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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회 교정대상 수상자] ‘공로상’ 임영춘 목포교도소 교정위원

    [34회 교정대상 수상자] ‘공로상’ 임영춘 목포교도소 교정위원

    1999년 2월부터 무연고 장기 수용자, 불우 수용자와 자매결연을 맺어 23차례에 걸쳐 교화상담을 하고, 150명에게 영치금을 지원하면서 수용 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수용동 복도와 운동장, 민원실까지 400m에 달하는 담장을 파스텔톤으로 꾸미는 벽화사업을 지원해 수용자 정서 순화에 기여했다. 명절에는 수용자들을 위한 특식을 마련하고 TV, 선풍기, 생수 등을 지원하면서 교정·교화 사업 활성화에 기여했다. 2004년부터는 지역사회 미화원과 독거노인을 초청해 문화 공연을 벌이고 식사를 제공하는 등 봉사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야구술사’ 허구연 해설위원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야구술사’ 허구연 해설위원

    지난 21일 저녁 서울 효창공원 근처 사무실에서 만난 허구연(65)은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은 날”이라고 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시애틀에서 뛰고 있는 이대호 때문이었다. 주말인 그날 아침 이대호는 홈런 1개를 포함해 2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이대호를 사랑한다고 했다. 빵 한 봉지를 위해 야구를 시작했지만 늘 변함없이 유지해 온 밝은 미소, 어렵게 키워 주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 그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모든 장점이 한데 모여 현실로 구현된 선수가 이대호”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 또한 야구에 신세를 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감독님, 저 대학 가고 싶습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1970년 11월 말 서울 중구 소공동 상업은행 본점(현 한국은행 별관) 사무실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제자의 폭탄선언을 들은 이곳 상업은행 야구단 장태영(1999년 작고) 감독님의 표정엔 실망과 배신감이 교차했다. 그해 초 어렵게 팀에 들인 주축 4번 타자가 갑자기 야구를 때려치우겠다니…. 그것도 경남고 후배라고 각별히 아껴주었는데. 감독님은 끝까지 나의 청을 수용하지 않으셨다. 결국 나는 도망치다시피 상업은행을 떠나 이듬해 71학번으로 고려대 체육학과에 체육 특기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1년 뒤에는 같은 학교 법학과 72학번으로 두 번째 입학식을 가졌다. -1962년 부산 대신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불도저 시장’으로 유명한 김현옥씨가 그해 4월 부산시장으로 왔는데, 그는 취임하자마자 시내 모든 국민학교를 대상으로 ‘부산시장배 야구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우리 학교엔 야구부가 별도로 있었지만 교장 선생님은 “숨은 인재를 발굴한다”며 반마다 한 명씩 추천받아 운동장에서 테스트를 시켰다. 담임 선생님은 유난히 큰 덩치에 달리기와 축구를 잘했던 나를 지목했고, 나는 얼결에 운동장으로 불려 나가 방망이를 들었다. ‘꽝’ 소리와 함께 내가 때린 공이 저 멀리 한참을 날아갔다. -다음날 방과후 야구 감독님과 교감 선생님이 나를 따라 우리 집에 왔다. “그냥 돌아들 가세요.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해서 안 된다니까요.”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그들을 외면하셨다. 당시 나는 공부도 반에서 1, 2등을 다퉜다. 경기고-서울대 코스를 밟을 아이한테, 난데없이 야구라니. 하지만 아버지와 달리 전날 홈런을 때릴 때의 쾌감이 내 몸속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가 나서서 아버지를 졸랐다. 며칠 후 아버지는 야구부 입단을 허락하셨다. 단, 국민학교 졸업 때까지, 그리고 경남중 입학시험에 반드시 합격한다는 조건이었다. 내가 기존의 야구부 선수들을 제치고 주전 1루수에 4번 타자가 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학교 우승의 주역이 됐다. 6학년이 돼서는 4번 타자에 더해 ‘주전 투수’란 타이틀이 추가됐다. 만일 ?내가 일곱살 때 집안의 뿌리인 경남 진주를 떠나 부산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경남중 합격은 어렵지 않았다. 아버지와 한 약속대로라면 야구는 이제 끝이었다. 그런데 입학식도 하기 전에 경남중 야구 감독님이 과일을 싸들고 집으로 오셨다. 그날 밤 아버지는 가족회의를 소집하셨다. 내 생각을 말했다. “공부도 좋긴 한데 일단 야구를 좀더 해보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단념은 의외로 빨랐다. -중1 입학과 동시에 2, 3학년 형들을 제치고 3~4번 타순을 맡았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경남중·경남고·상업은행·고려대·한일은행에 이르기까지 선수를 하면서 후보 생활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건 내게 한편으론 독이 되기도 했다. 후보 선수의 심정을, 잘해 보고 싶은데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비로소 뼈저리게 느꼈던 건 나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청보 핀토스 감독 시절이었다. 1985년 만 34세 최연소 사령탑으로 주목받으며 시즌을 시작했지만, 8승23패로 중도 퇴진했다. 아침마다 ‘허구연의 청보, 허구한 날 패배’, ‘허공만 바라보는 허구연’ 같은 제목의 기사들을 보며 충격과 좌절을 느껴야 했는데, 그게 외려 나에겐 큰 깨달음을 주었다. -고3이 되자 상업은행에서 우리 학교 출신인 장태영 감독님을 통해 집요하게 손짓을 해왔다. 하지만 내가 실업팀에 갈 이유는 없었다. 우리 학교가 황금사자기 대회 우승을 했던 고1 때 이미 고려대와 연세대로부터 입학 제안을 받은 상태였다. 완강히 거부하자 상업은행에서는 “허구연을 보내 주면 다른 선수 한 명을 추가로 받아 주겠다”며 학교 쪽을 공략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럴 게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때 나는 ‘한 명의 친구’를 택했다. 어차피 그 즈음엔 평생 야구를 하기로 마음먹은 터이기도 했다. -상업은행에서는 빳빳한 신권으로 월급을 줬다. 그 돈은 상당 부분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친구들에게 칼질(경양식) 시켜 주고 맥주 사주는 데 들어갔다. 상업은행 본점 근처 명동은 ‘부산 촌놈’에겐 별천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친구들과 헤어져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져 갔다. 대학수업과 리포트, 여자 친구, 캠퍼스 축제 얘기들. ‘술을 사주는 건 난데 더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고민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 갔고, 결국 나는 장태영 감독님의 마음에 비수를 꽂고 말았다. -1971년 3월 체육학과에 입학하면서 나는 야구선수와 수험생의 생활을 병행했다. 말하자면 ‘주야야독’(晝野夜讀)이었다. 정식으로 예비고사, 본고사를 거쳐 법과대학에 들어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최초의 국가대표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운동선수들은 무식하다”는 세간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 신문 인터뷰에서 “판검사나 변호사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야구가 더 좋아서 안 하는 것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듬해 나는 고려대 법대에 신입생으로 다시 들어갔다. 