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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부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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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방민호 지음, 서정시학 펴냄) “감각과 언어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크레바스가 있다. 언어는 감각을 완전히 재생해 낼 수가 없고 감각은 언어 바깥에 언제나 여분을 남긴다. 언어는 감각을 애타게 그리워하되 그 감각이라는 이름의 피안에 가 닿을 수 없는 영원한 나룻배 같은 것이다.” 인간의 감각과 언어 사이에 가로놓인 깊은 간극에 관한 저자(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사유가 담긴 평론집.‘지구는 연잎처럼 오무라들고 펴고’ ‘징후적으로 읽는 이상의 것’등 5부로 이뤄졌다.2만원.●과부마을 이야기(제임스 캐넌 지음, 이경아 옮김, 뿔 펴냄) 콜롬비아 출신 신예작가인 저자의 첫 장편소설. 산간마을 마리키타를 무대로 과부가 된 여자들이 자신들만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마리키타는 어느날 혁명을 꿈꾸는 마르크스주의 게릴라들이 남자들을 모조리 잡아가면서 여자들만 남게 된다. 작가는 혁명을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게릴라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자들이 꿈꾸는 혁명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묻는다. 전2권, 각권 9000원.●꿀벌의 언어(이재룡 지음, 현대문학 펴냄) 누보로망 이후 신경향 소설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장 에슈노즈와 장 필립 투생 등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저자의 산문집. 저자는 “언어는 설득하지만 이미지는 유혹한다.”며 “문자를 통한 설득은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지적 노력을 요구하는 피곤한 일이지만 이미지는 첫눈에 반하는 감미로운 눈요기”라고 말한다. 제목은 프랑스 평론가 롤랑 바르트가 언어의 실용적 기능을 지칭한 표현이다. 꿀벌도 소통하기 위한 실용적 언어를 갖지만 그런 꿀벌의 언어로는 예술적 차원의 묘사에 이를 수 없다는 것.1만원.●근대 극복의 이정표들(유희석 지음, 창비 펴냄) ‘민족문학 2세대’를 자처하는 저자의 첫 평론집. 저자는 이상·김수영·기형도 등에 덧씌워진 ‘모더니스트’라는 선입견을 제거, 시대와 감응하는 시인으로서의 그들의 면모를 되살려낸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장시 ‘황폐한 농가(The Ruined Cottage)’에 대한 곡진한 비평문 ‘시의 드러남에 관하여’도 눈길을 끈다.1만 8000원.●천일의 유리(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문학동네 펴냄) 1967년 ‘여름의 흐름’으로 일본 문학사상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의 신작 장편. 인간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사물ㆍ동물ㆍ관념ㆍ감정 등 이 세계를 구성하는 1000개의 요소들의 시각을 빌려 그려낸 실험적 소설이다. 전2권, 각권 1만 1000원.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흰밤/백석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흰밤/백석

    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정본 백석시집 중에서
  • [길섶에서] 착한 청년들/ 이호준 뉴미디어국장

    후배들을 만날 땐 종종 대학가를 찾는다. 음식값이 싼데다 젊은 활기가 좋기 때문이다. 그 날도 대학 근처에서 약속이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바람에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서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뛰어 오더니 같은 또래의 청년에게로 다가선다. 두툼한 지갑을 들고 있다. 젊은이는 숨도 고르기 전에 사과부터 한다.“저기요. 죄송한 일이…. 돌려 드리려면 신분을 알아야 하겠기에 지갑을…. 다른 건 이상없을 겁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말까지 더듬는다. 더 당황한 이쪽 청년이 손사래를 친다.“당연하지요. 정말 고맙습니다.” 청년이 지갑을 주웠는데, 연락을 위해 열어본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저 식사라도 같이….” “아닙니다. 약속이 있어서….” 지갑을 돌려준 청년이 후련하다는 듯 뛰어간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얼마 전 이 코너에 예의 없는 젊은이들 이야기를 쓴 게 미안해진다. 착하고 성실한 청년들이 훨씬 더 많은 세상이거늘…. 이호준 뉴미디어국장 sagang@seoul.co.kr
  • 셋방 아가씨에 칼들고 구혼(求婚)

    셋방 아가씨에 칼들고 구혼(求婚)

    옆방에 세든 아가씨와 결혼하기위해 아들은 칼을 들고 방에 뛰어들고 어머니는 방문을 잠근 모자(母子)합작추행극 한토막. 광주서는 7월30일 P모군(27)과 P군의 어머니 K여인(49)을 추행혐의로 입건했는데, 이들 모자는 지난해부터 자기집 아랫방에 들어있는 S양(18·회사원)을 짝사랑, P군은 S양과 결혼하기위해 몇차례 구혼의 손길을 뻗쳤으나… 끝내 S양이 말을 듣지 않자 7월15일 P군이 칼을 들고 S양 방에 돌입, 강제로 욕을 보였는데 이때 며느리 얻기에 혈안이 된 어머니 K여인은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망을 보았다나. 그뒤 S양이 『이 일을 발설하지 않으면 고소는 않겠다』고 했으나 P군은 끝내 결혼할 욕심에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다. 창피도 하고 화도 난 S양의 고발로 P군과 K여인은 끝내 쇠고랑을 차게된 것. 과부를 업어와도 그렇게는 하지않는 법인데… [선데이서울 70년 8월 9일호 제3권 32호 통권 제 97호]
  • ‘임아~’하다 고소한 과부와 총각

    ‘임아~’하다 고소한 과부와 총각

    40대 양화점집 과부가 20대 병원 조수인 총각에게 정력제 사달라고 부탁하더니 일이 크게 벌어졌다. 좋아하다 싫어진 것. 과부가 총각을 공갈혐의로 쇠고랑을 채우자 총각은 『누가 이용한 것이냐?』고 반박. 서울 모 의과대학 4년까지 마치고 대구시 모 종합병원에서 조수로 근무하던 조동호(趙東浩)씨(29·가명)가 양화점집 과부 정(鄭)모여인(대구시 화전동)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초봄. 그때만 해도 정여인은 과부 한숨에 초가삼간 기둥이 무너지는 병은 앓지 않았었다. 정여인은 눈을 치료하기 위해 안과에 출입하다가 「핸섬」한 조총각을 만났다. 눈병이 완치되어 발걸음이 끊긴 정여인은 조씨집 부근에 살고 있는 수양언니한테 자주 놀러다니면서 조씨와 사귀어 오다가 하루는 조씨한테 정력제를 부탁했다. 조씨는 병원에서 외국제 정력제 15일분을 구해다 정여인에게 전해주었고. 며칠뒤 조총각은 정여인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으니 『만나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조씨가 대구 신천동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그곳에는 정여인과 수양언니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면서 놀다보니 밤 12시가 지나버렸다. 가까운 여관에 방 한간을 빌어 여자 둘과 총각 하나가 함께 투숙했다. 얼마만큼 잤을까, 정여인이 깨어서 『웃목은 추우니 아랫목으로 내려오라고』고 조총각을 잡아 끌었을 때는 깜깜한 한밤중-. (잠못자는 암비둘기가 어디서 울었는가…) 정여인 옆에 바짝 당겨 눕게 된 조씨를 정여인이 노골적으로 애무하면서 몸부림. 총각은 처음엔 정신이 퍼뜩 들어 『이래선 안되는데…』했지만 뜨거워진 몸뚱이는 서로를 껴안아버렸다. 젊은 열기는 마침내 숨가쁜 순간을 치르고야 말았다. 이뒤부터 사흘이 멀다고 정여인은 조씨를 찾았고 조씨 역시 정여인의 품을 그리워 하게 됐다. 정여인은 조씨를 찾아오면 3~4일동안 꼬박 붙어 앉아 잠시도 자유를 주지 않아 직장인 병원마저 4월초순에 사표를 던지고 그만 두게되어 버렸다. 이때부터 두사람의 애정행각은 섭씨 39도. 경북성주에 가서 나흘동안 달콤한 꿈을 꾼 것을 비롯, 포항 해수욕장에서 1주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고사에서 18일, 달성군 옥포면 용연사에서 4개월… 명승지를 찾아 다니며 그야말로 불붙는 향락에 서로를 불태웠다. 정여인은 양화점을 경영하기 때문에 가끔 집에 들렀고 그밖에는 거의 대부분 조씨와 어울려 다니며 돈을 물쓰듯 했다. 정여인은 대구 수성동에 전세 2만원짜리 방까지 얻어두고 조씨와의 보금자리로 삼다가 풍기가 사납다고 주인한테 쫓겨나기도 했다. 어떤때 조씨가 딴 여자 친구와 어울리고 있으면 『나는 조씨 이모인데 요즈음 처녀들은 총각하숙이나 찾아다니며 꼬리를 친다』고 엄하게 꾸짖어 쫓아 보내놓고는 바로 총각품을 파고들며 애무를 요구하는등 정열적. 그만큼 질투도 강했다. 그러나 소문이 퍼지고 정여인의 정열에 녹아버렸던 조씨는 차차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조씨는 차차 정이 멀어져 갔다. 마음을 굳게먹고 정여인에게 서울 친척집에 다녀 온다고 얻은 돈 6만원을 가지고 대구시 남산동에 방한간을 얻어 숨어버렸다. 정씨 친구들에게 수소문하여 15일만에 조총각이 숨어있는 곳을 알아내고 말았다. 이래서 또 애정행각은 계속되었다. 정여인은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하되 비밀로 관계를 계속하자면서 중매까지 서준다고 한때는 조씨를 앞장세워 대구시 비산동 김모양(25)을 데려다가 선까지 보인 적도 있었다. 정여인은 조씨를 상점 가까운 시장안 무허가 하숙을 시켜놓고 이따금 음식도 손수 해나르고 시간나는대로 조씨를 찾아와 「엔조이」하고서 돌아가곤 했다. 정여인이 이토록 좋아하던 총각을 고발하게 된 것은 조씨가, 『이런 생활을 청산하겠다. 당신 때문에 직장도 그만두었으니 30만원만 도와달라』고 요구한데서 비롯됐다. 이렇게 되자 정여인은 조씨한테 강제로 육체를 빼앗기고 그것을 세상에 공개한다고 공갈하기 때문에 여지껏 끌려다니며 이용당해왔고 같이 유흥비로 쓴 50여만원의 돈을 다 내세우기 부끄러워 반을 쪼개어 26만여원을 갈취 당했다고 진술. 이에 대해 조씨는 펄쩍 뒤었다.『천부당 만부당한 소리다. 누가 보아도 이건 내가 이용당한 것이고 신세를 버린 것이지 결코 내가 정과부를 이용한건 아니다. 4개월이나 객지에 가서 동거한 여인이 뻔뻔스런 거짓말로 법을 악용하느냐』고 맞서고 있다. [선데이서울 70년 8월 9일호 제3권 32호 통권 제 97호]
  • [씨줄날줄] 결혼 격차/함혜리 논설위원

