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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둥성 화학공장,화학공장 폭발 사고..9명 부상

    산둥성 화학공장,화학공장 폭발 사고..9명 부상

    산둥성 화학공장 22일(현지 시각) 밤 중국 산둥성에 위치한 화학공장에서 폭발이 발생해 9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현지 지방당국이 밝혔다. 산둥성 쯔보시에 있는 ‘산둥 룬신 화학기술회사’에서 발생한 이번 폭발 현장에는 소방관 150여명이 투입됐으며 인근 지역 소방관들도 대거 동원된 상황이다. 화재 사고로 부상을 입은 근로자들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룬싱 그룹의 자회사인 이 화학공장에서는 ‘아드포니트릴’과 같은 화학품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물질은 가열 또는 연소하면 유독가스를 분출할 수 있다고 한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산둥성 화학공장, 아디포나이트릴 무엇? 피해우려

    산둥성 화학공장, 아디포나이트릴 무엇? 피해우려

    산둥성 화학공장 22일(현지 시각) 밤 중국 산둥성에 위치한 화학공장에서 폭발이 발생해 9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현지 지방당국이 밝혔다. 산둥성 쯔보시에 있는 ‘산둥 룬신 화학기술회사’에서 발생한 이번 폭발 현장에는 소방관 150여명이 투입됐으며 인근 지역 소방관들도 대거 동원된 상황이다. 화재 사고로 부상을 입은 근로자들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룬싱 그룹의 자회사인 이 화학공장에서는 ‘아드포니트릴’과 같은 화학품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물질은 가열 또는 연소하면 유독가스를 분출할 수 있다고 한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산둥성 화학공장, 폭발 사고..9명 부상

    산둥성 화학공장, 폭발 사고..9명 부상

    산둥성 화학공장 22일(현지 시각) 밤 중국 산둥성에 위치한 화학공장에서 폭발이 발생해 9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현지 지방당국이 밝혔다. 화재 사고로 부상을 입은 근로자들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룬싱 그룹의 자회사인 이 화학공장에서는 ‘아드포니트릴’과 같은 화학품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물질은 가열 또는 연소하면 유독가스를 분출할 수 있다고 한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산둥성 화학공장, 폭발 사고로 9명 부상..충격

    산둥성 화학공장, 폭발 사고로 9명 부상..충격

    산둥성 화학공장 22일(현지 시각) 밤 중국 산둥성에 위치한 화학공장에서 폭발이 발생해 9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현지 지방당국이 밝혔다. 산둥성 쯔보시에 있는 ‘산둥 룬신 화학기술회사’에서 발생한 이번 폭발 현장에는 소방관 150여명이 투입됐으며 인근 지역 소방관들도 대거 동원된 상황이다. 화재 사고로 부상을 입은 근로자들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룬싱 그룹의 자회사인 이 화학공장에서는 ‘아드포니트릴’과 같은 화학품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물질은 가열 또는 연소하면 유독가스를 분출할 수 있다고 한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할리우드 공룡 기업에 맞선 영화인들의 대안적 공동체

    할리우드 공룡 기업에 맞선 영화인들의 대안적 공동체

    할리우드 전복자들/J. A. 애버딘 지음/라제기 옮김/명필름문화재단/328쪽/1만 8000원 국내 영화계는 1990년대 대기업 자본이 진출하면서 양적으로 급속하게 팽창했지만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과 수직 계열화로 인한 폐단은 질적인 면의 하락을 가져왔다. 이 책은 할리우드 영화사의 선례를 통해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조망한다. 또한 고전적인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방식을 끝내기 위한 독립 제작자들의 고군분투를 방대한 사료와 조사를 통해 면밀히 추적해 어떻게 미국 영화가 거대 기업의 통제를 벗어나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는지 보여준다. 할리우드 황금기에 8개 메이저 영화제작사는 영화 기획·제작·상영을 아우르는 수직 통합형 시스템을 고착시켜 영화산업 수익의 95%를 독점했다. 이 거대 기업들은 로스앤젤레스에 영화 공장을 차려 놓고 인기 배우와 우수한 영화 인력을 장악해 영화 마케팅과 배급을 통제하며 무소불위의 지배력을 행사했다. 영화는 그들만이 대량으로 생산해 팔 수 있는 독점 상품이었다. 이에 찰리 채플린, 월트 디즈니, 새뮤얼 골드윈, 알렉산더 코르더, 메리 픽퍼드, 데이비드 셀즈닉, 월터 웨인저, 오슨 웰스 등 거대 영화 기업에 환멸을 느낀 영화인들은 기존 시스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은 양질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대안적 공동체를 결성해 공룡 기업과 싸움을 시작한다. 이 밖에도 미국 영화 역사의 분수령이 된 패러마운트 판결의 막전 막후를 생생하게 전하며 건강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국내 대표적인 영화제작사인 명필름이 설립한 명필름문화재단이 한국영화 발전에 도움이 될 양서를 지속적으로 기획·번역 발간하기로 하고 내놓은 첫 번째 책이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끝까지 재기 꿈꾼 비운의 황태자

    끝까지 재기 꿈꾼 비운의 황태자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에게는 ‘비운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삼성을 이끌 운명을 타고났지만 아버지의 신임을 얻지 못해 동생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 후계가 정해지면서 세속을 등진 채 살다가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한때 부사장 직함만 17개 ‘젊은 부총수’ 이 전 회장은 1931년 경남 의령에서 이병철 창업주와 고 박두을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6년 고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의 딸인 손복남(CJ그룹 고문)씨와 결혼했다.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1962년 안국화재(삼성화재의 전신) 업무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했다. 1968년 삼성의 모태 기업인 제일제당의 대표이사에 올랐고 삼성물산, 삼성전자 부사장 등 직함이 무려 17개에 이를 정도로 강도 높은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그의 호칭은 삼성의 ‘젊은 부총수’였고 그가 그룹 후계자로 낙점될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6년 ‘한국비료(현 삼성정밀화학)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세계 최대 비료 공장을 만들려 했던 이 창업주가 이 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는 장남으로서 아버지 대신 실질적으로 그룹을 맡았으나 그의 경영 행보는 얼마 가지 못했다. ●부친 대신 그룹 맡았다가 6개월 만에 팽당해 이 창업주는 ‘호암자전’에서 이 전 회장에게 그룹 경영을 맡겼더니 “6개월 만에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며 이 전 회장이 자진해 물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 전 회장은 자신의 회고록 ‘회상록-묻어둔 이야기’에서 “6개월이 아니라 7년간 일했다”며 아버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사카린 밀수 사건에 이 창업주가 관여했다”는 내용의 청와대 투서 사건이 1969년 터졌고 이 창업주는 이 전 회장이 투서의 주범이라고 여겨 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것으로 전한다. 이 창업주는 삼남 이건희 회장을 1976년 9월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고 이 전 회장의 입지는 사실상 사라졌다. 이후 10여년간 해외 각지를 떠돌며 야인 생활을 해야 했다. ●괄괄한 성격… 스스로 왈패·사냥꾼 고백 이 전 회장은 신중한 이건희 회장과 달리 괄괄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서전에 자신이 40대에 간호사와 바람을 피운 이야기, 학창 시절에는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왈패짓을 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았다. 또 아버지에게 내쳐진 뒤에는 근신하는 대신 정면으로 반항해 사냥을 하러 다녔다고 고백한 대목에서도 그의 성격이 느껴진다. 다만 항간의 이야기와 달리 술은 즐기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은 책에서 “나는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신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술을 잘 마시지 못했고 세상을 떠난 창희(이 창업주의 차남)나 건희도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성격 탓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12년부터 2년여간 이건희 회장과 유산 관련 소송전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장남 이재현 건강 악화… 빈소 상주 어려울 듯 한편 와병 중인 이 전 회장의 장남 이재현 회장은 14일 부친의 별세 소식을 전해 듣고 침통해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13년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말초신경과 근육이 점차 소실되는 샤르코마리투스(CMT)병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CJ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의 시신은 화장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상주는 장남인 이재현 회장이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빈소에 상주하며 조문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경제 브리핑] 롯데손보 ‘마음든든 재물보험’

