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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징집 전두환씨가 지시”

    1968년 4월 북파공작을 목적으로 창설된 실미도부대(공군 2325부대 소속 209 파견대)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창설됐다고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13일 밝혔다. 과거사위는 또 1980년대 초 운동권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실미도부대는 1·21사태(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시도)에 대한 대응으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중앙정보부가 주도적으로 창설했다.”며 “박 전 대통령이 부대 창설을 지시했다는 것은 관련자들의 증언을 기초로 한 것이며 문서를 통해서는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과거사위 조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실미도부대는 영화에서처럼 군 특수범이나 중형을 선고받은 민간인이 아닌, 일반 민간인을 대상으로 미군부대 취직 등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내걸어 대원들을 모집했다는 것이다. 부대원 가운데 5명은 훈련 중 탈영을 시도했거나 기간병에게 반말을 한 이유 등으로 동료들에 의해 살해됐다고 설명했다. 공작원들에게는 ‘김일성 거처 습격’ 등의 특수임무가 부여됐지만 모집 당시 임무의 위험성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지를 받지 못했으며 3년4개월간 무인도인 실미도에 사실상 구금상태로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사위는 정부의 공식 사과와 함께 ▲공작원의 사체인도 및 공군참모총장 명의의 공식 사망통보 ▲발굴된 공작원 유해에 대한 적절한 처리 ▲사형으로 사망한 공작원 4명에 대한 지속적인 유해발굴 활동 등을 권고했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강제징집을 지시·승인했다는 사실이 관련 문서에서 드러났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5공 정권은 1980년 9월부터 1984년 11월까지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제적·정학·휴학 등을 당했거나, 운동권 출신의 정상 입대자 등 1152명을 강제징집했고, 이 중 921명이 이른바 녹화사업으로 불린 학원 프락치 활동에 강제 동원했다는 것이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경찰이 인민군위장 양민학살”

    한국전쟁 때 경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공식 인정됐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2일 나주경찰서에서 ‘나주부대 민간인 피해 의혹사건’ 조사결과를 발표,“나주부대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는 5개 지역에서 35명가량”이라고 밝혔다. 희생자는 해남읍 14명,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 15명, 완도선착장 1명, 완도 노화도 4명, 완도 소안도 1명 등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유족회 등은 희생자가 14개 지역 856명이라고 맞서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이종수 위원장은 “희생자 수가 차이 나는 것은 비슷한 시기에 주변 지역에서 발생한 보도연맹이나 여순사건, 해남 농민사건, 공비소탕 사건 등의 사망자가 포함됐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나주부대는 개전 초기인 1950년 7∼8월 나주지역 경찰관들로 구성된 부대로, 인민군에 밀려 해남에서 완도·진도 등으로 후퇴하면서 일부가 인민군 복장으로 위장, 인민군 환영대회에 모인 민간인을 처형했다는 의혹사건이었다.과거사위원회는 이 조사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유족과 전직경찰 등 관련자 66명을 80여차례 조사하고 현장조사 등을 마쳤다.나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나주부대 민간인 학살 확인”

    6·25 전쟁 당시 경찰관으로 구성된 부대가 인민군으로 위장, 환영대회를 열도록 한 뒤 주민들을 학살했다는 의혹이 일었던 ‘나주부대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이 56년 만에 밝혀질 전망이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2일 오전 전남 나주경찰서 강당에서 이종수 위원장 등 민간위원 6명을 비롯해 경찰청 보안국장, 조사팀장, 지원팀 등 20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주부대 학살사건에 대한 공식 조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규명위는 이에 앞서 21일 사건 현장인 전남 해남읍 해리 소재 우물터와 완도읍 중앙리 게이트볼장(옛 완도중학교 터)을 둘러보기로 했다.경찰청 관계자는 “나주부대에 의해 희생된 주민 중 30∼40명 정도의 신원을 확인했다. 하지만 공식 조사결과 발표에서는 지금까지 일었던 의혹과 다른 견해가 나올 전망”이라고 말했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씨

