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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금 74억들고 튄 ‘대도’ 잡고 보니… 주머니엔 달랑 8만 1000원

    현금 74억원이 든 돈자루를 차량에 싣고 달아났던 용의자 안모(39·벽산건설 개발사업본부)씨가 경찰에 검거되면서 범행의 전모가 드러났다. 안씨는 74억원 가운데 50억원은 가족과 채권자에게 전달했으며,24억원은 증권사에 예탁금으로 맡기거나 주식을 매입했고 일부는 도박으로 탕진했다. 현상금이 사상 최고액인 3억원에서 국민정서를 감안,1억원으로 낮추기도 했던 안씨는 범행후 철저한 변장과 대범한 행동으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도피 2개월만에 경찰 검문에 덜미가 잡힌 안씨의 주머니 속에는 8만 1000원이 전부였다. ●사건발생 및 검거 안씨는 지난 8월26일 오후 1시쯤 마산시 대방동 재건축조합 사무실앞 주차장에서 아파트 중도금으로 받아 농협과 국민은행에 예치한 74억 6600만원을 전액 1만원권 현금으로 인출, 배달받은 뒤 승합차에 싣고 달아났다. 그는 도피행각을 하다 지난 22일 오후 3시쯤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신촌리 경찰초소에서 장물을 은닉한 공범 김모(38·여·경기도 성남시)씨와 검문을 받고 현장에서 붙잡혔다. ●현금 74억원 행방 안씨가 가족과 채권자에게 전달했던 50억원은 범행후 경찰에 의해 회수됐다. 안씨는 나머지 24억 6000만원 가운데 6억 8000만원은 S증권사 등 5개사에, 장물을 취득, 함께 은닉한 김씨 명의로 증권예탁금으로 입금했다.13억 2000만원은 D증권사 등 11개사를 통해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나머지 5억원은 도피자금으로 사용했는데 대부분 강원도 정선카지노와 과천경마장 등에서 도박으로 탕진했다. 그는 현금으로 남긴 돈은 8만 1000원이 전부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해외성매매 200명 중개 5명 구속

    국내 여성 200여명을 미국·일본 등지의 유흥업소에 보내고 알선료를 받아 챙긴 브로커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외사과는 16일 현모(53·여)씨 등 인력송출 브로커와 모집책 5명을 성매매특별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또 해외취업자 이모(25·여)씨 등 6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현씨는 올 4월 미국 뉴욕의 유흥업소 업주 김모(55·여)씨로부터 성매매 여성 알선을 부탁받고 공범 서모(64)씨 등을 통해 이씨 등 여성 200여명을 소개받아 해외에 내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현씨 등은 자기 친인척 명의로 관리하던 유령회사의 허위 재직증명서와 소득금액증명서 등을 만들어 불법으로 비자를 받았으며 취업 여성 1인당 800만원씩 모두 6억원을 받아 뉴욕의 김씨와 나눠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취업자 이씨는 이들을 통해 올 4월 미국에 취업했으나 업주에게 여권을 빼앗기고 마약 복용상태에서 성매매까지 강요당하다 두 달 만에 업소를 빠져나와 귀국했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유일한 평전/조성기 지음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아 가거라. 아내는 딸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주기 바란다.” 제약회사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가 1971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면서 자필로 쓴 유언장의 내용이다.‘유일한 평전’(조성기 지음, 작은 씨앗 펴냄)에서는 존경받는 기업인의 모습을 비롯, 고 유 박사의 철학이 담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부동산투기와 탈세를 일삼으며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등에 열을 올리는 일부 재벌들의 행태와 비교하면 그의 삶은 ‘정직’그 자체다. ●아들에게 한 푼도 안남기고 가정부 정원사에겐 유산남겨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그는 일찌감치 실천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유일선과 부인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 다만 당시 7살 손녀에게 학자금으로 1만달러를, 딸 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줬다. 그는 이외 자신의 주식 모두를 사회에 환원하며 ‘나눔’의 정신을 실천했다. 그 자신은 19년째 같은 만년필을 사용했을 정도로 검약한 생활을 했지만 자신을 돌보던 가정부, 정원사, 운전사에게 원가 500원인 유한양행 주식을 각각 1000주씩 나눠줬다. 또 회사앞 자기 명의의 땅 100평을 가정부에게 40평, 정원사와 운전사에게 각각 30평씩 분양해 주기도 했다. 그를 이어 딸 재라씨는 200억 상당의 전 재산을 유한재단에 기증했고, 여동생 순한씨도 유한양행 주식 1만주를 부산생명의 전화에 기증하며 나누는 삶을 보여줬다. ●버드나무처럼 민족이 쉴 수 있었던 큰 그늘 9살의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시간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미국에서 식품회사를 운영하던 중 세브란스 의전 에비슨 학장으로부터 자신은 연희전문 교수로, 부인은 세브란스 의전 소아과장으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제약사업을 택했다. 약이 귀해 질병에 시달리던 당시 조국 상황을 외면하기 어려웠고, 일본 지배 아래 일본 기업이 의약품 시장을 독차지하는 것도 깨고 싶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서재필박사는 이같은 그의 뜻을 알고 “버드나무처럼 민족이 편히 쉴 수 있는 큰 그늘이 되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조각가인 딸을 시켜 버들 목각품을 선물로 줬다. 유한양행의 상표 버드나무는 바로 이렇게 탄생됐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큰돈을 벌던 유한양행에 자유당 이승만 정권은 1959년 3억환이라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불법적으로 모은 정치자금은 불법을 자행하는 데 쓸 뿐”이라며 “내가 기업의 신조로 정직과 성실을 내세우면서 어떻게 불법을 자행하는 무리들과 공범이 될 수 있겠느냐.”며 거절했다. 그는 1942년 미국에서 항일무장 독립군인 맹호군을 창설하는 데 주동적인 역할을 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재미 독립운동가들과 연계, 광복을 맞을 때까지 그는 맹호군 활동을 도왔다. 민족의 장래를 걱정, 좋은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유한공고를 세우는 등 교육가로서도 열의를 다했다. 최근 이 책은 고건 전 총리가 최근 존경하는 인물로 고 유 박사를 꼽으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1만 7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일상서 길어올린 ‘깨달음의 미소’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현행범이다/활짝 웃는다/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웃음의 힘’) ‘가슴 속에 시인과 도둑이 함께 살아/담을 넘다가도/달빛 시나 짓고 온다/탈탈 털어봐야/이슬 장물 몇 점’(‘박꽃’) 짧다. 쉽다. 그런데 여운은 길다. 입가에 빙그레 미소도 절로 떠오른다. 반칠환의 시집 ‘웃음의 힘’(시와시학사)이 보여주는 ‘시의 힘’이다.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이후 내놓은 두번째 시집에서 극도로 시적 수사를 절제한 간명한 시 70편을 선보인다.‘속도의 시대에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장르가 시’라는 평소 지론이 짧은 시구들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시인의 눈에 ‘낮달’은 ‘울 어매 얇게 빗썰어놓은/무 한장’이고,‘발각’은 ‘달의 목덜미에/젖은 달맞이꽃잎 붙은 날’로 보인다. 단 2행으로 사물의 핵심을 간파한 통찰력이 놀랍다. 일상을 느긋이 응시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다. 삶을 지속시키는 무기로서 웃음의 유희성과 가벼움을 역설한 시들도 눈에 띈다.‘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사람이 노래하자/제초제가 씨익 웃는다’(‘공범’)거나 ‘큰 생선은 머리 떼고, 비늘 떼고, 내장 발라내고, 지느러미 떼면서 멸치를 통째로 먹는 건 모독이다 어찌 체구가 작다고 염을 생략하랴 멸치에 대한 예의를 갖추자’(‘멸치에 대한 예의’) 등은 전염병처럼 웃음을 전파한다. 바쁜 현대인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일상의 변화에서 우주의 기운을 읽어내는 시들은 가만가만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봄바람 불고 또 불어도/삭정이 가슴에서 꽃을 꺼낼 수 없는 건/두근거림이 없기 때문//두근거려보니 알겠다’(‘두근거려보니 알겠다’).70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백승종 정감록 산책] (39)민족적, 유교적 천문예언과 오윤부

