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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27법난 국가권력 남용 언론인 930명 강제 해직”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는 25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10·27법난’과 ‘신군부 언론통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10·27법난은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특정 종단에 사법적 잣대를 무리하게 적용한 국가권력 남용의 대표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1980년 신군부가 불교계 정화계획을 마련한 데는 자신들에 대한 지지 표명을 거부하고 협조요청에 미온적인 조계종단 집행부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종단비리에 대한 내부 투서가 계기가 됐다는 신군부측 주장은 허위라는 것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법난 이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불교계 관계자를 만나 자신은 모르고 있던 사안이라고 했지만, 당시 합수단의 수사 결과는 청와대와 합수부에 동시에 보고됐다.”며 전 전 대통령이 수사단계부터 이 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란 점을 강하게 시사했다. 위원회는 또 언론인 강제 해직 등 신군부에 의해 이루어진 언론탄압 사건에 대해서도 “신문협회와 방송협회의 자율 결의 형태였으나 실제는 국보위 지침을 토대로 보안사가 해직 대상자 명단을 작성하고 그 명단을 문화공보부가 언론사에 하달하는 형태로 이뤄졌다.”면서 “각 언론사는 그 명단에 해직 대상자를 자체 추가해 정화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최초 해직 대상자는 330여명이었지만 최종적으로 930여명이 해직됐다.”면서 “인원이 확대된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언론사주의 다수가 사망하고 일부는 조사에 불응해 조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軍 과거사위 진상 조사] 해직자 “밋밋한 발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신군부 언론탄압 조사결과가 25일 발표되자,80년 당시 해직된 피해 언론인들은 발표 내용을 반기면서도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건 없다.”며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고승우(미디어오늘 논설위원) ‘19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80년 언론인 강제해직을 주도한 보안사의 상급기관인 국방부가 27년 만에 자체 조사를 통해 언론탄압의 진실을 밝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환영했다. 고 대표는 “80년 언론탄압은 보안사 외에도 행정적으로 협조한 문화공보부, 내부 제작거부자를 밀고한 언론사 경영진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으나 이번에 함께 규명되지 못해 아쉽다.”면서 “문공부와 언론사 경영진의 문제는 차후 법적 강제력을 가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꼭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80년 당시 기자협회장이었던 김태홍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그다지 새로운 내용이 없고 밋밋한 발표”라면서 “해직 후 하도 엄혹한 세월을 살다보니 이 정도의 발표로는 별다른 감흥이 안 생긴다.”고 평가했다. 김 의원은 “당시 군부세력을 잇는 정당과 이들에 협조한 언론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별로 할 말이 없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합동통신 기자로 제작거부를 주도하다 해직된 언론중재위원회 박영규 위원은 “당시 남영동에 끌려가서 사직서를 쓰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면서 “해직기자들은 취업이 안 돼 엄청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고 회고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사설] ‘10·27 법난’ 국가가 명예회복 나서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10·27 법난’을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사법적 잣대를 무리하게 적용한 대표적인 국가 권력 남용 사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과거사위는 ‘10·27 법난’이 신군부에 비협조적으로 판단된 당시 총무원을 비롯한 불교계에 가해진 탄압이었다는 불교계 주장을 상당 부분 입증해낸 것이다. 법난의 실행계획서인 ‘45계획’의 입안자, 작성자 등을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신군부의 치밀하고도 폭력적인 불교계 길들이기의 진상을 확인한 것은 큰 성과다. 신군부는 투서를 근거로 총무원장인 월주 스님을 연행했으나 수사 과정에서 대부분 허위라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사퇴서를 강제로 받아냈다. 스님과 불교 관련 인사 153명을 연행하고 전국의 사찰·암자 5731곳을 수색하고 수사하면서 스님들의 승복을 벗기고 고문하는 등 만행의 실태도 27년만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89년 5공 청문회에서 수사 과정을 “잘 몰랐다.”고 증언했으나 이도 거짓이라고 과거사위는 결론지었다. 이번 보고서가 피해자와 관련자를 모두 조사하지 못한 한계는 있으나 진실에 접근하고 진상을 밝혀낸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남은 과제는 피해를 본 개인이나 종단, 불교계 전체에 대해 국가 차원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하는 일이다. 불교계 최대 종파인 조계종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추진하는 위원회를 구성해두고 있다. 과거사위의 권고대로 정부는 불교계와 협의해 필요하다면 특별법 제정을 통해서라도 후속 조치에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 [軍 과거사위 진상 조사] 불교계 “진상규명 미흡…”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25일 발표한 ‘10·27법난’ 조사결과에 대해 불교계는 “기대한 만큼의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아 미흡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계종 ‘10·27법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추진위원회’(추진위·위원장 법타 은해사 주지)는 논평을 통해 “상당히 진전된 진상규명이 이뤄졌다.”면서 “그러나 ‘45계획’으로 알려진 법난의 입안자 등이 낱낱이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자와 관련자를 전수조사하거나 심층면접하지 못해 미진하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특히 “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등 1980년의 대표적 인권탄압 사건은 특별법이 제정되어 나름대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뤄졌지만 ‘법난’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조사결과 신군부의 탄압임이 밝혀졌으므로 정부는 특별법 제정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당시 법난으로 조계종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난 월주(72) 스님은 “10·27법난은 정통성 없는 쿠데타정권이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 불교를 유린하고 희생시킨 사건”이라며 “멀쩡하게 운영되던 화합종단을 분규나 일삼는 범죄집단으로 내몰아 탄압한 신군부에 의해 희생된 스님 등 피해자에 대한 보상대책을 종단 차원에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진위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실위원회를 통해 국방부 조사의 미진한 부분을 규명키로 하는 한편 중고교 교과과정의 현대사 부분에 신군부가 1980년 한국 불교계에 저지른 야만적 만행을 적시하도록 관계 당국에 요구할 방침이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이젠 고향에 가 남편 한 풀고 싶어”

