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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공간] 아브라함의 잘못/이현주 목사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이 조상으로 모시는 인물이다. 누가 만일 아브라함을 비판한다면 유대인들은 자기네가 비판당한 것처럼 저항할 것이다. 그런 아브라함의 실수라 할까, 과오라 할까 아무튼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행실이 유대인들의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닐는지 모르나 사실이다. 물론,“이렇게 해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언급은 아무데도 없지만.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고향을 떠나 낯선 곳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끝에 ‘가축과 은과 금을 많이 가진 부자’가 되어 가나안 땅 어디쯤에 정착한다. 그런데 그곳은 두 사람에게 살 만한 곳이 못되었다. 땅이 척박하거나 환경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이 지닌 재산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었다.”고 성서는 기록한다. 무슨 말일까. 땅에서 나는 물의 양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것을 마시고 살아야 하는 가축들의 수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 자연 두 집안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롯에게 말한다.“너와 나는 한 골육이 아니냐? 네 목자들과 내 목자들이 서로 다투어서야 되겠느냐. 네 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으니 따로 나가서 살림을 차려라.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나는 왼쪽을 택하겠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 참 근사하게 들리는 말이다. 조카에게 우선권을 주어 그가 차지하고서 남은 땅을 자기가 가지겠다는 얘기 아닌가? 결국 롯은 좀더 기름져 보이는 요르단 분지를 차지하기로 하여 그리로 옮겨갔고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남는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두 집안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결과가 그렇지 못했다. 롯은 기름진 땅의 여러 도시를 두루 거쳐 마침내 소돔에 정착했고 소돔이 고모라와 함께 멸망할 때 가까스로 몸만 빠져나와 아내는 죽고 살아남은 두 딸과 어느 이름 모를 동굴에서 구차스레 목숨을 이어가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만다. 무엇이 그를 그런 지경으로 몰아갔던가. 혹시, 기름져 보이는 땅을 숙부에게 양보하고 자기가 나머지 땅을 가졌더라면 결과가 어찌 되었을는지 모를 일이나, 그러면 롯 대신 아브라함이 소돔에서 패가망신할 가능성을 피할 길이 없다. 더구나,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는 말이 언뜻 보면 양보의 미덕을 두루 갖춘 꽤 그럴 듯한 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다. 네가 어느 쪽을 택하든지 그로써 야기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너에게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어야 했던가. 성서는 직답을 피하고, 그 대신 이런 방식의 해결책은 바람직하지 못했다고 말없이 말한다. 이제 우리는 그 말없는 말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나마 아브라함이 살던 때에는 말 그대로 눈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어서” 그 땅을 나눠가지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였겠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나눠가질 공터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옛날 아브라함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성서의 절박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브라함은 한정된 수량(水量)으로도 사이좋게 살 수 있도록 가축 수를 줄일 생각을 못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가난하게 살면 조카를 사지(死地)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진실을 몰랐던 것이다. 비만과 전쟁하는 시절이 되었다고들 한다. 반가운 일이다. 체중을 조금만 줄여도 얼마나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비만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바야흐로 인류는 풍요가 축복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임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런 뜻에서, 이제까지 말해온 공생공영(共生共榮)은 처음부터 무리였고, 길은 오직 공생공빈(共生共貧)에 있을 따름이라는 쓰지다 다카시 교수의 말에는 인류에게 무거운 짐을 보태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짐을 함께 덜어보자는 진정어린 권면이 담겨있다 하겠다. 이현주 목사
  • [마니아] 게이트볼과 바람난 ‘황혼’

    [마니아] 게이트볼과 바람난 ‘황혼’

    서울 도봉구 도봉동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사이에 ‘게이트볼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12월 도봉 2동에 게이트볼 전용구장이 처음 생기면서 60∼70대 노년층이 매일 이곳에서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다. 도봉동 게이트볼팀 회원은 현재 모두 21명. 회원이 아닌 사람들도 가끔 이곳을 찾아 게이트볼장은 늘 북적인다. 이들은 겨울과 봄에는 매일 오전 10∼12시까지, 오후 2∼4시까지 이곳에서 게이트볼 게임을 즐겼다. 날씨가 더운 요즘은 뜨거운 햇볕을 피해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게임을 열고 있다. 도봉동 게이트볼팀은 박성덕(75) 도봉구 게이트볼 연합회장이 지난해 도봉동에 게이트볼 구장을 조성해 줄 것을 제안, 만들어졌다. 박 회장은 “노인들이 노인정에서 힘없이 앉아있는 것보다 활동적으로 운동을 즐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제안했다.“면서 “게이트볼은 노인들이 하기에 부담이 없고 건강에도 좋아 70대 이상의 참여자도 많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제안에 따라 지난해 말 구는 도봉2동의 공터에 정자를 세우고 선을 그려 게이트볼 전용 공간 1개면을 만들었다. 게이트볼은 지루하던 도봉동 노인들의 일상을 활동적으로 바꿔놓았다. 박 회장은 “한 할머니의 경우 우울증을 앓아 1년간 병원에 다녀도 낫지 않았지만 게이트볼을 즐기면서 매우 명랑해져 남편이 너무나 좋아한다더라.”면서 “무릎이 아파 오래 걷기 불편했던 최남(76) 할머니는 게이트볼을 한 이후 무릎 아픈 줄 모르겠다고 한다.”며 뿌듯해했다. 외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매달 5명씩 선수를 뽑아 서울시 게이트볼 연합회에서 매달 한번씩 여는 동호인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비록 입상한 적은 없지만 참여에 의미를 두고 꼬박꼬박 출전하고 있다. 사무장 이광훈(65)씨는 “단합을 위해 식사도 가끔 같이 하고 연습을 하다 보면 절로 친목이 다져진다.”면서 “이러다 보면 언젠가 상을 받을 날도 있지 않겠느냐.”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도봉동 게이트볼팀에게는 대회 수상보다 더 절실한 희망이 하나 있다. 올 가을 새로 개관하는 창동 종합운동장의 게이트볼 전용공간인 8개면을 노인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박 회장은 “현재 게이트볼 회원에게 식사 비용등을 위해 한달에 5000원 정도의 회비를 걷고 있는데 이조차도 부담스러워 나오지 못하는 노인들이 있다.”면서 “시설이 좋은 창동 구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면 무척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봉구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창동 운동장 게이트볼 전용 공간이 구내 노인들의 제안에 따라 만들어진 만큼 무료 사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29번국도-기암괴석과 해변

