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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한국당 「텃밭」 PK지역 공천 싸고 고심

    ◎내정자 7∼8명뿐… 무소속 도전 거세­경남/허삼수의원 등 5∼6명 탈락 확실시­부산 김영삼정권의 텃밭인 부산·경남지역의 신한국당 공천전략이 쉽지 않다.호남·충청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이 지역을 싹쓸이 한다는 전략이지만 표밭기류가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공천실무자들은 6·27지방선거에서 구민자당이 기초단체장 21곳중 10곳을 차지하는데 그친데다 과거 「YS대권」을 위해 뭉쳤던 심정적인 구심점마저 점차 흐트러지고 있다며 어려움을 털어놨다.여권 핵심에서는 김대통령의 수족인 민주계나 현역의원이라 하더라도 당선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신진세력들로 바꾼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대폭 물갈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23개 지역구중 21곳을 신한국당이 차지하고 있는 경남에는 친여성향의 무소속후보들이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어 섣불리 총선결과를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공천을 확실히 낙점받은 곳은 마산 회원(강삼재),진주갑(정필근),진주을(하순봉),남해 하동(박희태),울산남(차수명),산청 함양(권익현),의령 함안(윤한도)등 7∼8곳 정도이다. 반면 「백지추천」으로 김대통령의 결단에 맡겨진 김봉조(거제)·황락주(창원을)의원은 대표적인 교체대상으로 꼽힌다.김기춘 전 법무장관의 거제출마가 거론되나 부산지역으로 교체될 가능성도 있다.6선인 황의장도 세대교체차원에서 교체가 거론되며 후임으로는 김규칠한국방송공사이사와 모언론사 해외특파원을 지낸 K씨 등이 물망에 오른다.그러나 황의장의 반발로 진통도 예상된다.선거구조정으로 통합이 예상되는 거창(이강두)과 합천(권해옥)은 최대혼전지역중 하나이다.당은 두의원가운데 1명을 전국구로 보낼 예정이지만 동정표를 등에 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의 출마가능성이 부담으로 작용한다.경남지사후보로 출마해 36%의 높은 득표율을 보였던 자민련의 김용균 전 체육부차관도 다크호스다. 한때 영입이 추진됐던 무소속 정몽준의원(울산동)의 입당은 물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이 지역의 고전이 예상된다.밀양의 신상식의원은 물갈이가 예상된다.여론조사결과 90%대의 높은 지명도에 비해 예상득표율이 10%대로 그쳤기 때문이다.진해(배명국)·김해(김영일)·창녕(신재기)·양산(나오연)등도 현역의원 교체설속에 무소속 또는 예비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다.산청·함양은 현위원장인 노인환의원을 제치고 지역 터줏대감으로 5공실세인 전국구 권익현의원이 진통끝에 공천을 내락받았다는 후문이다. 부산지역은 현역의원들가운데 12·12관련자인 허삼수(동구)의원을 포함,선거구 조정대상인 정상천(중구)·송두호(강서)의원,허재홍(남구)·곽정출(서구)의원 등 5∼6명의 현역의원들이 공천탈락대상으로 거명된다.한때 신상우(북구을)의원도 교체대상으로 거론됐으나 당내 최다 6선의원으로서의 예우차원에서 탈락명단에서 빠졌다는 후문이다. ◎3야의 물밑 공천작업 안팎/호남권 물갈이 일부의원 반발 조짐­국민회의/거물급 영입 지지부진에 실망 역력­민주당/서울­수도권 인물난으로 발만 동동­자민련 정치권의 물밑 공천작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야권의 「3당 3색」고민이 농도를 더해 간다.국민회의는 「호남물갈이」를,민주당과 자민련은 부진한 외부인사영입작업을 놓고 가슴이 답답하다. 국민회의는 15대 총선에서 제1당으로 부상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현역의원,특히 텃밭인 호남의원들에 대해 손을 대야 한다는 방침을 진작 세워놓았다.김대중총재 역시 지난 4일 호남물갈이를 기정사실화했다.이를 위해 1월 임시국회이후 이달말까지 현지 여론조사 등 지구당 실사작업을 벌일 계획도 마련했다. 문제는 그 폭에 있다.당내에는 현역의원 52명중 30%이상의 교체를 관측하는 대폭설과 5∼7명에 그칠 것이라는 소폭설이 맞서 있다.14대 총선때 광주와 전남·북에서 모두 10명을 교체한 점을 들어 중폭의 교체를 관측하는 측도 있다.벌써 당내에는 K·K·K·Y·P·L·C의원 등 8∼10명이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상자로 거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김총재는 물갈이 폭에 따른 손익계산을 끝내지 못한 인상이다.탈락자의 조직적인 반발을 우려하는 것이다.물갈이대상인 일부 의원들은 지역구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조짐을 보인다.당내에서조차 호남물갈이를 김총재의 「공천장사」로 「매도」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당의 한 관계자는 『김총재의 마지막 대권도전이라는 점을 의식,물갈이대상자들의 반발이 과거 어느 때보다 완강할 것』이라며 호남공천을 당의 최대난제로 꼽았다. 민주당은 국민회의와 정반대로 사람이 없어 고민이다.영입작업이 예상보다 순조롭지 않은 것이다.오는 10일 1차영입인사를 확정,발표할 계획이지만 그 수는 10여명에 그칠 것으로 알려졌다.이를 두고 민주당은 『양보다 질』(김원기공동대표)이라며 애써 자위하고 있으나 그나마 「거물」영입이 지지부진하자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다.1차영입이 유력시되는 인사중 지명도가 높은 인사는 이강혁 전 외국어대총장과 여익구 전 민중불교연합회의장정도.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전 총리와 장태완재향군인회장은 사실상 영입에 실패한 상태이고 이태복노동자신문발행인은 신한국당에게 놓쳤다.한완상 전 부총리,홍준표 전 검사,안상수·함승희변호사 등도 『좀더 지켜보자』는 식이어서 애만 태운다.다만 최렬환경운동연합사무총장이 최근 적극적인 입당의사를 밝혀 고무돼 있다. 자민련은 유일보수정당을 자처,15대총선을 「보수 대 개혁」세력의 대결구도로 몰아간다는 기본전략이 유권자의 60%를 차지하는 젊은 층의 지지를 흡수하는 방안과 상충하면서 고심중이다.특히 서울과 수도권에서의 인물난때문에 한숨을 쉰다.조부영사무총장이 『수도권에서 30%만 차지하면 성공』이라고 할 정도다.다른 정당들이 수도권에서 제1당을 호언하는데 비해 겸손만은 아닌 셈이다.노재봉 전 총리,염보현 전 서울시장 등 「거물급」에 대한 영입작업도 들인 공에 비해 아직 뾰족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 대흥구 중국 심양(세계속 한인촌 탐방:3)

