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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열사 열전:16/연세대생 李韓烈(정직한 역사 되찾기)

    ◎‘최루탄 희생’ 6월항쟁 시민참여 계기로/대학입학후 사회의식 눈떠 시위 적극 동참/‘뇌사상태’ 알려지자 시민·학생 공감대 확산 1987년 6월9일은 80년대 한국 민주운동사에서 시민 승리의 한 분수령이 됐던 날이다.그날 일어난 연세대생 李韓烈(경영학과 2년)의 최루탄 피격 사건이 민주화 열망이 폭발한 6월항쟁의 중요한 기폭제가 된 것이다.시민들은 신문에 실린 이한열 사진을 보고 분노했다.그는 피를 흘리며 눈의 초점을 잃은 채 힘없이 동료에게 안겨 있었다.외국기자가 찍은 그 한장의 사진은 독재정권의 폭력성을 고발하기에 충분했다.시민들의 분노는 마침내 폭발했다.그 분노의 폭발은 민주화 투쟁의 원동력이 됐다. ○신문사진 보고 시민들 분노 이한열은 그날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6·10대회를 위한 연세인 총 결의대회’를 마치고 교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그리고 오후 5시 쯤 최루탄을 쏘며 달려드는 경찰에 쫓겨 학교 안쪽으로 달리다 SY44 최루탄에 ‘직격’으로 뒤통수를 맞았다.그가 쓰러진 교문 안 3m 지점과 최루탄을발사한 경찰과의 거리는 20m에 지나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쫓겨 들어가던 한 학생에 부축돼 경찰의 손을 피한 그는 동료들에 의해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다음 날 申廷淳 세브란스 병원장이 발표한 이한열의 용태는 거의 절망적이었다.신경외과 중환자실에 산소마스크를 쓴 채 입원해 있던 그는 두개골 골절 및 뇌좌상,뇌출혈,뇌이물질 등으로 의식불명이고 수술은 불가능한 상태였다.그러나 그의 절망은 민주화의 희망으로 승화됐다.그는 입원한지 27일만에 22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입원기간 동안 밖에서는 민주화를 향한 도도한 물결이 온 나라에 넘실대고 있었다. 그 물결은 87년 1월 서울대생 朴鍾哲 물고문 사망사건으로 비롯된 물줄기가 불어난 것이었다.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점화된 국민의 분노는 정권의 고문사건 축소조작 음모가 만천하에 폭로되면서 뜨겁게 타올랐다.4월 5공정권의 직선제 개헌 유보 발표는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결과를 가져왔다.‘호헌철폐’‘독재타도’로 압축된 외침은 서서히 학교를 빠져나와 도심 곳곳에 울려 퍼졌다.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사건은 독재정권에 결정타가 됐다. 최루탄 추방 국민대회가 전국적으로 열렸으며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메아리쳤다.회사원들이 빌딩 위에서 꽃다발과 휴지다발을 던지는 현상을 보고 외국언론은 ‘충격적’이라고 표현하고 ‘또 다른 형태의 민중의 힘’이라고 보도했다.‘넥타이부대’를 비롯한 중산층이 시위에 적극 가세하면서 부터는 6월항쟁을 단순한 학생시위에서 중산층의 민주화 욕구 분출로 결론짓기도 했다.6월26일 열린 국민평화대행진에는 6월항쟁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인파인 25만여명이 참여했고,결국 정권의 6·29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넥타이부대’ 대거 시위 참여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禹相虎씨(36)는 “한열이의 최루탄 피격은 학생과 시민의 결집력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회고했다.6월9일 이전까지만 해도 민주화투쟁의 승리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했지만 한열이가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공감대가 학생·시민들에 확산됐다는 것.그것은 도심 가두시위에 겁을 내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한열은 당시 학생운동권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8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와 서서히 사회의식에 눈을 뜨면서 1학년 2학기 이후 시위에 적극 참여했는데,이는 운동권 조직원으로서가 아닌,개인적 열정에 의한 것이었다.대학에 들어와 광주항쟁의 참상을 알고 분노한 수많은 학생 중 한명이었으며 고문 추방을 외치며 명동과 을지로 골목을 누비던 ‘보통학생’ 중 하나였다. ‘…그대 왜 갔는가/어딜 갔는가/그대 손목 위에 드리워진 은빛 사슬을/마저 팔찌끼고 갔는가’라며 박종철의 죽음을 목놓아 서러워 했던 여린 마음의 젊은이였다. 특별히 과격하지도 않은 우리의 착한 아들 딸도 정권폭력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 때문이었을까.이한열의 장례식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시민들은 6월29일 당일보다도 오히려 이한열의 장례일인 7월9일 6·29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듯 했다. ○시청앞 1백만 장례 행렬 연세대에서 10만여명으로시작된 추도행렬은 신촌네거리 노제를 지내며 30만,시청 앞에선 100만여명으로 불어났다.대형 태극기와 영정,‘한열이는 부활한다’‘한열아,너의 가슴에 민주를’ 등이 적힌 300여개의 만장을 앞세운 운구행렬을 수십만의 시민·학생이 따랐다.참으로 장엄했다.그것은 이한열을 애도하는 인파였고,민주사회를 갈망하는 국민 염원의 물결이었다.그리고 전두환 정권의 ‘항복’을 받아낸 6월 항쟁은 민주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의 발전이었다. □양력 ·1966년 8월 전남 곡성 출생 ·82년 2월 광주 동성중 졸업 ·85년 2월 광주 진흥고 졸업 ·86년 3월 연세대 경영학과 입학 ·87년 6월9일 연세대 교문 안쪽에서 시위 중 최루탄 피격 ·87년 7월5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사망 ◎이한열 어머니 裵恩心 여사/아들 소망 풀려고 민주화 운동/의문사 진상규명 법 제정해야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어두웠던 시대에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서 자식을 잃은 많은 어머니들.이들의 가슴에는 자식을 잃은 슬픔과 함께 자식이 죽기전 이루고자 했던 소망도 고스란히 묻혀 있다.이한열의 어머니 裵恩心(58) 여사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관심과 100만 추도 인파 속에 ‘성대히’ 아들의 장례를 치뤄 ‘속없는’ 사람들의 ‘부러움’까지 샀던 배여사.하지만 배여사는 오늘도 여의도 국회 앞 차가운 천막속에 있다.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벌써 24일 째다. “민주를 달라고 싸우다 숨진 사람들이 아직도 범법자의 굴레를 쓰고 있어요.암울한 시대에 권력에 의해 숱한 의혹을 남긴 죽음의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고요.이것을 그대로 묻어둔 채 진정한 새출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장례식에서 “이제 다 풀고 가라.엄마가 갚을란다.한열아… 한아 가자,우리 광주로”라고 피끓는 통곡을 토해냈다.그 이후 아들의 소망을 풀기 위해 민주화와 노동운동 현장에 항상 있었고,지금도 아스팔트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배여사는 “대통령도 특별법 제정 검토를 지시했고,국회의원들도 만나는 사람마다 협조하겠다는데 법안은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며 답답해 했다. ◎피격현장 동료 이종창씨/한열이 모습 아직도 생생/항쟁의 정신 잊지 말아야 6월항쟁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한장의 사진이 있다.이한열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힘없이 늘어져 있고,한 학생이 그를 껴안은 채 분노의 눈빛으로 앞을 쏘아보고 있는 사진이다.로이터통신 기자가 극적으로 잡은 이 장면은 세계 곳곳으로 한국 민주화투쟁을 알리는 생생한 기록으로 알려졌다. 그 분노한 눈빛의 주인공인 이종창씨(32·연세대 상경대도서관 사서)는 “‘내일 시청 앞에 가야 하는데’라고 힘없이 말하던 한열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도서관학과 2학년이던 그는 그날 학교 앞 택시정류장 쪽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경찰에 쫓겨 최루가스로 거의 앞이 안보이는 상태에서 뛰어 들어가다 왼쪽에 검은 물체를 느꼈지요. 한열이었습니다. 20여m 앞에 전경들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그를 껴안고 무조건 뒷걸음질 쳤습니다” 그는 이한열을 20m 이상 끌고 가다 먼저 쫓겨갔던 학생들이 달려왔을 때에 야 기진맥진해 주저앉았다.“쓰러진 한열이가 경찰 손에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오싹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씨도 6월항쟁의 대표적 피해자 중 하나다.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은 며칠뒤 그 또한 학교 앞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던진 돌을 머리에 맞았다.2회에 걸친 뇌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회복될 수 있었다. 6월 항쟁의 한 가운데 있던 그는 항쟁의 정신이 너무 쉽게 잊혀지는 것 같다며 못내 아쉬워 했다.언젠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세대 백양로를 지나는 학생들에게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사진을 보이자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라는 것.민주화의 밑거름이 됐던 그때의 뜨거운 열정과 희생의 참뜻은 우리 젊은이들의 가슴에 꼭 살아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 사상 검증과 인권 침해/黃台淵 동국대 교수·정치학(대한광장)

