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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5)

    ◎매신의 수난과 저항/배설 상해투옥에도 항일필봉 건재/일제,영국과 손잡고 공작… 유죄 판결/양기택 등 민족언론투사들이 맥이어/정간 2회·압수 45회 맞서 고종퇴위 기도 등 폭로 일제의 탄압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더욱 가속화 되었다.신문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민족지를 짓밟기 위한 술책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그것은 바로 대한제국으로 하여금 신문조례를 만들도록 하는 외교적 강압으로 나타났다.특히 을사보호조약 체결뒤의 언론탄압은 더욱 심한 양상을 띠었다.한반도 침략정책에 방해가되는 기사나 그 부당성을 비판하는 글을 결코 방관하지 않았다.그래서 신문을 압수하거나 정간시키는 동시에 편집인 문책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편집인 문책 일쑤 이 시기에 일제의 민족지에 대한 탄압은 황성신문의 정간및 주필 장지연의 구속사건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수 있다.그러나 민족언론탄압에 서슬 퍼런 칼을 갈았던 일제도 배설이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에 대해서는 손을 쓸수가 없었다.치외법권의 보호가 늘 걸리적 거렸던 것이다.따라서 일제의 사전검열없이 발행되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유일한 신문으로 남게 되었다.그 논조는 말할나위도 없이 반일로 일관된 예봉이기도 했다. 핍박과 강압을 외면한채 강경한 논조를 굽히지 않는 신보.그 존재는 마침내 통감부의 집요한 탄압의 대상이 되고만다.신보를 무력화 시키려는 일제의 탄압은 외교경로를 통한 배설의 추방공작으로부터 시작 되었다.배설에 대한 추방공작은 이미 1905년 9월에 제기 되었으나 통감부가 본국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하기는 이듬해 7월부터이다.이에따라 일제는 본국외무성을 통해 동경주재 영국대사에게 배설을 추방하거나 신보를 폐간토록 요구하고 나섰다. 일제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영국측은 1904년에 제정된 「청국및 한국에 대한 추밀원령」을 적용키로 했다.그러나 배설을 제재하기에는 그 근거가 미약했다.그래서 제5조를 개정하여 1907년 2월1일 이를 공포하기에 이른다.개정된 내용의 골자는 『영국국민과 본령시행구역내에 있는 영국과 친선국의 소요 혹은 그 국민과의 사이,그리고 청국정부와 그 국민 또는 한국정부와 그 국민 사이에 불화를 도발하려하는 사항은 본조에 규정하는 선동적인 사항으로 간주한다』는 것이었다. 배설과 신보를 제재하려는 일제의 책동에 영국이 동조한 것이다.그러나 배설은 일제의 억압에 결코 굴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일제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그의 선언은 신보의 한글판 7월17일자 1면 머리에 『일본이 황제를 퇴위시키고 황제를 일본으로 건너가 사죄케 하려한다』는 폭로기사로 반영됐다. 이어서 이튿날짜 신보는 논설을 통해 『일본이 한국의 황실을 강핍하고 대신을 종으로 부리며 백성을 짐승으로 여기는 행동이 극도에 달했다』고 통렬히 비난하고 나섰다.날이 갈수록 강도 높은 논조로 맞서는 신보의 자세에 통감부는 급기야 1907년 10월 서울주제 영국총영사 헨리 코번에게 배설의 처벌을 요구하는 소장을 제출,외교적 탄압을 본격화 한다. 배설은 10월14일 서울주재 영국총영사관에 설치된 영사 재판정에 출두하지 않을 수 없었다.재판이 열린 다음날 코번은 배설의 유죄판결을 선고했다.신보의 논설이 추밀원령 제83조 공안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항에 해당된다 하여 6개월간의 근신에 처한 것이다. 배설에 대한 일제의 책동은 이같은 결과를 가져왔으나 사태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특히 배설의 근신기간이 만료된 직후부터 신보는 더욱 강경한 논조로 돌아섰다.민족주의운동을 탄압했던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를 이등박문에 비유한 「백매특날이 불족이압 일이태리」며 「정부당국자의 기량」등의 글로 일제를 규탄하고 통감부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 대한제국의 내각을 신랄히 비판했다. 이렇게 되자 통감부는 또 다른 탄압의 칼을 빼어들었다.1908년 4월29일 이완용내각으로 하여금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한국에서 발행되는 외국인의 신문까지도 발매·반포금지 또는 압수할수 있도록 한것이다.광무신문지법이라고도 불리는 신문지법(1907년 7월제정)은 신문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벌칙이 골자로서 민족지를 탄압하는데 적용된 악법이라 할수 있다.법이 처음 제정 공포된 때에는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발행하는 신문과 해외에서 교포들이 발행하는신문에 대한 규제조항이 없어 이를 새롭게 보완한 것이다. 신문지법을 이처럼 개정토록 한데에는 신보탄압이 근본목적이었으나 반일논조의 해외교포신문들이 국내에 유입되는것을 막자는 계략도 포함됐다. ○이완용내각 통박 통감부는 신문지법이 개정된 직후 곧바로 행동을 개시,신보를 압수하기 시작했다.5월1일자 논설 「불필랑경」을 비롯,5월13일자「한국내의 일본」,5월16일자「학계의화」가 통감부 기휘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신보는 잇따라 압수됐다.당시 일제가 집계한 신보압수건수를 보면 1908년 한해동안만도 국한문판 8회,국문판 7회에 이른다.일제는 이같은 신문압수방법외 신보의 구독을 방해하는 행적적 탄압도 병행했다. 뿐만 아니라 통감부 기관지 서울프레스를 동원하여 신보의 기사와 논설을 비난하는등 다각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그러나 신보의 논조는 좀체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일제는 배설에 대해 어욱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 위해 치밀한 사전공작을 벌였다.그리고 영국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외교공세를 펴기 시작했다.이른바 양동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영국은 마침내 배설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을 해결키로 하고 배설을 재판에 회부한다는데 동의했다.이렇게 해서 배설의 2차재판은 1908년6월15일부터 3일동안 서울의 영국총영사관에서 열리게 됐다.재판을 진행하기위해 상해고등법원의 판사 본과 검사 윌킨슨이 서울에까지 왔다.이는 한·영·일 3국이 관련된 동양역사상 처음 있는 특이한 재판이었다. 이 재판에서 판사는 배설에게 3주일간의 금고형과 6개월간의 근신을 언도했다.유죄판결을 받은 배설은 잠시 한국을 떠나 상해에서 복역하게 됐다. 그러나 배설이 신보를 떠나 옥고를 치르고 있는 동안에도 이 신문의 항일논조는 변함없이 이어졌다.양기탁을 비롯한 민족언론 투사들이 본래부터 신보의 제작을 주도해온 때문이었다. 배설의 재판직후 통감부의 신보에 대한 감시와 탄압 또한 집요하게 지속됐다.7월2일자 논설 「확실한 언론」을 치안방해로 규정,이날자 신보를 발매금지 처분하는 한편 또 다른 탄압계획을 실행했다.신보사의 총무 양기탁을 국채보상의연금 횡령혐의로 전격 구속한 것이다. 신보의 제작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던 양기탁을 구속함으로써 신보의 제작에 타격을 가하는 동시에 전국 규모의 민족운동이던 국제보상운동의 중심기관을 와해시키려는 2중효과의 탄압책략이었다.궁국적으로는 신보를 중심으로한 항일민족세력에 대한 탄압이었다.일제의 신보에 대한 탄압은 이 신문이 한일합방 직후 통감부에 매수되기까지 줄곧 이어져 국한문판 24차례,국문판 21차례의 압수와 2차례의 정간처분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있다 항일구국지 대한매일신보는 이처럼 끝없는 수난과 저항으로 점철된 역사를 살았다. 정진석저)
  • 의원 3명 소환/대선법위반 조사