    ◎황무지를 옥토로… 딴 농촌의 3배 소득/5천여명 정착… 우리말·전통풍습 그대로 간직/된장국·김치 담그기 등 가르쳐 중국인을 조선화/「새마을 공장」 4백여곳 유치… 산업화 앞장도 중국 북동부 3개 성의 심장격인 심양.요령성의 성도이자 우리에겐 봉천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1시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구육성」이란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초·중학교 우리말 수업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보신탕집 간판으로부터 2차선 찻길을 따라 조선음식점 1백여개가 줄지여 들어서 있다.심양∼대련 사이 고속도로가 곁에 있는 이곳은 심양시 우홍구의 「대흥향」.찻길 따라 음식점과 상점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시 교외의 농촌이다.1만5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3분의 1인 5천여명이 조선족인 우리동포 자치지역이다.명칭은 「대흥 조선족자치향」. 『20년대초까지 논은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였다.물이 부족해 농사가 어려웠고 극소수 밭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역이 있을 뿐이었다.그런 황무지를 송화강의 지류인 훈하를끌어들여 물길을 낸 뒤 논농사를 시작,궁핍에서 벗어나게 한 게 바로 조선족이었다』고 48년말부터 30여년동안 이곳 공산당간부로 일해온 지역지도자 이성일·67·전당서기)씨는 회고한다.길지 않은 이민역사와 한족에 비해 적은 인구에도 불구,조선족자치지역이 된 것은 『조선족 손으로 이곳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19세기말∼20세기초 가난과 일제침략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 모여 이룬 이곳은 우리말과 생활풍습을 고스란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아이의 백일잔치,노친네의 환갑은 물론 전통양식을 보존한 제사풍습 등등.설날이면 이웃집에 세배다니고 농사일과 궂은 일이 있으면 몰려가 품앗이를 하는 등의 끈끈한 유대의식도 변치 않았다.순 우리말로만 수업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이곳 조선족은 절대로 한족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행여 자식이 한족과 결혼하려 하면 필사적으로 말리는 것도 다른 지역에 사는 동포와는 약간 다른 풍습이다. ○연변 등 외지동포 이주 오히려 중국인을 「조선화」시켰다.노인등 어른에 대한 깍듯한 예절,논농사를 모르는 이들에게 쌀재배법을 전파시켰고 적잖은 이 지역 중국인이 김치를 담그고 된장국을 끓여먹는다는 데서도 대흥 조선족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가옥도 이웃 사이에 담장이 따로 없는 개방형 농가다.아이를 조선식 포대기에 들쳐업고 다니는 새색시.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쓰는 동·서혼합 결혼식.집안에 들어서면 구들방이 보이고 크고 검은 무쇠가마솥이 눈에 띄는 곳.안타까운 것이라면 국가규정 때문에 전통적인 무덤(토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문화혁명후 토장이 금지돼 화장한 뒤 죽은 이의 유골을 황해로 흐르는 훈하에 뿌리는 전통이 생겼다.죽어서라도 고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1910년말부터 평안도에서 일가친지 모두가 이주해온 황성출(65·전대흥향 공업책임자)씨는 『처음 이주자들은 몇년만 있다 고향으로 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1917년 오강소학교란 조선학교를,20년엔 기독교 예배당를 세우며 차차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나 30년대초까지도 추수때면 한족 지주등에게빚갚고 나면 빗자루 하나만 남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허일벽(72·전대흥향 정부농업조리)씨는 한때 1만여명 가까운 조선족이 모여 살기도 했지만 해방직후와 59∼60년 대약진운동의 실패여파로 상당수 북한으로 이주해갔다고 설명한다. 연변지역등의 조선족마을이 최근 도시이주등으로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지난해 역시 연변과 흑룡강성등 외지에서 이주해온 동포 가구로 1백호가량 늘었다.이곳 인구는 5천명정도지만 심양시 서탑지역,동릉구 혼하찬지역과 함께 10만 심양지역 조선족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해마다 9월초면 열리는 조선민속·운동절에 약 5만명 대부분이 가족별로 참가한다. 한·중 두 나라의 급격한 관계발전을 타고 이곳도 한국행 열풍엔 예외가 없다.4살때 평안도에서 왔다는 흥성촌의 김응석(69)씨의 세 아들중 두명은 한국에서 3년 넘게 일하고 있다.비자등 법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김씨는 『아이들이 한국에서 돈 많이 번다』며 자랑한다.김씨집은 산업화이전의 초가집이고 부엌엔 무쇠가마솥이 걸려 있다.해질녘에 불쑥 들른 취재진에게 『저녁은 꼭 먹고 가야 한다』며 붙드는 것이 이제는 사라진 우리의 옛 정서를 느끼게 한다. 한집 건너 김미영(33)씨 집 역시 남편이 지난해부터 한국서 일하고 있다.농토는 연변에서 온 조선동포에게 맡겨 임대수입을 받는다는 김씨는 남편을 보러 꼭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공단인접한 교통요지 개혁개방이 진전되면서 대흥향은 농공산업단지로 탈바꿈하려는 안간힘으로 한창이다.동북 최대공업단지 철서공단에 접해 있고 북경∼장춘∼하얼빈을 잇는 교통요지인 점도 산업화를 향한 행보를 재촉한다.우리 새마을공장격인 향진기업은 모두 4백6곳.지난해 공업생산은 4억위안(5천만달러)으로 농업생산액 1억위안을 앞섰다.피혁·의복·방직·장식재료등을 중심으로 외자기업의 유입이 늘고 있다.정명수 향정부 판공실주임은 『지난 91년부터 올해까지 외자기업의 총투자액은 7백60만달러』라며 『총생산액으로 볼 때 외자기업의 비중이 지난해 공업생산의 절반가량인 2억위안에서 올해는 2억8천만위안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밝은 전망을 소개했다. ○종업원지주제 첫 실시 이곳의 월 평균소득은 여타 농촌지역보다 3배가량 높은 7백∼8백위안정도.한 관계자는 한국 가서 일하고 부치는 노무소득·관광객안내비등을 합치면 실제소득은 훨씬 많다고 귀띔한다.향 행정책임자인 김재만 향장은 심양 조선족제1중학(고교과정)과 심양 정법대를 나온 35살의 청년이란 것도 이곳의 활력과 미래를 상징한다.김향장은 투자유치가 자신의 주임무이며 한국기업의 투자를 주민과 함께 기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최근 한국의 삼우금속과 합자로 총자본금 11억규모 심양 흥우금속제품공사설립을 계약했다고 설명한다.중국 공무원하면 경직된 행정관리가 연상되지만 김씨는 자칭타칭 「세일즈맨」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김향장은 『대흥향은 내년부터 중국 최초로 기업고정재산의 30%한도내에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는 기업개혁실험에 들어간다』며 밝은 대흥향의 미래를 자랑삼아 밝혔다.전통적으로 북한의 영향이 강하던 이곳에서 이들은 이제 한국의 존재는 우리민족의 자랑이라고 말한다.이들은한국을 모델삼아 공업화된 농촌속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경제발전의 꿈에 부풀어 있다. ◎장승균/“조선족은 문화수준 높아”/동북부 지역 벼농사 전파… 개발 한몫 중국 조선족은 역사적으로 항일전쟁 및 해방전쟁(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특히 중국 동북부지역을 개간,수도작문화,즉 벼농사를 전파시켜 경제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조선족은 또 교육을 중시,문화수준이 높고 노래와 춤등 예술성이 풍부하며 호방하면서도 엄격히 예절을 지키는 민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선족은 60년대까지 대부분 농민이었으나 개혁개방후 각 방면으로의 진출,계층분화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연변지역등 농촌에 모여 살던 조선족의 도시이주가 최근 늘면서 일부 집성촌의 해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경상주 조선족은 현재 1만여명에 달하고 임시거주등의 인구까지 따지면 모두 3만여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조선족의 전체인구는 공식통계로는 1백92만3천여명으로 집계돼 있지만 조사연도(90년)와 전중국의 인구증가률 1.4%보다 낮은 1%가량의 인구증가율을 고려할 때 2백만명가량으로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족의 한국방문 및 장기체류는 상대방 국가의 법률만 준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한국정부가 민족연관성을 배경으로 조선족에 대해 특혜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게 중국정부의 방침이다.
  •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 비밀일지 내용

