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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혼위해 산 처(妻)를 사망신고

    재혼위해 산 처(妻)를 사망신고

    딴 여자와 살기 위해 멀쩡히 살아 있는 본 아내를 사망신고 했던 멀쩡한(?) 남편이 꼬리를 잡혔다. 지난 20일 공문서 부실기재 혐의로 함평(咸平) 경찰서에 구속된 장덕식(張德植)씨(38·함평은 진양리)는 10년전 정식결혼하여 엄연히 살아있고 3형제까지 둔 본처 박(朴)여인(35·무안군 효안면)을 69년 2월 15일자로 사망신고. 그리곤 임(任)모여인(27·목포시 산수동) 과 재혼하여 12월 4일자로 다시 혼인신고 한 것이 본처에게 들켜 쇠고랑을 차게 되었다. <함평(咸平)> ■ 같은 술집의 「30번 이상」과 이하로 애주가인 방(方)씨 부자는 체통있는 주당의 가문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사나이대(對) 사나이의 약속을 맺었다. 부산(釜山)시내 어느 술집을 가더라도 『아버지는 번호 30번 이상의 아가씨를, 아들은 30번 이하의 아가씨를』 부르기로 한다는게 약속의 내용. 이 묘안은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술집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부딪치다 보니 자칫하면 한 아가씨를 사이에 두고 두 부자가 묘한 감정이 싹틀 우려가 있기 때문에 취해진 조처. 이래서 이 부자주당은 술 집에 들어서면 우선 「30번 이상」 「30번 이하」 찾기에 바쁜데 이런 부자간의 내막이 집에 계신 마나님에게 알려질까봐 전전긍긍. <부산(釜山)> [선데이서울 70년 3월 8일호 제3권 10호 통권 제 75호]
  • [seoul in] 강서구 국립국어원과 업무조약

    강서구(구청장 김도현) 560돌 한글날을 맞아 9일 국립국어원과 ‘국어발전 및 보전을 위한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조약을 맺는다. 주요 내용은 ▲올바른 국어사용을 위한 교육지원 ▲간판·안내판 등을 바르고 아름답게 달기 등이다. 구는 이를 바탕으로 공문서의 올바른 한글 표기 교육과 이민자 등 한글 교육 등을 실시한다. 문화체육과 2600-6455.
  • 후진국형 금품비리 감소

    굼품수수나 공금횡령과 같은 ‘후진국형’ 비리를 저지르는 공무원은 줄어들고 있다. 반면 품위손상이나 직무태만 등 기강해이를 이유로 처벌받는 공무원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행정자치부가 국회 행자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중앙징계위원회는 2003년 78건,2004년 94건, 지난해 88건 등 최근 3년 동안 모두 260건의 징계를 의결했다. 이 가운데 직무태만과 품위손상, 감독불충분, 복무위배 등 기강해이 관련 징계는 2003년 44건,2004년 62건, 지난해 67건으로 증가세를 나타냈다. 반면 금품수수나 공금유용·횡령 등으로 처벌받은 공무원은 2003년 34건,2004년 32건, 지난해 21건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이 기간 동안 공문서 위조와 같은 중범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다. 징계 내용별로는 파면·해임·정직 등 중징계가 26.5%인 69건이다. 나머지 191건은 감봉·견책·불문경고와 같은 경징계가 내려졌다. 중앙징계위는 5급 이상 국가공무원의 징계 사건과 6급 이하 국가공무원의 중징계 사건만을 담당한다.따라서 이번 자료에는 6급 이하 국가공무원에 대한 경징계 사건과 지방공무원의 징계 사건은 제외됐다. 일반직 국가공무원에 대한 징계 건수는 2003년 386건,2004년 378건, 지난해 302건 등이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 메달·훈장 팔아 연명

    아우구스토 피노체트(90) 전 칠레 대통령이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군장교 및 대통령 재임 시절 받은 메달과 훈장 등을 팔고 있는 실정이라고 칠레 일간 엘 메르쿠리오가 25일 보도했다. 해외은행 비밀계좌 사건으로 기소된 피노체트는 사법당국이 자신의 모든 은행계좌를 압류한 채 조사를 진행하면서 이런 상황에 직면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피노체트 소유의 주택 중에는 최근 몇 달째 전기요금을 내지 못한 곳도 있을 정도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문은 ‘피노체트 숭앙자’임을 자처하는 재력가들이 피노체트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그의 훈장을 매입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피노체트와 기념사진 촬영도 요구했다고 밝혔다. 앞서 산티아고 고등법원은 지난주 피노체트에게 부동산세 납부와 개인적 생활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 압류계좌에서 6만달러를 인출해 줬다. 현재 피노체트는 월 5000달러의 연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 워싱턴 소재 리그스 뱅크 등 외국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가짜 여권과 위조된 공문서를 이용하고 약 2800만달러로 추산되는 해외은행 비밀 예금 자산을 허위 보고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대통령 재임시 200만달러의 공공자금 불법 전용 혐의도 받고 있다. 멕시코시티 연합뉴스
  • “30만원 수뢰 경찰 해임 정당” 확정

    단속무마를 대가로 30만원을 받은 경찰관을 해임한 것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03년 12월 서울 모 경찰서 지구대 사무소장이던 경위 최모(44)씨는 도로에 건축자재를 쌓아놓고 대형 크레인 작업을 하던 건축업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라고 부하직원인 김모 경장 등에게 지시했다. 김 경장은 체포했던 건축업자를 풀어주는 대가로 70만원을 받았고 이중 30만원은 최씨에게 건넸다. 돈을 받은 최씨는 김 경장이 현행범 체포서 등 형사입건 공문서를 파기하는 것을 묵인했다. 최씨는 돈을 받은 사실이 서울지방경찰청에 제보되자 받았던 돈을 건축업자에게 돌려주고 확인서를 받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했지만 결국 감찰과정에서 비위사실이 드러나 해임처분을 받았다. 이후 최씨는 “해임처분이 너무 가혹하다.”면서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냈다.대법원 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18일 “최씨의 비위행위가 중대하고 확인서를 조작하는 등 정상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익상의 필요가 크고 부하직원보다 중하게 징계처분을 내렸다고 해서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감사원 확인… 궁중인장 훼손 심각

