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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리케인 ‘도리안’에 초토화된 바하마

    허리케인 ‘도리안’에 초토화된 바하마

    카리브해 섬나라 바하마의 아바코제도가 3일(현지시간) 허리케인 ‘도리안’의 공습으로 초토화돼 있다. 도리안은 지난 1일 최고등급인 5등급의 위력을 지닌 채 바하마에 상륙해 이틀 가까이 머물며 유례없는 피해를 남겼다. 마빈 데임스 바하마 국가안보장관은 이날 “우리 인생에서 겪는 최악의 일”이라며 “불행히도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바하마 정부는 이날 최소 7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2등급으로 약화된 도리안은 미 남동부 해안에서 북상하고 있다. 아바코제도 로이터 연합뉴스
  • 허리케인 ‘도리안’에 초토화된 바하마

    허리케인 ‘도리안’에 초토화된 바하마

    카리브해 섬나라 바하마의 아바코제도가 3일(현지시간) 허리케인 ‘도리안’의 공습으로 초토화돼 있다. 도리안은 지난 1일 최고등급인 5등급의 위력을 지닌 채 바하마에 상륙해 이틀 가까이 머물며 유례없는 피해를 남겼다. 마빈 데임스 바하마 국가안보장관은 이날 “우리 인생에서 겪는 최악의 일”이라며 “불행히도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바하마 정부는 이날 최소 7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2등급으로 약화된 도리안은 미 남동부 해안에서 북상하고 있다. 아바코제도 로이터 연합뉴스
  • 왕이, 방북 때 김정은 10월 방중 요청한 듯

    “양당 지도자 합의대로 북중 협력 추진 金위원장 새 전략 목표 달성할 것 믿어” 북한을 방문 중인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리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 등을 만난 뒤 사흘간 방북 일정을 마치고 4일 귀국했다. 중국 외교부는 왕 국무위원이 이날 평양에서 리 부위원장과 만나 한반도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왕 국무위원은 이 자리에서 올해가 북중 수교 70주년임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양당 최고 지도자가 합의한 대로 북중 간 전통 우의를 발전시키고 각 영역의 우호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왕 국무위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조선노동당의 새 전략 노선이 북한의 이익에 부합하며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믿는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왕 국무위원이 김 위원장에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10월 중국 방문을 요청했을 가능성도 크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소식이 있으면 제때 발표하겠다”며 김 위원장과의 구체적인 만남이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을 꺼렸다. 왕 국무위원은 미국을 겨냥한 듯 “중국의 발전과 진흥은 대세이며 어떤 국가와 세력 그리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도 했다. 양측은 이날 북미 협상과 비핵화 협상에 대한 향후 대응 등을 논의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왕 국무위원은 전날 평안남도 안주시 소재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찾아 6·25전쟁 때 희생된 장병들을 추모했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으로 부른다. 미국에 맞서 조선(북한)을 도와준 전쟁이라는 뜻이다. 이 묘역에는 1950년 11월 벌어진 청천강 전투로 숨진 인민지원군 1156명의 유해가 안장됐다. 마오쩌둥(1893~1976) 중국 전 국가주석의 장남 마오안잉(1922~1950)도 이곳에 있다. 그는 중국군 총사령관 펑더화이(1898~1974)를 따라 북한에 갔다가 미군의 공습을 받고 사망했다. 이번 열사릉 방문은 두 나라의 우호를 공고하게 다지는 동시에 ‘공동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우디, 예멘반군 폭격…적십자 “100명 이상 사망”

    사우디, 예멘반군 폭격…적십자 “100명 이상 사망”

    사우디아리비아가 주도하는 연합군이 1일(현지시간) 예멘에 있는 후티 반군을 공습해 최소 60명이 사망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공습은 연합군에 의한 올해 최악의 타격으로, 민간인들도 사망했다는 국제적 비판을 받고 있다. 예멘 관리들은 후티 반군이 운영하는 10여개의 구금 시설 가운데 하나로 다마르에 있는 대학교가 공습 표적이었다고 말했다. 다마르는 예멘 수도 사나에서 남쪽으로 약 90km 떨어져 있다. 사우디 주도 연합군은 다마르에서 드론과 미사일을 숨기는 후티 군사 시설에 대해 “국제인도법에 맞게” 타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또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사전 조치들을 취했다”고 덧붙였다. 병원에서 들것에 실린 공습 부상자인 나제 살레는 “우리가 잠들어 있었던 한밤중에 아마 세차례에서 여섯차례 타격이 있었다”며 “그들은 교도소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습 이전에 ICRC가 두차례 방문했다고도 했다. 전 구금자는 후티가 과거 이 장소를 무기를 숨기고 정비하는 곳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습 타격은 마르고트 발스트룀 스웨덴 외무장관이 요르단에서 장기 교착상태를 깨고 평화협상을 재개하려는 회담을 이끄는 가운데 발생했다. 앞서 발스트룀 장관은 지난주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면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오만, 요르단을 방문하고 유엔 관계자들을 만날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 후티 보건부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공습 이후 최소 70명의 사체를 수습해냈다”며 또 다른 6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한 반군 관리는 “이 시설에 170명의 정부군 포로가 구금돼 있었다”고 말했다. 후티가 운영하는 알 마시라 TV는 “표적이 된 감옥에는 전쟁 포로 170명 이상이 있었으며, 그들은 교환 대상자였다”고 방송했다. 프란츠 라우헨슈타인 ICRC 예멘 지부장은 다마르에 긴급 의료품을 공급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들에게 “1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잔해 더미에서 생존자 수색작업을 하고 있지만 발견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 예멘 내전은 후티 무장세력이 수도를 점령한 2014년 9월 발생했다. 사우디 주도 연합군은 국제적은 공인받은 압두라부 만수르 하디 예멘 정부 대통령을 지원하고자 개입했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연합군에는 UAE와 예멘 정부군이 참여하고 있지만 전쟁 목적을 두고 심각한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지난 몇주동안 예멘 남쪽에서 정부군과 UAE에 의해 자금과 무장 지원을 받는 남부 무장 분리주의자들 간 거센 전투가 발생했다. 지난달 29일에는 UAE 전투기가 항구도시 아덴을 되찾으려는 예멘 정부군에 폭격을 가해 수십명이 사망했다. 이후 “UAE는 예멘에서 철수하라”는 인터넷 청원이 널리 퍼졌고, 예멘 정부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日과 너무 다른 獨… 폴란드에 거듭 과거사 사과

    日과 너무 다른 獨… 폴란드에 거듭 과거사 사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폴란드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독일이 거듭 용서를 빌었다. 과거사 사과를 거부하는 일본과는 다른 행보다.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1일 폴란드 중부 비엘룬에서 열린 2차 대전 80주년 행사에서 독일어와 폴란드어로 “비엘룬 침공의 희생자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독일의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기리며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폴란드는 2차 대전 때 가장 먼저 독일의 침공을 받아 가장 많은 피해를 당했다. 독일 공군은 1939년 9월 1일 군사적 요충지도 아니고 방비도 돼 있지 않던 비엘룬을 공습하며 2차 대전을 일으켰다. 지붕에 붉은 십자가 표시가 선명한 병원을 폭격하는 것으로 시작된 공습으로 1200명이 숨졌다. 5년 넘게 이어진 2차 대전에서 유대계 300만명을 포함한 폴란드인 600만명이 숨졌고 곳곳이 폐허가 됐다. 독일은 그동안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폴란드와 프랑스, 영국 등을 비롯한 전쟁 피해국들에 많은 배상과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도 계속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은 지난달 1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폴란드인 사망자를 기리고 용서를 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지난 7월 아돌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해 “우리가 방심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기억을 보존하고 이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이런 모습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진솔한 사과는 말할 것도 없고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주목된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친이란 세력 잇단 공습, 네타냐후 재선 위한 위험한 전략”

