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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한·일 공동 역사교과서, 관계정상화 계기 되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제안한 동북아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에 일본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일본은 당초 박 대통령의 제안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 직후에는 시큰둥하더니만 15일 주무장관인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 문부과학장관이 “한·중·일의 담당장관들이 대화할 수 있도록 박 대통령이 한국 내에서 지시해 주면 (일본도) 적극 대응하겠다”면서 “대환영”의 뜻을 밝힌 것이다. 박 대통령이 한·일 간 역사 인식 문제는 물론 중·일 간 영토 분쟁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갈등의 골이 깊은 시점에 공동 역사교과서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상호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과거에도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관련 망언이 터져 나오자 1996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며 한·일 역사공동연구를 합의한 바 있다. 2002년에도 한·일 정상 간 합의로 한·일역사공동위원회를 발족시켜 두 차례 공동보고서를 내는 등 일부 성과도 거뒀다. 박 대통령의 제안에 일본이 화답하고 나선 것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아베 정권 출범 이후 노골적인 국수주의로 인해 한·일관계가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정도로 냉랭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공동 교과서 발간 논의 자체가 양국 간 본격적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자세 변화에 숨은 의도는 없는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어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라고 폄하했듯 일본 측의 퇴행적 역사 인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펼쳐놓은 장(場)에서 일본은 외려 위안부 문제 등에 “법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기존 주장을 반영하려 들지 모른다. 어제 주일 대사관 자료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른 배상에 포함되지 않은 관동대학살 피해자 등이 확인됐는데도 일본은 이를 무시하려 할 개연성도 있다. 특히 공론화하면 오히려 손해인 독도 문제까지 교과서에 기술하려는 시도 등도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독일·프랑스, 독일·폴란드 간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에 각각 73년, 30년이 걸렸다고 한다. 한·일 공동 교과서 발간은 더 긴 시간이 걸릴 뿐더러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한걸음도 나가기 어려운 지난한 작업이 될 수도 있다. 까닭에 양국 간 교과서 논의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두 나라 간 꺼졌던 대화의 불씨를 살리는 데 방점을 두었으면 한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우리 외교의 중심축인 4강 외교를 펼치면서 러시아까지 정상회담을 했는데 일본만 빠져 있다. 두 나라 관계가 ‘빙하기’마냥 꽁꽁 얼어붙게 계속 놔둬선 안 될 것이다.
  • 3·1운동, 日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단 최초 발견·공개

    3·1운동, 日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단 최초 발견·공개

    한국 정부가 1953년에 전국적으로 조사한 3·1운동과 일본 관동(關東·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발견, 공개됐다. 이번에 우리나라 최초의 일제 강제징병자 세부 명부도 나와 일제강점기 피해보상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지 주목된다. 국가기록원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1권·630명)’,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1권·290명)’,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 9781명)’ 등 3가지 명부 67권에 대한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명부는 지난 6월 주일대사관 청사 신축에 따른 이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이를 이관받아 명부별 분석작업을 거쳐 이날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명부는 1952년 12월 15일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에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한 명부로 1953년 4월 제2차 한일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원은 밝혔다. ’3·1운동시 피살자명부’에는 1권 217매에 지역별로 모두 630명의 희생자가 실려 있으며 읍·면 단위로 이름, 나이, 주소, 순국일시, 순국장소, 순국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동안 3·1운동을 하다 순국한 이들 중 공식적으로 인정된 독립유공자 수는 391명에 불과한데, 이번 피살자 명부 발견으로 그 숫자는 3배 가까이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독립운동가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 기록된 3·1운동 피살자 수는 7509명이다.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는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명부로, 1권 109매에 모두 290명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 피살자수는 6661명∼2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희생자 명단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명부에는 관동대지진 희생자 이름 외에 본적, 나이, 피살일시, 피살장소, 피살상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는 지금까지 작성된 피징용자 명부 중 가장 오래된 원본기록으로, 65권에 22만 9781명의 명단을 담고 있다. 이는 역시 1957년 한국 정부가 작성한 28만 5771명의 왜정시 피징용자명부에 비해 5만 5990명이 적지만 기존 명부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생년월일이나 주소 등이 포함돼 있어 피해보상을 위한 사실 관계 확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록원은 내다봤다. 실제로 경북 경산지역의 경우 피징용자 4285명 중 1000여명이 종전 명부에는 없는 새로운 명단으로 밝혀졌다고 기록원은 설명했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피살자 명부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과거사 증빙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들 명부가 정부수립 직후 우리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됐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기록원은 이번에 수집한 자료를 국가보훈처 등 관련부서에 넘겨 독립유공자 선정과 과거사 증빙자료로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명부별 세부사항을 정리해 내년 초부터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가장 평화로운 국가’ 1위 독일…한국은 42위·북한 117위