    감사원 확인… 궁중인장 훼손 심각

    정부가 나라의 상징인 국새(國璽)를 새로 만들려 하고 있지만, 정작 조선시대에 쓰여진 국새는 모조리 잃어버리는 등 문화재 관리가 한심한 수준인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국새는 조선시대 국가적 행사를 치르는데 필수적이었던 상징적 유물이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감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조선시대 국새가 몇 과가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감사원은 지난해 11∼12월 문화재청 등 10과 기관에서 ‘문화재 지정·관리실태’를 감사한 결과를 24일 발표했다. 감사 결과 조선시대에 제작·사용된 국새는 왕권승계 및 외교문서에 사용한 옥새(玉璽) 13과와 일반 공문서에 쓴 26과 등 모두 39과였다. 하지만 왕권승계 등에 쓰인 옥새는 조선왕조가 처음 만든 ‘조선국왕지인’을 포함해 모두 분실됐고, 일반 공문서용 21과도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71년 각 고궁에 흩어져 있던 왕실의 인장을 정리해 발간한 ‘고궁인존’에는 실려 있으나,1985년에 재발행한 ‘국릉소장유물목록’에는 빠져 있다는 것이다. 분실을 넘어, 누군가가 고의로 빼냈을 가능성도 시사한다. 국가적 행사를 위해 제작된 인장인 어보(御寶)는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이 316과를 보관하고 있으나, 녹슬고 깨지는 등 온전한 상태로 보존처리된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나마 갖고 있는 왕실 인장도 방치다다시피한 수준이다. 문화재청은 왕실 인장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조사나 검토는 물론,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기초적인 작업조차 소홀히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장조사에 참여한 감사관은 “모든 어보에 유성매직으로 관리번호를 써놓는 등 관리상태가 기가 막힌 수준”이라면서 “보관장소도 온도나 습기 조절이 안 되는 건물”이라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조사 권한이 없다는 한계 때문에 국사편찬위원회 등에서 관리하고 있는 귀중본 1만여권은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박물관 전시품에 사실과 다른 설명을 붙여 관람객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제공해온 사례도 여럿 확인됐다. 예컨대 국립중앙박물관은 관우를 기념하는 ‘북묘비’를 야외에 전시하면서 명나라 장수 진린의 기념비로, 서울대 규장각은 조선 헌종이 수집한 인장들을 모아 찍어 만든 책인 ‘보소당인존’을 청나라 옹방강의 인보로 각각 잘못 설명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육군 모부대 5·31선거때 대리 투표

    지난 5·31 지방선거 때 육군 모부대에서 휴가자를 대리해 투표하는 부정선거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22일 육군에 따르면 강원도 철원군 청송부대 예하 OO포병대대 심모(27·대위) 중대장은 지난 5월25일 부재자 투표 때 부재자 투표율을 100%로 맞추기 위해 전포대장 최모(25) 중위를 통해 당시 휴가 중이던 세 명의 생활지도기록부 사진을 떼어낸 뒤 소속부대 다른 병사 세 명의 사진을 붙여 대리투표토록 했다는 것이다. 이 부대는 지난 6월30일쯤 민간인의 제보로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탐문조사를 벌여 병사들을 제외한 관련자들을 입건했다.6사단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2일 공문서위조 및 위조 공문서 행사 교사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심 대위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최 중위에게는 선고유예 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심 대위는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 항소한 상태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여권·수능성적표등 12만~250만원 국제 위조단 검거

    동남아시아에 본거지를 두고 인터넷 카페를 통해 토익 및 수능성적표·운전면허증 등 각종 공·사문서를 위조해 거래한 태국인 위조책과 국내 알선책, 이들로부터 위조서류를 구입해 사용한 공무원과 군인·학생 등 281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경남경찰청은 16일 이들 가운데 알선책 김모(31)씨와 이모(32·여)씨를 공문서 위조혐의로, 위조된 운전면허증을 활용해 중국에서 마약을 국내로 밀반입한 최모(27)씨를 외환거래법 및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서류위조를 의뢰한 278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위조책인 태국인 A(31)는 수사내용을 통보받은 태국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인터넷을 통해 의뢰자의 부탁을 받고 A에게 위조를 알선, 건당 12만∼250만원씩 받고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위조서류는 주문후 이틀만에 의뢰자에게 택배로 발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조서류 의뢰자들은 여권과 대학졸업장을 비롯, 건설공사 도급계약서 등 30개 종류의 가짜 공·사문서를 만들어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군인 장모(42)씨는 진급 때 유리하도록 장인 명의의 국가유공자확인원을 위조했고, 최모(27)씨는 마약거래 때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운전면허증을 위조했다. 또 임모(49·공무원)씨는 토익성적표를 위조했으며, 유모(21·재수생)씨는 대학 입학에 사용하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위조해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위조서류를 제출했으나 승진, 입학 등에는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류위조 의뢰자를 직업별로 보면 회사원이 106명으로 가장 많고 무직 85명, 전문직 31명, 학생 26명, 자영업 24명, 공무원 5명, 군인 2명 등이다. 이병석 외사수사대장은 “이번 사건은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각종 공·사문서의 위조범죄가 중국 등 특정지역에서 태국과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중국과 필리핀 등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위조 총책을 검거하기 위해 현재 인터폴 등과 공조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진실남」구했더니 「사기남」에 걸려

