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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로 바꾼 세상의 인식···프로댓글러들의 “나는 오늘도 댓글을 씁니다“

    ‘댓글’로 바꾼 세상의 인식···프로댓글러들의 “나는 오늘도 댓글을 씁니다“

    하루 평균 댓글 32만 시대댓글로 ‘형제복지원’ 알린 ‘댓글아저씨’“쉽게 실천할 수 있는 행위” 댓글의 순기능“‘배워서 남 주자’ 실천하는 소통의 장”온라인 포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댓글’이 일상 깊숙이 파고들면서 어엿한 취미 생활의 일환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존에 익명성에 기댄 악성댓글(악플) 등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댓글을 많이 다는 ‘프로댓글러’에 안좋은 시선이 더 많았지만 댓글을 통해 공론화에 성공하는 등 댓글의 순기능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달 국가폭력 사건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밝힌 ‘형제복지원’ 사건 뒤에는 일명 ‘댓글아저씨’로 불렸던 이향직(50)씨의 활약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부터 1992년까지 부랑인으로 지목된 민간인을 경찰 등 공권력이 동원돼 시설에 강제 수용하고 그 안에서 폭행, 가혹행위, 사망 등 인권 침해가 발생한 국가 폭력 사건이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지금처럼 공론화되기 전이었던 지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댓글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씨가 댓글의 위력을 느낀 것은 당시 우연히 접한 형제복지원 관련 기사에 ‘나는 13소대에 있었다. 함께 있었던 사람은 연락을 달라’며 자신의 번호를 댓글로 남기면서였다. 이씨는 “아무리 형제복지원이 지옥 같았어도 같이 지냈던 원생들과는 함께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연락을 해보고 싶었다”며 “기대 반 의심 반으로 남긴 댓글을 보고 실제로 다른 형제복지원 생존자가 연락을 취해오면서 댓글의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처음엔 자신이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꺼려했던 이씨는 주변에서 “당신은 잘못한 게 없고 피해자일 뿐이다. 직접 겪은 피해를 용기 내서 세상에 알리는 것이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한 운동이 될 수 있다”고 말해 마음을 고쳐먹었다. 며칠 간 자신이 가장 쉽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이씨는 댓글로 인해 다른 생존자와 연락이 닿았던 일을 기억하고 SNS 가입부터 시작했다. 이씨는 “자영업을 하고 있을 때라 당시 가게 알바생과 아내에게 어깨 너머로 SNS 사용법을 배워 수시로 밤을 새워가며 매일 100개가 넘는 댓글을 달았다”면서 “정치나 사회 분야의 모든 기사에 형제복지원 사건을 설명하는 장문의 댓글을 2년 간 달다보니 처음엔 ‘왜 관련도 없는 기사에 댓글을 다냐’며 반감을 가지는 반응이 많았다가 나중엔 제가 아니라 다른 네티즌들이 나서서 제 댓글을 ‘복붙’(복사+붙여넣기)해 올려주는 등 응원이 많아졌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네이버에서 지난 2일부터 일주일간 작성된 댓글은 하루 평균 32만 9935건에 이른다. 하루 평균 작성자 수 역시 13만 7314명으로 댓글은 이미 사회를 구성하는 소통 방식의 일환으로 자리잡았다. 서울 성북구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유병노(62)씨 역시 하루 10개씩 꾸준히 댓글을 다는 ‘프로댓글러’다. 대학교 앞에 위치한 사진관의 특성상 대학생 손님을 많이 만난다는 유씨는 미래 세대가 더 나은 사회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에 정치와 사회 분야에 관심이 많아졌다. 유씨는 “댓글을 단다고 큰 변화가 있지는 않겠지만 이때껏 살면서 느낀 점과 배운 점을 공유하기 위해 ‘배워서 남 주자’는 마음으로 제가 아는 선에서 댓글을 단다”며 “댓글에 대댓글이 달리며 의견이 부딪칠 때도 있지만 제각기 다른 의견이 제시되고 공유되는 것이 댓글의 미학”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댓글의 순기능을 살리기 위한 여러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4월부터 댓글러 ‘팔로우’(구독) 기능을 도입했다. 기존에 언론사나 기자 등을 구독하는 것처럼 네티즌이 개별 ‘댓글러’를 구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2021년 4월 대비 5월 이용자 댓글모음 방문이 45%가 늘었던 만큼 댓글 개인화 추세가 뚜렷하다”며 “댓글러도 한 명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고 각자 선호하는 댓글러와 댓글을 수집하면서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 부산시, 형제복지원 피해자에 의료비 등 지원 속도

    부산시, 형제복지원 피해자에 의료비 등 지원 속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결론 내면서 부산시의 피해자 지원이 본격화 되고 있다. 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 1억원을 확보했다고 10일 밝혔다.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하고 있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부산의료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시가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본인부담금 전액을 지원한다. 1인당 연간 최대 지원 금액은 500만원이다. 진실화해위가 부산시에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와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부산시 조직과 규정을 정비하고, 적합한 예산을 보장하도록 권고함에 따라 시는 지난 1일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 추진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선출하고, 진실화해위 발표 내용을 공유와 추가 조사 협력방안, 피해자 지원 시책 확대 방안 등이 논의 됐다. 시는 형제복지원 수용자의 피해 사실을 규명하기 위한 자체 조사도 벌이고 있다.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개개인의 피해 사실이 모두 규명되지 않은 만큼 보완하는 차원이다. 시는 형제복지원 수용 중 다른 시설에 전원됐었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고려해 시내 사회복지시설에 방문해 수용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 발굴 작업을 지난 1월부터 진행 중이다. 1980년대 부산에 있던 사회복지 시설 목록을 확보해 현존하는 시설 중 13곳에서 현장 조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 형제복지원에서 수용 사실을 입증하는 공문과 아동카드 등 606명분의 자료를 확보했다. 이 조사로 시에 피해자로 등록한 490명 중 60명의 수용 사실이 입증됐다. 시는 이번에 확보한 자료를 진실화해위에 전달하고, 하반기에도 추가로 수용 사실 입증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진실화해위 판단에 따라 이번에 발굴한 자료가 피해자들이 배·보상을 받기 위한 증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한 사람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인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수용해 노역에 동원하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하는 등 인권을 유린한 사건이다. 1984년에만 4355명이 입소되는 등 1975년~1984년 동안 수용자가 3만8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진실화해위, ‘불법 인신 구속 의혹’ 여성수용시설 인권 침해 사건 조사