    예로부터 결혼이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하여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동서고금을 불문한다. 결혼에 대해서 명언을 남긴 사람으로 18세기 후반 영국의 문학비평가이자 작가인 새뮤얼 존슨을 꼽을 수 있다. 존슨은 부친의 헌책방 일을 거들며 10대 후반에 거의 모든 고전을 섭렵해 학자로서 자질을 키웠지만 가난 때문에 옥스퍼드 대학을 중도포기해야 했다. 학위도, 뚜렷한 자격도 없이 지방의 문법학교 교사로 근무하기도 하고 번역일을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나가야 했던 그가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선택한 것은 결혼이었다. 결혼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던 그는 “결혼에는 많은 고통이 있지만, 독신에는 아무런 즐거움이 없다.”는 소신을 갖고 26세에 20세 연상의 돈많은 과부와 결혼한다. 아내에 대해 평생 변함없는 애정을 지녔던 존슨은 이런 말도 남겼다.“단지 돈만을 위해 결혼하는 사람보다 더 나쁜 것은 없고, 단지 사랑만을 위해 결혼하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없다.” 결혼은 잘 해도 고민, 안 해도 고민이라고 한다. 이왕이면 잘 하면 좋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최근 미국에서는 결혼이 새로운 계급간 격차를 만들어 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케이 하이머위츠 맨해튼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결혼에 따른 빈부격차와 그 대물림 현상을 소개했다. 하이머위츠에 따르면 저학력자의 이혼율이 급증함에 따라 편부모 가정이 증가하는데 이들의 상당수가 흑인들과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에 집중돼 있다. 빈곤층 편부모 가정은 정상 가정에 비해 자녀양육에 신경을 그만큼 덜 쓰게 되고, 자녀들은 온갖 사회문제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결국 그 자신도 편부모가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편부모 가정에 비해 양친 부모가 수익도 두배, 자녀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두배인 것이 결혼 격차를 만들어낸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결혼을 잘 하면 누구든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인류는 결혼을 통해 이뤄진 가족제도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그 결혼제도가 새로운 계급간 격차를 만들어내는 함정이 되고 있으니 참 유감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수영영웅 신화 이제부터”

    “신화는 이제부터다.” 지난 25일 박태환(18·경기고)의 사상 첫 세계수영선수권 금메달 소식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불모지로만 여겨졌던 한국 수영에서 세계 최고 선수가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수영연맹(FINA) 홈페이지는 ‘위대한 한국인’이라고 극찬했다. 세계적인 수영 잡지 스위밍 월드 매거진도 ‘2월의 인물’로 박태환을 뽑았다. 박태환은 이제 한국 수영사가 아니라 세계 수영사의 한쪽을 장식할 ‘영웅’으로 떠올랐다. ‘괴물’ 박태환은 영광과 찬사를 즐길 새도 없이 곧바로 다관왕에 도전장을 던졌다.2004년 아테네올림픽 6관왕인 ‘신동’ 마이클 펠프스(22·미국)와 일전을 겨뤄보고 싶다는 ‘치기’에 26일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자유형 200m에 나선 것. 하지만 박태환은 거뜬히 결승에 진출,27일 메달에 도전한다.KBS1 TV가 오후 5시45분부터 30분 동안 생중계한다. 박태환은 31일에는 또 하나의 주종목인 자유형 1500m 예선에 출격한다. 박태환은 26일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200m 준결승 2조에서 1분47초83에 터치패드를 찍었다. 피터르 판덴 호헨반트(1분46초33·네덜란드), 마시밀리아노 로솔리노(1분47초44·이탈리아)에 이어 3위. 준결승 전체로는 펠프스(1분46초75) 등에 밀려 5위로 결승에 올랐다. 스타트는 좋았지만 더딘 초반 스퍼트가 발목을 잡았다. 물론 금빛 전망은 밝지 않다. 예선 기록만 봐도 1위 호헨반트에 1초50이나 뒤졌다. 단거리에선 상당한 격차다. 또 자신의 최고 기록인 1분47초12를 갈아치워야 3위 로솔리노를 제치고 메달권에 들 수 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괴력을 더하는 박태환에게서 두 번째 기적을 배제할 수는 없다. 말랑말랑해 보이는 고교생이지만 그는 분명 승부사다. 박태환이 지난해 8월 범태평양대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딴 금메달 6개 모두 막판 스퍼트를 통해 거둬들였다. 큰 무대에서 주눅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껏 실력을 발휘한 결과다. 박태환이 2개월의 짧은 훈련에도 일찍 금메달을 따 부담을 던 점도 기대를 부풀린다. 박태환은 “호헨반트의 초반 랩타임이 너무 빨라 과부하가 걸렸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초반에 멀리 떨어지지 않고 바짝 따라가면 결승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김재현 土公사장 “올공급 택지 69%가 수도권”

    김재현 土公사장 “올공급 택지 69%가 수도권”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수도권내 부족한 택지를 공급하는 데 토지공사의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김재현 한국토지공사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중동순방을 수행하기 위해 출국하기 전날인 23일 경기도 분당 토지공사 본사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차질없이 택지를 공급하는 게 올해 최대의 경영 목표”라고 설명했다.2기 신도시를 비롯해 수도권내 택지 공급이 줄줄이 예정된 만큼 공공택지 공급 주체인 토공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토공이 올해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어디입니까.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신도시 건설 등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인 773만평의 택지를 올해 공급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공급한 택지(297만평)의 두 배가 넘습니다. 이중 (그동안 집값이 많이 오른 편인)수도권에 공급하는 비율이 69%나 됩니다. 내년 이후에도 공급이 잘 이뤄지도록 신규 택지 후보지도 전국 683만평 규모 수준으로 지정할 계획입니다. ▶보상비가 부동산 시장으로 다시 들어가 주택 가격을 올린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데요. -이 문제를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보상비가 수도권의 땅을 사는데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토지상환채권을 발행하려는 것도 보상금이 토지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측면이 있습니다. ▶행정도시와 혁신도시는 잘 되고 있습니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오는 7월 착공됩니다. 당초 계획대로 강제 수용을 최대한 줄여 협의보상률이 83.1%나 됩니다. 혁신도시는 오는 5월중 토지 보상에 착수해 오는 9월 대구, 울산 등 일부 지역에서 착공에 들어갑니다. ▶개성공단은 어떻습니까. -북핵 문제로 아직 분양이 남아 있는 개성공단 53만평(300개 업체)은 늦어도 오는 4∼5월중 분양할 계획입니다. ▶토공이 건설업체들에 비싼 값에 땅을 넘겨서 고분양가를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습니다. 소위 ‘땅 장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요. -택지 개발 과정을 이해하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 오해에 따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지요. -예컨대 토공이 전체 사들인 토지가 100이라면 이를 다 파는 게 아닙니다. 이중 52%는 도로 등 기반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무상으로 주고 있습니다. 택지개발한 토지중 48%를 팔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중에서도 임대나 중소형 아파트, 학교 등 공공시설의 경우는 원가나 원가 이하로 팔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남나요. -중대형아파트 택지나 단독택지는 감정가로, 상업용지는 입찰가로 팝니다. 이런 부분에서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토지공사는 정부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이익이 나면 정부에 배당으로 줍니다. 지난해의 경우 순이익 약 6000억원중 정부에 배당으로 나간 게 2000억원입니다. ▶나머지는 어디에 쓰이나요. -나머지는 국민임대, 행정중심복합도시, 경제자유구역, 산업단지 등 공공사업 재투자에 썼습니다. 공익성과 수익성을 잘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개발이익이 해당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발 이익을 지역에 어떻게 환원시키나요. -예컨대 현재 장성군 등 전국 47개 지방자치단체와 협약을 맺고 개발 이익을 지자체에 재투자하는 지역종합개발사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곧 착공을 앞둔 남양주의 경우 개발 이익의 50%를 지역에 재투자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원가공개 등에 따라 이익을 내지 못하는 형태로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도시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임대 주택 문제를 놓고 주공과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요.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고요. -오해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합니다. 정부 정책이 중형임대를 많이 공급하는 것이고 그 물량을 다 채우려면 현재의 상태로는 어렵지 않겠느냐 하는 차원에서 토공도 임대주택을 짓는 쪽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토공이 임대주택을 한다면 펀드를 조성해서 할 것입니다.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요즘 ‘무능력 공무원 퇴출제’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토공에서는 몇년 전부터 해오던 일입니다. 지난 2005년부터 1∼2급중 능력과 성과부진자 하위 5%를 보직퇴출자로 뽑아 현장부서에 파견하는 등으로 긴장을 주고 있습니다. ▶인사정책이 앞선다는 평이 많습니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나이제한과 학력제한을 없앴습니다. 또 지난해부터는 지방대 출신을 입사자의 40% 수준까지 늘렸습니다. 토공이 전국에서 개발사업을 벌이는 만큼 지방대 출신이 중요합니다. 최근 청와대에 인사정책을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에서도 토공을 최근 자주 찾는 것 같은데요. 토공이 인정받는 강점이 무엇인가요. -‘U시티’(유비쿼터스 시티) 조성 기술입니다. 지난 2003년 착공한 화성 동탄을 시작으로 성남판교, 인천청라, 행정중심복합도시, 송파거여 등 앞으로 토공이 시행하는 모든 신도시가 U시티로 조성됩니다. 세계 각지에서 이 기술을 전수받으려 몰려들고 있습니다. 몽골 카자흐스탄 알제리 등과는 신도시 개발 기술 전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습니다.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일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습니다.1급 간부들에게는 대외 협상력을 갖추고 후배들에게 의지가 되는 ‘적극적인 리더십’을 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바람나는 직장도 중요하겠지요.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를 조성해 직원들이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조직(2800명)의 40%가 3∼4년차의 새내기입니다. 현재 129명의 신입사원이 연수중인데 올해부터 신입사원 하나에 부장급을 한명씩 붙여 지도하도록 하는 ‘멘토제’를 도입했습니다. 정리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기업문화 투명하게 대혁신 토지공사가 수년간 투명한 경영 문화를 만들겠다며 추진하고 있는 경영혁신이 지난해 기획예산처의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 1위라는 영예로 돌아왔다. 김재현 사장은 토마토를 좋아한다. 경영혁신의 모토도 토마토다. 겉이 빨간 색이면 속도 빨갛게 익은 토마토처럼 투명한 토지공사가 되자는 취지에서다. 지난 2005년 신청, 추첨, 계약체결, 잔금 납부, 소유권 이전 등 토지 청약의 모든 과정을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토지매수 고객에 대한 토마토 거래시스템’으로 구체화됐다. ●‘훌륭한 일터´ 추진 최근에는 ‘훌륭한 일터’라는 뜻의 GWP(great work place)를 기업문화로 추진중이다. 임·직원의 청렴의식을 높이고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클린토공 청렴학교’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공헌 활동 강화도 혁신활동의 일환이다. 최근 ▲국토사랑 ▲이웃사랑 ▲문화사랑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토공만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체계화했다. 본·지사 26개 지부 120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토공 온누리 봉사단’은 지부별로 사회복지기관과 자매결연을 맺어 활동을 펴고 있다. ●5년 연속 매출 4조원 이상 조직의 변화는 높은 경영성과로 이어졌다.2000년 261%였던 금융부채 비율은 지난해 135%로 낮아졌다.5년 연속 4조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등 창사 이래 최대 경영성과도 거두고 있다. 토공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20%가량 증가한 5조 3740억원. 순이익은 5831억원.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김재현 사장은 누구 김재현 토지공사 사장은 사내에서 ‘불도저’로 통한다. 1990년 6공 시절 정부의 통일정책사업으로 추진된 통일동산과 자유로 조성사업 때의 일화 때문이다. 당시 김 사장은 이 사업의 총책임을 맡았다.8·15 광복절 기념으로 통일전망대 주차장∼오두산 전망대를 연결하는 오두산1교 개통 준비에 여념이 없었는데 개통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시공상 문제점이 발견됐다. 마땅히 재시공을 해야 했지만 그럴 경우 광복절에 맞추기가 불가능하다는 게 주변의 지적이었다. 결국 기념행사에 맞춰 임시개통한 뒤 재시공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철거를 강행했다. 그뒤 4개월간 현장에 상주하며 매일 공정과 현장 상황을 일일이 체크해 오두산1교를 완벽한 상태로 개통시켰다. 이후 자유로도 개통됐다. 그의 이같은 밀어붙이기식은 토공의 조직 혁신에도 적용시켰다. 무능력자 퇴출제 도입, 입사연령 폐지, 지역파괴, 특별승진제 도입 등 혁신 정책을 주도해나갔다. 그래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은 ‘혁신 전도사’로 통한다. 이같은 그의 자신감의 배경에는 토공 설립 원년(1979년) 멤버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경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지역 및 도시계획기사 1급, 토목기술사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철탑산업훈장, 산업포장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주말마다 산을 찾았으나 최근에는 가끔 골프도 즐긴다. 부인 정현옥(58)씨와 사이에 3남. ●프로필 ▲62세 ▲전남 고흥 출생(1945년) ▲순천 농림고 졸(1964년) ▲조선대 토목공학과 졸(1969년) ▲토지공사 입사(1979년) ▲지원사업처장(1993년) ▲택지본부장(1999년) ▲부사장(2001년) ▲사장(2004년)
  • 문화공간 2배… 태양열 활용 그린빌딩