    「진실남」구했더니 「사기남」에 걸려

    공군중령, FBI(미연방수사국)의 한국주재원, 미국인 2세, 청와대 「헬리콥터」 조종사, 기억상실, 성불구, 본처 자살 등을 자작자연(自作自演)-미끼로 삼아 한 여인을 울리고 300여만원을 사기해 먹은 놈팡이가 경찰에 잡혔다. 잡고보니 전과 4범의 「맹렬사기꾼」인데다가 10여개의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사나이. 광고 보고 전화로 불러내 처음엔 공군 중령 이라고 서울 종로 경찰서는 12월8일 낮 사기전과 4범(전과는 더 있다고 보고 수사 중임) 이재우(李在雨·40·주거부정)을 사기 및 혼인 빙자에 의한 간음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이 사기한의 색(色)과 욕(慾)의 사기행각을 피해자의 입을 통해 듣고 그 빈틈없는 술수에 혀를 내저었다. 조서에 나타난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그 사기극을 다시 한번 꾸며보자. ▲공군중령 진병용=지난 6월1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S다방에서 「코피」를 마시는 중년신사가 있었다. 큰 키(1백75㎝)에 아랫배가 적당히 나오고 이마가 벗겨진 사장 「타이프」. 그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레지」가 갖다주는 신문을 읽어 가다가 「펜·팰」 광고란에 눈길을 멈췄다. 『진실한 남성과 친하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광고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사장 「타이프」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선 저쪽편에는 20대 여인의 달콤한 목소리. 이편은 바로 이재우(李在雨). 고독한 여인을 노려 사기극의 제1막을 올린 순간이다. 李의 혀끝에 말려든 광고주 박순자(朴順子·28·가명·서울 마포구 서교동)여인은 얼마 뒤에 총총 걸음으로 다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朴여인으로 서는 상대방의 「진실성」을 캐는 탐색전 쯤으로 그 뒤부터 李를 만나기로 약속했으리라. 그러나 朴여인은 숲에 들어가서 나무를 보지 못하게 됐다. 李는 「진병용 공군중령」이라고 자기 소개. 4년 전 일본에서 비행기 사고로 24시간동안 의식을 잃어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혼이 났다느니 이것을 보고 아내가 자살을 해버렸다느니 상대방이 혹할만한 소리를 늘어 놓았다. 대통령 모시고 있다더니 실은 FBI 요원 이라고 ▲청와대 「헬리콥터」 조종사=李는 朴여인을 극장으로 다방으로 끌고 다녔다. 며칠 뒤 『사실은 공개하기를 금재돼 있지만』이라고 큰 비밀하나 털어 놓듯 자기의 현직을 밝혔다. 대통령이 고속도로의 건설현황 등을 시찰할 때 타는 그 청와대 「헬리콥터」의 조종사라고 했다. ▲성불구=李는 朴여인을 정복까지 위해 고차원적인 농간을 부렸다. 6월20일께(사귄지 13일만에) 李는 朴여인을 서울 중구 후암동 서강여관의 2층 특실로 유인하는데 별로 힘들이지 않았다. 朴여인은 李의 말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李는 전에 말한 비행기 사고로 성불구가 되었다고 말한 일이 있는 것이다. 그는 전후 두차례나 여관에 朴여인을 유인했어도 손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당신은 나의 구세주=그러나 세번째로 여관에 갔을 때는 달랐다. 李의 성불구는 기적적으로 나았다. 李는 朴여인을 붙들고 당신은 나의 구세주라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사실 아내가 자살한 것도 자기의 성불구 때문이었다는 양념까지 곁들였다. 죽은 아내가 불쌍하다고 또 울먹였다. ▲FBI 한국 주재원=李는 朴여인의 형부 李병호(가명·36)씨를 알게 됐다. 李씨는 자기의 이름과 직함을 다시 바꿔댔다. 李씨가 李에게 이름이 왜 여러가지냐고 묻자 사실은 자기가 미국연방수사국 한국주재원이고 이 사실은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비밀로 되어 있다고 둘러댔다. 집과 땅 넘겨 주겠다고 3백여만원 뜯어 ▲미국인 2세=李는 자기가 또 미국인 2세라고 까지 속였다. 그래서 자기 소유인 서울 중구 충현동 84의9등 네곳에 있는 대지 8천여평과 가옥 4동을 朴여인 앞으로 이전해야겠다고 말했다. 李씨는 미국인 2세의 순정에 탄복했다. 부자 동서를 맞게된 기쁨에 그만 마음에 틈새가 생겼다. 처제의 행복을 비는 형부의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李씨는 이전등기에 필요하다는 비용 1백51만원을 7차에 걸쳐 두말 없이 내주었다. 李는 다시 朴여인을 통해서 알게된 김모(44·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여인에게 김여인의 아들 신모(21)씨를 파월시켜 준다고 속여 30여만원을 우려 내었다. 또 지난 9월24일 朴여인의 큰 형부 朴일성(44·가명·부산시 중구 충무로)씨가 서울에 왔을때 부산 항만사령부의 부지매몰공사를 청부맡아 주겠다고 속여 항만국장과 건설부의 朴비서에게 줘야한다고 돈 60여만원을 뜯어 내었다. 더욱이 李씨는 서울자 2-866호 「시보레」를 한 달 5만원으로 전세내어 주로 현직 공군 영관급을 사칭했고 朴여인을 자가용의 사모님으로 「출세」(?)를 시켜주었다. 사취한 돈 유흥에 물쓰듯 정체 알았을땐 이미 늦어 李의 숙소는 지금까지 서울 중구 을지로 3가의 D여관 1호실. 李는 사취한 돈으로 朴여인을 데리고 해운대 「워커힐」등 고급유흥지를 돌아 다니며 물쓰듯 뿌렸다. 수사결과 李에게는 지난 66년 4월16일에 결혼한 본처 김효자(金孝子·30·가명)여인이 있고 지난 59년 3월 대구에서 공군상사(군번98245)로 제대,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66년 2월20일에 직장에서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사기행각은 62년 공문서위조 및 동행사혐의로, 또 64년 사기혐의로 징역 각각 1년씩을 살았고, 68년 8월 다시 사기죄로 1년 복역중 6개월만인 69년 2월에 가석방된 몸. 朴여인을 등친 것은 가석방 중의 일이다. 朴여인의 형부 李씨는 경찰에서 끝내는 그가 사기꾼임을 알아차렸지만 처제의 장래를 위해 만서를 덮어 두려다가 다른 희생자가 더 나오지 않기를 비는 마음에서 경찰에 고소했다고 말했다. <張錫英 기자>[선데이서울 69년 12/14 제2권 50호 통권 제 64호]
  • 환경부, 새 CI 제정 공개