    대통령선거법위반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공안1부는 19일 국민당 변정일대변인·김진영의원과 민자당 김정수의원등 3명을 소환,이들과 관련된 선거법위반 고발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국민당 변의원은 정원식 전 민자당선거대책본부장이 수원의 한 교회에 1억원을 헌금했다고 발언한 혐의로,김의원은 불교신자들에게 정주영후보지지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낸 혐의로 각각 고발됐었다. 민자당 김의원은 지난해 10월 「유흥업중앙회」행사에 참석해 김영삼후보 지지 연설을 한 혐의로 고발됐었다. 한편 검찰은 사전선거운동 혐의를 고발된 민자당의 남재희 전 의원(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과 심완구 전 의원을 20일 상오와 하오에 각각 소환,조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 의원 4명 소환조사/대선법위반혐의,정원식씨도

    대통령선거법위반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공안1부는 18일 정원식 전민자당선거대책본부장(현대통령직인수위위원장)을 소환,정위원장이 관련돼 있는 선거법위반 등 5건의 사건에 대해 피고발인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또 이날 민자당 서석재·서청원의원과 민주당 한광옥사무처장,강수림의원 등 현역의원 4명도 함께 불러 지난 14대 대통령선거와 관련,고발인 및 피고발인 조사를 벌였다. 정위원장은 민주당 김대중대통령후보를 용공인사인 것처럼 비방한 내용의 홍보유인물 「92한국의 선택」에 인공기를 그려넣어 1천7백만부를 제작한 사건,「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을 친북한 주사파조직으로 시사한 발언,국민당이 선거 막판에 유권자 6백만명에게 5만원씩의 금품을 살포할 계획이라고 한 발언,「03」시계 제작사건,국민당 유갑종서대문갑지구당위원장이 주민들에게 당원증을 2천원씩 주고 배포했다는 발언 등 5건의 고발사건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또 민자당 서석재의원은 불교신문에 김영삼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의 글을 실어 배포하고 「전국 유흥업중앙회」모임에서 김영삼후보지지 발언을 한 혐의로,서청원의원은 지역구 주민에게 중앙당의 동의없이 당원증을 만들어 배포한 혐의 등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민주당 한의원과 강의원은 「민주자유청년봉사단」전원이 불법선거운동혐의로 고발된 것과 관련,『이는 허위사실을 근거로 문서를 변조한 것으로 무고죄를 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민자당에 의해 고발됐었다.
  • 서석재의원 오늘 소환/검찰

    서울지검 공안1부(임휘윤부장)는 17일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고발된 서석재의원(민자당)을 오는 18일 검찰에 출두하도록 통보했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대통령선거법 위반혐의로 피소된 민주당 한광옥·장석화·강수림의원이 18일 상오 자진출두할 경우 이들에 대해 피고소인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 정보산업 육성(신한국 원년:13)