    문화공간 2배… 태양열 활용 그린빌딩

    이명박 전 시장 때인 2006년 6월부터 세 차례나 제동이 걸렸던 서울시 새 청사 신축안이 문화재위원회를 통과함에 따라 앞으로 새 청사 건립에 탄력이 붙게 됐다. 새 청사는 문화산업공간이 당초 16.6%에서 34.1%로 늘어나고,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환경친화적 건물로 신축된다. 공사는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진행하며, 총 공사비는 1565억원이다. ●층수 낮추고, 형태는 사각형 새 청사는 고층부는 21층에서 19층으로, 저층부는 9층에서 6층으로 낮아졌다. 연면적도 2만 7215평(8만 9968㎡)에서 2만 1500평(7만 1074㎡)으로 5700여평 줄었고 형태도 사각형 빌딩으로 바뀌었다. 사무 공간이 줄어 들면서 3개 국(局)은 새 청사 완공 후에도 본청에 입주하지 못하고 서소문 별관 등을 사용해야 한다. 서울시 새 청사 건설계획안은 당초 지난해 6월16일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에 상정했다. 지하 4층에 저층부 9층, 고층부 최고 21층으로 된 안은 사적분과위가 주변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결됐다. 이어 지난해 10월 층고를 19층으로 낮추고, 태극문양을 형상화한 형태로 외관을 바꿔 문화재위에 상정했지만 역시 부결됐고,11월 규모를 줄여서 재차 제출했지만 역시 보류됐다. 조건부지만 이번 시청사 신축안 통과는 ‘3전 4기’인 셈이다. ●서울의 랜드마크 새 청사는 태양광 태양열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친환경 최첨단 건물로 지어진다. 유리창은 태양열을 활용하는 특수 유리를 사용한다. 또 고층부 건물 중앙부에는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유리로 된 ‘그린 아트리움’을 조성, 나무를 심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나 공무원들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한다. 문화산업공간 비율이 넓어짐에 따라 1∼4층에는 문화 관광 진흥·산업 진흥·첨단 정보기술(IT) 전시관이 들어선다. 지하에는 600여석 규모의 공연 시설도 마련된다. 김효수 주택국장은 “새 청사는 단순히 시 직원의 사무공간 기능뿐 아니라 서울시민과 관광객이 꼭 한번 찾고 싶은 독창적인 외관 및 기능을 갖춘 관광명소이자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시장 임기내 완공 전망 새 청사 공기는 3년이다. 오는 5월 착공한다면 2010년 5월 준공한다. 오 시장 임기 내(2010년 6월)에 입주할 수 있다. 문화재위가 조건을 단 높이를 낮추고, 시청 뒤뜰을 넓히는 문제가 남았지만 서울시는 이를 적극 수용할 계획이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새 청사는 시청과 서울신문사 사이 태평로 건널목과 청사 전면부에 출입구를 내 시민들이 태평로에서 시청사 후정을 지나 서울광장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했다. 또 새 청사와 서울신문 사이에 있는 3차선 차로 옆에는 4∼6m 넓이의 보행로가 생긴다. ●기존 건물 어떻게 활용하나 새 청사가 완공되면 상수도사업본부 등 몇개 본부와 사업소,3개 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실·국은 본청으로 입주한다. 그동안 사무실 부족에 시달려온 서울시는 사무실 과부족 현상을 어느 정도 해소하게 된다. 서소문 별관도 입주해있던 실·국이 입주하면 빈공간이 제법 많이 생긴다. 문제는 이 공간을 시가 전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 일부 국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다가 시의회가 이전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 시청사와 함께 근대사적으로 지정돼 있는 시의회 청사는 시설이 노후화됐지만 문화재여서 제대로 수리공사도 하기 어렵다. 엘리베이터도 밖에 덧대서 설치했을 정도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김관기 채무상담실] 빚 다 갚긴 힘들어도 파산은 싫은데…

    Q5년 전에 금융권에서 5000만원을 빌렸습니다. 처음에는 이른바 돌려막기로 버티다가 막판에는 카드깡을 해서 마련한 돈 1000만원을 갖고 도피해 주민등록이 말소된 채 살았습니다. 언젠가는 빚을 모두 갚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저축했지만,1500만원 정도밖에 모으지 못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갚고 싶은 마음에 파산신청은 생각도 안해봤습니다. 카드깡을 했던 사람에게는 면책을 해주지 않는다고도 들었고요. 결국 채권자와 협의해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갚고, 나머지를 면제받을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알아 보니 채권은 무슨 자산유동화회사라는 곳으로 전부 넘어갔고, 이들은 제게 원금의 반 이상을 갚으라고 합니다. 파산신청을 하기는 싫은데, 모두 갚을 능력도 안되니 고민입니다. -이영선·32세- A채권의 가치는 민사법이 인정하는 채권금액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채권 액면이 크다고 해도 재산이 없는 채무자가 갚을 의사마저 없다면, 이 채권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영선씨가 도피한 뒤 채권자들이 한 푼도 받지 못한 점을 기억하십시오. 채권금융기관은 장기간 회수되지 않는 불량채권을 액면가보다 아주 싼 값에 매각해 손실을 실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법인세를 덜 내고 채권관리 비용을 절약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채권을 매입하는 회사는 싼 값에 채권을 사들여 채무자에게 그 이상의 금액을 받고 팔아 그 초과부분을 이익으로 취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채권회사들은 이런 거래를 채무자 본인과 성립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선 채권사가 자발적으로 채무탕감에 동의한 바 있다는 사실이 다른 채무자들에게 알려지면 전체적으로 이와 비슷한 거래를 요구받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수익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면제라도 해주면 아예 상환을 포기했던 채무자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전반적으로 높은 회수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하게 됩니다. 두번째로 개별 채권자는 다른 채권자를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채무 전체를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그래도 약간이라도 가진 게 있는 채무자라는 것을 알면 다른 채권자가 나서기 전에 개별행동으로 채권자를 적극 압박하고 설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신의 것을 전부 실현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거래를 강제로 성립시키는 게 파산 제도입니다. 즉 채무자가 현재 가진 것을 전부 내놓게 해서 파산재단을 구성, 채권자들이 나눠 갖는 것입니다. 파산 절차에서 개별적인 권리행사는 금지되며 재산을 전부 내놓은 정직한 채무자들에게는 면책이 부여됩니다. 물론 파산절차는 그 나름대로 법적 절차이기 때문에 복잡하고 영구히 기록으로 남게 됩니다. 보통의 채무자는 마지막까지 파산절차를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 소비자가 카드 가맹점과 공모해 마치 고액의 물품을 구입한 것처럼 가장해 수수료를 뗀 현금을 받는 카드깡은 그 자체가 면책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는 사유가 됩니다. 파산을 피하려고 하는 이영선씨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파산과 개인회생 이외에 채무자의 일부상환을 도와 주는 공적인 제도가 우리나라에는 없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이나 배드뱅크 같은 제도가 도입됐다고 하지만, 이들은 본질적으로 채권 금융기관이 후원하고 있어 채무자 이익을 대변하지 못해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빚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어느 정도 있는 채무자들도 어쩔 수 없이 파산이나 개인회생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채권추심 방법을 규제함으로써 일부 상환을 원하는 채무자의 요구를 수용합니다. 즉 채무자가 채무상환에 관한 협상과 관련, 변호사 등 자격을 갖춘 대리인을 지정했을 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채권 추심인은 채무자에게 직접 채무 이행 독촉을 하지 못하고 이를 어기면 제재를 받고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채무자는 대리인에게 채권추심인과의 협상을 위임하고 자신은 번거로움을 피해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채권 추심인과 채무자의 대리인이 협상해 확정된 금액을 전달함으로써 채무자는 면책을 얻고 채권자는 부실채권을 회수하는 거래가 이루어지기 쉽습니다. 우리도 이 제도를 도입한다면 아마도 불필요한 파산신청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관기 변호사가 담당하는 ‘채무상담실’의 상담신청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 ul.co.kr)에서 받습니다.
  • 3대의 엽기적인 애정행각

