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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당 대선후보 인물 검증] 2002년 대선경선 자금수수 의혹 침묵

    대선철이 되면 각 후보의 과거 행적, 가족사까지 낱낱이 공개돼 도마에 오른다. 정동영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본지는 정 후보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정 후보 측의 답변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공소권 없음´ 수사 종결 2004년 1월, 새천년민주당은 정 후보가 2002년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불법자금을 받았고,2000년 최고위원 경선에서 권노갑 고문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았다며 고발장을 접수했다. 대검 중수부는 고발 사건을 중수1과에 배당, 수사에 착수했고 원칙에 따른 수사를 천명했다. 당시 김근태 고문의 불법경선자금 수수 양심고백과 권노갑 고문이 정 후보에게 돈을 건넸다는 폭로가 잇따랐지만, 정 후보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수사를 진행하는 중 정 후보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검찰은 1년 여가 지난 2005년 4월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정 후보의 측근 중 일부만 경선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한 민주당 인사는 “당시 검찰은 정 후보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 권 고문을 불러 참고인 진술 한번 듣지 않았다.”고 전했다.●선친 일제강점하 이력 논란 정 후보의 선친인 정진철(1924∼1969·실제 출생 1921년)씨는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전북 순창군 구림면의 금융조합 서기로 근무했다. 정 후보 부친의 일제강점기 행적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80대의 순창읍 토박이 할아버지는 “금융조합이 곡식 낱알까지 다 걷어가 수원, 김제평야까지 가서 양식을 구해와야 했다.”면서 “당시 금융조합에서 일한 조선인은 간부, 말단직 할 것 없이 다 친일파였다.”고 말했다. 정 후보 측의 직접적인 답변은 듣지 못했으나 정 후보 측은 몇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친의 경력은 사실이나 친일 논란에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금융조합은 일제 말기 전시체제에서 자금 동원 역할을 맡았다.”면서 “현금뿐 아니라 농작물 등 현물까지 강제로 저축하게 했고, 쌀 한 말 값에 해당되는 1원짜리 ‘꼬마 채권’ 등을 발행해 농민들에게 구매를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정 후보의 부친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연좌제 국가도 아닌데 부친의 일제감점하 행적으로 아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정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부친이 일제시대 검찰 서기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연좌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역사 인식의 관점을 짚어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친일 의혹을 명백히 규명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정 후보의 부친은 광복 직후 면장을 지냈고, 한국전쟁을 전후해 ‘대한청년단(한청)’의 구림면 단장으로 활동했다. 한청은 1949년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조직한 우익청년단체로, 활동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관계자는 “한청이 좌익혐의자라고 해서 민간인을 마음대로 연행하거나 불법적으로 학살에 가담한 행위들이 조사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구림면 토박이 전영모(75)씨는 “전쟁시 한청은 군인들이 빨치산인지 양민인지도 모르고 다 죽이려고 하는 걸 막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특별취재팀
  • [인사]