    ◎컴퓨터단말기 98년엔 전가구 보급/2천억 조성… SW 등 관련산업 지원/난시청 완전해소·종합통신망 구축 범용컴퓨터 보급대수 한국 1만대,일본 39만대,미국 1백61만대. 인구 1백만명당 범용컴퓨터 보급률이 일본의 12분의1,미국의 80분의1에 불과할 정도로 낙후되어 있다. 정보통신산업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우리의 정보화산업은 이제 겨우 싹을 틔웠을 뿐이다. 김영삼차기대통령은 이같이 취약한 정보산업을 효율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보산업육성특별법」을 제정,정보화사회를 촉진하기로 약속했다. 새정부는 이를 위해 오는 95년까지 2천억원 규모의 「정보산업육성기금」을 설치해 첨단정보기술개발을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소프트웨어등 정보처리관련 산업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김차기대통령은 이와관련,의욕에 찬 젊은이들에게 소프트웨어 전문교육을 실시,「정보산업사회의 총아」로 만들어 한국을 세계적 소프트웨어 공급기지로 부상시킬 것을 구상하고 있다. 새정부는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각 도마다 「소프트웨어 특별직업훈련소」를 설치해 시스템분석가·프로그래머 등을 대규모로 양성하는 방법과 군복무기간동안 군의 교육훈련기관에서 소프트웨어교육을 실시,소정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김차기대통령은 또 날로 중요성을 더해가는 정보산업관련 행정조직의 정비·강화책으로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정보산업에 관한 종합적인 정책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 정부안에 「정보산업 발전기획단」을 운영하고 정보산업담당 대통령특별보좌관제를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이와함께 무역정보화·유통정보화 등 산업활동의 정보화를 촉진하기 위한 금융세제 지원을 강화하고 정보통신요금의 감면과 할인 등 요금체계도 개편키로 했다. 새정부는 정보통신시설을 대폭 확장·보급하고 이를 고도화시킨다는 전략을 이미 갖춰 놓고 있다. 우선 종합정보통신망(ISDN)을 구축하고 종합유선방송망(CATV)를 확장하며 통신망의 지능화 및 시외·국제전화시설의 디지털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95년에는 통신방송위성인 무궁화호를발사,난시청지역을 완전히 해소하고 96년까지 1천2백88억원을 투입,연차적으로 30만대의 교육용컴퓨터를 초·중·고등학교에 보급할 방침이다. 또 97년까지 전국 군지역에 무료컴퓨터교육을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농수산물 직거래시스템 등 농어촌정보화사업을 확대해 지방의 정보화를 확산키로 했다. 이와함께 98년까지 1천만대의 컴퓨터단말기를 보급,1가구1단말기시대를 실현해 가정의 정보를 촉진할 계획이다. 정보통신관련 전문가들은 『정보통신은 통신과 컴퓨터·소프트웨어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고부가가치산업이므로 특히 부존자원이 부족하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보통신산업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김차기대통령의 이같은 야심찬 계획에 동의하고 있다. 김차기대통령은 「정보산업 인력 1백만명 양성」을 공약했다. 정보산업사회에서 새로이 요구되는 인력은 정보산업 인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무력전쟁이 고조되던 시기에 1백만대군의 필요성이 거론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은정보산업인력 1백만명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정부는 이를 위해 기존대학의 정보산업관련학과증원및 대학원신설을 적극 지원하고 중·고교및 대학에서 정보통신교육을 확대하는등 정보통신인력을 대폭 양성키로 했다. 또 사내대학원의 설립등 정보통신산업체의 교육기능강화를 유도하고 공공교육 전문기관이 기존 정보통신인력을 전문화 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며 해외의 고급인력도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기술개발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새로운 정보의 확보와 기술정보유통서비스체계의 구축이다. 특히 중소기업이 혼자 힘으로 새로운 정보를 제때 확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새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위해 「종합과학기술정보센터」를 신설,전국적인 망을 조직해서 모든 중소기업에 컴퓨터단말기를 연결해 준다는 계획이다. 새정부는 이밖에도 행정·금융·교육연구·국방·공안 등 5대국가기간전산망사업을 완성해 행정종합시스템을 구축하고 은행의 대고객전산망을 완료하며 교육과 연구전산망체제를 갖춘다는 방침이다.
  • 정주영대표 「비자금」 신문/“조성지시 안해… 주식판돈으로 알았다”

    ◎증권세주장 등 일부혐의 시인/어제 검찰출두… 12시간 조사받아 국민당 정주영대표의 대통령선거법 위반및 현대중공업 비자금조성 지시여부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은 15일 정대표가 재소환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이날 상오 갑자기 자진출두해옴에 따라 고소·고발 내용및 비자금조성 개입여부를 집중조사했다.검찰은 정대표를 조사 12시간10분만인 이날 하오10시40분쯤 돌려보냈다. 검찰은 이날 정대표에 대한 소환조사가 끝남에 따라 관련혐의에 대한 정리가 끝나는대로 다음 주초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정대표에 대한 혐의가 분명하나 현대그룹 총수로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고 야당대표인데다 고령인 점을 고려,불구속 기소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정대표의 선거관련 고소·고발사건을 담당한 공안1부 김수민검사는 ▲한국은행 3천억원 발권발언 ▲김영삼 당시 민자당후보 측근 2명의 밀입북 주장 ▲서울경찰청 간부와 민주산악회 관계자의 대책회의 ▲공산당 결성 합법화등의 발언에 대한 사실확인과 발언의도 등을 추궁했다. 또 현대중공업비자금 유출사건을 맡은 특수1부 김종인검사는 정대표가 수배중인 이병규특보(40)를 통해 비자금의 조성을 지시했는지 여부를 신문했다. 정대표는 검찰조사에서 한국은행 3천억원 발행발언과 관련해 『선거기간중 시간이 없어 제보를 미처 확인하지 못해 저지른 실수』라며 발언한 사실은 시인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정대표가 서울경찰청대책회의건과 김영삼후보 측근의 밀입북 주장은 『당차원에서 발언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정대표는 또 공산당합법화 가능 발언에 대해 『나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그같은 발언은 의도가 와전된 것』이라고 말했으며 현대계열사 사장단회의에서의 지원요청 혐의도 부인했다. 그는 이어 『현대중공업의 비자금은 보유주식을 팔아달라는 내 부탁에 따라 현대관계자들로부터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당시 바쁜 유세일정으로 정확한 출처를 확인할 겨를이 없었고 구체적인 사항은 이특보가 알고 있을 것』이라며 비자금조성지시 사실을부인했다. 검찰은 그러나 현대중공업비자금 유출사건 및 2∼3건의 대통령선거법위반사건에 대해서는 정대표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는 판단아래 곧 정대표를 불구속기소,사건을 매듭지을 방침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대표가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지만 지금까지 관련자들의 조사를 통해 정대표의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 및 자료 등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정대표의 사법처리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정대표는 이에앞서 이날 상오9시50분쯤 박철언최고위원을 통해 전화로 서울지검 안강민 1차장에게 출두의사를 알려온 뒤 상오10시25분쯤 서초동 서울지검청사에 도착,9층 공안1부 김수민검사실로 직행했다. 정대표는 출두시 기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다친 이마의 경미한 상처를 치료한 뒤 상오11시쯤부터 조사를 받았다. 정대표의 출두에 대해 함께 온 국민당 변정일대변인은 『14일 이정우 법무장관 면담시 국가기관에 대한 권위를 존중해달라는 요청과 차기 미국 클린턴대통령 취임식 참석 일정을 맞추기 위해 출두하게 됐다』고 밝혔다. ◎출국금지해제 요청서/정 대표,검찰에 제출 한편 정대표는 이날 하오 당관계자를 통해 출국 금지해제요청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 미리 준비한듯 검사 질문에 즉시 답변/정주영대표 검찰조사 이모저모

