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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의 땅에 몰래 꽃·채소를 심자

    게릴라는 ‘작은 전쟁’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다. 1808년 나폴레옹 보나파트르가 스페인을 침공할 때 벌어진 6년간의 군사적 저항을 표현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소규모 비정규전으로 장기화한 전쟁을 일으키는 게릴라에 왜 평화로운 식물을 가꾸는 가드닝이 붙어 있는 것일까? 게릴라 가드닝(여상훈 옮김, 들녘 펴냄)의 저자 리처드 레이놀즈는 2004년 10월 어느 화요일 새벽 2시에 자신이 사는 10층 아파트의 쓰레기가 가득한 버려진 화단에 잠입(?)해 유기질 비료를 넣고서 빨간 시클라멘과 라벤더, 입이 뾰족뾰족한 캐비지트리 세 그루를 심었다. 이웃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구청이 착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에 엄청난 성취감을 느끼고 친구들과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사진을 찍은 뒤 블로그에 올렸다. 그 후에 인터넷 도메인(www.guerillagardening.org)을 확보했다. 그리고 검색엔진을 돌려봤다. 게릴라 가드닝에 걸리는 웹사이트가 많았다. 그는 자신이 거대한 녹색 흐름의 일부라는 사실에 깜짝 놀았다. 게릴라 가드닝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가. 불법이나 무법적으로, 혹은 합법적이지 않게 남의 땅이나 공유지 등에 꽃과 나무, 채소나 식량 등을 심고 가꾸는 활동을 말한다. 활동의 결과는 도시를 아름답게 하고, 지구 인구의 2분의1을 차지하는 도시 거주자들을 즐겁게 한다. 또한, 게릴라 가드닝 활동에 동참할 경우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동체의 일원이란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도시에 살면서 경쟁만 할 뿐 지난날 공동체가 가졌던 친밀함 등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활동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게릴라 가드닝은 안전할까? 꼭 그렇지 않다. 공권력이나 사유지 소유자,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물리적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1970년대 멕시코에서는 땅 없는 농부들이 게릴라 가드닝을 하고, 땅을 더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중에 농부 100여명이 죽기도 했다. 사람들은 왜 게릴라 가드닝을 할 수밖에 없을까? 저자는 ‘땅이 모자라거나, 내버려진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땅이 모자라면 버려둘 리가 없고, 땅이 내버려진다면 땅이 모자라지 않다는 뜻인데, 이런 모순된 관계가 존재한다. 유한한 땅을 독점한 땅 부자는 불필요한 자본의 투여 없이 부동산 가격이 오르길 바라기 때문에 내버려둔다. 그 땅은 머잖아 쓰레기가 가득한 불모의 땅이 된다. 저자는 ‘쇠스랑과 꽃으로 쓰레기와 싸우자’고 슬로건을 내걸 수밖에 없게 된다. 또 이 토지를 돈이 없어 땅이 모자란 사람들이 점령해 가꾸는 것이다. 브라질의 ‘토지 없는 농촌 노동자 운동’ 단체는 땅을 평화적으로 점유해 곡식을 재배하고 공동체를 유지해낸 끝에 1985년이래 35만 이상의 가구가 점유지에 대한 합법적인 소유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토지 없는 사람들 운동’도 불법적인 점유자 2800만명의 빈곤층에 농업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이쯤 되면 게릴라 가드닝은 해볼 만한 일이다. 저자는 도시계획의 일부로서 진행되는 기계화된 공원이나 녹지의 조성을 거부한다. 그것은 공동체의 삶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주변의 공터를 바라볼 때면 당신은 어떤 꽃이나 채소를 그 터에 심고 싶은지 마음의 욕망을 체크해보길 바란다. 1만 3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방학중 558만명 학교폭력 우편조사?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왕따)이 학생들의 자살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가 전수조사라는 특단의 수단을 동원했다. 전국 초·중·고교생 558만여명 모두에게 우편을 보내 학교 폭력 현황을 물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교육 당국은 물론 경찰과 정치권까지 나서 처벌 일변도의 정책을 쏟아낸 상황에서 뒤늦게 실태조사에 들어간 것이다.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방학 중 예고 없이 진행되는 조사로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정부 측도 전수조사의 회수율을 20%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 폭력의 실태를 파악, 보다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기 위해 전국의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교 3학년까지 558만여명을 대상으로 우편 설문조사를 실시한다고 18일 밝혔다. 우편 발송과 분석은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의 요청으로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맡기로 했다. 설문은 학생이 사는 곳과 학교명·학년·성별까지만 묻는 무기명으로 이뤄지며 최근 1년간 학생이 당한 학교 폭력 피해의 종류와 장소는 객관식으로, 구체적인 사례와 바람은 서술형으로 쓰도록 구성됐다. 피해 종류는 ▲말로 하는 협박이나 욕설 ▲집단 따돌림 ▲강제 심부름 ▲약취 ▲상해·감금·폭행 ▲성폭력 ▲인터넷 채팅·휴대전화·이메일 등을 이용한 폭력 ▲없음 등 8가지 유형 가운데 복수응답이 가능하도록 했다. 설문지는 해당 학생의 가정으로 이달 말까지 발송해 다음 달 10일까지 KEDI 사서함으로 모으기로 했다. KEDI가 다음 달 29일까지 분석하면 교과부·교육청·경찰청은 결과를 토대로 종합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성삼제 교과부 학교지원국장은 “심각한 상황이거나 긴급 조치가 필요한 경우 곧바로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과부는 우편 전수조사를 해마다 1월에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하반기에는 각 시·도 교육청 주관으로 한 차례 더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 폭력에 대한 대책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도 높다. “비용 때문에 실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교과부의 해명이다. 그러나 초·중·고교생의 16%가 학교 폭력으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답할 만큼 상황이 심각한 데다 실제 학생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는데 22억여원의 비용 때문이라는 해명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봤다는 시인일 뿐이다. 또 조사가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교원단체총연합회 측은 “방학 중에 우송된 설문에 학생들이 얼마나 성의 있는 답변을 할지 의문”이라면서 “무기명 조사의 특성상 허위로 다른 학생의 실명을 거론할 우려 등도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학교폭력 주요 설문내용] ■질문 최근 1년간 당한 학교폭력은(복수응답 가능) ①말로 하는 협박이나 욕설(명예훼손·모욕·공갈·협박) ②집단 따돌림 ③강제 심부름과 같은 괴롭힘 ④돈 또는 물건을 빼앗김(약취) ⑤손발 또는 도구로 맞거나 특정한 장소 안에 갇힘(상해·폭행·감금) ⑥성적인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말과 행동 또는 강제로 몸을 만지는 행위(성폭력:성희롱·성추행·성폭행) ⑦인터넷 채팅·이메일·휴대전화로 하는 욕설과 비방(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⑧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없음 ■질문 최근 1년간 학교폭력을 당했다면 주로 어떤 곳에서(복수응답 가능) ①교실 ②운동장 ③화장실 또는 복도 ④그 외 학교 내 장소 ⑤등하굣길 ⑥학원이나 학원 주변 ⑦오락실·PC방·노래방 등 ⑧온라인(인터넷·이메일)과 휴대전화 ⑨공터나 빈 건물·주차장 등
  • 희귀 ‘전자파 과민증’ 앓는 여성, 결국 동굴서…