    이란 “침략 반복 땐 큰 대가 치를 것” 경고 유엔 “당사국들 행동·발언 자제를” 성명 중동에서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친미 이스라엘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국가·무장세력의 대리전으로 확전되는 분위기다. 26일(현지시간) 가디언·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잇따른 무인기(드론) 공격과 레바논 등의 비난으로 중동 긴장감이 높아지자 유엔은 “당사국들에 행동과 발언에 최대한의 자제를 요청한다”면서 “격앙을 피하는 건 모두에게 필수적”이라고 성명을 냈다. 이스라엘은 최근 레바논 베이루트를 비롯해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 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지난 24일 시리아 다마스쿠스 부근 군 시설을 폭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베이루트 상공에서 무인기 2대가 격추됐다. 26일 오전에는 레바논 동부에서 팔레스타인 그룹을 공격했다. 이스라엘의 공격 대상은 모두 이란의 시설이나 이란과 동맹 관계에 있는 곳들이었다. 이란은 알리 라비에이 정부 대변인을 통해 “지난 한 달간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은 자신의 침략 행위를 자랑할 만큼 터무니없이 행동한다”며 “중동을 겨냥해 그런 침략을 반복하면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 공격은 선전포고와 유사하다”며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연립정부 역시 이스라엘 공격을 선전포고로 인식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의 잇따른 공격이 “다음달 17일로 예정된 이스라엘 총선을 의식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위험천만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에도 시리아 등을 수백 차례 공격하면서도 이를 인정하거나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란을 저지하기 위한 공격”이라고 드러내 놓고 밝히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시리아 공격 직후에도 “이란은 어디에서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면서 “우리 군대는 이란의 침략을 막기 위해 어떤 영역에서든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WSJ는 “힘겨운 재선에 나선 네타냐후 총리가 어디서든 이란의 위협이 탐지되면 공격할 것이라고 언급했다”면서 “이란을 견제하는 군사 활동은 이스라엘 내부에서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중동은 이미 드론 전쟁 중”

    “중동은 이미 드론 전쟁 중”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무장세력 사이에 무인기(드론)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해 이미 ‘드론 전쟁’이 일어났다는 시각이 있을 정도다. AP통신은 25일(현지시간) 최근 일어난 드론 충돌 사례를 정리하며 “더 넓은 중동 지역에 걸쳐 드론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지난해 미국의 이란 핵협상 탈퇴 뒤부터 시작된 드론 충돌은 특히 지난 주말 이란과 미국의 동맹 사이에 빈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드론은 조종사 손실 위험이 없고 크기가 작아 방공망을 뚫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최근 양측이 애용하고 있다. 하지만 드론 사용이 잦아질수록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6월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군 드론을 격추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보복 공습을 명령했다 취소하기도 했다. 무인기 기술이 가장 발전한 나라 중 하나인 이스라엘의 경우 25일 두 대의 드론이 레바논 베이루트 상공에서 사라진 뒤 다른 기체를 추가 투입해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이날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연설에서 “최근 이스라엘의 드론 공격으로 2명이 사망했다”며 “앞으로 레바논에 진입하는 무인기는 모두 격추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스라엘은 레바논 외에도 시리아에서 드론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이란이 킬러 드론으로 자국을 공격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시리아에 드론 선제 공격을 했다고 인정했다. 이스라엘이 시리아에서 공격했다고 설명한 드론은 이란이 예멘 후티 반군에게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비슷하다. 이는 폭발물을 싣고 날아가 목표물 상공에서 자동폭발하거나, 목표물에 부딪쳐 폭발하도록 사전에 설계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9월 재선을 노리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공격 뒤 “누군가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면 먼저 그를 죽이라”는 탈무드 구절을 패러디했다. 이날 이스라엘 군은 시리아로 향하는 이란의 드론 보급로를 담은 지도를 공개했으며, 시리아 아크라바 마을에 조성된 드론 비행장, 최근 발사를 준비하던 중 이란 공격으로 파괴된 다른 장소도 공개했다. 조너선 코니쿠스 대변인(대령)은 “최근 몇 주 간 활동을 감시해 오다가 (이란이 시리아에서) 드론을 발사할 것을 확신하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면서 “드론은 공중에 뜨기 전에 파괴하는 게 쉽다”고 말했다.하지만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습이 자국 드론에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모흐센 레제이 장군은 “(이스라엘의) 거짓말”이라면서 “시리아와 이라크를 방어하는 세력이 곧 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레바논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드론이 거의 매일 영공을 침범하고 있으며, 25일 밤에도 무장하지 않은 드론이 헤즈볼라 매체 사무실이 있는 빌딩 지붕에 추락해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어린이 책] 앵~ 모기 어떡하지…탁! 잡으면 되잖아

    [어린이 책] 앵~ 모기 어떡하지…탁! 잡으면 되잖아

    “으앙!” 고요한 밤을 찢는 아이의 울음소리. 아이의 눈두덩이 울긋불긋, 아빠·엄마의 팔다리도 울긋불긋하다. 밤사이 모기의 대공습이 일어났던 것. 난리 법석을 떨며 모기 퇴치에 나서지만 허공을 가르는 모기의 비행은 엄마·아빠의 손짓을 앞지른다. 한밤중 대소동에 놀란 이웃들도 하나둘 모여든다. 아랫집 할아버지와 이웃집 과학자, 태권도 관장 등이다. 그림책 ‘모기 잡는 책’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뛰어난 은유다. 어찌 보면 하찮은 모기 한 마리지만, 이 가족에게는 단잠을 방해하는 몹쓸 훼방꾼이다.모여든 이웃들이 저마다의 해법을 제시하지만 영 신통치 않아 보인다. 함께 활극에 뛰어든 할아버지의 몸짓, 모기의 비행 궤도와 습성 등을 포괄하는 과학자의 지식, ‘모기는 재빠르게 힘으로 때려잡는 것’이라는 태권도 관장의 유려한 발차기는 모두 무용하다. 모두가 지쳐 나자빠져 있을 무렵 ‘탁’, 들려오는 경쾌한 마찰음. 이 모기 전쟁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답은 짐작대로다. 가볍게 생각했던 작은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고 상황이 더 복잡해질 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모기 잡는 사람들을 통해 재밌게 그려 냈다. 우리는 가끔 이 책에 나오는 어른들처럼 이유의 이유, 방법의 방법들을 찾느라 서로 다투고 오히려 본질과는 멀리 떨어진 새로운 문제들만 만들어 내곤 한다. 과연 가끔일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생각이 생각을 낳아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어른들에게도 권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화살머리고지 유해는 ‘남궁선 이등중사’

    화살머리고지 유해는 ‘남궁선 이등중사’

