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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원순 정몽준 JTBC 토론]서울시장 후보 토론회 박원순 “새로운 미래” 정몽준 “투자 이끌 것”

    [박원순 정몽준 JTBC 토론]서울시장 후보 토론회 박원순 “새로운 미래” 정몽준 “투자 이끌 것”

    ‘박원순 정몽준 JTBC 토론’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 박원순 정몽준 JTBC 토론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두 후보는 서울시장 후보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두 후보는 2일 밤 10시 JTBC와 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한 서울시장 후보 TV 토론회에서 각자 각오를 전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후보 경쟁력을 묻는 ‘내가 정몽준 후보보다’ ‘내가 박원순 후보보다’라는 주제로 맞토론이 진행됐다. 박원순 후보는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의 미를 누가 더 잘 만들어 갈 것인가. 1000만 서울 시민을 누가 더 잘 이끌어 갈 것인가. 이를 결정하는 선택이다. 시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떠온다. 박원순은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정몽준은 낡은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 저는 이 시간만큼은 서울의 미래를 두고 이야기하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정몽준 후보는 “30년 넘게 세계 1위 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선거 때 많은 후보들이 쏟아내는 공약을 보여 ‘저걸 다 지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누가 시장이 되는가에 따라 서울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ROTC 장교로서 육군 장교로 근무했고, 사회에 3000억 원을 기부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실업자 한 명 생기는 것이 공산당 한 명 생기는 것보다 무섭다’고 했다. 저는 많은 기업인들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능력으로 많은 투자를 이끌어 내겠다”며 각오를 다지며 토론이 시작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의 창] 억압과 통제 그 톈안먼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세계의 창] 억압과 통제 그 톈안먼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1989년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한 ‘6·4 톈안먼’사태가 일어난 지 4일로 25주년이 된다. 그 사이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시위대가 요구했던 정치·사회 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톈안먼사태의 배경이 된 부정부패 등의 사회문제는 오히려 그때보다 심해졌고 민주 개혁 요구에 대한 당국의 억압과 통제 역시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지난 1일 세계 최대 광장이자 베이징의 심장부로 불리는 톈안먼광장을 찾았다.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공항 검색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수도 베이징에만 10만여명의 보안 요원이 배치돼 최고 수준의 경비·경계령이 발동됐다는 외신 보도가 실감났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은 중국 당국이 최근 군대와 무장경찰, 소방당국에 통지문을 보내 임전 태세 돌입을 지시했으며 이런 상황은 앞으로 2개월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톈안먼사태 묻자 “그 폭동 말하는 거요?”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톈안먼사건을 아느냐”고 묻자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쓰촨(四川)성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자오(趙·40)모씨는 “‘톈안먼 폭란(暴亂·폭동)’을 말하는 거냐”고 답했으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당국은 시위 당시 인민일보 사설을 통해 사건을 ‘반혁명적 폭동’이라고 규정했다가 2004년부터 ‘1989년의 운동 풍파(정치 풍파)’라고 바꿔 부르고 있다. 중·고교 교과서에도 언급되지만 사회주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건을 제대로 알기가 힘들고 진상을 입에 올리는 것도 여전히 금기다. 중국 대학생들 중 상당수는 인터넷 등을 통해 톈안먼사태를 접했다면서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정치 기류와 사회 형태가 1980년대와 달리 안정적이고, 젊은이들이 정치 개혁보다 돈 버는 일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톈안먼사태가 일어난 세 가지 원인은 부정부패와 물가 상승 그리고 민주화 요구인데 당국이 ‘부패와의 전쟁’에 총력을 쏟고 있고, 경착륙 우려 속에서도 물가를 억제하면서 민심을 달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국이 민주 인사들을 잡아들이는 등 통제의 고삐를 조이는 것도 사태에 대한 관심과 재평가 요구를 억누르는 주요 요인이다. ●민주화 요구에 반부패·물가 통제로 입막음 당국은 지난 5월 초 베이징의 한 가정집에서 ‘6·4 톈안먼사태 기념 토론회’를 위해 모인 인권변호사 푸즈창(浦志强) 등 민주 인사 5명을 공공질서 문란 혐의로 체포했다. 타이완 중앙연합신문망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인권운동가 228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2일에도 왕젠민(王健民) 등 홍콩에서 활동 중인 반체제 성향의 언론인 2명이 체포됐다고 타이완 자유시보가 전했다. 당국은 톈안먼사태에 대한 추모 활동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지난달 27일부터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베이징대 출신의 류쑤리(劉蘇里)는 “비록 사람들이 톈안먼사태를 잊은 듯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 사회의 허리 세대는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 어떤 임계점을 계기로 침묵하는 이들 다수가 함께 입을 열 날이 올 것임을 공산당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침묵… 언젠가 함께 입 여는 날 올 것” 톈안먼사태로 이어진 당시 학생운동은 개혁파 후야오방(胡耀邦)의 급작스러운 사망이 도화선이 됐다. 1980년부터 총서기를 맡은 후야오방은 정치 개혁을 주장하고 당시 성행하던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했으며 2년 뒤인 1989년 4월 15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그의 죽음을 기리는 대학생들이 톈안먼광장에서 벌이던 추모 모임이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로 바뀌면서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톈안먼사태는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 서거일부터 같은 해 6월 4일 당국의 유혈 진압으로 시위가 끝나기까지의 전 과정을 말한다. 시위는 톈안먼광장은 물론이고 중국 전역 400여개 도시에서 함께 이뤄졌다. 중화권에선 톈안먼사태라는 이름은 시위가 톈안먼에서만 이뤄졌다는 인상을 준다며 ‘89 민주화 운동’으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톈안먼사태와 후야오방의 깊은 인연 때문에 공산당 지도부나 관영 매체가 후야오방을 언급할 때마다 그의 복권과 톈안먼사태 재평가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기대로 술렁인다. 지난 4월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후야오방 생가를 방문했을 때도 이러한 관측이 고조된 바 있다. 사회과학원 출신의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후야오방은 중국 공산당 계보에서 개혁과 청렴을 상징하는 최대 자산으로 현 정권은 인민 지지를 높이는 데 그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톈안먼사태 재평가는 공산당의 자기 부정이고 재평가를 기점으로 각종 불만 시위와 폭동이 도미노처럼 확산될 수 있어 재평가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中 사이비종교 ‘묻지마 살인’ 공포

