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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장 앉아있던 표정이…” 2년전 계급 강등은 왜?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장 앉아있던 표정이…” 2년전 계급 강등은 왜?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장 앉아있던 표정이…” 2년전 계급 강등은 도대체 왜?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리선권은 2010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남측이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며 제시한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리선권은 우리 측이 ‘폭침’의 증거로 제시한 어뢰에 쓰인 ‘1번’ 글자에 대해 “우리는 ‘번’이라는 표현은 무장장비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2년 2월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정부에 천안함 사건 거론 중단 등 9개의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질문장을 보낸 직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은 전적으로 남측에 달렸다”며 남측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 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고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이런 사람이 어떻게 협상을 하러 왔나”,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정말 천안함 사건 배후 맞아?”, “천안함 배후 김영철, 표정이 능글능글하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7조원대 바가지’ 도입 논란, F-35A는 억울하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7조원대 바가지’ 도입 논란, F-35A는 억울하다

    15일 있었던 공군본부 국정감사에서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도입사업인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가 빗발쳤다. 논란의 핵심은 기종 선정과 가격, 계약 조건 등이었다. 지난달 방위사업청이 F-35A 도입 계약을 체결한 뒤 각 언론에서는 검증도 안 된 시험기를 바가지 쓰고 구입했다거나, 굴욕적인 계약 조건으로 미 정부에 수천억 대 국민혈세를 ‘거래세’로 미국에 바친다는 등 국방부의 F-35A 도입 결정에 대해 맹렬히 성토했다. F-35A,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비전문가 언론이 만들어낸 바가지 가격 방위사업청이 미 국방부와 대외군사판매(FMS : Foreign Military Sales) 형식으로 체결한 F-35A 전투기 도입 계약은 7조 3,418억원 규모다. 이 7조 3,418억 원은 기체와 엔진을 더한 순수 전투기 가격(Flyaway cost) 4조 8,455억 원이고, 향후 전투기 운용에 필요한 각종 부품과 정비 서비스 가격 1조 9,088억 원, 전투기에 탑재할 무장과 시설 구매 5,873억 원으로 구성되며, 이 비용을 지불하고 오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10대씩 총 40대의 F-35A 전투기가 우리 공군에 전력화된다. 전투기의 대당 가격은 1,211억 원이고, 각종 부대비용을 포함한 프로그램 가격(Program cost)은 1,835억원이다. 알기 쉽게 자동차 구매로 이해하자면 전투기 대당 가격은 차량 기본 가격과 옵션을 넣은 가격이고, 프로그램 가격은 차량 기본 가격과 옵션 가격에 취득세와 공채 매입액, 인지대와 번호판대, 보험료와 향후 일정 기간 쓰일 스페어 부품 등을 모두 합한 가격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1,835억 원이라는 가격은 지나치게 비싼 감이 있다. 하지만 전투기 가격을 좀 더 들여다보면 이 같은 생각은 금방 사그라진다. 전투기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급격한 가격 변동을 겪는다. 1세대 전투기였던 F-86은 50년대 후반 도입된 K형을 기준으로 대당 44만 달러 수준이었으나, 2세대인 F-104가 도입될 때는 170만 달러로 4배 가까이 올랐으며, 3세대인 F-4 전투기는 대당 400만 달러 수준으로 등장했다. 4세대 전투기인 F-16은 78년 기준으로 1400만 달러, F-15는 1700만 달러 수준으로 미 공군에 납품됐다. 같은 세대의 전투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개량을 거듭할수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F-16은 40년 전에는 1,400만 달러였지만, 지금은 7,000만 달러를 호가한다. 40년 전 F-15A 역시 1,700만 달러였으나, 우리 공군은 대당 1억 달러 넘는 비용을 지불하고 F-15K를 들여왔다. 세대별로 평균 4배 이상 가격이 뛰었던 전례를 볼 때 5세대 전투기인 F-35A는 4세대 전투기인 F-16보다 4배, 그러니까 적어도 2억 8,000만 달러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5세대 전투기인 F-22의 프로그램 가격은 대당 3억 달러를 상회한다. F-35A가 한 세대 이후 전투기임에도 불구하고 가격 상승 억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F-35A의 기체 가격은 1,211억 원이다. 지난 2006년 2차 FX 사업을 통해 들여왔던 F-15K의 1,052억 원보다 15% 가량 비싸지만, 이것이 확정 가격은 아니다. 1,211억 원이라는 가격은 아직 본격적인 대량 생산에 들어가기 전 현재의 생산 능력에 근거에 나온 가격이다. F-35A의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은 현재 월 3.5대의 F-35를 생산하지만, 오는 2017년부터는 저율초도생산(LRIP : Low-Rate Initial Production)을 끝내고 월평균 약 15대, 연간 175대 규모로 대량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당연히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정부 간 거래인 FMS 방식은 최초 계약 금액보다 실제 물품 대금이 낮을 경우 그 차액을 환불해주도록 되어 있고, 과거 KFP 사업에서도 그 차액을 보상받은 전례가 있다. 그렇다면 가격이 얼마나 내려갈까? 지난해까지 체결된 F-35A 생산 계약 내역을 들여다보면 6차 LRIP에서는 23대의 F-35A를 대당 1억 300만 달러, 7차 LRIP에서는 24대의 F-35A를 대당 9,800만 달러에 계약했다. 특히 6차부터 4% 가격 인하가 합의되어 7차에서는 5차 LRIP 계약 대비 8%의 가격 하락이 이루어졌으며, 미 국방부와 록히드마틴은 이 같은 가격 하락 폭을 점차 확대한다는 데 합의했다. 미 공군 F-35 프로그램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보그단(Christopher C. Bogdan) 중장은 지난 3월 "2019년에 인도되는 F-35A의 가격은 대당 8,000만 ~ 8,500만 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고 공표한 바 있고, 록히드마틴의 하워드 랜디 한국사업개발담당이사 역시 보그단 장군이 언급한 가격은 전투기 동체와 엔진, 항전장비와 임무체계가 포함된 가격(Flyaway cost)라고 확인한 바 있다. 