    국방부가 지난 5월 30일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완전 유해 형태로 발굴된 6·25 전사자는 남궁선 이등중사로 확인됐다고 21일 밝혔다.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건 지난해 10월 박재권 이등중사에 이어 두 번째다. 또 이제껏 발굴된 전체 6·25 전사자 유해발굴 중에는 133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남궁 이등중사의 신원 확인은 고인이 참전 당시 3세였던 아들 남궁왕우(69)씨가 2008년 등록했던 DNA 시료로 가능했다. 시료 등록 후 11년간 애타게 아버지의 유해발굴 소식을 기다린 왕우씨는 “지금, 이 순간 아버지를 찾았다는 생각에 떨려서 말을 하기 힘들다”고 했다. 1930년 강원 홍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온 고인은 23세에 입대해 1952년 국군 제2사단 32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휴가 한번 나오지 못하고 나라를 지키다 정전협정 체결 18일 전인 1953년 7월 9일,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인한 교전 중 105㎜ 포탄 파편에 전사했다. 이에 따른 다발성 골절 때문인지 우측 팔 유해가 지난 4월 12일 화살머리고지 내 전투 현장에서 먼저 발견됐고, 이후 유해 발굴 확장작업을 통해 5월 30일 나머지 유해가 최종 수습됐다. 국방부는 전사 66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남궁 이등중사의 귀환 행사를 추석 전에 열 예정이다. 유해는 유가족과 협의 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현재까지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는 총 1488점이며, 유품은 4만 3155점이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시리아인 유입에 지친 이스탄불, 2600명에 “오늘까지 떠나라”

    시리아인 유입에 지친 이스탄불, 2600명에 “오늘까지 떠나라”

    터키 이스탄불에 머무르던 수천 명의 시리아 이민 희망자들이 20일(이하 현지시간)까지 이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강제 추방될 위기에 몰렸다. 터키 당국은 제대로 서류를 갖추지 않은 이민 희망자들에게 원래 등록된 지역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고 있다. 일부 시리아인들은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한참 교전이 격화하고 있는 이들립으로 돌아가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며 버틸 각오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또 자신들이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자발 귀환을 다짐하는 서류에 서명하라고 강요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실 자진해서 이 도시를 떠나라는 명령은 지난달 말 내려졌고, 다만 한달 정도 시간을 줬는데 이제 그 말미마저 바닥났다. 마크 로웬 BBC 기자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은 8년 가까이 이어져 360만명 정도의 시리아인이 북쪽의 터키로 탈출했다. 이 가운데 50만명 정도가 이스탄불 체류 허가를 얻었지만 처음 체류를 허가받은 도시에서 이스탄불로 옮겨온 이들까지 합쳐 1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이달 초에 벌써 1만 2000명 정도가 원래 체류 허가를 받은 지방으로 귀환했고, 2600명 이상의 미등록 거주자가 내무부가 운영하는 보호 센터에 머무르고 있다. 이슬람권에서도 상대적으로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터키인들도 이제 시리아 이민들을 계속 포용해야 한다는 여론은 70%에서 40%로 떨어졌다. 에르도안 총리의 집권당이 올해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것도 이런 불만이 쌓인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8년 동안 터키로 들어오는 문은 닫히고 환영하는 기색은 바닥을 드러냈다. 터키 정부는 말로는 시리아로 돌아가길 원하는 이들은 안전하게 터키 군이 호송해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시리아인들은 터키군의 호송 행렬은 국경 바로 너머 이들립까지만이라고 불평한다. 19일에도 시리아 정부군이 터키 군의 호송 행렬을 공습해 3명이 죽고 12명 이상이 다쳤다. 물론 이 지역은 지난해 교전하는 양측이 “완충 지대”로 합의한 곳이었지만 최근 시리아 정부군은 완충 지대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동영상] 공습의 참상이 얼굴에 그대로, 쿠르드 소년 조우마

    [동영상] 공습의 참상이 얼굴에 그대로, 쿠르드 소년 조우마

    이 동영상을 게재해야 할지 한참 망설였다. 참혹한 장면 때문이다. 그저 선정적인 장면으로 기사 클릭 수만 높이려는 의도로 비칠까 두렵기도 했다. 이런 비슷한 장면을 많이 봐 둔감해진 독자들의 감성에 조그만 파도를 일렁이게 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끔찍한 장면을 보고 못 견뎌 하는 분들은 동영상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을 미리 말씀 드린다. 지난해 시리아 북부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타고 있던 버스가 터키군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공습을 당해 얼굴을 심하게 다치고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은 쿠르드족 네 살 꼬마 조우마가 주인공이다. 영국 BBC가 지금은 이웃 나라 레바논으로 피신해 베이루트의 가난한 동네 임시 주택에서 살고 있는 조우마 가족을 찾아 촬영한 동영상이다. BBC 기자가 찾았을 때 조우마는 막 잠에서 깨어나 바나나를 먹고 있었다. 기자는 조우마의 얼굴을 보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공습 때 창문 옆에 있었던 조우마는 유리 파편이 얼굴에 온통 튀었다. 지금도 이따금 출혈이 계속되고 유리 파편이 피부 밖으로 비져나온다고 했다. 아빠 역시 공습에 두 발에 발가락 둘만 남아 있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조우마가 앞을 못 보지만 세상사에 두루 관심과 호기심이 많고 부모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트라우마를 씻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온 가족이 방 한칸에 모여 지내고, 가족 모두 쿠르드어 외에는 할 줄 몰라 생활에 적지 않은 불편을 겪고 있다. 쿠르드어도 하고 아랍어도 할 줄 아는 여성 톨린이 통역으로 돕고 유럽에 망명을 신청하는 서류 작업도 도와주는데 조우마가 그녀 얼굴을 손으로 매만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신 다른 감각이 강해졌다는 조우마가 무척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BC 기자는 취재 내내 공습 때 겪은 공포와 고통을 떠오르게 할까봐 고민스러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지금껏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색안경을 쓴 채 가족과 함께 외출해 초콜릿을 맛있게 먹는 장면도 나온다. 또 호기심 많은 조우마가 촬영 카메라의 버튼을 눌러보고 마이크 장치를 조작해보는 장면도 나온다. 이들 가족이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빨리 트라우마를 씻어내길 기원할 따름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팔당댐 유역 물안개공원에 허브섬… 대한민국 100대 관광지로”

    “팔당댐 유역 물안개공원에 허브섬… 대한민국 100대 관광지로”

