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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의 「범민족대표」 민간아닌 “당국자”

    ◎전금철 조평통 부위원장/손종철 대외경제위 간부/김동국 사로청 핵심요원/조상호 인민회의 대의원/강지영 「평축」등 국제행사 앞장서온 정치학생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에 참석하려던 북한측 대표 5명은 모두 민간대표가 아니라 당국자인 것으로 27일 밝혀졌다. 통일원이 이날 북측 대표들의 인적 사항을 확인한 결과 북측 대표들은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거나 당 간부들이며 대남 사업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핵심요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북측 대표단장인 전금철은 72년 제3차 남북 접십자회담 대변인을 맡은 이래 대남 통일전선을 관장하고 있는 조국평화통일위 부위원장으로 있다. 손종철 역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84년부터 추진되어온 남북 경제회담의 북측 대표이며 정무원 소속 대외경제위원회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손은 또 정무원 산하 무역경제연구소 부소장,김일성고급당학교 부교수로 지난 5월 미군유해 송환시 북측 대표로 활약했다. 김동국은 85년이래 제8차ㆍ제10차 적십자회담 수행원 역할을 했으며 사로청의 핵심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사로청은 만14∼30세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당의 전투적 하위조직이다. 학생대표인 강지영은 사로청의 하부조직인 조선학생위원회 위원으로 88년 남북 학생회담 추진시 북측 대표로 참가한 바 있고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남북 학생회담에도 대표로 선발되는등 각종 정치행사에 학생대표로 참여해온 김책공대 기계제작학부 4학년생이다. 조상호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순수민간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관련,『북측 대표들은 한사람도 순수 민간단체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없으며 대남 사업분야에 다년간 일해온 핵심요원들 일색』이라고 지적하고 『북측이 이같이 당국자들로 구성된 대표를 보내겠다는 것은 범민족대회를 정치적인 선전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밖엔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 방송4사 제작 정상화/노조 「공대위」,복귀 결정

    ◎“「프로그램 투쟁」으로 전환”/KBS 지방 15개 국선 어제부터 참여/“거부 명분 없다” 분위기 큰몫/7백여명 “방송법 철폐” 평화대행진 방송관계법 개정을 반대하며 3일째 제작을 거부해 왔던 한국방송공사(KBS)와 문화방송(MBC) 등 4개 방송사노조는 17일 상오5시부터 방송제작에 복귀하기로 했다. 이들 4개 방송사와 지방 MBC노조대표로 구성된 「공동대책위」는 16일 하오4시30분쯤 서울 KBS본사 노조사무실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했다. 공동대책위의 결정에 앞서 KBS광주총국 등 15개 지방국은 이날 각 지역국별로 사원총회를 가진 끝에 「공동대책위」의 회의결과와는 관계없이 이날 낮12시를 전후해 모두 제작에 복귀했다. 「대책위」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와 민자당이 일방적으로 방송관계법을 통과시킨데 대해 방송4개사가 제작거부투쟁을 벌인 것은 정당한 선택이었으며 그동안의 투쟁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해 제작거부를 마치고 보다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오는 21일로 예정된 「국민연합」 연대집회 등에 적극 참여하고 지속적인 국민홍보와 프로그램투쟁을 통해 방송악법의 조속한 폐지와 민주언론쟁취 등을 이루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또 앞으로 「대책위」을 「방송악법철폐 공동대책위」로 개편,민주세력과 연대해 반민자당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공청회 등을 통해 독자적인 방송관계법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이날 「공동대책위」회의에서는 제작거부를 끝내고 즉각 방송제작에 복귀하자는 주장과 방송관계법에 대한 노조측 입장을 담은 프로그램의 방영을 회사측에 요구,2∼3일뒤 조건부로 제작에 복귀하자는 주장이 맞섰으나 즉각 복귀쪽이 우세했다. 「대책위」의 제작복귀결정은 방송관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상 제작거부의 명분이 약해진데다 노조원들의 상당수가 이미 제작에 참여하고 있고 더이상 사태가 악화되면 회사측으로부터의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실정을 감안한 것이다. 노조원들이 제작에 복귀함에 따라 4개방송사의 프로그램은 17일부터 정상화됐으나 「대책위」가 복귀후에도사내투쟁을 계속할 것을 선언하고 있어 방송관계법 개정을 둘러싼 후유증은 한동안 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는 제작복귀 뒤에도 노조원들이 주장하는 프로그램의 제작 및 방송을 할수 있도록 회사에 요구키로 했다. 이에앞서 KBS노조의 실국별 대표자 30여명은 이날상오 본관 6층 제1회의실에 모여 대책을 논의한 끝에 노조측에 대해 『가능한한 빨리 제작에 복귀할 것』을 요청했다. KBS보도본부소속 기자 70여명도 이날상오 기자총회를 열고 『하루빨리 제작에 복귀할 것』을 노조측에 촉구했다. 한편 「공동대책위」는 이날 하오2시30분부터 「언론노련」과 각 방송사 노조원 7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KBS본관앞 5ㆍ16광장 일대에서 「평화대행진」을 갖고 방송관계법을 철폐할 것을 주장했다. KBS측은 이날 『제작거부가 계속될 경우 제작거부 사원들에 대해 징계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하고 『각 부서별로 근무태만ㆍ근무지이탈 등을 철저히 파악,이를 토대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방송4사 노조,정치투쟁 선언/공대위 성명

    ◎“정권퇴진ㆍ국회 해산운동 전개” 한국방송공사(KBS)ㆍ문화방송(MBC)ㆍ기독교방송(CBS)ㆍ평화방송(PBC) 노조간부등으로 구성된 「방송법 개악저지 공동대책위원회」는 14일 방송관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것과 관련,『국회는 더이상 국민의 의사를 기만하지 말고 즉각 해산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책위는 지금은 재야민주운동단체등 범민주세력과 힘을 모아 민자당 독재분쇄와 현 정권퇴진에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북의 대남전략 변화없어 결실 기대난/첫 남북총리회담과 연형묵