    ◎정 대표 취재카메라에 받혀 이마 상처/예상밖 장시간신문에 당직자들 초조/검찰서 나와 병원치료후 자정쯤 귀가 국민당 정주영대표가 재소환 예정 소환일을 하루 앞당겨 검찰에 자진출두한 15일 담당검사들이 정대표를 상대로 하오10시40분까지 조사하는 동안 청사주변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함께 나온 국민당소속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예상보다 조사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앞서 정대표는 이날 상오 10시쯤 최고위원·당직자 연석회의를 끝내고 막바로 검찰로 출발,상오10시24분쯤 성둘4초7782호 검은색 쏘나타승용차편으로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에 도착. ○…정대표는 곧바로 904호로 올라가려 했으나 도착직후부터 취재·카메라기자들의 질문과 플래시세례를 받자 몹시 당황하는 모습. 정대표는 이 과정에서 현관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이마를 부딪쳐 이마가 2∼3㎝가량 찢어지면서 피가 흐르자 『이게 뭐야…. 피까지…』라며 역정을 냈으며 비서진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상처부위를 감싼채 난감해했다. ○…서울지검은 이날 상오9시20분쯤 국민당 정대표의 자진출두소식이 전해지자 당초 검찰이 예상한 날짜가 빗나간 탓인지 몹시 허둥대는 모습. 검찰관계자는 정대표에게 「16일 상오 검찰에 출두토록」 2차 소환장을 발부한지 하룻만인 이날 상오 10시쯤 『정대표가 오는 살오중 자진출두한다』는 소식을 기자들로부터 전해듣고는 『정대표가 특유의 허허실실 전법을 쓴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지난 89년1월 일해재단사건과 이후 검찰에 두번째 나온 정대표는 12시간여에 걸친 조사를 마치고 이날 하오 10시40분쯤 12층 특수1부 김종인검사방을 나와 현관로비에서 잠시 사진기자들의 촬영에 응한 뒤 곧바로 서울잠실의 아산재단 서울중앙병원으로 직행. 정대표는 하오11시쯤 병원에 도착해 간단한 물리치료와 병원측이 마련한 저녁식사를 마친뒤 하오11시40분쯤 청운동자택으로 갔다. 정대표는 상오에 다친 상처를 1회용반창고로 댄채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으나 조사를 끝냈다는 홀가분한 표정이 역력했으며 간혹 웃음을 띠는 여유를 보이기도. 정대표는 식사를 마친뒤 밤 11시37분 병원을 떠나 청운동 자택으로 갔다. ○…정대표가 상오에 출두과정에서 벌어진 취재진들과의 몸싸움과정에서 상처가 나 항의를 받은 검찰은 정대표가 나오기전 현관에 붉은색 노끈으로 임시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직원을 배치하는등 비난의 빌미를 없애려는 모습. 정대표가 나가기 1시간30분전인 하오9시쯤에 담당 특수1부 이종찬부장검사는 직접 기자실로 내려와 대기중인 사진기자들에게 『취재중 질서유지를 부탁한다』며 당부하기도. ○…하오10시45분쯤 정대표가 출발한 뒤 변정일대변인은 검찰의 수사내용과 정대표의 답변요지를 설명,검찰정보와의 차이를 없애려고 애쓰기도. 변대변인은 비자금 국민당유입문제에 초점을 맞춰 『검찰이 최수일현대중공업사장의 진술을 토대로,모두 6백64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그중 5백5억원이 국민당에 유입됐는데 그 돈의 출처와 금액에 대해 주로 물었다』면서 『정대표는 이 질문에 대해 『내 주식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라고 이병규특보에 지시한 적은 있으나 그 돈이선박판매대금이었다면 그것은 최사장이 과잉충성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언. ○…검찰은 정대표가 이날 혐의사실을 대부분 부인하자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다소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 표정.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대표가 주식매각대금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선거기간중이던 당시 현대계열사의 주식을 살 사람이 어디 있었겠느냐』며 『정대표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것』이라고 반박. ○…정대표를 상대로 조사가 진행된 검찰청사 9층과 12층 검사실 주변을 오가며 촉각을 곤두세운 국민당의원들은 기자들에게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는가 하면 정대표의 검찰진술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곁들여 일일이 설명하는등 분주한 모습. ○…대통령선거법위반 혐의로 정대표를 조사한 서울지검 공안1부 김수민검사는 정중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정대표에게 「대표」또는 「회장님」등의 호칭을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는 후문. ○…공안1부 임휘윤부장검사는 보도진이 정대표의 조사태도에 대해서 묻자 『공안부에서 조사를 끝낸 뒤 다시 특수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정대표가 수사관계자들에게 친절하게 조사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더라』고 전언,조사 분위기가 비교적 좋았음을 암시. ○…정대표는 김수민검사실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특유의 언변으로 검찰측 신문에 응했다고 검찰관계자가 귀띔. 이 관계자는 『정대표가 검사의 묻는 말에 평소답게 시원시원한 어조로 숨김없이 답변을 했다』면서 『미심쩍은 부분을 검사가 추궁할 때는 다소 막힐 때도 있었지만 미리 대답을 준비해온 듯 대체로 신문이 빨리 진행됐다』고 부연. ○…공안1부 김수민검사실에서 대통령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은 정대표는 이날 하오5시5분쯤 현대중공업비자금 유출사건에 관해 조사를 받기 위해 귀빈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청사 12층 1210호 서울지검 특수1부 김종인검사실로 이동. 이와관련 검찰 관계자는 『정대표가 김수민검사실에서 받은 조사는 하오4시30분쯤 사실상 끝났으나 정대표가 진술서에 서명하는 작업이 30여분 이상이나 걸리는바람에 하오5시가 넘어서야 12층으로 이동하게 됐다』고 전언. ○…변정일대변인은 이날 밤늦게 국민당사에 들러 『검찰의 조사를 받고나니 속이 시원하다는 것이 모두의 느낌』이라며 『2차소환은 없다고 검찰측으로부터 확약받았다』고 오랜만에 환한 웃음. 변대변인은 또 『내일(16일)정대표의 미국행에 지장은 없을 것』이라며 출국예정에 변함없음을 강조한뒤 『아마 정대표가 내일 당에 출근,부재중 당무를 총괄할 사람을 지정할 것』이라며 정대표의 정치의욕이 여전함을 시사.
  • 황병태 전 의원 혐의 부인/검찰 소환조사/“선심관광” 조순환의원도