    “남편의 이름이 너무 커 나는 그 뒤에 숨어 가정 살림이나 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윤이상 선생님에 대한 명예회복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언제든지 남한에 갈 수 있어요. 선생의 고향 통영 바다에 가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간 남편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1967년 이른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평생 조국을 등지고 살다가 이국땅에서 숨을 거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79)씨가 28일 밤 금강산 온정리 금강산호텔에서 남한 기자들과 처음으로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독일 베를린 자택과 북한 정부로부터 받은 평양 근교의 자택을 오가며 살고 있는 이씨는 29일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열린 윤이상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지난 1월 윤이상 선생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이 확대됐다고 발표, 윤이상 선생에 대한 명예회복의 첫 단추는 이미 끼워진 상태. 그러나 이씨는 “정부 차원에서 명시적으로 사과를 해야만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동백림 사건과 관련, 간첩죄가 적용된 남편 등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과거 정권에서 간첩 수괴로 몰아간 만큼 아직까지도 많은 국민들의 가슴엔 그렇게 각인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명예회복도 시켜주지 않으면서 윤이상 선생의 작품들을 국내에서 또 외국에 들고다니며 연주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처사”라고 말했다. 북받치는 감정을 정리할 수 없어서인 듯, 이씨는 잠시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가기도 했다. 이씨는 회견 내내 조국에 대한 사무친 한과 미련, 그리고 애정을 간간이 드러냈다. “10년전 남편이 베를린에서 서거했다는 소식를 듣고 남쪽 보도진들이 집 앞에 몰려와 이야기를 들으려 했지만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현관 앞에 누가 갖다놨는지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선생님을 사랑하는 남한 정부의 꽃다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씨는 동백림 사건을 계기로 윤이상 선생의 사고와 사상, 음악 등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동백림 사건 이후 윤이상 선생은 특히 민족의 고뇌가 담긴 곡들을 많이 썼다. 그래서 음악이 무척 무거워졌다.“선생님은 예술말고 더 직접적으로 민족을 위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그쪽으로 달려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분단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고, 통일은 지상 과제였습니다.” 이씨는 “외국에 오래 있다보면 자기 조국도 객관시하게 된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덧붙였다. 윤이상 선생은 예민한 성격으로 하루 7시간씩 작품을 썼다고 소개한 이씨는 “그 분은 참으로 슬프고 외롭고 아픈 삶을 살다가셨다.”는 말로 다시 한번 선생에 대한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금강산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인혁당 재심 20일 첫 공판 檢 “공소유지위해 재조사”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재심 사건 첫 공판이 20일로 예정된 가운데,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한 공소유지를 위한 재조사를 하겠다고 19일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안창호 2차장 검사는 “사건을 공안1부에 배당했다.”고 밝히고 “검찰이 공익의 대표자로서 유·무죄에 대한 선입견 없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재판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검찰 공판부가 사건을 맡아 형식적 공소유지를 해왔다.1974년쯤 일어난 2차 인혁당 사건은 긴급조치 2호에 따라 설치된 비상군법회의가 수사와 기소, 재판을 담당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검찰은 한발 물러서 있었던 게 사실이다. 검찰은 비상군법회의 자료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법원에 제출했던 3만 7000여쪽에 이르는 기록을 확보했다. 검찰은 추가로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한편, 필요하다면 당시 수사관 등을 조사해 진상규명에 힘쓸 방침이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女언론인 지영선씨 총영사 발령 이례적

    외교통상부는 15일 주 보스턴 총영사에 지영선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을 임명한 것을 비롯해 6개 지역의 총영사 인사를 단행했다. 언론계 출신 인사가 재외공관장으로 임명된 것은 이례적이다. 직업외교관 출신의 김경임 튀니지 대사, 독일 전문가인 김영희 몬테네그로 대사에 이어 현직 세번째 여성 재외공관장이 되는 셈이다. 올해 57세인 지 신임 총영사는 서울 출신으로 경기여고와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등을 거쳐 1988년 한겨레 신문에서 문화·국제부장 등을 거쳐 논설위원을 지냈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민간위원 등을 맡고 있다.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대학에서 1년 동안 국제관계와 관련한 연수를 받은 바 있다. 지 총영사는 “언론인이 외교 업무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을 수 있지만 언론의 기본은 커뮤니케이션”이라며 “외교는 커뮤니케이션과 관계의 일이라는 측면에서 언론인은 상당한 연륜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에 최병효 전 노르웨이 대사, 주 시애틀 총영사에 권찬호 전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 주 호찌민 총영사에 민영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균형발전총괄국장, 주 광저우 총영사에 전재만 전 기획심의관, 주 삿포로 총영사에 강익순 주 일본 참사관이 각각 임명됐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간첩·조작’ 40년 논란 종지부