    독일이 세계평화지수 측정 13년 만에 처음으로 ‘가장 평화로운 국가’ 1위에 올랐다. 독일과 달리 과거사 반성을 하지 않는 일본은 지난해 19위에서 올해 24위로 5계단 하락했다. 세계평화포럼(이사장 김진현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18일 발간한 ‘세계평화지수’(World Peace Index) 2013‘ 보고서에서 독일은 100점 만점에 92.1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2000년 세계평화지수 산출 이래 처음이다. 그간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던 북유럽 국가들은 경제위기로 인해 잠시 주춤했다. 이에 반해 경제를 견고하게 운용해 온 독일이 지난해 6위에서 올해 1위로 치고 올라온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과 이를 통해 유럽에서의 지도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포럼 측은 “사회·경제·평화 수준이 높아진 것이 독일이 올해 1위를 차지한 원인으로 지난해 1위를 차지했던 스웨덴은 경제가 좋지 않으면서 올해는 2위로 한 계단 하락했다”고 밝혔다. 반면 아베 신조 내각 출범 이후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은 지난해 19위에서 올해 24위로 떨어졌다. 한국은 지난해 41위에서 올해 42위로 한 계단 떨어졌고 북한은 지난해 127위에서 10계단 올라 117위를 기록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지난해 순위가 급락했다가 ‘김정은 체제’가 일시적인 안정을 찾았다고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평화지수는 전세계 143개국의 정치, 군사·외교, 사회·경제 등 3대 부문 지표를 종합 분석해 평가한 지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일, 한국과 관련 ‘미완의 과제’ 있다” 케리 美국무 밝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과 일본은 모두 한국과 관련해서 아직 끝내지 못한 일(still some unfinished business)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은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윌러드 호텔에서 열린 제50회 미·일 기업콘퍼런스 만찬에 참석해 이같이 밝히고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미래로 나아갈 필요성이 있음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장관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일 간 ‘미완의 과제’가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해결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구본영 칼럼] 자성은 하되 자학할 이유는 없다

    [구본영 칼럼] 자성은 하되 자학할 이유는 없다

    지난 주말 저녁 청계천. ‘한성백제 천년의 꿈’이란 테마로 서울 등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물길을 따라 그 옛날 위례성의 가을밤을 거니는 듯 시민들의 표정은 편안하다 못해 그윽해 보였다. 장사진을 친 관람객들 사이에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문득 과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청계천 복원을 공약하면서 벌어졌던 논란이 생각났다. 지금의 민주당인 당시 여당은 막대한 건설비를 들여 환경을 파괴하는 인공하천을 복원해서는 안 된다며 극력 반대했다. 진보적 환경원리주의자들은 한강물을 끌어들여 시멘트 어항을 만들자는 거냐며 더욱 냉소적이었다. 물론 이런 비판적 논리가 100%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 성싶다. 그런 반대 의견도 있었기에 공사를 밀어붙인 측에서도 그나마 환경보전에 더 신경을 쓰고, 그 결과 다수 시민이 즐거워하는 친수공간으로 복원됐는지도 모르겠다. 청계천 복원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역사논쟁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진보 학계에서는 교학사의 역사 교과서가 이승만 대통령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실제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기술되거나 부풀려진 사료는 고쳐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부터 잘못됐다고 보는 시각까지 납득하긴 어려운 일이다. 나아가 유신과 5공이 드리운 역사적 그늘을 있는 그대로 조명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현대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우리를 보는 외부의 시선을 보라. 우리가 스스로를 폄하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한국은 아시아의 등불 같은 존재”라고 했다. 특히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최근 한국이 과거 원조 수혜국에서 세계 주요 원조국의 하나로 변모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믿기 어려울 정도의 이야기”라고 칭송했다. 사실 1948년 건국 당시 우리는 세계 최빈국이었다. 6·25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옥수수 등 미국의 잉여농산물로 주린 배를 채우며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온갖 비리와 부정, 그리고 각종 시위로 인한 혼돈이 이어지면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격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그런 한국이 이제 2차대전 후 100여개 신생국 중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에 동시에 성공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올해 무역흑자에서 일본을 앞지르는 등 세계 15위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무역협회가 최근 국내외 거주 외국인 대상으로 포커스그룹 인터뷰와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라. 이 조사에서 한국은 세계인들에게 ‘급속히 발전한 국가’라는 이미지로 투영되고 있으며 한국의 경제성장은 ‘저소득 탈식민 국가들의 역할모델’로 평가됐다. 우리의 현대사는 총합적으로는 성공 스토리로 자부해도 좋을 듯싶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인권 유린의 후유증이나 압축성장의 폐해 등 누적된 이런저런 문제는 안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진보와 보수가 과거사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은 불가피한 통과의례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대한민국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로 치부하는 ‘자학사관’은 곤란하다. 이는 피땀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동시대인들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던진 돌직구 언급이 와 닿는다. 대표적 친노 인사인 그가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역사논쟁을 벌이더라도 나만 옳다는 독선은 안 될 말이다. 어느 진영이든 역사 앞에 겸허해야 한다. 일찍이 철학자 파스칼은 “피레네 산맥 이쪽의 정의가 저쪽에선 불의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보수든 진보든, 여든 야든 과거사를 놓고 과도하게 반목하기보다는 미래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kby7@seoul.co.kr
  • 역사학계 진보-보수, 역사교과서 정면충돌

    한국 사학계 원로 교수 16명이 최근 정부, 여당을 중심으로 나오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 문제에 대해 ‘획일적인 역사 해석을 주입시키겠다는 시대착오적 망발’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주초 정홍원 국무총리와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현행 검인정 체제를 국정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역할과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놓고도 지적이 이어졌다. 한국 사학계 원로 교수들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한국사 교과서가 유신 독재하에서 시행될 때 우리는 정부가 강요한 전체주의적 획일화 교육이 가져오는 황폐화를 체험했다”면서 “오늘날 다시 정권 입맛에 맞는 한 가지 역사 해석만을 획일적으로 주입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발이고 백년대계의 교육을 스스로 망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전 숙명여대 교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을 지낸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 민족문제연구소장인 임헌영 전 서울교대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인 안병욱 전 가톨릭대 교수, 이야기인물한국사 등 수많은 저작을 낸 이이화 전 서원대 석좌교수 등 원로 교수들이 참석했다. 역사 교과서 논란의 시발점이 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들은 “교육 당국이 교과서의 기본 요건과 수준을 갖추지 못한 교학사판 교과서를 감싸면서 한국사 교육 자체를 파탄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아들의 한국 국적 포기로 논란을 빚은 유영익 위원장을 향해 “정권에 예속돼 가는 국사편찬위원회를 국가의 근간을 세우고 유지하기 위한 학술기관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현대사학회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8종 역사 교과서 비교 분석 세미나’를 열고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7종의 역사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좋지 않다고 반박했다. 교학사 교과서 저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천재교육, 미래엔 교과서가 미주에서 전개된 외교 활동 등에는 부정적 의미를 부여한 반면 국내 사회주의·민중운동은 긍정적으로 묘사했다”면서 “한국 사학계의 큰 문제점은 한국 사학자들 다수가 민중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풍수 (하)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풍수 (하)