    대통령선거법위반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는 14일 민자당 황병태전의원과 국민당 서울시지부장 조순환의원을 소환,피고발인 조사를 벌였다. 황전의원은 조사에서 『지난해 10월 유흥업중앙회가 주관한 연수교육에 참석,강연한 사실은 있다』면서 『그러나 특정후보를 지지한 것이 아니고 「깨끗하고 결단력있는 지도자를 뽑자」고 말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또 조의원은 『서산·울산 등지에 대한 당원연수는 선심관광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황 전의원은 연수회에서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후보를 지지발언한 혐의로,조의원은 서산·울산 등지로 유권자를 동원,선심관광시켜준 혐의로 각각 대선기간동안에 검찰에 고발됐었다.
  • 이호정의원 소환 조사

    【수원=김병철기자】 수원지검 공안부는 13일 지난해 대통령선거때 당원단합대회를 개최한 뒤 참석자들에게 시계를 나눠주는등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입건된 국민당 경기도지부장 이호정의원(수원 장안구)을 소환,철야조사를 벌였다. 이의원은 이날 하오 지난해 10월 서산 현대농장에서 당원단합대회를 하면서 당원들에게 시계 7천8백여개를 나눠줬다는 혐의사실을 대체로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의원은 그러나 시계 배포가 자신의 지시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고 도지부 차원에서 구상된 계획을 단순히 보고받은데 그쳤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 정 대표 21일전 구인­사법처리 될듯/검찰 수사방향과 전망

    ◎비자금조성­현대지원지시 등 증거 충분/고령­야당대표 등 고려 불구속기소 예상 국민당 정주영대표에 대한 사법처리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검찰은 대선기간중 「한국은행 3천억원 신권발행」주장등과 관련,선거법위반등 혐의로 고소·고발된 정대표에게 14일 출두하라는 정식 소환장을 보냈다. 이에대해 국민당측은 즉각 대책회의를 열고 『이는 법집행의 형평성을 상실한 야당 탄압이며 궁극적으로 국민당을 말살시키기 위한 정치적 음모』라는 정치적 공세와 함께 소환에 응하지 않을 뜻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상태다. 검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대표가 소환에 불응할 경우 2∼3차례 소환을 촉구한 뒤 끝내 응하지 않을 경우 오는 21일전에 정대표에 대한 강제구인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더욱이 검찰은 정대표가 13일 하오 김해공항을 통해 출국하려다 출국금지조치에 묶여 실패하자 구인시기를 앞당길 것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이 정대표에 대한 수사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1차적인 배경은 정대표가 각종 선거법위반혐의로 피소된만큼 피고소·고발인 조사가 불가피하다는데 있다. 정대표의 수사 초점이 대선기간중에 돌출식으로 나타났던 무책임한 폭로성 발언보다는 현대중공업 비자금조성및 국민당유출사건개입에 있는 만큼 이에대한 충분한 증거확보를 근거로 철저한 사법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어떤 식으로든 정대표의 사법처리는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수사관계자들의 흘리는 말속에도 이같은 검찰내부의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 현대중공업 비자금조성사건의 경우 어떠한 정치적 타협도 있을 수 없다는 김영삼차기대통령의 단호한 입장도 검찰의 운신폭을 자유롭게 해 주는 동인이 되고 있다. 정대표가 검찰에 출두할 경우 조사를 받아야 될 사안은 「현중비자금조성사건」과 「한국은행 3천억원 신권발행」등 고소·고발 4건을 포함한 모두 6건. 형식적으로 정대표를 소환하는 주체는 선거법위반을 조사할 공안1부이지만 수사의 핵심은 역시 국민당자금지원을 위한 현중비자금조성이라 할 수 있다. 구속된 이 회사 최수일사장등이 비자금의 국민당유출부분은 시인하면서도 정대표의 관여사실은 부인하고 있지만 현대와 정대표와의 특수관계를 감안하면 정대표의 개입은 기정사실인 것으로 검찰은 받아들이고 있다. 또 선거법위반과 관련,「3천억발권 주장」과 「김영삼후보측근의 밀입북설」등 고소·고발사건은 가벌성의 논란이 없지않지만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현대그룹사장단회의에서 자신의 지지를 호소한 행위는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있다. 검찰은 그동안 사건 관련자들의 조사를 통해 정대표의 혐의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어 정대표의 사법처리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정대표의 사법처리가 불가피하지만 고령의 야당대표이자 그동안 경제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을 감안,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대표가 소환불응의 뜻을 밝혔지만 이같은 검찰측 입장을 비춰볼때 정대표에 대한 강제구인및 사법처리는 결국 시간문제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 현중 최수일사장 수감/검찰,장병수전무도

