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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민주의 위대한 승리”/소 쿠데타 실패 각국반응

    ▷미국◁ 미국은 소련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자 안도와 만족감에 휩싸였다. 부시대통령은 21일 아침 여름별장이 있는 케네벙크포트에서 기자들에게 옐친과의 통화내용을 소개하며 고르바초프의 모스크바 무사귀환 일정을 알렸다. 부시는 사태가 일단락됐다는 안도의 표정으로 『오늘은 매우 좋은날』이란 애기를 여러차례 되풀이했다. 그는 고르바초프가 미국의 성원에 감사한다는 말을 전화통화에서 전해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쿠데타가 「준비부족」으로 실패했으며 8인위원회 멤버들의 「결단력 부족과 미숙」이 또다른 실패요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프랑스◁ 22일 파리의 조간신문들은 소련사태의 극적인 반전을 「고르바초프의 복귀」「자유,축복받다」「고맙소,옐친」「회복」등의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다. 이날 아침은 출근길에 신문을 찾는 시민들이 다른날보다 많아 가판대앞에 줄을 서야만 했다. 파리에 관광 또는 친지방문 목적으로 왔다가 쿠데타로 정정이 불안하자 일시 귀국을 보류하고 관망하던많은 소련인들은 이날 기쁨에 찬 표정으로 파리 북역에서 북방행 열차에 올랐다. 프랑스에서는 보리스 옐친의 굳센 투쟁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동안 미테랑 대통령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야당쪽으로부터 집중적으로 퍼부어지고 있다. ▷독일◁ 독일정부는 22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귀환과 관련,『소련국민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위대한 승리』라고 환영했다. 루돌프 사이트러 총리실대변인은 『오늘은 소련에서 자유와 민권,민주주의가 큰 힘을 얻은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하고 독일은 시민들이 구테타 기도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소련에 대해 적극적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할것이라고 말했다. 사이트러대변인은 『소련은 서방세계로부터 단호하고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것』이라고 밝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런던서방선진국 정상회담에서 지원을 약속받은 재정지원을 확실히 기대해도 될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일본정부도 다른 서방국가와 마찬가지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복권을 거듭 환영하는 한편 이번의 정변이 앞으로 일소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분석을 서두르고 있다. 이번의 쿠데타실패에 대해 외무성은 언론자유·민주화·서방과의 새로운 관계를 유지해온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과로 국민들이 더이상 그 이전체제로의 복귀를 거부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고 그것은 보수파가 군장악에 실패한데서 그대로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이곳의 정치·경제·언론 등 각 분야에서는 쿠데타실패과정에서 능력을 발휘한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중국◁ 전기침중국외교부장은 22일 소련의 쿠데타 실패와 관련,『우리는 소련인민들의 선택을 존중하며,고르바초프대통령의 복귀로 중소양국간 선린우호관계가 89년과 91년에 발표한 공동성명 원칙에따라 계속 발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전외교부장은 이날 하오 솔로비에프주중소련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중국정부는 소련의 내정문제는 소련인민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계속 옹호,유지해왔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는 22일 아침 신화통신이 내보낸 모스크바주둔군 철수내용만을 1단으로 간단히 보도했으며 다른 신문들도 대부분 이와 비슷했다.
  • 남북기술교류에 “물꼬”/정보통신회의 내년 평양개최 합의

    【연길(중국)=이석우기자】 한민족 과학기술자학술회의에 이어 22일 연변대학에서 개막된 한민족 정보통신학술회의도 내년 평양대회 개최를 합의,남북 과학기술교류의 물꼬가 트이게 됐다. 이날 합의는 북한측 대표단 김영준단장(김일성공대 자동화학부장)이 한국전자공학회 임제탁회장에게 내년회의부터 평양과 서울을 번갈아가며 개최할것을 제의,임회장 및 한국대표단이 수락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연변대학 계산기응용연구소가 주최한 이번 대회에는 김일성종합대학3명,김책공과대학 2명,이과대학2명등 북한대표단 10명과 한국전자공학회 회원45명,중국동포과학자 42명등 한민족과학자 1백여명이 참석 ,23일까지 1백여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이날 특별강연에서 중국동포과학자 대표 백원근 협서성 전자공업청 총공정사는 『이번 대회가 북과 남의 동족이 공동연구·협조 합작의 길로 들어서는데 분기점이 될수 있을것』이라고 발했다. 한편 91한민족 국제과학기술자대회가 내년 평양에서의 대회를 기약하고 22일 하오 폐막됐다.
  • 고르비,지도부 개편/옐친 연정제의… 오늘 요직인선

    ◎새국방·KGB의장·내무 임명/“공산당도 개혁세력으로 교체”/고르비 회견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모스크바로 돌아와 집무를 시작한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은 22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함께 공석이 된 지도부의 요직인선에 착수,1차로 국방장관에 미하일 모이세예프참모총장을 임명했다.또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에 레오니드 셰바르신을,내무장관엔 바실리 투르신을 발령했다.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국방차관에 보리스 파안코프대장을 임명했는데 타스통신은 쿠데타 주동자의 체포로 자리가 빈 일부 핵심요직의 임명이 「임시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모스크바로 귀환한 뒤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산당안의 반동세력을 몰아내고 개혁지지세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정변을 계기로 급부상한 옐친러시아공대통령은 보수파 제거에 본격 착수함으로써 자신의 세력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옐친대통령은 그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23일 만나 정부구성문제를 비롯한 「대단히중요한」사안들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3인의 요직인사와 관련,『앞으로 러시아공화국이 연방정부구성에 보다 많이 대표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 이유는 어려운 시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한 것이 러시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옐친은 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연금돼있었던 크리미아휴양지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직후 그에게 자신의 지지세력들과 연정을 구성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모스크바공항에서 크렘린관저로 돌아온 직후 발표한 첫 성명에서 『나를 축출하려던 쿠데타가 실패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승리』라고 강조하고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소련은 큰 재난을 겪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시 미국대통령은 그동안 주저해왔던 대소직접경제원조 제공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고 유럽공동체(EC)와 일본등도 소련에 대한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 소 쿠데타 61시간만에 왜 실패했나