체육 특기자 출신이 고려대 안에서도 입학하기가 가장 어려운 학과로 통했던 법대에 시험을 봐서 합격하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내에서도 난리가 났다. 야구선수 생활은 계속됐지만 수업을 들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아침 9시에 중간고사를 보고 낮에 동대문야구장에 가서 홈런을 2개 친 날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법대를 졸업할 때쯤 내가 선택한 것은 다시 야구였다. 한일은행 야구단에 들어갔고 다시 국가대표가 됐다. 거기서 치른 1976년 한·일 실업야구 올스타전은 내 인생의 방향을 다시 한번 바꿔 놓았다. 상대 선수의 거친 슬라이딩에 왼쪽 정강이가 두 동강이 났다. 4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이 되지 않았다. ‘이대로 퇴원하면 은행에서 일반직으로 일하는 건가. 하지만 나는 주산·부기도 못하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결국 김응용(전 삼성라이온스 사장) 감독님에게 은퇴를 고했다. 그때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허구연이가 돌아왔다고?” 고대 법학과 대학원 시험에 합격하자 누구보다도 김상협 총장님께서 기뻐하셨다. 고대 야구부 시절에 나를 많이 아껴준 분이셨다. 53명의 응시생 중 13명만 붙은 대학원 입학으로 내 꿈은 ‘야구 국가대표 출신 교수’로 방향 수정이 됐다. 처가의 영향도 있었다. 장인어른은 우리나라 노동경제학의 대가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설립의 주역인 고려대 김윤환 명예교수님이신데, 작년 2월에 돌아가셨다. 고대 법대 커플인 아내는 현재 충남대 로스쿨 교수로 있다. -경기대에서 강사 생활을 하던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하고 얼마 후 MBC에서 전화가 왔다. 대학원 시절 동아방송 라디오를 통해 실업야구 해설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MBC 조광식 스포츠국장이 그걸 기억해 낸 것이었다. 방송을 몇 번 하고 났더니 MBC에서 전속 계약을 하자고 했다. 당시 TV 중계를 한 번 하면 MBC에서 3만 6500원을 줬다. 하지만 나는 선수들처럼 연봉제를 요구했다. 연 2200만원을 달라고 했다. 당시 특급인 박철순 투수(2400만원)를 제외한 A급 선수들의 연봉이 2200만원이었다. 서울 강남의 30평 아파트 평균 가격이 2200만원이라는 데서 나온 액수였다. 첫해 1400만원에 사인을 했다. -해설자로서 남다른 자부심을 갖는 게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인 게 일본식 용어를 몰아낸 데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1982년 당시는 온 나라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따른 반일 정서로 들끓었다. 나는 “포볼, 데드볼 같은 일본식 조어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프로야구 출범 초기인 지금 못 하면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겁니다”라고 MBC PD와 아나운서들을 설득했다. 미국 유학 중인 친구를 통해 다저스 감독 출신의 월터 올스턴이 지은 ‘더 베이스볼 핸드북’을 구입했다. MBC 아나운서들과 나는 ‘포볼’은 ‘베이스온볼스’, ‘데드볼’은 ‘히트바이피치트볼’로 불렀다. 이 말들은 나중에 ‘볼넷’, ‘몸에맞는볼’ 등 우리말로 다시 순화됐다. -우리 프로야구가 두 시즌을 마친 뒤인 1984년 3월, 나는 미국 플로리다 베로 비치에 설치된 LA다저스의 스프링캠프에 4주 동안 머물렀다. 그곳에서 선진적인 훈련 방식과 선수 관리를 지켜볼 수 있었다. 피터 오맬리 다저스 구단주의 특별한 배려였다. 토미 라소다 감독에 알 칸파니스 단장 등 쟁쟁한 멤버들이 포진해 있던 때다. 그런데 당시 다저스 에이스였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투구를 마친 뒤 더그아웃에 들어오더니 어깨에 아이싱(얼음 찜질)을 하는 것이었다. ‘왜 저러지? 우리는 공 던지고 나면 따뜻한 물에 팔을 담그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은, 다시 말해 일제 시대 야구를 배웠던 스승들에게서 얻은 지식의 상당수는 미국 스포츠 의학계에서 이미 20~30년 전에 폐기된 것들이었다. -난 그런 새로운 지식들을 빨리 우리 야구계에 전해 주고 싶었다. “이 중계방송을 보시는 감독님들, 부모님들 잘 들으세요. 선수가 공을 던지고 나면 절대로 온찜질을 하지 마시고 냉찜질을 해 주셔야 합니다.” 그해 첫 TV 중계에서 이렇게 말했더니 뜻하지 않은 공격이 들어왔다. “새파랗게 어린 해설자가 미국 한번 갔다 오더니 돌아이가 됐다”는 식이었다. 지금은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온찜질을 하는 경우는 없다. -나의 해설 철학은 겸손하자는 것이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확실하지 않은 것은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불편부당하려고 노력한다. 감독이나 선수들과 술은 물론이고 밥도 먹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다. 나는 항상 경기 시작하기 3시간 전에 야구장에 나가 감독 및 주요 선수들과 인터뷰를 한다. 여기에 더해 우리 회사(야구정보회사 ㈜KSN) 직원들이 나에게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전해 준다. 중계 때 말하는 것이 준비한 것의 50분의1, 100분의1에 불과한 이유다. 3~4시간에 걸쳐 중계를 하고 나면 온몸의 진이 빠져 어떤 때는 말도 안 나온다. 특히 조금이라도 실언을 하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말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일부에선 내가 특정 선수를 편애하는 해설을 한다고 비판한다. 그렇게 비쳐지는 대목이 있다면 그건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나는 축구계에 부러운 점이 있다. 축구는 월드컵, 올림픽, A매치 등이 많아 스타 탄생의 기회가 많다. 야구는 그렇지 않다. 가능성 있는 젊은 후배들이 스타로 성장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 이미 다 커버린 선수보다는 정수빈, 안치용, 김선빈, 구자욱, 이태양, 김하성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찬사를 보냈던 이유다. 여기에도 철칙은 있다. 미리 감독에게 물어본다. “칭찬을 해줘도 되느냐”고. 잘못된 칭찬이 선수를 망칠 수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허구연 해설위원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금까지 35년간 마이크를 잡아 온 한국의 대표적인 스포츠 해설가다. 고교야구, 대학야구, 실업야구에서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으나 부상으로 은퇴하고 법학 교수의 꿈을 키우다 해설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방송이 없으면 야구장 건립과 어린이 야구 보급을 위해 전국 각지를 도는 걸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얻은 별명이 ‘허프라’(허구연+인프라스트럭처)다. ‘허구연장학회’를 통해 아마추어 야구를 지원하고 있으며 베트남 등 해외에도 야구를 전파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1951년 경남 진주 출생 ▲부산 대신초, 경남중, 경남고, 고려대 체육학과·법학과, 고려대 법학 대학원 ▲상업은행·한일은행 야구단 ▲1985년 청보 핀토스 감독, 1987년 롯데 자이언츠 코치, 1990~91년 MLB 토론토 블루제이스 코치 ▲한국방송대상 특별상, MBC 연기대상 공로상 등 ▲저서 ‘허구연의 프로야구’, ‘프로야구 10배로 즐기기’, ‘홈런과 삼진 사이’, ‘여성을 위한 야구 설명서’ 등 ▲(현) MBC 야구해설위원, ㈜KSN 대표이사,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위원장, 서강대 겸임교수 등
  • 환경운동가 디카프리오, 환경단체 비난 받는 이유는?

