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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피만다라 페스티벌 ‘해피아라한의 탄생’…오는 28일 홍천 개최

    해피만다라 페스티벌 ‘해피아라한의 탄생’…오는 28일 홍천 개최

    올해 처음으로 사단법인 해피만다라에서는 '해피만다라 페스티벌:해피아라한의 탄생' 이라는 타이틀로 강연, 토크쇼, 전시, 체험, 공연 다양한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살거리, 잘거리 오거리를 제공한다. 이날 해피만다라페스티벌 기념 퍼포먼스로 동휘스님의 그림퍼포먼스가 펼쳐질 예정이다. 페스티벌에 본 행사에 앞서 수계식도 함께 진행 될 예정이며, 해피만다라에 위치한 제2의 봉주르 카페 썬즈비는 아직 정식 오픈 하지 않았지만 페스티벌 기간에는 임시로 문을 열어 디아공주 및 만다라 그림 전시와 공연 더불어 먹거리를 준비한다고 전했다. 지역 지자체 관계자부터 홍천군의 대표 축제가 생기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힐링을 원하고 자존감을 키우고, 자아성찰과 자연과 함께 하고 싶은 남녀노소라면 누구든지 참석 할 수 있다. 참여하는 이들에게는 식사를 무료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보물찾기 이벤트도 있어 보물을 찾은 이들에게는 동휘스님의 만다라 그림을 증정 할 예정이다. 행사 관계자는 "지역을 대표하는 페스티벌로 자리매김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세상의 기운과 빛을 모을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며 "앞으로 해피만다라라는 공간에서 무궁무진한 문화의 장이 펼쳐 질 것이며,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운명의 빛에 초를 하나씩 놓고 갈수 있는 명소로서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세대별 관람 동선 분류… 박물관, 힐링공간으로”

    “세대별 관람 동선 분류… 박물관, 힐링공간으로”

    “인공지능(AI) 시대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사회적 욕구, 생활 패턴은 변하고 인간 소외가 두드러지겠죠. 이때의 박물관은 문화 정보의 소통보다 힐링의 공간,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겁니다. 박물관을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휴게 공간 확충, 세대별 관람 동선 분리 등을 계획 중입니다.”지난 7월 국립중앙박물관 수장이 된 배기동(65)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취임 100일을 맞아 그린 밑그림이다. 25일 기자들과 만난 배 관장은 “28년 뒤면 박물관이 개관 100주년을 맞는 만큼 박물관이 어떤 프로그램과 서비스로 시민들에게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는 내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장 무게를 두는 전시는 12월에 여는 특별전 ‘대고려전’이다. 오는 12월 국립제주박물관의 ‘삼별초’전을 시작으로 4월 국립전주박물관, 5월 국립부여박물관 등 13개 소속 지역 박물관도 각 지역의 고려 유물을 차례로 선보인다. “이번 기회에 일본,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고려시대 유물을 모아 고려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려 합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고려 비석이나 금석문 등 고려 시대를 말해줄 사료 연구에도 힘쓸 계획입니다.” 배 관장은 개인적으로는 한민족과 인류의 기원을 주제로 전시를 꾸며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연천 전곡리 유적을 발굴한 것으로 유명한 구석기 전문 고고학자이기도 하다. “이 전시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살펴보는 동시에 다른 민족과의 보편성과 비교해 한민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인식을 넓힐 수 있을 겁니다.” 배 관장은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장품이 빈약하고 관람객의 접근성도 떨어지는 13개 소속 지역 박물관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에 소장 유물 가운데 4만 4000점을 지역 박물관으로 골고루 이관할 예정이다. “우리가 파리에 가면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봐야겠다’고 하잖아요. 이처럼 경주 하면 금관, 부여 하면 금동대향로, 공주 하면 무령왕릉 하는 식으로 각 지역 박물관마다 핵심이 되는 유물을 ‘킬러 콘텐츠’로 내세워 더 많은 관람객들이 찾도록 할 생각입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듀에토’의 백인태·유슬기 “감미로운 멜로디 준비… 벌써 설레요”

    ‘듀에토’의 백인태·유슬기 “감미로운 멜로디 준비… 벌써 설레요”

    2017 서울신문 가을밤 콘서트 수놓을 주인공들… 3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가을밤 로맨틱한 사랑 노래 불러드리고 싶어요. 줄리엣을 향한 로미오의 마음처럼요.”(유슬기) “사랑에 대한 열정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청년 베르테르의 절절한 고백은 어떨까요.”(백인태)감미로운 듯 강렬한 목소리로 관객들의 귀를 매혹시킬 두 테너가 오는 31일 서울신문이 주최하는 ‘2017 가을밤 콘서트’ 무대에 선다. 인기 크로스오버 그룹 ‘듀에토’의 유슬기(오른쪽·31), 백인태(왼쪽·31)씨. 지난해 ‘팬텀싱어’(JTBC)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얼굴을 알린 두 사람은 최근 가장 인기 있는 크로스오버 가수로 떠올랐다. 이를 방증하듯 최근 열린 듀에토의 첫 단독 콘서트에는 2000명의 관객이 몰리며 티켓 판매 10분 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아직도 설렘과 감동이 가시지 않은 듯 입을 연 백씨는 “2시간 30분을 노래로 가득 채웠다는 사실에 너무나 벅차고, 홀을 채운 관객들을 보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받았다”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의 노래는 오페라에서부터 뮤지컬, 팝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이 때문에 ‘팝페라 가수’라고도 불리지만 주 전공은 성악이다. 한양대 성악과 동기로 11년 지기인 두 사람은 국내 대표 바리톤 고성현 교수에게서 사사했다. “저희가 팝페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특정 장르를 한정 짓기보다는 성악을 전공한 가수들이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떻게 음악적 표현을 확장해 나가는지 그 모습을 지켜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유슬기) 이번 가을밤 콘서트에서는 아리아(오페라에서 독창 또는 이중창)의 향연이 이어진다. 주로 드라마틱하고 남성적인 강렬함을 보여줬던 유씨는 로미오가 되어 가을 정취에 맞는 감미로운 멜로디를 선사한다.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을 한눈에 보고 반한 로미오가 부르는 ‘일어나라 태양이여’를 솔로곡으로 정했다. 그는 “가을밤 콘서트에 맞춰 서정적인 사랑 노래를 하고 싶었다”며 “굉장히 설레고 얼른 들려 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반대로 섬세한 목소리의 백씨는 극적인 사랑 노래를 선택했다. 그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고통에 찬 베르테르가 자살을 앞두고 연인을 찾아가 부르는 노래 ‘왜 나를 깨우는가’(오페라 ‘베르테르’)를 선보인다. 테너 아리아로 유명한 ‘공주는 잠 못 이루고’(오페라 ‘투란도트’)는 두 사람이 나눠 듀에토만의 스타일로 들려줄 예정이다. 서로가 “눈빛만 봐도 무슨 얘길 하는지 안다”고 할 정도로 하모니가 좋은 두 사람. 가장 기대할 만한 곡으로 두 사람 모두 ‘그리움 끝에’를 꼽았다. 듀에토의 첫 앨범 타이틀 곡이자 두 사람의 호흡과 음악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작품이다. 듀에토의 목표는 음악의 장르를 넘나들듯 국경을 넘어 한국 크로스오버 음악을 알리는 일이다. “케이팝처럼 케이팝페라를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무대에 서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그런 목표와 계획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 믿어요.”(유슬기) “유럽에는 ‘일 볼로’(팝페라 그룹), 미국에는 ‘일 디보’, 아시아엔 ‘듀에토’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네요(웃음).”(백인태)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김태희 출산, 제대혈 보관 동참 ‘비용 얼마길래? 관심 높아져..’