우리가 1,211억 원에 계약한 F-35A의 가격이 8천만 달러, 즉 800억원 수준으로 떨어지면 대당 300억~400억 원만큼 환불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4조 8,455억 원이 투입되는 기체 구입비용에서 최대 30%인 1조 2천억 원 가량을 돌려받거나 이에 상응하는 수량만큼의 F-35A 10~12대 가량을 더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F-35A는 한국군 역사상 처음으로 이전 세대 모델의 전투기보다 저렴한 차세대 전투기가 된다. 당시 경쟁기종들과 비교했을 때는 어떨까? 그래도 가장 저렴하다. 한때 단독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던 F-15SE는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기체였지만, 직전 모델인 사우디아라비아의 F-15SA의 기체 가격이 1,400억 원 수준이었고, 설계 변경 등의 개량이 이루어졌을 때 추가될 비용을 감안하면 대당 1,500억 원 이상, 프로그램 가격은 2,000억대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었다. 유로파이터는 더 심각하다. 지난 2013년 오만이 체결한 계약 내역을 보면 우리에게 제시되었던 것과 같은 형식 12대를 23억 파운드, 대당 3억 1천만 달러에 구매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프로그램 가격으로 계산하더라도 F-35A의 2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개발국인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의 도입 가격을 살펴보아도 프로그램 가격 기준 2억 달러 미만인 사례는 없었다. 구입비용만 비싼 것이 아니다. 공동개발 4개국 모두 기존 계약 물량을 취소 또는 축소하고 있고, 높은 운용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 이미 구입해 운용중인 신품 기체들을 중고 전투기 시장에 앞 다퉈 내놓고 있다. 결과적으로 F-35A는 경쟁 기종 가운데 가장 저렴한 선택이었지만, 그동안 F-35A의 가격에 대한 언론 보도들은 F-35A를 가장 비싼 전투기로 포장해 왔었다. 결국 그 비싼 바가지 가격은 언론이 만들어 낸 왜곡된 정보였다는 것이다. ▲핵심 기술이전 제외 논란 차기 전투기 사업에서 가격과 더불어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기술이전 등 절충교역 내용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 계약을 통해 록히드마틴으로부터 KFX 개발에 필요한 17개 핵심 기술을 이전받는 데 합의했다. 록히드마틴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위약금을 무는 조항도 포함됐고, 단순 기술문서 제공 수준을 넘어 전문인력 360여 명을 국내에 파견해 KFX 개발을 지원토록 하는 조항도 넣었다. 우리 측에 유리한 조건이고 미국이 많이 양보했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스텔스 기술 등 핵심 기술 이전 분야가 빠져 있기 때문에 문제투성이 계약 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우리 측은 요구했던 대부분의 기술 이전을 관철시켰고, 스텔스 기술은 처음부터 요구한 적이 없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지난 2년여 간의 탐색개발 기간을 통해 KFX 개발 타당성을 검증하면서 스텔스 분야 20여 개, 항공전자 분야 20여 개, 비행제어 5개, 세부계통 10개, 추진 및 구조에 각각 4개 등 약 50여 가지의 기술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바 있었다. 이 가운데 스텔스 기술은 KFX가 5세대 풀 스텔스(Full-stealth) 가 아닌 4.5세대 전투기로 개발되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RO(Reduced Observable) 기술만 적용되고 LO(Low Obserbable)나 VLO(Very Low Obserbable), IR Signature 등의 기술만 적용하기로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RO는 국내 기술로도 충분히 개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애초에 FX 기술이전 협상 대상에 요구조건으로 올리지 않았다. 즉, 애초에 스텔스 기술이전을 요구한 적이 없는데 협상 과정에서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것처럼 보도가 나갔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LO와 VLO와 같은 기술이전을 요구하더라도 이는 일개 전투기 개발 업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F-35 개발에 처음부터 막대한 예산을 지원해 왔던 JSF(Joint Strike Fighter) 레벨 1 파트너인 영국조차도 LO와 VLO에 대한 기술이전 및 제공, 열람은 금지되어 있다. F-35 구매국 가운데 100대 단위 대량 구매하는 국가가 수두룩한데 고작 40대 구매하면서 고급 스텔스 기술 제공을 요구한다면 받아들여지겠는가? 역지사지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대당 400억도 안 되는 T-50을 10여 대 가량 구매해 가면서 여기에 적용된 핵심 기술을 모두 이전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이를 납득할 국민이 있을까? 방위사업청은 이번 절충교역 협상을 통해 KFX 개발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전은 물론 수천억 원 상당의 통신위성까지 얻어냈다. 이 정도면 가격 면에서나 기술이전과 절충교역 면에서도 크게 남는 장사인데 도대체 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일까? ▲한국공군, F-35A 외에는 대안 없어 가격과 절충교역 문제로 F-35A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가 이어지는 배경에는 경쟁기종이었던 F-15SE의 보잉과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이 있다. F/A-18E/F의 추가 수주가 어려워지고 F-15 시리즈도 생산 공장을 닫아야 할 처지인 보잉이나 신규 생산 기체 수출 시장에서 연일 죽을 쑤고 있는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EADS 모두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직 우리 공군은 이번에 계약이 이루어진 40대의 F-35A 이외에도 추가분 20대를 더 들여올 예정인데, 지난 3년간 FX 사업에 천문학적인 판촉비를 쏟아 부은 보잉과 EADS는 약 3조원 규모가 될 이 20대 물량에 사활을 걸고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F-15SE나 그 대안으로 나온 F/A-18SE,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F-35A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던 비용이나 절충교역, 미 정부 보증의 신뢰성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성능 면에서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 공군이 FX 사업을 통해 획득하려했던 전투기는 강력한 스텔스 성능, 즉 북한이나 주변국이 탐지할 수 없으면서도 강력한 한 방을 갖는 전투기를 도입해 전략적 억지력을 높여줄 수 있는 전투기였다. 