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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 러시’ 韓·中협상 뒷걸음, 최근 진입사태 해결 전망

    탈북자들의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공관 진입이 파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이에따라 한·중간 탈북자 처리 협상 전망이 점점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한·중 양자해결 방식에서 탈피,국제기구의 개입을 통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11일 오전 주중 대사관에 9명이 대거 진입함으로써 지난달 23일 이후 한국공관에 망명을 요청한 탈북자는 모두 17명.지난달엔 23일 1명,24일 2명,27일 1명이 들어왔으며,6월 들어서도 1일 1명,9일 3명이 들어왔다.단신 망명요청에서부터 부부,어린이,임신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류의 탈북대열이 이어지고 있다. 탈북자들의 계속되는 진입사태에 따른 향후 전망은 크게 두 가지다.‘결단’을 미루고 있는 중국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조기해결이 이뤄질 것이란 긍정적 전망과 오히려 중국정부의 ‘물러설 수 없는 선’에 대한 집착만 강화해줄 뿐이란 부정적인 전망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23일 1명이 진입한 이후 한국측과의 협상중 잇따라 터져나온 한국공관 진입사태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우리 정부에 탈북자들의 신병 인도를 요청하면서 한국공관에 들어오는 신청자들을 거부하라는 요구까지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측 입장을 감안,중국 지도부에서는 한국 대사관 진입 봇물 사태를 막기 위해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국측은 이번 탈북자 처리가 한반도 정세에 중장기적인 여파를 미친다는 점에서 극히 신중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적어도 ‘속전속결’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중국 정부내 외교부와 당·공안 등 강경파의 내부 대립도 팽팽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한 정부 입장도 분명하다.정부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입장도 이해하나,베이징 주재 외국공관에서의 처리 원칙과 한국 대사관의 처리 원칙이 같아야 한다는 점,이들의 의사대로 한국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물러설 수 없는 선”이라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월드컵 피플] 김대식 경찰청 월드컵 단장

    ***4300곳 상황 점검 ‘피말리는 하루' “보이지 않는 테러와 훌리건(경기장 난동꾼)들의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해 세계인의 축제가 안전하게 끝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찰청 김대식(金大植·경무관)월드컵 단장은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8층에 마련된 ‘월드컵 상황실’에서 경비 상황을 보고받고 이를 점검하느라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었다.상황실과 현장을 오가며 ‘안전 월드컵’을 지휘하는 그는 피말리는 전쟁을 치르는 심경이다. 지난해 11월 월드컵 단장으로 부임한 뒤 8개월째.상황실이 본격 가동된 지난달 1일부터는 24시간 상황실을 지키며 38명의 상황요원들과 함께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그는 “안전 월드컵은 대회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면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고 털어놨다.그가 매일같이 점검해야 할 곳은 전국 4290여곳.10개 월드컵 경기장을 비롯,선수단 숙소와 공항·항만·외국 공관 등지에서 보고되는 경비 상황과 각종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내 현장상황실(CP)에는 경무관급 이상 경찰청 실·국장 10여명이 돌아가면서 파견돼 경비 상황과 근무태세를 점검하고 있지만,주요 경기가 열리는 곳에는 그가 직접 내려가 상황을 점검한다. 그는 96년 대통령의 경호를 맡는 경호과장과 청와대 주변 경비를 책임지는 서울 종로경찰서장을 거쳐 99년 서울경찰청 경비 1과장을 지낸 경찰내 최고 ‘경비통’. 그는 “1만 2000∼1만 5000명의 경찰 병력이 월드컵 관련 시설을 이중 삼중으로 지키고 있다.”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300여명의 경찰특공대와 112기동타격대가 현장에 즉시 투입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강조했다.올해 새로 도입한 폭발물처리로봇 3대와 레이저탐색장비 등 33종 첨단장비 3만 2000대를 활용,폭발물 테러에도 대비중이다. 이와 함께 훌리건 전담부대 40개 중대를 따로 편성하는 한편,유럽 등지에서 극렬 훌리건 890명의 명단을 확보해 이들의 입국을 막고 있다.유럽 14개국 경찰관 23명을 파견받아 ‘훌리건 감시조’도 운영하고 있다. 그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10일 대구에서 열리는 한·미전이다.그는 “지난해 미국 9·11테러 사태 이후 국제 테러조직에 의한 테러 가능성이 상존하는 만큼 각별히 주의하고 있다.”면서 “반미시위와 테러 등 모든 가능한 상황에 대비해 경계·경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한·미전의 경비태세를 사전에 점검하기 위해 대구로 떠나면서 “경찰이 아무리 완벽하게 경비를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만큼 국민 모두의 각별한 관심과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선택 6.13/ 제주지사 후보 정책 집중비교