    “(비록 사람을 죽였지만) 나는 법이 두렵지 않다. 전능신(全能神)을 믿기 때문이다.” 중국 산둥(山東)성 자오위안(招遠)시 맥도날드 매장에서 사이비 종교인 ‘전능교’의 신도 6명이 한 여성을 집단 구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위구르분리·독립세력의 무차별 테러에 이어 사이비 종교 신도들의 묻지마식 살인으로 공공장소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사건은 전능교 신도인 장리둥(張立冬) 등 용의자 6명이 지난달 29일 밤 9시쯤 자오위안시 맥도날드 매장에서 신도 영입을 목적으로 피해 여성에게 접근해 전화번호를 요구했다 거절당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키 180㎝의 거구인 장리둥은 주먹과 발로 피해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때렸으며, 미성년자인 장리둥의 아들(12)도 알루미늄 걸레봉으로 함께 가격하는 장면이 폐쇄회로TV에 찍혔다. 또한 장리둥의 딸 2명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2명을 붙들고 늘어지며 온몸으로 저항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장 안에는 손님들로 붐볐지만 아무도 이들을 막지 않고 지켜만 봤다. 장리둥은 사건 발생 이틀 뒤인 31일 죄수복 차림으로 중국중앙(CC)TV에 나와 자신이 죽인 여성을 악마라고 지칭하며 “전능신을 믿기에 때리는 과정에서 법률 따윈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목청을 높였다. 당국은 전능교를 일찌감치 사교(邪敎) 집단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소탕 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들은 전능신 통치시대를 열려면 현재 중국을 지배하는 ‘크고 붉은 용’(大紅龍, 공산당을 지칭)과 결전을 벌여야 한다며 공산당 타파까지 언급한 바 있다. 당국은 2012년 전능교 신도들이 종말론을 내세우며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을 벌였다는 이유로 관련자 1000여명을 검거한 바 있다. 한 중국 전문가는 “사교집단이 중국에서 기승을 부리는 것은 중국에 건전한 종교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데다 빈부격차 등으로 서민층 사이에 사회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너무 예민한 中 언론 통제는 톈안먼 25주년 앞둔 진통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이후 심화돼 온 언론 통제 압박이 6·4 톈안먼(天安門)사태 25주년을 앞두고 절정에 달하는 분위기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8일(현지시간) 중국 공안 당국이 지난 13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충칭(重慶)지국의 중국인 취재보조원 신젠(辛健)을 공공질서 문란죄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의 일본 언론인들은 신젠이 체포된 것은 앞서 당국에 체포된 인권 변호사 푸즈창(浦志强) 사건 취재와 관련이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푸즈창은 이달 초 톈안먼 사태 추모 세미나에 참석한 뒤 공공질서 문란죄로 체포됐다. 일부 주중 외신 기자들은 톈안먼 사태를 앞두고 민감한 사안을 취재할 경우 “심각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고 RFA는 전했다. 언론에 대한 중국 당국의 단속은 지난달 말 반체제 여기자 가오위(高瑜)가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구속되면서 본격화됐다. 이달 초 미국에 서버를 둔 반체제 중화권 매체인 보쉰(博訊)의 샹난푸(向南夫) 기자는 공공질서 문란죄 위반 혐의로 체포됐으며, 유명 뉴스 포털 사이트인 텅쉰망(騰訊網)의 장자룽(張賈龍) 기자는 최근 회사로부터 ‘업무 기밀과 기타 민감한 기밀 정보를 누설한 혐의’로 해고됐다. 이런 가운데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해외판은 지난 28일 사설에서 “서구 민주주의가 오늘날 계속 쇠퇴하는 것은 그 자체에 결함이 많기 때문”이라며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강조했다. 사설은 이어 “태국·우크라이나·이집트는 민주화가 번영과 안정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지적한 뒤 민주화가 오히려 멀쩡했던 국가를 혼란에 빠트렸다고 비판했다. 중국 내 반체제 인사들은 “톈안먼 사태는 진정한 민주화 운동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수많은 희생자를 잊어서는 안 된다”며 톈안먼 사태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구 민주주의를 지는 해에 비유한 이 사설은 톈안먼 사태 25주년을 앞두고 점차 고조되고 있는 희생자 추모 분위기를 단속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영화 多樂房] ‘퍼지’

    [영화 多樂房] ‘퍼지’

    에스토니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수십년째 혼자 살고 있는 알리데(라우라 비른)는 한밤중에 인신매매범으로부터 도망친 소녀 자라(아만다 필케)를 발견하고 숨겨준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알리데는 곧 자라가 오래전에 추방된 친언니의 손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자 그녀에게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알리데의 지난한 과거는 남자들에게 능욕당하던 자라의 모습과 교차되며 세대를 관통하는 역사의 비극성을 드러낸다. 알리데에게는, 아니 에스토니아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퍼지’는 구 소련이 탄압하던 에스토니아의 끔찍한 풍경을 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형부 한스(피터 프란젠)를 사랑하는 알리데는 독립군인 그를 러시아 공산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견뎌낸다. 갖은 협박과 성폭행 등으로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만신창이가 된 그녀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당 간부와 결혼하고, 마침내 언니와 조카를 추방시킨 후 집안 은신처에 숨어 있는 한스를 혼자 돌보게 된다. 공산당과 독립군, 그리고 독립군을 돕는 공산당의 아내가 한집에 공존하는 위태한 상황은 당시 혼란스러웠던 에스토니아에 대한 대유이다. 또한 알리데의 지극정성에도 한결같이 자신의 가족들만 생각하는 한스는 끝까지 조국을 지키고자 했던 독립군들의 애국심을 대변한다. 그것은 살기 위해, 사랑을 위해 변절을 택한 알리데가 결코 범할 수 없었던 무엇이다. 감각적인 영상과 서정적인 음악이 참혹한 역사 속에 어긋난 한 여인의 순정에 애처로움을 더한다. 알리데는 아물지 않은 상처와 죄책감을 간직한 채 에스토니아가 독립한 후에도 그 집을 지킨다. 오래전 언니의 가족들이 사라진 이곳에 다시 나타난 조카 손녀의 존재는 현대에도 남아 있는 역사의 어둡고 슬픈 그림자이다. 이제 공산당 대신 인신매매범들이 순수한 영혼을 유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자라의 등장은 알리데가 과거의 상흔을 시간 속으로 침잠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구세대는 마침내 고통스러웠던 역사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다음 세대에게 미명의 빛처럼 새로운 미래를 열어준다. 길었던 밤을 뒤로하고 떠나는 자라의 벅찬 미소와 알리데의 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구슬프고 아리면서도 은근히 평온하다. 알리데에게도, 자라에게도 더 이상 아픔은 없으리라는 안도감이 진하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음에도 유사한 상처를 공유한 두 여자의 만남과 이별은 흥미롭게도 한국 멜로드라마들이 기반하고 있는 한(恨)의 정서와 상통하는 데가 있다. 스탈린의 공포 정치를 경험했던 에스토니아인들에게 대물림되는 역사, 그리고 근현대사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민족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퍼지’의 결말처럼, 우리는 과연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열어줄 수 있을까? 우울한 시절에 떨어뜨린, 일말의 희망이 고마운 영화다. 2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김정일 타도하자 글귀 북한 파출소에 흔했다”

