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공산당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 류지영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 국고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 일본군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 아베 신조
    2026-02-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934
  • [시진핑號 어디로] (5·끝)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진찬룽 부원장에 듣는 ‘한반도 정책’

    [시진핑號 어디로] (5·끝)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진찬룽 부원장에 듣는 ‘한반도 정책’

    시진핑(習近平) 시대를 맞아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핵심 변수 중 하나인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이전과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변동성이 컸다는 점에서 일부 ‘조정’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인민대 국제관계학원 진찬룽(金燦榮·50) 부원장은 1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경제 개발을 유도하려면 한국의 협조가 절대적인 만큼 오는 12월 한국의 대선 결과가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진 부원장은 한반도 정책과 중·미관계 등 중국의 대외정책 관련 전문가이다. 다음은 진 부원장과의 일문일답. →시진핑 시대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중국에 한반도의 안정은 경제 발전에 전념할 수 있는 대외 환경 확보 차원에서 중요하다. 이를 위해 북한의 정권 유지와 경제 발전 지원은 필수이며 부차적으로 한국과의 관계도 공동 발전시켜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앞으로도 이 기조 위에서 풀어갈 것이다. 특히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경제개혁에 뜻이 있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발전 의지를 유도·강화하는 데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북한의 정권 유지를 방해하는 위협을 강력히 통제하면서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힘쓸 것이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칠 변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한국의 대선 결과이다. 북한은 한국의 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한다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처럼 한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안정적으로 내부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북관계 재개와 대화 없이 중국의 힘만으로 북한을 개방의 길로 나서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대선 결과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중 관계가 노동당 대 공산당의 특수한 관계에서 국가 대 국가의 정상적인 관계로 바뀔 수 있나. -북한이 ‘당 우선’ 원칙을 견지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중국도 이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결정할 일이다. →시 총서기가 첫 번째 해외순방국으로 북한을 택할까. -과거에는 북한이 우선순위였지만 이번에는 예단할 수 없다. 중·미 관계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 강화가 필요하고, 이에 따라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으로 가서 친밀도를 높이거나 러시아와의 전통 우방 관계를 과시할 수 있다. →시 총서기와 김정은이 서로 잘 아는 사이인가. -정식으로 만난 적은 없다. 다만 김정은이 지난해 김정일을 수행해 중국에 같이 왔던 것으로 알고 있고, 그때 여러 명이 함께 대면하면서 서로 얼굴을 봤을 수 있다. →김정은의 방중 시기는. -시 총서기는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주석직까지 물려받아야 권력인수 작업을 마무리한다. 방중한다면 새 출발의 기점이 되는 3월 이후에 오는 게 합리적이다. →바람직한 한·중 관계를 위해 한국이 해야 할 일은. -한·미 동맹을 이해하지만 중·한 관계 역시 중점을 두고 균형 있게 관리하기를 바란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시진핑시대 개막] “부패 심하면 나라 망해”

    “물부충생”(物腐蟲生·병은 반드시 몸 내부의 원인 때문에 생긴다)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연일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총서기에 선임된 지난 15일 ‘부패척결’을 다짐한 시 총서기가 지난 17일 지도부 교체 후 처음으로 열린 제1차 정치국 집단학습에서도 반부패 의지를 강조했다고 관영 신화통신 등이 19일 일제히 보도했다. 시 총서기는 연설을 통해 “부패 문제가 심화되면 당은 물론 국가도 반드시 멸망한다.”면서 “부패를 척결하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최근 들어 몇몇 국가들에서 인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사회가 혼란스러우며, 정권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집권층의) 부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물이 썩은 뒤에야 벌레가 생긴다’(物必先腐 而後蟲生)는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말을 인용하면서 “부패하지 않도록 철저히 예방하고, 부패가 드러나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 15일 시 총서기는 최고지도자 자격으로 행한 첫 연설에서 “당 간부들의 부패와 독직, 형식주의, 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있으며 모든 당원이 경각심을 갖고 모든 힘을 기울여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이런 언급은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 비리 사건 등 고위층의 부패가 빈발함에 따라 고조되는 불만 여론을 누그러뜨려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산당이 주요 지도자에 대한 감독 강화 문구를 당의 헌법 격인 당장(黨章)에 포함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에서 통과된 수정 당헌에는 “당 영도기관과 당원 영도간부, 특별히 주요 영도간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고 명시돼 있다. 시 총서기가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는 데다 당헌에 ‘주요 영도간부’에 대한 감독 강화가 명시됨에 따라 당·정·군 고위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시진핑시대 개막] ‘보시라이 비호설’ 저우융캉 조기 퇴진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 비호설이 돌던 저우융캉(周永康) 중앙정법위원회 서기가 조기 교체됐다. 19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최근 저우융캉을 퇴진시키고 멍젠주(孟建柱) 신임 정치국원을 중앙정법위 서기로 임명했다. 멍젠주 신임 서기는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으로 재직하다가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 이은 18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8기 1중 전회)에서 정치국원으로 선출됐다.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는 지난 16일 취임 후 처음으로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으며, 이 자리에서 내년 3월로 예정된 중앙정법위 서기 교체를 앞당겨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정가에서는 정법위 서기 조기 교체로 보시라이에 대한 형사 처벌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당대회 전후 티베트인 13명 분신… 민족갈등 해결도 과제

    ‘시진핑(習近平) 시대’ 중국의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한 축이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이다. 실제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중심의 5세대 지도부가 출범한 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를 전후해 티베트인들의 분신시위가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라이라마 “中 무력 사용 말라” 17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18차 전대 개막 전날인 지난 7일 이후 분신한 티베트인은 최소 13명에 이른다. ‘연쇄 분신’을 통해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강압통치에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망명정부 집계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분신한 티베트인은 최소 79명이며, 이 가운데 59명이 숨졌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의 잇단 분신과 관련, 중국 정부에 탄압중단과 무력사용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달라이 라마를 분신시위의 선동자로 지목하면서 대내외적으로 그를 강력 비난하고 있다. 문제는 티베트인들의 항거 지역이 점차 확산된다는 데 있다. 실제 티베트인들의 분신은 맨 처음 쓰촨(四川)성의 아바(阿?)자치주에서 시작됐지만 최근에는 칭하이(靑海)성, 간쑤(甘肅)성 등 인접지역으로 확산됐고, 심지어 중국이 대대적으로 틀어막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본거지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지역도 들썩이고 있다. ●초기엔 안정위해 강압 이어갈 듯 시 총서기는 집권초기 정권 안정을 위해 소수민족의 시위 문제에 전임자들처럼 강압적인 자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특히 티베트 등을 ‘핵심이익’으로 규정, 분리독립 요구에 절대 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민족갈등의 ‘폭발력’이 변수다. 점화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어 사용하며 갈등의 확대를 저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사이트 인민망은 18일 시 총서기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이 티베트 지도자 샹첸(項謙)을 여러 차례 설득해 무장투쟁을 포기토록 만든 일을 전하며 그의 민족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시진핑號 어디로](4)양극화 해법은