    김태희 출산, 제대혈 보관 동참 ‘비용 얼마길래? 관심 높아져..’

    메디포스트(078160)는 25일 첫딸을 얻은 연예인 비·김태희 부부가 셀트리제대혈은행에 제대혈을 보관했다고 밝혔다.이날 비·김태희 부부는 서울 청담동의 한 산부인과에서 건강하게 딸을 출산했으며 미리 병원을 통해 메디포스트에 제대혈 보관을 의뢰했다. 제대혈은 관련법에 따라 세포 수와 세포 생존도 검사, 미생물 배양 검사, 면역 및 바이러스 검사 등을 거쳐 셀트리제대혈은행에 질소탱크에 보관된다. 제대혈은 임신 중 태아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탯줄에 있는 혈액이다. 과거에는 출산 후 버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백혈병이나 재생 불량성 빈혈 등 난치병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관을 선택하는 산모가 늘고 있다. 제대혈 보관비용은 기간과 업체에 따라 다르지만 15년 기준 대개 100만~150만 원선으로 알려졌다. 메디포스트 관계자는 “2010년 이후 매년 100명 이상의 환자가 제대혈로 난치병을 치료하는 등 제대혈의 효용이 부각되면서 앞으로 제대혈 보관을 선택하는 산모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25일 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고맙습니다. 예쁜 공주님이에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아이로 잘 키우겠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하얀색 아기 양말 사진을 공개하며 아빠가 된 기쁨을 드러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현대미술을 품은 천년 고찰 전등사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현대미술을 품은 천년 고찰 전등사

    강화도 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인 서기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이 진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1282년 고려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송나라에서 펴낸 대장경을 펴내 봉안하도록 하면서 옥등을 시주한 것을 기념해 ‘불법의 등불을 전하는 사찰’이라는 뜻을 지닌 전등사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른다. 전등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장소로 꼽힌다. 사찰을 에워싸고 있는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인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았다고 전해지는 성이다. 산의 지형을 이용해 능선을 따라 축조한 성의 길이는 2300m나 된다. 고려시대에 전등사는 대몽항쟁의 근본 도량으로 팔만대장경을 판각했으며 조선시대엔 가람 뒤편의 정족산 사고에서 250년간 조선왕조실록과 왕실문서를 보관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엔 프랑스군을 물리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국가사적 삼랑성과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대웅보전, 약사전, 범종,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각종 탱화 등 소중한 문화유적과 문화재가 가득한 전등사는 국내 유일의 현대미술 사찰로 새롭게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1600년을 이어온 유서깊은 사찰에서 현대미술을 만난다는 것은 파격 그 자체다. 전등사에서는 2008년부터 매년 10월 삼랑성역사문화축제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 정족산 사고에서 매년 현대 미술특별전시를 열고 있다. ‘현대 중견작가전’이라는 타이틀로 소개된 현대미술 작가들이 지금까지 수십 명에 이른다. 그동안 수집한 현대미술 작품은 300여점에 이른다. 2012년 “21세기 시대정신이 담긴 불사(佛事)”를 자랑하며 241㎡ 규모로 신축한 무설전(無說殿)에서는 ‘국내 유일의 현대미술 사찰’ 전등사의 파격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말없이 설파한다는 뜻을 지닌 불국사 ‘무설전’에서 착안해 이름을 지은 이곳은 조성 당시부터 국내 대가들의 작품으로 법당을 꾸며 화제가 됐다.무설전의 석가모니불과 보현·문수보살 등 불상은 광화문 세종대왕상으로 유명한 조각가 김영원 홍익대 교수가 제작했다. 불상은 청동으로 불상을 만든 후 금박을 입히는 대신 자동차 도색에 쓰이는 흰색 우레탄 도료를 입혀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풍긴다. 본존불의 얼굴은 석굴암 본존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지만 보살상의 얼굴은 요즘 세대에게 친숙한 인상을 찾아 이미지를 부여했다. 본존불 뒤편의 후불화는 오원배 작가가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오 작가는 석굴암처럼 둥근 공간에 부처님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존자 등 십대제자를 배치한 후불화를 프랑스 유학시절 배운 정통 프레스코 기법으로 완성했다. 서양의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부드러운 색감과 불제자들의 친근한 표정은 보는 이를 다가서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다. 법당 내부의 전체 공간구성은 이정교 홍익대 공간디자인과 교수가 맡았다. 천장에 단청을 칠하지 않고 일반적인 법당에서 흔히 보는 연등 대신에 분홍색의 꼬마 연등 999개를 설치작품처럼 배치해 불교의 정적인 분위기와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한다. 서운스님을 기리며 ‘서운 갤러리’라고 이름 붙인 무설전 내의 상설전시공간에서는 종교와 무관하게 전등사가 소장한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번갈아 소개하고 있다. 민정기, 서용선, 곽훈, 노상균, 김태호, 문범, 한만영, 강애란, 조덕현, 문경원 등 쟁쟁한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가람의 뒤편 산길을 따라 5분 남짓 올라가다 보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켠에 서있는 정족산사고가 있다.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472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곳이다. 1181책에 이르는 정족산사고본은 실록 중에서 유일하게 전책으로 남아 현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보관했던 역사적인 장소에서 열리는 ‘중견 작가전’이 올해로 10회째를 맞아 성황리에 열렸다. 꺾어지는 해인 만큼 많은 공을 들인 올해 전시의 주제는 ‘성찰(省察)’이다.첫회 째부터 전시기획을 맡아온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 역사발전의 견인역할을 한다”면서 “역사적 장소인 전등사 경내에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보관한 사고에서 현대미술 특별전시를 연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윤교수는 “첫 회를 시작할 때만해도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열 번째를 맞게 됐다”면서 “전등사와 인연이 깊은 중견작가들을 초대해 전등사 대웅보전과 성찰이라는 두가지 주제로 신작을 발표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10년간 빠짐없이 참여한 오원배 동국대교수를 비롯해 강경구, 공성훈, 권여현, 김기라, 김용철, 김진관, 이종구, 이주원, 정복수 등 10명의 중견 작가들이 동참했다. 전등사의 대웅전은 아담하지만 내용은 그 어느 사찰의 대웅전 보다 충실하다. 조선시대 중기 건축으로 보물 제 178호로 지정된 대웅전의 기둥은 배흘림 기법을 보이고 있고 목조석가여래삼존불(보물 제 1785호)의 수미단과 닻집의 조형성이 탁월하다. 도편수와 마을 주모의 사랑과 배신이야기를 담은 처마밑의 특이한 조각상도 유명하다. 작가들은 대웅전의 구석구석을 답사하며 예술적 영감을 얻고 작품을 제작했다. 오 교수는 대웅전 불상의 뒷모습과 인간의 시선, 강화도의 옛 지도를 바탕으로 한 자연의 모습이 이어진 3편의 연작을 선보였다. ‘관자재’와 ‘운석’을 출품한 강경구 작가는 “수백년 간 건물의 일부로 안과 밖의 세상을 연결해 준 대웅전의 문과 우주 속의 운석처럼 막막한 세계를 떠도는 인간의 삶을 생각해 봤다”고 설명했다. 공성훈 작가는 불상 앞의 촛불 그림과 함께 무심하게 흘러가는 하늘의 구름과 시간을 품은 아침바다, 권여현 작가는 일상 속의 성찰을 표현한 ‘병목생화’와 ‘인타라망’을 출품했다. 김기라 작가는 두 개의 원형 LED로 만든 ‘광배-두개의 둥근 원’과 설치작품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을 선보였다.강화에서 태어나 전등사와 인연이 깊은 김용철 작가는 대웅보전 내부에 있는 이미지를 이용해 큰 사랑을 표현한 작품을 완성했다. 김진관 작가는 대웅보전 지붕의 네 귀퉁이를 받치고 있는 유명한 나부상을 한지에 채색으로 그렸고 이주원 작가는 여의주를 한지에 그리고 LED조명을 비추는 작품을 선보였다. 푸른 밤하늘에 떠있는 달과 전등사 대웅보전을 그린 이종구 작가의 ‘대웅보전-전등사’는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진다. 정복수 작가는 자신의 독특한 기법으로 불상을 재해석한 ‘불성의 초상’을 선보였다. 전통 고찰에 현대미술을 끌어들인 주인공은 전등사 회주 장윤 스님이다. 장윤 스님은 “전통적으로 불교 사찰을 조성할 때 당대 최고 장인들을 모셔다 조각과 회화 작업을 하게 했다”면서 “문화재 사찰이라고 해서 고려시대 조선시대 양식의 불상과 불화를 찍어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으로 무설전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교가 전통만을 고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신라와 고려의 승려들이 멀리 유학을 가서 앞선 문화를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전통을 지니고 있다”면서 “전등사도 전통사찰이지만 현대미술을 비롯해 음악회, 연극, 마당놀이 등 현대인이 좋아하는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화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김태희 출산, 비 “예쁜 공주님이에요” 딸바보 예약?