    환경부가 부처의 비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CI(Corporate Identity)를 처음으로 제정해 환경 대표 브랜드로 활용한다고 31일 밝혔다. CI는 환경부 이니셜인 ‘ME’를 산과 태양의 이미지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지향하는 환경부의 비전을 비상하는 새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왼쪽의 ‘M’은 푸르름을 잃지 않는 산의 모습으로 자연과 어우러지는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표현했고, 가운데 ‘E’는 영원한 생명력의 근원인 태양과 두 팔 벌린 건강한 한국사람을 상징한다. 오른쪽의 새는 21세기 환경의 시대에 국민과 만들어갈 희망찬 미래와 건강한 사회를 나타냈다. 환경부는 CI가 만들어짐에 따라 기존의 청사 현판을 교체하고 깃발이나 각종 대외 공문서, 명함 등에 널리 활용하기로 했다. 환경부의 CI 공모전에는 193개 작품이 응모했으며, 새로운 CI는 최우수작 수상작이다.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서울광장] 한·미 FTA 누가 오해했나/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미 FTA 누가 오해했나/우득정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1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대가로 스크린쿼터 축소 등 ‘4대 선결조건’을 수용했다는 비판론에 대해 “대통령의 결정으로 수용하겠다.”고 천명했다. 실제 정부 공문서에서 4대 조건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적이 있으며 한·미 협상의 정지작업 차원에서 통상현안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4대 선결조건’에 대해 노 대통령이 실체를 인정한 것이다. 정부는 이전까지만 해도 ‘4대 선결조건은 없다’,‘4가지 통상현안 진실을 말한다’,‘대미통상외교의 막전막후’(7월19∼20일 국정브리핑) 등을 통해 ‘4대 선결조건’이 오해 또는 외교적 수사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 발언 이후 ‘오해는 털고 실리를 챙기자’는 식으로 슬그머니 방향을 선회했다. 그렇다면 누가 오해했다는 말인가. 지난 2월초 한·미 양국이 FTA 추진을 공식 선언한 후 시민사회단체들은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약값 재조정,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등 ‘4대 선결조건’을 들어주는 대가로 한·미 FTA 추진에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정부는 즉각 4대 조건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지난 4일 방영된 MBC TV PD수첩에서 ‘선결조건’이라는 어휘가 포함된 지난해 9월12일의 대외경제위원회 문건이 공개되자 ‘편의상 축약적으로 사용된 용어’라고 둘러댔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관심사항을 전향적인 자세로 노력하겠다는 뜻으로 표기한 ‘협상의무(Mandate)’라는 용어를 ‘4대 조건 양보’인 양 해석한 것은 국제 통상외교 수사학에 대한 이해부족에 기인한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지난해 11월 미국 의회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의 통상장관(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최근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러한 관심사(4대 선결조건)를 시의적절하게 검토할 것으로 확신시켰다.”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미국 의회의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적절히 검토하겠다’는 정도의 뉘앙스로 전달했지만 이를 ‘양보’로 곡해했다며 미국측에 책임을 떠넘겼다. 한·미 FTA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미국측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인정한 스크린쿼터 축소도 우리의 독자적인 ‘결단’의 측면이 강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다 보니 ‘한·미 FTA를 중단할 수도 있다.’는 한명숙 국무총리나 ‘충분한 보완대책 강구 후 한·미 FTA 추진’이라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엇박자 발언이 나와 혼선을 부추겼다. 그런가 하면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3월초 한·미 FTA 체결시 최장 10년간 대미 무역수지는 73억달러 줄어든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며칠만에 이 숫자는 47억달러로 줄었다.‘숫자 조작’ 논란이 일자 쌀 개방이 전제된 잘못된 수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쌀 개방에 따른 손실을 8000억∼1조원 정도로 추정했다.KIEP의 추정치보다 2.5배가량 줄어든 것이다. 얼마전 한·미 FTA 반대성명에 서명한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미 FTA가 추진되면 우리 경제체질이 미국화하면서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진단했다. 그래서 한·미 FTA를 정책 주권 포기로 규정했다. 그러나 정부는 한·미 FTA가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전 실장이 한·미 FTA의 파급효과를 곡해한 것일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사설] 한·미 FTA 선결조건 정교한 접근을

    한·미 FTA 반대론자들이 거론해 온 ‘4대 선결(先決)조건’이란 표현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선결조건이란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건강보험 약가 현행 유지,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유예 등 4가지로, 미국 정부가 FTA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우리 정부에 요구한 사안이다. 반대론자들은 이 조건을 정부가 받아들임으로써 협상력을 크게 훼손했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반면 정부는 ‘선결조건’ 자체를 공식적으로 부인해왔다. 노 대통령이 이런 표현을 수용한 배경에 대해 정부는 “표현문제로 소모적 논쟁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어 “협상 정지작업 차원에서 ‘4대 현안’이란 표현을 정부 공문서에 사용한 적은 있으나,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익을 손상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사소한 표현상의 문제가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모양새다. 더구나 4대 현안의 사안별 협상에서 건강보험의 약가책정 문제로 2차 본협상이 파행을 겪기는 했으나, 스크린쿼터 문제는 우리측이 미국측의 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도 국익의 손상이 없었다는 정부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는 바로 이런 점이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반대론자에게 빌미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자 한다. 4대 현안은 사실 한·미간 해묵은 통상문제다. 우리로서는 휘발성이 높고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정부가 총론 차원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점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나, 각론에서는 어느 하나 양보가 쉽지 않다. 따라서 전문가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 전략을 치밀하게 짠 뒤에 정교하게 접근할 문제들인 것이다. 정부는 절차의 투명성이 최대의 설득 수단임을 명심해야 한다.
  • 盧대통령, FTA ‘4대 선결조건’ “표현은 수용…부당 양보 없다”

    盧대통령, FTA ‘4대 선결조건’ “표현은 수용…부당 양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21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과 관련,정부가 스크린 쿼터 등의 ‘4대 선결조건’을 이미 수용했다는 협상 반대론자들의 비판에 대해 “이런 해석을 대통령의 결정으로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4대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양보를 해 국익을 손상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언급은 총론적인 측면에서 ‘4대 선결조건’을 받아들였지만 각론적인 부분,즉 구체적인 협상 내용을 놓고는 충분한 협상을 해나가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4대 선결조건에 대해 “협상 추진에 장애가 되는 불필요한 진위 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이같이 말했다고 윤대희 경제정책수석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또 “실제 정부 공문서에도 4대 조건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적이 있으나 이는 한·미 협상의 정지작업 차원에서 통상 현안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 수석은 이에 “더이상 논란이 되지 않도록 ‘4대 선결조건’이란 표현을 정부 차원에서 수용하겠다는 게 노 대통령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4대 선결조건’은 스크린쿼터 축소,미국산 쇠고기 수입,약값 재조정,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등 미국의 4대 통상요구 사항으로,협상 반대론자들은 정부가 협상 전부터 미국측에 이 조건을 양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회의에서 “한·미 FTA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우리가 먼저 제의한 것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되,절대 손해가 되는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추진 원칙을 재확인했다.‘털 것은 털며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 표명인 셈이다.노 대통령은 또 협상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주요 쟁점은 권오규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조정해나갈 것을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협상 정보의 공개와 관련,“협상 전략에 장애가 되거나 협상 상대방과의 상호 신뢰에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라.”고 지시했다.윤 수석은 이에 “국회의 각 상임위를 통해 공개하되 협상에 명백히 불리한 상황은 고려해 조치해야 된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노대통령 “표현은 썼지만 부당 양보 없다”