    29번국도-기암괴석과 해변

    올 여름은 29번 국도를 따라 달려보자. 충남 서산에서 전북 군산·부안을 거쳐 전남 담양·보성으로 이어지는 총연장 308.772㎞. 시원하게 뚫린 이 길은 우리를 위풍당당한 옛 성으로, 인자한 ‘백제의 미소’를 지어주는 마애불의 세계로, 고즈넉한 천년고찰의 품으로 안내한다. 기암괴석과 하얀모래가 절경을 이루는 해변과 끝없이 펼쳐진 대나무숲도 길손을 반긴다. 간월도의 어리굴젓, 부안의 백합죽, 담양의 대통밥 등 지역의 별미도 맛볼 수 있다. 길따라 맛따라 떠날 요량이라면 서해안을 끼고 있는 29번 국도를 택하는 게 제격이다. 이 나라 산하 어느 한 곳 버릴 게 있으랴만 이 곳은 특히 세상의 때가 덜 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정겹다. 오랜만의 여유와 낭만을 되찾아 보자.29번 국도가 바로 그에 이르는 길이다. 글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역사길을 따라 서산을 넘다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읍성 29번 국도를 타고 충남 아산을 지나 서산 방향으로 해미고개를 넘으면 해미시내다. 여기서 조금만 직진하면 사거리에서 개심사 방향으로 해미읍성(사적 116호)이 나온다.1417년 태종대에서 1421년 세종대에 걸쳐 축조된 이 석성(石城)은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읍성으로, 남쪽에는 정문격인 진남문이 있고 동서로 각각 동문과 서문이 자리잡고 있다. 해미(海美)라는 이름은 15세기 초 조선 태종때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치면서 가운데 글자를 한 자씩 따서 지은 것. 성으로 쳐들어오는 적군을 막기 위해 성벽 둘레에 탱자나무를 많이 심어 예전에는 ‘지성(枳城·탱자성)’이라 불렸다. 해미읍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충무공 이순신이 충청병사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한 서린 천주교 성지 해미읍성은 더없이 평화롭게 보이지만 역사의 한이 서린 곳이다. 대원군 시절부터 천주교 박해로 1000여 명의 천주교도들이 이곳에서 집단 순교했다. 진남문을 들어서면 수령이 300년이 넘는 회화나무(일명 호야나무)가 슬픈 역사를 증언하듯 버티고 서 있다. 천주교도들을 매달아 고문하고 교수형에 처하거나 활을 쏘아 처형했던 비운의 나무다. 지금도 이 나무에는 머리채를 매달았던 철사줄 흔적이 남아 있어 당시의 참상을 말해준다. 서문 앞 쪽 순교지에는 팔다리를 잡아들고 머리를 메쳐 살해한 ‘자리갯 돌’이라는 사형대와 생매장 순교지인 진둠벙이 그대로 남아 있다.‘진’은 죄인이 줄어 변한 말,‘둠벙’은 웅덩이의 충청도 사투리다. 진둠병 맞은 편에는 거대한 해미순교탑과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가 있어 해마다 수많은 교인들이 찾아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고귀한 넋을 기린다. 해미읍성 문화유산해설사인 조성옥(44)씨는 “해미읍성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와서인지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줄을 잇는다.”며 “주말에는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라고 설명한다.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은은하게 퍼지는 ‘백제의 미소’ 서해안고속도로 서산나들목으로 진입해 운산을 지나 해미읍으로 가면 삼거리에 서산마애삼존불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좌회전해 용현 저수지를 지나 계곡으로 들어가면 마애삼존불 입구가 나온다. 국보 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은 가야산의 끝자락인 수정봉 북쪽 산중턱 거대한 절벽을 파내 만든 부조형식의 불상. 중국으로 가던 백제 사람들이 먼 길의 안녕을 빌었던 부처님이다. 백제 후기 작품으로 자연암벽에 새겨진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얼굴 가득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부처상은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달리 보이도록 조각돼 있다. 보호각 안에 들어 있어 자연광 속의 미소는 만날 수 없지만 내부에 조명기구가 갖춰져 각도에 따라 비춰보면 변화무쌍한 미소를 엿볼 수 있다. 서산마애삼존불 입구 위쪽에 있는 수림가든(041-663-3557)은 민물새우탕(1인분 7000원)을 시원하게 잘 끓인다. ●서산마애불 vs 태안마애불 서산마애삼존불만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태안읍 백화산 중턱에 자리잡은 태안마애삼존불(국보 307호)도 찾아가볼 만하다. 태안읍 로터리에서 원북·이원 방면으로 700m쯤 올라간 뒤 우회전해 1㎞남짓 가면 나타난다. 태안마애삼존불은 백제 초기 작품으로 우리나라 마애석불의 선구로 꼽힌다. 천진난만한 미소의 서산마애석불과는 또 다른 분위기. 뭔가 엄숙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태안마애석불 보호각 앞에는 일소계(一笑溪)라는 물줄기가 있어 산중의 운치를 더해준다. ●간월도 간월도는 원래 창리 포구에서 똑딱선을 타고 가야하던 섬이었다.1980년대말 천수만을 가로지른 서해안 방조제가 건설됨에 따라 육지와 이어졌다. 하지만 간월도 전체가 육지로 변한 것은 아니다. 남쪽 봉우리는 아직도 섬으로 남아 있다. 그 손바닥만한 섬에 간월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자리잡고 있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도를 닦다 어느날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치고 난 후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으로, 섬 이름을 간월도라 했다고 한다. 이곳은 옛 삼국시대에는 피안도 피안사로, 원효대사가 수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하루 두번씩 밀물 때는 물이 차서 섬이 됐다가 썰물 때는 물이 빠져 작은 자갈길로 육지와 연결된다. 물이 가득 차면 마치 한 송이의 연꽃, 혹은 한 척의 배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썰물 때를 기다려 간월암으로 건너가는 스릴이 있다. 해안을 끼고 있는 간월도 오뚜기횟집(041-662-2708)에서는 강낭콩·밤·은행·버섯 등을 넣은 영양굴밥(8000원)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 강의 끝·바다의 시작 부안전라북도 서남쪽에 위치한 부안땅은 국립공원인 변산반도를 끼고 있는 서해안 최고의 관광휴양지다.1988년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변산반도는 크게 해안가의 외변산과 내륙쪽의 내변산으로 나뉜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국내 국립공원 가운데 유일하게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더한다. 특히 격포 일대에는 채석강과 적벽강, 격포해수욕장 등이 모여 있어 관광명소로 이름이 높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성인 16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300원. ●변산반도 최고의 절경 채석강 변산반도의 절경은 역시 외변산의 채석강. 격포항 북쪽 닭이봉 아래 위치한 채석강은 강이 아니다. 해식단애로 말미암아 생긴 지층을 말한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던 중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에서 이름을 따왔다. 썰물 때 드러나는 해안단층은 마치 수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 신기한 형상이다. 격포해수욕장에서 격포항 등대가 있는 곳까지 펼쳐져 있는 채석강은 물 빠진 바위에 붙은 바다생물과 해식동굴 등 이국적인 풍광이 눈길을 끈다.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는 간조 때 채석강을 거닐어보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 될 듯. 해질 무렵 격포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장관이다. ●숫사자의 모습 닮은 적벽강 채석강에서 약 1㎞에 이르는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적벽강에 이른다. 적벽강은 중국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가 노닐며 적벽부를 지었다는 적벽강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채석강 북쪽의 적벽강 역시 강이 아니다. 후박나무로 유명한 격포리로부터 용두산을 감싸는 약 2㎞의 해안선을 일컫는다. 천연기념물 123호인 후박나무 군락과 수성당을 거느리고 있다. 적벽강 여울골절벽 위에 서 있는 수성당은 칠산바다를 수호하는 ‘계양할미’라는 여신을 모신 해신당. 절벽위의 수성당에서 굽어보는 위도와 칠산바다는 한 폭의 그림이다. 만물의 형상을 한 붉은 색의 기묘한 바위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 동굴이 조물주의 조화를 실감케 한다. 바다에서 바라본 적벽강의 모습은 숫사자를 닮았다. 그래서 ‘사자바위’라 불린다. 석양을 받으면 바위가 진홍빛으로 물든다. 채석강에 비해 찾는 이가 드물어 호젓한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석강과 적벽강 사이에 격포해수욕장이 있다. 변산반도 서쪽 끝으로, 채석강과 적벽강의 절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격포해수욕장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물이 맑고 모래가 부드러워 인기다. 백사장 길이는 약 500m. 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고 경사가 완만해 해수욕장으로선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백제고찰 격포해수욕장을 지나 석포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능가산 자락에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내소사가 나타난다. 백제 무왕 34년 633년에 승려 혜구두타에 의해 창건된 고찰이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 절에 들러 시주를 한 이후 내소사로 불려졌다는 설도 전한다. 일주문에서 천왕문 사이 600m 가량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은 월정사의 전나무 숲처럼 울창하진 않지만 산책코스로는 그만이다. 내소사에서는 관음봉을 올라 바위 능선을 타고 월명암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특히 유명하다. 월명암 뒤쪽에 자리한 낙조대에서 보는 서해 일몰 또한 장관이다. ●뭘 먹을까 부안의 맛은 이곳 특산물인 백합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백합은 조선시대부터 임금의 진상품으로 귀하게 여겨져온 명물. 부안군 변산면 새만금전시관 근처의 갈매기집(063-583-6060)은 백합죽의 일번지다. 백합죽은 보통 백합속살과 불린쌀, 김 등을 재료로 만든다. 하지만 이 집에는 특유의 비법이 있다. 이곳에서는 백합죽(8000원)외에 백합회·백합무침 등 백합과 관련된 모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 竹 펼쳐지는 담양 ●마을 있는 곳에 대숲 있다 “마을이 있는 곳엔 대숲이 있고, 대숲이 있는 곳엔 마을이 있다.” 이같은 말이 있을 정도로 전라남도 담양은 예로부터 죽향(竹鄕)으로 유명하다. 그런 대숲의 정취를 맛보기 위해 찾지않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금성면 봉서리 대나무골 테마공원이다. 영화 ‘청풍명월’‘흑수선’, 드라마 ‘여름향기’ 등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청정호수 담양호를 중심으로 추월산과 금성산성 맥을 따라 고지산 골짜기로 쭉쭉 뻗어 올라간 대나무숲이 장관이다. ●죽림욕과 송림욕을 동시에 고지산 남서방향으로 부채살처럼 펼쳐진 3만여 평의 야산에는 맹종죽과 왕죽, 분죽, 조릿대(산죽) 등 각양각색의 대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청량한 대숲 바람 속에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대밭 샛길과 맨발로 황토 마사길을 걷는 소나무 산책로가 포인트. 대밭으로 둘러싸인 공터에는 그동안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와 영화 장면들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50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야영시설도 갖추고 있다. 입장료 어른 2000원, 학생 1500원, 어린이 1000원.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061-383-9291. ●담양의 먹을거리 담양읍 백동리 담양공고 옆 죽향(061-382-0684)은 대나무통 영양밥을 잘 한다. 이곳의 대나무통 영양밥은 대통에 쌀과 대추, 은행, 밤을 넣고 불에 구워내 만드는 게 특징. 압력솥에서 쪄내는 것보다 한결 향기가 은은하고 씹히는 맛이 쫄깃쫄깃하다.1인분에 1만원으로 반드시 2시간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대나무골 테마공원에서 자동차로 5분거리, 담양온천 입구 삼거리에 있는 맛선한정식(061-383-9393)에서는 갈치정식(1만원), 병어조림(1만 3000원)등 신선한 생선요리를 내놓는다.
  • 서울 자투리땅 69곳 녹지화

    서울시는 13일 지하철역 출입구와 주택가, 도로주변 공터 등 자투리땅 96곳을 10월부터 녹지화한다고 밝혔다. 시는 올 상반기 25개 자치구의 자체조사와 시민공모를 통해 221곳의 녹화 대상지를 발굴했다. 이 가운데 국·공유지 등 쉽게 녹화할 수 있는 96곳을 우선 녹화할 계획이다. 시는 자투리땅에 철쭉·목련·잣나무·감나무·청단풍 등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을 방침이다.이 사업이 완료되면 중구 12곳(226㎡), 은평구 10곳(194㎡), 종로구 8곳(276㎡) 등 25개 자치구에 모두 7509㎡ 규모의 자투리땅이 녹지로 바뀐다. 시는 또 새달 30일까지 각 자치구로부터 2차 자투리땅 대상지 조사 결과를 접수해 내년에 녹지사업을 벌일 방침이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의회] 도봉구-세수 확충에 ‘골몰’

    [의회] 도봉구-세수 확충에 ‘골몰’

    “세수 감소로 부족해진 재정의 확충 방안 마련이 시급합니다.” ●재산세 등 줄어 재정 타격 지난달 29일 상반기 도봉구 예산 결산을 마친 도봉구의회 이성우의장은 “앞으로 재산세 감소 등으로 우리 구의 살림이 더욱 빠듯해질 것 같다.”면서 “세수 확충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자신의 복안으로 도봉산 입장료 중 일부를 도봉구로 돌리는 방안과 도봉산역 인근 공터에 ‘중국어 체험 마을’을 설립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의장은 “주말이면 도봉산을 찾는 등산객들로 인해 도봉구 주민들이 교통체증 등 여러가지 불편을 겪고 있어 도봉산 입장료 중 일부는 그들을 위해 쓰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주말 등산객 몰려 교통체증 등 구민 불편 도봉산 입장료는 1988년부터 도봉산 관리를 맡고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받고 있으며, 지난해 수입은 24억원 정도였다. 이에 대해 이 의장은 “관리는 공단에서 하지만 도봉구민들이 수시로 ‘도봉산 돌보기’캠페인을 벌이는 등 기여하는 바가 큰 점을 감안하면 입장료의 10∼30% 정도는 도봉구에 분배하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정 확충과 구민의 생활 환경 향상을 동시에 꾀하려면 외국어체험마을과 같은 유용한 시설을 유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도봉구는 지난해 도봉산역 인근 공터에 영어체험마을을 조성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려 했으나, 인근 강북구에 영어체험마을이 들어서는 것으로 확정되는 바람에 무산됐다. 이 의장은 “인근에 영어체험마을이 생긴다고 해서 외국어 체험마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부당하다.”며 “외국어 체험마을은 구 수입에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구민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시설이므로 하루빨리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창핑구와 오래 교류해와 조성 유리 그는 특히 도봉구에는 중국어 체험 마을이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도봉구는 중국 베이징시 창핑(昌平)구와 수년간 교류를 해 왔기 때문에 중국어 체험 마을을 만들기에 매우 유리하다는 것. 이 의장은 “중국 창핑구와 수년간 교류하면서 공무원과 청소년 교류 등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고 있다.”면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도봉구에 중국어 체험 마을을 만든다면 그 쪽으로부터 많은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기내 ‘경전철 연장´ 성사 노력 이어 이 의장은 일년 남짓 남은 임기 동안에 주민들의 숙원인 ‘경전철 연장’이 성사되도록 최대한 돕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도봉구의회는 지난 1월 서울시가 우이∼신설동간 경전철 도입을 발표하자 2월부터 ‘경전철 방학역구간 노선연장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주민 서명운동과 관계자 간담회를 갖고, 시에 노선 연장의 필요성을 피력해 왔으나 시로부터 확답은 받지 못한 상태다. 이 의장은 “7월부터 사업자 선정 등 경전철 건설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므로 서둘러 연장안을 확정지어야 한다.”며 “4700여명의 주민들이 서명한 사안인 만큼 임기 말까지 주민들을 대표해 노선 연장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글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盧“타협없는 투쟁안돼” 勞“삭발현실 개탄”