    ◎연총리는 합리적 성격의 기술관료 출신/김부자 신임 두터우나 행동반경 의문 북한의 정무원총리 연형묵(65)이 오는 9월초 서울에 온다. 지난 12일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실무대표들이 남북총리를 각각 단장으로 한 남북고위급회담 1,2차 회담을 오는 9월초순 서울과 10월 중순 평양에서 번갈아 개최키로 완전합의함에 따라 분단 45년만에 최초로 북한의 총리가 서울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장차관급(북한의 경우 정무원 부장ㆍ부부장)을 비롯,수행원 33명,기자 50명 등 모두 90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서울에 오게될 연형묵총리는 현재 북한내 권력서열 6위의 혁명 2세대. 북한권력 서열상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떠받치고 있는 70대고령의 혁명 1세대인 오진우(73ㆍ3위ㆍ인민무력부장),이종옥(79ㆍ4위ㆍ부주석),박성철(76ㆍ5위ㆍ부주석)에 이어 김영남(65ㆍ7위ㆍ외교부장) 허담(65ㆍ11위ㆍ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등 60대중반의 혁명 2세대중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김일성대학 이공학부와 소련우랄공대에서 금속ㆍ기계ㆍ전기ㆍ전자 등을 공부한 대표적인 기술관료(테크노크랫)로서 북한의 행정집행기구의 총책임을 맡고있는 동시에 당정치국원ㆍ당중앙위원 등을 겸직,노동당의 정책결정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지난 85년 정무원 제1부총리겸 금속기계공업위원장을 맡아 정무원에 첫 진출,88년 12월 이근모의 후임으로 총리직에 선임됐는데 기계공업분야에 정통하며 북한의 대외경제협력 등을 추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83년과 84년 김일성을 수행,중국ㆍ소련ㆍ동구권 등을 방문하는 등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며 러시아어와 불어ㆍ일어 등에도 능통,국제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25년 북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70년 당중앙위 부장에 기용되면서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만경대 혁명학원 1기생으로 김정일의 선배이자 70년대 3대혁명소조운동이 벌어졌을 때 당책임지도원을 맡았던 경력이 말해주듯 김정일 후계체제의 강력한 후원자로서 앞으로 김정일의 정치ㆍ경제 참모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연형묵은 판단이 예리하고 날카로우며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는데 김일성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동시에 김정일의 측근인 그가 앞으로 있을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어떠한 자세를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이와 관련,북한문제전문가들은 경제실무에 밝으며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기술관료출신의 연형묵이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북한이 판문점에서의 8ㆍ15 「범민족대회」개최와 제정당ㆍ사회단체가 참여하는 「통일협상회의」개최를 거듭 주장하고 있는 등 기존의 대남적화 통일전략을 바꾸지 않고 있어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얼마만큼의 결실을 거둘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 산학협동 본격 추진/정부ㆍ전자업계

    정부와 전자업계는 전자공업진흥회에 산학협동센터를 설치,기업체와 대학이 공동으로 생산기술을 개발하는 산학협동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상공부는 13일 산학협동활성화계획에 따라 ▲서울대­뉴미디어 ▲연세대­주문형 반도체 ▲고려대­정보통신 ▲경북대­센서류 등 대학별로 비교우위에 있는 특화분야를 관련기업과 협동하도록 추진,공업기반기술개발사업을 활성화하고 대학생의 방학중 전공관련 기업현장실습을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의 경우 고려시스템(웍스테이션개발­서울대),금성사(비디오테이프 헤드의 RF전자파 신호해석­연세대),한국후지츠(한국어연구­중앙대),대우중공업(전력시스템의 정밀제어에 관한 연구­포항공대),신평물산(전계발광램프­경북대),삼영전자공업(습도센서개발­단국대),보문전자(이미지인스펙션­항공대),삼성전자(UHF파워 컴바이너­서강대)등 46개 과제를 기업이 관련대학에 개발비를 대주어 연구개발을 진행중이다.
  • 통독과 「남북한」/송복 연세대교수(세평)

    통독을 보는 우리들의 심경은 어둡고 착잡하다. 독일은 어찌해서 통일하게 됐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여 유일의 분단국가로 여전히 남아있게 됐는가. 이 지구상에서 통일국가로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명실공히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서 통일된 모습으로 단절없이 가장 오래 지속돼 온 나라는 중국도 인도도 아니고 서구의 그 어느 나라도 아닌 바로 우리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들이 통일된 국가양태를 보이고 있는데 유독 우리만이 양쪽으로 갈라져서 아직도 죽이네 살리네 하고 싸우고 있는가. ○쉽게 합칠 수 있었던 이유 독일이 통일국가로서의 모습을 보인 것은 불과 1백20년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50개 공국으로 혹은 80개 공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의 승리로 1871년 처음으로 근대국가로 통일이 됐고 이 통일은 2차대전이 끝나기까지 근근 70수년을 유지해오다 종전이후 또 분단됐다. 이처럼 통일보다는 분단이 역사의 주경향이 돼있던 독일이 분단보다는 통일이 역사의 주경향이 돼온우리보다 쉽게 합쳐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3개의 깊이 생각해볼 교훈이 있다. 첫째로 그들은 서로 전쟁하지 않았다. 적대적으로 서로 대치하고는 있었다해도 무력으로 동족을 죽이는 살상전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남이 억지로 씌워놓은 이념때문에 형제를 죽이지 않았고 이웃을 살육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불공대천지원수가 될 이유가 없었고 감정의 앙금이 끝까지 용해되지 않고 남아서 서로를 비뚤어지게 볼 이유가 없었다. 언제든 만나면 같은 민족으로 미소지을 수 있었고,환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2+4」라는 신조어가 말하듯이 4대 강대국에 의해 나누어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같은 민족임을 서로의 내부에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외부적 요인에다 내부적 요인을 종속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패전으로 나누어져도,그리고 나치즘이라는 역사적 유죄를 같이 짊어지고 있었어도 역사는 역사,현재는 현재로 분리해 보았다. 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이 언제나 열려져 있었다는 것,외부에 내부를 독립시키고 있었다는것,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것이 수백년간의 분열과 짧은 통일기간과 그리고 그후의 계속된 분단의 역사를 다시 통일케하는 첫째의 요인이며 교훈이 된다. 둘째로 그들은 비록 통일의 역사는 짧았다 해도 그리고 그 통일과 맞먹을 만큼 통일후의 분단의 역사가 거의 반세기에 이르도록 길었다해도,그들간에는 서로 합칠 수 있는 근대화된 체제의 공유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나치스 이전의 바이마르공화국 체제이고,그리고 현재 그들이 돌아가는 체제역시 이 역사적 공유경험의 체제에서 일보도 달라짐이 없는 자유·개방·경쟁의 민주국의 체제이다. 그들은 비록 세대를 뛰어넘는 시간적 갭을 가지고 있다해도 이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로 남아 있고,그리고 여전히 사회의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일체제 경험여부 중요 통일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체제로 양쪽이 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같은 체제를 경험해 보았느냐,보지 않았느냐가 통일의 조건이며 기준이 된다. 만일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체제로 그 어느 한편이든지 돌아가게 된다면,그들 사이에는 동질성이 전혀 있을 수 없고 그들사이에 이제부터 전개되는 관계는 오직 서로 적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질성의 관계만이 남는다. 이 경우,이루어지는 것은 「통일」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통합」이 된다. 그런데 독일은 쉽사리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경험공유체제를 가지고 있었고,따라서 정신적으로,심리적으로 민족공동체를 재창출해 낼 수 있는 기틀을 사실상 확보하고 있었다. 셋째로 공산주의 경제의 비효율성 내지 비생산성이다. 출발할 때부터 동독은 공산권사회에선 가장 산업화된 나라이고 그리고 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10대 공업국의 하나가 돼 있었다. 그러나 70년대를 지나 80년대를 거치면서 정반대로 이 나라는 서구 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가장 낙후한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특히 일상 생활용품에서도 전화 한대를 갖기 위해서도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나라가 됐다. 여기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공산주의 경제정책의 비역동성­정체성이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가장 발전할 수 있는 것­그 어느 의미에서나 유일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그것은 군사산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군사산업이 계획을 세우는 데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가지수가 적고 그리고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군비이외의 생산품목은 그 어느 것 하나 계획부터가 너무 수가 많고 너무 유기적으로 복합화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소련사회 하나만 보아도 이 한나라에서 해마다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생산품목은 2천4백만종이나 된다. 이 2천4백만종의 생산품목을 유기적으로 생산해 내는 데 세워야 하는 계획은 1백50억개가 넘는 것으로 산정되어 있다. 누가 어느 기관에서 이것을 완벽하게 계획해낼 수 있겠는가. 자유시장 경제에서라면 스스로 조정해서 생산될 것은 생산되고 문을 닫을 것은 문을 닫는다. 그러나 중앙집중화된 계획경제에선 이것은 아무리 계획하고 생산해 나가도 인위적으로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그래서 소련에선 1천6백만명이상의 노동력이 필요없는 자리,서로 중첩되어 있는 자리에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비생산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전노동력의 15%인 1천8백만명이 경영관리직에 앉아서 방대한 운영기구를 맡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조직,그 국가사회야말로 얼마나 역피라미드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가. 공산주의 경제가 어느 나라나 하나도 예외없이 1970년대의 초중반에 들어서면서 정체해 버리는 것은 이 인위적 계획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그것을 뚫고 극복하는 방법은 동독처럼 체제전환을 해서 통일의 길로 가든지,지난 2일 28차 공산당대회에서 한 고르바초프의 연설­「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이념은 19세기의 자본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는 엄청나게 변화했음에도 우리는 고전적 이데올로기에서 답을 구하고 있다」­에서처럼 페레스트로이카로 가든지,둘중 하나이다. ○“언제까지 분단국가로…”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돼 있는가. 40년전의 6·25는 「40년동안 여전히 살아 있는 전쟁」­계속 불구대천지 원수로 가는 전쟁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기에 우리는 역사적으로 경험을공유한 근대화된 체제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남북」이 공유한 것은 전통사회 체제이든 아니면 일제식민지 체제 뿐이다. 긴 통일의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우리는 어떻게 합치든 「통일」 아닌 「통합」의 이질적 관계만이 전망되고 있다. 그리고 북쪽은 밖이야 어떻게 변하든 아랑곳 없다는 듯 페레스트로이카도 글라스노스트도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분단국가로 남아 있을 것인가.
  • 이,레바논 공습/과격단체 진지 폭격