    롯데손해보험이 판매 중인 ‘마음든든 재물보험’은 음식점이나 노래방 등 다중이용업소나 사업장·공장에서 화재로 인한 재산 손해와 각종 배상책임, 강도·도난 피해, 법률 비용까지 종합적으로 보장한다. 가입자의 잘못으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에도 2000만원 한도 안에서 벌금 전액을 보장한다. 보험 기간은 3~15년 사이에서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별도 수수료 없이 중도 인출도 가능하다.
  • 횡성, 국내 첫 한옥자원단지 조성

    강원 횡성군에 국내 첫 한옥자원단지가 조성된다. 횡성군은 공근면 매곡리 일대 19만 1518㎡에 한옥공장과 한옥학교, 한옥관광 등 한옥의 모든 것을 생산·구매·체험할 수 있는 한옥자원단지를 만든다고 12일 밝혔다. 단지는 국비와 지방비 등 113억원을 들여 2017년까지 조성된다. 서울시가 한옥 짓기에 필요한 기와, 목재 등을 공급해 줄 것을 요청한 데다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성사됐다. 한옥자원단지에는 기와, 제재소, 흙벽돌 등 각종 한옥 자재를 만들어 내는 한옥공장이 들어선다. 자재창고와 물류센터까지 건립해 대량으로 생산된 한옥 자재를 소비자들에게 싼값에 판매할 예정이다. 또 단지에 대장간, 전통정원 등을 만들고 한옥가구, 창호 등을 전시해 관광객들이 찾는 한옥관광체험단지도 겸하게 된다. 횡성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배우 박해진 등 기부천사 40명 보건복지부 ‘행복나눔인’ 시상

    배우 박해진 등 기부천사 40명 보건복지부 ‘행복나눔인’ 시상

    ‘밥공장 사장님’ 임순자(82·여)씨는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시장을 보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임씨는 22년째 노인·장애인 무료급식소인 ‘자비의 집’에서 매일 250~300명분의 점심밥을 짓고 있다. 목욕탕을 운영하는 이재옥(89)씨는 15년째 빈 병과 폐지를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틈틈이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매년 100만원씩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내고 있다. 이씨는 15년간 모두 1500만원을 기부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렇게 나눔과 봉사 정신을 실천해 온 40명을 ‘행복나눔인’으로 선정해 10일 서울 세종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복지부 장관상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행복나눔인에는 세월호와 부산 수해 피해자를 후원하고 아동양육시설 수리비와 학원비로 5000만원을 기부한 배우 박해진(32)씨도 포함됐다. 나눔인 가운데는 소위 ‘잘나가는’ 사업가보다 형편이 어려운 데도 소외계층을 위해 나눔의 정신을 실천한 사람이 많았다. 건축폐자재처리업을 하는 김금주(46)씨도 결혼 후 화재로 하반신 전체에 화상을 입은 뒤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은 화재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119행복기금’을 마련하고 2000만원을 기탁했다. 복지부는 “나눔 문화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도록 나눔기본법 제정 등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샌드위치패널에 저품질 중국산 강판 못 쓴다

    공장이나 가건물에 많이 사용되는 샌드위치패널의 내구성이 강화된다. 국토교통부는 샌드위치패널의 두께를 0.5㎜ 이상 되도록 강화한 데 이어 내년 1월부터 철판 도금 아연함량을 ㎡당 180g 이상 유지하도록 강화했다고 9일 밝혔다. 샌드위치패널은 아연도금강판 사이에 스티로폼을 넣어 만든 건축 자재로 공장이나 가건물 건축에 널리 사용된다. 샌드위치패널은 철판이 불이나 외부 충격에 얼마나 버티는지에 따라 내구성이 결정되는데, 도금이 제대로 되지 않은 철판은 쉽게 녹슬거나 화재 시 스티로폼을 녹아내리게 하는 원인이 된다. 시중에는 아연도금량이 50∼60g/㎡인 저질 중국산 강판을 사용한 샌드위치패널이 많이 사용되고 있어 이번 조치로 중국산 강판의 수입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해 아연도금강판 수입량은 127만 1000t으로 이 중 중국산은 105만 1000t에 이른다. 중국 제품은 아연도금량이 180g/㎡을 넘는 국내 제품보다 t당 5만∼6만원 정도 싸다. 국토부는 아연도금량을 180g/㎡로 강화하면 철판이 20년 동안 부식되지 않아 건축물 내구연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또 샌드위치패널 철판 두께 측정 기준은 ‘아연 도금 후, 페인트칠 전’이라고 설명했다. 세종 류찬희 기자 chani@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고집스럽게 빚으니 그릇이 살아있네!

    [명인·명물을 찾아서] 고집스럽게 빚으니 그릇이 살아있네!