    일반 사람들이 무심결에 쓰는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과민반응을 보여 동굴에 숨어사는 여성의 사연이 알려져 눈길을 모으고 있다. 프랑스 남부의 베르코르 지역에 사는 앤 커틴(52)은 2009년 1월부터 전자파에 과민증을 보이는 증상이 시작됐다. 휴대전화 가까이에 있거나, 무선 와이파이(Wi-fi)를 지원하는 수신단자 근처에 가면 살이 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심한 두통과 피부 통증 등을 느꼈다. 증상은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그녀는 집이나 사무실 주변에서 멀리 떨어진 공터에 차를 세우고 그곳에서 생활했지만, 생활 곳곳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를 피하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20대 딸과 함께 깊은 동굴로 ‘피신’을 가기에 이르렀다. 커틴과 딸이 사는 동굴 입구에는 ‘휴대전화 사용금지’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동굴 안에는 침대 두 개와 식탁, 티 테이블, 양초가 전부다. 커틴의 딸은 “사람들은 어머니가 미쳤다고 하지만, 전자파 과민증은 이미 공인된 증상”이라면서 “동굴로 이사온 뒤 우리 모두 훨씬 편안한 삶을 살고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자파 과민증’(Electro-magnetic waves Hypersensibility)를 앓는 환자들은 더러 보고된 바 있지만 확실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커틴은 “동굴 밖에서 살 때에는 매일 지옥과 같은 일상이었다. 끊임없이 두통과 통증 등에 시달렸다.”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 동굴에서 살고 있지만, 이전 보다 훨씬 나은 삶”이라고 말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0)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0)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네덜란드 출신의 그림책 작가 레오 리오니의 작품 중에 ‘잠잠이’(최근 ‘프레데릭’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가 있다. 주인공인 새앙쥐 잠잠이는 봄부터 가을까지 햇살 좋은 양지 녘에 쪼그리고 앉아 낮잠만 즐긴다. 일은 안 하고 졸기만 하는 잠잠이를 모두들 불만스러워하지만 잠잠이는 끈질기게 잠만 잔다. 그리고 새앙쥐 마을에 겨울이 찾아왔다. 대지에 찬란하던 빛깔도 요란하던 소리도 모두 사라지고 침묵에 들었다. 새앙쥐들도 지루하게 이어지는 권태를 견디기 힘들었다. 잠잠이가 그때 모두의 앞에 나섰다. 봄부터 가을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모아두었던 빛깔과 소리를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잠잠이는 결국 침묵과 권태의 계절인 겨울에 모두에게 봄의 희망, 생명의 노래를 전해 주는 아름다운 시인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 사람의 마을에 매운 바람이 불어오면 세상은 침묵으로 잦아든다. 하얀 눈까지 소복이 쌓이는 날이면 시골 들녘은 적막이 감돌 만큼 고요해진다.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찾아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들녘이 꼭 그랬다. 찬바람 맞는 게 결코 좋을 수 없는 노인들만 사는 마을이어서 대문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아예 불가능했다. 눈 내리는 단전리 마을에는 들녘의 커다란 느티나무만 홀로 겨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키 20m, 줄기 둘레 10.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다. 사람 없는 들녘에서 나무는 하얗게 침묵으로 잦아드는 겨울의 권태와 적막을 덜어 내기 위해 가물가물 잊혀 가는 옛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림책 속의 새앙쥐 ‘잠잠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도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줄기 안에 켜켜이 쌓아 두었던 많은 이야기를 서리서리 펼쳤다. 나무 이야기는 이곳 단전리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던 400년 전의 옛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단전리는 임진왜란 직후에 도강김씨(도강은 전남 강진의 옛 이름) 가문이 삶의 터전으로 일구고 살아온 오래된 집성촌이다. 마을을 일으키는 중심 역할을 한 이 마을의 입향조(入鄕祖)는 김충로라는 분이다. 산 좋고 물 좋은 자리에 보금자리를 근사하게 일구긴 했으나 그에겐 견디기 힘든 아픔이 있었다. 함께 하지 못한 형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충로의 형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무공을 세우고 전장에서 산화한 김충남이라는 장군이다. 보금자리를 이루기는 했으나 함께해야 할 가족을 잃은 김충로는 설움을 달래지 못했다. ●단전리 입향조가 처음 심고 키운 나무 그가 마을 들녘에 나무를 심은 건 그래서였다. 물론 마을을 처음 일으킨 기념으로 마을 어귀에 나무를 심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오랫동안 크게 자라서 마을에 들고 나는 악한 기운을 막겠다는 뜻도 있고, 마을 상징으로서의 의미도 있었다. 김충로라고 그런 뜻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가 나무를 심을 때에는 전사한 형, 김충남 장군의 넋을 기리자는 생각이 더 컸다. 집성촌인 이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가문의 선조이기도 했으니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무를 심은 김충로도 전쟁터에 나가서 형처럼 목숨을 잃었다. 전사한 형제를 나라에서 선무원종공신으로 제수한 게 그나마 가문의 한을 위로할 뿐이었다. 장군으로 불리던 사람도 그를 기리기 위해 나무를 심은 그의 동생도 장군이 되어 똑같이 전쟁터에서 사라졌다. 들녘의 나무만 주인을 잃은 아픔을 안고 무럭무럭 자랐다. 장군 형제의 넋이 담긴 들녘의 느티나무를 사람들은 그때부터 ‘장군 나무’라고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적어도 한 해에 한 번은 나무 앞에 모였다. 장군 형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해마다 음력 정월 초닷샛날 치른 당산제가 그것이었다. 단전리 당산제는 유난히 즐거웠다.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사람들은 우마제(牛馬祭)를 지냈다. ●애국 충정의 찬란한 기억으로 살아남아 농사의 동반자인 소와 말의 먹이를 나무 뿌리 주위에 가지런히 내려 놓고 소와 말의 건강을 빈 것이다. 우마제 뒤에는 나무가 바라다보이는 공터에 나무를 쌓고 불을 피웠다. 이글거리는 불 가장자리에서는 농악대가 풍물을 쳤고, 뒤따르는 사람들은 흥에 겨워 춤을 췄다. 사람의 풍경을 바라보는 나무도 따라서 즐거웠다. 평화롭게 세월이 흐르던 1950년, 장군의 넋과 장군 나무가 지켜 주는 단전리에 다시 전쟁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마을을 떠났다. 참혹한 전쟁의 폭풍이 지나고서야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멀리 떠난 뒤였다. 그때부터 누가 결정하지도 않았건만 우마제도 풍물놀이도 당산제도 모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단전리에는 전쟁 전에 70가구가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20가구와 일흔 고개를 넘나드는 노인들만 남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입향조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젊은 시절에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한 많은 어른들이다. 여전히 멈추지 않는 세월은 마치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리는 하얀 눈처럼 세상살이의 흔적을 하나둘 덮을 것이다. 노인들만이 알고 있는 마을의 기억도 종작없이 사라질 것이다. 마을에는 하릴없는 적막감이 찾아오고, 견디기 힘든 권태감이 휩쌀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어도 나무는 옛 마을의 영화를 온전히 기억하고 우뚝 서서 찬란했던 옛 마을의 평화로운 빛깔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은 사람들에게 전할 것이다. 마치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에 나오는 새앙쥐 주인공 잠잠이처럼. 글 사진 장성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291. 호남고속국도의 백양사나들목으로 나가서 백양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호남선 백양사역을 조금 지나면 사가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백양로를 타고 5㎞쯤 가면 장성호 관광지에 닿는다. 장성호를 끼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을 3㎞ 가면 북하면 소재지인 약수리에 들어서게 된다. 이 길을 따라 계속 3.5㎞쯤 고갯길을 넘어가면 처음으로 나오는 주유소 맞은편에 나무가 있다. 주유소 근처의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한다.
  • [데스크 시각] 외래 관광객 900만명의 함의/손원천 문화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외래 관광객 900만명의 함의/손원천 문화부 부장급