여기에 부합하는 스텔스 전투기는 후보기종 가운데 F-35A가 유일했다. F-15SE나 유로파이터가 제아무리 첨단 전자장비를 내세우며 F-35A보다 우수하다고 선전해도 이들 전투기는 태생부터 F-35A와 세대 자체가 다르다. 가령 북한이 남한에 핵미사일을 발사할 징후가 발견되어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이 결정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F-15SE와 유로파이터는 핵미사일을 공격하는 편대 이외에도 북한 전투기로부터 공습편대를 지켜줄 호위편대, 사방에서 날아오를 북한의 지대공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전자전기와 방공망제압 임무 수행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러나 스텔스기인 F-35A는 1~2대만 이륙해서 표적을 타격하고 돌아오면 그걸로 끝이다. F-35A는 경쟁기종에 비해 우수한 성능의 레이더와 첨단 데이터 융합 기술이 적용되어 상황인식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이는 평소에는 전투기로 운용하다가 필요할 경우에는 우수한 레이더 성능을 바탕으로 정찰기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비용 대 효과 측면에서나 개별 작전 능력에서나 경쟁 기종과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 FX 사업 당시 기종 평가에서 F-35A는 각각 2위와 3위인 F-15SE와 유로파이터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최고점을 받았다. 한반도 전장 환경에 가장 부합하면서, 가장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고, 핵심 동맹국인 미국이 대량으로 운용하여 후속군수지원도 든든하면서 가격까지 가장 저렴한 것이 F-35A였다. 일각에서는 F-35A가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았고, 결함투성이 전투기를 바가지 쓰고 도입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전투기에나 개발 단계에서 기술적 문제들은 있다. 적어도 실전배치 10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후방 동체 결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유로파이터나 설계도조차 없는 F-15SE보다는 가장 진보했고, 가장 진척된 기종이 F-35A다. 이러한 판단 때문에 주요 선진국들이 F-35 프로그램에 개발비를 대고,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구매 계약을 속속 체결하고 있는 것이다. 공군은 오래 전부터 스텔스 전투기를 요구해 왔고, 그 결과 오는 2018년부터 미 공군과 같은 시기에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5세대 전투기를 손에 넣을 예정이다. 막대한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만큼 오랫동안 고심했고, 신중하게 판단했다. 성능과 가격, 협상 내용이 객관적으로 드러난 이상 더 이상 근거 없는 비난으로 공군의 전력 증강 사업을 흔들기보다는 3차 FX사업의 원활한 진행과 앞으로 이어질 4차 FX와 KFX 사업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협상장 앉아있던 표정보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협상장 앉아있던 표정보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장 앉아있던 표정이…” 2년전 계급 강등은 도대체 왜?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리선권은 2010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남측이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며 제시한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리선권은 우리 측이 ‘폭침’의 증거로 제시한 어뢰에 쓰인 ‘1번’ 글자에 대해 “우리는 ‘번’이라는 표현은 무장장비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2년 2월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정부에 천안함 사건 거론 중단 등 9개의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질문장을 보낸 직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은 전적으로 남측에 달렸다”며 남측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 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고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이런 사람이 어떻게 협상을 하러 왔나”,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정말 천안함 사건 배후 맞아?”, “천안함 배후 김영철, 표정이 능글능글하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남북군사회담 北수석대표로…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합의없이 끝나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남북군사회담 北수석대표로…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합의없이 끝나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뒤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남북은 15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3년8개월 만에 군사당국자 접촉을 비공개로 갖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북전단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으나 양측간 입장 차이로 구체적 합의없이 접촉을 끝냈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소식에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사과받아야 하는데 수석대표가 배후라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논의가 가능한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북한의 대화 의지가 있는지 의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테이블 옆 리선권 “어뢰 ‘1번’이라는 말 우리는 안 쓴다” 충격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테이블 옆 리선권 “어뢰 ‘1번’이라는 말 우리는 안 쓴다” 충격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테이블 옆 리선권 “어뢰 ‘1번’이라는 말 우리는 안 쓴다” 충격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리선권은 