    환경운동가 디카프리오, 환경단체 비난 받는 이유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이자 환경운동가로도 활약하고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또 한 번 ‘직무유기’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2일자 보도에 따르면, 디카프리오는 최근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미국 에이즈 연구재단 amFAR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개인용 비행기에 몸을 싣고 뉴욕을 출발했다. 디카프리오는 이 행사에서 ‘2016 에이즈 퇴치를 위한 시네마’ 경매 행사 진행을 맡았는데, 이를 위해 뉴욕-칸 간의 8000마일(1만 2900㎞)의 거리를 개인용 비행기로 왕복했다. 뿐만 아니라 칸에 도착한 이후에는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기념 파티가 열리는 장소까지 전문 조종사를 고용해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그가 환경운동가로서 적절치 않은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비행기가 대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주범으로 꼽히는 가운데, 조금 더 신중하게 비행기를 이용해야 했다는 의견이 쏟아져 나온 것. 디카프리오가 이와 관련한 비난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디카프리오의 경우 2014년 한 해 동안 최소 20회 이상의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며 전 세계를 순회했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는 수도 없이 오고 갔는데, 해외 언론들은 “디키프리오가 자신의 비즈니스와 즐거움을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15년에는 프랑스 상 트로페즈에서 열린 제2회 연례 환경모금행사에서 모나코의 알버트 왕자로부터 환경보호에 일조한 공을 인정받아 공로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행사에 참석한 지 불과 며칠 후 초호화 요트를 타고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을 여행했고, 환경보호단체는 그가 환경 보호 보다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더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디카프리오는 환경문제 외에도 눈 깜짝할 새에 바뀌는 여자친구의 정체와 관련해서도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이번 칸 방문에서는 폴란드 출신의 모델 엘라 카왈렉과 칸의 한 클럽에서 진한 스킨십을 즐기는 모습이 포착돼 눈길을 사로잡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초대 성남시립의료원장에 조승연 인천의료원장

    초대 성남시립의료원장에 조승연 인천의료원장

    경기 성남시가 현재 신축 중인 성남시립의료원 초대 원장에 조승연(53) 인천의료원장을 다음 달 초 선임한다고 29일 밝혔다. 조 원장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외과학 박사로, 인천적십자병원 원장과 제16대 지방의료원 연합회장 등을 역임했다. 전국 최초로 인천의료원에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을 설립해 공공의료 확대와 정책제안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제1회 대한공공의학회 공로상을 받았다. 조 원장 이외 이사진들도 보건의료전문가, 공공의료 지역활동가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 8명으로 구성됐다. 성남시는 초대원장 선임 및 이사진 구성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본격적인 개원준비에 착수할 예정이다. 성남시립의료원은 수정구 태평동 옛 시청자리에 들어서며 내년 12월 개원할 지역거점 공공병원이다. 서민을 상대로 한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급성기 진료, 질병예방 관리, 건강증진, 재활 등 수익률이 낮아 다른 민간 병의원이 소홀히 하는 분야를 집중 다를 예정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우리는 지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공공의료가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지 경험했다”면서 “성남시립의료원 건립은 내가 정치를 하게 된 계기이자 꿈이었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아태암예방기구 회장에 유근영 교수