    노무현 대통령은 24일 청와대에서 근로자의 날 훈포장 포창자와 신노사문화대상 수상자를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면서 격려했다. 하지만 한국노총 소속 간부 20여명은 ‘충주사건’을 들어 불참하고 청와대 밖에서 삭발식을 가졌다. ●노대통령, 노사문화 상생강조 노 대통령은 이날 “투쟁력은 중요하지만 반드시 타협을 이뤄내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면서 “타협없는 투쟁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전혀 투쟁하지 않는 노조는 노조로서 기능할 수도 없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해낼 수도 없다.”며 “그러나 그 투쟁의 목표는 끝장내자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제가 옛날에는 노동자들을 좀 도와줬다고 말하고 다닌다.”면서 “옛날에는 노동자들이 제 도움을 필요로 했고, 제가 도와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노동자들이 많이 컸다.”면서 대통령 타도, 정권 타도를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커버렸다.”고 노조에 섭섭한 일면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타협없는 투쟁도 없지만 투쟁력없는 타협도 성공하기 어렵다.”면서 “함께 사는 방법을 먼저 찾는다는 전제 위에서 적당하게 싸우고 타협해야 성공하는 것”이라고 노사문화에서 상생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멱살잡이하고 밀고 당기기를 하는 시간만큼 사용자도 노동자도 손해볼 것이라고 지적하고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대환 노동장관 해임등 촉구 앞서 한국노총은 오전 11시 청와대 앞 범해사 공터에서 이용득 위원장과 산별대표자 등 지도부 10여명은 김태환 한국노총 충주지부장의 사망사건을 들어 삭발을 했다. 이들은 ▲비정규직 보호입법과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 ▲‘김태환 열사 살인만행’ 책임자 처벌 ▲김대환 노동부 장관 해임과 청와대 노동비서실 전면 개편 등을 촉구했다. 이 위원장은 삭발 후 “일부 노동자와 사용자가 청와대 안에서 오찬을 할때 노조지도자들이 맨 땅에서 삭발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노동계 한 인사는 “이날 두 행사는 갈등의 골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는 노·사·정 관계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진풍경”이라고 촌평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오찬에 117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이용득 위원장 등이 참석하지 않아 97명만 참석했다.”고 말했다. 박정현 최용규기자 jhpark@seoul.co.kr
  • 삼덕제지 공장터에 공원 조성

    경기도 안양시는 기업가로부터 무상으로 기증받은 공장 부지(서울신문 2003년 7월12일 보도)에 오는 2008년까지 지하 주차장과 공원을 각각 조성하기로 했다. 21일 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2003년 삼덕제지 전재준(82)회장으로부터 무상 기증받은 300억원대의 만안구 안양4동 공장부지 4840평을 주차장과 공원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다음달부터 건물철거작업을 하기로 했다. 시는 공장 건물을 모두 철거한 뒤 당분간 빈 공터를 주차장으로 활용하면서 민자를 유치, 내년부터 오는 2007년까지 지하에 600∼700대 규모의 주차장(2층)을 건립할 방침이다.안양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휴전선 철책 또 뚫렸다

    휴전선 철책 또 뚫렸다

    북한군 병사 1명이 중부전선 최전방의 3중 철책선을 뚫고 월남, 철책선 인근을 나흘 동안이나 배회했으나, 군 당국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주민신고를 받고 검거했다. 특히 이번에 북한군이 월남한 지역은 지난해 10월 철책선 절단사건이 발생한 지역과 불과 수㎞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8개월 만에 철책선에 또다시 구멍이 생긴 것이다. 17일 오전 5시50분쯤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남모(65)씨가 집 앞 공터에 세워둔 자신의 화물차 안에 숨어 있는 북한군 병사 이용수(20)를 발견, 군 당국에 신고했다. 군과 경찰 기무사 국정원 요원 등으로 구성된 중앙합동신문조의 신문 결과 초급 병사인 이용수는 강원도 평강군에 있는 방포사 예하 122㎜ 포병부대 소속으로 밝혀졌으며 “군 복무가 힘들고 배가 고파서 부대를 탈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에 따르면 이용수는 지난 12일 오전 8시 나무를 한다는 핑계로 부대를 이탈한 뒤 다음날인 13일 오전 7시쯤 남측 철책선까지 무사히 접근해 남측 경계병에게 발각되지 않고 철책을 통과했다. 철책선은 뛰어넘거나 땅을 파는 수법으로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 150㎝에 몸무게 45㎏의 왜소한 체형인 그는 발견 당시 북한 주민들이 입는 인민복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으며, 약간의 과자류를 소지하고 있었다. 이번에 이용수가 숨어 있던 곳은 철책선에서부터 3∼4㎞ 남쪽지역으로, 지난해 10월 철책선 절단사건이 발견된 지점과는 약 5∼6㎞ 떨어진 곳이다. 부근에 개천이 많은 데다 잦은 안개 때문에 경계 취약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군 당국은 이번 사건이 지난해 철책선 절단사건이 발생한 부대와 동일한 부대가 경계를 맡고 있는 지역에서 발생한 점을 중시,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요원들을 현장에 투입로 경계태세 점검에 나섰다. 한편 이날 오전 8시24분쯤 옹진군 소속 227어로지도선(선장 김종원·55)이 백령도 북방 2.5마일 해상에서 길이 5m, 폭 3m의 북한선박 ‘남포호’(전마선)를 발견, 해군 및 경찰에 신고했다. 이 배에는 최모(43)씨 부부로 알려진 남녀 1쌍이 타고 있었으며 이들을 발견한 어로지도선측에 “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귀순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승진·인천 김학준기자 redtrain@seoul.co.kr
  • 정현욱 대표 “꿈나무 전용극장 20년 꿈 이뤘어요”

    정현욱 대표 “꿈나무 전용극장 20년 꿈 이뤘어요”

    당초 계획은 ‘소박’했다.20년 역사를 눈앞에 둔 어린이극 전문극단으로서 전용극장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 그것만 해도 7억∼8억원이 드는 큰 사업이었다. 그런데 일단 극장에 한번 맘이 쏠리니 자꾸 욕심이 났다. 극장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면 좋겠고, 공연 기다릴 동안 아이들이 책을 읽을 장소도 필요할 것 같고, 또 이왕이면 맘껏 뛰어놀 놀이터까지 전부 한 공간에 두면 얼마나 좋을까. ●국내 첫 어린이 복합문화 공간 마련 오는 17일 개관하는 서울 대학로의 사다리아트센터는 그렇게 해서 지어진 국내 첫 어린이 복합문화공간이다. 예정보다 공사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지난 4월 아쉬운 대로 먼저 완공된 1개 극장을 오픈해 반쪽짜리 공연장으로 운영해오다 이번에 전관 개관하게 됐다.4층 규모의 사다리아트센터에는 동그라미극장(200석)세모극장(220석)네모극장(270석)등 소극장 3개, 교육공간인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어린이도서관 등이 구비돼 있다. 이전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앞 공터는 조만간 폐타이어를 깔고, 나무를 심어 놀이터로 꾸밀 계획이다. 극단 사다리 대표이자 사다리아트센터 총책임자인 정현욱(38)대표는 “계획보다 규모가 커지면서 예산이 60억원으로 불어나 자금 조달에 애를 먹었지만 오래 품어온 소망이 이뤄져 기쁘다.”고 말했다. 순수 민간극장으로 운영하고 싶은 마음에 정부 지원이나 기업 후원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무래도 외부 자금이 들어오면 상업적인 작품 위주로 운영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자금의 절반은 개인사업가로부터 투자받았고, 나머지는 은행대출 등으로 어렵게 마련했다. ●정부 지원·기업 후원없이 60억원 투입 예산이 불어난 데는 극장 시설에 대한 그의 남다른 고집도 한몫했다. 국산보다 4∼5배 비싼 외제 조명기와 음향기기 등을 설치하고, 아이들 안전을 고려해 극장 로비에 카펫을 깔았다.“어린이극이라고 해서 대충 만들어도 된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 공연보다 훨씬 더 세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좋은 공연을 체험해야 그 경험으로 어른이 돼서도 공연장을 찾게 될 테니까요.” 1988년 최영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연출가 유홍영·임도완씨 등 10여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극단 사다리는 그간 완성도 높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명실상부한 어린이극 전문극단으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왔다. 관객 서비스도 남다르다. 공연장안에 도우미들을 여러명 배치해 각종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자체 회원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 수시로 피드백을 받는다. 이같은 관객 서비스에 힘입어 현재 3만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개관기념작 ‘알’등 새달 올려 1994년 극단에 합류해 2000년부터 대표직을 맡고 있는 그는 “공연 내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아이들의 솔직함이 좋다.”고 말했다. 좋은 어린이극이란 어떤 것일까.“공연을 보고 난 뒤 부모와 자녀간에 대화의 통로를 열어줘야 합니다. 이를 테면 선악의 개념을 직접 말해주는 연극이 아니라 상황을 던져주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도와주는 작품이지요.” 개관기념작으로 ‘하륵이야기’(7월14일까지, 동그라미극장),‘완희와 털복숭이 괴물’(7월14일까지, 세모극장)‘알’(7월1∼13일, 네모극장)등이 공연되고, 내달 중순에는 ‘2005서울아동청소년공연예술축제’가 열릴 예정이다.(02)382-5477.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박은영의 DVD레서피] 추억은 꼬불꼬불 라면속으로