2010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남측이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며 제시한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리선권은 우리 측이 ‘폭침’의 증거로 제시한 어뢰에 쓰인 ‘1번’ 글자에 대해 “우리는 ‘번’이라는 표현은 무장장비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2년 2월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정부에 천안함 사건 거론 중단 등 9개의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질문장을 보낸 직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은 전적으로 남측에 달렸다”며 남측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 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고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도대체 천안함 배후를 내려보낸 저의가 뭡니까”,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표정이 아주 자신만만하네. 이건 뭐 의도가 없다고 할 수가 없네”, “천안함 배후 김영철, 천안함 장병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저런 자신만만한 태도라니”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드러낸 모습 보니…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합의없이 끝나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드러낸 모습 보니…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합의없이 끝나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뒤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남북은 15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3년8개월 만에 군사당국자 접촉을 비공개로 갖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북전단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으나 양측간 입장 차이로 구체적 합의없이 접촉을 끝냈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소식에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사과받아야 하는데 수석대표가 배후라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논의가 가능한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북한의 대화 의지가 있는지 의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 테이블 앉자 말자 표정이…” 남측 대표단은 누구?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 테이블 앉자 말자 표정이…” 남측 대표단은 누구?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 테이블 앉자 말자 표정이…” 남측 대표단은 누구?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리선권은 2010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남측이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며 제시한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리선권은 우리 측이 ‘폭침’의 증거로 제시한 어뢰에 쓰인 ‘1번’ 글자에 대해 “우리는 ‘번’이라는 표현은 무장장비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2년 2월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정부에 천안함 사건 거론 중단 등 9개의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질문장을 보낸 직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은 전적으로 남측에 달렸다”며 남측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 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고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배후라니 대단하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우리 장병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내려오다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네. 왜 내려왔어”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2년 전 2계급 강등 도대체 왜?”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2년 전 2계급 강등 도대체 왜?”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2년 전 2계급 강등 도대체 왜?”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리선권은 2010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남측이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며 제시한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리선권은 우리 측이 ‘폭침’의 증거로 제시한 어뢰에 쓰인 ‘1번’ 글자에 대해 “우리는 ‘번’이라는 표현은 무장장비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2년 2월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정부에 천안함 사건 거론 중단 등 9개의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질문장을 보낸 직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은 전적으로 남측에 달렸다”며 남측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 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고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대단하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김정은이 보낸 이유가 있을텐데”, “천안함 배후 김영철, 저런 사람을 보내다니”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장 앉아있던 표정이…” 2년전 계급 강등은 도대체 왜?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장 앉아있던 표정이…” 2년전 계급 강등은 도대체 왜?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장 앉아있던 표정이…” 2년전 계급 강등은 도대체 왜?