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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군인사에 영향력/중 새 국방에 우영파 거명/홍콩지

    ◎군수뇌부 후속인사 곧 단행 【홍콩 연합】 중국 인민해방군의 새 국방부장에 우영파 총정치부주임(64)이,새 총참모장에 심양군구 사령원(사령관)에서 막 승진한 왕극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64)이,새 총정치부 주임에 현부주임이자 등소평 판공실 주임인 왕서림(66)이 각각 임명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홍콩의 중국어 신문 명보가 29일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는 당중앙군사위 확대개편후 해방군 고위지도부에 다시 후속인사가 조만간 진행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일부 분석가들은 왕서림이 총정치부 주임 대신 국방부장에 임명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한편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91)은 순조로운 권력 이양을 보장하기 위해 인민해방군의 최신 인사이동에 깊이 개입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스탠더드가 이날자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강택민 당총서기와 이붕 총리는 8월 한달간 열린 북대하회의 후 9월 초 등을 예방했으며 등은 주요 결정들과 관련하여 개인적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소식통들은 인용,보도했다.
  • 중 군사위 수뇌부 개편/장만년·지호전 부주석 승인/5중전회 폐막

    ◎왕서림·왕극 중앙군사위원 임명… 진희동 해임 【북경=이석우 특파원】 중국 공산당은 28일 북경시의 경제부정사건에 연루된 진희동 당중앙정치국위원(전 북경시당서기)을 정치국위원및 당중앙위원직에서 해임하고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대표직의 파면을 건의하는 한편 그의 부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계속키로 결정했다. 중국 공산당은 이날 하오 4일간의 14기 당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4기 5중전회)를 마친 뒤 발표한 성명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장만년 인민해방군 총참모장과 지호전 국방부장을 당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승진시키고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부주임겸 등소평 판공실주임인 왕서림과 왕극을 중앙군사위위원에 임명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국 인민해방군의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당중앙군사위 부주석은 유화청,장진부주석과 함께 4명으로 늘어났다. 5중전회는 대대만정책과 관련,「1국가 2제도」의 기존방침을 재확인하면서 조국의 통일대업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5중전회는 또 이번 회의에서 「제9차 국민경제및 사회발전 5개년 계획(1996∼2000년) 9·5계획및 2010년 장기목표 건의」를 채택하고 오는 2000년까지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릴 것을 다짐했다.
  • 「강택민 체제」 대폭 강화/중국 공산당 14기 5중전회 결산

    ◎강,산동방 실세들 포용 군부 장악/경제개혁 지속… 21세기 비전 제시 28일 폐막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14기 5차회의(5중전회)는 강택민체제 다지기와 성장및 효율위주의 경제운영노선등 개혁개방 강화를 천명한 것으로 요약된다. 특히 효율 중시와 성장위주의 경제운영정책을 결정한 것은 개혁을 강조하는 인사들의 목소리가 성장의 역효과를 주장하는 보수파의 견제를 물리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이같은 고속성장의 지속과 개혁강화의 배경에는 등소평의 영향력이 잔존하고 있다. 특히 등소평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돼 가는 권력전환기적인 미묘한 시점에서 이루어진 군부내 실질 핵심기구인 중앙군사위 인사는 강택민의 입지,강화를 위한 핵심조치로 해석된다. 이번 회의이전부터 강택민 주석은 자신의 군부내 기반인 장만년 총참모장,지호전국방부장의 중앙군사위 부주석직 진입을 추진해왔다.이 인사와 함께 왕서림 총정치부 부주임겸 등판공실주임의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직으로 전면등장은 중국인민해방군의 70%가량을 점하고 산동성출신 군사인맥과 강택민등의 상해출신의 기술관료 결합이 더욱 단단해진 것으로 풀이된다.왕서림,지호전,장만년 세사람은 모두 등소평직계인물이자 산동성출신의 군부 실력자들이다.왕서림은 당기율위원회 서기로 군부내 인사처벌권을 가져왔으나 전면에 등장하지는 못했다.이같은 점은 등소평이 사망하더라도 한동안 강택민을 정점으로한 지도부의 안정확보를 점치게 한다. 진희동전 북경시 서기의 정치국원직등 모든 공직의 해임 역시 강의 반대세력에 대한 경고로서 「강체제」강화로 보인다.이같은 인사결정은 당을 위한 세대교체와 부패일소 운동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이같은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또 당과 군의 강측근세력과 세대교체를 위한 후속인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효율제고를 경제운용의 핵심으로 삼아 국민경제를 괘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국유개혁등 현대기업제도를 확립하겠다는 발표는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경제개혁은 가속화시켜 나가겠다는 개혁지향적인 의지로 풀이된다. 「9·5계획에대한 당 중앙의 계획및 2010년까지의 발전계획에 대한 건의」에 대한 통과를 통해 2000년까지 80년 국민총생산량의 4배,2010년까지 2000년의 2배를 목표로 삼은 것에서도 급속한 경제성장이 필요하다는 개혁파의 목소리가 반영돼 있는 이번 회의의 성격을 상징한다.
  • 중,대만 전담기구 확대/이붕·교석 등 고위인사 추가

    ◎홍콩연합보 보도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 중앙은 당내 대만관계 최고위기구인 「중앙대 대만영도소조(조장 강택민)」를 대폭 확대 개편해 날로 복잡해지고있는 대만문제를 전면적으로 처리키로 결정했다고 홍콩 연합보가 25일 북경발로 크게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 이붕총리,전인대(의회)에서 교석상무 위원장(국회의장),인민정치 협상회의에서 이서환 주석,인민해방군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인 유화청·장진 등 모두 5명이 새로 이 소조에 포함됐다. 당중앙의 이같은 결정은 대만문제의 중요성과 긴박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당은 대만문제를 최중대사로 삼기 시작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지금까지 대만영도소조는 강택민 당총서기,전기침 외교부장,왕도함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왕조국 당중앙통일전선공작부장겸 국무원대만사무판공실 주임,고춘왕 국가안전부장,웅광해 해방군 총참모부 부장조리(조이)등 6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거물급들을 대거 포함한 확대개편으로 11명이 된 새 영도소조에서는 해방군 대표가 중앙군사위 주석 강택민까지 합쳐4명으로 가장 많다.
  • 중 군인사·훈련/등이 축소 명령

    【홍콩 연합】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91)은 현재 진행중인 인민해방군 고위장성들의 인사이동과 막 끝난 해방군의 대만부근 제2차 군사훈련을 수정하라는 명령을 최근 하달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이스턴 익스프레스가 25일 보도했다. 중국소식통들은 24일 등소평이 하달한 수정 명령은 아무런 논의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으며 강택민 당총서기가 자신의 권력기반과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계획한 고위장성들의 인사이동과 제2차 군사훈련의 규모를 축소시켰다고 말했다. 이는 등소평이 해방군에 대해 계속적인 영향력을 가지고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시라고 이 신문은 말했다. 강택민은 고위장군들의 인사이동과 관련,지호전 국방부장과 장만년총참모장을 중앙군사위원회로 승진시키려 했으나 등소평의 동의가 없고 등소평 판공실의 거부로 무산됐다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 자금출처 물었더니 “전경환씨 측근”­서씨/4천억설 조사/진술내용

