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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화성탐사

    미국의 화성탐사 로봇 ‘스피릿’의 화성 안착 소식에 온 미국이 열광하고 있다.지난 1997년 화성탐사선 ‘패스 파인더’가 착륙시킨 미니 로봇 ‘소저너’에게 보냈던 환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처음도 아닌 일에 웬 호들갑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사정을 짚어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먼저 ‘스피릿’의 착륙은 원하는 지점을 꼭 집어 성공시킨 정밀 우주과학기술의 개가이다.알려진 대로 화성탐사의 목적은 우주에서의 생명의 존재여부에 단서를 제공할 물의 흔적 찾기이다.미국의 과학자들은 이미 화성의 극지방에서 얼음의 존재를 추정해냈고 방대한 양의 물이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거대협곡도 발견했다.문제는 물이 있었거나 있다는 증거의 확보.그렇기 때문에 ‘스피릿’과 그의 쌍동이 로봇 ‘오퍼튜니티’는 모두 물과 관련된 곳들을 겨냥했다.지구에서 1억 7050만㎞ 떨어진 목표지점에 불과 9.6㎞의 오차로 착륙한 스피릿의 성공은 한 미국 과학자의 표현처럼 로스앤젤레스에서 쳐올린 골프공이 뉴욕에 있는 그린으로 한번에 빨려들어간 ‘홀인원’이나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미국은 이번 성공을 통해 화성탐사 대열에서 유수한 경쟁국들을 확실히 따돌릴 수 있게 됐다.1998년에 발사된 일본의 화성탐사선 ‘노조미’는 지난해 12월 초 화성궤도 진입에 실패,우주 미아 신세가 됐고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을 약속했던 영국의 ‘비글 2호’ 역시 착륙에 실패,유럽인들을 한숨짓게 했다.반면 일찌감치 러시아를 제쳤던 미국은 ‘스피릿’의 성공으로 유럽우주기구(ESA)의 ‘마르스 익스프레스’(화성 특급)궤도선을 제외하고는 화성탐사를 독점할 판이다.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라크전과 그에 이은 ‘테러공포정치’로 사기가 떨어진 미국인들에게 이번 성공이 커다란 위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장도 “전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며 흐뭇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향후 화성탐사의 과제는 화성의 물질을 지구로 실어오는 일과 화성에 인간이 착륙하는 일이다.미국은 그 구체적 계획을 갖고 있다.부시대통령은 달 탐사계획을 띄우리라는 소문도있다.견제세력 없는 유일 강대국 미국의 모습이 우주에서도 재연될 기세이다.남의 잔칫집 구경이 즐거울 수만 없는 이유이다. 신연숙 논설위원
  • [씨줄날줄] 장군님 사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막바지에 엉뚱한 일이 또 터졌다. 북한 응원단이 28일 오후 경북 예천군 예천읍 청복리 34번 국도 진입로 부근에서 갑자기 차를 세우고 예천지역 시민단체들이 내건 ‘북녘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 등의 글귀가 씌인 플래카드 4개를 멋대로 거둬가 버렸다.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가리키며 (한쪽이 장승에 매달린 플래카드를 보면서) “허수아비에 장군님의 사진이 걸려 있다니.”,“장군님 사진이 이렇게 낮게 걸려 있다니.”,“장군님 사진이 비를 맞잖아요.”라며 마치 영정을 모시듯 플래카드를 들고 갔다는 것이다.사진 취재기자의 카메라는 빼앗았다가 밤에 돌려 주었지만 플래카드는 29일 낮까지 예천 주민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북한 선수단과 기자단에 이어 이번엔 응원단이 ‘파문’를 일으킨 셈이다.선수단과 기자단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녀 응원단의 고운 웃음에 홀려 있던 사람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플래카드를 철거했다는 소식에 눈이 휘둥그래졌다.허참 어떻게이해해야 좋을까. 평양 상주 특파원을 지낸 사회주의권 출신 기자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TV를 보면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해 발을 동동 구르며 열광하는데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돌아온 대답이 “TV카메라가 지나가면 그들도 팔 내리고 조용해져요.”라는 것이다.응원단의 행동도 ‘보여주기 위한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심하게 말할 수도 있다.공포정치는 개인숭배를 불러일으킨다.공포가 숭배를 가져온다는 게 괴이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탈출구가 없는 공포 앞에서 숭배를 택한다.스탈린 시절의 공포정치와 개인숭배도 그러한 예다.그러나 ‘공포정치와 개인숭배론’ 해석에 대해 북한쪽은 펄쩍 뛸 게다.장군님을 정말로 존경한다고 말이다. 지난 5년여 동안 북한에 햇볕을 쪼이면서 열린 사회로 나아가길 기대했던 마음에는 응원단의 행동이 무척 당혹스럽다.‘오냐 오냐’하다가 수염 잡힌 할아버지 신세라고 개탄할 이들도 많을 터이다.언제쯤이나 미녀가 아니라도 좋으니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북한의 ‘보통응원단’을 볼 수 있을까. 강석진 논설위원
  • 후세인 작은아들 쿠사이 / 냉혹… ‘뱀’으로 통했던 제2인자

    이라크에서 쿠사이(37)는 ‘뱀’으로 통했다.과묵하지만 아버지 못지않게 잔인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형 우다이를 제치고 후계자에 등극한 그는 성격면에서 우다이와는 판이했다.방종한 행동으로 늘 구설을 몰고 다녔던 우다이에 비해 대중 앞에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으며 사생활도 비교적 깨끗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형제가 공포정치를 구사했다는 점에서 닮았다.바그다드 함락 이후 쿠사이에 관한 끔찍한 증언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그는 자신이 관할하던 감옥에서 넘쳐나는 수용자를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주기적으로 ‘감옥청소’라는 살인파티를 벌였다.수감자들을 닥치는 대로 고문하고 죽였다.때때로 쿠사이는 분쇄기나 전기톱까지 동원된 처형식을 직접 지켜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2인자 지위는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더욱 확고해졌다.전쟁 발발 전 이라크 지도부 회의에서 후세인의 옆자리에 그가 앉아 있는 모습이 TV를 통해 여러 차례 방영됐다.걸프전 이후 그는 시아파 반란을 무자비한 방법으로 성공적으로 진압하면서국정 운영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기 시작했다.반란자 색출을 명목으로 이라크 남부에 위치한 이른바 ‘아랍인의 늪’을 파괴하는 공사를 지휘,악명을 떨쳤다. 96년 형 우다이의 사고 이후부터 아버지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2000년 집권 바트당의 군사조직의 책임자에 오르면서 권력투쟁에서 우다이를 완전히 제꼈다.이라크전 당시 수도 바그다드와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 수비를 맡았고 이라크 최고 정예부대인 공화국수비대를 이끄는 등 요직을 두루 꿰차고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망명한 반체제 인사에 따르면 후세인의 최측근 인사 외에 오로지 쿠사이만이 후세인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었다.이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15) 하나를 두고 있는데 이번 공습으로 함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상숙기자 alex@
  • 이라크版 ‘킬링필드’/ 후세인 처형 반정부인사 1만5000여명 유해 발견