    진실화해위, ‘불법 인신 구속 의혹’ 여성수용시설 인권 침해 사건 조사

    진실화해위, 서울 여성수용시설 사건 조사1983년 수용자 불법 인신구속·학대 혐의진화위 “시설 내 인권 유린 확인돼”해당 시설 “사실과 다르다” 반박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여성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은 인천에 거주하던 임모씨가 1983년 8월 출근했다가 실종된 뒤 서울의 한 시설에 수용됐던 사건이다. 해당 시설은 24년이 지난 2007년 임씨의 수용 사실을 가족에게 알렸다. 임씨는 집으로 돌아갔으나 악화한 건강 상태 탓에 3년 뒤 사망했다. 신청인은 임씨가 여성 시설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자행된 공권력에 의한 불법적인 인신구속 행위와 시설 내 방치, 학대 등 인권 유린 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임씨의 신상기록 카드를 검토한 결과 1983년 9월 서울시립 동부 여자기술원에 입소 혹은 퇴소하고, 1983년 12월 청량리정신병원에 입원한 뒤 1986년 2월 퇴원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임씨는 해당 시설에 1986년 3월 수용된 뒤 2007년 5월 퇴원했다. 진실화해위는 위원회가 발간한 ‘집단시설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등에서 해당 시설 내 인권 유린 등이 확인된 점 등을 토대로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시설 관계자는 “시설 내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이는 그간 시설 직원들이 고군분투한 노력을 짓밟는 처사”라고 반박했다. 진실화해위는 삼청교육 피해사건과 관련한 추가 신청 181건과 경북 경주 국민보도연맹 및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5·16 직후 피학살자 유족회 탄압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 등도 조사한다. 진실화해위에 접수된 진실규명 신청 건수는 지난달 25일 기준 1만 6339건이다. 진실규명 신청 기한은 오는 12월 9일까지다.
  • [사설] 강제동원 문제, 이제 한일 결심해 풀 때다

    [사설] 강제동원 문제, 이제 한일 결심해 풀 때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 모색을 위해 외교부가 지난 7월 출범시킨 민관협의회가 그제 4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종료됐다. 강제동원 피해자(원고) 측 대리인 등은 정부가 대법원에 현금화 결정을 늦춰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낸 사실에 반발해 참석을 거부했지만, 정부는 피해자 측의 요구와 협의회에 제시된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정부안을 조만간 내겠다고 밝혔다. 2018년 10월 대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고인 일본 기업의 배상을 확정한 뒤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대법원 확정 판결로부터 벌써 4년이 다 됐다. 더 늦기 전에 강제동원이란 과거사 문제를 지혜롭게 푸는 한일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갇혀 해결책을 못 냈다. 일본은 2019년 7월 대한국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로 보복하고,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다가 번복하는 악순환을 거치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일은 사상 최악의 시간을 보내 왔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격화로 세계 공급망 질서가 재편되고,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및 북한핵 문제로 한미일 외교안보 협력이 중요해지면서 한일의 관계 개선도 시급해졌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을 ‘힘을 합칠 이웃’으로 규정하고 강제동원 문제를 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한국과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보상이 끝났다는 일본 사이에서 징용 피해자도 납득하고 일본의 정부와 기업도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정부는 조속히 제시하길 바란다. 정부의 대위변제를 포함해 기금 조성, 재단 설립 등 모든 방안을 검토해서 국민의 공감을 얻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 [마감 후] 사과를 권고한들

    [마감 후] 사과를 권고한들

    인생을 꽃피울 나이에 부랑인으로 몰려 강제수용된 것도 모자라 가혹행위에 시달린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가폭력’ 피해자로 공식 인정받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국가의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규명됐다는 국가기관의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이후 이 사건과 관련된 기관 중 피해자에게 사과하거나 유감 표명을 한 곳은 없다. 당시 수용 근거가 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훈령이 위헌·위법하다는 게 밝혀졌고, 부산시와 경찰ㆍ안기부(현 국가정보원) 등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한 것이 확인됐다고 하는데도 책임지는 기관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건 진실 규명에 나선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국가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할 것을 권고했을 뿐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떻게 사과하라고 하진 않았다. 특정 기관을 콕 집어 “사과하세요”라고 하지 않았으니 관련 기관 입장에선 좋은 핑계가 될 수 있다. 2기 진화위가 지난해 5월 조사를 개시한 이후 진실 규명이 결정된 사건 중 국가 사과를 권고한 사건은 10건이 넘는다. 그러나 진화위는 권고 사항을 해당 기관에 통지할 뿐 권고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관리할 권한까진 부여받지 못했다.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진화위 활동이 종료된 이후 작성하는 종합보고서 권고 사항만 이행 관리 대상에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2년 뒤에나 하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수십 년 고통받아 온 피해자들은 한시가 급한데 정작 정부는 규정을 이유로 피해 구제를 미루는 답답한 상황이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인 김용판 의원이 국회 행안위 회의 때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장을 세워 놓고 “민생 살피는 이런 업무는 적극 행정해야 한다”며 핀잔을 줬을까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24일 ‘울산 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추모식’에 맞춰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포괄적으로 사과했다. 한국전쟁 시기 불법적으로 이뤄진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인 울산 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해 제1기 진화위가 국가의 공식 사과를 권고한 지 2개월 만이었다. 진화위의 권고에 따라 대통령이 사과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추모식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보면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해 사과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국가’라는 추상적인 사과 주체 뒤에 숨지 않고 억울한 피해자의 맺힌 한을 풀어 주는 게 최고 책임자가 할 일임을 명확히 보여 준 셈이다. 국정원도 늦었지만 1기 진화위의 국가 사과를 권고받은 27개 사건의 피해자ㆍ유족에게 지난해 7월 원장 명의의 사과 서한을 보냈다. 공권력으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했던 피해자들이 사과도 못 받고 사법부를 통해 피해 배상을 받아 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면 이는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진짜 사과’다. 어떤 게 잘못됐는지 책임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재발 방지 대책과 함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들고 “미안하다”고 해도 이들이 대한민국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약자 복지’를 추구한다는 윤석열 정부가 공권력 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하는지를 보면 약자 복지가 말뿐인지도 확인이 될 것이다.
  • [사설] 긴급조치 불행한 역사, 국가폭력 책임지는 계기 되길

    [사설] 긴급조치 불행한 역사, 국가폭력 책임지는 계기 되길

    1975년 5월 박정희 정부가 발령한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고 불법인 만큼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그제 나왔다. 이는 박근혜 정부 때인 7년 전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가 불법이지만 ‘정치 행위’인 만큼 국가가 배상할 필요는 없다고 한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폭력에 대해서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사법적으로 뒤늦게 확인한 셈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판결이 바로잡힌 점은 환영할 일이다. 무엇보다 정치권력과 함께 사법 농단을 벌이며 정의 회복을 7년 넘도록 지연시킨 사법부의 반성이 절실하다. 유신정권 시절의 불행한 역사와 단절하고자 한다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물리적 폭력, 사법적 폭력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주 4·3항쟁과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밝히고 진실 규명 및 피해자 위로에 대한 의지를 다졌듯 유신정권 시절의 각종 어두운 과거사 또한 반드시 극복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48년 만에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만큼 성실하고 합당한 배상 조치가 필요하다. 긴급조치 9호와 더불어 이미 불법 판결을 받은 긴급조치 1, 4호까지 합치면 피해자는 1000명이 훌쩍 넘어간다. 이 가운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패소해 재소송을 진행하기 어려운 이들은 200명에 가깝다. 대법원 판결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패소자들까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국회가 나서서 긴급조치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신속히 제정하는 등 적극적 역할을 하기 바란다.
  • 대법 “박정희 긴급조치 9호 발령·재판 정당성 없어”… 판례 모순 해소

