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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의회 한국전 정전 60년 기념 발언 봇물

    미국 연방의회 본회의장에서 한국전쟁 정전 60주년(7월 27일)을 앞두고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의회에 따르면 윌리엄 키팅(민주) 하원의원은 전날 본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 “정전 60주년을 기념하면서 한국의 평화를 수호하고 미국의 동맹을 지킨 미 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 해안수비대 장병들의 사심 없는 행동을 기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월이 지날수록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에 오래도록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딘 헬러(공화) 하원의원도 의사진행 발언에서 “한국전쟁은 종종 미국의 ‘잊힌 전쟁’이라고 불리지만 국내외에서 자유를 수호하다 목숨을 잃은 장병들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브라이언 히긴스(민주) 하원의원은 지난 22일 본회의에서 “한국전쟁 이후 평화협정도 체결되지 않았다. 한국의 비무장지대에는 군대가 배치돼 있고 때때로 총격도 벌어지면서 많은 장병이 자유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전쟁의 별칭은 ‘잊힌 전쟁’인데, 이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위한 ‘제대군인원호법’도 없고, 본국 귀환 축하행사도 없었으며, 종전일도 없기 때문”이라면서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병의 공로를 기린다”고 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정전 60년… 구로의 두 영웅 다시 살다

    정전 60년… 구로의 두 영웅 다시 살다

    스물한 살에 자원 입대한 지 불과 일주일. 7사단 8연대 1대대 1중대 화기소대 소속으로 낙동강 전선, 그것도 영천전투에 투입됐다. 전황은 암담했다. 경북 일부와 경남 지역을 제외하곤 모두 북한군 손에 떨어졌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한 달 넘게 밀고 밀리는 공방이 펼쳐지고 있었다. 1950년 9월 4일 이른 저녁 영천 냇가 동남쪽 언덕 참호에 몸을 담았다. 북한군은 칠흑 같은 어둠을 틈타 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를 건너 언덕을 기어오르며 총을 쐈다. 우리도 총을 쏘았다. 조준할 새도 없었다. 총알이 어디쯤 날아가 박히는지 보지도 못했다. 두려움이 컸다. 총탄이 떨어지자 육박전이 시작됐다. 함성과 착검 소리가 난무했다. 대검을 소총에 꽂고 참호에서 튀어 나갔다. 장작 패는 도끼처럼 소총을 휘두르고 찌르고 막기를 거듭했다. 발로 차고 차였다. 난리통에 참호로 굴러 떨어지며 정신을 잃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 8중대를 찾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몸 위로 무너져 내린 병사들을 헤치며 기어 나왔다. 여기저기서 위생병을 찾았다. 전장은 어느새 울음소리, 사람 찾는 소리로 뒤섞였다. 그렇게 동이 트고 있었다. 삶에서 가장 긴 밤이었다.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던 박주성(85)씨의 이야기다. 영천전투를 기점으로 전세가 뒤집히며 박씨는 북진의 선봉에 섰다. 파죽지세로 평양에 입성했다. 하지만 압록강을 앞두고 중공군과 마주쳤다. 격전을 벌이며 묘향산 인근 용문산 고지에 태극기를 꽂기도 했다. 기쁨도 잠시. 중공군에 잡혀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우 12명과 함께 지옥 같았던 하풍광산 포로수용소에서 탈출,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정전 60주년, 전쟁 영웅의 생활은 녹록지 않다.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에서 얼마 되지 않는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원망은 없다. 남은 생에 소원이 있다면 중부전선 어딘가 누워 있을 동생의 유해를 찾는 것이다. 한 달 먼저 입대했던 네 살 터울 동생은, 박씨가 훈장을 받던 그해, 1952년 열아홉 나이로 전사했다. 박씨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구술 자서전(왼쪽)이 최근 출간됐다. 생생한 참전 경험과 회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 전쟁 이후 삶까지 담았다. 포항·영덕 전투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명수(87)씨의 자서전(오른쪽)도 함께 나왔다. 이씨는 북한군 전차 3대를 파괴하고 포로로 잡힌 전우를 구출하는 특공 임무를 이끌어 대한민국 사상 병사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영웅이다. 그는 현재 구로구 소재 한 요양원에서 부인의 간호를 받으며 병마와 싸우고 있다. 자서전은 이성 구로구청장의 아이디어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지역 현장을 돌다가 이들의 삶을 접하고는 기록으로 남겨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 구청장은 “그 큰 공훈에 비하면 작은 것이지만 함께 전장에 섰던 다른 많은 이들의 공덕까지 기록한 것으로 받아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재벌가 2·3세 어울려 ‘대마초 흡연·유통’ 일당에 실형