    “팔당댐 유역 물안개공원에 허브섬을 조성해 대한민국 100대 관광지로 개발하겠습니다.” 신동헌 경기 광주시장은 지난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연보전권역으로 묶인 물안개공원에 허브섬을 조성하는 것과 무분별한 물류단지 개발에 따른 피해 대책을 마련하는 게 최대 현안이라고 밝혔다. 신 시장은 합리적 규제 개선을 통해 자연보전권역 등 중첩 규제를 안고 있는 남종면의 18만㎡ 규모 귀여섬 일대에 200여종의 허브와 각종 수생식물을 심어 허브섬을 조성, 생태학습장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또 행정력을 집중해 물류단지 난립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시장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소회는. “방송 PD 출신 시장으로서 광주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역할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지난 10여년 동안 벌어진 난개발로 광주 구석구석이 후유증을 앓고 있다. 시민과 전문가, 공직자들이 한 팀이 돼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 방안을 모색했다. ‘꿈꾸는 광주 함께 꿈꾸자’라는 주제로 명품 광주, 시민들이 행복한 광주, 살기 좋은 광주를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다.” -국민과의 소통인 ‘찾아가는 열린시장실’이 자리잡았다. “퇴촌면 찾아가는 열린시장실은 현장에서 답을 찾은 좋은 사례다. 토마토축제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교통과 주차 문제였다. 주차장에서 축제장으로 가려면 하천을 돌아가야 하는데 한 주민이 하천에 징검다리를 놓으면 편리하고 불법 주차도 줄어들 것이라고 건의했다. 징검다리 놓는 데는 예산이 적게 들고 큰 공사가 아니라서 공기도 짧았다. 그래서 건의를 즉각 받아들였다. 징검다리로 교통난이 해소되면서 올해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무분별한 물류단지 조성에 대한 대책은. “경기도 내 계획 중인 26개 물류단지 중 9개가 광주에 있다. CJ물류단지 등 2곳이 입주했고 1곳이 공사 중이다. 2곳이 경기도에 인허가를 신청했다. 이 중 국토교통부 실수요 검증을 통과한 곳이 1곳, 검증을 준비 중인 곳도 1곳이다. 이렇게 35%가 광주시에 밀집됨에 따라 시민들은 교통, 소음, 안전 등 모든 분야에서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 물류차량으로 인한 도로 혼잡, 생활 불편, 환경 문제 등이 심각하다. 아이들의 등하굣길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저도 밤에 나올 때 조마조마할 정도다. 그래서 반대하는 것이다. 천년도시 광주가 물류도시가 되면 죽음의 도시가 된다. 백해무익하다. 국토부 실무자들이 현장에 가 보면 안다. 화물을 실은 대형트럭들이 밤낮으로 질주하고 있다. CJ 측에서도 교통 혼잡을 외면하고 있다. 도시가 마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CJ물류단지의 경우 경제유발 효과가 1조 1000억원에 이르고 고용도 5000명이라고 했으나 따져 봐야 한다. 일자리 창출이 50명도 안 되고, 이들은 라면 한 그릇 사 먹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조성된 물류단지 사례를 통해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주민 84%가 물류단지 조성에 반대 입장인 만큼 행정력을 집중해 입주를 막겠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팔당호에 허브섬 조성을 추진 중인데 진행 상황은. “남종면에 있는 팔당물안개공원 내 18만㎡ 규모의 귀여섬 일대에 200여종의 허브와 각종 수생식물을 심고 인공습지도 조성해 생태학습장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광주를 대표하는 수도권 최고의 생태관광 명소로 만들 것이다. 1차 중간보고회를 거쳐 마련한 기본계획구상안에 대해 서울지방국토관리청, 한강유역환경청 등 관련 기관과 실무 협의 중이다. 이곳은 상수원보호구역과 자연보전권역 등 중첩 규제를 안고 있다. 활용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허브와 수생식물은 농약이 필요 없다.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할 수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특별한 희생에 대해 특별한 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중첩 규제는 반드시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광주는 역사·문화 콘텐츠가 많은 도시다. “광주는 인물의 고장이고 인문학의 고장이다. 이희승 등 한글학자를 많이 배출했다. 독립운동가 해공 신익희 선생, 지난해 작고한 배우 최은희씨도 광주 출신이다. 허난설헌 묘지도 지역의 훌륭한 역사·문화 콘텐츠다. 광주시는 풍부한 역사·인물 콘텐츠와 문화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모든 문화·역사·관광·자연 콘텐츠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테마도시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분원리 가마터를 중심으로 광주조선백자요지가 우리 시의 역사적 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광주시도 카드형 지역화폐인 ‘광주사랑카드’를 발행하는데 성과는. “지난 4월 22일 처음 선보인 광주사랑카드는 현재 7652건이 발급됐으며 일반발행 약 3억 2000만원, 정책발행 약 10억 7000만원 등 총 13억 9000만원이 발행됐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카드 신청자 수가 늘고 있으며 광주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이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동영상]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 악화, LA에서 두 나라 여배우 입씨름

    [동영상]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 악화, LA에서 두 나라 여배우 입씨름

    할리우드와 발리우드에서 동시에 활약하고 있는 인도 여배우 프리얀카 초프라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뷰티콘(뷰티 컨벤션) 축제에 참석했다가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해야 했다. 파키스탄계 미국 배우 아예샤 말릭이 청중석에서 손을 들고 물었다. 지난 2월 초프라는 트위터에 “인도 만세(Jai Hind) #인도 군대(IndianArmedForces)”라고 적은 일이 있었는데 말릭은 이날 “당신이 인간애를 얘기하니 듣기가 힘들군요. 왜냐하면 당신네 이웃, 파키스탄 사람으로서 난 당신이 위선 투성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2월의 트위터 글을 예로 든 뒤 “당신은 유엔 평화대사인데 파키스탄과의 핵전쟁을 부추겼다. 핵전쟁에는 승자가 없다”고 말했다. 초프라는 2016년 이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트위터 글은 하필 인도 공군의 파키스탄 영토 공습 때였는데 현재는 그때보다 훨씬 더 상황이 나빠졌다.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40명의 인도군 병사들이 살해됐는데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테러 집단이 배후로 판명됐고, 그 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50여년 동안 부여한 파키스탄령 잠무 카슈미르 주민들의 자치권을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초프라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말릭을 타일렀다. “그래요 난 파키스탄 친구들이 많고 많다. 난 인도 출신이다. 그리고 전쟁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난 애국자다. 그래서 날 사랑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면 유감이다. 우리 모두가 거닐어야 하는 중간지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당신도 그렇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말릭은 질문을 계속 이어가려 했으나 주최측은 마이크를 빼앗아 가버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지르게 됐다. “아가씨, 소리 지르지 마”라고 말한 초프라는 “우리 모두는 사랑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다. 소리 지르지 마. 스스로를 창피하게 만들지 말라. 그러나 우리 모두 중간 지대를 걷는다. 하지만 당신 열정과 질문, 목소리는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말릭은 나중에 초프라의 반응이 개스라이팅(Gaslighting, 상황을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판단력을 잃게 하는 행위)이었다며 자신을 “나쁜 놈”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돌아봤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52년 만의 귀환’ 미군 조종사 유해 태운 민항기 아들이 조종