    >>> 치산치수·종묘사직 보전 위해… 풍수도 성형 인공산·연못 만들고 돌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통제 풍수학의 고전 ‘청오경’에 “명당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도 있고 인위적으로 조성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완벽하지 않은 땅을 사람과 환경이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비보(裨輔)라고 한다. 장승을 마을 어귀에 세우거나 물새를 앉힌 솟대를 물가에 꽂거나 물길이 흘러 나가면서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돌탑을 쌓거나 마을이 외부로 훤히 트여 있으면 나무를 심는 당숲 등이 우리가 흔히 보는 신앙 비보 사례다. 물에 관련된 수구(水口) 비보와 연못을 파거나 해태상, 돌거북을 설치해 불길을 누르는 화기(火氣) 비보, 땅의 힘이 부족하거나 훼손되기 쉬운 곳을 가다듬는 산천(山川) 비보, 이름을 바꾸는 지명(地名) 비보 등을 통틀어 비보풍수(裨輔風水)라 이른다. 한국의 비보풍수는 도선 국사(827~898)에게서 비롯됐다. 고려는 산천비보도감, 조선은 관상감이라는 관청을 두고 국가 차원에서 운영했다. 우석대 김두규 교수는 “비보풍수는 국토의 지형 지세를 살펴서 부족한 것을 보완하고자 하는 일종의 국역 조경”이라고 평가했다. 한양은 풍수지리학상 완벽한 도읍이 아니었다. 결점을 보완하고자 나무를 심고 인공산(가산)을 쌓고 연못을 팠다. 한양은 중세 세계 최대 도시 중 하나였다. 인구가 개국 초기 10만명에서 후기 20만명까지 늘어나면서 주택 공급, 생활 하수 처리, 산림 녹지가 급선무였다. 그래서 풍수는 승려나 풍수학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왕과 성리학자들이 풍수서를 읽고 연구했다. 가장 중요한 국가정책인 치산치수와 종묘사직의 보전이 곧 비보풍수였기 때문이다. 사산금표도(四山禁標圖)란 소나무를 베거나 돌을 캐거나 무덤을 쓰거나 사찰을 짓는 행위를 금한 영역표시 지도이다. 문을 폐쇄하고 소나무를 심고 민가나 사찰을 철거했다. 지맥과 수맥을 보호하기 위해 법제화한 강력한 통제책이었다. 현대적 시각에서는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라고 볼 수 있지만 훨씬 적극적인 개념이다. 금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철거하거나 공사를 해 보존했다. 삼각산(백운대, 만경봉, 인수봉)~보현봉~백악(북악)으로 이어지는 주맥(主脈)을 보호하는 데 힘을 쏟았다. 숙종과 영조에 이어 정조 때도 보현봉에 흙을 쌓았다. 김정호는 ‘수선전도’에서 보현봉 아래를 ‘보토소’라고 표기했다. 북한산 여러 봉우리 중에서 구준봉(구봉) 뒤쪽의 잘록한 고개를 보토고개(보토현)라고 부르는데 이곳이 삼각산~보현봉~백악을 잇는 급소라 하여 중점적으로 관리한 것이다. 사산금표도를 보면 한양의 행정구역이 보인다. 금표 지역과 사대문 밖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이 거의 일치한다. 성저십리는 도성으로부터 정확하게 10리는 아니었다. 5리도 있고 10리가 넘는 지역도 있었다. 대개 우이동~장위동~석관동~중랑천~전농동~살곶이다리~옥수동~용산~마포~망원동~성산동~역촌동을 잇는 선이다. 남쪽은 한강, 북쪽은 북한산이 경계다. 행정구역상 한강 이북의 6분의5에 해당하며 강남 개발 이전의 서울 면적과 비슷하다. 금산과 금표는 조선 전기 엄격했고 연산군대에 최고조에 오른 이후 느슨해졌다. 왕권과 신권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영향을 미쳤다. 성종실록에는 임금과 신하 간 풍수 기 싸움에서 임금이 패한 이색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성종 12년 창덕궁 뒤편 응봉산 남쪽 기슭에 세도가의 가옥 100여채가 들어서 궁궐을 억누르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왕이 철거를 명했으나 신하들의 반대가 빗발치자 흐지부지됐다는 내용이다. 오늘날 혜화동쯤인데 이 지역에 사는 권신과 유생들의 조직적 반대에 왕이 한걸음 물러난 것을 의미한다. 서울의 관문에 얽힌 풍수 이야기도 흥미롭다. 서울성곽을 축조할 때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두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새 통로에 대한 수요가 생겼다. 물자와 사람이 가장 많이 오가는 한강나루(한남동)에서 도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남산을 빙 돌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세조 3년 숭례문(남대문)과 광희문 사이에 남소문(南小門)이라는 길을 열었다. 장충단길 국립극장과 반얀트리호텔(옛 타워호텔) 사이쯤이다. 13년 후인 예종 1년에 남소문 폐쇄론이 제기됐다. 황천살(黃泉殺)이 열려 세자가 요절하고 임금도 시름시름 앓는다는 풍수설이었다. 그 후 200여년간 폐쇄된 남소문이 당쟁의 대상이 됐다. 남소문을 열면 남인이 득세하고 닫으면 서인이 권세를 잡는다며 개문파와 폐문파로 나뉘어 다퉜다. 