    “이젠 고향에 가 남편 한 풀고 싶어”

    “이제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남편 고 윤이상(사진 왼쪽) 선생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는 이수자(오른쪽·80)씨가 윤이상평화재단을 통해 밝힌 심경의 일단이다. 윤이상평화재단은 6일 이씨가 1967년 동백림 사건 이후 40년 만인 10일 한국에 온다고 밝혔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은 동베를린 간첩단이란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구명운동으로 풀려나 이후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베를린 자택에 한반도 모양의 연못을 만들 정도로 조국을 그리워한 윤이상은 95년 사망할 때까지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부산 남여자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할 당시 윤이상을 만나 결혼한 이씨는 남편의 타계 이후 “선생의 명예가 회복되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해 4월 금강산에서 열린 윤이상음악회에서는 “죽기 전에 고향땅 가서 남편 한을 푸는 게 소원”이란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윤이상 명예회복’과 관련,2006년 1월 국정원과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동백림사건은 확대 왜곡된 것이므로 당사자 및 유족들에게 정부가 사과하기를 권고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같은해 8월 이 여사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편의 명예회복 등을 촉구하는 편지를 부쳤다. 지난 5월 정부가 이씨에게 과거 불행한 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을 밝히고 ‘2007 윤이상 페스티벌’에 초청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이씨의 고국방문 뜻은 한층 확고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이상평화재단측은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분에 이 여사도 동의했다.”며 “윤이상이란 작곡가에 대한 국민의 재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명예회복이란 걸림돌도 넘어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씨는 20일가량 한국에 머물면서 16일부터 두달간 개최되는 ‘윤이상 페스티벌’과 14일 통영 미래사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참석할 계획이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도 예정되어 있다. 한편 평소 이수자 여사와 가깝게 지낸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뮌스터대)는 6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로 “윤이상 선생님의 한을 제일 가까운 분이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이 여사의 한국 방문을 축하했다. 이어 그는 “윤이상 선생님이 천상에 계시지만, 남북 간의 응어리진 문제가 민족의 고민으로 승화되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범여 신당’ 닻 올렸지만…