    ◎“숙군 방해 송호성 사령관 공산당과 내통”/서대문형무소에 사무실마련… 군적색분자 색출작업/남로당 조직책 이중업 사형집행전날 비서가 탈옥시켜/빨갱이 고희두 심문중 변사… “고문치사” 누명받고 좌천 대한민국 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부분의 하나가 숙군이다. 군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는 숙군의 주역이었던 김창룡(1920∼56년). 1956년 1월30일 육군특무부대장으로 재직시 저격을 받아 숨지기까지 타공실상을 기록한 그의 비밀일지가 워싱턴에서 발견되었다. 미국립공문서보존기록국이 소장한 이 일지는 한글로 쓴 원본을 미 당국이 영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를 긴급입수,우리말로 다시 옮겼다. 단순한 개인기록물의 성격을 떠나 격동의 현대사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숙군(Purge)은 제주도반란을 전후하여 3차에 걸쳐 있었다.레드파지는 군내부에서 진행되었기에 외부에서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1947년 1월 육사3기생으로 입대했는데,동기생 가운데 약 8할이 공산주의자였다. 대구폭동이 일어나고 공산당 간부에 대한 체포령과 동시에 공산당이 불법화되자,공산당에서는 이중업에게 조선경비대에 공산주의자들을 침투시킬 것을 명령했다.이중업은 이재복을 군사책임자로,김영식을 군사레포(Militaryrepo)로 임명하였다.조선경비대와 육군사관학교 간부의 다수가 공산주의에 감염되었다.당시의 육사 생도대장 오일균 소령,교수부장 조병건 소령,중대장 김학림 소령 등이 공산당의 지령에 움직였다. 반면에 초대 군감 이병주 소령은 남로당 특수부의 지령에 따라 조선경비대 내부에 세포를 확대하여 비상시에 반란을 획책하고자 준비하였다.그는 노재길·정국환·김민배 등을 인천의 모 부대에 공산당 세포로 침투시켰으며,문산과 기타 지역에 무기를 숨겨두었다. ○생도 80% 공산주의자 후보생으로서 나는 밤 10시경에 경비근무를 하였다.룸메이트인 김진태를 혼자 남겨둔채,내무반을 순찰하고 돌아오니 김후보생이 보이지 않았다.멀리 바라다보니 생도대장 방에서 불빛이 비쳤다.나는 그 앞으로 걸어갔다.이때 김후보생이 놀란 표정으로 그 방을 뛰어나왔다.생도대장 오소령도 뛰어 내왔다.나는 아무 말없이 오소령 앞에 섰다.오소령은 나에게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에게 보고해 달라고 말했다.나는 동지를 얻은 것 같이 반가웠다.오소령도 역시 우리 동지로구나.나는 기뻤다.그리하여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모조리 이야기했다.김지회·홍순석·박호산 등은 모두가 공산계열에 속하는 인물에 틀림없다고 이야기했다.그후 상당한 시일을 기다려도 생도대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제1연대 정보부 근무 1947년 6월에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에 임관되었다.하늘이 도와 나를 제1연대 정보부에 근무하게 하였다.나는 이제 경비대에 침투한 공산계열부터 색출해야 하겠다.경비대는 장래 우리나라 국군의 모체이다.제1연대는 조선경비대의 모체였던 것이다.임관되자마자 육사는 물론 조선경비대의 주요 간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폭로 적발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이것이 제1차 숙군이었다.우선 제1차로 군감사령관 이병주 소령 및 그 선을 검거하였다.이소령 이하 수십명과 문산 부근에 은닉하고 있던 무기까지도 압수하였다.소령이라면 당시의 군인으로서는 최고의 계급이었다.일개 소위가 어찌 최고 계급인 소령급과 그 일파를 검거할 수 있었으랴! 이것은 오로지 나의 신념인 타공정신의 소치였다.동시에 당시 통위부 고문관 가소(Kasso)소령의 후원이 컸기 때문이었다. ○문산부근 무기 압수 일당 9명 가운데 군정재판에서 8명은 5년,1명은 3년의 징역 언도를 받았다.나는 당시의 총사령관 송호성 장군에게 전말을 이야기한 바 있다.그랬더니 송장군은 공산당도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군정재판에서 언도가 내렸을 때 송장군은 나에게 적지않은 노여움을 표명하였다.그후 나는 전후 6회에 걸쳐 전속명령을 받았던 것이다.나는 괴로웠다.그들은 분명히 공산당인데,송장군은 왜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한편 노엽기도 하고 한편 괴롭기도 했다. 나는 후에 알 수 있었다.알고 놀랐다.당시의 사령관 송호성장군이 적색계열과 연락이 있다는 것을. (편집자주:당시 경비대 총사령관이었던 송호성 장군은 적색계열과 내통한 공산주의자였다.그는 뒷날 월북해 1956년 「재북 평화통일협의회」에서 활동했다. 남로당 군사책 이재복의 체포로 이것이 판명되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소령 이병주가 5년 징역의 언도를 받았을 때 송사령관 방으로 뛰어들어갔다.수사관의 입장으로서는 자기가 검거한 피의자들이 언도를 많이 받는 것을 바라는 심정이었다.하물며 그들은 공산당이며 국군의 모체가 될 경비대에 침투하여 멀지않아 수립된 대한민국의 기반을 완전 파괴하기 위하여 유사시에 봉기할 계획을 암암리에 세우고 있던 것이 아니었던가.그들 일당에게 5년 징역이라는 언도가 내렸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그리하여 송사령관 방에 뛰어들어갔더니,송사령관은 칭찬은 고사하고 화를 내면서 나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너는 어디 놈이냐.조선놈이 조선놈을 잡아서 징역시키는 법이 있느냐.공산당도 잘 설교를 시켜서 쓰면 된다.송사령관은 커다란 목소리로 이렇게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나는 그냥 그 방에서 나왔다.나는 송사령관을 이상하게 생각했다.그리고 구속영장의 사인을받으려고 갔을 때 몇번이고 거부당한 선례를 생각했다.사실 최고사령관인 송준장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다.그가 공산당 통정자라고는 정말 생각되지가 않았었다.그러나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다.만약 그가 공산당 통정자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총사령관에게 미움 사 여순반란 후 숙군은 가일층 강화되었다.「인민해방군사건」의 오동기 소령과 그 일당 8명,그리고 소령 오일균,소령 조병건,중령 김종석,소령 김학림,중령 박근서,소령 황택림,소령 김호량을 비롯한 일당의 체포와 검거가 있었다.당시에 소령이면 군에 있어서 최고의 계급이었고 중령이라고는 불과 몇사람 밖에는 없었다.이자들은 모두가 남로당의 지령에 따라 움직여 각자 세포부식과 연락 또는 「빨치산」전술을 연구하여 유사시에 봉기할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만약에 그때 숙군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후에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우리 국군이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숙군을 위하여 서대문 형무소에 한방을 얻어 부하들과 그곳에서 기거하면서숙군을 착착 단행했다. ○여간첩 김수임 진상 밝혀 이중업은 체포되는 순간 자기는 이중업이 아니라고 했다.그리고 자기 이름은 이명근이라고 말하였다.그는 도주하려고 했다.그리고는 가소롭게도 돈을 줄터이니 용서해 달라고 했다.그는 체포당시 83만원이라는 대금을 가지고 있었으며 입속에는 연락문을 넣고 있었다.돈이라면 무엇이든지 될줄 아는 그들.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가 도주하다니,나는 전화를 받고 뒹굴어 일어났다.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사형수 이중업을 사형 집행 전날 새벽에 육군형무소에서 탈출시킨 것은 그의 단 하나의 비서였던 김형륙이라는 청년이었다.그가 체포되고 48시간만에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전향하자,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이중업이 월북하던 경위와 이중업이 머물고 있던 여간첩 김수임의 진상,그리고 실로 지금까지 우익으로 열렬히 행세하던 인물들이 좌익분자였다니.상상외의 인물들이 드러났을 때 나는 몇번이고 나의 눈을 의심했다.김형륙은 남로당 잔당을 색출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나는 그를 찾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그는 전쟁시기,놈들에게 붙잡혀 끌려갔다고 한다. ○수사관에 3년 징역형 소위 「고희두 사건」만큼 세상에 화제를 던진 사건이 당시에는 없었다.그는 틀림없는 빨갱이었다.그는 표면으로는 대한민국에 가장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공산당들이 하는 전술이요,전법이었으며 그는 이면으로는 철저한 당원으로서 갖은 흉모를 다하였던 것이다.빨갱이 중에서도 이와같이 무서운 빨갱이는 없다.표면으로는 충실한 백성이요,이면에서는 공산당원인 자들과 같다. 고희두 구속에 대하여 각계각층에서는 방첩대를 비난하였다.그러나 확고한 증거가 있다.오랫동안의 내사에서 이 증거는 더욱 굳어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비난하다니.이와같은 썩은 뿌리들까지 모조리 뽑아 버려야 한다.나와 나의 대원들은 일체의 방해를 물리치고 민국을 위하여 소신에 매진하겠다. 고희두가 1949년 9월29일 변사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각계각층에서는 고문치사라고 들고 일어났다.그를 취조한 사람은 방첩대 2등상사인 도진회였다.사건은 고문치사로 판명되어 도상사는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고문치사가 아니다.그는 원래 몸이 뚱뚱하였으며 혈압이 높은 사람이다.그는 체포 연행되었을 때 어느 누구보다도 당황했었다.1949년 9월27일 상오8시 그를 연행했을 때 그는 펄펄 뛰면서 발악을 했다.그는 자기의 죄상을 하는 수 없이 자백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조서도 꾸몄다.그는 연행되었을 때에는 퍽이나 쇠약해 있었다.증거의 제시로 자백하기 시작한 그는 숨가뿐 소리를 내면서 몹시 괴로워하였다.그 다음날 저녁7시 그는 취조 도중에 의자에서 쓰러지며서 절명한 것이다.의사들을 불러 응급치료를 가하였으나 그는 소생하지 못하였다.그는 자기의 죄상이 보통짓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남에 괴로워하고 몹시 당황한 것이다.고문치사가 아니었다.그는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다.서울대학의 김모 교수는 5백여 명의 시체를 해부한 권위자이다.김교수는 고의 시체를 해부하고 급성심장마비로 진단을 내렸던 것이다.고문치사라니? 우리들에 대한 압력중의 하나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급성 심장마비로 진단 이 사건으로 좌천되어 전속명령을 받았다.모든 슬픔,모든 괴로움,모든 고난,우리들은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한다.설사 기쁨이 있다고 해도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의 과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판에는 그것이 우리들에게 무슨 기쁨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상부의 명령이니 가야만 한다.그러나 방첩대에서 내가 할 일,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 어느 때인가 내가 할 일 내가 해야 할 일이 나에게 돌아오고야 말겠지. ○9·28 수복전 서울 잠입 9·28수복 며칠전 단신 서울에 잠입하여 정보활동을 전개하였다.이때 고희두 가족에 대하여 확증을 얻었다.6월28일 그들이 서울을 침범하자 새벽에 고의 집에 찾아와서 패퇴할 때까지 평양정치보위부 제1과 직원들이 가족과 재산을 보호하였다.고의 부인은 3개월간 붉은 서울에서 여맹 위원장으로 뻔뻔한 활동을 전개하였다.고의 아들 흥천은 자진하여 의용군을 동네에서 색출하여 출동시켰다.그후 그는 정치보위부 명령에 의하여 잠복근무를 하다가 체포되었던 것이다.고흥천은 이것만이 아니다.종로4가에 있는 전매국에서 물자를 훔쳐 인민군에게 제공하였던 것이다.잠복 근무하다가 체포된 그는 일체의 죄상을 자백하였다.그는 자기 아버지 고희두는 당원이었다고 진술하였다. 고희두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말인가.이와같은 확고부동한 증거물을 파악했다.사실 그가 너무나 표면에서는 민국에 협력하는 인물이기에 이와같은 증거가 속속 나타났을 때에는 우리들은 적지않이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그는 종로구책이라는 가장 중요한 자리에 숨어있던 인물이다.그러기에 우리들은 그를 구속하였던 것이다.적색분자는 대한민국의 땅위에서 그리고 전지구상에서 말살해야 하는 것이다.
  • 경제특구내 외국 기업/중,「법인세 혜택」 지속