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리선권은 2010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남측이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며 제시한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리선권은 우리 측이 ‘폭침’의 증거로 제시한 어뢰에 쓰인 ‘1번’ 글자에 대해 “우리는 ‘번’이라는 표현은 무장장비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2년 2월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정부에 천안함 사건 거론 중단 등 9개의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질문장을 보낸 직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은 전적으로 남측에 달렸다”며 남측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 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고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이런 사람이 어떻게 협상을 하러 왔나”,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정말 천안함 사건 배후 맞아?”, “천안함 배후 김영철, 표정이 능글능글하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북측 소행” 지적하자 김영철 대답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북측 소행” 지적하자 김영철 대답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북측 소행” 지적하자 김영철 대답은?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우리 측은 이번 회담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이 북한의 책임이라는 점을 상기시켰지만 김영철이 이를 인정했을 가능성은 낮다. 회담은 비공개로 열려 천안함 피격 사건과 관련된 구체적인 북측의 발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리선권은 2010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남측이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며 제시한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리선권은 우리 측이 ‘폭침’의 증거로 제시한 어뢰에 쓰인 ‘1번’ 글자에 대해 “우리는 ‘번’이라는 표현은 무장장비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2년 2월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정부에 천안함 사건 거론 중단 등 9개의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질문장을 보낸 직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은 전적으로 남측에 달렸다”며 남측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 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고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장에 일부러 앉혔다는 느낌인데?”,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요구만 있고 인정은 하지 않으니 그게 문제지”, “천안함 배후 김영철, 협상 결과가 어떻게 도출되겠나. 말싸움만 날 뿐이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드러낸 모습 3개월만에 대장 계급 달고…남북입장차로 구체적 합의없이 끝나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드러낸 모습 3개월만에 대장 계급 달고…남북입장차로 구체적 합의없이 끝나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뒤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남북은 15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3년8개월 만에 군사당국자 접촉을 비공개로 갖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북전단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으나 양측간 입장 차이로 구체적 합의없이 접촉을 끝냈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소식에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사과받아야 하는데 수석대표가 배후라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논의가 가능한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북한의 대화 의지가 있는지 의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드러낸 모습 3개월만에 대장 계급 달고…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드러낸 모습 3개월만에 대장 계급 달고…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뒤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남북은 15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3년8개월 만에 군사당국자 접촉을 비공개로 갖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북전단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으나 양측간 입장 차이로 구체적 합의없이 접촉을 끝냈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소식에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사과받아야 하는데 수석대표가 배후라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논의가 가능한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북한의 대화 의지가 있는지 의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판문점에 나타난 후 표정보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판문점에 나타난 후 표정보니…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뒤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남북은 15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3년8개월 만에 군사당국자 접촉을 비공개로 갖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북전단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으나 양측간 입장 차이로 구체적 합의없이 접촉을 끝냈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소식에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사과받아야 하는데 수석대표가 배후라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논의가 가능한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북한의 대화 의지가 있는지 의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 테이블 앞 표정이…” 묘한 분위기 도대체 왜?