    “옹기는 들숨, 날숨을 자유롭게 쉬는 살아 있는 그릇입니다. 옹기는 그 속에 담겨 있는 음식물의 신선함, 맛, 보존 유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여러 학자의 연구 결과로 입증된 지 오래입니다.” 미력옹기를 운영하고 있는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37호 이학수(59) 옹기장은 지난 11일 “천연의 그릇 옹기는 인체에 도움을 주는 무독한 용기로 수 대를 이어 주는 가치 있는 그릇임에 틀림없다”며 “실용적이며 동시에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연의 그릇인 옹기는 인간이 닮아야 할 그릇이기도 하다”고 극찬했다. 전남 보성군 미력면 국도 29호선 옆에 위치한 미력옹기는 3300㎡(약 1000평) 부지로, 옹기를 생산하는 규모로는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이 옹기장은 무형문화재 보유자였던 아버지 이옥동(1913~1994)씨와 작은아버지 이래원(1918~2000)씨의 가업을 이어 9대째 옹기를 빚고 있다. 조선 중기부터 고집스럽게 점토를 흙으로 빚어 그릇을 만드는 전통 옹기 제조 방식을 무려 300년 동안이나 한집안에서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990년 5월 이옥동·래원 형제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으로 지정했다. 같은 종목으로 한 가족이 같은 날 옹기장에 선정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1976년 부친으로부터 미력옹기를 이어받은 이후 199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을 이수했으며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 전수 교육조교를 했다. 2003년 전수 교육조교를 반환하고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됐다. 이 옹기장은 모든 제품을 직접 손으로 빚어낸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승돼 온 옹기는 일본이나 중국에도 없는 우리 민족 특유의 음식 저장 용구다. 이 옹기장이 생산하는 물건은 장독대, 항아리, 그릇, 다기, 식기류 등 100여 종류에 이른다. 높이 150㎝, 폭 130㎝에 300만원 하는 대형 옹기도 있다. 작은 찻잔부터 큰 항아리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빚어내고 있다. 천연 잿물로만 쳐내 옹기를 만든다. 전통 옹기로는 국내에서 지명도가 가장 높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어서인지 이날 미력옹기 공장에서는 각지에서 온 사진작가 10여명이 예술 작품을 찍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서울, 경기, 광주 등에서 승용차를 타고 오거나 버스로 단체 관람을 오는 경우도 많다. 각양각색의 수많은 작품과 옹기 물레작업실, 전시실 등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자기 손으로 흙을 이겨 틀 위에 올려놓았다. 송 영감의 손은 자꾸 떨리었다. 그러나 반쯤 독을 지어 올려, 안은 조마구(도개) 밖은 부채마치(수레)로 맞두드리며 일변 발로는 틀을 돌리는 익은 솜씨만은 앓아눕기 전과 다를 바 없는 듯했다. 왱손이가 흙을 이겨 주는 대로 중옹 몇 개를 지어 냈다.” 위의 글은 소설가 황순원의 소설 ‘독 짓는 늙은이’ 중 일부다. 이 옹기장은 힘들 때마다 옹기와 장인, 수천년 세월을 담아 온 내밀한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이 글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고 했다. 옹기를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롭다. 이 옹기장은 별도의 동력 없이 오로지 발 물레로 옹기를 빚는 ‘쳇바퀴 타래 기법’을 보존해 오고 있다. 전라 지역에서 사용하는 쳇바퀴 타래법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세계 유일의 고유한 기법이다. 점토 뭉치를 흙바닥에 내리쳐서 판자 모양으로 늘여 바닥판 위에 올려 쌓는 타래법이다. 대형 옹기를 만들기가 쉽고 다른 기법에 비해 속도감이 있다. 또한 힘이 적게 드는 장점도 있다. 쳇바퀴 타래법으로 큰 독을 성형하는 장면을 보는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이 기법으로 물레를 돌리는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쳇바퀴 타래법은 타래를 늘일 때 한 바퀴를 돌려 공중회전으로 늘이는데, 이 모양이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이렇게 몇 바퀴를 회전해 늘여진 타래는 양팔의 길이보다도 훨씬 길어진다. 이 옹기장은 “잘 간직하고 전승해야 할 중요한 기법인 동시에 소중한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점토를 빗살무늬 조막으로 때려 형태를 만든 후 물레질을 하면서 매끈하게 다진다. 이후 젖은 가죽으로 옹기의 주둥이를 만드는 작업을 끝낸 후 무늬를 새긴다. 이어 옹기를 그늘지고 통풍이 잘되는 곳으로 옮겨 말리고 사흘 뒤 잿물을 고루 입힌다. 잿물은 소나무를 태운 재와 낙엽이 썩어서 된 부엽토를 물과 적절히 섞어 만든다. 이 옹기장은 “옹기를 만들 때 불가마 과정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고된 작업”이라고 말했다. 크기와 모양에 따라 보름에서 두 달까지의 건조 기간을 거친 후 불가마에 넣어 수분을 빼고 가마 속 온도를 1200도까지 올려 1주일간 불을 때야 한다. 불가마는 가로 2m, 높이 1m 80㎝, 길이 20m 크기로 30~40㎝ 사이마다 촘촘히 불을 때 줘야 한다. 이 옹기장은 “가마에 불을 때는 동안 이번 옹기들은 어떻게 나올까 하는 설렘과 잘 나와야 할 텐데 하는 걱정, 궁금증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상황이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틀에 걸쳐 열을 식히면 옹기가 탄생한다. 이처럼 공들여 만든 옹기는 한번의 불가마 작업에서 300~500여점이 나오지만 가마의 성공률은 50~80% 정도다. 플라스틱의 등장으로 옹기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옹기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로 판매되고 있다. 옹기는 변질을 막고 신선하게 보존하는 기능과 썩지 않게 하는 방부 역할, 2급수 물도 2~3일 놔두면 1급수로 깨끗하게 만드는 정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3가지가 과학적으로 소개되면서 최근 김치냉장고에도 플라스틱 사각통을 빼고 옹기를 넣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이 옹기장은 “어떤 주부가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들에게 6개월 동안 옹기에 담은 물로 씻고 마시게 했더니 완쾌된 일도 있었다”며 “옹기에서는 인체에 좋은 음이온이 나온다”고 말했다. 아버지대까지는 옹기를 만드는 일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해야 했었다는 이 옹기장은 목사인 두 아들 그림(39), 이레(34)씨가 목회를 마치면 가업을 이어 가기로 해 10대째 전통을 계승할 수 있게 됐다며 해맑게 웃었다. 이 옹기장은 대한민국 도예대전 대상,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특별상·장려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되풀이되는 과거사 불화… 적극 외교로 日 우경화 저지 절실