    ‘52년 만의 귀환’ 미군 조종사 유해 태운 민항기 아들이 조종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는 아빠를 배웅했던 다섯 살 아들이 52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유해를 실은 민항기를 손수 조종했다. 아버지를 떠나 보냈던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러브필드 공항에 다시 아버지 유해를 내려 드렸다. 로이 나이트 주니어는 1931년 2월 텍사스주 가너에서 태어나 17회 생일을 지낸 지 며칠 만에 공군에 입대했는데 다섯 형들은 이미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상태였다. 1957년 조종사 훈련을 받은 뒤 독일과 프랑스에서 전투기를 몰았다. 프랑스에서 아들 브라이언을 낳았다. 나이트는 1967년 태국 공군의 602 편대에서 소령으로 근무하다 라오스의 호치민 트레일에 있는 한 타킷 공습에 나섰다가 격추됐다. 처음에 실종 상태로 처리됐다가 7년 뒤 전사자로 통보됐고, 대령으로 추서됐다. 베트남전 종전 20년 뒤인 1991년과 이듬해 미국과 라오스 팀이 추락 현장을 조사한 뒤 발굴할 것을 권했다. 이에 따라 1994년부터 다섯 차례나 발굴했다. 그리고 올해 초 발굴된 유해가 그의 것으로 확정됐다. 그런데 8일(이하 현지시간) 고인의 유해를 싣고 이 공항에 착륙한 사우스웨스트 항공 여객기 기장이 바로 아들 브라이언이어서 더욱 각별한 귀환이었다고 일간 USA투데이가 보도했다. 브라이언도 아버지의 뒤를 좇아 공군에 입대해 전투기를 몰았다.이 항공사 직원들은 공항 터미널 입구에서 성조기를 나눠줬다. 그리고 공항 안내 방송을 통해 나이트 부자의 애틋한 가족사를 들려줬다. 그래서일까, 시끄럽고 혼잡스럽기 마련인 터미널에는 수백명이 모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묵념에 동참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공항 대변인 크리스 페리는 “매우 감동적인 순간이었다”며 이토록 많은 이들이 귀국하는 전몰 장병 유해를 뜨겁게 맞는 장면을 본 것은 “아주 각별한” 경험이었다고 돌아봤다. 캐나다 ‘글로벌 뉴스’의 워싱턴 특파원 잭슨 프로스코프는 총기 사건 취재를 마친 뒤 워싱턴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을 찾았다가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들을 트위터에 올리며 나이트 소령이 도착하는 모습을 본 것은 “자부심”을 갖게 했다고 전했다. 프로스코프 기자는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공항 전체가 고요에 휘감겼다”고 묵념 순간을 돌아봤다. 그의 트윗은 1만 8000차례 이상 리트윗됐고 4만개의 ‘좋아요’ 댓글이 달렸다. 많은 이들이 고인의 넋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댓글을 달았다. 가뜩이나 텍사스주와 오하이오주에서의 총기 난사 참극으로 미국이 갈기갈기 찢겨졌다고 평가받는 때라 미국민이 하나로 단합하는 이 장면은 더욱더 각별했다. 트윗 중에는 “이런 게 미국이다. 누구라도 어떤 다른 것이라고 얘기하게 놔두지 말자”라고 적은 것도 있었고, “이 스레드를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이 나라는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이 나라를 조국으로 부를 수 있어 난 축복받았다”고 적은 것도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베트남전 용사 유해 돌아오자, 떠들썩하던 공항 터미널이 조용

    베트남전 용사 유해 돌아오자, 떠들썩하던 공항 터미널이 조용

    비행기가 공항 계류장에 들어서는 순간, 평소 떠들썩해야 할 터미널 안이 숙연해졌다. 50여년 만에 고국에 돌아오는 베트남전 장병의 유해가 비행기에 탑승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이 유리창에 코를 박고 지켜봤다. 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러브필드 공항에 사우스웨스트 항공 여객기가 착륙하자 이런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고 영국 BBC가 9일 전했다. 터미널에는 수백명이 모여 있었는데 이들이 하나같이 묵념에 동참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공항 대변인 크리스 페리는 “매우 감동적인 순간이었다”며 이토록 많은 이들이 뜨겁게 맞는 장면을 본 것은 “아주 각별한” 경험이었다고 돌아봤다. ‘글로벌 뉴스’의 잭슨 프로스코프 기자는 총기 사건 취재를 마친 뒤 워싱턴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을 찾았다가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들을 트위터에 올리며 전몰 장병 콜 나이트 소령이 도착하는 모습을 본 것은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고 감동을 전했다.사우스웨스트 항공 직원들은 입구에서 모든 이에게 성조기를 나눠주더라고 전한 프로스코프 기자는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공항 전체가 고요에 휘감겼다”고 적었다. 그의 트윗은 1만 8000차례 이상 리트윗됐고 4만개의 ‘좋아요’ 댓글이 달렸다. 많은 이들이 고인의 넋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댓글을 달았다. 가뜩이나 텍사스주와 오하이오주에서의 총기 난사 참극으로 미국이 갈기갈기 찢겨졌다고 평가받는 때라 미국민이 하나로 단합하는 이 장면은 더욱더 각별했다. 콜 나이트는 1931년 2월 이 주의 가너에서 태어나 17회 생일을 지낸 지 며칠 만에 공군에 입대했는데 다섯 형들은 이미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상태였다. 1957년 조종사 훈련을 받은 뒤 독일과 프랑스에서 전투기를 몰았다. 이날 아버지의 귀환을 지켜본 아들 브라이언이 그때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나이트는 1967년 동남아시아에서 근무를 명 받고 태국 공군의 602 편대에서 근무했다. 라오스의 호치민 트레일 공습에 나섰다가 격추됐다. 처음에 실종 상태로 처리됐다가 7년 뒤 전사자로 통보됐다. 소령으로 추서된 상태였다. 그의 장례식은 주말에 치러진다고 방송은 전했다. 트윗 중에는 “이런 게 미국이다. 누구라도 어떤 다른 것이라고 얘기하게 놔두지 말자”라고 적은 것도 있었고, “이 스레드를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이 나라는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이 나라를 조국으로 부를 수 있어 난 축복받았다”고 적은 것도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75년前이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일본의 과오