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 테이블 앞 표정이…” 묘한 분위기 도대체 왜?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 테이블 앞 표정이…” 묘한 분위기 도대체 왜?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리선권은 2010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남측이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며 제시한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리선권은 우리 측이 ‘폭침’의 증거로 제시한 어뢰에 쓰인 ‘1번’ 글자에 대해 “우리는 ‘번’이라는 표현은 무장장비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2년 2월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정부에 천안함 사건 거론 중단 등 9개의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질문장을 보낸 직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은 전적으로 남측에 달렸다”며 남측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 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고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배후가 내려오다니 이건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폭침 때문에 많은 장병이 죽었는데 저렇게 표정이 편안하네”, “천안함 배후 김영철, 천안함 장병들 가족들이 너무 슬프겠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판문점 나타나 표정이…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판문점 나타나 표정이…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뒤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남북은 15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3년8개월 만에 군사당국자 접촉을 비공개로 갖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북전단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으나 양측간 입장 차이로 구체적 합의없이 접촉을 끝냈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소식에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사과받아야 하는데 수석대표가 배후라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논의가 가능한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북한의 대화 의지가 있는지 의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북 군사당국자접촉 북측 대표가 천안함 사건 배후? 남북군사회담 합의없이 끝나

    남북 군사당국자접촉 북측 대표가 천안함 사건 배후? 남북군사회담 합의없이 끝나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뒤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남북은 15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3년8개월 만에 군사당국자 접촉을 비공개로 갖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북전단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으나 양측간 입장 차이로 구체적 합의없이 접촉을 끝냈다. 남북 군사회담 군사당국자접촉 소식에 네티즌들은 “남북 군사회담 군사당국자접촉, 대표가 천안함 배후라니”, “남북 군사회담 군사당국자접촉, 성과 없이 끝나다니”, “남북 군사회담 군사당국자접촉, 또 열리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사건 이후 처음으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 드러내…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사건 이후 처음으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 드러내…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뒤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남북은 15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3년8개월 만에 군사당국자 접촉을 비공개로 갖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북전단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으나 양측간 입장 차이로 구체적 합의없이 접촉을 끝냈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소식에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사과받아야 하는데 수석대표가 배후라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논의가 가능한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북한의 대화 의지가 있는지 의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어뢰 1번 우리는 안쓴다” 주장한 인물도 참석 ‘충격적 상황’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어뢰 1번 우리는 안쓴다” 주장한 인물도 참석 ‘충격적 상황’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어뢰 1번 우리는 안쓴다” 주장한 인물도 참석 ‘충격적 상황’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리선권은 2010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남측이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며 제시한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리선권은 우리 측이 ‘폭침’의 증거로 제시한 어뢰에 쓰인 ‘1번’ 글자에 대해 “우리는 ‘번’이라는 표현은 무장장비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2년 2월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정부에 천안함 사건 거론 중단 등 9개의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질문장을 보낸 직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은 전적으로 남측에 달렸다”며 남측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 