    “김정일 타도하자 글귀 북한 파출소에 흔했다”

    “사람들이 아는 북한은 1990년대 이야기일 뿐이에요. 젊은 세대의 생각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북한 장마당 세대의 희망’이란 칼럼을 기고한 탈북자 박연미(21)씨는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20대는 자본주의에 친숙하고 오히려 사회주의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2007년 탈북해 2009년 한국에 들어온 그는 “홍보대사로 일하는 민간 싱크탱크 ‘프리덤 팩토리’의 관계자와 상의해 메일로 WP에 기고문을 보냈더니 싣고 싶다고 바로 연락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어로 쓴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의 기고문에서 ‘장마당 세대’를 소개했다. 장마당 세대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태어나 국가의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시장 경제를 체득했다. 그는 ‘김씨 왕조’에 대한 충성심이 없고, 외부 미디어와 정보에 익숙한 장마당 세대가 북한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씨는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죽고, 시장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북한 파출소에 ‘김정일 타도하자’라는 글귀가 붙는 건 흔한 일이었다”면서 “나조차도 레닌, 공산당선언 등을 오히려 한국에 와서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 공부를 많이 해서 통일 한국과 세계를 잇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씨줄날줄] 중·러 군사훈련/박홍환 논설위원

    소련(현 러시아)의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 사망 후 중국과 소련은 ‘동지적 관계’가 무색할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은 소련을 ‘교조주의’라 원색적으로 공격하고, 소련 역시 중국을 ‘수정주의’로 몰아붙이는 등 사회주의 양대 세력 간에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됐다. 급기야 1969년에는 중국 측 헤이룽장(黑龍江)과 러시아 측 우수리강 일대의 섬 관할권을 놓고 전쟁까지 불사했다. 동맹조약까지 폐기했던 양국이 화해의 물꼬를 튼 것은 소련의 몰락을 전후해서다. 소련의 위상이 소비에트연방에서 러시아로 위축되면서 새로운 중·러관계가 시작됐다. 중·러 밀월은 옛 소련의 몰락 이후 세계 유일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은 자명해 보인다. 2001년 양국은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위성국들까지 모아 이른바 ‘상하이 협력기구’(SCO)를 결성, 서방과의 본격적인 세 대결에 나서기 시작했다. 옛 소련제 무기체계를 공유하니 합동군사훈련도 어렵지 않았다. 양국 만의 첫 번째 합동군사훈련은 2005년 8월 중국 산둥(山東)반도 일대에서 실시됐다. ‘평화사명 2005’로 명명된 당시 훈련은 규모나 장비 면에서 실전을 방불케 했다. 육·해·공군 첨단 무기와 1만여명의 병력을 동원, 해상봉쇄 훈련까지 실시했다. 유사시 미 항공모함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의 훈련이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후에도 양국은 ‘대(對)테러 공조’ 등을 명분으로 내건 다양한 형태의 합동군사훈련을 상대국을 오가며 거의 매년 실시하고 있다. 올해 훈련도 범상치 않다. ‘해상연합 2014’로 이름 붙여진 올해 훈련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지난 20일 훈련 개막식에 참석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26일까지 계속되는 훈련 구역이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ADIZ)인 이어도 남쪽 해상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전투기와 구축함, 잠수함, 특수부대 등이 동원돼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 안에서 실사격 훈련을 하는데도 사전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외교 및 군 당국의 무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밀월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회귀’ 전략 등에 대한 양국 간 위기의식의 발로로도 읽힌다. 중국 입장에서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협력에 대항할 수 있는 응원군이 필요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미국 등의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로서도 중국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세계의 창] 中 해양굴기 최전선 남중국해

    [세계의 창] 中 해양굴기 최전선 남중국해

    남중국해가 중국 해양굴기의 최전선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분쟁도서 석유시추에 베트남이 반발하고 미국이 중국에 ‘도발 중단’을 경고하고 있으나 중국은 남중국해가 자국의 ‘핵심이익’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베트남 내 반중(反中)시위 보도를 자제하던 중국 관영 언론들은 지난 18일을 기점으로 베트남 내 반중 정서를 대대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반중 시위가 수그러들고 있음에도 중국인 철수 조치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석유시추 주변 배치 선박도 130척으로 늘리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전쟁 준비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관련 국가 간에 국지전 발생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남중국해는 350만㎢의 광대한 바다와 수많은 섬 및 산호초들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파라셀군도(중국명 시사군도)는 중국과 베트남 간 영유권 분쟁지다. 중국은 1974년 무력으로 이곳을 점령해 실효지배하고 있으며, 베트남은 지금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양국 간 분쟁은 그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으나 중국이 이달 초 이 군도 인근에 10억 달러 규모의 석유시추 시설을 설치하면서 폭발했다. 시추시설은 베트남 연안으로부터 130해리(240㎞) 거리에 있는데 베트남은 이를 근거로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진행되는 중국의 공사는 불법이라며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시사군도 해역 안에서 진행되는 공사라며 맞서고 있다. 중국은 이달 초부터 세 차례에 걸쳐 공사에 항의하는 베트남 감시선에 물대포 세례를 퍼붓고 인근 상공에 초계함을 띄우는 식으로 베트남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 13일 베트남 내 반중 시위로 중국인 2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다쳤지만 중국은 18일 시추 시설 주변에 함선 17척을 추가하면서 베트남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베트남 언론들이 보도했다. 중국은 베트남이 군사적으로 약세이고 경제적으로는 자국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타이완 타블로이드지 왕보(旺報)는 19일 “베트남 내 반중 시위에 침묵하던 중국 관영 언론들이 18일부터 태도를 바꿔 베트남 비난 공세에 나선 것은 중국 내 민족주의를 고양시켜 수시라도 국지전에 나서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달 중순을 기점으로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의 존슨 남 암초(중국명 츠과자오)에서 군사기지 건립을 강행해 필리핀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필리핀은 존슨 남 암초가 자국의 EEZ 안에 있다는 이유로 중국의 기지 건립에 반발하고 있으나, 중국은 필리핀 측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중국이 츠과자오에 군사기지를 건립하는 것은 자국에서 멀리 떨어진 난사군도에 제2의 남중국해 전략기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친중국계인 홍콩 대공보는 최근 “시사군도 융싱다오(永興島)에 군사기지가 들어선 뒤 하이난(海南)섬 기지 대신 융싱다오 기지에서 전투기를 출격시키면서 남중국해 방위 부담이 크게 줄었다”면서 “이처럼 난사군도 츠과자오에 제2의 기지가 들어서면 남중국해에 대한 통제를 한층 강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2012년 남중국해 주권 강화를 위해 시사군도 융싱다오에 난사·시사·중사 등 3개 군도를 통합한 싼사(三沙)시를 설립하면서 첫 번째 남중국해 군사기지를 건립한 바 있다. 필리핀은 중국이 2012년 자국과 분쟁 중인 남중국해 스카버러(중국명 황옌다오)를 무단 장악했다며 반발, 유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에 분쟁 중재를 신청했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 영토라며 중재를 거부하는 등 일방통행식 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집착하는 것은 우선 남중국해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남중국해는 석유, 천연가스 등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천연자원의 보고인 데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해 원유를 수송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다. 중국의 국가전략 최우선 순위는 경제발전이며,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풍부한 자원과 물류 및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송로 확보가 필수적이므로 남중국해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국내 정치적 요인을 감안할 때도 남중국해는 일본과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만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이다.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은 세진 힘을 바탕으로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 고유의 권리를 되찾는 의미가 있으며 이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내세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인들은 남중국해가 중국 고유의 영토라고 교육받았으며, 이에 따라 당국이 남중국해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공산당은 국내 정치적 압력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베트남과의 갈등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강화하는 미국을 향해 남중국해가 자국의 ‘핵심이익’이란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을 방문한 팡펑후이(房峰輝)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이 지난 15일 미 국방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석유시추 시설은 반드시 완공될 것이며, 미국이 객관적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중국과 미국 간 관계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자리는 내려놓았다 권력은 놓지 않았다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자리는 내려놓았다 권력은 놓지 않았다