    김태희 출산, 비 “예쁜 공주님이에요” 딸바보 예약?

    김태희의 출산 소식이 전해져 화제다.25일 비의 소속사 측은 “오늘 김태희가 딸을 출산했다”며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고 밝혔다. 이날 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고맙습니다. 예쁜 공주님이에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아이로 잘 키우겠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하얀색 아기 양말 사진을 공개하며 아빠가 된 기쁨을 드러냈다. 한편, 비와 김태희는 5년 열애 끝에 지난 1월 19일 가회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지난 5월 김태희의 임신 소식이 전해져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다. 사진=서울신문DB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포토] 도로시 왕, ‘핼러윈 파티’ 섹시 인어공주로 변신

    [포토] 도로시 왕, ‘핼러윈 파티’ 섹시 인어공주로 변신

    미국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Rich Kids of Beverly Hills’에 출연해 스타가 된 도로시 왕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LA 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2017 맥심 핼러윈 파티’에 참석했다. 사진=TOPIC/Splash News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양의 후예’ 최 중사 박훈, 박민정과 결혼 “공연계 장수커플”

    ‘태양의 후예’ 최 중사 박훈, 박민정과 결혼 “공연계 장수커플”

    배우 박훈(37)이 뮤지컬 배우 박민정(36)과 결혼했다.박훈은 박민정과 지난 22일 서울 모처에서 양가 가족과 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은 공연계에서 장수 커플로 유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훈은 지난해 큰 사랑을 받았던 SBS ‘태양의 후예’에서 특전사 중사 최우근 역을 맡으며 시청자에게 얼굴을 알렸으며, 오랜 기간 뮤지컬 무대에 서기도 했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 ‘형제는 용감했다’ ‘늑대의 유혹’를 비롯해 연극 ‘유도소년’ 등에 출연하며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베테랑 배우이다. 오는 11월 방송되는 MBC 드라마 ‘투깝스’ 출연도 앞두고 있다. 박민정 역시 2004년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로 데뷔한 후 ‘극적인 하룻밤’ ‘웨딩 스캔들’ 등에서 활약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역사 속 공익신고] 벼슬아치 내부 비리 고발하면 노비는 양인으로 신분 올려주고 양인에겐 관직·양반에겐 승진 내려

    [역사 속 공익신고] 벼슬아치 내부 비리 고발하면 노비는 양인으로 신분 올려주고 양인에겐 관직·양반에겐 승진 내려

    세조 2년(1456년) 공주 판관 송맹연이 분대어사(임금의 명으로 지방에 파견돼 민정을 살피던 관리)에게 탄핵돼 수령 자리에서 쫒겨났다. 이 소식을 접한 아전들이 밀고자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됐다. 유력한 고발자는 관노 득만이었다. 그는 관아의 대소사를 두루 챙기는 일을 맡아 송맹연의 부정 행위를 샅샅이 알 수 있었다. 어사가 공주를 찾았을 때 몰래 그와 접촉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관리 이득신과 우성, 김비, 이정근이 그를 불러내 강하게 문초했다. 득만은 “나는 고발자가 아니다”라고 버텨 가까스로 풀려났다.득만은 여기에 남았다가는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 것으로 보고 한양에 올라가 어사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어사가 세조에게 득만의 사연을 알리자 세조는 격분해 관련자 모두를 중형에 처하라고 명했다. 대신들은 난감해했다. 고발 보복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었고 득만을 고문한 이들 가운데 공신의 손자도 있어서였다. 사헌부는 고심 끝에 “왕에게 참된 것만 아뢰야 하는 ‘조당진언(阻當陳言)의 율(律)’을 적용하라”고 건의했다. 결국 왕은 조당진언의 율에 적시된 기준보다 한단계씩 낮춰 처벌했다. 이득신에게 장 100대에 3000리 유배형, 김비·이정근에게 각각 장 100대에 3년 노역형을 내렸다. 우성의 경우 공신의 손자여서 신체형 없이 파직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중종 4년(1509년) 엄동설한에 한 황해도 사람이 신무문(경복궁 북문) 밖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격쟁(꽹과리나 북 등으로 주변을 시끄럽게 해 왕의 이목을 끄는 행위)을 했다. 그가 행대감찰(지역을 다니며 비위를 살피는 감사)에게 고을 수령의 비리를 고발했는데, 수령이 이 사실을 눈치채고 복수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왕은 이 사안을 조사해 그가 보복받는 일이 없게 하라고 명했다. 역대 왕들은 진실한 언로를 확보하는 것이 민심을 얻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성종 19년(1484년) 한 사헌부 간관이 왕에게 “대신 김석이 어머니 상(喪) 중에 기생을 끌어들였다”며 탄핵했다. 왕이 조사 경위를 묻자 그는 “어떤 관리에게서 전해 들었다”라고 답했다. 왕은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고 재차 추궁했지만 간관은 더 이상은 밝힐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그는 옥에 갇혔다. 사헌부는 왕에게 “김석 건을 제보한 이는 관리 권건”이라고 밝힌 뒤 “이런 식으로 제보 출처가 밝혀지면 간관들은 ‘들을 곳’이 없어져 조정 내 언로도 막힌다. 앞으로 대간의 말 출처를 밝히는 것은 불가하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머쓱해진 성종은 한 발 물러나 옥에 가둔 간관을 풀어줬다. 이런 진통 끝에 조정에는 간관이 왕에게 말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전통이 생겨났다.고발자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발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선 시대에는 내부고발자에 대해 “그가 노비면 양인으로 풀어주고, 양인이면 관직을 주며, 관리면 승진시킨다”는 보호책을 썼다. 고발자에 대한 직접적 보복만을 막아주는 소극적 보호책에 머물고 있는 지금보다 훨씬 앞선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도 조선의 사례를 거울삼아 신고자의 어려움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더 크게 포상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출처:고려사 권85, 형법지2, 포도조(捕盜條), 세조 2년(1456년) 3월 8일, 성종 19년(1488년) 1월 14일, 중종 4년(1509년) 1월 15일 곽형석 명예기자(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
  • [자치광장] 도시재생, ‘문화’가 답이다/이동진 서울 도봉구청장