    박찬훈 추소리 이장에게 굳게 약속했다. 꼭 그의 아쉬움을 지면을 통해 세상에 알려주겠다고.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지역 주민에게 다소간 보탬이라도 된다면 기꺼이 그리 하겠다고 말이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부소담악<서울신문 11월 24일 자 20면> 얘기다. 해당 일자 지면에도 살짝 언급은 했다. 찾아가는 이정표 하나 없다고. 한데, 더 안타까운 건 부소담악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 하나 없는 현실이다. 이는 여행객들이 부소담악의 실체를 명확히 볼 수 없다는 얘기와 맥이 통한다. 부소담악은 멀리서 봐야 제맛이다. 가까이서 절벽들의 근육질 몸매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금강 물줄기를 가르고 있는 광경을 봐야 제대로 완상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박 이장이 아쉬워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전망대를 세우면 된다. 대단한 시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오르는 길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간이 건물이면 족하다. 부소담악 맞은편 군도 변 공터에 세워도 좋겠으나, 최적지는 마을 뒤 양지복호산이다. 여기에도 까닭이 있다. 마을 한편에 양지복호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규 등산로가 아니다. 양지복호산의 배후 산이자 전국적인 등산 명소인 고리산 등반객들 가운데 일부가 알음알음으로 이 루트를 통해 오르내린다. 그런데 문제는 반드시 민가 텃밭과 묘 하나를 끼고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민가는 서울에 살던 한 노부부가 말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마련한 안식처 같은 곳이다. 불행히도 할아버지는 얼마 전 세상을 등졌고, 할머니는 집 옆 텃밭에 봉분을 세웠다. 그런데 이를 알 리 없는 등산객들이 무시로 지나다니자 할머니는 급기야 금줄을 치게 됐고, 등산객들도 슬슬 이를 언짢게 받아들이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마을 앞으로 소박한 등산로 내고 예쁜 이정표 하나 세우면 해결될 일이 분란거리로 커지는 중이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핵심은 ‘국내 관광 인프라 조성’이다. 그 예로 부소담악을 든 것인데, 옥천군청 측엔 안쓰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옥천군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관광 인프라가 잘 조성돼 있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하지만 1000개의 상황을 고려했더라도 한 가지 실수는 나오는 법이다. 외래관광객 숫자가 900만을 넘어섰다. 관광통계 집계가 시작된 1962년 이후 49년 만의 일이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당시 외래 관광객 숫자는 1만 5184명이었다. 외형상 무려 600배 가까이 성장했다. 여전히 불투명하긴 하나, 연내 외래관광객 1000만명 돌파 또한 가능성 쪽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탄력 받은 공을 멈춰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컬링 경기처럼 지속적으로 앞길을 닦아 줘서 어렵사리 이끌어 낸 실적이 관광 대국 도약의 마중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관광 인프라 조성이다. 숙박 시설 등과 더불어 시급히 그리고 꾸준히 개선해야 할 과제다. 핵심은 단순하다. 인트라 바운드, 곧 내 나라 국민들이 내 나라를 구석구석 더 자주, 더 편리하게 돌아보도록 하는 일이다. 내 나라 국민들이 자주 찾지 않는 곳은 외국인들도 찾지 않는다. 누구나 다 아는 관광 경영의 상식이다. 몇해 전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우리가 외국인에게 보여줄 게 뭐가 있느냐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집 주변에 무수히 널려 있는 태권도장을 보여줄 수도 없고, 국기원을 돌아보는 것으로는 관광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나마 볼거리라 할 전북 무주의 태권도공원은 2013년쯤에나 만들어진다. 외국인들이 우리의 국기인 태권도의 진수를 맛볼 공간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택견이 지난달 28일 줄타기, 한산모시와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자, 똑같은 고민을 관광 당국은 해야 한다. 택견에 관한 것을 외국인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설명할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게 관광 인프라 조성이다. angler@seoul.co.kr
  • ‘80세 미만 입장 불가’ 경로당

    여든 살은 넘어야 입장이 가능한 경로당이 등장했다. 충북 보은군은 1억 6000여만원을 들여 보은읍 삼산리 보은군자원봉사센터 옆 공터에 팔순 이상의 고령 노인을 위한 경로당을 전국 최초로 마련, 22일 입주식을 가졌다. 이 고령자 전용 경로당의 이름은 여든 살(산수·傘壽) 이상의 고령자 공간이라는 뜻에서 ‘산수 어르신의 쉼터, 상수(上壽·가장 많은 나이) 사랑방’. 건축면적 62㎡(지상1층)의 아담한 크기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한 2개의 방과 주방, 화장실 등으로 꾸며졌다. 나이 많은 노인들이 이용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문턱을 모두 없앴고, 가스레인지 대신 전기레인지를 달았다. 연료비 부담이 적은 LP가스 보일러를 설치해 난방을 해결하고 단열재는 일반 건물의 두 배를 사용했다. 군이 마을마다 1~2곳의 경로당을 갖추고도 고령자 경로당을 따로 지은 것은 70대가 주류를 이루는 경로당에서 밀려난 고령 노인들의 쉼터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다. 군 주민복지과 김남훈 주무관은 ”60~90대가 경로당을 함께 이용하다 보니,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탓에 서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면서 “고령자들이 60~70대 노인들을 위해 경로당을 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전용 경로당을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보은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별정우체국 반세기-또 다른 50년을 꿈꾼다] (하) 청송 주왕산우체국 가보니

    [별정우체국 반세기-또 다른 50년을 꿈꾼다] (하) 청송 주왕산우체국 가보니

    “청송 하면 사과죠. 사과하면 ‘주왕산우체국’을 빼놓을 수 없고요. 주왕산우체국이 청송 사과를 브랜드화해 지역 경제를 살렸습니다.”(부동면 주민들) 17일 경북 청송 부동면 주왕산우체국. 농민들이 전국으로 배달될 사과 박스를 우체국 인근 공터로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우체국 직원들도 모두 나와 사과 박스를 정리하고, 택배차량에 싣는 데 여념이 없었다. 농민 임성도(60)씨는 “2000년쯤 우체국 성적을 매겼는데, 이곳이 너무 오지여서 주왕산우체국이 전국 꼴찌였다. 지금은 지역특산품 판매로 전국 면 단위 우체국 중 1,2등을 하고 있다.”며 주왕산우체국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산간 오지의 주왕산우체국이 지역특산품인 ‘주왕산사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해 화제를 낳고 있다. 주왕산우체국의 지역특산품에는 고추 등도 있지만 주력은 단연 사과다. 판매의 90%를 차지할 정도다. 사과를 활용한 사과찐빵, 사과소주 등도 인기를 끌고 있으며, 서울, 경기 등 전국에 판매되고 있다. 주왕산우체국은 2000년부터 지역특산품 판매를 시작했다. 임재업(43) 주왕산우체국장은 “2000여 명이 살고 있는 산간벽지에서 수익이 나올 데가 없었다.”며 “우체국 수입도 올리고 농가 소득도 올려주기 위해 특산품 판매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주왕산우체국의 전(前) 국명은 부동우체국(1966년 개국)이다. 지역특산품 판매 활성화를 위해 2002년 6월 주왕산우체국으로 개명했다. “부동우체국 이름으로 사과를 홍보했는데 어디인지 몰라 주문이 안 들어왔어요. 우체국 사상 처음으로 국명을 바꿨습니다. 주왕산우체국으로 바꾸니까 인지도가 상승해 주문량이 배로 늘어났어요.” 임 국장의 개명 뒷얘기다. 국명 전환 이후 연간 10만건의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택배 수익만 매년 3억 3000만원에 달한다. 지역특산품 판매가 우체국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과 재배 농민들(800여명)도 연간 36억원의 소득을 거두고 있다. 임 국장은 “주문이 많이 들어올 땐 주소 입력할 시간조차 모자랄 정도였어요. 농민들과 직원들이 새벽 3시까지 일할 때도 있었습니다. 몸은 고됐지만 정말 보람 있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초창기 농민들은 사과를 15㎏짜리 큰 박스에 포장, 판매했다. 너무 무거워 고령의 농민들이 우체국까지 실어 나르는 것도 힘들었고, 소비자에게 배달되는 데도 2주나 걸렸다. 임 국장은 2005년 5㎏, 10㎏ 등 소규모 포장 박스를 개발했다. 경북지방우정청에서 2200만원을 지원받아 제작한 뒤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배포했다. 큰 호응을 얻으며 소규모 포장 박스가 전 농가에 보급됐다. 3남매 중 막내인 임 국장은 대구에서 학교에 다니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2000년 귀향했다. “워낙 시골이어서 형제들 중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었어요.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처음에는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아버지 밑에서 우체국 일을 거들다 2004년 7월 국장직을 승계했다. “아버지께서 우체국을 물려주시면서 전국에서 제일가는 우체국으로 만들라고 당부하셨어요. 미력이지만 힘닿는 데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 임 국장은 환하게 웃었다. 글 사진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산 채로 묻혔다 구조… ‘끔찍 학대’ 당한 개

    흙과 벽돌 등 폐자재와 쓰레기로 뒤덮인 땅에 묻혀 40시간을 보낸 개가 가까스로 구출됐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4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에 사는 브리타니 스패니얼 종(種)인 ‘제리’는 벽돌과 부러진 나무, 흙으로 뒤덮인 땅속 60㎝깊이에 묻힌 채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한 주민이 제리가 묻힌 공터 옆에서 밤새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며 신고한 뒤, 경찰 수색 끝에 구출됐다. 당시 구출에 나선 한 구조대원은 “매우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차가운 땅속에 묻히는 학대를 당한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면서 “이처럼 심각한 동물학대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제리의 주인은 경찰에게 “개가 죽은 줄 알고 묻었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결국 동물학대죄로 연행됐다. 동물보호센터 관계자는 “제리의 주인은 명백한 동물학대를 저질렀다.”면서 “재판이 끝난 뒤 법적으로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산 채로 거의 이틀간이나 땅에 묻혔다 살아난 제리의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자 네티즌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는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제리의 정확한 건강상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광주 도심 구조물 대신 나무·꽃 채워주세요