    [시진핑號 어디로](4)양극화 해법은

    “공산당의 임무는 인민들의 생활고를 해결하고,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것이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는 지난 15일 취임 일성으로 개혁·개방의 궁극적 목표인 공동부유를 강조했다. 공동부유, 즉 균부론(均富論)을 내세운 것은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사회혼란 가능성이 가중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 중국 사회에 고착화된 빈부격차는 이미 심각한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체제 위협 수준이지만 지금까지는 경제성장 덕에 가까스로 ‘폭발’이 억제돼왔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10%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마치 국민 각자의 ‘주머니’가 두툼해지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빚어져 사회불만이 일정 수준 조절됐던 것. 그러나 이미 성장률이 7%대로 떨어진데다 국내외 여건을 감안하면 앞날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양극화 문제는 사회전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메카톤급 폭탄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화려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도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소득분배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적극적인 분배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당국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 ‘정치보고’에서 “국민들의 소득분배 패턴을 조정하고, 재분배 조치 를 강화해 심각한 소득격차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점을 두겠다.”며 분배 개혁을 당과 정부의 8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당국은 연말이나 내년 초쯤 소득분배 개혁과 관련한 종합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5세대 지도부의 개혁 의지를 가늠하는 첫번째 ‘잣대’인 셈이다. 소득분배의 핵심은 국유기업과 정부투자기업 등에 쏠려 있는 과도한 부를 사회 전체에 나눠주는 것이다. 중국 국유기업 소속 노동자는 전체의 8%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받는 임금은 전체 임금의 약 55%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사회발전연구소 양이융(楊宜勇) 소장은 “독과점 산업 국유기업 임직원들의 보수를 관리, 제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소장은 또 “도농, 지역, 계층 간 소득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농민, 단순 노동자, 중·서부 지역 주민들의 소득수준을 높이는 한편 중산층과 저소득 계층의 세부담을 낮추는 재분배 조치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소득분배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중국 공산당은 전복하고 말 것이라는 극단적인 ‘경고음’까지 내놓고 있다. 개혁파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시진핑은 감세 등의 ‘민생 카드’로 국민들을 달래려 하겠지만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면서 “결국 기득권층의 이익을 국민에 분배하는 방안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고도성장기 권력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 자제 그룹)과 상하이방(상하이 지역 정치그룹) 등 기득권층으로부터 분배를 위한 ‘파이’를 떼내야 한다는 얘기다. 시 총서기가 자신의 정치기반인 태자당과 상하이방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중국의 지니계수(소득 불균형 지수·1에 가까울수록 불균형 심화)는 사회안정을 위협받는 0.600에 바짝 다가선 것으로 추정되며, 지난해 중국내 시위는 18만건을 넘어섰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5)독립운동가 ‘김립’ vs 그를 비난한 ‘김구’

    [선택! 역사를 갈랐다] (35)독립운동가 ‘김립’ vs 그를 비난한 ‘김구’