    [자치광장] 도시재생, ‘문화’가 답이다/이동진 서울 도봉구청장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조국이 문화강국으로 발전하길 소망했던 백범 김구 선생이 저서 ‘나의 소원’에 남긴 글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도 도시재생을 추진하면서 “문화 없는 도시재생은 재개발이 될 것”이라며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문화는 국가나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인임은 분명하다. 구청장에 취임한 이래 문화를 통해 도봉구의 낙후된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고 도시 활력을 증진시켜 주민이 사는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노력해왔다. 이를 위해 지역의 고유한 역사·문화 자원을 발굴했다. 최근에는 방학천변 일대를 문화거리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방학천 주변의 일부 지역은 20여년 동안 퇴폐주점들이 밀집돼 있어 주민의 민원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우리 구는 이 지역을 완전히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조성키로 하고 지난해 4월부터 단속 전담부서를 신설해 도봉경찰서, 북부교육지원청, 소비자식품위생감시원과 야간 합동 단속을 진행했다. 유해업소가 폐업한 자리는 일단 구청에서 임대하고 청년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으로 재임대했다. 캘리그라피, 가죽공예, 캐릭터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입주작가 15명을 선정하고 이들에게 건물 리모델링 비용, 기본 물품 구매비용, 6개월간의 임차료 등을 지원해 입주준비가 마무리되고 있다. 단순히 유해업소를 내모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접목하여 거리의 활력을 되찾고 청년 예술가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마을의 변화를 이끄는 선순환적 기능을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방학천 인근에는 한글 창제의 숨은 공신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의 둘째 딸 정의공주 묘역과 훈민정음 해례본 등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착안해 도봉구는 새롭게 변모하는 방학천변 거리와 연계한 ‘한글문화거리’ 사업을 추진 중이다. 도봉구가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는 고유한 역사문화 자원을 토대로 한 도시재생은 서울의 변방이나 다름없던 도봉구의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주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도시의 활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흉물처럼 버려져 있던 300m에 이르는 대전차 방호시설을 문화와 창조의 공간으로 바꾸는 ‘평화문화진지’ 사업도 그중 하나다. 도봉구는 지금 스스로 만든 문화의 옷을 입고 변신 중이다.
  • 점멸한 줄 알았던 희귀식물 ‘물석송’, 81년 만에 발견

    점멸한 줄 알았던 희귀식물 ‘물석송’, 81년 만에 발견

    희귀식물 물석송이 81년 만에 실체가 확인됐다. 그동안 점멸된 줄만 알았던 물석송의 자생지가 약 81년 만에 확인된 것이다.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제3기(2017∼2018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자연자원 조사 과정에서 전남 완도군 일대에서 물석송이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물석송 자생지 면적은 400㎡ 내외다. 개체 수는 500여 개로 안정적인 개체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전 세계 열대·난대 지역에 두루 분포하는 물석송은 지난 1936년 제주도에서 채집된 표본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물석송은 석송과(Lycopodiaceae)의 양치식물로, 키가 작고 땅에 누워서 자란다. 잎과 뿌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육상으로 처음 올라온 관속식물로 여겨지고 있다.물석송은 주로 습지 가장자리에서 서식한다. 자생지가 매우 한정적이고 생장조건이 까다로워 보전 가치가 매우 높은 식물이다. 공단은 발견 장소인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완도군 일대를 국내 유일의 물석송 자생지로 기록했다. 공단은 양질의 물석송 표본 자료를 확보하고 생태적 특징과 서식 정보 등을 파악할 예정이다. 나공주 국립공원연구원장은 “과거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생물의 발견은 우리나라 생물 다양성을 확대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며 “물석송 자생지는 난개발로 쉽게 사라질 수 있는 만큼 서식지 보전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살이] 소공동의 추억

    [노주석의 서울살이] 소공동의 추억

    촌놈들만 아는 40년 전 얘기다. 대학 진학 후 시작한 서울살이는 한동안 서울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으레 역전에서 이뤄졌다. 시간이 흘러 종각이나 명동으로의 진출을 꾀했다. 한 번은 네댓 명이 명동 찾기에 나섰다가 중도 포기했다. 그때 우리는 양복점이 즐비한 고층빌딩 숲에서 발길을 돌렸다. 우리가 헤어진 곳이 소공동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30년 전 결혼식 때 입을 예복을 맞추려고 소공동 맞춤 양복점을 방문해서 치수를 재고, 가봉을 했을 때의 감회를 잊지 못한다. 직장생활을 시내에서 한 덕분에 소공동 일대를 무던히 쏘다녔다. 그 흔한 기념일 제정이나 기념식조차 없지만 지난 12일은 대한제국 건국 120주년이었다. 알다시피 대한제국은 1897년부터 1910년까지 12년 10개월 17일 동안 실재한 이 땅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국이다. ‘그놈의’ 식민사관 탓에 오랫동안 잊혔다. 아직도 대한제국이 아니라 조선이 폐망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대한제국으로부터 국호와 국기를 물려받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격이다. 공교롭게도 소공동 건너편 정동은 흥청거렸다. 때마침 중구청이 주최하는 ‘정동야행’이 열렸기 때문이다. 정동은 고종이 국내 망명지로 택한 러시아 공사관 등 서구 열강의 공관과 학교, 교회를 내세워 이 땅의 새벽을 알린 ‘근대 1번지’로 각광받고 있다. 태종의 둘째딸 경정 공주가 살던 ‘작은공주골’을 한자로 옮긴 소공동은 소박맞은 느낌이다. 사대문 밖 용산이 외국군의 주둔지였다면 소공동은 외빈용 숙소라는 공간사를 품고 있다. 뒤집어 보면 임진왜란 때 왜장 우키타 히데이에가 처음 머물렀고, 명의 장군 이여송이 이어받은 뒤 중국 사신이 묵는 남별궁이 들어섰다. 청의 위안스카이가 12년간 이곳을 중심으로 ‘총독’ 노릇을 하면서 소공동 화교촌의 기원이 됐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소공동 중국집을 기억하는 까닭이다. 고종은 황제국에만 둘 수 있는 천단(天壇)인 환구단과 태조의 신위를 모신 황궁우 그리고 영빈관인 대관정을 소공동에 세웠다. 경운궁(덕수궁)에서 고개만 들면 바라볼 수 있도록 소공동에 건립했다. 정동이 대한제국의 머리라면 소공동은 대한제국의 심장이었다. 정동과 소공동은 일제강점기 된서리를 맞았다. 경운궁은 사쿠라 피는 중앙공원으로 둔갑했고, 환구단은 허물고 호텔을 세웠다. 소공동이라는 지명조차 2대 총독 하세가와 요세미치(長谷川 好道)의 이름을 따 장곡천정으로 바꿨다. 모더니즘의 대표 시인 김광균의 ‘장곡천정에 오는 눈’에 등장하는 ‘찻집 미모사의 지붕’, ‘호텔의 풍속계’, ‘기울어진 포스터’가 당대 소공동의 첨단 풍경이다. 해방 후 도로 지명을 바꿀 때 대한제국은 기억하지 않았다. 소공동에 한 번 잘못 깃든 외빈용 숙소의 장소성은 대한제국의 영빈관인 대관정과 철도호텔 그리고 반도호텔로 이어졌다. 철도호텔은 웨스틴조선호텔, 반도호텔은 롯데호텔의 전신이다. 플라자호텔은 1978년 도심재개발사업 1호로 화교촌 자리에 지어졌다. 지금 대한제국의 심장에는 피가 돌지 않는다. 호텔이 된 환구단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드물고 복원은 요원하다. 황궁우는 한낱 호텔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공터로 남아 있던 대관정 터와 양복점 빌딩군을 이루던 근대 건물 7채 자리에 또 특급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정동에는 근대의 향기나마 남았지만 소공동의 추억은 흔적마저 사라질 참이다.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파란 눈 신부의 꿈… 저 곡식창고 위에 아름다운 성당을 세우리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파란 눈 신부의 꿈… 저 곡식창고 위에 아름다운 성당을 세우리