    26일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가 밝힌 동백림 사건의 실체는 ‘공안기관의 무리한 확대적용’과 ‘정권의 정치적 악용’이 빚어낸 공안사건이라는 것이다. ●‘실체’를 확대적용한 공안사건 공안기관이 무리하게 확대 적용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한 사실은 진실위 조사결과 곳곳에서 드러났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서울대 ‘민족주의 비교연구회’(민비연)를 동백림 공작단의 일부라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진실위는 “중정은 당시 6·8부정선거로 학생들의 시위가 거세지자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가혹행위를 동원, 민비연과 황성모 교수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재판 결과 민비연 관련자들은 대부분 무죄선고를 받았고 민비연이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공소사실은 무죄 판결됐다. 동백림 수사과정에서 검찰 송치자 66명 가운데 23명에게 간첩죄가 적용됐지만 최종 선고결과 피고인 기운데 단 한 사람도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3년 뒤인 1970년 12월까지 사형 선고를 받은 정하룡·정규명 박사를 포함, 모두 석방됐다. 단순 대북접촉자까지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한 탓이다. 중정이 해외 연행을 위한 ‘GK공작계획’을 수립해 30여명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서독지역 연행자는 모두 자진귀국했고 나머지는 임의동행했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강제연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끝나지 않은 동백림 사건 동백림 사건은 ‘건국 이래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고 불려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먼저 인지한 특이한 사건이기도 하다. 진실위는 비록 ‘정권이 사전 조작하거나 기획하지 않았던’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당시 6·8 부정선거 시위가 이 사건 직후 수그러졌고 사형선고자가 무죄로 석방되는 등 정황상 ‘조작’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중정이 ‘동백림 간첩단’이라고 발표하지 않아 진실위측은 간첩단 여부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방문, 금품 수수, 대북접촉 주선, 대북방송 청취’ 등을 예로 들어 중정은 간첩활동 혐의를 적용해 실정법 위반을 내세웠다. 사실상 간첩단임을 시사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개정 논의에 맞춰 진실위의 적극적인 재해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동백림 사건은 윤이상·이응로 선생 등 세계적인 예술가가 연루돼 조명을 받았던 사건이기도 하다. 지난 40여년 동안 분단으로 인해 ‘간첩’과 ‘조작’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이들의 예술적 성과에 대한 ‘무형의’손실도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동백림 사건 중앙정보부가 1967년 7월 대학교수와 유학생, 예술인, 의사, 공무원 등 194명이 동백림(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대남적화공작을 벌이다 적발됐다고 공개한 사건. 정규명씨 등 2명에게 사형이, 강빈구·윤이상씨 등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등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천상병 시인은 사건 연루자인 친구로부터 막걸리 값을 받아썼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독일과의 외교분쟁으로 이어질 뻔했고 연루자들은 1970년 광복절 특사로 모두 풀려났다.
  • 北 ‘박근혜 때리기’ 돌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난 인사들을 북한은 ‘감히’ 비난하지 않는다. 북한은 그런 금기를 깨고 요즘 들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향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지난 2002년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한 적이 있는 박 대표를 비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북한 평양방송은 13일 “우리는 박근혜의 과거에 대해 백지화하고 그를 아량있게 대했다. 그래서 그는 공화국을 방문하고 김정일 동지를 접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그가 반공화국 소동에 매달릴 때에도 참고 의리적으로 대했다.”면서 “그런데 그는 우리를 자극하는 반공화국 소동의 앞장에 서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박 대표 비난은 지난해 12월에도 몇차례 나왔다. 북한의 비난은 박 대표의 사학법 개정 반대,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의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 조사발표 등으로 모아진다.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로 정국이 첨예하게 찬반 논쟁을 벌였을 때도 북한은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비난했을 뿐이고, 박 대표를 비난한 적은 없다. 북한의 태도 변화는 박 대표가 북한으로서는 ‘아킬레스 건’인 인권문제를 거론한 데서 비롯된다는 게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12월8일 북한인권국제대회에서 “지금껏 우리는 북한 인권을 애써 외면해 왔다.”면서 “북한 인권 개선은 북한의 경제 재건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11월에 유엔총회의 대북인권결의안 표결에서 우리 정부가 기권한 데 대해 박 대표는 “북한 동포의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남북화해를 기대할 수 없다.”고 인권문제를 거론했다. 북한의 이런 비난에 한나라당은 공식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한 인사는 “남한 사회의 체제 전환을 바라는 북한으로서는 박 대표를 ‘눈엣가시’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한번 비난을 하기 시작했으니, 박 대표에 대한 비난을 계속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박정현 전광삼기자 jhpark@seoul.co.kr
