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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제럴드 커티스 교수 도쿄신문 기고 요지(해외논단)

    ◎日 공무원 개혁 권한축소부터 일본에서는 장기적인 행정개혁 플랜과 단기적인 경기회복 방안이 맞물려 공무원 수를 대폭 감축하자는 ‘작은 정부론’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하지만 미국의 저명한 일본전문가인 제럴드 커티스교수(미 컬럼비아대)는 최근 도쿄신문 기고문을 통해 단순히 공무원 수를 줄이는 양적인 변화가 아니라 행정의 투명성 제고,권한 축소등 질적인 변화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다음은 커티스 교수 글의 요약.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세 후보 모두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는 결의를 강조했다.고이즈미 쥰이치로(小泉純一郞) 전 후생상은 10년동안 공무원을 절반으로 줄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총재 선거에서 이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관료조직을 20% 축소한다고 공약했다. 야당에서도 민주당의 간 나오토(管直人) 대표와 대부분의 유력 정치인이 작은 정부를 잇따라 들고 나왔다.다른 나라처럼 일본도 정부 특정분야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인적 측면에서 일본은다른 선진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가장 작은 정부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노동력 인구에서 점하는 일본 공무원의 비율은 겨우 6%에 불과하다.이에 반해 미국은 14%,선진 7개국(G7)의 평균은 17%이다. ○양보다 질적개혁 초점 공무원의 삭감은 지금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정부를 만들어줄지 모르나 작은 정부란 ‘권한이 작은 정부’를 의미하는 것이지 반드시 ‘공무원이 적은 정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인과 매스컴이 행정개혁에 대해 열광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권한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는 완전히 잊어버린 듯하다.자민당 총재선거 후보들은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를 개혁할 필요성이나 행정에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보공개법을 제정해야 할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작은 정부의 본질적인 문제는 국가의 역할을 시장경제에 대한 매니저로부터 충고자(어드바이저)로 바꾸는 것이다.일본 정부의 특징은 공무원의 수가 아니라 권한이 지나치게 크고 권한 행사가 불투명하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면 오부치 총리는 미야자와 전총리를 대장상으로 지명,금융체제의 신뢰 회복을 최우선시킨다는 결의를 보였다.그러나 부실채권의 총규모가 완전히 밝혀졌다고 시장이 만족할 때야 비로소 신뢰가 회복될 터이다. ○국가역할 ‘충고자’로 정치가는 자민당,야당을 묻지 않고 ‘관료로부터 정치로’ 중심이 이동해야 할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그러나 정치에 정책입안 능력이 결여돼 있다고 한다면 이는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될 처방전이 될 것이다. 관료보다 정치인이 권한을 갖고 있는 예로서 일본에서는 곧잘 미국이 거론된다.하지만 미 의회는 다수의 정책 참모진을 거느리고 있고 대통령도 독자적인 정책집단을 거느리고 있다.정책 참모진의 도움없이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정도로 선진국이 직면하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정치인이 숙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일본에서는 관료기구 이외에는 정책입안을 위한 구조는 정비돼 있지 않다. 일본의 정치인과 매스컴은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말할 때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일본은 침몰한다’라는 표현은 오히려 진부할 정도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침몰할 위기에 처해 있지 않다.일본의 정치가 유동화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작은 정부라든가,근본적 개혁이라는 슬로건을 버리고 국민의 일상생활에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정치인과 정당이야말로 국민의 존경과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시인 黃東奎(이세기의 인물탐구:179)

    ◎삶의 불편 찬미하는 ‘詩소년’/현미경같은 詩語에 해맑은 웃음·빛나는 예지/‘順元의 아들’ 벗으려 깨어있는 詩心 채찍/‘風葬’부터 ‘악어를 조심하라고?’까지 탐험 계속/데뷔때 ‘낙엽으로 내리고 싶다’던 無爲 경지에 ‘풍장(風葬)’의 시인 黃東奎는 호기심을 멈추지 않는 소년같은 시인이다. 삶에 지친 회의와 고뇌의 시인이 아니라 전형적인 모범생과 밝고 솔직한 도시기질이 그의 풍모다. ‘눈보다 더 차갑고’‘얼음보다 냉혹한’ 시를 쓰지만 해맑은 웃음과 티내지 않는 감동, 역사를 통찰하는 예언자의 목소리가 그 안에 들어있다. 그의 끝없는 호기심은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하고 죽음과 삶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면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통통배에 띄워 달라고 노래부른다. ○모범생의 솔직한 풍모 그와 절친하면서도 걸핏하면 긴 논쟁으로 밤을 지새우던 평론가김현은 생전에 ‘긴장된 자기를 확인하기 위해 긴장하지 않은 자기를 회의하기 위해’ 언제나 ‘깨어있는 정신’이 황동규 시(詩)의 원리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을 과격한 모더니스트나 치졸한 감상주의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삶이 글쓰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을 망가뜨리려는 모든것과 싸우고 방어하는 모습을 평상시에도 흔히 보인다. 1958년 그가 ‘현대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데뷔했을 때도 김현은 ‘그가 20세의 어린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과 그의 부친이 黃順元이라는 사실은 그의 시작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예를들어 ‘젊은 나이에 추천을 받았다는데 대한 자부심은 서울고를 1등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대를 수석 입학한 것과 겹쳐 대단한 수재·천재의식을 심어주었으며’ 그로 하여금 ‘결단코 남에게 질수 없는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부친의 명성은 그를 문단에서 ‘황순원의 아들’로 더 알려지게 했으며 그는 이 이율배반적인 요소를 끈질기게 극복한 결과 시인 황동규와서울대 교수의 위치를 이룩하게 된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고교때의 단짝 친구이던 시인 마종기도 ‘평생동안 자기 시를 갈고 닦는 정성, 언제나 어디서나 좋은 시를 쓰는 것만을 최상’으로 알면서 사생결단으로 시 쓰기에 매진하는 그의 열정은 때때로 주변의 친구들을 당혹스럽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고 시절 전학년을 거쳐 교과서나 노트 한권 없이 빈손으로 학교를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마종기와 밤샘 시험공부를 할때도 타고르와 예이츠의 영문시집이나 읽으면서 ‘내일은 무슨 과목 시험이냐, 혹시 공부하다가 중요한 것이 있으면 물어봐달라’고 하고는 먼저 잠자리에 들곤 했다는 것이다. 문학적 정열과 함께 인사동에 있던 음악실 르네상스에 드나들 때도 화성학이나 대위법 등의 책들을 읽으면서 은근히 작곡과를 지망하고 있었으나 자신이 약간 ‘음치’라는 사실을 발견하자 작곡가의 꿈을 무산시켜 버렸다. 그의 여행취미는 고교 2년때부터 시작된다. 여행은 삶의 비유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시적 실존의 궤적에 대한 비유’ ‘적극적인 문학적 실천행위’의 한방법이기도 하다. 이른바 일상생활의 규범에서 벗어난 ‘정신적 가출’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주로 김정웅 김병익 김주연 정현기와 함께 지금도 전국의 산사를 누비고 있다. 평론가 유종호씨가 ‘극서정시’로 평가한 ‘겨울의 빛’과 ‘풍장’ 시리즈도 이때의 소산이다. 죽음에 대한 황동규의 시적 탐구는 죽음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염사(念死)의 형식이며 스스로를 비우는 가벼운 마음가짐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려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죽음의 해방 위한 念死 결국 그의 시의 특징은 평론가 정효구에 의하면 ‘객관적 세계를 가능한한 현실감있게 묘사하여 재현하려는 리얼리즘정신’이 투철하다. 어느 시대의 인간이든지 얼마만큼의 변화미와 자유분방함을 누린다손 치더라도 자신을 거침없이 표현하면서 생기넘치는 현실을 창출하기란 힘든 노릇이다. 그럼에도 그는 서정시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 연극성을 강조한 ‘악어를 조심하라고?’‘몰운대행’을 감행했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대개 서투르다는 전제하에 ‘고분고분말을 잘듣지않는 건방진 시’를 쓰기도 했다. ‘손님이 오시는 오늘 피었으면 좋겠는데/ 끝내 피지않고 내일 피는 꽃이 되고 싶다’가 그 예이다. 황동규는 완벽주의자다. 만약 본인이 들으면 완강하게 부인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맺고 끊는것이 분명하고 깍듯하고 결곡하다. 그런 한편으로는 연약함이 심화되어 그날 좋은 친구를 만나면 ‘한송이 눈을 봐도 고향눈이요’를 부르기도 하고 영국 에든버러대에 유학하고 돌아오자 그만의 유니크한 창작 춤을 만들어 한동안 친구들과 어울린 자리에서 춤추어 보이기도 했다. 평남 숙천 출생. 46년 가족이 전부 월남하여 서울에 정착하면서 덕수초등학교를 졸업, 청소년기엔 서정주 윤동주 김소월의 시를 애송했고 같은 서울대와 대학원을 나온 高靜子씨와의 사이에 남매가 있다. ○완벽한 성격에 결곡함 그는 ‘불편하게 살기 위해 시인이 됐다’고 말한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감각,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내것으로 만들려고 시를 썼으며’ 그의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변하는 인간의 맛’을 전달할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선지 비교적 난해시면서도 지난 75년 출간된 ‘삼남에 내리는 눈’은 당시 6만부 이상, 최근 영화화와 더불어 하루 아침에 베스트 셀러가 된 ‘즐거운 편지’는 하루 3,000여권씩 주문량이 쏟아지는 센세이셔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이 시인의 명징성은 일찍이 데뷔 시 ‘시월(十月)’에서 ‘창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고 예언한대로 시의 무위(無爲)를 터득한 경지에 서있다. 그리고 새로운 시의 광맥(鑛脈)의 그 한 끝을 캐내기 위해 그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엄혹(嚴酷)한 긴장을 언제까지라도 멈추지 않게 될 것이다. ◎그의 길 ▲1938년 평남 숙천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시월’‘즐거운 편지’‘동백나무’추천 ▲1961년 서울대 영문과졸업, 첫시집 ‘어떤 개인 날’(중앙문화사)상재 ▲1965년 시집 ‘비가’(창우사)상재 ▲1966년 서울대 대학원졸업 ▲1966­68년 영국에든버러대 수료 ▲1968­현재서울대 영문과 교수 ▲1970년 미 아이오와대 체류 ▲1987년 미국 뉴욕대 교환교수 ▲1991년 서울대 대학신문주간 ▲1982­95년 ‘풍장’연작 완성 ▲1997년 미 버클리대 문학강연 ▲1998년 황동규시 전집출간 ▲저서 시집 ‘열하일기’(72년 현대문학사)‘나는 바퀴만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78년)‘악어를 조심하라고?’(86년)‘몰운대행’(91년)‘미시령 큰바람’(93년)‘외계인’(96년)등 문학과 지성사출간, 독일어판 ‘풍장’(독일 괴팅겐 에디치온 페페코른출판사)외 자작시 해설집 ‘나의 시의 빛과 그늘’(94년), 시선집 ‘삼남에 내리는 눈’(75년)‘견딜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88년), 시론집 ‘사랑의 뿌리’(76년), 산문집 ‘겨울 노래’(79년)외 ▲수상 현대문학상(68년) 한국문학상(80년) 연암문학상(88년) 김종삼문학상·이산문학상(91년) 대산문학상(95년)
  • 테러 용의자 라덴/회교 과격파 이끄는 사우디 反政 인사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사건의 유력한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41). 사우디 아라비아 부호 출신의 회교 근본주의 반체제 인사로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망명해 있다. 이슬람 테러조직인 ‘국제이슬람 전선’을 이끌며 미국과의 ‘성전(聖戰)’을 공언해 반미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렸다. 몇주전에는 미국과의 ‘지하드(성전)’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회교교령을 발표,미국 정부의 경계를 샀었다. 57년 리야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제다에서 수학하던 16세때부터 몇몇 회교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상속받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막대한 재산을 과격 회교단체들의 지원에 써온 것으로 전해진다.
  • 反美 테러 확산 더이상 안된다(해외사설)