    공세리성당은 아산호방조제와 삽교천방조제를 잇는 충남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에 있다. 경기도와 충청도를 각각 대표하는 곡창인 안성평야와 내포평야가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일대는 공세곶으로 불렀는데, 곶(串)이란 바다로 내민 땅을 말한다. 이런 특성으로 조선시대 조창(漕倉)이 있었다.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뱃길을 이용해 도성(都城)으로 나르기 위한 창고이자 전진기지였다. 공세리(貢稅里)라는 땅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1894년 당시 조선의 천주교 신자는 2만명 남짓했고, 이 가운데 3755명이 충청도 지역에 살았다고 한다. 파리외방전교회의 피에르 파스키에 신부와 장 퀴를리에 신부는 당시 신창과 덕산을 본당(本堂)으로 충청도의 동북쪽과 서남쪽을 맡고 있었다. 신창과 덕산은 오늘날에는 각각 아산과 예산 땅의 일부다. 같은 해 동학 농민봉기 과정에서 조조 신부가 피살됐는데, 파스키에 신부는 조선을 떠났고, 후임으로 에밀 드비즈 신부가 임명된다. 당시 충청도는 53곳의 공소가 있었는데, 공세리 골뫼마을도 그 하나였다. 이 마을에는 박해 이전부터 교인이 몰려 살았는데, 파스키에 신부는 이곳을 일찍부터 새로운 신앙의 거점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그가 조선을 잠시 떠나기 전 조선교구장 구스타브 뮤텔 주교에게 보낸 사목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보인다.‘해변에 위치하고, 또 두 개의 큰 강이 삼각주를 이루는 지류 사이에 있는 이 마을은 땅이 매우 비옥하여 논농사가 잘됩니다. 마을 앞에는 아름다운 언덕이 있는데, 그것은 10리 떨어진 곳의 아산읍을 굽어보는 높은 산맥의 끝부분입니다. 언덕의 정상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일찍이 그 안에 정부의 곡식창고가 있었으나 지금은 황폐화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높은 곳에 아름다운 성당을 세우면 멋질 것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파스키에 신부의 꿈을 현실로 만든 이가 공세리에서 34년 동안 사목 활동을 한 드비즈 신부다. 성일론(成一論) 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가졌던 드비즈 신부는 1871년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에서 태어났다. 1894년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에 들어와 이듬해 공세리본당의 초대 주임신부가 됐다. 그런데 1년 만에 주교관의 경리인 당가(當家)신부로 임명됐다. 2대 본당신부는 기낭이었는데, 드비즈는 이듬해 3대 본당신부로 공세리에 돌아온다.공세리는 조선시대 공세지(貢稅地)로 불렸다. 1523년(중종 18) 80칸 규모의 창고가 들어섰지만 1762년(영조 18) 해운창이 폐지됨에 따라 무용지물이 됐다. 하지만 조창이 폐지됐다고는 해도 그 터는 국유지였다. 당연히 매매가 금지됐지만,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창립 주역인 최석우 몬시뇰에 따르면 당시 편법이 통하는 탐관오리가 없지 않아 사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문제가 됐음에도 드비즈 신부는 “정부가 관리를 잘못한 책임을 교회가 질 수는 없다”는 논리로 버텼고, 결국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게 됐다는 것이다. 20대의 젊은 사제는 1897년 한옥식으로 성당, 사제관, 부속건물을 세웠고 1921년 지금의 성당을 지었다.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사제관 건물도 이때 함께 세운 것이다. 드비즈 신부의 아버지는 건축가였다고 한다. 드비즈 신부도 어린 시절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고, 그 결과 아름다운 공세리성당을 설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공세리성당 말고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 성당과 수원성당, 그리고 서울 혜화동성당도 설계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 충청도 서해안 지역의 세곡(稅穀)은 경양포, 공세곶, 범근내에서 수집해 세곡선에 실었다. 고려시대 하양창이라 불린 경양포는 안성천 하류의 평택 팽성의 조창이었다. 범근내는 삽교천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세곡 창고는 당진 면천에 있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는 각 조창이 세곡을 걷은 지역적 범위가 적혀 있는데, 경양포는 직산과 평택뿐으로 조창으로서의 기능이 매우 제한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공세곶은 청주, 목천, 전의, 은진, 연산, 회덕, 공주, 천안, 문의 등 충청도 지역 15개 고을을 관할했다. 범근내에는 서천, 한산, 남포, 보령, 홍주, 청양, 태안, 서산, 예산 등 16개 고을 세곡이 한데 모였다.공세리 조창 폐지 이후 주변 해안에서는 간척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지금도 공세리성당을 찾으면 이곳이 과거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바닷가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드비즈 신부가 ‘이 마을은 땅이 매우 비옥하여 논농사가 잘된다’고 했던 것도 간척 사업의 결과였을 것이다. 천주교 탄압 이후 산골로 흩어졌던 신자들이 다시 모여든 것도 농사지을 땅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세리성당은 어느 때나 아름답지만 늙은 느티나무 이파리 사이에 감춰졌던 성당 건물이 낙엽과 함께 조금씩 드러나는 이맘때가 가장 정감 있다. 절을 찾는 사람이 모두 불교 신자가 아니듯 공세리성당을 찾는 사람들도 모두 천주교 신자는 아니다. 종교는 달라도 성소(聖所)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려는 탐방객도 많다. 공세리성당은 그저 한 번 거닐어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준다. 더불어 차근차근 주변을 돌아보면 적지 않은 역사 공부가 된다. 성당은 서양의 고딕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지었지만, 입구에서부터 한국인들의 생활 습관에 이질감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성당 건축으로는 드물게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록 했다. 지금의 공세리성당이 드비즈 신부가 설계한 당초의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1971년 3000명 남짓으로 늘어난 신자를 수용하기 어려워지면서 13대 주임 김동욱 신부가 북쪽의 제대(祭臺) 부분을 늘리는 방법으로 증축해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공세리성당을 찾으면 옛 사제관을 개조한 박물관을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 순교의 역사를 포함한 이 지역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조창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은 공세리성당 탐방의 덤이다. 성당으로 오르는 길 옆에는 이곳이 조창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표석이 있다. 작은 글씨로 길게 적혀 있지만 한 번쯤 읽어 보는 것이 좋다. 성당의 주출입구인 주차장 서쪽에서 조금만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언덕 주변에 성벽의 흔적이 보인다. 그 아래 밭에는 조창 시절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썼음직한 조선시대 막사발 조각이 굴러다닌다. 공세리성당에서 아산 쪽으로 나가는 길가에는 치성(雉城)처럼 보이는 본격적인 성벽의 흔적이 있다. 그 아래는 조선시대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해운판관(海運判官)의 선정비다. 해운판관이란 충청도·전라도의 조창을 순회하며 세곡의 선적을 감독하고 경창까지 무사히 도착하도록 독려하는 임무를 맡은 관리다. 공세곶이 조창이었다는 직접적 증거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역사의 망각’에서 깨어난 백제의 첫 왕도를 거닐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역사의 망각’에서 깨어난 백제의 첫 왕도를 거닐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9차 ‘서울의 가을 은행 노랑-호수와 공원으로 가을여행’ 편이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진행됐다. 석촌호수와 몽촌토성의 단풍은 도착 전이었지만 2000년 전 한성백제 시대를 사색하기에 딱 좋았다. 추석 연휴로 2주를 쉰 때문인지 정규 예약인원 30명에, 대기자 10명까지 40명이 만원사례를 이뤘다. 참가자들은 잠실역 11번 출구에서 집결, 석촌호수와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을 거쳐 몽촌호 음악분수와 몽촌토성 길을 따라 걸었다. 한성백제박물관과 야외조형전시장을 지나 장미정원에서 2시간여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지난 7월 가리봉동 편에 이어 두 번째 기가폰을 잡은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조선시대 이야기꾼 전기수(傳奇叟)처럼 노련한 솜씨로 2000년의 세월을 요리했다.서울에 사는 상당수가 한성백제를 모른다. 부여와 공주에 가야 백제 문화가 있다고 여긴다.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의 관계를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위례성이 뭔지, 위례가 어딘지는 모른다. 몽촌토성은 도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지 가물가물하다. 석촌호수에 간혹 가지만 그곳에 호수가 있는 이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위의 나열은 대다수 사람이 앓고 있는 증상이다. 왜 그럴까. 혹시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글로벌 도시 서울에 살고 있을 뿐 서울이라는 오래된 도시가 가진 본연의 역사와 고유의 문화를 등한시하고 도외시한 때문은 아닐까. 송파는 한성백제의 옛 땅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18년 백제의 시조 온조가 위례성에 세운 건국 수도다. 위례성이 곧 풍납토성이고, 백제의 첫 왕도이자 서울 최초의 수도다. 서울이 1394년 강북 사대문에서 조선 건국과 함께 기원한 것이 아니라 2000여년 전 백제를 기점으로 한강 남쪽에 터를 잡은 점이 흥미롭다. 백제는 공주로 옮겨가 부여에서 망하기 전까지 무려 493년을 서울에서 보냈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서울 강남시대는 일종의 백제 부흥이다. 1997년 풍납동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처음 발견된 유물과 그 후 14년간 진행된 발굴을 통해 한성백제는 역사의 망각에서 벗어났다. 토성 안 ‘세 줄의 둥근 해자’ 삼중환호(三重環濠)는 토성 축조 이전에 이곳에 강성한 세력이 거주했음을 알려 주는 증거다. 해자 주변은 높이 13m, 너비 43m, 둘레 3500m의 거대한 토성이 둘러싸고 있었다. 연인원 138만명이 동원돼 흙을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아 올린 풍납토성은 당대 동아시아 최대의 방어 및 경계시설로 평가된다.몽촌토성은 또 어떤가. 한강변 풍납토성과 내륙 석촌동 고분 사이에 위치한 언덕 위 몽촌토성은 한성백제사에 비친 한 줄기 빛이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1983년 잠실벌에 경기장과 선수촌, 올림픽공원을 만들기로 하면서 문을 연 것이다. 당시 곰말(꿈마을), 일리내, 잣나무골, 큰말이라는 4개의 자연부락이 토성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발굴을 통해 3~5세기 목책과 해자, 건물터가 확인됐고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다행히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 아래 숨은 덕분에 개발의 광풍을 비껴갔다. 그러나 백제왕국의 유적지가 아니라 올림픽공원이라는 문화체육시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72년까지 허허벌판이었던 풍납토성에는 공장이 들어섰다가 지금은 인구 4만명이 사는 아파트와 빌라의 숲으로 변했다. 일제강점기 290여기가 남아 있던 석촌동 적석총 고분군은 다 파괴되고 달랑 6기만 남았다. 돌무덤은 마을 담벼락으로 쓰이다가 석재로 반출됐고, 한때 폭 40m의 도로가 지나가면서 쑥대밭이 됐다. 우리의 부끄러운 문화재 수난사 현장이다. ‘근초고왕이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는 371년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서울의 옛 지명 한산이 곧 한성이다. 북한산은 한산의 북쪽이요, 남한산은 한산의 남쪽을 일컫는 지역명이다. 북한산이나 남한산은 산 이름이 아니다. 우리가 북한산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산의 참이름은 삼각산이다. 4세기 들어 백제의 위상에 걸맞게 ‘울타리’를 의미하는 위례라는 도시명을 중국식으로 바꾼 것이 한성이다. ‘큰 강’ 한강과 마찬가지로 ‘큰 성’이라는 뜻이다. 이 지명이 조선시대 서울의 정식 명칭 한성부로 이어졌다. 한성백제 시대 한성의 도시구조는 왕성이자 북쪽 성 풍납토성과 남쪽 성 몽촌토성 그리고 왕릉인 석촌동 고분 등 3개 구조물로 뼈대를 이뤘다는 것이 정설이다. 학자에 따라 풍납토성을 대성, 몽촌토성을 왕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두 성의 거리는 불과 700m이고, 성내천이라는 하천이 예나 지금이나 흐르며, 위풍당당한 돌마리 왕릉이 자리했다. 몽촌토성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백제를 점령한 이후 아차산 보루와 함께 고구려군의 주둔지였다. 그러나 551년 한강 일대가 신라 수중에 들어가고,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졌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땅이 뒤집히면서 기적적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민 한성백제의 고토는 1970~1980년 강남과 한강 개발의 물결을 타고 1400년 만에 역사의 전면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서울의 가을 단풍 빨강 - 강남 세계가 즐기다 ■일시 : 21일 오전 10시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2번 출구 앞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
  • 가을여행주간 하루 코스로 즐기는 대전·충남 여행