    [새로운 50년을 열자] 되풀이되는 과거사 불화… 적극 외교로 日 우경화 저지 절실

    김외한, 김달선, 김연희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이달 들어 별세했다.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 중’이라고 표기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는 2011년 4종에서 올해 4월 13종으로 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는 일부만 반환됐을뿐더러 국내에서 문화재 반환 운동이 시작된 이후에는 전시대에서 사라졌다. 한·일 수교 반세기. 50주년이란 숫자를 딛고 미래를 기약하기에 양국의 과거사 화해 성적은 초라하다. 오히려 국내 사정에 밀려 양국 간 화해 노력이 무위로 끝나고 많은 일이 반복, 재연됐다. 일본 총리가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나서는 행보는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2000년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로 이어졌다. 아베 신조 내각에서 “위안부는 전시 중 합법”이라는 취지의 발언은 아베 총리뿐 아니라 내각 장관들의 입을 거치며 반복됐다. 미래를 향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양국이 한·일 수교 반세기를 계기로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침략 전쟁을 금지한 일본 평화헌법 9조에 대해 한·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는 행보처럼 일본의 우경화를 저지할 여론 환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위안부 문제는 양국이 제자리걸음을 멈춰야 할 명분을 주는 상징적 이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8일 김연희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거론하며 “이제 위안부 생존자는 49명”이라고 전했다. 정대협이 전한 김연희 할머니의 삶은 해방, 한·일 국교 정상화, 한국의 경제 발전, 민주화와 같은 집단적 성취가 이미 망가져 버린 개인의 삶에 대리 만족을 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은유였다. 1932년생인 할머니는 국민학교 5학년이던 열두 살에 일본인 교장의 차출에 따라 일본으로 끌려갔고, 일본 도야마현의 비행기 부속 공장에서 9개월 동안 근무하다 아오모리현 위안소로 끌려가 7개월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 해방 뒤 귀향한 할머니는 결혼하지 않고 가정부로 일했으며, 정신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1965년 한·일 수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개인적으로 보상받을 길을 차단하는 제약으로 작용했다. 일본 정부는 시종일관 성노예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수교에 맞춰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됐다고 주장했고, 이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된 최근에도 아베 총리 등이 “위안부 문제는 정치·외교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2013년 의회 답변)거나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올해 언론 인터뷰)라는 식으로 일본 정부 차원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단체는 최근 적극적인 대응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7월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미국 법원에 2000만 달러(약 220억원)의 집단 손해배상 청구를 낼 계획이다. 이미 2000년 미국 워싱턴 법정에서 패소한 전례가 있지만, 이후 르완다와 유고 내전 중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국제 판례가 나왔기 때문에 승소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최근 방한한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유엔의 위안부 문제 해결 의지를 밝히며 “위안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고통을 인정하는 우리의 모습과 진정 어린 참회”라며 피해자인 개인을 향한 직접 사죄만이 고통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진일보한 인식을 드러냈다. 할머니들의 죽음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시급함을 더했다면,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는 일본의 속도가 한국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독도 자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멋대로 독도 주변에 영유권 선을 그어 국제분쟁화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단행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일본 내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돼 온 ‘한국의 독도 불법점거’ 주장은 이를 위한 사전 단계로 볼 수 있다. 2000년 이후 독도 문제는 양국 불화의 ‘뇌관’이 돼 왔다.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일본이 독도를 부르는 말)의 날’로 제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날 침략을 정당화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자 주한 일본대사가 본국으로 소환됐다. 한·일 네티즌끼리 독도 지명 표기를 놓고 여러 사이트에서 인터넷 청원 전쟁을 벌이는가 하면 독도 관련 공연을 한 한국 가수가 일본 입국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법의 영역에서 한국은 독도 문제에 대해 ‘조용한 외교’로 일관하는 중이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뒤 일본이 1954년, 1962년에 이어 세 번째로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과 대비되는 전략이다.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독도는 영토 분쟁 지역이 아니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면 긁어 부스럼이란 게 ‘조용한 외교’의 근간이 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차분하게 대응하는 동안 일본은 자국의 독도 편입 논리를 강단 있게 전파해 왔다는 데 있다. ‘1905년 무주지인 독도를 일본이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는데, 한국 정부가 1952년 1월 독도를 포함하는 이승만 라인을 일방적으로 설정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이 굳어지면, 한국 외교는 조용하게 있다 힘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독도연구소장을 지낸 김현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적극적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독도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분쟁도서로 인식된다”며 “독도 문제 언급을 피할 게 아니라 분쟁의 해결을 위한 한·일 간 진지한 교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독도,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적극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면 일제강점기 약탈 문화재 반환 이슈에서는 다소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문화재 반환이 성사되려면 현재 국면에서 받는 입장인 한국 못지않게 주는 쪽인 일본의 태도 변화가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에 면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한·일 수교 당시 박정희 정권이 반환을 요구한 문화재는 4479점으로 조선총독부가 일본으로 가져간 고분 출토품, 개인이 약탈한 문화재가 망라됐다. 수교 이듬해인 1966년 5월까지 한국으로 돌아온 약탈 문화재는 거북 모양 청자 주전자(보물 452호) 등 1432점에 불과했다. 개인 소유 문화재가 제외된 탓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인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1910~50년대 한반도에서 수집한 1100여점의 문화재, 이른바 ‘오구라 컬렉션’이 돌아오지 못했다. 한·일 협정 당시 개인 소장품이었지만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유물들이다. 국내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국제박물관협의회에 오구라 컬렉션 반환 청원서를 전달하고 도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환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소송이 제기된 직후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됐던 한국 문화재들이 수장고 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일본 법원도 한·일 협정으로 타결된 문제인 만큼 일본에 반환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 약탈이 이뤄지고 이들 문화재가 어떻게 불법 경로를 통해 유출돼 일본으로 흘러들어 갔는지를 일본 정부에 소상하게 밝힐 수 있는 입증 자료 구비 등 한국 측의 빈틈없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동부그룹] 정치인 2세 출신 그룹 회장…부친 후광 없이 일군 ‘자수성가형’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동부그룹] 정치인 2세 출신 그룹 회장…부친 후광 없이 일군 ‘자수성가형’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재계에서는 드물게 정치인 2세 출신이다. 특히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부친 고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의 후광과는 관계없이 본인의 힘으로 창업해 그룹을 일궜다는 점에서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2006년 별세한 김 회장의 부친 김 전 부의장은 1954년 3대 민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해 7선 국회의원을 지낸 거물급 정치인이었다. 김 회장은 제헌의원과 참의원을 지낸 김진구 선생과 해방 직후 국민촉성회 비서장을 지낸 김진팔 선생을 백부로 두기도 했다. 김 회장은 유력 정치인의 자제로 부족함 없이 자라나긴 했지만 회사를 대기업으로 키우기까지에는 집안과 부친의 후광보다는 본인 스스로의 노력이 더 컸다는 평가다. 이는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업가의 길에 들어선 김 회장의 창업 스토리에서 기인한다. 김 회장은 대학 재학 중이던 1969년 만 24세의 나이에 동부그룹의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했지만 부친 김 전 부의장은 이를 반대했다. 부친으로부터 자본금을 지원받지 못한 김 회장은 친지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등 2500만원의 자금을 확보해 사업을 시작했다. 김 회장이 부친의 반대에도 기업가로 자신의 진로를 정한 것은 고려대 재학 시절 미국 우수 인재 유치단의 일원으로 뽑혀 미국을 방문한 게 계기가 됐다. 40여일 동안 미국 곳곳을 직접 둘러본 김 회장은 강대국 미국을 만든 원동력이 기업이라는 소신을 갖게 됐다. 정치인 집안에서 자라나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이 세대의 젊은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조국 근대화를 위해 희생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체득하는 기회였다. 기업을 통해 국가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품게 된 셈이다. 유력 정치인인 부친은 김 회장의 사업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 김 회장이 미륭건설을 경영할 당시 그룹으로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됐던 중동 사업을 추진했던 시기인 1975~1983년은 부친인 김 전 부의장이 1972년 항명 파동으로 이미 당권의 핵심에서 멀어진 이후였다. 또 1980년 전두환 정권 당시 동부건설 계열 3개사가 권력형 부정 축재와 관련해 수사를 받았다. 이 수사와 관련해 부친인 김 전 부의장 때문이라는 설이 돌기도 했으나 무혐의로 판명나면서 김 전 부의장과 동부그룹은 전혀 무관함이 입증됐다는 것이 동부그룹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이제 장남인 김남호 동부금융연구소 부장의 2세 경영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1975년생인 김 부장은 경기고를 거쳐 미국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이후 귀국한 김 부장은 강원도 인제 포병여단에서 군생활을 마쳤다. 제대 후 2년여 동안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인 ‘AT커니’에서 기업 경영의 실무를 접한 그는 미국 워싱턴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과정(MBA)을 마친 뒤 2009년 동부제철 차장으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았다. 대형 제조업이 기업 경영의 기초라는 김 회장의 지론에 따라 당진공장 생산현장에서 근무를 시작한 김 부장은 2012년 현 직급인 부장으로 승진했다. 동부제철에서 농업 부문 계열사인 동부팜한농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지난 4월부터 동부그룹 금융계열사의 전략을 수립하는 동부금융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오너 2세임에도 만 40세인 지금까지 임원이 아닌 부장으로 재직 중인 것은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라는 김 부장 본인의 뜻에 따른 것이다. 동부그룹은 화려한 혼맥을 자랑한다. 김 전 국회부의장이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점도 작용했다. 김 전 부의장의 장녀이자 김 회장의 누나인 김명자(73)씨는 한국 최초의 치약 제조 회사였던 동아특산약화학 창업주인 고 임형복씨의 아들인 임주웅 전 동부생명 사장과 결혼했다. 김 회장의 동생이자 김 전 부의장의 차녀 김명희(68)씨는 소설가 김동리의 아들인 김평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김 전 부의장의 3녀 김희선(55)씨는 신춘호 농심 회장의 차남인 신동윤 부회장과 혼인했다. 김 회장 자녀들 역시 주요 인사들과 혼맥을 이어 갔다. 김 회장의 장녀인 주원(42)씨는 고 김동만 전 해동화재(리젠트화재) 회장의 손자인 김주한씨와 결혼했고, 장남인 김 부장은 차병원 그룹 회장인 차광열씨의 장녀 차원영(36)씨와 결혼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동부그룹] 혹독한 구조조정… 계열사 53→34개로