    ◎“공산회귀는 불용”… 국민이 등돌렸다/명분없는 거사에 군수뇌부 적전분열/경원동결등 서방의 강경대응도 큰 몫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이유로는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강렬한 저항 ▲저항선봉장으로 나선 옐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 ▲군장악의 실패등을 들수 있으며 그외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압력도 들수 있다.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련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 쿠데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그것은 또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국민들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의 짧은 기간동안이긴 하지만 탱크로 무고한 시민을 깔아뭉개는 무자비한 무력탄압 앞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시위금지령과 통금령을 무시하고 20일 하룻동안에만 8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육탄으로 탱크를 저지한 소련국민들의 용기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과거 수차례에걸친 소련에서의 정변때마다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련국민들이 이처럼 용기있게 변한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방정책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라고 할수 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것은 결국 쿠데타 주역들이 고르바초프의 신병은 체포할수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어넣은 자유정신마저 가둬둘수는 없었던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일부터 일으키고 보자』는 형태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이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일 체결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겠다는 초조감에서 쿠데타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군장악과 국민동향,지도부내의 결속등을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사전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과거처럼 무관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자 비상위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의 절대적 동조세력으로 생각했던 공산당이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비상위에 결정적인 정신적 타격이 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타격은 비상위내부의 적전분열로 나타났다. 쿠데타 발생 이틀이 안돼 비상위의 8인 멤버중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사임했다는 것이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내의 분열과 함께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도 쿠데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다.비상위는 당초 군부내에 냉전종식에 따른 군위상 축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판단,일단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 대다수가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군부가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평소 「국민의 군」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소련군은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릴수는 없다』는 쪽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이번 쿠데타에서 서방이 보인 대응도 쿠데타실패를 간접적으로 도운 한 원인이 됐다고 할수 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측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방의 경제지원을 갈구하는 소련에의 원조를 동결시켰다.서방세계는 또 반쿠데타 저항세력의 선봉에 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냄으로써 옐친으로 하여금 국민저항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속한 개혁의 완결이란 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혁을 지연내지는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치를 들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소련에서의 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 앞에선 무력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다. ◎“3일천하” 쿠데타 일지/비상위 구성→불복선언→서방 경원동결→유혈충동→비상위 분열→병력 철수→고르비 귀환 소련의 강경보수파가 21일 소련역사상 처음 「월요정변」으로 기록될군사쿠데타를 야기한지 3일만에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이들의 꿈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모스크바정변 소식이 전해진것은 19일 상오4시.소련전역에 6개월시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과 출판물의 검열이 시작됐다.방송국들도 쿠데타군에 접수되어 방송이 통제됐다. 타스통신은 크리미아반도 휴양지에서 휴가중이던 고르바초프가 실각되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직을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하고 8인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기세 좋게 몰아 붙이던 쿠데타세력들은 옐친의 시민 불복종운동촉구와 총파업선동으로 시작부터 예상치않던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수파들에 의해 야기된 쿠데타가 시련을 맞기 시작한것은 정변이 발생한지 8시간만인 19일 정오.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포고령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반쿠데타 봉기를 부추기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미 모스크바시내에 진입했던 중무장 소련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중단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연뒤 기자회견을 갖고 하오5시 소련의 군사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했으며 대소원조를 보류할것임을 시사했다. 이튿날 쿠데타세력들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오6시 일류신76 수송기 60대를 동원,모스크바로의 병력을 증강했으나 이에 맞서는 소련국민들의 시위는 세를 더해갔다. 그후 러시아공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병력들은 러시아공 의사당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으며 21일 새벽 급기야 유혈충돌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쿠데타세력이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리고 서방세계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최후의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군내 강경파인 모이셰프군참모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그로모프중장(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과 바렌니코프 지상군총사령관이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 그것이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듯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으며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뒤 10시간만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듯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루키아노프 소연방 최고회의의장이 크림반도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으며 소련 국방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배치됐던 병력들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이어 모든 포고령이 무효화되고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귀환길에 오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주연한 「쿠데타」드라마는 61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6