    ◎전직 대통령 지칭한 사실 없다­서/「카지노 돈」 말못해 송씨와 친한 전씨 들먹­김/「국가에 절반 헌납」 제의 말한적 없다­송 전직 대통령의 4천억원대 가차명계좌 보유설의 단초를 제공한 서석재 전총무처장관과 서전장관에게 가차명예금의 실명화를 부탁했던 김일창씨와 송석린씨도 9일 검찰조사를 받음으로써 이 사건 진상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검찰조사 결과 서전장관이 들었다는 4천억원은 「검은 돈」 1천억원이 전달과정에서 3천억원이나 부풀려져 전달되고 서전장관은 이 돈에 대해 미심쩍어 하면서도 청와대 고위층에게 문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의 핵심 「증인」격인 이들 세사람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서장관이 이같은 발언을 하게 된 경위를 살펴본다. ○서석재씨 ▲기자회식 발언경위=지난 1일 하오7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정식집에서 민자당 출입기자 7명과 회식을 했다.순전히 사적인 모임이었다. 이 자리에서 『과거권력의 핵심 실력자가 4천억원의 돈을 가차명 상태로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2천억원을 국가에 헌납하면 자금출처 조사를 받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부탁받았다』는 말을 기자들에게 했다. 그러자 기자들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가운데 누구냐』고 묻길래 권력핵심의 측근이라고만 했다.전직대통령이라고 지칭한 사실은 없다. ▲실명전환을 부탁받은 사실=지난달 초순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김일창씨가 총무처장관실로 찾아와 『과거 정권을 잡았던 사람의 「검은 돈」인데 자금출처조사를 받지 않고 실명전환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또다시 자금의 출처를 물었다.김씨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의 측근이 의사를 전해왔다』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그래서 5공 정권과 관련된 돈일 것이라는 생각을 혼자서 했었다. 김씨는 또 『현재 4천억원이 시중 모은행의 가차명계좌에 예금돼 있다』『실명전환을 하고 자금출처 조사를 받지 않게 해주면 이가운데 2천억원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실제로 예금이 돼 있는지 알아 보지는 않았다. ▲한이헌 경제수석 등에 관련된 부분=이로부터 며칠 뒤 청와대에서 오찬이 있었다.식사를 마치고 서로 헤어지면서 한경제수석에게 『누가 4천억원을 실명화 해야 하는데 그 대가로 2천억원을 내겠다는 의향이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한수석이 『말도 안된다』고 말해 빙긋이 웃고 말았다. 기자들과의 회식에서는 추경석 국세청장에게도 물어 보았다고 했는데 이는 4천억원 가차명계좌의 실명전환 부탁을 받은 사실을 기자들에게 강조하는 의미에서 추국세청장을 거론했었다.실제로 물어본 적은 없었다. ○김일창씨 송석린씨로부터 『빠찡꼬 또는 카지노의 관련자금 1천억원이 비실명화 상태에 있는데 실명화를 할 수 없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서전장관에게 이 돈의 실명화를 부탁할 때는 차마 빠찡꼬·카지노에서 나온 돈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그래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전경환씨의 측근이 부탁한 것』으로 전달했다. 이는 송씨가 회장으로 있는 배드민턴 서울시연합회에 전경환씨가 고문으로 있었고 둘은 일주일에 2∼3번이나 만날정도로 각별히 친한 사이였다는 점에 착상했다. 송씨는 1천억원을 부탁했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내가 듣기로는 분명히 4천억원이라고 들어 서전장관에게 4천억원이라고 말했다. ○송석린씨 올봄 한약건재상을 하는 이우채씨로부터 카지노 업계 또는 슬롯머신 업계의 실력자가 1천억원의 비실명예금을 변칙 전환하는 문제를 타진해 와 이를 김씨에게 전했다.김씨에게 전할 때 1천억원이 모은행에 입금돼 있다는 말을 했지만 4천억원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또 절반을 국가에 헌납하면 자금추적을 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한 바 없다. ◎「경위서 내용」/김씨가 5공실력자 돈 실명전환 타진/“기회오면 문제 짚고 넘어가겠다” 생각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이 지난 8일 검찰에 제출한 「경위서」의 전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8월 1일 하오 7시쯤 인사동의 한정식집에서 민자당 출입기자 7명과 본인 등 9명이 만나 함께 식사했다. 이 자리에서 『나의 소신은 15대 총선에 출마,지역구민들에게 심판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음 화제는 6·27 지자제선거 결과에 대한 얘기로 옮겨졌고 『이번 선거는 과거의 금권 관권 선거에 비한다면 매우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자들이 『그러나 중간평가의 의미도 있는 이번 선거에서 지역감정문제가 그대로 반영됐고 이런 점에서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말해 『솔직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과거정권에 비해 문민정부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정말로 깨끗하고 공정했다』고 문민정부의 도덕성과 공정성을 강조했다.『깨끗한 선거를 치루기 위해 애쓴 문민정부의 참뜻을 이해하기 바란다.과거 정권의 부도덕성과 부정부패에 대한 시중의 루머를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문제의 수천억원대 가차명 계좌설을 얘기하게 됐다. 내가 잘 아는 기업인한테 들은 이야기다.그 사람 역시 자기가 잘 아는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그는 『과거정권의 실력자였던 사람이 수천억원의 가차명 계좌를 갖고 있는데 이의 처리문제로 고심하고 있다.혹시 이 자금중절반을 국가에 헌납하면 자금 출처를 면제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는 해괴한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이말을 하자 기자들이 『그 사람이 누구냐』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중 한사람이 아니냐』고 묻길래 『그것은 나도 모른다.그러나 그 사람의 말대로 과거 정권의 실력자가 아니겠느냐』고 말한 뒤 『이런 얘기 자체가 과거 정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얘기가 오간 뒤 자연스럽게 정치 얘기와 각자의 휴가계획 등으로 옮겨졌고 밤 9시쯤 헤어졌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3일자 시내판에서 「전직 대통령중 한 사람 4천억 비자금」이라는 제목으로 식사모임에서의 발언내용을 보도했다.내 이름을 명시한 기사에서 내가 언급하지 않은 전·노 전대통령의 이름까지 거명,나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판단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할까도 생각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이 신문 보도에 대해 『항간의 소문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파문은 더욱 확산됐고 「4천억원 계좌설」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그대로밝히는 것이 개혁에 도움이 된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했다. 당시 저녁식사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언급한 「잘 아는 기업인」이란 평소 친분이 있던 김일창씨이다. 김씨는 자신도 들은 이야기라면서 『5공의 실력자가 수천억원의 계좌를 갖고 있는데 이를 놓고 고심중이다.이 돈의 절반을 국가에 헌납하면 자금추적을 피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왔다고 나에게 말했다.
  • “천안문 희생자 5백명 넘는다”/전인대 홍콩 대표