    75년前이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일본의 과오

    일본 제국 패망사/존 톨런드 지음/박병화, 이두영 옮김/글항아리/1400쪽/5만 8000원 “짐의 선량하고 충성스런 국민에게. 오늘날 세계 대세와 일본 제국의 실태를 깊이 고려해 본 후 짐은 비상 조치를 취함으로써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가도록 결정했다….”1945년 8월 15일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 카랑카랑하고 비현실적인 ‘학’(일왕을 상징)의 목소리를 들은 수백만명의 일본인은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 수년에 걸친 태평양전쟁도 이렇게 막을 내렸다. 태평양전쟁은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었지만, 우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조선인 수십만명이 징용돼 머나먼 타국으로 끌려갔다.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의 성 노리개가 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75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상흔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일본은 가해 사실에 대해 사과는커녕 외면하고 있고, 강제 징용에 대한 피해자 배상을 요구하자 우리에게 경제보복을 하고 있다. 일본의 이런 행태를,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태평양전쟁을 통해 가늠할 만한 책이 나왔다. 1970년 출간했지만 이제서야 한국에 번역 출간된 세계적인 전쟁사학자 존 톨런드(1912~2004)의 ‘일본 제국 패망사´에 손이 간 이유다. 책은 1936년부터 일본이 패망한 1945년까지 10년 동안을 무려 1400쪽에 이르는 분량에 담았다. 만주사변 이후 이어진 중일전쟁, 삼국동맹 조약, 미 교섭 결렬, 나치의 유럽 침공, 진주만 기습 전야부터 이후 벌어진 전쟁의 양상을 관통해 서술했다. 이어 일본의 말레이반도와 필리핀 상륙, 싱가포르 함락, 자바섬 장악, 미드웨이 해전, 사이판·레이테섬·이오섬 전투, 오키나와 사투, 도쿄 공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일왕의 항복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의 상승과 쇠망을 다룬다. 저자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을 ‘기묘한 전쟁´이라 말한다. 연합함대 사령관이자 해군의 실질적인 총수였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해군 대장은 미국과의 개전을 앞두고 “처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우세하겠지만, 그 뒤는 장담할 수 없다”면서 전쟁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전쟁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 관련 인물들의 적극적 협조를 바탕으로 답을 찾는다. 당시 어전회의와 연락회의의 기록들, 타다 남은 부분으로 추정되는 고노에 전 총리의 일기, 육군 원수 스기야마의 1000쪽짜리 메모, 그리고 주요 전범과의 인터뷰 등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 일본이 대미 전쟁을 결정한 배경엔 나치 독일의 승리에 편승해 한몫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회주의적인 욕심,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한 수뇌부의 판단 오류 등이 조합된 결과라고 봤다. 결국 30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패했다. 책은 방대한 분량이지만, 사건에 관한 세밀한 설명과 인물에 관한 탁월한 묘사, 대화체 형식 구성으로 페이지를 술술 넘기게 한다. 예컨대 2·26 당시 군부의 오카다 총리대신 살해 미수 사건은 마치 소설을 읽는 느낌마저 든다. 원자폭탄 개발 과정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장면, 그리고 이후 참상도 생생하다. 특히 원폭 투하 당시의 상황은 피해자를 옮겨 가며 오히려 담담하게 묘사한 것이 오히려 오싹하다. 원폭 투하 이후 도쿄 최상층부에서 일왕을 두고 벌이는 암투 역시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저자는 책을 쓴 이유를 두 가지 들었다. 우선 태평양전쟁 당시에 관한 새롭고 중요한 기록들이 1970년대 나왔다는 점,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을 들었다.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는 “일본 측은 전쟁을 통해 중국인에게 저지른 심각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날카롭게 알아채고, 스스로 깊게 책망한다”고 중국에 사과했던 때다. 그러나 책이 세상에 나온 뒤 일본의 태도는 분명히 후퇴했다. 우경화가 가속하고, 과거사를 문제 삼았다는 이유로 경제보복을 서슴없이 해대는 지금의 일본을 본다면 저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다. 뒤이어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한반도를 군수기지화해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한다. 조선 청년 40만명이 징병으로, 72만명은 징용으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죽거나 죽을 고생을 했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가 당한 수탈에 더해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일본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게 됐다.●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띠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넓은 감자밭에 수십 개의 풀무덤들이 작은 오름과 같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면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띠를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들이다. 그 옆에 마련된 넓은 벌판은 과거 활주로의 흔적이다. ‘아래 펼쳐진 벌판’이라는 뜻의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폭격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난징 폭격은 일본 나가사키현에 기지를 둔 오무라항공대가 담당했다. 나가사키에서 이륙한 항공대는 난징을 폭격하고 알뜨르에 착륙, 연료와 폭탄을 보충해 이튿날 다시 난징을 폭격한 후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총 36회 출격, 300여t의 폭탄을 투하해 난징의 도시 시설 89%를 파괴했다. 폭격에 뒤이어 진주한 일본 육군은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8만명의 여성들을 강간했다. 아직도 중일 간에 해결이 안 된 ‘난징대학살’이다. 1941년 일제는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 초기에는 우세했지만 곧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격에 밀리게 된다. 1944년 4월, 8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함락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 5000명, 일본군 6만 5000명이 전사하고 섬 주민 20만여명 중 12만명이 사망했다. 그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됐다. 미군의 이른바 ‘몰락작전’의 시작이었다. 이 작전은 공습으로 일제를 무력화한 후 일본 규슈와 혼슈를 차례로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이에 대응해 일제는 전원 죽음으로 본토를 수호한다는 ‘결○호작전’을 펼친다. 일본 본토를 1호부터 6호까지 나누어 방어하고 7호는 제주도가 맡는다는 내용이다. 일제는 미군이 곧 제주도에 상륙하리라 예상했고, 제주도를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제주도는 이른바 ‘결7호작전’의 작전지가 돼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대대적인 노역에 시달린다. 알뜨르 외에도 여러 곳에 군사비행장을 만들고 훈련장과 포대, 대피소, 특공대 기지 등을 섬 전체에 건설했다. 대부분의 군사시설은 지하로 파들어 간 진지동굴이었는데, 제주도 내 총 360여개의 오름 중 160여개에 지하 진지를 구축했다. 58군 사령부 예하에 5개 사단, 보병 5만 8000명, 포병과 기갑부대 1만 6000명이 주둔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주둔한 군대보다 많은 숫자이며 10만명이 주둔했던 오키나와에 육박하는 규모였다.●모슬포 마을 주민 5000여명 강제 동원해 격납고 38개 지어 알뜨르비행장이 있는 모슬포 일대는 결7호작전의 핵심지역이었다. 비행장은 1944년부터 활주로를 늘리는 등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이때 지은 격납고 38개 중 20개가 잔존하고 있다. 매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결과였다. 격납고는 폭 10m, 길이 20m, 높이 4m의 반원통형 구조로, 전투기에 꽉 끼는 옷과 같은 최소한의 크기이다. 30~80㎝ 두께의 매우 견고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서, 공중 관측을 피하기 위해 지붕에 풀을 덮어 위장했다. 여기에 숨긴 전투기는 일본의 주력인 제로센이었다. 제로센은 기체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여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개전 초기에 우수한 전과를 거두었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저출력 경량엔진을 장착하고 보호용 장갑판을 제거했다. 그래서 민첩함은 얻었으나 속도가 느려 쉽게 노출되고 적기의 공격에 취약한 문제가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급기야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의 운송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모두 가미카제 특공대를 위한 위장 보호시설이었다.격납고 인근에 지하 벙커가 남아 있다. 터널같이 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3~5m 두께의 잡석들을 쌓아 인공 둔덕을 만들었다. 풀을 심은 둔덕은 얼핏 동산같이 보이지만 벙커 내부는 수십 명이 너끈히 들어가 작전을 펼 수 있다. 환기용 굴뚝과 배수로, 별도의 설비관로까지 설치한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중요한 통신시설로 쓰인 듯하다. 활주로 반대 송악산 쪽으로 3개의 작은 오름이 연달아 있는데 이를 통틀어 셋알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 정상부에는 고사포진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땅을 파고 지름 6m의 원통형 콘크리트 진지를 구축했다. 원통의 중심부에 고사포를 설치해 360도 회전하며 적기를 공격할 수 있었다. 현재 포좌는 없어지고 원통부만 남아 하늘에서 보면 마치 숲속에 뚫린 원형탈모 상흔과 같다. 모두 5기를 배치했는데 하나는 미완성이며 2기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인근 송악산의 원래 이름은 ‘절울이오름’으로 ‘물결이 우는 소리를 듣는 오름’이란 뜻이었다. 바다 위에 솟은 대단한 절경이지만 60여기의 일제 동굴진지가 여기저기 뚫린 상처 입은 오름이다. 화순포구 쪽에서 보면 인공적으로 뚫은 해안동굴들이 절경을 훼손하고 있다. 총 15기의 해안동굴에는 1인용 모터보트들을 주둔시켰는데, 선두에 250㎏의 폭약을 싣고 적함에 돌진해 자폭하는 특공함이었다. 합판으로 선체를 만들고 자동차 엔진을 달았다니 애초부터 돌아오지 못하는 1회용 자살함정이었다. 하늘에 가미카제가 있었다면, 바다에는 인간어뢰라고 불린 가이텐 특공대가 있었다. 모두 나 죽고 너 죽자 식의 무모한 전술이며 최후 발악의 광기였다.●“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다시 봐야 할 이유 전쟁은 건축을 파괴하지만, 그래도 군사용 시설은 건설된다. 1940년대 제주에 남겨진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나 지하 벙커, 고사포진지, 해안동굴 진지들은 여러 감상을 불러온다. ‘이 땅과 민족을 희생시켜 일본의 영토를 지킨다?’ 일제에 분노가 치밀지만 이 지경까지 당하게 된 역사적 수치심이 앞선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이 수치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왜 이 땅에 이런 것들이 세워졌으며 어쩌다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됐는가.