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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아·태지역 진출 확대”/21국주재 외교관회의

    ◎투자 민관공조 모색 【본 AFP 연합】 아시아­태평양지역 21개국에 주재중인 독일 외교관들은 26일 3일간의 특별회의를 통해 이 지역에 대한 독일의 경제진출 확대를 추진하는 특별선언을 채택했다. 클라우스 킨켈 외무장관 주재로 열린 이번 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독일공관장들은 아시아 정책이 독일 장래 발전을 확보하는데 우선적 관심사이며 독일은 이 지역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10개항으로 된 정책문서를 채택했다. 이 정책문서는 인도와 베트남등의 세계경제에 대한 개방을 지지하는 한편 중국의 가트 가입신청에 대해서도 지지입장을 거듭 표명하고있다. 킨켈장관은 회의에서 공관장들에게 이 지역에 대한 독일 투자를 강력히 지원해야할 것이라고 민관공조체제를 촉구하면서 독일이 오는 7월1일부터 유럽연합(EU)의장을 맡게되면 아시아를 주요 주제로 삼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고위공직자가 투자유치 나서라(최택만 경제평론)

    지난주 발표된 두가지 경제조치는 비록 뉴스의 초점이 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고 정책면에서도 커다란 변화다.그 하나는 외국인투자유치기획단의 설치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인의 토지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률시행령 개정안의 입법예고이다.외국인투자유치기획단은 앞으로 외국인의 투자인가 승인과 동시에 기업설립 및 공장설립에 관한 각종 인허가신청을 일괄처리 해주는 원스톱체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외국인토지취득법」 시행령개정안은 오는 4월부터 외자도입법에서 허용하는 9백98개 업종에 대해 토지취득을 허용하고 제조업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은 신고만으로 토지를 살 수 있게 되어 있다.공장용 토지 뿐 아니라 외국인 임직원과 외국인 업체에 근무하는 국내근로자의 임대주택 및 기숙사용 부동산도 취득이 가능해진다. 외국인 투자창구를 일원화하는 원스톱제와 외국인의 토지취득확대조치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제화시책의 일환으로 보인다.한국은 오래전부터 외국인이 투자를 꺼리는 곳으로 되어 있고 외국인이 부동산을취득하기가 아주 까다로운 나라로 알려져있다.최근에는 노사분규가 거세지면서 투자를 한 외국인 업체마저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기업이 「떠나는 한국」에서 「돌아오는 한국」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조치는 뒤늦기는 했지만 경쟁력강화를 위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외국인투자유치는 일반적으로 개도국이 선진국의 기업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개도국들만이 투자유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개도국은 물론이고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외국인 투자유치에 크게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우리 무역진흥공사(KOTRA)가 미국의 50개 주에 외국인투자유치를 문의하는 서한을 보냈더니 일부 주는 지사가 직접 만나겠다는 연락이 왔고 어느 주는 투자담당 공무원이 KOTRA 미주본부 사무실로 달려 왔다는 것이다.어떤 주는 빈공장이 많이 있으니 한국기업이 원한다면 토지는 물론 공장건물까지 무료로 임대해 주겠다는 제의를 했다고 KOTRA 관계자는 밝혔다. 선발개도국인 싱가포르와 대만 등과 같은 나라는 총리가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직접 발벗고나서고 있다.오작동 싱가포르총리는 지난 92년초 반도체공장의 유치를 위해 선진 각국을 순방했다.수상이 직접나서 『진출사가 요구하는 조건은 모두 수용하겠다』다짐을 하는 파격적인 유치작전이 주효하여 공장유치에 성공한 바 있다. 대만 역시 다국적 기업유치에 온 힘을 쏟고 있다.대만정부는 지난해 7월 아태무역중심프로젝트라는 중단기 경제활성화조치를 발표하면서 투자유치를 첫번째 정책과제로 꼽았다.외국기업유치를 위해 이등휘총통이 직접나서 외국기업에 투자를 권유하고 있고 각 장관들도 해당부서와 관련된 외국기업유치에 열심이다.교통부장관은 고속철도 수주를 조건으로 독일 벤츠사를 유치했고 보사부장관은 선진국 유명제약회사 투자유치를 위해 외국 방문길에 나서는 등 장관들이 유치작전을 펴고 있는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외국기업을 단기간에 최고로 많이 유치한 국가일 것이다.이 나라는 우리 정부가 실시할 계획인 원스톱 서비스체제를 어느 나라보다 먼저 도입한 나라다.말레이시아 산업진흥청(MIDA)에 가면 『투자나 기업활동에 관한 것이 모두 해결된다』고 현지진출 외국기업들이 칭찬할 정도라고 한다.이 나라의 성공적인 외국기업 유치작전은 한 때 『일본과 한국을 배우자』고 했다가 이제는 『한국에서는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선언한 마하티르 총리의 천재적인 비즈니스 정신에 힘입은 바가 크다. 우리도 외국기업유치를 위해 모든 공직자가 뛰어야 할 것이다.각 부처 장관과 고위공직자들이 한국을 찾아온 외국기업인마저 선별해서 만나고 있을 때가 아니다.외국기업 투자유치를 재무부나 상공부의 업무로 여겨서도 곤란하다.이번에 발족한 외국인투자유치기획단도 그렇다.그 단장이 재무부 제2차관보로 되어있다.꼭 직급이 높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의 경우 고위공직자가 직접 나서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국내 도지사가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얼마나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아마 각도 지사들은 국내 연고기업을 도내 공단에 유치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우리 지사들도 미국 주지사처럼 외국기업과 접촉하고 직접 유치활동을 벌어야 할 시점이다.재외 공관장 역시 수출신장과 외국기업 유치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외국기업이 「떠나는 한국」에서 「돌아오는 한국」으로 만들자면 고위공직자 모두가 투자유치단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 “남북한 단계적통합만이 살길”/아·태평화재단창립기념 학술토론회중계