    ◎중 발표보다 1백73명 많아 【홍콩 연합】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홍콩대표인 왕민강은 『89년6월4일 천안문사태로 인한 사망자수는 5백명이상이라고 이서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주석이 직접 밝혔다』고 4일 홍콩에서 처음으로 언론계에 공개했다. 이는 중국정부가 지금까지 공식발표한 진압에 나섰던 인민해방군 병사 14명을 포함한 3백27명의 사망자수보다 최소한 1백73명을 능가하는 수치이다. 왕씨는 천안문사태후 자신을 포함,홍콩의 상공업계대표 8명이 89년8월 중국정부의 초청으로 북경을 방문해 이서환 당시 정치국상무위원과 국무원항오판공실 관리를 예방했으며 이서환은 이때 천안문사태 경과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이같은 사망자수를 직접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당시 함께 북경을 갔던 홍콩 상공업계대표들에는 정가순,나강서,왕영상,주안교,왕영창 등이 포함돼 있다고 왕씨는 밝혔다. 친중국계 인사인 왕씨는 이서환이 중국이 사회안정을 위해 진압했다고 정당성을 옹호했으나 중국정부가 과거에 이와 유사한 사건들을 처리한 경험이 없었음도 솔직하게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서환은 중국정부가 진압에 나선 또다른 이유는 중국이 당시 소련과 동구권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목격하고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고 그는 전했다.
  • 중­대만 직항 “올 가을 성사”/대만 경제일보 보도

    【대북 로이터 AFP 연합】 대만과 중국의 선박회사들은 중국당국의 불허로 연기되고 있는 양안간 직접항해를 오는 가을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중국당국에 허가를 요청키로 했다고 대만언론들이 4일 보도했다. 대만의 중국시보는 이날 중국의 대만사무판공실 주임 겸 해협해운교류협회 회장인 맹광거를 비롯한 중국 선박회사대표들이 홍콩에서 대만 대표들과 회담을 갖고 난뒤 중국당국에 직항을 허용토록 촉구키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대만 경제일보는 맹 회장의 말을 인용,오는 가을쯤 양안간 첫번째 직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 강택민,등 판공실 장악/중 최고지도자 관련정보 직접 통제

    【홍콩 연합】 중국의 강택민 당총서기겸 국가주석이 지금까지 감히 손대지 못했던 등소평 판공실을 현재 완전히 장악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중국소식통들을 인용,27일 북경발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최근까지 왕서림 대장(65)이 이 판공실을 관리하며 등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접근과 이 최고지도자에 대한 정보를 통제해 왔으나,지금은 이 판공실로 오가는 모든 연락이 반드시 강택민을 거쳐야만 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소식통들은 강(68)이 등(90)의 건강악화에 따라 왕서림의 영향력이 약화되고,등의 자녀 5명의 영향력을 통제하기 위해 이 판공실을 자신이 직접 장악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 소식통은 강은 친미적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등의 딸 등용 (45)이 사전승인도 없이 미 뉴욕 타임스에 수개월전 등의 건강에 대해 언급한 이후 이 판공실을 장악하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 중,주미대사 소환 검토/미·대만 새달 차관급 경제회의

    ◎대만총통 방미항의 보복/교류취소·미기업 제재 【홍콩 연합】 중국은 미국이 이등휘 대만총통의 입국을 허용키로 함에 따라 전기침 외교부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고 미국에 대한 구체적 보복조치들을 이미 마련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스탠더드가 북경소식통들을 인용,25일 보도했다. 이 보복조치들에는 ▲중·미간 교류계획의 취소 ▲미무역회사들에 대한 제재 ▲미기업들이 참가하는 주요 산업기반시설 프로젝트들에 대한 승인 연기 ▲미국주재 중국대사의 본국소환 등이 포함돼 있다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이같은 조치들은 전외교부장 주재하에 외교부,대외무역경제합작부,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등 모두 12개 정부부서들이 참석한 가운데 22일 북경에서 개최된 대책회의에서 마련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한 중국 외교정책 전문가는 이 조치들이 앞으로 수일간에 걸쳐 중국의 요구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보아가며 선택될 것이라고 말했다. ◎79년 단교이후 처음 【도쿄 연합】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을 둘러싸고 미·중 관계의 악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미국과 대만은 오는 6월하순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차관급 경제협의를 갖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대만당국자의 말을 인용,25일 보도했다. 이번 경제협의는 79년 미·중 국교정상화에 따른 미국과 대만간의 단교 이후 처음으로 양국간에 교섭 파이프가 마련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6월초 이총통의 미국방문과 더불어 대만실무외교의 성과로 기록될 만한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 홍콩 토지임차권/중,“반환후도 보장”/연장계약도 허용

    【홍콩 AFP 연합】 중국 정부는 오는 97년 홍콩 반환 이후에도 홍콩의 토지를 임차한 투자자들의 임차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중국의 한 고위 관리가 18일 밝혔다. 노평 국무원 홍콩 마카오판공실 주임은 이날 홍콩의 한 경제인 세미나에서 오는97년 이후 홍콩의 준헌법으로 기능하는 기본법이 반환 후 50년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 임차에 있어서는 50년간의 시한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주임은 2047년 이후에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연장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토지 임차가 홍콩의 자본주의체제와 자동적으로 연계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 불붙은 국경무역(운남성을 가다:4)