    바야흐로 라면 전성시대다.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인스턴트 라면의 종류는 100여 종이 넘고 해외에서도 최고의 맛을 인정받고 있다.1960년대부터 국내에서 생산된 라면은 오랫동안 서민들의 한 끼 식사로, 저렴하면서도 든든한 간식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라면은 참 특별한 요리다.40년 동안 삶아진 라면의 개수만큼의 수많은 레서피가 있고 그와 관련해 떠올릴 수 있는 추억도 누구나 하나 쯤 있을 법하다. 어린 시절 밖에서 한참 뛰어 놀다 들어와 후후 불며 먹었던 것만큼 맛있는 라면이 또 있을까. 공터나 골목에서 바람결에 맡았던 라면 익는 냄새처럼 ‘라비린스’와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팬터지 영화의 추억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사라진 어린 동생을 찾기 위해 환상세계로 떠나는 ‘라비린스’는 도로시처럼 마왕의 성을 찾는 열다섯 살 소녀의 모험을 그렸다. 특히 에셔의 유명한 그림 ‘상대성’을 기초로 만들어진 고블린성은 데이비드 보위의 독특한 노래와 더불어 특별한 판타지를 선사한다.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또 다른 형태의 아날로그 환상 세계를 보여준다.‘피터 팬’의 작가와 주변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동화와 현실을 넘나드는데,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조니 뎁이 그 두 공간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아우른다. 어린이보다 어른들이 더 시큰하고 따뜻하게 느낄 판타지다. ●라비린스 제니퍼 코넬리도 문근영처럼 미국의 ‘국민 동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원스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발레 소녀와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제니퍼 코넬리의 모습을 담고 있는 DVD는 20년 세월의 더께를 무색하게 한다. 최근작과 비교해 빼어난 수준은 아니지만 그 시절 느꼈던 감동을 오버랩 시키기에는 충분한 화질과 음향이다. 이 DVD의 놀라운 점은 최근의 환타지 영화들보다도 오히려 많은 영화의 비밀을 공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열정적인 감독 짐 헨슨과 제작진들의 생생한 현장과 시행착오들을 볼 수 있으며, 제작자 조지 루카스의 젊은 시절 모습도 볼 수 있다. ●네버랜드를 찾아서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와 같은 기대감으로 본다면 숭늉처럼 밍밍할 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부가영상을 통해 “있을 법한 환상”을 만드는데 주력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만들었을 법한 2차원의 무대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자연이 되고 3차원의 환상으로 연결되는 식이다. 이 DVD 감상의 포인트 중 하나는 색감이다. 실내와 실외,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감독은 안정적이면서도 세련된 색채감각을 보여 준다. 특히 조니 뎁을 잡은 화면에서는 명확한 얼굴 윤곽과 검고 또렷한 눈매, 군더더기 없는 날렵한 화질이 인상적이다. DVD칼럼니스트 mlue@naver.com
  • [길섶에서] 횟가루포대 시절/심재억 문화부 차장

    ‘횟가루 포대 갖고 똥 누러 가는 놈’이라는 말이 있지요. 뻣뻣한 횟가루 포대를 찢어들고 뒷간을 찾을 만큼 사리분별 못하는 사람을 빗댄 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누른 횟가루 포대 종이는 두껍고 질겨 딱지를 만들거나 책표지 입히기는 그만이었습니다. 예전에야 이런 종이까지 미제를 수입해 썼다는데, 다른 건 몰라도 미제가 참 실하긴 했습니다. 미국이 지원한 구호용 밀가루를 배급할 때면 마을 공터에 아이들이 왁자하게 모여들었습니다. 빈 종이포대를 얻어가기 위해서지요. 그걸 가져다 실밥 풀어 손질하면 방바닥 장판지로 그만이었거든요. 요즘 최신식 아파트도 방바닥만은 노리끼리한 패턴 일색인데, 다 이 횟가루포대가 내력이 아닐는지요. 이걸 방바닥에 바르고 니스나 들기름을 먹여 놓으면 반질거리는 게 여간 좋아보이지 않았거든요. 새로 기름 먹인 장판지 위에 누워 잠이 듭니다. 콧구멍만한 봉창이지만 새 장판지 때문에 기분 좋게 밝고 쾌적합니다. 방바닥에 얼굴을 대고 잠 들라치면 코로 스미는 들기름 내가 참 새롭고 안온했습니다. 햇빛 밝고 조용한 날, 제비 재잘대는 소릴 들으며 조는 그 풍치라니.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독자의 소리] 정차땐 시동 끄는 습관 기르자/차형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보면 버스나 트럭 등 대형 차량들은 대부분 시동을 켜놓은 채로 정차하는 경우가 많다. 주거지에 인접한 종점에 세워져 있는 버스들도 마찬가지다. 또한 골목길이나 공터 등에서 장사하는 소규모 채소. 과일 행상차량들도 시동을 켜 놓은 채 영업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차가 달릴 때보다 정차해 있을 때 더 많은 배기가스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서 이젠 정차 중에는 반드시 시동을 끄는 습관을 생활화하자. 선진국에서는 신호대기 시간이 길어질 경우 운전자 스스로 시동을 끈다고 한다. 차형수
  • [서울이야기] 난지도 월드컵 공원

    [서울이야기] 난지도 월드컵 공원

    쓰레기 산이었던 난지도는 이제 맹꽁이가 울고 시민들이 즐겨찾는 쉼터로 자리잡았다.1998년 10월 난지도 일대에 월드컵 주경기장 건설이 시작되면서 1999년 초부터 그 주변을 체계적으로 개발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쓰레기 매립지의 북측 80여만평에는 디지털미디어시티를 포함한 상암뉴타운을 개발하는 동시에 매립지 일대를 5개 단지로 구분하여 공원으로 조성하는 내용이다. 기본계획에 따라 상암동 월드컵 주경기장 앞 13만 5000평은 새천년 환경시대의 개막과 월드컵 경기개최를 기념하는 평화의 공원으로 조성됐다. 하천의 기능을 잃어버린 8만 9000평의 난지천에는 한강물을 난지천으로 흐르게 해 친수환경과 수변생태계를 복원했다. 미개발상태인 난지한강시민공원부지 23만 5000평에는 선착장 등 친수공간과 생태공원 등 난지한강공원을 조성했다. 평화의 공원에 인접한 매립지 상부는 초지생태공원인 하늘공원으로, 또 다른 매립지 상부 10만 3000평은 대중생태골프장과 생태관찰원이 포함된 노을공원으로 태어났다. 이제 난지도를 감싸고 도는 봄내음을 맡으며 산책을 나서 보자.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만남, 평화의 공원 월드컵공원 전체를 대표하는 평화의 공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새천년에 이루어야 할 자연과 인간, 문화의 공존과 공생 그리고 세계인이 화합할 때 비로소 도래하는 ‘평화’를 기원하는 공간이다. 유니세프광장은 미래지향적인 열린 광장을 의미하며 한강의 지류를 끌어들여 자연의 정취를 그대로 담은 7400평의 난지호수 둘레에는 물풀이 자라고 있다. 그 안에 ‘생명의 나무 천만 그루 심기’운동으로 조성된 희망의 숲과 월드컵공원 전시관은 이 공원 안의 다른 녹색정원과 더불어 휴식공간이자 살아있는 자연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하늘과 맞닿은 초원, 하늘공원 하늘공원은 월드컵공원 중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있다. 북한산 남산 한강 등 서울의 풍광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드넓은 평지에 북쪽에는 억새와 띠를, 남쪽에는 메밀, 해바라기 등을 심어 동식물의 서식지가 될 광활한 초지를 조성했다. 또한 2000년부터 3만 마리 이상의 나비를 풀어 나비공원이 되도록 했다. ●서울의 석양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 노을공원 노을공원은 대중골프장과 자연식생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식물이 자라는 곳), 산책로 등 시민이용공간으로 조성됐다. 대중골프장 조성은 앞으로 20년간 진행될 안정화기간에 지반을 안정시키고 동시에 환경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임시조치다. 넓은 잔디밭으로 조성된 진입광장은 휴게 및 운동공간으로, 바람의 광장과 서쪽의 노을광장에서는 서해의 낙조 등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생태관찰공원과 야생화단지는 토지의 안정성을 높이고, 야생동물의 서식처가 되고 있다. ●버들강아지 피어나는 난지천공원 난지천공원은 그동난 쓰레기 침출수로 오염된 채 방치되어 있던 난지천을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물고기와 새가 떼를 지어 찾아드는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했다. 그리고 하루 5000t 가량의 난지 호수 연못물을 하천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갈대와 버들이 우거진 하천공원으로 조성됐다. 인근에는 5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푸른 숲이, 산책로를 따라 자전거 도로, 인라인 스케이트장 등 여가시설이 있다. 특히 천변공터에는 일반시민은 물론이고 장애인, 노인, 청소년을 위한 별도의 휴게공간이 조성됐다. ●강변의 정취, 난지한강공원 난지한강공원은 하천의 자연성과 시민이용을 조화시킨 공간이다. 상류측은 유람선 선착장, 요트장, 캠핑장 등의 친수활동구역이다. 중앙에는 운동장, 잔디마당이 있는 완충녹지구역, 하류측에는 생태공원구역이 들어섰다. 범람이 잦은 시민공원 특성상 수리적 안정성을 최대한 고려했다. 한강의 여러 명소를 잇는 유람선을 운영, 육로와 함께 월드컵공원의 또 다른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찾아온 야생동·식물 쓰레기 매립이 끝난 1993년부터 사람의 간섭이 점점 줄어들게 되자 난지도에는 새로운 생명들이 깃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생명들은 또 다시 다른 생명들을 불러 모았다. 다양한 생물들이 살게 된 난지도에 보호할 가치가 있는 동물들도 찾아오고 있다. 매립가스, 건축 폐자재 등 악조건에서도 봄이면 능수버들의 연둣빛 잎이 아름답고,5월이면 아카시아 꽃향기가 코를 간질거린다. 지금 매립지 사면에는 가중나무가 가세해 세력을 넓히고 있다. 이 밖에도 구기자, 참오동, 층층나무, 고욤나무, 비술나무, 복사나무, 벚나무, 모과나무, 회화나무 등도 하늘공원의 사면과 노을공원의 사면에 자리 잡고 살아가고 있다. 매립지 상부에는 차단막을 깔고 약 1m깊이로 흙을 얇게 덮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큰 나무를 심지 않았다. 그래서 하늘 공원 위에는 나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명의 힘은 놀라워 몇 그루의 나무가 제 스스로 터를 잡았다. 붉나무, 아카시아, 가중나무, 참싸리 등이 그들이다. 나비와 무당벌레 등 곤충과 여러 가지 새, 그리고 양서류 등의 다양한 동물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난지도를 푸르게 만드는 것은 풀이다. 현재 난지도에는 400여종이 넘는 식물이 살아가고 있다. 그 중 100여종은 귀화식물이다. 그래서 난지도의 별명은 귀화식물의 천국이다. 난지도의 초지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무척 궁금하다. 하늘공원을 걷노라면 수많은 곤충과 함께 나불대며 날아다니는 배추흰나비, 네발나비, 노랑나비 등을 쉽게 말날 수 있다. 서울의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수의 나비를 만날 수 있다. 난지도를 대표하는 동물이라면 단연 맹꽁이를 꼽을 수 있다. 과거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맹꽁이가 환경이 나빠지면서 우리 곁을 떠나 환경부에서는 보호야생동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난지도에서는 장마철에 시작되는 맹꽁이 울음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이 밖에도 무당개구리, 두꺼비, 참개구리, 아무르산개구리, 북방산개구리, 황소개구리 등 남한에서 볼 수 있는 양서류 총 18종 중 8종이 살고 있다. 특히 맹꽁이와 청개구리, 참개구리는 이곳에서 번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겠지만, 난지도에는 다양한 종류의 파충류도 함께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파충류 27종 중 살모사, 쇠살모사, 누룩뱀, 유혈목이, 줄장지뱀, 붉은귀거북 등 6종이 살고 있다. 난지도에는 또 새가 얼마나 살고 있을까.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새 435종 중, 난지도에서 지금까지 관찰된 종은 약 90여종에 이른다. 여기에는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솔부엉이, 수리부엉이, 소쩍새, 참매 등 5종과, 환경부지정 보호야생동물로서 조롱이, 새홀리기, 말똥가리, 수리부엉이 등 4종, 그리고 서울시 지정 관리야생동물로서 물총새, 오색딱따구리, 제비, 흰눈썹황금새, 박새, 꾀꼬리 등 6종이 포함되어 있다.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포유류로는 우리나라(북한 포함)에서 사는 102종 중 월드컵공원에서 서식이 확인된 종은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 족제비, 고슴도치, 안주애기박쥐, 멧밭쥐, 다람쥐, 청설모로 9종이지만, 확인되지 않은 종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난지공원을 찾는 이용객은 연평균 98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난지도를 생태적으로 복원하는 일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제 막 시작이다. 난지도 옛 이름에 걸맞은 시민과 야생동물의 진정한 쉼터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 난지도 변천사 이름에서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난지도(蘭芝島). 난지도는 세월의 흐름속에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목가적인 풍경에서 쓰레기산으로, 다시 시민의 사랑을 받는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난지도에서 쓰레기 산으로 난지도는 난초와 지초가 자라고 철따라 온갖 화초가 만발해 그 이름만큼 향기로운 난지도라 했다. 물이 맑고 먹이가 풍부해 겨울이면 고니 떼, 흰뺨검둥오리 등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들었다.1970년대 중반까지 70여가구의 토착민들이 수수, 땅콩, 채소를 가꾸고 젖소를 기르기도 하는 등 목가적인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갈대숲이 아름다워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이자 영화촬영장소로 애용되던 낭만적인 곳이기도 했다. 꽃이 만발하고 철새들이 날아들던 난지도는 단 15년 만에 쓰레기 섬으로 그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다.1978년부터 1993년까지 1000만인구의 거대도시 서울에서 배출된 모든 쓰레기가 이곳에 묻혔기 때문이다. 당초 서울시는 5년 가량 난지도를 쓰레기매립지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팽창하는 도시공간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쓰레기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1993년부터 수도권매립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으나 그동안 난지도는 해발 100m에 이르는 쓰레기 산으로 변했다. 오늘 우리가 한강변에서 바라보는 난지도의 모습은 바로 쓰레기더미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환경오염 난지도는 한강의 범람으로 만들어진 퇴적층으로 섬의 북단을 끼고 난지천이 흐르고 있었다. 난지천은 홍수철에는 배수로의 역할을, 평시에는 습지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난지도에 쓰레기가 쌓이면서 이러한 모습은 점차 사라져갔다. 습지와 화초는 쓰레기에 덮였고, 난지천은 쓰레기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로 채워졌다. 위생매립이나 복토와는 거리가 먼 단순투기방식(Open dumping)으로 매립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매립지 인근은 먼지와 소음으로 가득했다. 쓰레기의 분해산물인 메탄가스에 의해 1400회 정도의 화재가 발생했고 어떤 화재는 45일 동안 계속되기도 했다. 매립지를 관리하던 사람, 쓰레기더미를 뒤져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접근하고 싶지 않은 섬이 되었으며, 더이상 철새도 야생동식물도 찾아오지 않았다. ●시민공원으로 탄생 1993년 3월, 난지도로 향하던 서울의 쓰레기 차량은 수도권매립지로 방향을 돌렸다. 난지도의 임무도 끝이 났다. 그러나 쓰레기만 들어오지 않을 뿐 환경문제는 그대로였다. 이즈음 난지도 매립지의 이용방안에 대해 업계와 학계에서 몇 가지 청사진이 제시됐다. 대표적인 것이 ‘조기개발론’과 ‘안정화 장기개발론’이었다.‘조기개발론’은 쓰레기를 당장 파내어 새로 조성된 해안매립지로 옮기고, 택지나 업무지구로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반면에 ‘안정화 장기개발론’은 오염방지시설과 안정화 시설을 설치하고, 공원을 조성해 시민휴식공간으로 활용하면서 개발여건이 성숙됐을 때 장기개발에 착수하자는 주장이었다. 상반된 주장을 심사숙고한 끝에 서울시는 ‘안정화 장기개발론’을 선택했다. 여의도공원의 15배,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비슷한 105만평의 크기로 조성된 친환경공원인 월드컵공원은 이렇게 시작됐다. ■ 안정화 사업 4단계 쓰레기산 난지도를 시민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첫번째 노력은 안정화사업이었다. 쓰레기가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가스와 오염된 물의 정화, 매립지의 안정화를 위해 1991년부터 1996년까지 5년 동안 설계에 들어갔다. 매립지 안정화 사업은 2001년 8월까지 공사완료를 목표로 시작됐다. 침출수 처리, 매립가스 처리, 상부 복토작업, 사면 안정화 등 네 가지가 관건이었다. 우선 침출수 처리를 위해 침출수가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매립장 둘레에 총 연장 6017m의 차수벽을 세우고, 차수벽 안쪽에 200m 간격으로 31개소의 집수정을 설치했다. 집수정의 오염된 물은 처리장에서 정화된다. 또 매립가스 처리를 위해 매립지 상부와 비탈면에 120m 간격으로 가스를 모아 뽑아내는 포집공을 40∼60m 깊이로 106개를 박았다. 여기에 14.1㎞에 이르는 이송관로를 연결해 가스를 뽑아내고 있다. 이 가스를 연료로 냉난방 에너지를 생산하여 월드컵경기장과 성산동의 아파트 4430여 가구에 공급하고 있다. 난지도는 일종의 발전소인 셈이다. 세번째 상부 복토작업은 매립지 내부로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매립가스 분출을 억제, 식물이 생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매립지 상부에 지지층(차수막의 훼손을 예방하기 위한 흙층), 차수막(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는 막), 배수층(차수막 위에 고인 물이 잘 빠지도록 하는 층), 식물생육토층(나무뿌리를 지지하고 수분을 공급하는 흙층), 표층(식물에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는 흙층)을 층층이 쌓고 식물을 심었다. 마지막으로 사면 안정화는 불안정한 매립지 경사면을 보완하는 것으로서, 사면붕괴를 막기 위해 경사를 완만하게 조정하고,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토양층을 조성한 후 식물을 심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쓰레기산 난지도가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조용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환경연구부 연구위원
  • 분당 또 피살사건…50대女 실종 하루만에