    해외의 미국 정부시설을 노린 대규모 폭파 테러가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동시에 발생했다.200명 이상이 희생됐다.부상자도 주 케냐 미국대사를 포함해 수천명을 넘었다. 두 나라 도심에서 일어난 사건 희생자의 대다수는 현지 주민이었다.무너진 빌딩 더미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구출을 기다리는 나이로비 시민들의 모습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테러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15년 전 미국 군 240명이 사망한 베이루트 해병대 사령부 폭파사건을 비롯,미군이나 미국의 재외공관이 테러의 표적이 된 사건은 많았다.5년 전에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도 표적이 됐다. 사건의 배후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클린턴 대통령이나 미국 국민들에게 과거 테러사건에 못지않은 심각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반미 테러가 중동이나 미국에 한정되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케냐나 탄자니아는 미국과는 특별한 현안이 없고 눈에 띄는 반미(反美) 활동도 없었던 터다. 클린턴 대통령은 사건직후 범인 추적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그러나 대통령이 냉정히 생각해야 할 것은 테러는 힘으로 눌러서 근절시킬 수 없고 확산을 방지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사건의 배후로 여겨지는 이슬람 과격파가 최근 다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배경에는 아랍세계의 미국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있다고 할 것이다.미국은 이스라엘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반면 팔레스타인 평화를 방관해왔다. 클린턴 대통령은 올 봄 아프리카 여러나라를 순방했다.경제협력을 내걸었지만 이슬람 원리주의 봉쇄를 의도한 순방이었다.그러나 에티오피아나 콩고의 정세를 제쳐두고라도 클린턴 대통령 순방 이후 아프리카는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미국이 요즘처럼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쳐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때문에 반미 테러를 낳은 토양을 이해하고 해결에 힘을 쏟아야 한다.그것이 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 反美 감정 짙은 회교 무장단체 지목/연쇄테러 배후는

    ◎두 나라서 같은 시간대에 계획된 범행/사우디 반정세력·지하드 연계 가능성 【워싱턴=崔哲昊 특파원】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및 인근 건물 폭파사건의 배후는 누구인가. 아직까지 이번 사건과 관련,증거가 포착된 테러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내외 테러전문가들은 조심스러우나 즉각적으로 중동의 무장테러단체들에게 혐의를 맞추고 있다. 워싱턴의 테러 전문가들은 이웃한 두나라에서 같은 시간대에 벌어진 상황을 놓고 볼 때 한 단체의 소행이라기보다는 ‘뜻’이 맞는 ‘전문단체’들의 연계 소행으로 보고 있다. 사건 하룻만에 테러 전문가들 사이에 실명이 오르내리는 인물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오사마 빈 라딘을 들 수 있다.오사마는 정치인 출신으로 사우디 내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사우디 왕정을 전복하기 위해 몇년 전부터 테러단체를 이끌어 오다 추방된 인물.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중인 그는 지난 6월 ABC 방송과의 회견에서 “미국인은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공격 목표가 될 것이다”고 떠벌이기도 했다. 용의선상에떠오르는 또하나의 테러단체는 이집트의 회교무장 테러단체인 ‘지하드’.이들은 최근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알바니아에서 체포돼 이집트로 넘겨진 점을 강력히 비난한 바 있다. 한 전문가는 한편 “오사마가 한때 지하드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손을 잡았었으며 이번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두 테러리스트들이 손을 잡고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지적. 또 하나의 용의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과격무장테러단체인 헤즈볼라.세계 전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이들은 이번에도 관련성을 의심받고 있다. 자이레와 소말리아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로버트 오클리는 미국 CNN 방송과의 회견에서 “사건은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미국을 공격대상으로 했을 뿐 이 지역과는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분석했다.
  • 지역감정 조장 발언 많았다