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을 일컬어 다크 투어리즘이라 한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제주의 일제군사시설은 거의 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인장력(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과 압축력(누르는 힘)에 강한 콘크리트를 합쳐 천하무적이 된 건축 재료다. 20세기 초 발명한 이 재료는 강하기는 강철 같지만 밀가루 반죽과 같이 어떤 형태든지 만들 수 있다. 알뜨르의 격납고는 공중폭격에 가장 강한 반원통 구조로 지어졌다. 지하 벙커는 수m 두께의 토압을 견디고 내부 통행이 가능하도록 아치형 터널로 만들었다. 철저하게 기능적이며, 단순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건축은 죄가 없다. 하지만 이를 만들고 사용한 인간들의 탐욕과 광기는 용서 못 할 죄악이다. 식민지근대화론도 그렇다. 일제는 이 땅에 항만, 철도, 공장 등 근대적 시설을 지었다. 해방 후 근대화는 그 혜택의 연장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누가 차지했는지 손익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식민지근대화는 허구이며 식민지수탈이 있을 뿐이다. 2차대전 직전에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350㎞ 길이의 초대형 철근콘크리트 지하 진지를 완성했다. 참호전으로 점철했던 1차대전의 교훈에서 얻은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개전과 동시에 독일군은 탱크를 앞세운 기동력으로 마지노선을 돌파, 이를 무력화했다. 마지노선 건설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거리가 됐다. 일제의 전략은 무모하고 시설은 어리석다. 전원 옥쇄란 사무라이 싸움에서나 있을 법한 전략이다. 총길이 15㎞에 달하는 제주 내 동굴 진지들도 자학적이다. 내부에 아무 지원시설 없어 단 며칠도 버티기 어려운 동굴에서 미군의 첨단 전투력을 어찌 대항하나. 가미카제나 가이텐 특공대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높을까. 통계에 따르면 특공대 1명의 자폭으로 미군 1명을 사살했을 정도라 한다. 전쟁의 실체를 모르는 시대착오적 전술은 얼마나 허망한가. 해방 74년, 일제가 남긴 알뜨르의 군사건축이 던지는 역설적 교훈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일제가 남긴 ‘알뜨르’ 軍시설·상처 입은 오름… 기억하겠습니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다. 뒤이어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한반도를 군수기지화해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한다. 조선 청년 40만명이 징병으로, 72만명은 징용으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죽거나 죽을 고생을 했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가 당한 수탈에 더해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일본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게 됐다.●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띠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넓은 감자밭에 수십 개의 풀무덤들이 작은 오름과 같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면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띠를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들이다. 그 옆에 마련된 넓은 벌판은 과거 활주로의 흔적이다. ‘아래 펼쳐진 벌판’이라는 뜻의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폭격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난징 폭격은 일본 나가사키현에 기지를 둔 오무라항공대가 담당했다. 나가사키에서 이륙한 항공대는 난징을 폭격하고 알뜨르에 착륙, 연료와 폭탄을 보충해 이튿날 다시 난징을 폭격한 후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총 36회 출격, 300여t의 폭탄을 투하해 난징의 도시 시설 89%를 파괴했다. 폭격에 뒤이어 진주한 일본 육군은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8만명의 여성들을 강간했다. 아직도 중일 간에 해결이 안 된 ‘난징대학살’이다. 1941년 일제는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 초기에는 우세했지만 곧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격에 밀리게 된다. 1944년 4월, 8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함락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 5000명, 일본군 6만 5000명이 전사하고 섬 주민 20만여명 중 12만명이 사망했다. 그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됐다. 미군의 이른바 ‘몰락작전’의 시작이었다. 이 작전은 공습으로 일제를 무력화한 후 일본 규슈와 혼슈를 차례로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대응해 일제는 전원 죽음으로 본토를 수호한다는 ‘결○호작전’을 펼친다. 일본 본토를 1호부터 6호까지 나누어 방어하고 7호는 제주도가 맡는다는 내용이다. 일제는 미군이 곧 제주도에 상륙하리라 예상했고, 제주도를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제주도는 이른바 ‘결7호작전’의 작전지가 돼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대대적인 노역에 시달린다. 알뜨르 외에도 여러 곳에 군사비행장을 만들고 훈련장과 포대, 대피소, 특공대 기지 등을 섬 전체에 건설했다. 대부분의 군사시설은 지하로 파들어 간 진지동굴이었는데, 제주도 내 총 360여개의 오름 중 160여개에 지하 진지를 구축했다. 58군 사령부 예하에 5개 사단, 보병 5만 8000명, 포병과 기갑부대 1만 6000명이 주둔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주둔한 군대보다 많은 숫자이며 10만명이 주둔했던 오키나와에 육박하는 규모였다.●모슬포 마을 주민 5000여명 강제 동원해 격납고 38개 지어 알뜨르비행장이 있는 모슬포 일대는 결7호작전의 핵심지역이었다. 비행장은 1944년부터 활주로를 늘리는 등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이때 지은 격납고 38개 중 20개가 잔존하고 있다. 매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결과였다. 격납고는 폭 10m, 길이 20m, 높이 4m의 반원통형 구조로, 전투기에 꽉 끼는 옷과 같은 최소한의 크기이다. 30~80㎝ 두께의 매우 견고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서, 공중 관측을 피하기 위해 지붕에 풀을 덮어 위장했다. 여기에 숨긴 전투기는 일본의 주력인 제로센이었다. 제로센은 기체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여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개전 초기에 우수한 전과를 거두었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저출력 경량엔진을 장착하고 보호용 장갑판을 제거했다. 그래서 민첩함은 얻었으나 속도가 느려 쉽게 노출되고 적기의 공격에 취약한 문제가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급기야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의 운송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모두 가미카제 특공대를 위한 위장 보호시설이었다.격납고 인근에 지하 벙커가 남아 있다. 터널같이 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3~5m 두께의 잡석들을 쌓아 인공 둔덕을 만들었다. 풀을 심은 둔덕은 얼핏 동산같이 보이지만 벙커 내부는 수십 명이 너끈히 들어가 작전을 펼 수 있다. 환기용 굴뚝과 배수로, 별도의 설비관로까지 설치한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중요한 통신시설로 쓰인 듯하다. 활주로 반대 송악산 쪽으로 3개의 작은 오름이 연달아 있는데 이를 통틀어 셋알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 정상부에는 고사포진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땅을 파고 지름 6m의 원통형 콘크리트 진지를 구축했다. 원통의 중심부에 고사포를 설치해 360도 회전하며 적기를 공격할 수 있었다. 현재 포좌는 없어지고 원통부만 남아 하늘에서 보면 마치 숲속에 뚫린 원형탈모 상흔과 같다. 모두 5기를 배치했는데 하나는 미완성이며 2기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인근 송악산의 원래 이름은 ‘절울이오름’으로 ‘물결이 우는 소리를 듣는 오름’이란 뜻이었다. 바다 위에 솟은 대단한 절경이지만 60여기의 일제 동굴진지가 여기저기 뚫린 상처 입은 오름이다. 화순포구 쪽에서 보면 인공적으로 뚫은 해안동굴들이 절경을 훼손하고 있다. 총 15기의 해안동굴에는 1인용 모터보트들을 주둔시켰는데, 선두에 250㎏의 폭약을 싣고 적함에 돌진해 자폭하는 특공함이었다. 합판으로 선체를 만들고 자동차 엔진을 달았다니 애초부터 돌아오지 못하는 1회용 자살함정이었다. 하늘에 가미카제가 있었다면, 바다에는 인간어뢰라고 불린 가이텐 특공대가 있었다. 모두 나 죽고 너 죽자 식의 무모한 전술이며 최후 발악의 광기였다.●“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다시 봐야 할 이유 전쟁은 건축을 파괴하지만, 그래도 군사용 시설은 건설된다. 1940년대 제주에 남겨진 알뜨르비행장의 격납고나 지하 벙커, 고사포진지, 해안동굴 진지들은 여러 감상을 불러온다. ‘이 땅과 민족을 희생시켜 일본의 영토를 지킨다?’ 일제에 분노가 치밀지만 이 지경까지 당하게 된 역사적 수치심이 앞선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이 수치 유산들을 둘러보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왜 이 땅에 이런 것들이 세워졌으며 어쩌다 그러한 역사에 처하게 됐는가. 어두운 체험과 불쾌한 사유의 여정을 일컬어 다크 투어리즘이라 한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제주의 일제군사시설은 거의 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인장력(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과 압축력(누르는 힘)에 강한 콘크리트를 합쳐 천하무적이 된 건축 재료다. 20세기 초 발명한 이 재료는 강하기는 강철 같지만 밀가루 반죽과 같이 어떤 형태든지 만들 수 있다. 알뜨르의 격납고는 공중폭격에 가장 강한 반원통 구조로 지어졌다. 지하 벙커는 수m 두께의 토압을 견디고 내부 통행이 가능하도록 아치형 터널로 만들었다. 철저하게 기능적이며, 단순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건축은 죄가 없다. 하지만 이를 만들고 사용한 인간들의 탐욕과 광기는 용서 못 할 죄악이다. 식민지근대화론도 그렇다. 일제는 이 땅에 항만, 철도, 공장 등 근대적 시설을 지었다. 해방 후 근대화는 그 혜택의 연장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무엇이고, 이익은 누가 차지했는지 손익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면 식민지근대화는 허구이며 식민지수탈이 있을 뿐이다. 2차대전 직전에 프랑스 국방장관 앙드레 마지노는 350㎞ 길이의 초대형 철근콘크리트 지하 진지를 완성했다. 참호전으로 점철했던 1차대전의 교훈에서 얻은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개전과 동시에 독일군은 탱크를 앞세운 기동력으로 마지노선을 돌파, 이를 무력화했다. 마지노선 건설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거리가 됐다. 일제의 전략은 무모하고 시설은 어리석다. 전원 옥쇄란 사무라이 싸움에서나 있을 법한 전략이다. 총길이 15㎞에 달하는 제주 내 동굴 진지들도 자학적이다. 내부에 아무 지원시설 없어 단 며칠도 버티기 어려운 동굴에서 미군의 첨단 전투력을 어찌 대항하나. 가미카제나 가이텐 특공대의 성공 확률은 얼마나 높을까. 통계에 따르면 특공대 1명의 자폭으로 미군 1명을 사살했을 정도라 한다. 전쟁의 실체를 모르는 시대착오적 전술은 얼마나 허망한가. 해방 74년, 일제가 남긴 알뜨르의 군사건축이 던지는 역설적 교훈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與, 애국가 부르며 “제2 독립운동, 한일 경제 전면전” 선언