    ◎중·월전쟁터가 무역주어심지 탈바꿈/전체 교역 9억달러… 절반이 국경서/주변국서 중 화폐 통용… 자유왕래도/부쩍 늘어난 「밀업국 베트남 윤락녀」 새 골칫거리로 중국 운남성의 성도 곤명에서 남부 국경도시 하구까지는 지금도 19세기말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건설한 협궤열차가 다닌다. 곤명으로부터 험준한 산과 낭만적인 시골 정취를 가르며 달려온 협궤열차의 종착역 하구는 강을 경계로 베트남의 라오차이시와 마주하고 있는 국경무역의 거점 도시다.하구는 20세기초부터 인도차이나 북부의 교역 중심지였으며 협궤열차는 국경무역의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하구와 베트남의 라오차이시 사이에는 난지흐어라고 불리는 강이 흐르고 있다.그 위에는 폭5m,길이12m의 「화해의 다리」가 놓여 있다.지난 79년 중·월전쟁때 폭격으로 부서진 것을 두나라 관계가 정상화하면서 90년 두나라 정부가 비용을 반반씩 부담해 새로 건설한 것이다. ○각국 상인들로 붐벼 중·월간의 전쟁터였던 이곳은 화해의 바람이 불면서 활기찬 국경무역의 시장터로 바뀌었다.통행증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 자유 왕래가 가능하다.하구와 라오차이시는 베트남·중국 등의 상인들로 붐빈다. 노남시와 하구를 오가며 식료품 중계상을 하는 왕영휘씨(30)는 『매주 토·일요일등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하구와 라오차이시 안팎으로 수백m 이어진 장이 선다』고 말한다.그의 월수입은 5천∼7천위엔.공무원 평균수입의 10여배다.의류,공예품과 군화·군대용 모포등 군용물품,생활용품을 사고 판다.트럭을 몰고 내지에서 오는 도매상 사이의 전자제품,농산물거래도 이루어진다.중국제 트랙터등 농기계류와 전자제품은 베트남과 미얀마상인의 인기품목이다. 국경무역은 하구와 라오차이시만은 아니다.베트남·라오스·미얀마등과 4천60㎞를 맞대고 있는 운남의 국경도시들은 동남아에 몰아닥친 경제개발의 물결속에 부쩍 증가한 인적 교류와 국경무역으로 달아오르고 있다.베트남과 미얀마·라오스북부지역에서는 중국화폐인 런민삐가 통용된다. 지난해 국경무역 총액은 34억위엔(약3천4백억원).농기계류,방직제품,화공상품,식품등이 베트남·미얀마로 나가고 목재,약재,축산품,곡물들이 이들 나라로부터 들어온다.운남성의 유경부성장은 『91년부터 국경무역이 해마다 20%이상씩 늘고 있으며 80년보다 34배(금액기준)가 증가했다』고 말했다.지난해 운남성의 전체무역액이 9억달러 가량.전체무역량의 절반을 동남아와의 국경무역이 차지한 셈이다.자동차,화학공업등 운남성의 주요 육성산업이 동남아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유부성장의 설명에서도 동남아가 중국의 수출시장이 되고 있으며 중국의 영향력 증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통관절차를 밟지않는 밀무역이 공식무역을 압도한다는 것이 이곳의 중론이다.국도를 따라 차를 달리다 보면 흔히 마주치는 일본의 신형 「도요타 크라운」차의 상당수가 월남과 미얀마에서 들어오는 밀수 차다.운남에서 눈에 띄는 수십여대의 에스페로 등 대우차량도 역시 1백80%의 관세를 피해 들어온 「조우쓰」(주사·밀수)라고 성 정부관계자는 귀띔한다. ○해마다 20%씩 증가 국경도시와 곤명을 잇는 국도에선 때때로 같은 종류의 신형 일제차들이 5∼6대씩 줄지어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역시 「조우쓰」다.자동차와 함께 밀무역의 대표적인 품목은 마약과 총기류.중국공안부는 지난 2년동안 압수한 39만여정의 불법무기류 가운데 미얀마와 베트남에서 유입되는 것이 10만정 이상은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불법입국문제도 밀무역과 함께 성정부의 골칫거리다.지난 2년동안 운남성과 인근 광서성에서 베트남으로 송환된 여성만도 2천5백여명.상당수는 윤락행위등을 하다 적발돼 보내졌다는 강보생공안국 부청장의 지적이다.국경지역의 중국인과 동남아인과의 통혼 붐도 교류의 열기를 증명한다. 아열대및 열대지역인 서쌍판납 등 운남 남부와 동남아 북부지역의 호랑이,코끼리,흰눈팔 긴원숭이등 희귀동물의 가죽과 상아,박제등이 국경무역의 품목 중 하나다. 육상교역의 증가와 함께 5천㎞의 강을 가진 운남성 정부와 동남아국가 사이의 물길을 이용한 무역의 교섭도 무르익고 있다.유경부성장은 『성 북부에서 인도차이나반도를 거쳐 남중국해로 뻗어있는 4천1백여㎞의 메콩강의 자유운항및 공동개발을 위해 수송·통신·전력등 6개분야76개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및 6개국 공동조사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자유통항을 위한 협의가 구체화 단계』라고 설명했다.2억2천만명의 운남∼동남아시장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만드는 구상이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차·총기류 밀무역 성 외사판공실 왕택처장은 『동남아와의 경제권형성과 관련,한국기업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지난달 금호그룹의 대리시등에 2백만달러규모의 농장건설 결정을 비롯,현대그룹과의 자동차부품공장 건설,대우그룹과의 곤명등지의 호텔건설 논의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성정부의 장고금처장은 『지난84년 운남성의 상품 유통량 가운데 70%가 반입품이고 30%가 반출품이었으나 10년만에 7대3으로 역전됐다』며 『운남은 동남아를 잇는 중국 서남부 경제의 대외무역창구로서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사태 오보땐 해당언론 제재/당선전부 지시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은 해외언론들이 최근 중국사태를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등소평의 건강상태 및 부패사건과 관련해 보도한 내용이 조사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사안에 따라 ▲해당언론사의 중국사무소허가를 취소하거나 ▲취재를 제한 또는 ▲법적 조치까지 취하도록 지시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스탠더드와 성도일보(성도일보)가 9일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당선전부는 국무원(중앙정부) 신문판공실에 최근 문건을 하달해 불실한 보도와 근거 없는 보도에 대해 그 소스와 배경 및 영향을 조사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고 두 신문은 말했다.
  • 구름층 높아 요드화은 못미쳐/국내 첫 인공강우 실험 실패

    ◎기온도 상승… 빙정핵 형성안돼/자체장비 성공적 테스트에 “만족” 기상청 기상연구소가 3일 상오 소백산맥 이화령 근처에서 시도한 첫 인공강우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기상연구소는 이날 상오 중부지방 일대에 구름이 많이 끼어 흐린 날씨가 될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실험에 들어갔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관계자들은 구름층이 예상보다 높이 떠있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으로 분석했다. 실험은 가스로 태운 요오드화은 연기가 바람을 타고 구름층 안으로 들어가 구름 속의 빙정핵을 물방울로 만들어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이날 이 일대의 구름층은 요오드화은 연기가 닿을 수 없는 중층운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험에 알맞는 구름층은 지상에서 6백m∼1.5㎞ 높이의 하층운이며 2∼4㎞의 중층운은 성공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요오드화은 연기의 일부가 구름 속에 도달했더라도 구름 속의 기온이 높아 빙정핵을 제대로 형성할 수 없었던 것 또한 실패의 요인으로 꼽혔다. 빙정핵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구름 속의 기온이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져야 하는데 계절적으로 다소 늦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기상연구소는 올가을쯤에나 2차 지상실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달말쯤 항공실험을 시도하기로 했다.항공실험은 항공기를 이용해 구름위에서 요오드화은을 뿌릴 수 있고 강우목표지점도 정확히 잴 수 있어 실패확률이 적지만 지상실험에 비해 비용이 곱절 이상 더 든다.
  • 중,대만에 휴전협정 제의/대만정부 회의적… 야선 “수용검토” 주장

    【대북 AFP 연합】 중국은 대만에 적대관계를 청산할 수 있도록 휴전협정 체결에 관한 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했다고 차이나 타임스 익스프레스지가 2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의 왕조국 중앙대만공작판공실 주임이 24일 북경에서 열린 대만 상공인과의 회의에서 중국과 대만의 국가지도자들은 「하나의 중국」원칙 아래 휴전협정 체결에 관한 원칙을 세우고 협상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왕주임은 회의 석상에서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정치적 긴장이 완화됐기 때문에 양측은 적대행위를 종식시킬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고위 관리가 휴전 회담 및 협정 체결을 제의한 것은 지난 1949년 국공내전 이후 처음이며 대만은 곽여림 전총독비서장이 불가침 협정 체결을 제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만의 오백웅 총독비서장은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 공격 위협을 중단할 때만 그같은 회담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오 비서장은 대만은 지난 91년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하고 중국에 대한 「공산 도당」이라는 호칭도 삭제했다며 『이는 우호 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성실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준공식기구인 해협교류기금회의 치아오 젠호 부회장은 양측이 상호 신뢰를 구축하지 않는 한 휴전협정 체결은 무의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야당 민진당은 양측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대만이 중국의 이번 제의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지청천/민필호/권태양/항일투쟁·통일운동에 헌신