    1922년 2월 8일 수요일이었다. 중국인들이 위안샤오제(元宵節)라고 부르는 정월 대보름날을 사흘 앞둔 때였다. 상하이 거리는 음력 설을 맞아 불꽃놀이로 들떠 있었다. 북쪽 외곽의 중국인 밀집 지구인 자베이(閘北) 구역 바오퉁루(寶通路)도 그랬다. 네 남자가 둘씩 짝지어 걷고 있었다. 인텔리풍의 30~40대 남성들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앞선 두 사람이 커브를 돌아 추장루(虬江路)로 접어든 이후에 다른 두 사람이 길모퉁이를 꺾어 돌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잠복해 있던 네 명의 양복 입은 청년들이 튀어나왔다. 둘은 앞을 가로막고, 둘은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멀찌감치 뒤를 가로막았다. 앞길을 가로막은 두 청년이 양복에 손을 집어 넣었다. 시커먼 쇠뭉치를 꺼내 들었다. 권총이었다. 탕, 탕, 탕…. 습격자들의 목표는 한 사람이었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길거리에 쓰러졌다. 앞머리칼이 반쯤 벗겨진, 중국 옷을 입은 중년 신사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그래도 총성은 계속됐다. 중국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살자의 시신에서 12발의 총상이 발견되었다. 상하이에서 발간되는, 중국의 가장 영향력있는 일간지 선바오(申報)는 사건 직후 두 차례에 걸쳐 이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피습자 한국인 양춘산(楊春山)이었다. 양춘산은 ‘한국 독립당의 중요 분자’인데, 종래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 살다가 중국 관할 구역으로 이사한 지 불과 3, 4일밖에 안 되는 상태였다고 한다. 나이는 44세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들어가 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이었다. ●김립, 북간도·상하이 등 오가며 해외독립운동 활발 양춘산이란 이름은 중국인으로 위장하기 위한 가명이었다. 본명은 따로 있었다. 바로 김립(立)이었다. 김립은 1919년 11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장에 취임했다. 임시정부의 재정과 인사를 비롯한 모든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던 거물급 인사였다. 비서장은 국무원 각부 차관회의를 주재했다. 임시정부의 운영 전반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가진 직책이었다. 김립은 1920년 9월 15일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구(九)는 그의 죽음에 대해 짤막하게 논평했다. 통쾌하다는 말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백범일지’를 보면 “정부의 공금 횡령범 김립은 오면직(吳冕稙), 노종균(宗均) 등 청년들에게 총살을 당하니 인심은 잘했다고 칭찬하며 통쾌해 하였다.”고 한다. 불과 1년 5개월 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상관이자 혁명 동지였던 사람에게 그처럼 독설을 퍼붓는 이유는 피살자를 ‘정부의 공금 횡령범’으로 간주하기 때문이었다. 김구만이 아니었다. 임시정부의 최상급 지도자들도 김립을 규탄했다. 임시정부 국무총리 대리 신규식(申圭植)을 비롯한 6인의 각부 총장들이 연명으로 발표한 1922년 1월 26일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고’ 제1호를 보자. 그에 따르면 김립은 이동휘(李東輝)와 더불어 온 나라 사람들이 규탄할 만한 죄를 지었다고 한다. ●‘양춘산’ 가명으로 中 입국… 12발 총탄 맞고 피살 김립은 극형에 처해야 할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무슨 죄를 저질렀는가. 해당 구절을 읽어 보자. “김립은 이동휘와 서로 결탁하여 드디어는 국가 공금을 횡령하여 개인 주머니를 살찌우고 같은 무리를 불러 모아 공산이란 미명하에 숨어서 간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초점은 국가 공금을 횡령하여 자기네 당(공산당)만을 위해 사용한 점에 있었다. 이동휘는 그 범죄를 교사한 자로 지목되었다. 국무총리 재임 중에 소련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제공한 거액의 자금을 김립으로 하여금 횡령케 했다는 것이었다. 1919년 임시정부 설립 때부터 경무국장에 취임한 김구는 재임 5년 동안 20여명의 요원을 거느리며 경찰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독립국가의 보통 경찰행정과는 달랐다. 경무국의 주요 임무는 일본의 정탐활동을 방지하고 독립운동자의 투항 여부를 정찰하는 데에 있었다. 살벌하고도 냉엄한 비밀경찰의 임무였다. 김구가 지목한 오면직과 노종균은 바로 그 경무국 소속의 비밀 요원이었다. ●김구 말대로 임시정부 공금 횡령범이었나 김립은 과연 공금횡령범이었는가? 암살 집행의 사유가 된 이 문제는 여태까지 객관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었다. 한 사람의 생명을 박탈할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 과연 사실에 부합한 것인지 확증된 적이 없었다. 한번 따져 보기로 하자. 김구가 말하는 ‘정부 공금’이란 소련 정부가 제공한 무상원조 60만 금화루블을 가리킨다. 이른바 모스크바 자금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60만 금화루블은 2012년 오늘의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약 600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소련은 이 자금을 두 차례에 걸쳐 제공했다. 첫 번째로는 1920년 9월 박진순(朴鎭順)에게 40만 금화루블이 인도되었고, 두 번째로는 1921년 9월 베를린 주재 소련대사관을 통하여 한형권(韓馨權)에게 20만 금화루블이 제공되었다. 어느 경우든 간에 자금 제공처는 소련 외무부였다. 문제의 핵심은 이 자금의 처분권자가 과연 누구냐 하는 데에 있었다. 김립이 피살될 당시 현장에는 3인의 동료가 함께 있었다. 김철수, 유진희, 김하구가 그들이다. 다들 상하이파 공산당의 간부들이었다. 이 중에서 특히 김철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현장 수습을 다른 동료들에게 맡기고 신속히 모스크바 자금이 예치되어 있던 은행으로 가 남은 자금을 안전한 장소로 옮겨 놓는 일을 수행했던 사람이다. 또한 김립에 이어 당의 재정부장으로 취임하여 모스크바 자금을 직접 관리했다. 그래서 김철수는 다른 누구보다도 모스크바 자금의 내막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모스크바 자금이 결코 임시정부 공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모스크바 외교를 수행한 박진순과 한형권은 둘 다 한인사회당의 전권대표 자격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따라서 한인사회당과 그 계승자인 상하이파 공산당이 그 자금을 관리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소련 옛보고서 “상하이 공산당 횡령근거 없다” 결론 김철수의 주장은 임시정부측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구는 무고하게 한 독립운동가를 처형한 셈이 된다. 과연 어느 주장이 옳은가? 소련 정부는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거액의 자금을 주었던 것일까? 우리의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자료들이 최근 구 코민테른(국제공산당) 문서보관소에서 발굴되었다. 국제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비서 쿠시넨이 1922년 5월 11일자로 작성한 훈령이 눈길을 끈다. 이 문서에는 문제의 40만 루블과 20만 루블이 모두 상하이파 공산당에 지급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자금의 결산 보고 의무도 상하이파 공산당에 부과되어 있다. 또 다른 기록이 있다. 국제공산당은 모스크바 자금의 정산 실무를 극동공화국 외무대신 얀손에게 위임했는데, 그가 주도한 자금결산규명위원회가 결과 보고서를 제출한 시점은 1922년 8월 18일이었다. 이 보고서도 모스크바 자금의 수령자를 상하이파 공산당으로 지목했다. 보고서 결론에 따르면 상하이파 공산당의 자금이 사적으로 유용되었다는 여러 가지 악평은 소련 영토 내의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근거가 없다고 한다. 요컨대 코민테른 문서들은 어느 것이나 다 모스크바 자금의 처분권자가 한인사회당과 그 후계자인 상하이파 공산당이라는 점을 뚜렷이 하고 있다. 김철수의 주장이 객관적으로도 실제에 부합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본명 김익용…‘입헌’의 한 글자 따 김립으로 개명 김립의 본명은 김익용(翼瑢)이었다. 그가 김립이라고 자임한 것은 대한제국 시절이었다. 전제군주제 하에서는 근대적 개혁과 독립의 보존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두 명의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이 있었다. 두 청년은 입헌제도 수립을 위해 한평생을 헌신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를 기념하여 그들은 설 립(立)자와 법 헌(憲)자를 한 글자씩 나눠 가졌다. 김익용은 김립이 되었고, 또 한 청년은 본래 자신의 성명인 허헌(許憲)의 의미를 재규정했다. 김립은 나라가 망한 뒤로는 해외로 망명하여 계속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북간도, 연해주, 흑룡주, 베이징, 상하이를 분주하게 오가던 그를 가리켜 일본 헌병대는 ‘배일흥한(排日興韓)을 기도하는 유력자’라고 지목했다. 그는 뛰어난 지능과 조직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책사(策士)이자 재주와 인물이 제1류의 인물이라고 지목했다. 그랬던 김립이 ‘공금 횡령범’이라는 불명예 속에 지금도 갇혀 있다. 사후 90년 동안 김구가 찍어 놓은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심의 과정에서는 임시정부 공금 횡령자라는 낙인 때문에 그의 서훈 상신이 번번이 기각되고 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를 억누르고 있는 허위의 낙인을 지워 내고, 그 자리에 그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국화를 독립운동의 제단에 놓아야 할 때이다. 임경석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 [미주통신] 하버드대 다니는 시진핑 총서기 미녀 딸 화제