    아태암예방기구 회장에 유근영 교수

    서울대병원은 유근영(61)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최근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암예방기구 제8차 연차총회 및 학술대회에서 제9대 회장에 취임했다고 18일 밝혔다. 유 교수는 아시아 각국의 암 예방 및 관리 정책을 성공적으로 지원한 점을 인정받아 특별공로상도 받았다.
  • [비즈+] 조석 한수원 사장, 핵안보 기여 공로상

    [비즈+] 조석 한수원 사장, 핵안보 기여 공로상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2016년 원자력인더스트리 서밋’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조 사장은 “최근 국제 테러 위협 등으로 핵 안보 중요성이 커져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절실해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한수원은 원자력 산업의 글로벌 리더로서 핵 안보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인더스트리 서밋은 세계 최대 규모의 원자력산업 회의로 핵 안보 정상 회의와 연계돼 2년마다 열린다.
  • 강타 샤이니, 中 음악시상식 ‘쿠뮤직 아시아 성전’ 수상 “현지 인기 입증”

    강타 샤이니, 中 음악시상식 ‘쿠뮤직 아시아 성전’ 수상 “현지 인기 입증”

    가수 강타, 그룹 샤이니가 중국 음악 시상식 ‘제2회 쿠뮤직 아시아 성전’에서 나란히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29일 오후 6시(현지시간) 중국 광저우국제연예중심에서 화려하게 열린 ‘쿠뮤직 아시아 성전’에서 강타는 ’한류 문화 전파 공로상’을, 샤이니는 ’아시아 베스트 그룹상’을 수상해 현지에서의 높은 인기를 입증했다. 중국 대표 음악 사이트 쿠고우(Kugou, 酷狗)가 개최한 이번 시상식은 음악 분야 전반에서 다양한 활약을 보인 아티스트에게 상을 수여하는 시상식으로, 이 날 시상식에는 강타, 샤이니를 비롯 등자기(鄧紫棋), 장걸(張杰), 위신(魏晨), 화신우(?晨宇), 왕심릉(王心凌), 설지겸 등 중국어권 유명 스타들이 참석해 텐센트, 인민왕, 신화왕, 남방도시보, 남방일보, 유쿠, 투도우, LeTV, PPTV 등 현지 매체들이 열띤 취재 경쟁을 펼쳤다. 이날 ‘한류 문화 전파 공로상’을 수상한 강타는 “의미 있는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고, 앞으로도 한중 문화 교류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댄스 히트곡 메들리 무대도 선사해 객석의 큰 환호를 얻었다. 샤이니는 ‘아시아 베스트 그룹상’을 수상한 후 “쿠뮤직 아시아 성전에 초대해 주시고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저희를 응원해 주시는 중국 팬분들께도 감사하다. 다시 한번 사랑하고 감사드린다”고 중국어로 소감을 밝혔다. 샤이니는 히트곡 ‘View’의 무대는 물론 종현이 솔로곡 ‘데자부(Déjà-Boo)’를 중국에서 처음 선보였고, 태민도 ‘Press Your Number’(프레스 유어 넘버)의 솔로 무대를 선사해 현장은 1만 관객들의 폭발적인 함성으로 가득 찼다. 한편, 강타는 중국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출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며, 샤이니는 네 번째 일본 전국 투어 ‘SHINee WORLD 2016~D×D×D~’를 펼치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위안부 피해 이용수 할머니 LA 시의회 공로상

    위안부 피해 이용수 할머니 LA 시의회 공로상

    일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가운데) 할머니가 2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의회에서 수여한 공로상을 들고 한국계 데이비드 류(왼쪽) LA시의원 등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고 여성인권 신장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할머니는 지난 17일 캘리포니아 주 상원으로부터도 공로상을 받았다. 가주한미포럼 제공
  • [공기업 사람들 한국국토정보공사] “방대한 공간정보, IoT와 결합…창조경제 新성장동력 창출”

    [공기업 사람들 한국국토정보공사] “방대한 공간정보, IoT와 결합…창조경제 新성장동력 창출”