    3대의 엽기적인 애정행각

    조·부·손(祖·婦·孫)의 3대가 한 마을에서 간통을 했다고 발칵 뒤집힌 마을 사람들. 전 부락 25호의 호주 25명이 간통자의 집 사립문에 새끼줄을 매고 간통가족을 추방하려다가 전 부락 25호 호주가 무더기로 입건되어 웃지 못할 화제를 빚고 있다. 법과 윤리는 어느쪽이 더 당당할까? 친척 건드리고 쫓겨났던 오(吳)노인집에 꼬리문 소문 친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조·부·손 3대가 무질서한 성(性)관계를 맺어 왔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분개한 마을 사람들이 한 가족을 마을에서 몰아내기 위해 사립문을 새끼줄로 묶는 등 폭력행위를 가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전남 광산군내의 ○○부락은 25농가에 1백50여 주민이 법을 모르고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외딴 마을. 이 마을에 깊이 뿌리박혔던 전근대적 봉건사상은 해방과 더불어 하나씩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윤리관은 달라졌고, 그래서「섹스·모럴」에도 붉은 신호등이 켜졌는지 모를 일이다. 정절을 최고의 미덕으로 내세웠던 이 마을은 지난 해 겨울부터 수군거리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지난 5월 중순 분노의 사화산이 폭발하고 말았다. 할아버지 며느리 그리고 손자 등 3대가 고유한 부부유별(夫婦有別)의 풍속을 무시하고 친족들과 근친상간, 또는 동네의 총각 머슴과 놀아났다는 것. 사고는 이 마을 오홍식(吳洪植) 노인(가명·85)이 지금으로부터 30년전 당시 55세의 나이로 혈기 왕성한 정력을 쏟을 길 없어 가까운 친척인 오충남(吳忠男)씨(가명)의 큰 어머니와 관계를 맺다가 들통이 난데서 비롯됐다. 남편 일찍 여읜 며느리는 수절 4년, 머슴과 눈맞아 얼굴을 못들게 된 그는 귀양살이(?) 봇짐을 꾸려 함평군 문장면으로 내뺐다. 그 당시만 해도 이 마을의 규율은 엄격했다. 잘못을 저지르면 당연히 마을을 쫓겨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세태는 자꾸 변했다. 그는 정든 고향을 버릴 수 없었음인지 추방 5년만에 다시 살던 마을로 돌아왔다. 주민들도 반대는 없었다. 오노인은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근신하는 마음으로 하나뿐인 외아들을 결혼시켰다. 일 잘하고 건강한 류옥체(柳玉體)여인(가명·43)이 며느리로 들어왔다. 18세에 시집 온 류(柳)여인은 옥동자까지 낳았다. 그러나 류여인은 결혼한지 6년만에 6·25동란으로 남편을 잃고 말았다. 그 때가 24세의 꽃다운 청춘. 단란했던 가정은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 때부터 커다란 시련이 청상과부 류여인을 덮치기 시작했다. 남편생각에 일손은 잡히지 않고 뜬 눈으로 몇 날을 지새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조차 모를 일이었다. 『어린것이 불쌍하지…』-그러나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4년동안 수절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류여인을 칭찬했다. 그러나 타오르는 육욕을 억제하기란 힘들었다. 그녀는 어느날 이 마을에서 고용살이하는 총각 머슴과 눈이 맞았다. 그들은 눈짓으로 사랑의 말을 속삭여왔지만 고유한 향약(鄕約) 바로 그것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았다. 그들은 감시의 눈을 피해 들판에서만 밀회를 가졌다. 만나면 만날수록 신명이 났다. 길일(吉日)을 택해 수풀이 우거진 숲속을 밀실(密室)로 삼고 도취경에 빠져 서로 껴안고 뒹굴었다. 그러나 얄궂은 마을 청년들의 「서치·라이트」는 기어코 이들의 정사장면을 비추고 말았다. 손자가 친척과 추문내자 온마을이 추방운동 벌여 『○○네는 총각 머슴과 배가 맞았다면서…』 소문은 삽시간에 온 마을을 휩쌌다. 어린이, 아낙네 할 것 없이 모두가 이들의 험담에 열을 올렸다. 류여인은 그대로 앉아 무정한(?) 마을에서 함께 섞여 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총각머슴 새서방과 몰래 괴나리 봇짐을 꾸려 어디론지 마을을 등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르도록 마을은 태평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지난 66년 이미 어른이 된 류여인의 아들 相根(상근)씨(가명·26)가 어머니 주소를 알아내어 다시 마을로 모셔왔다. 그때는 주민들도 더 흉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해 겨울 또다시 마을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저주로 발칵 뒤집혔다. 총각인 상근씨가 손자뻘 되는 오삼랑(吳三郞)씨(가명·29)의 아내 정복순(鄭福順)여인(가명·27)과 정을 통하다가 삼랑씨에게 꼬리를 잡힌 것이다 이들의 추행현장을 붙잡은 삼랑씨는 기가 막혔지만 창피한 생각에 아내만 친정으로 쫓아버리고 사건을 일단 덮어두기로 했다. 이 약점을 노린 상근씨는 『광주에 집 한 채만 마련해주면 모든 사실을 비밀에 붙이겠다』고 거꾸로 삼랑씨에게 뻔뻔스러운 협상을 제의하여 문제가 표면화되어 버린 것. 협상은 결렬됐다. 두 사람 사이에 좋지않은 말이 오고 가면서 모든 추행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어쩌면 3대에 걸쳐 그럴 수가, 그 조상에 그 자식은 어쩔 수 없는 법』이라고 주민들은 분개해서 쑥덕거렸다. 문제는 험악해졌다. 마을대표들은 마을회의를 긴급히 소집, 『미풍양속을 해치고 마을을 욕되게 했다』는 죄명(?)을 들어 오씨 가족을 마을에서 몰아내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대표들을 통해 이 뜻을 류여인에게 전했다. 류여인은 『8순이 넘은 시아버지를 남겨두고 그냥 떠날 수는 없다』고 며칠동안만 참아주기를 애원했다. 그러나 약속날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주민들은 또다시 마을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했다. 실력행사(?)까지 들어가자는 것에 의견이 일치됐다. 지난 5월 21일 이장 李敦雨(이돈우)씨(46)를 비롯한 마을대표 25명이 오씨집에 몰려가서 강제 퇴거를 명령했다. 이에 오씨 가족은, 『유부녀 간통이 얼마나 대단한 죄냐? 요즈음은 서로 눈만 맞으면 사는 세상인데 뭣 때문에 죄가 되느냐?』고 팽팽하게 맞섰다. 대표들은 주민의 의견에 따라 오씨집 사립문을 새끼줄로 꽁꽁 묶어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농사일도 절대로 돕지 말자로「따돌리기」벌을 내리기로 결의했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경찰은 주민들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입건하기에 이른 것. 한편 법을 모르는 이 마을 주민들은『법이 이런 줄은 몰랐다. 3대에 걸쳐 간통한 놈들을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수사당국은 『간통이 명확히 드러났지만 친고죄이므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알려주면서 노한 주민들을 달래고 있다. <광주(光州)=정일성(丁日聲)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7월 12일호 제3권 28호 통권 제 93호]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0) 빈자 도와준 호걸 임준원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0) 빈자 도와준 호걸 임준원

