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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多樂房] ‘사랑에 빠진 것처럼’

    [영화 多樂房] ‘사랑에 빠진 것처럼’

    ‘사랑에 빠진 것처럼(17일 개봉)’은 아주 인상적인 앵글로 시작한다. 카메라는 주인공 아키코(다카나시 린)의 옆자리에서 어두운 술집의 전경을 응시하고 있다. 특정 인물이나 공간을 보여 주려는 의도 없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는 아키코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도 카메라는 반응하지 않는다. 친구인 나기사(모리 레이코)가 아키코 앞에 다가와 앉은 다음에야 카메라는 마치 깜박 잊고 있었다는 듯이 주인공을 비춘다. 하지만 그렇게 무심했던 시선은 곧 호기심으로 변하고, 저마다 가면을 쓰고 있는 인물들의 내면으로 깊숙이 다가간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조우(遭遇)로 시작해서 운명(運命)이 되어 버린 도쿄의 첫인상을 이런 방식으로 회상한다. 얼핏 평온해 보이는 도시 안에 꿈틀대는 역동성, 그 두 얼굴이 이 거장의 마음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이방인이 아닌 예술가로서 이 낯선 공간을 장면화한다. 이국적인 문화와 풍경을 담는 데 집착했던 다른 외국 감독들과는 달리,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과 분위기를 섬세하게 살리면서도 새로운 프레이밍(framing)을 시도한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인 도쿄의 밤과 낮처럼, 등장인물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낮에는 대학생이지만 밤에는 남자들을 접대하는 아키코가 대표적이다. 누군가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그녀는 여러 얼굴들 뒤에 가려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기 어렵다. 유난히 일을 나가기 싫었던 밤, 아키코는 존경받는 전직 교수이자 학자인 다카시(오쿠노 다다시)를 고객으로 만나게 되고, 여기서부터 다카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는 박식하고 점잖지만 은밀히 대학생을 불러 로맨틱한 밤을 꿈꾸기도 하는 노인이다. 밤에는 아키코의 고객이었으나 해가 뜨자 그녀의 할아버지로 분하게 되는 상황극은 떳떳하지 못한 다카시의 이면을 드러낸다. 여기서 영화는 세 번째 인물, 아키코의 남자친구인 노리아키(가세 료)를 등장시킨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가장 평범하게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인물이며, 아키코나 다카시와 달리 감추는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애인에 대한 노리아키의 집착과 소유욕은 폭력을 동반하고, 건실한 경영인으로서의 이미지와 충돌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여자를 지키고자 하는 연인에서 오히려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는 악한으로 변하고 만다. 사랑의 주변부를 맴도는 이 세 사람은 우연히 다카시의 차에 타고 동행한다. 영화 내내 대화 장면에서조차 두 인물을 한 프레임에 담기 꺼려했던 카메라는 비로소 좁은 공간 안의 세 사람을 함께 보여 준다. 여기서 다카시의 차는 도시의 축소판이며 양면성이라는 주제를 함축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들의 공존은 아키코의 시험과 자동차에 관한 대화 속에 얼핏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드라이브 벨트처럼 거짓과 오해로 인한 긴장감으로 곧 폭발할 것만 같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뾰족하거나 차갑지 않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눈물을 닦으며 붉은 립스틱을 바르던 아키코를 비추던 카메라가 암시하듯 오히려 촉촉하고 애틋하다. 따지고 보면 모순과 갈등을 동력으로 버티는 도시가 어디 도쿄뿐이겠는가.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 신이 빚은 ‘보석의 바다’에 빠져볼까

    신이 빚은 ‘보석의 바다’에 빠져볼까

    신의 은총이 넘쳐나는 반짝이는 보석의 바다가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 7000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중앙에 큰 섬 7개와 수백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진 비사야 제도다. 12일 오전 9시 40분 KBS 1TV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비사야 제도 곳곳에 숨겨진 작고 예쁜 섬들과 그곳에 깃든 낙천적인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필리핀의 옛 수도이자 문화의 중심인 세부의 산토 니뇨 성당을 비롯해 세부의 남쪽 끝 마을 오슬롭에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인 고래상어를,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보홀섬에서는 신비한 언덕으로 이름난 초콜릿힐을 소개한다. 국민의 80%가 믿는 필리핀 국교인 가톨릭은 스페인의 영향으로 꽃을 피웠다. 세부에는 필리핀에 가톨릭을 전파한 탐험가 마젤란이 세운 마젤란 십자가와 1500년대 아시아에서 최초로 건립된 산토 니뇨 성당이 있다. 산토 니뇨 성당은 일요일이면 필리핀 각지에서 미사를 보기 위해 수천명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수확의 계절 9월이 되면 필리핀 국민들은 저마다 자신이 믿는 신과 수호성인에게 수확을 감사하는 축제를 연다. 이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깊은 신앙심과 전통을 살펴본다. 세부 남쪽의 작은 어촌마을 오슬롭. 이곳에 2년 전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인 고래상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 자라면 몸길이가 14m나 되는 고래상어는 플랑크톤을 주식으로 먹고 사는 온순한 물고기다. 마을의 한 어부가 심심풀이로 먹이를 주기 시작하자 모여들기 시작한 야생의 고래상어가 무려 20여 마리나 된다. 소문이 나면서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고래상어와 어부들은 언제까지 공존할 수 있을까.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보홀 섬. 이곳은 1776개의 언덕인 초콜릿힐로 유명하다. 옥수수 모양의 산호 무덤인 초콜릿힐은 200만년 전 물속에서 형성된 특수한 지형이다. 보홀의 꽃이라 불리는 해변, 알로나 비치로 전통 배 방카를 타고 나가면 여러 무리의 돌고래도 만나볼 수 있다. 세계적인 다이빙 포인트도 포진해 있다. 발리카삭섬은 바닷속이 마치 하늘처럼 맑아 이미 전 세계 다이버들에게 입소문이 자자한 곳으로 바다거북 등 수많은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 세계 3대 다이빙 포인트 가운데 하나인 아포섬에서는 보키아라는 해파리를 이용해 잡는 서전피시(검은쥐치)가 유명하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건보공단 조합원 1만명 ‘메가급 노조’ 출범