  • 과거사정리 늦었지만 결단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 대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가 끝난 뒤 피고인들의 유가족이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한 것이 2002년 12월의 일이다. 법원은 3년 만인 27일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시일이 길어진 것은 기록이 방대해 검토, 판단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재판장인 이기택 부장판사는 “재심 청구는 30년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달라는 요구, 바로 그것”이라며 그동안의 번민을 털어놓았다.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재심 사유는 ‘원판결의 서류 또는 증거물이 위조 또는 변조된 사실이 확정 판결로 증명될 때, 무죄 또는 면소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됐을 때’이다. 이런 사유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의문사위 조사부터 지난 7일 발표된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까지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을 결정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피고인들을 고문해 허위자백을 이끌어냈거나 수사·공판기록을 직접 조작한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의문사위 조사에 대한 신뢰를 비치며 인혁당 사건 피고인들이 수사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에 의해 허위자백을 했다고 판단했다. 의문사위가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들로 구성되고 현직 검사가 파견돼 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결과에 공신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재판 관할권 문제를 판단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은 긴급조치 4호에 따라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항소심까지 진행됐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군법회의의 후신인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해야 한다는 법리적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긴급조치의 효력이 없어졌기 때문에 군사법원의 재판관할권 역시 무효라고 봤다. 정권이 만든 ‘비정통적인’ 사법의 만행을 정통성을 지닌 사법부가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졌지만, 변호인단에게는 더 이상의 증거를 낼 여력이 없다. 사건의 목격자와 연루자들의 진술로 재심 개시 결정을 이뤄냈듯이 재심에서도 진술을 거의 유일한 증거로 활용해야 한다. 나머지는 피고인들의 건강 상태·투약 기록 등 간접적이고 정황상의 증거 뿐이다. 재심 개시 자체를 인혁당 사건에 대해 재판이 부당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피고인들의 범죄가 사형을 당할 만큼 극악한 죄가 아니라는 차원의 명예회복은 재심 개시 결정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평가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조작’ 검증은 언론의 의무다/최광범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진흥팀장

    지난주는 ‘조작’ 따라잡기의 한 주였다.12일(월)자 2면에 보도된 ‘연세대와 광운대 교수의 연구비 조작(횡령)사건을 필두로,16일(금)자 1면 머리기사 ‘황우석 줄기세포는 없다’에 이어 17일(토)자 7면,‘김기설씨 유서 대필아닌 본인 필체’로 지난 일주일 지면을 마무리했다. 줄기세포 문제와 유서대필 사건은 아직도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필자도 고민 끝에 책 한 권을 찾아들었다.‘저널리즘의 기본요소’라는 책이다. 언론의 사명 가운데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는 ‘진실추구’라는 구절에서 위안을 얻었다. 객관성은 난도질되어 왔고 균형성과 공정성도 너무나 막연하다는 결론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 받은 14년 전 ‘유서대필사건’에 대해서 진실이 아닐 것이라고 강력한 의문을 제기했다. 검찰과 경찰의 조작사건이라는 게 재야단체만의 생각이었을까? 대법원의 확정판결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고 공론화한 것이다. 이제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는 작업은 언론의 탐사보도 몫으로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문제 역시 명확한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과학적 업적의 진실여부를 떠나 이번 사안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우리 언론이 버려야 할 보도관행들이 응축해서 드러나고 있다. 먼저 맹목적 국수주의다.‘국익을 초월한 언론을 생각할 수 있느냐.’ 하는 해묵은 딜레마다. 언론인들을 설득할 만한 보편적 기준도 없다. 이런 기준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폭스뉴스를 중심으로 미국의 보수적인 방송사들은 국수주의를 부추겼다. 폭스는 CNN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최고의 시청률을 확보했다. 광고주의 눈치를 살피는 미국 상업방송의 특성상 다른 방송들도 폭스의 ‘멸사봉공’ 보도태도를 추종했다. 