    재벌가 2, 3세와 함께 대마초를 유통하거나 상습적으로 피운 일당에 실형이 선고됐다. 인천지법 형사13부(김상동 부장판사)는 대마초를 상습적으로 피운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기소된 모 유명 출판업체 대표의 장남 우모(33)씨 등 4명에게 징역 6월∼1년에 집행유예 2년 등을 각각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현대가 3세 정모(28)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마초를 유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국계 미국인 브로커 최모(26)씨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120여만 원 추징을 명령했다. 우씨 등은 지난해 9월쯤 경기도 오산 미 공군기지 소속 주한미군 M(23) 상병이 군사우편으로 밀반입한 대마초 944g 가운데 일부를 최씨로부터 건네받아 피운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M 상병이 원두커피 봉지 안에 숨겨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여온 대마초는 최씨를 거쳐 이들에게 건네졌다. 우씨는 지난 2011년 당시 공연기획사를 함께 운영하던 정씨 등과 함께 아버지의 출판사 사무실 등지에서 대마초를 피운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수차례에 걸쳐 대마를 매수하고 흡연했다”며 “마약류 범죄가 사회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에 비춰 보면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피고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같은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우 찾아 60년 만에 방북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조종사 출신 88세 미국인이 동료 유해를 찾아 60년 만에 북한을 방문해 눈길을 끈다. 19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20일 미국을 떠나 평양으로 향하는 주인공은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호 전투에서 해군 조종사로 콜세어 항공기를 몰며 항공화력지원 작전을 수행했던 토머스 허드너 중위. 그는 당시 동료이자 미 해군 최초의 흑인 조종사인 제시 브라운 소위가 몰던 콜세어가 중공군에 피격돼 추락했음을 알고 그를 구하러 달려갔다. 그는 자신의 콜세어를 근처 눈밭에 동체 착륙시키고 브라운 소위를 구하려 했지만 영하의 추위 속에서 브라운 소위의 다리가 부서진 기체에 끼여 결국 구조에 실패했다. 비록 구출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의 구조 노력이 알려져 1951년 4월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은 허드너에게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허드너는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뒤 중령으로 전역했다. 그러던 중 허드너의 전기 집필을 문의해온 작가 애덤 마코스로부터 방북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들은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비 설립자이자 북한 군부와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재미교포 김지연씨를 찾았고, 김씨는 허드너와 마코스, 그리고 장진호 전투에 함께 참전했던 리처드 보넬리 등과 함께 유해 발굴단을 꾸렸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한 계단씩 오르면 꿈은 이루어진다”

    “한 계단씩 오르면 꿈은 이루어진다”

    김영민(56·중장) 공군교육사령관이 18일 모교인 경남 하동군 하동고에서 특강을 해 후배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김 사령관은 교직원과 1~3학년 350명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오전 10시 30분부터 ‘행복한 대한민국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 하동군 적량면 서리 출신인 그는 1975년 하동고를 나와 공군사관학교에 28기로 입학했다. 김 사령관은 강의에서 고교 후배들에게 “한 계단 한 계단 최선을 다하다 보니 지금 위치까지 오게 됐다”면서 “여러분도 현재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갖고 차근차근 열심히 밟아 올라가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사령관의 고교 시절 성적은 졸업생 57명 가운데 최상위권으로 중학교 때부터 공군 조종사라는 꿈을 갖고 사관학교로 진학했다는 게 하동고의 설명이다. 김 사령관은 공군대학 총장, 공사 교장을 거쳐 지난 4월 30일 제33대 공군교육사령관에 취임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러 폭격기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 접근 까닭은

    러 폭격기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 접근 까닭은

    ‘베어’(곰)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Tu95 MS(사진) 2대가 지난 15일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접근했다가 우리 공군 전투기의 저지를 받고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KADIZ는 미 태평양 공군사령부가 1951년 한반도 주변국의 항공기가 무력충돌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설정한 공역(空域)이다. 국제법상 영공은 아니지만 외국 항공기가 진입하려면 우리 군 당국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16일 “어제 오전 11시쯤 러시아 Tu95 폭격기가 동해 상공에 설정된 KADIZ로 진입을 시도했다”면서 “공군은 F15K 전투기 2대를 긴급 출동시켜 감시·저지비행을 했다”고 밝혔다. 군 당국에 따르면 F15K는 즉각 러시아 폭격기에 “KADIZ 내로 비행하지 말라”고 경고통신을 보냈다. 이에 러시아 폭격기는 10여분 뒤 기수를 돌려 동해 공해상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본 전투기도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에 출격하는 등 긴장감이 감돌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러시아 폭격기가 동해 KADIZ 쪽으로 비행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면서 “정찰비행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최대 시속 800㎞, 항속거리 1만 2000㎞의 제원을 갖춘 Tu95는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으며 2010년 10월에도 동해 KADIZ를 침범, 11시간 동안 정찰비행을 했다. 당시 공군 KF16 전투기 4대가 출격했다. 2011년 9월에도 Tu95 정찰기가 KADIZ와 JADIZ를 침범, 한국과 일본 전투기 10여대가 긴급 발진했다. 이번 KADIZ 접근과 관련, 러시아 국방부는 이타르타스통신 등을 통해 “Tu95 MS의 동해 비행은 동부군관구 전투태세 점검 훈련의 일환이며 7시간 15분 비행하는 동안 일부 노선에서 한국 F15K 전투기와 일본의 F4J, F15J, F2A 전투기 등이 함께 날며 경계 비행을 펼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군 전투기 비행은 공해상에서의 상공 이용에 관한 국제 규범을 엄격히 준수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평화헌법’/문소영 논설위원