    가을여행주간 하루 코스로 즐기는 대전·충남 여행

    가을여행주간(21일∼11월 5일)을 맞아 충남도와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 대전마케팅공사 등이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을 내놨다. 자타가 공인하는 과학도시 대전은 ‘신비하고 달콤한 대전여행’을 주제로 과학체험 여행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성심당+과학관’은 카이스트 멘토와 함께 국립중앙과학관 방문, 대전원도심투어, 성심당 파티쉐와 함께 미니 케이크를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초콜릿+과학관’은 초콜릿 장인과 함께 유기농 초콜릿을 만들기, 반석카페거리 산책, 국립중앙과학관 방문 등으로 구성됐다. 두 상품 모두 참가비는 1만 5000원이다. 서울 등 수도권 출발 상품으로 교통비, 체험비, 입장료 등이 모두 포함됐다. 가을 여행주간에 맞춰 할인된 금액이다. 성심당과 오월드 테마파크를 묶은 프로그램(3만 1000원)도 준비됐다. 근현대역사투어(21일), 대전 시티트레킹(21일, 25일, 27일, 28일, 11월 4일), 시티투어 등 행사도 별도로 진행된다. 충남은 레저스포츠, 야시장, 역사투어, 농촌마을체험 등을 묶어 ‘익사이팅! 충남’이란 주제로 가을여행주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레저스포츠는 보령의 짚트랙과 스카이바이크, 청양의 롤러미끄럼틀과 출렁다리, 아산의 레일바이크 등이, 야시장은 공주의 밤마실야시장과 부여의 백마강 달밤시장, 농촌체험은 당진 백석올미마을(수제약과체험), 서산의 회포마을(호박피자만들기), 예산 사과농원(사과농장체험) 등으로 구성됐다. 서울 출발기준으로 참가비는 1인 1만 5000원(보령은 1만 9900원)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행주간 공식 누리집(fall.visitkorea.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영국 윌리엄·미들턴 왕세손 부부, 내년 4월 셋째 출산

    영국 윌리엄·미들턴 왕세손 부부, 내년 4월 셋째 출산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의 셋째 자녀가 내년 4월 태어난다.왕세손 관련 업무를 맡는 켄싱턴궁은 17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윌리엄 왕세손 부부는 슬하에 네 살의 조지 왕자와 두 살의 샬럿 공주를 두고 있다. 새로 태어날 셋째 자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6번째 증손주가 되며, 찰스 왕세자, 윌리엄 왕세손,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에 이어 영국 왕위 계승 순위 5위에 오르게 된다. 2011년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결혼 이후 법이 개정되면서 여성도 남성과 같은 왕위 계승권을 갖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주택 수요 2042년까지 꾸준히 증가할 것”