    “지난 반 세기 동안 땀 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의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됐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지난 1월 내놓은 신년사에서는 혹독한 그룹 구조조정의 결과에 대한 김 회장의 아픈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2014년 동부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거치며 시련의 시기를 겪었다. 2015년 6월 현재 동부화재를 비롯한 금융계열사를 제외하면 제조업 계열사는 사실상 동부대우전자 하나만 남아 있는 상태다. 그러나 동부그룹은 금융업과 전자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재기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동부그룹의 위기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됐다. 동부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철강 등의 업황 악화와 맞물려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2009년 말 김 회장이 사재 3500억원을 출연한 동부하이텍을 시작으로 동부건설과 동부익스프레스 지분 매각이 추진됐고 동부제철 지분 매각 등 동부그룹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그러나 결국 2013년 말 부채비율 200% 이상 그룹을 대상으로 한 주채권은행의 사전적 구조조정 정책에 동부그룹이 포함되면서 구조조정의 전권을 산업은행에 위임했다. 이후 동부그룹은 2013년 11월 3조원가량의 자산을 중심으로 산업은행과 사전적 구조조정 약정을 체결했다.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을 잃지 않고 그룹의 재건에 나서겠다는 김 회장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포스코를 상대로 추진했던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건설의 당진발전소 패키지 매각이 무산되면서 동부그룹의 구조조정 방향이 틀어졌다. 동부제철 경영권은 채권단에 넘어갔고 동부특수강·동부발전·동부익스프레스·동부팜한농 등 알짜 계열사들도 줄줄이 매각됐다. 동부그룹의 계열사 수는 지난해 말 53개에서 2015년 6월 1일 공정위 발표 기준 34개로 3분의1 이상 줄었다. 그럼에도 동부그룹의 미래가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현재 매각 대상에 오른 비메모리반도체 업체인 동부하이텍이 지난해 창사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이익을 냈고 2013년 인수한 동부대우전자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하림그룹] 병아리 10마리로 ‘부농 꿈’… 삼장 통합경영으로 매출5조 신화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하림그룹] 병아리 10마리로 ‘부농 꿈’… 삼장 통합경영으로 매출5조 신화

    “외할머니가 병아리를 사업의 밑천으로 삼으라고 주신 것도 아니었고 나 역시 그 병아리로 오늘날의 하림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을 리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 운명처럼 만난 병아리 10마리가 지금의 하림그룹을 만들었다.” 1968년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외할머니로부터 병아리 10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미꾸라지와 개구리를 잡아 삶고 몰래 쌀독의 쌀까지 퍼냈다. 정성을 쏟으니 병아리들이 무럭무럭 자랐다. 토실하게 자란 닭을 닭장수들이 욕심냈다. 250원이었던 시세보다 값을 더 쳐 3000원 정도를 받았다. 매출 총액 5조원 신화의 주인공 김홍국(58) 하림 회장이 난생 처음 만든 사업 자금 얘기다. 10마리로 시작된 병아리는 200마리가 됐다. 고학년이 돼서는 돼지와 염소도 키웠다. 중학교 때는 전북 익산 망성면 집에서 10리쯤 떨어진 강경읍내까지 나가 돼지에게 먹일 음식 찌꺼기를 구하는 일이 하루 첫 일과였다. 김 회장은 아버지 김주환(88)씨와 어머니 이완경(87)씨 슬하의 4남 2녀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북대 농대 교수를 지냈고 어머니는 공주 사범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교편을 잡던 아버지가 갑자기 사업에 뛰어들어 실패하자 모든 게 바뀌었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옷을 떼 와 보따리 옷장사로 자녀를 길렀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녀를 엄격하게 교육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가축에 푹 빠진 김 회장은 골칫덩어리였다. 하지만 김 회장의 열정과 고집을 꺾기란 어려웠다. 중학교 3학년 때 ‘네 마음대로 하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김 회장은 주저 없이 이리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승승장구했다. 김 회장은 전국영농학생전진대회에 출전해 원예와 축산에 대한 논문 발표로 상을 받기도 했고 양계장을 직접 설계, 시공해 1000여 마리가 넘는 닭을 키웠다. 돼지도 30여 마리로 늘리고 볏짚을 납품했다. 당시 월 수익이 300만원이 넘었다. 본격적인 양계 사업에 욕심이 났다. 18세 되던 해 김 회장은 자본금 4000만원으로 황등농장을 설립했다. 잘나가기만 할 것 같았던 그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1982년 닭값 폭락 사태로 빚쟁이에게 쫓겨 돼지 막사에서 날을 지새우던 그는 사업을 접어야 했다. 한 식품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취직한 그는 와신상담했다. 닥치는 대로 경영과 관련한 논문을 읽었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자신감은 통합경영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는 “1차 농축산물에 부가가치를 만들어 2차 가공식품으로 만들고 이를 시장에 내다 파는 ‘삼장’(농장-공장-시장) 통합경영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닭이나 돼지에 먹이는 사료도 직접 조달하면 사료값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산 원가는 물론 물류구조의 개선, 유통마진의 확대 등에 대한 생각들이 나를 마구 흥분시켰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86년 다니던 식품회사에 사표를 냈다. 2년 동안 열심히 모은 월급으로 양계장을 인수한 그는 업계 최초로 병아리 위탁 사육 시스템을 도입했다. 회사는 부지 매입과 인건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대신 계약 농가에 시설재, 사료 및 모든 관련 부재료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위탁 사육을 실시했다. 사업은 다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운도 좋았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일명 ‘양념치킨 체인점’이 들어서 하림의 사업도 급성장했다. 주문이 너무 밀려 당시 설비로는 주문량을 소화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하림은 갖은 위기를 겪으며 체질 강화에 힘써 왔다. 2003년 5월 연건평 1만평이 넘는 본사 공장이 송두리째 불타 버린 대화재를 겪었을 때도, 2003년 말 당시 조류독감이라 불리던 AI(조류인플루엔자)로 닭고기 소비가 30% 이상 줄었을 때도 하림은 묵묵히 ‘상식과 도덕, 기본에 충실한 경영’을 해 왔다. 김 회장은 대학교 4학년이던 아내 오수정(52)씨를 만나 열애 끝에 1986년 결혼해 슬하에 1남 3녀를 뒀다. 부인 오씨는 연애하던 시절 사고 현장에서 망설임 없이 부상자들을 싣고 병원 응급실로 차를 모는 김 회장의 ‘용감한 모습에 홀딱 반했다’고 한다. 장녀(27)는 미국 에머리비즈니스스쿨을 나와 현재 IBM에 근무하고 있다. 장남 김준영(23)씨 역시 에머리비즈니스스쿨에 입학했다. 지금은 군 복무 중이다. 김 회장은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한다는 철학으로 유명하다. 장남 준영씨에게 물려준 계열사인 닭고기 가공업체 올품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김 회장의 자녀가 경영 수업에 참여한 적은 없다. 김 회장은 “자식들이 가업을 이어 줬으면 한다”면서도 “다만 그건 능력과 적성이 있을 때”라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올품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그는 “100억원 이상 증여세를 모두 내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아들에게 증여한 것”이라면서 “일부에서 불법 승계가 아니냐는 말들이 있어 공정거래조사도 여러 번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1994년 호원대 경영학도로 늦깎이 대학 생활을 했고 2000년 전북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매주 토요일 익산으로 가 이리신광교회에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에 참석한다. 가장 즐겨 읽는 책으로 주저 없이 성경을 꼽는다. 취미는 승마다. 2011년 골프 대신 시작했다. 김 회장의 큰형은 김기만(67) 전 백석예술대 총장이다. 김 전 총장은 한남대와 중앙대 교육대학원, 원광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백석대 교육대학원장, 평생교육원장, 백석문화대 행정부학장과 학장 등을 지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국내여행 | [Village in Seoul 창신동] 세상의 모든 동네 창신동 꿰매기