    ◎통독후유증 경제통합 서둘렀기 때문/권위주의체제국가 급속 성장엔 한계 김대중전민주당대표가 설립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이 26일 첫선을 보였다. 아·태재단이 이날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최한 국제학술토론회에서는 존 던 영국케임브리지대교수,로타르 드 메치에르 전동독총리,나종일 경희대교수,한상진 서울대교수가 주제발표를 했고 라울 망글라푸스 전필리핀외무장관,제임스 릴리 전주한미국대사등 국내외 저명인사와 석학 19명이 토론에 참가했다. 다음은 던교수와 드 메치에르전총리의 주제발표 요지이다. ▲존 던 교수(아시아의 민주주의와 평화)=냉전종식 이후 세계적인 갈등의 궁극적 원천은 경제문제나 이데올로기보다는 문화적 요소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근본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것은 경제나 이념이 아니라 전체문명이라는 견해인 것이다. 대의민주제및 인권과 국제평화 사이에는 긴밀하고 상호의존적 관계가 있다는 관념이 오늘날 서구의 지배 이데올로기이다.이러한 이념을 한국사람들은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공산주의의 실패를 자초한 원인은 집합적 소유제도에 기초한 명령경제체제의 뿌리깊은 비효율성이다.대의민주제의 이점 때문에 냉전하에서 공산주의 국가들의 전망은 밝을 수가 없었다.대의민주제의 강력한 매력은 사람이 스스로 선택의 필요성을 느낄 때,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다른 힘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선호대로 결정하는데 있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권위주의 지배체제하에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이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무한대로 성장해 갈지,얼마나 오랫동안 권위주의체제의 예속을 인내할지,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만약 권위주의체제가 번영을 보장해 준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독재정권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밝게 하는 것이다.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드 메치에르 전동독총리(독일통일 전후의 분위기와 여건)=72년 양독기본조약 체결이후 서독측의 TV개방과 상호방문등으로 양독간의 분위기가 크게 좋아졌다.동독국민은 서독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컸고 통일을 장미빛 꿈으로 생각한데서 통일이후의 실망이 상대적으로 컸다.사회주의 경제체제에 있었던 동독인들에게 갑자기 시장경제적 경쟁에 돌입하라는 요구가 무리였고 동시에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자생력을 잃고 흡수당하는 쪽을 선호하게 됐다. 통일과정에서 서독 콜총리가 10년동안 유지될 연방제식 통일방안을 제시했고 나도 합의했으나 지켜질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첫째,동독인들의 이성을 잃은 태도 때문이었다.1주일에 4천명 정도가 서독으로 이주하고 동독사회가 공동화현상으로 치달으면서 자체통제역량을 잃고 있었다.둘째,고르바초프의 소련이 위태로웠고 양독정부나 국민이 국제정치적 호기를 놓치면 상황이 어렵게 될지 몰라 서둘러 정치통합식 통일이라도 하는 것이 좋다는 민족적 정서가 나타났다.셋째,서독의 자본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동독사회가 불안에 빠졌으며 동독의 40년 역사를 무효화시키는 현실로 나타났다.넷째,통일과정에서 화해정책이 망가진 것이다.동독기술자를 비롯한 고급인력의 90%가 보복과 숙정의 대상으로 밀려나고 동독의 자주적 사회건설은 물거품이 됐다.다섯째,통독선거에서 동독인들 스스로 장미빛 공약을 내건 서독의 기민연합당에 투표함으로써 점진적 통일의 길은 이미 끝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동독의 마지막 총리로서 결과적으로 서독정부에 농락당하고 동독국민들로부터 버림받는 이중고난을 당했다는 생각이 든다.점진적이며 단계적 통합만이 살 길이다. ◎국내외 저명인사 5백여명 참석/3개국어 동시통역… 아키노 생일파티도/학술토론회 이모저모 26일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이사장 김대중전민주당대표)주최 국제학술토론회에는 5백여명의 국내외 인사가 참석해 지금까지 국내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로서는 상당한 성황을 이루었다. ○…김이사장은 기조연설 서두에 『오늘은 정계은퇴 이후 1년만에 실업자 신세를 면하고 취업하게 돼 개인적으로 의의가 깊은 날』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폭소를 유도. 김이사장은 이어 『우리 옛말에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는 말이 있듯이 여러 석학들 앞에서 아시아 민주주의의 장래와 한반도에서의 평화적 통일에 관해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토의와 연구과정에서 참고해 주십사 하는 뜻에서 평소 소견을 몇가지 피력해 볼까 한다』고 겸손하게 인사. ○…국어 영어 독일어등 3개국어 동시통역으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데아타 이디오피아대사와 올레그 다비도프 러시아대사관 일등서기관,그리고 유고 핀란드 체코 독일 뉴질랜드 예멘 싱가포르등 주한외국공관원들이 다수 참석. 또 서울주재 일본특파원들과 중국의 인민일보등 해외언론들도 취재에 열심. 정계인사로는 이기택대표등 민주당의원 대부분과 새한국당의 이종찬대표도 참석했고 국제교류재단의 손주환이사장등 여권인사의 모습도. 해외고문으로 위촉된 코라손 아키노 전필리핀대통령은 본국사정으로 이날 하오4시쯤에야 도착,현관에서 영접할 기회를 놓친 김이사장은 부인 이희호여사및 이우정의원과 함께 호텔 21층 숙소로 찾아가 20분남짓 환담. ○…드 메치에르 전총리는 기자들이 한반도의 통일을 어떻게 전망하느냐고 묻자 『남북한의 통일은 동족상잔의 전쟁,민간교류의 전무등으로 인해 상당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공산주의의 역사는 끝났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본다』고 답변. ○…토론이 끝난뒤 지하 1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외빈들을 위한 만찬은 아키노전대통령을 위한 「깜짝 생일파티」로 웃음이 넘치는 분위기. 김이사장의 환영사와 김수환추기경·강원용목사의 인사말이 끝나자 이희호여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키노대통령이 지난 25일로 61회 생일을 맞았다』고 소개한뒤 케이크와 3인조 필리핀밴드의 입장을 알리자 아키노전대통령은 놀란 표정으로 『원더풀』을 연발.
  • “기업이 문화투자에 힘쓸때”

    ◎김 대통령/21세기는 문예산업시대… 경쟁력 갖춰야/통일대비 「재산특례법」 제정/경복궁 97년까지 조기복원/법무·문화체육부 업무보고 김영삼대통령은 25일 『앞으로 문화와 기업의 협력은 산학협동과 같은 양태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기업도 문화에 투자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이고 이윤을 많이 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으로부터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받고 이같이 말한 뒤 『21세기에는 각종 첨단 영상매체의 발전을 통해 문화예술 자체가 최대의 산업이 될 것이며 문화전쟁에서 선진국들의 각축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제,『우리도 국제감각에 맞는 문화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민족문화의 발굴·복원과 연구,다양한 세계문화와의 교류협력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으므로 국제화 세계화에 걸맞게 해외문화전략을 체계적으로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올해가 서울 정도6백주년이 되는 해이며 한국방문의 해이자 국악의 해로이러한 계기를 통해 우리 문화의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체육부문과 관련,『21세기 들어 처음 열리는 월드컵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리게 된다면 위대한 한민족시대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적극적인 유치의사를 밝히고 『생활체육시설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라』고 시달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법무부의 업무를 보고받고 『지난해 안기부법 개정으로 자칫 대공수사에 사각지대가 생길수 있다』고 지적,『이 문제는 국가안위와 관계된 것인만큼 검찰은 안기부를 비롯한 정보기관과 긴밀히 협조해 책임있게 처리해 나가라』고 지시했다. ◎UR 법률지원반 설치 남·북통일후 예상되는 부동산소유권분쟁등 재산권문제와 이산가족 재결합에 따른 친족·상속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일관련특례법시안」이 올해안에 만들어진다. 또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타결에 따른 법률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법무부에 「UR후속대책법률지원반」이 설치된다. 김두희법무부장관은 25일 상오 청와대에서 이같은 내용의 새해 업무계획을 김영삼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장관은 이날 보고에서 통일이후 예상되는 부동산소유권분쟁등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통일과정의 법령 등을 참조,우리 실정에 맞는 구체적인 통일실천관련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남·북한 교류및 협력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판문점부근에 남북한 출입을 관리하는 출입국관리사무소분소를 설치,주민왕래를 보장하는 「출입경관리방안」을 만들기로 했다. 법무부는 또 ▲지적재산권침해사범을 철저히 단속해 통상마찰요인을 제거하는등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며 ▲국제법무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유엔,제네바,북경등 공관에 법무협력관을 파견해 유관기관과 기업에 제공하는등 국제화·개방화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와함께 여권자동판독시스템을 도입해 출입국심사시간을 대폭 단축하는 한편 특히 외국인의 신속한 출국심사를 위해 전산검색을 폐지키로 했다고 보고했다. ◎내년 문화대축전 개최 정부는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오는 96년8월까지 완전철거하고 조선조 정궁인 경복궁의 복원공사를 97년으로 2년 앞당겨 완료하기로 했다.또 광복 50주년 기념행사로 국민문화대축전을 마련,내년에 북한동포의 참여를 유도하는 민속대축전과 세계한민족축전 및 서울국제영화제와 음악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은 25일 김영삼대통령에게 보고한 「94년 주요업무계획」을 통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빠른 철거를 위해 올해안에 철거설계와 실측조사를 마치고 새 국립중앙박물관의 설계를 국제공모로 실시하겠다』고 말하고 『21세기 문화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문화정책을 연구·개발할 재단법인 「문화정책개발원」을 올 상반기중에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장관은 또 『우리 문화의 해외진출과 세계화를 위해 해외파견인력을 축소하는 다른 부처와 관계없이 미국·일본·중국등 세계 주요 나라에 「문화협력관」을 파견하고 우리 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세계화대책추진반」을 구성,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이장관은 프랑스가 소장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와 관련,『프랑스측은 외규장각도서와 동등한 고서의 교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우리측은 교류에 의한 영구임대형식의 반환을 제의했다』고 밝히고 현재 실무진에서 교류가 가능한 도서목록을 작성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장관은 『첨단 문화상품과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상품개발에 역점을 두고 특히 부가가치가 높은 만화영화와 비디오게임·디자인을 새 주력업종으로 육성하며 21세기 문화전쟁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영상산업진흥법」을 제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장관은 이어 『남북대화의 재개를 전제,남북기본합의서와 교류협력부속합의서를 근거로 북한측이 수용 가능한 사업을 중심으로 체육교류 3단계를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 서울∼북경 직항로 빠르면 4월개설/한·중 의견접근