    지난 14일 중국 상하이 자딩(嘉定)구 조충(鳥蟲)전각 공예 작품 전시관인 한톈헝(韓天衡) 미술관.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이 한정(韓正) 상하이시 당서기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맏아들 장몐헝(江綿恒) 상하이과학기술대 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명보(明報) 등 홍콩 언론들이 15일 보도했다. 그의 공개 행보는 2012년 9월 장 전 주석 부부와 함께 베이징 국가대극원(大劇院)에서 오페라를 관람한 이후 처음이다. 장 총장이 함께 수행한 것은 쩡 전 부주석이 장 전 주석의 ‘오른팔’이었다는 긴밀한 관계 때문으로 보인다. 주샤오둥(朱曉東) 미술관장은 “쩡 전 부주석은 사적으로 방문했다”고 말했다. ‘은인자중’하던 중국 전임 최고 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장 전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을 비롯해 주룽지(朱鎔基),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등 전임 최고 지도부가 잇따라 공개 활동에 나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반부패 사정 작업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전방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고 현 지도부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려는 의도라는 게 베이징 정가 소식통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장밍(張鳴) 중국 인민대 정치학과 교수는 “전직 지도자들이 시 주석의 반부패 운동이 전직 고위 관료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관측에도 자신들은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부패 칼날 아랑곳 않고 ‘건재’ 과시 후 전 주석과 주 전 총리는 지난 6일 공산혁명 전사인 쭤원후이(左文輝)의 빈소에 추도하는 글과 조화를 보내 간접 조문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후 전 주석은 9일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의 중국 4대 서원 중 하나인 후난대 악록서원(嶽麓書院)도 둘러봤다. 주 전 총리는 3월 6일 칭화(淸華)대 경제관리학원 개교 30주년을 맞아 보낸 축하 서한을 통해 “시야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국내 빈곤 지역의 민의를 살피라”고 당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2012년 11월 원 전 총리 일가의 재산이 최소 29억 달러(약 2조 970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해 ‘서민 총리’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그는 8일 90세를 맞은 예자잉(葉嘉瑩) 톈진(天津) 난카이(南開)대 교수에게 직접 편지를 쓰고 축시까지 헌사했다고 인민일보가 9일 전했다. 그는 축시에서 “연밥은 쉽게 죽지 않아 오랜 세월 기다리면 꽃이 핀다”고 썼다. 연밥이 땅속에서 3000년을 견디며 싹을 틔운다는 속설을 비유한 것으로, 고령이더라도 열정만 있으면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베이징 정가에는 이 구절이 은연중에 자신의 건재를 드러냈다는 시각도 있다. 장 전 주석은 지난달 20일 부인 왕예핑(王冶平)과 고향 양저우(揚州)의 서우시후(瘦西湖)에서 유람선을 타고 관광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우방궈(吳邦國)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지난달 3일 베이징의 도교사찰 바이윈관(白雲觀)을 찾았고, 리창춘(李長春) 전 정치국 상무위원은 지난달 19일 허난(河南)성 사오린쓰(少林寺)를 방문해 대중 앞에 등장했다. 자칭린(賈慶林) 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은 지난달 27∼28일 후베이(湖北)성 둥펑(東風) 자동차 공장을 방문했다. 제17기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부패 조사설이 제기된 저우융캉(周永康) 전 당중앙정법위원회 서기와 허궈창(賀國强) 전 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를 뺀 상무위원 5명이 모두 한 달 새 집중적으로 공개 활동을 벌인 것이다. ●“中정치 요직 장·후가 정한다” 사실 이런 공개 활동보다 이들 원로는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막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는 것이다. 시 주석의 전임자인 후·장 전 주석, 이 두 실력자와 함께 당정을 이끌었던 리펑·주룽지·원자바오 전 총리 등 원로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2012년 11월 제18기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때 인민대회당에 줄지어 입장해서 시진핑·리커창 체제가 출범하는 과정을 박수로 ‘추인’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후·장 전 주석은 이후에도 혁명 원로들이 사망하면 시·리 체제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조문할 때 바로 뒤이어 나오거나 조화를 보내 아직도 살아 있는 권력임을 과시해 왔다. 이 때문에 제18기 상무위원 7명과 정치국원 25명의 명단을 결정한 것은 시·리가 아니라 후·장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는 중국 공산당 인사에 정통한 학자 리청(李成)의 논문 ‘포스트 2012 중국공산당 정치국 인맥과 당파 분석’을 올려놓았다. 이 논문에 따르면 제18기 상무위원에 오른 인물 7명 가운데 시 주석을 비롯해 장더장(張德江) 전인대 상무위원장, 위정성(兪正聲) 정협 주석, 류윈산(劉雲山) 당중앙서기처 서기, 왕치산(王岐山)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장가오리(張高麗) 부총리 등 6명은 장 전 주석이 고른 인물들이고 리커창 총리만 유일하게 후 전 주석이 발탁했다고 주장했다. ●화보집 등 저서 출간도 활발 이들은 저술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장 전 주석은 지난해 8월 13일 ‘장쩌민과 양저우(揚州)’라는 화보집을 펴냈다. 주 전 총리는 지난해 8월 12일 ‘주룽지 상하이 발언 실록’을 출간했다. 초판 110만부를 찍어 단숨에 밀리언셀러로 떠오른 이 책은 1987년 12월부터 4년 동안 주 전 총리가 상하이에서 공직 생활을 한 경험을 담고 있다. 리펑 전 총리는 지난해 8월 5일 ‘리펑, 산업경제를 논하다’라는 책을 냈고 지난해 3월에는 리루이환 전 정협 주석도 ‘견해와 설법’을 출간했다. 셰춘타오(謝春濤) 중앙당교 교수는 “중국 인민의 민주의식이 높아져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지도자들의 주요 정책 결정 방식이나 배경에 관심이 커진 것도 회고록 붐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공익 활동도 벌이는 이들도 있다. 주 전 총리는 지난해 2000만 위안(약 32억 9500만원)을 쾌척해 ‘실사구학(實事求學) 장학금’을 만들었고 리펑 전 총리는 원고료 300만 위안으로 ‘리펑 옌안(延安) 장학금’을 설립했다. khkim@seoul.co.kr
  • [기고] 시진핑과 옹정제/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기고] 시진핑과 옹정제/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정부패에 연루된 당·정 간부 수십명을 처벌해 강력한 개혁 의지를 천명했다. 시 주석이 반부패 드라이브로 현대판 옹정제(雍正帝)를 꿈꾼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옹정제는 청조의 기초를 다지고 강희와 건륭의 성세를 이어준 명군이었다. 그만큼 국사에 전념한 황제는 없었다.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않았고 엄청나게 많은 상주문에 일일이 답했다. 생활은 검소했으며 웬만한 문서는 파지를 이용했다. 그의 사인이 과로사였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만주족과 한족과의 융합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는 재위기간 천민과 노예를 해방해 산시의 악사집단, 저장의 어민, 안후이의 노예집단을 양민으로 승격시켰다. “이 한 몸을 위해 천하를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그의 리더십이 강희·옹정·건륭으로 이어지는 태평성대를 가능케 했다. 왜 시진핑은 21세기 옹정을 꿈꾸는가. 세 가지의 이유가 있을 듯하다. 첫째, 둘이 공유한 개인적 경험이다. 옹정은 45세의 늦은 나이에 황제가 됐다. 궁궐 밖에서 생활하면서 서민의 애환, 민초의 고단한 삶을 목격했다. 시진핑도 문화대혁명 시절 농촌으로 하방돼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둘째, 부정부패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2012년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중국의 부패지수는 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9보다 훨씬 낮다. 소득불평등 문제도 심각해 최상위 5% 부자의 소득이 최하위 5%의 240배를 넘고 있다. 부정부패와 불평등 문제에 적극 대처하지 못할 경우 공산당의 통치 자체가 크게 도전받게 된다. 셋째, ‘차이나 드림’을 구현하기 위해 체제 개혁과 리더십 강화가 불가피하다. 차이나 드림은 중국이 글로벌 강국이 되겠다는 의지로 국가부흥, 민족부흥, 인민행복이 키워드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개혁 속도 조절을 주장하며 제동을 걸고 있는 장쩌민 전 주석 등과의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최근 후진타오 전 주석과 협력하고 89년 톈안먼 사태로 실각한 후야오방 전 총서기를 추모하는 발언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중국 경제의 지속성장 여부도 개혁 성공의 바로미터다.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둔화로 두 자릿수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총생산의 60%나 되는 그림자금융, 200%에 달하는 부채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비대해진 국유기업의 비효율 역시 위험수위에 달했다. 주룽지 전 총리는 “모든 발전은 개혁에서 나온다”고 역설했다. 시진핑이 부패의 싹을 자르고 차이나 드림의 주역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 “크림처럼 쉽게 러시아와 합병 못할 것”