태종 13년 돈의문(서대문)을 경희궁이 있던 남쪽 언덕으로 옮기면서 이름을 서전문(西箭門)이라고 고쳤다. 풍수 최양선이 경복궁의 지맥 보전에 필요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세종 4년 백성의 통행 불편에 대한 원성이 잇따르자 본래 자리로 옮기고 이름도 되돌렸다.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앞이다. 최양선은 도성의 북쪽 큰 문인 숙정문(숙청문)과 작은 문인 창의문(장의문, 자하문)도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지맥 보호를 위해 폐쇄할 것을 건의해 관철했다. 숙정문은 원주 가는 길이지만 산이 높고 길이 험해서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주로 혜화문을 통했다. 숙정문을 폐쇄한 이설(異說)이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전해진다. “이 문을 열어두면 성 안에 음풍(桑中河間之風)이 불어댄다 하여 폐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한양의 세시풍속에 ‘정월 보름 이전에 부녀자들이 숙정문을 세 번 다녀오면 액운이 없어진다’고 하여 부녀자들의 북문 나들이가 성황을 이루자 남자들이 모여들었고 급기야 ‘사내 못난 것 북문에서 호강받는다’는 속담이 생겼다는 것이다. 풍기 문란 탓에 북문을 걸어 잠그게 됐다는 얘기다. >>> 물 확보 위해 ‘공사다망’ 했던 조선의 왕들 광화문 해태상·숭례문 세로현판으로 불기운 막아 조선의 역대 왕들은 물을 얻으려고 끊임없이 공사를 일으켰다. 풍수학의 고전 ‘금낭경’에서 ‘풍수지법(風水之法) 득수위상(得水爲上) 장풍차지(藏風次之)’라 하여 장풍보다 득수를 중시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경복궁에 물이 부족한 것이 흠이므로 도랑을 파서 물을 끌어들이고(태종), 소격서 골짜기에 못을 조성하고(세종), 숭례문 밖에 못을 파고(세조), 흥인지문 안에 인공산 3개를 조성하고(성종), 동지를 파고 인공산을 쌓고(명종), 관왕묘를 흥인지문 밖에 짓고(선조), 흥인지문 밖에 못을 파고(광해군), 두모포(옥수동)의 채석을 금지(인종)했다. 특히 동지(연지동), 서지(천연동), 남지(숭례문), 북지(삼청동 소격전) 등 4개의 큰 연못을 조성했다. 동지(東池)와 서지(西池), 남지(南池)는 물론 경회루와 성균관 연못, 광화문 앞 해태상, 숭례문의 세로 현판이 모두 불을 막기 위한 풍수 장치였다. 숭례문 밖 남지에 대한 기록은 1629년 이기룡이 그린 ‘남지기로회도’에 잘 나타나 있다. 연못에는 연꽃이 무성했고 버드나무가 보인다. 남지는 지금의 서울역 광장과 대우빌딩 자리쯤으로 어림된다. 1899년 일제가 서울역을 확장하면서 메워 버렸다. 동지는 흥인문 밖과 경모궁 밖에 있는데 두 곳 다 연꽃을 심었다고 ‘동국여지비고’에 기록돼 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는 경모궁 앞, 연동 앞, 흥인문 앞 등 3곳에 연못이 그려져 있다. 돈의문 밖 지금의 영천시장 자리에 서지가 있었다. 태종 및 세종실록에는 ‘길이가 100m, 폭 122m의 네모진 못에 낮은 담을 쌓고 버드나무를 심었다’라고 적혀 있다. ‘한경지략’에는 ‘돈의문 밖 서지가에 천연정이 있는데 꽃이 무성해서 여름철 성안 사람들이 연꽃 구경하는 곳으로 제일’이라고 적었다. 경복궁의 명당수 역할을 위한 삼청동 북지(北池)를 제외한 동·서·남지가 백성의 출입이 잦은 큰 문 앞에 자리한 것은 화재 방지용 방화수는 물론 경관 조성을 통한 유희용 등으로 두루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풍수 개념상 내(內) 명당수인 개천(청계천)을 둘러싼 풍수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명당수냐 아니면 도시의 배수구냐의 다툼이었다. 세종 26년 집현전 수찬 이선로가 “개천물에는 더럽고 냄새나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게 하여 물이 늘 깨끗하도록 해야 하겠나이다”라는 상소를 올렸다. 세종은 중신들과 논의한 끝에 한성부(서울시)가 나서서 개천에 오물을 버리지 못하도록 하고 어기는 자는 사헌부로 하여금 엄벌토록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집현전 교리 어효첨이 개천의 오염은 지리적인 특성과 도시 생활 하수 배출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풍수 논리를 잘못 적용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세종은 하수구를 잃게 된 백성의 원성을 대변한 어효첨의 손을 들어 줬다. 세종은 “풍수서라는 것은 다 믿을 것이 못 되나 옛 사람들이 다 풍수서를 알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에게는 풍수설을 자문할 것이고 어효첨 같은 자는 마음으로 풍수설을 그르게 여기니 그것에는 일하지 말게 하라”는 명을 내렸다. ‘풍수대왕’ 세종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눈물을 머금고 태조가 정한 명당수를 하수구로 판정한 것이다. 항상 열려 있어야 할 개천(開川)이 복개와 복원을 반복한 통한의 과거사를 상기시키는 문답이다. joo@seoul.co.kr
  • 임종국상에 박찬승·장완익씨