    ■ 국무조정실 ◇부이사관 승진 △규제개혁1심의관실 규제총괄과장 金忠浩△사회정책심의관실 사회총괄〃 林燦佑△조사심의관실 총괄기획〃 沈和石◇직무 대리△노동심의관실 고용정책과장 申仁燮△일반행정심의관실 법무정책팀장 李性春■ 재정경제부 △부총리 비서실장 육동한△대통령 비서실(정부혁신지방분권위 비서관) 우주하■ 행정자치부 ◇전보 △부산광역시 행정부시장 安準泰△대전광역시 〃 朴贊佑△충청북도 행정부지사 李鍾培◇승진△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具本忠△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柳金烈 ■ 국회예산정책처 ◇임명 △예산분석실 산업예산분석팀 예산분석관 田鏞洙△〃 사회예산분석팀 〃 金奉朱■ 병무청 ◇전보 △사회복무정책본부장 張甲洙◇팀장급 전보△운영지원팀장 鄭石振△정책홍보본부 혁신성과〃 朴熙寬△〃 재정기획〃 姜相鉉△동원소집본부 병적관리〃 崔聖元△사회복무정책본부 사회복무정책〃 崔榮來△〃 사회복무교육〃 趙福衍△〃 사회복무관리〃 李聖秀△병무민원상담소장 宋河善△부산지방병무청 징병관 金榮哲△대구경북〃 〃 李相勳△인천경기〃 〃 鄭利植△광주전남〃 〃 鄭瓚浩■ 공정거래위원회 △시장분석본부장 韓鐵洙■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환경재해연구부장 박성원△지반안전〃 선우춘△환경재해연구실장 김재곤△지반탐사〃 조성준■ 중앙일보 △미주본사 손병수△편집국 경제부문 에디터 심상복△〃 국제부문 〃 김진국■ 건국대병원 △병원장 李弘基■ 가천의대 길병원 △진료부원장 이 언△기획〃 박국양△진료부장(심사평가부장 겸직) 김주현△연구〃 차흥억△교육〃 박철완■ 대한생명 ◇임원 △상품고객실장 李昌潤△해외사업담당 李秉祐 ◇지역본부장 △강남 李秀均△부산 金海龍 ◇팀장 △경영관리 尹南均 ◇RM △분당RO 崔聖淳△강동〃 丁淳哲△강서〃 白宗憲△부산〃 鄭斗煥■ 동부화재 ◇사업본부장(상무)△지방 金永權△신채널 具本起 ◇사업본부 마케팅팀장 △동서울 朴起暎 ◇사업본부 교육팀장 △강북 陶相煜△지방 郭孝奇 ◇지점장 △서부 朴淳基△진주 李濬喆△의정부 南錫元△남부 金鍾年△강동 李漢雨△안산 崔鎭東■ 교보증권 ◇부서장 승진△파생상품운용팀장 이철진△송파지점장 김성환 ◇부장 승진△상계지점장 조석민 ■ 푸르덴셜투자증권 ◇지점장 전보 △가락 鄭昺浩△구반포 李殷鍾△대치 劉永雄△명일 金倖仙△반포 蔡東順△방배 趙周赫△분당 林南秀△상계 金俊鎬△수원 李慶範△안양 咸景敦△압구정 裵基石△올림픽 李天孝△이매 申花月△이수역 李鎔晟■ 대신증권 △전무 梁洪碩 ◇이사대우 승진 △홍보실 趙炅淳△총무부 金송규△SF부 劉光祚△법인영업부 朴天元△상품개발실 文南植△광명지점 金熙正△오산〃 金昌彬△창원〃 安淳廷△서신동〃 林秉煥◇지점장 전보 △천호동지점 羅民昊△서대문〃 朴永福△뚝섬〃 朴炯根△압구정〃 徐尙煜△잠실〃 朴相羽△도곡역점〃 林玟秀△천안〃 金京南△서부법인사업부 李東奎 ◇영업점부장 △남대문지점 尹在乭△신촌〃 鄭柄周△상계동〃 林夏新△강북〃 吳圭兌△잠실〃 姜大圭△주엽〃 陳泳秀△평촌〃 朴起灝△영통〃 崔在爀△부전동〃 朴哲弘△울산〃 李昇凡△동대구〃 李在相△복현〃 趙南鶴△무거동〃 河在喆△해운대〃 金鎭龍 △상무 李炯澈■ 대한지적공사 ◇신규 임명 △사업이사 郭正完◇전보△경기도본부장 宋聖鎬
  • “조봉암 사건은 정치 탄압”

    “조봉암 사건은 정치 탄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7일 ‘진보당 조봉암 사건’에 대해 “이승만 정권이 저질렀던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에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18일 제54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이승만 정권은 위협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한 조봉암을 제거하고 그가 이끄는 진보당이 1958년 총선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려 했다.”고 사건의 배경을 규정했다. 조봉암은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평화통일과 사회민주주의적 공약으로 200여만표 이상을 득표했던 정치인으로 같은 해 진보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1958년 정부는 진보당의 정당 등록을 취소해 버렸고 조봉암은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돼 1959년 사형당했다. 진실화해위는 초동수사를 맡았던 특무대에 대해서는 “민간인에 대해 수사권이 없는 기관이었기 때문에 절차적 불법성이 존재한다.”면서 “검찰도 아무런 증거도 없이 공소 사실도 특정하지 못한 채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들에 대해 국가변란 혐의로 기소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진실규명 결정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국가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총체적으로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이어 “조봉암은 일제 시기 독립운동을 하다 복역했음에도 사형판결로 인해 독립유공자 인정을 못받았다.”면서 “국가는 조봉암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권고를 덧붙였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26년만이지만 진실 밝혀져 기뻐”