    과거 서독의 사상검증관행과 ‘방어민주주의’라는 냉전의 유물이 21세기를 코앞에 둔 오늘날 한국에 끌려나와 고생을 하고 있다.독일제도를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필자는 이에 관한 최근 논의의 허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서독은 정부수립과 함께 나치분자의 공직침투를 막으려고 ‘방어민주주의’라는 법이념을 정립하였다. 1950년초 냉전이 격화되자 분단국가 서독은 이 ‘ 방어민주주의’를 확대·적용하여 헌법재판으로 1956년 공산당(KPD)을 불법화하였다.그러나 이 재판에 입각한 안보형법은 곧 ‘생사람 잡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게다가 이 법률은 사민당 정부가 동서해빙을 위해 새로 추진하는 동방정책의 걸림돌이 되었다.이로 인해 사민당 정부는 이 법의 폐지와 함께 새 공산당(DKP)을 다시 합법화하였다.이로써 서독은 이미 1969년에 법적으로 ‘열린 자유민주주의’로의 민주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민주발전 막는 냉전 유물 그러나 나치와 극좌파의 공직 침투를 우려한 주(州)지사들은 ‘우익·좌익과격파의 정치활동에 관한 주(州)정부 수반들의 결의’(1972)를 마련하였다. 이 ‘결의’는 원래 인사상의 신원조회 내규에 불과하였으나 1975년 합헌판결과 함께 마치 사상검증제도처럼 기능하면서 인권침해 논란에 휩싸였다.이에 사민당 정부는 1979년 이것을 ‘헌법충성검증 원칙’으로 완화하였다가 1980년대에는 이것마저도 사문화시켰다.사민당은 1989년 베를린강령에서 이 검증정책이 ‘민주주의의 적을 양성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스스로 비판한 바 있다.서독은 통일되기 약10년전 이미 닫힌 ‘방어민주주의’로부터 ‘열린 자유민주주의’로의 완전한 정치발전을 이룩한 것이다.이 시점을 호도(糊塗)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도 독일의 보수적인 주에서는 서면질의 방식의 검증이 있다는 말도 옳지 않다.보수적인 바덴­뷔르템부르크주의 정치교육원 원장인 슐레씨는 지난 11월7일 필자의 질의에 대해 “그런 건 사라졌다”고 확언하였다. 오늘날 독일은 과거 적군파 변호사와 과거 무정부주의자가 장관으로 재직중이고,한주는 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사당의 통치하에 있는 나라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인권 중의 인권’이라고 말한 옐리네크에 주목하자.남의 사상을 검증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이다.유일하게 인권유보의 권능을 가진 법률의 근거 없이는 어떤 언론과 국가기관도 사람의 사상을 검증할 수 없다. ○진보학자 언론검증 안될일 이 ‘원칙’을 알고 우리 현실을 보자.한국은 서독과 달리 전쟁을 겪은 분단국가로서 국가보안법을 짐으로 짊어지고 있다.한국에서 과거 서독의 관행을 빗대 공직자의 사상을 검증할 여지는 있으나,이 비교논의는 한계를 지켜야 한다.첫째,이 검증은 극우·극좌파에게만 적용되었다.따라서 훨씬 온건한 진보학자에게 이것을 원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둘째,‘일반공무원’만이 검증의 대상이었다.‘정치공무원’이나 ‘위촉된 민간인’과는 무관한 것이다.이 경우에는 인사권자의 판단이 최종적이다. ‘위촉된 민간인’ 자문위원장의 사상에 대한 언론의 검증은 있을 수 없고 국회의 검증도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이 ‘검증’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고유한 권능에 속한다.야당과 친야 언론은 ‘위촉된 민간인’에 관해 ‘논란’할 수 있으나 사상검증으로 비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스런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 테러 代父 라덴 빈털터리 전락(뉴스 인사이드)

    ◎유산 3억달러 바닥… 막대한 후원금 급격히 줄어/국제운용펀드 거덜… 비자금 美 공작 회수 불가능/테러범들에 무기 팔아 核 손에 넣어 살길 모색 국제 테러 대부격인 오사마 빈 라덴이 최첨단 테러용 무기 ‘바겐세일’에 나섰다고 미국의 주간 이그재미너가 최신호에서 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부호 출신으로 최근 엄청난 유산이 바닥나 버렸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근본주의자로 그동안 막대한 재산을 과격 회교 테러단체들 지원에 써온 것으로 알려진 그가 무일푼이 된데는 250명이 희생된 지난 8월의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 연쇄 폭탄테러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피해 당사국 미국이 테러사건의 강력한 배후 조종자로 라덴을 지목,직접 체포활동에 나섰는가하면 조직적으로 그의 ‘재정난’을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한게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라덴이 상속받았던 유산 3억달러가 이미 바닥났고 테러활동을 지지하며 후원해 주던 막대한 기부금마저 급격히 줄어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몰아 치면서 지금껏 운용해오던 국제펀드마저 거덜나버렸다. 숨겨둔 자금도 미국의 방해로 몽땅 회수불능의 ‘공수표’가 되면서 라덴은 ‘땡전 한푼없는 빈털터리’로 전락해 버렸다. 당장 먹고 살기마저 어려워지자 라덴은 획기적인 ‘이벤트’를 생각해 냈다. 최첨단 무기를 구입하고 싶어하는 국제 테러범들에게 ‘세일 초대장’을 보냈다. 지금껏 사 두었던 무기들을 일제히 염가에 판매하기로 한 것. 할인 판매라고는 하지만 하나같이 최첨단 무기이고 보니 판매대금이 상당한 액수일 것이고 또 계산이 확실한 만큼 현금 들어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이그재미너는 전했다. 실제 라덴의 근거지인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계곡에 마련된 이 무기 할인판매장을 다녀온 국제 테러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대단했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이는 “마치 제임스 본드가 나오는 007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며 “온갖 최첨단 무기들이 선을 보였으며 이를 사려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킬러들로 굉장한 무기장터가 연출됐었다”고 전했다. 한편 라덴이 이처럼 현금확보에 기를 쓰는 이유는 바로 ‘핵무기를 구입하기 위해서’라고 이그재미너는 국제 첩보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분석,보도했다. 이어 라덴은 무기대금을 받는대로 옛 소련의 친(親) 이슬람 공화국을 방문,핵무기 구입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다양한 사상·주장 포용해야/姜珉 단국대 명예교수(특별기고)

    이분법적인 이데올로기가 냉전의 산물이라면 탈냉전 시대의 당연한 논리적 귀결은 사상의 다양성이다. 이미 탈냉전 속에서 염원했던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석학 울리히 벡 교수는 『정치의 재발견』이라는 그의 근저(近著)에서 “냉전시대의 제도나 정치적 개념들을 가지고는 탈냉전 시대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고 설파하고 있다. 분명 이분법적 사상의 잣대로 현실을 분별하는 시대는 가고 있다. ○이분법적 논쟁 끝낼때 최근 崔章集 교수의 논문을 왜곡 보도함으로써 벌어졌던 일련의 ‘사상논쟁’에 우리가 크게 주목하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시대의 흐름을 직시하며 사태를 올바르게 파악한 사법부의 판단과 판정으로 일단 자제하고 자중하는 태도로 돌아갈 계기를 맞은 이 시점에서,우리는 이번 사태가 주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올바르게 이해 할 필요가 있다. 벡 교수의 논지가 말해주듯 정치의 역사를 정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구 소련과 동구라파의 몰락으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에 지나치게 도취되어 ‘승리의 위기(Victory crisis)’ 속으로 빠져들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민주화(Democratizing of democracy)’ 하는 새로운 작업에 다같이 나서야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기성복’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세기만에 야당이 이룩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지는 의미는 다시 이분법적인 사고(思考)로 회귀하거나 뒷걸음 칠 여유가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다양한 사상과 사고의 자양분을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절실히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崔章集 교수의 ‘사상논쟁’ 에 내려진 이번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이 주는 메시지의 첫 번째 의의를 우리는 이점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은 소모적인 이분법적 사상논쟁이 이 땅에서도 사라질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이번 사태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과거와는 달리 국가의 공안기관이 아닌 사회의 한 언론기관이 ‘사상검증’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이것을 한국 민주주의의 다양성으로 보기에는 첫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진 느낌을 준다. 언론자유란 오보의 자유나 사실 왜곡의자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논리의 비약 더욱이 이분법적인 사고를 극심하게 나타내는 한 당사자의 말대로 “이번 싸움은 崔章集 교수 대 월간조선의 싸움이 아니라 崔교수 대 대한민국의 싸움”이라면 그 논리의 비약은 실로 위태롭기까지 하다. 북한의 실권자였던 金日成도 흔들지 못 하였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崔교수 개인이 좌지우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선정주의’의 단순논리치고도 정도가 지나쳤다. 다시,이 분야에 권위있는 영국의 한 석학의 말을 들어보자.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라는 최근의 저서 속에서 안소니 기든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오늘날 극우세력은 과거의 향수에 매혹되어 더 과격해져 폭력의 잠재성에 의존하게 된다.” 그가 말하는 폭력에는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언론폭력(言論暴力) 및 지적폭력(知的暴力)도 포함된다고 하겠다. 적(敵) 아니면 동지라는 칼 슈미트적인 논리와 사고의 결과는 폭력의 재생산을 촉진할 뿐이다. 이러한 요지의 우려가 두 번째 메시지로 우리에게 전달됨을 부인 할 수 없다. 세번째 메시지는 지식인인 崔章集 교수와 공인(公人)인 崔章集 위원장에 관한 내용이다. ‘아는 것이 힘’ (베이컨) 이라는 명제가 말해주듯이,지식도 분명히 권력이다. 따라서,지식인의 목소리는 권력으로 작용한다. 더욱 공인일 경우(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지식은 큰 권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崔교수가 대통령 자문위원회 위원장이니까 대통령에 대한 목소리가 클 것이고,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논리 또한 단순한 이분법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특정인 사상검증 요구는 함정 대통령은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매일 떠들어대는 것이 누구인가,언론들이다. 그러면서도,사상의 다양성이나 주장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부 언론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대한민국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민주적인 공인의 윤리와 그의 주장이 갖는 논리의 전제는 다양성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공인 崔章集만은 사상검증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전제 자체가 허구이며,음해의 함정마저 내포한다. 탈냉전을 맞아 다양한 사상과 주장을 포용하는 관용이필요한 때이다.
  • ‘98민중대회/요구는 ‘과격’ 질서는 ‘만점’