    【북경=최두삼특파원】 한국과 중국은 임시항공협정방식으로 항공관제이양점을 동경 1백24도로 해 서울∼북경간 정기직항로를 조속개설키로 합의한 것으로 25일 밝혀졌다. 그러나 서울∼상해노선의 경우 관제이양점을 둘러싼 양국간 이견으로 지금과 마찬가지로 전세기운항체제를 계속 유지키로 했다. 황병태 주중대사는 이날 상오 한국특파원들에게 지난 17∼22일 북경에서 열렸던 한·중비공식실무항공회담 결과에 대해 이같이 밝히고 『다음달 중순 북경에서 열릴 예정인 제4차 한·중항공회담에서 이같은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오는 3월말 정식체결될 한·중항공협정의 명칭도 서울∼상해등 중국 남부항공노선의 관제이양점문제가 미타결상태로 남아 있는 점을 감안해 「임시협정」의 형식을 띠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은 그러나 4차 본회담에서 이들 나머지 쟁점현안들을 마무리지은 뒤 오는 3월말로 예정된 김영삼대통령의 방중에 맞춰 항공협정을 정식체결하고 빠르면 4월중에 서울∼북경간 직항로를 개설한다는 데 대체적인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 통일시대 대비 문화정책개발원 설립/법무부 올해 업무보고 요지

    ◎「UR지원반」 설치… 관계법령 정비/출입국절차 간소화… 전산검색 폐지 ◇국가·사회의 안정기반 구축=자유민주체제 수호를 위해 검찰의 대공수사 역량을 강화하고 공안 수사기관간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한다. 또 다중의 위세나 폭력으로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이기적 불법행동에 단호히 대처해 나간다. 평화적 노사협상은 최대한 보호하되 불법 폭력분규에 대하여는 주동자와 배후조종자를 철저히 색출·엄단한다. 고위공직자의 직무관련 부정행위와 사회지도층의탈세,부동산투기 등 반사회적 행위를 중단없이 척결,중·하위직 공무원의 민원관련금품수수를 근절하고 금융,납품 관련 부조리 등 사회 각 분야의 고질적·구조적 비리를 중점 단속한다. 폐수방류등 상수원 오염행위,자연훼손,산업폐기물 투기행위를 철저히 단속하여 쾌적한 생활환경을 보전토록하고 유해식품 및 부정의약품제조·판매행위등 국민건강을 위해하는 범법행위를 엄벌할 방침이다. 이와함께 소탕 조직폭력,마약,인신매매,가정파괴사범 등 4대범죄 특별전담반을 설치,24시간총력수사 체제를 구축,범죄조직 계보등 수사자료를 전산관리하고 체계적 기획수사와 기습적 집중단속을 병행해 실시한다. ◇국제화·개방화 적극 지원=「UR후속대책 법률지원반」을 설치하여 관계부처의 국내법령 정비작업을 신속히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지적재산권 침해사범을 철저히 단속하여 통상마찰 소지를 제거하는 동시에 국내 기술개발을 촉진,국내기업의 국제 상사분쟁을 예방,해결하기 위한 법적 자문기능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미국,캐나다,일본 및 유럽·중남미 국가와 범죄인인도조약의 체결을 추진한다. 여권자동판독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심사업무를 과학화하여 출입국심사 시간을 단축,출임국 및 체류허가 신청서류를 대폭 간소화하고 외국인의 신속한 출국심사를 위하여 전산검색을 폐지한다. 「94 한국방문의 해」 사업의 효율적 지원을 위해 일본인 관광객의 무사증입국을 15일 범위안에서 허용하고,사증발급권한을 재외공관장에게 대폭 위임할 방침이다.
  • 서울∼북경 직항로 합의/항공관제이양점 동경 1백24도로

    ◎한·중 실무회담 우리나라와 중국은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중국 북경에서 한·중항공협정을 타결하기 위한 비공식 실무회담을 갖고 빠른 시일안에 서울과 북경을 잇는 직항로를 개설하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두나라는 또 쟁점사항인 서울∼북경,서울∼상해노선의 항공관제이양점(해당국 관제소의 통제를 받는 지점)과 관련,서울∼북경노선은 우리측 주장대로 동경 1백24도로 하는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서울∼상해노선은 직항로를 개설하지 않고 지금과 같이 일본과 중국을 잇는 코리도(항공회랑)를 통해 전세기를 운항키로 합의했다. 한·중 두나라는 또 22일부터 3일동안 실무회담을 속개,미타결사항인 ▲운항지점 ▲취항비행기 기종 ▲복수항공 취항여부등에 대해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 외국인 토지취득 규제완화/국내투자 허용된 모든 업종 대상

    ◎건설부,입법예고… 4월부터 시행 오는 4월부터 제조업에 투자한 외국기업은 신고만으로 공장부지를 취득할 수 있다.또 6대도시에선 2백평까지,6대도시 밖에서는 면적 제한없이 임직원용 사택지도 취득할 수 있다. 건설부가 20일 입법예고한 「외국인의 토지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취득 허용범위를 외자도입법 규정에 의해 외국인의 투자가 허용되는 모든 업종(농림수산업 관계 업종을 제외한 9백98종)으로 확대했다.지금까지 외국인의 토지 취득은 대사관 등 공관용 토지와 제조업·첨단 서비스업·금융·보험업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됐었다. 또 외국인이 제조업을 위해 토지를 취득할 경우 지금까지 허가를 받아야 하던 것을 신고만으로 가능하도록 했으며 외국인 임직원을 위한 사택지,근로자를 위한 임대주택 또는 기숙사용 토지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취득규모는 택지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등 국내 법을 적용키로 했다. 제조업이외 유통업·학원·학교 등 서비스업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이 땅을 사들일 경우 업무용으로 제한하되 업종별 매입 한도는 건설부 장관과 주무부처 장관이 정하기로 했다. 시행령은 또 지금까지 내무부의 「외국인 토지법」 지침으로 허용해 오던 화교 등 장기체류 외국인의 토지 취득을 ▲2백평이하의 주거용 토지는 신고만으로 ▲50평이하의 점포 용지는 허가를 받아 취득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 중국,신형전투기 곧 개발/2천년까지/터보엔진·군용 헬기 포함