    ◎어제 출두… 비자금조성 추궁/이현태 전 기획실장도 소환/과장2명 오늘 환문… 수사팀 확대/민자 최형우의원·이원종부대변인도 조사 현대중공업의 비자금 유출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1부(이종찬부장검사)는 12일 수배된 이 회사 최수일사장(56),장병수전무(52)이상령재정부장(40)등 3명이 이날 자진출두함에 따라 이들을 상대로 비자금조성경위와 사용처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들 가운데 구속영장이 미리 발부됐던 최사장과 장전무에 대해 이날 하오6시쯤 구속을 집행,서울구치소에 수감했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비자금조성과 비자금의 국민당유출과정에 국민당 정주영대표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했으며 이를 토대로 오는 14일 정대표가 출두하면 정대표를 상대로 비자금조성 개입여부를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이와관련,장전무가 작성한 비자금지출메모지에 정대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명예회장」앞으로 1백억원이 지출된 사실을 중시,장전무를 상대로 누구의 지시에 따라 이 돈을 지출했으며 실제 돈이 건네졌는지 여부등을 추궁했다. 검찰은 또 이 사건으로 수배된 임양희재정부출납과장과 문종박재정부외화금융과장등 2명이 13일안으로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옴에따라 특수 2·3부검사들도 투입,수사팀을 확대키로 했다. 검찰은 『일반적인 회사의 비자금조성과 달리 정대표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5백65억원에 달하는 회사돈을 빼돌린 행위는 비난받아야 하는 만큼 정대표의 관련혐의가 드러나면 사법처리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이날 현대 그룹 이현태전종합기획실장을 소환,정대표의 현대중공업주식매각대금 사용처와 비자금조성에 현대그룹도 관련돼 있는지등을 조사했다. 검찰은 『어충조현대그룹기조실장등을 조사한 결과 정대표의 주식매각대금은 모두 가지급금등으로 지출돼 정대표의 주장대로 국민당정치자금으로 쓰이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한편 대통령선거법위반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공안1부는 이날 민주산악회 회원을 상대로 연수교육을 하면서 김영삼후보를 선전하는 홍보물을 배포하고 신입회원들에게 손목시계와 T셔츠를 제공한 혐의로 지난 대선기간중 고발된 민자당 최형우의원(민주산악회장)이 이날 하오 검찰에 출두해옴에 따라 최의원을 상대로 선거법위반(기부행위·사전선거운동)여부를 조사했다. 검찰은 또 선거기간중 국민당이 유권자 6백명에게 5만원씩을 살포했다는발언을 해 고발당한 민자당 이원종 부대변인이 소환예정일인 13일보다 하루빠른 이날 하오 출두해와 이부대변인을 상대로 벌언경위등을 조사했다.
  • 간첩단사건 첫 사형구형/심금섭피고/태국내 북 공작거점과 연락 맡아

    ◎서울지검,“체제수호 차원서 격리 마땅” 서울지검 공안1부 김영한검사는 11일 김락중간첩단 사건과 관련,간첩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심금섭피고인(63·청해실업대표)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김락중간첩단및 「남한조선노동당사건」과 관련된 피고인에게 사형이 구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논고문을 통해 『피고인은 북한의 대남적화노선에 따라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연락망을 갖춘 김락중에게 포섭돼 간첩과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공작금과 공작 장비를 남파간첩들을 통해 전달받는등 국가존립을 위태롭게 했다』면서 『남북화해무드를 틈탄 북한의 대남혼란획책에 영합,국가질서를 문란케한 피고인을 체제수호차원에서 영원히 이땅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피고인은 91년 4월전 민중당 공동대표 김락중(57·구속중)에게 포섭돼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미화 50만달러와 무전기·권총을 전달받고 태국내 북한 공작거점과의 연락,북한 공작원들의 국내활동안내등 업무를 담당해온 혐의로 지난해 9월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구속기소됐었다.
  • 유흥수의원 출두/검찰,대선법위반여부 조사

    대통령선거법위반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공안1부는 11일 대선기간 유세도중 농가빚 탕감의 비현실성을 지적해 후보자비방혐의로 민주당에 의해 고발된 민자당 유흥수의원이 소환예정일을 앞당겨 이날 출두함에따라 유의원을 상대로 발언취지와 경위등을 조사한뒤 귀가시켰다. ○오늘 최형우의원 소환 유의원은 검찰에서 『실현가능성이 적은 민주당측의 농촌공약에 대한 정책을 비판한 것이지 특정 후보 개인을 비방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검찰은 이날 유의원을 조사한데이어 12일 민자당 최형우의원을,13일 민자당 이원종부대변인,14일 국민당 조순환의원과 민자당 황병태전의원등 선거법위반혐의등으로 고소·고발된 전현직 의원등을 차례로 불러 조사한 뒤 이달안으로 사법처리를 매듭지을 방침이다. 한편 검찰은 국민당 정주영대표의 「한국은행 3천억원 발권」주장과 관련,『한국은행측이 고소를 취하했지만 정대표를 함께 고소한 민자당에서 소취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달안으로 정대표를 소환,발언경위등에 대한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 주민사상동향 “3중감시”

    ◎「신소제도」·「통보지도원」운영,「3호실」선 성분 관리/체제불평등 수집… 당·정간부 언동 김정일에 보고 북한은 주민들의 사상동향 감시를 위해 최근 「신소제도」라는 감시조직을 신설,운영해 오고 있다. 이 「신소제도」는 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불평·불만뿐아니라 당·정간부들의 언동과 동향등도 수집하는 기구로서 모든 자료는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주민들의 억울한 피해사례를 접수,해결한다는 명목아래 만들어진 이 제도는 요즘들어 본래의 취지에서 일탈,김일성부자의 교시나 지시내용 위반여부및 위반자 색출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소제도」와 함께 북한은 최근 또다른 감시조직으로 「통보지도원」을 신설·운영하고 있다. 「통보지도원」은 김정일이 공안요원들의 보고를 믿지 못하겠다고 지적함에 따라 조직된 것으로 각 군의 3대혁명소조원 출신가운데서 선발된 열성분자들이 담당지역 주민들과 당간부들의 언동을 수집,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고 있으며 김정일은 이 자료를 당간부들의 출당및 숙청 대상자선정기준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사회안전부 산하에 조직된 「3호실」 역시 일반 주민및 당간부들의 사상감시를 위한 기구로 이용되고 있다.「3호실」은 각 도·시·군구역까지 설치되어 주민들의 인적사항과 친·인척사항을 상세히 기록한 「주민성분카드」를 관리·보관하고 있으며 카드에 기록된 내용들은 주민들의 입당이나 사무원 채용시,당·정관리들의 해외근무 파견및 파견자 선정시 평가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주민들의 생활을 보다 강력히 통제하기 위해 최근 잇달아 「사회안전부 포고령」을 발표하고 있다.최근 김정일의 지시로 발표된 「포고령」은 ▲3명이상 모여 술을 마시지 말것 ▲조직생활 이외에는 3명이상 몰려다니지 말것 등이다.이중 라디오와 관련한 포고령은 라디오를 개조,남한방송을 청취하거나 녹화·녹음 테이프를 무단반입해 보고 듣을 경우 「최고 사형까지 처한다」고 경고하고 있다.【내외】
  • 서청원의원 출두안해/최형우,유흥수의원은 12일 소환