    노대통령 “표현은 썼지만 부당 양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21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과 관련, 정부가 스크린 쿼터 등의 ‘4대 선결조건’을 이미 수용했다는 협상 반대론자들의 비판에 대해 “이런 해석을 대통령의 결정으로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4대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양보를 해 국익을 손상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총론적인 측면에서 ‘4대 선결조건’을 받아들였지만 각론적인 부분, 즉 구체적인 협상 내용을 놓고는 충분한 협상을 해나가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4대 선결조건에 대해 “협상 추진에 장애가 되는 불필요한 진위 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 이같이 말했다고 윤대희 경제정책수석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또 “실제 정부 공문서에도 4대 조건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적이 있으나 이는 한·미 협상의 정지작업 차원에서 통상 현안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4대 선결조건’은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약값 재조정,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등 미국의 4대 통상요구 사항으로, 협상 반대론자들은 정부가 협상 전부터 미국측에 이 조건을 양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회의에서 “한·미 FTA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 우리가 먼저 제의한 것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되, 절대 손해가 되는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추진 원칙을 재확인했다.‘털 것은 털며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 표명인 셈이다. 노 대통령은 또 협상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주요 쟁점은 권오규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조정해나갈 것을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협상 정보의 공개와 관련,“협상 전략에 장애가 되거나 협상 상대방과의 상호 신뢰에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이 한권의 책] 고문서, 그 비밀의 문을 열다

    조선시대 ‘문서작성의 길라잡이’인 ‘유서필지(儒胥必知)’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전경목 교수팀에 의해 번역 간행(사계절,2006,7)되었다. 흔히 문서 하면 예나 지금이나 행정 또는 법률문서가 연상되고, 엄격한 형식 탓으로 거리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수히 많은 문서와 인연을 가지며 살아가게 되어 있고, 그것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아 전하는 조선시대 고문서를 보면 우리의 선인들이 참으로 감탄할 만큼 문서생활에 충실하였고,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문서들을 작성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들 고문서를 통해 기존의 역사자료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마치 스냅 사진과 같은, 생생한 모습들을 수없이 확인하게 된다. 고문서자료가 이렇게 다양한 정보와 역사자료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이한 접근이나 자료 활용은 매우 부진한 형편이다.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이 연구자들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고문서에 사용되는 특유한 투식과 이두문자, 읽기 힘든 초서들이 그렇게 만든다. 현재 남아 전하는 고문서의 양은 100만여점으로 추정되지만 이중 정리된 것이 5%도 되지 않는 것이나, 고문서연구자 층이 매우 얇다는 점도 이와 관련된다. 이런 현실에서 이번에 번역 출간된 ‘유서필지’는 마치 꼭꼭 잠겨 있는 비밀의 정원과도 같은,‘고문서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이드 북, 길라잡이로서 매우 의미가 크다. 조선시대 문서규식이 수록된 책으로는 ‘경국대전’과 ‘유서필지’가 대표적인데,‘경국대전’은 주로 관청에서 주고받는 문서나 관리들이 작성하는 것들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유서필지’는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유(儒)와 서(胥), 즉 사족이나 서리들이 임금이나 관청에 올리는 문서, 그리고 개인 사이에 오고가는 공사문서(公私文書) 규식이 종류별·사례별로 망라되어 있다. 이 책은 대체로 서리 출신의 한 명 또는 여러 명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 어간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최초 간행본은 헌종 10년(1844) 무교본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전주 등 지방 각지에서 여러 차례 인쇄되어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다. 이 책에는 효자, 열녀에 대한 포상 상신문서, 수령에게 처결을 청원하는 문서, 각종 업무 보고문서, 가옥·전답·노비·산지 등의 매매문서, 그밖에 단자나 통문 등 모두 7종 45건의 문서 서식이 내용별, 그리고 문서를 작성하는 사례별로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부록’에 244항목의 이두와 6종의 공문서 서식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문서식을 예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서의 작성과 처분 등 소송의 전 과정 등을 수록하여 고문서의 체계적 이해와 정리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의 간행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되는데, 하나는 전경목(한국학중앙연구원)교수와 그의 동학들은 20년 이상 고문서를 현장에서 수집하고 정리한 최고의 경험자들로 그들의 애정과 믿음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다음은 이 책이 무엇보다 고문서 초심자나 입문자들이 보다 용이한 고문서 접근을 목표로 기획한 지침서이자, 안내서라는 점이다. 그래서 꼼꼼하고 세심한 독자 배려가 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다. 아울러 이 책은 사계절의 세심하고 의도적인 편집 기획으로 일반 대중의 고문서 활용과 관심, 용이한 접근에 충분한 길라잡이가 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해준 공주대 사학과 교수
  • [신용하 교수의 ‘독도와 EEZ’](상)독도영유권-역사가 말한다

