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로에 선 한국신문/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 교수
열린우리당이 신문개혁법안을 확정했다. 신문사주의 소유지분 제한을 제외하면, 그동안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안들이 대부분 반영되었다.
주요 내용을 보면, 공정거래법상 제재를 받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1개사 30%,3개사 60%로 명시해 거대신문의 시장독과점 행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독자의 권익 보장을 위해 신문사의 구독계약 강요나 무가지 증정, 경품 제공 행위도 금지시켰다.
신문의 여론 왜곡을 방지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독자가 신문의 편집에 관한 의사 결정에 참여할 독자권익위원회를 설치했고, 신문사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편집규약 제정을 의무화했다. 신문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공식화되어, 신문발전기금이 생기고 한국언론진흥원이 설립된다.
현재 한국의 신문시장은 그야말로 복마전이다. 경품, 무가지 등 불법행위가 성행하고, 발행부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100여개에 달하는 일간지 중 흑자를 내는 곳은 10개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문을 닫는 신문사는 나오지 않는다.
한국 신문이 그나마 연명하는 것은 신문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은 여전히 신문기사에 매우 민감하게 대응한다. 독자들이 가장 외면하는 정치기사이지만 신문지면 중에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되고, 가장 많은 면수를 차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극히 정치화된 한국의 신문은 정당의 대리전을 벌이고, 심지어 정쟁을 독려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진보적 신문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승리를 쟁취했다.
보수적 신문은 비록 정치적으로 패배했지만 신문시장에서는 여전히 70% 이상의 점유율을 지키며 위세를 유지해 왔다.
그결과 한국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팽팽하게 대립하며 국가적 현안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보수신문이 시장을 장악한 것은 자본의 위력 덕분이었다.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신문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에서, 보수신문사들이 택한 생존전략은 물량공세였다. 신문의 질적 수준을 높이거나 신문시장 전체 규모를 늘리는 전략보다는, 경쟁신문사의 독자를 끌어오는 방편을 택했다. 각종 경품과 무가지를 동원해 경쟁신문사의 독자를 확보하려 했고, 결국 제값 내고 신문구독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신문개혁법안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소지가 있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신문시장의 질서를 회복하고, 신문산업을 회생시킬 대책들도 들어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 모두 조건반사적인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수신문은 “비판 신문을 향한 복수”라고 주장하고, 진보진영은 “족벌언론의 위세에 눌려 지레 겁먹은 표정이 측은하기까지 하다.”고 열린우리당을 힐난했다. 신문개혁법안을 여전히 정치논리로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국민의 편에 선 신문이라면, 국민을 위한 개혁세력이라면, 신문개혁을 정략적 차원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은 진보적인 정권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보수적인 신문도 지지하고 있다. 보수신문의 여론독과점도 마땅치 않지만, 정부의 언론자유 침해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궁극적 신문개혁안은 타협안이 되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공존의 법칙이 담긴 신문개혁법안을 여야가 함께 완성하길 기대한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