    일본 헌법은 ‘평화헌법’이라고 불린다.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을 포기한다고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미 군정하에서 1946년 11월 3일 대일본제국헌법(大日本帝國憲法)을 개정했다. 평화헌법의 핵심은 제9조의 1, 2항에 들어 있다. 1항에는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 발동으로서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는 영구히 포기한다”고 돼 있다. 2항은 “전항(1항)의 목적 달성을 위해 육·해·공군 등 기타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평화헌법에 대한 균열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 군정이 일본 내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경찰예비대를 창설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예비대는 1952년 보안대를 거쳐 1954년 자위대로 개편됐다. 자위대는 사실상 군대이지만 군대라고 부르지 못한다. 일본은 2012년 기준 세계 국방비 순위 6위의 ‘군사대국’이다. 침략전쟁과 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해 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엊그제 나가사키 국제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9조를 개정하고, (자위대의) 존재와 역할을 명기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압승이 예상되자 그동안 자제해 온 개헌론을 재점화한 것이다. 개헌에 대한 그의 의욕은 두 달 전 도쿄 돔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시구식에 등번호 96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개헌 요건을 규정한 헌법 제96조를 손질해 개헌을 수월하게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돼 논란을 낳았다. 제96조 1항에는 “헌법 개정은 각 의원의 총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국회가 발의하고… 국민투표 등에서 과반수 찬성을 필요로 한다”고 돼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회의원 3분의2 이상을 개헌 발의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개헌 ‘적정선’을 과반수 찬성으로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자민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아베 총리의 개헌 시도는 2007년 1기 집권 때부터 있었으니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일본은 1946년 평화헌법이 나오게 된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 평화헌법은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에 따른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반성이 결여된 일본의 재무장은 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깨뜨린다. 따라서 일본의 재무장은 프랑스 등 유럽이 용인한 서독의 재무장 사례처럼 한국과 중국 등 이웃나라의 최소한의 동의와 용인이 필요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아프고 아련한, 재미 이산가족·외국인 간호사의 한국전쟁

    아프고 아련한, 재미 이산가족·외국인 간호사의 한국전쟁

    아리랑TV는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전쟁의 비극을 다룬 4부작 다큐멘터리 ‘미싱’(Missing)을 17일부터 4주간 수요일 오전 9시 방송한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각. 판문점 동편과 서편 출입구에서 제복 차림의 무표정한 사람들이 들어와 지정된 자리에 앉은 뒤 5조 63항으로 작성된 문서를 검토하고 서명한다. 주인공은 유엔군 수석대표인 미 육군 중장 윌리엄 케이 해리슨과 북한군 및 중공군 수석대표인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이다. 두 사람은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협정에 관한 협정’이라는 긴 제목의 문서에 서명한다. 한글, 영어, 중국어로 각각 작성된 문서에 서명하고 이를 교환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2분. 세계 최장의 정전 체계가 비롯된 한국 정전협정에 서명한 잉크는 말라버려 빛바랜 지 오래지만, 여전히 가슴 시린 사연을 폐부 깊숙이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다큐멘터리 ‘미싱’은 그들의 비극을 그린다. 1부에서는 재미 이산가족 이야기가 펼쳐진다. 재미 이산가족들은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만으로 남북 이산가족상봉 협상 대상에서 제외돼 생이별의 아픔을 60년 동안 참아내야 했다. 상당수가 가족을 만나겠다는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 2부 ‘전장의 나이팅게일’은 외국인 간호사들의 사연을 전한다. 외국인 간호사들은 포탄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부상병을 돌보다 숨져간 동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3부는 전쟁고아를 살리려고 군법까지 어겨가며 사선을 넘나들었던 어느 미군 장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블레이즈델 대령은 중공군의 남하로 서울이 점령당하기 직전 한 학교에 피신해 있던 고아 1000여명을 제주도로 후송한다. 그를 ‘아버지’로 기억하던 고아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전한다. 4부에서는 세계 분쟁지역 아이들을 돕는 한국인들을 조명한다. 시리아는 60년 전 한국의 상황처럼 3년째 내전이 이어지고 있는 곳. 이곳의 소녀 디나는 부모가 처참하게 학살되는 모습을 목격한 후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디나를 구하기 위해 한국인들이 나섰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6·25 참전한 동생 61년 만에 유골로 돌아왔다

    6·25 참전한 동생 61년 만에 유골로 돌아왔다

    열아홉 나이에 6·25전쟁에 참전했던 그가 가족 품에 돌아오는 데는 꼬박 61년이 걸렸다. 그 사이 누나는 팔순을 훌쩍 넘겼고, 여동생은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됐다. 1952년 6월 휴가를 나온 그는 고향(경북 문경)에 고구마를 심어 놓고 “가을에 캐서 맛있게 먹어라”라고 당부한 뒤 부대로 돌아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정철호(1931~1953) 이등상사 이야기다. 정 상사의 손때 묻은 유품이 누나 정상남(87), 여동생 정경분(68), 조카 정용수(55)씨에게 전달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단장 박신한 대령)은 11일 유해발굴 당시 정 이등상사의 관을 덮었던 태극기와 유품, 전사자 신원확인서 등을 울산 울주군의 정용수씨 자택에서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오빠의 흔적을 맞이하려고 대구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여동생 정씨는 “1953년 전사통지서를 받은 어머니께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휩싸였다”면서 “1979년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의 이름을 부르시는 등 평생을 한으로 보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고령인 누나는 복받치는 감정에 말문을 잇지 못했다. 고인은 1950년 11월 27일 입대했다. 유족들은 ‘고인이 총명했고, 당시 시골에서는 드물게 중학교에 다녔다. 영어도 곧잘 했다’고 기억했다. 평남 영원전투와 호남지구 공비토벌작전, 횡성전투 등에 나섰다. 1953년 4월 상이기장을 받았고, 1954년 10월에는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될 만큼 전공을 세웠다. 정 이등상사의 유해가 발굴된 건 지난 5월 21일이다. 정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7월 15~18일 중공군 60군 181사단을 상대로 국군 8사단이 한 치의 땅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 철원 별우지구 현장에서 국유단이 유해와 철모, 야전삽 등을 발굴한 것.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픈 고인의 간절한 바람 덕일까. 유해와 함께 드러난 부식된 나무도장을 정밀감식한 결과 ‘鄭喆鎬’(정철호)란 이름이 나왔다. 병적기록부를 추적한 결과 6명의 동명이인이 확인됐다. 참가 전투 지역을 바탕으로 범위를 좁힌 국유단은 조카와 여동생의 DNA 시료를 채취해 혈연관계를 최종 확인했다. 정 이등상사의 유해는 유가족과의 협의를 거쳐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FX사업, 유찰뒤 분할매수로 선회?