    ◎잊혀진 인물 전기 속속 발간/역사의 수레…/광복군 지청천장군의 삶 둘째 딸이 엮어/석린 민필호…/역사의 뒤안서 애국열정 쏟은 투사의 삶 광복 50주년을 맞아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다간,그러나 지금은 거의 잊혀진 인물들의 삶을 발굴·소개한 책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책의 주인공들은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몸바쳤거나,해방정국에서 민족통일을 위해 애쓰다 스러져간 이들.그러나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역사의 그늘에 묻혀있던 인물들이다. 올들어 나온 이런 책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론 「역사의 수레를 끌고 밀며」(지복영 지음,문학과지성사 출간),「석린 민필호전(석린 민필호전)」(김준엽 엮음,나남출판 펴냄),「통일독립의 현대사」(김광운 지음,지성사 펴냄)들이 꼽힌다. 「역사의 수레를 끌고 밀며」는 상해임시정부의 광복군 총사령을 지낸 백산 지청천(일명 이청천,1888∼1957년)장군의 전기다.그가 일본군 장교로 근대적 군사훈련을 익힌 뒤 만주로 망명,항일독립운동을 이끄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렸다. 관계자들의증언과 자료를 폭넓게 활용,항일무장투쟁사의 큰 흐름을 따라가면서 지장군의 업적을 조명한 점이 돋보인다.따라서 한 인물의 일대기를 넘어서 독립운동 연구에 귀중한 단서를 제공하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지은이 지복영씨는 지장군의 둘째딸로,상해임정이 수립된 1919년 태어나 부친을 따라 활약한 광복군 출신이다. 「석린 민필호전」의 민필호(1898∼1963년)는 13살 때 상해로 망명,「동제사」「신아동제사」등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다 임정이 들어서자 주요간부로 일한다.광복 당시 김구주석의 판공실장겸 외무차장이었다.중국통인 그는 귀국후 중국과의 교섭에 주력했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후 초대 대만총영사를 지냈다. 상해임정 국무총리를 지낸 신규식선생의 사위인 그의 행적을,이번에 그의 사위인 김준엽 전 고려대총장이 책 한권으로 엮었다.독립운동과 관련해 그가 직접 쓴 글과,측근인사가 써준 「석린 민필호선생 약전」을 실었다.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뒷전에서 묵묵히 애국 열정을 쏟은 독립투사의 삶이 잘 나타나 있다. 「통일독립의 현대사」는 광복이후의 민족사를 통일독립 추구라는 관점에서 새로 정리한 연구서이다.그러나 「권태양의 생애와 시대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보이듯,남북분단의 길목에서 자주평화통일을 이루고자 헌신한 권태양(1913∼1966년)·강병찬(1910∼?)등 정당 중간간부급 정치인들의 행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밖에 「일성 이준열사(일성 이준렬사)」(이선준 지음,을지서적 펴냄),「일재 김병조의 민족운동」(김형석 엮음,남강문화재단 출판부 간),「새로 쓴 안중근의사」(최서면 지음,집문당),「운강 이강년선생」(신동진 엮음,대구지방보훈처)등이 근년에 나온 전기들로 모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대외경협 총국」으로 대남창구 일원화/서울신문 통일문제연구소 분석