    제주도지사 선거는 제주에 지역색이 없다는 특성으로 인해 대통령 선거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주목받는다.역대 대선 결과,제주에서의 승리가 곧 당선으로 이어졌던 등식이 이를 증명한다.게다가 이번 선거는 영원한 맞수인 한나라당 신구범(愼久範)후보와 민주당 우근민(禹瑾敏)후보간 ‘용호상박’의 대결이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신 후보는 ‘자존과 번영의 제주경영시대’를,우 후보는 ‘강한 제주,당당한 제주인’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국제자유도시= 신 후보는 현재의 국제자유도시 특별법을 고쳐 제주도가 경제권을가져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현재의 특별법으로는 제주도지사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 제주의 핵심 역량을 활용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주개발센터 운용 권한도 제주도가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 후보는 현행 특별법에 ‘도민주체 개발사업 우대제도’가 마련돼 있고,도지사에게 개발사업 인·허가권을 주고 있으며,7대 프로젝트 시행에 따라 지역도 균형적으로 개발될 수 있다는견해다.제주개발센터 역시 외자유치 창구로 적극 활용될 것이며,면세점 등의 수익은 전액 제주도에 재투자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감귤= 신 후보는 온주밀감 재배지 2만 4000㏊에 대해 매년 10∼20%씩 품종을 갱신하여 자동적으로 생산량이 조절되도록 하며,100억원으로 육종재단을 만들어 신품종 개발사업 등을 펼치겠다고 밝혔다.또 부적지(不適地)감귤원 1800㏊는 연차적으로 녹차 재배지로 전환하고,생산된 감귤은 3.75㎏당 농가 수취가격이 2000원 이상 보장되도록 하며,비상품 감귤은 농가 자체적으로 유기질 비료로 만들어 쓰도록 재료와 시설비 등을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우 후보는 재배면적을 2005년 2만 4000㏊,2010년 2만 2000㏊로 줄여 연간 적정 생산량인 55만t이 유지되도록 하고,감귤 휴식년제에 참여한 농가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또 저온저장 시설을 200곳으로 늘리고,내년까지 3만t 처리능력의 제2감귤 가공공장을 서부지역에 건설해 주스·캔디·초콜릿·술 등 감귤을 원료로 한 2차 가공품 생산을 다양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관광= 신 후보는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동부지역에 건립중인 컨벤션센터와 제주월드컵경기장 사이를 면세지역으로 지정,월드컵경기장에서 연간 2∼4회 정도 ‘세계 면세명품 엑스포’를 열어 관광수입을 증대시키겠다는 복안이다.또 강력한 관광인프라 제공을 위해 제주관광공사를 만들어 미국의 월트디즈니사나 워너브러더스사 등과 접촉해 테마파크가 제주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으며,안정·기술·수익·편익성 등에 장애가 많은 지역항공사를 설립하기보다는 일본이나 타이완 등지의 동북아 주요 항공사와 전략적으로 제휴해 제주로의 접근 수단을 확대하겠다고 역설했다. 우 후보는 제주 관광지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국제회의 도시로 지정되도록 하고,국제화 장학재단을 통해 국제회의 전문인력과 회의산업 전문업체를 육성하겠다는 포부다.중국 상하이에 제주홍보관을 개설하고,중국 관광객 유치 전문여행사를 육성하며,한·중·일 크루즈 관광사업도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특히 관광진흥 추진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제주도 관광진흥원을 설립하고종합관광회관도 건립할 예정이다. ●4·3사건= 신 후보는 4·3신고자 중 무장반란 수괴급과 남로당 핵심간부는 희생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그러나 헌법과 국법질서,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희생자 폭을 넓게 잡는 것이 상생과 도민 화합 등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우 후보도 비슷한 의견이다.그러나 우 후보는 수괴급이라고 인정할 만한 확실한 증인이나 증거가 있어야 하며,그러지 못할 때는 희생자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또 정부 차원의 희생자 명예회복 조치 후에는 정부의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이밖에 12만평 규모의 4·3평화공원 1차사업을 내년까지 마치고,4·3평화상을 제정할 방침이다. ●청·장년 고용창출= 신 후보는 국제컨벤션센터·제주교역·풍력발전·삼다수·관광복권사업 등을 5대 도민기업으로 육성,주식회사로 전환해 1조 5000억원 규모의 제주 토착자본을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2006년까지 전략기획 등 ‘고급 일자리 400명,중간 일자리 2200명,보통 일자리 7000명’등 1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우 후보는 이에 대해 구조조정과 공기업 민영화 추세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하고있다.