    임종국상에 박찬승·장완익씨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는 5일 ‘제7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학술부문에 박찬승(위) 한양대 교수와 사회부문에 장완익(아래) 변호사를 선정했다. 박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매진하며 제헌헌법을 중심으로 민주공화국 수립의 기원과 과정을 역사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저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출간했고, 장 변호사는 과거사 관련법 제정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시상식은 오는 11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朴대통령·이정희 대표의 악연

    박근혜 대통령은 5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국빈 방문 중인 영국에서 전자결재로 재가했다. 해산심판 청구안은 이날 곧바로 ‘대한민국 정부’를 청구인으로 헌법재판소에 접수됐다. 박 대통령과 이정희 진보당 대표 간의 또 다른 악연이 시작된 셈이다. 본격적인 악연의 시작은 지난 대선 때였다. 진보당의 대선후보였던 이정희 대표는 박 대통령의 과거사를 문제 삼으며 줄기차게 공격해 왔다. 첫 TV토론이 열렸던 지난해 12월 4일 당시 이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대선에) 나왔다”면서 “박 후보는 유신독재의 퍼스트레이디“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후보 역시 종북 논란에 휩쓸린 진보당을 겨냥해 “대통령의 국가관이 중요한데 진보당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도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후보는 야권 단일화를 외치면서 이런 토론회에 나오고, 나중에 사퇴하면 국고보조금을 그대로 받는데 도덕적 문제도 있다“고 맞섰다. 이정희 대표는 대선 사흘 전인 12월 16일 ”진보·민주·개혁세력이 힘을 모아 정권교체를 실현하라는 국민 열망을 이뤄내야 한다“며 후보 사퇴를 선언하고 ‘야권 단일후보’를 지지하면서 또 다시 박 대통령을 막아섰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대통령 취임식에 불참했다. 세간의 시선이 모아졌지만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측은 “이 대표가 취임식 사흘 전에 신임 당 대표로 선출돼 개별 초청장을 보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 대표는 “박근혜 정부와 정면대결할 정당은 진보당”이라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현 정부 6개월을 평가하면서 이 대표는 “정치분야에서는 민주주의 불복, 경제분야에서는 공약파기, 대북문제는 제자리, 인사에서는 유신회귀로 말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때는 “박근혜 정부가 유신부활정권 아래에서 저항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게 해놓고 역사교육을 왜곡해 수구 장기집권을 기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美, 한·일 과거사 갈등해소 역할해야”

    “美, 한·일 과거사 갈등해소 역할해야”

    미국의 한반도 및 아시아 전문가인 대니얼 스나이더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 부소장은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갈등 해소를 위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스나이더 부소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일본과 한국의 위험한 교착상태’라는 제목의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한·일 관계의 마비가 떠오르는 중국과 호전적인 북한을 상대하는 것을 포함한 미국의 안보 이해관계를 저해할 수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전쟁의 기억이 언젠가 흐려질 것이라고 너무 오랫동안 믿어 왔다”며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역사적 불의의 생채기가 스스로 아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스나이더 부소장은 “전후 처리가 미완으로 남고 냉전이 화해의 걸림돌이 됐다는 점에서 미국은 역사적 책임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가해국인 독일이 피해보상을 위해 세운 ‘기억·책임·미래 재단’을 본보기로 제시한 뒤 재단 설립 협상에서 스튜어트 아이전스탯 전 재무부 부장관이 이끄는 미 클린턴 정부 관료들이 큰 역할을 했다면서 “미국은 일본에 대해서도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한·일 과거사 문제에) 중립세력이 아닌 만큼 중간자적 태도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과거사 청산을 위해 일본이 취해야 할 자세를 거론하며 한국 법원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내린 배상 판결을 언급했다. 그는 “일본은 이를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할 기회로 여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지도자들에게는 “과거사에 대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습관을 끊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남북정상회담 카드’ 내비친 朴대통령