    조합원이 1만명에 이르는 전국 최대 규모 사무직 노동조합이 탄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양대노조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전국사회보험지부(사보노조)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조(직장노조)가 7일 조인식을 열고 단일노조 출범을 결의했다. 2011년 7월 동일사업장에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진 이후 기존에 존재하던 노조가 내부 논의를 거쳐 자체 통합한 것은 처음이다. 단일노조는 당분간 사보노조 황병래 지부장과 직장노조 성광 위원장이 공동위원장으로서 모든 사업을 함께 집행하는 방식으로 이행기를 거친 뒤 최소 6개월, 최대 1년 이내에 조합원 60% 이상이 지지하는 상급단체를 선택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단일노조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각각 탈퇴해 기업별 독립노조로 전환했다. 두 노조의 조합원 규모는 사보노조가 6411명, 직장노조가 3392명이다. 노조 가입대상 직원 가운데 사보노조는 50.9%, 직장노조는 27.0%를 조합원으로 아우르고 있다. 단일노조 출범 배경에는 사내에 사보노조와 직장노조가 공존하면서 임금협상이나 단체협상에서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작용했다. 조창호 사보노조 정책기획실장은 “건보공단 직원의 처우환경은 보건복지부 산하 유관기관 중 최저 수준”이라고 말했다. 향후 10년간 정년퇴직하는 노조원이 양대 노조 조합원 가운데 40%나 되는 반면 신규직원은 노조가입률이 갈수록 낮아진다는 위기의식도 노조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단일노조는 “노조통합을 계기로 앞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비롯해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열린세상] 제로섬 게임의 전통을 넘어서/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열린세상] 제로섬 게임의 전통을 넘어서/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당나라의 천재 시인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를 보면 ‘인물은 뛰어나고 땅은 신령스럽네’(人傑地靈)라는 구절이 나온다. 풍수에서는 이 말을 ‘뛰어난 인물이 영기(靈氣) 있는 땅에서 나온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땅과 인물에 관련된 흥미 있는 설화가 많은데 그중에서 ‘절맥’(絶脈) 설화는 상당한 정치적 뉘앙스를 풍긴다.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팔도 곳곳의 지세와 물산·인문을 논하면서, 결국 조선은 천리 되는 들과 만리 되는 강이 없으니 천하를 경영할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단정하였다. 약소국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를 환경 결정론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이러한 인식과 표리를 이루는 것이 절맥 설화이다. 야담에 의하면 고구려 보장왕 때 당나라로부터 도사들이 들어와 명산대천의 영기를 누르고 동명성왕이 승천했다는 조천석(朝天石)을 깨뜨렸다고 한다. 이어서 고려 공민왕 때 서사호(徐師昊)라는 명나라 사람이 천자의 기운이 있는 땅에 말뚝을 박아 봉인했다든가,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이끌고 들어온 장군 이여송(李如松) 휘하의 도사가 역시 비슷한 행위를 했다는 설화 등이 전승되고 있다. 강력한 외세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에서 비롯되었을 절맥 설화는 내부적으로 미래 라이벌의 출현을 견제하고 사전에 방지하려는 ‘아기장수’형 설화와 또 다른 표리 관계를 이룬다. 아기장수 우투리가 날개를 달고 모반하려다 사소한 실수 때문에 죽고 말았다든가, 장사가 태어나면 큰 역적이 된다고 하여 땅을 봉인하거나 아이를 죽였다든가 하는 설화들이 그것이다. 김동리는 ‘황토기’(黃土記)에서 이러한 유형의 설화를 잘 수용하여 비범한 인물의 허망한 삶을 표현한 바 있다. 문제는 면면히 전승되어온 설화는 단순히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한 사회의 고유한 성향 혹은 내면화된 어떤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역사 현실에서 자주 보이는, 상대방에 대해 일말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가혹한 견제, 뛰어난 인물에 대한 유별난 질시와 배척 등의 현상은 혹시 이러한 설화 유형과 모종의 관련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 전기에 사화(士禍)로 표출되었던 훈구파의 사림파에 대한 몇 차례에 걸친 공격, 후기의 노론과 남인 간의 각축 양상을 살펴보면 양자가 결코 공존할 수 없고 둘 중의 하나는 완전히 타격을 입어야 싸움이 종식되는 구조를 띠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이중환이 지적한 대로 천리의 들과 만리의 강이 없는 좁은 땅덩어리가 안고 있는 숙명적인 조건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상대를 용납할 여유가 없는 조건에서는 모든 것을 잃게 되거나 얻게 되는 제로섬 게임의 상황이 벌어지기 쉽다. 훈구파와 사림파의 투쟁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토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사림파가 부상하면서 나눠 줄 토지는 없는 상황에서 기득권에 위협을 느낀 훈구파가 사림파를 박멸하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러한 구조는 사회 각 분야로 확대된다. 어느 분야든지 판이 작으므로 함께 윈-윈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 아니 남을 용납하면 내가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하는 극단의 처지를 각오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두각을 나타내면 결코 그를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려는 풍토가 지배적이다. 인정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로 인해 뛰어난 인물에 대한 시기와 참소가 성행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뜻을 펴지 못한 채 초야에 묻혀 평생을 우울하게 보냈다. ‘재주를 품고 있으되 때를 만나지 못한’ 회재불우(懷才不遇)의 처지에 놓인 사람이 그 얼마나 많았겠는가? 모든 분야가 넓고 다변화된 오늘의 한국사회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타성이 불식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이나 골목 상권이 맡고 있는 업종마저 가로채거나 벤처 기업의 설 자리마저 없게 만들어 버리는 대기업의 독식 본능, 하청업체나 대리점 등에 가해지는 갑의 을에 대한 부당하고 무자비한 요구, 강한 자는 갈수록 강해지고 약한 자는 끝없이 약해지는 악순환의 고리 등 여전히 우리 사회 도처에는 제로섬 게임의 생존논리가 미만(彌漫)해 있다. 어떻게 과거의 전통(?)을 극복하고 윈-윈의 생태적 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 시녀들이 먹여줘요! ‘도련님식사’체험 논란

    시녀들이 먹여줘요! ‘도련님식사’체험 논란

    중국에서 명·청시대를 재현한 이색 체험을 할 수 있는 행사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현재 중국의 최대 명절인 국경절 기간인 중국에서는 관광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이색 이벤트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 후난성 훙장시에서는 ‘도련님(少爷)상’, ‘아가씨(小姐)상’, ‘주인마님(老爷)상’ 등 독특한 메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사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은 명(明) 또는 청(淸) 시대에 황제나 왕족들이 즐긴 음식과 ‘대접’을 재현한 것으로, 과거 시녀를 연상케 하는 젊은 여성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나와 당시의 음식을 먹여주거나 의상을 입어볼 수 있는 이벤트 등이 준비돼 있다. 그러나 메뉴에 붙은 ‘도련님’, ‘아가씨’, ‘주인마님’ 등의 단어가 과거 악습과 연관된 잘못된 명칭이라는 지적이 불거졌다. 과거 ‘도련님’은 돈 많은 부모 아래서 자기 고집만 부리며 방탕하게 생활하는 재벌 2세를, ‘아가씨’는 불법퇴폐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주인마님’ 역시 악덕관리들을 비꼬는 표현 중 하나로 쓰였는데, 사람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좋지 않은 의미의 단어를 굳이 사용했다는 것. 네티즌 사이에서도 역사를 반영한 흥미로운 이벤트라는 의견과 메뉴의 이름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공존하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13억 큰손의 쇼핑… ‘백’을 엿보다

    13억 큰손의 쇼핑… ‘백’을 엿보다

    [트렌드 차이나] 김난도·전미영·김서영 지음/오우아/388쪽/1만 6000원 일본인 관광객으로 넘쳐나던 서울 명동은 어느새 중국인 관광객의 천국으로 변했다. 백화점과 면세점의 큰손도 이제 일본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다.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서도 중국은 연평균 10%의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세계의 생산공장’에서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움직이려면 중국 소비자를 먼저 사로잡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2007년 명품 소비자의 소비 동기를 분석한 ‘럭셔리 코리아’를 시작으로 매년 한국의 소비 흐름과 소비자 특성을 연구한 ‘트렌드 코리아’를 출간해온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이번엔 13억 5000만 중국인들의 소비 DNA와 트렌드를 집중 분석했다. ‘트렌드 차이나’는 김 교수와 서울대 소비트렌트분석센터의 전미영 수석연구원, 김서영 책임연구원이 중국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들의 의뢰를 받아 3년간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기업들의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 수립을 위한 전문 연구서의 성격을 띠지만 중국의 변화된 사회상과 라이프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운 안내서 역할을 한다.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출간된 이 책은 중국의 소비자가 무엇에 열광하고, 어떻게 소비를 하며, 앞으로 소비시장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등 크게 세 가지 분야를 다룬다. 책은 먼저 중국 소비자를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소득 수준과 소비에서 자기 만족감과 타인의 시선 중 어느 쪽에 더 좌우되는지를 따지는 자기·타인 지향성의 두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VIP형 소비자 ▲자기만족형 소비자 ▲트렌디형 소비자 ▲실속형 소비자 ▲열망형 소비자 ▲검약형 소비자로 구분한다. 소비자학을 전공한 중국인 전문가와 한국인 석·박사들이 짝을 이뤄 심층면접과 가정방문을 통한 관찰조사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체계화한 각각의 소비자 유형 분석은 매우 현실적이다. 가령 VIP형 소비자 유형은 34세 기혼 여성 변호사인 리샹(李湘)의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손에 잡힐 듯 자세하게 제시된다. 최상위 소득계층인 그녀는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고, 남편과 따로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유기농 제품을 즐겨 구입한다. 해외 브랜드에 대한 지식수준이 높고, 일상에서 묻어나오는 자연스러운 과시를 선호하는 등 생활 자체의 프리미엄을 추구한다. 자기만족형 소비자는 유행이나 브랜드보다는 자기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트렌디형 소비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실속형 소비자는 합리적 구매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열망형 소비자는 만사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더 많이 갖지 못한 현실에 슬퍼하는 특징을 보인다. 검약형 소비자는 절약하는 삶 자체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이기 때문에 삶의 만족도가 비교적 높은 것이 특징이다. 책은 이 같은 소비자 유형의 특징에 따른 기업들의 맞춤형 전략을 자세히 소개한다. 저자들은 이와 함께 중국인의 남다른 소비 DNA를 7가지로 요약한다.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 체면을 중시하면서도 실속을 차리는 문화, 저신뢰 사회가 야기한 소비자들의 불신, 집단의식 속의 개인주의, 중국식 가족소비, 중국 전통과 글로벌 기준의 공존 등을 중국 소비자의 소비행태에 녹아 있는 공통의 성향으로 꼽았다. 또한 중국 소비시장의 최신 3대 트렌드로 삶의 질 향상과 니치(틈새)시장의 주류화, 중국식 신실용주의의 대두를 제시했다. 중국 시장은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이지만 동시에 무모한 도전의 늪이 될 수도 있다. 실패의 이면에는 잘못된 고정관념과 안이한 전제가 있다. 중국은 하나의 시장이라는 ‘단일 시장의 신화’, 같은 연령과 성별이라면 같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보편가치의 신화’, 유행은 반드시 번져 나간다고 보는 ‘트리클다운의 신화’가 그것이다. 또한 현재의 중국은 과거의 한국이라는 ‘후진 시장의 신화’, 중국인은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고 여기는 ‘프리미엄의 신화’, 그리고 한류 열풍이 한국 제품에 대한 인기로 이어진다는 ‘한류의 신화’ 등이 기업의 실패를 이끄는 대표적인 오해라고 책은 지적했다. 꼭 기업이 아니라도 곰곰이 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특파원 칼럼] 서울대행진을 기다리며/김민희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서울대행진을 기다리며/김민희 도쿄특파원