    광주 도심 구조물 대신 나무·꽃 채워주세요

    “도심에 더이상 구조물을 세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18일 광주시내 도심을 가로지르는 동구와 남구 일대 광주천변. 교량 주변은 갖가지 콘크리트 구조물과 조형물로 넘쳐난다. 천변로를 산책하는 주민들은 늦가을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쬐기 위해 이리저리 빈틈을 찾기 일쑤다. 서구에 사는 이모(50)씨는 “거리마다 앞다퉈 세워지고 있는 콘크리트나 철골 구조물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힐 지경”이라며 “차라리 공터를 그대로 놔두거나, 기왕에 빈 공간을 채우려거든 나무를 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가 민선4기 당시 수백억원을 투입해 추진한 ‘자연형 하천 정비사업’이 콘크리트 옹벽과 다리,구조물을 만드는 데 치중한 탓이다. 나무나 꽃이 심어져야 할 자리에 대형 조형물 등이 빼곡히 채워졌다. 이런 건축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세월이 지날 경우 ‘도심 흉물‘로 전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각 자치구는 도심에 대형 구조물이나 육교 등을 설치하는 사업에 지금도 열을 올리고 있다. 광주 동구는 상권활성화를 명분으로 충장로1~5가를 투명덮개로 씌우는 ‘충장로 아케이드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2012~2015년 국비 등 모두 291억원을 들여 충장로 1~5가 1.58㎞구간에 아케이드를 조성키로 하고 내년 1월 설계에 들어갈 계획이다. 동구는 인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에 맞춰 이곳 일대를 아시아 최대의 상권으로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여름철 공기 소통과 냉·난방 등 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동구는 앞서 2006년 충장로 5가와 궁동 ‘예술의 거리’ 130m와 300m 구간에 루미나리에를 설치했다가 3~4년 만인 지난해 말 철거했다. ‘도심 흉물’ 논란 때문이다. 수억원의 예산만 낭비한 꼴이다. 서구도 풍암택지지구 주변 금당산과 풍암저수지를 잇는 육교설치를 추진 중이다. 서구는 최근 정부의 교부금 10억원과 구비 17억원 등 모두 27억원을 확보한 뒤 공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이 공사는 현재 김종식 구청장의 선거 공약으로 폭 35m의 도로를 가로질러 세우는 육교다. 광주시가 올 디자인비엔날레 프로젝트로 옛 읍성터 외곽을 따라 세운 10여개의 공공 건축물 ‘광주 폴리’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큰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일부는 세계적 건축가가 설계한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주변 상인을 포함해 일부는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면 도심 흉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광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시가 경전선 폐선부지를 ‘푸른길’로 조성한 사업은 도심을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를 보여준 성공적 사례”라며 “도심의 빈 공간에 구조물보다는 나무를 심어 시민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루이비통 등 600억원대 짝퉁 명품 유통 조직 적발?알박기 수법 동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9일 정품 시가 규모 600억원대의 ‘짝퉁’ 명품 가방과 지갑을 제조하거나 밀수한 뒤 일본에 몰래 수출한 정모(43)씨 등 2명을 상표법 및 관세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박모(46)씨 등 9명을 상표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들은 2005년 10월부터 최근까지 루이비통·샤넬·구찌·프라다·버버리 등의 상표를 붙인 가짜 A급 명품 가방과 지갑 9만 9000여점을 중국에서 수입하거나 국내 공장에서 직접 만들어 국내와 일본에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일본에는 9600여점을 밀수출했다. 조사 결과 짝퉁을 진품의 30% 가격에 판매하고 60억여원의 이익을 남겼다.  중국에서 몰래 들여온 2만~3만여점을 제외한 나머지 제품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박씨 공장에서 제조됐다. 22년 경력을 가진 박씨는 2005년부터 정씨의 주문에 따라 진품과 거의 다름없는 A급 짝퉁을 만들어 납품했다.  특히 일본 밀수출 과정에서는 정식 수출품처럼 꾸미기 위해 다른 정상 수출품의 선적용 상자에 끼워 넣는 속칭 ‘알박기’ 수법을 썼다. 정씨가 짝퉁을 선적용 상자에 담아 1t 화물차에 싣고 공용주차장에 차 열쇠를 꽂아둔 채 주차해 놓으면 선적업자는 물건을 컨테이너 박스의 정식 수출품 사이에 실은 뒤 빈 차만 갖다 놓았다. 경찰은 정씨가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경기 남양주에 수출 선적용 박스포장 및 제습 시설까지 갖춘 초대형 물류창고도 운용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밀수 과정에서 통장 없이 현금으로만 거래한 데다 수금 때문에 한 달에 한 번꼴로 일본에 다녀왔다. 납품 과정에서도 심야에 공터 등에서 직접 만나 물건과 현금을 맞교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는 영업 확장을 위해 경쟁 짝퉁 조직을 의류산업협회 지식재산권보호센터에 제보해 단속을 유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자유 넘치는 뉴욕 ‘反자본 축제’

    자유 넘치는 뉴욕 ‘反자본 축제’

    시위 현장이 아니라 무슨 축제 현장 또는 주말 장터 같았다. 15일(현지시간) 낮 12시쯤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의 주코티 공원. 월가 점령 시위 한 달을 맞아 시위의 발원지인 이곳에 다가섰을 때 살벌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2000명은 훨씬 넘어 보이는 사람들은 하나도 일사불란하지 않았고 자유의 해방구처럼 저마다 다양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기타와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그룹만도 서너 개는 됐고, 토론을 주고받는 그룹도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다. 그외에 짐을 정리하거나 청소하는 사람, 책을 파는 사람, 음식을 나눠 주는 사람, 그림을 그려 주는 사람, 머리를 손질해 주는 사람, 혼자서 피켓을 들고 뭔가를 외치는 사람 등 각자가 무슨 ‘역할극’을 하는 것 같았다. 피켓 내용도 월가의 탐욕을 비판하는 주장에서부터 전쟁반대, 동성애자 차별 반대, 공화당 반대까지 다양했다. 심지어는 성경을 들고 서서 “그리스도만이 구원을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사람, 초점 풀린 눈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공원은 비교적 깨끗했고 빗자루와 세제 등을 담은 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벌링턴대 3학년생 에밀리 슬레이터는 공원에서 노숙하는 시위대가 어디서 씻느냐는 질문에 멋쩍은 듯 웃으면서 “햄버거 가게 등 식당 화장실을 이용한다. 좀 멀리 가면 공공 화장실도 있다.”고 했다. 한켠에서는 여성 2명이 시위대의 머리를 잘라 주고 있었다. 브루클린에서 왔다는 앨리타 애드거(31)는 “오늘 오후 시위대 기자회견이 있다고 하길래 단정하게 보이도록 머리를 손질해 주러 자원봉사를 나왔다.”고 했다. 트로츠키, 엥겔스 등 공산주의 이념 서적을 파는 사람도 보였다. 현금 기부를 받는 코너도 있었다. 시위대 관계자는 “하루 500~600명이 현금 기부를 한다.”면서 “온라인 기부와 식품, 의복 등의 기부를 합하면 하루 수천 명이 기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부받은 옷가지를 골라 입어 보는 손길도 바빴다. 한쪽에서는 샌드위치, 샐러드, 과일 등 기부받은 음식의 배식이 질서 있게 이뤄지고 있었다. 광장 주변에서는 음식물을 파는 잡상인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공원 안의 다양한 모습은 아랑곳없이 가로 50m, 세로 100m 크기의 공원 둘레를 따라 수십 명의 시위대가 반복적으로 돌며 “하루 종일, 1주일 내내 우리는 월가를 점령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경찰차 수십 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 공원 주변에 ‘주둔’해 있었지만, 시위대와의 마찰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시위대가 공원 둘레를 원활하게 행진할 수 있도록 경찰이 길을 터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코티 공원은 이제 뉴욕의 ‘명물’이 된 듯했다. 시위대로부터 피켓을 빌려 기념사진을 찍거나 아예 시위대와 나란히 서서 손으로 브이(V) 자를 그리며 사진 촬영을 하는 관광객도 흔했다. 시위대는 익살스러운 옷차림과 밝은 표정으로 관광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주코티는 말이 공원이지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좀 널찍한 공터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 듯싶었다.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작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지금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거센 바람의 진원지라는 사실이 선뜻 실감나지 않았다. 글 사진 뉴욕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농촌지역 폐비닐 버릴 곳이 없어요”