    【나바티에(레바논)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7일 하오 7시 최근 3일내 3번째로 레바논을 공습,레바논 남부에 위치한 친이란계 과격단체 헤즈볼라(신의 당)의 진지를 폭격했다고 보안 소식통들이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6대의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베이루트 남쪽 40㎞지점의 믈레타 마을과 루와이제 마을에 있는 헤즈볼라 진지에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 「인력 물꼬」 제조업으로 돌린다/산업인력 수급대책 추진의 배경

    ◎힘든 일 기피따라 “공장 공동화” 위기 직면/병역ㆍ주택ㆍ교육비 지원등 우대방안 마련/95년까지 연 9만명 추가 공급 목표 제조업체가 겪고 있는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뒤늦게 처방을 내놓았다. 그러나 인력은 다른 상품과는 달라서 교육및 양성에 상당한 기간을 요하기 때문에 정부의 처방에도 불구하고 향후 5년간은 심각한 인력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정부가 7일 발표한 「산업인력 수급대책」은 제조업체가 필요로 하는 기능인력을 향후 5년간에 걸쳐 대폭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기능인력이 공급확대를 위해 공고및 직업훈련기관을 연차적으로 증설,오는 95년에는 연간 9만여명의 기능인력을 추가 공급토록 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최근 우리 경제의 고용구조상에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제조업 취업기피와 서비스업 비대화등의 불건전한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생산직 근로자에 대해 병역ㆍ주택구입ㆍ자녀교육 등에 혜택을 주는 기능인력 우대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대책에는 기능인력을 우대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인력의 제조업이탈 현상을 방지하면서 기능인력의 절대공급량도 늘려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취업구조는 매우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올들어 5월까지 제조업 부문의 취업자수는 무려 11만1천명이 감소했따. 반면 서비스업은 68만7천명이 늘어나고 있다. 제조업을 떠나 서비스업으로 향하는 이직자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서비스업 고용이 비대화 하면서 서비스업 가운데서도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금융ㆍ통신ㆍ수송 등 생산적인 서비스쪽 보다는 오락ㆍ음식ㆍ숙박 등 소비적인 서비스가 급격히 팽창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서비스 부문의 취업구조를 보면 「기업수요의존형」(생산적) 서비스부문과 「최종수요의존형」(소비적) 서비스 부문간의 취업자 구성비가 75년에 60대40에서 87년에는 55대45로 바뀌었다. 산업인력의 원활한 수급은 경제를 꾸려나가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사항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어느나라 경제계획을 수립할 때는 먼저 산업인력의 수급전망과 계획을 세우고 이를 토대로 여타부문의 계획을 짜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금까지 산업인력 정책이 거의 백지상태나 다름없다는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산업인력을 양성하는데 최소한 3∼5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산업인력 수급계획은 5년 앞을 내다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세워져야 할 것이라는 얘기이다. 우리 경제가 매년 10%수준의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연간 25만명의 기능인력이 공급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인력공급 구조로는 실업계 고교,직업훈련과정,일반계 고교비진학자를 포함하더라도 연간 15만명 이상은 공급할 수 없다. 매년 평균 10만명씩 기능인력 공급부족이 생기게 된다. 이같은 기능인력 수급상의 극심한 불균형은 힘든 일을 기피하는 근로자들의 성향과 맞물려 제조업 현장의 극심한 구인난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제조업 생산직의 구인대구직 비율은 지난 89년 1ㆍ4분기에 4.1대1에서 올해에는 5대1로 구인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기능인력 시장의 수급불균형은 이미 오래전부터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며 정부의 계획성 없는 주먹구구식 산업인력 정책이 빚은 필연적인 결과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산업인력정책은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인력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이 위원회가 지난 84년 설치된 이래 85년에 한차례 열렸을 뿐 지난 5년동안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부의 산업인력 정책이 「동면」하고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로인해 우리 경제가 연평균 10%대의 고도성장을 지속한 지난 10년간 일반계 고교가 3백4개 늘어난 데 비해 공업계 고교는 단 4개가 느는 데 그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기능인력 수급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 산업인력 수급대책을 마련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단발적인 이번 대책만으로는 오는 95년까지 기능인력의 연간 추가공급 규모를 10만명 수준으로 늘려 나가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제조업 고용을 기피하는 근로자들의 불건전한 풍토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보다 과감하고 획기적인 생산직 우대정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수급대책 요지 ◇산업인력의 공급확대 ▲93년까지 공사립 10개 공고신설,2백개 학급증설,30개 일반고의 공고전환으로 95년 9만2천명의 기능인력 배출 ▲일반고 3년생의 직업교육을 올해 1만9천명에서 95년 2만9천명으로 확대 ▲92∼93년 직업훈련원 2개 신설,8천5백명 배출 ▲민간기업 2백80개 훈련시설 신설로 3만5천6백명 배출 ▲사설강습소 활용 내년까지 1만명 공급 ▲91년 공고생의 3분의1,95년 2분의1이상에게 공납금 면제 ◇제도개선 ▲공고교사의 우대방안 마련 ▲기업의 훈련시설,장비구입비 지원 ▲기업의 직업훈련의무 비율을 91년 0.5%로 제고 ▲이공대 정원을 현 9만4천명에서 95년 10만6천명으로 증원 ▲이공전문대 정원을 현 3만7천명에서 6만6천명으로 확대 ▲산업연구원 소프트웨어 인력양성 강화 ▲대졸전문인력정보센터 91년 4개 추가설치 ▲읍면동과 교육기관에 구인구직창구 개설 ◇산업간 인력흐름 재조정 ▲제조업체 생산근로자에게 야간대 입학우선권 부여 ▲일정기간 근무 생산직 근로자에게 개방대 입학우선권 ▲산업체부설 대,사내기술대학 활성화및 학위인정방안 검토 ▲장기근속자에 근로자주택 입주우선권,자녀학비 지원 ▲과장대우등 생산근로자 우대 ▲20년 근속근로자 「명장」 선정등 특전부여 ▲10년 근속근로자 기능장 응시자격 부여 ▲서비스산업의 접대비 등을 손금산업체의 소득표준율 상향조정 ▲업무용 전력요금을 세분화,차등전력요율 적용 ▲기혼여성의 재취업 확대 ▲92년까지 3백개 공공탁아소 건립 ▲새마을유아원 9백40개를 탁아소 전환 ◇취약부문 인력공급 유도 ▲중기ㆍ지방업체 병역특례 혜택 ▲지방중기 근로자주택 우선분양 ▲중기 기술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를 15%로 확대 ▲2백명미만 업체의 기능인력 양성지원 ▲대기업의 중기인력 스카우트방지 규제준칙 마련 ▲대기업의 계열중기 인력양성지원 ▲건설기능공 대상 취업정보센터 설치운영
  • EC정상,대소 경원 원칙 합의/실태 파악뒤 구체안 마련