    ◎“포플러나무 잘라라”… 폴 버년작전 발동/21일 새벽 특공대 60명 돌진… 전폭기 엄호/“만행응징” 한밤 펜타곤서 작전개시 재가/김일성 “유감”표명… 9월8일 경계태세 「데프콘4」로 완화 8·18만행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첫째는 군사적 행동 없이 정전위를 통한 강력한 항의,두번째는 즉각적인 군사보복,세번째는 상징적 경고행위등이 스틸웰사령관에게 보고되었다. 스틸웰사령관은 지하벙커의 월 룸으로 곧바로 와서 참모회의를 열어 작성중인 OPLAN(작전계획)을 점검했다.우선 정전위 차석대표인 마크 푸르덴 해군소장을 불러 다음날 소집키로한 정전위원회에서 자신이 북한의 김일성에게 보내는 강력한 항의서한을 전달토록 지시했다.한편 즉각적 군사보복은 3차대전으로의 확대위험이 있다는 판단하에 상징적 경고행위를 채택키로 했다.그 작전은 유엔사령부의 힘을 명백히 보여주는 동시에 경고를 주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했으므로 장소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로 한정키로 했다. ○「상징적 경고」 채택 작전의 주요내용은 문제의 포플라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이었다.결국 그 나무가 미국 권위의 상징처럼 된 것이다.지난 8월초 유엔군이 처음 그 나무를 베려했을때 북한군의 공갈협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북한군에게 약점을 보였다는 판단에서였다.따라서 증강된 무력시위와 함께 공동경비구역 안에 들어가 그 나무를 당당하게 베어버림으로써 북한측에 심리적 위축을 주자는 것이었다. 다음날인 19일 아침 본토의 합동참모본부로부터 미군의 방어태세를 데프콘­3로 격상시키도록 지시가 하달됐다.이는 1953년 휴전협정조인 이래 처음 내려진 조치였다.30분후 한국 국방부장관도 한국군에 비상전투태세를 명령했다.잠시후부터 SR­71초음속정찰기들이 고공으로 발진,DMZ 상공을 가로지르며 북한군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하기 시작했다.또 나이키­허큘리스 장거리미사일도 적의 레이다를 향해 발사준비를 완료했다.RF­4D 정찰기와 와일드 워젤 방공억제기가 일본과 필리핀기지에서 이날 아침 발진,한반도의 오산 군산 대구기지에 도착했다.또 미아이다호의 마운틴 홈 공군기지에서는 핵을 장착한 F­111전략폭격기가 한반도를 향해 출발했다.이로써 북한과의 신경전이 개시됐다. 지상군은 미보병2사단과 한미1군단이 DMZ를 따라 전진배치를 끝냈으며 여러 구경의 재래식 포와 전술핵 미사일등이 발사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다.수많은 트럭이 병력을 싣고 전방으로 투입됐으며 수송헬기가 계속 전선으로 보급물자를 날랐다.이같은 움직임은 과거어느때도 볼 수없는 규모로 북한측에게 불안한 징조로 받아들여졌음이 틀림없었다. 사건발생 다음날인 8월19일 밤까지 우리는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전시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전의 이름은 폴 버년(PAULBUNYAN)으로 명명됐다.작전의 목적은 공동경비구역은 물론 DMZ지역 어디서나 미군지휘하에 있는 유엔군이 권리를 침해당했을 경우 반드시 행동으로 응징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작전내용은 포플라나무를 자르고 또 지난 65년부터 북한측이 공동경비구역내 도로상에 불법으로 설치해 놓은 2개의 차량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었다.작전개시일은 8월21일 토요일 상오7시 정각이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군과 조우하지 않고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철수하는 일이었다. ○남침땐 핵 사용 공동경비구역내에서의 실제작업은 빅토르 비에라중령이 이끄는 한미합동으로 편성된 2개소대 60명의 특공대가 맡기로 했다. 20일 새벽 펜타곤으로 보내진 이 작전에 대한 최종 재가는 작전개시를 7시간여 남겨놓은 그날밤 23시45분에 내려졌다. 다음날 새벽까지 나는 이번 작전에 동원된 모든 예하부대 지휘관들로부터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출발선에 대기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결전의 시간을 앞두고 나는 월 룸 맨끝에 있는 빈방으로 가서 기도를 올렸다.이번 작전의 전쟁발생 가능성은 반반이었다.만일 전쟁으로 비화된다면 불과 한시간도 못돼 수십만명이 피로 물든 산과 들에서 싸우다 죽어야할 것이었다.북한군의 살인공격은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부를 것이고 이 대응이 또 북한의 침공으로 이어진다면 대량살상을 피할수는 없을 것이었다.사실 우리는 북한군이 서울을 향해 대규모 공격을 가해온다면 2차대전 이래 최초로 핵무기 사용을 요청할수 밖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상오6시48분.특공대병력을 실은 대형트럭들이 키티호크기지를 떠나 공동경비구역으로 출발했다.앞에는 미군 소령이 칸보이했다.공동경비구역의 남쪽 통로인 제2초소를 통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소령은 인접한 중립국감시위원회 막사로 갔다.그곳에는 스위스대표 클라우드 무브덴소장과 스웨덴대표 라게 베른스테드소장이 있었다.소령은 그들에게 나의 인사장을 내밀고 방금 시작될 우리의 작전을 설명하고 북측의 폴란드와 체코대표단에도 통보해주도록 요청했다.그러자 장군들은 이 계획을 사전에 자신들에게 통보하지 않은데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공격은 공동경비구역 안으로 특공대트럭이 요란하게 돌진하면서 시작됐다. ○북 경비병들 당황 동시에 20대의 병력수송 헬기가 12대의 AH­1G 코브라건십의 에스콧을 받으며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엄호병력을 풀었다. 동시에 대전차 F­4팬텀기와 F­111 중거리 전략폭격기들이 발진했으며 서해쪽으로는 괌기지에서 B­52 수개편대가,또 동해상으로는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에서 40여대의 전폭기가 발진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특공대중 1개소대는 포플라나무를 둘러싸고 다른 1개소대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쪽으로 가 북한군의 진입로를 차단했다. 북한경비병들이 놀라 자기네 진영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우리 작업단은 신속하게 나무밑둥을 베어나갔고 다른 작업팀은 적들이 설치해 놓은 차량장애물 쪽으로가 그 구조물을 크레인으로 들어내고 있었다.이때 수십명의 북한경비병들이 달려왔으나 몽둥이와 곡괭이등으로 무장한 건장한 60여명의 경비병이 작업단을 호위하고 있었으며 중무장된 한국군 수색대가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포진돼 있는등 엄청난 규모에 놀라는듯 했다. 10분쯤후 우리 작업단이 잘라낸 밑둥을 작게 잘라 트럭에 싣고 있을때 버스 한대와 트럭 2대 그리고 덜거덕거리는 동독제 고물 세단 한대로 편성된 북한경비대가 경비구역 안으로 들어왔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에 멈추더니 AK­47소총으로 무장한 1백50명가량의 병사들이 차에서 내려 제방주위로 포진했다.그러나 그들은 계속 지켜보기만 할뿐 이렇다할 행동은취하지 않았다. 우리 작업단이 경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철수를 시작한 것은 상오7시45분부터 였다.적의 기습을 우려해 조심스럽게 철수가 진행됐으며 모두 키티호크기지로 귀환한 것은 8시30분 이었다.유엔측 경비병들은 정위치로 돌아갔고 북한경비병들은 포플라나무로 와서 잘린 부분을 살펴보고 철거된 장애물들을 돌아봤다. 작전은 무사히 끝났으나 상오10시15분쯤 공동경비구역남쪽을 날며 작전의 마무리를 지휘하던 브래디장군의 헬기가 북한군의 자동화기 사격을 받았다. ○폭력책임 첫 시인 그러나 여섯대의 코브라헬기가 사격자세를 취하며 선회하자 그들의 사격은 멎었다.정오무렵까지 더이상의 총성이 들리지 않았으며 북한측이 정전위원회를 즉각 열자고 제의해 왔다.이 회의에서 북한군측 대표는 그들의 총사령관인 김일성의 메시지를 읽어내려갔다.그는 8·18사건을 「유감」으로 표시했으며 남북 양측이 이같은 불행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주장했다.이는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23년만에 북한이 부분적일 망정 DMZ내에서 폭력의 책임을 시인한 최초의 일이었다. 이후 수일 동안 위성사진에 따르면 북한이 계속 방어적 배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그들이 서서히 경계를 완화시키는 동안 미군은 그대로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9월8일 북한이 우리들의 요구를 사실상 모두 수용했을때 합동참모본부는 경계태세를 데프콘­3에서 데프콘­4로 완화시켰으며 미드웨이호는 동해를 떠났다. 폴 버년작전은 북한의 오만하고 필사적인 공산지도자들을 힘으로 다스린 예가됐다.김일성이 마침내 물러서게된 유일한 이유는 그가 직면한 위험상태를 우리가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미군은 동남아시아에서의 퇴각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한국에 대해서는 강력한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 남아공,정치망명자 3만명 사면/전원 본국송환 지원 조건부