    [신용하 교수의 ‘독도와 EEZ’](상)독도영유권-역사가 말한다

    지난 4월 ‘독도 대치’를 계기로 한국 정부는 독도를 기점으로 동해 배타적경제수역(EEZ)경계획정 협상에 임한다. 오는 12·13일 도쿄에서 6년 만에 개최되는 5차 한일 EEZ협상은 독도 영유권을 기저에 깐 한판 외교전쟁이 될 전망이다. 신용하 독도협회회장으로부터 우리땅일 수밖에 없는, 독도를 기점으로 EEZ협상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논거들을 세 차례에 걸쳐 듣는다. 독도는 역사적 권원(權原)에서 누구의 영토인가? 1. 한국의 독도영유권의 역사적 권원 독도영유권 문제에서 맨 먼저 고찰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독도가 누구의 땅인가를 밝히는 일이다. 국제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독도영유권의 역사적 권원(historical title)을 밝혀야 영유권의 최초의 국제법적 근거가 밝혀진다. 한국은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동해의 해상 소왕국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 문헌상 명료하게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다. 여기서 우산국이 울릉도만으로 구성된 소왕국이 아니라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를 다 포함한 해상 소왕국이었다는 사실의 확인이 필요한데,‘세종실록지리지’(1432년 편찬),‘동국여지승람’(1481년),‘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만기요람’군정편(1808년),‘증보문헌비고’(1908년) 등에 비교적 명료하게 기록돼 있다. 이때 조선왕조는 독도를 ‘우산도’(于山島)라고 호칭했다. 일본은 18세기에 울릉도를 죽도(다케시마)로, 독도(우산도)를 ‘송도’(마쓰시마)라고 불렀다.‘만기요람’군정편에서는 여지지(輿地志)에 이르길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皆) 옛 우산국 땅이다.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이다.”라고 기록했다. 이 고문헌은 울릉도와 우산도(독도)가 ‘모두’ 옛 우산국 땅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우산도(독도)는 일본인들이 말하는 송도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독도의 옛 이름인 ‘우산도’의 명칭 자체도 ‘우산국’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우산도(독도)가 우산국의 일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2. 일본 고문헌도 “독도는 한국영토” 일본 정부는 일찍이 일본에서 최초로 독도(송도) 명칭을 든 일본고문헌으로 1667년 편찬의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를 한국 정부에 알려왔다. 정작 이 보고서를 보니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는 고려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국경은 은기도(隱岐島·오키섬)를 한계로 한다는 내용이다. 일본 최초의 독도관련 고문헌도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 이후 1905년 2월까지 일본의 모든 고문헌과 고지도들은 모두가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기록하고 있고,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록한 것은 단 1건도 없다. 지난 2006년 5월12일 일본 고이즈미 정부 내각회의는 1954년 이후 한국의 독도 영유는 ‘불법점거’이며, 일본은 늦어도 17세기 중반 ‘독도영유권을 확립’했고,1905년 내각회의가 독도영유권을 ‘재확인’의결했다는 결정서를 국회답변 형식으로 의결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근거 없는 억지이고 거짓이다. 시마네현에 사는 어부 2명이 조선 울릉도와 독도에 월경하여 고기잡이할 허가장을 신청하자 도쿠가와 막부는 1618년 “죽도(울릉도)도해면허”와 1656년 “송도(독도)도해면허”를 내준 일이 있다.‘도해면허’(渡海免許)는 외국에 월경하여 건너갈 때 내어주는 허가장으로 요즈음의 ‘여권’과 비슷하다. 일본 영토가 아니라 국경을 넘어가는 다른 나라인 조선영토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3. 일본 도쿠가와 막부도 1696년 독도는 한국영토로 재확인 뿐만 아니라 1696년 1월28일 도쿠가와 막부 정부는 대마도주의 울릉도 독도 논쟁에 대한 조선의 항의를 받고 조사한 끝에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일본 어부의 울릉도 독도 출어를 금지했다. 일본측은 이같은 내용의 외교문서를 조선정부에 보내왔었다.(사진1) 사실상 울릉도 독도 영유권 문제는 이때 종결된 것이다. 4. 일본의 명치유신 정부도 울릉도·독도를 조선영토로 재확인 1868년 1월 수립된 명치유신 정부도 마찬가지다. 명치정부 태정관(총리대신부)과 외무대신은 조선과의 신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1869년 12월 조선 부산에 외무성 고위관리를 파견할 때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조선부속(朝鮮附屬)이 되어 있는 시말’을 내탐 조사하도록 훈령했다. 그 조사보고서가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라는 제목으로 ‘일본외교문서’제3책에 수록돼 있다.(사진 2) 이 일본 관찬 공문서는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과 외무대신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부속령이었음을 잘 인지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더욱 결정적인 일본정부 공문서 자료가 있다.1876년 일본 내무성은 근대적 전국 지적도 작성을 위해 각 현에 자기현의 지도를 작성해 올리라고 훈령했다. 이 때 시마네현 지사가 동해 가운데 울릉도(죽도)와 그 외의 1도 독도(송도)를 시마네현에 넣어 그릴까 빼고 그릴까, 영토의 넣고 뺌은 중대 안건이어서 현지사가 결정할 수 없으니 내무대신이 결정해 달라고 품의했다. 내무성은 약 5개월간 조사한 후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는 조선영토이고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영토문제는 극히 중대 안건이므로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에게 최종 결정을 품의했다. 당시 일본 국가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 우대신(총리대신에 해당) 이와쿠라 도모미(岩倉見視·명치유신의 최고 지도자)는 1877년 3월20일 “울릉도(죽도)와 그 외 1도 독도(송도)는 조선영토로서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이니 그렇게 심득하라.”는 요지의 결정서 훈령을 3월29일 내무성에 보냈다. 태정관의 이 훈령은 4월9일자로 시마네현 지사에게 하달됐다.(사진 3) 이것은 결정적인 자료다. 일본의 근대정부도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이 면밀한 조사 검토 끝에 독도·울릉도는 일본영토가 아님을 공문서 훈령으로 명확히 결정해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관청에까지 훈령을 내린 것이다. 이 밖에 일본 육군성과 해군성 지도, 수로지 등에도 증거는 다수 있다. 5. 일본의 1905년 독도침탈의 불법성과 무효 일본은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킨 후, 러시아 군함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한 일본 해군 망루를 독도에 1개, 울릉도에 2개 세우기로 했다. 마침 이 무렵 일본 시마네현 어업가 나카이(中井)란 자가 독도 부근 수역에 풍부한 강치(물개의 일종)잡이 독점이권을 한국정부로부터 얻기 위해 독도 대부신청서를 작성, 일본 중앙정부에 대행을 신청했다. 이는 ‘나카이 사업경영개요’(1910) 등에 잘 기록돼 있다. 이에 일본 해군성과 외무성은 이 기회에 독도를 ‘무주지(無主地)’라고 억지 전제하고 일본에 ‘영토편입’해 침탈하려는 야욕을 갖게 됐다. 내무성은 그 섬이 ‘무주지’가 아니라 ‘우산도’란 이름의 조선영토라는 의견을 냈으나 해군성과 외무성은 러·일전쟁 수행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1905년 1월28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처음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키고 이름도 ‘다케시마’(죽도)로 호칭한다고 결정했다.1903년 나카이가 이 섬에 고기잡이 나간 일이 있으므로 이것을 선점(先占)이라고 간주한 것이다. 당시 국제법은 영토 편입의 전제로 (1) 무주지와 (2)무주지인 경우에도 그 주변 관련국에의 조회와 국제적 고시를 조건으로 하고 있었다. 일본의 독도 영토편입은 완전 불법이었고 무효였다. 왜냐하면 1903년 당시나 1905년 이전에 독도는 주인 없는 ‘무주지’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주인이 있는 ‘유주지’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독도의 소위 ‘영토 편입’을 한국 정부에 조회(照會)하지도 못하고 ‘국제고시(告示)’도 하지 못했다. 대한제국은 이미 1900년 칙령 제41호로 지방관제 개정을 하면서 울릉도를 종래 강원도 울진군 소속에서 독립시켜 ‘울도군’을 신설했다. 또 울도군수를 임명해 행정구역을 울릉도와 독도(석도)로 발표하고 중앙 관보를 통해 각국 공사관에 보내 국제고시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일본은 거의 1개월간 고심 끝에 꾀를 내어 중앙 관보고시는 못하고 한국과 각국 공사관이 알지 못하도록 시마네현의 현 ‘관내고시’(管內告示)를 하도록 했다. 고시일자가 1905년 2월22일인데, 이것이 현재 일본이 제정한 ‘다케시마의 날’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제고시가 아니기 때문에 무효다. 일제는 러·일 전쟁을 1905년 9월5일 승리로 종결하자마자 같은 해 11월 소위 ‘을사조약’을 강요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했다. 그리고 이듬해 1906년 1월에는 대한제국 외무부를 폐지하고 내정도 지배했다. 일제가 독도침탈 사실을 울도군수 심흥택에게 알게 한 것은 외교권을 완전히 강탈해 간 다음인 1906년 3월28일. 울도군수는 놀라 ‘본군 소속 독도’가 일본에 영토편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즉각 중앙정부에 보고했다. 중앙정부 참정대신과 내부대신은 일본의 독도침탈에 항의하고 부정하는 훈령을 내렸으나 외무부가 없어 일본정부에 외교문서로 전달하지 못하고, 현재 규장각에 고문서로 보존되어 있다. 독도는 1910년 한반도를 침탈한 일제가 러·일전쟁을 도발하면서 5년 먼저 강점한 한국 땅이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날이 오면 한반도와 함께 반드시 반환받아야 할 한국의 고유 영토였다. 한양대 석좌교수(독도학회 회장)
  • “그들만의 말 진짜 바꾸자”