    대법 “박정희 긴급조치 9호 발령·재판 정당성 없어”… 판례 모순 해소

    “당시 위법한 ‘일련의 국가작용’”김명수의 진보 법관 구성도 영향 긴급조치 1·4·9호 피해자 1050명소송 60%는 양승태 때 패소 확정재심특례법 통해 피해 구제해야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가 30일 유신정권 시절 ‘긴급조치 9호’로 피해를 본 국민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도록 판례를 변경한 것은 이 조치가 위헌·무효라면서도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던 기존 판례의 모순을 해소한 판결로 평가된다. 사법부가 긴급조치 9호가 발령된 지 48년 만에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 피해자의 소송도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은 2015년 3월 판결에서 유신헌법에 근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를 ‘통치 행위’로 판단했다. 긴급조치 9호가 헌법에 위반되더라도 이를 발령한 행위 자체는 위법이 아니기에 민사상 국가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양승태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에 따른 수사·재판 과정에서 별개의 불법 행위가 있을 때만 배상책임이 있다고 좁게 판단했다. 이미 2013년에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1·2·9호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또 대법원도 같은 해 긴급조치 4·9호가 무효라고 봤는데도 2년 뒤 대법원이 국가배상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놓자 모순이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 사이 ‘사법거래’ 의혹까지 제기됐다. 대법원은 이날 긴급조치 9호 발령과 이에 따른 수사와 재판을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보고 이 과정 전체가 객관적 정당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피해를 본 국민이 당시 수사관이나 법관의 고의·과실·위법성을 일일이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판결에 따라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기가 수월해졌다. 다음달 4일 퇴임하는 주심 김재형 대법관은 “이 판결로 우리 사회가 긴급조치 9호로 발생한 불행한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별개의견을 냈다. 여기에는 대법원 구성원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를 지나며 대법원은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해 진보 성향 대법관이 늘었다. 1975년 발령된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된 인원은 800여명으로 알려졌다. 긴급조치 피해자 단체인 사단법인 ‘긴급조치사람들’이 파악하고 있는 긴급조치 9호 피해자는 417명이며 이 중 패소 판결이 확정된 사람은 193명에 이른다. 여기에 1974년 발령된 긴급조치 1·4호 피해자까지 고려하면 소송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긴급조치 1·4·9호 위반자는 1204명으로 이들 중 무죄·면소 판결을 받은 154명을 제외하면 피해자는 1050명에 이른다. 이들 중 재심이 이뤄진 사람은 864명이다. 다만 대법원 판결은 소급효과는 없어 이미 판결이 확정된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을 수는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은 대법원 24건, 하급심 9건이다. 긴급조치사람들은 “국가배상 청구소송 제기자의 약 60%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에 의해 패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며 재심특례법 입법 등 해결 방안을 촉구했다.
  • [씨줄날줄] 국가폭력/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국가폭력/임병선 논설위원

    모든 국가는 선(善)을 표방한다. 적어도 국가의 행위를 선하게 보이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타자의 입장에서는 악마가 될 수도 있다. 국가의 이해에 반한다는 이유로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 공권력을 과잉 행사하는 것을 국가폭력이라고 한다. 나치 독일이나 북한, 차우셰스쿠 치하의 루마니아, 마오쩌둥의 중국처럼 국체 자체가 폭압에 근거할 수도 있는데, 국가의 일부 행위가 삿된 의도에 기여할 목적으로 기획되기도 한다. 군대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경찰이 시민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정치범이나 부랑자, 장애인, 난민 등을 시설에 감금하고 폭행하는 일이 그렇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일은 늘 있어 왔다. 해방 후 제주 4·3, 거창 양민학살 같은 한국전쟁 중 국군의 잔학행위, 진보당 사법살인, 6·3 항쟁, 실미도 사건, 민청학련과 사북 사태, 삼청교육대, 인민혁명당, 광주민주화운동, 부천서 성고문, 박종철 고문 치사 등에서 우리는 국가의 배신을 경험했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며 입양기관과 공모해 고아라고 서류를 조작해 해외로 입양 보내는 후안무치한 일도 있었다. 2기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첫 폭로 35년 만에 군사정권 시절 자행됐던 부산 형제복지원의 인권 침해를 국가폭력 범죄라고 규정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위원회는 정부의 공식 사과 및 피해자 구제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1기 위원회의 권고도 묵살했다. 행정안전부는 2기 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는 2024년까지만 권고를 이행하면 된다고 접수조차 마다했다. 크게 잘못한 일이다. 국방부는 행안부 눈치를 보고 있다. 정부 배상을 요구한 이 사건 피해자들은 진실화해위에 어느 부서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물었는데, 이에 대해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는 국가는 정당성을 인정해 달라고 국민에게 요구할 수 없다. 왜 윤석열 정부가 과거 정부의 잘못을 대신 사과해야 하는지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가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특정 정부의 울타리를 뛰어넘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지휘하는 것이 옳다.
  • [애니멀S] 자신의 과거를 온몸에 새겨둔 떠돌이 진돗개 비지

    [애니멀S] 자신의 과거를 온몸에 새겨둔 떠돌이 진돗개 비지

    농림축산검역본부 〈2020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연간 발생하는 유기동물의 수는 13만 마리입니다. 한때 반려견이라 불리던 이들은 이사를 떠나면서 남겨지고,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며 시골로 보내지며, 휴가철 피서지에 버려집니다. 그렇게 가족을 잃은 개들은 살아남기 위해 마을 인근을 누비거나 산으로 올라갑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떠돌이 개의 과거는 알 수 없습니다. 동물등록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내장칩 혹은 외장형 식별 태그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확인 불가합니다. 하지만 작년 추운 겨울날, 안산에서 만난 떠돌이 백구 '비지'는 자신의 과거사를 몸 전체에 새겨둔 채 발견되었습니다. 떠돌이 개 비지는 영하 20도의 최악의 혹한 속에서 새끼 4마리를 출산했습니다. 출산 전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지 못했고, 지친 몸으로 꽁꽁 얼어붙은 땅을 팔 수도 없었습니다. 비지는 눈이 떨어지지 않은 공간을 어렵게 찾아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새끼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비지의 몸에 기록된 과거 이야기 구조 후 병원으로 이송된 비지는 검진 결과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우선 비지의 오른쪽 앞 다리에는 무언가 묶여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다리가 괴사 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라는 것이 병원 소견이었습니다. 또 다리와 같은 방향의 치아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자신의 다리를 파고드는 올무 혹은 매듭을 이빨로 뜯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흔적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엑스레이 촬영 결과 비지의 앞다리 안쪽에 총알로 보이는 물질이 발견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배척당한 것으로 부족해, 사람들에게 쫓기고 쫓기며 비지는 하루하루 생존해 왔습니다. 목숨을 잃을 위기 속에서도 죽기 살기로 발버둥 치며 포기하지 않았다고 비지는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새로운 것으로 가득한 카라에서 비지의 이야기 비지는 구조 후 활동가들에게 등을 돌려 벽만을 쳐다보고, 다가가면 손길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비지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외로이 산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비지처럼, 활동가들은 비지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활동가들의 진심 어린 사랑에 천천히 비지는 반응해 주었습니다.  손에 있는 간식을 받아먹고, 조심스레 다가와 냄새도 맡았습니다. 또 더봄센터에서 첫 목욕, 첫 산책, 첫 '앉아'까지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경험했습니다. 무엇보다 비지는 생애 처음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가족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길 마음을 열어준 비지가 하루빨리 가족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 비지는 현재 훈련소에 입소해 사회화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매달 활동가들을 만나면 조금 더 환한 미소로, 조금 더 격하게 반기며 환영인사를 해주는 비지를 보면 매번 미안하면서도, 너무나 고맙습니다.  이제 비지가 기다리는 것은 평생가족입니다. 하지만 진돗개와 그 혼종의 입양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그 기다림이 너무나 길어질까 두렵습니다. 비지가 좋은 가족을 만나 앞으로 행복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날이 오길 기다립니다. 
  • ‘형제복지원 사건’ 657명 사망 첫 확인… “국가가 인권 침해 묵인”