    이라크의 ‘킬링 필드’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후세인이 장기집권을 하는 과정에서 반정부 움직임을 보이는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전의 명분인 대량살상무기를 찾는 데 실패한 미·영 연합군이 집단매장지를 전쟁명분으로 삼으려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이라크 북부에서는 쿠르드족,남부에서는 시아파를 집단학살한 사담 후세인의 만행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큰 집단매장지는 13일 바그다드 남쪽 90㎞에 위치한 힐라에서 발견됐다. 이라크국민회의는 힐라의 집단매장지 4곳에서 1만 5000구의 유해가 발견됐다고 밝혔다.14일(현지시간) 현재 시신 3000구가 수습됐다. ●생매장 당한 시신도 다수 이곳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직후인 1991년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시아파들이 집단 학살된 곳으로 알려졌다.정치범 외에도 여성과 어린이의 시신도 발견되고 있다.현장에 도착한 정부 관리 아메르 슈마리는 일부는 생매장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곳 주민들은 학살 당시 트럭이 현장을 오가는것을 봤고 총살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그러나 이들도 학살자가 이렇게 많은 수에 달할지 예상하지 못했었다. 지난 10여년간 후세인의 공포정치하에서 소문만으로 떠돌던 이곳을 이라크국민회의가 근 일주일간 조사한 뒤 1만 5000구의 집단매장지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매장지 발견 소식에 그동안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던 이라크인들이 매장지로 몰려들어 시신확인 작업에 나서고 있다.인권단체들은 후세인의 전쟁범죄나 인종청소에 대한 증거 수집을 위해 미·영 연합군에 현장통제와 보존을 촉구하고 있다.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14일자 칼럼을 통해 후세인 정권의 대량학살 증거를 보존하기 위해 현장 보존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바그다드,바스라,무하메드 사크란 등에서도 집단매장지가 발견됐다.인권감시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후세인 통치하 20년간 이라크에서 약 20만명이 실종됐다고 밝히고 있어 앞으로도 집단매장지는 추가 발견될 전망이다. 종전 직후 바그다드 외곽 한 공동묘지에서는후세인 정권에 의해 살해된 정치범의 시신 1000구가 매장된 것이 발견됐다.이 공동묘지 관리인들에 따르면 시신들은 대부분 15∼30세의 젊은 남성과 여성들로 시신에는 모두 총살이나 교수형을 당한 흔적이 있었다.또 이들은 바그다드내에 이같은 비밀 매장지가 5곳이 더 있다고 증언했다. ●후환 두려워 그동안 쉬쉬 해 이라크 남부 바스라의 줌후리야사원에서는 시아파 교도들이 살해돼 암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무덤이 발견됐다.이 무덤은 99년 이 지역 시아파 지도자가 집권 바트당에 살해된 뒤 이에 반발하던 시아파의 젊은이들을 집단 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종전 뒤 약탈된 바트당 지역사무실에서 1000여명의 매장자 명단이 발견됐다. 또 북부 키르쿠크 인근에서는 2000기의 무덤이 아무런 표지없이 방치된 것이 발견됐다.현지 쿠르드족은 이 무덤들이 80년대 후세인 정권이 자행한 인종청소에서 학살당한 동료들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후세인 정권은 88년 화학무기를 사용해 쿠르드족 5000명을 학살하는 등 수만명의 쿠르드족을 학살한 바 있다. 전경하기자 lark3@
  • 책꽂이

    ●띠따런뚜어(박영국 지음,책읽는사람들 펴냄) 띠따런뚜어란 지대인다(地大人多),즉 땅이 넓고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이 말은 중국인들에겐 자부심과 긍지의 표현이지만,때론 자신들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기도 한다.저자는 배낭여행을 하듯 경쾌한 문체의 산문을 통해 중국과 중국인의 속살을 드러내 보인다.‘티에 판 허(철밥통)’‘심양조선족 대 연변조선족’‘춘지에(설날)’등 70편의 글이 실렸다.1만 2000원. ●밀실의 제국(김민웅 지음,한겨레신문사 펴냄) ‘전쟁국가’미국의 제국수호 메커니즘을 밝혔다.부시정권은 자본과 군사력의 극우적 동맹체제를 중심으로 미국판 파시즘 체제의 강화를 꾀하고 있다는 게 책의 입장.저자는 진보신학의 요람인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기독교 정치경제윤리학을 전공한 재미목사다.1만 2000원. ●습지와 환경(김귀곤 지음,아카데미서적 펴냄)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습지에 관한 연구서.습지자원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방법과 사례를 제시한다.2만 8000원. ●야생화 쉽게 찾기(송기엽·윤주복 지음,진선출판사 펴냄) 한라에서 백두까지 피어있는 들꽃의 모습을 1300여컷의 사진에 담은 야생화 도감.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식물에 대한 기초지식을 부록으로 실었다.3만 3000원. ●예술·심리치료 임상사례연구 방법론(로빈 히긴스 지음,김진아 옮김,학지사 펴냄) 다양한 예술치료 모델을 토대로 임상상황을 설명.1만원. ●리드베터,벤 호건 골프를 분석하다(데이비드 리드베터 지음,원형중 옮김,루비박스 펴냄) 스윙 천재 벤 호건의 풀스윙과 그립 자세 등을 분석해 쓴 골프교습서.저자는 어니 엘스·그렉 노먼·닉 프라이스·닉 팔도·톰 왓슨 등 유명 골퍼들을 길러낸 현대 골프교습 혁신가.2만 4900원. ●루브르를 훔친 기사(필립 솔레르스 지음,박수현 옮김,푸른미디어 펴냄) 쉰 살이 넘어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동반하고 훗날 예술장관까지 된 화가이자 판화가인 비방 드농.그는 루이 15·16세,프랑스 대혁명,공포정치,집정정부,제정,왕정복고 등을 거치면서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다.이 책은 78세로 죽을 때까지 숱한 비밀을 간직한 드농의 삶을 다룬 전기소설이다.1만 7000원.
  • “도올 해석엔 노자가 없다”

    도올 김용옥의 동양고전 TV강의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도올에게 첫 직격탄을 날린 ‘얼굴없는 여성’이경숙이두번째 포문을 열었다. ‘노자를 웃긴 남자2’(자인).도덕경11∼20장의 노자 철학을 설명, 아니 도올의 ‘노자와 21세기’를 분석했다.직설적 표현은 여전하지만 1권에 비하면 다소 점잖아졌다. 12장 ‘是以聖人 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시이성인 위복불위목 고거피취차)대목에서 저자는 배꼽이 튀어나올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도올은 “성인은 배가 되지 눈이 되지 않는다”라고 번역,‘노자적 실용주의’를 거론하며 “번뇌의 현실 속에 깨달음이 있다는 의미로서 열반의 피안을 버리고 번뇌의 차안을 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이경숙은 “성인은 배를 위할 뿐 결코 눈을 위하지 않는다”로,“성인은먹고 살게는 하지만 감각을 만족케 하지 않으니 쾌락과 탐욕을 버리고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택한다”는 뜻이라고 훈수한다.쓸데없는 짓에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을 얻을 정도로만 노동하며 적게 먹고 오래 살자는주장이란다. 13장의 ‘貴以身 爲天下 若可寄天下’(귀이신 위천하 약가기천하)를 도올은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천하를 귀하게 여기는 자에겐 천하를 맡길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生而不有(생이불유·없는 듯이 삶)하라며천하보다 자기 한 몸을 더 소중히 생각한 노자를 모르고 하는 헛소리라며 “자기 몸을 사랑하면 그것이 곧 천하를 위하는 것”이라고 바로잡는다. 17장의 ‘太上 下知有之’(태상 하지유지·최상의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는 사람)에 이어지는‘其次侮之’(기차모지)를 “그 다음은 백성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이라고 한 도올의 해석을 코믹 공포극이라고 말한다.“백성들이 업수이 여기고 깔보는 사람”을 완전히 거꾸로 풀며 ‘공포정치’운운했다는 것.저자는 노자의 서글픈독백인 제20장을 서술문처럼 풀이한 도올을 나무라며,앞으로 제대로 된 도덕경 주해서를 펴내겠다며 글을 맺는다. 한편 도올의 TV강의 내용에 대해 서지문 고려대 교수는 최근 세차례 일간지 기고를 통해 “논어의 본질을 왜곡하며 저속한 언어를 구사하는 ‘소인’이 ‘군자’를 논한다”고 공격했고,김진석 인하대 교수는 ‘사회비평’봄호 기고에서 도올이 담론권력을 얻기 위해 노자와 공자의 고전을 도구화한다고 비판하는 등 도올을 둘러싼 시비가 한창이다.상하이(上海) 총영사관의 이상학 영사도 월간중앙 3월호 기고에서 “철부지 김용옥은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다”고 논어 강의를비판하고 나섰다.도올은 TV강의에서 “9단이 9급하고 바둑을 둘 수 있느냐”고 대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논란후 욕설이나 과격한 제스처가 줄어드는 등 방송 태도가 예전에 비해 부드러워진 걸 보면 그도 신경이 쓰이기는 하는 모양이다. 도올에 대한 비판 못지 않게 그가 인문학의 위기 시대에 동양철학을 대중화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도올을 둘러싼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같다. 김주혁기자 jhkm@
  • 패션을 통해 본 인류문명사 ‘패션의 역사’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패션은 한 장의 천이었다.기원전 3000년 수메르인의 지배시대에는 정교한 옷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얼마나 기술적으로 천을 아름답게 걸치는가가 중요했다.한 장의 사각형 천에 주름을 잡아 몸에 걸치던 초기 형태의 의복은 이집트의 셴티,그리스의히마티온,로마의 토가로 이어졌다.이렇게 시작된 서양 복식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부침을 거듭하며 수많은 유행사조를 만들어냈다.그것은 당대의 사람들이 품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과 도덕,가치 등 정신적인 유산은 물론 지리상의 발견이나 과학적 발명 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요컨대 복식의 역사는 인류의 문명사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문화사가 막스 폰 뵌이 쓴 ‘패션의 역사’(전2권,한길아트)는 주목할 만한 책이다.단순히 서양 복식사를 기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한 차원 높은 인류의 문명사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이 책은 원래 8권으로 된 뵌의 방대한 저서 ‘디 모드(Die Mode)’를 독일 의상학자 잉그리트 로셰크(50)가 두 권으로 압축한 요약판을 저본으로 했다.뵌은 이 책에서 의상과 유행을 매개로 중세부터 17세기 바로크 시대,18세기 로코코 시대,19세기 시민사회를 거쳐 20세기초에 이르는 유럽 사회 전반의 인간사와 문화사를 펼쳐 보인다.한 시대의 흐름과 아울러 일상의 사소한 영역까지 미시사적 시각으로 복원해낸다.뵌에 따르면 십자군전쟁은 유럽의 복식 유행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십자군 전쟁에는 여러 민족이 동원됐으며,특히 동방원정은 유럽인들에게 ‘의상의 특수성’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키워줬다.유럽을 휩쓴 첫 유행은 무어인들에게서 유래된 것으로 간주되는 ‘미파르티’.미파르티는 두세 가지 색으로 나뉘어진 옷으로 소매와 바짓가랑이,양말,엉덩이 좌우 부분 등의 색깔을 달리 해 만들었다.화려한 무늬가 있는 천이 드물던 시대,남부유럽과 중부유럽인들 사이에 크게유행한 이 옷은 16세기 중반까지 인기를 끌었다.미파르티의 흔적은지금도 어릿광대의 의상으로 남아 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정치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패션사에도 일대혁신을 몰고 왔다.프랑스혁명 이후 모든복식은 갈수록 간편함을 추구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특히 공포정치 기간에는 허식이나 특권 혹은 부를 연상케 하는 것은모두 엄격히 금지됐다.혁명 뒤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겪은 분야는 여성복식.여성의 몸을 억압했던 파니에(18세기초 여성들이 엉덩이에 둘렀던 갈대나 고래수염으로 만든 새장 같은 버팀대)와 범롤(엉덩이에둘렀던 소시지 모양의 패딩),코르셋,페티코트가 패션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그 대신 로브 앙 슈미즈라는 속옷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사교계 여성들이 그토록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은 고대 이집트 이래 처음이다. 이 책은 일상의 의상과 유행이 한 시대를 해명하는 중요한 열쇠임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부담없이 읽히는 패션 이야기를 통해 복잡다단한 서양 문명의 갈피를 잡게 한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있다.이재원·천미수 옮김.각권 1만8,000원김종면기자 jmkim@
  • 애플 창업자 비판서적 출간 예정