    최근 분양된 한 아파트에 입주한 이모(35)씨. 입주자들의 인터넷 카페에 올린 그의 글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분양에서 입주하기까지 이런 저런 서류를 만들 일이 오죽 많은가. 무슨 암호 같은 단어들이 나열된 공문서를 만드는 게 귀찮아, 대부분의 입주자들이 비싼 돈 들여 대행사에 서류를 맡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씨는 자신이 직접 발로 뛴 뒤, 이 문서는 이렇게 쓰라고 자세히 설명한 글을 올린 것. 입주민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그만큼 우리 공문서는 어렵다는 증거다. 그래서 공무원들부터 쉽고 바른 우리말을 쓰겠다며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9일 제1차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회를 열었다. 여기서는 여전히 어려운 한문투가 문제로 지적됐다.“종점부 가각 확장”,“비용을 지변하기” 등과 같은 어려운 말을 “종점부 모퉁이 확장”,“비용을 충당하기”처럼 쉽게 바꾸어쓰자는 지적이 나왔다. 공무원의 힘이 공문서를 작성하는 힘에서 나온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일종의 중이 제 머리를 깎는 도전인 셈이다. 그러나 이를 채찍질하기 위해 정책협의회를 연 2회로 정례화하고 구체적인 진척사안을 챙기기로 했다. 이날 협의회에서는 또 영어 남용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국립국어원이 최근 실시한 외래어·외국어 인지도 조사에서, 테스트베드·클러스터·마타도어처럼 비교적 널리 쓰이는 어휘도 5% 미만의 사람들만 그 뜻을 알았다.CEO 같은 단어도 60%에 그쳤다. 문광부도 쓰고 있는 바우처·TF 등에 대해서도 10% 안팎에 그쳤다. 조사대상자(508명) 가운데 제시된 단어 20개를 모두 모르는 사람이 147명이었다. 한마디로 대도시 20∼30대 고학력자들만 쓰는 외래어·외국어를 무분별하게 가져다 쓰는 현상을 억제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한편 이날 협의회에는 국립국어원 홍보대사이기도 한 KBS 노현정 아나운서가 참석,“우리말을 소중하게 여기고 바르게 쓰는 일이 정말 중요하고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강조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 동래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 동래길