그러나 부도덕한 전쟁명분을 따져 보도했던 영국 BBC 시청률이 미국동부의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대폭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16일자 국제면 머리기사로 부시가 이라크전에 대한 오류를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언론이 국익은 대변했지만 진실보도에는 눈을 감은 사례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는 이미 국내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국제적 기준에 맞는 윤리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논문의 과학적 오류 가능성에 대한 지적에 대해 개방된 자세가 필요하다. 다음은 네티즌 반응에 기자까지 흥분하는 사례다.5일자 2면에 ‘네티즌 “PD수첩팀 구속수사하라”’며 네티즌의 반응을 기사화했다. 네티즌 ID를 인용했지만, 취재원의 권위나 전문성을 알 수 없어 익명의 취재원이나 다름없다. 어느 때부터인가 네티즌의 ID를 실명으로 착각해 보도하는 그릇된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2일 한국을 방문한 인디애나대학의 브래들리 햄 저널리즘스쿨 학장은 “네티즌의 여론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주류를 이뤄 진정한 공론장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독일의 여성언론학자 노엘레 노이만은 1974년 침묵의 나선형 모델이라는 언론효과이론을 발표했다. 인간은 대립되는 사안에 대해 스스로 고립되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의 의견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대세가 아니라면 침묵해 버린다. 황우석 교수 신화의 많은 부분은 언론이 창출했다. 그 신화의 진실에 도전하려했던 소수의견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이런 소수의견이 살아 숨쉬도록 해줘야한다. 치열한 논란을 거치다 보면 ‘조작’보다는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이 자유주의 언론관의 철학적 배경이다. 서울신문이 일부 언론처럼 이번 사건을 ‘진보와 보수’ ‘정부로의 책임전가’ 같은 보도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최광범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진흥팀장
  • [사설] 정권범죄로 확인된 5공 ‘녹화사업’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5공화국 당시의 대학생 강제징집과 ‘학원 녹화사업’ 실상은 그동안 알려진 내용보다 훨씬 악랄했다. 체제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검거돼, 본인 의사는 물론 연령·신체등급에 상관없이 강제로 입영된 대학생 숫자가 1100명을 넘어섰다. 또 보안사는, 이들을 포함한 대학생 입영자 1200여명을 녹화사업에 동원하려고 심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녹화사업은 한마디로 군 정보기관이 프락치를 양성해 대학가를 감시하고 밀고케 한 공작 사업이다. 결국 1980대 초 대학을 다닌 많은 젊은이들이 불의(不義)한 공권력에 의해 삶을 짓밟힌 것이다. 아울러 강제징집이라는 인권유린 행위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 국방부·병무청·내무부·문교부 등 정부조직과 각 대학이 깊이 간여한 사실이 밝혀졌다. 총칼을 앞세워 쿠데타를 주도한 전 씨가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어떤 악행(惡行)도 주저하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것이다. 반면 아무리 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렇다 해도 교육기관인 대학까지 강제징집에 적극 협력한 부분에 대해서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제라도 대학의 자기반성과 강제징집 실태 공개가 뒤따라야 한다. 국방부 과거사위는 이번 조사에서 당시 상황을 뒷받침하는 관련문서를 여러건 찾아냈다. 그러나 우리는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에 관한 조사에 아직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녹화사업을 지시한 주체가 누구인지, 심사를 받은 1200여명 가운데 녹화사업에 실제 투입된 인원은 얼마인지 등을 추가로 밝혀내기를 기대한다.
  • ‘녹화사업’ 전두환씨 지시 확인

    1980년대 5공화국 정권이 ‘특별정훈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운동권 대학생들을 강제징집해 가혹행위를 한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 사업과 관련한 강제징집 인원은 그동안 정부가 주장해온 447명이 아니라 1100명이 넘고, 녹화사업대상 인원도 강제징집자 중 선별된 900명과 일반징집자 가운데 차출된 운동권 출신 300여명 등 모두 1200명을 웃돈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는 19일 학원 녹화사업과 실미도사건의 진상조사 중간 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과거사위에 따르면 학생들의 강제징집은 국방부와 병무청은 물론 내무부·문교부·각 대학 등 5공 정권과 관계기관의 유기적인 협조 아래 단행됐다. 이로 인해 강제징집된 인원은 1100명이 넘는 것으로 국방부 문서 등에서 확인됐다. 정부는 1988년 5공비리 청문회 때 447명이 강제징집됐으며, 이중 265명이 녹화사업을 받았다고 발표했지만 강제징집자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과거사위는 또 당시 강제징집된 병사 가운데 265명이 프락치로 활동했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1200여명이 프락치 대상인원이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프락치로 활용된 사실도 밝혀냈다고 말했다. 특히 당시 보안사(기무사의 전신)는 ‘녹화사업’ 대상자 1121명의 명단을 작성했던 것으로 보안사 문건에서 확인됐다.‘녹화사업’은 보안사가 1982년 9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강제징집된 인원을 대상으로 ‘좌경오염 방지’ 명목으로 개별심사를 통해 순화하고 그 일부를 ‘학원첩보수집’에 활용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위장하기 위한 명칭이다. 