    ◎“1백50억불 지원”서독제안 일단 유보/대 남아공 제재도 완화 공동성명 발표 【더블린 외신 종합 연합 특약】 EC(유럽공동체)12개 회원국은 26일 이틀간의 정상회담을 마치면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정치ㆍ경제개혁을 돕기 위해 1백50억달러를 제공하자는 서독의 제안에 관련,대소경제원조는 지지하지만 먼저 소련이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고르바초프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성공이 EC와 이해관계가 있으며 EC는 시장경제를 향한 소련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공동성명은 또 EC집행위는 소련에 대한 단기차관과 구조적 개혁을 위한 장기간의 지원을 포함하는 긴급 원조만을 국제금융기구와 함께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자크 들로르 EC집행위원장은 다음달 소련을 방문,소련이 필요로 하는 것을 확인할 예정이며 EC는 대소원조를 위해 10월27일 로마에서 개최될 EC특별정상회담 이전에 보고서를 작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소련에 대한 경제원조내용은 서독 및프랑스의 과감한 대소경제원조 주장과 우선순위와 필수사항을 고려하지 않은 채 원조를 하는 것은 낭비라는 영국등 일부 의견을 절충한 것이다. 또한 EC정상들은 데 클레르 남아공대통령의 개혁조치를 찬양하면서 개혁노선이 계속될 경우 남아공에 대한 제재조치를 완화할 것임을 밝혔다. EC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남미의 열대우림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남미의 채무와의 교환조건으로 열대우림지역의 보호를 연계시키기로 의견을 모으고 실무팀을 7월9일부터 시작되는 선진국정상회담(G7)전에 남미에 파견키로 했다.
  • 북한,남북 정상회담 거부/전통문 보내

    ◎「당국자」등 기존대화도 당분간 불응/“한ㆍ소 정상회담 반통일적” 비난/“우리식대로 사회 개조”… 폐쇄고수 시사 【내외】 북한은 13일 노태우대통령이 수차례에 걸쳐 제의한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의사가 없음과 함께 남북 국회회담 준비접촉 등 기존의 대화도 빠른시일내에 재개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평양방송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남북 국회회담 북측대표단장 전금철과 고위당국자예비회담 단장 백남준의 연명으로 채문식 한국측 국회회담수석대표와 송한호고위급회담 수석대표 앞으로 보내온 전화통지문에서 한국정부가 「분열주의적 입장」에서 반공대결정책을 계속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이 마련될 수 없으며 『설사 그것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얻어질 것이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대통령이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및 미국의 부시대통령과의 잇단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문제를 논의한 것을 비난하는 내용의 이 전화통지문에서 북한은 또 남북한 유엔가입문제에 관련해서는 『유엔단독가입이나 유엔동시 가입이 현 분열상태를 합법화하고 고정화하여 두개 조선을 만들기 위한 것임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다』고 강변하고 남북측이 유엔에 가입할 경우에는 하나의 의석에 공동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 했다. 이 통지문은 이어 노대통령이 한소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북한이 개방과 개혁정책을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을 촉구한 것에 대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필요한 사회개혁을 성과적으로,그것도 철저히 수행하고 우리 사회를 개방했고 지금은 우리식대로 사회를 계속 개조하며 완성해 나가고 있다』고 주장,현재의 폐쇄체제를 그대로 고수해 나갈 방침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한편 이 통지문은 노대통령이 한소및 한미 정상회담등을 통해 남북한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한 것에 관해서는 「반대화ㆍ반통일적인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이를 빌미로 한국측이 국회회담및 고위당국자예비회담 재개에 앞서 『진실로 통일을 위한 대화를 할 의사가 있는지 등에 관한 의사를 분명히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기존 대화도 당분간 재개를 거부할 방침임을 나타냈다. 이처럼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과 함께 기존대화까지 거부의사를 표명한 것은 우선 한소ㆍ한미 정상회담이후 한국정부가 과감한 대북 조치를 취할 것으로 판단,이를 사전에 견제하고 또 한편으로는 한소 관계발전을 남북 통일대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매도,대화부진 책임을 한국측에 전가하고 한소관계의 급진전및 한중 관계개선에 제동을 걸려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고 있다.
  • 몸만 커진 사대… 교육여건 엉망