    ◎여의도 한강둔치서… 새정부 출범후 최대 집회/“재벌 해체” “부패정치인 재산 몰수” 큰목소리/경찰과 충돌없어 성숙한 집회문화 과시 9일 하오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린 ‘98 민중대회’는 참가 인원와 단체면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다.민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 등 60개 시민사회단체의 회원 2만5,000여명이 참석했다.행사를 주최한 단체들은 집회에 7만여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요구와 주문도 다양했다.10대 요구안에는 ‘IMF를 불러들인 경제파탄 책임자 처벌’에서부터 ‘민주열사 특별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현안들이 망라됐다.주된 기류는 사회적 개혁이 미진하다는 것이었다.“정부가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오는 12월 중순에 제2차 민중대회를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치르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나왔다. 참가자들은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며 다른 단체의 주장을 진지한 모습으로 경청하고 박수를 보냈다.행사를 전후해 경찰과의 충돌도 없었다. 첫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선 민주노총 李甲用 위원장은 “60만 조합원은 불평등한 IMF협약 폐기를 통한 경제주권회복과 경제파탄의 주범인 재벌해체,부패관료·정치인 재산몰수 등을 위해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 총연맹 李수금의장은 “농산물 저가격정책과 농산물 수입개방 등 정부의 잘못된 농정으로 농민들은 IMF위기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정부는 농가부채 해결과 농축산물 가격보장 및 소득보장 등 농가파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빈민운동연합준비위원회 梁연수위원장은 “실업대란으로 노점상과 노숙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소외된 빈민들에 대한 정책은 거의 없다”면서 “관료들이 군림하고 재벌 위주의 정책을 펴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는 11일 총파업을 결의한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노조원 1,200여명은 “사납금제도는 시민에게 불친절하고 난폭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제도였다”면서 “택시기사에게 안정된 작업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월급제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들은 200여명의 대표자지문이 찍힌 플래카드 들고 나와 단결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사전행사로 전국교사대회를 개최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올바른 교육개혁’과 ‘교육노조 법제화’ ‘인간화교육’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개회사를 통해 “교육환경 개선없이 경제논리에 의해 차등보수제, 수습교사제,정년단축 등을 도입하는 정책은 학교 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대회장 소식과 연설내용,현장모습은 인터넷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됐다.
  • 팔,아라파트 암살조직 적발/이란서 자금·훈련 제공

    【라말라(팔레스타인)AP 연합】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에 대한 암살 모의가 잇따라 적발됐다. 팔레스타인 보안군이 최근 몇달 사이에 이란의 지원을 받아 아라파트 등을 암살하려는 회교 과격파를 적발했다고 아라파트 수반의 고위 측근이 3일 밝혔다. 타이엡 압델 라힘 비서실장은 “암살 모의를 한 여러명의 과격분자를 체포했다”면서 “이란이 암살과 이스라엘에 대한 자살폭탄 공격을 노리는 과격단체 하마스의 지하조직에 자금과 훈련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라힘은 지난 10월 팔레스타인 정보요원들이 요르단강 서안의 헤브론에서 하마스 행동대원 1명을 체포해 아라파트 암살 지령을 이란으로부터 받았음을 자백받았다고 덧붙였다.
  • 명암/세계의 화약고/중동 또 화약 냄새 코소보 평화 문턱

    코소보는 상황 끝.중동은 아직 계속.최근 잇따른 평화협정 체결로 잠잠해지나 했던 세계 2대 화약고인 코소보와 중동지역에 명암이 크게 엇갈린다.보다 쉽게 평화에 합의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은 다시 전운이 서서히 감돈다.반면 터지기 직전 시한폭탄이었던 코소보는 예상보다 빨리 평화가 깃들어 가고 있다. ◎중동/이·팔 매파 반발 유혈사태 가능성/협정이행 불투명 중동에 전쟁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요르단강 서안의 땅과 평화를 교환하는 ‘와이 리버’ 협정 체결을 둘러싸고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내 과격파 세력들이 거세게 반발,협정 이행이 불투명해지고 있다.협상 당사자간에도 불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으며 유혈사태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주 조인한 ‘와이 리버’협정을 29일 내각에 제출할 계획이었으나,팔레스타인측이 미국에 구체적인 테러방지책을 내놓을 때까지 내각의 협정 심의와 표결을 연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과격파 하마스(이스라엘 해방운동) 등 6개 팔레스타인 단체들은 협정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냈다.그들은 이번 협정은 팔레스타인을 무력화하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음모라며 이스라엘의 완전한 철수없는 화해는 환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유태인 정착민과 팔레스타인 주민들간의 보복 살해사건은 가장 큰 걸림돌이다.요르단강 서안 북부의 이타마르에서는 팔레스타인 주민 3,000여명이 27일 피살된 팔레스타인 노인의 장례식에 참석,피의 보복을 다짐했다. ◎코소보/나토 공습 유보 세르비아군 철수/戰雲 서서히 걷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27일 신유고연방 공습을 유보키로 결정,발칸반도 위기는 완전히 한고비 넘겼다.나토는 최후통첩일인 이날 유고정부가 코소보에서 4,000여 병력을 철수했다며 공습명령을 일단 접는다고 발표했다.유고연방 군과 경찰은 26일부터 코소보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유고 군과 경찰이 철수하면서 알바니아계 반군 코소보해방군(KLA)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20여개의 검문소를 해체했으며,코소보내 많은 도로 검문소에 배치됐던 중무장 경찰은 정규 경찰로 대체됐다.나토 사무총장 자비에르솔라나는 “검문소들이 해체돼고 있고 주둔 보안군수도 지난 2월 분리주의 봉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하지만 낙관은 이르다는게 이곳의 분위기.밀로세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은 버틸만큼 버티다 데드라인을 하루 앞둔 26일 철군에 나섰다.철군개시 이후에도 일부지역에서는 총성이 오갔고 사상자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나토는 전시편제명령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나토가 언제라도 공습작전에 돌입할수 있다는 의미다.밀로세비치의 또다른 술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다.
  • 國監 이대로는 안된다­전문가가 본 개선방안

    ◎전문성 확보­청문회 확대를/몇개 수감기관만 집중 감사/문제점 해부 대안 제시해야/특검제 통해 효율성 제고를 각계 인사들은 올해 국감에서도 재연되고 있는 구태(舊態)를 벗어나기 위해 의원들의 전문성 확보와 상임위 상설화,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제안했다. ○회계전문인력 두도록 ▲金炳午씨(전국회의원)=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를 관리하느라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정작 본령인 국정감사는 시일이 임박해서야 준비를 하게 된다.내 경험으로는 내실 있는 감사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은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먼저 해당 분야의 전반적인 숙지가 필요하다.그래야 제보나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을 때 문제의 핵심을 포착할 수 있다.문제가 포착되면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자료를 확보하고 반드시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피감기관의 핵심자료 제출 회피는 국정감사때마다 제기되는 문제다.물론 의원들의 마구잡이식 자료 요구도 문제다.준비가 안된 의원일수록 포괄적으로 자료를 요구해놓고 거기서 문제를 찾으려 한다.그러나 피감기관은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핵심을 피해 껍데기만 보내는 수가 많다.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료 요구를 해야 핵심이 빠졌을 경우 재차 요구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경우 의원 1인당 유급 보좌진이 20여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여비서까지 합쳐 고작 4명이다.이 인력으로는 내실 있는 감사준비를 할 수 없다.예산결산의 경우 국회사무처에 회계전문 인력을 두어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상임위 상시운영 필수 ▲崔容碩씨(변호사)=88년 부활된 국정감사제도는 상당한 순기능과 함께 문제점도 많은 게 사실이다.그러나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듯 대기업 비리를 공개한다고 했다가 정작 국감장에서는 아예 빼버려 로비 의혹을 불러 일으켰는데 실제로 한보사건수사 때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또 질문만 마치고 답변은 듣지도 않은 채 휑하니 국감장을 떠나거나 사전준비 소홀로 엉뚱한 질문을 했다가 피감기관으로부터 망신을 당하기 일쑤다.게다가 피감기관으로부터 최고급 식당에서 대접을 받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피감기관도 ‘그저 한 고비만 넘기면 된다’라든가 의원들이 서면답변을 요구하면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대책을 강구중이라는 등 두루뭉수리한 대답으로 일관해 마치 작년 녹음기를 듣는 것 같다.일부에서 국감 무용론을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는 국정감사 본연의 취지에 맞는 전문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를 강구해야 할 때가 왔다.국회 상임위원회의 상시운영이 필수적이고 국정감사는 1년에 한번씩 점검하는 형식이 되어야 한다. 또한 방만한 피감기관의 선정보다 문제기관을 집중 감사하는 쪽으로 선회해야 한다.의원들은 정부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법제예산실이나 입법조사 분석실 등 국회 내부의 정보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인신공격과 한건주의식 폭로에만 매달리는 함량 미달의 국감을 더 이상 원치 않는다. ○중립 기관이 의혹 규명 ▲申律씨(명지대 교수·정외과)=대다수 국회의원들의 전문성 결여는 과격한 행위와 표를 의식한 지나친 반응을 야기시킨다.국정감사의 효율성도 문제다. 의회가 역사적 흐름 속에서 발생한 유럽의 경우 국정조사권만 존재하지 국정감사권을 의회 권한으로 갖고 있는 국가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또 정례적인 국정감사를 통해 행정부를 통제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수 있지만 정례라는 수식어가 의미하듯 하나의 의례적 행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례적인 국정감사보다는 국정조사권의 활성화,그리고 무엇보다도 청문회제도의 정착을 통한 특별검사제도의 시의적절한 적용이 시급하다고 본다.특별검사제도의 경우 중립적 입장에서 정치 과정에 나타난 의혹들을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질 뿐아니라 전문성 있는 인사들의 조언을 그때그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 국민이 정부의 행위를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는 더 이상 국회의원들의 자기 과시 장소이어서는 안된다.만일 그러한 과시 장소로 국정감사가 자리매김한다면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정책집행과 연계돼야 ▲安秉玉씨(국회운영위 심의관)=88년 부활해 11년째로 접어든 국정감사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 정책·민생 국감과 거리가 있다.대부분 상임위가 정치 공방으로 IMF 이후 민생대책을 소홀히 하고 있다.특히 ‘사후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국감 이후 예산심의와 향후 입법활동,정책집행과 전혀 ‘연계성’이 없는 실정이다. 둘째로,감사대상 기관이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올해 경우 329개 기관이다.경우에 따라 한 상임위가 하루 2∼3개 기관을 감사해야 되고,자연스레 부실 국감으로 이어지고 있다.사용 예산과 중요도를 감안해 불필요한 기관은 과감하게 제외,능률 있는 국감이 돼야 한다. 셋째,짧은 감사기관에 비해 서류제출 건수와 증인이 너무도 과다하다.올해의 경우 16개 상임위는 총 4만8,738건의 서류제출을 요구했고,2,721명의 증인을 채택했다.하지만 효율적인 감사가 이뤄지지 못해 행정부의 업무마비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넷째로,감사 방법과 기법에 문제가 있다.현재 상임위 현황보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이 때문에 피감기관도 “하루만 참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다.총체적인 개혁이 시급한 실정이다.
  • 중동협상 주역들 무사할까