    【북경 로이터 연합】 중국은 오는 2천년까지 신형 전투기를 자체 개발,생산할것이라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중국 항공관련 책임자인 주육이의 말을 인용,이것은 야심적인 산업「도약계획」의 일환이라고 밝히고 중국의 목표는 독자적인 전투기 개발은 물론 신형터보제트 엔진과 군용 헬기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주는 『중국이 오는 2천년까지 인민해방군을 위해 독자적인 신형 전투기를 개발하는 한편 완벽한 신형 헬기의 연구·생산 체제를 갖추고 군용기용 터보제트 엔진을개발,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계획은 미국·프랑스로부터도 상당 규모의 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은 물론자체개발 군용기도 보유하고 있는 대만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그렇찮아도 중국의 해군력 강화계획을 우려하고 있는 주변국가들로부터 군사모험주의라는 비판을 받을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미등과 국제공조 통해 북핵해결/외무부 올해 업무보고 요지

    ◎WTO출범 대비,통상외교 강화/안보리 비상임국 진출기반 조성 ◇국제정세 전망=세계적으로 국지분쟁및 군비확산의 위험이 존재하고 아·태안보,특히 동북아 지역의 4강 구조에 변화 가능성이 높다.경제·통상 분야에서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환경문제의 대두로 새로운 세계질서가 형성되고 있으며 세계경제의 축이 아·태지역으로 서서히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핵문제의 해결과 평화정착의 모색=한·미 공동보조를 근간으로 국제공조체제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한다.4강과의 정책협조 위에 한반도 정세의 변화가 남북한의 공존과 협력으로 이어지도록 주도한다.한·미 동맹관계의 강화발전및 평화정착을 통한 통일촉진 노력을 지속한다. ◇새로운 경제환경에 능동적 대처=WTO 출범에 대비한 통상외교를 강화하면서 환경·노동·경쟁등 신라운드에 대비하고 개발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선진국 진입을 위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준비및 G-7과의 실질협력을 강화한다. ◇아·태협력 심화=아·태경제협력체(APEC)를 통한 포괄적 아·태협력을 증진하고 역내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한다.아세안 확대외무장관회담(APEC-PMC)과 아세안 안보대화포럼(ARF)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동북아다자안보를 추진한다. ◇유엔등 국제기구를 통한 우리의 세계적 역할 수행=유엔평화유지활동 참여,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기반 조성,핵 비확산,인권·여성·빈곤·마약등 범세계적인 문제 해결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문화외교의 내실화와 재외한인 지원=경제력,문화적 저력을 바탕으로 세계속의 한국상을 홍보 한다.중국 중경 임시정부청사 복원및 정통성 계승과 재외 문화재 환수 노력을 계속한다.문민시대와 국제화 시대에 상응한 교민정책을 시행한다. ◇국제화 지원과 외교의 국제경쟁력 강화=국제화 정보의 신속 입수및 활용을 위해 외무본부와 재외공관을 국제화지원에 역점을 두고 운용한다.공무원에 대한 국제화 교육실시등 의식의 국제화를 지원한다.경제·통상·환경 업무기능의 강화를 위해 현정원 내에서 조직을 정비한다.연중 24시간 가동 가능한 외무부 독립청사 건립을 추진한다.
  • 아세안 6국대사 초청 한 외무 교류확대 논의

    한승주외무부장관은 18일 아세안국가연합(ASEAN)6개국 대사를 서울 한남동 외무장관공관으로 초청,만찬을 나누며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간의 경제협력및 교류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한장관은 이 자리에서 태평양 경제시대에 대비,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 APEC를 명실상부한 경제협력체로 활성화해 나가는데 아세안국가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 상공자원부 올 업무계획 요지

    ◎대도시에 집배송단지… 물류비용 절감/공업발전법 개정,성장산업 활성화 ◇경제활성화=기업이 의욕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외자조달의 기회를 넓혀주고 공장용지의 분양가를 내린다.「유통단지 개발촉진법」을 만들어 민간참여를 확대하고 서울·부산·대구·광주의 공동 집배송단지 건설을 차질없이 추진,물류비용을 줄인다.수출활성화 대책회의를 분기별로 갖고 정부와 유관기관·지방자치단체·재외공관이 함께 뛰는 수출총력체제를 갖춘다.수출보험법을 고쳐 보험활용률을 높인다.연불수출자금의 지원을 늘리고 지원요건을 완화,선박과 산업설비의 수출을 늘린다. 물가안정을 위해 「물가안정 민간협의회」등을 통한 활동을 지원한다.해외시장 개척기금을 지난해 1백억원에서 2백억원으로 늘리고 특히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에 집중지원한다. ◇국제경쟁력 강화=「산업기술 기반조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산업지원제도와 조직을 기술드라이브 체제로 바꾼다.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위해 「신기술 보육사업」을 늘리고 미국과 산업기술 협력재단을 설립,첨단분야의 산업협력을 추진한다.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산업기술대학법을 제정하고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제와 병역특례제를 효과있게 운용한다.중소기업에 디자인 제작과 거래알선 등을 도와주는 「수출기업화 사업」을 추진한다.성장 유망산업 활성화시키며 경쟁력 약화산업의 원활한 퇴출을 뒷받침하도록 공업발전법을 고친다.유통부문에 대한 토지·건축·금융부문의 규제를 제조업수준으로 풀고 우리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판매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외국에서의 부동산 취득제한을 완화한다.공대와 공고의 현장교육을 강화한다. ◇국제화 추진=UR(우루과이라운드)타결에 따라 무역과 산업제도를 손질하고 수출업체의 지원이 줄지 않게 무역금융과 무역어음제도를 보완한다.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등에 대비,통상외교를 강화하고 러시아·베트남 등의 경제개발에 적극 참여한다.선진국과의 전략적 제휴를 위해 해외지사와 현지법인의 현지금융을 확충하고 국내에 외국인 투자지역을 만든다.수입급증에 따른 국내산업피해를 줄이기 위해 산업피해구제제도를 재편한다. ◇에너지 수급안정=인천 등지에 천연가스 인수기지를 추가로 건설하고 석유·전기의 공급시설도 적기에 늘린다.원전의 입지확보를 위해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입지 제공지역의 지원을 늘린다.비경제적인 탄광을 폐광하고 석탄 값의 인상요인은 가격조정과 정부보조로 흡수한다.대규모 신규 주택단지에는 지역난방을,공업단지에는 열병합 발전시설을 늘려 나간다.발전설비 확충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하반기중 전기요금을 조정한다.환경과 조화되는 에너지 정책을 펼친다.
  • 회견내용 실천 협의/고위 당정간담회

    정부와 민자당은 6일 저녁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이회창총리와 김종필대표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위당정간담회를 갖고 북한핵문제,경제활성화등을 중심으로 김영삼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내용의 실천방안을 협의했다.
  • 러,동해상공비행 제한/작년말부터/일의 유럽항로 큰 타격