    ‘형제복지원 사건’ 657명 사망 첫 확인… “국가가 인권 침해 묵인”

    부랑인 단속을 이유로 불법 구금해 강제노역을 시키고 가혹행위를 했다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 기관이 처음으로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 냈다. 1987년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이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4일 서울 중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1차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하고 정부에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할 것과 피해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당시 수사 기록과 시설별 아동카드, 신상기록카드, 보안사령부 문건, 정신과 약물투입 목록 등 다수의 자료를 통해 형제복지원이 설치·운영되는 데는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과 인권침해에 대한 묵인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1987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의 ‘부랑인시설운영개선방안’에는 “복지시설에서 보호관리하면서 사회적응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 공공의 안정질서와 개인의 보호 차원에서도 불가피한 일” 등 법적 근거가 없으면서도 강제 구금의 정당성을 피력하는 부분이 드러나 있다. 1986년 5월 8일 보안사령부가 작성한 문건에는 형제복지원을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로 재소자 대부분이 탈출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곳’으로 설명하는 등 정부도 인권침해 실상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도 기존에 알려진 552명에서 105명이 추가 확인돼 657명으로 늘어났다. 수용자를 길들이기 위해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약한 정황도 드러났다. 1986년 복지원에서 1년간 구입한 ‘클로르프로마진’(조현병 환자의 증세 완화제)은 총 25만정이었는데 이는 1년간 342명이 매일 2회 복용할 수 있는 양이라는 게 위원회의 설명이다. 이승재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말을 안 듣는 사람에게 일종의 징벌로 ‘화학적 구속’을 해 정상적 수용자를 망가뜨린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권고가 강제가 아닌 데다 권고 이행 주체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근식 위원장은 “권고는 국가가 상당한 책임을 가지고 이행해야 하는 것”이라며 “사과의 주체는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결과가 피해자들이 지난해 5월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피해자 이향직씨는 “당시 입소·상담카드 서류도 대한민국이 만들었고 관리도 분실도 대한민국이 했는데 우리한테 그 서류를 가져오라고 한다”면서 “피해자 입증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 “형제복지원 사망자 105명 추가 확인…국가 인권침해 묵인”

    “형제복지원 사망자 105명 추가 확인…국가 인권침해 묵인”

    진실화해위, 35년만의 첫 진실 규명정부 공식 사과 및 피해회복 방안 권고강제력 없고 권고 이행 주체 모호해 부랑인 단속을 이유로 불법 구금해 강제노역을 시키고 가혹행위를 했다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 기관이 처음으로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냈다. 1987년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지 35년만이다.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4일 서울 중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1차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하고 정부에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할 것과 피해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당시 수사 기록과 시설별 아동카드, 신상기록카드, 보안사령부 문건, 정신과 약물투입 목록 등 다수의 자료를 통해 형제복지원이 설치·운영되는 데에는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과 인권침해에 대한 묵인이 있었다고 지적했다.1987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의 ‘부랑인시설운영개선방안’에는 “복지시설에서 보호관리하면서 사회적응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공공의 안정질서와 개인의 보호 차원에서도 불가피한 일” 등 법적 근거가 없으면서도 강제 구금의 정당성을 피력하는 부분이 드러나 있다. 1986년 5월 8일 보안사령부가 작성한 문건에는 형제복지원을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로 재소자 대부분이 탈출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곳’으로 설명하는 등 정부도 인권침해 실상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도 기존에 알려진 552명에서 105명이 추가 확인돼 657명으로 늘어났다. 수용자를 길들이기 위해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약한 정황도 드러났다. 1986년 복지원에서 1년간 구입한 ‘클로르프로마진’(조현병 환자의 증세 완화제)은 총 25만정이었는데 이는 1년간 342명이 매일 2회 복용할 수 있는 양이라는 게 위원회의 설명이다. 이승재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말을 안 듣는 사람에게 일종의 징벌로 ‘화학적 구속’을 해 정상적 수용자를 망가뜨린 것”이라고 말했다.“국가가 만들고 분실...입증 책임 누구한테 있나” 다만 권고가 강제가 아닌데다 권고 이행 주체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근식 위원장은 “권고는 국가가 상당한 책임을 가지고 이행해야 하는 것”이라며 “사과의 주체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결과가 피해자들이 지난해 5월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피해자 이향직씨는 “당시 입소·상담카드 서류도 대한민국이 만들었고 관리도 분실도 대한민국이 했는데 우리한테 그 서류를 가져오라고 한다”면서 “피해자 입증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 형제복지원 사건 35년 만에 진실 규명…“국가 사과” 권고

    형제복지원 사건 35년 만에 진실 규명…“국가 사과” 권고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내렸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에 국가 기관이 처음으로 ‘국가 폭력에 따른 사건’으로 인정한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24일 오전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진실규명 결정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 사건은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하에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국가 묵인 속 강제노역·가혹행위에 사망 657명 이번 조사에서 위원회는 ▲ 부랑인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 형제복지원 수용과정의 위법성 및 운영과정의 심각한 인권침해 ▲ 정부의 형제복지원 사건 인지 및 조직적 축소·은폐 시도 등을 밝혀냈다. 조사 결과 형제복지원 사건은 시설을 운영하는 전반적인 과정에서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부터 1992년 8월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이곳에서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벌어진 사건이다.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 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 8000여명에 이르렀다. 진실화해위는 사망자 통계와 명단 등 관련 자료 14건을 추가로 검토해 1975∼1988년 형제복지원 사망자가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이 더 많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또 국가가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외면한 정황도 드러났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에도 당시 보건사회부는 부랑인 강제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부산시와 경찰, 안기부 등 부산 지역 모든 기관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 은폐했다”며 “특히 부산시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진정과 소송을 회유하고 원장과 측근들이 다시 형제복지원 법인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했다.국가 공식 사과·피해 회복 위한 실질 조치 권고 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 회복 및 트라우마 치유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국가가 각종 시설의 수용 및 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국회는 유엔 강제실종 방지 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하라고 했다. 특히 부산시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조사 및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조직하고 예산을 책정하라고 권고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오랜 시간 기다려온 형제복지원 사건의 인권침해 진실이 드러난 것은 피해자와 유가족, 사회단체 등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며 “2기 진실화해위 출범의 계기가 된 이번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진실규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2020년 12월 10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접수한 뒤 지난해 5월 본격 조사를 시작했다. 이번 진실 규명은 전체 신청자 544명 중 작년 2월까지 접수된 191명을 대상으로 나온 것이다.
  • [황성기 칼럼] 강제동원 해결에 놓인 암초들/논설실장