    [뉴욕 연합] 미 애플 컴퓨터의 공동창업자이며 대표이사인 스티브잡스가 ‘공포정치’형 기업경영을 한다고 비판한 책이 오는 10월에출간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잡스 대표는 최근 ‘스티브 잡스의 재림’이라는 제목의이 책을 출간하게 될 랜덤 하우스의 피터 올슨 대표에게 전화를 해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전달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14일 보도했다.전포천지 기자였던 앨런 도이치먼이 쓴 ‘스티브 잡스의 재림’은 잡스 대표를 독설가에다가 정서가 불안한 자기도취증 환자로 표현한 후그가 ‘공포정치’를 통해 회사가 거의 망하는 것을 겨우 막았다고기술했다. 현재 배너티 페어지의 초빙편집장을 맡고 있는 도이치먼은 잡스 대표가 종업원들에게 모욕을 주는 것을 즐겨했다고 썼으며 잡스 대표가기업경영을 잘못한 사례를 나열하기도 했다.
  • 4·13총선 D-21/ 각당 선거전 이모저모

    *민주당 “경제안정·지역감정 해소”역설. 22일 서영훈(徐英勳)대표와 이인제(李仁濟)선대위원장이 나서 영남권 공략을 시도했다.이들은 지구당 개편대회에 잇따라 참석,당 지지율 제고를 위해총력전을 펼쳤다. 서 대표는 경남 양산(위원장 鄭大根),울산 북구지구당(위원장 李相憲)을,이위원장은 경북 상주(위원장 金鐸),군위·의성지구당(위원장 尹定均)을 각각찾아 지지를 호소했다.이 위원장은 경북 지역에서 1박한 뒤 23일에는 경주지구당(위원장 李鍾雄) 개편대회에 참석한다. 이 위원장의 1박(泊)짜리 일정은 이번이 처음이다.오후 행사 때문에 상경이어려운 점도 있지만 하루 머물면서 이 지역에 좀더 공을 들이겠다는 심산이다. 저녁에는 이웃 지역 위원장들을 초청,전략회의도 열었다. 두 지도부의 연설은 경제 안정과 지역감정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전국정당건설을 위해 민주당을 지지해줄 것도 당부했다. 특히 이 위원장은 97년 대선 당시 영남지역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한때35%대를 상회했던 점을 상기시키며 새로운 정치 구현을 위해 다시 한번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이 위원장은 상주문화회관에서 열린 상주지구당 개편대회에서 “새로운 정치와 세대교체를 기치로 내걸었던 지난 대선에서 경북지역 주민들이 보여준뜨거운 지지에 감사드린다”면서 “경제안정과 정치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전국정당을 목표로 하고 있는 민주당과 이인제를 한번 더 지지해달라”고 당부했다. 서 대표는 “국민의 정부는 특정지역의 소유가 아닌 국민의 것인 만큼 남은임기 동안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말했다. 이지운기자 jj@. *자민련 '내각제 배신''경제파탄론'제기.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와 이한동(李漢東)총재는 22일 나란히 수도권표밭갈이에 나섰다. 경기도 평택을(許南薰) 지구당 개편대회에 함께 참석한 두 사람은 성남 수정(金乙東),성남 분당을(吳世應),서울 광진갑(朴明鎭),관악을(吳蘭鐸) 지구당 행사를 각각 나눠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수도권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열세를 보이는 것을의식한 때문인지 어느 때보다 목소리가 높았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양당구도로 좁혀져가는 듯한 판세를 뒤집기 위해 양당을 싸잡아 직설적인 어조로 맹공을 퍼부었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단골메뉴인 ‘내각제 배신론’을,한나라당쪽에는 ‘경제파탄 책임론’을 집중제기했다. JP는 “민주당이 과욕을 부리면서 전국 정당을 만들겠다며 온세상을 어지럽히는데 욕심을 내서는 안된다”면서 “우리는 한번 속지 두번 속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이어 “IMF관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한나라당 때문에 생긴 신탁통치”라면서 “국민에게 엎드려 사죄하고 근신해야 할 한나라당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보다 원색적인 용어를 동원해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그는 “경기도는 정치식민지였다”는 말에 덧붙여 “지금까지 경기도의 자존과 긍지를 지켜주고 정치정서를 제대로 반영한 정당이 없었다”면서 “경기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며 자존을 지켜줄 당은 자민련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성수기자 sskim@. *한나라당 전략지역 공략 가속. 취약지역인 호남에서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이회창(李會昌)총재는 22일 전남 무안,전북 완산,광주지역 지구당 개편대회에 잇따라 참석해 지지를 호소했다.총선을 앞두고 호남에서 개최한 첫 지구당 개편대회였다.이 총재의 광주 방문은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 만이다. 이 총재는 광주 상록회관에서 열린 광주 동,서,북갑 등 3개 지구당 합동 개편대회에서 전례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이 정부는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며 한·일어업협정,한·중어업협정,국부유출,국가부채를 문제삼았다.또 병역비리 수사와 관련,야당탄압을 거듭주장했다. 이 총재는 지역감정을 ‘정치인’의 탓으로 돌리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이어 “지역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 “그러나 정치인들이 악용해 망국적인 병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금의 지역감정 논쟁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먼저 꺼내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가 반론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고 두 사람에게 화살을 돌렸다. 지구당 위원장으로 선출된 총선 후보들도 하나같이 ‘여야 공존의 시대’를외치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대회 분위기는 이 총재의 ‘의욕’과는 달리 차분했다.다른 대회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대형 플래카드도 보이지 않았다.참석자들은 이 총재의 ‘간곡한’ 호소에 간간이 박수를 보낼 뿐이었다. 대회에는 호남 출신 전국구 의원인 김찬진(金燦鎭)·김정숙(金貞淑)·안재홍(安在烘)·이형배(李炯培)·전석홍(全錫洪)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광주 박준석기자 pjs@. *민국당 대구에서 한나라당 집중공격. 22일 한나라당을 영남권의 ‘사이비 정당’으로 몰아붙이며 TK(대구·경북)민심잡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당 지도부는 이날 대구로 총집결,최고위원회의와 대구 5개 지구당 합동 창당대회를 잇따라 가졌다.민국당은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영남과무관한 한나라당을 퇴출시키고 민국당이 정권교체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주장했다.민국당 중심의 영남정권 창출론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신랄히 공격했다.“사리사욕에 의한 비열한 수법으로 영남의 지도적 인사를 제거,영남이 보여준 의리를 배신했다”는 등 대부분 지역감정에 기댄 공세였다.비영남권 출신인 한나라당 이총재와 영남 민심과의 틈새를 비집어 ‘반창(反昌) 전선’을 확대하려는 전략이다. ‘대권 청사진’도 TK민심 잡기의 주요전략이다.‘이회창 배제론’과 맞물려 TK 대권 주자론이 요체다. 대구·경북 위원장들은 당내 차기 대권주자에 이수성(李壽成)상임고문을 옹립키로 결의하는 등 정권교체의 비전을 제시했다.이 고문은 대회 축사를 통해 “영남이 한국정치의 중심이 되어 새로운 정권을 만들어야 한다”고 화답했다. 민국당의 칼날은 또 현정권으로 향했다.당 지도부는 릴레이 연사로 등장,“집권당 총선후보자 가운데 안보를 저해하는 인사도 있다”는 등 색깔공세의불을 지폈다.한나라당과의 선명성 경쟁을 의식,현정부의 ▲인사독식 ▲도청·공포정치 ▲국가재산 해외매각 등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조순(趙淳)대표는 이날 건강을 이유로 최고위원회의와 창당대회에모두 불참했다. 대구 오일만기자 oilman@.
  • 청송 교도소(張潤煥 칼럼)