    ◎徐淸源 의원­“강원도 요직 전라도 사람이 차지”/安澤秀 의원­“왜 대동은행만 죽게 만들었나”/朴承國 당선자­“호남은 실업자 1명도 안늘었다” 매우 낮은 투표율로 끝난 7·21 재·보궐선거에서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이 ‘예외없이’ 쏟아져 나왔다. 시민단체인 ‘국민화합 시민연대’는 22일 7·21 재·보선에서 드러난 지역감정 조장 발언 사례를 분석해 자료로 공개했다. 이번 선거기간동안 빈도 및 강도에서 가장 심하게 지역감정 조장발언을 한 후보는 대구북갑의 한나라당 朴承國 당선자,지원유세자들 중에서 지역감정을 가장 강도높게 부추긴 정치인은 한나라당 徐淸源 姜在涉 의원이었다. 朴당선자는 지난 14일 “광주나 호남에 가보았는가. 길이 잘 닦여 있다. 대구는 실업자가 1만명 늘었는데 호남은 하나도 안 늘었다”고 주장했다. 17일에는 “호남은 95%로 뭉쳐서 영남정권때 사사건건 시비를 하면서 달려들어 대통령이 귀찮아서 한 무더기씩 무더기씩 주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徐의원은 “중앙요직뿐 아니라 강원도내의 경찰서장등 요직은 거의 모두 전라도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말로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姜의원은 “대구에서 70∼80%로 몰표를 줘 대구의 자존심을 살리자”고 발언했다. 정당 별로는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많이 했다. 지역 별로는 영남권 정치인들이 많았다. 해운대·기장을에 출마했던 한나라당 安炅律 후보는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 뽑는 선거가 아니고 부산을 죽이는 정당인지 살리는 정당인지를 선택하는 선거”라고 말했다. 같은 선거구의 자민련 金東周 당선자는 TV토론회에 나와 安후보에게 “합천 출신이 어떻게 이 곳에서 출마했느냐”면서 소(小)지역주의를 조장하기도 했다. 가장 과격한 지역대결 발언 사례로는 자민련 安澤秀 의원과 朴承國 당선자의 대결이 꼽혔다. 安의원이 “왜 대동은행만 죽게 만들었나. 金大中 정부는 얍삽하고 엉큼하다”고 지원유세를 하자,朴당선자가 “대구는 1번,광주는 2번,대전은 3번이다. 대구사람들이 1번 하다가 광주에 가서 1번하면 귀싸대기 맞는다”고 받아쳤다. 강릉을 한나라당 趙淳 당선자는 “우리 강원도는 남으로부터 감자바위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 혼탁 재·보선이 남긴 과제(사설)

    어떤 종류의 선거든 후보들이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전제는 ‘공정한 경쟁’이 돼야 한다.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운동경기처럼 모든 후보들은 정해진 규칙과 심판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심판은 모든 후보에 공평하게 규칙을 적용하고 반칙하는 후보에게는 합당한 제재를 내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재선거 및 보궐선거 운동에서 나타난 극심한 혼탁과 타락상은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금품시비,향응제공,인신공격,청중동원,흑색선전 등 과거의 모든 지저분한 행태와 수법들이 재연됐다. 후보간에 상대방을 고소,고발하는 사례도 극성을 부려 서울 서초 갑에서만 16건에 이르렀다. 여야 모두 중앙당이 집중 지원한 곳일수록 혼탁상이 더욱 심했다. 반면 심판을 맡은 선거관리위원회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기막히는 일이다. 이는 모두 정치권이 페어 플레이 정신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실제로 선관위가 적발한 45건외에도 감시의 눈을 비켜간 불법과 탈법들은 이의 몇 배나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정당들은 자기 눈의 들보는 내버려둔 채 상대방 눈의 티끌만 문제삼고 있다. 정당들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데 급급해 이처럼 규칙을 무시하고 심판을 우습게 봤으니 그 게임이 재미있을 리 만무하다. 원(院)을 구성하지 못해 뇌사국회라는 따가운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이전투구에만 골몰한 정치권의 뻔뻔함이 징그러울 뿐이다. 기권한 유권자들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이런 망국적 현상을 치유하려면 우선 반칙하는 선수들을 과감하게 퇴장시켜야 한다. 프랑스 월드컵 경기에서처럼 반칙으로 얻은 이익보다 더 큰 불이익을 줘야만 앞으로 또 다른 반칙을 막을 수 있다. 심판의 권한도 강화해야 한다. 여야의 과열경쟁 현장에서 선관위의 단속은 몸싸움과 욕설에 밀려 이 빠진 호랑이에 지나지 않았다. 후보진영으로부터 선관위가 모욕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심판은 존경은커녕 모욕과 폭력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흑색선전에 질린 국민회의의 사무총장은 흑색선전이 유죄로 확정되면 무조건 당선을 무효화하는 방향으로 통합선거법을 개정키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 당선무효의 대상을 모든 종류의 불법이나 탈법으로 확대해야 한다. 다소 과격하더라도 깨끗한 선거풍토를 정착시키려면 아예 옴쭉달싹도 못하게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안 지키는 법은 없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역시 원천적으로 과열을 식힐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 현대自 3일간 임시휴업/“노조 농성에 정상조업 불가능”/오늘부터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노사간 마찰을 빚어온 현대자동차가 21일부터 23일까지 3일동안 임시 휴업에 들어간다. 현대자동차는 20일 정상조업을 준비했으나 노조측이 장기농성에 돌입하는 등 과격하게 대응,당분간 정상조업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이날 흥분한 일부 조합원들이 관리직 사원을 폭행하거나 기물을 부수고 회사안 도로를 무단점거해 텐트를 치고 통행을 방해하는 등 폭력사태가 잇따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쇠파이프를 든 노조사수대가 단조공장 정문 등을 점거하고 차량 및 직원에 대한 출입을 통제하는 등 불법행위를 벌여 조업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 날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尹성근씨 등 전직 노조위원장 3명은 50m 높이의 주조공장 굴뚝에 올라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또 김광식 노조위원장 등 노조간부 5명도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 노동시위 붉은 머리띠 자제를(사설)

    호주 주재의 한국대사관(대사 文東錫)에서 국내 노동계 시위때 자주 등장하는 ‘붉은 머리띠’가 외국인 투자유치에 큰 걸림돌이 된다며 이의 착용을 자제토록 요청하는 건의문을 본국에 보내와 관심을 모은다. 대사관측은 최근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앞으로 보낸 건의문에서 호주 경제계의 고위경영진은 한결같이 노동시위현장에서 근로자들이 머리에 매는 붉은 띠가 과격성을 증폭시킨다는 지적을 한다고 밝혔다. 또 이같은 과격한 이미지의 우리나라 시위문화가 외국인투자를 방해함을 강조하면서 개선을 당부한 것으로 보도됐다. 우리는 이번 건의문과 관련,결론부터 말한다면 국내 노동계는 이러한 외국 기업인들의 지적과 요청사항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귀담아 들어 노동계는 물론 국가 전체이익에 반(反)하는 문제들은 비록 작은 것이라도 주저없이 고쳐나가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얼핏 사소한 것으로 들어 넘길수 있는 사안을 공식채널로 건의,정책수행을 뒷받침하려는 주(駐)호주 한국대사관의 노력은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당연한 임무임에도 흔히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호주 기업인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붉은 색은 보통 격렬함을 나타내고 자극과 흥분,정열등 적극성과 공격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핏빛을 연상시키는 색감(色感)때문에 계급투쟁을 내세운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특히 선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산당 깃발이 붉은 연유이기도 하다. 물론 프랑스 삼색기의 적색은 박애를 가리킨다. 이밖에도 붉은 색은 경고·금지등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에 주로 쓰이고 민간신앙에선 악귀를 몰아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적·녹·황의 삼원색 가운데 적색은 가장 자극성이 강하다는게 부인할 수 없는 공통의 느낌이다. 외국인 말고도 그동안 붉은 머리띠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국민들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하필이면 붉은 띠냐는 것이다. 특히 6·25동란의 희생자 가족들이 붉은 색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감과 적개심의 잠재성(潛在性)은 결코 가볍게 볼수 없다. 동족상잔등의 비극에 의한 ‘레드 콤플렉스’를 무시할수 없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극복하고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외자유치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노동계는 이번 건의문이 아니더라도 세계가 국내 노동시위를 예의 주시하는 사실을 되새기도록 당부한다. 외견상 과격함이나 물리적 힘의 과시 대신에 유연성과 상호협력의 이미지가 더욱 필요함을 강조한다.
  • 행자부/기자실 폐쇄/사이버 공방