    김영표 한국국토정보공사(LX) 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국토 공간정보 전문가다. 국토연구원에 근무하면서 1980년대 후반 국내에 지리정보시스템(GIS) 개념을 널리 알린 것을 시작으로 30여년간 공간정보의 틀과 기둥을 세운 전문가다. 23일 전북혁신도시 본사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김 사장은 “공간정보는 각종 정보를 담는 그릇, 인프라에 해당한다”며 “정보통신기술(ICT)과 데이터 융·복합을 바탕으로 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무한 가치 창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2013년 기준으로 공간정보 산업은 매출액 6조 5000억원, 종사자 5만명, 사업체만 5000여개에 이른다. 김 사장은 “공간정보가 3차원이라면 시간은 4차원이고 공간정보와 시간, 인간의 행태를 담는 국토정보 사업은 5차원 산업에 견줄 만하다”며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이 바로 공간정보 산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공간정보 산업은 다양한 분야와 접목돼 급성장하고 있어 창조경제의 선도 산업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정부의 의사 결정이나 정책 입안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공간정보가 지금은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나아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로봇, 3D프린터, 자율자동차 등과 결합해 자연재해 예방과 기후변화 대처 등에 광범위하게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버스·지하철·승용차 등 교통, 맛집 찾기 등 일상생활부터 상권 분석·공간 빅데이터 분석 등 기업 수요에 부응한 공간정보 산업으로 무궁무진하게 번질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사명 변경 이유를 “과거 ‘개발’에서 ‘생태환경’ 시대로, 다시 ‘정보’ 시대로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공사의 새로운 100년과 국가의 신성장동력 창출에 기여하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원대한 꿈과 비전을 갖고 국토·공간정보의 새로운 100년 역사를 만들어 가는 기초를 다지는 게 임기 내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 중점 추진 과제는 국토정보 트렌드 기술과 정밀공간정보를 이용한 국토·공간정보 사업 개척, 국민을 위한 국토정보 오픈 플랫폼 구축,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 지적측량의 공적기능 강화, 실사구시의 조직문화 조성이다. 그래서 직원들 교육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공사는 이미 국가공간정보체계 구축 지원과 공간정보와 지적제도의 연구·개발 및 지적측량 업무가 무리 없이 수행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신기술을 활용한 공간정보 산업 신규 시장 창출과 국가공간정보의 위탁관리 사업, 각종 산·학·관·연 세미나와 포럼 개최, LX 기본공간정보 인프라 구축, 국내 유일의 공간정보연구 및 전문훈련기관 운영, 해외시장 진출 협업체계 구축 등이 공사가 진행하는 공간정보 산업 활성화의 대표적인 예다. 해외시장 진출도 활발하다고 소개했다. 이미 20여개 국가와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공간정보 산업 해외진출센터를 운영하고 민간 기업과 공동 진출하는 길을 적극 찾고 있다. 김 사장은 “열린 국토정보 곳간이란 개념으로 국민과 함께 국토정보를 만들어 국토정보 플랫폼을 구축하고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비즈니스를 펼치도록 정보장터를 만드는 것이 전문가로서 바람”이라며 “미래 선도, 발상 전환, 가치 향상 등 3대 핵심 경영 방침을 토대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최고의 국토정보 전문기관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952년 경남 남해 출생. 경남고, 서울대 응용수학과. 경원대 도시공학 박사. 국토연구원 국토정보(GIS) 연구본부장·기획경영본부장·부원장·원장 직무대행을 역임했다. 토지공개념연구·국가정보화사업·국가균형발전영향평가 공로상 수상. 2013년 11월부터 LX 사장을 맡고 있다. 글 사진 전주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캘리포니아서 ‘공로상’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캘리포니아서 ‘공로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원이 17일(현지시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8) 할머니에게 ‘공로상’을 수여했다. 미국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운동을 주도하는 가주한미포럼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이날 주 의회에서 케빈 드 레옹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장 대행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이 할머니는 상을 받은 뒤 “한·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지만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는 이 반인륜 범죄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가 전쟁 와중에 20만명 이상의 여성과 아이들에게 저지른 성노예 제도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전시 여성 성폭력에 대해 다른 국가 책임도 물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캘리포니아주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기림비를 하나 세워 주기를 부탁한다”며 “이 같은 역사적 진실을 교육하고 기억해야 젊은 세대가 같은 범죄를 피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앞서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뉴욕시가 미국 대도시 가운데 세 번째로 위안부 관련 결의안을 추진하는 것을 계기로 미국을 방문했다. 이 할머니는 이어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열린 유엔기자협회 기자회견에서 “한·일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청관대상에 박성수·박갑수·홍지준씨

    청관대상에 박성수·박갑수·홍지준씨

    서울대 사범대 동창회(회장 이규택)는 8일 ‘제8회 청관대상’ 수상자로 학술상에 박성수(왼쪽) 서울대 명예교수, 공로상에 박갑수(가운데) 서울대 명예교수, 공로상에 홍지준(오른쪽) 코캄 회장을 각각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11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을지로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정기총회와 함께 열린다.
  • 한국대중음악상 힙합이 휩쓸었다

    한국대중음악상 힙합이 휩쓸었다

    래퍼 이센스 ‘올해의 음반’ 등 종합 분야 절반 힙합이 차지 밴드 혁오 신인상·모던록 수상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선 힙합 바람이 거셌다. 한류 대표 아이돌 빅뱅은 3관왕을 차지했다. 빅뱅은 29일 서울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종합 분야인 올해의 노래(‘베베’), 장르 분야인 최우수 팝 노래(‘루저’),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음악인 그룹 부문을 수상했다. 래퍼 이센스는 대마초 혐의로 복역 중에 선보인 첫 정규 앨범 ‘디 애닉도트’로 올해의 음반, 최우수 랩&힙합 음반 부문을 차지했다. 창작자로서 자아성찰적인 내용을 담은 이 앨범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힙합 장르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1만 8000여장의 판매고를 세우기도 했다. 지난해 또 다른 수작으로 평가받는 앨범 ‘양화’를 선보인 래퍼 딥플로우도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랩&힙합 노래(‘작두’)로 2관왕에 올랐다. ‘작두’는 같은 장르 분야 후보이자, 종합 분야인 올해의 노래를 거머쥔 빅뱅의 ‘베베’를 제치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간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변방으로 평가되던 힙합 분야가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주요 시상 분야인 종합 분야의 절반을 차지한 것은 처음이다. 앞서 힙합 뮤지션이 종합 분야 수상자가 된 것은 2011년 올해의 음반을 가져간 가리온이 유일했다. 올해의 신인상은 지난해 방송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끌어올린 밴드 혁오에 돌아갔다. 혁오는 ‘와리가리’로 최우수 모던록 노래 상도 받았다. 싱어송라이터 권나무와 김사월은 지난해에 이어 포크 부문 2년 연속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권나무는 세월호 참사 추모 노래 ‘이천십사년사월’로 최우수 포크 노래를 거푸 받았다. 지난해 ‘김사월X김해원’이라는 듀오로 데뷔해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받았던 김사월은 이번엔 솔로 앨범 ‘수잔’으로 같은 부문을 수상했다. 올해 처음으로 선정한 최우수 헤비니스 음반 분야에서는 폭넓은 진폭의 스래시 메탈을 들려주는 밴드 메써드가 첫 영광을 차지했다. 이 밖에 공로상은 원로 대중음악 작곡가 김희갑에게 돌아가는 등 27개 부문 시상이 이날 이뤄졌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오균·박노황·고대영씨 자랑스러운 외대인상