    [백승종 정감록 산책] (39)민족적, 유교적 천문예언과 오윤부

    구한말 대표적인 애국계몽 운동가요, 항일운동가인 단재 신채호는 우리역사를 깊이 연구했다.‘조선 상고사’처럼 널리 알려진 연구서가 있는가 하면,‘꿈하늘(夢天)’ 같이 소설 형식을 취한 것도 있다.‘꿈하늘’은 일종의 팬터지 문학으로 항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작가 신채호는 천상에 올라 ‘임’을 좌우에 모신 여러 영웅호걸을 만난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이 있고 철학자 화담 서경덕도 보인다. 도술의 달인 전우치도 함께 자리한다. 예상 밖인 것은 오윤부(伍允孚)라는 생소한 인물이다. 그는 성력(星曆)의 대가라 했다. 우선 성씨부터 낯선 오윤부. 좀 더 알고 보면 그는 ‘고려사’ 열전에 소개될 정도로 완전히 무명은 아니었다. 천문예언 전문가라고 했다. 섣부른 짐작과는 달리 고려시대에는 천문예언이 무척 중시됐다. 이름난 유학자 박상충의 전기에도 “성명(星命)에 밝아 사람들의 길흉을 점치면 많이 맞혔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다. 중국에서는 13세기 이후 사주명리학이 예언이나 점의 핵심이었다. 고려는 경우가 달랐다. 풍수지리와 더불어 천문예언이 늘 예언의 중심축이었다. 인간 만사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그리고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땅의 기운과 직결된다는 믿음이 고려인들의 정서에 부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문은 조선후기에 출현한 ‘정감록’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정조9년(1785) 정감록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다.“이른바 하늘이 낸 사람이라는 것은, 그 성씨가 김가이고, 이름은 자세히 모릅니다만, 금년에 군사를 일으킨다고 들었습니다. 유가는 정미년에 군사를 일으키고, 정가는 무신년에 군사를 일으켜, 세 집안사람들이 장차 백 년 동안 서로 싸웁니다. 그 증거로, 객성(客星)이 남방에서 이미 서울로 들어왔습니다.”(실록, 정조 9년3월1일 경술) 조선은 장차 3국으로 분할돼 오랜 세월 다투게 된다는 예언이다. 객성이 남쪽에서 출현해 서울 쪽으로 들어왔다는 천문현상이 증거로 제시됐다. 나라의 운명은 별이 결정한다는 민중의 믿음이 읽힌다. ●대대로 별점을 본 오윤부 고려 충렬왕 때 일관(日官)으로 활동한 오윤부야말로 별점의 대명사였다. 그의 본관은 황해도 배천(白川), 한 때 부흥(復興)으로 불리기도 한 곳이다. 일제시대의 성씨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엔 배천 오(伍)씨가 없다. 오윤부는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는 이야기만 전해 내려온다. 그 조상은 대물림을 해가며 고려의 수도 개성에 살았다. 배천오씨들은 자자손손 별점을 보며 태사국(太史局)을 지켰다.(오윤부의 전기는 ‘고려사’, 권 122를 참조) 고려는 귀족사회였고, 모든 신분이 세습되었다. 심지어 군졸 노릇만 하는 집안, 아전과 서리를 배출하는 집안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일관 오윤부 일가는 귀족은 아니었으나, 일반 농민이나 상인보다는 훨씬 지위가 높았다. 오윤부는 용모가 초라했고 말수가 적었다. 여간해서는 좀체 웃지도 않았다. 그는 첫눈에 호감을 살 만큼 붙임성 있고 구변 좋은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문을 익혔다. 장성해서는 일관에 임용되어 여러 관직을 거친 뒤 판관후서사(判觀候署事)라는 고위직에 올랐다. 말년에는 천문도(天文圖)를 그려 왕에게 바쳤다. 후배 일관들이 그 천문도를 모범으로 삼았다니 그의 실력을 짐작할 만하다. 오윤부의 특기는 뭐니 뭐니 해도 별점이었다. 타고난 재주도 재주였지만 그는 무척 부지런했다. 밤을 새워가며 하늘을 수놓은 수 백 개의 별들을 샅샅이 살폈다. 날씨가 제아무리 춥거나 덥더라도 그는 늘 성실했다. 오윤부의 먼 후배 격인 조선시대 일관들은 5개 팀으로 나뉘어 하루 24시간 내내 하늘을 관측했다. 그들은 관측 대상을 23종으로 나눠 정상적인 현상과 비정상적인 것으로 구별했다. 해, 달, 흰무리, 지진, 혜성, 새별(新星) 그리고 28수로 요약되는 주요 별자리를 모두 점검했다. 일관들은 특히 새별과 흰무리 등의 모양, 정도, 자리, 바뀌는 모습을 낱낱이 기록해 ‘성변측후단자’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서운관지’) 이 보고서에 천체 약도가 첨부돼 날마다 임금님에게 제출됐다. 조선시대 일관들이 남긴 일지는 당시로선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천문 보고서였다. 그 일부가 아직도 남아 천문 강국의 역사를 입증한다. 고려시대의 일관들은 그와 비슷한 활동을 했고 그것이 ‘고려사’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특히 오윤부는 이상한 천문 현상을 해석하는 데 뛰어났다. 어떤 별이 천준(天樽)을 범하자 “이번에 올 중국사신은 술꾼이다.” 고 예언했다. 천(天)은 중국, 준(樽)은 술통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별이 여림(女林)을 범하자, 중국 사신이 와서 소녀들(童女)을 데려갈 것이라며 걱정했다.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이런 식의 해석이 현대인의 눈엔 너무 단순해 보일 수 있다. 하늘이 꼭 중국이어야 될 이유가 없다.