    출생의 조건을 선택할 수 있다면 195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몇날 며칠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줄곧 해왔다. 리안 감독의 영화 ‘테이킹 우드스톡(2009)’ 때문이었다. 토익 점수나 통장 잔고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아랑곳없이 고고하게 평화와 사랑 같은 대의(大義)를 논하는 20대는 얼마나 낭만적인가. 어찌 됐든 반전평화운동이라는 것도 1950년대 미국의 풍요로움 위에서 꽃이 핀 것이니, 나이로 따져 88만원 세대의 맨 앞쯤에 있는 내 처지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달 22일 열린 ‘도쿄대행진’을 취재하며 이번에는 한국인으로서 일본이 부러웠다.<서울신문 9월 23일자 15면 참조> 도쿄의 심장이라는 신주쿠에 1000여명의 일본인이 모여 한목소리로 외친 것은 다름 아닌 ‘차별 없는 세상’이었다. 일본도 사회적 부조리와 갈등이 왜 없겠냐마는, 이날 모인 이들에게 그보다 더 심각하게 다가온 것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최근의 분위기였다. 과격 우익 단체의 혐한 시위가 기승을 부리는 통에 집회의 주제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증오 발언)를 비판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들은 “재일 한국인, 여성, 성적 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는 일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대의를 위해 1963년 워싱턴 평화대행진을 본뜬 ‘도쿄대행진’에 참가한 것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시위를 접했지만 이런 종류의 시위는 처음이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최근 10년간 서울에서 열린 집회의 대부분은 명확한 이해관계와 요구사항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굵직한 것만 나열해도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건으로 불거진 반미 집회,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 반대 집회,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등이 그렇다. 이런 집회가 나쁘다고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보다 한 차원 높은 인권이나 평화를 위해 많은 사람이 집회를 벌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한때 한국 사회도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처럼 대의를 위해 떨쳐 나서던 시절이 있었다. 무수히 많은 이들의 희생을 통해 일궈낸 성취도 있다. 일본 사회운동가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렇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는 구성원의 인권과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인색해졌다. 이 정도의 인권이라면 괜찮다는 사회적 합의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먹고사니즘’, ‘우리끼리즘’에 경도돼 나나 내 가족의 안위와 관계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인권이나 전 세계의 평화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것일까. ‘도쿄대행진’과 단순히 비교하자면 서울 명동에 1000명의 인파가 모여 “차별은 하지 말자, 함께 살자”고 외치며 오직 평화만을 위해 집회를 연 적이 과연 있었던가. 한 나라의 ‘국격’을 재는 척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국격의 척도는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도 국적, 인종, 성별을 떠나 타인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인권 감수성이 있는 나라인지 여부다. 도쿄대행진을 보고 내 마음속에서 일본의 국격은 조금 올라갔다. 조만간 서울대행진이 조직돼 그 집회를 취재하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haru@seoul.co.kr
  • [총체적 위기에 빠진 재계] (2) 실물경제 자금난에 ‘허덕’

    [총체적 위기에 빠진 재계] (2) 실물경제 자금난에 ‘허덕’

    긍정적인 신호가 없다. 2008년 미국발 국제 금융위기 탓에 얼어붙은 세계 경기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더불어 국내 기업들의 경영 수지는 자꾸 악화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을 달리는 기분”이라는 게 현재 재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자금난에 따른 실물경제 악화 우려는 장기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건설·해운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웅진과 STX에 이어 동양까지 올 들어 대기업집단(그룹) 3곳이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가자 재계는 30대 그룹 가운데 16개가 해체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때의 악몽을 떠올리는 분위기다. 현재 재정난을 겪고 있는 기업으로는 동부가 꼽힌다. 여기에 동양의 법정관리 영향으로 회사채 시장까지 얼어붙으면서 기업의 자금관리가 더욱 어려워지는 ‘돈맥경화’ 심화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동부그룹은 재무 상태가 가장 악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부제철의 전기로 투자 비용이 당초 예상치 6200억원에서 환율 상승 등의 영향으로 2배가 넘는 1조 2700억원으로 급증하면서 재무 상황이 악화됐다. 여기에 동부건설 등 다른 비금융 계열사도 재정 상태가 어렵다. 이런 재정난은 건설·해운업계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자사의 재정난에 대해 “업황에 따른 일시적인 흐름일 뿐 주력 업체 없이 몸집 불리기에 나섰던 동양 등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속내는 바짝 타들어 간다. 잇따른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교체와 구조조정이 이를 방증한다. 대형 건설사 중 GS건설, SK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최고경영자를 교체했다. 허명수 GS건설 사장, 최창원 SK건설 부회장이 모두 경영 실적 악화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기석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안전사고를 이유로 경질됐지만 국외 사업 실적 악화도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업계 20권 안팎의 건설업체는 사업 현황이 STX나 동양 등과 달라 당장 어려움이 닥쳐온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국내 시장 사정이 어려운 것은 다 동일할 것”이라면서 “기업별로 성장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적극 진출하고 있지만 해외 시장은 수익의 불안정성도 공존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나마 진출한 해외 시장에서 국내 건설사들끼리 출혈경쟁을 벌여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는 지난해 한때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가 저가수주 경쟁을 펼쳐 제 살을 깎아 먹은 것과 같은 상황이다. 한진그룹과 현대그룹은 주력인 해운업황이 여전히 바닥을 치고 있다. 한진은 한진해운 부채비율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775%까지 상승한 데 이어 대한항공 부채비율도 1088%로 높아졌다. 현대도 부채비율이 900%에 육박하는 현대상선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이달 만기도래분 회사채 상환을 위해 정부의 회사채 차환발행 지원 사업을 신청하기도 했다. 증권 전문가들이 내놓는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이정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지난 8월 초 발표한 ‘경기민감업종의 하반기 전망과 시사점’에 따르면 건설·해운·조선업 등 경기 민감업종은 하반기 국내외 경기의 완만한 회복 전망에도 불구하고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이 선임연구원은 “회사채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하반기 만기 도래하는 건설업종의 3조원 규모 회사채에 대한 차환 발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해운업은 이미 사상 최저 수준인 운임과 물동량이 회복되더라도 상승폭이 소폭에 그쳐 실질적인 해운업 실적 회복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왕상 우리리서치 연구위원은 “건설업계 등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고 채권 만기가 도래하는 가운데 만기 연장 등의 조치가 따르지 않는다면 무너질 기업은 더 있다고 본다”면서 “채권 만기를 연장해 주고 공적자금을 마련해 기업의 숨통을 틔워 주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설렘·혼돈이 뒤섞인 세기말, 음악 거장 드뷔시·말러의 발자취 따라…