    【북경 AFP 연합】 중국 경제특구내의 외국투자기업들은 내년도에도 법인세 우대혜택을 받게될 것이라고 중국 국무원 특구판공실이 11일 밝혔다. 특구판공실의 류 시아오화 주임은 5개 경제특구내 외국투자기업들에 부과되는 15%의 법인세율이 내년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정부의 궁극적 목표는 특구의 법인세를 현재 33%인 일반세율과 같게 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자본재 수입관세 면제등 현재 특구내 기업들에 제공하는 다른 특혜정책들이 이르면 내년 1월1일부터 폐지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서는 확인도,부인도 하지 않았다. 중국은 조만간 특구 외국투자기업들에 대한 특혜정책을 전면 재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전문가들은 그렇게 될 경우 특구의 「특수」 지위가 사실상 없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 강주석 한방 서울·북경 표정

    ◎간단한 환영행사뒤 숙소 신라호텔로 직행/이붕 총리 등 당정고위인사와 일일이 악수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은 13일 하오 6시40분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간단한 환영행사를 가진 뒤 숙소인 신라호텔로 직행. 강주석 내외는 이날 문동석 외무부의전장의 안내로 특별기에서 내린뒤 기다리고 있던 공로명 외무부장관 내외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인사. 이어 강주석은 1백여명의 수행원 가운데 각료급 인사들을 공외무장관에게 소개한뒤 도열병을 통과해 문의전장의 안내로 우리측 환영인사들과 인사를 교환. 이때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나온 화동 2명이 강주석 내외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증정했고 장정연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측 환영인사를 강주석에게 소개. 강주석 내외는 귀빈용 승강기를 이용,1층 국빈 대기실로 이동한뒤 공항환영행사를 10여분만에 마치고 승용차편으로 신라호텔로 출발. 이날 공항환영행사에는 우리측에서 공외무장관과 황병태 주중대사 내외·문의전장·김하중 아태국장 등 7명이,중국측에서 장대사 내외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 17명이 참석. ○…중국 국가원수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방문하는 강택민 국가주석은 13일 하오 방한길에 오르기에 앞서 북경시내 인민대회당에서 베풀어진 환송식에 참석,환송 나온 이붕총리를 비롯한 당정고위지도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등 시종 밝은 표정. 강주석은 이날 하오 3시25분(한국시간 하오4시25분) 부인 왕야평 여사를 대동하고 인민대회당 로비에 도열해 있던 이총리를 포함한 이서환 전국정협주석,유화청 당중앙군사위 부주석,영의인 국가부주석,전기운 전인대 상무부위원장,온가보 당중앙정치국 후보위원겸 중앙서기처서기,나간 국무위원겸 국무원 비서장,유화추 국무원 외사판공실주임 등과 일일이 작별인사. 시작한지 5분여만에 간단히 끝난 이날 환송식에서 강주석과 이총리는 특히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채 악수를 나눈뒤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해 주는등 「다정한」 사이임을 강조. 출국하는 인사들로는 강주석과 왕여사에 이어 전기침부총리부부,정관근 당중앙정치국위원,왕충우 경제무역위주임,고수련 화학공업부장,오의 대외무역경제협력부장,당가선 외교부부부장등이 뒤를 따르면서 이총리등과 출국인사를 나눴다.
  • 「강체제」의 기반(한·중 새 시대:2)