    “농촌지역 폐비닐 버릴 곳이 없어요”

    농촌지역에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농사용 폐비닐 공동집하장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11일 환경부 등에 따르면 전국 농촌에서 매년 발생하는 농사용 폐비닐을 효율적으로 수거·보관하려면 공동집하장 1만 88곳이 필요하다. 또 2006~2010년 5년간 연평균 전국의 폐비닐 발생량은 33만 4000여t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06년 35만 7000여t, 2007년 34만 1000여t, 2008년 32만 6000여t, 2009년·2010년에 각 31만여t 등이다. 그러나 공동집하장이 설치돼 운영 중인 곳은 적정량의 22% 정도인 2206곳에 그치고 있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873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 296곳, 강원 250곳, 경남 236곳, 경북 180곳 등이다. 이마저도 80% 이상이 노지(露地)여서 보관 중인 폐비닐이 바람에 어지럽게 날리고 있는 형편이다. 민원이 잦고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이처럼 폐비닐 공동집하장이 많이 부족한 이유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폐비닐 등 농촌 폐기물을 수거·처리해야 할 지방자치단체들이 집하장 설치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어서다. 농가들은 사용했던 폐비닐을 제대로 수거하지 않거나 들판 곳곳에 방치하고 있으며, 특히 상당수 농가는 폐비닐을 불법 소각 또는 매립해 경관 훼손과 함께 환경오염을 부추기는 실정이다. 농가의 일손 부족도 한 이유가 된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서 수거되지 않은 폐비닐은 4만 1400여t으로 추산된다. 폐비닐 민간 수거업자들도 폐비닐의 수거·운반을 위해 대형 차량을 몰고 마을 곳곳의 임시 야적장을 돌아다녀야 하는 이유 등으로, 폐비닐을 제때 수거하지 못하고 있다. 한 수거업자는 “비싼 기름값에 견줘 폐비닐 수거량이 적으면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적정량 이상이 마을 공터 등에 모인 것을 확인한 뒤에야 수거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폐비닐 수거 업무는 지난해까지 한국환경자원공사가 맡았으나, 올해부터 민간에 이양됐다. 따라서 농가와 환경단체들은 환경부와 지자체들이 폐비닐 공동집하장 설치를 위한 관련 예산을 조속히 확보해 시설 확충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지자체 관계자는 “폐비닐 공동집하장을 자체 설치하려면 열악한 지방재정에 비해 많은 예산과 민원이 수반될 수밖에 없어 어려움이 많다.”면서 “국비가 지원되면 사업 추진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2011 노벨문학상 발표] 스웨덴의 ‘말똥가리 시인’… 세상을 관조하다

    [2011 노벨문학상 발표] 스웨덴의 ‘말똥가리 시인’… 세상을 관조하다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 출간된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80)의 시집 ‘기억이 나를 본다’(들녘 펴냄)의 표제작이다.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스웨덴의 국민시인 트란스트뢰메르는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서구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말똥가리 시인’이란 별명처럼 정치적 다툼보다는 북극의 얼음이 해빙하는 곳,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화해와 포용의 지역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북구의 투명한 얼음과 끝없는 심연, 영원한 침묵처럼 시인은 세상을 관조하며 일 년에 평균 네댓 편의 시를 써냈다. ●김성곤 교수 “삶의 통찰로 현대시 새 길” ‘말똥가리 시인’이란 별명은 높은 시점에서 지상 자연세계의 자세한 일에 초점을 맞추는 시 세계 때문에 붙여졌다. 꼼꼼한 거시주의 혹은 거시적 미시주의는 그의 특징적인 시작법이다. 트란스트뢰메르는 언론인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의 이혼 뒤에 아버지와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주로 섬에서 지냈던 트란스트뢰메르는 고고학과 자연에 매혹되어 탐험가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시인과 심리학자로 동시에 활동한다. 2004년 ‘기억이 나를 본다’가 한국에서 출간될 때 트란스트뢰메르는 1990년에 닥친 뇌졸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 뇌졸중으로 한동안 반신마비에 빠져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어판 시선집을 낸다는 편지에 흔쾌히 승낙 의사를 표시한 뒤, 영역본 시집을 주로 참조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공터에 /신문지 한 장이 몇 달째 누워 있다. 사건을 가득 담고 /빗속 햇빛 속에 밤이나 낮이나 신문은 그곳에서 늙어간다 /식물이 되어 가는 중이고, 배추머리가 되어 가는 중이고, /땅과 하나가 되어 가는 중이다. / 옛 기억이 서서히 당신 자신이 되듯.” ‘역사에 대하여’란 그의 시에서 알 수 있듯 트란스트뢰메르의 시적 공간은 무척이나 광대하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 탐구가 그의 시의 주요 영역이기도 하다. ●“종교적 경사 심하다” 비판도 중기 작품은 자연세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깊은 사색이 투영돼 있다. 특히 천상과 지상과 지하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두드러진다. 시공을 초월하는 자유분방함은 기독교 신비주의와 긴밀히 연관된다. 이런 점 때문에 “종교적 경사가 심하여 반대로 정치사회적 맥락이 거세되었다. 특히 눈앞의 정치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트란스트뢰메르는 이런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시 세상을 구축했으며 ‘침묵과 심연의 시’ 흐름을 주도했다. 그렇다고 트란스트뢰메르가 시에서 정치사회적 발언을 전혀 내비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오의 해빙’이란 시에는 “하지만 소음의 스커트 자락으로 예(禮)를 갖춰 인사하는 제트기가 /땅 위의 정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시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제3의 길을 걸었다고 평가받는 시인은 중용의 인생관을 구현하고자 했다. ‘100%’란 표현을 극단적으로 혐오한다는 시인의 말에서 이 같은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신비스러운 진리의 길을 올곧게 따라가는 것이 똑바로 선 인생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시인인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은 독일어, 핀란드어, 헝가리어, 영어 등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스웨덴 작가로는 1974년 수상한 시인 H 마르틴손에 이어 37년 만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 세계적인 문학상도 다수 받았다. ●‘기억이 나를 본다’ 국내 유일 출간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은 사과나무, 벚나무, 호수, 잔디밭, 햇볕, 얼음, 눈, 붉은 벽돌집 등 시에 등장하는 소재만으로도 북유럽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스웨덴의 차갑고 투명하며 깨끗한 자연 속에서 시인은 우리가 모두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 냈다. 시인의 딸 파울라 트란스트뢰메르는 한 외신과의 전화통화에서 “아버지가 수상 사실을 차분히 전해 듣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길섶에서] 토란 농사/최광숙 논설위원

    해가 어둑어둑해지면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셨다가 저녁이 돼야 귀가하시는, 반복되는 그 일상은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 계속됐다.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다니셨는데, 어머니의 그런 일과는 예전에 살던 우면산 자락의 공터를 일궈 농사를 지으면서부터다. 처음 고추밭을 일구시더니 자신감을 얻으셨는지 점차 영역을 넓혀 나갔다. 산 아래의 한 사찰 인근 텃밭에는 토란과 상추·쑥갓 등을 심었고, 등산로 입구에는 고구마까지 심었다. 특히 토란밭을 아끼셨는데, 밭 둘레에 작은 돌을 쌓아 예쁘게 꾸몄다. 쓸모없던 땅뙈기가 어머니의 부지런한 손길로 나날이 꽃밭처럼 변신하는 과정은 놀랍기만 했다. 어머니가 토란 농사를 하기 전에는 커다란 연잎 모양의 토란을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달걀 모양의 토란으로 국도 끓이지만 토란 줄기는 잘 말렸다가 육개장을 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가을철 토란을 볼 때면 농사일에 푹 빠졌던 어머니가 더욱 생각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7)예천 삼강주막 회화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7)예천 삼강주막 회화나무