    “크림처럼 쉽게 러시아와 합병 못할 것”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가 지난 3월 러시아로 합병됐다. 미국 등의 제재 속에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 합병을 승인했다. ‘신냉전시대’로 치닫던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은 크림을 러시아에 내주는 대신 우크라이나 본토에 친서방 정권을 세우는 선에서 봉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동남부 친러 지역에서도 잇따라 독립시위가 벌어졌으며,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 민병대 간 유혈충돌이 이어졌다. 결국 11일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서는 분리독립을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동부는 ‘제2의 크림’이 될까. 우크라이나 사태의 궁금증을 정리했다. Q: 우크라 사태 촉매제는 A: EU와의 협력 백지화 탓 지난해 11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 추진하던 포괄적 협력 협정을 백지화한 것이 촉매제가 됐다. 야누코비치는 친러 성향인 데다 극심한 경제위기 탓에 ‘천연가스 공급 30% 인하, 150억 달러 차관’이라는 러시아의 당근책을 받아들이며 EU를 등졌다. 이후 서유럽과 친밀한 야권이 3개월간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집회규제 강화법 등을 들고나온 정부의 강경책에 시위가 확산되며 정국 혼란이 이어졌다. Q: 시위는 어떻게 전개됐나 A: 최악유혈 뒤 크림 독립선언 지난 2월 20일 시위에서 100여명이 사망했다. 1991년 옛소련에서 우크라이나가 분리된 후 최악의 유혈 사태였다. 성난 시위대에 밀려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피신했고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언론은 이 변혁을 ‘유로마이단’(친유럽혁명)이라고 불렀다. 친유럽과 친러시아로 갈린 혼돈 속에서 주민 60% 이상이 러시아계인 크림은 주민투표를 통해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이어 동남부 지역으로까지 독립 요구가 번졌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뒤에는 서방이, 분리주의자들의 뒤에는 러시아가 있었다. Q: 왜 가난한 우크라 노리나 A: 푸틴 ‘강한 러시아’ 밑그림 유라시아 중심에 있는 우크라이나가 어느 쪽이냐에 따라 세계 패권의 승패가 갈릴 수 있다. 푸틴은 옛소련 국가들 간 협력 및 유대를 통해 ‘강한 러시아’를 부활시키고자 한다. 옛소련 중심 국가이자 러시아계가 많은 우크라이나를 놓칠 수 없다. 게다가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인 천연가스 수출 50%가 우크라이나를 경유한다. 또 다른 동유럽 국가들이 이미 가입한 서유럽 연합군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우크라이나마저 동참하면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고립된다. Q: 제2의 크림반도 될까 A: 러시아계 40%뿐…어려워 전문가들은 크림 때와 달리 합병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소련 시절인 1954년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이 우크라이나에 우의의 상징으로 준 것이 크림반도다. 러시아계 인구가 많았고, 자치공화국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가 합병하기 쉬웠지만 동부 지역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동부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은 30~40%에 불과하고 역사적 배경도 크림과 다르다.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는 “국제사회가 크림 합병은 사실상 용인했지만 러시아가 국경을 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Q: 동부 향후 정국은 A: 독립 정당성 없어 혼란 지속 혼란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홍 교수는 “크림의 경우 주민들의 전폭적이고 자발적인 의사가 있었지만 동부 지역은 러시아가 시위 배후세력으로 지목될 만큼 정당성 문제도 있고 정부군의 반발이 강해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앞으로도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크라이나만의 문제나 미국·러시아 어느 한쪽의 책임이 아닌 두 제국주의의 세력 싸움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그러나 러시아가 엄청나게 넓은 동부 지역까지 감당할 만큼 경제적·정치적으로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中, 반체제 인사 137명 살생부 작성”