    【도쿄=이창순특파원】 러시아가 작년말 돌연 동해상공의 항로에 대한 비행제한을 실시해 유럽방면 국제선의 비행스케줄이 큰 혼란에 빠져 연발하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일 아사히신문이 5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러시아 항공관제당국은 오는 3월말까지 러시아영공에 들어오는 비행기편수를 현재의 절반가까이로 제한해 작년말부터 시행하고 있다. 러시아측은 「무선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을뿐 구체적인 사항은 알리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일본의 나리타공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항공기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비행제한은 지난달 28일 하바로프스크관제센터가 비행정보로서 일본의 관제당국에 통고한 것으로 오는 3월27일까지 사도(좌도) 앞바다에서 연해주북부로 통하는 항공로를 이용해 러시아영공에 들어가는 비행기를 시간당 6편으로 줄였다. 이 항공로는 한국과 일본에서 시베리아상공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항공로이며 유럽과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가장 짧은 루트로 매일 40∼50편이 운항되고 있다. ◎한국엔 통보 없었다/교통부 관계자 한편 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이에대해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러시아측이 어떤 요구나 사전 통보를 해온바 없다』고 말했다.
  • 갑오경장 1백주년… 그 개혁운동 재평가와 역사적 교훈

    올해는 갑오경장 1백주년을 맞는 해다.갑오경장은 1894년7월부터 1896년2월까지 약 1년반동안 지속된 제도개혁운동이었다.이 기간동안 우리나라는 구시대의 질서에서 신시대의 질서로 편입되는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지난해 새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또다른 개혁의 시대를 숨가쁘게 달려왔다.1백년만에 다시 변혁의 기회를 맞이한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갑오경장이 제도의 변혁이었다면 지금은 당시의 엄청난 변화에 비견될 의식의 개혁이다.올해는 새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성패를 가늠할수 있는 중요한 시점.「외세에 의존한 정권탈취 및 유지책」이라는 시각에서 「기반이 확보될 때까지 시한부로 일본의 후원을 기대한 자율적인 개혁운동」으로 재정립된 갑오경장을 재조명하고 지금 추진되고 있는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역사적 교훈을 찾아본다. ◎재평가 작업/민중지지 못얻은 미완의 제도개혁/농민 염원 수용… 국정에 새바람/민주·자립 등 근대적 이념 표명/“일제 등에 업고 권위주의적 추진으로 실패” 갑오경장은 조선조를거치며 쌓인 민중들의 원성이 1894년 동학농민봉기로 나타나자 새로 들어선 정권이 그 불만을 아우르기 위해 시도한 제도개혁운동이었다.그로부터 1백년뒤,제3공화국 이후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이 문민정부의 등장을 가져오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과 크게 다를바 없다. 다만 갑오개혁의 주체들은 일본이라는 외세의 무력의 도움을 받아 집권했고 「잠정적」이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그들의 지원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여기에 갑오경장 주역들의 「개혁은 곧 서구화 내지 일본화」라는 소신은 그것이 비록 역사적 관점에서 옳은 판단이었다 할지라도 구성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갑오경장이 미완의 개혁으로 끝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또 갑오경장이 그동안 그 역사적 비중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지 못해왔던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혁명적 이상추구 그러나 갑오경장이 재평가되고 있는 시점에서 되돌아 본 갑오개혁파의 개혁정책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 이상의 변혁을 추구했음을 알수있게 해준다. 갑오경장을 주도한 개화파 관료들은 집권하자마자 외무아문을 신설해 근대적 자주외교를 펼칠 준비를 갖추었다.이어 국호를 대조선제국으로,국왕을 대조선황제로 부르고 1896년부터 건양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채택해 국가적 자주 독립을 내세웠다. 이들은 민주주의적 발상에 입각한 몇가지 참신한 정치제도개혁도 실시했다.개혁추진의 핵심인 군국기무처를 입법·자문기관인 「의사부」로 만들어 행정부에 대치시키는 의회설립안을 만들었던 것도 이 가운데 하나이다.또 조선협회라는 일종의 정당을 발족시키기도 했다. ○지방제도 일원화 이들은 8도·5유수부로 대표되는 종래의 지방행정체제도 23부·3백37군으로 개편했다.지방제도를 일원화함으로써 행정의 합리화를 기함과 동시에 지방관으로부터 사법권과 군사권을 박탈해 근대관료적 색채가 농후해졌다.또 「향회조규」와 「향약변무규정」을 발포해 초보적인 지방자치제를 실시코자 했다. 경제분야에도 힘을 기울였다.개혁파는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해 재정정리와 민간산업 진흥을 도모하고 근대적 자립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경제개발 계획을 세웠다.이 계획은 경인철도 건설을 통해 수입을 늘리는 외에 왕실재정을 정리해 정부수입을 늘리는 한편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고 세수의 결손을 줄이며 민간상공업을 진흥한다는 내용까지를 포함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능력본위의 평등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개화파의 사회개혁 의지도 중요한 대목이다.이들은 집권하자마자 「사민동등지법」을 확립해 전통적 신분제도의 철폐에 착수했다.양반과 상민을 구별하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고 같은 양반에서도 문반과 무반의 차별을 없앴다.공사노비를 풀어주고 인신매매를 금했으며 역정 광대 백정도 모두 면천케 했다.이밖에 죄인에 대한 고문이나 연좌법을 폐지하고 너무 이른 결혼과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는등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해외유학 적극적 개화파는 과거제도 중심의 교육제도가 조선을 쇠퇴케 한 근본원인이라 생각해 합리성과 실용 위주로 교육제도를 개선코자 했다.이에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본국문,즉 한글의 사용을 장려해 정부의 공문과 관보도 국한문 혼용체나 순한글로 쓰도록 했다.또 적극적인 유학정책을 펴 1895년에는 약2백명을 국비로 도쿄에 유학시켰고 미국인 선교사가 경영하는 배재학당에 2백명의 관비장학생을 입학시켜 신학문을 배우게 할 계획도 마련했었다. 갑오개화파의 이 모든 정책 대부분은 물론 일본과 관련한 부정적인 해석이 있어왔다.또 대부분이 민중의 의사를 도외시한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만으로도 그동안 권위주의 시대에 대항해 온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시각의 존재가 필요해졌다.권위주의 시대에 역사에서 필요한 교훈이 한방향으로 귀결되었다면 문민시대에 필요한 역사적 교훈은 다양하기 때문이다.