    ◎아라파트­아랍권 매국노 지목 ‘암살리스트’에/무바라크­10여 차례의 암살기도 간신히 모면/네타냐후­이스라엘 정착촌서 ‘반역자’로 불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23일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베냐민 네타야후와 야세르 아라파트 등 협상 주역들이 발 뻗고 자기에는 시기상조인것 같다. 과거 중동협상의 전기를 마련했던 주역들이 강경 과격단체들에게 피살되거나 위험에 처하면서 성과가 물거픔이 됐던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협상주역들에 대한 신변안전도 평화정착에 중요한 문제인 셈이다. 첫 희생자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79년 이스라엘 베긴 총리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시나이반도 반환 문제 등을 타결 지음으로써 중동에 평화의 씨앗을 뿌렸다.그러나 81년 카이로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인 ‘이슬람 지하드’ 소속 장교들에게 암살당했다. 95년에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가 과격 우익단체에 의해 피살된다.93년과 94년 팔레스타인 및 요르단과 각각 평화협정을 체결,적대관계를 청산,아라파트와 노벨평화상을 함께 받았으나 기뿜도 잠시.이듬해 시리아와 관계 개선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었다. 아라파트도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협정을 체결한 이후 아랍권에서는 ‘매국노’로 지목돼 암살대상 리스트에 올라있으며 여러 차례 암살기도가 있었다.라빈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중동평화중재로 이집트를 외교 강국으로 부상시킨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국내 이슬람 근본주의자 단체들의 10여차례에 걸친 암살기도를 간신히 모면했다.이번 협상의 숨은 주역 후세인 요르단국왕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네타냐후도 벌써부터 이스라엘 정착촌에서는 ‘반역자’라는 말이 나돈다.호사가들은 ‘순교자’가 또 나올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 황성신문과 동지적 관계(다시 태어난 ‘대한매일’:7)

    ◎일제 강점기 민족 이끈 ‘두바퀴’/친일비판·을사조약 반대 등 배일 역설/애국계몽·국채보상운동도 함께 주도/1910년 폐간때까지 항일의 구심점역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방성대곡).흔히 을사조약이란 비극적 상황의 대명사로 통하는 황성신문의 논설이다.그러나 정작 ‘시일야방성대곡’에 얽힌 비참한 사연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이처럼 대한매일과 황성신문은 일제 강점기 험한 가시밭길을 함께 헤쳐간 민족의 양바퀴였다. 1905년 을사조약을 전후해 발간된 당시 신문들은 각각 뚜렷한 색채를 갖고 나름대로 목소리를 냈다고 할 수 있다.대한매일과 황성신문,그리고 제국신문 만세보 대한민보 국민신보 대한신문 경향신문 등이 그 대표적 매체들이다.신문 성격만큼이나 을사조약과 일제 침탈을 둘러싼 논조에선 극명하게 대립했다.또 의병활동과 애국계몽운동에 대해서도 현격한 논조 차이를 보였다.그러나 이 가운데 대한매일과 황성신문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반일 논조를 확연하게드러낸 양대 산맥이었으며 공동운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1905년 11월3일 유신회와 진보회가 합동한 친일 단체 일진회가 발표한 이른바 ‘일진회선언서’에 대한 공박에서부터 같은 논조를 벌인 두 신문은 을사조약에 대한 무효화 투쟁에선 그야말로 하나가 됐다.조약 체결의 속사정과 강점 과정을 앞다투어 파헤쳐 격변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읽어냈다고 평가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을사조약을 앞둔 시점에서 일진회 준동에 대한 공동보조는 그 시초랄 수 있다.일진회가 일본 침략 행동을 찬동·지지하고 이를 반대하는 여론을 공격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자 두 신문은 이를 통렬히 반박하는 논설을 일제히 실었다.당시 정부에서도 선언서에 현혹되지 말 것을 훈령으로 고시할 정도였으나 일제의 득세에 따라 국민신보 대한신문 등 친일지들이 나타나고 언론도 완전한 대립 상태에 빠진다. 을사조약에 반대한 황성신문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대한매일이 유독 황성신문의 논조를 적극 지지했다.그해 11월20일 ‘시일야방성대곡’이 나간 뒤 張志淵 사장이 붙잡혀가고 정간 조치가 내려졌을 때였다.대한매일은 ‘황성의무’란 논설을 통해 저간 사정을 통렬히 비난하고 황성신문을 적극 찬양하고 나서 일반인에게 진실을 알렸다.조약 체결의 속사정을 파헤친 황성신문의 ‘신조약청체전말’을 호외로 발간해 세세하게 다시 싣고 무효화선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제국신문이 을사조약에 대해 ‘한때 분함을 참으면 백년 화근을 면함이라’는 글을 싣고 대한일보가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 논설을 ‘경거망동’으로 비난한 것을 보면 당시 대한매일의 강경한 논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의병운동에 대한 관점에선 다소 차이를 보인 게 사실이다.대한매일이 강한 논조를 편 데 비해 황성신문을 비롯한 나머지 신문들은 민중의 혁명적 변혁과 대중투쟁을 간과한 것으로 학계는 평가한다.대한매일이 지방소식란에 매일 의병투쟁 소식을 실은 데 비해 타지들은 ‘무익한 폭거’‘부질없는 행동’으로 돌렸다.황성신문조차도 1906년 5월20일자 논설 ‘의병들의 소요는 마땅히 빨리 진압돼야 한다’는 논설을 실을 정도였다.그나마 황성신문은 일본군의 의병 진압과 민간인 학대까지 찬성하지는 않았다. 애국계몽운동과 경제사정에 관해서는 두 신문이 한 길을 택했다.특히 교육발전과 일제의 경제적 침투에 반대하는 자주적 산업건설 대목에선 철저하게 같은 논조를 폈다.황성신문이 먼저 1906년 2월13일자 논설 ‘경고동포’에서 지식 보급,대중계몽의 의의와 그 절박함을 지적했다.대한매일도 이어 8월3일자 논설 ‘한국의 실업’에서 실업국민(實業國民)이 되기 위해 △자국 비용품은 자국에서 공급할 것과 △국산품 수출자가 될 것을 역설한 것은 그 대표적 예다.이같은 계몽운동은 두 신문이 국채보상운동의 최일선에 나서는 것으로 연결된다. 황성신문과 대한매일 두 신문은 1910년 폐간될 때까지 나라의 운명과 사회흐름을 예리하게 감지해 운동력을 키운 시대의 견인차인 것이다. ◎당시 親日紙 행각/을사조약이후 제국신문 등 변절 일제옹호 앞장 대한매일과 황성신문이 을사조약 무효화선언 등 항일투쟁의 기치를 올린 것과는 달리 친일 신문들은이같은 민족지들에 결사코 반대하며 일제를 옹호하고 나서 대조를 보인다. 일본인 경영의 국문지인 대한일보는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 게재를 경거망동이라고 비난한 대표적 신문.張志淵이 구속에서 풀려나고 황성신문이 복간되자 ‘황성기자패론’과 ‘여장지연군’이란 제목의 글로 오히려 장지연의 논조가 그릇되며 고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제국신문의 경우 자주독립을 주장한 민족지 성격이 강했으면서도 이때는 논조의 일관성을 잃은 것으로 비쳐진다.이 신문은 1904년 2월 강압적으로 체결된 한일의정서에 대해 “시정개정의 충고권이란 결국 침략의 제일보”라고 비판했다.그러나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에는 태도를 바꿔 11월22∼23일 이틀에 걸쳐 ‘한때 분함을 참으면 백년 화근을 면함이라’는 글을 실었다.황성신문 정간사태에 대해서도 “과격한 논조로 나가면 탄압을 받아 신문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논조를 폈다. 1906년 1월 친일파의 영수 宋秉畯 李容九 등이 일진회 기관지로 발행한 국민신보는 처음부터 열렬한 친일로 나섰다.1906년 9월2일자 2면에 게재한 ‘궁문파엄’(宮門把嚴)이란 글은 단적인 예다.이 글은 “궁궐 문을 지키는 일을 힘써 수행해야 한다.혹시 협잡배가 각종 수단을 부려 군주의 총명을 막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대궐을 지키는 일본군에게 을사조약을 반대하는 신료의 침입을 막아 고종황제의 뜻이 외부로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경계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민족지의 하나인 천도교계의 만세보는 경영난으로 친일 진영에 넘어가 대한신문으로 탈바꿈한 다음엔 입장을 바꾸었다.이 신문은 언론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한 李完用이 인수해 李人稙에게 발행을 맡긴 것으로 친일 내각의 옹호와 그 선전에 적극 나섰다.
  • 독일 슈뢰더의 집권(사설)