    중국 공안 당국이 언제든지 체포할 수 있는 반체제 인사 137명의 살생부를 작성했다고 중화권 매체 보쉰(博訊)이 8일 보도했다. 이는 당국이 반체제 인사들을 상대로 언행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위협하기 위한 것으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강화되고 있는 여론 통제 조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명단에는 학자, 언론인, 변호사, 인권운동가, 퇴직 관료 등 137명의 이름이 들어 있다. 당국은 이들이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높고, 서방 적대세력과 결탁해 공산당 정권을 위협하는 언행을 일삼으면서 집단시위 등을 유발해 사회안정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적시했다. 당국은 이들에 대한 수사 자료를 미리 확보하고 있어 언제든 이들을 즉각 체포할 수 있다고 보쉰은 덧붙였다. 6·4 톈안먼 사태 25주년을 앞두고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도 심화되고 있다. 당국은 최근 톈안먼 사태 추모 세미나에 참석한 인권 변호사 푸즈창(浦志强) 등을 공공질서 문란죄로 구속한 데 이어 톈안먼 사건 보도로 복역한 경력이 있는 반체제 여기자 가오위(高瑜)를 국가기밀누설죄로 체포했다고 신화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시 주석을 비판하는 내용의 서적 ‘중국의 대부 시진핑’을 출간하려던 홍콩 출판업자 야오원톈(姚文田)은 중국 선전(深?)법원에서 밀수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미스터 북한’ 왕자루이 깜짝 訪美 왜?

    ‘미스터 북한’으로 불리는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미국을 깜짝 방문했다. 이번 방미는 미 정부 초청이 아니라 싱크탱크 초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이례적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미측은 부랴부랴 존 케리 국무장관과의 면담을 주선했으며, 양측이 북한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6일(현지시간) 복수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왕 부장은 전날 워싱턴DC에 도착했으며, 싱크탱크가 마련한 비공개 세미나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 부장은 이어 6일 오후 케리 장관과 만나 북핵 문제 등 현안에 대해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왕 부장이 당 차원에서 미측과의 교류를 위해 싱크탱크 초청 세미나에 참석한 것으로 안다”며 “비공개 세미나였기 때문에 그의 방미가 뒤늦게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왕 부장은 당 소속 인사라서 국무부 초청 대상이 아니다”며 “그러나 미 정부·의회의 다양한 인사들을 만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국무부는 케리 장관과 왕 부장의 회동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왕 부장은 케리 장관과의 면담에서 북한의 최근 도발에 대한 평가와 6자회담 재개 방안 등에 대해 협의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측은 지난달 14~17일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와 세 차례에 걸쳐 수석대표 회동을 열어 이견 좁히기에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측은 이에 따라 왕 부장의 방미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 도발 행위를 멈추고 북한이 6자회담 재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왕 부장은 중국 측 입장을 되풀이해 이견만 확인했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공직부패 잡는 중국 환경 오염도 손본다

    중국이 환경오염에 따른 벌금 상한선을 없애고, 시민단체가 기업에 환경오염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환경보호 관련 법을 대폭 수정했다. 갈수록 악화되는 환경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중국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난 24일 환경오염 유발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환경보호법을 25년 만에 개정했다고 베이징 신경보가 25일 보도했다. 개정법은 내년 1월 1일부터 발효된다. 개정법은 그간 액수가 너무 적어 환경보호에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비난을 들었던 벌금의 상한선을 없앴다. 기존에는 아무리 법을 어겨도 최대 50만 위안(약 8313만원)까지만 벌금이 부과됐다. 벌금 산정도 한 번 적발될 때마다 개별적으로 부과됐으나 앞으로는 오염물질 배출 총시간을 따져 합산하는 방식으로 상한 없이 부과된다. 예컨대 지정 교부일까지 벌금 5만 위안을 내지 않았다면 그날로부터 낼 때까지 매일 5만 위안의 벌금이 새로 부과된다. 이번 법 개정의 최대 핵심은 민간 환경단체나 변호사가 기업 등을 대상으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단, 구(區)·현(縣)급 이상 지방정부에 등록돼 있고 5년 이상 환경운동에 참여했으며 법률 위반 경력이 없어야 한다. 중국은 그간 민간단체나 변호사가 공해물질을 내뿜는 기업을 상대로 공공이익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막아왔다. 실제로 이달 초 간쑤(甘肅)성 란저우(州)시에서 기준 이상의 벤젠이 검출돼 수돗물 공급이 중단됐을 때 240만 명의 시민을 대표해 5명이 수도운영회사인 프랑스 베올리아를 상대로 수질검사 자료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당했다. 이번 법 개정은 중국 지도부가 환경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음을 인식한 데 따른 것이다. 환경 오염이 연일 악화되면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는 것은 물론 공산당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한편 란저우의 수돗물 벤젠 오염에 이어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도 식수원이 암모니아성 질소에 오염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이날 관영 차이나데일리가 보도했다. 공장 배수, 배설물 혼입 등이 원인이며 이번 사태로 시민 30만여 명이 생수 구입 소동을 빚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특파원 칼럼] 중국 관영 기자의 반란/주현진 베이징특파원