    설렘·혼돈이 뒤섞인 세기말, 음악 거장 드뷔시·말러의 발자취 따라…

    100여년 전 유럽. 20세기로 발을 내딛기 앞서 혼돈과 불안의 시대를 살았던 세기말의 예술가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현대를 향한 변화의 움직임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던 시절, 유럽 문화의 중심이 된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던 두 음악가를 만난다. 클로드 드뷔시(1862~1918)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이다. 4일 오후 10시 45분 방송되는 EBS ‘서양음악기행’ 5부 ‘드뷔시와 말러-세기말 두 도시 이야기’ 편에서 피아니스트 조재혁 성신여대 교수가 이들의 자취를 따라가 본다. 19세기 말 파리에서는 만국박람회가 열린다. 박람회를 기념해 에펠탑이 세워지는가 하면 세계 각국에서 건너온 신기하고 이국적인 전시품들이 유럽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당시 파리에서 가장 감각적인 피아니스트로 유명했던 드뷔시 역시 박람회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특히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동양의 미술품과 음악이었다. 드뷔시의 명곡 ‘바다’에 영감을 준 그림은 ‘가나가와의 큰 파도’였다. 일반인들에게는 비공개인 이 그림을 유럽에서 가장 큰 아시아 전문 박물관인 기메박물관이 직접 공개한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드뷔시의 귀를 사로잡은 인도네시아의 민속음악 가믈란 수업 현장이다. 같은 시기 빈의 시민들은 암담한 현실의 고민을 잊기 위해 예술에 관심을 쏟아부었다. 그 현장에서 말러는 수많은 명곡들을 작곡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무대 조명과 동선에 대한 규칙까지도 만들었다. 공연 중에는 문을 닫아 관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관행도 말러에서부터 시작됐다. 유대인이라는 출생 때문에 평생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말러.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빈 최고 지휘자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본다. 100년 전 말러가 살고 있던 아파트에는 지금 누가 살고 있을까. 그가 생전에 살던 집부터 작곡에 몰두할 때마다 찾았다는 깊은 산속의 작은 오두막까지 빈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말러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열망이 들끓던 시대인 19세기 말.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100년 전 그들의 모습을 통해 반추해본다. 동시에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에 공감하며 위로받는 시간을 가져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건축·IT·음악… 쉽고 재밌는 다큐의 장

    건축·IT·음악… 쉽고 재밌는 다큐의 장

    사색의 계절 가을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찾아온다. 올해 10회째를 맞는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그것. 10월 18~25일 열리는 EIDF는 전 세계 23개국에서 출품된 54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고려대 KU시네마트랩, 건국대 KU시네마테크,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된다. 이 가운데 43편은 19~25일 EBS 채널에서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방송돼 안방에서도 볼 수 있다. ‘진실의 힘’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영화제의 특징은 전통적인 휴머니즘과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은 물론 음악, 건축, IT 등 다양하고 연성화된 소재를 다룬 팝 다큐가 많아 보다 쉽고 재미있게 다큐멘터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제 개막작은 에바 웨버 감독의 ‘블랙 아웃’이다. 전기가 부족한 서부 아프리카의 빈국 기니의 아이들이 낮에는 노동에 시달리고 밤에는 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공항이나 주유소, 부촌의 공원을 찾아다녀야 하는 가혹한 현실을 다룬 작품이다. 경쟁 부문인 페스티벌 초이스에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많다.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왼쪽)는 현재 1000만권의 책을 스캔해 인터넷상에 무너지지 않는 인터넷 도서관을 건설하고 있는 구글의 프로젝트를 통해 빅브러더의 출현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다큐멘터리다. ‘우리들의 닉슨’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백악관에서 물러난 닉슨 대통령의 최측근이 8㎜ 카메라로 닉슨의 일상을 촬영해 기존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이 밖에도 ‘게이트 키퍼’는 이스라엘의 3대 정보기관으로 꼽히는 신베트가 팔레스타인과의 대테러 전쟁의 실제 현장을 담은 자료와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전쟁의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월드 쇼케이스’ 부문에서는 최근 국제 뉴스 등을 통해 접한 사건들의 이면을 파헤치는 총 9편의 작품들이 초청됐다. 2011년 노르웨이 우토야 섬 총기난사 사건(‘우토야의 그날’), 아덴만의 소말리아 해적들(‘빼앗긴 바다:소말리아 해적 이야기’), 일본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쓰나미 후에 오는 것들’) 등이 대표적이다. ‘가족과 교육’ 부문에서는 알츠하이머로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아낸 ‘마리안과 팸’, ‘나의 어머니 그레텔’이 주요 작품이다. 올해 신설된 ‘도시와 건축’ 부문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모더니즘 건축 양식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 관한 ‘무에서 영원을 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상영되고 기술과 문명 섹션에서는 온라인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다룬 ‘위 약관에 동의합니다’와 9·11 테러 이후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한 이스라엘 군수 산업의 이면을 조명한 ‘세상에 없던 무기도 만들어 드립니다’가 눈에 띈다. 음악 다큐멘터리도 주목해 볼 만하다. 비틀스의 유일한 개인 비서이자 팬클럽 매니저였던 프레다 켈리가 들려주는 비틀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프레다,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틀스’(오른쪽)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레오나르드 레텔 헴리히 특별전’도 준비됐다. 프레다 켈리는 EIDF의 초청으로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다. 헴리히는 ‘싱글 샷 시네마’라는 독특한 촬영기법을 선보이며 ‘태양의 눈’, ‘달의 형상’, ‘내 별자리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 3부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감독이다. 특히 고려대와 연계한 이번 영화제에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초빙해 국내 다큐 제작자와 영상 관련 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실무적인 제작과정을 강의하는 ‘EIDF 독 캠퍼스’도 열린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호수를 배경 삼아 즐기는 거리축제

    탁 트인 호수와 시원한 분수를 배경으로 거리극, 인형극, 무용 등 다양한 거리 예술의 향연이 펼쳐진다. 제5회 고양호수예술축제가 28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경기 고양시 고양호수공원과 일산문화공원, 화정 문화의 거리 등 고양 시내 곳곳에서 열린다. ‘고양 600년, 미래를 찾다!’라는 슬로건 아래 국내외 거리 예술 공연, 신진 예술가와 아마추어들의 공연이 총 180여회 열린다. 이번 축제의 공식 참가작은 해외 초청 4개, 국내 초청 13개 등 총 17개 단체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대표작으로는 스페인 거리극단 작사의 ‘선원과 바다’가 꼽힌다. 스페인 발렌시아 지역 출신으로 중세 유럽 최고의 시인 중 한명으로 꼽히는 아우시아스 마르크의 시 ‘선원과 바다’에서 모티프를 따와 삶의 근원이자 문화의 연결고리이면서 환경오염으로 위기에 처한 바다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극단은 자애의 상징에서 핵폐기물의 묘지로, 오일 탱크와 같은 재앙으로 변모하는 바다의 여러 가지 모습을 화려한 색채와 불꽃 효과로 표현한다. 국내 초청작인 노리단의 ‘공룡기사단의 부활’은 3억년 전 멸종된 공룡들을 고양호수공원에 부활시켜 인간들과 한바탕 기쁨의 축제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사실감 넘치는 붉은 익룡 오브제와 역동적인 타악 공연이 결합되며 시민 200여명이 참여해 자연과 인간, 판타지와 현실이 공존하는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젊은 예술가들이 특유의 신선함과 자유분방함을 발산하는 행사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28~29일 화정 문화의 거리 문화광장에서 열리는 ‘고양 아마추어 스트리트 페스티벌’에는 라이브밴드, 퍼포먼스, 댄스 등 아마추어 예술인 18개 단체가 참여한다. (031)960-0057.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책으로 소통하는 아시아” 파주 북소리 28일 개막