‘여림’을 두고 공녀(貢女)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까닭도 없다. 그러나 그 때는 원나라의 횡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오윤부는 그런 현실을 감안해 모든 천문현상을 풀이했다. 그의 별점은 잘 들어맞았고 소문이 원나라 황제의 귀에까지 들렸다. ●원형 민족주의자 오윤부 고려 후기에는 원의 수시력과 같은 중국역법이 수입되기도 했다. 오윤부는 그 방면에도 상당한 전문가였다. 그는 달력을 고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고려의 제일(祭日)을 중국과 비교했다. 고려에서는 봄가을의 가운데 달인 음력 2월과 8월의 마지막 무일(遠戊日)에 제사를 지내고 있었으나, 중국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첫째 무일(近戊日)을 제삿날로 삼았음이 확인됐다. 오윤부는 조정에 건의해 중국의 예를 따르게 했다. 그러나 그가 항상 중국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의미로 그는 고려인이었다. 충렬왕은 즉위 직후 선왕인 원종의 신위를 종묘에 모셨다. 새 위패를 선대왕들의 신위와 합설하기 위해 원종의 시책(諡冊 시호를 아뢸 때 쓴 글)을 올릴 차례가 되었다. 충렬왕후는 원나라 공주였는데, 왕비로서 그 행사에 참여하기로 돼 있었다. 마침 오윤부가 이 행사를 주관했다. 그는 난색을 표하며 공주의 참여를 가로막았다. 선대왕들의 신령이 계신 곳에 원나라 공주가 술잔을 올리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원나라는 과거 수십 년간 고려를 침략했기 때문에, 고려인들은 원을 미워했다. 오윤부는 이런 반원의식이 강했다. 원나라 공주는 종묘 제사에서 제외됐다. 많은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통쾌해 했다. 알려진 대로 원종 이후로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간섭이 더욱 노골화됐다. 고려국왕은 대대로 원나라 황실의 사위가 되었다. 왕은 죽어서도 원나라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시호에 표기해 “충○왕”이 되었다. 고려왕실에 시집온 원나라 공주의 위세는 때로 왕권을 능가하는 경우가 있었고, 오윤부는 이 점을 못마땅해 했다. 그는 천문 현상을 빙자해 공주를 압박했다.“천문을 살펴 보니 괴이한 현상이 자주 나타납니다. 요즘은 심한 가뭄까지 닥쳤습니다. 청컨대 궁궐을 짓거나 고치는 공사를 중지하고 덕을 닦으십시오. 그래야 재변이 멈춥니다.” 원나라 공주는 오윤부의 제지를 받자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원나라 공주에 대한 오윤부의 공격은 계속됐다. 공주는 고려에 시집온 뒤에도 여러 차례 본국을 오갔다. 그 때마다 막대한 비용이 국고에서 지출되었음은 물론이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판인데 공주는 원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궁궐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라고 지시했다. 언젠가 한 번은 재상들을 불러 모아 놓고 좋은 날을 택해 아예 새 궁궐을 지어 놓으라고 졸랐다. 다들 불평은 있었지만 드러내놓고 반대는 못했다. 이 때도 오윤부가 발 벗고 나섰다.“금년에 토목공사를 일으키면 임금님께 불리하므로, 신하인 저는 절대 택일을 못하겠습니다.” 원나라 공주는 분노에 치를 떨며 오윤부의 벼슬을 빼앗았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매로 때리려 했으나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한 어느 재상이 애써 말리는 바람에 매 맞는 것만은 간신히 피했다. 그 일로 분이 안 풀린 공주는 오윤부를 왕에게 고자질했다. 왕은 공주의 청을 어기지 못해 오윤부를 매질하게 했다. 그는 매를 맞으며 이렇게 변명하였다.“날을 가리는 것은 흉(凶)을 피하고 길(吉)을 맞으려는 것입니다. 신하를 협박하여 억지로 가리게 한다면 차라리 가리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신은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임금님의 뜻에 아첨할 수가 없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궁궐을 짓는 공사가 겨우 시작됐는데, 화성이 달을 삼키는 변이가 일어났다. 왕은 반승(飯僧 스님들에게 밥을 공양함)을 실시해 이 문제를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다. 반승은 사소한 재앙이 예측될 때마다 되풀이된 고식적인 해결책이었다. 오윤부는 동료인 문창유와 함께 왕에게 간언을 바쳤다. 화성이 달을 삼키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스님들에게 밥을 주고 부처님을 공양한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런 값싼 보시를 그만 둬야 한다. 진정한 길은 불필요한 토목공사를 중지하는 것이다. 사실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왕은 반대여론을 의식해 궁궐 짓는 일을 그만뒀다. ‘고려사’에 실린 전기 기록을 검토해 보면 오윤부의 간언은 전문분야인 천문에 구애되지 않았다. 시사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한 번은 오윤부가 전법총랑(典法摠郞 법률의 집행을 담당) 박인주에게 전법사의 사무가 자꾸 지연되는 까닭을 물었다. 