    [특파원 칼럼] 중국 관영 기자의 반란/주현진 베이징특파원

    중국의 대표 관영 언론 소속 기자들에게 일명 ‘네이찬’(內參·내부참고 보고서) 작성은 공식적인 취재와 보도만큼 중요한 업무로 꼽힌다. 네이찬이란 자신의 출입처에서 취재한 내용 중 대외적으로 보도할 수 없는 정보를 담은 문건을 말한다. 상부의 결재를 거쳐 해당 언론의 최고책임자 명의로 당 중앙에 보고된다. 네이찬이 중요한 이유는 각급 성·시의 최고지도자인 당 서기나 국무원 산하 부장급(장관급) 인사 등 고위층의 비리도 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중국 국유기업 화룬(華潤)그룹 쑹린(宋林) 이사장(차관급)의 비리를 네이찬 대신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공개해 낙마시킨 관영 신화사 계열의 경제참고보(經濟參考報) 소속 왕원즈(王文志) 기자의 행동이 중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네이찬이라는 기존의 안전한 창구 대신 당국에 실명으로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그 내용을 자신의 웨이보에도 공개했다. 이는 당국의 빠른 조사를 촉구하는 의미다. 왕 기자가 쑹린을 당국과 대중에 고발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7월 쑹 이사장이 직권남용으로 수십 억 위안에 달하는 손실을 국유기업에 입혔다는 내용의 비리를 당 감찰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 제보했지만 불발되자 10개월 만에 다시 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는 이번에도 중앙기율검사위에 보낸 고발장에서 쑹린이 양모라는 여성을 정부(情婦)로 두고 있고, 그녀를 외국계 은행에 취직시켜 일감을 몰아줬으며 그녀를 통해 뇌물을 받거나 돈세탁도 했다고 적시했다. 둘이 침대 위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비롯한 증거들을 담은 고발장은 그의 웨이보에서도 볼 수 있다. 왕 기자가 실명 공개 제보에 나선 것은 자신의 제보가 당국의 실질적인 조사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앞서 지난해 12월 경제잡지 차이징(財經)의 뤄창핑(羅昌平) 부편집인도 류톄난(劉鐵男)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의 부패 혐의를 당국에 제보하면서 그 내용을 웨이보에 공개해 낙마시켰다. 취임 일성(一聲)으로 반부패를 외친 시진핑(習近平) 정부 출범 이후 인터넷에서 폭로성 글이나 관련 동영상을 공개해 부패 관리를 쫓아내는 것은 중국에서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성(性) 상납 동영상이 공개돼 이틀 만에 파직된 레이정푸(雷政富) 전 충칭시 베이베이구 당서기, 다양한 명품 시계를 찬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와 결국 쇠고랑을 찬 양다차이(楊達才) 전 산시성 안전감독국장, 성 상납 일기가 공개돼 파면된 공산당 중앙편역국 이쥔칭(衣俊卿) 국장(차관급) 등 관련 사례는 셀 수도 없다. 이는 중국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부패를 고발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동시에 중국 사회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네이찬은 당초 공산당이 이미지 손상을 막기 위해 언론의 대외 보도를 통제하면서 감시 기능은 살리고자 만든 시스템이다. 그러나 왕 기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실명 공개 제보를 감행했다는 것은 네이찬이 제 기능을 못할 때가 많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네이찬이나 웨이보만으로 반부패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기율검사위를 이끄는 왕치산(王岐山) 서기가 ‘선치표, 후치본’(先治表, 後治本·먼저 현상을 다스린 뒤 원인을 치유한다)이라며 개별적 부패 사건을 먼저 척결한 뒤 반부패 시스템 수립에도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제도적 뒷받침이 시진핑 반부패 성패의 관건인 셈이다. jhj@seoul.co.kr
  • 美 “北 핵실험 동향 예의 주시”

    미국 정부는 22일(현지시간) 북한의 핵실험장 동향을 매우 면밀하게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추가 도발을 삼가라고 요구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수행해 아시아로 가는 전용기에서 한국 국방부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에서 이상 동향 징후를 포착했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미 정부도 그런 부분(북한 동향과 핵실험장 주변에서의 움직임)을 아주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북한은 도발적인 행동을 해온 전력이 있으며 우리는 항상 그런 (도발) 행위가 발생할 개연성을 유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 핵실험장의 활동 증가와 관련한 보도를 봤으며 미 정부도 한반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환구시보는 23일 “북한 외무성과 대변인의 태도로 볼 때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진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최근 촬영한 위성 사진 분석을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의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으나 4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38노스는 특히 북한이 25~26일로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기간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소수가 불시에 쳐라” 국가 장악의 기술

    “소수가 불시에 쳐라” 국가 장악의 기술

    쿠데타의 기술/쿠르치오 말라파르테 지음/이성근·정기인 옮김/이책/400쪽/2만원 “국가 장악을 위해서는 정부, 의회 등 국가 권력 기관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 기간 시설(교통·통신 시설, 발전소 등)을 점거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다수 대중의 총봉기가 아닌 소수의 잘 훈련된 인원으로 불시에 공격을 가해야 한다.” 새 책 ‘쿠데타의 기술’ 86쪽에 나오는 말이다. 저자는 권력의 쟁취와 수성에서 필요한 건 목적적인 전략이 아니라 기술적인 전술이라고 봤다. 예전의 쿠데타 시도처럼 궁전이나 의회 등 권력이 집중된 상징적 장소를 장악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국가의 주요 ‘동맥’들을 끊는 게 더 주효하다. 따라서 발전소, 방송국, 수도 등 권력의 흐름이 전달되는 ‘선’들을 탈취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여야 쿠데타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제 나라의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무책임한 안전불감증에 희생되도록 두 눈 멀거니 뜨고 쳐다만 보는 정부나, 제 나라 국민들의 안전을 담보할 법령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국회를 점령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쿠데타의 기술’은 바로 이처럼 국가를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 혹은 지켜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책이다. 20세기 초 유럽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벌어진 쿠데타의 격랑에 휩쓸려 있었다. 저자는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쿠데타의 다양한 사례와 방법을 분석해 책으로 펴냈다. 저자가 기본적으로 살핀 건 권력을 쟁취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1931년 출간된 책은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 무솔리니, 히틀러 등 당대를 살던 인물들이 국가 권력을 어떻게 빼앗고 수성하는지를 짚고 있다. 저자 스스로 파시즘을 따르다 그 정권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이후 공산주의 정치 이상에 경도됐지만 죽기 직전까지 공산당원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니 정치사상가들의 속내를 그 누구보다 잘 알 터다. 한편 역자들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의 정치사회상을 각 장의 도입부마다 개관으로 넣었고 등장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권말에 제공했다. 책이 쿠데타의 성공법칙만 제시하는 건 아니다. 권력자들의 실수, 쿠데타 저지 세력들을 위한 지침 등도 통찰력 있게 짚어낸다. 시민권이 확장된 현대국가라 해서 쿠데타가 불가능할 것이란 견해에도 일침을 가한다. 저자는 “현대 국가는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것보다 혁명의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다”며 “질서가 자유에 기반한 나라들에서 여론은 쿠데타의 가능성에 유념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아베, 후야오방 아들과 극비 회동… 중·일 해빙무드 오나