    독일 총선에서 중도좌파 정당인 사민당이 16년만에 집권에 성공,총리가 확실시 되는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독일 통일을 이루고 유럽 통합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온 기민당의 헬무트 콜총리가 패배의 쓴 잔을 마신 것은, 독일 국민들이 콜총리의 16년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낀데다 집권 기민당이 통일의 후유증인 실업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에 반해,슈뢰더가 이끄는 사민당은 경제활성화와 사회정의를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다. 단독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사민당은 녹색당과 좌파연정을 협의하고 있는데,녹색당은 원자력발전과 북대서양조약기구 문제등에서 과격한 주장을 하고 있다.사민당이 녹색당과 정책적 조화를 어떻게 이뤄갈 지 주목된다.10%선에 이르는 실업문제만 해도 슈뢰더가 집권 제일성으로 ‘실업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심각하다.그럼에도 경제활성화과 노사정 합의를 통해 실업을 극복하겠다는 프로그램과 복지확대 정책은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독일 사민당의 집권은 독일 국내정치뿐 아니라 유럽 정치,나아가 세계 정치에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사민당의 집권으로 유럽연합(EU)15개국 가운데 절대다수 국가에 중도좌파 정권이 들어섰다.지난 3년동안에 일어난 이같은 엄청난 변화는,동서냉전 시대의 유제(遺制)인 우파정권으로서는 새로운 세기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유럽인들의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또 하나 주목할 점은 슈뢰더가 내세우고 있는 정치철학 혹은 거대 담론의 실험이다.새로운 사회주의 또는 ‘제3의 길’로 표현되는 이 담론은,경쟁과 이윤을 최고가치로 하는 극단적 자본주의도,시장과 사회를 철저히 통제하는 극좌적 사회주의도 결국은 인류의 행복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역사적 반성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지양적 융합’이라는 이 담론의 타당성 여부는 아직 실천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다.그럼에도 영국의 블레어 총리,프랑스의 조스팽 총리,이탈리아의 프로디 총리등 젊은 중도좌파 정치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된 슈뢰더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이뤄낼 지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결과물을 검토하기 앞서 실험과정 자체만으로도 세계사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독일 사민당의 집권으로 한·독 관계에 당장 큰 변화는 없겠지만,슈뢰더의 지향점을 주시해서 우리의 대외정책이나 통일정책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 사민당 웃지만… 赤·綠 연정 산넘어 산/슈뢰더의 독일시대

    ◎지도부 시큰둥… 녹색당 정책과 마찰/기민·기사당과 大聯政은 “공약 위반”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사민당(SPD)이 마냥 좋기만 한 게 아니다.정권을 단독으로 인수할 수 있는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해법은 다른 정당과 연합하는 방안. 우선 떠오는 상대는 녹색당.사민당은 선거전에서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하겠다”고 공언해왔다.더구나 녹색당은 선전하면서 사민당과 손을 잡으면 연방 하원에서 의석이 과반수를 넘는다. 그러나 막상 선거결과가 나오자 사민당 지도부는 녹색당과의 연정 구성에 시큰둥하다.한마디로 손을 잡는데 걸림돌이 있다는 얘기다. 녹색당은 특히 △휘발유값 3배 인상 △북대서양 조약기구 해체 △원자력발전소의 ‘즉각’ 폐쇄 △일부 마약의 합법화 등 사민당이 수용할 수 없는 정책들을 고집해 왔다.슈뢰더는 수차례에 걸쳐 녹색당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촉구했었다. 사민당이 택할 수있는 다른 카드는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대(大)연정’을 구성하는 길.이같은 기미를 알아채기라도 한듯 기민당과 기사당 지도부는 ‘연정 협상의 문은 닫혀있지 않다’면서 ‘사민당이 먼저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라고 흘리고 있다. 그러나 걸림돌은 있다.유권자와의 약속 위반이라는 정치 도의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사민당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과 ‘대연정’을 구성하는 사태가 일어 나지 않도록 구 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사당(PDS)의 의회 진출을 막아달라고 호소했었다. 또 있다.기민당의 자매 정당인 기사당이 ‘대연정’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기민당이 사민당과 손을 잡기 위해서는 기사당과의 협력관계를 포기해야 하지만 2차 대전후 50년동안 운명을 함께 해온 터이고 보면 ‘대연정’의 길도 험난하기만 하다. ◎슈뢰더의 정책방향/복지·외교 등 ‘강한 독일 만들기’ 펼듯 게하르트 슈뢰더 정부는 대내적으로는 중·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유럽과 미국 등 서방 진영과 동반자 관계수립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신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뭐니뭐니해도 400만명에이르는 실업자 군단을 감축하는 작업.기민당은 이미 선거전에서 10.3%의 높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 법인세 인하와 임금 부대비용 삭감 등 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목청을 높여왔다.공급위주의 해결책이다. 반면 사민당의 슈뢰더는 일자리 공유를 해법으로 제시해 왔다.주당 35∼38시간의 근로시간을 30시간까지 단축해서 일자리를 나눠갖자는 것이다.고용확대를 위해 노·사·정(勞社政) 3자 연대 가능성이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富)와 사회정의의 조화를 강조해온 슈뢰더는 또 중·저소득층에 유리한 세제개혁을 단행할 것같다.소득세의 최고와 최저세율을 각각 4%포인트씩 낮추고 법인세율은 47%에서 단계적으로 35%로 내리겠다고 밝혔다. 저소득층의 복지를 염두에 두는 방안이다.선거기간 최저 및 최고 소득세율을 11.9∼14%포인트,법인세는 빠른 시일안에 35%로 내리자는 세제개혁안을 제시했었던 기민당의 정책과 쉽게 대비된다. 군사 및 외교 정책에서는 독일의 입지를 굳힐 게 확실시된다.유럽과 미국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협력하는 ‘대서양주의’를 출발선으로 삼을 것이다.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의 유럽과 미국의 관계 재정립을 모색할 게 분명하다. 유럽내에서도 친 프랑스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영국과의 양자 연대나 영국 및 프랑스와의 3자연대를 모색해 제 색깔을 내려할 것이다.특히 내년은 독일이 유럽연합(EU) 의장국이 되는 해인 만큼 EU 고용창출협정 체결 등을 통해 외교역량을 한껏 과시하려 들 것으로 전망된다. ◎슈뢰더는 누구/‘독일의 블레어’… 상점견습생서 21세기 리더로 독일의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게하르트 슈뢰더(54)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과격한 마르크스주의자를 거쳐 독일 정계의 신세대 정치인으로 떠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1944년 나치병사였던 부친의 유복자로 태어나 편모 슬하에서 다른 4형제와 가난하게 자랐다.17세 때 상점 견습생이 되었으나 야간학교를 다니며 대입자격시험에 합격,명문 괴팅겐 대학 법과에 입학.76년에 변호사가 되었다. 야간학교 재학중이던 63년 사민당에 가입했고 정열적인 활동력과 정연한 논리,탁월한 언변으로 78년 사민당청년조직인 ‘젊은 사회주의자’(유조스)의 의장에 선출됐다. 80년에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래 86년 니더작센 주의회 사민당 원내의장,90년 주총리 등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 들면서 편향된 이념에서 벗어나 사민당의 온건파 지도자로 부상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뛰어난 용모와 화술 등 탤런트적 이미지로‘신(新) 중도’‘제3의 길’을 역설해 변화를 원하는 독일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성편력도 화려해 지난해 9월 세번째 부인과 이혼한 뒤 20세 연하의 기자 출신 도리스 쾨프(33)와 네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녹색당의 피셔/세계 첫 환경정당… 거리투사서 정계스타로 사민당의 연정 첫번째 상대로 꼽히는 녹색당은 70년대에 결성된 세계 최초의 환경정당.83년 총선에서 27석을 얻어 연방 하원에 진출한 제3당.통일후에는 옛 동독의 민주화운동 시민그룹 ‘동맹 90’과 통합하면서 급속히 세력을 넓혔고 94년 선거에서는 49석을 얻었다. 지지기반을 넓히기위해 대중적 이미지를 심으려는 온건파들과 당초의 정강을 고수하는 강경파들간의 알력이 있다.올초만해도 12∼13%에 달했던 지지율이 북대서양조약기구 해체 등을 요구하면서 선거 직전에는 5∼7%까지 떨어졌다. 녹색당을 이끄는 인물은 요시카 피셔 녹색당 하원 원내의장(50).환경정당을 정치의 중심무대로 끌어 올린 3선 의원.학력은 고교 중퇴가 전부. 60·70년대 무정부주의 운동을 하다가 70년대말 제도권으로 들어 왔다.극좌파가 나치만큼 비인간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자동차 공장 노동자,야간 택시기사 등으로 일하며 틈틈이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도강’했다.81년 녹색당에 입당했고 연방 의원과 헤센주 환경장관을 2차례 역임했다. ◎콜 16년 집권 마감/‘통독의 거인’ 역사속으로… 총선에서 패배해 물러나게 될 헬무트 콜 총리(68)는 독일 통일 달성과 함께 유럽 통합을 이끈 ‘유럽 정치계의 거인’이었다. 1930년 세무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15세때 2차대전 종전을 맞았다.프랑크푸르트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역사와 법률,정치학을 전공했으며 58년에는 문학박사가 됐다. 59년 라인란트 팔츠주(州)의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69년에는 주 총리,그리고 73년에는 기민당 총재로 선출됐다.82년 사민당·자민당 연정이 붕괴되면서 헬무트 슈미트 총리가 사퇴하자 전격 뒤를 이었다. 통일후 계속된 높은 실업과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싫증이 16년만에 총리에서 물러나게 했다.가족들의 외부노출을 극도로 꺼려했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 남북 대학 교류/張淸洙 논설위원(外言內言)