    “26년만이지만 진실 밝혀져 기뻐”

    “26년 만입니다. 늦게라도 진실이 밝혀져서 기쁩니다.” 20일 신상한(51) 한국산업은행 윤리준법실장은 밝게 웃었다. 이날 오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제23·24회 사법시험 면접탈락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결정(18일)을 발표한 직후였다. ‘사법시험 면접탈락 사건’은 제23회(1981)와 24회(1982) 사법시험 응시자 중시국 관련 시위전력이 있는 신 실장 등 10명의 응시자 중 안기부가 ‘국가관·사명감 등 정신자세에 흠결이 있다.’는 이유로 2회 연속 면접에서 탈락시킨 사건이다. 당시 신 실장은 서울법대 75학번이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초기에 참여한 반독재투쟁이 문제가 돼 수차례 구류를 살았고, 학교에서도 정학처분을 받았다. 사법시험을, 그것도 3차 면접에서 연이어 불합격한 까닭에 대해 신 실장은 “물증을 대긴 어려웠지만 떨어진 사람 면면을 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사법시험 면접탈락 대상자’ 명단은 안기부 방침을 전달받은 총무처장관이 2차 시험 합격자의 소속대학 학적부와 학교장 의견서 등을 토대로 작성했고, 면접위원들에게 시위 전력자들을 일괄 불합격시킬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연이은 불합격에 상심한 신 실장은 더이상 시험보길 포기하고 군대에 입대했다. 신 실장은 “전두환 정권 하에서 시험 합격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면서 “면접을 봤던 교수들도 시위 전력 때문이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4명은 다시 시험(84년 3명,86년 1명 합격)을 봐서 법조인이 됐지만, 신 실장 등 6명은 다른 길을 택했다. 신 실장 외에도 정진섭 한나라당 의원, 박연재 KBS 목포방송국장,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 조일래 한국은행 법규실장, 황인구 SK가스 석유개발팀장 등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진실규명을 요청하면서 경제적 보상을 바란 것은 아니다.”면서도 “국가 권력 남용으로 발생한 일인 만큼 불합격 처분 취소와 사법연수원 입소 권고 결정이 내려진 것은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진실규명 결정 발표와 함께 피해자들에게 불합격 처분 취소 및 사법연수원 입소기회를 부여할 것을 국가에 권고했다. 신 실장은 “국가가 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이더라도 경제적 문제 등으로 사법연수원에 입소할지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활동 후 고향에서 법조인 생활을 하고 싶다는 정진섭 의원과 “제자들 보기 쑥스럽다.”며 입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한인섭 교수를 제외하면, 신 실장을 포함한 4명은 국가가 권고를 이행해 오랜만에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대전형무소사건 유해발굴

    한국전쟁 전후 최대 규모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으로 알려진 ‘대전형무소사건’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진실규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층층이 묻힌 유골 매장형태로 볼 때 집단희생 정황이 뚜렷하단 분석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9일 “지난 6월말부터 진행한 ‘대전형무소사건’ 유해발굴조사 결과, 현재까지 모두 4곳의 매장추정지에서 총 35구 이상(추정치)의 유골과 명찰 및 신발 등의 유품을 발견했다.”며 발굴현장을 공개했다. 대전형무소사건은 1950년 7월초, 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국군과 경찰이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인근 지역 보도연맹원들을 집단학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재심 결정

    지난 1961년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이 북한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군사정권에 의해 처형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재심 결정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은 간첩혐의자로부터 공작금을 받아 민족일보를 창간하고 북한의 활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은 조 사장의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고 27일 밝혔다. 같은 사건에 연루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양모씨가 청구한 재심도 받아들여졌다. 이들의 재심은 형사합의22부(김용석 부장판사)가 맡는다. 조 사장의 동생 용준씨는 지난해 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 사장에 대한 사형집행이 위법했다는 결정을 내린 뒤 올해 4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당시 용준씨의 변호사는 “조 사장은 주요 간부가 아니었음이 명백하고 수사기관이 조 사장을 영장 없이 66일간 불법 구금한 만큼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며 재심 청구 이유를 밝혔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정수장학회 ‘이사진 교체 검토’ 법적근거는