    ‘범여 신당’ 닻 올렸지만…

    탈당과 합당, 재탈당 등으로 숨가쁜 이합집산을 펼쳐온 범여권의 개편작업이 5일 ‘대통합민주신당’(약칭 민주신당) 출범으로 민주신당, 열린우리당, 민주당 등 3개 정당의 정립구도로 형성됐다. 범여권의 세력 구도가 비노(非盧·민주신당)·친노(親盧·열린우리당)·반노(反盧·민주당) 진영의 비교적 공고한 틀을 갖춤에 따라 범여권이 추진해온 단일후보 선출 방식에도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범여권은 열린우리당 및 열린우리당 탈당파, 민주당 등 기존 정파의 모든 후보들이 국민참여경선(오픈프라이머리) 또는 예비경선제(컷오프 경선)를 통해 단일 후보를 선출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민주신당의 출범으로 사실상 3개 정당이 별도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를 선출한 뒤 대선을 앞두고 후보 단일화를 시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민주신당, 원내 2당으로 출범 열린우리당 및 통합민주당 탈당파와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선진평화연대, 시민사회세력인 ‘미래창조연대’ 등이 참여한 ‘대통합민주신당’이 5일 창당대회를 갖고 85석의 원내 제2당으로 공식 출범했다. 민주신당은 이날 당 대표로 오충일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을 선출했다. 진보적 성향의 목사로 시민사회진영 내 재야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는 오 신임대표는 진보적 개신교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6월사랑방 대표, 노동일보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2004년 11월부터는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수락연설에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과의 협의를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대통합을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민주신당 최고위원으로는 이미경·조일현 의원, 정균환 전 의원, 김상희 전 지속가능발전위원장, 양길승 녹색병원장이 선출됐다. ●미완의 대통합…후보 단일화는 민주신당은 조만간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천정배 의원 등이 참여하는 대선후보 국민경선에 착수할 방침이어서 범여권도 본격적인 대선 경선 체제로 전환될 전망이다. 신당은 오는 25∼30일 여론조사 방식의 대선후보 예비경선(컷오프), 다음달 중순 본경선을 거쳐 10월 중순 대선 후보를 선출할 예정이지만 범여권의 단일 후보를 뽑는 ‘통합 리그’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등 열린우리당 소속 대선주자 6인이 신당이 ‘민주당 선(先)통합 추진’을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한 불만으로 이날 행사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민주신당은 전대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과의 합당을 위해 수임기구를 상임중앙위원회에 위임한다.”는 내용의 부칙 조항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참여정부 계승론을 부정하고 특정 인사 배제론을 주장하는 신당 내부의 반발로 합당 논의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범여권 3개 세력이 독자 경선을 통해 후보 단일화 경로를 밟는 방안이 점차 유력해지고 있다. ●대표인선 막판까지 진통 민주신당 내부에서도 정파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점도 민주신당의 ‘순항’ 여부를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이다. 실제로 ‘오충일 단독 대표체제’로 결정하기까지 민주신당은 전당대회일인 5일 오전까지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결국 소수파인 시민단체 출신 당 대표가 합당과 당직 인선 등 주요 실무과정을 진두지휘할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됨으로써 향후 사무총장 등 당직 인선을 놓고 계파간 지분싸움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종락 구혜영기자 jrlee@seoul.co.kr
  • “경찰, 92년까지 선거 개입”

    “경찰, 92년까지 선거 개입”

    경찰이 정부 수립 이후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2년까지 선거운동 방해와 금품매수, 후보자 비방, 공안사건 조작 등으로 각종 선거에 불법 개입을 했거나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종수 한성대 교수)는 1일 ‘불법 선거개입 의혹’과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용공조작 의혹’ 등 3개 분야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올 연말로 시한이 끝나는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는 의혹을 일부 확인하는 차원에 머물렀을 뿐, 부끄러운 과거를 낱낱이 드러내는 데는 미흡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고문·용공조작 반성을” 이종수 위원장은 이날 “관련 재판기록과 전직 경찰간부들의 증언 및 비망록 등을 확인한 결과 경찰이 54년 제3대 민의원선거부터 87년 대선까지 광범위하게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87년 대선까지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광범위한 불법 개입이 판을 쳤지만,88∼92년에는 민주화의 점진적 진행에 따라 노골적인 개입보다는 치안정보 불법 이용 등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87년 강원도 모 지역의 경찰서장을 지낸 이모씨로부터 “정부·여당이 도지사를 통해 활동비를 내려보낸 기억이 있다. 이 돈을 정보과장에게 줘 활동비로 사용하게 했다.”는 증언을 처음으로 확보해 80년대 말까지 경찰이 정부 지원금으로 선거에 불법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과거사위는 또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보안경찰의 사찰 활동인 ‘요시찰(要視察) 카드’가 적어도 94년말까지 공식적으로 존재했으며, 이 지침을 승계한 대공관리지침이 참여정부 출범 이후인 2004년 1월까지 존속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인물존안자료는 99년초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용공조작 의혹과 관련, 과거사위는 부정선거 시비 등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경찰이 공안사건을 발표해 무더기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을 잡아들인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67년 6·8선거 부정 규탄 시위로 정국이 불안해지자 그해 316건에 그쳤던 국보법 위반 송치 건수가 68년과 69년에는 각각 950건,801건으로 급증했고, 유신이 선포된 72년과 민주화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 86∼90년에도 송치 건수가 급증했다는 것이 과거사위의 판단이다. 과거사위는 “과거 정치 권력이 정권 연장의 목적을 위해 경찰을 이용했고, 권력으로부터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경찰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고문과 용공조작 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을 반성하고 중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고된 미완의 진상 규명 이날 발표된 결과는 대부분 그동안의 의혹을 정리한 뒤,“정황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수준에 머물러 과거사 규명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2005년 3월 출범한 과거사위에는 14명의 위원 가운데 경찰청 치안감 이상 간부가 5명이나 포함돼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 이종수 위원장은 “선거에 경찰이 개입했다는 관련 자료가 공식적으로 남아 있기 힘들다. 관련 증언들을 폭넓게 청취해 진상을 밝히려 노력한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박병섭 위원도 “3대 분야에 대한 포괄 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위원회의 목적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경찰이 이를 침해했던 과거를 밝히고 신뢰받는 계기로 삼자는 의도였다.”고 해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미진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선 일정을 감안해 11월 말까지 활동을 마무리짓는 것으로 국방부, 국정원 등 과거사위를 둔 기관들과 조율이 끝난 상태”라면서 “이의 제기가 들어온 청주대 자주대오 및 나주부대 민간인 학살사건을 보완 조사하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조사는 끝났으며 백서를 준비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신군부, 80년 5월초부터 비상계엄 확대 계획…‘北 남침설’ 5·17에 악용