    ‘남북정상회담 카드’ 내비친 朴대통령

    서유럽을 순방 중인 박근혜(얼굴)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보도된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며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내비쳤다. 박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만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인터뷰는 프랑스로 떠나기 전인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진행됐다. 박 대통령은 다만 “이 만남(남북 정상회담)이 일시적이어서는 안 되고 잠정적인 결과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면서 “진실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북한은 너무 자주 약속을 어겨 신뢰하기 어렵다”면서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상식과 국제규범이 우선시되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찾아내겠다”고 밝혔다. 진실성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박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관련 언급은 지난 5월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던 것보다 상당히 진전된 것이어서 대북정책의 변화 여부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북한 문제의 핵심인 비핵화 논의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협의에 이어 오는 6일 한국과 미국, 일본의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워싱턴에 모여 북핵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국내외 관심이 증폭되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파리 현지 브리핑을 통해 “원칙적 답변”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한·일 관계와 관련, “우리는 양국 관계를 미래를 지향하는 관계로 발전시키고 싶지만,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사에 대해 자꾸 퇴행적인 발언을 해서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파리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서울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간첩 누명’ 15년 옥살이, 국가가 30억 배상하라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1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일교포 이헌치(61)씨와 가족이 국가로부터 30억원을 배상받게 됐다. 법원은 강압수사로 사형선고를 받는 등 이씨 가족이 지난 30여년 동안 큰 고통을 겪었다며 이례적으로 높은 액수를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장준현)는 이씨와 부인 박모(57)씨 등 직계가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돼 국민의 신체와 자유를 위법하게 침해했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에게 15억여원, 박씨에게 6억 5000여만원, 당시 보안사에서 태어난 아들 이모(32)씨에게 2억원 등 총 29억 2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높은 액수를 국가가 배상하도록 한 것에 대해 “1981년 구금부터 무죄선고까지 30년 동안 이씨 부부는 물론이고 나머지 가족들도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이씨 가족의 고통은 일본에서 태어난 이씨가 1979년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으로 건너와 삼성전자에 입사하면서 시작됐다. 1980년 박씨와 결혼해 신혼생활의 단꿈에 빠져있던 이들 부부에게 갑작스레 불행이 찾아왔다.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반국가단체 인사를 조사하던 중 이씨가 국내에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1981년 10월 수사관들이 이씨의 집에 들이닥쳐 당시 만삭이던 박씨를 영장 없이 체포해 끌고갔다. 같은 날 이씨도 퇴근 중 집 현관에서 체포됐다. 수사관은 이씨 부부를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불법구금했다.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이씨 손에 수갑을 채우고 다리를 의자에 묶은 상태에서 구타를 했으며, 여러 개의 불빛을 집중적으로 비춰 며칠간 잠을 못 자게 하기도 했다. 이씨 부부가 변호사를 접견할 수 있는 기회도 박탈했다. 이씨와 함께 조사를 받던 박씨는 구금 일주일 만에 보안사에서 아들을 출산했다. 박씨는 출산 당일 석방을 허가받았지만 몸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바로 다음 날부터 보강수사를 받아야 했다. 혹독한 조사 끝에 이씨 부부는 간첩행위를 했다는 혐의와 간첩행위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1982년 2월 1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사형을, 박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이씨는 복역 중에 징역 20년으로 감형된 뒤 1996년에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이 사건은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가 “이씨가 강압수사에 의해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면서 억울함이 밝혀졌다. 이후 재심이 청구돼 서울고법은 2011년 무죄를 선고했고 지난해 대법원에서 선고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이씨 부부는 법원에 피해보상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단독]법원 “간첩몰려 15년 억울한 옥살이 30억 배상”

    [단독]법원 “간첩몰려 15년 억울한 옥살이 30억 배상”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1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일교포 이모(61)씨와 가족이 국가로부터 30억원을 배상받게 됐다. 법원은 강압수사로 사형선고를 받는 등 이씨 가족이 지난 30여년 동안 큰 고통을 겪었다며 이례적으로 높은 액수를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장준현)는 이씨와 부인 박모(57)씨 등 직계가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돼 국민의 신체와 자유를 위법하게 침해했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에게 15억여원, 박씨에게 6억 5000여만원, 당시 보안사에 태어난 아들 이모(32)씨 2억원 등 총 29억2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높은 액수를 국가가 배상하도록 한 것에 대해 “1981년 구금부터 무죄선고까지 30년 동안 이씨 부부는 물론이고 나머지 가족들도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이씨 가족의 고통은 1979년 일본에서 태어난 이씨가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으로 건너와 대기업에 입사하면서 시작됐다. 1980년 박씨와 결혼해 신혼생활의 단꿈에 빠져있던 이들 부부에게 갑작스레 불행이 찾아왔다.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반국가단체 인사를 조사하던 중 이씨가 국내에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1981년 10월 수사관들이 이씨의 집에 들이닥쳐 당시 만삭이던 박씨를 영장없이 체포해 끌고갔다. 같은 날 이씨도 퇴근 중 집 현관에서 체포됐다.  수사관은 이씨 부부를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불법구금했다.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이씨 손에 수갑을 채우고 다리를 의자에 묶은 상태에서 구타를 했으며, 여러 개의 불빛을 집중적으로 비춰 며칠간 잠을 못자게 하기도 했다. 이씨 부부가 변호사를 접견할 수 있는 기회도 박탈했다.  이씨와 함께 조사를 받던 박씨는 구금 일주일만에 보안사에서 아들을 출산했다. 박씨는 출산 당일 석방을 허가받았지만 몸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바로 다음 날부터 보강수사를 받아야 했다.  혹독한 조사 끝에 이씨 부부는 간첩행위를 했다는 혐의와 간첩행위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1982년 2월 1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사형을, 박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이씨는 복역 중에 징역 20년으로 감형된 뒤 1996년에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이 사건은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가 “이씨가 강압수사에 의해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면서 억울함이 밝혀졌다. 이후 재심이 청구돼 서울고법은 2011년 무죄를 선고했고 지난해 대법원에서 선고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이씨 부부는 법원에 피해보상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아베 신사참배하면 쌓은 것 잃어” 知日派 전직 美관료들 日에 쓴소리

