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맞고 오해받고 경찰 가슴앓이
지난 4일 새벽 1시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술집 앞.술에 취해 노상방뇨를 하는 김모(37)씨에게 청량리경찰서 중부지구대 정모 경사가 주의를 주자 김씨가 “당신이 뭔데 그러느냐.”고 거칠게 항의했다.정 경사와 강모 순경이 이를 제지하자 옆에 있던 김씨의 친구까지 합세,경찰관 2명의 목을 조르고 가슴을 때렸다.김씨 등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5일 구속됐다.
공무집행방해 사건이 갈수록 늘고 있다.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는 2000년 8660명,2001년 1만 540명,지난해 1만 1276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올 들어 상반기에만 5351명이 입건돼 1026명이 구속됐다.
●“공무집행방해는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공무집행방해 사건의 증가는 경찰과 시민,제도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술에 취해 실수를 했다고 사정을 호소해도 경찰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며 형사처벌을 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여러 사람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군중심리에 휩쓸리다 보면 경찰관이 만만하게 보이지만,술이 깨면 대부분 “술김에 그랬으니용서해 달라.”며 치료비를 물어주고 합의를 하자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일단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다면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렵다.경찰관 개인이 아닌 국가에 대항한 것이므로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자칫 시민들의 오해를 사 경찰의 위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다.경찰청 고위간부는 “합의를 해주면 재판 과정에서 형이 감경될 수 있겠지만 ‘경찰이 매를 맞아 돈을 번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어 합의를 못하게 한다.”고 솔직히 말했다.
●일선 경찰관들,“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인권탄압 논란 등으로 구설수에 오를까봐 피의자들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할 때도 있다고 주장한다.지난 2일 밤 강남구 역삼동의 한 건물 앞 화단에서 꽃을 뽑고 있는 취객 전모(33)씨를 발견한 경비원이 경찰에 신고했다.출동한 경찰에게 취객은 “경찰이 사람을 친다.”“다 죽여버리겠다.”고 폭언을 퍼부었지만 경찰은 수갑도 못 채우고 전씨를 달래고만 있었다.고모 순경은 “검거과정에서 조그만 상처만 나도 뒷말이 나오기 때문에 적극 대처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상처를 입은 피의자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면 경찰관 개인이 돈을 물어줘야 하는 일까지 생긴다.상황별로 어느 수준까지 대응할 수 있는지도 명확지 않다.경찰관 직무집행법에는 ‘사형,무기징역,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거나 흉기를 가지고 경찰관에게 항거할 때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합리적으로 판단되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만 규정돼 있다.
●불만 표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개선책 마련해야
서울 강남경찰서 이모 경위는 “피의자에게 맞은 것이 자랑도 아니고 참는 데까지 참다가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통계보다 훨씬 많은 공무집행방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예전보다 경찰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적어졌고,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경찰관이 쉽게 불만 표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정당한 경찰력 행사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와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