    ◎얼굴없는 익명 주장­공직사회 인식 부족 왜 넓은방 무상사용/만만찮은 반박 글­신속한 정보 제공 국민 알권리 충족 ‘관공서 기자실을 없애라’. 최근 행정자치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기자실 폐쇄 공방이 뜨겁다.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14건의 관련 게시물이 실려 이를 조회한 사람은 모두 3,600여명이나 된다. 갑자기 기자실 폐쇄주장이 나타난 것은 최근의 구조조정 바람. 언론들이 공무원을 ‘철밥통’으로 묘사하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 시발이 됐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공무원들은 언론들의 잘못된 공직사회에 대한 인식,좁은 사무실 여건에서 불필요하게 넓은 기자실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 고위 공무원들이 언론인들에게 필요이상 저자세를 보이고 있는 점 등을 집중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얼굴은 감춘채,기자를 퇴출시키고 기자실도 철거하자고 외치고 있다. 철밥통이라는 이름의 한 게시자는 “20년이 되는 작년의 내 봉급은 한국의 굴지회사도 아닌 중급회사 4년차의 연봉과 같았다. 그러나 올해 감봉으로 그회사의 3년차보다 조금많다”면서 “이러한 많은 사람들을 모두 철밥통으로 매도한 신문사와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공개하고 사과받기를 원한다”고 적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어디 깡패 패거리마냥 행동하며 누구 뒤나 캐려고 들고 자기들 맘대로 되지 않으면 공갈에 협박에 칼만 안들었지 강도가 이보다 못하리요”라며 “퇴출시켜버리자”고 주장했다. 한 게시자는 과거 5공 시절의 언론통폐합을 국민들이 모두 찬사를 보냈다면서 金正吉 장관에게 언론을 정리해 주길 바란다고 적기도 했다. 이같은 과격한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로’라는 게시자는 “관공서 기자실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위한 신속한 정보제공의 장소라는 측면이 있다”면서 “공개행정,투명한 행정을 외치는 지금 언로를 막는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폐지주장은 재고해야 한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했다.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행정담당관실의 한 관계자는 “기자실 폐지론을 주장하거나 동감을 표시한 게시자들은 다분히 감정적인 입장에서 적은 것같다”면서 “건전한 비판문화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비판할 때는 익명으로 처리하기보다 정정당당하게 실명으로 글을 올려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불법 호화별장 단속 철저히(사설)

    팔당 상수원 보호구역을 비롯, 그린벨트 안 농지를 불법으로 형질변경한 호화별장 소유주 14명이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적발됐다.농민들의 삶의 터전인 농지나 임야에 잔디를 깔고 정자·정원을 조성하고 연건평 100평이 넘는 건물을 지은 이들은 대부분 기업총수나 그 가족으로 경제난국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분노를 자아낸다.더욱이 국민적 영웅으로까지 떠받들어졌던 유명 체육인이 위장전입등 교묘한 탈법행위로 호화카페를 차린 것은 큰 실망감을 안겨준다. 사회 지도층 인사라고 할 만한 이들의 이같은 탈법행위는 환경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며 국민경제를 좀먹는 파렴치한 범죄로 엄중한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도덕성과 준법정신을 보여주어야 할 이들이 앞장서 법을 무시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희망없는 사회라는 느낌을 갖게 해 참담하기까지 하다. 개발제한지역의 불법 호화별장 문제는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불거져 왔으나 아직까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린벨트 안에서는 연건평 40평 이상의 건축 행위를 매우 까다롭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 현행건축법이다.그러나 이번에 적발된 이들은 토지 형질변경과 건물 용도변경을 자유자재로 하고 연건평 130평에 이르는 별장을 짓기도 했다.건축법이 유명무실할 정도로 호화별장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은 관계 공무원의 묵인이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인·허가 단계에서 관련 공무원의 비리와 유착이 없었는지 철저히 가려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각종 건축규제가 완화되고 단속이 느슨해지면서 팔당 상수원 보호구역안 환경파괴가 더욱 가속화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지자체의 세원(稅源) 확보라는 명분이 작용한 것이다.그러나 팔당호는 20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이란 점에서 더 이상 오염원이 늘어나게 해서는 안된다.말단 공무원은 물론 자치단체장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책임 행정을 펴야 한다. 풍치가 뛰어난 한강변에 즐비한 별장과 러브호텔,‘가든’이란 이름이 붙은 대형음식점들은 팔당상수원 오염의 주범 중 하나다.환경파괴나 토지 불법 전용등에 대한 벌칙은 원상회복을 원칙으로 하는 게 옳다.농지에 덮인 잔디는 걷어내고 불법 건물은 헐어내는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이다.다소 과격해 보이는 원칙일 수도 있으나 그러지 않으면 호화별장 단속은 불법에 대한 추후 인정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벌과금 부과등 가벼운 징계로 끝나는 단속은 오히려 불법을 사후 공인해주는 셈이 된다.
  • 金 대통령 71년 장충단 유세 통해 본 국정철학