    ◎고민발·합영총국 등 흡수 통합… 합작사업 효율추진 겨냥/이성대­김정우·임태덕 트로이카체제가동 예상/「대외경협 추진위」는 나진·선봉지구개발마 전담/교역관련 주도권 당보다 정무원에 무게중심 살려 북한이 여러갈래로 나뉘어 있던 대외경협기구를 최근에 정비,대외경제협력총국을 신설하고 이 기구를 대남경협의 주요창구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대외경제협력총국은 그동안 중국 북경에 사무실을 두고 대남창구역할을 담당해왔던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고민발)를 해체흡수하고 정무원 산하의 합영공업총국,대외경제위원회 산하의 경제개발총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를 제외한 그밖의 대외관련 기구들을 통합,지난 2월중에 발족된 것으로 확인됐다. ○금품수수 등 부작용 많아 북한이 대외경협창구를 개편한 것은 우리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접촉창구의 분산·중복으로 혼선이 빚어지고 금품수수등 잡음이 뒤따르는 부작용이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또 갈수록 격감하고 있는 대외교역 증대를 위해 우리기업및 서방기업들과의무역을 활성화하고 합작사업등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한의 대남창구는 정무원 산하인 대외경제위원회는 하부기구 외에도 노동당및 인민무력부가 운영하는 무역회사등 여러곳으로 흩어져 있어 우리 기업인들이 선을 대는데 상당한 애를 먹었다.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북한을 다녀온 10개 그룹및 기업들의 초청자를 보면 쌍용그룹등 7곳은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 김정우였고 LG그룹은 조선무역촉진위원회(위원장 조원명),영신무역과 대동화학은 김정일의 누이 김경희가 부장인 당 경공부에서 운영하는 봉화무역 제4무역회사 초청으로 북한을 다녀왔다.이 이전까지는 「고민발」이 주요 창구였으나 이것이 해체됨에 따라 대외경제위원회 산하의 반관·반민기구인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조선무역촉진위원회가 창구가 된 것이다.이밖에 김정일의 비자금창구인 노동당 39호실,정무원및 인민무력부 직영 무역회사들이 접촉의 대상이 돼왔다. 80년대 후반까지 북한의 대남창구는 금강산국제개발그룹의 박경윤회장(여)과 박종근사장 중심으로 운영돼오다가 90년초엔 민족경제위원회라는 당조직을 모태로 탄생된 고민발이 주로 담당해왔다.고민발은 지난해 6월이후 여러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당 산하에서 대외경제위원회 밑으로 편입되었고 9월엔 금전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총책 박종근이 소환되기에 이르렀다.그 뒤를 이은 이성록회장 역시 우리기업인들과 접촉과정에서 금품수수문제로 잡음을 일으켜 지난 1월 불려 들어갔고 이를 계기로 고민발은 사실상 해체되고 말았다. ○총국장에 임태덕설 북측의 대외경협창구개편 내용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고 있으나 김일성생일,경수로공급협정체결,평양축전등이 몰려있는 이달이 지난 다음달쯤 그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또 대외경제협력국장에 누가 임명되었는지도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있다.국내 업계 일각에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이 위원회 산하의 경제개발총회사 사장인 임태덕이 맡았다는 설이 나돌고 있으나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겸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대남경협에서 핵심역할을담당해온 김정우가 유력한 것으로 분석됐다.김이 이 자리를 맡을 경우 북측의 대남창구는 김정일의 심복인 당 대남당담비서 김용순을 정점으로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 이성대­김정우­임태덕의 트로이카체제로 가동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관계기관이나 업계는 이번에 신설된 대외경제협력총국이 대외경제위원회의 산하기구로 대외경협은 물론 대남창구의 중추적인 기능을 맡게 되고 대외경제위원회 밑에있는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는 나진­선봉지구 개발을 전담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대외경제협력총국은 그동안 조총련등 해외교포들을 주요 대상으로 북한내 합영사업을 추진해왔던 합영총국등을 흡수함에 따라 활동영역이 크게 넓어질 전망이다.현재 북측의 대남창구는 기구 개편에 따른 북측의 입장정리가 끝나지 않은 탓인지 지난연말에 초청장이 발급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잠시 가동이 중단되고 있는 상태이다.지난달 28일부터 지난 1일까지 북한을 다녀온 효성그룹과 제일제당측은 지난 연말에 받아놓은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김정우위원장 초청장으로 방북했다.그러나 이들 업계인사들은 5일간 북한에 머물면서도 이 기구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북한은 대외경협창구 정비와 함께 대외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중국의 대외무역경제합작부 형태를 도입,그동안 정무원산하의 금속공업부와 광업부산하에 있던 흑색금속수출입회사(철강제품 취급)와 유광무역회사(아연괴등취급)등을 대외경제위원회 산하로 편입시키는등 이 부서의 기능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확인됐다.최근 북한의 경제관련 기구개편에서는 대외경협과 무역에 관한 주도권이 당쪽에서 정무원쪽으로 더욱 옮겨진 것이 감지된다.당이 대외경협과 무역을 망쳐놓았다는 비난이 높아지고 있는데다 무역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 당과 군부가 비켜서고 정무원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분위기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와 경협에 임하는 북측의 자세는 전에 비해 훨씬 진지해졌고 협의에도 조직적으로 임하고 있다.「경수로」문제로 남북관계가 다시 급랭하고 있으나 돌발적인 변수가 등장하지 않는한 새 기구의 창설을 계기로 대남경협은 활성화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남북교역량 계속 증가 그동안 남북한 교역동향을 보면 지난 88년 당시 노태우대통령의 「7·7특별선언」으로 교역이 재개된 이후 91년부터 크게 늘어나는 추세이다.지난해의 경우 대북 반출·반입규모가 2억2천9백만달러에 이르고 있다.우리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과의 교역이 최근 몇년간 급감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우리가 북측에 반출하는 물품은 섬유제품 임가공을 위한 원단등 원부자재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들여오는 것은 철강재,금·은·아연괴및 농산물과 임가공한 섬유제품등이다.지난 7년동안 북한으로부터 들여온 물품은 모두 8억달러어치가 넘는 반면 반출한 것은 7천9백만달러에 불과하다.또 그동안 업체별 대북 임가공실적을 보면 삼성물산이 8백70만달러로 가장 많고 그 다음 LG상사(7백93만달러),(주)대우(5백11만달러),한일합섬(1백26만달러)의 순이다. ◎대북 경합담당 트리오/이성대 대외경제위위원장/북경주재 무역참사관서 전격적 발탁(얼굴) 대외경제업무를 총괄하는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이란 요직을 맡고 있는 대외경제전문가.올해 52세. 신의주 출신으로 학력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지난 80년 식료품상사 지도원으로 일하면서 대외경제업무에 입문한 것으로 전해진다.88년 대외개방파의 실세인 김달현이 무역부장으로 부임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4년 가까이 그 밑에서 대외경협과 무역업무에 종사했다.그러다가 92년 12월 북경주재 무역참사관을 역임하던중 장관급인 대외경제위원장에 발탁돼 주목을 끌었다.이에앞서 같은해 7월 김의 서울방문에 동행해 우리기업들을 둘러본 일이 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인 그는 요즘 북한에서 가장 바쁜 각료의 한사람이다.지난달 초엔 정부경제대표단을 이끌고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는가 하면 지난 2월초엔 태국을 찾아가 쌀수입문제를 협의했다.그리고 최근에는 북한을 방문했던 LG그룹대표들을 만나 의류등의 임가공문제를 협의한 바 있다. ◎김정우 대외경협추진위원장/김일성의 고종사촌… 4차례 서울 방문 직급은 대외경제위원장인 이성대보다 한급 아래인 차관급이나 실세면에서 대남경협업무를 총괄하는 사령탑의 역할을 하고있다.경제정책 실책으로 개방파인 김달현부총리가 지난 93년 실각했을 때도 살아남은 실력자.김일성의 고모 아들이자 죽은 허답(당비서로 외교부장 역임)의 처남으로 알려져있다. 올해 53세인 김은 김일성대학 경제학부 출신으로 82년 대외사업부 부부장으로 기용된 이래 줄곧 대외경제사업만을 맡아온 경제테크노크라트.90년 9월부터 시작된 남북고위급회담 경제부문 대표로 참석,92년까지 4차례에 걸쳐 서울을 다녀간 일이 있고 이 때 우리대표들에게 자신있는 언행을 과시했을 정도의 실세.더욱이 지난해 9월에 이어 최근 베를린에서 열렸던 경수로공급에 관한 미북 전문가회의에 북측 수석대표로 참석,많은 관심을 모았다.그가 수석대표로 나선 것은 북측이 경수로협상을 아주 중요한 대외경제협상으로 보고있는데다 그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이 두텁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임태덕 경합추진위 부위장/20년간 대외업무 맡아온 경제 관련 임태덕 대외경협추진부위원장 김정우의 김일성대학 경제학부 후배로 우리 기업인들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협의상대가 돼 주목을 받았던 인물.김 아래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나진­선봉지구개발을 담당하는 경제개발총회사를 맡아왔다.올해 49세. 지난 75년 정무원산하로 지금은 대외경제위원회에 흡수된 대외경제사업부 지도원으로 관료생활을 시작한 이래 20년동안 대외경제분야에서만 일해온 정통 경제관료.지난 92년 2월 두만강공동개발을 위한 계획관리위원회의 서울회의에 참석한 데 이어 그해 7월 부총리였던 김달현을 수행,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고 남북대화에도 몇차례 참석해 우리에게 웬만큼 알려져있다.영어를 비교적 잘 하는데다 국제적인 감각과 함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지식도 갖추고 있으며 꽤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우리 기업인들에게 사업설명과 안내를 하면서도 정치적인 화제는 거의 꺼내지않고 시종 투자유치를 위해 진지한 자세로 임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민필호 선생/임정 국제승인위한 외교활동 헌신(이달의 독립운동가)