    8조 3000억원을 투입, 공군의 노후 전투기 60대를 최신 기종으로 교체하는 차기전투기(FX) 사업이 기로에 섰다. 지난 5일 입찰 잠정 중단을 선언했던 방위사업청은 오는 17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FX 사업 유찰을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F35A(록히드마틴), 유로파이터(EADS), F15SE(보잉) 등 후보 기종이 제시한 입찰 가격이 총사업비 8조 3000억원을 넘은 탓에 추가 입찰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11일 “지난달 18일부터 지난 5일까지 3주간 55회의 입찰을 했지만, 모든 업체가 (8조 3000억원을) 오버해 살 수 있는 ‘물건’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17일 방사추위에 안건을 올려 재입찰을 할지, 아니면 유찰시킨 뒤 사업공고를 다시 낼지 최종 결정하게 된다”면서 “기본 방침은 사업비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사업 계획을 다시 짜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방사청은 최근 기획재정부에 사업비 증액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사업비 내에서 가능한 대안은 분할 매수와 구매 대수 축소뿐이다. F4, F5 등 노후 전투기 60대를 대체해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변화가 없어서 분할 매수에 무게가 실린다. 김대중 정부 시절 차기 전투기로 F15K가 낙점을 받을 때도 1차(40대)와 2차(21대)로 나눠 매수했다. 하지만 분할 매수를 하면 대당 가격이 올라간다. 사업 공고부터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기 때문에 전투기가 우리 군에 넘어오는 기간이 최소 6개월 이상 지연된다. 방사청 관계자는 “사업 공고를 다시 내도 후보 기종에 대한 평가와 절충교역 조건 등은 완료된 상태이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곧바로 가격 협상을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국방부 등이 탈락 위기에 직면한 F35A를 염두에 두고 ‘유찰 후 분할 매수’로 선회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아직 개발 중인 F35A의 60대 가격이 FX 총사업비를 초과하기 때문에 탈락이 확실시됐기 때문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케이블 하이라이트]