    與, 애국가 부르며 “제2 독립운동, 한일 경제 전면전” 선언

    더불어민주당이 2일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제2의 독립운동을 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일본의 경제침략에 단호하게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오후 3시 30분 로텐더홀 계단에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 규탄대회를 열었다. 소속 국회의원과 당직자들은 ‘NO 경제침략 아베 강력규탄!’, ‘정쟁 중단 추경 즉각 처리’ 등의 손팻말을 들고 계단을 꽉 채웠다. 참석자들은 계단에서 무반주로 애국가 1절을 제창하며 결의를 다졌다. 이해찬 대표는 일본의 2차대전 진주만 공습을 언급하며 “일본은 한국 경제를 침략하기 위해 오늘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공격을 자행했다”며 “이제 한일전은 정말로 심각한 경제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며 “이제 비장한 각오로 이 전쟁에 임하겠다”고도 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아베 정부의 경제 침략 행위에 맞서서 우리는 제2의 독립운동, 기술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비상하게 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한일 경제전은 이제 국지전이 아니라 전면전으로 비화됐다”고 말했다.이 원내대표는 이어 “이곳 국회에서부터 모든 정당이 힘을 합쳐서 우리 국민과 함께 이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당을 향해 “일본의 경제 침략 행위에 맞서서 총력을 집중하기 위해서 지금 이 시간부터 정쟁을 중단할 것을 저는 제안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규탄 선언서에서 “우리 경제를 뒤흔들려는 경제 침략행위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 정부의 행태는 과거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며 “우리 선조들은 들불처럼 일어나 나라와 겨레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졌다. 민주당은 그 후손으로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경제를 수호하기 위해 일본 정부의 경제침략에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이다”는 내용을 담았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여기는 중국] 워터파크에 닥친 ‘3m 쓰나미’…물놀이객 40여명 부상

    [여기는 중국] 워터파크에 닥친 ‘3m 쓰나미’…물놀이객 40여명 부상

    중국의 한 워터파크에서 높이 3m의 ‘쓰나미’가 발생해 물놀이객들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지 언론의 1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중국 구이저우 룽장에 있는 한 워터파크의 조파기(수영장에 파도를 일으키는 기계)가 작동 이상을 보였다. 인공 파도에 몸을 싣고 놀던 수많은 물놀이객들은 갑작스럽게 3m가 넘는 거대한 인공파도에 휩쓸렸고,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풀장 밖에 있던 사람들은 ‘쓰나미’를 연상케 하는 인공 파도의 공습은 피했지만, 역시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일부 물놀이객들은 놀란 마음에 그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해당 워터파크 관계자 측은 “조파기의 이상으로 발생한 사고”라면서 “실제로 부상을 입은 사람은 10여명 안팎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지 언론은 이 일로 현장에 있던 사람 중 44명이 병원치료를 받았으며, 일부 물놀이객은 갑작스럽게 닥친 파도에 몸이 밀려 다리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거나 아예 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부상을 입었따고 전했다. 이날 워터파크 측은 수리를 이유로 폐장했지만, 다음 날 곧바로 다시 개장해 영업을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유사한 사고가 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안전 관리가 지나치게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워터파크가 입장료 98위안을 환불 조치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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