    “책으로 소통하는 아시아” 파주 북소리 28일 개막

    아시아 최대 북페스티벌을 표방하는 ‘파주북소리 2013’이 오는 28일부터 10월 6일까지 경기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린다. 3회째인 올해 행사는 ‘책으로 소통하는 아시아’를 주제로 특별전과 국제교류 행사, 시민참여 마당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는 특별전시 ‘고지도, 상상의 길을 걷다’가 열린다. 조선 초기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18세기 후반 제작된 ‘도펠메이어의 천문도’를 포함해 국내외 고지도, 천문도, 지리·역사 관련 고문헌 등 80여점이 전시된다. ‘아시아 작가와 도시’ 국제문학 심포지엄에는 황석영·김미월 등 한국 작가와 베트남의 바오닌, 티베트의 망명 시인 체링 왕모 돔파 등 16개국 30여명의 작가가 한자리에 모여 아시아의 도시가 어떻게 문학의 배경이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작가들이 글과 사진, 음악,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도시를 소개하는 문학콘서트와 각국 이야기 구연전문가들이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아시아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출판인들 간 소통과 교류의 장인 국제출판포럼에선 경계를 넘어서 책으로 소통하는 협력 방안에 대해 모색한다. 일본의 대표적 지성인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가 ‘동북아 지역의 위기와 극복을 위한 방안’을 주제로 기조 강연을 하고, 오카모도 아쓰시 이와나미 서점 대표와 방재석 도서출판 아시아 대표 등 7개국 17명의 출판인이 아시아 각국의 화합과 공존을 위한 출판의 역할에 대해 논의한다. 시민 참여행사도 풍성하다. 스마트 백일장, 스토리텔링 콘서트 등 글짓기 대축전과 전국 독서동아리를 대상으로 한 독서모임 대축전이 올해 새로 마련됐다. 출판도시 내 출판사들이 주도하는 ‘지식난장’ 행사에는 24개 출판사가 참여해 저자와의 대화, 강연, 워크숍 등 100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밖에 국내외 조명 디자이너들이 지난 1일부터 출판도시 내 9개 건물을 아름다운 조명으로 물들이고 있는 파주라이트페스티벌도 행사 기간 내내 펼쳐진다. 아시아 출판의 발전에 기여한 출판인과 저자, 출판미술인에게 수여하는 ‘파주 북어워드’시상식도 열린다. 파주북소리조직위원회는 앞서 올해 수상자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저작상), 중국의 북 디자이너 류샤오샹(출판미술인상), ‘왕실문화총서’(돌베개)를 기획한 김문식·박정혜·김재우(기획상)씨를 선정했다. 또 특별상에는 ‘기적의 도서관’을 건립하는 등 독서문화 발전에 기여한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을 뽑았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古, GO!… 종로구 전통과 현대의 한판 축제

    종로구는 조선 건국 이후 600여년에 걸쳐 서울의 중심이라고 자부한다.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종묘, 사직단 등 여러 문화유산이 자리 잡았다. 북악산, 인왕산 등을 병풍 삼은 전통 한옥도 잘 보존돼 있다. 덕분에 전통미와 현대미가 공존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는 전통과 현대가 하나되는 ‘고고(古GO) 종로 문화페스티벌 2013’을 오는 27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개최한다고 23일 밝혔다. 한자 ‘옛 고’(古)와 ‘가다’를 뜻하는 영어 GO를 함께 써 옛 문화를 체험해 보고 전통을 바탕으로 미래를 열어가자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표현했다. 구는 2011년부터 개별적으로 이뤄지던 크고 작은 축제를 통합했다. 개막행사는 27일 오후 5시 마로니에공원에서 공원 재개장과 함께 열린다. 사물놀이, 마임, 코레아나 클래시카 오케스트라 축하공연 등이 이어진다. 인사동 일대에서는 다음 달 1일까지 전통 공예·다도·전통악기·김치 담그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시민과 관광객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130여개 문화업소가 참여하는 고미술·현대미술·공예품 전시인 ‘인사동전통명가전’도 눈여겨볼 만하다. 28~29일 청계천에서는 조선시대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받은 여섯 종류의 큰 상점인 ‘육의전’을 체험할 수 있다. 다음 달 1~2일 운현궁에서는 궁중과 사대부가 전통음식을 직접 만들어 보는 시간이 마련된다. 대학로에서는 다음 달 4일부터 20일까지 극장공연, 거리예술 학교 등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소극장 축제’가 기다린다. 이 밖에도 삼청로 문화축제, 아름다운 종로박물관 나들이, 북촌축제, 전국 활쏘기 대회, 국제 꽃 장식대회, 별 헤는 밤 음악회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잇따른다. 구 관계자는 “올해 3회째를 맞지만 구민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호응을 얻는 축제”라며 “특색 넘치는 종로의 문화를 축제 기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한·중, 지역 평화 수호 위해 힘 합쳐야”

    “한·중, 지역 평화 수호 위해 힘 합쳐야”

    “중국과 한국, 한국과 중국은 지역의 평화를 함께 수호하는 과정에서 평등·호혜·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리자오싱(李肇星) 전 중국 외교부장(장관)은 23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과 중국 모두 양국 간 발전을 위해 평화로운 환경이 필요한 만큼 두 나라가 힘을 합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리 전 부장은 24일 열리는 한·중 공공외교 포럼 참석을 위해 중국 공공외교협회장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 귀빈실에서 40분가량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또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수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6자회담이며 북한과 미국은 상호 신뢰의 기초에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미국의 오랜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들도 당사자가 직접 담판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며 중국은 미국이 하루속히 6자회담 재개에 나서기를 희망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한국에도 만연한 ‘중국 위협론’과 관련, “‘오만과 편견’은 200년 전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이 쓴 책 제목인데 세상엔 여전히 오만과 편견이 존재한다”고 전제한 뒤 “중국 위협론은 중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중국에 대해 무지하거나 혹은 ‘오만과 편견’에 따른 결과”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은 앞으로도 평화·공존 5개 원칙(주권과 영토 보전의 상호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 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을 외교 기조로 삼아 평화로운 발전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른 나라가 (중국의 발전 과정에서)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중국과 다른 나라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공공외교를 통해 자국에 대한 타국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형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 위협론’, ‘중국 책임론’, ‘중국 붕괴론’ 등 중국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리 회장이 주도하는 중국 공공외교협회는 이 같은 외교적 목표하에 지난 연말 창립됐다. 그는 “세계 인류의 평화, 중화민족의 부흥, 그리고 중국의 샤오캉(小康·먹고살 만한) 사회를 이룩하는 게 중국과 중국 공공외교가 분투하는 목표이며, 우리는 이에 대한 한국의 이해와 지지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한·중 공공외교 포럼은 지난 6월 열린 한·중 정상회담 당시 양국이 공공외교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설키로 합의한 데 따라 마련된 연례행사로 이번이 첫 번째 행사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의 정치학, 교과서의 정치학/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역사의 정치학, 교과서의 정치학/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사교과서 검정을 둘러싸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공방전이 치열하다. 보수의 시각을 반영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면서 역사교육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대전으로 비화할 기세다. 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 남북 분단과 민주화 등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공존하는 격변기를 명쾌하게 가르친다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동안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돼 왔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보수진영에선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과 국민국가 건설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강조한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거치면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치러야 했던 세대들에게 이런 가치야말로 교과서가 담아야 할 핵심 아이템일 게다. 반면 진보진영에선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왜곡과 부작용을 바로잡고, 한국사회의 생존·번영이라는 일방적 논리를 넘어 균형과 조화의 가치를 추구하는 비판적·미래지향적 과제를 더 중시한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건 아니다. 소모적이고 무한반복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회적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보수·진보 진영 모두 상대의 주장과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면, 자신의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려는 무모한 노력보다는 상대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제3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대립적 가치가 서로 보완될 수 있는 방식으로 통합 반영된 역사교과서를 집필하고,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대립적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깨닫도록 해주는 역사교육의 ‘장’(場)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육 강화 정책이 제도화되고 교과서 파동까지 재발하면서 역사교육 개편의 진정성을 둘러싸고 진보진영의 비판과 의심을 불러일으켜왔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지난주 ‘정확한 사실’과 ‘균형 잡힌 역사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념 논쟁이 교과서에 반영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런데 ‘사실’과 ‘균형’에 대한 강조가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레토릭’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보수·진보 진영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원칙’을 반복하는 차원을 넘어 상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현실적 제안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노력은 친일파의 행적이나 박정희 정부의 성격에 대한 해석을 뛰어넘어 근·현대사의 핵심 테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무거운 과제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서로 다른 세계관을 합치라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좌편향’ 및 ‘우편향’ 역사교과서가 서로 ‘사실’과 ‘균형’을 대변한다고 우기는 혼란스러운 모습보다 훨씬 낫다. 후대를 위해서라도 이런 힘든 작업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보수진영의 주장대로 한국사회는 고난의 시대를 넘어 지금에 도달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확보해왔다. 진보진영의 주장대로 이제 한국사회는 근대화의 미션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동안 국가·민족·통일·번영의 가치가 역사교육의 전면에 등장해 왔다면, 미래의 교과서엔 어떤 가치들이 우선시돼야 할까? 단순한 절충론이나 양시론(兩是論)에 그칠 일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일 일이다. 한국의 역사교육은 대내적 이데올로기 대립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와 같은 대외적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은 새로운 역사 프로젝트 역시 동아시아 민족주의 역사관 사이의 처절한 충돌을 예견하고 있다. 어찌 보면 국내 차원의 보수 대 진보의 대립보다 밖에서 이뤄지는 역사전쟁이 더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국내 이데올로기 대립을 가능한 한 빨리 수습해야 할 이유다.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는 언제나 이데올로기와 정치의 문제였다. 서로 다른 시각과 세계관이 충돌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실관계에 대한 집착보다는 조정과 타협을 통해 합의에 도달해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는 이런 차이와 다양성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내는 지혜로운 정치의 산물이어야 한다.
  • [지상파 하이라이트]