    태백산 황지연못에서 부산 앞바다까지 사람살이의 온갖 애환을 품어 안고 1300리를 흐르는 낙동강 줄기에 이 땅의 마지막 주막이 아직 남아 있다. 세 개의 강물이 하나로 만나는 곳이어서 삼강(三江)이라 불리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다. 안동 하회마을을 돌아 나온 낙동강, 회룡포를 휘감고 뻗어 온 내성천, 죽월산에서 흘러 내려온 금천, 그렇게 세 줄기의 강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삼강주막엔 이제 전설이 된 ‘주모’가 살아 있었다. 마흔 살부터 생을 마친 여든아홉 살까지 ‘주모’라는 이름으로 주막을 지켜온 유옥연 노파는 2005년 시월 초하루에 저세상으로 돌아갔다. 주모가 세상을 떠난 뒤 주막은 크게 바뀌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비스듬히 기울었던 오두막은 헐어내고 기둥을 다시 세우고 지붕도 초가로 바꿨다. 천장도 조금 높였다. 그래 봐야 여전히 앙증맞다. 경북도는 민속문화재 제134호로 지정했다. ●세 줄기 강 만나는 주막 곁에 우뚝 주막 앞으로 펼쳐졌던 공터에는 옛 나루터의 저잣거리를 재현해 누구라도 찾아와 편히 쉴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삼강 나루터의 오래전 기억을 갖고 있는 마을 노인들은 새 저잣거리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주막 곁의 커다란 회화나무가 바라다보이는 둑방 평상에 앉아 강바람 쐬는 걸 더 좋아한다. “주모 살아 있을 때에도 여기에 멍석을 깔아놓고 쉬었어. 강바람이 좋잖아. 얼마 전에 멍석이 못 쓰게 돼서 마을에서 이 평상을 놓았지. 나는 아침에 해 뜨면 곧바로 여기 나와서 저 나무한테 말부터 붙이지.” 노을 지는 삼강주막 옛 나루터 자리의 평상에 앉아 옛날 주막에서 그랬던 것처럼 술 한잔에 목을 축이던 정강섭(80) 노인은 다짜고짜 나무 이야기를 꺼낸다. 나무 빼고 변하지 않은 게 없는 풍경에서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까닭이다. “나무가 무슨 말을 하겠나? 대답을 하긴 하는데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설렁설렁 가지를 흔들어대는 거야. 그게 다 내 말을 알아 들었다는 신호고 대답이지,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게 아니라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흔들흔들 춤추듯 나무 시늉을 내는 노인의 이야기에는 술기운 탓인지 신이 들어 있다. 이어서 누구라도 삼강주막에 오면 먼저 나무에게 말을 붙여 봐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250년 세월 간직한 삼강마을의 쉼터 노인이 바라보는 삼강주막의 나무는 ‘학자수’ 혹은 ‘선비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회화나무다. 나루터 주막의 야단법석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을 듯한 나무다. 250살쯤 된 삼강주막 회화나무는 키가 15m쯤 되는 큰 나무다.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는 5m인데, 그 부분에서 줄기는 7개의 큰 가지로 나눠지면서 넓게 펼쳐졌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게 퍼진 것도 여느 회화나무와 다를 게 없다. 앙증맞은 크기로 오도카니 서 있는 주막은 넉넉하게 펼쳐진 회화나무의 품 안에 쏙 들어갈 듯하다. 주막은 그래서 더 아늑해 보이고 나무는 실제 크기보다 훨씬 우람하고 높아 보인다. 나이도 그렇다. 얼핏 봐서는 300살은 넘어 보인다. 아마도 거의 모든 줄기에 잔뜩 피어오른 초록 이끼에 얹힌 세월의 무게가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지 싶다. 삼강 나루터가 한창이던 시절에 이 나무는 나룻배를 탈 순서를 기다리는 나그네들이 햇볕을 피하며 쉬던 그늘이었을 것이다. 주막이 생긴 뒤로는 주막의 앞마당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던 정자나무이기도 했을 터다. 나무 그늘에는 어김없이 술꾼들의 거방진 술판이 흥겹게 벌어졌을 거다. 그러나 나루터가 사라지고 강변에 둑방을 높이 쌓아 강바람을 막아버린 지금 회화나무는 주막과 함께 그저 ‘오래된 나무’라는 근사한 볼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됐다. “회화나무가 주막보다 훨씬 먼저지. 옛날부터 나루터에 있던 나무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저 나무 그늘에 기대어 주막을 지은 거지. 주막은 한 100년밖에 안 됐거든. 이 나루터가 인근에선 제일 컸어.” 주모 유옥연 노파가 살아 있던 몇 해 전만 해도 나무 아래에는 널찍한 평상이 있었고, 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마을 사람들이 이 평상에 모여들어 흙 묻은 손으로 주모 유 할머니가 내놓는 음식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곤 했다. 음식이래 봐야 고작 막걸리와 소주, 라면과 김치가 전부였지만 잊히기 어려운 살가운 풍경이었다. “여기가 우리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야. 집은 잠자러 가는 안방이지. 이 주막을 마을 사람들이 번을 정해서 매일 밤을 새우며 지키기는 하는데…….” 말꼬리를 흐리는 정 노인은 새로 고쳐 지은 주막 담벼락 안팎의 낙서들이 못마땅하다는 눈치다. 노인의 말대로 주막의 흙담에는 누가 누구와 찾아왔다는 식의 유치한 낙서들이 빽빽하다.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이다. ●주모 살았을 적엔 언제나 흥겨운 술판 나룻배와 주막, 주모와 소금 상인, 모두가 지금은 낯선 낱말이다. 나룻배가 끊긴 건 30년쯤 전이고, 그때 주막 앞으로 불어오던 강바람도 거대한 둑방에 가로막혔다. 나루터 주막의 옛 풍경은 사라지고 삼강주막은 민속문화재이자 관광지로 태어났다. 그러나 주모가 김치 국물 묻은 손으로 건네주던 라면 냄비의 유정한 맛은 사라졌다. 그나마 한 그루의 회화나무가 아니었다면 삼강주막은 철 지난 영화 세트장처럼 더 살풍경했을지 모른다. 그렇다.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어서 삼강주막은 피로하고 지쳤을 때 한번쯤 찾아가 쉬어봄 직한 곳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글 사진 예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고장난 헬기 조종해 골목길에 비상 착륙 화제

    고장난 헬기 조종해 골목길에 비상 착륙 화제

    헬기가 집앞 골목길에 비상착륙한다면? 황당한 비상착륙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 골목에 비상착륙하면서 헬기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지만 기적적으로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스페인 카디즈 지방의 산타마리아라는 곳에서 18일 오후 5시쯤(현지시간) 발생한 사고다. 사진촬영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독일 사진사들을 태우고 뜬 헬기가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장을 일으켰다. 당시 헬기가 날던 곳은 산타마리아의 주택가. 조종사는 사고가 나더라도 피해는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공터를 찾았다. 하지만 헬기가 내려앉을 만큼 넉넉한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조종사는 인적이 없는 골목에 착륙을 시도했다. 골목의 폭은 불과 4m. 결심이 선 조종사는 신기에 가까운 조종술로 골목에 헬기를 내려앉혔다. 양편으로 마주보고 있는 주택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 헬기 착륙을 목격한 한 청년은 “헬기가 다급하게 뭔가를 찾다가 골목에 내려앉았다.”면서 “큰 사고가 날 줄 알았는데 아슬아슬하게 주택들을 피해 길 가운데 쓰러지면서 착륙했다.”고 말했다. 헬기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승객 3명이 다쳤지만 큰 부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스페인 언론은 “뛰어난 비행솜씨가 참사를 막았다.”며 헬기를 운전한 조종사에게 박수를 보냈다. 사진=에페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갈 길 먼 한국 아동보호 시스템