    미국의 ‘싱싱’과 ‘알카트레즈’,그리고 스탈린 치하 소련의 ‘루비앙카’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교도소다. 흉악범만 수용하고 재소자들을 혹독하게 다뤄 악명을 떨쳤던 싱싱교도소와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오지 못한다는 샌프란시스코만의 알카트레즈교도소는 이제 폐쇄되고 없다.독재자 스탈린이 공포정치에 악용했던 모스크바의 루비앙카의 근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그러나 그 교도소들은 미국 사람들과 소련 사람들에게 아직도 공포의 대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청송’이란 공포의 두 글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청송교도소’나 ‘청송감호소’는 많은 국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이런 주장에 대해 교정당국은 “그건 잠재적 범법자에 한해서,그것도 죄질이 나쁜 범법자에 한해서 그럴 것이다”며 발끈할 것이다.옳은 지적이다.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청송 심씨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청송’이라는 지명만 들어도 공포감이 이는 것을 어쩌랴.지난 80년 全斗煥·盧泰愚 신군부 세력의 정권찬탈 과정에서삼청교육 대상자로 끌려갔다 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처음 알려지게 된 ‘청송감호소’ 또는 ‘청송교도소’는 생지옥으로 일반 국민들의 뇌리에 박여 있다.청송감호소는 얼마전 대도(大盜) 趙世衡씨에 대한 보호감호처분 연장과 그가 당했다고 주장하는 가혹행위를 둘러싼 논쟁으로 다시 한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런 청송교도소가 지난 24일 일반에게 일부 공개됐다.법무부는 그동안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되어 교정시설 내부에서의 가혹행위등 인권침해 시비를 불러오던 이곳 교도소와 감호소를 대한변협과 천주교 인권위,국제사면위 한국지부등 10개 단체 관계자들과 취재진에게 자진 공개한 것이다.81년 교정시설이 설치된 지 1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깎아지른 절벽이 3면을 둘러싼 경북 청송군 광덕산 골짜기 75만평에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자리잡고 있는 청송 교정시설단지.3개의 보호감호소로 출발했다가 그 뒤 감호소 하나를 교도소로 바꾸고 92년 교도소 하나를 더 지어 현재 감호소 2개와 교도소 2개로 구성돼 있다.현재 이곳에는4,157명이 수용돼 있으며 이 중 90%가 전과 3범 이상이며,여성 보호감호 처분자도 21명이나 된다.살인·강간·강도 등 흉악범들을 많이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교정 시설에 비해 독방의 비율이 높고,각 사동은 폐쇄회로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로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다.자해행위등을 하는 ‘특이 동향자’들을 수용하는 특별감방에는 감시용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그러나 감방은 수세식 변기와 세면대,난방용 라디에이터도 있고,식사도 먹을 만하다고 한다. ○열린 교정행정 시발점으로 그러나 문제는 시설이 아니라 교정시설 내부에서의 교정행정의 실상이다.유감스럽게도 참관자들의 보고에는 재소자들과 직접 접촉한 대목이 많지 않다.재소자들이 참관자들에게 교도소내의 실상을 정확히 진술할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정당국이 자신 있게 교정시설 내부를 공개한 것을 보면,‘청송’의 악명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다행한 일이다.새 정부는 이번 청송의 공개를 계기로 인권을 존중하고 외부에 숨기는 게 없는 열린 교정행정으로 나아가기 바란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1­2(정직한 역사 되찾기)