원나라 공주의 명령과 임금님의 명령이 한없이 쏟아져,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왕과 공주는 각기 소송 사건에 비공식적으로 개입해 일처리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오윤부는 이런 일이 자기 소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따졌다. 이런 식으로 일관 오윤부는 가끔씩 왕과 의견충돌을 보였다. 그러나 원나라 공주에 대해 대들거나 비판하는 경우는 더욱 많았다. 그는 공주 보기를 마치 원나라 침략군을 대하듯 했던 것 같다. 오윤부는 일종의 원형(proto) 민족주의자였다. ●백성을 대변한 오윤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천문에는 변이가 많다. 그럴 때마다 오윤부는 이를 정밀하게 살펴 고려왕실의 미래 운명과 관련지었다. 그는 특히 고려백성의 편에서 국왕 내외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천문현상을 활용했다는 혐의가 있다. 천문에 이상이 있을 경우 과거의 일관들은 기도를 권하거나 굿을 하라는 권고를 주로 했다. 다분히 미신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오윤부는 달랐다. 그가 제시한 해결방법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정치적이었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백성의 원망이 없다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 두 곳에 파견한 왕지별감(王旨別監 왕의 특사)을 소환하고, 여러 곳에 설치된 공주식읍(公主食邑 원나라 공주에게 준 토지와 백성)을 폐지하면 되겠습니다.” 이런 권고를 듣자 왕은 한동안 망설였지만 마침내는 공주에게 줬던 식읍을 폐지하였다. 거기서 거둔 세금을 나라의 창고에 배속시켜 백관의 봉록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사실 원나라 공주는 왕을 졸라 각처에 농장을 마련해 호사가 극에 이르렀다.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수만 명의 백성들은 한숨을 짓고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오윤부는 백성들의 의사를 대변해 식읍의 혁파를 주장했다. 하늘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변동도 오윤부는 마찬가지로 이용했다. 언젠가 한번은 궁궐 연못에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산소부족이었든지 아니면 약물에 의한 중독이었을 것이다. 허옇게 배를 드러낸 채 물위로 떠오른 고기떼를 두고 오윤부는 충렬왕을 몰아쳤다.“갑술년(충렬왕 즉위년 1274)에 대궐 동편 못에서 이런 괴변이 일어났고 선왕이신 원종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청컨대 임금님께서는 덕을 닦으시고 스스로를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궁궐의 물고기가 죽든 살든 그것이 왕의 목숨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러나 일관 오윤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칫하면 국왕이나 원나라 공주의 진노를 사게 될 거였지만 개의하지 않았다. 예언가 오윤부의 성공비결은 고려사회에 만연했던 반원적인 정서를 잘 이용했다는 점이다. 조정 대신들 가운데도 원나라의 정치노선에 반대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어찌 보면 충렬왕 역시 친원과 반원의 두 노선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했다. 그 틈을 비집고 오윤부는 한결 같이 자주노선을 지켰다. 그런 점에서 그는 묘청과 백수한의 후예였다. 그러나 오윤부는 묘청 등을 뛰어넘었다. 그는 일관으로서 하늘의 뜻을 왕에게 정확히 인식시켜야 될 임무가 있다고 확신했다. 만일에 왕이 자기의 ‘충언’을 듣지 않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끝까지 졸라댈 정도였다. 오윤부의 해석은 유교의 재이론(災異論)에 가까웠다. 묘청 등이 불교적이고 무속적인 세계에 기울어 있었다면, 오윤부는 다가올 성리학 시대의 천문해석에 근접해 있었다는 말이다. 유교적인 천문예언가 오윤부의 고집불통에 충렬왕은 때로 두통을 일으켰다. ●충렬왕이 졌다! 왕은 오윤부를 골탕 먹일 생각까지도 했다. 원 나라 세조가 요동을 정벌하게 되었을 때다. 왕은 상국의 명령으로 마지못해 군사를 거느리고 평양까지 나가게 됐다. 우선 유청신을 황제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그 때 오윤부가 별점을 쳤다.“아무 날 유청신이 반드시 돌아옵니다. 임금님께서는 요동까지 가실 필요 없이 말머리를 서울로 돌리게 되십니다.” 그러나 그 날이 됐는데도 유청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왕은 오윤부를 체포했다. 점괘가 틀렸으니 벌을 받으라 했다. 하지만 오윤부는 해가 아직 저물지 않았다며, 좀더 기다리자고 했다. 과연 얼마 안 있어 먼데서 먼지를 휘날리면서 달려오는 말 한 필이 있었다. 유청신이 타고 있었다. 예언이며 점이 설마 그렇게까지 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문현상은 그저 자연계의 변화를 알릴 뿐이다. 그것이 인간 세상에 복을 불러들일 리 만무하고 화를 초래할 수도 없다. 