    ◎「평가제」 1년 앞두고 문제점으로 부각/71년이후 24개교ㆍ학생 11만명 늘어나/교수 한사람이 학생47명 맡아/홍익대는 63명꼴… 초중고 수준에 미달 사립대학들이 그동안 양적팽창에 치우쳐 학과 설치에만 주력한 나머지 학생들의 교수여건은 초ㆍ중ㆍ고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만큼 열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종합대학의 경우 이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대학평가인정제도의 도입을 1년 앞두고 큰문제점으로 지저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종재교수(서울대)팀이 최근 신생4개 대학과 8개 교육대를 제외한 전국 1백4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대학의 성장유형과 학과분화에 관한 연구」에서 드러났다. 지난 한햇동안 조사한 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71년 모두 71개교에 그쳤던 대학수는 33개교가 늘어났으며 이 가운데 사립대가 24개교로 3분2를 넘었고 56개 사립대 가운데 18개교에 불과하던 종합대는 2.3배 가까이 늘어난 41개교에 이르렀다. 71년 국공립대 1만2백35명,사립대 2만8천9백45명 등 모두 3만9천1백80명이던 입학정원은 88년엔 18만6천4백60명으로 약15만명이 늘어났다. 이 가운데 특히 국공립대는 3만여명이 증가한 4만2천6백50명인데 비해 사립대는 11만명 이상이 늘어난 14만2백10명으로 집계됐다. 사립대학의 이같은 양적팽창은 교육여건의 질적저하를 가져와 전임강사 이상의 교수 한사람 앞 담당학생수가 초ㆍ중ㆍ고교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47.64명으로 나타났다. 종합대의 경우는 더욱 심해 50.46명에 이르렀다. 이같은 학생수는 유치원의 31.0명,국민학교의 36.4명,중학교의 32.6명,고교의 28.4명보다도 훨씬 많은 것이다. 특히 사립종합대 가운데 주요대학으로 알려진 학교들도 담당학생수가 31.8명인 연세대를 제외하고는 고려대가 44.7명 성균관대 61.1명 이화여대 47.9명 한국외국어대 54.5명 한양대 41.9명 중앙대 47.6명 경희대 44.9명 등으로 모두 4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동국대는 56.7명 건국대 58.9명 홍익대 63.0명 단국대 56.6명 등이었다. 이에비해 호남대가 19.4명 한림대 12.1명 포항공대 10.6명 순천향대 20.6명 인제대 15.1명등으로 70년 이후 개교한 신생 지방사립대의 교수확보율이 훨씬 높았다.
  • UNDP 사무실에 괴한난입,1명사망/라이베리아

    【먼로비아(라이베리아)외신 종합】 라이베리아군복을 착용한 무장병들이 30일 이곳의 유엔개발계획(UNDP)사무실에 난입,무차별사격을 가해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했으며 수십명의 피신자들을 잡아갔다고 목격자들이 말했다. 이번 공격은 살인특공대를 피해 유엔사무실로 피신한 수백명의 자오 및 마노부족들을 목표로 한 것으로 그들에게 끌려간 27명 모두 살해됐을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일보 전 편집국장/이성표씨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 편집국장을 지낸 이성표씨(한국화공대표)가 교통사고로 입원치료중 17일 하오6시25분 서울 강동구 천호4동 카톨릭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57세. 이씨는 59년 한국일보사에 입사,경제부장ㆍ일간스포츠와 한국일보편집국장을 거쳐 논설위원 일간스포츠담당 상무이사를 역임했다. 유족은 부인 박남수씨와 1녀.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 발인 19일 상오10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지(연락처 745­6099).
  • 「자주국방…」 항공우주심포지엄… 맥피크대장 주제발표

    「자주국방실현을 위한 항공력건설과 국내항공산업육성」을 주제로 한 항공우주심포지엄이 16일 상오 정근모 과학기술처장관ㆍ임헌표 국방차관ㆍ한주석 공군참모차장을 비롯한 항공우주관련연구기관학자ㆍ기업인 등 5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종합전시장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한국의 안보환경과 항공력건설방안」을 주제로 한 제1분과에서 영국전략문제연구소 도널드 커 교수(57)가 「한반도 군사환경에서의 항공력 역할」,미태평양공군사령관 메릴 맥피크 대장(54)은 「2천년대 한반도 공중방위전략」,공군본부 이태식소장(51)이 「한국의 항공전력 건설방향」이란 제목의 주제발표를 했다. ◎“미,F16대대 한국에 곧 추가배치”/최신 중거리공대공미사일도 실전투입 계획 맥피크 대장의 주제발표내용을 요약한다. 항공력은 전쟁방식을 변화시켜 왔으며 미래전의 형태를 결정하게 된다. 항공기의 속도와 파괴ㆍ기동력은 과거에 볼 수 없던 전쟁억제력과 전투능력을 갖게 되었다. 2천년대에 접어들면서 북한은 신예전투기와 미사일 등을 도입,항공력을 현대화시키며 강한 전투력 및 병력육성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은 전쟁억지력과 전쟁에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미공군은 몇분 혹은 몇초 이내에 발생할 수 있는 공중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지상비상대기 혹은 공중전투초계비행을 실시하고 있어 적공격의 초기에 신속하게 반격할 수 있다. 2천년대의 한반도에서 전방방어를 위해서는 다양하고 수많은 항공기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 유능한 조종사와 전투기로 전투태세가 완비된 것을 북한이 안다면 북한은 모험을 할 수가 없다. 한국의 공군장비와 설비는 최상의 상태이며 병력도 정예화 되어 있어 준비태세는 최고로 완벽하다. 한미공군구성군은 여러차례의 합동훈련을 통해 적의 어떠한 도발도 물리칠 수 있는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야간저고도 항법 및 적외선 표적식별장치를 갖춘 F16전투비행대대가 창설되고 최신 공대공유도탄을 보유하게 된다. 북한은 유사시 미증원군의 신속한 전투력 증강을 고려해야 한다. 미공군은 C141ㆍC5ㆍC17 등 최신수송수단으로 병력과 장비 등을 24시간 안에 한국으로 전개시킬 수 있다. 전쟁억지의 3요소인 전방방어,준비태세,증원능력은 현재로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공중우세확보와 지상군지원,적의 물자 및 병력파괴로 항공역량을 사용하게 된다. 한미공군은 매우 정확하게 폭격할 수 있는 다양한 무장을 보유함으로써 최상의 지상군지원능력을 갖추고 있다. 견고한 콘크리트를 깊이 관통할 수 있는 새로운 폭탄을 개발하고 미사일의 사거리와 정확성을 향상시켰으며 주야를 막론하고 적의 기갑부대를 궤멸시킬 수 있는 화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한미연합공군은 적의 통신망차단과 레이다 및 지휘통제소 파괴,부대집결지 폭격 등으로 방어능력을 분쇄,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차후 수년간 한국의 항공방어전략은 한미안보공약의 기본이며 전쟁억지력 및 전쟁수행전략을 위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 미,「아시아 군사전략」 수정 논란