    얼마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직에 오르면서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부상한 시진핑 총서기의 외동딸이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 중인 것으로 알려진 시진핑의 외동딸 시밍쩌(20)는 2년 전 홍콩 명보 등 일부 언론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다는 소문이 보도되기는 하였으나 최근의 근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데일리메일이 공개한 시밍쩌의 페이스북에 올려진 그녀의 사진은 또렷한 이목구비에 청순함을 지닌 전형적인 동양 미인의 모습을 띠고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시밍쩌는 시진핑과 그의 부인인 펑리위한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로 어머니 펑리위안은 뛰어난 미모와 달콤한 목소리로 중국 대중 음악계를 사로잡은 유명 가수 출신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시밍쩌는 현재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는 전형적인 학구파로 알려졌으며 여학생회 등의 멤버이기는 하나 지나친 관심을 피하려고 익명을 사용하면서 눈에 띄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녀는 중국의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일단의 경호원들로부터 24시간 내내 정밀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데일리메일은 전했다.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中 시진핑시대 개막] 군부 충성맹세… 시진핑 권력인수 급물살

    중국 공산당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권력 인수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와 병사, 무장경찰이 시 총서기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인터넷사이트 인민망을 통해 16일 보도했다. 전날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으로부터 권력의 핵심인 ‘군권’(중앙군사위 주석)을 물려받아 당과 군을 동시에 장악하게 된 시 총서기 쪽으로 군심(軍心)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인민망에 따르면 중앙군사위 산하의 총참모부, 총정치부, 총후근부, 총장비부 등 4총부는 토론회를 열고 새로 출범한 지도부가 모든 당, 군,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뛰어난 지도층이라며 “시 총서기의 지휘에 절대 복종해 당과 국민이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광저우(廣州)군구와 남해함대를 비롯한 주요 군구와 부대들도 토론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가 순조롭게 출범한 것은 당의 단결과 성숙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당 중앙과 중앙군사위, 시 총서기의 지휘에 절대 복종하고 충성하겠다.”고 맹세했다. 군의 이 같은 발 빠른 충성 맹세 등에 힘입어 시 총서기가 후 주석으로부터 국가주석직을 물려받아 당·정·군을 모두 장악하게 되는 내년 3월까지 권력 인수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후 주석은 전날 시 총서기를 비롯한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 및 원로들과의 기념 촬영식장에서 “당, 군과 모든 인민이 시 총서기의 지도 아래 중국 특색 사회주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가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이날 일제히 보도했다. 시 총서기도 “당과 인민 사업 계승을 위해 후진타오 동지가 솔선해 물러난 것은 숭고한 인품과 고상한 기풍, 맑은 절개를 보여준 것”이라며 후 주석의 ‘완전 퇴진’을 극찬했다. 기념 촬영에는 전현직 상무위원들뿐만 아니라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리루이환(李瑞環) 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등 원로들도 대거 참석했으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특파원 칼럼] 시진핑과 중국특색 사회주의/주현진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시진핑과 중국특색 사회주의/주현진 베이징특파원

    지금 중국의 국가 이념은 ‘중국특색 사회주의’이다. 지난 15일 중국의 1인자로 등극한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도 전임 지도자들처럼 늘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외친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유지하면서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주요 2개국)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중국특색 사회주의 때문이라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개혁·개방을 주창한 덩샤오핑(鄧小平)이 1982년 공산당 12차 전국대표대회(전대)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핵심은 ‘정치는 사회주의를 고수하되 경제 체제는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가릴 필요가 없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쥐만 잘 잡는다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가릴 필요가 없다)론으로 압축된다. 자신의 개혁·개방 구상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1992년 광둥(廣東)성 등 남부지방을 순회하며 행한 ‘남순강화’에서는 “사회주의란 인민 모두가 잘사는 공동부유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그 전제는 일단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며 중국이 가야 할 길은 오로지 중국특색 사회주의에 있다고 쐐기를 박았다. 초기에는 가공무역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켰다. 저렴한 인건비와 낮은 토지비용을 내세워 외자를 유치, 자본을 축적한 뒤 이를 기반으로 중국산업의 고도화를 이뤄낸다는 구상이었다. 지난해 중국 전체 수출에서 가공무역의 비중은 35.8%까지 떨어졌다. 노동력 중심의 가공무역 산업이 지금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것을 보면 중국의 현대화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덩샤오핑이 지명한 후계자인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도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계승했다. 장쩌민은 자본가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하며 자신의 통치이념으로 ‘3개 대표 중요사상’을 내세워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한 단계 승격시켰다고 자평했다. 실제 그의 집권시기 이뤄진 시장주도형 경제의 과감한 도입과 국유기업 및 은행 개혁은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후진타오는 ‘지속가능 성장’ 개념을 내세웠다.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성장 못지않게 적절한 분배가 필요하다는 이른바 ‘과학발전관’이다. 성장 일변도 정책의 후유증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된 시대적 배경과 무관치 않다. 실제 지금 중국의 빈부격차는 더 이상 소득분배 불균형 척도인 지니계수를 발표하지 못할 정도로 심화돼 있다. 비록 분배라는 개념을 강조했지만 방점은 여전히 성장에 맞춰져 있었다. 제도 개혁 없이 분배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가 고착되어 있지만 후진타오 시대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개혁 조치들이 없었다는 게 그 방증이다. 다만 개혁의지는 충만했다. 후진타오는 집권 초기부터 소득분배 조정에 나섰고, 농민문제 해결에 심혈을 기울였다. 문제는 중국의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희생’을, 비주류였던 그가 주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손사래를 치지만 중국 공산당 안에는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 자제그룹), 상하이방(상하이 지역 정치세력) 등의 파벌이 있다. 이들 파벌의 ‘대표선수’들로 구성된 최고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 합의를 통해 국가적 차원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도출한다. 4세대 최고지도부 상무위원 9명 가운데 후진타오 계열은 자신을 포함, 2명에 불과했다. 시진핑을 필두로 한 5세대 지도부 상무위원 7명 가운데 태자당과 상하이방 연합세력인 ‘시진핑 계열’은 그 자신을 포함해 6명에 이른다. 중국인들은 새로운 10년을 여는 시진핑 시대에는 개혁이 이뤄지길 소망하고 있다. 기득권층으로 들어찬 최고지도부가 구성돼 개혁이 어려울 것이란 회의론도 있지만 오히려 개혁을 단행할 권력기반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시진핑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일부가 먼저 부유해진 뒤 점차 부를 확산시킨다는 선부론(先富論)으로 시작한 덩샤오핑의 중국특색 사회주의가 시진핑 시대에는 과연 모두가 잘사는 공동부유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중국의 미래가 시진핑에 달려있는 이유다. jhj@seoul.co.kr
  • [시진핑號 어디로] (3) 경제개혁 닻 올리다