오윤부의 사고방식은 이런 현대적 인식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시대적 한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윤부는 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천문을 살폈고, 그 때문에 민중은 그를 사랑했다. 신채호가 그를 가장 뛰어난 천문예언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그 때문이다. 다시 조선 정조 때 일어난 ‘정감록’ 사건으로 돌아간다. 이 사건의 공범인 평민 지식인 주형채도 오윤부처럼 별점을 보았다. 주형채는 말했다.“작년 섣달 초7일, 초8일, 초9일에 위성(危星), 실성(室星), 벽성(壁星) 앞에 20여 개의 별이 벽을 쌓고 늘어섰습니다. 그 속에 붉은 기운이 있었습니다. 장군성과 태백성이 서로 싸운 지 3일 만에 서로 1도(度) 거리로 떨어졌으며, 태백성이 어깨로 장군성을 떠밀어 여러 번 물러가고 나아가기도 하였습니다.” (정조,9년3월22일 신미) 주형채는 국가의 녹을 먹는 일관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윤부처럼 밤하늘의 별자리를 많이 알고 있었고 밤새워 별을 보았다. 별자리의 이동을 1도 2도로 따질 만큼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다. 고려시대에는 오윤부 같은 특수 계층만 그런 지식을 독점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평민지식인들도 서적을 통해 공유하게 됐고, 그래서 주형채와 같은 평민도 직접 별을 바라보며 민중의 희망을 찾아 나섰다. 자유로운 지식은 곧 우리들의 희망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증권사 고객정보관리 ‘구멍’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2일 증권사에서 고객정보를 빼내 고객자산 수억원을 빼돌린 조모(32·무직·대전 서구 도마동 태평동)씨와 이모(40·무직·충남 보령시 웅천읍)씨 등 7명을 절도 및 공문서위조 혐의로 구속했다. 조씨는 지난 5월21일 오후 5시쯤 대전시 중구 대흥동 D증권 대전지점 객장에 침입, 고객약정 이체출금신청서 등 20건을 훔친 것을 비롯,6월까지 2차례에 걸쳐 이곳에서 고객정보 서류 2900건을 훔쳐 판 혐의다.이씨 등은 인터넷을 통해 만난 조씨로부터 개인정보를 산 뒤 중국에서 고객 주민등록증을 위조, 증권사에서 현금카드와 통장을 재발급받아 인출하는 수법으로 손모(47)씨 등 8명의 고객계좌에서 총 3억 2000만원을 빼냈다. 조씨는 이들로부터 범죄를 통해 챙긴 돈의 10%를 받기로 하고 정보를 팔아 2000만원을 받았다. 조씨는 이 지점 건물의 보일러 기사로 1년쯤 일하다 2003년 2월 퇴사한 뒤 대리운전업 등에 잇따라 실패, 금융기관에 1억 5000여만원의 빚을 지자 건물관리실에 있던 보안카드를 훔친 뒤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다.경찰은 중국에서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공범 4명의 행방을 뒤고 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검·경 또 힘겨루기?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유출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검찰 직원들에 대한 수사를 초기단계부터 검찰이 맡겠다고 나섰다. 통상 경찰에서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구속영장을 신청한 뒤 송치기일이 되어야 검찰로 넘기는 것이 관례로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아직 혐의도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개입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이에 논란이 일자 검찰은 일부 피의자에 대해서는 송치일을 미뤄달라는 경찰의 요청을 수용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3월부터 채무자들의 신원을 조회해 불법 채권 추심자들에게 넘긴 혐의로 검찰 8급 수사관 황모(36)씨 등 4명을 조사하고 있다. 주범격인 전직 검찰 7급 조사관 유모(38)씨 등 2명은 1주일 전 공공기관 개인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서울동부지검은 얼마 전 유씨의 신병과 함께 사건 전체를 넘기라는 수사지휘를 내렸다. 지휘를 받은 경찰측은 고민 끝에 황씨 등 혐의가 덜 밝혀진 일부 피의자에 대해서는 수사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가운데 아직 범행유무가 밝혀지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이러한 사항을 ‘기소의견’으로 보내는 것은 무리”라면서 “시한은 촉박하지만 이들을 통해 범행에 가담한 제3의 인물에 대한 수사에 착수, 범행사실을 낱낱이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측은 동일범죄의 공범을 함께 송치하는 것이 일반화된 수사관행이지만 경찰의 요청을 수용, 일부 피의자에 대해서는 송치를 미루기로 했다. 동부지검 박태석 차장검사는 “이 사건의 경우 범죄사실이 수백건에 이르기 때문에 대질 등을 통해 관련자들을 한꺼번에 조사하지 않으면 범죄사실을 규명하는 것이 힘들다.”면서 “이미 몇 달 전 조사를 시작, 기한을 연장할 필요는 없어보이지만 경찰이 계속적으로 요청을 해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경찰이 고향후배와 강도짓