    갈 길 먼 한국 아동보호 시스템

    우리 주변 어두운 곳에서는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 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아동 학대는 선진국, 후진국을 떠나 어디든 존재한다. 문제는 아동 학대가 일어나기 전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 실제로 학대가 일어났을 때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있다. 30일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되는 ‘시사기획 KBS 10’에선 학대로 고통받는 우리 아이들의 실태를 살펴보고, 학대를 막기 위한 사회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 본다. 지난 1월, 서울 화양동 공터의 쓰레기 더미에서 3살 남자 아이의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 수사 결과 아버지가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뒤 갖다 버린 것으로 밝혀졌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주변에 계속 들려왔지만, 누구 하나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의 마지막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화장되어 유골로 뿌려지기까지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작진은 아이의 장례가 치러진 장례식장 직원을 만나 장례 과정의 이야기에 대해 알아봤다. 2007년 영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계부의 폭행으로 숨진 2살 피터는 ‘베이비 P’로 영국인들에게 더 잘 알려졌다. ‘베이비 P’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영국 사회 전체와 언론이 들끓었다. 책임자들은 해임됐고,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가 작성됐다. 아동보호 제도에 대한 즉각적인 점검이 이뤄졌고 관련 규정이 바뀌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베이비 P’ 추모비 앞에는 꽃이 놓이고 있다. 제작진은 영국 현지에서 ‘베이비 P’ 사건과 영국의 아동보호 시스템을 직접 취재했다. 우리나라 사정은 어떨까. 한국에선 아동학대 신고전화 1577-1391이 운영되고 있다. 제작진은 한 달 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 아동 학대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그 결과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아동 보호 업무 대부분은 민간기관에 위탁돼 있다. 학대 현장 조사와 치료 프로그램 운영 등 주된 책임이 지방 정부에 있는 영국과는 크게 다르다. 학대받은 아동들에게는 그에 맞는 심리 치료, 발달 치료 등 전문적인 치료 서비스를 해야 하고 가족 모두를 포함하는 그룹 치료도 절실하다. 하지만 치료 서비스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전국 44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정규직 임상치료사가 배치된 곳은 32곳이며 나머지는 비정규직으로 전문 자원봉사자 등이 치료하고 있다. 그나마 치료 환경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어서 치료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8) 치밀한 남편 ‘전류반’은 못 숨겼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8) 치밀한 남편 ‘전류반’은 못 숨겼네

    “거기 119, 119죠? 저, 저희…어머니가 목을 매셨는데….” 2006년 5월 25일 새벽 4시 경기 시흥시 신천동의 한 아파트. 119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갈랐다. 사망자는 당시 56세의 주부 A씨. 그는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안방에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목을 매 숨진 이를 처음 발견해 바닥에 눕힌 것은 남편 B씨(56)였다. “1시간쯤 전에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작은방 문에 목을 매 죽어 있더라고요. 손자들 놀라고 달아 놓은 그네용 철봉에 끈을 묶었더군요. 목 뒤 가운데에 매듭이 있었고 두 발이 공중에 5㎝ 정도 떠 있었어요.” 급히 줄을 끊어 안방에 눕혔는데 한밤에 시신과 함께 있자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이불을 덮어 놓고 분가한 아들에게 급히 연락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차분하게 상황을 증언했다. 아내의 자살 동기를 묻는 경찰에게 남편은 “나한테 맞은 게 분해서 자살한 것 같다.”고 했다. 남편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사건 발생 몇 시간 전인 5월 24일 오후 10시쯤 부부싸움을 했다. 남편은 이 과정에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주워 온 플라스틱 막대기로 아내를 때렸다. 그러고는 화가 나서 집을 나갔다가 새벽 3시쯤 돌아와 보니 아내가 숨져 있었다고 했다. 집 안에는 길이 50㎝ 남짓한 플라스틱 막대기와 부인이 목을 맨 낡은 나일론 끈이 놓여 있었다. 남편은 나일론 끈은 집에서 보던 게 아니라고 했다. A씨의 목 주변에는 끈 자국이 뚜렷했다. 턱 아래부터 시작된 자국은 목덜미와 턱을 따라 비스듬히 위로 올라가 있었다. 부인의 얼굴에는 심한 울혈이, 양 눈꺼풀에는 많은 일혈점이 보였다. 전형적인 질식사의 흔적이었다. 얼굴, 목, 팔 등에서는 붉은색을 띤 타원형의 크고 작은 상처가 발견됐다. 남편 진술대로라면 부부싸움 때 막대기로 맞은 상처였다. 모두 18곳. 하지만 사인으로 보기에는 상처가 너무 작았다. 검안의는 일단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1차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것은 나중에 있을 대반전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보조장치에 불과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는 타살된 것이고 범인은 남편이었다. # 완전의사에선 없어야 할 울혈과 일혈점 억울한 죽음이 자살로 묻혀버릴 뻔한 것을 막아준 사람은 부검의였다. 그는 시신의 상태와 정황이 어딘지 모르게 아귀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시신 속 일혈점과 울혈에 주목했다. “목격자(남편)는 목을 맨 부인의 발이 허공에 5㎝ 떠 있었다고 했죠. 매듭은 목 뒤에 걸려 있었고…. 근데 이상해요. 이렇게 교수형 당하는 사람처럼 죽으면 질식사와 달리 울혈이나 일혈점이 나타나지 않는 법이거든요.” 법의학에서는 A씨처럼 정확하게 목을 매 죽는 것을 ‘전형적·완전의사’(縊死)라고 말한다. 뇌로 가는 혈류가 순간적으로 막히는 데다 몸 전체가 공중에 떠 하중이 온전히 목에 걸려 시신의 얼굴 부위가 창백하게 변한다. 피가 쏠리지 않으니 당연히 일혈점도 울혈도 나타나지 않는다. 부검의는 몸에 남은 상처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막대기에 맞아서 생긴 상처는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화상이나 탕상(湯傷·물이나 증기에 데인 상처)에 가까워요.” 수사진의 시선은 남편을 향했다. 지금까지 그가 해온 진술이 모두 거짓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그를 다그치려면 뭔가 물증이 있어야 했다. 수사진은 아파트 인근을 이 잡듯이 뒤졌고, 그 노력은 이내 결실을 맺었다. 아파트에서 좀 떨어진 공터에서 집에 있던 플라스틱 막대기와 나일론 끈의 나머지 부분을 발견한 것. 집에서 나온 막대기나 나일론 끈과 절단면도 정확히 일치했다. “가만 있자, 남편은 막대기를 이곳 공터가 아닌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주웠다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여기서 목맬 때 쓴 나일론 끈까지 발견되고….” 일반적으로 목을 매는 사람들은 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물건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자살을 결심한 아내가 한밤 중 칠흑같이 어두운 공터까지 와서 어렵사리 끈을 찾았다는 얘기다. 이게 말이 되는가. 형사와 남편의 피 말리는 두뇌 게임이 이어졌다. 조사 8시간째. 심리적인 불안감을 내비치는 남편 앞에 경찰이 그동안 감춰두었던 증거를 내밀었다. 공터에서 발견한 플라스틱 막대기와 나일론 끈이었다. 남편은 고개를 떨궜다. # 전기도 흔적 남기는 걸 몰랐던 남편 사건은 엽기적이었다. 불행의 씨앗은 아내의 외도에 대한 남편의 망상증이었다. 남편은 증세가 차츰 심해지더니 급기야 ‘아내가 밥에 독을 타 나를 죽이려 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됐다. 결국 남편은 아내가 자기를 죽이기 전에 먼저 죽이기로 결심했다. 범행은 치밀하게 준비됐다. 그는 헤어드라이어 끝을 잘라 빼낸 전선과 나무막대기 등으로 간이 전기 충격기를 만들었다. 과거 철물점을 운영하면서 배운 지식을 총동원했다. 범행에 쓸 나일론 끈과 플라스틱 막대기도 준비했다. 막대기는 전기 충격 때문에 아내 몸에 생길 상처를 맞아서 생긴 것처럼 위장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날 밤 남편은 TV를 보는 아내 뒤로 다가가 모두 9차례 전기 충격을 가했다. 아내가 기절하자 나일론 끈으로 그녀의 목을 매달았다. 15분 후 아내가 죽은 것을 확인한 그는 살인의 흔적을 지운 뒤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결백을 확인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뒤늦게 밝혀진 것이지만 부인의 몸에 남은 상처는 전류반(電流斑)이었다. 데인 상처와도 비슷한 이 자국은 최초 전기가 몸에 들어오고 나온 곳에 각각 흔적을 남긴다. 피부 가장자리가 올라와 있어 마치 분화구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전류의 세기가 약하거나 몸에 물기가 있다면 반점처럼 작은 자국만을 남긴다. 특히 남편은 상처를 닦아냄으로써 경찰의 감식을 한층 어렵게 했다. 이렇게 흔적이 약할 때는 피부에 철 등의 금속성분이 묻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감전된 피부에는 순간적으로 금속 성분이 녹아서 눌어붙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기도 흔적을 남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아기 4명 버린 비정한 엄마