    ■가을의 전설(KBS1 밤 12시) 미합중국 정부의 인디언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윌리엄 대령은 퇴역 후 몬태나에 정착해 목장을 짓고 살아간다. 장남 알프레드와 막내 새뮤얼, 거칠고 자유로운 성격의 둘째 트리스탄이 윌리엄의 세 아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새뮤얼이 아름다운 약혼녀 스잔나를 데려오면서 평화로운 윌리엄 가족에게 비극과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힐링투어 야생의 발견(KBS2 밤 8시 30분) 홀로 유난히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독곶. 이곳에는 우뚝 솟은 황금산과 해송 및 야생화로 꾸며진 황톳길, 파도가 조각한 코끼리 바위로 장식된 해변과 우윳빛 몽돌이 자그락대는 몽돌해수욕장 등이 펼쳐져 있다. 다채로운 풍경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탤런트 한영과 그의 친구 은주씨의 첫 여정이 시작된다. ■사건파일 팩토리(MBC 밤 9시 30분) 지난 8월 대한민국을 공포에 빠트린 ‘영주 동거녀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10대 여학생을 성폭행한 죄로 전자발찌를 차고 있던 김씨가 동거녀 조씨를 살해하고 사라진 것이었다. 24시간 위치 추적을 받는 전자발찌 착용자가 어떻게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도주할 수 있었던 걸까. 프로그램은 전자발찌 관리의 문제점을 다룬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5시 35분) 13개월 지후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엄마 가슴 확인하기다. 지후는 깨어 있는 동안 엄마의 가슴을 만져보고 빨아보는 것도 모자라 자다가도 몇 번씩 깨 엄마 젖을 물어야만 편안하게 잠을 잔다. 게다가 밥상에 앉기만 하면 울고불고하고 입에 밥이 들어가면 퉤퉤 뱉으며 물건을 마구 던지기까지 하는데…. ■명의 3.0(EBS 밤 9시 50분) 세계적으로 빠르게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고 있는 요즘 노후에 가장 피하고 싶은 질환으로 치매가 꼽힌다. 현재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 수는 58만명에 달하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는 과연 어떤 질환일까.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가족에게 찾아올 수 있는 치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OBS 금요시네마-황시(OBS 밤 11시 5분) 1937년 중국과 일본군의 무자비한 학살 현장을 취재하던 영국인 종군기자 조지 호그는 일본군에 붙잡히고 만다. 하지만 게릴라 부대의 리더인 잭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그의 권유로 황시라는 곳을 찾아간다. 황시는 전쟁으로 가족과 집 모두를 잃고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60명의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 [글로벌 금융위기 5년 (하)] “고용 늘릴 창조경제 모델 만들고 성장 이끌 정부주도 정책 긴요”