    현직 경찰관이 고향 후배들과 함께 강도짓을 하다가 붙잡혔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5일 차를 사겠다고 속여 피해자를 유인, 폭행한 뒤 고급 승용차를 가로챈 경기 P경찰서 소속 봉모(51) 경사에 대해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또 봉씨와 함께 강도짓을 한 김모(35)씨 등 3명과 이들로부터 승용차를 넘겨 받아 유통시킨 문모(28)씨 등 4명을 구속하고 달아난 공범 1명의 뒤를 쫓고 있다. 봉씨 등은 지난달 24일 낮 12시50분쯤 불법으로 유통되는 일명 ‘대포차’를 사겠다고 속여 피해자 강모(33)씨 등 2명을 경남 사천비행장 주차장으로 유인한 뒤 강씨 등을 때려 2100만원 상당의 에쿠스 승용차와 관련 서류를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봉씨 등은 중고차 매매상인 문씨 등에게 차량을 판매해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났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납치범은 前대법관 아들인 대학강사

    지난 24일 발생한 여대생 납치사건의 주범이 명문 미대 출신의 30대 대학강사로 밝혀졌다. 납치범의 아버지는 대법관을 지낸 저명한 법조계 인사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27일 A(20·여·대학생)씨를 납치, 몸값으로 1억원을 요구한 박모(38)씨를 인질강도 혐의로 체포해 조사 중이다. 공범인 윤모(31)씨는 앞서 지난 25일 붙잡혀 구속됐다. 박씨는 돈 문제로 최근 알게 된 윤씨와 함께 25일 0시쯤 잠실 종합운동장 인근에서 A씨를 납치,14시간 동안 끌고다니며 A씨 부모에게 몸값 1억원을 요구했다. 박씨는 A씨의 어머니에게서 몸값을 받기 위해 신사동과 압구정동 등 강남 일대를 돌아다니다 윤씨가 검거되자 신사동에 차를 버리고 달아났으며 27일 오전 11시20분쯤 경찰의 인터넷 IP추적으로 제주도의 한 여관에서 붙잡혔다. 박씨는 피해자 A씨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으며, 의류사업을 하다 실패한 뒤 빚을 져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전직 대법관의 아들로 명문대 미대를 졸업한 박씨는 현재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부산의 한 대학에서 계약직 교수로 강의를 해 왔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검찰 대상그룹 부실수사 ‘감싸기’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최근 검찰의 자체감찰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검찰이 부실수사 의혹에 대해 감찰을 하지 않기로 해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대검 감찰부(부장 문효남)는 26일 대상그룹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던 인천지검이 임창욱 명예회장을 참고인 중지처분했다가 재수사를 거쳐 구속기소하게 된 것과 관련해 감찰 대상이 될 만한 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감찰부 관계자는 “수사팀이 상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지시 때문에 사건을 부실하게 수사했다는 근거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대검은 임씨가 구속기소된 지난 18일부터 감찰부와 중앙수사부, 공판송무부 등 3개 부서가 함께 수사기록 1만 2000쪽을 검토하고 수사 주임검사 2명을 소환, 조사했으며 부장검사 2명과 차장검사 2명은 전화로 확인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별다른 혐의를 찾지 못해 당시 인천지검장이었던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은 조사하지 않았다.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월 임씨에 대해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린 배경과 관련해 “이종백 당시 인천지검장이 후임 홍석조(현 광주고검장) 인천지검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점도 감안됐다.”고 밝혔다. 임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맏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장인으로 홍 지검장의 사돈뻘이다. 검찰은 특별사무감사에 준하는 검토를 벌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사기록을 검토하기에도 벅찬 일주일 만에 서둘러 결과를 발표하고 당시 수사책임자를 조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싸기’라는 비판과 함께 “검찰내 선두주자들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등의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27일 감찰위원회를 열고 대검의 이같은 결론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으로 알려졌다.인천지검은 지난해 1월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임씨를 공범으로 인정하자 참고인 중지처분을 내렸던 임씨에 대해 재수사를 벌였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익산 보석털이범은 ‘4형제’

    지난 5월11일 67억원어치의 귀금속을 털어 달아났던 전북 익산시 영등동 익산귀금속센터 절도사건의 범인 선모(51)씨 4형제와 공범 조모(31)씨가 15일 경찰에 검거됐다. 전북경찰청은 “이날 오후 2시30분쯤 광주시 동구 황금동 H모텔을 급습, 이곳에 은신하고 있던 선씨 형제 4명과 공범 조씨 등 5명을 붙잡아 현장에서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다량의 귀금속과 보증서 등이 들어 있는 대형 가방과 금을 녹이는 데 사용한 도구들을 압수했다. 이와 함께 장물처분 역할을 맡았던 둘째(39)의 애인 김모(26·여)씨를 전국에 수배했다. 이들은 경찰에서 “9일 밤 9시쯤 1차로 침입해 상당량을 털어 10일 오전 6시쯤 빠져 나왔다가 11일 자정쯤 다시 들어가 남은 보석을 훔치다 비상벨이 울려 도망쳤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선씨 형제 중 큰형 부부가 서울의 한 금은방에서 수차례에 걸쳐 18K금 130㎏을 순금으로 바꿔간 정황을 포착한 뒤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이들의 은행계좌를 추적하는 등 수사를 진행하던 중 이들이 유력한 용의자임을 확신, 형사 20여명을 급파해 이들을 검거했다. 이들은 훔친 금을 녹여 금괴로 만든 뒤 서울 종로 일대에서 2억 5000만원어치를 유통시켜 왔다. 한편 지난 5월11일 새벽 귀금속판매센터에 도둑이 들어 2만 7000여점의 귀금속 67억 2000여만원(경찰 추산)어치를 털어갔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변호인 피의자 신문참여 확대

    대검찰청은 피의자를 체포·구속한 뒤 48시간까지 변호인의 신문 참여를 제한했던 규정을 없애는 등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를 대폭 확대키로 했다. 검찰은 최근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 운영지침’을 시행 2년 5개월 만에 고쳤다고 10일 밝혔다. 검찰은 기존의 ‘수사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경우’라는 포괄적인 변호인 참여 금지 규정 대신 ‘공범이 있는 사건에서 수사기밀이 누출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구체적인 상황에 한해 참여를 제한키로 했다.검사는 또 신문하기 전에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은 물론, 변호인의 신문참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도록 했다. 피의자가 미성년자,70세 이상의 고령자, 청각장애인, 심신장애자일 경우 가족 등도 변호인의 신문과정 참여를 신청할 수 있다.검찰은 변호인이 조서를 열람했거나 조서에 의견을 진술했을 경우에는 변호인도 조서에 서명날인토록 했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은 조사 전에 변호인에게 미리 조사날짜를 통보해주는 제도도 시행키로 했다. 한편 검찰에 따르면 변호사가 피의자신문에 실제 참여한 횟수는 2004년 158건,2005년 1·4분기 37건에 그쳤다. 검찰은 이번 개정지침을 대한변호사협회와 지역 변호사협회에 발송해 변호인들의 참여를 활성화하기로 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670억 투자” 속여 이자 7억 꿀꺽