    ◎“감군”ㆍ“계속 주둔” 싸고 팽팽한 대립/「평화배당금」 국내전용 여론 비등 감축/국익ㆍ민주수호위해 상주불가피 주둔 【워싱턴 AFP 연합】 미국은 필리핀에서 개시된 기지 협상과 때를 같이 해 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역할을 90년대의 냉전이후 체제에 알맞게 재규정하려고 애쓰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소련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추진하고 유럽의 군축협상이 빠른 속도로 진전되면서 초강대국간의 긴장이 완화되기 시작함에 따라 미국의 아시아주둔 군사력도 마찬가지로 감축시켜야 한다는 압력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의원들과 국민들은 아시아주둔 미군을 감축시켜 여기서 나오는 「평화배당금」을 미국내의 만성적인 예산적자를 줄이고 다른 급한 국내현안들을 해결하는데 전용할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군사전략가들은 비록 소련의 위협이 감소하고 동­서긴장이 완화된다 하더라도 갈수록 증대하고 있는 미국의 경제이익보호와 역내대결 상황감시를 위해서는 미군이 아시아에 가시적으로 광범위하게 주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방부의 폴 월포위츠 정책담당차관은 『미국이 세계의 강국으로 남고 국익을 보호하며 민주주의 및 자유경제체제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미군이 아시아에 주둔,신뢰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로 기존의 아시아전략이 이처럼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의 아시아방위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대두됐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역내 맹방들도 이제는 경제강국이 됐기 때문에 자체방위에 대한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미국인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 맹방들 안에서 분출되고 있는 민족주의 감정도 미군의 계속적인 주둔에 장애요소로 부각되고 있는데 특히 클라크공군기지 및 수빅만해군기지의 임대기한연장 협상을 14일부터 갖고 있는 필리핀의 경우가 그렇다. 미국방부는 아시아주둔 미군철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동서대결상황에 토대를 두고 있던 미군주둔의 논거를 90년대의 상황에 맞게 바꾸려하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에 밝힌 전략검토보고서에서 아시아지역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켜야 한다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4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중소국경주둔 소군을 감축하고 베트남의 캄란만주둔 군함 및 항공기일부를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고는 하지만 소련의 극동군사력은 자체방위에 필요한 수준을 여전히 훨씬 넘어서고 있을 뿐 아니라 공군 및 해군력의 현대화계획 추진으로 미국의 아시아역내 이익에 대한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 둘째 아ㆍ태지역과의 무역이 미전체무역고의 37%를 차지,오히려 대유럽무역 규모보다 50%가 더 큰데다 역내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미해ㆍ공군을 전진 배치시켜 해로를 보호하는 것이 긴요하다. 셋째 90년대는 아시아에 「엄청난 변화와 불안」이 도래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월포위츠차관의 말을 빌린다면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가장 무모하고 위험한 배역들 가운데 하나』로 계속 남을 것이며 미군과 궁극적인 대결상황이 빚어질 공산이 가장 큰 적대세력이다. 마지막으로팽창주의적인 열망을 가진 일부 아시아국가들의 행동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의 안보적 주둔이 「대체할 수 없는 균형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군사분석가들은 이러한 사례로 인도가 해군력을 증강시키고 있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미맹방들 사이에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아태지역 미 기지 현황/한국ㆍ일ㆍ비 등 3곳이상씩… 지구절반 커버/클라크ㆍ수빅만 최대… 일에 4만9천 주둔 【홍콩 로이터 연합】 필리핀내 미군기지의 장래문제에 관한 미국과 필리핀간의 협상은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방위구도를 개편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방부는 강대국간의 긴장이 완화됨에 따라 현재 지구의 절반에 걸쳐 배치돼 있는 아ㆍ태평양 지역의 병력중 10∼12%,총 12만명의 병력을 감축하는 계획을 현재 마련중이다. 다음은 아태지역에 배치한 주요 미국병력의 주둔 국가별 현황이다. ▲필리핀=클라크 공군기지와 수빅만해군기지 등 총 6개기지에 약 1만7천명의 미군이 배치돼 있다. 미국은 해외주둔 미군기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두 기지가 이 지역 안보에 있어 핵심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수빅만기지에는 미 7함대가 있다. ▲일본=남부 오키나와섬 카데나(가수납)와 도쿄 외곽의 요코다(횡전),북부 미사와(삼택)등 3곳에 미군기지가 있고 도쿄 근처에 주한미군 지원부대가 배치돼 있다. 일본서부 사세보(좌세보)와 도쿄 남부 요코스카(횡수하)의 해군기지와 오키나와의 미해병 1개사단,일본서부 이와쿠니(암국)의 미해병 항공대 기지가 있다. 주일미군 4만9천명중 육군이 10%,해병이 40%,그리고 해군과 공군이 각각 25%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주한미군의 숫자는 약 4만4천명. 육군이 대부분이며 해군과 공군도 일부 있다. ▲싱가포르=미군 군함에 대해 연료공급과 선박수리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군 수송기의 통과도 허용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미국측에 더 많은 시설 이용권을 제의했으나 싱가포르에는 몇대의 군함밖에 정박할 수 없으며 F16기 편대의 경우 1∼2개 편대가 교대로 착륙할 정도다. ▲호주=누룬가르,파인캡,노스웨스트만 등지에 3개의 미ㆍ호주합동군사기지가 있으며 노스웨스트만 기지는 인도양과 서태평양 해역의 잠수함들을 감시한다. 누룬가르와 노스웨스트만 기지는 정보수집도 하며 아울러 조기경보와 군축감시기지의 역할도 수행한다. 이들 기지에는 호주인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이 미군이며 지휘부도 미국이 맡고 있다. ▲괌=캘리포니아로부터 서쪽으로 6천마일,도쿄로부터 비행기로 4시간 거리에 있는 미국령 괌섬에는 앤더슨 공군기지,미8공군사령부,해군기지 1개가 배치돼 있다.
  • 삼한칠기화살통 첫 출토/의창유적서,철촉 9점도 함께

    경남 의창군 동면 다호리 삼한시대 널무덤(목관묘)유적에서 AD1세기 쯤의 칠기 화살통이 출토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다호리 유적조사발굴단(단장 정양모)이 지난 3월28일부터 5월7일까지 실시한 제5차 발굴에서 출토한 이 화살통은 몸체는 거의 부패되었으나 옷칠을 한 겉부분(칠피)은 윤곽이 뚜렷이 남아있다. 이 칠기화살통은 길이 90㎝,지름 7㎝정도의 크기로 제작되었는데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없고 다만 위를 3부분으로 나누어 모두 5개의 회전띠(공대)를 돌린 형태이다. 이 칠기 화살통 안에는 본래 화살대가 달려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철촉9점이 들어 있었다.
  • 남아공,인종차별 철폐 선언/「흑인에 참정권 부여」 조속 실현키로