    [시진핑號 어디로] (3) 경제개혁 닻 올리다

    “연간 7% 수준의 성장만 유지해도 중국 경제는 2020년이면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시대’의 중국 경제 키워드는 여전히 ‘성장’이다. 중국인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2020년까지 2010년의 두 배(1만 달러 수준)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0년은 중국이 샤오캉(小康·먹고살 만한) 사회 건설을 마무리하기로 정한 최종 타임라인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16일 새 지도부 출범 후 주재한 첫 공산당 중앙 정치국 회의에서 샤오캉 사회를 강조했다. 향후 10년 발전 노선을 제시한 제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 정치보고의 핵심 개념을 되짚은 것이다. 그는 회의에서 “18차 전대에서 지적했듯 더욱 빨리 경제성장 방식을 (내수 확대로)전환하고 민생을 보장·개선하여 (2020년까지) 샤오캉 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까지 샤오캉 사회 건설을 완성하려면 꾸준히 성장을 유지해야 하며, 당국이 이를 위해 내놓은 해법이 바로 성장 방식을 내수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수출과 정부 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성장은 불평등과 부조화를 심화시키는 데다 미국, 유럽 등 해외 경제의 침체 국면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내수 중심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2007년 17차 전대 정치보고에서도 나온 것이지만 내수는 거꾸로 줄고 있다.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소비가 줄어든 반면 정부 위주의 투자로 성장을 이어 가는 패턴이 심화돼 우려를 낳고 있다. 전체 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35%에서 2011년 49%로 늘어난 반면 소비 비중은 46%에서 36% 수준으로 감소했다. 정부의 투자가 과도해질 경우 자산 거품 등의 부작용이 양산돼 경제가 자칫 붕괴되거나 성장이 정체될 수 있다.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는 수출과 달리 내수가 확대되지 못하는 것은 국민의 수입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이 낙후돼 있어 돈이 있어도 양로, 의료, 교육을 위해 일단 저축하지 않으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하다. 실제로 중국 GDP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낮아져 2009년 현재 8%에 불과하다. 미국의 58%, 한국의 44%, 필리핀의 27%에 비하면 세계 최저 수준이다. 내수를 확대하고 국민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국유기업으로 돈이 몰리는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고 분배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문제는 실천이 제대로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 본인이 태자당(당·정·군 혁명 원로 자제 그룹) 출신이고 지도부 전반에 기득권층인 태자당과 상하이방(상하이 지역 정치세력)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부정적인 관측이 높다. 시 총서기의 개혁 의지가 주목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내수 위주의 성장 패러다임으로 전환된다면 중국의 성장률은 지금까지의 연평균 10% 이상에서 7%대로 조정되겠지만 이 경우에도 2020년까지 국민소득을 두 배로 올리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중국사회과학원 리양(李揚) 부원장은 “중국 경제는 앞으로 질적인 성장을 중시하고 일반 국민의 생활 개선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中 시진핑시대 개막] 별들의 여인 7인7색 ‘내조 정치’

    [中 시진핑시대 개막] 별들의 여인 7인7색 ‘내조 정치’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와 리커창(李克强) 차기 총리 등 중국의 5세대 지도부 7인이 확정되면서 그들의 부인들이 펼칠 ‘내조 정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 총서기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왼쪽·50)은 ‘은둔형’이었던 기존의 중국 ‘퍼스트 레이디’들과 달리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펼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인민 가수로서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펑리위안은 2008년 쓰촨(四川) 대지진 현장을 찾아 자원봉사에 나섰고 지난해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에이즈 및 결핵 예방 친선대사로 활동했다. 국경절 경축연회 등 국가적인 행사에서는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인 카를라 브루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화려한 스타급 퍼스트 레이디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중국 전통의 퍼스트 레이디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리커창 총리 내정자의 부인 청훙(程虹·오른쪽·55)은 펑리위안과 대조적으로 대외 활동을 극도로 삼가고 있다. 베이징 수도경제무역대 영문과 교수로서 고급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두 차례나 ‘10대 인기 교수’에 뽑힐 만큼 재능이 뛰어나지만 2007년 남편이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뒤부터는 수업을 맡지 않은 채 연구만 진행하고 있다. 부부가 함께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다. 펑리위안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남편의 해외 순방에 동행해 ‘내조 외교’에 나설지 주목된다. 서열 3위인 장더장(張德江) 상무위원의 부인 신수썬(辛樹森·63)은 활달한 성격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건설은행 부행장까지 역임한 금융계 주요 인사다. 지금은 은퇴한 상태지만 여전히 금융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정성(兪正聲) 상무위원은 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 기간에 부인 장즈카이(張志凱·68)와 관련해 “은퇴했고 어떤 겸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아내가 전통적인 은둔형 내조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의 부인 야오밍산(姚明珊·59)은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의 딸이다. 국유 무역공사에서 임원으로 재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과 서열 7위 장가오리(張高麗) 상무위원은 오랜 공직 생활에도 불구하고 부인들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中 시진핑시대 개막] 왕치산 상무위원, 경제통… 야오이린 前 부총리 사위

    왕치산(王岐山)은 평범한 지식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때 가족이 오지인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으로 하방돼 2년간 농사를 지었다. 그곳에서 부인 야오밍산(姚明珊)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녀는 부총리를 지낸 보수파 야오이린(姚依林)의 딸이다. 남들보다 먼저 노동의 늪에서 빠져나왔고 문화혁명의 혼란기에 대학에 들어가 학업의 기회를 잡은 것은 장인 덕이다. 장인이 1979년 부총리를 맡게 되면서 그도 베이징으로 입성했다. 장인의 도움으로 공산당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실로 들어갔고 이곳에서 경제로 전공을 바꿨다. 1993년 인민은행 부행장으로 발탁됐다. 1997년말 광둥(廣東)성이 대형 금융기관의 연쇄 도산으로 금융 위기에 빠지자 광둥성 부성장으로 급파돼 10억 달러 이상의 부실 채권을 떠안고 있던 광둥투자신탁을 과감히 파산시켜 부도 문제를 단숨에 해결했다. 2003년엔 베이징에 긴급 투입돼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파동도 잠재우는 등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中 시진핑시대 개막] 당권·군권 거머쥔 시진핑 “부정부패·관료주의 반드시 해결”