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고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배후라는 사람이 당당하게 내려오다니 겁이 없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려고 아주 작정을 하고 온 듯”, “천안함 배후 김영철, 평화를 얘기하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나타나 3개월만에 대장 계급 달고…남북입장차로 구체적 합의없이 끝나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7년만에 나타나 3개월만에 대장 계급 달고…남북입장차로 구체적 합의없이 끝나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은 뒤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남북은 15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3년8개월 만에 군사당국자 접촉을 비공개로 갖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북전단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으나 양측간 입장 차이로 구체적 합의없이 접촉을 끝냈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소식에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사과받아야 하는데 수석대표가 배후라니”,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사건 논의가 가능한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북한의 대화 의지가 있는지 의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장 자신만만한 표정 자세히 보니…” 깜짝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장 자신만만한 표정 자세히 보니…” 깜짝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협상장 자신만만한 표정 자세히 보니…” 깜짝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주도한 배후로 지목돼 온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에 수석대표로 7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 사실을 전하며 남측은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북측은 김영철 국방위원회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때 우리 군당국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고 밝히며 당시 김격식 4군단장과 함께 배후로 지목한 인물이다. 김영철은 2012년 말 대장에서 중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됐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5월까지 군사학교 사격경기,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 등 군 관련 행사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 공연, 축구경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여러 차례 수행해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철이 수석 대표로 남북 간 접촉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이며, 2007년 12월 7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이후 7년여 만이다. 7차 군사회담 당시 인민무력부 중장이었던 김영철은 수석대표로 남측 대표단과 만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신·통관 분야에서 일부 합의를 도출했다. 김영철은 앞서 2006년∼2007년 열린 3∼6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도 수석 대표를 맡았다. 특히 2006년 열린 3∼4차 회담에서는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이었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수석대표로 마주한 경험이 있다. 이번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에 북한 대표로 참석한 리선권 국방위 정책국장도 2007년 5∼7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함께 참석해 남측 대표단과 얼굴을 맞댄 적이 있다. 리선권은 2010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남측이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며 제시한 증거가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당시 리선권은 우리 측이 ‘폭침’의 증거로 제시한 어뢰에 쓰인 ‘1번’ 글자에 대해 “우리는 ‘번’이라는 표현은 무장장비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2년 2월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정부에 천안함 사건 거론 중단 등 9개의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질문장을 보낸 직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은 전적으로 남측에 달렸다”며 남측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류제승(예비역 중장·육사 35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2010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으로 있을 때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번 군사 당국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은 김영철과는 군사회담에서 첫 번째 대면이다. 류 실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진급해 8군단장에 보임됐으나 2012년 일명 북한군 ‘노크 귀순’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는 GOP(일반전초) 경계작전 지도를 부실하게 한 책임으로 국방장관으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고 육군교육사령관으로 이동했다가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전역했다. 네티즌들은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배후라고 우리 쪽에서 지목을 했는데 버젓이 내려왔네?”, “천안함 배후 김영철 등장, 천안함 배후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내려와서 협상장에 앉아있나”, “천안함 배후 김영철, 저런 인물하고 대화를 하는데 진전이 있겠어?”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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