    국내여행 | [Village in Seoul 창신동] 세상의 모든 동네 창신동 꿰매기

    창신동의 어깨가 무겁다. 제1호 뉴타운 재개발 해제구역. 싹 밀어 버리는 방법 대신 느린 재생을 선택한 창신동에 쏠린 시선들은 기대 반, 의심 반이다. 그러니 눈치 없는 관광객으로 말고, ‘아니 오신 듯 가만히’ 다녀오시라.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래서 지켜 주어야 할 것들이 아직 창신동에는 남아 있다! 첫 마을을 주시하라 창신동은 성 밖 첫마을이다. 사대문과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던 한양에서 흥인지문(동대문)을 넘어서면 그곳이 창신동이다. 혹은, 혜화동 낙산공원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서울 성곽길을 걸어 본 적이 있는가? 그 너머가 바로 창신동이다. 아마도,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재개발을 포기한 창신동은 낙후된 산동네, 달동네다. 길이 오죽 휘고 가파르면 ‘회오리길’이 있을까? 그 비탈에 축대를 쌓고 올린 집들은 대부분 노후 주택이다. 아랫마을 신당동이 대형 패션타운과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눈부신 발전(?)을 해 오는 사이 창신동은 여전히 20년 전 풍경을 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재개발 계획은 주민들의 투표를 거쳐 2013년 해제됐다(일부 구역은 다시 서울시에 정비사업 추진을 신청했다). 투기꾼들을 실망을 안고 물러갔고, 이어서 도시재생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디자인을 고민하여 ‘000간(공공공간)’을 운영 중인 사회적기업 러닝투런, 공연예술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창신동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극교육을 위해 ‘뭐든지 예술학교’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가 있으며, 어반하이브리드는 디자이너와 생산자를 연결해서 브랜드를 만드는 ‘창신테이블’을 운영 중이다. 도심재생 선도지역 사업을 위해 신숭인도시재생지원센터가 설치되고 국비와 시비 200억원이 책정됐으니, 성패를 주시하는 눈들이 쏠리고 있다.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이들의 작업은 창신동 주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창신동은 한국 의류산업의 메카인 동대문의 배후기지다. 주문을 넣으면 하루 만에도 뚝딱 옷이 만들어지는 곳.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1~2인의 소규모 작업장까지 합하면 3,000여 개의 봉제공장이 창신동에 밀집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마을에 들어서면 주택 1층마다 자리잡은 공장 작업실에서는 기계음에 섞인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고 불투명 시트지를 붙인 샷시 문 틈새로 호스들이 꼬리를 빼고 쉭쉭 연기를 뿜어 올린다. 10대, 20대에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여직공이 이제 창신동의 아줌마, 할머니가 되었다. 70년대 당시 직공의 40%가 18세 미만의 여성들이었고, 그들이 견뎌야 했던 열악한 노동환경, 가난한 쪽방촌 생활을 떠올리면 창신동에 위치한 전태일추모재단 앞에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봉제산업은 쇠락하고 있지만 이미 자리잡은 문화의 뿌리는 깊다. 쉼 없이 골목을 질주하는 원단 배달 오토바이만 해도 그렇다. 시끄럽고 위험하고 불편하지만 창신동에서는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좁은 골목길을 질주하며 원단과 제품을 배달하는 오토바이의 소음은 ‘돈 버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공장마다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도 소음이 아니긴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찾아온 해외이주민들도 불청객이 아니다. 현재 창신동에는 2,000여 명의 조선족과 동남아 이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들을 끌어안기 위해 동네 교회는 외국어 현수막을 설치하고 창신시장에는 인도, 네팔, 중국 식당들이 유명하다. 그리하여 창신동은 ‘마을’과 ‘공동체’ 재생을 위한 중요한 시험무대다. 지켜 내고 싶은 것들은 오히려 소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평상이다. 마을 공터마다, 골목 끝마다 할머니 두세 명이 모여 앉아서 남편 흉도 보고, 해진 양말도 꿰매고, 수박도 나눠 먹는 그 평상이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지점마다 기가 막히게 자리잡은 골목슈퍼는 또 어떤가? 런닝셔츠에 파자마 차림으로 ‘하드’를 사러 나온 꼬맹이는 몇십년 전의 나였다. 세상 모든 꼬마들을 키워 낸 오래된 동네를 지켜 주는 일. 이미 잃어버린 박수근과 백남준의 집터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이고, 우리가 창신동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다. 성저10리, 창신동의 시작 조선시대 두 마을인 인창방仁昌坊과 숭신방崇信坊이 합쳐져 1914년부터 창신동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낙산 주변에 양반들의 별장이 있기는 했지만 성저10리城底十里, 묘도 쓸 수 없고 벌목도 금지된 도성 밖 약 4km 구역, 즉 한양의 그린벨트 같은 곳이어서 거주 인구가 적었다(지금 창신동은 종로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일제강점기에는 창신동 일대에서 채석한 돌로 조선총독부, 서울시청 등을 건축했으며 동대문 일대 광장시장에는 대규모 포목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이주민과 피난민들이 판잣집을 지으며 몰려들었고 1970년대부터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이 이전해 오기 시작하면서 창신동은 의류산업의 배후기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낙후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뉴타운 재개발이 추진됐지만 2013년 주민투표를 통해 추진 지역 중 처음으로 재개발을 포기하고 도시재생 시범지역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mini interview 창신숭인도시재생지원센터 센터장 신중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소통’하려면 ‘배려’하라 재개발 해제를 위해 앞장서 온 그가 센터장이 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11개월이 흐르는 동안 그가 가장 주력한 일은 도로를 넓히고 주택을 개조하는 ‘가시적인 성과’가 아니라 동네를 속속들이 파악하는 일이었다. 50m마다 방문객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파악했다는 그와 함께한 창신동 투어는 드라마틱한 시선의 확장이었다. 소위 ‘정비되지 않았다’고만 표현되던 골목과 집들이 ‘그러한 연유’도 알게 되고 오토바이 소리, 라디오 소리도 정겨워졌다. 도시재생을 향한 이 실험의 장에서 애당초 정해진 ‘답’이 없으므로 같이 고민해 보자는 접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원칙은 분명하다. “소통하려면 배려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창신동을 소개하는 여행기자에게 작은 팁이 되어 주었다. 배려하는 여행. 창신동을 ‘구경’하지 말고 ‘살펴’달라는 당부를 덧붙인다. ●천소현 기자의 창신동 그곳? Exhibition DDP에서 만나는 박수근과 창신동 5월6일은 박수근(1914∼1965년) 작고 50주기다. 그의 대표작 50여 점이 DDP에 걸리고 창신동의 문화예술적 자원을 재조명하는 기획전도 함께 열린다.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꼽히는 박수근은 창신동에 10년을 살았다. 그림이 빼곡하던 마루 화실은 지금 사진으로만 남아 있지만 그의 DNA 속에 녹아 있는 창신동의 모습은 젊은 건축가와 아티스트들이 함께 고민한 동행 행사 <창신·길>에서 만날 수 있다. DDP 이간수문전시장 4월30일~6월28일 8,000원 www.ddp.or.kr 창신동 둘러보기 동대문역이나 종묘역에서 시작해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라가는 방법도 있고, 종로03번 마을버스를 타고 낙산 종점에서 하차해 창신시장 방면으로 내려오는 방법도 있다. 물론 내려오는 코스가 쉽겠지만 가파른 비탈에 아무래도 속도가 빨라지면 시선에서 놓치는 것들도 많아진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창신동의 현주소 봉제거리박물관 봉제‘산업’이 아니라 ‘문화’라고 부르자 시선은 ‘돈’에서 ‘사람’으로 옮겨졌다. 현재 창신동에는 1,100여 개의 봉제소가 있고, 30인 이상이 근무하는 곳이 150여 곳이다. 특히 647번지와 42번지 일대에 패턴부터 재봉까지 도맡는 종합공장들이 밀집해 있어서 거리박물관이 조성됐다. 벽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창신동을 한층 깊이 이해하게 된다. 창신동 647 일대 이래저래 안타까운 비우당과 동망봉 비우당庇雨堂은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실학자 이수광1563~1628이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형식의 책인 <지봉유설芝峰類設>을 집필한 곳이다. 복원이 되긴 했지만 아파트에 갇힌 모습이 안타깝다. 보문역쪽으로 내려가면 정순왕후가 영월로 유배간 단종을 그리워하며 매일 동쪽을 바라보았다는 동망봉이 있다. 폐위된 정순왕후가 비우당의 샘에서 빨래를 하면 자주색으로 물들었다는 슬픈 이야기도 전해진다. 창신동 9-471 창신동의 활력소 아트브릿지+뭐든지도서관+창신동라디오 ‘덤’ 부모가 일하는 동안 방치되는 아이들을 모아 연극교육을 하는 것이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의 역할이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배우양성소인 ‘조선배우학교’가 1925년 창신동에 있었다. 지역아동센터와 학부모들이 함께 만든 ‘뭐든지 도서관’은 아이들의 사랑방이고, 창신동라디오방송국 ‘덤’은 창신동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출연하는 마을미디어로 인터넷이나 팟캐스트에서 창신동라디오로 검색해 들을 수 있다. 아트브릿지 www.artbridge.or.kr 창신동을 고민하는 청년들 복합문화공간 OOO간 창신동을 기반으로 공공 커뮤니티 디자인을 고민하는 청년 사회적기업인 러닝투런Learning to Learn은 창신동의 변화를 주도한 곳이다. 이름 없던 봉제공장에 간판을 제작해서 달아 주는 사업을 시작으로 자투리 원단과 버리는 부재료를 얻어서 만든 셔츠, 가방 등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는 등 주민들과 협업, 청년활동가 육성 프로그램 등의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주)러닝투런 000간(공공공간) www.000gan.com 여기가 거긴가 미스테리한 촬영 명소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길라임여자주인공, 하지원역의 집은 당고개 공원 주차장에서 내려다보이고,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남자주인공, 임시완역의 집은 달카페 뒤편 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조정석역가 열변을 토하던 골목도 멀지 않다. 영화 <숨바꼭질>의 촬영지였던 동대문아파트창신동 328-17는 1965년 건축되어 지금은 다 낡아 버렸지만 2013년에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귀여운 마을사랑방 달커피+달퀼트 달동네 커피집이어서 달커피다. 카페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는 서울성곽의 일몰풍경에 반해서(원래 낙산은 일몰이 좋은 산으로 유명하다) 두어 해 전에 창신동 주민이 된 이강혁 사장이 내려 주는 핸드드립 커피의 맛도 일품이지만 그와 나누는 커피 이야기, 창신동 이야기가 더 맛있다. 세트처럼 나란히 자리잡은 옆집 달퀼트의 이진영 선생과는 친구 사이. 달동네와 커피, 그리고 퀼트는 묘하게 잘 어울린다. 창신6가길 48 070-4119-9682 큰대문집 막내아들 백남준 옛집터 부유한 포목상 집안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가 된 백남준1932~2006은 6세부터 18세까지 어린시절을 창신동에서 보냈다. 실제 그가 거주했던 주택은 불타 없어졌지만 한국 최초의 재벌가답게 ‘3,000평’이나 되는 솟을대문의 ‘큰대문집’이었다고 한다. 부지에는 현재 교회, 가옥, 상가들이 들어서 있으며 백숙집 벽에 기념 표지판이 남아 있다. 창신동 197(종로53길 21) 한번 맛보면 중독되는 창신시장의 먹거리들 동네 탐방의 마무리는 창신시장에서의 한 끼다. 낙산에서 흘러내렸던 복자천의 흔적을 따라 형성되어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지만 그만큼 이색적이다. 창신동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창신동 매운족발’이 부담스럽다면 푸짐한 수원갈비집도 있고, 순대국밥집, 떡볶이 분식집 혹은 아예 이색적으로 네팔음식점인 ‘에베레스트’나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요리점들도 있다. 1호선 동대문역 2번 출구 문화재만 2,700여 점 보물 같은 안양암 안양암은 서울시 전통사찰 가운에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다. 전각, 불화뿐 아니라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1,500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기 때문. 하나하나를 수작업으로 제작했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1889년에 창건된 절은 왕실의 원당으로 기록에 의하면 시주자의 70%가 창건 당시의 왕실 관계자들이었다고. 창신5길 61 글·사진 천소현 기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오지 아이들을 비추는 한줄기 빛…‘중력 전등’의 기적