    ◎상해서 성장… 독립군 연락임무·피신 도와/대만주재 초대총영사로 한·중 우호 힘써 『대한민국의 유일한 생존의 길은 우리나라가 왜 이국의 병탄(병탄)을 당하게 됐는가하는 역사적 원인을 똑똑히 깨닫는 것이다』 이 어록은 독립운동가 석린 민필호 선생(1898년2월27일∼1963년4월14일)이 1945년 임시정부 주석 판공실장으로 재임할 당시 미국의 임정승인을 위해 단합할 것을 촉구하면서 가진 연설가운데 일부다. 선생은 독립운동가인 형 제호선생의 영향으로 1911년 소년기때 중국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가들로부터 교육을 받으면서 독립운동가로 성장했다. 선생은 중국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박달학원에 입학,박은식·신채호·조소앙 선생 등으로부터 영어·역사등을 배우면서 독립의식을 마음속에 싹틔웠다. 나중에 임정 국무총리 신규식선생의 사위가 된 선생의 가계에서는 신규식선생·형 제호선생과 선생 자신을 포함해 아들·딸·조카·사위등 모두 9명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됐다.선생의 사위는 전고려대총장인 김준엽 박사다. 후에 임정의 국제승인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선생이 독립운동가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1921년 신규식선생의 광동중국호법정부 방문길에 수행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임정국무총리겸 외무총장인 신규식선생은 임정의 승인과 경제원조 협상문제 임무를 띠고 임정특사로서 파견된 것이다.광동호법정부는 중국총통 중산 손문선생이 이끌고 있었다. 신규식선생은 손총통과 직접 만나 임정의 호법정부 승인을 통보하고 호법정부가 임정을 승인할 것과 군사학교에 한인입학을 허용해줄 것,적당한 지역을 빌려줄 것,차관을 제공해줄 것등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손총통은 호법정부는 임정을 승인한다고 즉석에서 답변,중국이 임정을 승인한 첫 국가가 됐다. 이어 신규식선생과 함께 상해로 돌아온 선생은 신규식선생이 1922년 과로로 순국하자 이동령·노백린·김구·이시영선생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마침 선생의 집은 상해 프랑스조계에 위치해 독립운동가들은 이 곳을 회동장소로 활용하곤 했다. 선생은 1932년 이봉창의사가 일본 도쿄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하는 사건을 벌인데 따라 일제헌병의 수색이 잦아지자 이 집을 동지들의 피신활동을 돕는 아지트로 사용했다. 선생은 일단 김구선생을 절강성으로 피신시켰으며 이동령선생등은 항주로 대피시켰다. 선생은 일제 때문에 상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장개석정부 특무기관의 도움으로 이름을 「임동반」으로 바꾸고 남경교통부직원으로 신분을 위장,독립군과 청년동지간의 연락임무를 수행했다.선생은 이동안 일본의 외교·군사암호 36종을 연구,해독한 공로로 중화민국 육해공군 광화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선생은 1940년 5월 김구선생과 함께 활동을 재개,임정의 판공실장·외무차장·의정원의원직을 맡아 임정의 국제적 승인등 외교와 경제활동에 헌신했다.선생은 우선 중국정부의 협조를 받아 중경 화평로 오사야항 1호에 있던 임정청사를 칠성강 연화지의 여관건물로 이전시키고 청년들을 광복군으로 보내 군사훈련을 받도록 주선했다. 선생은 마침내 일제가 1945년8월 패망하자 임정요인의 귀국준비에 돌입,김구주석과 장개석총통과의 면담을 추진해 장총통으로부터 임정요인들의 환국을 위한 지원을 얻어냈다. 선생은 1945년 11월5일 김구주석등 임정요인들이 중국 국민당측이 제공한 비행기편으로 환국한 이후에도 중국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안전등을 위해 장개석 국민당정부와 계속 접촉했다. 선생은 1948년 모택동에 밀린 국민당정부와 함께 대만으로 이동,1949년8월 대만주재 대한민국 초대총영사로 임명돼 2년동안 일했다. 선생은 1957년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와 한·중문화협회를 창설,한·중우호도모를 위해 각종 활동을 펼치다 1963년4월14일 숙환으로 서거했다. 선생은 자신의 외교경험을 모은 「한·중외교사화」등의 저서를 남겼다. 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 중 해남성을 가다:2(변화하는 아태)

    ◎해안따라 거대 공업단지 조성/정유화학·조선·전자·비료산업 적극 육성/외자 유치… 양포에 외국기업 5천개 진출/한국기업 총투자규모 1억달러… 해양상품 가공 등 합작 유망 해남의 성도 해구시에서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붉은 진흙길을 30㎞쯤 달리면 전형적인 농어촌지역 장류진이 나오고 북쪽끝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자그만한 어촌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우와 게를 잡던 조용하고 척박했던 이 어촌은 그러나 과거의 평화롭고 한적한 모습이 아니다.지금은 28∼29도를 웃도는 뜨거운 남방의 햇살아래서 높이20m,무게3백t이나 되는 콘크리트구조물 10여개를 바다에 설치하는 항만 건설작업 현장으로 바뀌었다. 중국 최대규모인 연간 정유능력 6백만t규모의 장류신구 정유화학단지를 위한 항구가 중국의 미래의 모습으로 건설되고 있다.35만t급 정유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부두를 비롯,모두 9개의 부두가 김배항이란 새로운 이름과 함께 오는 96년중반의 완공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차로 10분남짓한 거리에는 오는5월 정유화학단지 기공식을 앞두고 있는 해남 화방국제석유화학공사 본부가 나온다.이 회사의 섭삼래 비서부처장은 『석유저장능력 2백40만㎥ 규모에 연45만t의 폴리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는 총면적 40㎦의 대단위 정유화학단지가 오는 97년7월부터 가동된다』고 말했다. 『설계안 등 사업계획은 해남성정부의 주도로 만들고 6억달러에 달하는 개발자금은 아시아개발은행 등 1백% 외자로 충당되는 이 사업이야말로 황무지와 벽촌이 개발구로 변하고 해마다 지도를 변화시키는 해남성의 모습과 미래』라고 섭처장은 덧붙인다. 해구시에서 해안선을 따라 담주시와 팔소항까지의 북서부해안에 정유시설과 기계가공·조선·전자산업 등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해남성의 공업발전계획.팔소항에서 내륙으로 4.5㎞지점에 지난해 12월부터 해남부도화학공사가 건설중인 천연기화비료공장도 이 계획의 거점지역중 하나라고 유국유 부도화학 총경리(사장)는 설명한다.고급엔지니어출신 전문경영인인 그는 해남의 북서해안지역에 육성되고 있는 정유시설·항만시설·비료공장 등은 광동·호남·복건 등 중국 남부지역과 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 등 인접한 동남아의 수요를 겨냥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오는 96년말부터 연간 요소비료 52만t,합성비료 40만t을 생산할 계획으로 건설중인 부도화학의 건설비용은 모두 16억9천만위엔(약1천7백억원).이 가운데 15억위엔가량은 일본수출입은행이 제공한 차관이다. 해구시와 팔소항 중간지점에 위치한 양포항 역시 일본자본의 홍콩현지법인인 웅곡조유한공사에 의해 지난 92년부터 개발되고 있다.해남성 외사판공실의 진사부주임은 『30㎦ 전개발지역을 웅곡조유한공사가 70년동안 토지사용권및 운영권을 갖고 있는 양포개발구는 해남도의 과감한 경제실험의 상징』이라고 설명한다.개발지 전역이 70년동안이지만 외국회사의 소유가 된 것은 물론 치안권만 제외하곤 외국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면세구역이라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선 2∼3개월인 기업설립 수속시간이 해남성에선 1주일이고,양포지역에선 단1시간이면 마칠 수 있다.이미 5천여개의 외국기업이 사무처를 냈고 도로60㎞,1만t급 부두 2곳,3천t급의 하역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는 설명이다.진부주임은 이미 35억위엔(약3천5백억원)이 기반시설건설에 투자됐으며 2천년까지는 2백20억위엔 가량이 추가 투입될 것이라고 말한다. 북부해안지역의 이들 개발지역은 해남의 유일한 자동차 공장인 「해남·마쓰다」차량공장에서 연간 6천대씩 쏟아져 나오는 자동차와,일본차관에 의한 고속도로건설사업 등과 함께 일본열도와 동남아를 잇는 일본의 전략투자지의 형성을 상징한다. 모지군부성장은 『해남에선 다른 성과 달리 외화를 제한받지않고 자유롭게 들여오고 반출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행정규제를 없앴다』고 말한다.그는 홍콩과 마카오를 잇는 자유중계무역지로의 발전가능성을 강조했다.이미 26개 지역에 개발구가 설립됐고 1백18곳이 관광진흥구로 지정,지난 한햇동안 4억6천만달러의 해외차관을 얻어내는등 외국투자를 끌어들여 중앙정부의 긴축재정으로 인한 돈가뭄을 해결하고 있다.지난 6년동안 1만3천3백㏊를 매각,2억위엔(약2백억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 한국기업의 총투자 규모은 1억달러.모부성장은 『해양상품의 가공·어선제작·항만건설·전자공업부문 등에서 한국과의 합작사업을 원한다』고 강조했다.올해중 해구시에 착수될 3천2백만달러규모의 대우의 통조림깡통용 박판공장이 국내투자중 가장 큰 규모고 22개기업들의 소규모 부동산투자가 대부분이란 설명이다. 대우그룹 북경사무소 정민길 사장은 『국내기업들이 투자회수율과 시장진출시기 등의 이유로 해남보다는 회수율이 빠른 광동과 복건성 등에 투자를 선호해왔으나 사회간접시설 확충과 관광붐에 따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부동산매입과 투자진출 등을 고려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국내기업의 진출확대를 전망했다. 해남성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선경그룹이 중국석유화공총공사와 협상중인 5백만t규모의 심천정유공장 합작프로젝트의 실현이 어려워짐에 따라 이곳에 공장설립을 고려하고 있고 LG그룹이 정유공장의 설비투자등에 참여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담주시의 진덕현 부시장은 해남성은 철광석과 천연가스의 매장량이 중국전역중 1위며 티타늄의 경우 전중국 매장량의 70%,지르콘은 60%를 차지하는 등자원개발의 측면에서도 고려해야 할것이라고 지적했다.
  • 중 해남성을 가다:1(변화하는 아태)