    서울지검 특수1부(부장 유재만)는 7일 다른 사람의 양도성예금증서(CD) 구매를 위해 보관하고 있던 670억원을 투자할 것처럼 속여 선이자를 챙긴 김모(49·여)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사채업자 김씨는 지난해 7월 모 기술투자회사를 운영하는 박모씨에게 접근,“영상센터, 주상복합건물 등에 투자할 600억원을 빌려주겠다.”면서 선이자로 6억원을 받아 가로챘다. 이어 9월 동일한 수법으로 피해자 정모씨에게 1억 5000만원을 받는 등 모두 7억 5000여만원을 챙긴 혐의다. 김씨는 피해자들의 통장에 각각 600억과 70억원을 입금한 뒤 바로 같은 금액의 CD를 발행하고 피해자들에게는 통장사본과 CD사본을 줘 안심하게 만들었다. 검찰은 김씨 등이 보관하고 있던 자금이 1000억원대의 정치자금 중 일부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 외에 공범 2명을 추적 중”이라면서 “CD구입자금 670억원의 실소유자도 찾고있다.”고 밝혔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종로 금은방 대낮 강도

    대낮 서울한복판 귀금속 전문상가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억대 현금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들 중 1명은 순찰 중이던 경찰에게 잡혔고 2명은 도주했다. 4일 오후 5시5분쯤 서울 종로3가 J귀금속 건물 2층의 한 금괴 도매점에20대 3인조 강도가 침입해 흉기로 주인 백모(34)씨 등을 위협했다. 경찰에 따르면 3인조 강도는 도매상의 문 옆에 있는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주인 백씨가 은행에서 결제대금으로 쓸 현금을 찾아오는 것을 보고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가 백씨 등 3명의 손발을 묶고 범행했다. 그러나 범인들은 결박이 풀린 백씨 등과 가게 안에서 격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범인 송모(28)씨는 순찰 중이던 사복 경관 2명에 발각돼 검거됐다. 나머지 주모(28)씨 등 2명은 미리 가져 온 배낭에 1만원권 현찰 3억원을 넣어 달아났다.경찰은 “이들이 침입한 도매상은 간판이나 귀금속 진열장도 없는 점으로 미루어 인근 사정을 잘 아는 범인이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범행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붙잡힌 범인을 상대로 범행 경위와 도주 공범의 신원을 캐고 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 공범이 뱀?

    |요하네스버그 연합|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5인조 강도가 주택을 털면서 뱀을 범행에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현지 사파(SAPA)통신이 보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4일 요하네스버그 북부에 위치한 허니듀 지역의 한 주택에 5인조 강도가 들이닥쳐 보석, 텔레비전 등 9만랜드(약 1400만원)어치의 금품을 털어 달아났다. 범인들은 이날 오전 범행 대상 주택에 출근하는 가정부(27)가 현관 문을 여는 순간 달려들어 집안으로 침입했으며 곧바로 그녀를 안방 침대에 묶었다. 강도들은 이어 집안을 샅샅이 뒤진 뒤 가정부를 화장실로 끌고가 그녀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흑갈색을 띤 큰 뱀을 풀어놓았다는 것. 범인들은 뱀이 가정부를 ‘지키고’ 있는 사이 그들이 몰고 온 차량에 텔레비전 등 훔친 물건을 실은 뒤 다시 뱀을 수거해 달아났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 [세상에 이런일이] 보석 반짝 턴 남자

    |방콕 연합|태국 방콕 도심 쇼핑몰의 보석전시장에서 한 남자가 불과 10초만에 보석 수십점을 훔쳐 달아났다고 태국 언론이 지난 26일 보도했다. 경찰은 방콕 도심 랏담리가(街)에 위치한 쇼핑몰 센트럴 월드 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보석 전시회장에서 한 남자가 총 40만바트(1200만원) 상당의 수정류 46점을 순식간에 빼내 사라졌다고 밝혔다. 현장에 설치된 보안용 카메라에 찍힌 범인은 160㎝가량의 키에 T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불과 10초만에 열쇠가 채워진 보석 진열장을 열어 수정 반지 46개를 쓸어담은 뒤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 경찰은 일단 카메라에 잡힌 범인의 인상착의로 미뤄 내국인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얼굴 모습을 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정밀 판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보석상 주인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뜬 10분 안팎 사이에 도난 사건이 일어난 점에 비춰 공범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추적하고 있다.
  • ‘이라크 전쟁중 범죄’ 우리가 밝힌다