    ◎민주주의·대중경제 주창 30년 한결같이/부정부패 척결·금융개혁 추진 등 일관된 의지/노사정위 설치·여성지위 향상도 그대로 실천 金大中 대통령을 잘아는 사람들은 ‘오랜 야당 생활속에 굴곡의 역정을 겪었지만 일관성있는 정치 철학을 추구 해온 인물’이라고 말한다.이들은 최근 입수, 공개된 지난 71년 야당 대통령후보 당시의 장충단 공원 유세 내용도 그 구체적인 사례의 하나라고 설명한다.그 때나 지금이나 국정 개혁의 구상은 수미일관(首尾一貫)한 확고한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당시 유세 내용과 대통령 취임후 각종 어록을 비교해 보면 이같은 일관된 국정철학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특히 당시 주장했던 민주주의와 대중경제 실현을 비롯,중앙정보부의 개편,노사위원회 설치,여성지위향상위원회 구성,은행 민주화,세제 개선,민주주의적 논의 절차,정치보복 반대 등은 현재 추진중인 국정운영 방향과 흡사하다. 쉽게 말을 바꾸거나 의지를 꺽는 일이 없다는 측근들의 얘기를 실감케하는 대목이다.서울신문은 金대통령의 정치철학과 국정운영 구상의 역정을 조망하기 위해 71년 장충단유세와 대통령 취임후 주요 발언 내용을 비교,점검해 봤다. ▷부정부패 척결◁ ­朴正熙씨는 말하기를 ‘중단하는 자는 승리가 없다’고 했습니다.이 나라의 부패는 중단없이 전진하고 있습니다.만일 중단없이 전진하는 부패를 빨리 중단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을 면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정경유착 속에서 관치금융이 횡행하고 부정부패가 판쳐왔습니다.기업들이 경쟁을 통해서 성공하기 보다는 권력과 결탁해서 부를 축적하는 현실이 계속되었습니다.정부가 은행장을 마음대로 지명하고 또 한보의 경우처럼 부당한 대출을 허용해서 금융도 망쳐 놓았습니다.그래서 은행도 약화되고 기업의 경쟁력도 사라지니까 국제경쟁에서 패배하고 지금과 같은 IMF 체제의 관리를 받게 된 것입니다. ▷정치보복 반대◁ ­정권을 잡더라도 누구에 대해서 보복이 없이 신분을 보장하겠습니다. ▲국민 여론에 따라 여당이 다수가 되려는 노력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더 이상 못하면 못했지 정치보복은 안합니다. ▷국가정보기관 개혁◁ ­잡으라는 공산당을 잡지 않는 중앙정보부에 대해 우리는 일대 결심을 하겠습니다.중앙정보부는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외국에 대한 정보업무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우리나라에서 공산당을 잡는 일은 검찰이나 경찰이 하면 됩니다. ▲지금 안기부는 대폭적으로 인사를 단행하고 개혁을 하고 있습니다.그래서 모든 역량을 국가안보,그리고 또 해외정보,예를 들어 경제·문화·외교의 정보입수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또 국내에서는 법에 정해진 한계 내에서만 움직이도록 하고 정치에 일체 개입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금융개혁 추진◁ ­은행을 민주화해서 은행이 몇 사람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전 국민의 자산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으로 권력과 결탁해 부자가 되는 현상이 나라를 망쳤습니다.은행 인사에 개입하지 않고 특정기업에 대한 대출을 강요하지 않는 등 은행의 독립성과 함께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한 금융기관의 자율적 경영을 보장하겠습니다. ▷불로 소득 및 탈세에 대한 단속◁ ­대기업체의 탈세와 감세를 막고 부유세와 특별소비세를 신설할 것입니다. 탈세한 돈으로 잘 사는 일부 사치층과 권력층의 행위에 대해서는 고지서로 철추를 내릴 것입니다. 또 세금이라는 무거운 바윗돌에 짓눌려서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중소 상공업자들을 구제하기위해 세금의 일대 혁명을 단행하겠습니다. ▲불로소득자·사치생활자에 대해서는 세금을 중과해서 사회정의에 알맞게 대처해야 합니다.고삐를 늦추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잘못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견제를 해서 국민에게 정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면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재벌이라고 해서,아들이 손가락에 물도 안 묻히고 부자가 되는 데 이는 민주주의도,시장경제도 아닙니다.내가 벌면 내가 쓰는 것이지,자식까지 쓰는 것은 아닙니다.그런의미에서 우리는 대단히 잘못됐으며 국세청장에게 이같은 점을 시정토록 하라고 강력히 지시했습니다.땀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큰 몫을 차지하거나 은행에 돈을 넣고 이자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정당하지 않은 돈을 세금으로 거둘 것입니다. ▷노·사·정위원회 설치◁ ­노·사·정 공동위원회를 만들어서 노동자가 생산에 참여하는 동시에 분배에도 참여토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것들을 이행해야 합니다.대표적인 것이 정리해고 문제인데,거기에 보면 반드시 2개월 전에 통고하게 되어 있고 사전에 노조와 협의하게 되어 있습니다.그런데 지금 기업은 이것을 무시하고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습니다.과격한 노동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이렇게 되면 정부와 기업이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이런 점에 대해 우리가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환경보호 대책 강구◁ ­정권을 잡으면 즉시로 공해문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적극적인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환경문제가 경제건설과 똑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고 소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성문제 담당기구 설치◁ ­이 나라의 반이 넘는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대통령 직속의 여성지위향상 위원회를 두도록 하겠습니다.여성의 보건과 교육,취직,대우등 사회적 지위를 높이도록 하는 기구로 활용할 것입니다.여성으로서,아내로서,직업인으로서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여성 문제가 나왔는데,사실 지난번 지자제 때도 우리가 애를 썼습니다. 지금도 국무위원 2명을 여성으로 임용했고,여성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국무위원 대우를 할 뿐만 아니라 여성특별위원의 수를 7∼8명으로 해서 이 분들이 여성문제에 계속 관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국무회의에도 참여합니다. ◎테이프 27년 간직 尹善弘씨/그동안 이사때 마다 가보처럼애지중지 보관/당선후 그때 음성 다시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 쏟아져 “3번이나 강산이 변한 뒤에야 ‘장충단테이프’가 빛을 보게 됐습니다” 지난 71년 金大中 신민당 대통령후보의 서울 장충단공원 선거유세 녹음테이프를 간직해 왔던 尹善弘씨(60·당시 신민당 선전국 간사·현 한국마사회 계약직 직원).그는 27년 전의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감회가 새로온 듯 눈시울을 붉혔다. “인파가 장충단공원부터 동대문까지 가득 메웠습니다.시민들의 함성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尹씨는 27년 전의 광경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당시 金후보는 연설 끝부분에 ‘여러분,함께 청와대로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말없는 청중 1만여명이 중앙청까지 행진을 했습니다.당시 장충단의 100백만명 인파는 ‘침묵하는 다수’였습니다.유세 다음 날 당시 중앙정보부는 간첩조작사건을 발표했습니다” 71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곧바로 8대 국회의원 공천문제로 당내 파동이 일어났다.尹씨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이 테이프를 집에다 보관했다.그 뒤 7차례나 이사했지만 테이프만은 가보(家寶)처럼 소중히 간직했다. 尹씨는 지난해 金大中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테이프가 머리 속을 스쳤다.그러나 너무 깊숙히 보관한 탓에 집안 식구들이 1주일을 뒤져 겨우 찾았다.또 보존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용산전자상가를 4개월 동안 뒤진 끝에 구형녹음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 “녹음기에서 金대통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尹씨는 金대통령이 취임식 때 말했던 안기부 개혁과 노사정위원회 구성 등 이 테이프에 고스란히 녹음돼 있는 사실을 알고 또 한번 놀랐다. 尹씨는 “金 대통령의 일관성있는 정치철학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면서 “무엇보다도 테이프가 원 주인에게 돌아가 마음이 가볍다”고 말했다.
  • 대통령께 드리는 국난극복을 위한 제언/金承均(서울광장)

    ◎개혁작업 운동권 동참시켜야 ‘言論開塞 興亡所係’(언로의 여닫힘에 따라 흥망이 좌우된다)이 글은 유신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70년대 중반 민주화의 염원을 담아 金大中 대통령이 써 주신 글로써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문득 위 글귀의 뜻을 생각하고 소중한 기회이기에 고언을 드립니다. 건국이래 지금까지 50여년동안 한국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변란이 계속돼 왔습니다.참담한 전쟁이 몰고 온 해독은 물질적 파괴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을 부수면서 정신적 공황상태로 이어졌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의 군사쿠데타에 이은 유신독재,全斗煥·盧泰愚 대통령의 집권은 군사문화를 만연케 했습니다.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친 데카당적 전후문화,정글의식,제로섬 사고등은 더불어 사는 사회건설을 막았습니다.이러한 현상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이어졌고 급기야 한국경제를 IMF지배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군사문화는 대북정책에도 족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햇볕론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햇볕론은 절대적 선은 아닙니다.북쪽을 대등한 통일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궁극적인 해결방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는 것은 민족을 위난에서 구하고 나아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며 세계평화에 초석을 까는 역사에 순응하는 길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수정사건을 기화로 호전주의자들은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망쳐버리려 획책하고 있습니다.미사일이 쏟아지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교류와 교역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있는 중국·대만 관계와 홍콩을 반환 받고도 1국 2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으십시오. ○꽃다운 희생 정권교체 초석 대통령께서 달력을 들추어 보시면 3·1절로부터 11월3일 학생의 날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애국애족적 발자취를 한 눈에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김귀정·김세진·이재호·박종철·이한열·강경대 등 300명을 웃도는 꽃다운 청춘 학생들의 순국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그들의 죽음이 정권교체의 초석이 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민족의 지도자는 풀 한포기벌레 한마리에도 애정을 갖는 자애로움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지금 정부가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오직 북한입니다. 그럼에도 북한과 교류 협력을 모색하는 전향적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그런데 학생운동의 전통을 이어 받은 정통성 있는 학생단체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이것은 논리적으로나 학생운동의 전통에 비춰볼 때 잘못된 것이며 개혁 주체를 분열시키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단호히 시정해야 합니다. 지금 구조조정에서부터 정부가 하려는 개혁은 많습니다만 성과는 적습니다.도처에 기득권 세력이 만만찮은 기세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며 개혁을 주도하는 주체세력이 미약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기도 합니다.북한의 식량위기, 남한의 경제위기는 민족전체로 볼 때 내우외환의 위기입니다.이런 민족적 위기를 동포애를 바탕으로한 지원과 협력으로 극복해 낼 때 민족동질성은 급속히 회복될 것이며 전화위복의 전기가 마련될 것입니다. ○이적단체 규정은 잘못 학생들도 쇠몽둥이와 화염병을 버려야 합니다.시위는 민중을 자기편에서게하고 자기가 옳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전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과격한 모습은 옳지 않습니다.이 시기에는 개혁작업에 동참하는 것이 옳습니다.노동자 실직자와 더불어 학생이 국난극복의 선두에 서서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이들을 개혁작업에 동참시키는 큰 정치를 구상해 보십시오.
  • 양심수에 햇볕을(金三雄 칼럼)