    일본과 동북아 문제에 정통한 미국 전직 관료들이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의 과거사 부정 문제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밝히고 나섰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한·일 및 중·일 관계를 우려하는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해 일본 정부를 압박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1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미국 조야의 대표적인 지일파인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은 최근 일본 도쿄에서 집권 자민당 간부와 만난 자리에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에 참배할 경우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을 모두 무너뜨리는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미티지는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건드리지 않기를 바란다”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담화에 대한 수정론을 경계했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지난달 30일 도쿄 도내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보낸 영상 서신을 통해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에 참배하면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아베 총리가 참배하면 “일본이 아시아에서 쌓은 소프트 파워의 성공을 퇴보시켜 버리게 된다”며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전략적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일본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키나와, 규슈 등지에서 유사시에 대비한 대규모 실전훈련을 시작했다. 이번 훈련에는 육해공 자위대 총 3만 4000여명, 함정 6척, 항공기 약 380기 등이 참가했으며 사실상 센카쿠열도와 관련 중국과의 무력충돌 상황을 상정한 연습으로 관측되고 있다. 자위대가 일본 영토 안에서 낙도 방어 및 탈환을 상정한 실전훈련을 실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장미여관’ 육중완이 극찬한 이태임 졸업사진도 화제…“클라라보다 낫다”

    ‘장미여관’ 육중완이 극찬한 이태임 졸업사진도 화제…“클라라보다 낫다”

    배우 이태임의 졸업사진이 화제다. 최근 온라인 게시판에는 ‘이태임 과거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이 올라왔다. 공개된 사진은 이태임의 초·중·고등학교 시절 졸업사진으로 교복 차림의 이태임은 소녀다운 풋풋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 또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외모로 모태미녀임을 인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태임 졸업사진은 30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이태임이 드라마에 수영복 입고 출연한 모습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이날 같이 출연한 인디밴드 ‘장미여관’ 멤버 육중완은 “이태임의 수영복 몸매가 클라라보다 낫다”면서 극찬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안부 배상에 시효없다” 美서 日 질책

    “위안부 배상에 시효없다” 美서 日 질책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일본 위안부 범죄가 전쟁범죄에 해당돼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만큼 피해자에 대한 일본 측의 배상과 사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과거사를 부정하며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 신조 총리의 일본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박 소장은 29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가진 ‘여성 인권 침해 회복을 위한 국가의 의무’라는 주제의 특강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공식 인정한 ‘고노 담화’를 내놓은 지 20년이 지나도록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 증거로 확인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는가 하면 고노담화를 수정하자는 주장마저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68년 유엔결의 제2391호는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한 죄의 경우 시효가 없음을 확인했다”면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국제법상 책임은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무한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생존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가 56명에 불과하고 모두 고령”이라면서 “그것이 바로 일본의 신속한 피해 배상과 진솔한 사죄가 요구되는 이유”라고 역설했다. 일본과 달리 독일은 2차대전 당시 나치 정권이 자행한 인권침해를 사죄하고 금전적인 배상을 하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고 박 소장은 설명했다. 특히 독일은 1960년 프랑스와의 포괄보상협정으로 피해자에 대한 모든 청구권이 완결됐음에도 이후 프랑스가 추가보상을 요구하자 이를 받아들였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세계의 지도자가 될 여러분 모두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인권 향상을 위한 노력에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우리나라 헌재 수장이 하버드 로스쿨에서 강연한 것은 박 소장이 처음이다. 박 소장의 특강은 지난 5월 헌재를 방문한 마사 미노 하버드 로스쿨 학장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열린세상] 흔들리는 미국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흔들리는 미국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리의 전투 항공력과 세계 각국의 전투 항공기를 전시하는 국제에어쇼를 2년마다 공군은 개최한다. 짜릿한 곡예비행도 주목을 끌지만 세계 최첨단 항공 자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민과 함께하는 항공 축제다. 올해는 청주에서 개최한다. 그런데 이 에어쇼에 우리의 동맹 미국 공군의 전투비행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바로 얼마 전 봉합되었던 미 연방정부 셧다운 (폐쇄조치) 때문에 한국에 비행기를 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전력운영에 치명적이지 않은 여러 행사를 대부분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미국은 처해 있다. 패권국가는 세계 안보와 경제 질서를 자국의 선호에 맞게 운영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패권국가의 동맹국들은 패권국 세계 질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또한 패권 질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는 패권국의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정통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의 경제적 어려움은 매우 고질적이다. 이번에 겨우 봉합된 미 연방정부의 셧다운은 미국 경제의 고질적 난맥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경기회복이 원만히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지난 10월 17일 백악관과 의회의 예산안 타결에도 불구하고 미 국방부는 예산의 그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통과된 예산법은 국방 예산을 4750억 달러 (약 540조원)로 제한하였다. 따라서 국방부가 아무리 예산을 높게 요구하고 의회가 설사 통과시킨다 하더라도 국방부 예산은 자동으로 삭감된다. 이미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지난 17일 국방부 기자 회견에서 “동맹국들이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에 의존할 수 있는가’, ‘미국은 조약과 약속을 지킬 것인가’ 등의 의문을 제기해 왔다”며 “이는 우리 모두의 중대한 문제로써 국가안보는 물론 세계에서의 미국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사실상 어려움을 실토하였다. 경제적 어려움과 안보적 난관은 경기가 회복되거나 군 자산의 적절한 운영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국의 패권적 정통성에 의심할 만한 일들이 여럿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가 중 독일과 프랑스는 자국 대통령과 시민에 대한 미국 정보 당국의 무차별적 도청과 감청에 분노하고 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 시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한 미국의 행동에 엄청난 비난을 표한다”라고 하였고,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동맹국들끼리 이런 감시 행위를 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도청하는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적극 지지키로 하였다. 일본의 방위 예산 증강과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패권적 이익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역사적 진실을 정직하게 직면하지 않는 일본의 손을 번쩍 들어준 미국이 정말 우리의 동맹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을 지지하는 미국의 도덕적 잣대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의 어려움을 활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는 일본, 이를 “냉전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 채 군사동맹을 강화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이익은 이미 설 자리가 애매모호해진 것이다. 더욱이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를 통해 동맹의 그늘 속에서 안주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면서 남북관계의 건설적 발전이 없는 우리의 처지가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과거와 같이 강대국 국제정치 비극에 휩싸이지 말아야 한다는 냉철한 국가관이 필요하다. 한·미동맹은 우리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우리의 이익이 한·미동맹을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점점 현실화하고 있는 미국 패권의 변화를 인식해야 하는 냉철한 판단력과 전략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외교안보 정책 결정자들과 보수 및 진보 식자들의 시대 소명적 각성이 요구된다.
  • 독도의 날… 해군 UDT, 독도방어훈련 전격 실시