    ◎헌법 반세기/9차례 개헌… 민의 철저히 외면/52년 의원들 납치 직선제 채택/54년 부결안 사사오입 억지통과/박 대통령 집권연장 3차례 칼질/12·12 탈취자 헌전파괴로 ‘심판’/10번째 개헌 국민의 뜻 반영돼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헌법전문은 이렇게 시작되어 326자의 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많은 사람들은 학창시절 헌법전문을 의미도 잘 모른 채 달달 외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개헌의 역사도 교과서를 통해 배웠다.그러나 교과서 뒤에는 권력자들의 정치적 음모가 숨어있었다. 그들의 정략적 개헌은 많은 어용 학자와 지식인들에 의해 ‘정당화’ 되어왔다.헌법은 이러한 굴절된 개헌의 역사로 오염됐다. 헌법은 지난 50년 전쟁 와중의 1차 개헌 이후 9차례에 걸쳐 바뀌었다.지금까지 개헌은 집권세력이 자기의 편의대로 헌법을 뜯어고친 정치적 상처의 흔적을 남겼다. 1차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선출을 국회가 아닌 국민직선으로 바꾸는 것이었다.50년 총선에서 참패한 李承晩은 국회에서 대통령 재선이 어려워지자 52년 7월7일 국회의원을 강제로 납치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그는 대통령 중임제한 규정을 초대 대통령에게는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개헌을 다시 강행했다.그러나 그 개헌안은 당초 부결된 것으로 선포됐다.하지만 54년 11월29일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기상천외한 수학적 원리를 끌어들여 억지로 통과시겼다. 4·19혁명은 헌법에서 보장받지 못한 민중 스스로의 저항권 행사였다.그러나 혁명주체가 정치적 힘으로 결집되지 못해 직업 정치인들에게 공을 가로채이고,그들에 의해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채택한 3차개헌이 단행됐다.그러나 혁명주체세력들은 4·19정신의 반영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그들은 국회에 압력을 가해 4차개헌이 이루어지도록 했다.4차개헌은 3·15부정선거 주동자에 대한 공민권 정지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민의에 의한 헌법질서 수립은 그러나 5·16쿠데타로 6개월만에 수포로 돌아가고 30여년의 기나긴 군사독재의 장이 열렸다.朴正熙대통령은 3번이나 헌법을 개악했다.개헌의 핵심은 대통령권한의 강화였다.그는 4년 임기 대통령의 중임제한규정을 없애기 위해 69년 대통령 재임을 3번까지 인정하는 6차개헌안을 여당의원들만 모인 가운데 날치기 통과시켰다.72년에는 아예 영구집권을 담보할 수 있는 유신헌법을 공포했다.유신헌법체제는 거센 국민의 저항에 부닥쳤고,이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울한 긴급조치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김재규의 朴正熙 살해는 유신체제를 끝나게 했다.하지만 군사정권의 종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신군부세력이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했다.그들은 80년 10월27일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선출을 골자로한 제8차 개헌을 단행했다.그러나 결국 이들은 헌정파괴사범으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신군부의 공포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거세졌고,이는 직선제 개헌의 요구로 이어졌다.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한열군 최루탄 사망사건이 도화선이 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자 위기를 느낀 집권세력은 6·29선언을 통한 직선제 개헌 수용으로 국민들을 회유한다. 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여전히 비민주적 요소를 갖고 있다.대통령에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돼 있고 긴급권에 대한 통제장치도 부족하다. 새 정부도 내각제로의 개헌을 약속하고 있다.그러나 10번째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단순한 정부형태의 변경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지난 50여년간 왜곡돼온 것들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개헌때에는 특히 그동안 소외돼온 국민들의 뜻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대한민국헌법 연혁 ▲1948.7.17 헌법제정 ▲1952.7.7 제1차 개정(제2대 국회) △양원제 △대통령·부통령의 직접선거 ▲1954.11.29 제2차 개정(제3대 국회) △주권의 제약,영토의 변경 등 중대사항에 관한 국민투표제 △국무총리제 폐지 ▲1960.6.15 제3차 개정(제4대 국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의 절대적 기본권화 △의원내각제 △중앙선거위원회 설치 △헌법재판소의 설치 ▲1960.11.29 제4차 개정(제5대 국회) △4·19에 관련된 부정선거관련자 및 반민주행위자의 공민권 제한과 부정축재자의 처벌에 관한 소급입법권의 부여 △특별재판부및 특별검찰부의 설치 ▲1962.12.26 제5차 개정(국회재건최고회의)전문개정 △국가안전을 위해 기본권 보장 다소 약화 △단원제환원 △대통령제 △헌법재판소를 폐지하고 위헌법률심사권을 법원에 부여 △헌법개정엔 국회의결을 거쳐 국민투표 ▲1969.10.21 제6차 개정(제7대 국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의원 50명 이상의 발의와 재적.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함 △대통령의 계속 재임 3번까지 가능 ▲1972.12.27 제7차 개정(유신헌법) 전문개정 △통일주체국민회의 신설 △임기의 연장과 긴급조치권,국회해산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 강화 △국회의 권한과 지위를 제한 내지 축소 △헌법위원회 신설 ▲1980.10.27 제8차 개정(국민투표) △비례대표제 채택 △국정조사권 신설 △행정심판제도 신설 △대통령 7년 단임제 △대통령 비상조치권 부여 △전직대통령의 예우조항 신설 ▲1987.10.29 제9차 개정(국민투표) △대통령의 직접선거(5년 단임제) ◎누가 참여했나/권력에 들러리 선 학자들 반성없는 ‘법기술자’ 활보/5·16후 법조인 등 21명 개헌작업 참여/신군부 입법회의에 총장 등 이름 내걸어/실제 입법활동 청와대·권력기관이 주도/김철수 교수 등은 양심 지켜 좋은 본보기 쿠데타에 의한 정권찬탈과 독재정치에 합법성을 부여해 주는 역할은 학자들이 주로 맡았다.이들은 개헌안 입안과 각종 악법 제정에 참여해 부실한 통치 이념을 보완하고,양심세력을 잡아넣는데 정당성을 부여했다.그리고 이들은 대개 출세가도를 달렸고,지금도 반성의 말 한마디 없다. 5·16쿠데타 세력이 추진한 5차개헌안 마련에는 兪鎭午·韓泰淵·葛奉根·尹天柱·李英燮 등 21명의 학자와 법조인이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兪鎭午는 5·16세력의 개헌에 협력했을 뿐만 아니라 관제 단체인 재건국민운동 초대본부장을 맡음으로써 제헌헌법 기초자로서의 명예를 스스로 낮추었다. 72년 유신 선포후 개헌작업은 申稙秀 법무 李坰鎬 보사 徐壹敎 총무처장관과 劉敏相 법제처장,그리고 헌법학자 韓泰淵·葛奉根교수로 구성된 법무부 헌법심의위원회가 맡았다.韓泰淵과 葛奉根은 3선 개헌에 이어 유신개헌까지 참여해 독재헌법 제정의 ‘단골’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80년 신군부의 개헌을 위한 헌법심의위원회에는 文鴻柱 부산대 尹謹植 성균관대 尹世昌 고려대 朴承載 한양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그리고 5·6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각종 악법을 양산한 입법회의에는 金相浹 고려대(5공 초대 국무총리) 權彛赫 서울대 鄭義淑 이화여대 安世熙 연세대 총장,朴奉植 서울대 羅昌柱 건국대 韓基春 외국어대 교수 등이 들어갔다.이들중 朴承載 羅昌柱 등은 특히 신군부 집권의 당위성을 강변하는 각종 기고문을 많이 써서 곡학 아세(曲學阿世)의 본보기가 됐으며,두사람 모두 5공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韓己植 고대 교수는 ‘광주폭도의 실상’이란 주제로 각 대학을 돌며 교수들을 상대로 슬라이드 상영과 강연을 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헌법심의위나 전문위원,입법회의 등은 들러리에 불과하고 실제 입법은 청와대나 정보기관이 관리하는 비밀모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그러나 비록 극소수지만 金哲洙 서울대 명예교수 韓相範 동국대 교수 등 끝내 권력자의 협박과 회유를 물리치고 법의 본질적 역할인 정의를 지키는 일에 헌신한 양심적 학자들도 있다. ◎3선 개헌 반대 芮春浩 전 의원/“헌정 파괴 방관만 할수 있나 여 의원으로서 저항에 자부심” “헌정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개인이나 당의 이익보다는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가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요” 지난 69년 朴正熙정권이 3선개헌을 강행하자 여당인 공화당의원으로 끝까지 저항했던 芮春浩 전의원(71)은 지금도 그때의 결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芮 전의원은 개악적 개헌 저지를 위한 반대투쟁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그는 여당의원의 신분이면서도 정권의 불의에 끝까지 저항했다.당시의 독재적 정치체제 속에서 여당의원이 개헌에 반대한다는 것은 정치생명의 끝이며 핍박의 시작이던 상황이었다.그러나 그는 온갖 협박과 회유를 거부하고 정의를 위해 세속적 의미의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朴正熙대통령은 정권 연장을 위해 69년 6차개헌에 나섰다.그러나 여당내에서도 芮 전의원 등 40명이 반대 서명에 나서는 등 강한 반발이 나타났다. “숫자상으로 야당의원에 여당의원 5∼6명만 가세해도 개헌은 막을 수 있었는데….그러나 개헌의결 당일까지 당내에서 반대로 남았던 사람은 제명당했던 저와 鄭求瑛 전 공화당의장 등 2명뿐이었습니다.정권의 회유와 협박이 대단히 집요했어요.” “정권의 회유와 협박에 다른 사람들은 결국 굴복했습니다.그들중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재산가로 변신했죠”라며 芮 전의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군사정권에 몸담게된 계기에 대해,“5·16직후 벌어진 재건국민운동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됐다”고 밝혔다.“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했고,재건운동의 취지가 훌륭했습니다.朴正熙의 소박한 생활과 일에 대한 열정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습니다.” 개헌과 관련해 남다른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는 새정부의 개헌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개인적 소신으로는 의원내각제가 좋다고 봅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헌의도와 그 과정의 순수성과 투명성이겠지요.국민들을 그과정에 얼마나 많이 참여시키느냐 하는 것도 과제입니다.” 그는 현정부에 대해서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아직 귄위주의적 통치문화를 벗지 못한 느낌이 든다”며 “한번 그 맛에 젖어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것이 절대 권력의 속성”이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20여년간 서울 진관외동에 살다 지난해 분당으로 이사해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주로 독서와 낚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북녘의 어린이 날/安燦一 북한문제연 연구위원(기고)