갑오경장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개혁의 교훈을 찾으려 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또 갑오경장을 일방적인 예속의 역사로 해석하는 것은 자존심을 위해서도 이제는 벗어나야 할 대목이다. ◎발단·경과/대원군추대,친일내각 수립/20개월간 전반적 혁신 단행 민씨정권은 1884년 갑신정변을 수습하고 나름대로 서구의 기술을 도입하는등 근대적 개혁을 추구하고 있었지만 열강의 침투에 속수무책이었다.또 지배층 위주의 개혁이었기에 농민층과의 충돌은 불기피했다.1894년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나자 자력진압이 불가능한 민씨정권은 청에 응원군을 요청하는 한편 농민군의 요구를 일정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협상을 시도했다.그러나 민씨정권의 요청에 따라 청군이 아산만에 들어오자 일본은 천진조약을 빌미로 곧 이어 군대를 인천에 상륙시켰다. 민씨정권은 청·일양군공동철병론을 주장했으나 일본은 조선의 개혁에 대한 청·일공동지도론을 제의했다.이에 청이 내정간섭이라며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침략을 위한 독자적인 개혁의 원칙을 제시했다. 민씨정권은 이 요구를 거절하고 농민군의 폐정개혁요구를 반영하는 선에서 정권의 위기를 넘기려 했으나 일본은 7월23일 경복궁을 기습하여 민씨정권을 무너뜨리고 대원군을 추대했다.이어 김홍집을 수반으로 하는 친일계와 중립계로 정부를 개편했다. 1894년7월에서 1896년2월에 이르는 갑오경장기간 정계에서 부침하던 정파는 다섯 그룹으로 대별된다.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유길준등 갑오경장파와 박영효 서광범등 갑신정변파,박정양 이완용 윤치호등 미국·러시아등 외국공관을 배경으로 하던 정동파,대원군 이준용 이태용등 대원군파,그리고 고종과 명성황후를 둘러싼 홍계훈 이도철 이학균등 궁정파등이었다. 이 가운데 갑오경장 전기간에 걸쳐 가장 오래 정권을 장악하고,따라서 개혁운동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세력은 갑오경장파였다. 이들은 처음에 대원군파와의 제휴로 집권해 제1개혁기(1894년7월27일∼12월17일)에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개혁을 주도했다.이어 제2개혁기(12월17일∼1895년5월21일)에는 갑신정변파와 연립내각을 구성해 공동으로 개혁을 추진했다.제3개혁기(5월31일∼7월6일)에 갑오파는 갑신파와의 알력으로 김홍집과 조희연이 내각에서 사퇴했지만 다른 멤버는 남아 박영효가 주도하는 개혁에 동참했다.갑오파는 제4개혁기(7월6일∼8월28일)와 제5개혁기에는 정동파와 궁정파의 합세로거세될 위기를 맞았으나 제6개혁기(10월8일∼1896년2월11일)에 궁정파가 실권하자 다시 득세,집권하여 개혁운동을 재개했다. 갑오경장은 그러나 과격한 개혁조치에 불만을 품어오던 고종이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 대일감정이 극도로 악화된 사이 1896년2월에 러시아공사관으로의 망명(아관파천)으로 개혁정권이 붕괴되고 친러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교훈/“민의따른 개력이 최상의 통치”/폭넓은 지지속 군사·재정 뒷받침 필수/“외세의존땐 성공 못한다” 역사의 명제 갑오경장이란 지금으로부터 1백년전 1894년에 동학농민봉기와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추진되었던 획기적인 근대화운동을 뜻한다.이 개혁운동을 통해 종래의 중국적인 우리나라 통치·행정구조 및 외교·재정·군사·경찰·사법제도 등이 일본 내지 서구식으로 크게 바뀌었다. 갑오경장때 추진된 일련의 「혁명적」개혁조치는 그후 많은 수정을 거치면서도 보존되어 오늘날 한국 사회 및 문화의 일각을 이루고 있다. 갑오경장은 1894년 봄의 제1차동학농민봉기를 계기로 서울에 불법적으로 침략해온 일본군이 7월23일 경복궁을 강점한 상황하에서 개시되었다.이때 (흥선)대원군을 받든 일군의 친일개혁관료들이 신정부를 구성하고 군국기무처라는 초정부적 입법기구를 만들어 그 곳에서 2백여개의 개혁안을 심의,채택함으로써 역사적인 「대경장」의 막을 올렸던 것이다. 이 개혁운동에는 처음부터 일본의 입김이 작용하였다.즉,갑오경장에는 「타율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그러나 갑오경장을 전적으로 일본의 지도와 후원에 힘입은 개혁운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개혁운동 초반에 개혁을 주도했던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박정양 유길준등 20여명의 군국기무처 의원들은 1880년대 초반에 외교사절단원 혹은 유학생으로서 일본·청국·미국 등에 건너가 세계정세를 파악하고,특히 명치일본의 「문명개화」운동과 청국의 양무운동 등을 조사,연구한 끝에 조선의 자주독립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개화,자강의 방안을 고안하여 이를 실천에 옮겼던,나름대로 애국심이 강한 개명관료들이었다.그들은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을 거치면서 청국이 종주권을 내세워 대한간섭을 강화하자 정치적으로 실세하여 국내외에서 망명내지 유배생활을 강요당하가나 정부요직에서 소외당하였다.따라서 그들은 반청·독립사상이 강한 반면에 친일적 성향을 띠었으며 또 친청보수세력인 민씨척주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대원군에게 호의적인 세력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개화·자강정책을 연구·실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도개혁을 스스로 추진할 능력과 의욕이 있었다.과연 초기 갑오경장을 담당했던 군국기무처 의원들은 대원군의 지도하에 동학농민군이 요구한 폐정개혁안을 수렴하면서 제도개혁을 거의 완전히 자율적으로 추진했다.갑오경장 중반에 내각 대신 혹은 협판으로서 개혁운동에 참여하였던 박영효·서광범·윤치호 등은 갑신정변(1884)때 자신들이 겪은 일본정부의 배신을 귀감으로 삼되 미국·일본에서의 망명생활,유학에서 스스로 터득한 개혁사상을 기초로 자율적 개혁추진을 도모했다.이러한 점에서 갑오경장은 조선인 개화파 관료들의 「자율적」 개혁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갑오경장을 담당했던 조선의 개혁관료들은 우선 국민 상하의 존경과 지지를 얻는데 필요한 위신이 부족한 데다,자기들의 권력을 뒷받침해 줄 독자적인 군사력과 개혁의 실현에 필요한 자긍력이 없었다.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기반을 확보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일본의 후원 내지 지원을 받으려 하였다.결국 이러한 그들의 대일본 의존정략이 갑오경장을 중도반계의 실패작으로 만든 요인이 되었다. 갑오경장은 왕조의 유신과 중흥을 도모했던 조선왕조 최후의 개혁운동이었다.이 운동에서 원래 기대되었던 목적이 달성되었다면 조선왕조는 중흥되었을 것이고,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민족적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근원적으로 따져 볼 때,갑오경장은 오랫동안 축적된 조선민중들의 불만이 동학농민봉기라는 과격한 형태로 표출된 다음 정부가 서둘러서 개시한 개혁운동이다.만약 조선정부가 민중들의 불만요인을 미리 파악하여 적시에 필요한 개혁을 축적해 나갔더라면 외세의 간섭도 면하고 또 갑오경장 같은진통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집권자가 국민들의 요망을 미리 미리 알아차려 시의적절하게 작은 규모의 개혁들을 하나 하나 펼쳐나가는 것이 최상의 국가경영 철학임을 깨닫게 된다.이것이 갑오경장에서 우리가 얻는 최대의 역사적 교훈이다.아울러서 우리는 개혁사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을 뒷받침해 줄 튼튼한 군사력과 재정이 필수라는 사실을 확인하며,나아가 민중을 도외시한 외세의존적인 개혁운동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 북핵타결 임박… 후속대책 논의/고위 전략회의