특히 풍력발전사업 등은 환경친화적이고 상징적 시설인데도 이 사업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엉뚱한 주장을 펴고 있다며,생명공학산업 등을 육성해 2011년까지 9만명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종합= 두 후보의 정책기조는 비슷하나 실행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공약 중에는 달콤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무지갯빛 청사진’들도 눈에 띈다.‘경제특별자치구 추진’,‘도민자금 1조 5000억 조성’,‘9만명 일자리 창출’등이 그것이다.지난 도지사 선거나 총선 때의 재탕분도 더러 있고,중앙정부의 예산지원이 없으면 이루기 힘든 정책도 많다.문제는 누가 실현 가능한 공약을 많이 내걸었는가 하는 점이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신두원 사라봉 ~ 별도봉간 케이블카 설치 신두완(申斗完·민국) 후보는 무보수 지사로 봉급과 판공비 전액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겠으며,지사의 공관을 도민 자활복지 후생관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이외에 한라산 중턱에 고품질 약초재배단지 조성,비양도에 카지노장 설치,제주시사라봉∼별도봉간 케이블카 설치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인물평 신구범 후보의 카리스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그것이 때로는 독선과 독단으로 비쳐지기도 한다.그러나 본인은 “추진력을 독단으로 오해한다.”며 “누구보다도 가슴이 따뜻한 남자”라고 주장한다.농수산부 축산분야에서 기획통으로 인정받은 ‘축산 맨’이다. 우근민 후보는 친화력이 강점이다.어느 계층이든 가리지 않고 ‘어머님’,‘아버님’이고 ‘누님’,‘형님’,‘동생’이다.그러다 보니 자연 ‘스킨십’이 과장돼 성희롱 공방과 같은 일도 벌어졌다.자타가 인정하는 마당발로 총무처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통이다. 신두완 후보는 평생을 야당만 하면서 살았다.윤보선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혼낸 일은 유명하다.국회의원 도전 4차례,도지사 도전 1차례등의 기록도 제주에서는 진기록이다.돈 안쓰는 선거를 다짐,부인을 선거사무장으로 임명했다.
  • 월드컵/ “代이은 한국 알리기 가슴 뿌듯”

    “‘월드컵 외교’의 현장에서 일했다는 게 너무나 가슴 뿌듯합니다.아버지를 도와드렸다는 생각도 들고,나라를 위해 일했다는 거창한 기분도 들어요.” 월드컵 개막식을 전후해 한국을 찾은 VIP 대부분이 서울을 떠난 6일.한꺼번에 찾아온 외빈들 의전에 비상이 걸린 외교부의 손발 노릇을 해준 ‘의전 도우미’들이 세종로 중앙청사 외교부 한 회의실에 모였다.최흥식(崔興植) 주 알제리 대사의 딸인 최유진(崔有辰·24·이화여대 관광홍보학과4)양 등 7명이 주인공.재외공관에 나가 있는 외교관과 각 부처 소속 주재관 자녀들이다. 외교관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은 면접시험을 거쳐 지난달 24일부터 외교부의 ‘의전 태스크포스팀’에서 집중 의전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그동안 의전용 무전기를 사용하며 굳은 딱딱한 말투가 없어지지 않는다며 웃었다. 12월 군 입대를 앞두고 도우미로 나선 윤재우(尹在佑·20·호주 국립대3)군은 겉보기엔 우아해 보이는 외교 의전이 고생스럽기 짝이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다. 개막식 전후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귀빈들의 짐을 찾아 들어주는 짐꾼 역할을 한것이다.입국 시간이 제각각이어서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하루 2∼3시간 정도 새우잠을 자며 일주일을 보냈다. 윤군은 세계적인 문명비평가인 프랑스의 기 소르망 교수가 제일 멋있었다고 한다.이유는 간단하다.손에 든 가방 하나 외엔 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난달 20일 독립한 동티모르의 주제 라모스 오르타 외무장관을 수행한 임지수(林志修·23·이화여대 영문과 졸)양은 약간 실망했다.“노벨평화상 수상자와의 멋진 대화를 꿈꿨는데,3박4일 체류기간중 차속이든 어디든 틈만 나면 잠을 자더라고요.” 임양은 오르타 장관으로부터 들은 말은 ‘생큐’와 ‘굿나이트’ 두 마디라며 아쉬워했다. 스벤슨 라이트 케임브리지대 동아시아센터 소장을 수행한 주은혜(朱恩惠·19·고려대 경영1)양은 정반대로 한·일 관계 등 폭넓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며 뿌듯해했다.37세인 라이트 소장의 연인(?)으로 오해받기도 했다는 주양은 “한국문화에 흠뻑 빠진 것 같았어요.귀국길 선물로 진공 포장된 김치와 비빔밥 재료,호박엿 등을 잔뜩 사들고 갔거든요.”라고 귀띔했다. 이들은 외빈을 수행하면서 드러난 우리 문화 알리기의 문제점도 지적했다.피터게트 겐스 베를린대 총장을 호암 미술관 외빈전용 전시실로 안내한 손재선(孫載善·19·서강대 사회과학1)군은 “현장에 국보급 도자기 등에 대한 영문 설명이 없어 겐스 총장 등이 의아해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왕족이나 귀족을 수행한 도우미들은 각기 독특한 체험을 했다고 자랑한다.최유진양은 개막식날 브루나이의 빌라 왕세자 측근들이 보여준 ‘충성심’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박지해(朴智諧·20·고려대 경영2)양은 이탈리아에서 온 핀토 백작부인을 수행했다.4박5일 체류에 대형 가방이 4개나 됐으며 보석도 무척 많았다고 한다.