    최근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이 확산되는 가운데 남북대학과 대학생의 교류도 활기를 띨 조짐을 보이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지난 5월 성균관대학은 개성에 있는 고려성균관과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분단 50년 이래 최초로 남북대학간 자매결연을 했다.이같은 남북대학간 자매결연을 통한 학술교류는 민족교육의 동질성을 상호보완하고 남북대학간의 공동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17일에는 북한 시·도학생위원회 59개 대학이 다음달 방북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산하 71개 대학에 방북 초청장을 보내왔다.물론 정부는 이적·불법단체인 한총련의 방북을 승인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그것을 알면서도 북한에 가겠다는 한총련이나 오라고 초청한 북한의 의도는 뻔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운동권 대학생들을 북한에 보내 궁핍한 북한 실정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그들이 북한을 직접 보고 북한을 알고 나면 지금과 같은 일방적 과격 사상투쟁은 자제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점을 고려하더라도 앞으로 남북대학의 학술교류는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정책과제다.특히 남북한 대학과 대학생들의 학술교류가 제도화되고 활성화돼야 할 이유는 북한 사회주의의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촉매역할로서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남북간 최고 지성의 전당인 대학과 대학생간의 학술적 교류는 남북 이데올로기의 높은 장벽을 허무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일문제에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그러나 남북간 대학교류가 갖는 긍정적 당위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최근들어 북한대학생들의 혁명성이 약화되고 사상적 일탈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의식변화를 감안할때 북한의 지식사회가 쉽사리 개방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몰락에 따른 사상적 희의와 한국발전상에 대한 패배의식 같은 상대적 모순과 열세를 의식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대학사회의 개방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성균관대학이 자매결연을 하는 과정에서3,000만원(2만달러)이라는 뒷돈 거래가 있었다는 씁쓸한 후문도 있지만 사상과 체제를 극복하는 통일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남북대학의 학술교류는 될수 있는 한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 民和協 3일 출범… 산파역 韓光玉 위원장

    ◎“통일 논의 국민적 합의 도출에 온 힘”/170여개 통일운동단체 묶어 남북교류 뒷받침/보수·진보노선 총망라… 명실상부한 민간 구심체 “우선 통일논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데 진력하겠습니다” 3일 공식 출범하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韓光玉 상임위원장의 각오다. 韓위원장은 민화협의 5인 상임위원장단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새정부 내에서 그의 정치적 비중과 태동 단계에서부터 산파역을 맡아온 이력때문에 민화협의 ‘사실상 대표’로 꼽힌다. 민화협은 민간 통일단체로선 해방 이후 최대 규모다. 정부에 등록된 기존의 165개 통일단체와 미등록 500여 민간기구 중 현재까지 200여개 단체를 하나로 엮은 통일운동의 민간 구심체인 셈이다. 3일 결성식을 갖는 이 기구에는 이념적으로 폭넓은 스펙트럼의 단체들이 참여했다. 자유총연맹,이북5도민회 등 보수단체에서부터 진보적 노선의 민주노총,민변 등까지 망라하고 있다. 韓위원장은 과격 운동권 단체로 알려진 한총련에도 문호를 열어둘 뜻을 내비치고 있다. 물론 한총련이 변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다. 특히 국민회의 등 원내의석을 가진 3개 정당도 모두 참여시킨다는 입장이다. 민간차원의 남북교류를 뒷받침하는 명실상부한 범국민적 상설협의체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다. 韓위원장은 “아직 참여를 유보중인 한나라당을 설득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질적인 단체들을 하나로 아우르다보니 ‘불협화음’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韓위원장은 타협과 조정에 능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대선전에 金大中 후보와 金鍾泌 후보간의 이른바 DJP 후보단일화 성사의 막후 주역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선후에도 1기 노사정위원장으로서 노사정 대타협을 일궈낸바 있다. 민화협을 이끌며 남북 민간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그의 ‘솜씨’가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특히 金大中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현직 국민회의 부총재다. 탁월한 ‘협상력’으로 남북 문제를 푸는 데 모종의 막후 역할이 예상된다. 실세급이면서 원외라는 독특한 정치적 위상 때문인지 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앞으로 대북특사역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 리게티 오페라‘그랑 마카버’(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10·끝)

    ◎죽음의 추문을 씻는 방법/좋은 이들 모두 모르리 자신의 시간 끝나는지/모든 것을 보여주지만 모든 걸 숨기는 오페라/육체와 죽음의 추문들 씻어내는 현대의 제의/미세 다성음악의 원조 인류 비극 자신에 육화 1.‘대기괴’(大奇怪)쯤으로 번역되는 리게티 오페라 ‘그랑 마카버’는 이런 6중창으로 끝맺고 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좋은 사람들 모두/ 아무도 모르지 자신의 시간이 언제 그치는 지를./그리고 그때가 오면 그냥 그렇게 둬…./안녕,그때까지는…명랑하게 살 것’ 중세에 ‘기괴한 춤’이라는 소재가 있었다.아릿따운 소녀를 끔찍한 죽음의 몰골이 껴안는 형상이다.슈베르트 ‘죽음과 소녀’는 그것을 낭만주의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결과다.그리고 케테 콜비츠 판화 ‘딸을 위해 죽음과 싸우는 어머니’는 그 ‘사회주의적 변형’이다.그런 기괴,더군다나 ‘대기괴’의 마지막에 이 무슨 상투적 권하는 말씀? 아니,그 전에,오페라의 줄거리는 정말 말도 안되는 추문의 극치다.모든 것이 괴상망칙한 브뤼겔의 나라.보통사람 피에트가 모국을예찬하면,연인 미란다와 아만도가 합류한다.둘은 성교(性交)중이고 그치지않는 오르가즘을 열망한다.네크로차르(그가 ‘대기괴’이다)가 세상을 끝장내겠다고 선포하고 피에트를 조수로 부린다.두 연인의 성교는 무덤 속으로 이어진다. 장면이 바뀌면 한 천문학자와 부인이 더 열렬하게,그리고 변태적인 성교를 벌이고 있다.남편이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동안 아내는 비너스에게 ‘더 센’ 남자를 보내달라고 간청하는데,그때 대기괴가 나타나 그녀를 과격한 사랑으로 죽여버린다. 대기괴,피에트,천문학자 세사람이 이제 청년 군주 고고의 궁정으로 향한다.궁정에선 흰 장관과 검은 장관이 서로 앙숙이라 골치가 아프다.비밀경찰 총수 게포포가 위협을 알리고 ‘대기괴’가 등장,세계의 종말을 선언한다. 2.음악은 더 뒤죽박죽이다.‘진노의 날’ 선율,몬테 베르디 ‘포페아의 대관식’,베르디 ‘팔스타프’,로시니 ‘세빌랴 이발사’,심지어 베토벤 ‘영웅교향곡’까지 동원되면서 하이 소프라노의 괴성­절규에 찢기고 베이스의 신음­무게에 짖눌린다.그리고 크게왜곡되고 악용된다.값싼 춤음악과 진부한 팡파르들이 세계의 종말에 달한다.그 결말에서 위의,권고의 말씀이라.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죽음은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이 다가오므로,그게 언제인지 알 수조차 없으므로,그때 까지 열락에 몸을 담그라는 뜻? 아니다.리게티는 직접 이렇게 말하고 있다.두려움이 전혀없는 삶,쾌락에 전적으로 바쳐진 삶,그것은 사실 심각하게 슬픈 삶이다….그렇다면? 과도한 음탕이 과도한 죽음을 낳는다.거꾸로도 마찬가지다.즉,죽음은 음탕하고 음탕은 죽음이다.‘그랑 마카버’의 이,매우 우스꽝스러운 깨달음은 음악,특히 오페라음악에 대한 역사적이고 현대적,그러므로 비극적인 통찰의 결과다.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아니 음악의 아름다운 의상을 듣는다.그렇게 ‘음악속’이 들리거나,보이지 않는다.오페라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만,모든 것을 숨긴다.그렇게 이야기의 ‘음악속’이 들리거나,보이지 않는다.왜냐하면 음악은 사랑과 교접사이를 흐르면서 교접을 선율로,미­육체화(美­肉體化)하고 그것을 의상화한다.그러나,본질은?혹 그 모든 것은 육체의,그리고,그러므로 죽음의 추문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 아니었을까? 3.쇤베르크는 음악 의상의 조화를 찢어버렸다.그 깨진 거울 뒤로,음악이전의,성욕(性慾)의 추악한 전모가 언뜻언뜻 보인다.그렇다.‘그랑 마카버’는 추문의 음악화를 통해 음악의 추문을,그렇게 육체와 죽음의 추문을 씻어내려는 현대 제의(祭儀)에 다름 아니다.이 제의 속에서 번제물 역할을 하는 것은 서양음악사 전체이다. 서양음악사,아니 역사는 그렇게 조롱받으며 스스로의 추문을 정화(淨化)할 밖에 없다.쇤베르크 이래 모든 현대음악은 폭로 혹은 자기파멸로만 치달았다.쇤베르크의 기법을 이어 받았지만,쇤베르크가 염원한,파경이후 새로운 음악적 총체는 점점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된다.왜냐하면,인류는 지식을 넓혀갔지만,동시에 자신의 악마성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그러므로,음악이 음악을,음악적으로,번제물 삼는다.리게티는 헝가리 태생이다.1956년 헝가리 민주화운동을 소련군 장갑차가 진압했을 때 그는 33세,부다페스트에 있었다. 당시 전위음악의 총아였던 슈토크하우젠음악 ‘청년의 노래’를 몰래 라디오로 들으며 그는 창밖으로 계엄령 상황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곧장 서방으로 망명,딱 두 달 만에 콜로뉴 전위음악파의 선두로 부상한다. 그는 서양음악의 현대적인 기법을 두루 탐구하고 발전시켰다.스스로 자신의 음악방식을 ‘미세(微細) 다성음악’이라 명명하면서 그는 1960년 서양현대음악 전체의 최첨단에 달할 수 있었다.1970년대는 오페라 ‘그랑 마카버’ 작곡에 바쳐졌다.그의 모든 기법과 사상이 총동원된 이 오페라 작업은 그로 하여금 현대음악의 막다른 골목에 회의를 느끼게하는 계기로 작용한다.아니,그는 파탄에 이른 현대음악에 회의를 느꼈으므로 이 오페라에 진력했다. 그는 비극적인 청년 시절을 보냈다.아버지와 형은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그도 강제노동에 처해졌다.나치이후 공산주의 정권은 그의 급진적인 음악을 금지했다.그리고,그러나,그 비극성이 그에게 ‘총체성의 마지막 보루’로 작용한다.전 인류의 고통이 그의 고통으로 특수화­심화하면서‘총체를 위한 번제’의 음악이 탄생하는 것이다. 새로운 리듬과 화음을 찾겠다….그는 ‘그랑 마카버’이후 그렇게 공언했다.오늘 소개하는 것은 현대음악 처녀지이자 성지(聖地)인 베르고 레이블이 자랑하는,리게티 자신의 숨결이 연주에 배인 음반이다. 1987.녹음,1991.wergo wer6170­2 ORF­합창단과 아르놀트 쇤베르크 합창단 ORF­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엘가 하워스
  • 짜지 않은 바닷물/鄭信模 논설위원(外言內言)