    ■계절의 식탁(올리브 밤 9시) 단순히 입에 맞는 음식보다는 몸에 좋은 음식, 이 땅에서 제대로 키운 음식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지금 우리가 먹어야 할 이 땅의 좋은 음식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이 땅에서 제대로 키운 음식 재료를 산지에서부터 식탁까지 소개한다. 이번 주는 더운 여름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음식 재료로 장어의 모든 것을 공개한다. ■에어 에이스(내셔널지오그래픽 밤 11시) 2차 대전의 에이스 파일럿 로빈 올즈 대령은 미 공군이 북베트남에 의해 열세에 몰린 베트남전에 투입된다. 그는 진급과 행정직을 거부하고 하노이 주재 미 공군 사령부와 직접 담판을 벌인다. 그는 전장에서 전투기 조종사들과 함께 북베트남 하노이 상공으로 출격해 베트남 전쟁 최대 규모의 공중전을 펼치는데…. ■틴울프 3(AXN 밤 10시 50분) 스캇과 앨리슨의 관계가 멀어지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앨리슨은 비컨 힐을 다시 찾는다. 리디아와 앨리슨이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도중 도로 중앙에서 사슴 한 마리가 차로 돌진한다. 또한 새들의 이상행동으로 사람들은 뭔가 불안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편 아이작과 여자아이 한 명이 다른 늑대인간 무리와 싸우다 병원에 실려온다. ■미친 사랑(tvN 오전 9시 40분) 미소와 경수의 키스 장면을 목격하게 된 재혁은 좌절감과 미소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크게 흔들린다. 한편 경수에게 이혼 이야기를 듣고 점점 엇나가기 시작하는 해령. 그런 해령의 행동에 노심초사하던 태산은 경수와 해령의 옷장에서 자신이 모두 없앴다고 생각한, 해령의 범행이 담긴 폐쇄회로(CC)TV의 녹화 CD를 발견한다. ■그림형제 2(CGV 밤 10시) 한 목사가 은행 계좌에 든 교회의 돈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한다. 교회의 장부 관리를 담당했던 노먼 브루스터라는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으나 나무 분쇄기 속에서 으스러진 노먼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문제의 교회를 찾아간 닉은 교구민들과 목사의 기이한 이야기를 알고 위장 수사를 편다. ■도라와 마법의 숲(니켈로디언 오전 8시) 도라와 부츠 앞에 토끼가 나타나 지혜롭고 용감한 유니콘이 마법의 숲의 새 왕이 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유니콘이 마법의 숲 왕이 되려면 성으로 가야만 해 도라와 부츠, 유니콘은 성으로 가는 길을 찾아나선다. 그러던 중 나쁜 올빼미의 계략에 빠져 위험해 처하고 만다. 과연 유니콘은 마법 숲의 진정한 왕이 될 수 있을까.
  •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윌리엄 웨버 ‘한국전 미군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 “참전 증인들 사라져가 안타까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생존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우리가 모두 사라져 버리면 한국전쟁이 미국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실종될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인생 거의 전부가 ‘한국전쟁의 역사’인 노병(老兵)은 자신의 사후(死後)에 한국전쟁의 역사가 겪게 될 운명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만난 윌리엄 웨버(87·예비역 대령) ‘한국전 미군 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전 참전용사다. 해마다 6월 25일이 다가오면 그는 언론들의 1순위 인터뷰 대상이 된다.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그의 외모 때문만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열성이 그를 특별하게 하고 있다. 그는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옆에 서 있는 19명의 미군 병사 조각상 가운데 하나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웨버 회장은 1943년 17살의 나이에 직업 군인으로 미 육군에 입대해 2차대전에 참전했다. 이어 1950년 8월 육군 187 공수 낙하산부대 소속 대위로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서울 수복 후 그는 평양 등 북한 내 요충지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여해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부전선까지 밀린 그는 1951년 1월 격전지 강원도 원주에서 북한군의 수류탄에 오른쪽 팔꿈치 아래와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고 말았다. 이 부상으로 그는 전선과 이별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북핵 문제 관련 세미나에 의족에 의지한 몸을 이끌고 나타난 그에게 ‘20대 젊은 나이에 소중한 팔다리를 잃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감스럽지 않다. 한국전에서 정규군으로 복무한 것은 내게 무한한 영광”이라며 마치 젊은 현역 군인처럼 우렁차게 답했다. 정전 60주년을 맞는 소회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60년간 또 다른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전용사들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앞으로 15년 뒤에는 정전 75주년 기념식이 열린 텐데 그때는 극소수의 참전용사만 살아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우리 참전용사들끼리 하곤 한다. 왜냐면 지금 가장 어린 참전용사가 80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전쟁은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서 ‘잊혀진 전쟁’이 돼 가고 있는데 앞으로 완전히 미국 역사에서 실종될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2차대전에 참전해 일본군과 싸울 때만 해도 한국과 중국, 일본 사람은 모두 똑같은 줄 알았지만 1950년 한국 땅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인은 일본인과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그런 한국인들을 위해 싸운 것은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자 영광, 특권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 정부가 참전용사들에게 충분히 보답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진심을 다해 끊임없이 미국에 감사를 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다시 한국전이 일어난다면 참전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당연히 참전할 것이다. 그건 물어볼 필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다 할 것이다. 바로 1950년에 나는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웨버 회장에게 한국전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그는 미국에서 ‘한국전 알리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 있는 한국전 기념비 옆에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모두 새긴 ‘한국전 추모벽’ 건립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중이다. 2002년 참전 이후 5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후 올해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한국행을 계획하고 있는 웨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주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글 사진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중국인민지원군 출신 자빙수 전 中인민공안대 교수 “美의 침략 언론보도 믿고 참전” “한국전은 중국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다)로 표현한다. 