    ‘이라크 전쟁중 범죄’ 우리가 밝힌다

    이라크 점령 3년째를 맞아 미국과 동맹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와 부당행위를 심판하기 위한 ‘이라크 국제전범재판’에 한국 민간대표단이 참가한다. ‘이라크 국제전범재판 한국참가단’은 23일부터 닷새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20여개국 평화운동가가 참석하는 가운데 열리는 이라크 국제전범재판에 한국 민간대표단 16명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국제전범재판은 23일 개막식에 이어 24일부터 나흘간 국제법과 국제기관의 역할·각국 정부의 책임, 이라크 침략과 점령, 지구적 안보 환경과 미래의 대안 등을 주제로 세계 곳곳에서 다룬 이라크에 대한 법적·윤리적 범죄의 평결을 최종 정리한다. 쟁점은 ▲이라크 전쟁의 불법성과 불합리성 ▲전쟁 및 점령기간에 저지른 연합군의 범죄행위 ▲전쟁발발을 막지 못한 국가와 국제정치기구의 책임 ▲공범자로서 미디어와 정보기관의 책임 ▲정치·경제적 의도로 일으킨 전쟁의 결과 등 5가지이다. 아룬다티 로이(작가)가 양심배심원단 대표로서 이번 재판을 대변하고 데니스 할리데이(전 유엔 사무총장 보좌관)·리처드 포크(유네스코 평화상 수상자) 등이 배심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58일간 파병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해온 김재복 수사가 양심배심원단에 참가하며, 박기범(동화작가)·최병수(민중미술 화가)씨 등 반전평화운동가 15명이 이스탄불 법정에 참가한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실시한 한국의 이라크 전범재판운동의 결과를 알리며, 설치미술 작품(최병수 작)을 전시해 이라크 점령 종식과 평화를 갈구하는 행사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라크 국제전범재판’은 2003년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제회의 참가자들이 이라크 국제전범재판을 개최하자는 선언문을 채택한 뒤 같은 해 6월 열린 ‘평화와 인권을 위한 유럽네트워크 회의’에서 기획단이 구성되면서 구체화됐다. 이후 국제조정위원회에서 법정프로젝트의 개념과 형식·목적 등을 정한 뒤 지난해부터 각국에서 시작돼 23일 이스탄불에서 최종 법정을 열게 됐다. 연합
  • “피고인 수사때 작성한 조서 부인 부분만 증거능력 없다” 대법원 판결

    대법원 2부(주심 김용담 대법관)는 지난 2002년 선모(38)씨를 집단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조직폭력 집단 행동대원 김모(26)씨 사건을 “검찰조서를 구체적으로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환송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목격자와 공범이 법정에서 ‘조서에 내가 말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고 했다면, 재판부는 어떤 부분인지 가려 그 부분만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원심이 조서의 진정성립에 대한 심리과정 없이 조서 전체의 증거능력을 부인한 것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2002년 4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의 한 편의점 앞에서 반대파 조직원인 선씨를 동료들과 함께 둔기 등으로 때린 혐의로 기소됐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김우중씨 구속수감

    김우중씨 구속수감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는 16일 김우중(69) 전 대우그룹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 외국환 관리법,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해 서울구치소에 수감했다. 서울중앙지법 김재협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국민경제에 끼친 악영향이 중대하고 이미 재판을 받은 공범들과 지위나 역할을 볼 때 김 전 회장이 더 중한 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자진 귀국했지만 도주의 우려도 여전히 있고, 드러나지 않은 범행이나 의혹 등에 대해 증거 인멸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영장발부 사유를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서울구치소로 향하며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특히 대우가족 여러분께 사죄 말씀 드립니다.”면서 “참회하는 심정으로 사법당국의 처분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1997∼1998년 계열사 회계장부를 조작해 41조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하고, 허위 재무제표를 이용해 금융기관에서 9조 8000억원의 사기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1997∼1999년 200억달러의 외화를 신고없이 해외로 유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영장이 발부됨에 따라 우선 구속영장의 혐의를 조사하고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다음달 5일쯤 김씨를 구속기소할 예정이다. 검찰은 기소 뒤에도 김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독점규제법 위반 혐의와 해외비밀 금융조직 BFC 자금의 구체적 용처 및 개인 유용 여부, 정ㆍ관계 로비의혹, 출국배경 등을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김효섭 박경호기자 newworld@seoul.co.kr  
  • ‘미시시피 버닝’ 주범 킬런 41년만에 다시 법정에

    지난 1964년 6월21일 미국 미시시피주의 한 외곽도로에서 뉴욕 출신 마이클 슈워너(당시 24)와 앤드루 굿맨(20), 이곳에 사는 흑인 제임스 체이니(21)가 탄 차가 일단의 백인에 의해 멈춰섰다. 이들 청년은 ‘자유의 여름’이란 흑인 유권자운동 단체 소속으로, 흑인들에게 참정권 운동에 나설 것을 독려하며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쿠클럭스클랜(KKK)’ 단원 10명에게 구타당한 뒤 총에 맞아 숨졌다. 이들의 시신은 44일 뒤 흙더미 속에 파묻힌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 남부에 만연돼 있던 흑인에 대한 공공연한 린치를 만천하에 드러냈으며, 지난 88년 앨런 파커 감독에 의해 ‘미시시피 버닝’이란 영화로 만들어져 널리 알려졌다. 이 사건의 주모자 에드거 레이 킬런(80)에 대한 재판이 사건 발생 41년만인 13일(현지시간) 미시시피주 네쇼바 카운티 법원에서 다시 시작돼 미국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날 재판은 400여명의 배심원 후보자들이 법정에 들어선 가운데 킬런도 휠체어를 탄 채 입정해 진행됐다. 당시 관할권을 갖고 있던 미시시피주 검찰이 수사를 기피하는 바람에 연방수사국(FBI)은 사건 발생 3년 뒤인 67년 7명을 범죄공모 혐의로 연방법원에 기소했다. 주모자가 없는 재판이었던 셈이다. 더욱이 백인 배심원단은 6명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지만 킬런은 당시 한 배심원이 전도사인 킬런에겐 유죄 평결을 내릴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그는 무죄로 풀려났다.또 실형이 선고된 6명도 공범이었기 때문에 6년 이상 복역하지 않았다.한편 같은 날 미 상원은 지난 1882년부터 1968년까지 4743명의 목숨을 앗아간 ‘군중 교수형’을 막지 못한 데 대해 흑인들에게 사과했다.1891년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 때 첫 발의된 이 법안은 3차례 하원을 통과했지만 남부 출신 상원의원들이 필리버스터 등으로 막는 바람에 가결되지 못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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