    ◎유엔과 합의문서 교환 【제네바 AFP 로이터 연합】 남아공정부는 3만여명에 달하는 남아공의 정치적 망명자들에 대해 총사면을 단행하기로 유엔측과 합의했다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대변인인 실바나 포아여사가 16일 밝혔다. 포아여사는 이날 이같은 합의는 남아공정부가 5백여일간에 걸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과의 장기협상끝에 수천명에 달하는 남아공 정치망명자들의 본국송환을 지원하는 전제조건으로 이들에 대한 총사면을 단행하라는 유엔측의 요구를 수락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UNHCR의 아프리카담당 책임자인 니콜라스 브와키라씨는 UNHCR과 앨버트 낸리 제네바주재 남아공대사간에 총사면등에 관한 구두합의가 이루어졌으며 이날 늦게 합의문서에 대한 가서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발행되는 비즈니스 데이지도 한 남아공정부소식통을인용,프레데리크 데 클레르크 남아공대통령정부가 정치적 망명자들에 대한 총사면과 관련,UNHCR측과 『사소한 기술적 문제등에 이르기까지』완전합의에 도달했다면서 『양측이 빠르면 오늘중으로 망명자들의 본국송환등에 관한 합의문서에 서명할 수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 “「이」,헤즈볼라 지도자 곧 석방”/89년 피랍 오베이드

    ◎헤즈볼라도 “인질교환 용의”/이란통신 보도 【예루살렘·니코시아 AFP 로이터 연합 특약】 이스라엘이 억류하고 있는 헤즈볼라(신의당)지도자 셰이크 압둘 오베이드가 17일 이전에 풀려날 것이라고 보도된 가운데 이스라엘은 아랍인질들의 일방적인 석방을 고려하고 있어 인질문제의 해결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소리」라디오방송은 13일 『이스라엘은 중동의 인질문제 해결을 촉진하기 위해 일부 레바논 인질들을 일방적으로 석방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란 관영 IRNA통신도 베이루트의 정통한 회교 소식통을 인용,이스라엘 특공대에 의해 지난 89년 7월 레바논 자택에서 납치된 오베이드가 17일 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서방인질의 대부분을 억류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지는 강경파 회교단체 헤즈볼라는 오베이드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해왔다.프랑스 언론들은 오베이드가 석방될 경우 서방인질들이 석방되고 레바논에서 실종된 7명의 이스라엘 군인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7명의 이스라엘 인질중4명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명의 이스라엘 인질을 억류하고 있는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인질교환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팔레스타인 게릴라의 한 단체도 이스라엘군의 유해와 이스라엘이 억류하고 있는 아랍인질들을 교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미,무조건 석방 희망 【베이루트·예루살렘 AFP AP 연합】 미국은 레바논에 억류중인 서방인질이나 이스라엘에 억류돼있는 아랍 포로를 비롯,모든 인질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즉시 석방되기를 희망한다고 라이언 크로커 레바논 주재 미대사가 13일 밝혔다. 크로커 대사는 이날 파레스 부이에즈 레바논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뒤 기자들에게 『우리는 모든 인질들이 아무런 조건없이 즉각적으로 안전히 석방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공산국 가서야 새삼 깨달았다”

    ◎“체험의 중국연수”… 단국대 최정식군의 “개안”/“개방진통”… 빵과 이념갈등 확인/빈곤의 평등속 실업 날로 심화/우리기업 진출에 자부심… 백두산선 분단에 비감 『이제 막 시장경제체제에 눈을 뜬 12억 중국인들의 저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며 이미 중국 곳곳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입간판이 눈에 띄는등 국력신장을 새삼 되새기는 계기가 됐습니다』 정부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하계대학생국외연수계획에 따라 최근 중국에 다녀온 단국대공대 기계공학과 학생회장 최정식군(25)은 「죽의 장막」에 대한 첫 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최군은 학과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지난달 27일 단국대중국연수단(단장 한정련공대학장)일행 30여명과 함께 배편으로 인천을 떠나 지난 5일까지 9박10일동안 중국을 살피고 돌아왔다. 학과학생회장을 맡으면서 교내시위에도 종종 참가해 왔다는 최군은 『공산권국가를 대상으로 한 연수가 학생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것만 같아 처음 연수제의를 받고 무척 망설이기도 했으나 실제로 중국공산주의의실상을 체험해 본 결과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군은 특히 『연변대 경제학부 박승헌교수의 특강을 통해 중국경제의 변천사와 실상을 다소나마 깨우칠 수 있었다』면서 『중국이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개혁」밖에 없다고 강조한 박교수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개방은 이곳 저곳에서 목격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출퇴근할 때 북경시를 꽉 메운 8백50만대의 자전거와 1인당 3백30달러의 낮은 GNP.시민들의 허름한 옷차람,보잘것 없는 생필품등은 소련과 마찬가지로 중국경제의 낙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백두산 천지를 둘러본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고 회상했다. 『서울에서 38선과 평양을 지나 백두산에 오를 경우 하루면 될텐데 인천∼위해∼북경∼연길을 경유해서 장백산(중국사람들은 백두산을 이처럼 부름)에 오르다 보니 통일에의 염원이 더욱 강력해지더군요』 최군은 이어 『공산주의는 만인이 평등하고 고루 잘 사는 줄로만 알았으나 이번 중국연수를 통해 그곳에도 빈부의 격차와 실업등 구조적인 사회문제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교포학생들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등 공산권미수교국가와 소련,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등 과거 일당독재와 함께 사회주의를 맹신해 왔던 국가에 대한 연수를 계속 확대시켜 대학생들에게 현장교육의 기회를 늘려나갔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털어 놓았다.
  • 군헬기 동원,고립 피서객 구출/홍천서… 2시간 걸쳐 1백55명

