’이라 부르고 그 포격이 북한 경고를 무시한 우리 군의 사격훈련 때문이란 주장도 했단다. 전직 국가 최고정보기관 수장의 주장으론 믿기 어려운 말들에 낯이 뜨거워진다. 김 전 원장은 공채 출신으론 처음으로 국정원장 자리에 올랐던 지난 정부의 인사다. 그런 만큼 지난 정권과는 다른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판과 견제도 국가안보를 염두에 둔 건전한 조언쯤에 그쳐야 할 것이다. 최근 쓰나미처럼 쏟아지는 북한의 대화공세에 날개를 달아주는 듯한 발언 수준이라면 곤란하지 않은가. 더구나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수장을 지낸 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마땅하다. 가뜩이나 김 원장이 재직 중 국정원과 나라에 끼친 해악이 한둘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 때 자신과 현장요원의 모습을 노출시켜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는가. 2007년 대선 전날 자신의 방북 사건을 놓고도 발뺌하더니 결국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의 대화록을 유출시켜 물러난 부끄러운 과오를 벌써 잊었단 말인가. 공인이라면 공직에서 물러난 뒤의 처신에 더욱 신중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정보는 국력’이라는 모토를 생명처럼 여기는 곳이 국정원이다. 최고정보기관이란 우리 국정원에 또 한번 오점을 남긴 언사에 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국정원직원법 제17조 ‘비밀의 엄수’는 전·현직을 가리지 않는 철칙이라고 본다. 이참에 국정원의 위상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응분의 조치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 경기지자체 행정서비스 출동

    경기지자체 행정서비스 출동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경기지역 지자체의 ‘행정서비스’가 주민 곁으로 다가가고 있다. 민원인을 기다리지 않고 민생 현장을 찾아가 즉석에서 민원을 처리해 주는 등 ‘찾아가는 행정’이 확산되고 있다. 범위도 단순 행정처리 민원에서 벗어나 구인·구직 서비스, 서민돌봄, 도시주택상담, 부동산 상담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기동성을 갖추기 위해 버스·승합차량은 물론 전철이나 어업지도선을 동원하는 등 육·해상작전을 방불케 한다. 경기도는 교통 불편 및 시간적 어려움 등으로 직접 일자리센터를 방문하기 어려운 구인·구직자들을 위해 찾아가는 일자리지원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11일 밝혔다. ●1호선 민원실 대출 등 서비스 승합차량을 이용해 산업단지, 대학, 다중집합시설 등을 찾아가 취업상담·알선, 일자리 발굴, 동행면접, 구인업체 탐방(기업방문단) 등의 채용 및 취업지원 사업을 벌인다. 찾아가는 서비스는 중소기업이 생산활동에 전념하면서 일자리센터를 방문하지 않고, 구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현장 구인등록, 채용상담, 취업알선을 하게 된다. 도는 앞서 전역을 직접 버스로 찾아다니며 민원을 처리하는 ‘찾아가는 도민안방’과 전철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한 ‘민원전철’을 운행하고 있다. 민원전철은 서동탄∼성북 구간을 운행하는 1호선 전철의 중간차량 1량을 민원실로 개조해 만든 것으로, 민원실에서는 일자리 상담과 무한돌봄 및 복지 상담, 생활민원 상담, 건강 상담, 금융대출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또 수유실과 농수산물 코너가 마련되고, 스마트폰·휴대전화 충전과 생수 지원, 양심도서 제공 등 부가서비스도 제공된다. 안산시 대부동 풍도와 육도를 오가는 이동 민원선 ‘경기 바다콜센터’는 서해 섬마을 주민들의 발이 되고 있다. 풍도와 육도에는 각각 63가구 112명, 26가구 42명이 살고 있으나 인천에서 운항하는 여객선이 육지로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어서 주민들이 민원 처리에 큰 불편을 겪었다. 도는 이에 따라 80t급 어업지도선 1척과 안산시가 보유한 18t급 어업지도선 1척을 이동민원선으로 투입, 환자를 이송하거나 민원서류 전달 등의 행정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수원역에 문을 연 경기도청 민원센터는 6개월 동안 제증명발급과 일반상담, 일자리 상담, 서민금융상담, 무료법률상담 등 3만 6134건을 처리하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성남시는 지방세 과오납금을 돌려주려고 대상 가정을 직접 찾아가 안내하는 등 ‘지방세 과오납금 찾아주기’ 특별활동에 들어갔다. ●성남, 지방세 과오납금 찾아줘 시는 지난해 지방세 과오납금 가운데 2억 4200만원을 납세자가 찾아가지 않아 시 공무원들이 직접 대상 가정을 찾아가 환급금을 안내하고 있다. 수원시 영통구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민원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영통 8888민원 콜센터’(031-288-8888)를 운영하기로 했다. 콜센터에는 공무원 3명이 배치돼 24시간 365일 주민들이 신고한 각종 불편사항을 접수, 현장에 출동해 해결하거나 해당 부서에 협조를 요청, 처리하게 된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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