    ◎클레르크대통령­만델라 회담 【케이프타운 AP 연합】 드 클레르크 남아공대통령과 남아공의 백인정권에 대항하는 흑인 재야정치기구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지도자 넬슨 만델라는 2일 역사적인 첫 공식회담을 갖고 남아공의 흑백분리 인종차별정책을 포함,소수 백인지배체제의 철폐와 흑인들의 정치참여를 실현시킬 수 있는 진보적 민주정치체제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했다. 이날 회담이 개최된 케이프타운의 대통령관저 부속건물 앞에서 기자들 앞에 나란히 선 드 클레르크대통령과 만델라는 남아공정부와 ANC가 이번 회담에서 남아공의 2천8백만 다수 흑인들의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전면적인 헌법협상을 조속히 실현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델라는 흑인들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라 한시바삐 진전을 이룩하는 일이 사활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비인간적인 흑백분리 체제를 가능한 한 빨리 종식시킬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협력하는데 지장을 주는 장애물들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드 클레르크대통령도 빠른 진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최근 몇달 사이에만도 수백명이 희생된 폭력사태를 종식시키는데 ANC가 협력해 줄 것과 모든 정당들이 평화를 되찾는 일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촉구했다. ◎“인종 갈등 종식”남아공 첫 흑백회담/백인정부­ANC대좌의 의미/“협상외엔 끝없는 분쟁뿐”공동인식/「불신의 벽」높아 완전성공은 미지수/“국제고립 탈피용” 정부의 개혁의지에 의문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소수 백인정부와 흑인들은 2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미지를 향한 평화회담의 여정에 올랐다. 이 회담에서 확실한 것이라고는 앞으로 넘어야할 난관들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 뿐이다. 드 클레르크대통령이 이끄는 남아공 정부와 넬슨 만델라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는 수십년간 계속된 인종간의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남아공 사상 처음으로 평화회담에 들어 갔지만 그 어느 쪽도 이 회담이 무사히 성사될 것인지의 여부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백인만으로 구성된 집권 국민당과 흑인의 대표적인 재야세력인 ANC가상호간의 적대행위를 일단 중단하고 회담에 임하게된 것은 피크 보타 외무장관이 지난 30일 경고한 것처럼 이번 회담이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보다는 이 회담을 추진해야 한다는 압력이 더 강력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보타 외무는 『이것은 상처입은 사자의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사람에 관한 아프리카 전래의 사냥 이야기와 유사한 것이다. 이 경우 정답은 「나무 위로 기어오른다」이다. 그러나 만일 근처에 나무가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근처에 나무가 있기를 희망하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크 보타 외무장관은 협상 이외의 다른 선택은 백인과 흑인이 황폐해진 땅위에서 죽을 때까지 싸우는 끝없는 분쟁 뿐 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이 나라의 가장 강력한 양대 정치세력이 이제 평화회담에 들어가고 있지만 소수분파들간의 싸움은 남아공 전역의 흑인 사회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있다. 지난 2월 남아공정부가 대부분의 정치활동 규제를 해제한 이래 흑인들간의 치열한 세력다툼이 벌어져 5백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다시 찾은 정치적 자유를 행동에 옮기던 20여명의 흑인 반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시위대들이 백인경찰들의 발포에 의해 사살되었는가 하면 비상사태하에서 재판없이 수감되는 정치범들이 다시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회담을 위한 회담」으로 불리는 3일간의 이번 평화회담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3백50년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들에게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새 헌법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한 예비회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현재 ANC는 정치범의 석방과 비상사태 관계법의 철폐를 본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ANC가 무장투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분석가들은 일반적으로 양측이 이번 회담에서 몇가지의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소한 「회담을 위한 회담」을 더 많이 갖자는 합의에는 도달할 것이라는 것이 분석가들의 전망이다. 이들 분석가들은 남아공정부가 아파르헤이트 정책이 백인의 생존을 보장하는데 실패했으며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흑인들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때 흑ㆍ백 양 인종들이 백여년의 세월동안 높아만 진 불신의 벽을 뛰어 넘어 서로 손을 맞잡고 화해하게 될 것이라는 조짐은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측은 백인들의 생활양식 보다 나은 주택과 학교ㆍ병원 및 직장에 관한 헌법상의 보장을 부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ANC는 남아공의 모든 체제를 개혁,그동안 백인 통치기간 중 흑인들을 소외시켰던 모든 권리들을 흑인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남아공정부가 외국의 경제제재 조치와 국제적인 고립상태에서 탈피하기 위해 마지못해 개혁을 추진하는 것인지,진심으로 개혁을 추진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대구시경,대학생들에 피습/50여명,화염병 던져

    ◎승용차ㆍ청사유리등 부숴/송신탑 농성자등 6명 붙잡아 【대구=최암기자】 대구ㆍ경북지역 총학생회연합(대경총련)소속 대학생 50여명이 30일 상오9시55분쯤 대구시 중구 동인동 대구시경찰국을 화염병등을 던지며 기습,건물 유리창과 차량등을 부수고 달아났다. 경찰은 이날 통신용철탑과 본관옥상에서 농성을 벌이던 학생6명을 검거했다. 학생들은 이날 경북대 의대 4거리등에 4∼5명씩 몰려있다 갑자기 시경정문앞으로 몰려가 「전노협사수」 「노정권퇴진」등의 구호를 외치며 화염병 50여개를 시경안으로 던져 마당에 주차해있던 승용차 13대의 유리창및 일부 부품과 시경청사 유리창 30여장을 깨뜨렸다. 이들중 권용수군(23ㆍ동국대 경주대학 철학과4)등 4명은 본관 옥상에 올라가 「현대중공업투쟁을 승리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이다 10분만에 경찰에 모두 붙잡혔다. 또 양창우군(22ㆍ경북대 철학과3)과 박윤근군(22ㆍ안동대 물리학과3)등 2명은 높이25m의 시경찰국 무선 송신탑에 올라가 「노동탄압 분쇄하여 전노협 사수하자」라고 쓰여진 현수막을 내걸고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특공대에 의해 2시간만인 정오쯤 검거됐다. 한편 이날 대구시경을 기습하고 달아나던 일부 대학생들이 대구중부경찰서 동인파출소에 화염병 10개를 던져 유리창 4장을 부수었다. 이들은 경찰에서 자신들은 「대경총련」산하 민자당타도와 전노협 사수를 위한 학생청년 결사대들이라고 밝혔다.
  • 과기대 학장 조병하씨