이 말과 같이 한국전은 중국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북한을 도와 목숨 바쳐 싸운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남북이 분단됐는데 한국전쟁 정전일인 7월 27일이면 항미원조 승리 운운하며 자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 인민지원군 출신의 자빙수(査秉樞·81) 전 중국인민공안대 교수는 매년 7월 27일을 ‘한반도정전기념일’로 고쳐 불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일 베이징 무시디(木?地) 자택에서 만난 그는 “세월이 지나면서 언론 등을 통해 한국전쟁은 북침이 아닌 남침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하지만 중국 인민지원군은 미군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탓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자 전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49년 신중국 건국과 함께 자원 입대했다. 타이완을 수복해 통일을 이루려는 국가정책에 따라 인민해방군 25군 75사 소속으로 푸젠(福建)성 최전방에 배치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미군이 단둥(丹東) 변경을 폭격했다는 등 미군의 침략에 초점이 맞춰진 언론 보도로 미국이 타이완 국민당 정부를 도와 중국을 칠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됐다. 부대 전환 배치를 신청해 한국전에 참여한 데는 이 같은 국내 분위기가 작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로는 1952년 7월 13일부터 14일 동안 강원도 상감령 동북쪽 남대천에서 벌어진 ‘금성(城) 반격전’을 꼽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원래 북의 땅에 침입한 미군을 물리쳤다는 의미에서 이 전투를 반격전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 전투만 버텨 내면 미국과 정전협정을 체결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고 회고했다. 미군을 상대로 중국 인민지원군 25만여명이 참가한 이 전투에서 그는 오른쪽 다리와 허리를 다쳤다. 그는 정전 이후에도 북한 재건 사업에 투입되며 1953년 10월부터 황해남도로 배치돼 1년간 고 유옥례씨 집에서 지냈다. 당시 14세이던 유씨의 딸 김영희로부터 조선인민군진군가, 조선국가, 아리랑, 봄노래, 샘물터의 노래, 푸른 하늘의 노래 등 27개의 북한 노래를 배웠다. 한국 노랫말을 중국어로 표기해 적어 둔 노래 연습장과 유씨 가족의 사진을 보며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한다. 영희씨와 주고받은 100여통의 편지도 간직하고 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탓에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두 나라 언어로 적어 가며 수십년간 소통의 끈을 이어 갔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오라버니’라는 문구 등 편지 내용 곳곳에 깊은 우의가 배어 있다. 문화대혁명 등의 시기를 제외하고 영희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연락을 주고받았다. 의료품, 식료품, 의류 등을 북에 보내 주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참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만약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남북은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외세의 개입 없이 남북이 자체적으로 통일하도록 돕는 것이 중국이 (한국에) 진 빚을 갚는 일”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 부회장 김완기씨 “조국의 전쟁 소식에 태극기 혈서 쓰고 참전” 1950년 6월 25일. 22살의 청년은 아침을 먹으며 라디오를 듣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소식을 접한다. 현해탄 건너 조국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들이대게 됐나”라는 참담한 심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청년은 개전 3일 만에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전을 결심한다. 그후 63년이 속절없이 흘렀고, 청년의 얼굴엔 주름살이 내려 앉았다. 재일학도의용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김완기(85)씨를 지난 3일 만났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12살 때인 1940년 공부를 하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큰아버지가 있는 구마모토현으로 갔다. 대학에 진학해 엘리트가 되라는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광복 이후 진학을 포기하고 민단 소속으로 조직 활동에 앞장섰다. 전쟁이 터지자 김씨를 포함한 642명의 재일학도의용군은 태극기에 혈서로 참전 의사를 밝히고 조국으로 향했다. 미군 부대에 배치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김씨는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고막이 터져 육군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함께 배를 타고 참전한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났는데 동상 때문에 손발이 잘린 전우들이 수두룩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미군의 순환배치 방침에 따라 1·4 후퇴 즈음인 1951년 1월 일본으로 복귀한 김씨는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다”며 다시 입대를 자원했다. 100여명이 지원해 58명이 국군에 재입대하게 됐고, 김씨는 1952년 6월까지 전선에 머물렀다. 이후 김씨는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일본 정부가 “허락 없이 참전했고 일본 거주도 불확실하다”며 입국을 막았다. 결국 부산 소림사에서 재일학도의용대(현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의 전신)를 만든 뒤 정전 후인 1953년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탑골공원 뒤편에 사무실을 꾸렸다. 그곳을 본적으로 등록하고 1961년까지는 수용대기소에서 생활했다. 국내 안착도 일본 귀환도 아닌 애매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사이 일본에 있던 김씨의 가족은 전쟁통에 모두 유명을 달리했고, 공주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정전 이후에야 겨우 연락이 닿았다. 현재 동지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이 학도의용군의 존재를 모르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전 후 10년 뒤인 1963년에야 일본에 안치돼 있던 전사자 53명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고, 1968년 재일학도의용군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글 사진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한국 장교, 러 공군대학 수석 졸업