    신군부, 80년 5월초부터 비상계엄 확대 계획…‘北 남침설’ 5·17에 악용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가 학생시위가 본격화되기 전인 5월초부터 비상계엄 확대를 통한 정국 장악을 치밀하게 계획했던 것으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 조사결과 드러났다. 하지만 관심을 모았던 5·18 발포명령자는 이번에도 밝혀내지 못했다. 국방부 과거사위는 2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2·12,5·17,5·18사건과 1990년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에 따르면 5월초 육군본부는 ‘학생시위 대처방안’이란 문건을 통해 ▲군 투입 준비(5월7∼10일) ▲포고령 발표(11∼13일) ▲휴교령·계엄포고문 발표(14∼15일) ▲계엄군 투입(17일)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계획을 수립했다. 과거사위는 “문건 작성 당시 학생시위는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는 교내시위 수준이었다.”면서 “시위로 사회가 혼란해져 군이 나섰다는 신군부 주장은 5·17 계엄확대를 정당화하려는 거짓주장”이라고 결론지었다. 신군부가 계엄확대 명분으로 활용한 ‘북한남침설’에 대해선 당시 육본조차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육본 보고서를 통해서다. 과거사위는 “정치개입의 명분을 찾기 위해 대북정보를 악용한 것”으로 규정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앞 발포의 최종 명령권자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과거사위는 “5월21일 작성된 2군사령부 문서를 통해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자위권 발동’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가 공개한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이란 문서에는 “전(全) 각하(전두환 지칭):초병에 대해 난동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는 내용이 수기(手記)로 적혀 있다. 초기 강경진압 과정에 황영시 당시 계엄부사령관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전차 투입을 명령하고 자위권 발동 논의를 주도한 것도 황 부사령관이었다고 과거사위는 전했다. 한편 5·18 발포명령자 등 핵심 의문점들이 해소되지 못한 것과 관련, 이해동 위원장은 “미흡하더라도 자기고백적 진상조사결과를 군 스스로 국민 앞에 공개했다는 점에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보안사, 6共초 계엄대비 예비검속자 작성

    노○현, 이○찬, 단○호, 심○철, 임○석, 오○식, 이○영…. 24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가 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처음 공개한 6공화국 초기 보안사의 ‘A급 예비검속자’ 명단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해찬 전 총리, 단병호·심재철·임종석·오영식·이인영 의원이 맞느냐는 질문에 과거사위 관계자는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고은·황석영·신경림 작가, 오충일 국정원과거사위 위원장, 박형규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장명국 내일신문 발행인으로 짐작되는 인물도 있다. 모두 1989년 보안사가 계엄 대비 예비검속 시나리오인 ‘청명계획’을 작성하면서 점찍은 사전 체포대상자다. 대통령 중간평가 유보와 문익환 목사 방북, 서울지하철과 현대중공업 파업 등으로 공안정국이 조성되고 ‘친위쿠데타’설이 나돌던 89년 4∼6월 보안사 3처가 작성했다.1990년 윤석양 이병에 의해 폭로된 보안사 민간인 사찰카드도 이 명단에 기초해 작성된 것으로 과거사위는 보고 있다. 보안사는 대상자를 A급(계엄목표 달성 결정적 장애자) 109명,B급(계엄시책 수행 장애자) 315명,C급(국민공감대 확보 위해 처리해야 할 대상자) 499명으로 나눠 개인별로 5∼6쪽씩 카드를 만들어 관리했다. 카드엔 인적사항과 주거환경 및 주거지 구조, 예상 도주로 및 은신처, 출동할 체포조 등이 꼼꼼하게 기록됐다. 과거사위 관계자는 “예비검속 계획을 친위쿠데타 기획과 연계짓는 견해도 있었지만 물증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에다가와 조선학교 아이들 웃음 찾아주자”