    ◎“3단계 회담전 특사교환”/북,“팀중단·통상사찰 수용 정부는 30일 낮 통일관계 고위전략회의를 열고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한 접촉 결과를 분석하고 북한의 핵투명성 보장을 위해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병행해 남북대화의 의미있는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이회창국무총리 주재로 총리공관에서 열린 이날 회의는 3단계 미·북회담 이전에 IAEA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사찰이 이뤄지고 이와 병행해 남북 비핵화공동선언 이행 차원에서 특사교환이 실현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송영대통일원차관은 이날 회의가 끝난뒤 『29일 뉴욕에서 개최된 미·북한 막후접촉에서 쌍방 입장이 상당부분 접근했으나 아직 완전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미·북한간 추가접촉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내년초에 재개될 미·북접촉에서 북한핵문제가 상당부분 진전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송차관은 또 『특사교환이 이뤄지면 최우선 해결과제가 핵문제가 될 것』이라면서 『이와 같은 의미가 있는 특사교환이 실현되어야만 3단계 미·북회담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달초 합의 전망 정부는 30일(한국시간) 미국과 북한의 뉴욕 실무접촉 결과,북한이 남북 특사교환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데다 양측의 이견이 녕변의 2개 핵시설에 대한 사찰의 수준으로 압축된 점으로 미루어 내년초 재개될 접촉에서는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보고 후속대책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미국은 북한의 회신을 받기 위해 뉴욕에서 북한과 접촉을 가졌으나 IAEA 사찰의 세부사항에서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었다』고 전하고 『그러나 협의의 속도가 상당히 빨라지고 있으며,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또 『북한은 미·북 3단계 고위급회담이 열리기 전에 남북간에 특사가 실제로 교환돼야 한다는 한·미 양국의 제의에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외교부대변인 밝혀 【내외】 북한 외교부대변인은 30일 미국과 북한이 지난 29일 뉴욕실무접촉에서 제3단계 미·북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일괄타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 외교부대변인은 이날 중앙통신과 회견을 통해 이번 접촉에서 미국측은 대북핵위협 제거조치의 일환으로 팀스피리트훈련 중지의사를 공식 표명했으며 북한은 『이미 신고한 핵시설들에 대한 조약에 따르는 정기·비정기 사찰이 아니라 순수 담보의 연속성 보장에 필요한 사찰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이같은 진전을 토대로 쌍방이 제3단계 회담을 열고 ▲미국의 대북 핵위협·적대시정책종식 ▲미·북 관계개선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정기·비정기 사찰의 재개 등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문제들을 일괄 타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내일 통일관계 전략회의/북한 핵문제 등 집중논의

    정부는 30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회창국무총리주재로 통일관계 고위전략회의를 열고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최근 국제사회의 활발한 움직임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과 대응책을 논의한다.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한협상과 미·중국간 협의에 대한 대응책과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대통령훈령 조작사건과 관련한 대북정책등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12·21」개각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회의는 특히 정부의 대북전략 전반에 대한 재검토와 함께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우리측의 대응책이 모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회의에는 이영덕부총리겸 통일원장관,한승주외무·이병대국방장관,김덕안기부장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 이 감사원장 공관입주 않기로

    이시윤신임감사원장도 전임자인 이회창국무총리처럼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감사원장공관에 입주하지 않는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26일 『이원장이 공관에 입주하면 감사원의 예산에서 불필요한 경비가 추가로 소요될 것을 우려,입주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감사원장공관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계속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 되돌아본 1993 신한국 원년/정치부기자 방담