    【홍천】 3일 상오 5시30분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화상대1리 속칭 물골강변에서 김기경씨(36·경기도 용인군 기흥읍 구관리) 등 피서객 1백55명이 불어난 강물에 고립돼 있는 것을 육군 204항공대가 헬기 2대를 동원,23차례에 걸쳐 2시간동안의 구출작전끝에 모두 무사히 구조했다. 피서객들은 강물이 불어나기 전인 지난달 30일까지 텐트를 치고 야영하던중 30일부터 내린 폭우로 고립돼 강물이 줄어들기를 기다려왔으나 대부분 식량이 동나 구조를 요청했다. 이에 앞서 2일 낮12시30분쯤 홍천군 북방면 하화계리 속칭 도둔부락 강 건너편에서 야영하던 조강평씨(28·서울 성북구 석관동 53의 308) 등 피서객 3명이 고립돼 있었으나 육군 5162부대가 헬기를 동원,무사히 구출했다.
  • 태풍속에서(사설)

    태풍 「캐틀린」과 당면해 있다.태풍을 처음 맞는것은 아니지만 이 「여름의 불청객」은 언제나 힘겹고 그 피해 또한 막심하다.자연재해중 가장 파괴력이 큰것이 태풍이다.해마다 세계에서 1만5천명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1백50억달러규모의 재산손실을 가져온다. 그렇다고 피해 볼 대안이 있는것도 아니다.오히려 온실효과에 의해 태풍의 위력은 더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이마뉴엘교수가 이 견해의 대표자다.태풍은 바닷물의 증발로 이루어지고 따라서 바다표면의 온도가 상승하면 그만큼 증발도 많아진다는것은 특별한 상식이 아니다.이 구조에서 온실효과의 주범인 대기중 탄산가스농도가 배로 늘어날때 해수면의 온도가 얼마나 허리케인의 에너지를 높여 주는가를 이마뉴엘교수는 연구했다.풍속을 최대 25%까지 상승시킨다는 결론을 내렸다.마이애미에 있는 미국립허리케인센터의 과학자들도 이 견해에 동의한다. 우리는 평균적으로 세계에서 태풍의 피해를 크게 입는 나라는 아니다.아시아에서는 필리핀과 중국이 해마다 7∼8개의특A급 태풍을 겪고 있다. 특급태풍이란 최대풍속이 초속 65m이상일 때를 말하고 이 파괴력은 히로시마 투하원폭 2만개 이상의 위력으로 묘사된다.그러나 우리도 A급태풍은 가끔 당면한다.사망실종자만 8백49명에 이르렀던 59년 「사라」와,역시 3백35명의 사망자를 냈던 87년 「셀마」를 기억하고 있다. 이번 「캐틀린」도 그 피해가 얼마이냐를 집계하기에 앞서 태풍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를 한번 더 생각하게 하고 있다.반복하는 이야기지만 좀더 과학화되어야 한다는 항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지자면 아직 태풍대응의 기재부터 빈약하다.태풍의 상황을 컴퓨터로 분석하게 되었다는게 우리 기상청의 3년전 뉴스이다.그러나 고층관측을 직접하는 장비들은 아직도 없다.전대륙권을 거의 연속적으로 관측하는 레이더 윈드 프로파일러(RWP)라든가,온도관측용 이동성부이도 물론 없다.태풍의 횟수가 적으니까 중국처럼 기상관측전용 인공위성까지 황급히 띄우지는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직접관측력이 없다면 중국이나 일본들과의 기상감시자료나마 더긴밀히 얻어내는 조직은 필요하다.세계기상기구(WMO)와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가 공동설립한 태풍위원회(TC)라는 것이 있다.이 위원회의 제23차 총회가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렸었다.이 자리에서도 가장 우선적인 일은 나라간의 밀접한 자료교류라는 것이었다.그후 어떤 자료교류시스템이 이루어 졌는지 알수 없다. 세계는 지금 태풍전문가들이 모여 태풍진로연구에 골몰해 있다.이 연구에서 미국과 소련이 함께 설정하고 있는 태풍실험 및 관측구역이 바로 한국과 일본이 포함된 북태평양지역이다.이에 대한 관심과 접근도 준비돼 있는지 묻고 싶다.태풍피해를 복구하는 일은 언제나 힘을 모으면 할수 있다.그러나 전문적이며 과학적인 대응은 우선 인력을 키워야 한다는 어려움을 갖고 있다.매년 태풍을 올 때에만 맞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아가 들여다 보는 체제가 필요하다.
  • 생기연 원장에 김영욱씨

    생산기술연구원은 26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으로 임명된 박우희원장의 후임에 김영욱아주대교수(사진)를 선임했다. 신임 김원장은 서울대 공대를 졸업,미테네시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한뒤 고려대교수,과학기술처 과학기술심의관과 총무처 정부전자계산소장 등을 역임했다.
  • 철길서 산화한 건널목 안내원(조약돌)

    ◎무단횡단 70대 할머니 구하려다 함께 참변 철도건널목에서 주민들의 안전을 돌보던 한 철도원이 주민의 생명을 구하려다 철도위에서 숨졌다. 26일 낮12시40분쯤 서울 동대문구 이문1동 이문 제1철도 건널목에서 이 건널목 철도안내원 김상배씨(45·경기도 의왕시 삼동221)가 차단기가 내려져 있는데도 차단기밑으로 빠져나가 건널목을 건너던 유덕성씨(70·여)를 구하려다 청량리발 춘천행 제477호 열차에 치여 유씨와 함께 그 자리에서 숨졌다. 김씨는 내려진 차단기앞에서 백색 신호기를 들고 열차에 신호를 보내던중 맞은편에서 건널목으로 들어오는 유씨를 발견,달려가 밀쳐내려 했으나 시속 1백여㎞로 달리던 열차를 피하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열차운전사 전영모씨(40)는 이들을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으나 김씨등을 피하지 못한채 건널목에서 50m쯤 더 지나간뒤 정지할 수 있었다. 김씨와 함께 24시간 근무를 하는 장종철씨(39)는 『김씨는 평소 말도 없이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해왔지요.진짜 좋은 선배였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는 지난 73년 철도보조원으로 근무를 시작,지난해 12월 이곳에 배치됐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장기 근속표창을 받았으며 올해 둘째아들 종철군(19)을 금오공대에 보내고 몹시 기뻐했다며 부인 문동례씨(44)는 오열했다.
  • 유고 내전불씨 크로아티아로