    제 2건국을 표방하는 金大中정부가 8·15 건국 50돌을 맞아 단행할 특별사면과 복권에 많은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전히 8·15는 우리에게 억압과 굴레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출발로 다가온다. 그런 뜻에서 국민정부 출범의 의미를 함께하지 못한 양심수들에게 뒤늦게나마 사면 복권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양심수’를 거론하면 용공으로 몰렸다. 정권교체로 이런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지만 아직도 사회 일각에는 양심수의 사면 복권을 색깔론과 연계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불행한 우리 정치사는 좌우 이념대결과 함께 독재와 반독재의 정치대립이 오랫동안 지속돼왔다. 양심수는 바로 이런 대결과 대립 과정에서 생긴 ‘아웃사이더’들이다. 앰네스티가 정의한대로 “신념 종교 성별에 상관없이 비폭력 수단으로 자신의 사상과 의사를 표현하다 실정법에 의해 탄압받는”사람이 양심수다. 우리의 특수환경과 관련,국내 인권단체들은 “정의 평화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다 구속된” 사람이라 말한다. 군사독재시절 金대통령도 ‘양심수’였고 새정부에는 상당수 양심수 출신이 요직에 앉았다. 따라서 정부는 누구보다 양심수와 그 가족의 아픔을 헤아릴 처지다. ○우리 체제 우월성으로 포용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에 한명의 양심수도 없다고 한다. 어느 시대 관리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구정권 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지난 2월 앰네스티는 한국내 양심수 명단 100여명을 대통령직인수위에 전달한 바 있고, 민가협 등에서는 지난 3월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때 전체 양심수 478명 가운데 15%에 불과한 74명만 석방되었다고 국민정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인권단체들의 조사로는 현재 437명의 양심수가 수감중이란 주장이다. 양심수 석방을 둘러싸고 시각차이가 있을 수 있다. 국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나 대남파괴 활동을 벌인 간첩까지 양심수로 부르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여전히 분단과 무력대치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지금 햇볕론을 통해 대북포용정책을 펴고 있다. 북쪽을 포용하면서 남쪽의 반체제를 배제한다면 그건 모순이다. 해외 반체제 망명객들도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는가. 전향제 폐지와 함께 우리 체제에서 수용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여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이것은 金대통령 햇볕론의 정신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전향제 폐지와 함께 ‘준법서약’을 둘러싼 불필요한 공방으로 햇볕정책을 방해하려는 세력에게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 일부 수구세력은 반공을 독점하는 체하면서, 필요하면 적과도 내통하고 개혁세력을 색깔론으로 매도하려 든다. 정부의 전향제 폐지 조처도 이들에게는 다시없는 색깔론의 대상이다. ○과격한 요구 일 그르쳐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엄격한 ‘준법서약’을 통해 우리 체제에 흡수하고 순수한 양심수는 과감한 사면 복권조치로 해방의 기쁨을 안겨줘야 한다. 준법서약제는 ‘서약’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서 정부나 양심수측이 너무 극단적 고집을 부려서는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총련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현재 가장 많은 구속자가 바로 한총련 관계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대학생인 한총련 수감자들은 이번 기회에 가정과 학원으로 복귀돼야 한다. 다만 탈냉전의 물결에 휩쓸려버린 사회주의의 허상, 굶주림의 동토로 변해버린 주체왕국의 실상을 꿰뚫는 인식의 전환이 따라야 한다. 젊은이들이 지난 우리 역사가 남긴 모순구조와 현실의 부조리로 자칫 극단의 모험주의 관념과 허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허망과 절망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정부와 기성세대의 포용력이 필요하다. 다시는 이땅에 양심수가 존재하지 않도록 화해 정의 평화 인권 같은 보편가치가 더욱 신장돼야 한다. 개혁은 바로 이런 가치구현을 위해 필요하다.
  • 모범용사들 5·18묘지 참배/서울신문사 초청 4일째

    ◎OB맥주공장 들러 대구로 서울신문사가 선정한 국군 모범용사 60명과 부인 등 117명은 25일 광주를 방문,5·18묘지와 OB맥주 광주공장 등을 둘러 봤다. 일행은 이에 앞서 宋彦鍾 광주시장이 베푼 오찬에 참석했다. 宋시장은 이 자리에서 “광주는 임진왜란 등 예부터 나라가 어려울때 힘을 모아 국난 극복에 앞장선 의향”이라며 “이같은 전통이 80년 불의와 독재에 항거한 5.18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宋시장은 특히 “시민들은 5·18 진압작전에 참여해 명령대로 행동한 군인들도 같은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여러분의 방문을 적극 환영한다”며 “외부에 잘못 알려진 광주의 ‘과격한 이미지’를 제대로 알려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모범용사 일행은 이어 許京萬 전남지사가 마련한 만찬에 참석한뒤 26일 대구로 향했다.
  • 白凡 재조명:2­1(정직한 역사 되찾기)