    ◎6월1일 ‘국제아동절’ 기념행사/대외선전용·특권층만의 잔치/‘金正日의 효자’ 세뇌 받으며 대부분 굶주림속 참단한 하루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이 있는 한국의 5월은 ‘가정의 달’‘청소년의 달’이다.특히 5월5일은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인 어린이에 대한 애호심을 높이기 위해 1946년부터 ‘어린이 날’로 정한 기념일로서 매년 어린이를 위한 각종 행사가 국민적 관심속에 개최된다. 공휴일인 이날은 어린이들이 가정의 따뜻한 사랑속에서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전국에서 체육,오락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아동들은 부모와 함께 놀이동산 등을 찾아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어린이 날은 우리와 달리 6월1일이다.194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민주여성연맹 이사회’가 어린이들의 국제적 명절로 정한 6월1일을 북한은 구공산권 국가들과 연대를 위해 1950년부터 어린이 날로 정하고 명칭 또한 ‘국제아동절’로 부르고 있다. 국제아동절날 북한도 평양에서 중앙보고대회를 열고 예술공연 체육 및 오락경기친선모임 등 기념행사를 개최하는데 북한은 어린이 날 행사가 ‘사회주의 조국인 북한에서만 가능하다’면서 ‘남조선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어린이들이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며 어린이 날을 맞이하고 있다’는 등 사실 왜곡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이같은 허위 선전속에 개최되는 북한의 국제아동절 행사는 과장과 허구로 가득차 있다.우선 어린이 날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북한의 선전과는 달리 전체 주민과 어린이들이 아닌 당·정 간부들과 평양시 거주 여성과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소수 특권층만의 행사에 불과하다. 또한 북한의 어린이 날인 국제아동절은 공휴일이나 휴무일이 아닌 단순 기념일에 불과해 북한 주민들이 이날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어린 자녀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북한의 어린이 날은 명색만 갖추었을 뿐 거의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국제아동절을 맞아 마치 모든 북한 어린이들이 金日成과 金正日의 은덕으로 어린이 날을 즐겁게 보내고 있는 듯이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한국의 어린이 날과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6월6일 소년단 창립일이 되면 천진한 인민학교 어린이들에게 ‘3백만개의 총폭탄,6백만개의 수류탄’이 될 것을 선서케 하면서 金正日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어려서부터 탁아소와 학교 교육,소년단 조직생활을 통해 북한 어린이들을 ‘김정일의 충성동이 효자동이’로 세뇌시켜 왔음에도 불구,북한의 아동 교육은 이제 한계점에 다다른 느낌이다. 북한 당국이 극심한 식량난과 경제파탄으로 인한 체제위기 고수를 위해 공포정치와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TV화면에 비친 굶주린 북한 어린이들의 참담한 삶의 현장을 볼때 이러한 우민화 교육의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시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북한 어린이들에게는 그들 자신을 위한 생활이란 전혀 없으며 모든 어린이들이 밝고 티없이 자랄 것을 희망하며 제정된 어린이 날마저 金正日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목숨을 바칠 것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어린이 날인 5월5일 ‘리틀엔젤스’ 공연단이 평양 공연을 가진다.이번 예술공연이 순수하고 자유롭게 자라나야 할 북한 어린이들에게 평화통일의 희망을 심어주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 격동의 대한제국 이면사/철없는 임금(비록 남가몽:1)

    ◎고종 첫 어명 “계동 군밤장수 처형하라” 대원군은 미친 사람 행세를 해가면서 와신상담 집권의 기회를 노리다가 1863년 마침내 둘째 아들 재황을 왕위에 올려 놓는데 성공하였다.이 분이 바로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다.고종의 즉위식 날이 음력으로 12월13일이었으니 양력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취임식 날인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고종의 나이는 열두살 철없는 어린아이였다.만으로 따지면 10살 밖에 안되는 아이였으니 요즘 같으면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다.그러나 고종 앞의 철종이 18살이었고 그 앞의 헌종이 8살,그 앞의 순조도 11살 나이로 등극하였으니 당시로서는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대원군 둘째 아들… 12세 즉위 왜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계속해서 왕위에 올랐느냐 하면 순조,헌종,철종 등 3대 60여년에 걸쳐 세도정치를 하던 안동 김씨가 의도적으로 어린 왕을 세워 권력을 전단하려 했던 탓이라 한다.그런 세도정치하에서 흥선군(흥선대원군은 고종 즉위 후에 부른 존칭)처럼 난처한 사람은 없었다.흥선군은 영조대왕의 현손(증손자의 아들)이었으니 유력한 왕위 계승권자였다.그러니 그는 안동 김씨들의 일급 요시찰 인물이었다.까딱하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죽는 몸이었다.말이 세도정치지 사실상 군사독재보다 더한 공포정치였다.그러니 철종 14년간은 대원군으로서는 살얼음 밟듯 조심하여 살아야 했던 눈물의 재야시절이었다. 흥선군의 사저는 최근 복원된 운현궁이다.말이 궁이지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흥선군이 거지나 다름없이 살았던 초가 삼간이었다.이 초가 삼간에 왕기가 서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집터 때문이었다.터 좋은 데를 명당자리라 하지만 운현궁 자리는 그보다 더 좋은 왕후정승이 나는 터,대지였다. 운현궁 터에는 본시 관상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관상대는 일명 서운관이라 했으므로 서운관의 구름 운자를 따서 운현궁이라 했다는 것이다. 관상대라면 천기를 엿보는 기관이다.왕이 되는 것은 천운을 타고나야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천기를 엿보는 고개마루의 초가집에서 왕이 났다.운현궁에 왕기가 서린다느니 또 성인이 난다느니하는 소문은 벌써 철종 초년부터 났었다.그러면 그럴수록 흥선군의 처신이 더 어려워져 마침내 탁질양광,옛날 양녕대군이 그랬듯이 온갓 미친 짓을 다하며 정신병자처럼 행세하여 안동 김씨의 눈을 속였던 것이다. 고종이 왕좌에 오르게 된 데에는 집터 말고 고종의 관상이 좋았다는 설도 있다.경상북도 청도에 사는 박유붕이라는 애꾸눈 관상쟁이가 있었는데,어느날 운현궁에 와서 고종 얼굴을 보더니 옆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물리치고 난 뒤 “왕이 될 관상이니 이 말을 절대 누설하지 마십시요”라고 했다고 한다.이 사람은 그 공으로 고종이 즉위하자 이듬해 경기도 남양부사와 수사로 임명되었다고 하니 관상보는 것도 출세의 한 방편이었다. 1863년 말 강화도령으로 이름난 철종이 나이 32살의 젊은 나이에 후사도 없이 죽게 되니 흥선군은 극비리에 조대비와 내통하여 전격적으로 후계자를 자신의 둘째 아들로 결정해 버렸다.즉위식은 지금의 창덕궁 안에 있는 인정문에서 거행되었다. ○“운형궁에 왕기 서린다”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누가 대통을이을 것인지 논란이 많았다.중론이 분분하여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사슴(대권)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이와같이 의론이 분분하게 갈려 있는 시점에 조대비가 특별히 처분을 내려 운현궁의 흥선군 제2자 재황으로 대통을 잇게 한다는 명령을 내리니 누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그리하여 12월 길일 양신에 고종이 보위에 오르니 만조 백관들이 모두 축하하고 만세를 불렀다.한쪽에서는 철종의 장례를 치르고 한쪽에서는 즉위식을 거행하니 조정의 백관들은 눈코뜰새가 없었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철없는데다가 평소 굶주리며 자라온 고종이었기에 옥좌에 앉자마자 제일성으로 하는 소리가 계동에 사는 군밤장사를 잡아다 죽이라는 것이었다. 놀란 대신들은 황급히 제지하였다. “전하가 지금 보위에 오르시어 성선의 덕으로써 정치를 하셔야 하는데 어찌해서 주살의 위엄을 먼저 보이십니까” 이에 고종은 반박하여 말하기를 “다른 이유는 없다.내가 여러 번 군밤 하나를 달라고 하였으나 한번도 주지 않았으니 이 어찌 인심이 그럴 수 있단 말인가.이같이 이익만 알고 의리를 모르는 자는 죽어 마땅하며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의 불선한 마음을 막아주어야 하는 것이다.어찌 내가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고 그를 죽이려고 하겠는가.” 이 말을 듣고 대신 한 사람이 아첨하여 말하기를 “훌륭하도다! 왕의 말씀이시여.훌륭하도다! 왕의 말씀이여. 다른 사람의 불선한 마음을 막는다는 교를 내리시니 과연 임금의 도량에 알맞습니다.그러나 일개 하찮은 군밤장사를 효수하라는 것은 전하께서 처음 등극하신 자리에서 혹 국가의 화평한 기운에 미안한 일인 듯 생각됩니다.” 이에 수렴청정을 하게 된 조대비(신정왕후)는 교를 내리기를 “대신이 말씀드린 것은 금석과 같은 말입니다.그 효수하라는 명령은 거두어 들이시는 것이 타당할 것 같으니 짐짓 그만두고 논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했다. 이 말을 한 대신이 다름 아닌 안동 김씨 핵심인물이었는데 그 아첨하는 말솜씨는 후세의 정치인들에게 으뜸 가는 귀감(?)이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정일 10월 승계 유력/김일성 3주기 이후 북한의 앞날