보안사는 1982년 5월17일 ‘좌경 의식화 활동 지침’을 마련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6일 ‘전담 공작과’를 신설, 운동권 출신 병사들을 대상으로 순화·심사 작업을 벌인 뒤 학원동향 파악 임무 즉 프락치 활동을 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녹화사업은 시행과정에서 6명이 사망하고, 재야 및 야권에서 정치 쟁점화하자 1984년 12월19일 심사과 폐지와 함께 사라졌다. 과거사위는 앞으로 다수의 녹화사업 대상자를 관리했던 1개 사단을 모델로 사업의 실제 운용과정 및 실태 등을 집중 조명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대책, 가해 및 피해자 화해조처 방안, 재발방지 대책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박정희 정권시절 대북 북파임무 요원을 양성한 실미도부대는 현 국가정보원 전신인 중앙정보부에서 창설했고 공군본부에서 관리한 사실도 이날 공식 확인됐다. 과거사위 지형선 대변인은 이와 관련,“부대원들은 민간인으로 영화에서 묘사한 특수범 등은 전혀 아니다.”며 “31명의 부대원 가운데 전과자 7명은 중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고 젊은 시절 일어날 수 있는 가벼운 범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정보부에 실미도부대를 창설하도록 당시 지시한 인물은 앞으로 밝혀내야 할 과제로 남았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사설] 조작 가능성 제기한 유서대필 사건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가 1991년 5월에 발생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검찰이 당시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발생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국 부장 김기설씨 분신자살사건에 대해 사건발생 당일부터 ‘유서대필’로 결론을 내린 뒤 이에 맞춰 무죄 증거를 배척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특히 필적 감정을 의뢰한 검사와 필적 감정을 맡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원 사이에 “어떤 감정결과를 원하느냐.”는 통화를 했던 사실 등 조작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검찰은 이에 대해 “신빙성 있는 결론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법정 공방을 통해 유죄를 확정한 사법부에 대한 ‘도리’까지도 들먹였다. 경찰청 과거사위가 검찰 수사의 조작 가능성을 적시했으니 수사권 문제로 경찰과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검찰로서는 당연히 불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작 가능성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필적 원본조차 내주지 않아 부실조사를 초래했음에도 과거사위의 조사결과를 폄하하는 것은 잘못된 자세다. 검찰 조사에 자신이 있다면 필적 원본과 관련자료를 모두 제시하면서 소명하는 것이 옳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를 과거 의혹사건 진상규명이 검·경 갈등으로 가려져선 안 된다. 권력기관 중 유일하게 과거사진상규명위 구성을 기피하고 있는 검찰은 하루속히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에 동참해야 한다. 과거 검찰 수사에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 [사설] 진실 드러난 朴정권 용공조작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진실위)가 어제 발표한 인민혁명당(인혁당) 및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사건 조사결과는 역사의 진실에 다가가는 내용이라고 본다.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고문을 통한 증거조작, 진술조서 변조 사실을 파악했으나 총체적 진상규명에는 이르지 못했다. 진실위가 중앙정보부 차원을 넘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수사 및 사형집행을 지시했을 개연성을 지적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국정원 진실위는 최고권력자의 자의적 요구에 따라 이들 사건의 수사방향이 미리 결정·집행되었다고 밝혔다.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용공조작이 정권 차원에서 행해졌다는 것이다. 안병욱 진실위 간사는 “박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인해 군사법정에서 모든 사건이 처리됐다.”면서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즉시 사형집행도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혁당 관련자 8명은 대법원의 상고기각 결정이 내려진 지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협회가 ‘사법사상 치욕의 날’로 지정했을 만큼 무리한 법집행이었다.30여년이 지난 지금 ‘사법살인’의 책임자를 분명히 가려야 했다. 그러나 진실위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사형이 전격 집행됐다는 심증을 확인할 문서나 직접증언을 확보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생존해 있는 가해자들이 아직 숨기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달초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추가 조사를 벌여 논란의 여지를 없애야 할 것이다. 정치권력의 강요가 있었겠지만, 최종 판결은 사법부가 내렸다. 사법부는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고, 피해자 구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인혁당 사건은 재심이 청구되어 있다. 법원은 진실위 발표를 계기로 재심을 개시해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 명예회복과 실질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진실규명 작업에 정략적으로 접근해선 안된다. 국가보안법을 손질하고, 사형제 폐지 논의를 본격화하는 등 다시는 용공조작 피해가 없도록 법·제도를 갖추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 실미도부대원 발굴 첫날 유골일부 찾아 34년만의 통곡