    서울지검공안1부는 9일 대통령선거법위반 혐의로 고발된 민자당 최형우의원을 12일 하오 소환 조사키로 했다. 민주산악회회장인 최의원은 민주산악회등반대회에서 참가자들에게 기념품을 나눠주고 당시 민자당 김영삼후보의 지지를 호소,사전선거운동혐의로 고발당해 그동안 2차례 검찰의 출두요청을 받았으나 모두 불응했었다. 검찰은 이와함께 민주당의 농가부채탕감공약을 비난한 혐의로 고발된 민자당 유흥수의원은 12일,전국유흥업중앙회행사에 참석,김영삼후보지지발언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민자당 황병태전의원은 14일로 소환일자를 추가로 확정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소환키로 한 민자당 서청원의원이 외유를 이유로 출두하지 않음에따라 17일이후 다시 불러 조사키로 했다.
  • 대선법위반 의원 10여명/검찰,오늘부터 환문

    대통령선거법위반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는 8일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고소·고발된 전·현직 국회의원 10여명을 9일부터 소환해 이달말까지 조사를 끝내기로 했다. 검찰이 이날 소환일정을 확정한 사람은 ▲지역구주민들에게 당원증을 우송한혐의로 고발된 민자당 서청원의원(9일 상오10시)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국민당으로부터 고발된 민자당 이원종부대변인(13일 하오2시) ▲선심관광 혐의를받고 있는 국민당 조순환의원(14일 하오2시) ▲정원식전총리 교회헌금기탁 발언으로 고발된 국민당 변정일대변인(19일 상오10시)등 4명이다. 검찰은 이들외에도 선거와 관련해 고소·고발된 민주산악회 최형우의원을 비롯,국민당 정주일의원,민자당 황병태전의원등도 다음주말까지는 조사를 끝낼 방침이다.
  • 「50억 수수설」 내사착수/검찰/“확인땐 사법처리 대상”

    서울지검 공안1부는 7일 국민당 정주영대표가 새한국당 이종찬대표에게 양당통합과 관련,50억원을 건네주었다고 발언한데 대해,이같은 행위가 대통령선거법 제143조 후보매수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내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대표가 정대표로부터 새한국당의 부채변제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나 돈을 받은 것이 확인될 경우 정대표는 선거법상의 후보자매수혐의로,이대표는 이를 승낙한 자로서 각각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고 말하고 『현재 관련사실에 대한 정보수집,법률검토작업등 내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검찰은 『이대표가 명예훼손 등으로 정대표를 고소해올 경우 본격수사에 나설 방침이지만 후보자매수는 선거법에 저촉되는 만큼 고소여부에 상관없이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정대표의 발언이 사실일 경우 88년 강원 동해시 국회의원 재선거 당시 서석재의원(현민자당)의 상대 후보 매수행위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민자 최형우의원/검찰,내주중 소환

    서울지검 공안1부 박만검사는 7일 사전선거운동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산악회 회장 민자당 최형우의원을 다음주중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 두 얼굴의 사회(변화하는 베트남:5)

    ◎“개방” 뒷전엔 통제·감시 여전/「인민오염」 우려 공안통치를 강화/비밀경찰 인구 5.5명당 한명 꼴 75년 공산통일이전 대통령궁으로 쓰였던 호치민시 통일궁 1층 호치민홀에는 『베트남에는 오직 한 사람의 지도자가 있다.이를 누구도 바꾸지 못한다.호치민』이라고 씌어져 있다. 또 하노이 호안킴호수옆 베트남정부 영빈관에서 호치민묘소가 있는 바딘광장으로 가는 길목 전쟁박물관 맞은편에는 출생지 러시아에서조차 철거된 레닌동상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호치민시 르던가 미대사관 앞에는 『여기 미대사관이 있었다.미침략자들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1968년 1월31일 남베트남 인민과 군대가 이 건물을 점령했다.이 승리는 인민의 승리였다.1975년 4월29일 미침략자들은 이 빌딩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떠나갔다.1978년 12월22일』이라고 쓰인 동간판이 정문옆에 서있다. 이처럼 베트남에는 개혁과 개방 물결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혁명의 순수성」,즉 사회주의체제를 지키려는 당국의 의지가 곳곳에 엿보인다. 레닌과 그의 숭배자인 호치민은 여전히 베트남 인민들의 신봉의 대상이며 이제는 오히려 그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만 미국은 아직도 베트남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제국주의 침략자」로 남아 있다. 베트남외무성 한국과 직원 구엔 안지씨는 『미국도 한국도 이제는 친구』라며 『베트남사람들은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다』고 몇번씩 힘주어 말하지만 개방이 몰고온 사회주의 분위기의 위축에 몹시 신경쓰이는 눈치였다. 베트남정부는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인민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대한무역진흥공사 호치민시무역관장 조영복씨가 든 예는 베트남의 공안통치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 한국기업은 혹시 베트남에서의 영업에 도움이 될 까 해서 베트남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청년을 서울에서 데려왔다. 그러나 이 청년은 사장과의 불화로 얼마되지 않아 자취를 감추었다. 사장은 이 청년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헛수고에 그쳐 결국 비밀경찰에게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비밀경찰은 2일만에 이 청년이 언제 어디를 거쳐 어떤 비행기편으로 출국했는지 알아냈다. 베트남의 비밀경찰 숫자는 대략 1백20만명.전체인구가 6천6백만명이므로 인구 5.5명당 한명꼴로 비밀경찰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숫자는 군대병력 1백15만명보다 5만명이나 많은 것이다. 조관장은 『이같은 수치는 하다못해 시클로운전사,나아가 거지들 가운데조차 비밀경찰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철 하노이지사 오대용과장은 『외국인이 쓰는 전화와 팩시밀리는 모두 도청당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베트남정부의 감시체제를 설명한다. 오과장에 따르면 이같은 감시와 통제에 일일이 역정내다 보면 아무 일도 못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며 사는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는 것이다. 또 베트남의 정부기관들은 자신이 캐낸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곧바로 여러기관에 알리기 때문에 그만큼 정보의 효율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베트남 정보기관의 정보수집능력은 어느집에 몇 식구가 살며 그들의 이름과 나이가 몇 살인지 또 그가운데 누가 아편쟁이이고 전과자인지까지 속속들이 파악할만큼 뛰어나다. 특히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한시도 감시의 눈초리를 떼지 않아 호텔에 몇시에 들어와 어디에 갔다가 몇 시에 돌아왔는지까지 호텔에 비치된 장부에 기록한다. 때문에 호치민시처럼 과거에 자본주의를 경험했던 곳을 돌아보면 이곳이 분위기상으로는 서방세계와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베트남에는 소문인지 사실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법에 3인이상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 도이모이 부산물(변화하는 베트남:4)