    오균·박노황·고대영씨 자랑스러운 외대인상

    한국외국어대 총동문회는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사파이어볼룸에서 신년 모임을 열고 오균(왼쪽·55) 국무조정실 1차관, 박노황(가운데·58) 연합뉴스 사장, 고대영(오른쪽·61) KBS 사장에게 ‘2016 자랑스러운 외대인상’을 수여한다. 홍윤기 한국문인협회 고문과 김천우 한국수력원자력 책임연구원은 특별공로상을, 안인모 전 다나무역 대표, 손성태 배재대 교수는 공로상을 각각 받는다.
  • 한진수 여자하키 대표팀 감독 소강체육대상 지도자상 수상

    한진수 여자하키 대표팀 감독 소강체육대상 지도자상 수상

    소강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제정된 제8회 소강체육대상 시상식이 오는 2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다. 재단법인 소강 민관식육영재단(이사장 정원식)은 17일 한진수 여자하키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도자상 수상자로, 임형빈 추계학원 이사장을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 국제대학교 2015학년도 학위수여식

    국제대학교 2015학년도 학위수여식

     국제대학교(총장 장기원) 2015학년도 학위수여식(18회, 사진)이 17일 대강당에서 열렸다.  학위수여식에는 이사장과 장기원 총장을 비롯해 각급 보직교수와 학과장, 가족 등 3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학위수여식에서는 1602명이 전문학사학위를 받았으며,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 25명이 4년제 학사학위를 받는 등 총 1627명이 각종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수여식에서는 최우수공로상을 비롯해 우수공로상, 학과공로상, 특별공로상, 전체수석 및 학과수석상과 경기도지사상, 평택시장상, 해군사령관상,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상 등이 시상됐다. 장기원 총장은 축사에서 “2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교정을 떠나는 졸업생 여러분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면서 “그동안 갈고 닦은 학문과 기예를 사회를 위해 선용하는 지혜와 용기를 갖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명선 기자가 만난 사람] 김국환의‘타타타’ 원제목은 ‘바람이 부는날은’이었다?