    ◎산동성군맥·상해방 관료 강택민 주석 받치는 두 기둥/장성 7할 차지… 9월 친강파 대거 부상­산동파/오방국·황국 등 테크노 그룹 실세 구축­상해방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월18일,모 해군기지를 시찰한뒤 함정에 올라,대규모 해상 군사훈련을 참관했다.이 자리에는 정치국 상무위원겸 중앙군사위원회(중앙군위)부주석 유화청,중앙군위 부주석겸 총참모장 장만년,중앙군위 부주석 장진,지호전 국방부장,총정치주임 우영파,총후근부 부장 전전유등 중국인민해방군의 수뇌 전부가 배석했다. 이날 행사는 지난 83년 등소평이 보수파를 밀어내고 실권 장악뒤 중앙군위 주석신분으로 화북지방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참관,군 최고통수권자임을 대내외에 과시한것과 비교됐다.이날 강택민은 당 총서기,국가주석,중앙군위 주석의 신분으로 모든 군실력자들을 이끌고 군 최고통수권자임을 과시했다. 강택민이 주요 당직자로 중앙무대에 오른것은 13기 정치국위원겸 상해서기로 선출된 87년11월.정치국원이 된지 2년만에 상무위원을 거치지도 않고 몇단계 건너뛰어 실질적 최고지도자인 공산당 총서기겸 상무위원으로 등용된것은 파격이었다. 최고실권자 등소평의 강력한 천거가 있었음은 물론이다.강택민은 총서기가 된뒤 5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군 최고실권자인 군사위 주석이 됐고 93년초 군부의 원로인 양상곤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에 취임했다.유례없는 주요 공직의 겸임에도 군부와 북경 중앙무대에 기반및 경험이 없는 기술관료출신이란 점때문에 「과도기적 인물」이란 평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강은 국무원에서 이붕총리의 역할을 존중하는등 주위세력을 포용하는 원만한 방법으로 6년동안 강택민­이붕체제를 무난히 끌어왔다.특히 강은 92년 당대회에서 군부내 양상곤·양백빙 추종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지난 9월에는 자신의 군부내 기반인 장만년 총참모장,지호 전국방부장,왕서림 총정치부부주임겸 등소평 관공실주임을 군사위 부주석으로 진입시키는데 성공하는등 군부내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했다. 왕서림,지호전,장만년 세사람은 모두 등소평직계인물이자 산동성출신의 군부실력자다.중국인민해방군 장성의 7할을 차지하는 산동성 출신의 장성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는 점은 체제안정 요인으로 꼽힌다.정부 각 요직에 상해시,절강성,강소성,안휘성등 화동지역 출신의 상해그룹(상해방)으로 불리는 친강적인 기술관료그룹도 현 체제의 한 기둥을 이루고 있다. 이때문에 산동성 출신의 군부와 상해지역 출신의 기술관료들의 결합·연합이 현 체제를 지탱해가고 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특히 지난 9월 왕서림의 정치 무대로의 전면등장은 산동성출신 군사인맥과 강택민등의 상해출신의 기술관료의 결합을 더욱 단단하게 한것으로 풀이된다. 상해출신의 관료들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부총리로 승진한 오방국,지난해말 정치국원겸 서기처서기로 진출한 황국등을 비롯,전진을 계속하고 있다.오는 안휘성 태생으로 상해시당서기를 지냈고 황국은 절강성 태생으로 상해시 시장을 지냈다. 중국경제의 사령탑이자 차기 총리물망에 오르는 주용기 부총리는 호남성 태생이지만 강택민이 물려준 상해시장과 상해시 당서기직을 바탕으로 중앙무대에 진출했다.교석전인대의장과 전기침 부총리겸외교부장은 강택민과 상해에서 학생운동을 지휘하던 인연이 있다.교는 절강성,전은 강소성 태생이다. 정관근 선전부장겸 수석 정치국원은 강소성출신으로 강택민과 같은 상해교통대학을 나왔다.정부장은 등소평의 최고 측근중의 한사람이기도 하다.이번에 강주석을 수행하고 한국에 가는 회경홍중공중앙위 판공실주임도 상해시부서기 등을 지낸 상해그룹의 일원이다. 이밖에도 강택민이 기술관료로서 여러 직책을 거치면서 맺은 인맥은 체제안정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여풍당조직부장,파충염 무장경찰대사령관,유길 사회과학원부원장,주서금 인민일보 부총편집인등도 강택민의 상해시절 측근들로서 각계에서 체제의 안정을 떠받드는 상해그룹의 일원이다. 이러한 상해그룹은 출생지뿐 아니라 함께 근무한 근무경력등도 중요한 요소로 들어간다는데 특징이 있다.상해그룹은 대만­중국관계를 전담하는 해협양안관계협회 왕도함 회장과 단군의전중앙고문위원회 상무위원등 원로들이 후견인이 되어 당과 군의 원로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안정세력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강주석 한국특파원과 일문일답/건설·기계 분야 한국기업 진출 환영/내년 전면 핵금 선포되면 중도 이행 강택민 주석은 13일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공식방문을 앞두고 인민대회당에서 북경주재 한국특파원들과 40여분간의 회견을 가졌다.다음은 일문일답.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주요 의제는. ▲두나라의 협력은 수교이래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었다.현재 특별한 현안은 없다.김영삼대통령과 두나라 관계 심화·확대및 공통적인 국제관심사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양국의 관계발전은 두나라 이익과 국민의 염원에 부합될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평화의 발전에도 유리하다.본인은 이번 방한이 이런 측면에서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정·평화유지를 위해 두나라 국방장관 상호방문등 군사교류추진 의사는. ▲두나라 관계는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고 각 부문간 교류발전도 고루 활발하다.각계의 수요및 특성에 따라 교류의 활발성의 차별,선후의 차별이 있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과 우호협조및 상호원조조약 가운데 전쟁발발시 자동군사개입조항을 삭제키로 했다.중국과 북한사이에 체결된 우호협력및 상호원조조약이 내년으로 만료된다.그후의 조치는. ▲이 조약들은 쌍방이 각 분야에서의 협조를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특별히 어느 특정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중·조양국의 우호협조관계 유지는 한반도의 평화·안정에 유리하다. ­한국등 아시아국가들은 중국의 핵실험이 북한 핵무기개발및 일본의 핵개발의도를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하는데. ▲중국이 갖고 있는 소량의 핵무기는 자위용이며 동북아등 그 어느나라를 겨냥한 것은 아니다.96년 핵실험 전면금지조약이 선포되면 그것을 따를 것이다.중국은 핵무기 전면금지조약의 체결을 통해 핵전쟁의 위험을 뿌리로부터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등소평선생의 건강은 어떠한가.그리고 강주석을 중심으로 확립된 중국 제3세대 지도체제는 앞으로 국정추진에 어떤 구상과 목표를 갖고 있으며 개혁·개방은 계속될 것인가. ▲등소평 동지는 지난8월 91세 생일을 유쾌하게 지내셨다.지금 아주 건강하다.등소평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제2세대 지도집단이 이룩해 놓은 개혁·개방과 건설의 길을 우리세대의 제3세대 영도집단은 계속 추진해 나가고 있다.우리는 이것을 확고부동하게 지켜나갈 것이다.개혁의 심화,안정유지,개방확대,발전촉진등의 목표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에 입각,현대화를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다.개혁·개방없이 지속발전도 없다는 것은 중앙지도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오는 2000년까지 진행되는 9·5계획기간중 한국기업의 중국내 참여를 보다 확대시킬 방안은 무엇인가. ▲한국기업들의 건설·기계·화학·플랜트·환경 및 기간산업 분야에서의 참여를 환영한다.또 새로운 에너지개발,자원공동개발 분야의 협력도 긍정적으로 본다.
  • 내실 경영·6공 실세 지원 “상승작용”/신한은 고속성장 배경

    ◎나 행장,이원조·이용만씨와 밀접… 특혜설 노태우 전대통령의 4천억원 비자금설과 관련,4백85억원의 은닉처로 드러난 신한은행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지난 해 수신고 10조원을 돌파,창사 13년만에 금융재벌로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배경도 세인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6공(91년)시절 신한은행장으로 취임,지금까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응찬 행장도 이번 비자금 파동을 계기로 뉴스의 초점으로 부각됐다.더욱이 나행장이 서소문지점에 입금된 4백억원대 차명계좌 개설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은행에 대한 6공의 특혜설이 더욱 꼬리를 물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희건씨(신한은행 회장)등 재일교포 실업인들이 자금을 모아 82년 7월7일 자본금 2백50억원,8개 점포로 출발했다.그 후 금융계에선 파격 경영이란 소리를 들으며 6대 시중은행을 맹추격했다.특히 6공시절인 88년과 89년 3차례에 걸쳐 납입자본금을 4천3백억원으로 늘리면서 금융재벌로 급부상하는 발판을 마련했다.이어 90년에는 신한생명보험,91년에는 신한리스와 신한시스템을 설립,화려한 금융재벌로 등장했다.그 결과 지난 6월말 현재 점포수 1백91개,총수신 16조5천억원,납입자본금 6천1백60억원,자기 자본금 2조원으로 급성장했다. 금융계에서는 신한은행의 이같은 고속성장에 대해 은행자체의 참신한 경영기법이 큰 힘이 됐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고있다.지난 해 국내은행 가운데 최고의 당기순이익(1천5백32억원)을 냈고 세계 양대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사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사로부터 국내 민간 기업중 최고의 신용평가 등급을 받는 등 내실을 다져왔다. 그러나 정치바람이 거센 우리 금융계 풍토에서 과연 특혜 없이 내실 경영만으로 초고속 성장이 가능했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이런 입장에 선 사람들은 TK의 핵심으로 6공의 금융계 황제로 불리는 이원조씨,재무장관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던 이용만씨와 나행장의 끈끈한 관계에 주목한다.이용만씨가 신한은행장(85∼88년)재직시 상무로 근무하던 나행장은 이원조씨와 연결돼 6공의 정치자금을 관리하게 됐다는 주장이다.이용만씨가 신한은행장을 지낼때 이원조씨가 은행감독원장(86∼88년)을 역임했고 이용만씨도 90년부터 은행감독원장을 지내면서 이 세사람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는 것이다. TK(경북 상주)출신인 나행장이 고졸 출신(선린상고)으로 학연이 중시되는 금융계에서 91년 은행장의 자리에 오른 것도 이원조씨와 이용만씨 등 6공실세들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신한은행이 이원조씨 등 6공 인물들과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은행의 발전에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남다른 경영능력으로 금융계의 떠오르는 별로 통했던 신한은행이 비자금의 온상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어떻게 떨치고 일어설지 주목된다.
  • 중,내륙 9개 도시 곧 개방/국무원 판공실

    ◎외국자본 유치… 동부와 경제 격차 해소 【북경 AFP 연합】 중국은 동부와 서부지역간의 경제발전 격차를 좁히기 위해 더많은 내륙 도시를 「곧」 개방,외국회사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인 것으로 차이나 데일리 비즈니스 위클리가 15일 보도했다. 그러나 국무원 특구판공실의 호평 주임은 정부는 「경제·기술 개발지구」(ETDZS)를 더이상 승인할 움직임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비즈니스 위클리는 전했다. 내륙으로 둘러싸인 중국 서부 각 성들은 중앙정부에 대해 부유한 연안도시에만 투자 우선순위를 두는 정책을 중단하고 내륙 도시도 개방하고 ETDZS를 설치해주도록 오래전부터 요구했왔다. 내륙 지역은 중국 전체 영토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으나 3백59대 도시중 40개 도시만이 외국 투자에 개방돼 있다. 호평 주임은 협서·사천·귀주·흑용강·광서·신강성 등의 9개 도시가 『곧 개방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중국 내륙 지역의 모든 성들이 중앙정부 차원의 ETDZS 설치를 신청해 놓고 있다.
  • 등,군인사에 영향력/중 새 국방에 우영파 거명/홍콩지