    한국과학 기술대학 조병하학장이 24일 하오4시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4세. 조박사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경북대교수를 거쳐 71년도 과학기술원 교수로 재직해 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연주씨(62)와 장남 진형씨(36ㆍ김오공대교수)등 2남2녀가 있다. 영결식은 26일 상오9시30분 과기원 홍릉캠퍼스에서 한국과학기술원장으로 거행된다. 장지는 벽제 새문안동산 749­6099
  • 최근 망명한 북한 유학생 회견

    ◎“소 거주 북한인,본업보다 외화벌이 급급”/물건 「되팔기」 성행… “장사 잘됩니까” 인사/소련 제품 북한 반입땐 뇌물만 주면 통과/김책공대 컴퓨터 대부분 재일동포가 작동 소련에 유학중 지난 2일 한국으로 망명한 남명철씨(25ㆍ레닌그라드대학 자동계산기술학과)와 박철진씨(25ㆍ〃)는 23일 연합통신과의 회견에서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 때문에 소련에 있는 북한의 유학생이나 외교관들은 거의 외교업무나 공부보다는 「장사」를 해서 외화를 버는데 급급하다고 밝혔다. 남군 등은 북한의 경제현실에 대해 김정일이 집권한 지난 70년대초부터 경제상황이 나빠졌다는 얘기가 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으며 이같은 경제난때문에 북한 인민들은 김정일의 지도력을 의심하기 조차 한다고 밝혔다. 외교관들이나 유학생들은 인삼제품등 북한의 특산물이나 제3국의 물건들을 싸게 구입해 소련 국내로 들여와 비싸게 판 뒤 그 돈으로 북한에서 필요한 소련물건을 사서 이를 다시 북한에서 수십배의 이익을 남기고 파는 「장사」로 돈을 벌고 있으며 소련에 있는북한사람들끼리 만나면 「장사 잘 되십니까」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남군 등은 동구공산권 국가들의 개혁물결에 대한 북한의 대응에 대해 소련 등지의 유학생이나 외교관들이 북한에 들어가서 외국사조와 민주화 소식이나 남한의 경제발전에 대한 전파행위를 못하도록 김정일은 『말을 막하고 돌아다니는 자들은 용서치 말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이들은 소련에는 모스크바 2백∼3백명,레닌그라드와 키예프에 각각 1백명,오데사에 40명등 약 5백명의 유학생들이 있으며 여기에 연구생ㆍ실습생 등의 자격으로 소련내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모두 1천여명의 북한사람들이 소련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는 유학생자격으로 소련에 와서 북한유학생 조직을 관장하는 전문조직사원이 파견돼 있으며 이들은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소련에 있는 북한사람들의 모임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도착한뒤 21일 지났는데 한국에 대한 인상이 어떤가. ▲소련 중앙제1TV방송 기자들이 지난해말 한국에 다녀온 뒤 제작한 프로그램 「내가 몰랐던 조선」과 88년도 레닌그라드에서 열렸던 한국전자제품전시회 등을 보고 남한의 공업수준에 관해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수원의 삼성전자등을 돌아보면서 첨단기술이 결집된 제품이 대량생산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최근 소련과 북한과의 관계는. ▲소련출판물이 너무 노골적으로 북한을 비판해 북한사람의 입장에서 난처할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소련사람들이 북한체제에 관해 물어오면 『정치문제는 그만두자』며 얼버무리곤 했다. 김정일은 최근 국제사회의 급변과 관련한 북한의 외교정책에 대한 발언에서 『중국과의 관계는 순치의 관계이고 소련과는 1대1관계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사관직원들은 유학생들을 모아놓고 강연회를 실시하면서 동구권의 자유선거에 대해 『일하기 쉽게 선거하면 되지 뭣하러 자유선거를 실시하는가』『소련은 명백히 자본주의 길로 나가고 있다』는 등으로 최근 소련의 개혁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자신들의 직책상 그렇게 얘기하지만 소련사회 개방에 대해서는 내심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소련주재 북한대사관의 분위기는 어떤가. ▲완전히 장사판이다. 대사관내에는 영접부여관이라는 곳이 있어 소련에 들르는 북한사람들을 재워주는데 이곳에서 북한사람들이 외국물품을 사들여 와서 대사관직원들에게 팔면 대사관직원들은 유학생이나 연구생들에게 다시 얼마쯤 이득을 남기고 판다. 유학생들은 이것을 또다시 소련사람들에게 이익을 남기고 파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판다」는 뜻의 「되거래」로 통한다. 지난 87∼88년에는 제13차 평양청년학생축전 준비를 하던 북한이 준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무원 무역부직원들을 제3국에 보내 시계를 몇만개쯤 사다가 소련에서 북한유학생들에게 배당을 주면서 팔아오도록 했다. 나(남명철)는 대사관에서 이 시계를 1개에 25루블씩 4개를 사다가 레닌그라드에서 소련사람들에게 개당 35루블씩 팔았다. 30루블은 대사관에 주고 5루블씩 남겼다. 이밖에도 소련에 있는 북한사람들은 대부분 특권층이므로 보통사람들이구입하기 어려운 인삼등 북한특산물들을 싼값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북한 가족들이 소련에 이같은 물건을 사서 보내주면 유학생이나 대사관직원들은 그것을 소련에서 비싼값에 팔고 그 돈으로 사진 인화지등 북한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사서 북한에 보내 되팔게 한다. 예컨대 북한에서 70전에 살 수 있는 인삼은단은 소련에서 대개 1루블 65카페이카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것으로 인화지 한장을 살 수 있다. 그 인화지를 북한에 있는 사진관에 팔면 50원을 받을 수 있어 70전이 50원을 낳는 셈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소련에 3년동안 있으면서 이같은 장사로 대략 2천∼3천루블(미화 약3천2백96∼4천9백44달러)정도를 벌었다. 그러나 대사관직원들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장사를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액수를 벌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 세관에서는 이같은 소련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면 어떻게 하는가. ▲물건 운반에 가장 편리한 교통편은 일주일에 2회 왕복하는 열차이다. 모스크바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과의 국경지대를 지나면 보위부원들이 열차에 올라와 검사를 하는데 대개 카셋1개등 뇌물을 주면 그대로 통과시킨다. ­현재 북한의 컴퓨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교수들은 대개 북한이 소련보다 10여년 정도 떨어져 있다고 보며 소련은 또 일본보다 10여년 정도 떨어진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에서 전자계산기학과에 다닐때 3학년까지 배운것이라고는 컴퓨터의 기초언어인 「포트란」정도였다. 김책공대에는 대형 컴퓨터 1대와 퍼스널 컴퓨터 20대정도가 있고 중앙무역은행,철도부계산실,국가계획위원회,평양시설계사업소 등지에 1∼2대씩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않아 그냥 서있는 컴퓨터들이 많고 나머지는 재일동포들이 대부분 컴퓨터운용이나 작동을 맡고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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