    [이명선 기자가 만난 사람] 김국환의‘타타타’ 원제목은 ‘바람이 부는날은’이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국민가수 김국환의 국민가요 ‘타타타’의 노랫말이다. “그래, 바로 그거야”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양인자씨가 지었다. 24년전 1992년 전국 레코드가게를 지날 때면‘아하하…!’로 호탕하게 마무리짓는 웃음소리는 자조와 낙관의 인생을 표현하듯 우리네 뇌속에 다가왔던 그 시절 그 노래다. ‘타타타’는 1992년 초 최고 64.9%, 평균 59.5% 시청률의 당대 최고 인기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 삽입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김수현 작가가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 발굴한 노래는 ‘난 알아요’의 서태지와 아이들, ‘보이지 않는 사랑’의 신승훈과 함께 김국환을 그해 최고의 가수로 올려놓았다. 또 생뚱맞게도 김국환이란 가수는 ‘은하철도 999’하면 생각나는 만화영화 주제가도 여러곡 불러 어린이들에게도 친근감이 많다. 세월유수라 했던가. 그사이 강산도 두번 넘게 변해 김국환이 이젠 고희를 눈앞에 뒀다. ‘타타타’와 ‘은하철도999’로 기억되는 국민가수 김국환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만나 45년 그의 노래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 무명시절이 꽤 길었다는데?-고교시절 콩쿠르대회에 여러번 나가 상품도 많이 탔다. 어느날 대천극장 무대쇼에 올라가 당시 유행곡인 진송남의 ‘바보처럼 울었다’를 불러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으며 대천일대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상경하여 서울 태평로 아카데미 음악감상실에서 4명이 겨루는 노래부르기 대회에서 대천촌놈인 내가 1등을 했다. 그러고나니 서울사람들도 노래솜씨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MBC DJ 이종환씨를 알게 됐고 이 인연으로 당시 최고악단인 김희갑악단으로 스카우트됐다. 김희갑씨는 다른 이와 달리 학벌보다는 노래실력을 최고로 여겼다. 한때 펄시스터스, 조영남, 김세레나 등이 출연하는 부산해운대관광호텔서 MC를 보며 일하기도 했다. 이곳에 조영남씨가 있었는데 하루는 나에게 “국환아 너 가수하지 마라. 가수의 길이 얼마나 험한지 아냐”라며 극구 가수하는 걸 말린 적도 있다.  ⇒ 최고의 히트곡 ‘타타타’의 원곡제목이 ‘바람이 부는 날은’이었다?- 김희갑악단이라는 최고악단과 궁합이 잘맞아 일하는중에 어느날 주위에서 김악단에서 나오라고 꼬득였다. 근데 악단을 나온 후 일이 뜻대로 잘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김희갑악단과 인연이 돼서 공전의 히트곡 ‘타타타’를 부르게 된다. 애초 받은 곡명은 ‘타타타’가 아닌 ‘바람이 부는날은’이었다. 위일청이란 가수가 처음 이 노래를 어느 단막극에서 “바람이 부는날은” 제목으로 불렀고, 그다음에 조용필이 불렀다. 이후 나한테 기회가 왔는데 이때 ‘타타타’로 노래제목이 바뀌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어쩜 내가 살아온 인생하고 곡 빼닮았았는지 한번 듣고는 마음에 확 끌렸다. 처음엔 음향장비도 없어 숟가락을 갖고 노래연습을 했다. 2년동안 노래연습만 했는데 녹음하는데 또 2년이 더 걸렸다. 신곡취입하는 데만 모두 4년넘게 걸렸다. 근데 이즈음 저의 아버지가 한 말씀이 “김희갑이 걔는 왜 이렇게 노래취입이 늦냐?”라고 하셨는데 우연찮게도 그러고나서 얼마 안지나 음반이 나오기 전 애석하게도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 ‘타타타’ 노래가 “사랑이 뭐길래” 드라마곡으로 나온 경위는.- 김수현 작가가 어느날 차를 타고 라디오를 듣다가 가수이름은 잘모르겠는데 “옷한벌은 건졌잖소~”라며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기사에게 이 노래음반 좀 사오라고 했다. 근데 기사가 엉뚱하게도 잘못알고는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곡을 사왔다. 그래서 다시 보내 ‘타타타’를 사왔다는 일화가 있다. 이를 ‘사랑이 뭐길래’ 연출가한테 드라마에 넣어달라고 하니까 대중가요라 편파적이고 오해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거절당했다. 근데 김수현 작가가 끈질기게 넣어달라고 요청한 끝에 결국 드라마 삽입곡이 됐다.  ⇒ 김국환은 매니저가 없는 가수라고 하던데.- 근데 내가 처음부터 매니저를 두지 않았던 게 아니다. 이 무렵 불교방송 행사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불교방송이라 방송담당자에게 출연료를 안받겠다고 사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출연료를 매니저가 몰래 꿀꺽했다. 매니저를 한달 만에 아웃시키고 그 이후로 매니저를 두지 않았다. 노태우정부 때 주로 난 정부행사를 많이 했다. 어찌보면 난 대중음악계에서 사생아다. 드라마곡으로 한방에 갑자기 떴다고 연예계 한쪽에서는 이를 시기질투했다. 매니저가 없어 업소행사 출연하는 데 다소 불리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나이트클럽 업소에서도 ‘타타타’ 출연 요청이 거의 없었다. 업소가 춤추고 노는 곳인데 “네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나를 알겠느냐”라고 불러대면 가사가 영 안어울린다는 이유였다. 또다른 히트곡 ’우리도 접시를 깨트리자’ 역시 일부 야간업소 측에서 별로 안좋아했던 곳이 있다.  ⇒ 특히 만화영화 주제가를 많이 불렀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인 당시 마상원 MBC악단장이라는 분이 있었다. MBC일요큰잔치 전속악단장으로 서울 전농동에 살 때 마 단장이 추천해서 만화영화주제가를 불렀다. 우연잖게 ‘은하철도999’를 부르게 됐는데 성인가수인 내가 왜 이런 어린이들의 만화영화 주제가를 불렀는지 후회스러워 마 단장에게 내이름 석자를 지워달라고 한 적도 있다. 얼마전 MBC의 ’능력자들‘이란 예능프로에 나갔는데, 알고보니 내가 그때 부른 만화영화 주제가들이 미래소년코난, 축구왕슛돌이 등 무려 30곡이 넘었다. 종종 나이트에서도 은하철도999, 천년여왕 등 만화주제가를 부른다.  ⇒ 기억에 남는 팬들과의 사연이나 추억이 있다면?- 팬들과의 추억은 헤아릴수 없이 많다. 가장 생각나는 게 있다. 국기원 원장을 역임한 이승완씨가 나를 무척 좋아했다. 미국 뉴욕공연갔을 때다. 이승완 형님의 1년후배로 뉴욕에 거주하는 박동근씨라는 분을 같이 만났다. 뉴욕서 태권도 1인자일 정도로 유명한데 이분이 한번은 나를 보더니 ”내가 90년도 미국에서 먹고살기 너무 힘들어 죽고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옷한벌은 건졌잖소~”라고 흘러나오는 김국환의 ‘타타타’노래를 듣고 다시 용기를 얻어 열심히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얘기했다. 또 한분은 캐나다에 사는 교민으로 ‘타타타’CD를 갖고 와서 사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남편과 사별후 딸과 함께 사는데 ‘타타타’ 앨범속에 있는 ‘보랏빛욕망’이란 노래를 듣고 유언을 했는데, “내가 죽으면 김국환노래 CD를 묘지에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단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가수로서 뿌듯하고 가수되기를 참 잘했다는 묘미같은 걸 느낀다.  ⇒ ‘타타타’ 이후 25년이 지난 요즘 근황은?- 요즘은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가 많이 사라지고 별로 없다. 야간업소 문화가 없고 출연료도 비싼 편이라 노래하기가 쉽지 않다. 야간업소 말고 가요무대 등 방송출연과 지방행사, 산사음악회를 주로 다니고 있다. 최근 ‘달래강’이란 노래 신곡 음반을 냈다. “말이나 한번 해보지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그토록 꼭꼭 숨기면 하늘인 들 알 수 있겠니/ 날마다 그리워 흘린 눈물이/ 강이 돼도 말 못한 미련한 사람아/ 바람도 물새도 서러워 울고 간다/ 달래강 애달픈 사랑” 제13집 타이틀곡으로 ‘달래강’ 노래는 경쾌한 트로트풍이다. 미련할 만큼 말못하고 가슴에 담아둔 사랑이야기를 애잔하게 표현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달래강은 충주지역 강이름이다. 물이 달다고 하여 단냇물, 달물, 달강, 달래강이라 한다.  ⇒ 고희를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바람이 있는지.- 가수돼서 최정상에도 올라가봤다. 이제 고희가 다돼가는 나이에 그동안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씩이나마 갚아가며 살아야겠다. 가수가 바람이 뭐 특별한 게 있겠나. 앞으로 꾸준히 신곡발표해서 팬여러분들에게 내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또 지난해 못한 디너쇼도 올해는 꼭 한번 하고 싶다. 낙천적이라 아직은 건강하고 뒷동산에 올라다니는 걸 좋아한다. 산에 다니면서 노래 발성 연습하고 운동도 하고 일석2조다. 요즘 경기불황으로 ‘3포세대’이니 386세대의 무더기 은퇴로 우울한 시절인데 우리 모두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으니 이미 반은 성공한 인생 아닐는지. 25년전 우리네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던 불후의 명곡 ‘타타타’ 노래를 다시한번 불러보며 우리네 인생 별거아니라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찾아보면 어떨까. ■ 가수 김국환은충남 대천에서 1948년 목수집안의 4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불렀다. 1969년 21살 때 김희갑악단에서 들어가며 본격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7년 ‘꽃순이를 아시나요’ 노래가 수만장의 앨범이 판매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나긴 무명생활 끝에 1992년 ‘타타타’로 일약 톱스타가수에 올랐다. ‘타타타’ 노래로 1992년 한국방송 대상, 서울가요대상 수상 등 한국가요상을 휩쓸었다. 그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과 함께 김국환은 그해 최고의 가수왕으로 우뚝섰다. 1997년 문화부장관상, 2008년 장한한국인대상 수상했고, 1982년 만화영화주제가 은하철도999, 미래소년코난, 축구왕슛돌이 등 30여곡을 잇따라 불렀다. 1998년 바람같은사람, ‘접시를 깨트리자’ 등 여러 히트곡이 있으며 최근에는 ‘내인생에 후회는 없지만’ 신곡 ‘달래강’ 등을 출시했다.  ■ 이력1969년 김희갑악단 입단, 1977년 김국환-최미나 옴니버스앨범 ‘꽃순이를 아시나요’ , 1978년 ‘바람꽃’, 1982년 만화영화주제가 ‘은하철도999’, 1991년 ‘타타타’, ‘우리도 접시를 깨트리자’, 1995년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 ‘옛사랑’, 1998년 ‘바람같은 사람’, 2002년 ‘숙향아’, 2004년 ‘사랑의 기도’, ‘유리부인’,  2005년 ‘주사위’ ‘어머니’,  2008년 ‘인생은 직진이야’, 2012년 ‘웃어버려’, ‘내인생에 후회는 없지만’, 2015년 11월 ‘달래강’  ■ 수상내역1992년 제3회 서울가요대상 대상, ‘타타타’ 노랫말 대상, KBS가요대상, 1993년 MBC 10대가수상, 대한민국영상음반 대상, 1997년 문화체육부장관표창(선행연예인), 2003년 대통령상, KBS 가요대상, 2005년 제7회 한국예술실연자대상 공로상, 2008년 제7회 장한 한국인상 대상, 2008.1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홍보대사, 2011.07 제14회 보령머드축제 홍보대사  mslee@seoul.co.kr
  • ‘성균관대 경영대 동문상’ 김동필·민병두씨 수상