    ◎밀수·관료부패 2대 사회문제로/연 수입의 50%인 10억불 밀반입/“뇌물 없인 일 안돼” 외국인들 불만 개혁과 개방은 베트남 인민들의 삶에 윤기를 더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갖가지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경제를 망치는 밀수와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바로 그것이다.거기에 자본주의사회의 뒷골목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매춘과 남북지역간의 골깊은 갈등까지 합세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단연 밀수.레 둑 안 대통령과 보 반 키에트 수상이 『앞으로 사형으로 다스리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심각하다. 베트남정부는 지난 1일을 기해 17개 품목에 대한 수입금지조치를 내리는 한편 지난해 12월부터 구정 대목까지를 집중 단속기간으로 정해 치안인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2일 개막된 국회에서 의원들이 단상에 올라 쏟아낸 발언들도 대부분 밀수에 집중됐다. 또 밀수범들에게 중형을 구형하기 위해 형사소송법의 내용을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현재 베트남의 경제사정이 인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어림없는 수준임을 감안할 때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밀수는 단시일내에 근절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해 베트남의 밀수 규모는 무역량 40억달러의 4분의1 수준.수입량의 절반에 이른다. 남서부 캄보디아와의 국경,북부 중국 운남성및 광서주자치구 인접지역,그리고 해안등을 통해 백주에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대부분 관리들과 결탁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물량도 엄청나다.밀수재벌까지 생겨날 정도다.따라서 베트남에서는 일제 세이코시계에서부터 프랑스제 랑콩화장품까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 외국인을 상대로한 호텔은 물론 노점에도 자국산 「333」맥주보다 하이네켄이 더 많다. 또 어디를 가도 내놓는 물은 인니산 미네랄워터인 아쿠아퓨어다. 하노이 남쪽 초 항 자(Clo Hang Da)시장 1층에는 서울 남대문 도깨비시장 같은 밀수품 상점이 1백여개나 들어서 있다. 『외제는 열이면 열 모두 밀수품이라고 보면 틀림없다』는 것이 김호태 주베트남공사의 설명이다. 밀수에 비해 정도는 떨어지지만 관리들의 부정부패도 심각한 수준이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 현지 주재 상사원들의 한결같은 불평이다. 하노이 주재 삼성지사 곽세호과장은 『특히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힌 일에는 돈을 뜯어내기 위해 서류를 까다롭게 요구하는 것이 베트남관리들의 속성』이라면서 『보따리를 싸서 돌아가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라고 푸념이 대단했다. 곽과장에 따르면 『교통경찰관조차 「용돈」을 버는 재미에 외국인이 운전하는 차다 싶으면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않았는데도 불러세우기 일쑤』라는 것. 이처럼 말단 관리들에까지 부패심리가 파급되다보니 모든 계약에는 리베이트식의 과외돈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87년 「도이모이」시행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몸을 파는 여자들도 생겨났다. 하노이에는 마사지라고 쓴 일본어 간판이 간혹 눈에 띈다. 호치민은 이보다 심해 동호이(총궐기라는 뜻)대로 시인민위원회(시청)가 지척에 바라다보이는 팔레스호텔 맨 위층 나이트클럽에는 20여명의 웨이트리스 가운데 영업이 끝난뒤 손님을 따라나서는 여자도 있다. 호텔같은 곳은 공안원들의 감시가 심해 자기집으로 가자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며 하룻밤에 50달러선을 요구한다. 호치민의 몇 대 안되는 택시기사들에게 10달러 정도를 주면 이같은 곳으로 안내해주기도 한다. 택시기사들에 따르면 호치민에는 팔레스호텔외에도 꽃파는 여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5∼6곳 된다는 것이다. 베트남정부는 매춘행위 적발때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매춘을 개방에 따른 부산물로 수수방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베트남정부의 한 관리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우리는 매춘부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보통 1∼2년간의 의식개조기간을 거쳐 사회로 돌려보낸다』고 말해 매춘이 베트남의 주요 사회문제로 부각될 만큼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음을 암시했다. 통일전 각각 다른 체제를 경험했던 데서 비롯된 남북문제는 우리나라의 영·호남 지역갈등을 훨씬 뛰어넘는다. 호치민에서는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이 철모로 사용했던 「푸캇」을 쓰거나 북부사투리를 쓰면 길을 물어도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남북사람들은 북부사람들을 가리켜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하고 북부사람들은 남부사람들을 「도저히 교화할 수 없는 반동들」이라고 비난한다. 이는 「북의 남지배」식 통일이 빚어낸 결과로 통일 이후 모든 요직을 북부사람들이 독점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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