    [中 시진핑시대 개막] 당권·군권 거머쥔 시진핑 “부정부패·관료주의 반드시 해결”

    중국 공산당의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첫 목소리에 강력한 힘을 실었다. 그는 15일 총서기 선임 이후 첫 공개행사에서 “당 간부들 사이에 부정부패, 민중들에 대한 외면, 형식주의, 관료주의 등의 문제가 있다.”며 모든 힘을 기울여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역설했다. ‘보시라이(薄熙來) 사건’과 빈부격차 확대 등으로 공산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인식이어서 주목된다. 첫 국정과제를 부정부패 척결 등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대대적인 사정 태풍이 몰아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시 총서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완전한 권력교체가 이뤄졌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으로부터 당권과 함께 군권(중앙군사위 주석)까지 넘겨받았다. 이 같은 완전한 권력교체는 중국 건국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18기 1중 전회(제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를 열고 시 총서기를 비롯해 5세대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을 선임했다. 상무위원에는 시 총서기와 리커창(李克强), 장더장(張德江), 위정성(兪正聲), 류윈산(劉雲山), 왕치산(王岐山), 장가오리(張高麗)가 선임됐다. 리커창은 국무원 총리, 장더장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 위정성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류윈산은 국가부주석, 왕치산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장가오리는 상무 부총리를 맡게 된다.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인 리커창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사들이 태자당(당·정·군 혁명 원로의 자제그룹) 및 그 연합 세력인 상하이방(상하이 지역 정치세력)인 점은 시 총서기에게 더욱 큰 힘이 될 수 있다. 2002년 당시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후임자인 후 주석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권력을 물려주면서 당초 7인이던 상무위원 수를 9명으로 늘려 자기 계파 사람들을 대거 밀어넣었고, 후 주석은 첫 번째 임기 5년 동안 자신만의 정책을 펼 수 없었다. 시 총서기 입장에서는 최고지도부가 7인으로 줄어들어 의사결정의 효율성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5세대 지도부 인사 대부분이 중도 보수 성향이어서 중국 사회가 갈망하는 개혁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류윈산은 언론과 인터넷 통제를 주도해 온 인물이고, 장더장은 중국 사회의 최대 개혁 과제인 국유기업의 발전을 외쳐 지식인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20여년간 석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장가오리도 향후 중국 국유 석유업체들의 이익을 대변할 인물로 꼽힌다. 후 주석의 ‘완전퇴진’과 관련해선 장 전 주석보다 군 장악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비난을 감수하고 실익이 없는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정치적 실익을 도모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중앙군사위 주석직 이양과 측근 인사들의 미래를 연계했을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시진핑 軍인맥 탄탄하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는 일단 덩샤오핑(鄧小平) 이래 군 인맥이 가장 탄탄한 지도자로 첫걸음을 떼게 됐다. 15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으로부터 권력의 핵심인 군권(중앙군사위 주석)까지 모두 물려받아 처음부터 군을 강력하게 지휘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이미 중앙군사위 내에 ‘자기 사람’을 여럿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쉬치량(許其亮) 부주석은 후 주석이 임명해 ‘후의 남자’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발탁한 사람이다. 상하이방(상하이 지역 정치세력)의 맹주인 장 전 주석은 정략적으로 시 총서기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쉬 부주석이 시 총서기를 ‘외면’할 까닭이 없다. 후 주석이 2004년 장 전 주석으로부터 군권을 넘겨받을 때 군부 몫의 부주석 두 자리를 장 전 주석 계열인 궈보슝(郭伯雄)과 쉬차이허우(徐才厚)가 차지했던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4총부 가운데 하나인 총후근부(군수 담당)를 지휘하고 있는 자오커스(趙克石) 부장과 장유샤(張又俠) 총장비부(군사장비 생산) 부장은 시 총서기 계열로 분류된다. 자오커스의 경우 원래 사령원 정년(65세)에 걸려 전역을 앞뒀으나 시 총서기가 중앙군사위원(정년 68세)으로 승진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팡펑후이(房峰輝) 총참모장이 후 주석의 심복으로 전해졌지만 시 총서기와도 사이가 괜찮고, 마샤오톈(馬曉天) 공군사령원도 후 주석 계열이지만 부친이 군 장성을 지낸 태자당 출신으로 시 총서기와 공통분모가 있다. 시 총서기 본인도 1979년 중앙군사위 겅뱌오(耿飇) 비서장의 비서로 3년간 군을 경험했고, 현역 소장(준장)인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을 통해서도 폭넓은 군 인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후 주석이 군권을 내놓기에 앞서 대대적인 군 인사를 통해 자기 사람들을 대거 심어 놓은 만큼 시 총서기의 군 장악력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시각도 여전하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中 시진핑시대 개막] 敵이 없는 집념의 1인자 vs ‘리틀 胡’ 비운의 2인자