    “에다가와 조선학교 아이들 웃음 찾아주자”

    ‘에다가와 조선학교’ 아이들의 웃음을 찾아주세요. 지난 60년동안 일본 도쿄에서 우리말 ‘가갸거겨’를 가르치던 조선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46년 1월 개교한 에다가와 조선학교인 ‘조선 제2초급학교(교장 송현진)’가 60년만에 위기를 겪고 있다. 전교생 65명의 이 학교는 일본 정부로부터 학교 운동장을 무상으로 대여받아 사용했다. 그 운동장은 과거 쓰레기 하치장이었다. 도쿄도 정부는 2003년 12월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갑자기 거액의 돈을 내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3년동안의 재판 끝에 지난 3월 재판부는 도쿄도와의 화해 권고를 결정했다. 이것으로 끝난 건 아니었다.6월까지 1억 7000만엔(약 14억원·토지 시가 10% 수준)을 내야 한다. 송 교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화해 권고금 전액을 조선학교 법인이 처리하기로 해 큰 어려움은 사라졌다.”면서 “한국에서 모금을 해주는 돈은 낡은 학교 건물을 신축하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SBS 스페셜’이 2005년 9월과 올해 4월29일 두 차례에 걸쳐 에다가와 학교를 방영한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뜨거운 사연이 넘치고 있다. 시민단체도 지원에 나섰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김용택 시인, 오충일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 공동대표로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 모금’을 오는 21일 발족할 계획이다. 재독한국여성모임, 동북아평화연대, 아름다운가게 등도 연대한다. 연출을 맡은 박기홍 PD는 “이번 모금 활동을 통해 제2학교를 다시 짓는 데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조선 제2초급학교 지원계좌는 신한은행 330-03-004075(예금주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 응원 메일은 edagawa2@topaz.ocn.ne.jp(조선 제2초급학교 송현진 교장)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범여권 대선예비주자 ‘원탁회의’ 성사될까

    진보성향의 사회원로들이 범여권 통합과 대선 단일후보 선출을 위해 주요 대권예비주자들에게 ‘3월 말 원탁회의을 구성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물 중심의 범여권 통합을 추진하자는 취지다. 18일 범여권 관계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 등 민주·개혁 진영의 원로들이 범여권의 대권예비주자들이 모이는 원탁회의를 이달 말 전후까지 만들자고 최근 주요 예비주자들에게 제안했다.”고 말했다. 함 신부를 비롯해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 대표이자 인천지역 재야원로인 김병상 신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자 ‘창조한국 미래구상’ 고문인 오충일 목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서 활동해온 김상근 목사 등이 주축이 됐다고 한다. 함 신부 등은 지난 14일을 전후해 주요 예비주자 진영에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여권 소식통은 “정동영·김근태·천정배·한명숙 등의 기성 정치인들 외에도 범여권의 영입대상인 정운찬 서울대 전 총장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강금실 전 장관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범여권에서도 원로들의 구상과 일맥상통하는 제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앞서 15일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은 “통합신당에 뜻을 둔 대권후보들이 참여하는 원탁회의를 제안한다.”고 밝혔다.17일엔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정동영·김근태·김혁규·한명숙씨와 정운찬씨 등 ‘자칭타칭’ 거론되는 범여권 대선후보들과 국민대통합 신당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주선하겠다.”고 했다. 18일엔 천정배 의원이 같은 성격의 ‘민생평화개혁세력 정치지도자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천 의원은 특히 “얼마전 우리 사회의 양심적이고 존경받는 원로들께서 비슷한 구상을 가지고 논의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오늘 제안도 이분들의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대권예비주자들의 원탁회의가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범여권 관계자는 “벌써부터 정치권이 논의를 주도하는 모양으로 비치는데 정운찬·문국현·강금실 등 현재 정치권 밖에 있는 인물들이 쉽게 참여하겠느냐.”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서로 계산이 복잡한 대권예비주자들을 한 데 모아 통합을 이끌게 하자는 것은 원로들의 순수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라고 말했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한·일 DJ납치 각서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과 관련, 한·일 양국간의 비밀 각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무소속 최재천 의원은 11일 낮 서울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73년 11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일본에 건너가 서면으로 ‘묵계’라는 이름의 비밀 각서를 작성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사건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제는 김종필 전 총재가 입을 열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최 의원은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조사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일본 아사히 신문에 유출된 것이 석연치 않고 그 핑계로 결과 발표를 연기하고 있다.”고 전했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DJ ‘납치사건 진상 규명’ 촉구