    경기도 분당에서 여승무원이 실종·살해된 사건에 이어 50대 여자가 또 다시 실종 하루만에 피살된 채 발견됐다.25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신현3리 H골프연습장 인근 도로변 공터에 세워져 있던 체어맨 승용차에서 승용차 소유주인 신모(50·여)씨가 숨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다. 신씨는 흉기에 찔린채 뒷좌석에 엎어져 있었고, 신씨의 손지갑은 열려진 채 승용차 안에 놓여 있었다. 신씨는 지난 24일 오후 4시쯤 분당 서현역 인근 H신탁에서 230만원(10만원권 수표 23장)을 찾아 집에 갔다 오후 5시쯤 집을 나온 뒤 행방이 끊겼다. 경찰은 신씨가 인출한 수표가 25일 오전 10시40분쯤 하나은행 경북 구미점에서 김모(24·퀵서비스업)씨에 의해 현금으로 교환된 사실을 밝혀냈다. 김씨는 “25일 아침 175㎝의 키에 짙은 갈색 바지와 검정색 점퍼를 입은 40대 후반의 남자가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달라고 해서 바꿔줬다.”고 말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儒林(307)-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307)-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계단을 올라 주차장의 공터에 이르자 숨이 가빠졌다. 자판기에서 인스턴트 커피라도 한 잔 뽑아들고 벤치에 앉아 숨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동전이 없었다. 지갑을 뒤져 무심코 1000원짜리 한 장을 꺼내려다 말고 나는 문득 1000원짜리 겉면에 그려져 있는 낯익은 인물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1000원짜리 화폐 오른쪽에는 갓을 쓰고 수염을 기른 노인의 영정이 새겨져 있었다.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는 1000원 위쪽에 아주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인쇄되어 있었다. ‘퇴계 이황(1501-1570)’ 가장 흔한 지폐 중의 하나인 1000원짜리 돈은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함부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화폐 위에 새겨진 이퇴계의 초상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자 나는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나는 화폐를 뒤집어보았다. 역시 붉은 물감으로 채색된 화폐의 뒤쪽은 정갈한 한옥집의 군락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명기되어 있었다. ‘도산서원’ 이퇴계가 나이 60세에 비로소 완성하였던 도산서원. 이퇴계는 죽을 때까지 10여년간 이 도산서원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심코 자판기 속에 1000원짜리 지폐를 밀어넣으려다 잠시 멈칫거렸다. 이처럼 퇴계의 초상과 서원의 모습이 새겨진 지폐를 항상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퇴계를 직시한 적이 있었던가.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 한 알에서 만유인력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나는 누구나의 지갑 속에 들어 있는 가장 흔한 화폐에서 과연 이퇴계의 진면(眞面)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이퇴계의 초상이 새겨진 1000원짜리 지폐를 투입구 속에 밀어넣었다. 자판기는 순식간에 화폐를 집어삼켰다. 자판기의 붉은 불이 반짝이며 켜졌다. 밀크 커피의 버튼을 누르자 찰칵, 하고 컵 하나가 떨어지더니 커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종이컵을 빼들고 거스름돈을 반환하는 키를 비틀었다. 그러자 짤그랑대는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동전이 굴러떨어졌다. 숫자가 맞나 확인해 본 후 주머니 속에 동전을 흘려 보내고 나는 천천히 빈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커피를 마시는 일에 나는 너무 바쁘구나. 나는 맵고, 쓰고, 달콤하고 강렬한 통속적인 커피를 마시면서 혼자서 씁쓸하게 웃었다. ―거스름돈을 확인하느라 나는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구나. 이퇴계가 누구인가를 직시하기 전에 커피를 마시고, 거스름돈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구나. 이퇴계의 초상보다 돈에 집착하는 나야말로 기계로구나. 동전을 집어넣으면 한 잔의 커피가 흘러나오는 로봇이로구나. 자판기로구나. 로보캅이로구나. 영혼이 없는 깡통이로구나. 밀짚의 심장을 가진 허수아비로구나. ―이퇴계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혼잣말로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어떤 생애를 보냈으며 그의 사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음인가. 조광조에서 출발하여 공자를 거쳐 마침내 이퇴계에 이른 유림의 계주는 이렇게 해서 또다시 스타트라인에 서게 되었다.
  • 수원 지역 첫 대안初校 ‘칠보산 자유학교’

    수원 지역 첫 대안初校 ‘칠보산 자유학교’