    ◎중국의 하와이/성전체가 경제 특구… 개방 선도/88년 성 독립후 연8∼20% 고성장 구가/주식제 도입 등 서방 못잖은 자유경쟁/정부간섭 철저 배제… 내지기업의 “부러운 미래상”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우며 3년째 두자리수의 고속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그중에서도 성 전체가 경제특구인 최남단 섬,해남성은 가장 활기찬 경제개발의 현장이다.아열대성 기후에 자연풍광마저 멋지게 어우러져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이곳은 각종 산업개발과 더불어 우리나라 제주도식 관광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이곳의 변화와 발전 모습을 이석우 북경특파원의 현지취재를 통해 시리즈로 소개한다. 북경이 아직 대륙의 찬바람에서 채 벗어나지 못하는 3월,중국 최남단 해남도에선 아열대의 따가운 햇살이 한여름임을 말해준다.이곳에 발을 내딛기가 무섭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리의 야자나무와 코코넛열매들.거리에서 부딪치는 시민들의 모습도 북경등 다른 중국의 도시와 사뭇 다르다.작은 키에 낮은 코,둥글고 까무잡잡한 얼굴들­남태평양에서자주 보던 원주민들과 흡사하다고나할까.그래선지 이곳을 가리켜 「중국의 하와이」,「중국의 제주도」라고 부르는게 더욱 더 그럴 듯해 보인다. 택시기사를 불러 얘기를 건네보았으나 북경어가 잘 통하지 않은 것도 이국적인 맛을 더해준다.이곳에서는 지난 49년 공산화이래 중앙의 강력한 보통어(북경어)교육이 시행됐지만 7백20만 성주민 가운데 80%가량의 해남토박이들은 여전히 이 지방 말인 해남어를 일상언어로 사용하고 있다.지역방송과 중앙TV에서도 해남어 방송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거리를 누비는 일제 오토바이 물결은 이곳이 중국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베트남이나 태국에 가깝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지리적으로도 통킹만 건너편엔 베트남이 자리잡고 있다.그런가 하면 시민들의 활기찬 움직임이나 화려한 옷차림,하늘로 치솟은 고층건물,아우디등 외제차의 물결은 작은 홍콩을 연상케도 한다. ○구시가 스페인풍 신화로,박애로,장제로등 30년대 포르투갈과 스페인자본등으로 건설했다는 고풍스런 구시가지들은 현대식 고층건물에 자리를 내주고 있고 재개발시행을 알리는 대형간판과 함께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해남성 외사판공실의 오사존처장은 『긴축정책이 시행된 지난93·94 2년동안의 건축면적이 1천만㎡를 넘는다는 사실도 이곳의 개발열기를 보여주는것』이라고 말한다. 이 섬의 전체면적은 3만4천㎦로 남한의 3분의1,경상남북도와 제주도를 합쳐놓은 것보다 조금 더 넓다.낡은 건물과 붉은 황토밭뿐이던 빈곤지역이 지난 88년 광동성의 직할지에서 성으로 독립하면서 성전체가 경제특구라는 프리미엄을 업고 요즘 중국에서 가장 뜨겁게 개발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오처장은 『개혁·개방 7년만에 외국투자액은 38억달러,외국기업은 8천여개,중국 내지기업 1만8천여개가 상륙했다』고 밝히고 지난해 경제성장률 12.2%,성으로 분리된뒤 매년 8∼20%의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중국내에서 시장경제의 상징인 광동성보다 광범위한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중국 최고의 경제자유지대가 바로 이곳인 것 같다.생존법칙은 완전경쟁.내지처럼 기업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정부의 간섭은 제도적으로배제돼 있다.정부의 불간섭이 원칙인 만큼 국내기업에 대한 보호도 존재치 않는다.모지군부성장도 빠른 변화와 성장의 원천은 해남성 전체가 21세기 중국 개혁을 위한 「실험구역」이라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전문경영인 정착 정부의 불간섭원칙과 함께 주식제 도입이 21세기의 제3단계 개혁을 위한 주요 경제실험중 하나다.새로 설립되는 주요 기업은 모두 주식회사.국영기업의 개조가 중국경제의 현안이 되고 있는 가운데 국영기업을 주식제로 바꾼뒤 이를 외국기업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효율을 높이는 실험이 북경 영도층의 관심아래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해남 화방국제석유화공유한공사처럼 아예 투자부터 경영까지 모두 외국자본에 맡겨버린 곳도 있다.주강실업,신능원,남양선무,해득제약창,김반공업등 해남의 내로라하는 5개 대표기업들의 주식은 이미 홍콩주식 시장에 상장됐다. 주식제와 양면을 이루는 전문경영인제도도 해남성 실험의 주요 내용중 하나다.기업의 운명과 종업원의 채용및 해고,임금수준,경영방식등에 관한 전권을 쥐고 책임을 맡는다.기존 국유기업은 주식제로 「개조되고」 주식은 중국은행·중국공상은행등이 소유,경제적 효율을 높이는 방법도 널리 행해지고 있다. ○성정부 독자결성 성내 기업들의 자율권과 함께 해남은 중국 전역에서 성 정부에대한 중앙정부의 입김이 가장 적게 미치는 곳이다.총투자액 2억위안(원)이하의 건설사업과 기술개발 부문의 프로젝트는 중앙정부의 허가없이도 성정부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또 3천만달러 이하의 해외차관 프로젝트사업도 성 정부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바로 이러한 시도가 21세기 중국의 지방과 중앙관계를 시사하는 모델이 아니겠냐고 해구시 인민대외우호협회 장문상비서장은 반문한다. 해남성 정부 대외판공실의 번선민부처장은 「작은정부,큰사회」,「기업등기등 각종 행정업무의 간소화」,「세금징수제도의 개선」등이 해남 효율을 끌어올리는 견인차였다며 이것이 바로 내지기업들의 미래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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