    김대중 전 대통령이 9일 박정희 정권 당시 자행된 ‘김대중 납치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사건을 조사해온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7∼8개월째 조사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측의 최경환 비서관은 이날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진상 규명 촉구와 아울러 이와 관련해 김 전 대통령이 지난 2월15일 일본 교도통신과 가진 비공개회견 녹취록도 배포했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자주대오 수사 일부 신빙성 없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1991년 경찰이 발표한 ‘청주대 자주대오 사건 수사’ 내용에 일부 의혹이 있다고 8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이날 중간조사결과 발표에서 “‘자주대오’라는 조직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인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던 명칭·강령·규약 등은 신빙성이 없고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당시 명칭·강령·규약은 피의자 송모(당시 23세)씨가 국군기무사령부 수사관의 지시에 따라 자필로 작성한 것 이외에는 물증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사위에 따르면 송씨는 “당시 기무사 수사관으로부터 구타와 협박을 당하고 10여일간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수사관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고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조사 과정에서 고문·가혹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 위원회는 “일부 수사관이 강압수사를 한 적이 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자료 폐기와 진술 불일치로 진위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기무사 수사 과정에서의 문제점은 필요하다면 국방부 과거사위가 조사할 권한이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 사건 관련자인 정모씨는 “일부 의혹에 대한 위원회의 중간발표를 환영하지만 조사에 미진한 점이 많다.”면서 “향후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며 다른 국가기관에도 재조사를 촉구하겠다.”고 말했다.그러나 과거사위 간사인 박영진 경찰청 보안국장은 “자주대오가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 노선을 신봉하는 이적단체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며 위원회와 상반된 견해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그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졌는가

    민주화를 이루어내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젊은 청년들의 죽음이 있었을뿐 아니라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 많은 사건들이 역사적인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전두환 정부시절 주변의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다. 콩나물을 사러간다며 집을 나섰던 사람, 발에 문신이 있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사라진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모두 ‘사회정화’라는 명분으로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죽어간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이 거기서 무엇을 했는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케이블 뉴스채널인 YTN이 민주화 20주년 특별기획으로 ‘진실’ 우리 편은 아무도 없었다-삼청교육대편을 오는 24일 오후 11시5분과 26일 오후 3시5분에 각각 방영한다. 1980년 8월4일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계엄포고 13호’를 발표한다. 이른바 사회의 쓰레기들을 일소하여 사회정화를 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운 ‘삼청교육대’ 포고령이다. 이 포고령으로 징집된 사람들은 모두 6만 755명에 달했다. 아직도 사람들은 ‘삼청교육대’에 다녀온 사람들을 깡패나 사회악 세력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신군부는 문신한 사람들을 TV화면에 찍히게 해서 ‘삼청교육대 입소자=깡패’라는 등식을 사람들의 머릿 속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문신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 뒤에는 자신이 왜 끌려왔는지도 모르는 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던 다수가 있었다. 2004년 8월, 국방부는 삼청교육대 피해자를 대상으로 ‘명예회복 및 보상금등 신청공고’를 냈다. 그러나 신청한 사람은 징집자의 4%선에 불과한 2800명에 지나지 않았다. 삼청교육대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개인의 일상이 무참히 망가지고 죄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녀가 뒤늦게 부모의 전력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많았다. 도대체 삼청교육대는 무엇이었는가?2006년 11월10일,‘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6년 전에 자행된 5공화국 최대의 인권유린 사건으로 꼽히는 삼청교육대 사건의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은 여전히 발표 내용이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청교육대 사건과 관련한 몇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아직 남아 있는 삼청교육대를 둘러싼 문제점을 파헤쳤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데스크시각] 개혁의 함정/박정현 기획탐사부장