    서울시교육청의 정수장학회 이사진 취임 취소와 개명 논의는 정부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의 권고 사항을 적극 이행하기로 결정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5일 국무회의에서 진실화해위 권고를 법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국무조정실은 이를 이행할 처리단을 조만간 설치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이에 따라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의 원상회복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진실화해위는 5·16쿠데타 이후 고 김지태씨가 국가 강요에 의해 부일장학회를 헌납했다고 결정했다. 부일장학회는 5·16장학회를 거쳐 정수장학회로 이어졌다. 김씨 유족은 지난달 16일 정수장학회의 이사진을 교체하고 김씨의 아호인 자명장학회로 개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시교육청은 “법률 검토가 끝나면 공익법인의 이사 취임 취소권자인 관할 교육장에게 넘겨 최종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교육인적자원부 등은 정수장학회의 설립 허가를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사법부의 판단이 없으면 곤란하다고 결론졌다. 이에 이사 취임 승인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법인을 설립하려면 설립자가 일정한 재산을 출연해야 하는데(민법 제43조) 정수장학회는 1962년 설립 당시 국가도, 부일장학회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내놓지 않아 설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이사회에는 설립자나 그 친인척이 포함되는데(공익법인 설립·운영법 제5조) 정수장학회의 이사진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지도·감독기관인 시교육청이 법률을 위반한 정수장학회에 시정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이사의 취임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공익법인 설립·운영법 제14조)고 유족은 주장했다. 지난 1월 성동교육청은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 공익법인 설립·운영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고 육영수 여사가 설립한 육영재단의 이사 전원에 대해 이사 취임 승인을 취소했었다. 특별취재팀
  • 청원 분터골 유해 발굴·공개

    1950년 7월 충북 청원군 분터골에서 집단학살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의 유해와 유품이 8일 발굴·공개됐다. 이번 발굴 유해 70여구는 약 30여m에 걸쳐 열을 지어 층층이 쌓인 채로 발견됐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수십여점의 탄두와 탄피가 함께 발견돼 당시 집단희생 정황을 선명하게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는 이날 분터골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개최했다. 청원 분터골 사건은 1950년 7월4일부터 11일까지 청주경찰서와 청주교도소 등에 소집, 구금돼 있던 청주시·청원군 관내 보도연맹원 200여명이 군과 경찰에 의해 고은리 분터골 등에서 집단 희생된 사건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6·25 전후 좌익 등 민간인 학살도 규명”

    북한군과 좌익세력 등 6·25전쟁 전후 적대세력에 의한 집단희생사건에 대해 첫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양평적대세력사건’과 ‘주문진지역 양봉열 외 4인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20일 밝혔다.‘양평적대세력사건’은 1950년 9월26일에서 30일 사이 후퇴하던 인민군과 정치보위부 내무서원에 의해 양평군 주민 600여명이 집단희생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희생자들은 주로 우익단체원이나 공무원 및 부농 등으로, 국군과 유엔군에 협조했다고 판단한 적대세력이 이들을 양평면 한강변 백사장으로 끌고 가 집단총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희생자들 중 대한청년단원이 31명, 공무원 12명, 국민회와 대한국민당원이 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또 50년 4월5일 양봉열씨 등 대한청년단원 4명이 인민군에게 의해 산채로 매장당한 ‘주문진 지역 양봉열 외 4인의 희생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공안사건 피해자 재심 법무부, 법률지원키로