    독도의 날… 해군 UDT, 독도방어훈련 전격 실시

    독도에 접근하는 일본 극우세력 등 외국 선박과 항공기를 퇴치하기 위한 독도방어훈련이 ‘독도의 날’인 25일 전격 실시됐다. 군 당국은 당초 비공개로 훈련을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일본 정부의 독도 여론조사와 독도 영유권 주장 동영상 배포 등 잇단 ‘과거사 도발’을 감안해 전격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용섭 국방부 공보담당관은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독도방어훈련은 불법적으로 독도에 상륙하려는 (일본)극우 민간인들에 대응하려는 조치의 일환”이라면서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우리 영토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를 확고히 수호해 내겠다는 우리 군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공개했다”고 밝혔다. 군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까지 김판규 1함대사령관(해군 소장)의 지휘로 해군과 공군, 해경과 경찰 합동으로 독도방어훈련이 실시됐다. 해군에서는 한국형 구축함 광개토대왕함(3200t급)과 호위함, 초계함 등 1함대 소속 함정 5척이 출동했고, 해경의 대형 경비함 5001함(5000t급)도 참가했다. 항공 전력은 F15K 전투기 2대와 해군 P3C 대잠초계기 1대, UH60(블랙호크)과 CH47(치누크) 헬기 각 1대가 동원됐다. 해병대가 아닌 해군 특전대대(UDT)와 해경 특공대가 이례적으로 상륙 훈련을 했다. 1996년 시작돼 해마다 두 차례씩 실시되고 있는 독도방어훈련에 해군 병력이 투입된 것은 이례적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이날 실시된 독도방어훈련과 관련해 김원진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공사를 초치,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극히 유감”이라면서 일방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복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인류무형 문화유산 김치/서동철 논설위원

    문화는 독창적일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독창성을 중요시하면서도 다른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욱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 또한 문화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의 하나로 떠오른 김치도 마찬가지다. 김치는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창의적 음식이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되기 위해서는 과장을 조금 보태 전 지구적 협력이 뒷받침됐다. ‘김치와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의 심사소위원회로부터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문화재청이 그제 알렸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따르면 등재가 권고된 문화유산이 본심사에서 탈락한 사례는 지금까지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김치와 김장 문화’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의 변화가 없는 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해도 좋겠다. 문화재청이 김치와 김장 문화를 한데 묶어 등재를 신청한 것은 무릎을 칠 만한 묘안이었다. 유산균이 풍부한 김치는 이미 국제 사회에서 ‘세계 5대 식품’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는 건강식품이다. 김치 하나만으로도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김장이라는 또 하나의 독창적 문화 현상이 더해진 것이다. 김치를 대량으로 장기숙성하는 김장 문화는 길고 혹독한 겨울을 싱싱한 채소 없이도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개발한 지혜의 산물이다.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은 익히 알려진 김치보다 김장 문화에 오히려 더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김치가 국제 교류의 산물인 것은 주재료의 하나인 고추의 존재 때문이다. 김치는 소금물에 절인 채소를 발효시킨 음식이다. 백김치나 동치미는 이 같은 김치의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사례다. 그런데 김치를 붉은색으로 만든 고추가 언제 한반도에 상륙했는지는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고추의 원산지는 멕시코의 유카탄반도로 알려진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에 전해진 뒤 가톨릭 선교사들이 동양에 전파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는 임진왜란 직후 들어왔다고 한다. 한반도에 원래 고추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나름의 근거는 제시했지만, 독창성을 강조하고자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문화의 원리를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보면 중남미에서 유럽, 다시 해양 실크로드로 한반도에 이른 고추를 이용한 김치는 그대로 세계적 보편성을 갖기에 충분하다. 일본 음식 와쇼쿠(和食)가 함께 등재 권고를 받은 것은 과거사 갈등을 잠시 잊는다면 반가운 일이다. 동아시아 음식문화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이 그만큼 진전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JYJ 박유천과 열애설 터진 안신애…청순·깜찍한 과거사진 화제

    JYJ 박유천과 열애설 터진 안신애…청순·깜찍한 과거사진 화제

    JYJ 박유천과 열애설에 휩싸인 프로골퍼 안신애의 과거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안신애 선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스스로 찍어 올린 사진을 찾아보며 안신애 선수의 연예인 뺨치는 외모와 몸매에 감탄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찾아낸 사진 속에서 안신애 선수는 침대에 강아지와 함께 누워 온화한 미소를 짓거나 바쁜 스케줄로 차 안에서 김밥을 먹으면서 깜찍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또 짧은 핫팬츠 진과 민소매 티로 수수하면서도 군살 하나 없는 몸매를 자랑하는 안신애 선수의 모습에 네티즌들의 눈길이 쏠렸다. 23일 한 연예매체는 박유천과 안신애가 열애 중이라고 보도했으나 양측 모두 열애설을 적극 부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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