    정권이 바뀌면 으레 개혁을 외치곤 한다. 집권을 준비하면서 국가와 사회를 바꾸겠다는 청사진을 마련했을 테니, 개혁을 실천하는 일은 당연할 게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끝없는 사정(司正)’을 내걸면서 공무원사회와 군을 개혁했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환위기라는 특수상황에서 구조조정이라는 개혁드라이브를 걸었다. 내친 김에 규제를 혁파하면서 기득세력이 움켜쥐고 있던 진입장벽을 부쉈다. 노무현 정부가 몰아붙인 대선자금 수사는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한 몫을 했고,17대 총선은 어느 때보다 깨끗하게 치러졌다고 평가받는다. 참여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개혁의 폭을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진상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이라는 4대 개혁입법으로 확대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뤄진 개혁은 별로 없다.4대 개혁과제 가운데 과거사진상규명법만 국회를 통과해 과거사의 진상이 일부 규명되고 있을 뿐이고, 나머지 3개 법안의 국회 통과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그래서 소리만 요란하고 실속 없는 ‘깡통 개혁’이란 비아냥도 나온다.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로스쿨법안(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사장될지 모른다. 로스쿨법안은 본격적인 논의조차 안 되고 있는 터에 사법제도개혁위원회는 20여일 뒤면 해산한다. 사법개혁을 추진할 행정부의 주체가 사라지게 된다는 얘기다. 로스쿨은 법학 전공자가 법관이 되는 폐쇄성에서 벗어나 특화된 전문 법조인을 키운다는 취지에서 10여년 전부터 논의돼온 제도다. 국제화시대에 대비하려면 한시가 급한 제도다. 이런 로스쿨법안 처리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면서 2000여억원을 투자하고 370여명의 교수를 충원한 40여개 대학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대학이 입을 경제적 손실은 그렇다치더라도 로스쿨 도입에 대비해 준비해온 학생들의 혼란은 누가 해결하나.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이 어쩌다 이렇게 줄줄이 좌초될까. 모든 정부가 개혁에 대해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이 정부나 정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마음먹은 대로 개혁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밀어붙이곤 한다. 사법개혁도 마찬가지다. 따져보면 개혁은 정부가 하는 게 아니다. 국회가 하는 거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개혁 방안을 내놔도 국회가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개혁의 주체는 국회인 것이다. 국회를 장악한 정부·여당이라면 힘의 정치로 개혁입법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날치기 처리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시대의 흐름과는 맞지 않다.1996년 말에 신한국당이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가 전국이 들끓자 백지화했던 것처럼 후유증과 사회적 혼란은 너무나 크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로스쿨법안이 처리되지 않은 책임을 한나라당으로 돌리면서 비난한다. 로스쿨법안을 다루는 교육위에는 여당 9명, 한나라당 7명, 비교섭단체 2명 등으로 여야간에 팽팽하게 구성돼 있다. 현재 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율사 출신은 한나라당 31명, 열린우리당 16명, 기타 3명으로 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분포로 보면 율사 출신이 많은 한나라당이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열린우리당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여당이 야당을 설득하는 ‘협상의 기술’을 발휘한 흔적도 찾기 어렵다. 여당의 의석이 과반수를 넘지 않는다면 정치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개혁의 취지를 협상이 뒷받침하지 못했다. 개혁에 동참하려면 하라는 식의 독선에 가까웠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크든 개혁법안 때문에 민생법안이 처리되지 못했다면 개혁의 의미는 그만큼 퇴색한 것이다. 박정현 기획탐사부장 jhpark@seoul.co.kr
  • 삼청교육대 死因조작 의혹도

    “몸에 새를 그려 놓은 문신이 있으면 새를 잡는다고, 호랑이 문신이 있으면 호랑이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몽둥이로 집중적인 구타를 당했다.” “한겨울 새벽에 연병장에 알몸 상태로 집합시켜 물 묻힌 빗자루로 물을 뿌린 뒤 움찔거릴 때마다 몽둥이 구타가 이어졌다.”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동료를 서로 세워놓고 나쁜 사람으로 평가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 목사)가 10일 밝힌 삼청교육대사건 조사결과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인권유린과 가혹행위가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태도불량자로 찍힌 입소자들은 낮뿐만 아니라 새벽 취침시간에도 1시간30분마다 강제로 일어나 가혹행위를 당해야 했다. 특히 여성들은 돌이 많은 연병장에서 머리를 땅에 박는 ‘원산폭격’을 하다가 정수리가 터진 경우가 많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계엄사령부는 ‘입소 직후 3∼5일간 공복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육체적인 반발과 저항력을 감소시키라.’는 교육계획을 하달했으며, 식당에는 ‘돼지보다 못하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고 소보다 못하면 소고기를 먹지 말자.’는 구호를 붙인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사위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 6만 755명 중 전과가 없는 경우가 35.9%에 달했다.”며 “불량배 소탕이라는 명분과 달리 다수의 억울한 피해자가 포함됐다.”고 밝혔다.또 입소자 중에는 중학생 17명을 포함해 학생이 980명이나 끼어 있었고, 여성들도 319명이나 끌려갔다고 밝혔다. 과거사위에 따르면,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상임위원장의 재가를 받아 집행된 삼청교육 기간 중 사망자는 총 54명으로 집계됐다. 조사결과 자살로 발표된 김정호씨의 경우 1980년 8월7일 폭행치사로 최초 보고됐으나 5일 뒤 보고서에는 자살로 변경되는 등 36명의 사인에 상당한 의혹이 있다고 과거사위는 말했다. 그러나 삼청교육 기간(1980년 8월4일∼1981년12월5일)에 숨진 54명 외에 추가 사망자는 없으며 실종자 대부분은 퇴소 후 가출 또는 사망했다고 과거사위는 설명했다. 삼청교육 피해자 단체가 주장하고 있는 한탄강변의 시체처리소각장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 결과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사위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 중 훈방·재판 조치된 경우를 제외한 3만 9742명 가운데 현재까지 4644명(11.6%)만이 보상신청을 했다고 밝혔다.신청이 저조한 이유는 피해자가 보상 실시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삼청교육 전력이 알려지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과거사위는 설명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군경, 6·25때 1만7716명 학살”