    아베, 후야오방 아들과 극비 회동… 중·일 해빙무드 오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최근 일본을 방문한 후야오방(胡耀邦)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아들과 극비리에 면담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교착 상태에 빠진 중·일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15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 8일 총리 관저에서 후 전 총서기의 장남인 후더핑(胡德平)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을 비공개로 만났다. 이 회동은 후 위원이 총리 관저를 방문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면담할 때 이뤄졌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같은 태자당(太子堂·혁명원로 자제그룹) 출신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친분이 있는 후 전 상무위원을 통해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에 적극적인 입장을 전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일본을 방문한 후 전 상무위원은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 등 다양한 인사들과 의견 교류를 했다. 후 위원은 이 내용을 시 지도부에 보고할 의향을 나타내 중국 역시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한 일본의 움직임을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내다봤다. 중국은 아베 정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도 불구하고 오는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입장에서 일본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후 전 상무위원의 일본 방문은 일본 외무성의 초청에 의한 것이지만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양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15일 사망 25주기를 맞은 후 전 총서기는 1987년 민주화와 인권을 요구하며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학생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실각한 뒤 1989년 세상을 떠난 비운의 정치인으로, 그의 사망은 6·4 톈안먼 사태를 촉발했다. 한편 고무라 마사히코 자민당 부총재가 회장을 맡고 있는 일·중우호의원연맹은 다음 달 4일부터 3일간 베이징에 대표단을 파견, 시진핑 지도부와 회동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NHK가 보도했다. 고무라 부총재는 이번 방중을 통해 양국 정상회담 실현을 모색할 생각이라고 NHK는 전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시진핑에 힘 실어주기?

    시진핑에 힘 실어주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관련이 깊은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의 생가를 방문한 것을 두고 중국 정가에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반부패 운동으로 권력 투쟁이 촉발된 가운데 당내 최대 계파 중 하나인 공청단(共靑團·공산주의청년단)의 대부가 공청단의 태두이자 중국인들로부터 널리 존경받는 정치인의 기치를 높이 든 것은 모종의 신호를 보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15일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서거 25주기를 앞두고 후 전 주석 부부가 지난 11일 후난(湖南)성 류양(瀏陽)시 중허(中和)진에 있는 후야오방의 생가와 기념관을 방문해 그의 동상에 꽃을 바치고 절을 하는 등 극진한 예를 표했다고 홍콩 명보가 14일 보도했다. 후야오방은 1987년 자산계급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원로들에 의해 실각당했다. 이어 1989년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대학생들이 톈안먼 광장에 모여 그가 추구하던 정치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6·4 톈안먼 사태가 발발했다. 베이징 정치평론가 가오위(高瑜)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 사법처리가 1년 가까이 지연되는 등 시 주석의 권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후 전 주석의 후야오방 생가 방문은 시 주석에게 힘을 실어주는 의미로 두 사람을 대표하는 세력 간의 정치적인 연합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는 후야오방에 의해 복권됐으며, 1987년 후야오방 실각을 결정하는 원로 회의에서 후야오방 실각에 반대하는 등 후진타오와 시진핑의 공통분모로 통한다. 반면 톈안먼 강경 진압에 찬성한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최근 시 주석의 반부패 행보에 제동을 걸며 시 주석과 대립 중이어서 이 같은 해석이 나온다는 것이다. 반면 사회과학원 출신의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후진타오를 포함해 최근 전직 정치인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은 권력 부족으로 도움이 필요한 시 주석을 향해 정치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톈안먼 사태에 대한 재평가를 알리는 신호탄이란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개혁 세력들은 후야오방 사후 줄곧 톈안먼 사태에 대한 재평가와 후야오방의 복권을 요구하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유토피아? 공산주의 실험? 스페인 남부 마을의 ‘이상한’ 협동조합을 가다

    유토피아? 공산주의 실험? 스페인 남부 마을의 ‘이상한’ 협동조합을 가다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댄 핸콕스 지음 윤길순 옮김/위즈덤하우스/288쪽/1만 5000원 스페인 남부 인구 2700명의 마을 마리날레다는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공산주의 테마파크’인가.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주도 세비야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작은 도시 마리날레다는 별다른 산업 시설이나 관광자원 없이 올리브와 농작물을 가꿔 가공하는 농장과 공장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면서 이를 수출까지 하는 곳이다. 주민 대부분은 이곳에서 하루 6시간 반을 일하며 모두 똑같이 월 1200유로(약 172만원, 스페인 최저 임금의 2배)를 받는다. 협동조합은 주민들에게 임금을 주고난 뒤 이윤이 생기면 분배하지 않고 재투자해 일자리를 늘린다. 그래서 마을에 최근 이주해 온 사람들을 제외하면 실업률이 제로다. 또 마을 주민들은 지방 정부로부터 건축 자재를 지원받아 방 3개짜리 집을 직접 짓고 한 달에 15유로(약 2만 1500원)의 월세를 낸다. 집은 공동체 소유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팔 수는 없다. 이 마을엔 경찰 병력도 없다. 치안은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확립하고 경찰 예산은 학교나 주민 복지를 위해 쓴다. 마을엔 축구 경기장, 야외 수영장, 종합 실내 스포츠 센터 등 운동 공간이 있다. 대개 무료인 레저시설들은 마을 규모에 비하면 대단히 넓다. 나투랄 공원에는 정원과 벤치, 테니스 코트, 야외 체육관, 석조 원형 극장이 있다. 원형 극장에서는 영화 상영은 물론 각종 축제나 록 콘서트도 열린다. 자체 텔레비전 방송국도 있다. 카뮈가 ‘반란의 고향’이라고 말했던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역사에서 줄곧 빈곤과 소외의 지역이었다. 1970년대 후반 마리날레다의 소작농들은 일년에 한두 달밖에 일거리가 없어 다른 지역이나 해외로 일거리를 찾아 떠났다. 그러다 1979년 시장에 당선된 산체스 고르디요는 주민들과 함께 투쟁에 나선다. 1980년 이 지역의 실업률이 60%를 넘자 분노한 주민 700명이 9일 동안 ‘굶주림에 맞선 굶주림 투쟁’ 즉 단식 투쟁을 했고 국가로부터 생계 보조금을 얻어 냈다. 그러나 이들은 미봉책인 보조금에 만족하지 않고 토지 개혁 및 재분배를 요구하며 10년 넘게 싸웠다. 1980년대 내내 그들은 안판타도 공작의 땅인 우모소를 100차례 넘게 점거했고 여름에는 매일 16㎞씩 행진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점거하고 쫓겨나기를 무수히 반복했다. 그들의 불굴의 저항에 진이 빠진 정부가 1991년 마침내 굴복해 1200만㎡(약 360만평)에 대해 공작에게 일정한 보상을 한 뒤 마리날레다에 공유지로 주었다. 그동안 놀리던 땅으로 지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농경지였다. 주민들은 만세를 부르며 이 땅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고르디요 시장이 있다. 역사 교사였던 그는 정치가이자 노동자 단결을 위한 집단인 안달루시아 좌파연합의 대표이다. 그는 “나의 정치적 신념은 예수와 간디, 마르크스, 레닌, 체 게바라가 뒤섞인 것에서 왔으며 낫과 망치로 상징되는 공산당에 가입한 적은 없지만 공산주의자 또는 공동체주의자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에 정치·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는 영국의 언론인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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