    중인들은 서울의 북쪽 인왕산 일대와 남쪽 청계천 일대에 주로 모여 살았다. 지역에 따라 직업과 재산, 관심사가 달랐다. 서당 훈장으로 많은 제자를 길러낸 위항시인 정내교(鄭來僑·1681∼1757)는 스승 홍세태의 친구 임준원(林俊元)의 전기를 지으면서, 이 두 지역의 민속을 이렇게 구별하여 설명하였다.“서울의 민속은 남과 북이 다르다. 종로 남쪽부터 남산까지가 남부이다. 장사꾼과 부자들이 많이 산다. 이익을 좋아하고 인색하면서도, 수레와 집은 서로 사치를 다툰다. 백련봉 서쪽부터 필운대까지가 북부이다. 대체로 가난하고 얻어먹는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의협스러운 무리들이 자주 있어, 의기로 사귀어 노닐고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였다. 흔쾌히 허락하고 남의 어려움을 잘 도왔으며 근심을 함께 하였다. 시인 문장가들이 계절을 따라 노닐며 자연속의 즐거움을 맘껏 누렸다. 마음이 내키면 시를 읊었는데, 많이 짓는 것을 자랑하고 곱게 짓기를 다투었다. 풍속이 그러했던 것이다.” 북촌은 고관들이 주로 사는 가회동, 안국동, 재동 일대를 가리키지만 북부는 중인과 경아전들이 주로 살던 인왕산과 백악이 이어진 산자락을 가리킨다. ●‘물좋은´ 내수사 경아전 자리 스스로 물러나 임준원은 대대로 서울 북부에 살았던 경아전이다. 신선 같은 모습에다 말솜씨까지 좋았는데, 젊었을 때 최기남(崔奇男·1586∼1669)의 서당에서 시를 배웠다. 최기남은 집이 너무 가난해 선조의 셋째 사위인 신익성(申翊聖)의 궁노(宮奴)가 되었다가 한문을 배워 서당 훈장으로 이름이 났던 위항시인이다. 임준원 역시 시를 잘 짓는다고 칭찬들었다. 그러나 집이 워낙 가난한데다 늙은 어버이를 모셔야 했기 때문에, 실용성 없는 한시만 계속 배울 수는 없었다. 정내교는 그가 큰 돈을 번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임준원은) 드디어 뜻을 굽히고 내수사(內需司)의 서리가 되었다. 임용되어 부(富)를 일으키니, 재산이 수천냥이나 모아졌다. 그러자 ‘내겐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탄식하더니, 곧장 아전 일을 내어놓고 집에서 지냈다.” 내수사(內需司)는 조선시대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이다. 왕실에서 사용하는 쌀·베·잡화 및 노비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개국 초에 함흥지역을 중심으로 한 태조 이성계 집안의 사유재산과 고려왕실에서 물려받은 왕실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했으므로, 본궁(本宮)이라 불리기도 했던 관청이다. 본래 면세특권을 부여받은 내수사전(內需司田)과 각 지방에 흩어져 일하는 수많은 노비·염전 등을 보유한데다, 왕실의 권력을 이용해 재산을 계속 확대했다. 그 폐단이 커지자 “군주는 사재(私財)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 명분론을 내세워 내수사를 없애자고 건의했지만, 자신의 사유재산을 내어놓으려는 왕은 하나도 없었다. 신익성의 아버지 신흠(申欽)은 영의정까지 지내 국가재정에 훤했는데,‘휘언(彙言)’이라는 글에서 “내수사는 수입이 국가의 일반재정과 맞먹었다. 그곳의 형세가 안전해 양민(良民)과 사천(私賤)이 많이 도망해 들어갔으며,(그 재정은 內需가 아니라) 태반이 내수(內竪)의 개인적 용도로 허비되었다.”고 증언하였다. 그 방대한 재정을 왕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수사에 관련된 개인들이 사취한다는 뜻이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내수사 노비들이 나라 안에 돌아다니며 거둬들인 돈과 베를 내시들이 주관한다. 조정에서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막연히 알지 못해, 임금의 사치심만 날로 더하게 한다.”고 폐단을 논했다. 내수사는 왕실 재산을 관리했기 때문에, 그곳의 관원 10명은 모두 왕의 심복인 내시였다. 그러다보니 서리 8명이 방대한 재정을 자기 집안의 살림처럼 운용하며 많은 재물을 빼어돌린 것이다. 내수사에 관련된 죄인을 잡아가두는 감옥인 내사옥(內司獄)이 따로 있을 정도로 비리가 많았는데, 그나마 1711년에 폐지되었다. 서리도 전문직이기 때문에 한문을 잘 알아야 했고, 선발시험도 보았다. ‘광해군일기’ 즉위년(1608) 9월3일 기록에 “전에는 서리를 임명하기 위해 고강(考講)·제술(製述)·서산(書算)을 시험한 뒤에 후보자로 참여시켰는데, 지금은 해이해졌다.”는 구절이 있다. 언제부턴가 읽기, 짓기, 쓰기, 셈하기 등을 시험 보아 적임자를 뽑지 않고, 청탁에 의해 뽑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경아전 이윤선(李潤善·1826∼1869)이 26년 동안 호조에서 근무하며 기록한 ‘공사기고(公私記攷)’를 분석하여 ‘조선후기 경아전 서리 연구’라는 논문을 쓴 원재영 선생은 호조 아전들이 임용되기 위해서 보통 1500냥 내지 1900냥을 주었다고 했다.‘탁지지(度支志)’에 기록된 서리의 월급은 무명 3필, 쌀 1석5두, 보리 1두5되에 불과했다. 이윤선은 자신의 서리직을 정석찬에게 거금 1800냥에 팔았다가 6개월 뒤에 다시 1900냥을 주고 복직하였다.1847년부터 1855년까지 9년 동안에만도 부동산 투자에 1000냥을 들였으며, 아들에게 공부방을 마련해주고 독선생을 모셨다.11살 난 아들 용석(容錫)이 칠언절구의 한시를 지었다고 대견해 한 것을 보면, 아들에게는 사대부 못지않은 교양까지 갖춰주었음을 알 수 있다. 호조 아전들은 다양한 명목의 화폐나 현물을 수시로 받았다고 했으니, 고관 못지 않은 요직이었다. 내수사가 있던 마을을 내수삿골이라 불렀는데, 인왕산 밑자락인 지금의 종로구 내수동이다. 종합청사 뒷길이 내자동길인데, 내수동에서 내자동을 거쳐 사직단으로 이어진다. 내자시(內資寺) 역시 궁궐에서 사용하는 식품과 옷감을 조달하던 관청이어서 경복궁 앞에 있었다. 관원들은 승진하면 다른 관청으로 전근하지만 아전들은 평생 한 관청에 있었으며, 대를 이어서 그 일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경복궁 앞의 관청에 소속된 아전들은 출퇴근하기 좋은 인왕산에 많이 살았다. ●가난해 경조사 못 치르는 이들도 지원 임준원이 내수사에서 어떻게 수천금을 벌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물러났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에게 서리직을 팔았다는 기록도 없고, 아들에게 물려주었다는 기록도 없다. 그는 남부의 중인들 같이 이익을 좋아하거나 사치하지 않았으며, 인색하지도 않았다. 정내교는 임준원이 내수사에서 큰 돈을 벌어들인 방법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썼는지는 설명하였다. “곧장 아전 일을 내어놓고는 집에서 지냈다. 문학과 역사책을 읽으며 스스로 즐겼다. 날마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유찬홍·홍세태·최대립·최승태·김충렬·김부현 같은 시인들이 있었다.” 임준원은 좋은 날이나 경치가 아름다워질 때마다 여러 사람을 불러모았다. 시를 짓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며, 매우 즐겁게 놀다가 흩어졌다. 정내교가 “서울에서 재주가 좀 있다고 이름난 사람들이 그 모임에 끼이지 못하게 되면 부끄럽게 여겼다.”고 표현할 정도로 이름난 위항시인들이 모여들었다. 임준원의 집에 자주 모였던 시인들은 대부분 궁노(宮奴) 최기남의 제자들이다. 임준원은 물론 형조 아전 최승태는 그의 아들이고, 김부현은 그의 외손자이다. 홍세태는 역관, 김충렬은 홍문관 서리, 유찬홍은 역관이었다. 문학사에서는 이들의 모임을 낙사(洛社)라고 불렀다. 시인들뿐만 아니라, 친척이나 친구 가운데 가난해서 혼인이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를 찾아왔다. 평소에도 그의 집을 드나들며 어버이처럼 모시는 자가 몇십명이나 되었다. 그가 육조거리 앞을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가 관리에게 구박받고 있었다. 불량배 하나가 그 뒤를 따라가며 욕을 해대는데, 그 여자는 슬프게 울기만 했다. 그가 그 까닭을 묻고는 “그까짓 얼마 안되는 빚 때문에 여자를 이토록 욕보일 수 있단 말이냐?” 하고 불량배를 꾸짖었다. 그 자리에서 빚을 갚아 주고는, 차용증을 찢어버린 채 가버렸다. 여자가 쫓아가면서 이름과 주소를 물었지만, 그는 끝내 가르쳐 주지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부모가 죽은 것 같이 곡을 했다. 더 이상 도와줄 사람이 없게 되어 “나는 어떻게 살라고 떠나셨소?” 하고 우는 자들도 많았다. 한 늙은 과부가 와서 상복을 만들어 놓고 갔는데, 육조거리에서 구해 준 그 여자였다. 정내교뿐만 아니라 성해응도 임준원의 전기를 짓고, 홍문관 대제학 남유용도 지었다. 남유용은 정내교의 전기를 읽어보고 ‘요즘 보기 드문 호인(好人)’이라면서 전기를 지었다. 첫 줄에서 ‘호(豪)’라고 표현했는데, 부호(富豪)라는 뜻도 되지만 호걸(豪傑)이라는 뜻도 된다. 재산을 아끼지 않고 이웃을 도왔던 그의 이름이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남유용의 ‘임준원전’을 통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6년만에 유괴된 딸 찾은 모정(母情)

    6년만에 유괴된 딸 찾은 모정(母情)