    ◎“민병대 해체”·“연방군 선철수” 공방/규모커 독립허용땐 연방해체 불가피 유고 내전의 불똥이 슬로베니아공화국에서 크로아티아공화국으로 넘어갔다. 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공대통령은 22일 오리드에서 열린 유고연방평화협상에서 크로아티아 민병대의 무장해제 요구를 거부하고 퇴장한뒤 크로아티아인들에게 TV연설을 통해 『수일내에 있을지도 모를』 연방군과의 전쟁에 대비할 것을 촉구했다.투즈만대통령은 연방군이 슬로베니아에서 철수하는 것처럼 크로아티아에서도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앞으로 어떠한 평화협상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강경자세를 보였다. 이같은 요구에 대해 세르비아공화국은 크로아티아공내의 소수민족인 세르비아인들을 보호하고있는 연방군이 철수할 경우 이들에 대한 탄압으로 내전이 발생,피바다를 이룰것이라며 일축해 발칸반도에 또다시 전운이 드리워지고있다. 유고연방의 주도권을 쥐고있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공화국 민병대가 먼저 무장해제할 것이냐,연방군이 먼저철수할 것이냐를 놓고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버티며 평화를 거부하는 세력이라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가운데 크로아티아공 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지난 5월이후 1백여명의 희생자를 냈다. 지난 6월 25일 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언한 2개공화국중 슬로베니아가 연방군과의 내전으로 총64명의 희생자를 낸뒤 국경통제권 회복과 연방군 철수라는 「승리」를 얻어내면서 독립준비단계로 접어든 반면 크로아티아는 오히려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슬로베니아공은 지역적으로 북서부쪽에 치우쳐있고 규모도 적어서 최악의 경우 떨어져나가도 큰 지장이 없지만 크로아티아공은 중심부에 위치해있고 규모도 6개 공화국중 2번째로 크며 메시치연방간부회의의장(대통령)과 마르코비치총리 연방정부에 요직에도 크로티아인들의 배치해 돼있는 등 차이가 있기때문에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크로아티아공의 독립은 그야말로 유고연방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슬로베니아공은 인구 2백만명가운데 대부분이 슬로베니아인이어서 소수민족문제가 거의 없지만 크로아티아공 인구 4백50만명중에 60만명의 세르비아인들을 비롯,소수민족들이 많기때문에 이들에 의한 연쇄적 독립투쟁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세르비아인들은 이미 자신들의 집단거주지역을 크로아티아공에서 분리,세르비아공으로 편입시킬 것을 결의했고 세르비아공도 크로아티아공이 독립할 경우 세르비아인 집단거주지역을 내놓아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크로아티아공은 물론 이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사이의 뿌리깊은 적대감과 이를 부추기는 양측의 언론도 평화적인 위기해결을 어렵게 만드는데 한 몫 하고있다.그리스정교도인 세르비아인과 가톨릭을 신봉하는 크로아티아인들은 민족 언어 종교가 모두 다를 뿐 아니라 유고왕국으로 통합되기 전인 1차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소속으로 세르비아왕국과는 적대관계에 있었다.세르비아인들은 2차대전 당시 크로아티아인들로 구성된 친나치 파시스트괴뢰정권에 의해 수십만명의 세르비아인들이 학살된 쓰라린 기억을 되새기며 크로아티아의 파시즘 부활을 경고 하고 있다.크로아티아인들은 공산화이후 연방의 주도권을 잡고 압제로 일관해온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방해하는 것은 기득권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패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같은 복잡성때문에 크로아티아의 독립행보는 슬로베니아와는 또 달리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EC와 미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중재노력과 유고연방군부의 반응등 변수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한바탕 내전이 불가피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영제 호크기 20대/92∼93년에 도입

    국방부는 19일 지난 89년 율곡사업(전력증강사업)의 하나로 도입이 결정된 영국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사제 제트훈련기 호크60기 20대가 92년과 93년 한국에 인도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호크60 1개대대 20대중 14대가 92년6월부터 연말까지,나머지 6대는 93년에 인도되며 도입가격은 대당 1천1백만달러씩 모두 2억2천만달러라고 덧붙였다. 호크60은 BAE사가 수출용으로 최초 제작한 호크 50의 개량형으로 복좌훈련기로 유사시 30㎜ 또는 12.7㎜기관포와 로켓포 각종 폭탄 및 사이드와인더 공대공미사일을 장착,대공·대지공격용 전투기로도 이용된다.
  • 의대교수 내년부터 공채/교육부 국회자료

    ◎「부조리」막게 대학별로 시험/“박사도 최소 5천만원 있어야/교수끼리 금품수수·청탁 관례화”/일부 사대/인턴·레지던트 선발 개선책도 검토 앞으로 의과대학의 교수는 공개경쟁시험을 통해 채용되게 된다. 또 인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각 대학에 「채용인사위원회」가 구성된다. 교육부는 17일 이번 제1백55회 임시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이같이 보고하고 각 대학이 교수를 채용할 경우,이에대한 지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또 의과대학의 인원 및 레지던트 선발과정에 대해서는 주무부처인 보사부가 선발시험운영등에 관한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이같은 계획은 빠르면 내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교육부가 이처럼 의대교수 채용방법과 절차를 강화시킨 것은 최근 이화여대부속병원 피부과장 국홍일교수(54)의 뇌물수수 사건을 계기로 의학계에 만연돼 있는 뇌물수수관행을 뿌리뽑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국교수는 지난달 29일 레지던트 및 조교수임용을 둘러싸고 임용희망자들로부터 1억5천3백만원의 뇌물을 받은혐의로 서울지검에 전격 구속됐었다. 지금까지 레지던트는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인턴성적을 합산해 선발해온 반면 조교수 이상은 공개경쟁시험을 치르지 않고 각대학에 설치된 인사위원회에서 연구논문과 면접시험만으로 뽑아온게 관례였다. 이 때문에 의학계에서는 같은 교수들끼리도 청탁과 함께 수백만원의 금품을 주며 특히 교수를 채용할 때에는 억대의 뇌물이 오가는 것이 공공연한 관행으로 굳어져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교수채용과정에서의 금품수수사례는 당사자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 밝혀지기 어려우나 인문사회계열보다 의학계와 예체능계의 비리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다. 또 서울에 있는 유명대학과 지방대학사이에도 뇌물성금액이 현격한 차가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사립대에서는 재단측이 교수를 채용할때 공공연히 금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공대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박모씨(32)도 『올해 초 지도교수에게 세배를 갔다가 박사학위를 취득해도 사립대학의 교수가 되려면 최소한 5천만원 이상 들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우선 2천만∼3천만원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경쟁대열에 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곳 저곳 손을 벌려 돈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 크로아공서 유혈사태/세르비아인 특공대,경찰과 충돌