    한국 장교, 러 공군대학 수석 졸업

    한국 공군 장교가 러시아 우주방공군대학 정규 과정을 수석 졸업했다. 1991년 3월 육군 방공포병 장교로 임관했다가 그해 7월 방공포병이 공군 소속으로 바뀌면서 공군 장교가 된 윤영호(45·학군 29기) 중령이 주인공이다. 1956년에 설립된 러시아 우주방공군대학은 우주 및 방공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군사학교로 우리나라의 공군대학에 해당한다. 한국군 장교가 수석 졸업한 것은 윤 중령이 처음이다. 윤 중령은 다른 군사대학 우수 졸업자들과 함께 지난달 2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윤 중령은 위탁교육 과정에 선발돼 러시아 공군대학에서 2010년 10월부터 2011년 9월까지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간단한 의사소통도 못 하던 그는 밤을 새워 가며 노력한 끝에 우주방공군대학 지휘관 정규 과정에 입학했다. 한국과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등 13개국에서 온 70명, 러시아 공군 등 157명의 장교들과 경쟁하면서도 31개 과목 모두 만점을 받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윤 중령은 9일 “위탁교육 기회를 준 공군에 대한 고마움, 대한민국 대표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뒤처져서는 안 되겠다는 부담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열린세상] 중국의 해양 전략 주시할 때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중국의 해양 전략 주시할 때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향후 세계 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학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후진타오 전 주석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미국에 중국의 세계적 위상을 확인시키는 모습이었다. 시진핑의 중국은 더 강대해지는 중국,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는 중국이 될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는 일에 과거보다 훨씬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강대국 중국을 건설해야 하는 노정에 북한이 설쳐대며 동북아 안정을 흔드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여건을 보면 중국은 북한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지만 북한의 행동이 중국의 국익 전개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은하 3호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자, 미국은 조지 워싱턴 핵항공모함을 서해로 보내 북한을 압박했다. 일반적으로 항공모함을 보내게 되면 항공모함과 F18 같은 함재기들만 출동하는 것이 아니고 해상에는 이지스함 등의 수상함, 해저에는 핵잠수함, 공중에는 전자정찰기와 대잠 초계기 등 거의 모든 항공력과 해군력이 따라 붙는다. 중국은 북한의 행동 때문에 중국 동해안과 중국 앞바다가 미국의 군사작전과 정찰에 노출되는 것에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동해안은 중국의 경제와 중요한 공업시설 등이 밀집된 곳이다. 그야말로 중국의 국력이 집중된 곳이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해 미국이 개입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차기 목표는 미국이 중국 동부로부터 2000㎞ 이내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열도를 손아귀에 넣는 것이다. 이미 그 목표를 향해 랴오닝 항공모함을 취역시켰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중국의 이런 해양전략은 갑자기 마련된 것이 아니다.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되어 남중국해의 지배권을 획득하기 위해 공군력과 해군력을 꾸준히 증강시켜 왔다. 1970년대는 지금처럼 경제력이 강한 중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중국해는 물론 저멀리 남중국해에 해·공군력을 투입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력 신장과 함께 엄청난 국방예산을 첨단 수상함, 잠수함, 전투기 획득에 투입하여 이제는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미국의 태평양 군사력과 일본의 해·공군력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의 해양력은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강될 것이다. 이에 맞서 일본은 미·일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잠수함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일본의 전통적인 잠수함 전력체계인 16척 체제를 22척 체제로 만들어 중국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의 잠수함들은 이미 스텔스 잠수함으로 변환되고 있다. 중국의 수상함정이나 잠수함들이 추적하려고 해도 음파를 흡수하는 흡음 타일들이 잠수함 외부 전체를 뒤덮고 있어 여의치 않다. 이런 동북아 정세 변환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선택과 집중의 국방력 개선사업에 나서야 한다. 군사력에서 앞선 중국과 일본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선택과 집중은 잠수함 전력의 증강과 미사일 전력에 가장 우선점을 두는 것이다. 이 전략은 북한에 대응하는 데도 유효하다. 두 번째로는 외교역량 강화에 국력을 모아야 한다. 군사력만으로 나라를 지킬 수는 없다. 한국이 한반도 주변국가들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라는 큰 담론을 바탕으로 주도적인 소통의 메커니즘을 다져 나간다면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으로 볼 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비전을 갖는 게 중요하다. 한국전쟁이 종료된 지 60년이 지나면서 한국도 그렇지만 중국도 그때와는 전혀 다른 국가의 모습으로 등장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60년은 한국이 중심국가가 되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창출하는 꿈을 실현해 나가야 하겠다.
  • 비리 공무원이 인권위 정책 자문… 전문가도 납득 못한 자문위 구성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2009년 7월 취임한 이후 인권위에 인권 취약기관인 군 출신 정책자문위원이 늘었다. 또 뇌물수수로 유죄를 선고받은 전직 경찰 고위간부와 위증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전 인권위원이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사실도 확인됐다. 7일 인권위에 따르면 정책자문위원 30명 중 전직 군인은 김동신 전 국방부 장관과 배일성 전 육군 군수사령관,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 김성일 전 공군참모총장 등 모두 4명이다. 현 위원장 취임 전인 2008~2009년 정책자문위원 중 군 출신은 전무했다. ‘법조 브로커’ 윤상림 사건에 연루돼 뇌물수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거짓 진술한 혐의로 고발돼 검찰 수사를 받는 김태훈 전 인권위원도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 전 차장은 2006년 부하 직원 등으로부터 인사 청탁과 관련해 4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김 전 인권위원은 지난해 인권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인권위가 용산참사 관련 의견을 내자는 안건은 과반 찬성이 안 돼 통과되지 못했다”고 증언했지만 위원 11명 중 6명이 찬성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고발당했다. 인권위 정책자문위원회는 인권정책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자문을 담당하는 최고 자문위원회로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기여한 자’, ‘인권정책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를 자문위원으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인권 취약기관으로 꼽히는 군 수뇌부나 비리 전력과 의혹이 있는 이들은 인권위 정책자문위원에게 요구되는 기본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김제공항 부지’ 대안으로 떠올라

    ‘군산공항 국제선 취항’이 미 공군의 반대로 6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5일 전북도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4월 2차례에 걸쳐 정부와 미군 측이 군산 미 공군 비행장에 국제선을 취항하는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전북도는 정부를 통해 “새만금 투자유치를 촉진하려면 군산공항의 국제선 취항이 성사돼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새만금 개발은 국제공항 없이는 국내외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미군 측은 안보 문제를 이유로 국제선 신설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하반기에도 이 문제를 재논의할 계획이지만 미군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전북지역에서는 예전에 공항을 조성하기 위해 매입했던 김제공항 부지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제시 백산면·공덕면의 옛 김제공항(157만 3500여㎡) 부지는 현재 빈 땅으로 남아 있어 군산공항 대체 공항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도 최근 김제공항을 지역의 항공기 제작산업 등과 연계해 경비행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구글마스 사진에 ‘외계우주선’ 찍혔다 주장