    5년 동안 무려 4명의 남자 아기를 낳자마자 바로 내다 버린 비정한 어머니가 경찰에 잡혀 충격을 주고 있다. 경남 남해경찰서는 19일 지난달 생후 나흘밖에 안 된 남자 아이를 집근처 공터에 버린 혐의(영아유기)로 불구속 입건한 정모(38)씨를 조사한 결과 정씨가 이전에도 3명의 아기를 출산한 뒤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내다 버린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지난 7월 24일 오후 2시 40분쯤 집 근처의 남해군 모 사회복지회관 화장실에서 혼자 출산한 남자아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인근 공터에 버렸다가 비닐봉지를 산 마트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모습이 찍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정씨를 입건하고 정씨의 구강 세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2006~2011년 남해에 버려진 남자 아기 3명과 유전자(DNA)를 대조한 결과 정씨가 이들 아이 3명 모두의 생모임이 확인됐다. 정씨는 2006년 8월과 2008년 8월, 2010년 5월에도 자신이 낳은 남자 아이를 집 근처에 있는 종교단체 현관과 교회 주차장, 어린이집앞 등에 내다 버린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아기 3명은 모두 복지기관을 거쳐 입양됐다. 현재 초·중등학생인 2남 1녀를 키우고 있는 정씨는 경찰에서 “아이가 늘어나면 양육하기가 힘들어 태어나자 마자 버렸다.”고 말했다. 한편 정씨의 남편은 지금까지 “아내가 아이들을 내다 버린 사실뿐 아니라 임신했던 사실조차 몰랐다.”고 진술했다. 남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의처증 남편, 아내 몰래 헤어드라이어 꺼내더니…

    의처증 남편, 아내 몰래 헤어드라이어 꺼내더니…

    “거기 119, 119죠? 저, 저희…어머니가 목을 매셨는데….” 2006년 5월 25일 새벽 4시 경기 시흥시 신천동의 한 아파트. 119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갈랐다. 사망자는 당시 56세의 주부 A씨. 그는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안방에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목을 맨 시신을 처음 발견해 바닥에 것은 남편 B씨(56)였다. “1시간쯤 전에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작은 방문에 목을 매 죽어 있더라고요. 손자들 놀라고 달아 놓은 그네용 철봉에 끈을 묶었더군요. 목 뒤 가운데에 매듭이 있었고 두 발이 공중에 5㎝ 정도 떠 있었어요.” 급히 줄을 끊어 안방에 눕혔는데 한밤에 시신과 함께 있자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이불을 덮어 놓고 분가한 아들에게 급히 연락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차분하게 상황을 증언했다. 아내의 자살 동기를 묻는 경찰에게 남편은 “나한테 맞은 게 분해서 자살한 것 같다.”고 했다. 남편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사건발생 몇시간 전인 5월 24일 오후 10시쯤 부부싸움을 했다. 남편은 이 과정에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주워 온 플라스틱 막대기로 부인을 때렸다. 자기는 화가 나서 집을 나갔다가 새벽 3시쯤 돌아와 보니 아내가 숨져 있었다고 했다. 집안에는 길이 50㎝ 남짓한 플라스틱 막대기와 부인이 목을 맨 낡은 나일론 끈이 놓여 있었다. 남편은 나일론 끈은 집에서 보던 게 아니라고 했다. A씨의 목 주변에는 끈 자국이 뚜렷했다. 턱 아래부터 시작된 자국은 목덜미와 턱을 따라 비스듬히 위로 올라가 있었다. 부인의 얼굴에는 심한 울혈이, 양 눈꺼풀은 많은 일혈점이 보였다. 전형적인 질식사의 흔적이었다. 얼굴, 목, 팔 등에서는 붉은색을 띤 타원형의 크고 작은 상처가 발견됐다. 남편 진술대로라면 부부싸움 때 막대기로 맞은 상처였다. 모두 18곳. 하지만 사인으로 보기에는 상처가 너무 작았다. 검안의는 일단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1차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것은 나중에 있을 대반전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보조장치에 불과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는 타살된 것이었고 범인은 남편이었다.   ■ 완전의사에선 없어야 할 울혈과 일혈점 억울한 죽음이 자살로 묻혀버릴 뻔한 것을 막아준 사람은 부검의였다. 그는 시신의 상태와 정황이 어딘지 모르게 아귀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시신 속 일혈점과 울혈에 주목했다. “목격자(남편)는 목을 맨 부인의 발이 허공에 5㎝ 떠 있었다고 했죠. 매듭은 목 뒤에 걸려 있었고…. 근데 이상해요. 이렇게 교수형 당하는 사람처럼 죽으면 질식사와 달리 울혈이나 일혈점이 나타나지 않는 법이거든요.” 법의학에서는 A씨처럼 정확하게 목을 매 죽는 것을 ‘전형적· 완전 의사(縊死)’라고 말한다. 뇌로 가는 혈류가 순간적으로 막히는 데다 몸 전체가 공중에 떠 하중이 온전히 목에 걸려 시신의 얼굴 부위가 창백하게 변한다. 피가 쏠리지 않으니 당연히 일혈점도 울혈도 나타나지 않는다. 부검의는 몸에 남은 상처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막대기에 맞아서 생긴 상처는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화상이나 탕상(湯傷·물이나 증기에 데인 상처)에 가까워요.” 수사진의 시선은 남편을 향했다. 지금까지 그가 해온 진술이 모두 거짓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그를 다그치려면 뭔가 물증이 있어야 했다. 수사진은 아파트 인근을 이잡듯이 뒤졌고, 그 노력은 이내 결실을 맺었다. 아파트에서 좀 떨어진 공터에서 집에 있던 플라스틱 막대기와 나일론끈의 나머지 부분을 발견한 것. 집에서 나온 막대기나 나일론끈과 절단면도 정확히 일치했다. “가만있자, 남편은 막대기를 이곳 공터가 아닌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주웠다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여기서 목 맬 때 쓴 나일론끈까지 발견되고….” 일반적으로 목을 매는 사람들은 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물건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자살을 결심한 아내가 한밤 중 칠흑같이 어두운 공터까지 와서 어렵사리 끈을 찾았다는 얘기다. 이게 말이 되는가. 형사와 남편의 피말리는 두뇌게임이 이어졌다. 조사 8시간째. 심리적인 불안감을 내비치는 남편 앞에 경찰이 그동안 감춰두었던 증거를 내밀었다. 공터에서 발견한 플라스틱 막대기와 나일론 끈이었다. “모두 공터에서 찾은 겁니다. 왜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 “부인을 살해한 건 당신이죠.” 남편은 고개를 떨궜다.   ■ 전기도 흔적을 남긴다 사건은 엽기적이었다. 불행의 씨앗은 아내의 외도에 대한 남편의 망상증이었다. 남편은 증세가 차츰 심해지더니 급기야 ‘아내가 밥에 독을 타 나를 죽이려 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됐다. 결국 남편은 아내가 자기를 죽이기 전에 먼저 죽이기로 결심했다. 범행은 치밀하게 준비됐다. 그는 헤어드라이어 끝을 잘라 빼낸 전선과 나무막대기 등으로 간이 전기충격기를 만들었다. 과거 철물점을 운영하면서 배운 지식을 총동원했다. 범행에 쓸 나일론끈과 플라스틱 막대기도 준비했다. 막대기는 전기충격 때문에 아내 몸에 생길 상처를 맞아서 생긴 것처럼 위장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날 밤 남편은 TV를 보는 아내 뒤로 다가가 모두 9차례 전기충격을 가했다. 아내가 기절하자 나일론 끈에 그녀의 목을 매달았다. 15분 후 아내가 죽은 것을 확인한 그는 살인의 흔적을 지운 뒤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결백을 확인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뒤늦게 밝혀진 것이지만 부인의 몸에 남은 상처는 전류반(電流斑)이었다. 데인 상처와도 비슷한 이 자국은 최초 전기가 몸에 들어오고 나온 곳에 각각 흔적을 남긴다. 피부 가장자리가 올라와 있어 마치 분화구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전류의 세기가 약하거나 몸에 물기가 있다면 반점처음 작은 자국만을 남긴다. 특히 남편은 상처를 닦아냄으로써 경찰의 감식을 한층 어렵게 했다. 이렇게 흔적이 약할 때는 피부에 철 등 금속성분이 묻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감전된 피부에는 순간적으로 금속 성분이 녹아서 늘어붙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전도체와 맞닿은 부위는 마치 도금을 한 것처럼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전기도 흔적을 남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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