    ◎문민 기틀다진 정치대변혁 365일/개혁 대명제… 공직자 1·2차 재산공개/정통성 바탕 「5.16」 「12·12」 재평가 큰의미/성역없는 사정… 감사원 위상 크게 강화/NPT탈퇴 북핵,국제적 파문속 한반도 위기설까지 초래 「신한국 원년」 계유년이 저문다.문민시대를 활짝 열고 숨가쁘게 달려온 한해.정치권은 개혁·사정·역사재평가·국제화·개방화등 신한국을 창조하기 위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한치도 눈돌릴 틈이 없었던 올해 정치권의 변화를 정치부기자들의 방담으로 돌이켜 본다. ­올 한해는 우리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변혁의 해였습니다.30년만에 문민정부가 출범하고,우리사회는 정치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혁명에 가까운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다사다란이란 말로는 부족할 정도입니다.변화의 조짐은 새정부 출범 첫날인 2월25일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등산로가 개방되면서 시작됐지요.국민들은 굉장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변화는 김영삼대통령과 청와대로부터 출발했지요.권위주의시대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이른바 「안가」(안전가옥)는 시민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지방청와대」(대통령을 위한 지방공관)도 일반에 개방됐습니다. ­정말 청와대주변이 몰라보게 달라졌어요.평일에 3천여명,휴일에는 6천∼7천명이 줄을 이어 찾는 관광명소가 된 것입니다. ­그 부작용도 있지요.청와대 주변에 차량이 몰리면서 교통체증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고,청와대 안까지 매연이 몰려들고 있습니다.시위도 빈발하고요. ○안기부 크게 위축 ­청와대 살림도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청와대 칼국수가 국제적으로 유명해졌고 청와대 구내 식당은 늘 만원사례입니다.한 수석비서관은 모든 경조사 부조금을 일률적으로 「3만원」으로 하라고 보좌관에게 지시,청와대의 허리띠 졸라매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시켰습니다.한때 박관용비서실장의 영양실조설까지 나돌 지경이었으니까요. ­8월12일의 전격적인 금융실명제 단행은 김대통령이 얼마나 보안에 철저한가를 실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저녁 7시30분 TV생중계로 김대통령이 직접 발표하기 5분전까지 출입기자들도그 내용을 전혀 몰랐어요. ­대통령이 다음날 수석비서관들에게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으니 알아줘야 하겠어요.그렇게 했으니 보안이 유지되었지,미리 새나갔다고 생각해봐요.금융시장이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새정부 들어 위상의 부침이 가장 심했던 기관이 감사원과 안기부일 것입니다. ­그동안 권력의 하부기관 쯤으로 인식돼왔던 감사원은 이회창원장이 취임한뒤 청와대와 「율곡사업」,「평화의 댐」등에 대한 감사를 통해 국가최고사정기관으로서의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그에 비해 안기부는 정치관여에 대한 지난날의 「원죄」때문에 크게 위축된 모습이 됐습니다.게다가 평화의 댐 건설과 대통령훈령 조작의혹으로 감사원의 감사대상에까지 오르게 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무엇보다 안기부를 답답하게 만든 것은 안기부법의 개정이었습니다.안기부도 나름대로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안기부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죠.하지만 여야의 협상과정에서 수사권한등이 그 인식의 틀을 훨씬 뛰어넘어 대폭으로 손질되자 『손발이 완전히 묶였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대공업무를 처리하느냐』는 등의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새정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통성을 바탕으로 한 역사의 재평가작업이었습니다.과거의 청산이라고나 할까요.「5·16」「12·12」등 군사정권 아래서 미화되던 사건들이 쿠데타로 규정되었고 「4·19」를 비롯,「6·3」「광주민주화운동」「6·10」등이 민주화운동의 반열로 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김대통령은 「12·12」를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여당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과거 군사정권과는 연계가 없음을 분명히 했지요.그러나 김대통령은 「적」이라는 절묘한 수식어를 달면서 이들에 대한 궁극적 평가는 역사에 맡기자고 말해 현 여당내의 구세력을 인위적으로 청산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김대통령은 일제의 잔재를 없애는데도 앞장섰습니다.옛 일본총독부건물과 총독관저를 헐기로 결정한 것도 김대통령의 「업적」의 하나로 평가될 것입니다. ­정부는 규제와 관행과의 전쟁을치렀습니다.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적으로 잘못된 규제와 관행이 지적되자 모두 3천8백여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들을 뜯어 고쳤습니다. ○일제의 잔재 제거 ­일반국민들의 관심과 호응도 매우 컸어요.공무원과 회사원·농민·학생 가릴 것 없이 앞다퉈 제안들을 내놓아 지금까지 접수된 안건이 9천건을 넘어섰습니다.한달에 1천건 이상씩이 쏟아져 들어온 셈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리던데요. ­관행을 바꾼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죠.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지속적인 개선작업을 펴나가야만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아울러 법령개정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안건들이 많습니다.다행히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생관련법안들이 많이 개정됐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부분적으로나마 달라진 행정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주민등록 전출입 신고를 한차례로 끝내도록 한 것이나 인감증명제를 점차적으로 폐지키로 한 것 등은 일상생활의 편의와 직결돼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변화의 뇌관은 김대통령의 자진재산공개라고 봅니다.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유도한 것이지요. ­3월의 1차 재산공개는 새 정부의 사정 예고탄이었어요.김상철서울시장과 박량실보사부장관이 그린벨트의 훼손과,절대농지의 위장매입으로 결국 사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몇몇 장관과 집권당 사무총장도 자녀 입시문제로 물러났습니다. ­정치권의 재산공개는 「토사구팽」이란 말을 올해의 최고 유행어로 만들었지요.박준규국회의장과 유학성·김문기·김재순·이원조의원등이 의원직을 사퇴하게 됐고 임춘원의원은 자진탈당,정동호의원은 출당,김영진·금진호·조진형·남평우의원등은 공개경고를 받았습니다.김재순전의장이 「토사구팽」으로,박의장은 「격화소양」으로 김대통령에게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김대통령은 재산공개 파문이 마무리된 뒤 「역사적 명예혁명」이라고 강조하지 않았습니까.당하는 쪽과 일하는 쪽은 언제나 이렇게 다릅니다. ­1차공개가 대통령의 유도에 따른 것이었다면 2차공개는 법률에 근거한 첫 재산공개였습니다.하지만 12월초 행정부 4명비공개경고,입법부 3명 비공개경고로 가볍게 마무리돼 다소 김이 빠진 인상을 남겼습니다. ­민자당은 박박식·이학원의원을 자진탈당시키고 김동권의원은 6개월 당원권정지의 중징계를 내렸고 남평우의원 등은 비공개 경고했습니다. ­두 차례 재산공개에서 수많은 공직자들이 납득할만한 근거가 없는 많은 재산을 갖고 있거나 제주·경기등에 투기를 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금융실명제와 함께 이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기초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국회도 과거에 비해 생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인 것 같습니다.정기국회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실력대결을 벌이기도 했지만 과거의 2배에 이르는 많은 법안들이 처리됐고 법안을 심의하는 과정도 상당히 진지했어요. ­특히 올해는 국정조사권이 발동됨으로써 의원들에게는 여느 해보다 바빴던 해로 기록될 듯 싶습니다.야당측의 요구로 시작된 국정조사는 「5·6공」의 실력자들을 대거 증인으로 채택,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민주당은 올해의 성과로 안기부법 개정과 함께 야당의 힘으로 국정조사권 발동을 이루었다는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시선이 온통 청와대로 집중되고 사회분위기가 사정한파로 위축됐던 것이 사실이지만 정기국회에서 안기부법과 정당법·통신비밀보호법등 과거에는 상상이 어려웠던 정치관계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성과를 이끌어 냈습니다.정기국회 예산안 처리에서 나타난 여당의 강행처리와 야당의 실력저지라는 문민시대에 걸맞지 않는 구태가 재연된 것만 제외하면 시작보다는 마무리가 좋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우루과이 라운드(UR)협상의 타결에 따른 쌀시장 개방에 대처하는 부분에서는 정치권 전체가 속수무책이었던 것 같습니다.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됐는 데도 전혀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마치 무슨 「날벼락」이라도 맞은 사람들처럼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실망보다는 기대 ­어쨌든 올해 여야를 포함한 정치권이 보인 모습은 실망보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대체적인 평가인듯 합니다.선거법·정치자금법등 정치개혁법들이 미결로 남은 점은 아쉽습니다만 여야합의에 의한 좋은 결과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최근 마무리된 당정개편을 얘기해 볼까요.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민주계 핵심실세 3인방의 진퇴죠.뒷전에 밀려나 있던 최형우의원과 서석재전의원은 다시 각광을 받게 된 반면 「잘 나가던」 김덕용전정무장관은 「휴식」을 택했습니다. ­당3역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뒤 김대통령의 언급이 재미있어요.김대통령은 4번의 원내총무를 지낸 경력탓인지 『원내총무가 가장 좋은 것인줄 알았다』면서 3선총장과 4선총무에 대한 당내의 불협화음을 잠재웠지요.정치9단다운 뒤처리라고나 할까요. ­대구·경북 출신인사의 배제로 이른바 「TK(대구·경북) 소외론」이 여전합니다.강재섭대변인이 물러나게 됐고 김용태의원은 지난 8·12보선 뒤의 총장기용설에 이어 이번에도 설만 나돌아 두번 상처받게 됐죠. 당직자로는 최재욱의원만이 사무부총장으로 유일하게 남아있습니다. ­이젠 외교분야에 대해 이야기좀 하겠습니다.올해 외교의 제일 큰 현안은 역시 북핵 문제였습니다.새정부가 출범하자 마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비롯된 이 문제는 급기야 「한반도 위기설」로까지 치달아 외국기자들이 대거 서울로 몰려들기까지 했죠.두차례의 미­북 고위급회담,10여번의 실무접촉,유엔의 대북결의등 국제적으로 파문도 컸습니다. ­최근 미­북 뉴욕실무접촉에서 양측이 상당히 의견접근을 본 상태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시작에 불과한 일이에요.설사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남북대화에 응한다 하더라도 겨우 NPT 이전 상태로 복귀한 것에 불과하거든요.새해에도 북핵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을 전망이 우세합니다. ­그에 비해 새정부의 신외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어요.다변화·다원화·태평양시대의 지역협력이라는 차원에서 종전과는 다른 외교패턴을 정착시켰다고 해야할 겁니다.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아·태경제협의체(APEC)정상회담은우리의 국제화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입니다.또 탈냉전시대 이후 한반도의 안보를 위한 「동북아 다자 안보대화」의 제기도 큰 성과입니다. ○신외교 문제점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핵문제에 있어 우리와 공동보조를 취한 것도 과거엔 상상할수도 없었던 일이라 생각됩니다.한국 외교의 역량이 그만큼 확대됐다는 반증 아닐까요. ­미,일 중심의 외교체제를 과거 어느 정권때 보다 확고히 다졌다는 점도 빼놓아서는 안될 것 같아요.김대통령은 올 3월 신외교의 기조를 설명하면서 미,일을 축으로 하는 외교전략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두차례의 한미정상회담,경주 한일정상회담이 이를 이끌어낸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UR협상에서 보인 우리의 협상력과 공직자들의 국제화 수준은 우리의 신외교가 갖는 문제점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이와 더불어 문제점도 노출된 신외교의 1년이었다는 생각입니다. □ 참 석 자 김 영 만 차장 김 명 서 기자 김 경 홍 〃 강 석진 〃 이 목 희 〃 양 승 현 〃 한 종 태 〃 문 호 영 〃 박 대 출 〃 박 정 현 〃 이 도 운 〃 진 경 호 〃 박 성 원 〃
  • 당정 29일 상견례

    정부와 민자당은 당정개편이 마무리됨에 따라 이회창국무총리의 주재로 오는 29일 총리공관에서 만찬형식의 상견례를 갖는다. 당정은 이자리에서 국제화·개방화에 따른 국제경쟁력강화와 95년의 지방자치단체장선거 준비등을 위한 당정간의 원할한 협력방안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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