    나트륨과 염소의 화합물인 소금은 동물의 생존에 필수적이다.건강한 사람의 혈액에는 0.9%의 소금이 녹아있는데 체액 속에서 산과 알칼리의 균형을 유지하는 구실을 한다.염분이 모자라면 소화액의 분비가 줄어들어 식욕이 떨어지며 장기적으로는 전신 탈력(脫力),피로,권태,정신불안 등의 현상이 일어난다.반면 너무 지나치면 혈압이 높아진다.적당한 섭취량은 성인의 경우 하루 12∼13g 정도다. 소금의 짠 맛은 모든 식품의 맛을 더욱 돋우는 역할을 한다.예컨대 단 맛에 소금을 뿌릴 경우 단 맛이 더욱 진해진다.설탕량에 비해 소금이 0.2%일때 단 맛이 최고가 된다고 한다.단팥죽의 맛이 바로 소금의 이런 기능을 이용한 것이다. 성경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하며 인간에게 사람 구실을 올바로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그런데 소금의 원천인 바다가 싱거워지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쉽사리 믿어지지 않지만 요즘 우리 남해와 제주 일대 바다가 싱거워지고 있다고 한다.최근 두달이 넘도록 계속되는 중국 양쯔강의 홍수로 엄청난 민물이 황해로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염분 농도가 25퍼밀리지(1퍼밀리지=0.1%)인 극저(極低)염수가 제주 남서해상 120㎞까지 접근했다.평소에는 30∼31퍼밀리지로 이번 염도는 관측 사상 최저치다.연구소는 표면적이 수천㎢에 이르는 저염수 물기둥이 제주 연안까지 밀려들 경우 연안에서 양식하는 어류와 조개류의 집단 폐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실제로 지난 96년 8월 이번과 똑같은 현상으로 전복과 성게 등 제주 연안 어패류의 30%가 집단폐사, 60억원의 피해를 낸 적이 있다. 경제난 극복에 필수적인 수많은 법령의 심의는 제쳐놓고 두달 가까이 당리당략에 얽혀 이전투구만 하던 국회가 한동안 뇌사국회니 식물국회니 하는 비난을 받았다.심지어 국회를 해산하라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왔다.짠 맛을 잃은 소금은 쓸모가 없다는 따가운 질책이었다.그러나 공직자나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크고 작은 비리사건들이 거의 매일 보도되는 것을 보면 짠 맛을 잃은 소금은 비단 국회의원뿐이 아닌것 같다.우리가 겪는 국가적 어려움도 도처에,그것도 아주 중요한 자리에 짠 맛을 잃은 소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 ‘학생운동’ 다시 태어나야(사설)

    지난 91년 8월 독일 베를린을 거쳐 밀입북,제2차 판문점 범민족대회에 참석해서 북한식 통일방안을 외쳤던 朴聖熙씨 등 과거 범청학련 소속 5명이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감상적인 통일운동에 대한 반성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들은 북한의 반통일적 자세를 강도높게 비판했으며 무작정 친북반남(親北反南)의 입장을 고수하며 폭력적인 방법에만 의존하는 한총련의 해체를 주장했다. 지난 7년동안 실정법을 어기면서 북한 통일전략전술에 앞장섰던 이들 운동권 출신의 반성은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민족의 비극적 자화상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또한 새로운 학생운동의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이 음미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우리 헌정사에서 과격한 학생운동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군사독재정권하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과격한 학생운동이 불가피했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또 이러한 학생운동의 뒷받침으로 마침내 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라는 위대한 역사창조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의 정통성과 진정한 의미의 국민주권이 확립된 지금, 특히 제2건국을 통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학생운동은 새로운 비전과 가치체계가 요구된다. 朴씨의 증언처럼 다 허물어져 가는 사회주의 사상에 매달려 폭력투쟁을 일삼는 비민주적인 학생운동은 종식돼야한다. 더욱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차용해서 한반도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학생운동의 사상적 오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동안 한총련이 한국사회에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창구역할을 해 왔으며 이른바 통일전선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해 왔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한총련의 과격한 폭력투쟁은 급기야 폭력살인까지 몰고 왔으며 이같은 과격한 이념투쟁은 우리 국민들의 심각한 우려와 함께 학생운동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때 이미 학생운동으로서의 도덕적 기능을 상실한 한총련은 마땅히 해체돼야 한다. 그리고 민주적이며 생산적인 학생운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앞으로 이땅의 학생운동은 암울했던 시대에 독재에 항거하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선배들의 거룩한 정신을 계승하여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있게끔 거듭나야 한다.
  • 테러/종교·민족 갈등 탓/33% 이상 美 겨낭