    실미도부대원 발굴 첫날 유골일부 찾아 34년만의 통곡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1차 조사대상 사건 가운데 하나인 실미도 사건과 관련,15일 경기 고양시 고양동 벽제서울시립묘지에서 실미도 부대원 사망자 20명의 유해 발굴작업에 나서 유골 등 일부를 발견했다. 육군 유해발굴단은 이날 오후 매장 추정 지점인 1-2구역 아래 부분에서 발가락과 발목 뼈, 양말 등이 남아 있는 왼쪽 전투화 한 쪽을 찾아냈다. 천으로 만들어진 전투화는 지표에서 50㎝ 아래에 묻혀 있었다. 두개골로 추정되는 길이 5㎝, 너비 2㎝ 크기의 뼛조각 2개와 엄지 손가락 굵기에 길이 30∼40㎝의 끈 2가닥도 발견됐다. 유해발굴단 이문승 중령은 “통상 정강이 뼈가 함께 나와야 하는데 (이례적으로) 발목뼈까지만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번 유해 발굴은 실미도 요원들이 북파훈련을 받다가 탈주하는 과정에서 숨진 지 34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유족대표 강낙영(73)씨는 추도사에서 “구천을 헤매던 억울한 원혼들이 오늘에야 쉴 곳을 찾게 되는 것 같다.”면서 “국가의 무책임한 처사로 억울하게 묻힌 원혼들이 편히 쉬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한센인 집단학살 첫 확인

    한센인 집단학살 첫 확인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지난 1950년 7월 경남 함안의 한센인 정착촌 ‘물문’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을 비롯, 한센인에 가해진 인권 침해 사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인권위가 서울대 정근식 교수팀에 의뢰해 지난 3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한센인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풍문으로 알려졌던 한국 전쟁 중에 일어난 좌우익에 의한 학살,70년대까지의 강제격리, 아이를 못낳게 하는 단종수술 사실 등이 한센인의 증언에 의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조사를 맡은 정 교수팀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88개 한센인 정착촌을 방문, 증언을 수집했으며 오는 12월 조사보고서를 인권위에 제출한다. 인권위는 보고서를 토대로 정부 관련부처에 한센인 보상 및 복지를 위한 정책권고를 할 계획이다. 정 교수는 “한센인 학살은 전형적인 사회 소수자에 대한 박해 양상을 보인다.”면서 “권력 유지를 위해 사회적으로 배척받는 한센인을 표적으로 삼은 학살이 되풀이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센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단순한 조사 차원을 넘어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항목에 포함시켜 진상을 밝히고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사에서는 일제가 행했던 격리정책을 광복 후 사실상 포기했던 한국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1970년대 후반까지 전국의 한센인을 강제로 소록도로 보내고, 아이를 못낳게 하는 단종수술을 시행했다는 진술을 확보하는 등 구전으로만 남아 있는 한센인 학살과 인권유린 사실을 자료화해 복원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유서 대필사건 필적 재감정”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강기훈 유서대필사건’과 관련해 고 김기설씨의 자필 메모가 포함된 자료를 확보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청 과거사위 이종수 위원장은 “김씨의 군 동료들로부터 김씨 자필이 담긴 군대 추억록을 확보했다.”면서 “검찰에서 유서 대필사건 수사기록을 넘겨받는 대로 필적감정을 하겠다.”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軍과거사 규명 4건 확정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5일 12·12와 5·17 비상계엄확대에 이어 5·18 민주화운동에 이르는 1980년대 초 신군부의 집권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과 삼청교육대 사건, 강제징집 등 녹화사업,1960년대 후반 발생한 실미도 사건 등 4건을 1차 조사대상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군 과거사위는 또 10·27 법난(法難), 언론인 해직 및 언론통폐합 사건,5·6공의 민간인 사찰, 재일동포 및 일본 관련 간첩조작 의혹사건 등을 2차 조사대상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1차 조사에서는 특히 신군부 집권과정에서 벌어진 12·12사건에 관여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강제 진압한 공로로 표창을 받았던 군 인사들의 포상 내역이 조사 대상에 포함돼 경우에 따라서는 훈·포장이 박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과거사위는 신군부가 원활한 권력 장악을 위해 5·17 확대 계엄을 실시하고, 계엄 확대 이유로 내세운 당시 북한의 특이 동향 여부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5·18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명령체계 및 실종자 행방 등도 의혹을 낱낱이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이 발령된 직후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군 부대 내에 설치한 삼청교육대사건과 관련해서는 최초 계획 입안 및 추진 과정에서의 위법성, 검거 및 교육 과정에서의 인권 유린 실태, 검거자와 입소자의 규모, 사망자 수 등을 집중 규명할 방침이다. 강제 징집 및 녹화사건의 경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와 대상자 수, 프락치 공작 실태 및 피해사례 등을 주로 규명하게 된다. 1971년 실미도사건은 공군 684부대(일명 실미도부대)의 창설 배경 및 주체, 훈련병 모집과 훈련 과정에서 자행된 불·탈법적 인권 침해 행위를 집중 규명하고 훈련병의 신원 및 유해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한편 민간위원 7명과 국방부측 인사 5명 등 모두 12명으로 구성된 과거사위는 지난달 1일부터 민·군 조사관 10명씩을 임명하는 등 본격적인 조사를 위한 기초 작업을 해왔으며, 이번 조사 과정에서 해당 사건의 피해 실태를 파악해 적절한 명예 회복 조치 등도 권고할 방침이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미림팀’ 재가동 의혹 김현철·이원종씨 출금