    오지 아이들을 비추는 한줄기 빛…‘중력 전등’의 기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어둠속에서 사는 오지 아이들에게 ‘빛’을 선물할 수 있는 착한 전등이 개발됐다. 일명 ‘그래비티 라이트’(Gravity Light)라 명명된 이 전등은 영국의 디자이너 마틴 리디퍼드와 짐 리브스가 공동 개발한 것으로, 중력을 이용해 빛을 내는 원리다. 그래비티 라이트를 작동시키는데 필요한 것은 단 2가지. 도르래가 장착된 그래비티 라이트 전등과 약 12㎏의 모래 주머니 뿐이다. 원리 역시 간단하다.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높은 곳에 매달린 전등 가까이에 달면 중력에 의해 모래주머니가 점차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 연결된 도르래에 의해 내부의 벨트가 움직이면서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톱니바퀴 회전을 통해 전기모터가 작동돼 전기를 생산한다. 이렇게 발생한 전기는 본체에 장착된 LED램프를 환하게 밝히며, 1.8m 높이에 이 전등을 설치할 경우 최대 25분간 별다른 동작 없이도 빛을 쓸 수 있다. 모래주머니가 바닥에 완전히 닿아 전등이 꺼지면 다시 이를 전등 본체 가까이로 올려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오게 하면 된다. 마틴 리디퍼드와 짐 리브스는 2012년 소셜펀딩사이트인 ‘인디고’에 처음으로 그래비티 라이트를 공개한 뒤 추가 실험 및 업그레이드를 위한 자금을 모았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후원금을 통해 대량생산을 위한 개발이 시작됐고, 최근 두 사람은 케냐에 대형공장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그래비티 라이트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짐으로서 여전히 전기가 없는 어둠속에 사는 전 세계 13억 명의 사람들이 빛을 선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미 그래비티 라이트는 27개국 1300가구에서 프로토타입 실험을 모두 마친 상황이다. 마틴 리디퍼드와 짐 리브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본체에서 바닥으로 서서히 떨어지는 모래 주머니를 보다 쉽게 들어올리는 동시에 오랫동안 빛을 유지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한 추가 기금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짐 리브스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 사람들은 대부분 등유나 석유 램프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 램프는 가격이 비싸고 화재나 매연 중독의 위험이 매우 높다”면서 “그래비티 라이트는 석유램프에 비해 훨씬 밝고 안전하며, 복잡한 전력장비 없이도 빛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오지 아이들에게 빛을 선물하다…‘중력 전등’의 기적