    고속철도가 놓이면서 서울과 부산이 3시간 거리로 좁혀졌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사통팔달 도로가 뚫리면서 이 땅에 자동차가 갈 수 없는 곳이란 이제 거의 없다. 그러나 자동차가 없던 시절은 어떠했을까. 말을 타거나 괴나리 봇짐을 등에 메고 길손들이 오순도순 걸어가던 옛길. 비록 ‘속도’는 없었지만 그 길 속에는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질박한 향토 내음이 나그네의 시름을 덜어줬다. 발닿는 곳마다 다른 말씨와 풍물이 반겨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면서 애환을 함께했던 옛길은 곧 우리의 삶이자 역사였다. 문명의 발달 속에서 느림이 미학이 된 시대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사라진 옛길을 따라 잊혀진 삶을 되짚어 본다. 길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이다. 지금으로부터 400년전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현장은 더욱 그랬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왜구에게 한양으로 가는 길을 내줄 수 없다며 목숨을 버렸고, 경상좌부사 이각은 그 길을 따라 북으로 도망을 쳤다. 그 길에서 충신과 역신이 갈라섰고 전쟁이 끝난 후 송상현은 불멸의 충신으로 부활했지만 도망친 이각은 비겁자로 추락했다. 동래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충신과 역신이 갈라선 길 조선시대 부산의 중심지는 동래였다.1592년 임진년 4월13일. 부산진과 다대포진을 무너뜨린 왜구는 하루 만인 14일 저녁 지금의 동래경찰서 부근인 동래성 남문까지 밀고와 조선군과 대치했다. 앞서 군사를 이끌고 동래성에 와 있던 경상좌도 군사책임자인 이각(경상좌부사)은 싸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북문지기를 죽이고 도망쳐 버렸다. 왜구는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거든 (명나라를 정벌하는 )길을 비켜 달라.’는 목판을 동래성 남문 밖에 세웠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즉각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리기는 어렵다.’고 맞서며 결연한 항전의지를 다졌다. 이튿날인 4월15일 왜군이 파죽지세로 밀고와 동래성이 함락됐다. ‘외로운 성은 마치 달무리같이 적에게 포위되었는데 이웃한 여러 진은 기척도 없구나. 임금과 신하의 의리는 무겁고 아비와 자식의 정은 가벼이 하오리다.’ 송 부사는 한시를 남기고 꼿꼿하게 최후를 맞았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임진왜란 이래 방치돼 왔던 동래성은 1731년(영조 7년) 동래부사 정업섭의 발의로 현재의 성곽규모인 둘레만 1만 7219척(7.7㎞)에 달하는 새 읍성을 쌓게 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읍성은 또 무너진다. 시가지 정비라는 명분 아래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벽이 철거됐다.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벽도 크게 무너지고 민가가 점유해 훼손되기에 이르렀다. 그 동래성이 요즘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울산대 한삼건 (도시공학)교수 는 “구한말 일본인은 성밖에서만 거주,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면서 “조선의 전통적인 신분질서를 무너뜨리고 일본인의 생활공간 확충을 위해 일제가 마구잡이식으로 전국의 성벽을 철거했다.”고 말했다.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 ‘어데 가넝기요’ ‘한양 갑니더.’부산 방언의 물음과 대답의 어미는 ‘∼넝기요.’ ‘∼ㅂ니더.’이다. 혹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자못 시비조로 들리기도 한다. 조선시대 부산의 중심지였던 동래는 휴산과 소산이 교통의 요지였다. 휴산은 지금의 동래역 앞 패총지 주변이며, 여기서 동래읍성을 지나 북으로 20리 떨어진 소산은 지금의 금정구 하정마을이다. 하정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부사 이각이 자신은 이곳을 지키겠다는 핑계로 동래성을 빠져나와 도망간 바로 그곳이다. 휴산에서 소산으로 가는 사이(금정구 부곡동)에는 기찰(譏察)이 있었다. 기찰은 특정한 곳에서 검문검색을 하는 요즘의 검문소에 해당하는 곳이다. 당시에는 부산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려면 동래∼양산으로 이어지는 길과 구포에서 낙동강을 건너 김해로 빠지는 길을 통해야만 했다. 이정형 동래구 문화재 전문위원은 “부산에는 일본과의 통로인 초량왜관이 있어 밀무역이나 적과의 내통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동래와 김해에 검문소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곳 마을에는 아직도 기찰목욕탕, 기찰떡방앗간, 기찰식육점, 기찰열쇠 등 옛 지명을 상호로 사용하는 집이 수두룩하다. 경부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고립되다시피 한 하정마을(소산역터)은 아직 4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토박이 안근수(72)씨는 “여행을 떠나는 관리들이 말을 타고 내릴 때 사용하던 큰 돌이 마을 어귀에 있었는데 수년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족욕 바람 동래온천 동래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에 동래온천이 한몫을 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동래온천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31대 신문왕(683년)때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동래를 지칭)의 온정에 목욕을 하고 성으로 돌아갔다.’(삼국유사)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온정을 관리하는 관속인 온정직을 두었고 욕객들을 위해 온정원을 설치하고 역마까지 두었다.1766년(영조 42년) 동래부사 강필리는 아홉칸짜리 집을 지어 남탕과 여탕을 구분하고 온정을 지키는 대문도 세웠다 한다. 이때 세운 온정개건비(부산시기념물 제14호)가 현재 온천동 농심호텔 후문 용각의 뜰안에 자리잡고 있다. 온천장에는 요즘 공짜 족욕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농심호텔 후문과 온정개건비 사이에 지난해 11월 무료 노천족탕이 들어서 하루 1000여명이 찾아온다. 흡사 신라의 포석정을 닮은 노천 족욕탕에는 이른 아침부터 족욕객들이 몰려 빼곡히 둘러앉아 온천수에 발을 담그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한때 온천을 강점했던 일본인 관광객들도 엔화의 위력을 앞세우며 여전히 동래온천을 찾는 큰 고객들이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온천수. 그러나 언젠가 동래 온천수가 뚝 끊어질지도 모른다. 동래온천번영회 정주태 상무는 “고속철도 부산구간인 금정산에 터널을 뚫으면 수맥이 끊겨 혹시나 온천수가 마르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며 동래의 명맥이 사라질까 우려했다. 부산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그래픽 김송원기자 oksong@seoul.co.kr ■ 남대문~동래 ‘영남대로’는 조선시대 한양과 부산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은 남대문을 시작으로 용인~안성~충주~문경~칠곡~대구~청도~밀양~양산~동래에 이르는 950리길이었다. 이른바 영남대로로서 민족생활사의 파노라마와 같았다. 도로의 폭은 넓은 길이 10m, 중간길이 7m, 좁은 길은 3m 정도였다. 30리마다 도로의 기능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역(驛)을 두었고 지역별로 10여개의 역을 한데 묶어 종육품 관직의 찰방(察訪)이 모든 역의 관리책임을 도맡았다. 역은 역토(驛土)를 지급받아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했고 역에는 규모에 따라 5∼30마리의 말이 배치됐다. 역의 기능을 보조하여 숙식을 제공하는 국가관할의 관(館)과 원(院)이 설치됐고 서민들의 주막도 들어섰다. 공문서의 수발, 세금으로 거두는 세미, 조공품 운반, 관리들의 여행 등은 모두 이 도로를 통해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주공격로로 이용돼 주변지역이 극심한 피해를 입었고 조선통신사도 이 길을 따라 부산에 도착,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과거에 나선 경상도 선비들도 이 길을 따라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은 죽령길인 영남좌로와 추풍령길인 영남우로가 따로 있었다. 좌로는 서울~양주~광주~여주~충주~단양~죽령~풍기~영천~안동~의성~신령~경주~울산~기장~동래로 연결됐다. 우로는 서울~용인~양지~주산~진천~청주~옥천~청산~황간~추풍령~성주~현풍~창녕~영산~칠원~창원~황사진~양산~동래로 이어졌다. 영남대로는 19세기 말까지 한양과 경상도 지방을 연결하는 공로(公路)로서 명맥을 유지했으나 일제의 철도 건설로 기능이 약화됐으며,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역사속으로 점차 잊혀졌다.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盲’ 모삼천지교

    서울경찰청 외사과는 10일 해외이주 알선업체 G컨설팅 대표 김모(38)씨를 공문서 위·변조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직원 이모(42·여)씨 등 3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김모(51)씨 등 불법이민 신청자 29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 등은 2002년 1월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김씨로부터 수수료 700만원을 받고 소득증명서, 재직증명서, 사업자등록증, 공시지가 확인원 등 관련 서류를 위조해 불법이민을 알선하는 등 최근까지 투자자 29명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민 신청자들이 캐나다 현지 R은행 등에 이민자 예치금 12만 캐나다달러(약 1억원)를 입금하도록 알선해 은행으로부터 전체의 40%에 해당하는 4000만원씩을 알선료 명목으로 받아 모두 11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적발된 이민 신청자들은 대부분 초·중·고교생 자녀를 둔 학부모로, 자녀의 조기유학을 염두에 두고 영주권을 획득해 학비 면제와 복지혜택 등을 받기 위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고 경찰은 밝혔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샤론총리 아들 징역 9개월

    투병 중인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아들 오므리 샤론이 14일 불법 정치자금을 모금한 혐의로 징역 9개월을 선고받았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아버지 샤론의 선거운동을 위해 불법 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된 오므리는 지난해 11월 법정에서 감형을 전제로 공문서 위조와 위증, 정치자금법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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