    ‘성균관대 경영대 동문상’ 김동필·민병두씨 수상

    성균관대 경영대학 동문회(회장 전용주 경영기술개발원 이사장)는 19일 ‘제6회 자랑스러운 경영대학 동문상’ 수상자로 김동필(왼쪽·75) 넥스팜코리아 대표이사와 민병두(오른쪽·58) 국회의원을 선정했다. 공로상은 오원석(65)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가 받는다. 시상식은 21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서초구 더팔래스호텔 그랜드볼룸 A홀에서 열린다.
  • 성균관대 제6회 ‘자랑스러운 경영대학동문상’에 김동필, 민병두씨

    성균관대학교(총장 정규상) 경영대학 동문회(회장 전용주/경영기술개발원 이사장)는 오는 21일 오후 6시30분 서울 서초구 팔레스호텔 그랜드볼룸A홀에서 ‘제6회 자랑스러운 경영대학 동문상’ 수여식을 갖는다. ‘자랑스러운 경영대학 동문상’은 모교와 경영대학의 발전에 기여한 동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동문상 수상자는 김동필 (주)넥스팜코리아 대표이사, 민병두 제19대 국회의원(서울동대문구 을) 등 2명이며, 공로상 수상자는 오원석 성대 경영대학 교수다. 이날 행사에는 정규상 성균관대 총장, 류덕희 총동창회장(경동제약㈜ 회장) 등을 비롯,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우봉 선생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창조한 분”

    “우봉 선생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창조한 분”

    지난해 8월 세상을 등진 ‘한국 춤의 거목’ 우봉(宇峰) 이매방(1927~2015) 명인의 예술혼이 되살아났다. 최근 출간된 ‘하늘이 내린 춤꾼 이매방 평전’(새문사)을 통해서다. 평전엔 “다시 태어나도 남자로 태어나 춤추는 인생을 살겠노라”고 했던 우봉의 춤에 대한 열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우봉이매방춤보존회(회장 김명자)는 1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평전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표재순 문화융성위원장, 나선화 문화재청장, 김종규 국민문화유산신탁이사장, 김복희 한국무용협회이사장 등 정계,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우봉의 부인인 김명자 회장은 “우봉 선생의 숭고한 예술혼을 기리고 그 뜻을 이어받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앞으로 우봉 선생의 주옥 같은 춤사위, 춤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고 ‘이매방 춤’의 독자성과 천재성이 묻히지 않도록 학술 활동이나 공연 등을 통해 널리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평전은 우봉 춤의 뿌리를 찾기 위해 1930년대 일제강점기라는 시간과 전남 목포라는 공간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시작된다. 우봉은 1925년 3월 7일(호적상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목포 권번 권번장 함국향 권유로 권번학교에 들어가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열다섯 살 때 함국향 소개로 판소리 명창 임방울 공연에서 승무를 추게 되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의 승무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호남형 승무’로, 고고하고 단아한 정중동의 춤사위로 인간의 희열과 인욕의 세계를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인 문철영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우봉 선생이 오늘의 이매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의 몸 안에 생득적으로 깃들어 있는 천재적 섬광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천재적 섬광은 어느 한 지점에 고정돼 있는 게 아니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창조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회고했다. 우봉은 80년간 전통춤 외길을 걸었다. 생존 예술가 중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1987년)와 제97호 살풀이춤(1990년) 등 두 분야의 예능보유자였다. 호남 춤을 통합해 무대양식화한 ‘호남춤의 명인’으로도 불렸다.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전통춤의 원형 보존과 전승에 남다른 노력을 해왔고 500여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옥관문화훈장,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임방울 국악상,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이길여 총장 한국여의사회 특별기여상

    이길여 총장 한국여의사회 특별기여상

    이길여(84) 가천대 총장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나인트리 컨벤션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국여자의사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공로상과 특별기여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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