    오지 아이들에게 빛을 선물하다…‘중력 전등’의 기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어둠속에서 사는 오지 아이들에게 ‘빛’을 선물할 수 있는 착한 전등이 개발됐다. 일명 ‘그래비티 라이트’(Gravity Light)라 명명된 이 전등은 영국의 디자이너 마틴 리디퍼드와 짐 리브스가 공동 개발한 것으로, 중력을 이용해 빛을 내는 원리다. 그래비티 라이트를 작동시키는데 필요한 것은 단 2가지. 도르래가 장착된 그래비티 라이트 전등과 약 12㎏의 모래 주머니 뿐이다. 원리 역시 간단하다.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높은 곳에 매달린 전등 가까이에 달면 중력에 의해 모래주머니가 점차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 연결된 도르래에 의해 내부의 벨트가 움직이면서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톱니바퀴 회전을 통해 전기모터가 작동돼 전기를 생산한다. 이렇게 발생한 전기는 본체에 장착된 LED램프를 환하게 밝히며, 1.8m 높이에 이 전등을 설치할 경우 최대 25분간 별다른 동작 없이도 빛을 쓸 수 있다. 모래주머니가 바닥에 완전히 닿아 전등이 꺼지면 다시 이를 전등 본체 가까이로 올려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오게 하면 된다. 마틴 리디퍼드와 짐 리브스는 2012년 소셜펀딩사이트인 ‘인디고’에 처음으로 그래비티 라이트를 공개한 뒤 추가 실험 및 업그레이드를 위한 자금을 모았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후원금을 통해 대량생산을 위한 개발이 시작됐고, 최근 두 사람은 케냐에 대형공장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그래비티 라이트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짐으로서 여전히 전기가 없는 어둠속에 사는 전 세계 13억 명의 사람들이 빛을 선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미 그래비티 라이트는 27개국 1300가구에서 프로토타입 실험을 모두 마친 상황이다. 마틴 리디퍼드와 짐 리브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본체에서 바닥으로 서서히 떨어지는 모래 주머니를 보다 쉽게 들어올리는 동시에 오랫동안 빛을 유지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한 추가 기금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짐 리브스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 사람들은 대부분 등유나 석유 램프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 램프는 가격이 비싸고 화재나 매연 중독의 위험이 매우 높다”면서 “그래비티 라이트는 석유램프에 비해 훨씬 밝고 안전하며, 복잡한 전력장비 없이도 빛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부상하는 오피스텔 롯데건설 대농지구 롯데캐슬 시티 시선 집중

    부상하는 오피스텔 롯데건설 대농지구 롯데캐슬 시티 시선 집중

    저금리기조가 계속되면서 임대수익률이 높은 오피스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도시형생활주택은 오히려 외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형생활주택의 인기가 주춤해지면서 공급물량도 크게 줄고 있다. 지난 2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도시형생활주택의 인허가실적은 2012년 12만3949가구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13년(6만9119가구)들어 인허가실적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으며 작년에는 6만3628가구에 머물렀다. 도시형생활주택은 주차난과 소음 등으로 인해 불편이 가중되고 있으며 안전에도 취약해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도시형생활주택의 가장 큰 문제는 주차난이다. 오피스텔의 주차공간은 가구당 0.5대~1대를 마련해야 하지만 도시형생활주택은 0.2대~0.6대 수준에 불과하다. 또 도시형생활주택은 아파트나 빌라보다 건축기준이 낮으므로 건설사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저렴한 자재로 시공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층간소음, 외부소음, 화재 등이 취약하다. 반면 오피스텔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현대엔지니어링이 광교신도시에 짓는 ‘힐스테이트 광교’오피스텔은 평균 422.3대 1의 로또 같은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또 지난 해 롯데건설이 서울 중구 순화동에 공급한 ‘덕수궁 롯데캐슬’도 평균 12.1대 1의 청약경쟁률을 보였다. 이처럼 오피스텔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다양하다. 최근 지어지는 오피스텔들은 마치 아파트처럼 다양한 커뮤니티시설이 설치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양한 평면과 특화설계를 적용함으로써 투자자 및 임대수요자들의 만족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이 가운데, 롯데건설이 충북 정주시 대농지구에 시공하는 ‘대농지구 롯데캐슬 시티’가 분양을 앞두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오피스텔은 1인이나 2∼3인 가구가 늘고 있는 추세에 맞춰 아파트형 오피스텔로 꾸며진다. 원룸, 투룸, 복층형, 테라스형 등 모두 9개의 다양한 평면을 구성해 가족인원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대농지구 롯데캐슬 시티’는 주변에 산업단지가 밀집해 있어 풍부한 임대수요를 확보할 전망이다. 단지 바로 북쪽에 청주일반산업단지가 위치해 있다. 특히, 이곳은 SK하이닉스 및 SK이노베이션, LG전자 등 대기업들의 공장들도 많이 들어서 있어 청주시 경제의 요충지라고 할만하다. 또, 청주일반산업단지 바로 북쪽에 청주테크노폴리스가 개발 중에 있어 배후수요는 더욱 풍부해질 전망이다. 충북대학교도 가까워 대학생들의 임대수요도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주변에 다양한 생활편의시설이 밀집돼 있어 편리한 주거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대농지구 내에는 지웰시티몰을 비롯하여 현대백화점, 롯데아울렛, CGV, 롯데시네마 등이 위치해 있다. 또한 단지 내에도 대형마트 등 근린생활시설이 입점할 예정으로 더욱 쉽게 생활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오피스텔은 도심에 입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3면이 풍부한 녹지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어 쾌적한 자연환경이 제공된다.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단지 바로 옆 근린공원과 바로 앞 조성될 공원, 그리고 지웰시티몰까지 연결된 주민보행을 위한 공개공지가 보행의 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 9만9,242㎡에 달하는 솔밭공원도 바로 앞에 있다. 이곳은 연못과 청소년수련관을 비롯해 게이트볼장, 테니스장 등 체육단련시설을 갖추고 있어 청주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원이다. '대농지구 롯데캐슬 시티'는 오는 6월 견본주택을 개관하고 본격적인 분양에 돌입할 계획이다.분양문의 043-277-0000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檢, 내츄럴엔도텍 공장 중국산 백수오 발견…내츄럴엔도텍 “수출용”

    檢, 내츄럴엔도텍 공장 중국산 백수오 발견…내츄럴엔도텍 “수출용”

    내츄럴엔도텍 檢, 내츄럴엔도텍 공장 중국산 백수오 발견…내츄럴엔도텍 “수출용” ’가짜 백수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내츄럴엔도텍의 공장에서 중국산 백수오 원료를 발견, 원료 수입 과정에 이엽우피소가 섞였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혼입 경위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12일 수원지검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8일 엔도텍의 충북 청주 물류공장에 있던 백수오 원료 일부를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통해 압류했다. 이 공장에서는 올해 초 화재로 인해 보관 중이던 백수오 원료 대부분이 없어졌지만 검찰은 향후 수사 과정에서 추가로 필요할 수 있는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압류를 진행했다. 압류 과정에서 공장에 남아있던 일부 백수오 원료는 ‘중국산’이라고 적힌 포대에 담겨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중국산 포대에 담긴 백수오 원료의 원산지 확인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중국산으로 확인될 경우 내츄럴엔도텍이 중국에서 원료를 들여올 때 이엽우피소가 섞였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혼입 경위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에 내츄럴엔도텍 관계자는 “백수오를 미국이나 태국 등에 수출하는데 수출용 제품에 중국산 백수오를 쓰고 있다”면서 “내수용 제품에는 중국산 백수오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으며 제품에 대한 원산지 표시도 사실대로 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달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시작 이후 이달 8일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소비자원, 내츄럴엔도텍, 백수오 영농조합의 관계자들에 대한 1차 소환조사를 마무리했다. 지난 9일부터는 소환조사 없이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원료 구매 내역과 보유량 등 그동안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 및 사실관계 확인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소환조사를 통해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원료에 대한 식약처·소비자원의 성분 분석 배경, 백수오의 생산·유통·판매 과정과 영농조합이 내츄럴엔도텍과 거래하게 된 과정 등을 파악한 검찰은 자료 분석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엽우피소의 혼입 경위를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소환조사에서 내츄럴엔도텍과 영농조합 관계자들이 모두 의도적 혼입에 대해 부인해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청주 물류공장에서 원료를 압류했다”며 “자료 분석을 마치는대로 추가 소환 등을 통해 혼입 경위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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