    테러의 사전적 의미는‘폭력수단을 행사하여 상대를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다.우리는 테러에서 처참하고 무자비한 살상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테러는 우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인류의 공분을 자아낸다.발생 시점 또한 전혀 예측 불가능하다.뿐만 아니다.수단이 대단히 잔인해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분개심을 느끼게 된다. 지구촌에서는 사실 이틀이 멀다하고 크고 작은 테러들이 저질러지고 있다. 최근 250명 가까운 인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5,000여명이 부상한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는 하나의 ‘큰 사건’에 불과하다. 인류가 제1의 공적으로 꼽고 있는 테러.과학기술의 발달로 더욱 치명적이고 대형화,다양화하고 있는 테러를 해부한다. ◎원인과 표적/美 세계 경찰국가 자임 분쟁 개입 많아/이슬람 무장세력 주축 각국서 저항 불러 ‘미국의 모든 것은 사악하다.따라서 우리 이슬람 무자헤딘(戰士)들은 사우디 등 성지(聖地)에 있는 미국의 존재들에 대해 ‘지하드(聖戰)’를 벌여야한다’ 이번 케냐 및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라딘이 올해 밝힌 회교 교령이다.비록 이슬람국가라도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무차별 테러에 대한 확신이다. 문명시대에 자행되는 반(反)인류적인 국제 테러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종교나 종파 갈등에서 민족·인종갈등,영토분쟁,식민지 반대 운동,반정(反政)투쟁 등이 우선 꼽히는 명분들이다. 그러나 국익이 우선시되는 국제사회에선 많은 경우 복합돼 테러로 이어진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한 영토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아랍권 국가내에서 이들 세력에 대한 지지 모습이 제각각인 것이 좋은 예다. 또 지난해 발생한 304건의 테러 가운데 3분의 1이상이 미국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도 한두가지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다.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세계 곳곳에 개입하다 보니 원망을 사는 예도 잦다. 미국이 지목한 테러 국가는 리비아,수단,이라크,이란,쿠바,북한,아프카니스탄 등 7개국.냉전적 대립관계에 있는 국가는 북한과 쿠바뿐,나머지는 이슬람권 국가들이며 지난해 10월 발표한 30개 테러단체 역시 대부분 이슬람 무장세력이었다. 중동 정책에 개입,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이들 테러 국가들에 경제제재를 가한 것 등이 최근 빈발하는 대(對)미 테러의 요인이다. 유나 버머와 같은 반 문명주의자들,미국 오클라호마 연방건물 폭파범과 같은 자생적 극우주의자들도 최근들어 대형 테러 대열에 합류했다.최근에는 특별한 의도없이 대형 테러를 서슴지 않는 사례가 급속히 증가,인류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주요 발생 지역/유럽·중동 등 51개국 ‘핏빛 공포’/유럽­스페인 등에서 독립투쟁… 獨선 극우파 기승/중동­과격파 활동 가장 활발… 휴양지도 안심 못해 종교·인종·이념을 축으로 한 테러단체들은 줄잡아 51개국에서 살상을 일삼는다.피바람이 멈추지 않는 세계 곳곳의 테러 현황을 소개한다. ▷중동◁ 과격 회교근본주의 무장단체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중동에 주둔한 미군 및 공관과 이스라엘에 대항,회교원리주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피빛 테러를 일삼고 있다.이스라엘에서는 94·95년 텔아비브,휴양지 나타니아에서 버스 폭탄테러가 발생했고 지난해엔 예루살렘 시장 폭탄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사우디 아라비아에선 96년 다란 미 군사기지 폭탄테러가,95년 리야드 미군사령부 차량폭탄가 발생했다. ▷유럽◁ 비교적 안정된 유럽 역시 테러 안전지대는 아니다.스페인의 분리독립 단체인 바스크 독립과 자유당(ETA)의 테러,독일의 우익단체 테러가 기승을 부린다.북아일랜드의 신페인당 무장단체 아일랜드 공화국군(IRA)과 신교도 얼스트의용군(UVF)도 주목받는 테러단체.아일랜드 오마시에서의 차량 폭탄테러는 세계를 경악케 하고 있다. 프랑스도 심각한 상태.95년 잇따른 지하철 폭탄테러로 수십명이 사망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에 시달리고 있다.94년 마르셰이유 공항에서 에어프랑스 납치사건이 유명하다. ▷아시아◁ 스리랑카,필리핀,아프카니스탄에서도 무차별 테러는 끊이질 않는다.회교무장학생단체 탈레반과 현 정부와의 내전이 끊이않는 아프카니스탄은 이란과의 접경지로중동 테러리스트 양성소 역할을 한다.스리랑카에선 자살 특공대 ‘검은 호랑이’의 테러와 박격포까지 동원된 엄청난 규모의 테러로 피냄새가 가시질 않는다.파키스탄도 이슬람 모하지르인의 무장단체(MQM)의 테러로 연평균 1,000명이 사망한다. ▷남미◁ 좌익게릴라들의 반 정부 유정(油井)폭탄 테러및 요인납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콜롬비아에선 7일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대통령 취임에 앞서 일어난 테러에서만 250여명이 사망했다. ▷아프리카◁ 알제리 92년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래 이에 회교근본무장단체들과의 내전으로 6년 동안 8만명이 숨졌다.버스안에 시민들을 가둬놓고 불을 지르는 등 극악한 테러를 자행한다.부녀자 강간도 극에 달했다.,이집트 룩소르 관광지에서 외국인 버스 테러가 잇따르는 등 위험지대다. ◎어떤 수법 있나/납치·폭파서 이젠 사이버테러까지/日선 독가스 살포… 세균탄도 실용화 가능성 높아/러,핵무기 위험성 담보 美에 보안비 요구하기도/컴퓨터 바이러스로 순간에 도시 마비시킬수도 인터넷 등 과학 기술의 발달은 테러수단을 첨단화시켰다. 핵무기를 사용한 테러의 위험성이 대두된지는 이미 오래다.냉전이후 보안이 느슨해진 러시아의 핵무기와 원료는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실제로 레베드 전 러시아국가안보위원회 서기는 미국에 이를 구실로 보안비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비행기 납치 및 폭파는 70년대부터 테러범들이 자주 써온 전형적인 수법. 이제는 세균 덩어리나 포탄을 장치한 소형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모색하고 있다. 최근 미국 기술평가국은 지난 93년 백악관 앞마당에 돌진했던 것처럼 소형 비행기에 100㎏의 탄저병원균을 실어 날려 보낼 경우 300만명이 희생될 수 있다고 밝힌 바있다. 95년 일본 도쿄의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한 오움진리교가 인체에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를 배양하려 했다는 사실도 이러한 세균테러의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가공할 위력을 과시하는 최첨단의 테러는 사이버 테러.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만으로 뉴욕시 전체를 암흑의 도시로 만들 수 있다. 선진국의 산업시설과 군사시설을 제어하는 컴퓨터에도착하기만 하면 그 기능을 마비시키는 바이러스를 담은,이른바 전자우편 폭탄(E­mail bomb)을 한꺼번에 보내 전 도시를 일시에 마비시킨다.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이란,리비아,중국,러시아 등 일부 국가들이 사이버 테러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페루의 투팍아마루혁명운동(MRTA www.blythe.org)과 콜롬비아 인민해방군(ELN www.voces.org) 등 상당수 좌익 테러 단체들은 아예 인터넷에 웹사이트까지 만들어 교리,주장을 전파하며 때로는 모금운동 까지 벌이는 등 첨단 이기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무차별 파괴하고 처참한 결과를 유발하는 폭력성 테러는 고전적이지만 전시효과를 노린 테러범들에 의해 계속 사용될 것이 분명하다. ◎악명 높은 단체/하마스­가자지구 주무대… 지지자 수십만명/헤즈볼라­레바논 회교도 조직… 이란 지원 받아/GIA­알제리에 근거… 잔혹한 학살 일삼아 ▲하마스(이슬람 저항운동)=87년 이슬람 동포단의 팔레스티나 지부가 발전, 조직된 단체. 이스라엘 점령지 가자지구가 주 무대.수만명의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다.지도자이자 창립자는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62).반 이스라엘 테러혐의로 8년간 투옥됐다 지난해 10월 석방됐다. ▲헤즈볼라(신의 당)=레바논의 시아파 회교 근본주의자들.조직원은 5,000여명.79년 이란 회교혁명후 이란 지원을 받아 급성장했다.83년 베이루트의 미국 해병대 막사폭탄 테러와 85년 미국 TWA기 납치 사건을 저질렀다. ▲가마아 이슬라미아=이집트내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중 가장 과격한 단체.무바라크 대통령의 세계주의 노선을 반대하고 있다.지난해 룩소르 관광객 버스 테러를 자행했다. ▲타밀엘람 해방호랑이(LTTE)=스리랑카에서 타밀족의 분리 독립을 위해 83년 조직된 단체.무장이 가장 잘 돼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조직원 1만여명. 자살특공대 ‘검은 호랑이’는 악명이 높다.지도자는 빌루필라이 프란바카란(45). ▲콜롬비아 혁명무장군(FARC)=남미 최대 무장 테러조직.5,0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다.최근에도 전국 42곳에서 동시 다발적인 테러를 자행 230여명을 살해했다. ▲이슬람 무장그룹(GIA)=알제리에본거지를 둔 가장 잔인한 단체.92년 이슬람 구국전선(FIS)이 승리를 목전에 두고 군부정권에 의해 불법화되자 무장투쟁에 나섰다.무자비한 학살과 약탈에 부녀자 강간까지 일삼는다.지도자는 28세의 안타르 주아브리.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멕시코 치아파스에 근거를 둔 게릴라.94년 조직돼 농민폭동을 주도하고 있다.지도자 마르코스는 프랑스어에 유창하며 인터넷을 통해 외부와 연락한다.큰키에 다갈색눈으로 파이프를 물고 다니는 지적인 분위기의 소유자.여성팬들도 많다는 소문이다.
  • 노조폭력 절대 안된다(사설)

    생산현장에서 또 다시 폭력사태가 빚어졌다.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파업중이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노조 사수대원들이 조업을 재개하려는 관리직 사원들에게 둔기와 각목을 휘둘러 임직원 4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각목에 맞아 머리가 깨지거나 팔과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자도 꽤 있다고 한다.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불황기에 정리해고를 당하는 근로자들의 절망이나 좌절 또는 회사에 대한 배신감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또 노조가 회사에 대항해 근로자의 권익을 신장하거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협상전략을 구상하는 것 또한 그들의 정당한 권리다.이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절대 합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 회사 뿐 아니라 파업현장의 폭력이 일상적이라는 사실이다.이 회사만 해도 지난 5월 최초의 파업 이후 이번의 다섯번째 파업에 이르기까지 노조의 불법사례에 대해 총 30건,97명을 고소·고발했다.혐의는 불법파업을 선동했다는 것 외에 업무방해 폭행치상 집기손괴 방화협박 등 다양하다.심지어 부품이나 비품 절취 등 특수절도까지 포함돼 있다.노조원이 검거되자 경찰관 3명을 납치,억류했다가 풀어준 일까지 있었다. 우리 사회에 이런 무법천지가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다.과연 우리가 법치국가인지 조차 의심스럽다.사실 지금까지의 여론은 노동권을 탄압하던 권위주의 시절에 대한 반동으로 노조를 경제적 약자로 여겨 상대적으로 동정적이었다.정부 역시 파업이 끝나면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근로자들의 불법을 관대하게 처리해 왔다.이러다 보니 정부나 노조 모두 불법행위에 불감증이 걸렸고 파업현장의 폭력이 상습화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 경제가 목마르게 기대하는 외국자본들이 한국상륙을 꺼리는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불법파업과 파업중의 폭력이다.따라서 이런 악습을 끊지 못하면 새로운 외자의 유치는 커녕 이미 들어온 외자마저 나가버릴 것이다.노조의 과격 폭력에 시달려 기업을 헐값에 넘기고 금리소득에 만족하겠다는 기업인들도 적지 않다.결국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까지 막고 있는 셈이다. 노조지도부는 당장 폭력을 버리고 합법적으로 다투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자신들의 파업할 권리와 마찬가지로 파업에 반대하는 근로자들의 일할 권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도덕성이 훼손되면 논리적 정당성마저 흠집을 입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 역시 노사 어느 쪽이든 불법에 대해서는 법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집행해야 한다.경제를 살리는 길이 결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 한총련 대체 학생기구 출범/31개대 학생회협의체 발족

    과격시위 등으로 국민의 비난을 받아 온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을 대체할 새로운 학생 운동기구가 출범했다. 전남대와 이화여대 중앙대 조선대 등 전국 31개 대학 총학생회 소속 학생 1,000여명은 12일 서울 숭실대에서 ‘새로운 전국적 학생회 연대기구’ 발족식을 갖고 빠르면 내년 초쯤 새 학생회협의체를 공식 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발족식에는 전남대와 중앙대 숭실대 가톨릭대 서울교대 등 31개 대학 총학생회와 건국대 동국대 등의 일부 단과대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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