    ◎생애 재평가/利害­이념 초월… 독립­통일 헌신/애국단 의거·광복군 참전 지휘/상황논리 정치이익과 타협 배격/‘한국의 간디’ 역사성 부여해야 역사는 정직해야 한다.그러나 세계사는 일그러진 역사로 얼룩져 있다.세계사의 많은 갈등과 분쟁은 굴절된 역사의 산물이다.한국의 현대사에도 일그러진 역사가 있다.그중의 하나가 백범 金九 선생에 대한 잘못된 평가다. 백범의 독립운동은 과격한 테러에 의존했고 현실인식도 부족했다는 일부 지적이 있었다.그의 실패한 남북협상은 현실 정치가로서의 한계를 나타낸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그러한 평가는 그러나 친일세력들의 식민사관과 백범을 죽인 권력집단의 인위적인 ‘평가절하 시나리오’의 한 부분일 뿐이다. 테러리즘 비난은 주로 ‘한인애국단’ 활동 때문이었다.백범은 애국단을 창설하고 애국단의 李奉昌 의사와 尹奉吉 의사의 의거를 지휘했다.그러나 애국단 활동을 테러리즘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일제 강점을 합법적 지배구조로 보는 민족 반역적인 친일 세력들의 식민사관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대학의 愼鏞廈 교수는 “애국단 활동은 침체된 독립운동을 부활시킨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애국단 활동에 고무된 국내외 동포들은 임시정부의 중요성과 독립운동의 성과를 재인식하고 재정지원 등을 재개했다.그 결과 집세도 제대로 못내던 초라한 임시정부의 활동이 활성화됐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신뢰와 협조를 다시 얻어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이 활성화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1930년대 들어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은 꺼져 가는 불꽃과 같았다.일제가 조작한 1931년 7월의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으로 한국인에 대한 중국사람들의 증오와 적대행위가 만연되며 독립운동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尹奉吉 의사의 의거는 일본침략군에게 상하이(上海)를 점령당한 중국인들의 울분과 한을 풀어준 통쾌한 일이었다.중국 중앙군 사령관 장제스(蔣介石)는 “중국군 30만명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청년이 해냈다”고 극찬했다.그후 중국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협조적이었다.애국단의 의거는 특히 국제도시 상하이·도쿄 등에서 일어났기때문에 한국민족의 독립운동을 전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도 했다. 백범은 국제사회의 냉엄함도 잘 알고 있었다.망명중 제국주의 열강이 중국을 어떻게 수탈하는 지를 체험을 통해 알았다.자주적 독립의 중요성을 절감했다.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광복군의 참전을 서두른 것도 자주적 독립을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보다 빨리 바뀌었다.광복군이 참전하기 전에 일본이 항복한 것이다.그는 백범일지에서 “일본의 항복은 내게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수년간 애써 참전 준비를 한 것도 다 허사다.걱정되는 것은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장래 국제간에 발언권이 박약하리라는 점이다”라며 아쉬워했다.프랑스의 드골 장군이 전후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연합군에 앞서 파리 입성을 고집했듯이 백범도 국제정세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그는 일본과의 전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자주독립이 보장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백범은 귀국후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했다.통일한국만이 진정한 민족의 광복이라고 강조했다.일부는 백범의 이러한 통일노력을 공산주의 본질을 잘 몰랐던 현실 정치가로서의 한계라고 매도했다.그러나 그는 독립운동과정에서 이념적 갈등을 경험하면서 공산주의의 실체를 잘 알고 있었다.특히 중국에서 국공(國共)분열이 얼마나 참담한 비극이었는 지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결국 분단국가가 성립되면 같은 민족간의 갈등과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통일한국의 건설을 위해 남북협상을 강행했다. 그는 정치적 이익과 이념을 초월하여 독립과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받쳤다.그의 위대함은 상황이 불리한 줄 알면서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 타협하지 않고 민족의 미래를 생각한 점이다. 그의 일생은 애국의 역사였다.그러나 현실정치는 그에게 참된 역사성을 부여하지 않았다.그러한 오류는 고쳐져야 한다.백범은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재평가되야 한다.그는 ‘한국의 간디’라 할 수 있다.백범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정직한 역사를 되찾는 일이다.정직한 역사는 민족의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암살의 진상/이승만 정권­軍部 합작품 1949년 6월26일.그날은 비극의 일요일이었다.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金九 선생이 암살된 것이다.분노와 애도의 물결 속에 온 겨레는 슬픔에 잠겼다. 백범은 7월5일 온 국민의 애도 속에 효창공원에 안장됐다.그의 죽음에 대한 진상도 함께 묻혀 버렸다.자신의 집무실 경교장(京橋莊)에서 당시 포병소위였던 안두희에게 피살됐으나 그 배후는 베일에 가려져 왔다. 안두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그러나 1년도 못되어 석방된 후 육군에 복귀,대위까지 진급했다.후에 국회에서 그 사실이 문제되자 제대했다.그러나 자유당 정권의 비호아래 암살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李承晩 정권이 4·19혁명으로 무너지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민간차원의 운동이 일어났다.그러나 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후 진상조사활동은 거의 중단됐다.그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은 없었다.곽태영·권중희·노송구씨 등에 의한 안두희 추적만 있었을 뿐 국가적 차원의 조사는 없었다. 본격적인 진상조사는 92년 11월5일 ‘백범 김구선생 시해 진상위원회(위원장 이강훈)’가 국회에 청원서를 내면서 시작됐다.국회의 청원심사소위원회(위원장 강신옥 의원)는 95년 12월18일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보고서는 안두희의 우발적 단독범행이 아니라 면밀하게 모의되고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된 정권적 차원의 범죄였다고 결론내렸다. 안두희는 거대한 조직과 역할에서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암살사건은 고급정보 브로커였던 김지웅이 전반적으로 조율했다.그의 지시를 받는 홍종만은 암살 하수인들을 관리했다.이들은 모두 정권적 비호를 받았다. 그러나 암살의 일차적 배후는 군부쪽 이었다.암살명령은 장은산 당시 포병사령관이 내렸다.김창룡 특무대장은 사건후 적극 개입했다.채병덕 총참모장,전봉덕 헌병부사령관,원용덕 재판장,신성모 국방장관 등은 사후 처리를 주도했다. 백범 암살에서 가장 큰 쟁점은 李承晩 전 대통령과 미국의 관련성이다.李 전대통령은 정권적 차원의 범죄라는 차원에서 도덕적 책임이 있다.사건후 개입한 것도 확인됐다.미국도 암살사건의 내막을 알 수 있었을 것으로판단된다. ◎안두희 ‘처단’ 朴琦緖씨/“정의 일깨우고 싶었습니다”/힘겨웠던 독방생활/김구 선생 떠올리며 감내/어려운 사람 잘 사는 세상 왔으면 朴琦緖(49)씨는 버스 운전기사다.보통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그러나 그에게는 또다른 모습이 있다.金九 선생 암살범 安斗熙를 죽인 ‘정의의 사나이.’ 그는 정의라는 말을 좋아한다.安斗熙를 죽인 것도 사회의 정의를 일깨우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위대한 민족 지도자 金九 선생을 시해한 사람이 제명을 다하는 것은 역사의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1996년 10월23일.安斗熙는 朴씨의 ‘정의의 봉’에 맞아 죽었다.“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죄의식은 크게 없었습니다.하지만 고뇌의 시간도 많았습니다.그러나 누군가 이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3년형의 판결을 받았다.감시 카메라가 있는 독방에서 생활했다.“교도소 생활은 힘들었습니다.추위는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귀와 발이 동상에 걸렸습니다.그러나 고통의 순간마다 金九 선생의 힘들었던 감옥생활을 생각했습니다.金九 선생과 비교하면 나는 얼마나 편한가라고 위로했습니다.”성당에 다니는 그는 성경과 백범일지,역사책 등을 많이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3월13일 사면으로 청주감옥을 나왔다.잠시 중단했던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부천에 있는 소신여객 사람들은 그를 환영했다.“회사 노조원들의 석방운동이 고마왔습니다.광복회와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의 석방운동도 감사했습니다.” 출옥후 그의 집에는 조그만 변화가 나타났다.“아이들(딸 2명 아들 1명)의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그저 평범한 아빠로 보던 그들이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살인자의 아내’라는 부담을 느끼던 아내도 자랑스런 남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운전기사로 남기를 원한다.그는 오늘도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태우고 김포공항과 월미도 사이를 달린다.“나의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입니다.그런 사람들도 잘 살 수 있는 올바른 사회가 실현됐으면 좋겠습니다.”올바른 사회를 만드는 것이 金九 선생의 큰 뜻을 살리는 길이라고 그는 말했다.
  • 在日 한국유학생가족 집단 피습/메이지大서

    ◎과격파 학생 4명 체포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메이지대학 교내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던 한국 유학생과 가족 10여명이 지난달 25일 대학 학생회 중앙집행위 위원들로부터 교내에서 집단 폭행을 당한 사실이 3일 뒤늦게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메이지대 한국 유학생회등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메이지대 학생회관내 ‘가스펠(찬송가) 애호회’ 서클 사무실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음악회 준비를 하고 있던 중 헬멧과 알미늄 방망이로 무장한 학생회 중집위 소속 과격파 학생등 10여명이 들이닥쳐 ‘허가를 받지 않고 공연한다’,‘신흥종교 그룹이다’라는 이유로 마구 때렸다는 것이다.이로 인해 사무실에 있던 유학생은물론 공연을 보기 위해 와 있던 金모씨(여·임신중)등이 전치 2개월에서 1주일에 이르는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한국 유학생들을 폭행한 과격파 학생들 가운데 4명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와 관련,‘가스펠 예수회’간사장 河志榮(상학부 3년)군은 “사건 후 폭행에 가담한 과격파 일본 학생들은 4명이 체포된 데 대해 반드시 보복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120여명의 한국 유학생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면서 ”학교 당국과 경찰은 한국 유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있다”고 말했다.
  • 李甲用 민노총 위원장 단독 인터뷰