    군과 경찰이 6·25전쟁 당시 북한에 협조했거나 협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법절차 없이 1만 7700여명을 학살했다는 공식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14일 ‘보도연맹원 학살의혹’‘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등 사건의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청 과거사위는 내부 자료 등을 토대로 6·25 당시 민간인이 최소한 1만 7716명 학살됐으며 이 중 3593명 이상이 보도연맹 소속이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희생자는 좌익 경력이 있었지만 전향한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북이나 좌익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도 일부 포함됐다.”고 밝혔다. 보도연맹원 학살의혹 사건이란 6·25전쟁 중 군과 경찰, 우익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던 사람들을 집단학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말한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이승만 정부가 일제 때나 광복 직후 좌익활동을 하다 전향한 민간인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관변단체로 당시 회원 수는 6만 2000여명으로 추정된다.당시 단체학살 명령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이종수(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위원장은 “추가 조사결과에 따라 희생자 수가 더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70만명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78년 중앙정보부가 자체 조사한 ‘6·25 당시 처형자 명단’에는 2만 6330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79년 대규모 간첩이라고 발표됐던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은 자생적 사회주의 단체이긴 했지만 실제 북한과 연계는 없었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이는 과거 대법원 판결과 일치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직전인 79년 10월 발표된 남민전 사건은 당시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 노선에 따라 반국가활동을 벌인 대규모 도시게릴라 단체’로 규정됐다. 과거사위는 “기존 대법원 판결대로 남민전이 사회주의를 지향한 실존 조직이었음은 인정되지만 북한의 지령을 받고 활동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당시 북한과의 연계활동을 도모하다 미수에 그친 것으로 박정희 정권이 과장해 대규모 간첩단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정치권 ‘동북공정’ 비난

    여야는 동북공정을 통한 중국의 역사왜곡 기도에 대해 ‘또 다른 침략행위’‘민족 말살 기도’ 등 거친 표현까지 동원한 고강도 비난을 한목소리로 쏟아냈다. 특히 한나라당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이렇다 할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6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동북공정은 역사 후퇴와 동북아 미래의 먹장구름을 가져올 뿐”이라며 “중국 정부에 역사 왜곡 중단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이어 “역사 왜곡은 또 다른 침략행위로 역사 왜곡과 공동 변영은 양립할 수 없으며, 어떤 희망도 만들 수 없다.”며 “(동북공정을 지속하는)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 왜곡을 규탄하는 것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행위”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강도높게 비난한 뒤 “노무현 정부가 자주를 주장하는 정부인데 왜 중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 하느냐.”면서 “과거사진상규명에 수 천억원씩 낭비하면서 민족 역사 훼손에는 왜 미리 대비하지 않느냐.”며 정부·여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진보·보수단체 ‘KAL폭파’ 엇갈린 반응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진실위)’의 1일 중간 조사결과에 대해 진보단체 및 유가족들과 보수단체들의 반응은 서로 엇갈렸다. KAL 858기 가족회와 천주교 인권위 등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기관이 확실한 증거도 찾지 못하고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정황과 추측만으로 결과를 내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밝혔다. 또 정부의 정략적 사건 이용이 밝혀진 만큼 정부차원의 사과를 다시 한번 요구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자유주의 연대 등 보수단체들은 중간 보고의 성격인 이번 발표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정치적 이용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자유주의 연대 김해준 정책실장은 “중간결과 발표에 큰 의미를 두기는 힘들지만 불행했던 사건에 대해 실체가 어느정도 드러난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불행했던 과거가 재발하지 않도록 미래지향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정치적인 해석보다는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1987년 KAL858기 폭파 사건 당시 김현희씨 등을 조사했던 수사팀 검사들은 이번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 발표로 검찰 수사가 사실이었음이 재확인됐다고 평가했다.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안강민 변호사는 “KAL기 사건은 북한의 테러라는 검찰 발표 내용과 국정원 과거사위의 발표와 다르지 않다.”면서 “검찰 수사가 틀리지 않았다는게 다시 확인됐다.”고 말했다. 홍희경 김준석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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