    5살 때 유괴당한 외동딸을 찾기위해 전국에 「펜·팰」을 맺어 호소하기 6년만에 드디어 딸을 찾았다. 이 집념 강한 모정(母情)의 주인공은 그동안 딸을 찾으려다 지쳐 「송장 2번」의 인생을 살았다는 이야기. 춘천시 소양로 2가 24 박옥자(朴玉子·45)씨 집에 세든 박미영여인(35) 집에는 6년전에 행방불명됐던 외동딸 오진숙양(11)을 맞으면서 온통 잔치기분에 들떠 있었다. 행상을 다니던 박여인이 딸 진숙양을 잃어버린 것은 65년 한겨울. 행상을 나갔다가 돌아오니 청천 벽력이었다. <당신 딸 진숙이를 데려간다. 그렇게 알고 찾지 마시오!> 세든 방 문틈에 끼워놓은 쪽지 한 장뿐이었다. 박여인은 부산 모여고 2학년에 재학하던 54년 그때 육군에 복무하던 오유식(吳有植)상사와 사귀다가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결혼했었다. 오씨가 일선지구로 전속을 하자 남편따라 일선지구를 전전, 그동안 상철(相喆)군(13·춘천국교5년)과 진숙(珍淑)양의 남매를 낳고 가난하지만 그런대로 행복했었다. 그러나 군대생활로는 가족들의 장래가 어둡다고 오씨는 제대, 사업을 한다고 이리뛰고 저리뛰다가 실의에 빠져있던중 64년 고혈압으로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 하루 아침에 과부가 된 박여인 앞에 남은 유산이라고는 아비없는 어린 남매와 가난뿐. 이 때부터 세식구의 입에 풀칠을 하기위해 삯바느질을 하다가 행상을 시작했다. 피륙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간성 대진에서부터 속초 울진 등 강원도 일대는 안가본 곳 없이 다 다녔다. 이처럼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며칠만이고 솜같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어린 남매가 「버스」정류장에 나와 엄마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대견해 고생도 몰랐었다. 그러다가 지난 65년1월, 강바람이 살을 에는 듯이 휘몰아치던 날 행상에서 돌아와보니 진숙양 대신 문틈에는 당신 딸을 데려간다는 쪽지한장. 그때부터 딸을 찾기 위해 신문 잡지등 「펜·팰」난을 뒤적여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맺어진 벗이 전국 곳곳에 60여명. 딸을 찾기 위한 애절한 호소는 전국 곳곳에서 메아리져 되돌아 왔다. 당신 딸과 처지가 비슷한 어린이가 있으니 한번 와서 확인해보라는 편지가 몰려들었다. 이번에는 행상 보따리 대신 편지에 적힌 주소쪽지 하나를 들고 전국을 누볐다. 그러나 몇백리씩 고생해가며 찾아가봐도 번번이 허탕, 엉뚱한 사연을 안은 인연 없는 어린아이들 뿐이었다. 이렇게 딸을 찾아 한달에 2~3회 「출장」을 나가다보니 가난위에 빚더미만 쌓이게 됐다. 나중에는 「양키」물건을 암매하면 벼락부자가 된다는 「브로커」를 따라 물건을 사러갔던 68년12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단속반에 걸려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서툰 도둑질이 첫날밤에 들킨다더니 「양키」물건 한번 만져보고 징역살이를 하게 되자 홧병에 영양실조가 겹쳐 다죽게 됐다. 딸이 징역살이를 한다는소식에 부산에 살던 친정어머니 이숙화노파(68)가 달려와 고아아닌 고아가 된 외손자 상철군을 맡아 지금 세든 집에 식모살이로 들어가 월급 3천원씩 받아 뒤를 거뒀다. 박여인이 교도소에 들어간 4개월째 되던 68년 4월초, 박여인이 죽었으니 시체를 인수해가라는 연락이 왔다. 그 1주일 뒤 또다시 두 번째로 시체를 인수해 가라고 재차 연락이 왔다. 그랬는데 죽었다던 박여인이 살아온데는 한국인 수녀와 미국인 수녀의 사랑의 「릴레이」덕택이었다. 박여인이 죽었다던 지난 4월 10일, 매주 교도소를 방문하던 성심여대 수녀원 한순희수녀(현 미국「샌디에고」대학에서 수학중)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시체에 마지막 「미사」를 드리다가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 치료를 맡겠다고 나섰다. 한수녀는 죽더라도 절차에 의해 처리하겠다고 약속, 「골롬반」병원으로 옮겨 온 의료진을 동원, 산소호흡을 시켜 겨우 20시간만에 회생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달동안 가료, 지난 5월8일 어머니 날을 기해 퇴원시켰던 것이다. 병원에서 퇴원한 박여인은 또다시 딸을 찾기 위해 「펜·팰」을 열심히 하는 한편 법원의 도움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춘천가내공업「센터」에 일자리까지 얻었다. 이같은 기구한 어머니에게 지난 5월초순 전남 영광에 있는 「펜」벗 김선미씨(32)로부터 자기 시댁이 있는 영광군 군남면 옥슬리에 진숙이 같은 아이가 있으니 한번 와보라는 연락이 왔다. 연락을 받은 박여인은 그동안 많이 속기도 했지만 직장에서 5천원을 가불해서 영광으로 갔다. 가보니 이 마을 이용석씨(43)의 고명딸로 입적, 그 집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는 영희양이 바로 6년전에 잃었던 자기딸이 아닌가. 다짜고짜 붙들고 울어버렸다. 어리둥절한 진숙양은 진짜 어머니의 돌연한 출연에 『엄마 저여자가 누구야』하면서 가짜 엄마품으로 달아나버렸다. 이씨는 어떤 방법으로 진숙이를 데려왔는지 경로를 밝히지 않았다. 단지 그같이 어수룩한 시골 사람이 진숙이를 유괴했을 것 같지는 않고 누가 유괴해다가 팔아버렸을 것 같다는 얘기. <춘천(春川)=김선중(金瑄中)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7월 2일호 제3권 27호 통권 제 92호]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 질문1‘엿 먹어라.’가 왜 욕이 됐을까.1964년 12월 전기 중학입시 공동출제 선다형 문제 중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정답으로 채점된 것은 ‘디아스타제’. 하지만 보기 중에 ‘무즙’이 있었는데 무즙을 정답으로 표기했다가 낙방한 학생의 어머니들이 법원에 제소하는 등 집단항의에 나섰다. 급기야 직접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관련기관 등에 찾아가 “엿 먹어라! 무즙으로 만든 이 엿 먹어봐라!”하며 엿을 들이댔다. 결국 당시 한상봉 문교부차관과 김규원 서울시교육감이 사표를 냈고 무즙을 답으로 썼다가 낙방한 38명은 정원에 관계없이 경기중학에 합격했다. # 질문2 엿장수는 1분에 가위질을 몇번이나 할까.‘초딩’시절, 시골동네에 ‘엿장수’가 찾아와 가위질을 하며 “엿 바꿔먹으라.”고 소리칠 때 여러번 들었던 추억의 문제다. 초롱초롱 눈알을 굴려가며 애써 답을 생각하다가 “야, 그거야 엿장수 맘대로지.”라는 답을 듣고 허탈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릴 적 가장 반가웠던 손님은 뭐니뭐니 해도 ‘엿장수’였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절겅대는 가위소리가 들려오면 약속이나 한듯이 다들 쪼르르 달려가 엿장수의 뒤를 따랐던 그 때 그 시절. 오는 날짜도, 가위질 하는 것도 ‘엿장수 맘대로’였지만 늘 반갑기 그지 없었다. 다 떨어진 고무신 한쪽, 망가진 양은 냄비 조각, 심지어는 누나의 긴 머리카락까지 내밀면, 엿장수는 끌과 가위로 탁탁 잘라주며 “옜다, 엿먹어라.”하며 던져주곤 했다. 가끔 “쟤는 왜 많이 주고 저는 쬐금만 주나요?”라고 항의하면 “야, 엿장수 맘이여.” 하며 꿀밤을 맞기도 했다. 윤팔도(81) 할아버지. 어쩌면 어렸을 적 동네에서 한번쯤 만났을 법한 추억의 할아버지다. 지난 66년의 세월동안 ‘엿장수’라는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전국 팔도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다. 원래 이름이 석준이었지만 ‘팔도(八道)´로 바꾼 것만 봐도 그의 인생역정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한때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엿장수들이 모인 엿가위질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국가대표로 인정받기도 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기에 최장수 ‘엿장수’이자 살아 있는 ‘엿가위 예술의 달인’으로 꼽힌다. 더욱 눈길 끄는 대목은 그의 막내아들이 5년 전에 아버지와 합류했고 최근에는 손자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3대째 ‘엿장수 집안’이 된 셈이다. 설날이 가까워오면 자연스럽게 정겨운 시골추억이 생각나기 마련, 그래서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일산의 한 백화점 앞에서 엿장사로 가업을 잇는 이들 3부자를 만났다. 청주에 살고 있는 이들은 때마침 백화점측의 초청으로 설 대목 행사에 참석해 길거리에서 흥겨운 엿판을 벌이고 있었다. “일락 서산에 해 떨어지고 이내 목판에는 엿 떨어졌구나. 청춘 과부 잠못 잘 적에 먹는 엿이요, 큰애기 허벅지맹키로 희건 엿이 왔어요. 부산 동래 사탕엿, 울릉도에 호박엿, 전라도 봉산의 생강엿, 강원도 금강산 생청엿….” 윤 할아버지의 구성진 엿타령이 길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들과 손자는 엿가위로 어깨를 들썩들썩 하며 척척 장단 맞추는 모습에 절로 흥이 돋아난다. 잠시 짬을 낸 윤 할아버지와 마주 앉았다.81세의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게 보였다. 비결을 물었더니 “즐겁게 사는 거여.”라며 그저 호탕하게 웃을 뿐이다. 지나온 인생살이가 간단치 않을터.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8세 때 남사당패에 들어갔다. 왜소한 체구 ㅜ때문에 주로 3층 꼭대기에 올라가는 역할을 맡았다. 잘못되는 날엔 매맞기 일쑤였다.3년 뒤에는 창극단에 들어가 노래를 배웠다. 하지만 배고픔은 여전했다. 14세되던 겨울, 그는 호구지책으로 엿장수로 나섰다. 동네 어른을 통해 충남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경씨가 1000명 산다는 마을)에 위치한 엿방(엿공장)에 취직했다. 이때부터 하루 밥 세끼를 먹게 되면서 엿장수 생활에 만족과 즐거움을 느꼈다. “엿방에 갔더니 장작불 지펴놨지, 엿물로 밥지어 먹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비록 머슴 신세나 다름없었지만 남사당 가락으로 가위질 하며 용돈도 벌었어.” 19세되면서 세상 보는 안목이 넓어지자 홀로 독립한다. 음악을 알고 재주가 남달라 자신감이 더욱 생겼던 것. 우선 몽둥이만 한 엿을 만들었다. 이어 리어카를 구입하고 엿가위 두 개를 장만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어린 아이들은 “몽둥이 엿장수가 왔다.”며 떼지어 몰려들었다. 윤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날이면 “자, 엿먹어라.” 하며 길다란 몽둥이 엿을 몇개씩 집어주기도 했다. 서른 한살 때 군복무를 마친 어느날, 충남 광천의 시골에서 엿판을 벌일 때였다. 창극 노래, 트로트 등으로 이어지는 흥겨운 놀이마당이 한바탕 끝나자 어여쁜 처녀(김종숙·70·지금의 부인)가 다가와 뒤따라가겠단다. 가만 보니 부잣집 딸이었다. 고생 바가지도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처녀의 진심을 알고는 친척이 사는 논산으로 함께 야반도주했다. 결국 연산면 살포리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엿장수한테 누가 딸을 주겠나 싶어 결혼 생각을 안 했지. 허긴 엿가위 장단에 처녀들이 담 넘어 올 정도로 꽤나 인기를 모았어. 생각보단 결혼을 일찍했지만 부인은 늘 독수공방이었지. 리어카 끌고 집을 나가면 1년만에 돌아왔으니까 말야. 그러면서 하나 둘 낳은 아이가 나중에 5남매가 되더군.” 1969년 어느날이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큰 엿공장을 운영하는 한 부자의 주최로 서울 신당동에서 전국 엿가위질 경연대회가 벌어졌다. 호남의 송산갑, 부산의 김항구, 경기·인천의 백대가리, 서울의 윤팔도 등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모였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쌍가위’를 들고 출전한 윤팔도가 최우수상을 차지, 전국 최고수임을 입증했고 부상으로 쌀 20가마를 받았다. 1985년 12월이었다.KBS 전국 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을 받고 방송국 정문을 나서는데 “오라버니 타세요.” 하면서 누군가 승용차 문을 연다. 얼굴을 보니 코미디언 배연정씨였다. 그 길로 간 곳이 서울 돈암동의 유흥업소. 곧바로 무대 위에 올라 ‘물레방아 도는 내력’‘고향무정’‘돌아가는 삼각지’등 세 곡을 불렀다. 그랬더니 5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며칠 뒤에는 MBC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에 초대받았고 이 방송을 본 신소걸씨한테 연락이 와 2년동안 밤무대에 출연했다. 낮에는 엿장수, 밤에는 가수로 활동했던 것이다.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이북을 제외하곤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지. 엿가락 길이로 따지면 지구 수십번은 돌았을 거야. 그런데 요새는 엿가위 만드는 곳도 없어지고 뭔가 아쉬워.” 지난 2003년이었다. 윤 할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막내 아들 일권(36)씨가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쓰고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일권씨는 “60여년동안 일해온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만약 돌아가시면 엿불림(구전 판소리)도 끊길 것 같았다.”고 의미 부여를 한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일권씨는 2년 전 아버지와 함께 ‘엿불림 음반’(대표곡 ‘엿가위 인생´)을 냈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가업을 이은 아들은 초보답지 않게 2005년에는 2억원, 작년에는 3억원을 벌어들여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해마다 명절 때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엿판시합이 벌어진다는 일권씨는 “도저히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아울러 “이제는 초콜릿 대신 우리의 전통 엿을 사랑해야 한다.”면서 폐백이나 입학·졸업시즌에 애용되는 엿을 건강식 웰빙 스타일로 바꾸고 있다고 귀띔했다. “엿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인정을 나눠주는 메신저 역할을 합니다. 아버지가 해온 66년과 제가 합류해 100년을 꼭 채우겠습니다. 또 제 아들이 100년부터 다시 어어가겠죠.” 손자 경식(13)군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엿가위를 잡아 엿불림을 구성지게 부른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경식군은 휴일과 방학을 이용, 할아버지를 돕겠다며 활짝 웃는다. 인물 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6년 충남 논산 출생 ▲34년 남사당 입문 ▲40년 엿장수 생활 ▲69년 전국 엿장수 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85년 KBS전국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 수상 ▲2002년 윤팔도 전통엿집 개업(충북 청주시) ▲현재 사단법인 전통식품연구회 고문
  • 수질오염 총량제 4대 강 밖 확대