    ‘안기부 X파일’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서창희)는 28일 전날 긴급체포한 재미동포 박모(58)씨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도청자료 유출금지) 위반과 삼성그룹에 대한 공갈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또 옛 안기부 전 미림팀장 공운영(58)씨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씨의 구속 여부는 29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뒤 결정된다. 법원은 입원치료 중인 공씨에 대해서는 신문이 가능한지 여부 등을 판단, 영장발부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검찰은 영장이 발부되더라도 공씨가 건강을 회복한 뒤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불법도청 진상규명과 관련,1994년 미림팀의 재구성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검찰은 또 불법도청에 관여한 옛 안기부 간부들을 금명간 소환, 미림팀 부활을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미림팀의 도청 대상과 범위는 어디까지였는지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앞서 법무부는 국정원의 요청으로 불법도청과 X파일 유출에 관여한 임모(58)씨 등 옛 안기부 직원 10여명을 출국금지시켰다. 미림팀의 지휘 책임자로 알려진 오정소 안기부 전 대공정책실장은 ‘행담도 개발 의혹사건’으로 이미 출국이 금지돼 있다. 검찰은 전날 공씨 자택과 회사에서 압수한 라면박스 6개 분량의 자료를 검토하는 한편 재미동포 박씨가 다른 테이프를 보유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 이날 박씨의 서울 상도동 인척 자택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또 유출된 X파일 중 일부 녹취록을 확보, 내용 분석에 들어갔다. 원본테이프 확보를 위해 국정원에 재차 협조요청을 하는 한편 언론사가 보유한 테이프도 건네받기로 했다. 검찰은 이날 이회창·홍석현·이학수씨 등을 고발한 참여연대의 이재명 투명사회국장을 고발인 자격으로 소환, 고발 취지와 경위 등을 조사했다. 한편 국정원은 자체 조사 결과를 다음달 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비공개로 보고한 뒤 보강조사를 거쳐 다음달 초 발표할 계획이다. 오충일 과거사진실규명위원장은 이날 불교방송에 나와 “국정원의 조사 발표에 국민의 의혹이 남아 있다면 민간 위원측에서 밝혀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해 조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X파일 파문] 당혹스런 국정원

    국가정보원이 도청 파문과 관련한 잇단 보도에 당혹해 하면서 수습에 부심하고 있다. 전직 직원들의 폭로가 ‘막가파’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과거사진실규명위 차원이 아닌 강도 높은 자체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국정원은 “올 1월에 ‘X파일’ 도청 테이프를 국정원이 알았다.”는 조선일보 26일자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정정보도를 청구할 방침이다.이 신문은 “홍석현 주미대사가 지난해 12월 내정돼 상대국의 아그레망(동의)을 기다릴 무렵인 지난 1월,MBC가 확보한 ‘X파일’과 같은 내용의 CD 두 장을 입수, 성문(聲紋) 분석을 실시했다.”면서 청와대에도 보고됐다면 홍 대사 임명 강행에 문제가 있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국정원 “중앙일보 보도 사실관계 확인후 대응” 국정원은 또 이 날자 중앙일보 보도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이 신문은 “1999년 천용택 전 국정원장이 ‘X파일’을 6억원에 팔려고 한다는 삼성의 신고를 받고도 전 미림팀장 공운영 씨의 유출 테이프를 압수했을 뿐 사법처리하지 않은 것은 당시 천 원장을 포함한 국민의 정부 핵심 실세들과 관련된 테이프를 폭로하겠다는 공씨의 협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국정원 전 직원도 천 전 원장의 뒷거래설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서 국정원은 더욱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간부 출신 모임인 ‘국가를 사랑하는 모임’의 송영인 회장은 이날 평화방송에 출연,“천 원장 등이 공씨에게 이권 사업인 통신 관련 돈벌이를 도와준 것은 상식 이하의 처사”라고 비난했다. 공씨는 직권면직된 1998년 말 모 통신회사의 국제 및 시외전화 가입자 유치 대리점을 차리고 국정원의 국내외 방대한 조직망을 끌어들여 영업에 활용한 알려졌다. 그러나 공씨는 이날 자해를 하기 전 공개한 자술서에서 자신의 사업이 “구멍가게 수준”이라며 “3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고 주장했다.●기밀 누설자 비판 움직임도 사실 여부를 떠나 전직 직원들의 ‘무차별’ 폭로가 계속되자 국정원 내부에서는 국정원직원법상 비밀엄수 조항을 어긴 이들에 대한 처벌 목소리도 높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미림팀의 실체를 처음 폭로한 김기삼(41)씨가 “고시공부 중독자여서 조직에 적응하지 못했다.”면서 “입사 후 2년은 연수를 갔고 5년은 이 부서, 저 부서를 돌아 고급 정보를 접할 위치가 아니었다.”고 평가절하했다.김씨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오정소 대공정책실장 보좌관을 지냈으나 2002년 면직된 뒤 도미,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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