    [글로벌 금융위기 5년 (하)] “고용 늘릴 창조경제 모델 만들고 성장 이끌 정부주도 정책 긴요”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됐던 글로벌 금융 위기. 유례가 없을 만큼 무겁고 광범위한 공포의 장막을 전 세계에 드리웠던 5년 전의 위기는 사회주의가 사라지고 자본주의로 합일화된 21세기 지구촌에 엄중한 질문을 던졌다. 과연 자본주의는 이 상태로 지속 가능할 것인가,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과 정승일 복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 만났다. 대담은 지난 6일 오전 9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의 강 의원 방에서 진행됐다. [위기의 원인] 강석훈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시작됐을 때, 1930년대 대공황의 충격을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죠. 결과적으로 그런 충격은 없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비교적 빠르게 안정을 찾은 것이지요. 그러나 내재된 문제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리먼 사태 이전부터 자본주의 경제의 두 개 축인 ‘성장’과 ‘분배’는 모두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금융 중심의 성장 구도는 금융 버블(거품)을 만들었고, 거품이 꺼지면서 어떻게 성장을 모색해야 하나 방황하는 중이었죠. 미국의 일부 소득지표는 1920년대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현재 세계경제는 새로운 성장의 해법도, 악화되는 소득분배를 완화할 방법도 찾지 못한 상황입니다. 정승일 현재 세계경제는 말 그대로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성장에 큰 문제가 없었는데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성장이 정체됐습니다. 누구도 미래에 대한 명확한 답을 못 찾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자본주의를 만들자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른바 ‘자본주의 4.0’을 만들자는 건데 시장 만능주의가 중시되던 신자유주의(자본주의 3.0)를 벗어나 과거 케인스주의(자본주의 2.0)의 장점을 덧붙이자는 겁니다. 결국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자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강 저는 자본주의 4.0을 시장과 정부가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현재 전 세계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룰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 있습니다. 다만 글로벌 금융 위기를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정부의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할 수 없으며 경제 거품을 만들게 된다는 겁니다. 정부가 아무리 지출을 늘려도 시장의 뒷받침 없이는 성장의 한계를 만나게 됩니다. 정 지금 세계는 신자유주의가 보여 주었던 시장 만능주의의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금융 부문은 규제를 늘리고 보완하자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과 분배 모두가 안 되는 불안한 상황이고 경제는 활력을 잃었습니다. 성장의 축은 기업 투자입니다. 케인스주의가 탄생한 1930년대에도 기업은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기업 투자를 잡는 불확실성을 정부가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 케인스의 주장입니다. 또 저성장 국면에서는 소비가 줄기 때문에 정부의 지출이 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와 분배정의] 강 글로벌 금융 위기는 사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재정적자와 저금리 기조에서 촉발됐습니다. 새로운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출 증대보다는 민간의 투자가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해 과잉 생산에 나서면서 선진국 기업들의 투자 분야가 줄고 있습니다. 또 세계화의 진행으로 임금을 주고 물건을 생산하는 제조업보다는 자본을 투입하는 게 상대적으로 비용이 더 적어졌습니다. 그렇다 보니 기업들의 투자와 일반 국민경제의 관련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투자 프레임보다는 창조경제와 같이 무형자산 투자나 혁신 프레임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 글로벌 금융 위기의 영향은 복지에서도 크게 나타났습니다. 선별적 복지보다는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훨씬 힘을 받게 된 거죠. 강 소득분배의 악화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 커다란 이슈가 됐습니다. 소득분배 구조가 열악해진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우선 인구구조의 고령화입니다. 기술의 진보로 고학력·고숙련자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저학력·저숙련자의 필요성은 낮아졌습니다. 세계화에 대한 적응 정도에 따라 계층이 나뉘었고 금융이나 의료 등 서비스업이 발전하면서 임금 격차가 더욱 커졌습니다. 한마디로 고용을 통해 경제 성장의 혜택이 모두에게 전달돼야 하는데 이 효과가 약해진 겁니다. 정 리먼 사태 때 저는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로 이어졌던 1997년 외환위기가 떠올랐습니다. 5년 전 미국을 보면서 “너희도 터지는구나” 하는 쾌감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외환위기 때 IMF나 미국은 정경유착, 국가주도 경제 등 우리나라의 내재된 문제들을 원인으로 지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한국이라는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와 금융시장이 가진 문제도 컸던 셈입니다. 외환위기 당시 IMF는 우리나라 정부가 개입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시장에 자율회복 기능이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은 5년 전 위기가 터지자 곧바로 개입을 했습니다. 골드만삭스, 씨티그룹까지 파산할 위기였으니까요. 이제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고 금융시장을 규제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됐습니다. 강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미국은 저금리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는 방식으로는 경제 성장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또 2010년 유럽발 금융 위기는 재정이 약한 나라부터 위기가 현실화된다는 것을 알려 주었죠. 재정이 튼튼해야 하며, 저금리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학습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가 움츠릴 때 밖으로 도약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또 경제와 사회가 떨어질 수 없다는 것도 배웠죠. 대기업들도 사회와 공존하지 않고 기업의 이익만 챙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욱 명심했으면 합니다. 정 저금리 정책이 금융 버블을 만들었지만 저금리 정책의 이유도 잘 따져 봐야 합니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2000년대 초반부터 저금리 정책을 편 것은 연준의 임무가 물가 상승 방지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자 ‘고용 없는 성장’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금리를 올리면 기업 투자가 줄고 고용도 감소합니다. 당시 미국 기업들은 종업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으로 주주들의 환심을 사 주가를 높였습니다. 물건 값은 싸지만 직원들은 최저임금을 받는 이른바 ‘월마트 자본주의’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의 장기 투자가 사라졌습니다. ‘정부의 손’이 필요해진 겁니다. [고용없는 성장의 해법] 강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문제는 구조조정이나 가격조정 등 고통을 감내하는 방식이 아니라 돈을 푸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돈을 언제 거두느냐가 문제가 됐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의 핵심 이슈는 고용이 성장과 분배의 고리로서 역할을 해 주느냐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성장이 곧 고용 증가였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가져다 주는 투자를 합니다. 투자 지표는 올라가는데 고용은 늘지 않습니다. 단순 투자가 아니라 고용을 유발하는 투자를 장려해야 합니다. 정 고용 없는 성장으로 성장의 열매를 모두가 나누지 못하는 상황은 상당히 심각한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지난 200년간 유지된 것은 부자의 탐욕이 투자로 연결되고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어서였죠. 사람들이 ‘고용 창출’ 때문에 자본주의를 용인했는데 이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사라진 겁니다. 고용 없는 성장의 이유 중 하나는 ‘주주자본주의’입니다. 제조업을 경시하고 서비스업을 중시하면 고소득 서비스업이 조성될 것 같았지만 경제 버블만 일어나고 질 좋은 일자리는 늘지 않았습니다. 경제가 주저앉은 아일랜드나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가 대표적입니다. 결국 글로벌 금융 위기는 금융을 중심으로 성장을 하자는 환상을 버리게 했습니다. 금융은 중개 기능만 하면 된다는 거죠. 강 고용 없는 성장은 사실 주로 선진국의 고민입니다. 베트남만 가도 아직 봉제공장투성이니까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경제 상황은 신흥국에 가까운데 고용 없는 성장은 선진국과 같다는 점입니다. 정 가장 좋은 창조경제는 제조업이라고 봅니다. 제조업은 연구개발(R&D) 집약형 사업입니다. 제조업에서 10조원을 투자하면 통상 5조원은 설비투자고, 5조원은 R&D 투자입니다. R&D 인력이 늘어나니 ‘고용 있는 성장’입니다. 창조경제를 얘기할 때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추격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주항공, 제약산업, 생명공학 등 선진국의 기술 수준을 따라잡는 포스트 캐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도 정부의 도움을 받아 R&D 인력을 늘렸고, 우주항공과 제약 산업을 키웠습니다. 이런 사업은 투자 10년 후에야 이익을 얻을 수 있어 기업 스스로 하기는 힘듭니다. 강 하지만 우주항공 등의 분야는 선진국의 자국 산업 보호주의가 강하고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도 생길 수 있습니다. 시도는 해야 하지만 고민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시대 ‘한강의 기적’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미식 경제구조를 실험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유럽식 복지 제도를 실험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방식에 가까울 겁니다. 반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선진국의 시스템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미 많이 따라했습니다. 한국형 자본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선별적 복지도, 보편적 복지도 한쪽만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어떻게 조정해 한국형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정 글로벌 금융 위기로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이 사라졌죠. 선진국이 전부라는 생각이 사라진 겁니다. 이 글로벌 금융 위기는 2011년 금융기업의 탐욕을 꾸짖는 반월가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세계적으로 경제에 공정한 룰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경제민주화] 강 반월가 시위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이 아주 크지는 않았죠. 하지만 경제민주화 논의로 이어졌다는 점에서는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그간 재벌들은 새 시장을 개척하고 고용 창출을 많이 했습니다. 반면 2000년대 후반부터 안전한 투자에 집중해 왔습니다. 결국 동네 상권까지 진출하니까 경제민주화 얘기가 나온 겁니다. 대기업은 자본뿐 아니라 인재도 집중됩니다. 해마다 유능한 인재들이 대기업으로 몰려갑니다. 돈과 사람이 있으니 그 힘은 막강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사회와 어우러지는 대기업을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정 재벌 가족과 재벌 기업은 따로 떼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대기업들이 이익을 내서 신규 사업에 진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내부거래 규제를 다소 풀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기업들이 우주항공 등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사업에 진출할 상황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1년 내에 이익이 안 나는 부서는 바로 정리합니다. 강 경제민주화 원칙은 대기업의 투자는 보장하되 대기업 사주의 사익편취 행위는 막겠다는 겁니다. 향후 몇 년간은 고령화, 중국경제 대응, 남북 통일 등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감안한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인구구조는 고령화되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앞서 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겁니다. [성장동력의 해법] 정 저는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새로운 플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근혜 정부는 시장 위주의 철학을 과감히 되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시장 얘기를 많이 하죠. 현재 많은 사회적 논쟁은 향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일정표가 없어서 생기는 것들입니다. 복지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세수가 부족해 못 한다면 언제 복지정책을 어떻게 진행할지 알려 주면 됩니다. 기업들도 투자 리스크가 상당히 줄어듭니다. 강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가 정말 시장에 의존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정부가 개입했던 부분도 많았습니다. 또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정부 역할의 강화가 있었지만 모든 분야에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금융 분야는 분명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졌지만 정부가 산업계획까지 이끌 능력과 정책 수단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1년 단위의 계획도 경제의 변화로 잘 맞지 않습니다. 또 5년 이후의 장기 플랜은 다음 정권이 할 일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기 힘듭니다. 정 분명히 성장을 다시 살려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2만 달러 정도이고, 미국은 4만 달러입니다. 산술적으로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6~7% 성장을 해도 30년이 걸립니다. 더 노력해야 합니다. 우선 정부의 지출을 늘려야 합니다. 둘째, 분배 위주의 복지국가로 가야 합니다. 셋째, 투자 주도의 성장을 해야 합니다. 기업이 사내에 잔뜩 쌓아 놓고 있는 유보금을 쓰도록 하는 방향의 규제가 필요합니다. 규제를 완화하느냐, 강화하느냐가 아니라 규제의 방향이 중요한 것이죠. 수출 쪽은 기업 규제를 풀고 내부 서비스 진출은 규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진행 김태균 경제부장 정리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석훈 의원은 ▲1964년 경북 봉화군 출생 ▲서라벌고-서울대 경제학과-미 위스콘신매디슨대 경제학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금융·패널팀장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1997년~) ▲한국재정학회 이사(2003~2006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2009년) ▲제19대 국회의원(서울 서초구을)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 ■정승일 연구위원은 ▲1961년 서울 출생 ▲장충고-서울대 물리학과(중퇴)-베를린 자유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국민대학교 경제학부 겸임교수(2004년 9월~2006년 8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2004년 9월~2011년 1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2011년 2월~) ▲‘쾌도난마 한국경제’ 공저(2005년)
  • [글로벌 금융위기 5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남긴 4자 키워드 8選… ‘강화된 4원칙·사라진 4통념’