    변호사 선임 비용이 없어 재심 청구에 어려움을 호소(서울신문 7월12일자 1면)해온 ‘차풍길 간첩조작의혹사건’ 피해자 차풍길씨 등 과거 공안사건의 억울한 피해자들이 법무부의 재심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규명건 중 재심 권고사안에 대해 재심청구 및 진행 과정에 필요한 법률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19일 밝혔다. 법무부는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진실화해위 공문을 6월29일과 7월12일 두 차례에 걸쳐 받았다.”면서 “내용을 밝힐 단계는 아니나 공문 수령 직후부터 구체적인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청와대는 진실화해위의 권고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서울신문 보도에 따라 대통령 훈령 제정을 통한 ‘권고사항 처리단’ 가동을 12일 결정한 바 있다. 법무부의 재심지원 방안은 크게 3가지다. 법무부는 ▲7월초에 재심지원 TF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고 ▲대검찰청에 진실화해위 결정내용을 통보해 재심에 필요한 법률지원 요청했으며 ▲법률지원구조공단에 협조공문 발송했다고 밝혔다.법무부 관계자는 “변호인을 선임할 돈이 없어 재심청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들이 재심 과정에서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검찰이 나서서 재심을 청구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사의 재심청구 권한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제424조(재심청구권자)의 입법취지와 달라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다.해당 형소법 조항은 진범이 따로 있는 사건에서 허위자백으로 확정판결을 받은 가짜 범인의 의사에 반해서 재심을 청구하고 진범을 기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분명히 할 점은 법무부의 재심지원은 검찰의 과거반성 차원임과 동시에 대승적 차원의 지원”이라고 강조,“재심은 실체적 진실규명을 다시 한다는 의미로, 청구인들이 죄를 지었으면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고 죄가 없다면 무죄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배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이에 대해 “법은 입법취지에 맞아야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평생 억울한 누명으로 고초를 겪어온 피해자들을 생각해서라도 검찰의 적극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다음주쯤 구체적인 지원내용을 공개할 방침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여순사건 유해’ 12구 발굴

    1948년 ‘구례 봉성산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 12구가량이 발굴됨에 따라 여순사건 유족들이 주장해 온 피해 내용이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유해 상태가 좋지 않아 정확한 유해 수는 최종 감식이 끝난 뒤 확인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한양대 발굴팀은 16일 오후 전남 구례군청 상황실과 구례군 봉성산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지난달 18일부터 봉성산 일대의 매장 추정지를 발굴한 결과 여순사건 때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 유해 12구가량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업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집단희생사건에 대해 국가가 예산을 책정해 실시한 첫 발굴사업이다. 진실화해위는 “일부 유해의 두개골 부위 등에서 카빈 소총 탄두 19개와 M1소총 탄두 1개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볼 때 희생자들이 당시 군·경의 총기에 의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진실화해위는 또한 “발굴 현장에서 탄피가 발견되지 않은 점은 희생자들이 구례 경찰서 인근에서 사살된 뒤 봉성산으로 옮겨져 매장됐다는 유족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는 발굴 유해들을 충북대학교 유해감식센터로 옮겨 정밀 감식작업을 벌이고, 필요할 경우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DNA 검사로 신원도 확인할 예정이다. 김동춘 상임위원은 “이번 유해발굴의 가장 큰 성과는 유족들의 증언을 사실로 확인한 것”이라면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은 유족 증언과 추가 조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례 봉성산 여순사건’은 여순사건 연루자로 지목돼 구례경찰서에 연행·유치돼 있던 구례군 민간인 70여명이 1948년 11월19일 경찰에 의해 총살, 봉성산 공동묘지에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진실화해위 재심 전담 ‘권고 처리단’ 새달 가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가에 권고한 재심청구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서울신문 7월12일자 1면 보도)에 따라 청와대는 권고사항을 실질적으로 이행·관리하기 위한 ‘권고사항 처리단’을 내달 중순부터 가동키로 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진실위의 권고 내용이 추상적이고 대상이 확정돼 있지 않아 곧바로 부서가 정해져 집행에 들어가지 못하는 체계상의 문제가 있다.”면서 “국무조정실에서 권고이행에 대한 법상 미비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권고사항 처리단을 설치, 운영키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권고사항 처리단 설치 근거를 이달 중순 대통령 훈령으로 마련한 뒤 내달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로 했다. 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5일 국무회의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2005년까지 이사장으로 있던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의 원소유주 반환을 진실위에서 권고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진실위의 전반적인 권고 사항과 향후 권고이행 계획을 정리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진실화해위 재심 권고 단 한건도 이행안돼