    경기도 수원 지역의 첫 대안초등학교인 칠보산 자유학교(freechal.com/suwondaean)가 지난 5일 문을 열었다. 맞벌이를 하는 중산층 부부들이 공동 출자해 만든 이 학교는 교육과 탁아를 함께하는 ‘공동 육아’의 이념에서 출발했다. 집같이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자연환경과 이웃들의 삶을 체험하며 세상을 배우고 있다. 아직은 전교생이 12명뿐인 작은 학교이지만 서수원 지역의 작은 교육 공동체를 꿈꾸는 칠보산 자유학교의 수업 현장을 찾았다. ■ 자유롭고 즐겁게 ‘더불어 삶’ 배운다 지난 9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LG빌리지 상가 지역에 터를 잡은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를 찾았다. 상가 건물 2층에 자리한 학교는 겉으로는 평범한 사무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학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우리집’ 같다는 느낌이 든다.40여평 규모에 방 3개와 거실, 부엌, 화장실을 갖춘 일반 아파트와 같은 구조였다. 안방은 4·5학년이 공부하는 교실로 ‘형님반’이라고 부른다.2학년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중간방은 ‘생각반’이다.1학년 ‘나무반’ 어린이들은 중간방 옆에 있는 작은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각 반 이름은 모두 아이들이 스스로 정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말과 글’ 수업을 마친 어린이들은 점심을 먹으려고 거실로 모였다. 칠보산 자유학교의 거실은 단체 수업과 놀이 활동, 그리고 식사를 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오늘의 메뉴는 자장밥과 미역국. 식단은 학부모가 직접 짠다. 학부모들이 배식 당번을 정해 매일 한 명씩 학교를 방문해 밥을 짓고 어린이들의 식사 지도를 맡는다. 밑반찬은 각자 집에서 마련해 학교로 가져온다. 점심 식사를 마친 아이들에게는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남자 어린이 7명은 학교 앞 공터로 몰려간다. 학교가 임대한 공터 흙 바닥에서 아이들은 뒹굴듯 축구 삼매경에 빠진다. 여자 어린이 5명은 교실에 남아 지난 ‘살림수업’시간에 배운 콩나물 종이 접기에 여념이 없다. 주먹만한 시루에 종이 콩나물을 가득 접어 넣어야 숙제를 마치는 것이다. 오후 1시30분.‘마을에서 배우기’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풍물패 샘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별님 강사와 함께 전래동요를 배운다. 거실에 모인 어린이들은 한 강사의 장구 장단에 맞춰 강강술래, 문지기놀이, 손치기, 발치기 등 우리 동요를 배운다. 노래를 익힌 어린이들은 한 강사와 함께 학교 앞 공터에 몰려나가 둥글게 원을 만들고 강강술래와 문지기놀이를 즐긴다. 정규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30분부터는 청소 시간이다. 각자 교실과 거실을 쓸고 닦은 뒤에는 집에 가도 되고 학교에 남아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놀다 가도 된다. 오후 4시30분쯤이면 집에서 보내온 과일과 떡 등 푸짐한 간식이 준비되기 때문에 대부분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간다. 가장 어린이다운 모습으로 공부하고 생활하도록 지도하는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의 재학생들은 한결같이 학교가 좋다고 말한다. 수원의 한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다 담임 교사의 불공평한 체벌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4학년 송은서(10·가명)어린이는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뒤 집에서 생활하다 올해부터 이 학교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송 어린이는 “전 학교에서 선생님이 서류용 집게를 입에 물려 벌을 세우거나 때리는 일이 많아 너무 속상했다.”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이 학교가 좋다.”며 활짝 웃는다. 수원 상촌초등학교에서 4학년을 마치고 5학년은 칠보산 자유학교에서 시작한 최은솔(11)양은 부모님의 권유로 학교를 옮겼다. 최양은 “전 학교를 그만둘 때는 섭섭하고 걱정도 됐지만 새 학교를 다녀보니 학교가 재미있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의 정규 과목은 3과목뿐이다. 교과서도 없다.7차 교육과정에 근거한 국어 수업인 ‘말과 글’, 수학 과목에 해당하는 ‘수’,4·5학년생들을 위한 ‘외국어’수업이 전부다.‘말과 글’수업은 일반 초등학교의 전형적인 국어 수업과는 다르다. 만들기·그리기·동화책 읽기 등을 통해 우리말과 글을 익히는 종합적인 언어 수업에 가깝다.‘수’시간에는 생활에 꼭 필요한 셈을 공부한다.‘외국어’수업은 고학년을 대상으로 실험적으로 시도해 보는 영어 수업이다. 무리한 목표를 정해 암기식으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영어동화를 읽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외국어를 익힌다. 이 시간에 저학년 학생들은 나들이나 미술활동을 한다. 오전 중에는 정규 수업을 진행하고 오후 수업은 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해 다양한 과목을 배운다.‘살림’수업은 의·식·주는 단순히 돈으로 사서 사용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활에 큰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가르친다. 어린이들은 이 시간에 요리, 바느질, 종이접기 등을 경험한다.‘마을에서 배우기’ 시간에는 외부 강사와 함께 노래를 배우거나 전래 놀이를 즐긴다. 또 마을 시장을 방문해 경제활동에 대해서 공부한다. 매주 금요일 ‘학교 밖 학교’ 시간에는 인근 칠보산에 방문해 자연을 관찰하고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칠보산 자유학교는 어린이들이 원하는 그대로 진행된다. 매주 월요일 오후 어린이 회의를 개최해 학교 생활의 규칙을 만든다. 이 시간에는 학생들이 나들이 가면 좋을 곳, 꼭 하고 싶은 운동 경기, 배우고 싶은 노래 등을 발표해 어린이들의 의견을 수업 내용에 반영한다. 때문에 전임 교사 3명은 정규 수업이 끝나면 늘 모여 일주일 단위 수업 계획을 세운다. 이 학교의 또 다른 특징은 재학생들이 모두 예사말을 사용한다는 것. 교사와 학생 사이에 예의는 지키되 격의 없이 지내기 위해서다. 어린이들은 전임 교사들에게도 ‘반짝이’,‘봄날’,‘산’과 같은 별명을 부른다. 칠보산 자유학교 대표 교사인 이한별(27·여)씨는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수업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면서 “어린이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학교의 수업 목표”라고 말했다. 수원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칠보산 학교 어떻게 문 열었나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의 시작은 서수원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육아’ 모임이었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사이좋은 어린이 집’이 문을 연 것은 지난 2001년. 권선구 금곡동 LG빌리지에 살고 있는 맞벌이 부부 7∼8쌍이 모여 육아 문제를 함께 고민한 것이 칠보산 자유학교의 첫 출발이다. 아파트 이웃 주민으로 서로 안면이 있는 10가구가 모여 한 가구당 400만원씩 출자해 ‘사이 좋은 어린이 집’을 탄생시켰다. 아파트 단지내 33평 주택을 전세 9000만원에 임대했다.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취학 전 어린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교사도 2명 채용했다. ‘사이 좋은 어린이 집’은 1년 뒤 참여 가구 수가 24가구로 두배 이상 늘었다.2002년에는 LG빌리지 근방의 300여평 규모 단독주택으로 옮겨 텃밭도 가꾸기 시작했다. 현재 ‘사이 좋은 어린이 집’에는 어린이 25명이 지내고 있으며 전담 교사 4명, 조리사 1명이 있다.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취학 어린이를 돌보는 ‘방과 후 어린이 교실’도 운영하게 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저학년 어린이 21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전담교사도 3명이다. ‘사이 좋은 어린이 집’과 ‘방과 후 어린이 교실’에 참여했던 공동육아협동조합 구성원들은 지난해 4월부터 공동육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대안학교를 세우기 위해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수원 대평중학교 박정근(47) 교사를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 설립 추진위원장으로 추대하고 1년간 학교 개교를 준비했다. 공동육아의 개념을 이해하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전담 교사 3명도 선발했다. 수원 지역에서 참여를 희망하는 학부모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통한 홍보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공동육아에 참여했던 어린이 7명과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어린이 5명, 총 12명의 어린이가 이 학교에 재학 중이다. 이중 남매·형제가 함께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가 6명이다. 학부모들은 대학 교수, 의사, 중·고 교사, 대기업 간부, 소설가 등 대부분 중산층이다. 정기적인 학부모 모임도 열어 이들의 관계는 매우 돈독하다. 수원 칠보산 자유학교도 학부모가 한 아이에 400만원, 두 아이는 500만원을 출자해 세운 학교다. 출자금액의 80%는 어린이가 졸업할 때 다시 회수하고 20%는 교육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 이 조합의 생각이다. 학부모들은 등록금 형태로 한 어린이당 매월 30만원을 내 학교를 운영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칠보산 자유학교는 물론 학력인정을 받는 학교는 아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검정고시를 봐야 한다. 수원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학교설립 주역 박정근선생님 “나의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이 공동육아의 철학입니다.” 칠보산 자유학교 설립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했던 대평중학교 박정근(47) 교사는 “교육을 중심으로 서수원 지역에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 칠보산 자유학교 개교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육아·탁아에 대한 학부모들의 기대치는 높아졌지만 사회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육아·탁아·보육·교육의 기능을 모두 담당할 공동체라는 것이다.30대 맞벌이 부부를 중심으로 수원 지역에서 시작된 육아 모임이 우리나라 교육의 작은 이정표를 세울 대안학교를 탄생시킨 셈이다. 박 교사는 “우리의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 모임을 통해 바른 가정, 좋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에게 더 나은 생활환경, 더 깨끗한 먹을거리,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친환경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박 교사는 환경에 관심이 있는 수원 지역 교사를 중심으로 ‘도토리 교사 모임’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수원 칠보산 학교를 학부모와 학생들의 손으로 직접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친환경 교육환경 학교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학교는 다음달 칠보산과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 구성원들이 모두 2∼3평의 텃밭을 분양받아 논과 밭을 가꾸기 위해서다. 박 교사는 “교육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 환경을 만들고 공동체 기금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조용섭의 산으路] 강원 계방산