    ◎“구조조정 자체는 반대 안한다”/근로자와 협상뒤 불가피할때만 해고해야 한 달 이상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해 온 이갑용 민주노총 위원장(40)이 28일 하오 서울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명동성당에서 밤샘을 한 탓인지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다. ­파업을 강행한 데 대한 비난 여론이 높은데. ▲그렇게 보지 않는다.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과격해지거나 장기화하는 것이다. ­파업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 않나. ▲파업과 경제 여건과는 상관이 없다.어제 파업을 했는데 주가는 오히려 오르지 않았나.최근의 주가하락은 재벌개혁 부재와 엔화 하락 때문이다. ­정리해고제 철폐 등 5개 요구사항이 실제 관철될 것으로 생각하나. ▲단기간내에 관철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있다.지금은 지도부가 출범한 지 2개월밖에 안됐지만 점차 조직이 정비되면 더욱 강력히 밀어부칠 것이다. ­정부에서는 일단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라고 하고,민주노총은 5개항 수용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협상의 여지는 없는가. ▲무조건 5개항을 먼저 들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철폐만 충족돼도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다.협상은 그 다음 문제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현실에서 정리해고제를 철폐하라는 말은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구조조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사용자측이 개혁할 생각은 않고 일방적으로 근로자를 자르는 것이 문제다.근로자와 충분히 협상한 뒤 정말 불가피한 경우에만 해고하는 등의 방향으로 법안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5개항중 재벌재산을 환수해 실업기금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있다. ▲재산을 환수해 실업자에게 주라는 게 아니다.재벌 자신이 진 빚을 빨리 갚으라는 얘기다.그러면 정부가 대신 갚아줄 일이 없기 때문에 그 돈으로 실업자를 구제할 수 있게 된다. ­IMF와의 재협상 주장도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원래 협상안에 3개월마다 재협상할 수 있게 돼 있다.IMF가 경제성장율을 묶고 긴축재정을 강요,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재협상은 불가피하다.­정부의 사법처리 의지가 강한데. ▲각오하고 있다.그러나 자칫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안다면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부산 출신인 이위원장은 90년 현대중공업 노조의 ‘골리앗크레인 투쟁’때 사무국장으로 사실상 파업을 주도했으며,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 “對韓 투자 확대”20여회 연설/金 대통령 訪美 어떤 활동 하나

    ◎금융·기업 구조조정 노력 설명/클린턴과 동북아 미래 논의도/경제·외교 새 리더십 구상… 한반도 비전 제시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는 미국 조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연설과 초청 요청이 쇄도,김대통령이 막판까지 직접 일정을 조정하고 있을 정도다.이는 국민의 정부가 진정한 여야교체로 50년만에 들어선데다 국정운영 철학이 미국과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김대통령의 오랜 투쟁경력 자체가 ‘상품성’을 지니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양국 동반자 관계 확인 정부는 김대통령의 이번 방미를 통해 그동안 구축되어 온 한미간 동반자관계를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김대통령도 이에따라 경제·외교·통일을 아우르는 새로운 리더십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김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21세기에 대비한 한미간의 공동목표 및 추진방법 설정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특히 클린턴 대통령과격의없는 대화를 통해 클린턴 대통령의 금융·투자부분의 대한지원 표명의사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한미 정상회담은 안보동맹에서 뿐 아니라 경제·통상의 파너트임을 공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 연장선에서 대북 경수로분담금과 자동차협상 등 실무현안에 대한 양국의 입장조율도 기대되고 있다. ○의회·재계 지도자 접견 임동원 외교안보수석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이루기 위한 공조방안도 논의될 것”이라고 말해 남북간 화해 물꼬를 트기 위한 방안도 나올 수 있음을 시사했다. 김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무엇보다도 새 지도자가 이끄는 새로운 한국의 이미지를 미국사회에 심어주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김대통령은 8박9일동안 미국에 머무르면서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등 무려 20회가 넘는 연설을 통해 우리의 재벌 구조조정 등 경제개혁 노력과 인권신장을 위한 의지 등을 미국사회에 천명할 예정이다.또 정부·의회·경제계·언론계 등 각계 지도자들을 만나 유대와 신뢰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잠재적인 대한 지원세력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金 대통령 미국 방문 주요 일정 ·뉴욕 6.6(토)=△서울 출발 및 뉴욕 도착 △유엔사무총장 면담 △국제인권연맹 인권상 수상식 ·뉴욕 6.7(일)=△동포리셉션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 전시실 관람 및 만찬 연설 ·뉴욕/워싱턴 6.8(월)=△뉴욕증권거래소 조찬 연설 △코리아 소 사이어티 아시아 소사이어티 미 외교협회(CFR) 공동 주최 오찬 연설 △뉴욕 출발, 워싱턴 도착 △워싱턴 동포리셉션 △PBS 방송 인터뷰 ·워싱턴 6.9(화)=△공식 환영식 △한·미 정상회담 △고어 부통령 주최 오찬 △공동기자회견 △국립묘지 헌화 및 한국전 참전기념비 방문 △국빈 만찬 ·워싱턴 6.10(수)=△미 상공회의소 조찬 연설 △상·하의원 양원 합동회의 연설 △상·하 양원 지도자와의 간담회 △조지타운대학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워싱턴 주재 특파원 접견 △주요인사 초청 리셉션 ·워싱턴/샌프란시스코 6.11(목)=△IMF, IBRD총재 초청 조찬 △워싱턴 포스트지 간부진 접견 △워싱턴 출발,샌프란시스코 도착 △샌프란시스코 동포 리셉션 △스탠포드 대학 연설 △실리콘밸리 벤처기업 방문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6.12(금)=△스탠포드대 총장 주최 오찬 △샌프란시스코 출발, 로스앤젤레스 도착 △로스앤젤레스 동포 리셉션 △주요인사 초청 만찬 ·로스앤젤레스 6.13(토)=△수행기자단 조찬 간담회 △LA 타임스 인터뷰 △로스앤젤레스 출발 ·서울 6.14(일)=△서울 도착
  • 혼미의 인도네시아… 총은 ‘약자’가 쏜다(박갑천 칼럼)

    인도네시아 사태는 암담하고 처참했던 우리 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학생시위와 과격 진압에 분노하는 시민의 합세와 장갑차와 한겨레 가슴에 불을 뿜는 총부리와….다만 방화·약탈 등 일부 시민들의 빗나간 난동만은 우리 경우와 다르다.결과는 모르나 대통령 하야설은 문득 40년전 李承晩을 연상케도 한다. “그 이승만의 4·19때 최루탄이 있었다면…”하는 가상론이 곧잘 나온다.피를 본 군중의 가세로 해서 파국은 더 빨리 다가왔기에 하는 말들이다.5·18광주민중항쟁은 어떤가.진압군의 무차별 발포와 잔혹행위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만 것 아니던가.그동안 최루탄 망국론도 나온 터이지만 사실은 그후의 수많은 시위에서 인명살상을 줄였다는 것이 최루탄 예찬론.그 최루탄을 넘어선 인도네시아 총소리는 마침내 쏜자의 조총(弔銃)으로 되들리게 될 것인지도 모른다. 부부싸움만해도 불뚝 성질내며 막말하는 남편은 아내한테 지는 법이다.백성을 네뚜리로 보면서 총기를 쓰는건 그런 남편에 비유할 수 있다.총기보다 무서운 것은 민심이기 때문이다.(31장)이 “무기는 상서롭지 못하다”(兵者不祥)고 말한 뜻도 그런 원리에서 출발되었다 할 것이다.는 계속하여 “남의 나라와 전쟁하며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는 자는 천하에서 뜻을 얻지 못하는 법”이라고 덧붙인다.한데 하물며 내겨레 가슴에 총을 겨누는 일이겠는가. 중국·인도·미국에 이은 세계 제4위 인구대국 인도네시아.13세기말께 기세등등 주변국을 굽잡아나간 원(元)나라 쿠빌라이의 침공군을 물리친 싱고사리왕국도 그들 조상이다.그에 이은 모조파이트왕조는 한때 동남아시아를 꺼두르는 황금시대를 구가하기도.오늘날 수도 자카르타거리나 대학이름에 보이는 ‘하얌=우르크’‘가자=마다’는 그 왕조때의 왕과 그를 보좌한 재상이름을 딴 것이다. 모조파이트왕조가 있었던 자바에서는 인도네시아를 ‘섬과 섬의 나라’란뜻으로 ‘누산타라’라 부른다.인도네시아란 이름은 독일 인류학자 A.바스티안이 ‘인도의 섬들’이란 뜻으로 ‘인도스 네소스’(Indos Nesos)라 부른데 기원한다고 한다.수도 자카르타는 ‘자카트라’라고도 하는데‘승리의 도시’라는 뜻이다. 천혜의 자원 가멸진 저력의 나라 인도네시아.승리의 도시 자카르타에서 울릴 승리의 소리는 어디서 어떻게 날 것인지.우리경제와도 관계가 깊은 나라이기에 우리의 관심도 유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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