    [황성기 칼럼] 강제동원 해결에 놓인 암초들/논설실장

    4년간 표류하던 강제동원 문제가 입구에 들어섰다. 윤석열 정부의 해결 의지가 강해 보인다. 희망이 있다. 윤 대통령은 첫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 칭했다. ‘힘을 합칠 이웃’은 친일 프레임을 꺼리던 이전 정부까진 별로 없던 표현이다. 취임 100일 회견에선 “강제징용 판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의 충돌 없이 채권자(원고·피해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논란의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 현금화 전에 피해자가 보상받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만 내세웠지 보상은 지연시킨 전 정권에선 생각할 수 없던 말이다. 윤 대통령 100일간의 어설픈 내치와 달리 한미 등 외교에서는 정치를 시작한 1년 사이 제법 내공을 쌓은 단면을 보여 주는 장면들이다. 시간이 안 맞았다는 게 이유지만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회담 없이 전화통화로 끝낸 점도 한중 외교의 한 수였다. 주변에 포진한 외교 현자들 덕분이며, 과외를 잘 받고 윤석열식으로 잘 소화한 결과다. 이런 의지가 대일 외교에서 구현된 게 한일정책협의단의 일본 파견이고, 박진 장관의 방일이며,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일본을 맡았던 윤덕민의 주일대사 부임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봉인했던 ‘강제동원’을 지지율이 깎이더라도 정면돌파하며 “정치쇼”는 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관철한다면 험로도 헤쳐 나갈 수 있다. 정부의 보상안이 해결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강제동원 문제의 출구를 나서기까지는 여러 난관들이 기다린다. 첫째, 피해자와 시민단체, 정부 해법을 훼방하려는 야당을 포용하는 일이다. ‘한국 정부 책임하의 대위변제에 의한 보상’이 지론인 5선의 이상민 의원 같은 이는 더불어민주당에선 극소수다. 민주당에게 정부 대위변제는 공격의 호재료다. 하지만 4년간 이 문제를 방치한 건 민주당 정권이었다. 현 정권과 전 정권이 허심탄회하게 풀어야 할 공동 숙제다. 둘째, 강제동원 해결 여부가 어떤 국익, 어떤 손실을 가져올지 명확해야 한다. 윤덕민 대사가 수십, 수백조의 비즈니스 기회가 날아간다고 주장한 것으론 모자란다. 현금화가 일어나면 일본은 자국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2019년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를 초월하는 파상적 제재를 가해 올 것이다. 한국 내 자산을 매각당한 일본 기업들이 외교적 보호권을 요청하면 일본 정부도 강경 행동의 근거를 갖게 된다. 일본 은행이 한국 기업에 행한 대출의 강제 회수라는, 한일이 동시에 핵폭탄을 맞는 극한적 상황까지 갈 수 있다. 셋째, 한일 모두에는 역사 문제의 해결을 바라지 않는 세력이 있다. 서로 통한다는 일본의 극우, 한국의 극좌다. 일부 정치인, 언론, 운동가 등의 역사퇴행형 혹은 생계형 혐한, 혐일이다. 이들이 과거사 해결을 저지하려고 어떤 찬물을 끼얹더라도 강인한 맷집으로 버텨 내야 한다. 또한 반성에 약한 일본과의 역사 문제는 장기전을 요한다는 인식도 필요하다. 넷째, 대법 판결에는 없는 사죄다. 하지만 피해자는 물론 적지 않은 국민들이 강제동원에 대해 “65년 협정으로 다 끝났다”는 일본의 주장을 턱없이 모자란다 여긴다. 일본의 적절한 인사가 적절한 공간과 시점을 골라 도의적 책임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이다. 박진 외교의 과제다. 다섯째, 소소한 문제이지만 채권자의 동의 없는 대위변제는 불가능하다는 해괴한 논리가 외교부까지 침투해 있다. 법제처를 비롯한 책임 있는 기관에서 유권해석을 내려 정리해야 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오부치의 ‘사죄’와 김대중의 ‘평가’가 한 축이라면 ‘역사인식을 심화시켜 미래를 지향한다’가 다른 한 축을 이룬다. 미완의 ‘한일 98년 체제’를 쉽지는 않지만 완성해야 한다.
  • 48년 전 덴마크 입양된 묄러 변호사의 외침 “고아 수출 진상 밝혀달라”

    48년 전 덴마크 입양된 묄러 변호사의 외침 “고아 수출 진상 밝혀달라”

    지난 1974년 덴마크로 입양된 우리 핏줄 페터 묄러(48, 한국 이름 홍민)의 절규가 서울 하늘에 울려퍼졌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당시 덴마크로 입양된 아이들의 서류에는 고아라고 표시됐으나 실제로는 부모가 살아 있었거나, 한국에서 이미 사망한 아동의 신원 및 사진이 자신의 것으로 등록된 사실을 성인이 돼서야 알게 된 입양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입양 서류에 건강하다고 기재돼 있는 아이들이 병들거나 영양실조에 걸린 아동이었던 사례가 적지 않다고 했다. 또 입양 과정에서 아동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고, 생존할 수 있었어도 질병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성장하는 과정에 고통을 겪는 일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1963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아이들은 8814명이나 된다. 이들 가운데 자신의 입양 과정에 잘못된 범죄나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우리 정부기관이 직접 조사해달라고 53명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권위주의 군사정부가 이른바 ‘고아 수출’을 했다는 의혹을 입양인 스스로 밝혀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의 공동대표인 묄러 변호사는 23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사무실 앞에서 자신들의 입양 과정에 국가와 사설 입양기관들이 덴마크 입양인들에 자행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기자회견을 열어 호소했다. 해외 입양인들이 집단으로 진실화해위에 인권침해 조사를 신청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DKRG는 덴마크 입양인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고, 해외입양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로 175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묄러 변호사는 2주 뒤에 다시 한국을 찾아 다른 회원들의 조사 신청서를 모아 전달할 계획이다. 이번에 조사 신청서를 제출한 이들은 “그동안 거짓을 바탕으로 살아 온 해외입양인이 진실을 알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며, 정체성과 알 권리를 박탈당한 수천 명 입양인에 대해 진실화해위가 적극적으로 조사하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DKRG에 따르면 다수의 해외입양인은 성인이 된 뒤 한국 입양기관에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을 요청해도 거절당하고 있다. DKRG는 “해외입양 과정에서 강압, 뇌물 등의 불법도 나타났다”며 “해외입양은 입양기관 단독으로 이뤄질 수 없는 만큼 당시 한국 정부가 적극적·소극적으로 불법 입양에 개입해 인권을 침해했는지 밝혀주길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묄러 변호사는 “DKRG 회원 중에는 양어머니가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를 받았을 때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아 아이가 사망할까 봐 걱정하자, 한국 입양기관으로부터 ‘아이가 죽으면 다른 아이로 바꿔주겠다’는 말을 들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회원이 진실규명 신청에 참여하면 한국 입양기관이 갖고 있던 기록을 불태우거나 파괴해 한국 가족을 영영 찾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당시 한국 정부는 입양아들이 고아라며 도장을 찍은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산수를 조금만 해봐도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시 서울의 거리와 지하실이 온통 고아로 가득했다는 뜻인데, 이게 말이 되는가”라고 되물었다. 진실화해위는 4개월 안에 조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묄러 변호사는 “아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그들의 신원이 모두에게 공개돼야 한다”며 “진실화해위가 사건을 각하하면 대한민국이 진실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DKRG는 홀트아동복지회와 한국사회봉사회 등에 입양 서류 접근권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홀트는 이미 미국 입양인 애덤 크랩서가 2019년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법적으로 다투고 있다. 그는 두 차례나 파양되는 아픔을 겪은 뒤 2016년 한국으로 추방되자 자신의 불행에 국가가 제대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소송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덴마크 입양인들도 크랩서처럼 입양기관과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했으나 우리 민법이 모든 입증 책임을 피고에게 지우는 점을 감안해 진실화해위에 진상 조사를 요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가 밝힌 진상을 토대로 민사소송을 나설 계획이라고 이들을 돕는 신필식 변호사는 설명했다. 지난 60년 동안 해외로 입양된 한국 아동은 대략 20만명에 이른다. AP 통신이 군사정권 문서들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군사정권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해외 입양을 지렛대로 서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 민주화 단체, 진화위에 ‘밀정 의혹’ 김순호 경찰국장 진실규명 신청