    “2008년 여름 미국 월가에는 부동산 모기지론과 관련해 프레디맥과 페니메이가 무너져 정부가 자금을 투입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리먼 브러더스도 곧 무너질 텐데 작은 회사여서 큰 충격은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건 완전히 잘못된 계산이었지요. 얼마 후 휘몰아친 건 그야말로 공포, 청천벽력이었죠.” 당시 미국 월가의 한 금융회사에 파견됐던 기획재정부 고위 공무원의 묘사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 5년. 글로벌 경제에서는 4개의 원칙이 강화됐고 4개의 통념은 소멸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남긴 8개의 키워드를 사자성어로 풀어본다. 1. 대마불사!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회생은 기축통화인 ‘달러의 힘’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양적완화(QE) 정책으로 달러를 수도 없이 찍어낸 미국은 ‘대마불사’의 전형을 보여줬다. 물론 위기의 와중에 무너지지 않은 AIG, 시티그룹과 같은 글로벌 금융회사도 이 범주에 해당한다. 전 교수는 달러를 가진 미국을 ‘금본위제 시대에 금광을 가진 국가’로 표현했다.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초반 미국과 같은 확장적 통화정책을 펼쳤지만 미국과 같은 힘이 없어 오히려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진 적이 있다. 전 교수는 “엔화는 결국 절반만 기축통화였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던 격이었다는 얘기다. 2. 수출입국! 무역수지 흑자 없이는 경제 안정이 없다는 점도 지난 5년간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제조업 경쟁력과 연결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었던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국가들이 경상수지 적자국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무역수지 흑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경상수지는 결국 국가의 대외건전도를 나타내는 지표”라면서 “실물경제가 튼튼한 국가들이 금융위기에도 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도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가 높은 결정적인 이유는 높은 경상수지 흑자 덕택”이라고 말했다. 3. 신용만능!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질을 ‘거품’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부동산 대출, 금융 파생상품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덮으면서 거품이 생겼다”면서 “시장이 순식간에 믿음을 잃자 재정 등 정책적 수단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역시 거품이 꺼지면서 투자가 위축되고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면서 “개인이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일자리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4. 국고수성! 건전한 재정 없이 탄탄한 펀더멘털(기초체력)은 불가능하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리먼 사태의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건전한 재정이었다”면서 “정부는 국민들에게 지금은 어렵지만 탄탄한 재정을 유지함으로써 미래에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2년째 적자예산을 편성하면서 2014년부터 재정수지 흑자를 내겠다는 약속을 뒤집었다. 그동안은 괜찮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재정 건전성 관리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5. 금융입국? 우리나라도 리먼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제조업 성장 단계를 건너뛰고 금융서비스업으로 우뚝 선 아일랜드 같은 나라를 동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제조업 없는 금융 산업 육성은 사상누각임이 드러났다. 이한규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금융 주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국가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제조업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2008년 이후 미국은 제조업에 집중 투자했다. 6. 탐욕질주? 함께 공존하는 경제 민주화와 동반 성장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2011년 8월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반월가 시위는 99%가 1%의 탐욕에 대항한 사건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 모델이나 부자 위주의 세금 정책들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 중심 성장 환경에서는 대기업의 힘이 막강했지만 내수 중심의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동반 성장이 필수적”이라면서 “같은 맥락에서 경제 민주화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7. 성장지상? 고도 성장의 환상은 버리는 게 낫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은 고령화되는 인구구조 등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제는 실질적인 행복 지수를 높이는 내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소득 양극화가 심해졌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축 대신 가계 부채를 늘린 점은 반성하자고 했다. 8. 복지만능? 재정 없는 복지가 사상누각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복지 선진국이었던 유럽 국가들의 상당수가 재정 위기에 빠졌다. 재정 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복지는 다음 세대에 큰 세금 부담을 주게 된다. 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해 세금을 더 징수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정책을 확대하면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열린세상] 민·관 협치는 인식의 전환과 참여가 관건이다/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민·관 협치는 인식의 전환과 참여가 관건이다/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광우병 사태로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에 불거진 촛불시위는 미국산 수입 소고기에 대한 불안보다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후에도 굵직굵직한 정책결정 과정에 일반 국민과 시민사회의 의견 개진 기회가 줄어들어 ‘불통정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분업과 전문화를 요체로 하는 관료제는 조직특성상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지만, 현대의 정부는 정책과정에 이해 당사자는 물론 일반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참여와 과정의 가치를 중시한다. 그래서 행정의 패러다임이 통치(government)에서 협치(governance)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개방과 공유, 소통과 협력을 핵심가치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의 ‘정부 3.0’도 같은 맥락에서 출발하였다. 정부 3.0의 10대 중점 추진과제 중에서 민·관 협치 강화를 세 번째로 선정할 정도로 역점을 두어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민·관 협치가 제도적으로 정착됐다. 지방자치와 주민참여의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는 시민협의제도가 특히 잘 발달했다. 국가적 이슈나 지역 현안에 대해 시민들이 통합정부 사이트를 통해 의견을 제시하면 중앙부처나 지자체에서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서면협의 방식(CPWC)은 2000년부터 영국 내각부의 시행규칙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공공참여(PI)도 전통적인 방식인 공청회나 주민투표는 물론 심층 집단면접, 시민위원회, 시민 패널, 직접적인 권한 위임 등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독일에서도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각종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이해당사자의 권익을 보장하고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고자 계획확정 절차나 이익형량 원칙과 같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지자체의 도시계획 수립과정에는 2단계에 걸친 주민의견 수렴절차를 강제 규정으로 도입하는 등 주민참여 제도가 그물망처럼 촘촘히 짜여 있다. 미국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규제행정 분야에 이해 당사자들이 정부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해 정책을 결정하는 ‘협상에 의한 규칙제정법’을 1996년부터 시행하고 있고, 프랑스에서도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고자 2002년 ‘풀뿌리 민주주의 관련법’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광범위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공토론을 통해 정부사업의 시행 여부를 논의하는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의 활동이 독보적이다. 박근혜 정부도 정책의 수립·집행·평가 등 전 과정에 국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소통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대규모 국책사업이나 주요 국정과제에서 국민신문고(epeople.go.kr)의 온라인 정책토론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온라인 정책토론은 각 부처에서 토론과제 선정 및 토론 절차를 주관하는 방식과 국민권익위원회 또는 국무총리실에서 주관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거나 찬반 대립이 첨예한 이슈는 소관부처에서 정책토론을 주관하면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부처마다 고객집단이 명확하기 때문에 일반국민의 의견보다는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가 과다 대표될 수 있고, 정보 소외계층의 의견수렴에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한 관심 이슈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CNDP와 같은 독립적인 기구의 설립이 제안되고 있다. 어떠한 형태의 토론방식이 진행되든 민·관 협치의 관행이 정착되려면 정책결정자들의 인식 전환과 일반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관건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국민 의견수렴을 통한 정책결정과 참여 및 과정의 가치가 현대 행정에서 핵심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행정기관과 이해당사자 그리고 일반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대결지향적 논쟁과 이분법적 사고체계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존 롤스가 제시한 공적 이성(public reason)에 기초한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가치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규범과 토론문화가 전제되어야 민·관 협치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 기업이 원하는 상표 권리화 쉬워진다

    기업이 이미 사용하고 있거나, 앞으로 사용하기를 원하는 상표의 ‘권리화’가 쉬워진다. 또 기업의 마케팅 활동 지원과 권리 보호 강화를 위해 2017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심사처리 기간을 단축키로 했다. 특허청은 9일 기업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상표는 간단하고 성질표시적 상표라도 식별성 요건을 완화해 적극 등록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간단하거나, 성질표시적 상표를 엄격하게 적용해 상표등록이 거절되는 사례가 많았다. 예를 들어 핫메일(전자메일서비스업)과 프로릴렉스(안마기), 울파워(의류·장갑) 등 상품의 특성을 암시하는 상표가 미·일·유럽에서는 상표로 등록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절됐다. NH Card(신용카드업)나 GS(기체연료 등) 등은 간단하고 흔한 표장이라는 이유로 ‘식별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심판을 통해 상표로 등록됐다. 모방 출원 방지 및 창작성 심사도 강화된다. 종업원이나 이해당사자가 상표 출원에 대해 거절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다. 유명 캐릭터나 연예인, 방송 프로그램 명칭 등은 권리자의 정보 제공이나 이의신청이 없어도 심사관이 직권으로 조사해 거절하도록 했다. 출원인 편의도 높여주기로 했다. 선 등록상표와 유사 상표는 무조건 등록이 거절됐으나 사업분야가 달라 권리자가 사용을 인정해주는 ‘상표 공존동의제도’가 도입된다. 또 현재 평균 8.8개월인 심사처리 기간을 2017년까지 상표는 3개월로, 디자인은 5개월로 각각 줄일 계획이다. 특허청은 지난 5월 디자인보호법에 이어 연내 상표법 전부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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