    ■시진핑 총서기 태자당 출신… 10차례 입당 퇴짜 文革때 부친 실각당해 토굴 생활 25년간 지방관료로 자신을 낮춰 13억명의 중국인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시진핑(習近平)은 신중하면서도 우직하다. 말을 아끼고 자신을 낮춰 적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중국의 1인자가 됐다. 아버지 시중쉰(習仲勛) 전 부총리는 혁명원로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고 어머니 치신(齊心)도 팔로군 출신으로, 전형적인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 자제 그룹)이다. 베이징의 권부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유소년기를 부러울 것 없이 보냈지만 문화대혁명 때 부친이 우파로 몰려 실각당한 뒤 14살의 나이에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으로 하방해 토굴 등에서 지내며 7년간 산촌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의 끈기와 집념은 남다르다. 열번 퇴짜를 맞고도 또 다시 신청해 공산당에 입당했고 공농병 청강생 자격으로 최고 명문 칭화대 화학과에 입학해 마르크스 이론 전공으로 법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부친의 복권 후 대부분을 지방에서 보낸 공직 생활은 대체로 순탄했다.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에서 겅뱌오(耿飇) 국방부장의 비서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근무처로 중앙이 아닌 시골을 택했다.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을 시작으로 2007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입성하기까지 장장 25년 동안 푸젠(福建)성, 저장(浙江)성 등 지방을 돌며 근무해 왔다. 특히 푸젠성 성장, 저장성 당서기, 상하이 당서기를 지내면서 ‘중앙’의 기조에 충실히 따르면서 실적을 일궈내 차세대 주자로 부상했다. 2007년 17기 1중전회(17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권력 서열 6위로 상무위원에 올라 이듬해 3월 국가부주석에 선임됐고 2010년에는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임돼 5세대 지도부 1인자 자리를 확정했다. 주영 대사를 지낸 커화(柯華)의 딸 커링링(柯玲玲)과 결혼했다가 이혼했으며 1987년 인민해방군 가무단 소속 인민가수 펑리위안(彭麗媛)과 재혼해 외동딸(시밍쩌)을 뒀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리커창 차기 총리 中 최고 경제과학상 수상한 수재 胡 총애 ‘준비된 지도자’로 키워 ‘분배’ 강조… 정책충돌 가능성도 차기 총리로 확정된 리커창(李克强) 상무위원은 사실 ‘비운’의 인물이다. 5년 전 17차 전국대표대회(전대) 전까지 그는 유력하게 후진타오(胡錦濤)의 뒤를 이을 5세대 지도부의 1인자로 꼽혔다. 후진타오가 이끄는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계열의 ‘적자’로서 음으로 양으로 후진타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7차 전대에서 리커창은 시진핑(習近平)에게 역전패당했다. 30대에 장관급 직책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맡는 등 시진핑에 비해 한참이나 앞섰던 그가 역전패당한 것은 너무나 똑똑하고 할 말 하는 성격인 데다 그가 대학 시절에 가졌던 자유사상에 대한 원로들의 거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 시진핑이 공농병 청강생으로 칭화대에 진학한 것과 달리 리커창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베이징대 법학과에 입학한 수재다. 그는 모교에서 경제학과 석·박사 학위도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 ‘중국 경제의 3원구조를 논함’은 1991년 중국 경제학계 최고상인 ‘쑨예팡(孫冶方) 경제과학상’을 수상했다. 졸업 후 유학 대신 대학에 남아 공청단 활동을 한 것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안후이(安徽)성 동향인 후진타오를 만난 것도 그때였다. 두 사람은 서로 ‘커창’ ‘진타오’ 하며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숙했다. 그 후 그는 후진타오에 의해 철저하게 ‘준비된 지도자’로 키워졌다. 농업 대성인 허난(河南)성에서 대리성장, 성장, 당서기를 차례로 거쳤고 중공업지구인 랴오닝(遼寧)성으로 옮겨 경력을 덧붙였다. 농촌 출신 도시 일용 노동자인 농민공 문제 해결 등 분배 문제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어 ‘성장’을 강조하는 시진핑과 정책 추진 과정에서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와 같은 강한 추진력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베이징 수도경제무역대 영문과 청훙(程紅) 교수가 부인이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시진핑號 어디로] (2) 민주화와 정치 개혁

    [시진핑號 어디로] (2) 민주화와 정치 개혁

    시진핑(習近平) 시대의 최대 화두는 단연 정치개혁이다. 망국병으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화된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정치개혁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중국사회 내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언론통제 완화, 사법개혁, 당정 분리 등 정부 감독 강화와 정부 권력 제한을 골자로 하는 정치개혁 구체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는 민주화와 직결되고 공산당 일당 독재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공산당 지도부는 정치개혁은 하되 서구식 민주제 도입은 절대로 안 된다고 쐐기를 박고 나섰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지난 8일 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 개막식 정치보고에서 중국의 정치노선과 관련, “폐쇄된 옛길로 가지 않겠지만, 동시에 깃발을 바꿔 달고 사악한 새 길로 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폐쇄된 옛길이란 개혁·개방 이전의 (마오쩌둥식)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사악한 새 길이란 자본주의 정치 체제와 서구식 입헌민주주의 노선을 말하는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시진핑 총서기도 “18차 전대 정치보고는 당이 어떤 깃발을 내걸지, 어떤 길을 갈지를 명확히 선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3권 분립, 양원제 등 서구식 민주주의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 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시 총서기의 정치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자신을 덩샤오핑(鄧小平)의 중국특색 사회주의 계승자로 강조한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베이징의 한 우파 지식인은 “덩샤오핑의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경제적으로는 개혁·개방을 허용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일당 독재 구조와 사회 통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덩샤오핑 이후 중국 지도자들은 ‘강경 진압’에 나섰던 공통점이 있다. 후 주석은 1989년 티베트자치구 당서기 당시 철모를 쓰고 시위대 제압에 성공해 최고지도자로 오르는 발판을 마련했고, 같은 해 톈안먼(天安門) 사건 당시 상하이시 당서기였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상하이 지역의 격렬했던 학생시위에 적극 대처해 총서기로 발탁됐다. 시 총서기의 경우 지난 2009년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서 한족과 위구르족 간 민족 갈등이 폭발했을 때 위구르 분리독립 세력 탄압을 주도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국 내 제도권 학자들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당내 민주화 확대를 통해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급격한 서구식 정치체제를 도입하는 대신 당내 민주화 확대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내 민주화 역시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이번 중앙위원 선거에서 중국 공산당이 당내 민주화의 척도로 여기는 차액선거(정원보다 많은 후보자를 등록시켜 득표 수가 적은 후보를 탈락시키는 선거방식) 비율이 5년 전에 비해 겨우 1% 포인트 늘어난 데 그친 것이 그 방증이다. 새 상무위원 대부분이 기득권층으로 대표되는 태자당과 상하이방인 점도 정치개혁 회의론을 부채질한다. 개혁파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아들인 후더핑(胡德平) 정협 상무위원은 최근 태자당 모임에 나가 정부에 대한 공산당의 지배력 제한을 주장했으나 별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中 시진핑시대 개막] 류윈산 상무위원, 타자수 출신서 선전분야 최고위직에

    류윈산(劉雲山)은 타자수로 출발해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지닝(集寧)시의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나 금세 타자수로 변신해 선전 분야와 인연을 맺었다. 1974년에는 신화통신 네이멍구자치구 분사 톈충밍(田聰明) 기자의 추천을 받아 정식 기자로 채용됐다. 승승장구하는 톈충밍의 천거로 네이멍구자치구 선전부 부부장에 이어 12기 중앙위원회 후보중앙위원 자리까지 올라갔다. 중앙무대로 발탁한 것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시절 당 중앙선전부장인 딩관건(丁關根)이다. 1993년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베이징에 입성했고 2002년에는 역대 최연소인 55세에 중앙선전부장이 됐다. 그는 선전 분야의 책임자로서 사회안정을 내세워 언론 탄압과 사상 통제를 해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 실명제도 그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장 전 주석 측근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공청단 출신이면서도 장쩌민 계열로 분류된다.
  • [中 시진핑시대 개막] 정치국위원 25명 중 15명이 ‘새 얼굴’ 차세대 지도자 후춘화·쑨정차이 눈길