    ◎체제유지 최우선목표… 정책변화 없을듯/부분개혁·개방… 해외 경제지원 확보 추구 북한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3주기인 8일 이후 곧바로 권력을 승계하기 보다는 올해 10월 노동당 창건일을 전후해서 승계할 것이 유력시되며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정부당국은 전망했다.통일원이 7일 발표한 「김정일정권의 등장과 정책변화 전망」 보고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력 승계◁ 김정일의 권력승계 시기는 대미관계 개선 및 경제난 해결 정도,정치적 상징성 등이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노동당 창건일인 오는 10월 10일을 전후한 승계가 유력시 된다.김정일은 수령론에 입각한 유일지배체제 유지차원에서 당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을 모두 승계할 것으로 보이나 정책실패에 대한 부담 및 건강상의 이유로 헌법을 개정하여 국가주석직을 폐지하거나 그대로 두고 타인에게 양도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일정권의 정책추진 방향◁ 세습정권으로서의 정통성 취약 및 경제난으로 인한 체제불안 등 한계적 상황에서 체제생존과 정권의 공고화를 최우선적인 정책 목표로 채택할 것이다.따라서 당분간 기존체제 및 정책노선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내적으로는 사회통제와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할 것이며 체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부분적인 개혁·개방조치를 취할 것이다.대외적으로는 대미관계를 중심고리로 한 주변 4국과의 관계증진을 통해 경제지원확보를 추구할 것이다.북한은 이같은 정책목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민통제 ▲경제개혁 수준 및 범위설정 ▲대미·대일관계 개선과정에서 한국의 개입 차단 ▲남북한 관계개선에 대한 외부압력 배제 ▲새정권의 독자성 확보문제 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분야별 정책변화◁ 정치·사회적으로는 외부정보의 유입을 차단하고 주민통제를 강화할 것이다.노·장·청 3합구조의 틀을 유지하면서 장년층 군부실세와 전문기술관료들이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김정일은 외형상 인덕정치를 표방할 것이나 실제로는 숙청 등 공포정치를 실시할 가능성도 농후하다.경제분야는 소유제도나 가격제도 등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토지사용권’‘독립채산제’‘분조계약제’‘가족도급제’ 등 인센티브제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군사분야는 군에 대한 특별배려를 계속하며 권력기반을 강화할 것이다. 대외관계는 대미관계를 중심고리로 생존기반을 마련하고 경제협력 및 원조를 확보하는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대미관계의 가시적 성과를 거둘때까지는 대일 접근정책과 함께 강경정책을 병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남정책에 있어서는 김정일정권의 안정화에 주력하는 동안에는 대남 적대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당국간 대화는 북한이 상대적 국력열세를 어느정도 극복하기 전까지는 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한국의 차기정권 출범 이후 정상회담 개최에 유연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 탈레반,아프간 8년내전 평정/타지크공 등 주변3국 초긴장

    ◎“공포의 율법정치 피해 탈출” 난민사태 우려/이웃 구소 회교 동맹국 “러시아만 쳐다볼뿐” 아프가니스탄 회교학생 무장조직 탈레반이 25일 북부의 최후 요충지인 쿤두즈주와 사만간주를 점령,사실상 무력으로 전국을 손아귀에 넣었다.89년 소련군이 물러간 뒤 처음으로 아프간은 단일세력에 의해 통치되는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탈레반에 의한 아프간의 통치는 잘 알려져 있듯 여성의 사회참여를 불허하는 것은 물론 차도르를 쓰고 생활해야 하며 정통회교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은 참수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등 서방에서는 공포정치로 지칭되고 있다. 아프간판 앙샹레짐(구시대로의 복귀)으로 표현되는 탈레반의 전국통일로 이웃한 구소련권의 3국인 타지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그리고 우즈베키스탄 등 3국은 국경주변의 경계를 강화하고 병력을 증파하는 등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이제 막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얻어내 군사적으로 열세인데다 경제적으로도 빈약하기 때문에 탈레반의 영향력이 밀려들면 자칫 나라마져 휘청거릴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우려는 러시아도 마찬가지. 때문에 그동안 아프간 구공산정권의 군벌세력을 지지해온 러시아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외무장관은 이날 러시아 RTR TV에 출연,탈레반 세력이 독립국가연합(CIS)의 영내를 침범한다면 『단호한 반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아프간 이웃 3국은 92년 러시아와 집단안보조약을 체결한 바 있어 이들에 대한 탈레반의 침공은 곧 러시아의 개입을 부를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탈레반의 공포정치와 전쟁에 따른 이웃나라들로의 난민유입 가능성.아프간 난민과 인접지역의 난민들이 대거 이웃나라로 흘러든다면 그에 따른 비용문제도 문제려니와 난민보호 및 수습 등을 이유로 한 탈레반의 진입 가능성마저 있어 곧바로 이 지역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타지키스탄 라흐모노프 대통령은 난민을 수용할 수 없다고 이미 못박았지만 난민들이 밀려들면 이를 무작정 밀어낼수도 없는 처지이다.때문에 난민발생을 둘러싸고 회교권과 비회교권이라는 종교대립과,정치적 세력확보를 노리는 내분이라도 일어난다면자칫 또 다른 분쟁을 야기할 위험성도 있어 당분간 이지역은 시끄러운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 “아르헨군정때 인권탄압 앞장”/교황청 라기 교육위원장 피소

    ◎당시 교황파견 추기경… 반정세력 고문 주도 【로마 AP 연합】 지난 76∼83년 아르헨티나 군사정권하에서 실종되거나 숨진 희생자들의 어머니들로 구성된 인권단체가 당시 교황의 개인 사절로 파견됐던 피오 라기 추기경이 인권탄압에 앞장섰다면서 20일 이탈리아 법무부에 소송을 제기했다. 「5월 광장의 어머니회」라는 아르헨티나 인권단체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첨부한 고소장에서 라기 추기경이 지난 74부터 7년간 로마교황 대사 자격으로 아르헨티나에 머물면서 군정과 긴밀히 협력,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고문·살해·실종 등에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라기 추기경은 현재 교황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직위 중 하나인 가톨릭 교육위원장을 맡아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5월 광장의 어머니회」는 라기 추기경을 살인과 납치 및 고문을 자행한 혐의로 기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고소장은 『피오 라기는 수천명의 젊은이를 숨지게 한 「공산주의에 대한 성전」의 지휘자였다』며 『사제들과 전도사들,노조 지도자들,정치 지도자들 모두가 그가 지시한 심문으로 고통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가톨릭 주교들은 자신들이 「더러운 전쟁」 기간중 국민들이 공포정치에 떨도록 한데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음을 인정했다.
  • 「고무찬양죄 수사권」 공방/국회 안기부법 공청회

    ◎“만연된 친북세력 제지 필요요건”­존속론/“간첩이 내놓고 반국가 선동하나”­배제론 여야는 12 국회에서 안기부법 재처리를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안기부에 불고지죄와 고무찬양죄에 대한 수사권을 주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측 공술인의 의견을 들었다.여당측은 안보와 대공수사의 효율성을 위해 허용할 것을,야당측은 인권유린과 공작·정보정치의 재연을 우려해 삭제할 것을 주장했다.여당측 진술인으론 오제도 변호사 박홍 전 서강대총장 양동안 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 등이,야당측 진술인으론 박연철 변호사 곽노현 국방송대교수 이재훈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오제도 변호사는 『수사단서가 되는 찬양고무죄 등에 대한 수사권을 없애는 것은 안기부를 폐지하는 것과 같다』며 『수사권의 허용뿐 아니라 직원들의 사기충전을 위해 직권남용에 대한 처벌조항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연철 변호사는 『안기부에 수사권을 주면 대국민 접촉범위가 넓어져 국민의 정치활동을 억압할 기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안기부는 정보수집에 전념하고 수사는 검·경과 협력해 공개장소에서 수행되야 한다』고 밝혔다. 박홍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민족·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속으로는 계급투쟁을 통해 적화통일을 이루려는 좌경·공산주의 세력과 자생적 친북세력이 만연하고 있다』며 『안기부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찬양고무죄를 제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노현 교수는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가질때 예외없이 공포정치가 시행됐다』며 『간첩들이 드러내고 반국가단체에 대해 고무찬양하는 경우가 있느냐』며 수사권 배제를 주장했다.이재훈 변호사도 『구체성이 떨어지는 고무·찬양 등에 수사권을 주면 인권유린과 정권재창출을 위한 조작도 가능하다』며 대선이후로 법개정을 미룰 것을 제안했다. 양동안 교수는 『검경의 수사능력이 안기부에 크게 뒤떨어지는 현상황에서 안기부에 수사권을 주지 않으면 간첩활동이 자유로와져 국가안위가 위태로와 질 것』이라고 즉각적인 허용을 강조했다.한편 토론에 참석한 신한국당 홍준표 의원은 『수사 효율성을 위해 대공수사권을 안기부에 주든지 아니면,아니면 다른 기관에 송두리째 맡기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국민회의 천정배 의원은 『안기부에 수사권을 주는 것은 신공안정국으로의 전환을 뜻하며 대선은 치르나 마나하다』고 주장했다.
  • 세르비아 야,민주화운동 군개입 촉구/경찰 무력진압속 시위 격화