    [조용섭의 산으路] 강원 계방산

    남도의 봄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예전에 없던 모진 추위로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던 겨울도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럴 즈음, 겨울의 끝자락을 털고 있을 산자락으로 들어가 자연의 흐름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산행이다. 겨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계방산(1577m,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홍천군 내면)을 찾았다. 겨울 심설 산행지로 잘 알려진 산은 동북쪽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가지쳐 북한강과 남한강의 수계를 가르며 달리는 이른바 한강기맥(경기도 양평 청계산∼양수리)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산행 코스는 31번 도로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인 운두령에서 시작하여 1492봉 정상에 이른 뒤,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노동리 아랫삼거리로 하산하는 길을 잡았다. 계방산은 높이로 보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은 남한에서 5번째 높은 봉우리이지만 운두령에서 산행을 시작할 경우 고도 차이가 채 500m도 되지 않아 의외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안내판이 서있는 절개지의 계단을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외길로 아주 잘 나있다.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완만하다. 포근한 산세를 느끼며 산행이 느긋하다. 산길은 한동안 북쪽으로 향하는데, 산마루가 말안장처럼 잘록하게 들어간 안부로 살짝 내려선 후 이정표가 있는 넓은 공터로 올라선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꽤 가파른 길이다. 길이 미끄러워 나가기가 다소 힘들다. 하지만 20여분 땀을 흘리면 되니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른쪽 위로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다. 능선 한쪽으로 켜켜이 쌓인 눈은 세월의 흐름에 무심한 듯 아직도 떠날 채비를 하지 않고 있다. 이른 봄 초목들의 치열한 삶에 더없이 소중한 생명수의 역할을 다 할 것이다. 능선턱을 올라서면 동쪽으로 아주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며 1492봉으로 향한다. 봉우리에 서면 닫혀 있던 북쪽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끝없이 일렁거리는 산너울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흰눈을 이고 있는 점봉산과 설악산의 모습이 아련하고, 북동쪽에 솟아 있는 오대산 연봉들의 모습도 의젓하다. 키낮은 나무들 사이로 아주 완만한 오름길이 정상으로 이어진다. 진행방향 왼쪽, 즉 고사목 사이로 보이는 나목의 산자락은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곡선미가 빼어나다. 1492봉에서 40여분 나가면 돌탑이 나온다. 계방산 정상이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이제 저 멀리 평평한 구릉지대를 이루는 선자령 부근의 산자락까지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산줄기들의 파노라마가 끝없이 펼쳐진다. 오대산 두로봉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우람한 근육질의 몸이 꿈틀대는 듯 헌걸차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리본이 많이 달린 능선길은 오대산으로 이어지며, 약 15분 진행하면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이승복 생가터를 거쳐 아랫삼거리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남쪽 이정표 있는 곳에서 이어지는 능선길로 내려서자. 갈림길이 있는 1276봉까지 약 1시간 소요되며, 남쪽 능선길로 내려서면 아랫삼거리에 닿으며 산행을 마친다. 영동고속도로 속사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좌회전, 홍천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로 운두령 접근. 고갯마루에 주차장이 있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주문진 또는 강릉행 직행버스로 진부 하차. 진부∼창촌(내면)을 운행하는 버스로 운두령 하차(진부터미널 033-335-6307). 택시(033-335-1050)요금은 2만원. 운두령에 있는 자가용을 회수할 경우에도 이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다. 숙박은 산장민박(033-333-5555)과 계방산 쉼터(033-333-7775)에서 할 수 있다. 음식점도 겸하고 있다.
  • [매향리 투기 광풍] 중개업소 우정읍에만 300여곳 난립

    [매향리 투기 광풍] 중개업소 우정읍에만 300여곳 난립

    “누군데 여기서 두리번 거리우?땅 사려고 그러는 거면 딴 데 가서 알아보슈. 우리집은 안 팔아요.” 지난 4일 경기 화성시 우정읍 매향5리 쿠니 사격장과 이웃한 민가. 눈 앞에 펼쳐진 바다엔 50년 남짓 이어진 포격으로 3분의 1밖에 남지 않은 농섬이 보인다. 몇채 남지 않은 민가 옆으론 4층짜리 모텔과 새로운 건물을 지을 공사장이 어울리지 않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마당에서 메주를 찧고 있던 홍귀남(72·여)씨는 “서울에서 왔느냐.”며 대뜸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홍씨는 “지난해부터 하루에도 서너명씩 찾아와 집 팔라고 졸라대는 통에 귀찮아 죽겠다.”면서 “벌써 우리집과 옆집 빼고는 다 외지 사람들 땅이 됐다.”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투기 붐에 땅값 4배까지 매향리에 땅을 사려는 외지인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2000년 5월 주민 6명이 다친 오폭사건 이후, 육상사격장에서 기총사격이 중지된 8월부터. 지난해 사격장 완전 폐쇄 및 이전, 평화공원 건립 계획 등이 간간이 언론을 타고 흘러 나오면서 부동산 투기는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홍씨네 집과 맞붙은 100여평의 공터는 지금 평당 100만원을 호가한다. 매향1리 주민이 밭을 일구던 이 땅은 5년 전 평당 30만원 정도에 팔렸다. 홍씨는 “원래 주인이 땅을 치고 후회한다더라.”면서 “지난해 밭을 갈아엎고 모텔을 지으려고 했는데 허가가 나지 않아 방치되고 있다.”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매향2리 이장 이정원(45)씨는 “투기꾼들이 몰리면서 전망이 좋은 사격장 옆 바닷가는 2년 사이 3배 정도 땅값이 뛰었다.”면서 “3년 전 평당 10만∼20만원하던 것이 지금은 80만∼90만원까지 치솟은 곳도 있다.”고 전했다. 화옹방조제가 들어서는 매향3리와 매향·석천리에 걸쳐 있는 도로 주변의 땅값도 요동치고 있다. 투기꾼들은 우정읍에 있는 부동산을 통해 위탁거래를 하거나 직접 주민들을 만나 땅을 사들이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공장부지·전원주택지 상담’ 등의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우정읍 일대에만 300여개의 부동산 업소가 몰려들었다. ‘발리모텔’을 운영하는 신옥진(39)씨는 “지역사회이다 보니 실제 땅 소유자와 서울 손님들 사이에서 거래를 터주는 거간꾼이 많다.”면서 “대부분 바람잡이들이지만 이름만 대면 알 만큼 거래를 많이 주도하는 ‘큰손’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매물 나왔다 하면 보름도 못가” “저 폭격 소리만 끝나면 매향리는 대박날 겁니다.” 지난 3일 매향리에서는 여전히 ‘드르르르륵, 퍼버벅’하며 미군 폭격기가 기총(機銃)사격을 해댔다. 사격장의 철조망 안쪽에는 폭격기의 사격연습을 알리는 주황색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지금도 월∼목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80여차례씩 사격이 계속된다. 그러나 ‘땅을 보러온 외지인’으로 행세한 기자에게 부동산업자들은 “땅좀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이미 수년전 사격장 폐쇄 소문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몰려 들었다.”면서 “개발할 만한 땅은 이미 다 팔려 나가 지금은 사실상 끝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매물을 둘러 보는 동안에도 S부동산 주인 이모(54)씨의 휴대전화는 쉴새 없이 울렸다. 그는 “땅을 보러 오는 사람이 하루에도 서너명이 넘는다.”면서 “좋은 매물 하나 보여 주면 다음날 바로 돈다발 들고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4년 전 회사원인 아들의 월급을 모아 모두 땅에 투자했는데 평당 4만원에서 50만원까지 오른 곳도 있다.”면서 “사두면 돈이 되니 매물이 나왔다 하면 보름도 가지 않는다.”고 은근히 유혹했다. 이 지역은 2002년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묶였다. 때문에 화성시민이 아닌 외지인이 대지 250㎡, 논·밭 등 농지 500㎡, 임야 1000㎡ 이상을 구입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씨는 “토지사용계획서를 내 근린생활시설 부지로 허가만 받으면 값이 배로 뛴다.”면서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고 안심시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갖가지 소문도 무성하다.“매향3리 바닷가에 호텔이 들어선다.”,“매립해 조선소를 짓는다.”,“해안선을 따라 새 도로가 착공된다.”는 등 진위를 알 수도 없는 소문들이 또 다른 투기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매향리 투기붐은 화성시뿐 아니라 이웃 도시의 부동산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 정도다. 수원역 근처에서 D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지난해부터 거래가 많아지면서 매향리까지 ‘원정 중개’를 한다.”면서 “곧 사격장이 없어지는 등 호재가 많은 곳이라 거리는 멀어도 중개료가 짭짤하다.”고 설명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주민들은 땅값이 오르는 것이 별로 반갑지 않은 눈치다. 전용농지를 빼고 개발할 만한 땅은 이미 대부분 외지인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자칫 난개발이 이어져 매향리가 갖는 상징성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서려 있다. 매향1리 주민 김복련(64·여)씨는 “1967년에는 함께 굴을 따던 임신 8개월의 새댁이 잘못 떨어진 포탄에 맞아 바로 옆에서 죽는 것도 봤다.”면서 “그렇게 어렵게 지켜온 땅인데 개발이 된다고 한들 이미 원주민들은 그간의 고생에 지쳐 땅이고 뭐고 야금야금 다 빼앗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정원씨는 “날마다 계속되는 사격으로 어장도 망치고 당장 먹고 살 것이 없어 대부분의 주민은 땅 팔아 자식 공부시키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면서 “17년 동안 힘들게 싸워왔는데 정작 사격장이 폐쇄되면 이득은 외지인들이 빼먹게 생겼으니 우리는 그들이 돈을 챙겨 가도록 재주부린 곰일 뿐”이라고 허탈해했다. 물론 치솟는 땅값에 대한 기대감도 교차한다. 매향2리에 사는 하헌향(68·여)씨는 “집 근처에 밭 600평이 있는데 2∼3년만 지나면 몇배로 오를 거라고 하더라.”면서 “그 고생을 하며 살았는데 비싸게만 준다면야 팔 생각도 있다.”고 털어놨다. ●8월 이후 구체적 계획 없어 그러나 정작 사격장 폐쇄 이후의 계획은 물론 폐쇄 자체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우정읍사무소 관계자는 “8월이 돼봐야 정말 폐쇄될지 알 수 있다.”면서 “북한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최고의 입지라는데 쉽게 이전하겠느냐며 지역 주민들도 속으론 반신반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격장이 이전한 이후 부지가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매향리 미공군폭격장 철폐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는 평화박물관과 생태공원 조성 등의 희망을 밝혔지만 화성시와 경기도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말에는 1968년 토지 강제수용으로 헐값에 땅을 넘긴 60여명이 땅을 돌려달라며 청와대와 국방부에 탄원서를 내고 환매청구권을 제기했다. 결과에 따라서는 개인들에게 땅이 매각될 가능성도 있다. 화성시청 지역개발사업단 엄태희씨는 “우선 미군에 공여된 관리권이 국방부로 넘겨져야 하고, 다음에 국방부가 국유지관리계획에 따라 부지 활용방안을 세우게 된다.”면서 “미군과의 협상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어서 남은 절차가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화성 유영규 이효용기자 whoami@seoul.co.kr
  • 거짓말탐지기에 “딱 걸렸어”

    음주운전 도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동승자가 사망하자 처벌을 피하려고 사망자를 운전자로 허위 진술했던 피의자가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 걸렸다. 지난해 10월20일 오전 4시48분, 대구시 동구 지묘동 팔공터널에서 공산댐 방향으로 향하던 옵티마 승용차가 커브길에서 맞은편 차로로 넘어가 전복됐다. 이 사고로 탑승자 3명 가운데 승용차 소유자 차모(28)씨가 그자리에서 숨졌고, 박모(23)씨와 박씨의 애인 권모(20·여)씨는 중경상을 입었다. 박씨와 권씨는 박씨의 동네 선배인 차씨가 술을 먹고 운전했고 자신들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고 진술했다. 차씨와 박씨는 혈중 알코올농도가 각각 만취상태와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0.235%,0.079%로 조사됐다. 그러나 경찰 수사과정에서 의심나는 점이 속속 발견됐다. 숨진 차씨가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 앞유리 밖으로 튕겨 나와 있었고, 차씨 옷 실오라기가 조수석에서 발견됐다. 두번의 조사에서 두번 다 거짓반응을 보인 권씨는 결국 박씨가 음주상태에서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고 털어놨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8) 서산 창리 영신제·위도 원당 띠뱃굿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8) 서산 창리 영신제·위도 원당 띠뱃굿