    중국 공산당은 15일 권력의 핵심인 정치국 위원을 대폭 물갈이하는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지난 17기와 같이 후보위원 없이 정위원 25명을 선출했는데, 이 중 60%인 15명이 새 인물이다. 후진타오(胡錦濤) 등 17기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을 포함해 은퇴 연령을 넘긴 정치국위원 14명이 빠졌다. 부패와 당기율 위반 혐의로 실각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도 명단에서 빠졌다. ●은퇴 연령 넘긴 14명 ‘물갈이’ 직전 정치국위원 중에는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와 리커창(李克强)·장더장(張德江)·왕치산(王岐山)·위정성(兪正聲)·장가오리(張高麗)·류윈산(劉雲山) 등 18기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모두 포함됐다. 류옌둥(劉延東) 국무위원과 리위안차오(李源潮) 당 중앙조직부장, 왕양(汪洋) 광둥성 서기 등도 유임됐다. 신임 정치국위원 중에는 시 총서기의 뒤를 이을 1960년대생 차세대 지도자들이 다수 선임됐다. ‘리틀 후진타오’로 불리는 후춘화(胡春華)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서기, ‘농업 박사’로 통하는 쑨정차이(孫政才) 지린(吉林)성 서기가 주인공이다. 정치국위원에 선출되면서 후 서기와 쑨 서기는 각각 광둥(廣東)성 서기와 충칭(重慶)시 서기로 영전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됐다. 정치국위원으로 승진한 멍젠주(孟建柱) 공안부장은 사법기관을 총괄하는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에 내정됐고, 당 인사를 총괄하는 중앙조직부장에는 장춘셴(張春賢) 신장자치구 서기가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1·2위 도시의 수장인 궈진룽(郭龍) 베이징시 서기와 상하이시 서기로 영전할 것으로 알려진 한정(韓正) 상하이 시장도 무난히 정치국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여성 정치국위원은 한 명 더 늘어 ‘약진’했다. 류 국무위원에 이어 공청단파로 분류되는 쑨춘란(孫春蘭) 푸젠(福建)성 서기가 합류했다. 군 인사로는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판창룽(范長龍)과 쉬치량(許其亮)이 명단에 포함됐다. 류치바오(劉奇?) 쓰촨(四川)성 서기·자오러지(趙際) 산시(陝西)성 서기는 정치국위원이 돼 중앙서기처 서기에 임명됐다. ●女 정치국위원 한 명 더 늘어 후보위원에 선출될 것으로 전해졌던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주임과 리잔수(栗戰書) 중앙판공청 주임도 이름을 올렸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中 시진핑시대 개막] 내외신과 만난 시진핑 “중국과 세계는 더 많이 이해해야”

    중국의 새 지도자로 선출된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를 비롯한 5세대 지도부가 국내외에 새로운 출발을 공식 선언했다. 7인의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단은 15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8기 1중 전회)가 끝난 뒤 예정보다 한 시간 늦은 오전 11시 55분쯤(현지시간)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 총서기를 선두로 당 권력서열에 따라 리커창(李克强), 장더장(張德江), 위정성(兪正聲), 류윈산(劉雲山), 왕치산(王岐山), 장가오리(張高麗) 상무위원이 차례로 손을 흔들며 입장했다. 연단 바닥에는 상무위원들이 설 위치에 1부터 7까지 숫자가 표시돼 7인 체제가 확정됐음을 예고했다. 시 총서기는 ‘좌장’으로서 함께 일할 상무위원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시 총서기가 “리커창 동지는 17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었고, 나머지 동지들은 정치국 위원이어서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리 상무위원은 손을 흔들며 자신감 넘치는 인사를 했고, 나머지 상무위원들은 한걸음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상무위원 소개를 끝낸 뒤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라고 말문을 연 시 총서기는 10여분의 연설에서 부패 척결과 민생 안정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는 “책임은 태산처럼 무겁고 해야 할 일 역시 중요하며 갈 길은 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중국 인민은 좋은 교육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하고 자식들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인민이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뤄내야 할 목표”라고 말했다. 시 총서기는 연설이 끝날 무렵 “기자 여러분”이라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내외신 취재진의 주의를 환기시킨 뒤 “중국과 세계는 더 많이 이해해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중국과 각국의 상호이해를 넓히기 위해 계속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사설] 中 시진핑 시대 도래와 우리의 선택

    중국에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체제가 공식 출범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도 이양받아 당권과 군권을 동시에 장악한 강력한 체제를 갖추고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마오쩌둥 이후 5세대 지도부인 시진핑 체제는 중국의 국력이 미국과 비교될 정도로 강대해진 상황에서 출범했지만, 안팎으로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시진핑 체제가 그런 도전에 대해 어떤 해결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중국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 특히 동북아의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시 총서기는 어제 취임 후 첫 연설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민생안정을,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부흥을 강조했다. 시 총서기는 교육, 일자리, 사회보장, 의료, 주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공산당 내의 부패와 관료주의를 비판했다. 중국이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축적된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에 당력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정책 변화가 우리나라의 대중 교역이나 투자 등에 어떤 위기 또는 기회 요인이 될 것인가에 대해 면밀한 분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외 정책과 관련해 시 총서기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의 국력이 커진 만큼 대외적으로도 그에 합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중국이 처한 대내외적인 상황으로 볼 때 기존의 한반도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러나 중국은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을 선언한 미국과 한반도 안팎에서 크고 작은 이해관계의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무엇보다 한반도에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가급적 막아야 할 것이다. 한·중의 ‘현 정부’는 두 나라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관계를 의미하는가는 모호하다. 두 나라의 ‘새 정부’는 그런 모호성을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 한국의 새 정부는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를 주도하기 위해 새로운 구상이나 제안을 서둘러서 내놓는 것보다는 남북 대화를 복원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그것이 우리가 현실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역할이다. 남북관계 개선은 한반도 안정은 물론이고 중국 그리고 미국의 관계에서 외교적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새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