    ◎서방국가들도 강력 비난 【베오그라드 AP AFP 연합】 정부의 지방선거 결과 무효화조치로 촉발된 세르비아사태는 서방국가들이 민주화 요구시위 강경진압을 강력히 비난하고 야당지도자가 군부의 개입을 촉구하면서 더욱더 위기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시민과 학생 등 6만여명은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8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11주째 계속되고 있는 시위중 최악이었던 전날에 이어 3일에도 수도 베오그라드 중앙광장에서 야당연합인 「자예드노(다함께)」 주최로 열린 반정부집회에 참가한 뒤 가두행진을 시도했으나 곤봉과 최루탄으로 무장한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B92 라디오방송은 경찰관 수백명이 집회참가 후 해산하거나 상가를 거니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서슴지 않았으며,일부 젊은 시위자들은 돌 등을 던지며 맞서 수십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야당지도자 부크 드라스코비치는 기자회견을 통해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대통령이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 뒤 『군대가 베오그라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행위에 대해수수방관해선 안된다』며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이 민주화운동에 직접 개입할 것을 촉구했다. 그가 공개적으로 군 개입을 촉구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연방군은 지금까지 중립을 지킬 것임을 주장해왔다.
  • 탈북자 보호 시민단체가 나서자/옥태환(서울광장)

    작년 12월 김경호씨 일가족 17명이 귀순한데 이어 지난달에는 김영진씨와 유송일씨 일가족이 귀순해 옴으로써 탈북자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많은 사람들은 이 두 사건을 두고 통독직전에 일어났던 대량 난민사태 같은 징조가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으나,병영사회나 다름없는 북한에서 단기간내에 대량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첫째,북한은 국가안전보위부와 사회안전부 같은 공안조직 이외에도 인민반이나 5호담당제 등 각종 주민 감시조직으로 거미줄 같은 감시망을 확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개처형 등 가혹한 형벌로 공포정치를 하고 있어 주민들의 탈출이 용이하지 않다. 둘째,북한주민들은 폐쇄사회에서 오랫동안 노동당이 주입하는 일방적인 교육만을 받아서 외부사정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이 강하기 때문에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식량난이 가중되어도 한국으로의 목숨을 건 탈출을 선택할지는 의문이다. 셋째,북한은 60%이상의 중무장한 병력을 휴전선 근방에 배치해 두고 주민들이 이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을 극도로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내부에 급변사태가 발생해서 휴전선이 통제 불능상태가 되지 않는한 일반주민이 휴전선을 넘어 한국으로 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탈북자수 정확히 파악안돼 따라서 우리가 당장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은 대량 난민사태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지난 수년간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이나 러시아에 은신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보호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현재 이들은 체포 당하지 않으면서 생존해야 하는 이중부담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며,그 숫자는 수천에 이를 것이라고 추측은 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실상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탈북자들을 범죄자라고 주장하고 있고 중국이나 러시아는 이들이 무단 월경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우 1960년대 초에 북한과 비밀리에 체결한 「밀입국자 송환협정」에 따라 체포된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하여 왔다.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중국은 94년부터 2년동안 약140여명의 탈북자를 체포하여 강제 송환했다고 한다. 국제사면위원회(AI)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송환된 탈북자들은 「조국반역죄」로 공개처형되거나 일가족이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평생을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송환되면 평생 수용소생활 그러나 중국이나 러시아의 탈북자 송환은 북한과의 협정에 의하여 적법하게 행해지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우리 정부가 개입하는데는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다.우리 정부로서는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방법,현지에 정착시키는 방법,제3국으로 보내 교민으로 관리하는 방법 등을 고려해 볼수 있겠으나 어느것 하나 현지국의 협조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탈북자 문제는 인권문제 차원에서 시민운동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생각된다.즉 시민단체가 세계 여론에 호소하여 중국이나 러시아로 하여금 탈북자들을 송환하지 못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다행히 탈냉전후 세계추세는 민주화와 인권보호를 가장 중요한 국제문제로 간주하고 있고,특히 인권보호에 관한한 비정부기구(NGO)들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정치적인 난민 뿐만 아니라 인도적인 난민까지도 보호하는 것이 국제관례이다.따라서 국내 시민단체들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국제 인권단체들을 통해 중국이나 러시아에 강력히 전달하고,「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가입하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조약국의 의무사항인 난민에 대한 강제송환금지,국경에서의 입국거부금지,무허가 입국에 따른 처벌금지 등의 조항을 지킬 것을 호소하면 최소한 탈북자의 강제 송환만은 막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유와 보다 더 나은 삶을 찾아서 탈북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이같은 인도주의적 배려는 민족공동체 형성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통일의 당위성을 국제사회에 인식시키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다. 우리 시민단체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 탈북 난민 고통 방치할 수 없다(박화진 칼럼)

    때마침 입시철이다.수능3백점 이상을 받고 세칭 일류대학에 특차로 입학하는 승리의 영광을 안은 젊은이들에게 찬사와 경탄을 보낼때 우리는 자칫하면 그렇지 못한 수많은 수험생들의 실망과 고통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고무·격려를 잊기 쉽다.「탈북난민」의 경우에도 같은 이야기를 할수있지 않을까 생각한다.44일간에 걸친 장장 4천㎞의 극적인 탈북귀순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화려한 매스컴의 각광을 받고있는 김경호씨 일가의 인간승리를 보면서 느끼는 감회다. 김씨일가는 비록 고난은 겪었지만 그 어려운 탈북과 서울귀순에 성공한 많지않은 행운의 주인공들 이른바「난 사람들」이다.대부분의 북한동포들은 여전히 참을수 없는 억압과 식량난의 동토 북한땅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지 않는가.그들보다 더한 고난과 시련을 겪고있는 사람들도 있다.목숨을 건 탈북에는 성공했으나 제3국 망명이나 서울귀순의 기회는 얻지 못한채 중국과 러시아대륙을 유랑하고 있는 「탈북난민」들이다.김씨일가의 성공에 대한 경탄과축복도 좋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통일은 눈앞인데 조국땅 남쪽에 오기는 왜 이다지도 힘이 드는가』 얼마전 탈북귀순에 성공한 북한동포가 서울에 도착한후 처음으로 내뱉은 장탄식이다. 탈북에는 성공했으나 원하는 망명과 귀순길은 찾지 못한채 정처도 기약도 없는 유랑을 계속하고 있는 동포가 3천여명에 달하며 이중 한국망명 의사를 밝히고 있는 사람만 1천여명이 넘는다.금년 겨울은 유난히 춥다고 한다.지금은 누구나 고향을 생각하게 되는 성탄과 송년의 계절이기도 하다.혹독한 겨울,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그것도 북에서 잡으러 나온 「체포조」나 발각되면 처형의 북한땅으로 넘기는 중국 공안원들의 추적눈길에 쫓기면서 먹고 입을 것은 물론 잠잘 곳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그들이 겪고 있을 고초가 어떠하겠는가. ○탈북한 동포 3천여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제외한 세계 어느나라 그 누구도 자유와 인권을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자유우방의 맹주 미국까지도 관심 한번 제대로 가져주지 않는 무관심속에 그들은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관심은 커녕 경계해야할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외면까지 당하고 있다.이런 일이 어떻게 용납될 수 있는가.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굶어 죽지 않고 사회주의독재 공포정치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목숨건 탈북을 했을 뿐이다.인권과 인도주의를 보편적 가치로 신봉하는 세계라면 당연히 관심을 갖고 도와야할 「탈북난민」인 것이다.그들을 방치하는 것은 죄악이다. 중국 조선족 사기사건이 그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처럼 이번 김씨일가 탈북성공도 이같은 현실의 「탈북난민」문제에 대한 우리와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기회가 되어야 할것이라 생각한다.탈북난민은 우리 동포이나 중국 국적의 조선족과는 다른 엄밀한 의미에서 헌법상의 우리국민이다.우선 우리가 아니면 누가 나서겠는가.탈북난민 수용엔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누구보다 먼저 그들을 챙겨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그것은 흔히 말하는 감상주의가 아닌 현실과 당위의 문제다.「북한이탈주민 보호정착 지원법」제정과 통일원의 「인도지원국」 신설 및 「대책협의회」구성,그리고 「난민수용소」설치 등 늦었지만 정부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국제적 협조·지원 필요 그러나 「탈북난민」의 문제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불가능한 복잡한 문제다.근본적인 책임은 우선 북한에 있지만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 등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는 주변 4강도 결코 무관할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한다.유엔등 국제기구도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할 문제인 것이다.세계적인 협조와 지원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며 그런 의미에서 국제적인 관심과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외교노력을 펴나갈 필요가 있다.우리는 물론 미국과 중국 그리고 세계도 탈북난민의 고통을 더이상 외면·방치해선 안될 것이다.〈심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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