    민주화 단체, 진화위에 ‘밀정 의혹’ 김순호 경찰국장 진실규명 신청

    민주화 단체, 녹화 공작 전수조사와 함께‘밀정 의혹’ 김순호 경찰국장 진실규명 신청“경찰국 수장이 프락치 의혹···기 막혀”이상민 행안부 장관 “교체 상의한 바 없어”민주화운동 희생자 추모 단체가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의 ‘밀정’ 의혹을 밝혀달라며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 연대회의(추모연대)는 23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화공작 피해자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김순호 경찰국장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존안파일에 적시된 프락치 의혹의 진실을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이창훈 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신설된 경찰국의 수장이 우리가 진실을 규명해야 할 의문사 사건의 프락치 역할을 한 사람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진실화해위는 국민이 위임한 대로 참과 거짓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범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대책위 간사는 “녹화공작을 담당한 심사장교 23명은 공작의 실체에 대해 적지 않은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누구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면서 “국가는 관련자의 범죄를 소명하고 피해자와 희생자의 명예회복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국장은 1989년 노동운동단체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동료를 밀고하고 그 대가로 경찰에 대공요원으로 특채된 의혹을 받고 있다. 학생운동을 하다 강제징집 된 이후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녹화사업(사상전향 공작) 대상자로 관리받았고 이후 대학 서클 동향을 수집해 보고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김 국장은 “주체사상에 대한 염증과 두려움 때문에 (인노회 활동을 하다) 전향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경찰청 을지연습장에 격려 방문한 자리에서 ‘경찰국장 교체도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일단 이야기를 한번 쭉 들은 다음에 상황이 어떤지 한 번 보겠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경찰청장이나 경찰국장과 따로 상의한 바는 없다”고 덧붙였다.
  • 윤희근 “김순호 경찰국장 보직변경, 행안부 의사가 중요”

    윤희근 “김순호 경찰국장 보직변경, 행안부 의사가 중요”

    민주화 희생 추모단체,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 신청 윤희근 경찰청장은 ‘밀정’ 의혹이 제기된 김순호(59·치안감)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의 보직 변경과 관련 “행안부 의사가 중요해 추가 요청이 있는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윤 청장은 22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김 국장의) 보직변경은 파견받은 기관의 의사가 중요하다”면서 “그쪽(행안부)에서 요청이 온다든지 하면 판단하겠다.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최초 의혹이 제기된 후 국회 업무보고도 있었는데 반드시 바꿔야겠다는 정도의 추가 사실이 나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윤 청장은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 징계 절차는 남았지만 나머지는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류 총경은 감찰 조사를 받으러 왔다가 기자회견만 하고 조사는 실질적으로 응하지 않았다”면서 “최대한 본인이 소명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윤 청장은 경찰대 개혁과 순경 출신의 고위직 확대 방안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그는 “일반 출신 고위직 확대는 이번 정부 기조이기도 하고 저희도 동의했기에 당연히 그렇게 갈 것”이라며 “경찰대는 이미 개혁작업을 심도 있게 해왔고 마지막 남은 건 졸업과 동시에 경위로 임용되는 문제인데 총리실 산하 경찰제도개선위원회에서 ‘제로베이스’ 상태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화운동 희생자 추모 단체들은 23일 김순호 국장의 강제징집·녹화사업(사상전향 공작) 피해자 여부를 조사해달라며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할 예정이다. 진실화해위는 이미 강제징집·녹화사업 유족의 진실규명 신청을 받아 조사를 진행 중이다. 조사 결과는 연말쯤 나올 전망이다.
  • 日 자위대 관함식에 韓해군 초청… 정부 “참석 무게 두고 고심 중”

    日 자위대 관함식에 韓해군 초청… 정부 “참석 무게 두고 고심 중”

    일본이 오는 11월 해상 자위대 창설 70주년 관함식에 우리 해군을 초청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외교 선순위로 놓고 고민 중인 윤석열 정부는 관함식 참석에 무게를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일본은 11월 6일 열리는 해상자위대 창설 70주년 국제 관함식에 한국을 비롯한 서태평양해군심포지엄(WPNS) 회원국을 초청했다. 일본은 관함식에 이어 진행되는 해상자위대 주도의 인도주의적 수색구조 훈련에도 우리 해군을 초청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초청받은 건 사실이고, 아직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참석을 긍정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관함식은 일본 총리가 자국 해상에서 각국 군함을 사열하는 방식으로, 통상 3~4년마다 우방국을 초청해 열렸다. 그동안 관함식 초청은 한일 관계가 냉각기를 맞을 때마다 시선이 집중됐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해 한일 관계가 악화된 2019년 당시 일본은 한일 관계 악화를 빌미로 한국을 초청하지 않았다. 2018년에는 한국 해군이 개최한 제주 국제 관함식에 자위대가 불참했다. 한국이 해상자위대 함정에 욱일기 대신 일본 국기와 태극기만 게양하라고 한 요구에 일본 측이 반발했던 것이다. 2015년 10월 일본 관함식에는 우리 해군의 대조영함이 참가했는데,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승선했던 구라마함에 욱일기가 걸려 국내에서 관함식 참석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일본은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1월 우리 정부에 관함식 초청장을 전달했다. 당시 초청장을 접수한 문재인 정부는 관함식이 임기 이후에 열리는 만큼 판단을 미뤘다.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갈등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이었던 점도 결정을 차기 정부에 미룬 요소로 보인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자산 현금화 등 과거사 해법 논란이 맞물린 시점에서 우리 해군이 관함식 참가 결정을 할 경우 국내 여론이 악화될 것이라는 관측과 한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동시에 나온다. 해군이 일본 관함식에 참석할 경우 2015년 이후 7년 만이다.
  • 여순10·19범국민연대, 출범 1주년 기념 행사 18일 개최