    ◎군수뇌부 후속인사 곧 단행 【홍콩 연합】 중국 인민해방군의 새 국방부장에 우영파 총정치부주임(64)이,새 총참모장에 심양군구 사령원(사령관)에서 막 승진한 왕극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64)이,새 총정치부 주임에 현부주임이자 등소평 판공실 주임인 왕서림(66)이 각각 임명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홍콩의 중국어 신문 명보가 29일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는 당중앙군사위 확대개편후 해방군 고위지도부에 다시 후속인사가 조만간 진행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일부 분석가들은 왕서림이 총정치부 주임 대신 국방부장에 임명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한편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91)은 순조로운 권력 이양을 보장하기 위해 인민해방군의 최신 인사이동에 깊이 개입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스탠더드가 이날자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강택민 당총서기와 이붕 총리는 8월 한달간 열린 북대하회의 후 9월 초 등을 예방했으며 등은 주요 결정들과 관련하여 개인적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소식통들은 인용,보도했다.
  • 「강택민 체제」 대폭 강화/중국 공산당 14기 5중전회 결산

    ◎강,산동방 실세들 포용 군부 장악/경제개혁 지속… 21세기 비전 제시 28일 폐막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14기 5차회의(5중전회)는 강택민체제 다지기와 성장및 효율위주의 경제운영노선등 개혁개방 강화를 천명한 것으로 요약된다. 특히 효율 중시와 성장위주의 경제운영정책을 결정한 것은 개혁을 강조하는 인사들의 목소리가 성장의 역효과를 주장하는 보수파의 견제를 물리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이같은 고속성장의 지속과 개혁강화의 배경에는 등소평의 영향력이 잔존하고 있다. 특히 등소평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돼 가는 권력전환기적인 미묘한 시점에서 이루어진 군부내 실질 핵심기구인 중앙군사위 인사는 강택민의 입지,강화를 위한 핵심조치로 해석된다. 이번 회의이전부터 강택민 주석은 자신의 군부내 기반인 장만년 총참모장,지호전국방부장의 중앙군사위 부주석직 진입을 추진해왔다.이 인사와 함께 왕서림 총정치부 부주임겸 등판공실주임의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직으로 전면등장은 중국인민해방군의 70%가량을 점하고 산동성출신 군사인맥과 강택민등의 상해출신의 기술관료 결합이 더욱 단단해진 것으로 풀이된다.왕서림,지호전,장만년 세사람은 모두 등소평직계인물이자 산동성출신의 군부 실력자들이다.왕서림은 당기율위원회 서기로 군부내 인사처벌권을 가져왔으나 전면에 등장하지는 못했다.이같은 점은 등소평이 사망하더라도 한동안 강택민을 정점으로한 지도부의 안정확보를 점치게 한다. 진희동전 북경시 서기의 정치국원직등 모든 공직의 해임 역시 강의 반대세력에 대한 경고로서 「강체제」강화로 보인다.이같은 인사결정은 당을 위한 세대교체와 부패일소 운동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이같은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또 당과 군의 강측근세력과 세대교체를 위한 후속인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효율제고를 경제운용의 핵심으로 삼아 국민경제를 괘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국유개혁등 현대기업제도를 확립하겠다는 발표는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경제개혁은 가속화시켜 나가겠다는 개혁지향적인 의지로 풀이된다. 「9·5계획에대한 당 중앙의 계획및 2010년까지의 발전계획에 대한 건의」에 대한 통과를 통해 2000년까지 80년 국민총생산량의 4배,2010년까지 2000년의 2배를 목표로 삼은 것에서도 급속한 경제성장이 필요하다는 개혁파의 목소리가 반영돼 있는 이번 회의의 성격을 상징한다.
  • 중 군사위 수뇌부 개편/장만년·지호전 부주석 승인/5중전회 폐막

    ◎왕서림·왕극 중앙군사위원 임명… 진희동 해임 【북경=이석우 특파원】 중국 공산당은 28일 북경시의 경제부정사건에 연루된 진희동 당중앙정치국위원(전 북경시당서기)을 정치국위원및 당중앙위원직에서 해임하고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대표직의 파면을 건의하는 한편 그의 부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계속키로 결정했다. 중국 공산당은 이날 하오 4일간의 14기 당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4기 5중전회)를 마친 뒤 발표한 성명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장만년 인민해방군 총참모장과 지호전 국방부장을 당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승진시키고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부주임겸 등소평 판공실주임인 왕서림과 왕극을 중앙군사위위원에 임명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국 인민해방군의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당중앙군사위 부주석은 유화청,장진부주석과 함께 4명으로 늘어났다. 5중전회는 대대만정책과 관련,「1국가 2제도」의 기존방침을 재확인하면서 조국의 통일대업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5중전회는 또 이번 회의에서 「제9차 국민경제및 사회발전 5개년 계획(1996∼2000년) 9·5계획및 2010년 장기목표 건의」를 채택하고 오는 2000년까지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릴 것을 다짐했다.
  • 중,대만 전담기구 확대/이붕·교석 등 고위인사 추가

    ◎홍콩연합보 보도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 중앙은 당내 대만관계 최고위기구인 「중앙대 대만영도소조(조장 강택민)」를 대폭 확대 개편해 날로 복잡해지고있는 대만문제를 전면적으로 처리키로 결정했다고 홍콩 연합보가 25일 북경발로 크게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 이붕총리,전인대(의회)에서 교석상무 위원장(국회의장),인민정치 협상회의에서 이서환 주석,인민해방군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인 유화청·장진 등 모두 5명이 새로 이 소조에 포함됐다. 당중앙의 이같은 결정은 대만문제의 중요성과 긴박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당은 대만문제를 최중대사로 삼기 시작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지금까지 대만영도소조는 강택민 당총서기,전기침 외교부장,왕도함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왕조국 당중앙통일전선공작부장겸 국무원대만사무판공실 주임,고춘왕 국가안전부장,웅광해 해방군 총참모부 부장조리(조이)등 6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거물급들을 대거 포함한 확대개편으로 11명이 된 새 영도소조에서는 해방군 대표가 중앙군사위 주석 강택민까지 합쳐4명으로 가장 많다.
  • 중 군인사·훈련/등이 축소 명령

    【홍콩 연합】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91)은 현재 진행중인 인민해방군 고위장성들의 인사이동과 막 끝난 해방군의 대만부근 제2차 군사훈련을 수정하라는 명령을 최근 하달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이스턴 익스프레스가 25일 보도했다. 중국소식통들은 24일 등소평이 하달한 수정 명령은 아무런 논의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으며 강택민 당총서기가 자신의 권력기반과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계획한 고위장성들의 인사이동과 제2차 군사훈련의 규모를 축소시켰다고 말했다. 이는 등소평이 해방군에 대해 계속적인 영향력을 가지고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시라고 이 신문은 말했다. 강택민은 고위장군들의 인사이동과 관련,지호전 국방부장과 장만년총참모장을 중앙군사위원회로 승진시키려 했으나 등소평의 동의가 없고 등소평 판공실의 거부로 무산됐다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 자금출처 물었더니 “전경환씨 측근”­서씨/4천억설 조사/진술내용