    인구 감소 불구 1~2인 가구 늘어 “소규모 주택정비사업 활성화로 서민들 저렴한 주택 공급 확대를”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2042년까지는 1~2인 가구가 늘면서 주택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1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주택산업연구원 주최로 열린 ‘서민주거 안정을 위한 효율적인 주택공급 방안’ 세미나에서 “주택은 가구 단위로 소비되므로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가구가 증가하면 주택 수요의 증가로 이어진다”며 “인구가 감소하는 2032년 이후에도 2042년까지는 가구가 늘어 신규 주택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2015년 이후 2045년까지 1∼2인 가구는 577만 가구가 증가하는 반면 4인 이상 가구는 279만 가구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에 따라 2042년에는 주택 수요가 인구에 기반한 가구의 수보다 203만~307만 가구 더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2030년쯤에는 20∼30년 된 주택이 전체의 27.5%인 450만 가구로 늘어나 대체 수요도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공유주택을 도입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고 공공주택의 통합, 도시계획과 연계된 택지공급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을 활성화해 서민을 위한 저렴주택 공급 확대를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서울 지역 소규모 주택정비사업 사례를 분석한 결과 주변 일반 아파트(분양면적 82.5㎡기준)보다 19~24% 싸게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소규모 주택정비사업 이후 늘어나는 주택을 공공임대주택이나 준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면 임차인의 주거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은 중소 규모의 사업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어 자금조달 문제와 일반분양분 미분양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에 기금지원과 대출보증, 미분양 리스크 해소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서리풀 지하터널·스피드재건축…비결은 서초의 ‘엄마행정’

    [자치단체장 25시] 서리풀 지하터널·스피드재건축…비결은 서초의 ‘엄마행정’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지난 3년여 동안 서울 서초구의 틀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서초구가 1988년 강남구에서 분구되기 이전부터 기대했던 정보사 부지 터널 관통부터 성뒤마을 공영개발까지 실타래처럼 읽히고 설킨 숙원 사업들을 속속 풀어내는가 하면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프로젝트와 같은 대형 랜드마크 조성 사업의 밑그림을 완성해 추진하고 있다.주민을 폭염으로부터 막아 주는 그늘막인 서리풀 원두막을 곳곳에 설치하고, 불법 노점상은 당당한 푸드트럭 사업자로 전환시키면서 거리의 모습도 정비하고 있다. 집안 대소사를 모두 챙기듯 서초구라는 집안의 발전과 불편까지 모두 잡아내는 ‘엄마행정’의 달인이란 평가가 나온다. 16일 만난 조 구청장은 이에 대해 “물이 99도까지는 잠잠하다가 100도에서 끓어 넘치듯, 제 앞에서 일하신 분들과 우리 서초 구민들께서 이미 99도까지 만들어 놓으셨고 저는 마지막 1도만 채웠다”며 몸을 낮췄다.조 구청장의 ‘엄마행정’은 지역의 숙원 사업 해결을 시작으로 신뢰를 쌓아갔다. 서초구는 구가 생긴 1988년 이래 도시계획이 바뀐 적이 없어 수십년 묵은 숙원 사업이 많았다.우선 37년간 서초의 막힌 맥을 뚫는 일부터 시작했다. 강남의 동·서축을 단절시키는 장애물인 서리풀공원 내 정보사 부지 밑으로 서리풀(정보사) 지하터널(355m)을 조성해 서초역과 내방역 길을 연결하는 일이다. 조 구청장은 2014년 7월 취임 후 정보사의 정보사령관과 국방부 차관을 잇따라 찾아갔다. 정보사 부지 주인인 국방부와 서초구가 부지 개발 계획을 놓고 오랫동안 합의하지 못하면서 터널공사도 발을 떼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일단 서리풀터널 관통 공사를 시작하고 부지 개발 방법은 추후에 논의하자고 설득했다. 이 같은 ‘투 트랙 전략’으로 문제는 실마리를 잡아내면서 공사는 이듬해 10월 착공됐다. 같은 해 말에는 부지에 공연장 등이 포함된 3만 2200㎡ 이상 규모의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하는 내용의 도시계획안도 마련하면서 ‘문화 서초’의 이미지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서초구의 또 다른 숙원 사업인 대형 판자촌 성뒤마을 공영개발 계획도 조 구청장의 작품이다. 마을은 석재상, 판잣집, 고물상 등 무허가 건축물 179개 동이 난립해 주변 지역에서도 민원이 많았지만 시는 자연녹지 보존을 이유로 방치했다. 조 구청장은 2014년 말 변창흠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이 취임하자 자리를 마련해 현장에 함께 가서 실상을 보여주고 개발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 결과 이듬해 5월 시의 공영개발 결정을 이끌어냈고, 지난 9월 공공주택 지구로 지정되면서 2022년까지 1200여 가구가 입주하는 계획을 완성시켰다.조 구청장은 무허가 건물이 난립한 방배동 국회단지 개발 계획도 완성했다. 이곳은 1970년대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토지 소유주들과 매매협상에 실패한 가운데 도로,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없는 상태에서 불법 가건물 등이 들어서면서 40여년간 무허가 난립지로 방치됐다. 조 구청장은 단지 내 도로와 땅을 공동소유한 200여명을 직접 만나 설득에 나섰고 최근 개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땅 주인들의 동의를 얻으면서 국회단지 일대 3만 2172㎡는 명품 전원주택마을로 재탄생하게 된다. 조 구청장이 이 같이 숙원 사업을 속속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일머리’가 좋고 인간관계 네트워크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란 평이 많다. 기자·청와대 비서관·서울시 정무부시장·대학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축한 인맥이 풍부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대인 매너도 뛰어나다는 게 중평이다. 그러나 조 구청장은 ‘2등 정신’을 비결로 꼽는다. 그는 “일에는 상대가 있는데 모든 공을 나 혼자 가져가면 다시 함께 일하기 어렵다”면서 “항상 상대방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소통과 공감을 하면서 어깨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20년 넘은 강남역 불법 노점상을 푸드트럭으로 전환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년 가까이 수십번을 담당부서장 등과 함께 노점상들을 찾아가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백종원 같은 유명 셰프를 초청해 노점상들이 좋은 메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홍보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최근에는 매출이 100배가량 오른 푸드트럭이 나올 만큼 활성화되고 있다.  적극적인 소통으로 생활밀착형 행정 서비스 구체화  조 구청장의 적극적인 소통은 지역 주민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주민들이 원하는 것을 생각만 하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원하는 일을 해주는 게 행정 서비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페이스북, 블로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운영은 기본이고, 직접 주민들과 얼굴을 맞대고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현장을 중시한다. 학부모들의 민원을 듣는 ‘스쿨톡’부터 어린이집을 찾아 육아 고충을 나누는 ‘보육톡’, 어르신 복지를 챙기는 ‘골든톡’ 등 분야별 정기 소통 장을 운영한다. 주로 주민 이야기를 많이 듣는 토크 콘서트 형식이어서 호응이 높다. 소통은 생활밀착형 행정서비스로 구체화된다. ‘스피드재건축 119’가 대표적이다. 지지부진한 재건축이 신속히 진행되도록 구청이 분쟁과 갈등을 조정해 주고 각종 행정 절차를 신속히 지원하는 내용이다. 당장 서초구에서 내년부터 적용될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할 수 있는 재건축 단지가 15곳에 달할 것으로 보고 보다 적극적인 행정 지원에 나서면서 인기가 높다. 실제로 최근 방배13구역, 신반포3차·경남,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신반포14차, 신반포22차 등의 사업시행인가를 처리한 바 있다. 서초 거리에 대형 파라솔인 서리풀 원두막을 설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민 통행이 많은 횡단보도와 교통섬 등 120곳에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서리풀 원두막을 설치해 쾌적한 보행환경을 제공하면서 유럽 대표 친환경상인 그린애플 어워즈를 받기도 했다. 그의 소통 행보는 지역 내 스타들을 구가 주최하는 지역 페스티벌인 서리풀페스티벌에 참여토록 이끌어내기도 했다. 올해도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를 비롯해 김세환, 남궁옥분, 테너 임웅균, 배우 정일우 등이 참여한 게 대표적이다. 연예인들이 한마음으로 지역을 위해 재능기부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보육 문제에서의 성과는 독보적이다. 조 구청장은 취임 전인 2014년 초 32개였던 지역의 국공립어린이집을 취임 후 3년여 만인 9월 현재 61곳으로 늘렸고, 내년 3월까지 서울에서 가장 많은 72곳으로 확충한다. 개청 30년 동안 국공립어린이집 개원이 연평균 1개에 그칠 만큼 보육 수급률 꼴찌를 전전하던 서초구가 그의 임기 4년간 한 달에 한 개꼴인 40개의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려가며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조 구청장은 “모든 성과는 서초구 주민들이 많이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다”면서 “훌륭한 주민들을 모시고 일한다는 게 영광이란 마음으로 서초의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조은희 구청장은 누구 靑·서울시 근무한 마당발 경북여고, 이화여대 영문과, 서울대 국문과(석사), 단국대 행정학(박사) 출신. 기자로 출발해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 문화관광비서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 정무부시장,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었다. 2014년 7월부터 민선 6기 서초구청장으로 일하고 있다.
  • [나태주의 풀꽃 편지] 아들아, 잘 가