    수질오염총량제가 4대강 외의 하천과 연안 수계로 확대된다. 또 오염총량 관리 대상 물질에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뿐만 아니라 총인(T-P)도 포함될 예정이다. 정부는 6일 국무회의에서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확정,9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은 정부가 4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섬진강) 외의 수계에 대해서도 목표 수질 이하로 떨어질 경우 오염 부하량을 나누어 부담하게 하거나 배출량을 지정하고, 부하량을 초과하면 총량초과부과금을 징수하거나 개선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4대강 수변구역 이외에서도 수질·수생태계 보전에 필요한 수변습지를 사들이고, 콘크리트 제방으로 망가진 하천을 자연하천으로 복원할 수 있는 근거도 담고 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당정 ‘반값아파트 시기’ 이견

    열린우리당이 추진 중인 ‘반값아파트법’(공공주택 공급촉진 특별법)이 정부와의 이견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당정간 시각차는 기본적으로 정치와 경제논리의 차이라는 점에서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가 “일부 대책은 실효성이 낮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열린우리당 부동산대책특위와 정부는 15일 1차 협의에 이어 다음주 2차협의를 갖는 등 연말을 시한으로 계속 합의점을 도출해 나갈 계획이지만 특위의 원안이 유지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날 당정협의의 쟁점은 분양원가 공개와 환매조건부·토지임대부 분양, 재원조달 방법 등으로 모아졌다. 정부는 이날 협의에서 분양가 상한제라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도입키로 한 마당에 굳이 분양원가 공개를 민간부문까지 확대해 민간 건설을 위축시킬 필요가 있느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특위 위원인 박영선 의원은 “분양가 상한제 도입에는 기본적으로 이견이 없었지만, 민간택지 25.7평 이상의 분양원가를 공개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는 의견이 엇갈렸다.”면서 “열린우리당은 국민의 신뢰가 걸린 문제이니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환매조건부와 토지임대부 분양에도 당정은 다른 시각을 보였다. 정부는 이날 재정문제를 들어 일단 ‘내년 시범 실시’방안을 내놓았다. 열린우리당이 추진 중인 ‘종부세의 주거복지목적세 전환’이 “종부세는 지방자치단체의 세수부족을 메우는 데 쓴다.”는 정부와 지자체간 약속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었다.재경부는 “공영 개발 확대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개발지구 안에서 정부가 재량껏 일정 부분의 민간 분양을 허용해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필요하다. 주공의 업무 과부하에 따른 부작용도 생겨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특위는 이날 회의에서 “시범 실시하고 흐지부지될 수 있으니 아예 도입 시기를 못박자.”고 주장했다. 특위 위원인 이인영 의원은 “환매조건부나 토지임대부 분양은 실제 시장의 수요를 봐가며 판단하자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종부세를 목적세로 바꾸면 지방재정에 문제가 생긴다는 정부측 설명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박찬구 이영표기자 ckpark@seoul.co.kr
  • 국가예산편성 패러다임 바뀐다

    정부가 국가 예산을 집행하는 패러다임을 전면 개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전국의 주거·교육·의료·복지·문화·환경 등 6대 기초 인프라에 대한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이들 기초 인프라를 전국 단위로 전수 조사하는 일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전국단위 첫 전수조사 착수조사결과는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돼 기초인프라의 지역간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데 활용될 전망이다. 예컨대 전남의 주거 인프라가 다른 지역보다 떨어지면 관련 예산을 우선 배정한다. 경기의 문화 인프라가 뛰어나면 관련 예산을 다른 지역에 넘겨주는 대신 인프라가 부족한 분야 예산을 돌려받는 ‘빅딜’도 가능하다.6대 기초인프라에 대한 지역별 정보가 정부 예산의 ‘가이드라인’으로 적용되면 예산 편성의 패러다임 자체가 전환될 것으로 기대된다.●2008년부터 지역별 과부족 반영 행정자치부 고위관계자는 13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6대 기초인프라 공급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하고 있다.”면서 “올해 말까지 조사결과를 DB로 만든 뒤 오는 2008년부터 지역별 과부족 상태에 따라 정부 예산을 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실태조사는 230개 기초자치단체에서 61개 측정항목별로 현장 방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교육인프라의 경우 ▲유치원 취원율 ▲초중고교 학급당 학생 수 ▲학생 100명당 도서관 좌석 수 ▲학교당 시설여건개선 투자액 등 11개 항목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주거인프라는 ▲주택보급률 ▲주택 평균면적 ▲공공임대주택 비율 등 9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DB 구축이 완성될 경우 기초인프라에 대한 전국적인 분포현황을 담은 ‘현대판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부처가 더많은 예산을 배정받기 위한 ‘몸집불리기’에만 치중해 자원의 효율적 배분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았다.”면서 “지역별 기초인프라를 비교·분석해 예산 배분의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자는 것이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광역시와 중소도시, 농산어촌 모두에 획일적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는 만큼 전국을 몇 개의 유형으로 구분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라면서 “정부의 관련 예산은 올해 기준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5조 9067억원을 비롯,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DB와 기초인프라 공급기준이 마련되는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여론수렴에 나선다. 이어 4월쯤 ‘지역생활여건 개선 종합계획’을 수립한 뒤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쳐 2008년부터 적용할 계획이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영광 불갑산~모악산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영광 불갑산~모악산