    ◎전직 대통령 지칭한 사실 없다­서/「카지노 돈」 말못해 송씨와 친한 전씨 들먹­김/「국가에 절반 헌납」 제의 말한적 없다­송 전직 대통령의 4천억원대 가차명계좌 보유설의 단초를 제공한 서석재 전총무처장관과 서전장관에게 가차명예금의 실명화를 부탁했던 김일창씨와 송석린씨도 9일 검찰조사를 받음으로써 이 사건 진상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검찰조사 결과 서전장관이 들었다는 4천억원은 「검은 돈」 1천억원이 전달과정에서 3천억원이나 부풀려져 전달되고 서전장관은 이 돈에 대해 미심쩍어 하면서도 청와대 고위층에게 문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의 핵심 「증인」격인 이들 세사람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토대로 서장관이 이같은 발언을 하게 된 경위를 살펴본다. ○서석재씨 ▲기자회식 발언경위=지난 1일 하오7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정식집에서 민자당 출입기자 7명과 회식을 했다.순전히 사적인 모임이었다. 이 자리에서 『과거권력의 핵심 실력자가 4천억원의 돈을 가차명 상태로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2천억원을 국가에 헌납하면 자금출처 조사를 받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부탁받았다』는 말을 기자들에게 했다. 그러자 기자들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가운데 누구냐』고 묻길래 권력핵심의 측근이라고만 했다.전직대통령이라고 지칭한 사실은 없다. ▲실명전환을 부탁받은 사실=지난달 초순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김일창씨가 총무처장관실로 찾아와 『과거 정권을 잡았던 사람의 「검은 돈」인데 자금출처조사를 받지 않고 실명전환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또다시 자금의 출처를 물었다.김씨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의 측근이 의사를 전해왔다』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그래서 5공 정권과 관련된 돈일 것이라는 생각을 혼자서 했었다. 김씨는 또 『현재 4천억원이 시중 모은행의 가차명계좌에 예금돼 있다』『실명전환을 하고 자금출처 조사를 받지 않게 해주면 이가운데 2천억원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실제로 예금이 돼 있는지 알아 보지는 않았다. ▲한이헌 경제수석 등에 관련된 부분=이로부터 며칠 뒤 청와대에서 오찬이 있었다.식사를 마치고 서로 헤어지면서 한경제수석에게 『누가 4천억원을 실명화 해야 하는데 그 대가로 2천억원을 내겠다는 의향이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한수석이 『말도 안된다』고 말해 빙긋이 웃고 말았다. 기자들과의 회식에서는 추경석 국세청장에게도 물어 보았다고 했는데 이는 4천억원 가차명계좌의 실명전환 부탁을 받은 사실을 기자들에게 강조하는 의미에서 추국세청장을 거론했었다.실제로 물어본 적은 없었다. ○김일창씨 송석린씨로부터 『빠찡꼬 또는 카지노의 관련자금 1천억원이 비실명화 상태에 있는데 실명화를 할 수 없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서전장관에게 이 돈의 실명화를 부탁할 때는 차마 빠찡꼬·카지노에서 나온 돈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그래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전경환씨의 측근이 부탁한 것』으로 전달했다. 이는 송씨가 회장으로 있는 배드민턴 서울시연합회에 전경환씨가 고문으로 있었고 둘은 일주일에 2∼3번이나 만날정도로 각별히 친한 사이였다는 점에 착상했다. 송씨는 1천억원을 부탁했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내가 듣기로는 분명히 4천억원이라고 들어 서전장관에게 4천억원이라고 말했다. ○송석린씨 올봄 한약건재상을 하는 이우채씨로부터 카지노 업계 또는 슬롯머신 업계의 실력자가 1천억원의 비실명예금을 변칙 전환하는 문제를 타진해 와 이를 김씨에게 전했다.김씨에게 전할 때 1천억원이 모은행에 입금돼 있다는 말을 했지만 4천억원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또 절반을 국가에 헌납하면 자금추적을 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한 바 없다. ◎「경위서 내용」/김씨가 5공실력자 돈 실명전환 타진/“기회오면 문제 짚고 넘어가겠다” 생각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이 지난 8일 검찰에 제출한 「경위서」의 전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8월 1일 하오 7시쯤 인사동의 한정식집에서 민자당 출입기자 7명과 본인 등 9명이 만나 함께 식사했다. 이 자리에서 『나의 소신은 15대 총선에 출마,지역구민들에게 심판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음 화제는 6·27 지자제선거 결과에 대한 얘기로 옮겨졌고 『이번 선거는 과거의 금권 관권 선거에 비한다면 매우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자들이 『그러나 중간평가의 의미도 있는 이번 선거에서 지역감정문제가 그대로 반영됐고 이런 점에서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말해 『솔직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과거정권에 비해 문민정부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정말로 깨끗하고 공정했다』고 문민정부의 도덕성과 공정성을 강조했다.『깨끗한 선거를 치루기 위해 애쓴 문민정부의 참뜻을 이해하기 바란다.과거 정권의 부도덕성과 부정부패에 대한 시중의 루머를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문제의 수천억원대 가차명 계좌설을 얘기하게 됐다. 내가 잘 아는 기업인한테 들은 이야기다.그 사람 역시 자기가 잘 아는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그는 『과거정권의 실력자였던 사람이 수천억원의 가차명 계좌를 갖고 있는데 이의 처리문제로 고심하고 있다.혹시 이 자금중절반을 국가에 헌납하면 자금 출처를 면제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는 해괴한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이말을 하자 기자들이 『그 사람이 누구냐』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중 한사람이 아니냐』고 묻길래 『그것은 나도 모른다.그러나 그 사람의 말대로 과거 정권의 실력자가 아니겠느냐』고 말한 뒤 『이런 얘기 자체가 과거 정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얘기가 오간 뒤 자연스럽게 정치 얘기와 각자의 휴가계획 등으로 옮겨졌고 밤 9시쯤 헤어졌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3일자 시내판에서 「전직 대통령중 한 사람 4천억 비자금」이라는 제목으로 식사모임에서의 발언내용을 보도했다.내 이름을 명시한 기사에서 내가 언급하지 않은 전·노 전대통령의 이름까지 거명,나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판단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할까도 생각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이 신문 보도에 대해 『항간의 소문을 전달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파문은 더욱 확산됐고 「4천억원 계좌설」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그대로밝히는 것이 개혁에 도움이 된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했다. 당시 저녁식사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언급한 「잘 아는 기업인」이란 평소 친분이 있던 김일창씨이다. 김씨는 자신도 들은 이야기라면서 『5공의 실력자가 수천억원의 계좌를 갖고 있는데 이를 놓고 고심중이다.이 돈의 절반을 국가에 헌납하면 자금추적을 피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왔다고 나에게 말했다.
  • “천안문 희생자 5백명 넘는다”/전인대 홍콩 대표

    ◎중 발표보다 1백73명 많아 【홍콩 연합】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홍콩대표인 왕민강은 『89년6월4일 천안문사태로 인한 사망자수는 5백명이상이라고 이서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주석이 직접 밝혔다』고 4일 홍콩에서 처음으로 언론계에 공개했다. 이는 중국정부가 지금까지 공식발표한 진압에 나섰던 인민해방군 병사 14명을 포함한 3백27명의 사망자수보다 최소한 1백73명을 능가하는 수치이다. 왕씨는 천안문사태후 자신을 포함,홍콩의 상공업계대표 8명이 89년8월 중국정부의 초청으로 북경을 방문해 이서환 당시 정치국상무위원과 국무원항오판공실 관리를 예방했으며 이서환은 이때 천안문사태 경과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이같은 사망자수를 직접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당시 함께 북경을 갔던 홍콩 상공업계대표들에는 정가순,나강서,왕영상,주안교,왕영창 등이 포함돼 있다고 왕씨는 밝혔다. 친중국계 인사인 왕씨는 이서환이 중국이 사회안정을 위해 진압했다고 정당성을 옹호했으나 중국정부가 과거에 이와 유사한 사건들을 처리한 경험이 없었음도 솔직하게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서환은 중국정부가 진압에 나선 또다른 이유는 중국이 당시 소련과 동구권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목격하고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고 그는 전했다.
  • 중­대만 직항 “올 가을 성사”/대만 경제일보 보도

    【대북 로이터 AFP 연합】 대만과 중국의 선박회사들은 중국당국의 불허로 연기되고 있는 양안간 직접항해를 오는 가을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중국당국에 허가를 요청키로 했다고 대만언론들이 4일 보도했다. 대만의 중국시보는 이날 중국의 대만사무판공실 주임 겸 해협해운교류협회 회장인 맹광거를 비롯한 중국 선박회사대표들이 홍콩에서 대만 대표들과 회담을 갖고 난뒤 중국당국에 직항을 허용토록 촉구키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대만 경제일보는 맹 회장의 말을 인용,오는 가을쯤 양안간 첫번째 직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 강택민,등 판공실 장악/중 최고지도자 관련정보 직접 통제

    【홍콩 연합】 중국의 강택민 당총서기겸 국가주석이 지금까지 감히 손대지 못했던 등소평 판공실을 현재 완전히 장악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중국소식통들을 인용,27일 북경발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최근까지 왕서림 대장(65)이 이 판공실을 관리하며 등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접근과 이 최고지도자에 대한 정보를 통제해 왔으나,지금은 이 판공실로 오가는 모든 연락이 반드시 강택민을 거쳐야만 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소식통들은 강(68)이 등(90)의 건강악화에 따라 왕서림의 영향력이 약화되고,등의 자녀 5명의 영향력을 통제하기 위해 이 판공실을 자신이 직접 장악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 소식통은 강은 친미적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등의 딸 등용 (45)이 사전승인도 없이 미 뉴욕 타임스에 수개월전 등의 건강에 대해 언급한 이후 이 판공실을 장악하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 중,주미대사 소환 검토/미·대만 새달 차관급 경제회의