    ◎1명 사망·9명 부상 【베오그라드 AFP 로이터 연합 특약】 유고사태를 논의키 위한 유고연방간부회와 각 공화국 대통령의 연석회의가 세르비아측의 거부로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크로아티아공화국내에서는 세르비아인들로 구성된 타격특공대가 크로아티아경찰과 충돌,크로아티아경찰 1명이 죽고 9명이 부상했다. 세르비아인의 특공대와 크로아티아경찰의 충돌은 크로아티아 전역에 걸쳐 발생하고 있으며 리피크마을의 충돌에서 경찰 1명이 세르비아인에 의해 피격당해 숨졌다. 한편 인종간 충돌을 종식시키기 위한 16일 연방간부회의 확대모임은 세르비아와 보이보디나 코소보 몬테네그로등이 「슬로베니아의 협박과 베오그라드를 수도로 인정하지 않는 데」대해 반발,회담에 불참함으로써 무산됐다.
  • 대학의 자율화·민주화 “큰걸음”/서울대 직선총장후보 첫 탄생

    ◎투표 90.7% 참여/김종운·김영국교수 피선/“이처럼 공정한 선거는 난생 처음”/개표장의 교수들,환한 웃음… 박수/새달 13일 이전 대통령이 임명 서울대가 개교45년만에 처음으로 16일 전체교수들의 직접 투표로 인문대 김종운교수(62·영문학),사회대 김영국교수(61·부총장)를 총장후보로 선출했다. 이로써 지난달 13일부터 시작된 조완규총장의 후임인 제19대 총장을 선출하기 위한 공식선거일정은 일단락되고 교육부의 추천을 통한 대통령의 최종임명절차만 남겨놓았다. 이날 선거는 투표권을 가진 전임강사이상 1천1백31명의 교수 가운데 1천26명의 교수들이 참가,90.7%의 높은 투표율을 보여 교수들의 관심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개표결과,김교수가 6백38표,김부총장이 5백66표로 모두 1차투표에서 과반수이상을 획득,전용원공대교수(4백19표)와 이광호의대교수(3백61표)를 따돌리고 후보로 확정됐다. 이날 선거는 상오7시부터 11시까지 4시간동안 관악·연건·수원등 서울대의 3개캠퍼스에서 비밀투표로 치러졌으며 서울대문화관소강당에 투표함이 집결된 하오1시부터 순조롭게 개표가 진행됐다. 투표방식은 교수1명이 2인 연기명으로 후보를 적어내 과반수를 얻은 두명의 후보를 선출키로 하고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득표자 3명을 대상으로 재투표를 실시할 예정이었나 1차투표에서 과반수득표자 2명이 나와 재투표는 없었다. 개표시작 1시간만인 이날 하오2시쯤 총장후보선정위원회 이일해위원장이 개표결과를 발표,이들 두명이 최종후보로 확정됐음을 공식 선언하자 주의깊게 개표과정을 지켜보던 교수들은 일제히 환호성과 박수를 치며 『될 사람이 됐다』고 환영했다. 이날 투표는 캠퍼스마다 이른 아침부터 교수들이 줄을 이어 투표소를 찾아 차례를 기다렸다가 밝은 표정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등 직선총장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음을 보여줬다. 이처럼 교수들의 참여가 높았던 것은 현 18대 조총장까지 이른바 「관선총장」으로 이어져온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교수들의 손에 의해 총장후보가 직접 선출되게 돼 민주화추세에 부응하는 대학의 자율권을 확립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널리퍼져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 이날 상오9시30분쯤 투표를 한 사회대 한완상교수(사회학)는 『국회의원선거등 그동안 많은 선거를 치러봤지만 이처럼 공정하고 깨끗이 치러진 선거를 하기는 처음이어서 더없이 기쁘다』면서 『누가 되든지 첫직선총장인 만큼 내외적인 압력에서 벗어나 소신있게 대학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대학을 발전시켰으면 한다』고 바랐다. 따라서 조총장의 임기가 끝나는 다음달 13일이전에 대통령에 의해 이들 가운데 1명이 총장으로 임명되게 되나 직선의 의미와 다수 득표자를 중시한다면 김교수가 서울대의 첫 직선총장으로 취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두 총장후보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김종운교수 ▲1929년 서울출신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졸 ▲미국 뉴욕대학 영문학석사,서울대 문학박사 ▲서울대 기획시장(74∼75년) ▲교무처장(80∼82년) ▲인문대학장(87년) ▲부총장(87∼89년) ◇김영국부총장 ▲1930년 인천출신 ▲서울대 정치학과졸 ▲서울대 정치학박사 ▲서울대 학생처장(78∼79년) ▲사회과학대학장(80∼81년) ▲대학원장(87∼89년) ▲부총장(89∼현)
  • 런던 G7회담 이모저모