    진실화해위 재심 권고 단 한건도 이행안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진실규명 결정사건과 관련해 국가에 권고한 재심청구 조치가 단 한 건도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가 피해자의 명예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음에 따라 피해자들은 스스로 빚을 내 변호사를 선임, 재심을 청구하는 등 속앓이를 하고 있다. 반면 정치적 국면과 맞물린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건은 정부가 적극적인 재산반환 작업에 나서고 있어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28일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을 시작으로 올 7월3일까지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사건은 총 27건. 진실화해위는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사과 및 화해조치와 아울러, 인권침해 사건 중 확정판결이 난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태영호 사건’ ‘이수근 간첩조작 사건’ 등 9건에 대해 재심청구를 통해 명예회복조치를 취할 것을 국가에 권고해 왔다. 그러나 서울신문이 관계기관과 9건의 재심청구 사건 피해 당사자 및 유족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첫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지고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가 재심청구한 사건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부일장학회(재심 건 아님) 재산환수 추진을 제외하면 권고조치 이행 자체가 전무하다. 재심 후 무죄판결을 받아야 가능한 손해배상소송도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올 4월10일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씨는 “진실규명이 됐으면 가해자인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 명예회복을 시켜 줘야 하는데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며 섭섭함을 표했다.‘차풍길 간첩조작의혹사건’ 피해자 차풍길씨도 “돈이 없어 변호사도 못 알아 보고 있다.”면서 “1982년 사건 당시 변호사 4명을 선임하느라 재산을 다 탕진하고 그때 진 빚이 아직 남아 있는데, 또 빚을 지게 생겼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형사소송법 제424조(재심청구권자)는 유죄선고를 받은 피해당사자 외에 검사에게 재심청구 권한을 주고 있다. 국가의 의지 여하에 따라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이 가능하지만, 검찰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갑배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검찰이 과거반성 차원에서 스스로 재심청구를 하면 피해자들이 훨씬 신속하게 무죄선고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면서 “결국 검찰은 재심에서 피해자와 법적 다툼을 벌이는 상황을 연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제34조(국가의 의무)도 국가에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법적·정치적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국가의 의무 이행을 강제할 권한은 없다. 반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얽혀 있는 ‘부일장학회 사건’에 대해서는 정부가 신속하게 대처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부일장학회 건이 진실규명(5월29일)된 지 6일만인 지난달 5일, 노무현 대통령의 재산반환 방안 마련 지시에 따라 현재 법무부가 구체적인 안을 짜고 있는 중이다. 권고조치 이행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에서 진실화해위 권고조치 대책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초보적인 자료검토 수준으로 구체안이 나온 것은 없다. 국무조정실 법무팀 내 ‘한일수교회담문서공개대책기획단’ 관계자는 “개별 권고조치마다 처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건과 권고조치를 유형화해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사회플러스] 진실화해위 ‘분터골 사건’ 개토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0일 오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현장인 충북 청원 남일면 분터골 현장에서 개토제를 개최하고 유해발굴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9일 밝혔다.‘분터골 사건’은 1950년 7월4일부터 11일까지 청주경찰서와 청주교도소 등에 소집·구금된 청주시·청원군 관내 200여명의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고은리 분터골, 피반령 고개, 가덕 공원묘지 등 청주와 미원간 국도변에서 집단희생된 사건이다.
  • [Metro&Local] 경산 코발트광산 유해발굴 시작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수천명이 집단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 경산시 평산동 폐 코발트광산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유골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진실화해위)와 경산 폐 코발트광산 유족, 시민단체 회원 등 350여명은 8일 오후 폐 코발트 광산 현장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유골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발굴작업은 당시 학살을 목격한 주민들의 증언에 따라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5곳 가운데 3곳(수직굴 1곳, 수평굴 2곳)에서 실시된다. 경산 폐 코발트 광산은 1950년 6월 말부터 같은해 9월 초까지 대구·경북지역 국민보도연맹원과 대구형무소 재소자 등 3500여명이 국군에 의해 집단 희생된 곳으로 추정된다.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보도연맹원 학살은 이승만 명령 따른 것”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 학살이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명령에 따른 것이란 증언이 가해자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나왔다. 또 보도연맹원에 대한 첫 학살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50년 7월1일 경기도 이천에서가 아니라 6월28일 강원도 횡성에서 이뤄졌고, 집단학살에 헌병대가 깊숙이 개입됐다는 사실도 최초로 확인됐다.●국가 차원 학살… 헌병대 깊숙이 개입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위원회’가 4일 충북도청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전쟁 당시 6사단 헌병대 일등상사였던 김만식(81·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씨는 보도연맹원 학살의 최고명령권자가 이 전 대통령이었음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김씨는 “전쟁 직후 대통령 명령을 받은 육군참모총장이 각군 지휘관에게 무전으로 보도연맹원 학살지시를 내렸다.”면서 “6사단 헌병대에서도 대통령 명령이라며 헌병대장이 부대 간부들에게 내용을 구두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명령 요지는 ‘극렬분자 보도연맹원들을 경찰에서 인수받아 즉결 처분하라.’였다.”고 전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은 “의혹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이 전 대통령의 학살 명령 사실이 가해자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증언”이라면서 “이는 국가 차원의 치밀한 계획 하에 학살이 이뤄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전쟁 사흘만에 횡성서 150여명 사살 김씨는 또한 전쟁 발발 3일 만인 50년 6월28일 보도연맹원에 대한 첫 학살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6월28일 춘천과 홍천지역 보도연맹원 150여명을 횡성으로 이송시켜 사살했다.”면서 “당시 현장 지휘 책임자로서 사살 결과를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김 상임위원도 “횡성에 집단매장지가 있다는 피해자들의 주장과 일치해 사실로 확인될 경우 7월1일로 알려진 기존의 연구결과를 수정해야 할 것”이라며 증언을 뒷받침했다. 김씨는 “6사단 헌병대와 19연대 헌병대는 강원도 원주, 충청도 충주·음성·오창, 경북 영주·상주 등지로 내려가며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했다.”면서 “원주와 영주에서는 나도 직접 사살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는 피해자 증언에만 의존해오던 헌병대의 학살 개입 의혹이 가해자에 의해 사실로 입증된 것으로, 보도연맹사건 진실규명 작업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 상임위원은 “가해자 증언확보의 어려움으로 보도연맹사건은 위원회의 직권조사에도 불구하고 한 건의 진실규명도 하지 못했다.”면서 “김씨의 증언은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조만간 김씨에게 협조를 얻어 참고인 조사를 할 방침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Local] 함평 학살 양민 ‘명예 회복’