    여순10·19범국민연대, 출범 1주년 기념 행사 18일 개최

    여순10·19범국민연대(범국민연대)가 출범 1주년을 맞아 오는 18일 오후 2시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 다목적홀에서 ‘돌아보며 나아가기’를 위한 행사를 연다. 범국민연대는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를 위해 설립한 민간연대기구다. 이날 범국민연대는 ‘역사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1부에서는 1년간의 활동을 영상을 통해 되돌아보고 진상조사 후 운영될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 발족도 선언할 예정이다. 2부에서는 역사학자 백승종 교수를 초청해 8·15 해방정국과 여순사건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특강 및 대담시간을 가진다. 행사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제언을 듣는 시간도 마련해 범국민연대 활동의 지표로 삼을 예정이다. 서형원 범국민연대 상임대표는 “특별법 제정 이후 범국민적 연대를 위해 한국YMCA를 비롯 시민단체와 다른 지역 유족단체, 과거사 진상규명 관련 단체 등과 연대기구로 출범했다”며 “그동안 1기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와 경남지역 민간인 학살 연구자 초청 특강, 특별법 시행 과정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공청회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여순사건을 대표하는 민간연대기구로서 다른 지역 과거사 관련 단체 등과 연대와 교류를 통해 과거사 문제가 올바르게 정립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특히 “여순사건위원회가 피해자 신고에 의존하지 않고 직권조사를 통한 확실한 진상조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계속 협의를 추진해 나가겠다”며 “기념사업회도 미리 준비해 진상규명 후 지역사회가 제주 4·3처럼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데 총력을 모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범국민연대는 지난해 8월 19일 출범했다. 시민특강과 진상규명 포럼 개최를 비롯 민관간담회, 유엔특별보고관 면담, 특별법제정 1주년 기념 국회토론회 개최 지원 등 여순사건을 대표하는 민간기구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 日 “윤 대통령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대위변제 추진하나”

    日 “윤 대통령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대위변제 추진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을 맞아 한일 최대 현안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해 일본 언론은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 충돌없이 채권자들(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지금 깊이 강구 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이 여기서 밝힌 방안은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의 배상금을 대신 피해자에게 지급하고 차후에 일본 기업 측에 청구하는 대위변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윤 대통령은 “과거사도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협력 관계를 강화할 때 양보와 이해를 통해 과거사 문제가 원만하게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NHK는 “윤 대통령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매각되는 ‘현금화’ 이전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도 “윤 대통령이 패소한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에 따른 실질적인 피해가 나지 않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대위변제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이며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구체적 방안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배상을 위해 일본 기업의 자산을 매각하는 현금화 절차가 곧 나오게 되면 한일 관계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고 윤 대통령 발언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일본 언론은 또 윤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 이어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교도통신은 “윤 대통령이 ‘역대 최악의 일본과의 관계 역시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켜나가고 있다’고 강조하며 다시 한번 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밝혔다.
  • [전문] 취임 100일 윤석열 대통령 “국민 숨소리 안 놓치겠다”