    ◎부시,“지금은 소에 백지수표 줄때 아니다”/“현금 기대”·“기술지원 바라” 소측 엇갈린 반응/경호비용 36억원… 일선 영토반환 홍보 분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한 측근은 소련의 경제개혁은 서방국가로부터의 다른 종류의 지원뿐 아니라 금융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또 다른 측근은 이번 G­7정상회담에서 소련은 현금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프게니 프리마코프 소련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14일 밤 미국 NBC TV와의 회견에서 『우리는 금융지원을 포함한 여러측면의 지원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또다른 측근인 이고르 말라셰ㄴ코는 소련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현금을 기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프리마코프는 15일 영국 BBC방송과의 회견에서 서방원조 없이는 고르바초프의 지위도 위협받고 소련이 「사회적 봉기」에 처할 것이라면서 원조를 호소. ○부시,“돈 원하면 헛수고” ○…부시 미 대통령은 14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서방 지도자들에게 거액의 돈을 원한다면 헛수고가 될 것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파리에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한후 런던으로 떠나기 앞서 기자들에게 미국은 어려운 소련 경제를 돕기 위해 기술지원을 해줄 수는 있으나 『지금은 백지수표 시대가 아니다』라고 밝히면서 이같이 말했다. ○…서방선진공업 7개국(G­7)들은 이번 런던 정상회담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 대한 확실한 지원신호를 보내야 할 것이라고 지아니 미켈리스 이탈리아 외무장관이 14일 밝혔다. 한편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소련에 대해 서방측이 재정원조를 제공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서방선진7개국중 독일,프랑스,이탈리아가 동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미국,일본,영국,캐나다 등은 「선기술원조제공」의 원칙아래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치안당국은 이번 회담 안전확보를 위해 약3백만파운드(36억원상당)의 비용을 투입. 정상회담에 참가하는 각국 정상과 외무·재무장관등 귀빈들의 안전을 위해 약4천명의 경찰이 회담장인 랭카스터하우스를비롯,시내 요소에 배치됐으며 대테러특공대인 SAS도 비상대기 상태. ○…7개국 정상회담이 열리는 랭카스터하우스는 84년 정상회담에 이어 두번째로 G­7회담을 치르는 런던 중심가에 위치한 전통 깊은 건물. 정상회담외에 짐바브웨 독립을 탄생시킨 유명한 로디지아회담(79년),그리고 최근에는 나토정상회담(90년)이 열렸다. 이번 정상회담은 과거 쇼팽이 빅토리아여왕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가졌던 「뮤직 룸」에서 열리며 재무장관회담은 「롱 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조지 부시미대통령은 G7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회의 하루전인 14일 런던에 도착,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무장관의 영접을 받았다. 부시대통령은 부인 바바라여사와 함께 이날 대통령 전용기인 미공군 1호기편으로 파리를 출발,런던 히드로공항에 도착했는데 이에앞서 부시대통령은 프랑스 당부이예에서 걸프전 당시 다국적군으로 활약했던 미셸 로크조프레프랑스군 사령관에게 공로훈장을 수여했다. ○…엘리자베스2세 회관은 G­7정상회담장인 랭카스트 하우스에서 1㎞ 거리에 있는데 이 회관의 6층 빌딩 전체가 이번 행사의 보도본부(미디어 센터)로 쓰이고 있다.3천여명의 기자들이 밤낮없이 이곳을 드나들며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느라 부산하기 짝이 없다. 미디어센터 옆건물에 홍보팀을 포진한 일본은 소련에 빼앗긴 북방영토를 되돌려 받아야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일본은 지난 4월 고르바초프의 일본 방문때 발표된 일소공동코뮤니케를 복사해 보도자료로 배부했는데 북방영토 언급부분마다 밑줄을 그어놓았다.이 자료와 함께 「일본 북방영토」라는 영문 화보도 뿌려졌다.
  • 한진,제동목장 사회에 기부/제주소재 2백98만평

    ◎그룹 결정/서울대·제주대·21세기연 등에/비행훈련장 92만평은 재심 청구키로 한진그룹은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판정된 제주도의 제동목장 부지 총 3백90만평중 2백98만평을 제주대와 서울대,장학재단인 21세기한국연구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머지 92만평에 대해서는 민간조종사 양성을 위해 지난 89년 교통부의 승인을 받아 비행장 확장사업을 추진해왔던 점을 들어 주거래은행인 한일은행에 재심을 청구했다. 한진그룹은 15일 『제동목장은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판정을 받긴 했으나 금전적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각별한 애정으로 개척한 초지라는 점을 감안,국가사회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매각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기부된 부동산은 제주대(70만평)와 서울대(60만평)에 1백30만평,21세기한국연구재단에 1백68만평이다. 한진그룹은 그러나 『나머지 92만평은 민간조종사 양성의 중요성과 시급함을 감안할때 재심이 필요하다고 판단,주거래은행에 재심을 청구키로 했다』고 말하고 『한진의 입장에선 당연히 구제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룹 관계자는 문제의 부지가 목장용지이기 때문에 농과대학이 있는 국립대에 기부,축산발전을 위해 연구사업을 펼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한편 청소년 가장 지원등 사회불우계층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펴는 장학재단을 지원한다는 뜻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진측은 90년 정부의 5·8조치에 따라 비업무용으로 판정된 제동목장 땅 4백61만평 가운데 10만평을 인근 교래리 주민들에게 매각한데 이어 미개간지 61만평을 성업공사에 매각 의뢰했으나 나머지 3백90만평은 목초지 보존과 조종사 양성을 위한 필수부지라는 점을 들어 매각을 보류해 왔었다. 한진이 운영하는 인하대와 항공대가 기부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비업무용 부동산을 편법으로 계속 소유하려 한다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취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 총장후보 5명 선출/서울대/16일 최종 2명 선출

    서울대총장후보선정위원회(위원장 이일해수학과교수)는 9일 하오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제19대 총장후보로 김영국부총장(61·사회대정치학과)등 5명을 선정했다. 후보선정위는 이날 44명의 선정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5일 선정된 9명의 총장예비후보중 후보를 사퇴한 이수성법대교수(52)와 하두봉자연대교수(60)등 2명을 제외한 7명의 후보들로부터 소견을 들은뒤 연기명비밀투표를 거쳐 김영국부총장을 비롯,김종운인문대교수(62·영문과·전부총장),이광호의대교수(60·전의대학장),전용원공대교수(60·자연공학과·전교수협의회회장),조순전부총리(63·전경제학과교수)등 5명의 후보를 압축했다. 후보선정위는 이에따라 11일과 12일 캠퍼스별로 이들 후보와 교수들의 간담회를 가진 뒤 16일 전임강사 이상 전체교수들의 투표로 최종후보 2명을 뽑아 교육부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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