    1950년 11월 한국전쟁 때 전남 함평에서 학살당한 양민 258명(부상자 9명 포함)의 명예회복이 이뤄진다.‘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최근 함평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공식 사과와 위령사업비를 지원받는다. 또 명예회복, 호적 정정도 가능하다. 유족회는 21일 월야고등학교 강당에서 영령들을 위로하는 고유제(告由祭)를 연다. 과거사위는 “함평 11사단의 양민학살은 반인륜적이고 위법 행위”라고 결론지었다. 유족회 노병량(66·월야면) 회장은 “이제서야 빨치산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이 편안한 안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1980년 8월21일, 석달윤(76)씨는 신군부가 장악한 당시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남산 대공분실 168호에서 47일간 고문을 당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고종 10촌 형님 박양민씨 탓이었다. 석씨가 간첩으로 남파된 박씨에게 전남 진도 해안 경비상황을 보고했다며 중정은 자백을 강요했다. 남파공작원 오모씨의 “박씨 간첩활동을 북에서 들은 바 있다.”는 막연한 진술이 근거였다. 수사관들의 고문은 가혹했다. 발로 배를 차고, 머리를 욕조에 담그고, 송곳으로 하반신 곳곳을 찌르고…. 잠은 안 재우면서 잠깨라고 볼펜 심지를 성기에 집어넣고…. 당시 중정 조사실은 피범벅이었다고 한다. 석씨는 결국 “내가 형님의 간첩활동을 도운 게 맞다.”고 자백했고,1981년 1월 안기부는 “고정간첩 15명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47차 전원위원회에서 1980년 발생한 ‘석달윤 등 간첩 조작의혹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진실위 “반인권적 사건… 재심조치를” 진실화해위는 “장기간 불법구금 및 강압적 상태에서 자백을 받아 간첩으로 조작하고, 사형 등 중형으로 처벌한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 사건”이라면서 “국가는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 및 재심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27년 만의 진실규명 결정이다. 석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떳떳하므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짓으로라도 자백하지 않았으면 난 아마 지금 땅속에 있을 것”이라면서 “일주일만 그런 고문을 받으면 김일성이라도 만났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18년 복역… 지금도 보안관찰 대상 석씨는 무기수로 징역 18년을 살았다. 함께 누명이 벗겨진 박씨의 외조카 김정인씨는 이미 1985년 10월31일 사형당했다. ‘간첩’의 처자식은 생계가 끊겨 두 달 동안 고구마로 연명했고, 고향 진도에서 살지 못해 내쫓기듯 이사했다. 1998년 8월15일 가석방된 석씨는 여전히 공안당국의 보안관찰 대상이고, 고문으로 굽은 허리는 지금도 하루 턱걸이 70개를 해야 펴진다고 한다. 진실화해위 결정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 것에 불과하다. 석씨의 ‘법적’ 간첩혐의는 바뀐 게 없다. 석씨는 “당연히 재심 청구한다. 백번 천번이라도 청구해서 무죄를 인정받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도소에서 배운 서예솜씨로 석씨는 국전에 수차례 입선했다. 그는 안산에서 통일운동가와 서예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1949년 문경 석달사건서 살아남은 채의진씨