    영광군 불갑면과 함평군 해보면 경계에 곧게 누운 불갑산(516m)∼모악산(347.8m)은 ‘사회과부도’식 산맥 개념에 의하면 ‘추풍령 부근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나와 전라북도 남동부의 무주·진안을 거쳐 전라남도 함평만까지 뻗었다.’는, 우리나라에서 평균 높이가 가장 낮은 노령산맥에 속한다. 최근에는 호남의 심장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영산강을 주축으로 내장산에서부터 영광∼함평까지 이어진 이 산줄기를 ‘영산기맥’이라 하여 별도로 종주산행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불갑산과 모악산은 서해의 가장 끝쪽에 엎드렸지만 그 핏줄을 가만히 짚어보면 결국 영산기맥을 타고 호남정맥에 닿아, 호남정맥에서 백두대간까지 이어지니, 우리나라 내륙 산줄기 중 백두산의 자식이 아닌 산은 극히 드물다 하겠다. 대륙성기후로 한랭건조하고 겨울이면 폭설로 몸살을 앓는 전남 영광. 법성포 구수한 굴비 냄새에 밀려 걸음은 자꾸 산을 떠나 바다로, 혹은 바다를 등에 지고 산으로만 향한다. 불갑산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의 은신처가 될 만큼 작은 체구에 비해 수림이 울창한 산이기도 하다.1949년 여름, 트럭 2대 병력이 불갑산 빨치산 토벌작전을 끝내고 귀대 길에 함평 양림마을 주민 31명을 무고하게 학살, 위령비를 건립했을 정도. 반면 불갑사(www.bulgapsa.org) 옆 동백골은 천연기념물 제112호 참식나무 자생지이자 북방한계선이 된다. 탁 트인 정상은 ‘연꽃의 열매를 닮았다’ 해서 연실봉이라 불리는데, 그 위에 서면 영광과 함평 일대, 가야 할 모악산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펼쳐진다. 모악산은 불갑산에서 약 2.5㎞ 떨어진 봉우리로, 연실봉에 비하면 전망도 높이도 보잘 것 없지만 그것은 차라리 자식에게 모든 걸 내어주고 흡족하게 돌아서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후덕하다. 영광의 불갑산이 불갑사 중심으로 다양한 등산로를 선보인다면, 서쪽으로 다소 물러선 모악산은 함평군 용천사와 용문사를 통해 오르는 길이 발달돼 있다. 두 산을 연결하는 산행은 더디 걸어도 5시간쯤 걸리며, 각 산을 하나씩 따로 떼어 하는 산행은 3시간을 넘지 않는다. 불갑사에서 출발해 정상인 연실봉으로 오르는 대중적인 코스는 6개 정도인데, 동백골과 해불암(불갑사 5대 암자 중 하나로 주변 경치가 뛰어나 예부터 호남지역 참선 도량의 4대 성지로 꼽히던 곳)을 거쳐 정상을 오가는 코스가 약 4.5㎞로 1시간30분 걸리고, 수도암에서 도솔봉을 통해 불갑사로 내려서는 코스는 3.5㎞이며 역시 1시간30분 걸린다. 불갑사에서 동백골∼구수재를 찍고 연실봉∼해불암∼불갑사로 내려서는 길은 대략 2시간 잡으면 넉넉하고,4.2㎞의 불갑사∼구수재∼도솔봉∼수도암은 3시간 잡는 것이 여유 있다. 거리를 조금 늘려 불갑사∼구수재∼연실봉∼노루목을 거쳐 불갑사로 돌아오는 길이 6㎞로 3시간 걸리고, 수도암에서 연실봉과 덫고개(덕고개)를 지나 불갑사로 하산하는 길은 6.4㎞로 3시간 걸린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고려한다면 이보다 다소 넉넉히 잡아야 하지만 어디를 거치든 불갑사 원점 회귀 산행은 부담이 적다. # 여행 정보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에서 23번 국도를 타고 영광읍내를 거쳐 함평 방면으로 8㎞ 진행하면 불갑면에 닿는다. 호남고속도로는 정읍IC로 들어선 다음 고창을 거쳐 영광으로 진입할 수 있고, 광주·목포·전주를 통해서도 영광 이동이 가능하다. 서울 기준 4시간이 조금 덜 걸린다. 대중교통의 경우 출발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겠지만 광주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영광읍내에는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불갑사 경내에선 보물 제830호로 지정된 대웅전 소슬 빗살문의 섬세한 조각과 색감이 제일 도드라진다. 그 외 사천왕상이 지방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돼 있고,1644년 중건된 만세루는 문화재자료 제166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글 사진 황소영(월간 MOUNTAIN 기자)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말레이곰 말순(♀) ‘황혼의 로맨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말레이곰 말순(♀) ‘황혼의 로맨스’

    단풍도 다 진 앙상한 나뭇가지가 겨울을 알리는 동물원 곰사에는 겨울도 녹일 만큼 뜨거운 커플이 있다. 다른 동물들의 질투를 한몸에 받고 있는 이들은 느지막이 한참 연하의 새신랑을 얻은 말레이곰 말순이(♀) 커플이다. 말순이의 나이는 올해로 스물일곱. 말레이곰의 평균수명이 서른 살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사람으로 치면 이미 60∼70대에 접어든 할머니인 셈이다. 지금까지 말순이의 삶은 외롭기만 했다. 결혼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아 신랑이 질병으로 폐사했기 때문이다. 동물원에 말레이곰은 말순이 한 마리밖에 없는 상황. 청상과부가 된 말순이는 20여년을 수절하며 혼자 지내왔다. 말레이곰은 1부1처제를 고수하는 몇 안 되는 동물이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불쌍한 말순이를 재혼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동물원측은 곧 신랑감 물색에 나섰고, 지난 9월 말레이시아에서 건강한 수컷을 들여왔다. 수컷의 나이는 세 살로 말순이보다 무려 스물네 살이나 어린 연하남이었다. 말순이는 신랑감과 한 달 동안 옆우리에서 얼굴익히기를 한 뒤 지난 10월1일 합사에 들어갔다. 사육사들은 원조교제나 다름없는 나이 차이를 걱정했지만, 말순이 커플은 그것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금실 좋은 모습을 보였다. 서로 마주앉아 볼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아직 한국의 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신랑을 말순이가 보듬어 주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동물원에서는 지금 말순이 커플을 위한 월동준비가 한창이다. 난방공사가 끝나면 따뜻한 신방이 마련된다. 새신랑을 얻은 말순이가 내친김에 내년쯤에는 늦둥이까지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총각선생 신세망친 미인계(美人計)

    총각선생 신세망친 미인계(美人計)

    남편과 짜고 바람기와 미모, 춤솜씨를 재산으로 정조를 팔아 교사·공무원 등의 등을 쳐온 희대의 사기꾼 부부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남편은 돈을 위해 아내의 장조를 내놓았고, 아내는 남편의 묵인 아래 마음껏 육욕을 채운 치사한 부부의 행각은. 강변3로 정(鄭)인숙양 피살사건으로 「뉴스」의 촉각이 온통 「세브란스」 병원으로 쏠렸던 3월 19일 하오 서울 동부경찰서 형사과 안(安)모형사는 앞에 앉아 있는 30대 여자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달래기를 7시간. 미모의, 그러나 유들유들한 이 여인은 마치 외상값이라도 받으러 온 술집 「마담」만큼이나 태연하게 앉아 「윙크」와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이 여인이 바로 남편과 공모, 연하의 고아 출신 국민학교 교사 윤(尹)모씨(28)의 일생을 송두리째 짓밟은 이경자(李慶子) 여인(34). 李여인과 尹씨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 28일. 직장에서 배운 어설픈 춤솜씨로 찾은 것이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있는 한강 「카바레」. 난생 처음 가본 「카바레」,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 멍해있던 尹씨는 화사한 30대 여인의 「프로포즈」를 받고 들뜬 기분에 「홀」안을 몇 바퀴 돌았다. 그러자 李여인은 홍조된 얼굴로 수줍은듯 사랑을 고백했다. 『사랑은 첫눈에 느껴야 한다』- 정말 선생님 같은 남성미 1백%의 남자는 처음 봤다면서 결혼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까지 곁들였다. 『나이도 많은 과부가 염치 없는 부탁이죠』 하는 달콤한 말에 尹씨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도 부모도 없는 천애고아가 고학으로 국민학교 교사가 된 尹씨는 그처럼 따뜻한 인정을 맛본 것도 처음이었다. 만난지 한달만인 12월 28일 이들 부부 아닌 부부는 서울 영등포에 尹씨가 모아둔 돈중에서 10만원을 꺼내 전셋방을 얻고 살림을 시작했다. 30대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여체와 계획적인 교태에 尹씨는 완전히 녹초가 됐다. 둘이 춤추러 가는 일 이외에는 외출도 않고 방학동안을 꼬박 그들의 밀실에서 보냈다는 尹씨. 『그 여자가 필요 이상의 돈을 요구했지만 아까운 줄도 몰랐읍니다. 첫 남편과 헤어진 뒤 부유한 친정 덕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아내의 불편을 될 수 있는한 덜어주고 싶었어요. 보시다시피 나한테 반할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과부가 느끼는 어쩔 수 없는 공허를 자기한테 의지하는 것 같아 동정한 것이 사랑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여인은 친정이 부자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가끔 친정이라는곳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모두 거짓이었다. 李여인과 결혼할 계획이었던 尹씨는 TV, 전축, 선풍기를 들여 놓았다. 이들의 꿈같은 행복은 개학과 함께 일장춘몽. 외출이라고는 않던 李여인이 개학날인 2월 1일 친정에 간다면서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2일에는 출근한 尹씨에게 청전벽력 같은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은 본 남편이 있는데 둘 사이를 알고 찾아왔으니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4일에는 학교로 찾아왔다. 남편이 가재도구를 모두 가져가겠다니 『두사람의 행복』을 위해 잠시 줬다가 조용해지면 찾아오자는 것이었다. 李여인을 알토란 같이 믿었던 尹씨는 사흘 뒤인 7일 살림집으로 찾아가 보고 깜짝 놀랐다. 전셋돈 중 5만원과 TV, 일제 석유난로, 은수저 3벌, 식기, 선풍기 등 가재를 모두 가지고 도망해버린 것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운 尹씨에게 제2의 시련이 닥쳤다. 5일 뒤인 12일 李여인의 남편인 모장(毛章)씨(39)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다방으로 나갔다. 모(毛)씨는 尹씨가 살림집에 놔둔 책 한권을 가지고 나와 『이것이 네 책이지, 내 처하고 간통했다는 물증이다. 네 목을 자르겠으니 저녁6시에 종로 S다방으로 나오라』 고 사뭇 위협했다. 자리에서 毛씨는 『나는 전에 군기관에 근무했는데 앞으로 내 처와 만나지 않을 것과 내가 가져온 물건에 대한 소유권 일체를 포기한다는 각서와 간통사건을 재론안겠다는 각서를 교환하자』고 제의했다. 安형사가 이사건을 처음 안것은 지난 2월 11일 영등포 다방가가 이들의 이야기로 떠들썩 했을 때. 그 뒤 이들 부부의 꼬리를 잡기 위해 꼭 35일을 보낸 安형사가 이들의 집을 덮친 것이 3월 18일.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난 뒤인 아침 9시쯤 서울 중구 도동53 남산 아래 있는 2층집을 덮쳤을 때도 이들은 태연했다. 오히려 『尹씨로부터 소유권 포기 각서까지 받았는데 경찰이 무슨 참견이냐』고 대들기까지 했다. 남편 毛씨는 화장실에 간다고 핑계, 뺑소니까지 치고. 李여인의 기나긴 사기행각은 이렇게 끝났다. 그러나 李여인이 구속됐다는 소문에 피해자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모부처에 근무하는 이(李)모씨(37·서기관), 정(鄭)모씨(31·사무관) 그리고 모국민학교 교사 박(朴)모씨(31) 등…. 李여인의 음흉한 손길은 딸의 담임교사에게까지 뻗쳤었다. 맏딸 금옥양(12·가명)이 다니는 OO국민학교 5학년 O반 담임 李모교사(34)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가끔 학교로 찾아와 춤을 추러 가자거나 혹은 맥주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돈이 없다고 거절, 보냈던 여인. <김선중(金瑄中)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4월 5일호 제3권 14호 통권 제 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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