    [나태주의 풀꽃 편지] 아들아, 잘 가

    올해도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 집에 다녀왔다. 다른 때와 달리 혼자서 잠시 다녀왔다. 부모님의 연세는 92세. 이제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고 거동조차 불편하신 분들이다. 그래서 명절에 모시는 제사를 장자인 내가 모셔오고 두 분은 그저 편안히 명절을 보내시도록 했다.하지만 사정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부모님께 추석 인사는 드려야 했기에 추석 이틀 전에 고향 집을 방문한 것이다. 공주에서 서천까지 오가는 길. 열여섯 살 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시작한 일이니 몇 번이나 이 길을 이렇게 오고 갔던가. 이래저래 고향 집을 찾아갈 때는 마음이 많이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대문간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미리 알고 마중 나오셨지만 어머니는 마당으로도 나오지 못하시고 부엌방 문을 열고 밖을 보고만 계셨다. 더욱 하얗게 늙으신 어머니. 하지만 그 얼굴이 환하시다. 좀처럼 오지 않던 큰아들이 집에 온 것이 잠시 좋으셨던가 보다. 늙으셨지만 여전히 고우신 어머니. 연신 그 얼굴이 벙글벙글 그냥 그대로 꽃송이다. 집에 낯선 여인이 한 분 보였다. 언뜻 막내 여동생인가 싶었는데 그동안 바뀐 요양보호사라 했다. 몸집이 퉁퉁하고 얼굴이 유순한 것이 사람이 좋아 보인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건강해 보이고 성격이 명랑하고 활짝 웃는 얼굴이 신뢰가 가는 분이다. 그분은 우리 부모님을 아버지 어머니라고 호칭했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노릇인가! 먼데 사는 자식들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 하나? 더구나 세상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 집에도 자주 들르지 못하는 나 같은 아들이 무슨 도움이 되나? 바로 이분이 우리 부모님의 친자식보다 더 좋은 자식이지 않는가. 먼데 단 나무보다 가까운 쓴 나무가 낫다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이르는 말. 겨우 한 시간 반 정도 머물고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공주로 돌아가는 직행버스 시간에 맞춰 미리 와 달라고 부탁했던 택시가 다시 바깥마당에 와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저 갈게요. 그냥 방안에 계세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에게 권했지만 어머니는 바깥마당까지 나오시겠다고 고집하셨다. 요양보호사가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이 또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물건이다. 바깥마당으로 나왔을 때 나는 재빨리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휠체어에 탄 어머니를 사진으로 담았다. 택시에 오르면서 다시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 저 갈게요. 그저 마음 편히 계셔요.” 늘 그렇게 하던 이별의 의식이다. 그때 어머니의 입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이 나왔다. “아들아, 잘 가.” 매우 힘이 없는 목소리. 나는 그 소리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집을 떠날 때는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너라”, 그렇게 하던 인사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저 마음 편히 계셔요”와 “잘 가”로 바뀌었다. 과거의 인사가 재회를 약속하는 인사였다면 오늘의 인사는 이별을 전제로 하는 인사다. 어려서 외할머니 손에 길러진 나는 어머니가 늘 낯설고 서먹했다. 그것을 알기에 어머니는 큰아들인 나한테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이제는 많이 쇠약해지고 조그마해져서 내 앞에 계신다. 거꾸로 이분이 어린아이 같고 내가 어른 같다. 사뭇 매달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신다. 그러면서 “아들아, 잘 가.” 손을 내저으며 인사하신다. 조금은 냉정하기조차 한 나지만 그 한마디 말씀에는 무방비 상태로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이것이 영이별이 되는 것은 아닌지! 참았음에도 불구하고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막동리 고향 집에서 서천읍까지는 8㎞. 걸어서 서천중학교를 통학하던 길이다. 모든 풍광이 낯익고 느슨한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도무지 그렇지 않다. 울먹울먹 바라보는 모든 사물들이 어머니다.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 꽃들이 어머니고 억새꽃 갈대꽃이 어머니고 가을볕 받아 혼곤한 들판이 어머니고 마을로 들어가는 꼬불길 하나조차 어머니다. 아, 나는 얼마나 부족한 아들이고 못난 아들인가!
  • “부영 등 부실시공 업체 공공택지 공급 원천 차단”

    부영이 경기도 일대에서 무더기 ‘하자 아파트’ 문제로 후분양제에 불을 붙인 가운데 부실시공 업체에 공공택지 공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경기도는 15일 “최근 부실시공으로 문제가 된 경기도 내 ㈜부영주택 10개 단지는 공공택지를 매입해 건설한 것”이라면서 “국회 및 주무부처와 함께 택지개발촉진법, 공공주택특별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 문제 업체에 공공택지 공급을 막겠다”고 밝혔다. 경기도가 이 같은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부영주택이 건설해 지난 3월 입주한 동탄2신도시 부영아파트에서 9만여 건이 넘는 하자 민원이 발생하는 등 부실시공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은 아파트 평판이 나빠지고,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이례적으로 직접 부영아파트의 부실시공 실태를 공개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민원을 직접 챙기겠다며 단지 내에 ‘현장 시장실’을 만들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부실시공 벌점이 많은 건설사에 대해 선분양을 막는 내용의 법안까지 추진하는 등 후분양제 논의에 불을 지폈다. 부영 아파트 하자 민원은 화성시 향남2주택지구에서도 나왔다. 경기도는 지난 8월 실시한 품질검사에서 화성시 향남2주택지구에서 총 134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부실이 잇따르자 도는 지난 8~9월 도내 건설 중인 10개 부영 아파트 단지에 대해 특별점검을 실시해 66점의 부실벌점을 부과했다. 동탄2 호수공원 주변 부영 6개 단지(A70~A75블록)에 대해선 공기 부족에 따른 부실시공 가능성을 감안해 부영 측에 공사기간 연장 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부영은 분양가를 부풀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11일 “부영이 허위 분양원가 공개로 분양가를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화성2신도시에서 부영이 분양한 23블록, 31블록 아파트 사업비를 분석한 결과 최초 사업비보다 2323억원이 증액됐다고 밝혔다. 부영은 “사업비가 변경됐지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업을 진행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부영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세청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측이 수십억원을 탈세한 혐의를 포착해 지난해 4월 고발, 검찰이 수사 중이다. 이와 함께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6월 계열사 허위신고로 이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가 각각 고발한 부영 탈세와 계열사 허위신고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가 통합해 맡기로 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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