    “사건 발생 57년 6개월 3일 만에 진상규명이 됐습니다. 덩실덩실 춤을 춰도 이 기쁨을 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문경 석달사건 생존자 채의진(72)씨의 떨리는 목소리는 크고 높았다.“지난 세월 가슴에 쌓인 한이 비로소 씻겨나갔다.”고 했고,“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통곡소리로부터 조금은 놓여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진실화해위 “반인륜적 집단학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는 29일 “‘문경 석달 집단희생사건’에 대해 26일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경 석달사건은 19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군 석달마을에서 2사단 소속 국군 70여명이 마을 주민 86명을 집단 총살한 사건이다. 주민들이 ‘공비’에게 음식을 줬다는 ‘입증되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사망자 중 10세 이하 어린이만 22명이었다. 진실화해위는 “석달사건은 국군이 비무장 민간인인 노약자나 부녀자를 아무런 확인과정 없이 무자비하게 총살한 반인륜적인 집단학살”이라며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사과 ▲부상자들에 대한 의료비 및 생계비 지원 ▲유족들의 지속적 위령제 봉행을 위한 재정적·제도적 지원 등을 권고했다. ●형·사촌동생 시신에 깔려 살아 진실규명 결정엔 채의진씨의 평생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 사건 당시 13살이었던 채씨는 형과 사촌동생의 시신에 깔리는 바람에 살아남았다. 석달사건을 알려내려고 21년간의 교사생활을 그만뒀고,‘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피해자 전국유족회’를 만들어 공론화시켰다. 미국을 오가며 관련 비밀문서를 찾아 공개하기도 했다. 채씨는 “14대 국회 때부터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모르쇠로 일관해왔다.”면서 “오죽하면 청와대 앞에서 분신자살할 생각까지 했겠나.”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이제라도 국가를 믿고 싶다” 채씨는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것도 통탄할 노릇이지만, 사망원인을 ‘공비에 의한 총살’로 호적에 기재해 진실을 왜곡한 정권들의 행태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회고했다. 채씨는 “이제라도 국가를 믿고 싶다.”면서 “국가는 피해자 배상과 위령사업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석달사건에 관한 개별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배상 규정을 명시하지 않는 이상 현행법으로 피해자 배상은 불가능하다. 채씨는 “2005년 경북 도의원 56명 전원의 서명으로 배상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17대 국회에서 통과되긴 힘들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사회플러스] 국가차원 첫 민간인 유해발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7일 전남 구례군 봉성산 공동묘지를 시작으로 올해 안에 충북 청원군 분터볼, 경북 경산군 코발트 광산, 대전 동구 낭월동 및 산내 골령골 일대 등 4곳에 대한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하기로 의결했다고 26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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