    [전문] 취임 100일 윤석열 대통령 “국민 숨소리 안 놓치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성과와 구상을 밝혔다. TV로 생중계된 이날 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약 20분에 걸쳐 모두 발언을 했다. 다음은 윤 대통령의 모두발언 전문. 여러분, 반갑다. 도어스테핑으로 뵙다가 이렇게 마주 앉게 됐다.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기자 여러분들도 고생 많으셨다. 앞으로 여러분께서 취재하시는 데 더 불편이 없도록 잘 챙기겠다. 지난 휴가기간 정치를 시작한 후 한 1년여의 시간을 돌아봤고, 취임 100일을 맞은 지금도 시작도 국민, 방향도 국민, 목표도 국민이라고 하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그동안 국민 여러분의 응원도 있고, 따끔한 질책도 있었다. 국민들께서 걱정하시지 않도록 늘 국민의 뜻을 최선을 다해 세심하게 살피겠다. 최근 폭우로 많은 국민들께서 고통과 피해를 받고 계시다. 신속하게 일상으로 복귀하실 수 있도록 피해 지원과 복구에 최선을 다하고, 이 재난 상황에서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고통이 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수해 예방대책과 아울러서 주거 대책도 챙겨 나가겠다.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책임이다.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정말 숨 가쁘게 달려왔다.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확대되어 가는 위기 상황을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가운데 민생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 왔고, 한편 우리 경제의 미래먹거리를 또 찾기 위해서 산업의 고도화, 미래전략산업 육성에 매진해 왔다.우선 소주성(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잘못된 경제정책을 폐기했다. 경제기조를 철저하게 민간 중심, 시장 중심, 서민 중심으로 정상화했다. 경제의 기조를 글로벌스탠더드에 부합하게 바꿨다. 상식을 복원한 것이다. 민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민간 스스로 혁신을 추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왔다. 시장이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작동되도록 제도를 뒷받침하고,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 균형을 이루도록 시장 정책을 펴서 기업과 경제의 주체들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제가 늘 강조했다시피 정부의 중요한 역할은 민간이 더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정부는 총 1천400건의 규제 개선 과제를 관리하고 있고, 이 중 140건은 법령 개정 등으로 개선 조치를 완료했다. 703건은 소관 부처가 개선 조치 중이다. 제가 직접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도약과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하게 혁신해 나가겠다. 아울러, 민간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세제를 정상화시켰다.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도록 법인 세제를 정비하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했다. 앞으로 우리는 산업의 변화를 뒤따라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기술혁신을 통해서 선도해 나가야만 한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해서 반도체, 우주, 바이오산업의 기반을 튼튼히 하겠다. 미래 산업의 핵심이자 국가 안보 자산인 반도체 산업의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기업, 인력, 기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전반을 망라하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발표했다. 특히, 인재 공급 정책을 중시해서 관련 대학과 대학원 정원을 확대하고, 민관 협력을 강화해서 반도체 핵심 전문 인재 15만명을 육성할 것이다. 우리의 독자 기술로 설계부터 제작, 발사까지 한 누리호 발사의 성공으로 민간중심의 우주산업 기반을 마련했다. 우리는 세계 7대 우주 강국으로서 우주 경제 비전을 선포했다. 대전의 연구, 인재 개발, 전남의 발사체 산업, 경남의 위성 산업 삼각 체제를 제대로 구축해서 나사를 모델로 한 우주항공청을 설립해서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것이다.미래 성장 동력으로 바이오헬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26년까지 13조원의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는 바이오헬스 혁신방안을 마련했고, 5천억원 규모의 백신 펀드 조성 계획도 발표했다. 미래 의료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혁신 의료기기의 평가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것과 같이, 기업의 혁신 성장을 발목 잡는 규제를 개선해 나갈 것이다. 일방적이고 이념에 기반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의 원전산업을 다시 살려냈다. 신한울 원전 3, 4호기는 건설에 다시 착수해서 환경영향평가가 진행 중이고, 공사재개의 시기를 최대한 앞당길 것이다. 무너진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원전 업계에 대한 수천억원의 발주와 금융 지원에 착수했다. 기술개발 투자를 확대해 원전산업을 국가의 핵심 전략산업으로 키워갈 것이다. 제가 탈원전 폐기를 선언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를 펼쳤습니다만, 그 결과 해외에서 최근 우리 원전 발주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우리 원전과 기업의 해외 진출과 세일즈를 위해 발로 직접 뛰겠다. 노사 문제 역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 사건과 화물연대 운송 거부사건을 처리했다. 관행으로 반복된 산업 현장의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노사를 불문, 불법은 용인하지 않으면서 합법적인 노동 운동과 자율적인 대화는 최대한 보장하는 원칙을 관철했고, 앞으로도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다. 법과 원칙 속에서 자율적 대화와 협상을 통한 선진적인 노사관계를 추구하고,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이중구조 문제 역시,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가겠다. 나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의 혈세를 허투루 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공적 부문의 긴축과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정을 최대한 건전하게 운용하고, 이를 통해 확보된 재정 여력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는 데 쓸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다. 국무회의,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당면한 민생 현안과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공공부문부터 솔선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내년도 예산안부터 성역 없는 지출 구조조정과 공공부문 지출 절감에 착수했다. 방만하고 비대화된 공공기관을 핵심 기능 위주로 재편하고, 불요불급한 자산의 매각, 유사한 지방 공공기관의 통·폐합을 통해 공공부문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제고하기로 했다. 특히, 정부 위원회를 30% 이상 줄여 불필요한 세금 낭비를 막았다. 그동안 정부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욱 고통받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주력해 왔다. 서민 물가 부담 완화를 위해 유류세를 대폭 인하하고, 어려운 분들의 생계 안정을 위해 1조 원 규모의 긴급생활안정지원금, 2천500억원 규모의 에너지 바우처를 지원했다.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정부 출범 직후, 추가경정예산을 긴급 편성해서 손실보전금 등 25조원을 지원했다. 수해,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는 충분한 금융 지원을 통해 대출금 상환의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겠다. 매주 비상경제민생회의를 통해 민생경제를 직접 챙기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더욱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수 있도록 세심하게 챙기겠다. 아울러 폭등한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켰다. 국민들의 주거 불안이 없도록 수요 공급을 왜곡시키는 각종 규제를 합리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거 복지 강화에 노력했다. 주택 급여 확대, 공공 임대료 동결로 서민의 주거비 부담을 경감시키고, 깡통 전세, 전세 사기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 단속과 전세보증금 보호 방안도 마련했다. 징벌적 부동산 세제, 대출 규제를 집중적으로 개선했다. 생애 최초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를 80%까지 완화해서 적용하고, 규제지역 해제 등 공급을 막아온 규제들도 정상화했다.외교 안보에 있어서도 자유와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기반으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자 책임 있는 노력을 해 왔다.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기반으로, 약화된 한미 동맹을 다시 강화하고, 정상화했다. 악화된 한일 관계 역시 정상화를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다. 취임 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을 재건하고,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공고히 해서 북핵에 대해 강화된 확장억제 체제를 구축했다. 안보동맹을 넘어 경제, 기술 분야 등 경제 안보 협력을 강화해 글로벌 공급망과 외환시장을 안정시켰다. 역내 개방적 포용적 경제질서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에 참여했다. NATO 창립 역사상 최초로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해서 정상외교를 펼쳤고, 원전, 반도체, 공급망 분야의 실질 협력을 강화하고 수출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NATO 정상회담을 기회로 폴란드의 K-2 전차, K-9 자주포, F-A 50 경공격기를 수출해 사상 최대수준의 무기 수출을 했다. 호주와 양국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K-9 자주포의 현지생산을 결정했으며 장갑차 수출도 추진이 시작됐다. 우리 기술로 제작한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이 최초로 시험비행에 성공했는데. 전투기 생산이 본격화되면 약 24원의 생산 유발효과가 기대된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에 이어, 세계 4대 방산수출국 진입으로 방산산업을 전략산업화화하고, 방산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 역대 최악의 일본과의 관계 역시,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취임 전, 인수위 때부터 한.일 정책 협의단을 일본에 보냈고, 협의단이 기시다 총리, 하야시 외무상을 비롯한 전현직 총리와 경관계 유력인사들을 만나 관계 정상화에 물꼬를 텄다. 김포-하네다 항공노선을 재개했고, NATO 정상회의에서 기시다 총리와 만나 환담을 하고, 한미일 정상회의도 열었으며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토대를 만들었다. 앞으로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개선해 빠르게 한일관계를 복원시켜 나가겠다. 과거사 문제 역시 제가 늘 강조했던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원칙에 두고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할 경우, 정치 경제 군사 지원을 포함한 포괄적인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다. 미북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외교적 지원, 재래식무기 체계의 군축 논의, 식량, 농업기술, 의료, 인프라 지원과 금융 및 국제 투자 지원을 포함한 포괄적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우리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한 치의 빈틈없는 안보태세를 지켜나갈 것이다. 우리의 주권사항에 대해서는 더 이상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 우리 정부에서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북한 어민 강제 북송사건에 대해 그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등을 비롯한 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도 정부는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특히, 외교 안보 분야에 있어서 확고하게 지켜나가겠다. 이러한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는 국정 전반에도 녹아져 있다.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국가 사정 권력의 컨트롤타워로서 대통령 권력을 헌법과 법 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저는 민정수석실을 폐지해 사정 컨트롤타워 권한을 포기했다. 그리고 법에 정해진 수사 감찰기구로 하여금 민주적 통제를 받으며 투명하게 그 기능을 법에 따라 수행하도록 하고, 대통령의 제왕적 초법적 권력을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 들어오게 했다. 과거 민정수석실이 맡았던 인사검증은 법무부에 설치된 인사정보관리단에서 인사혁신처 출신의 독립적인 인사전문가가 진행하고 있고, 경찰 업무는 비공식적인 청와대 통제 관행에서 벗어나, 행안부의 경찰국을 신설해서 국민과 국회에 의해 민주적 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100일 동안 추진해 온 정부의 주요한 국정과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 저와 정부는 당면한 민생을 최우선으로 챙기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과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 붓겠다.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국민의 뜻이고 둘째도 국민의 뜻이다.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한 치도 국민의 뜻에 벗어나지 않도록 그 뜻을 잘 받들겠다. 저부터 앞으로 더욱 분골쇄신 하겠다. 기자 분들이 계시는데. 제가 지난해 관훈토론회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정확한 문제의식을 지닌 분들이 언론인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언론인 여러분 앞에 자주 서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질문받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씀드렸다. 언론과의 소통이 궁극적으로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민심을 가장 정확하게 읽는 언론 가까이에서 제언도 쓴소리도 잘 경청하겠다. 100일을 맞아 열린 이번 기자간담회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여러분 앞에 서겠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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