영화나 소설에서 본 백작부인의 ‘기품’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로드리게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을 수행한 전혜원(全惠元·21)양은 “로드리게스 전 대통령이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박물관을 방문하고는 감격했다.”면서 작은박물관 등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외교의 힘이 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2주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너무나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눈앞에 닥친 기말고사 준비 등 자신의 생활로 돌아가는 7명의 도우미들이 힘차게 외쳤다.“월드컵 외교 파이팅.” 김수정기자 crystal@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9)고종-니콜라이2세 특별한 관계

    ■두帝國 ‘마지막 황제' 친서외교 10여년 고종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침탈외교사에서 다소 의외라고 여겨질 만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종(1852∼1919)은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강제로 대한제국의 황제자리를 아들 순종에게 양위했지만 조선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다.니콜라이 2세(1868∼1918) 또한 1917년 2월 혁명에 의해 퇴위당한 뒤 유배지에서 처형당한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다.두 사람이 조선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정서가 통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황제 대 황제의 동격 관계는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꺼져가는 국운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고종이 일본을 밀어내기 위해 러시아에 매달리는 입장이었다면 니콜라이 2세는 만주에서의 이익 등 국익에 반하지 않는 수준에서 ‘외교적’으로 고종을 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밀월관계의 출발은 아관파천(1896년 2월11일∼1897년 2월25일)이었다.초대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 넘게 서울에 주재하면서 고종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베베르가다리를 놓았다.대(大) 러시아제국의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에게는 저 멀리 극동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왕이 자국 공사관에 1년이상 몸을 의탁한 채 도움을 요청하자 애처로움과 동시에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다. 이같은 관계의 성립은 니콜라이 2세의 자상한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니콜라이 2세는 전제군주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잔정이 많았다.해외 각국에 파견돼 있는 외교관들의 상주서에 일일이 답하는 것은 물론 건강까지 체크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중에는 고종과 니콜라이 2세가 친서를 주고 받은 사실이 30차례 가까이 등장한다.대부분은 고종이 보내고 니콜라이 2세가 받는 형식이었지만 니콜라이 2세도 여러 통의 친서를 보냈다.비공식 친서로는 1895년 7월 고종이 조선군 병참관 권동수(權東壽)를 연해주 지사 운테르베르게르 장군에게 보내 러시아 황제의 후원을 요청한 것이 있다.그러나 고종은 이후 문제가 야기되자 파견사실을 부인했다.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첫 공식친서는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민영환(閔泳煥) 특사를 통해 전한 다음 친서이다. 짐의 나라는 관습은 물론 언어와 문자도 고유해 외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불행하게도 짐 나라의 동쪽 이웃나라가 일본이다.일본은 섬나라이며 관습은 짐의 나라에서 유래됐고 문자와 제도도 짐의 나라에서 가르쳐주었다.…그 때문에 일본은 짐의 나라를 자기의 조상과 주인의 나라로서 섬겼다.…최근에 일본이 서양의 제도를 흉내내고 배워 동양의 맹주가 되려한다.…짐은 폐하가 짐의 나라의 실정을 동정하고 정의를 토대로 세계 열강제국이 짐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인 행위를 꾸짖고 나라의 독립을 침해하지 못하게 모든 조약규정 위반을 즉시 중지하도록 권고하여 주시길 바라고 바란다.끝으로 짐은 눈물로 폐하께 호소하며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고종의 ‘눈물의 편지’를 읽은 니콜라이 2세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러시아는 1896년 10월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을 파견했다.그리고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의 국호변경과 황제 즉위 등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자 열강 중 가장 먼저 이를 승인하고 축하전문을 보내왔다.