    조상에게 드리는 차례보다 소중히 여기는 제사가 있다. 사람들은 조상 차례가 당연히 중요하다고 여기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유교적 의례가 철저히 요구될 때도 이곳 민중들은 무속적인 굿을 앞 줄에 놓았다.‘동네 제사’라 할 수 있는 마을굿이 그것이다. 지금도 전국의 바닷가에서는 새해 정초만 되면 동제, 동신제, 당산제 따위의 이름으로 마을지킴이를 모시는 제를 올린다.‘못생긴 놈들은 얼굴만 보아도 반갑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랜만에 똑같이 ‘못생기고’ 낯익은 이웃들이 모여 들었다. 객지로 떠돌다 재산을 몽땅 털어먹고 돌아왔어도, 외항선 선원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어도, 당산은 거기 제자리에 우뚝서서 지친 이들을 넉넉하게 품어 주었다. 서해안의 대표적인 설맞이 마을굿을 찾아나섰다. 충남 서산의 부석면 창리 영신제, 태안군 황도의 붕기 풍어굿, 서천군 서면 마량의 도둔리 당제, 부안군 위도의 원당제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마을굿이 설날을 기해 일제히 열린다. 몸이 하나라서 모두 돌아볼 수는 없는 것이 안타깝다. 다행히 각각의 제마다 시간차가 있어 요령있게 일정을 짠다면 두어 군데 정도는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모진 환경이 만든 작품 ‘창리 영신제’ 충남 바닷가에서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창리 영신제는 어쩌면 모진 환경이 만들어낸 ‘작품’일는지 모른다. 천수만 A·B간척지가 조성될 당시 현대건설 간척본부가 부석면의 끝자락인 창리포구에 자리잡았다. 정확하게 공사 중간지점이라서 몸살을 앓았다. 1982년, 처음으로 포구를 찾아 들어갔을 때 한적했던 포구는 중동 공사현장에서 되돌린 엄청난 중장비 덕분에 흡사 기갑부대의 야전사령부 같았다. 얼굴 맞대고 살던 이들끼리 지내던 영신제에 공사장 잡부를 비롯한 외부인의 얼굴도 보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마을굿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형이 변했지만, 외딴섬에 자리잡아 최소한 300년 이상 자란 소나무들이 장대숲을 이룬 곳이었다. 당산 꼭대기에는 임경업 장군 내외를 모신 영신당이 자리해 포구를 지켜왔다. 대개의 당산이 그러하듯 이곳의 나뭇가지 하나만 건드려도 탈이 난다. 예전에 비하면 영험이 형편없이 추락한 오늘날에도 함부로 나무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다. 섣달 그믐이면 생기복덕을 엄정히 가려서 부정없는 이로 당주를 삼는다. 당주는 부정을 피해 상갓집 문상도 가지 않으며, 추운 겨울에도 얼음물로 목욕재계를 한다. 마을지킴이를 받드는 일인지라 한 치도 마음 놓을 수 없다. 금기는 당주만의 몫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 전체가 성스러운 시간으로 접어든다. 동구와 공동우물에는 금줄을 두르고 황토를 둘러 뿌려 잡귀를 쫓는다. 폭풍 전야의 침묵이라고나 할 고요가 마을을 감싼다. 우스갯소리조차 주고받지 않는다. ●굿당, 에너지 발산하는 해방구 역할 정월 초이튿날, 이윽고 날이 밝으면서 마을 공터에서는 꽹과리 소리 요란하게 새해가 왔음을 알리는 파열음이 터진다. 당줏집 마당에서는 기세를 돋우면서 당줏굿을 친다. 배마다 1개씩 오색기를 앞장 세워 당에 오르는데, 참으로 볼 만한 풍경이다. 당오름 자체가 하나의 경관을 만들어 낸다. 당에 오르면 부정풀이부터 시작해 지토굿, 각시굿, 손님굿, 오방굿 등 각각의 굿거리로 연출되는 영신제가 봉행된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영신제 내내 울려퍼지는 배치기다. 배치기는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며 ‘배에서 치던 소리’.‘연평바다 널린 조기 양주만 남기고 다 잡아들여라, 에~에헤여~에헤에헤.’ 구성진 목소리가 울려퍼지면 ‘칭칭칭칭’ 징소리로 화답하며 밤새도록 그렇게들 논다.‘흑인들은 동일한 곡조를 밤새도록 반복하면서도 지겹지 않게 놀 곤한다.’고 격찬할 때, 잠시 우리의 배치기도 생각해 볼 일이다. 제3세계의 음악이 대개 그러하듯, 그 단순하게 반복되는 곡조만 가지고도 며칠밤을 지새울 수 있는 음악이다. ●“환경이 변하니 우리라도 뭉쳐야죠” 배치기의 신명은 놀이의 해방력을 웅변하며, 엄청난 에너지로 발산된다. 굿당이 해방적 놀이공간으로 변하며 굿놀이 자체가 한판의 열린 신명으로 폭발하는 것. 창리의 영신제가 그러하며 여타 마을굿이 대부분 그러하다. 무엇보다 푸근한 것은 커다란 가마솥에 족히 두어말은 됨직한 떡국을 끓여서 공동체가 나눔의 잔치를 벌인다는 점. 천수만이 막히고 어장이 시들해지면서 더러는 양식업으로 전환하고, 더러는 횟집 운영으로 버티는 까닭에 예전 같은 떠들썩함은 사라졌다. 그래도 면면히 굿의 맥락을 이어감은 주변 환경이 예전 같지 않음에 대한 역반응일 수도 있다.“자꾸 환경이 변해 가니까 우리라도 똘똘 뭉쳐서 지켜야 허지 않겠어유.” 당주를 대물림해 온 김석준씨의 말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당주를 대물림 받았으니, 그이처럼 대물림으로 당주를 맡는 이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지난해까지 당을 지켜왔던 배남복(1924년생)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그 옛날 당제의 전통을 아는 이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다. 천만 다행인 것은 전통이란 게 묘한 것이어서 외압을 받으면 소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전통으로 지속, 발전해 나가는 양면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핵폐기장에 몸살 앓은 ‘위도 띠뱃굿’ 영신제가 간척으로 몸살을 앓아 왔다면, 위도 띠뱃굿도 핵폐기장으로 몸살을 앓았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핵폐기장 수용 여부로 부안 주민들 간에 골깊은 갈등이 빚어졌고 핵폐기장은 끝내 물 건너 갔지만 위도에는 아직도 그 때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았다. 파장금에서 만난 어떤 주민은 “페리호 사건보다 더 큰 상처”라며 머리를 내저었다. 일부 주민들이 핵폐기장을 유치하겠다고 나서면서 육지 주민들과의 갈등은 물론이고 위도 내에서도 패가 갈렸다. 정부야 손을 떼면 그만이지만 계속 그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로서는 엄청난 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격포항에 들어가도 예전처럼 반가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한 주민의 말에서 핵폐기장이 남긴 상처를 어림할 수 있었다. 이렇듯 같은 부안군민이되, 전혀 이질적인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마을제사는 지내야 했으므로 몸과 마음을 추슬렀고 저마다 제기의 먼지를 털어냈다. 섣달 그믐밤에는 모두 모여 장단을 맞추며 손발을 가다듬기도 했다. 어김없이 배치기 소리가 바다로 퍼져나갔다.‘황금 같은 내조기야 어낭청 가래질이야/어디 갔다 인제왔냐 어낭청 가래질이야/만경창파 너른 바대 어낭청 가래질이야/질을 잊어 인제 왔냐 어낭청 가래질이야.’ ●당산 높아 오르는 것만으로도 장관 지도책을 보면 전라도 칠산바다 너른바다 위에 점으로 나타나는 섬들. 위도, 치도, 식도, 상왕도 등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중 가장 큰 섬이 위도로, 칠산어장의 전진기지였다. 파장금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가면 곧장 대리에 이른다. 칠산은 조기잡이 어장으로 유명했던 곳. 지난 시절, 한반도 최대의 어장답게 칠산바다 위도에는 지금도 대리의 높은 당제봉에 원당이 있어 칠산바다를 지켜준다. 원당마누라와 장군서낭, 애기씨 등 12서낭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제관을 뽑아 정월 초사흗날 오색 뱃기를 들고, 풍물을 치면서 무당과 제관, 짐꾼들이 모두 정갈한 마음으로 당에 올라 제를 모신다. 높은 당산에 오르는 그 일만 해도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산을 오르다 보면 대리포구는 물론이고 칠산바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 마을공동체가 신년맞이를 이처럼 집단적으로 맞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성주굿, 산신굿, 서낭굿, 깃굿 등 원당굿을 마치면 배마다 돌아가며 축원 덕담과 풍어를 기원해 준다. 굿이 파하면 하산하여 용왕밥을 던지고서 ‘주산돌기’라 하여 마을의 요소요소 지킴이들에게 고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 때에 맞춰 앞바다에서는 띠배를 만들어 용왕제를 올린다. 띠풀과 짚, 싸리나무 등을 함께 엮어 만든 띠배에는 과일, 떡, 밥, 고기 등 제물을 넣고 허수아비를 여러개 태운다. 물론 돛대도 세우고 닻도 만들어 배 형체를 갖춘다. ●떠나가는 배… 모든 액 싣고 멀리 가기를 띠배는 망망대해로 떠나간다. 저마다 한해 소원을 비는 가운데 온갖 액운을 가득 싣고서 바다로 먼 길을 떠난다. 이때쯤이면 바다가 어둠에 잠겨들고 제축을 끝낸 마을은 다시 일상의 평온함에 묻힌다. 이같은 행위를 띠뱃놀이라 하였으니, 본디는 띠뱃굿이 정확한 명칭이리라. 위도뿐만이 아니라 제주도를 비롯하여 평안도 바닷가에도 이런 유형의 굿놀이가 있었다. 액을 실어보내고, 사해 용왕을 달래서 만선의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려는 신심이 깃들어 있다. 위도 어업의 몰락과 더불어 소박한 민중의 의례조차 점차 사라지고 있다. 마음속으로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부르며, 그 띠배에 핵폐기장 문제를 비롯한 모든 재액도 함께 실려 가기를 기원했다. 창리나 위도 어민이 실제 뱃전에서 불러댈 힘찬 배치기를 언제나 들을 것인가. 영영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니며, 또한 이렇게 마을굿에서나 들어야 하는 것인가. 망연한 바다는 말이 없다.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중선배가 바다 어딘가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은 천수만과 칠산바다에 그 옛날 고기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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