    구글마스 사진에 ‘외계우주선’ 찍혔다 주장

    구글이 제공하는 화성지도 서비스인 ‘구글마스’에 고대 구조물 혹은 외계우주선이 찍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구글마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궤도탐사선(MRO)에 장착된 콘텍스트(CTX) 카메라가 지도 작성 목적으로 촬영한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해외 유명 UFO 블로그 ‘UFO 사이팅스 데일리’는 4일(현지시간)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올라온 구글마스에서 미스터리 구조물을 검색하는 동영상을 소개했다. 전직 미전략공군사령부(SAC) 소속 요원이었던 스콧 워닝은 이 물체가 고대에 지어진 구조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 구조물은 오래전 달에 버려진 우주선과 매우 흡사하다”면서 “이미 NASA는 이 사실을 알고 조사를 위해 화성에 탐사로봇을 보낸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워닝은 수년 전부터 아마추어 UFO 연구가 및 작가로 활동하며 달이나 화성 등의 행성 탐사 조사도 겸하고 있다. 그는 획기적인 미스터리를 발굴하는 것으로 이미 UFO 및 외계생명체 연구가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으며 종종 외신을 통해서도 보도되고 있다. 한편 워닝은 현재 타이완에 살며 영어 학교(ESL School)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유튜브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케이블 하이라이트]

    ■에어 에이스(내셔널지오그래픽 밤 11시) 2차 세계대전 당시 랭커스터 폭격기는 공군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를 목표물로 삼는 총력전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랭커스터 폭격기의 업적은 그늘에 가려지게 됐다. 그 당시 랭커스터 폭격기에서 운명을 함께한 크루 7인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증언과 실감나는 재연 영상을 통해 만난다. ■컨페션:고해(AXN 밤 10시 50분) 한 암살자가 한적한 성당에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선과 악의 대립으로 보이는 암살자와 신부. 끔찍한 살인을 저질러온 암살자는 용서를 받기 위함이 아닌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해성사를 한다. 그러다 신부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암살자는 오히려 신부의 처절한 고해성사를 듣게 된다. ■링컨:뱀파이어 헌터(캐치온 밤 11시) 어린 시절, 괴한에게 어머니를 잃은 링컨은 복수에 나서지만 오히려 생명을 위협받는다. 위기의 순간 헨리를 만나 목숨을 구한 링컨은 그를 통해 이 세상에 뱀파이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뱀파이어 헌터로 거듭난다. 정체를 숨긴 채 은밀히 미션을 수행해 오던 어느 날 뱀파이어 조직의 거대한 실체와 마주한다. ■프라이데이(FTV 밤 11시) 아웃도어와 캠핑을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는 요즘, 그들을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캠핑과 카약, 낚시의 즐거움도 화면으로 선사한다. 피서철을 맞아 태안 만리포해수욕장에서 피싱·카약·캠핑의 진수도 보여 준다. 만리포해수욕장은 수도권에서 가까워 카야커(카약을 즐기는 사람들)들에게 바다카약의 메카 같은 곳이다. ■그림형제 2(채널CGV 밤 10시) 행크의 오랜 친구 제럴드는 고등학생 딸 칼리가 갑작스럽게 실종돼 행크를 찾아간다. 닉은 딸이 걱정돼 고통스러워하는 제럴드가 갑자기 짐승으로 변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행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제럴드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린다. 한편 제럴드는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아내의 가족들이 딸을 납치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날아라 호빵맨(애니맥스 낮 12시) 해골맨은 매일 한밤중에 ‘일어나’ 하고 외치며 마을 사람들의 잠을 방해한다. 호빵맨은 마을사람들이 단잠을 잘 수 있도록 카레빵맨, 식빵맨과 함께 해골맨을 추적한다. 한편 짤랑이는 사랑을 이뤄 준다는 꽃으로 알려진 두근두근초를 찾아내고 짝사랑하는 식빵맨에게 이를 주려고 찾아간다. 그 장면을 목격한 세균맨은 식빵맨을 납치한다.
  • 자해사망 군인 순직 인정 9.7% 그쳐

    지난해 훈령 개정으로 군 자살자(자해사망자)도 순직 처리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실제 처리 비율은 10명 중 1명꼴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일 국방부의 개정된 ‘전공사상자 처리훈령’이 시행된 후 올 6월까지 육·해·공군 순직 처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자해사망자 총 41명 중 순직 처리된 사망자는 4명(9.7%)에 불과했다. 개정된 훈령은 군 복무 중 공무상 일 등으로 자해 사망한 경우 순직 처리가 되도록 했다. 각 군별 심사 결과를 보면, 41명 중 육군 소속은 30명으로 이 중 단 1명만 순직 처리됐다. 반면 공군은 9명 중 2명, 해군은 2명 중 1명을 순직 처리했다. 권익위는 “최초 순직 심사를 맡은 육군본부가 재심까지 담당하기 있기 때문에 육군에서 순직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군 사망자에 대한 재심사는 국방부가 맡도록 하고, 심사위원도 외부 민간인사를 절반 이상 참여토록 관련 규정 개선안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첫 여성 전투비행사 김경오씨, 국민훈장 동백장

    첫 여성 전투비행사 김경오씨,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전투비행사가 국민훈장을 받는다. 2일 제18회 여성주간 기념식에서 김경오(84) 극동지역 여성항공연맹 총재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다. 건국 이후 여성으로서는 처음 조종간을 잡은 김 총재는 한국전쟁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해 공훈을 세웠다. 1956년 전역 후에도 국제여류비행사협회, 국제항공연맹을 통한 민간외교와 국위 선양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깨는 데 기여했다. 특히 정부에 육해공군 사관학교의 여성 생도 입교 허용을 건의해 실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금도 대한민국항공회 명예총재, 한국여성항공협회 명예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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