    ◎대만총통 방미항의 보복/교류취소·미기업 제재 【홍콩 연합】 중국은 미국이 이등휘 대만총통의 입국을 허용키로 함에 따라 전기침 외교부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고 미국에 대한 구체적 보복조치들을 이미 마련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스탠더드가 북경소식통들을 인용,25일 보도했다. 이 보복조치들에는 ▲중·미간 교류계획의 취소 ▲미무역회사들에 대한 제재 ▲미기업들이 참가하는 주요 산업기반시설 프로젝트들에 대한 승인 연기 ▲미국주재 중국대사의 본국소환 등이 포함돼 있다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이같은 조치들은 전외교부장 주재하에 외교부,대외무역경제합작부,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등 모두 12개 정부부서들이 참석한 가운데 22일 북경에서 개최된 대책회의에서 마련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한 중국 외교정책 전문가는 이 조치들이 앞으로 수일간에 걸쳐 중국의 요구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보아가며 선택될 것이라고 말했다. ◎79년 단교이후 처음 【도쿄 연합】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을 둘러싸고 미·중 관계의 악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미국과 대만은 오는 6월하순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차관급 경제협의를 갖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대만당국자의 말을 인용,25일 보도했다. 이번 경제협의는 79년 미·중 국교정상화에 따른 미국과 대만간의 단교 이후 처음으로 양국간에 교섭 파이프가 마련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6월초 이총통의 미국방문과 더불어 대만실무외교의 성과로 기록될 만한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 홍콩 토지임차권/중,“반환후도 보장”/연장계약도 허용

    【홍콩 AFP 연합】 중국 정부는 오는 97년 홍콩 반환 이후에도 홍콩의 토지를 임차한 투자자들의 임차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중국의 한 고위 관리가 18일 밝혔다. 노평 국무원 홍콩 마카오판공실 주임은 이날 홍콩의 한 경제인 세미나에서 오는97년 이후 홍콩의 준헌법으로 기능하는 기본법이 반환 후 50년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 임차에 있어서는 50년간의 시한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주임은 2047년 이후에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연장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토지 임차가 홍콩의 자본주의체제와 자동적으로 연계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 불붙은 국경무역(운남성을 가다:4)

    ◎중·월전쟁터가 무역주어심지 탈바꿈/전체 교역 9억달러… 절반이 국경서/주변국서 중 화폐 통용… 자유왕래도/부쩍 늘어난 「밀업국 베트남 윤락녀」 새 골칫거리로 중국 운남성의 성도 곤명에서 남부 국경도시 하구까지는 지금도 19세기말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건설한 협궤열차가 다닌다. 곤명으로부터 험준한 산과 낭만적인 시골 정취를 가르며 달려온 협궤열차의 종착역 하구는 강을 경계로 베트남의 라오차이시와 마주하고 있는 국경무역의 거점 도시다.하구는 20세기초부터 인도차이나 북부의 교역 중심지였으며 협궤열차는 국경무역의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하구와 베트남의 라오차이시 사이에는 난지흐어라고 불리는 강이 흐르고 있다.그 위에는 폭5m,길이12m의 「화해의 다리」가 놓여 있다.지난 79년 중·월전쟁때 폭격으로 부서진 것을 두나라 관계가 정상화하면서 90년 두나라 정부가 비용을 반반씩 부담해 새로 건설한 것이다. ○각국 상인들로 붐벼 중·월간의 전쟁터였던 이곳은 화해의 바람이 불면서 활기찬 국경무역의 시장터로 바뀌었다.통행증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 자유 왕래가 가능하다.하구와 라오차이시는 베트남·중국 등의 상인들로 붐빈다. 노남시와 하구를 오가며 식료품 중계상을 하는 왕영휘씨(30)는 『매주 토·일요일등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하구와 라오차이시 안팎으로 수백m 이어진 장이 선다』고 말한다.그의 월수입은 5천∼7천위엔.공무원 평균수입의 10여배다.의류,공예품과 군화·군대용 모포등 군용물품,생활용품을 사고 판다.트럭을 몰고 내지에서 오는 도매상 사이의 전자제품,농산물거래도 이루어진다.중국제 트랙터등 농기계류와 전자제품은 베트남과 미얀마상인의 인기품목이다. 국경무역은 하구와 라오차이시만은 아니다.베트남·라오스·미얀마등과 4천60㎞를 맞대고 있는 운남의 국경도시들은 동남아에 몰아닥친 경제개발의 물결속에 부쩍 증가한 인적 교류와 국경무역으로 달아오르고 있다.베트남과 미얀마·라오스북부지역에서는 중국화폐인 런민삐가 통용된다. 지난해 국경무역 총액은 34억위엔(약3천4백억원).농기계류,방직제품,화공상품,식품등이 베트남·미얀마로 나가고 목재,약재,축산품,곡물들이 이들 나라로부터 들어온다.운남성의 유경부성장은 『91년부터 국경무역이 해마다 20%이상씩 늘고 있으며 80년보다 34배(금액기준)가 증가했다』고 말했다.지난해 운남성의 전체무역액이 9억달러 가량.전체무역량의 절반을 동남아와의 국경무역이 차지한 셈이다.자동차,화학공업등 운남성의 주요 육성산업이 동남아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유부성장의 설명에서도 동남아가 중국의 수출시장이 되고 있으며 중국의 영향력 증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통관절차를 밟지않는 밀무역이 공식무역을 압도한다는 것이 이곳의 중론이다.국도를 따라 차를 달리다 보면 흔히 마주치는 일본의 신형 「도요타 크라운」차의 상당수가 월남과 미얀마에서 들어오는 밀수 차다.운남에서 눈에 띄는 수십여대의 에스페로 등 대우차량도 역시 1백80%의 관세를 피해 들어온 「조우쓰」(주사·밀수)라고 성 정부관계자는 귀띔한다. ○해마다 20%씩 증가 국경도시와 곤명을 잇는 국도에선 때때로 같은 종류의 신형 일제차들이 5∼6대씩 줄지어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역시 「조우쓰」다.자동차와 함께 밀무역의 대표적인 품목은 마약과 총기류.중국공안부는 지난 2년동안 압수한 39만여정의 불법무기류 가운데 미얀마와 베트남에서 유입되는 것이 10만정 이상은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불법입국문제도 밀무역과 함께 성정부의 골칫거리다.지난 2년동안 운남성과 인근 광서성에서 베트남으로 송환된 여성만도 2천5백여명.상당수는 윤락행위등을 하다 적발돼 보내졌다는 강보생공안국 부청장의 지적이다.국경지역의 중국인과 동남아인과의 통혼 붐도 교류의 열기를 증명한다. 아열대및 열대지역인 서쌍판납 등 운남 남부와 동남아 북부지역의 호랑이,코끼리,흰눈팔 긴원숭이등 희귀동물의 가죽과 상아,박제등이 국경무역의 품목 중 하나다. 육상교역의 증가와 함께 5천㎞의 강을 가진 운남성 정부와 동남아국가 사이의 물길을 이용한 무역의 교섭도 무르익고 있다.유경부성장은 『성 북부에서 인도차이나반도를 거쳐 남중국해로 뻗어있는 4천1백여㎞의 메콩강의 자유운항및 공동개발을 위해 수송·통신·전력등 6개분야76개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및 6개국 공동조사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자유통항을 위한 협의가 구체화 단계』라고 설명했다.2억2천만명의 운남∼동남아시장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만드는 구상이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차·총기류 밀무역 성 외사판공실 왕택처장은 『동남아와의 경제권형성과 관련,한국기업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지난달 금호그룹의 대리시등에 2백만달러규모의 농장건설 결정을 비롯,현대그룹과의 자동차부품공장 건설,대우그룹과의 곤명등지의 호텔건설 논의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성정부의 장고금처장은 『지난84년 운남성의 상품 유통량 가운데 70%가 반입품이고 30%가 반출품이었으나 10년만에 7대3으로 역전됐다』며 『운남은 동남아를 잇는 중국 서남부 경제의 대외무역창구로서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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