눈치를 보던 일본,미국,프랑스,영국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고종은 혹시 러시아가 거부할 지 몰라 노심초사했으며 “승인을 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거부하지 말고 현재의 호칭(대군주 폐하)으로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연막을 쳤던 터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두 사람간의 밀착관계는 1898년 조선이 러시아 군사교관단 및 재정고문 알렉세예프의 본국소환을 요청하자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고종은 “재정고문과 군사교관단의 소환으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가 그동안 베푼 황제의 호의에 아무 영향이 없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러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에게 변함없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안심하도록 진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일단 무마됐다. 니콜라이 2세는 내심 불쾌했지만 복심(腹心)은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이나 대한제국 정부가 앞으로도 러시아의 지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지 문의하라.”는 칙령을 내리는 등 고종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하지만 고종을 공사관으로 피신시키겠다는 제2,제3의 아관파천 공작을 서울주재 공사관에서 보고하자 “그런 일은 현재의 정치여건 아래서는 지극히 위험한 사태를 몰고올 수도 있다.”면서 발을 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니콜라이 2세가 베베르를 특사로 파견키로 하면서 절정에 올랐다.니콜라이는 고종에게 축하친서와 함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성 안드레이 사도 1급훈장 등 러시아 최고 훈장을 선물로 보냈다.이에 앞서 고종은 대한제국 최고 훈장인 금척대훈장을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바있다.안드레이 1급훈장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 최고의 훈장으로 명예는 물론 당시 가격으로 5000루블을 호가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그러나 기념식이 콜레라 창궐로 연기되는 바람에 수여되지 않았다. 고종이 “기념식은 연기됐지만 베베르를 서울에 체류토록 해달라.”고 요청하자니 콜라이 2세는 “폐하의 요청을 받고 짐은 만약 뜻밖의 어려움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폐하의 재위 경축식이 다시 열리는 내년 4월17일까지 베베르의 서울체류에 동의한다.”는 친서를 보내는 등 서로의 돈독함을 공개적으로 내비췄다. 이후 1903년부터 1904년 사이 두 사람은 명헌태후 서거애도 친서,니콜라이 2세의 황태자 득남축하 친서 등을 주고 받았다.고종은 “황제께서 황태자를 생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자 한다.이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축전을 치는 것이 도리였으나 외부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이 이제 서한으로 축하를 드리게 됐다.”고 기술했다.니콜라이 2세는 “감사함을 전하라.”고 공사관에 지시했다.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나자 고종은 “러시아의 승리를 확신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기를 바란다.”는 친서를 띄웠고 “러·일전쟁 발발시 중립준수를 요청한다.”는 니콜라이 2세의 친서를 전달받자 곧바로 중립선언문을 작성,일본을 비롯한 열강에 보내 화답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일본은 보란 듯이 강제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했다.이로써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으로부터 벗어나려던 고종의 전략은 한계에 부딪힌다. 러시아는 모든 열강이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무력으로 독립과 불가침권을 침탈한 데 대해 견해를 밝힌 바 있다.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정부가 고종을 일본으로 이송,미리 준비한 비밀장소에 연금시킨다는 계획을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러시아는 천인공노할 일본의 계획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1905년 5월10일 외무부가 해외 러시아 공관에 보낸 회람전문) 니콜라이 2세도 이 전문상단에 “일본의 그런 행위는 어떻게든 예방돼야 한다.”고 지시하는 등 고종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덕분에 고종의 일본강제 이송 및 연금계획은 무산됐다. 고종 개인에 대해서는 우정을 유지했지만 기울어진 대세는 니콜라이 2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을사늑약체결 직후 고종이 “일본은 미리 작성해 온 조약문에 국새를 강탈해 날인하고 짐의 서명을 강요하였으나 단호히 거절했다.황제께서는 유럽 문명국에 일본의 만행을 알려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시길 거듭 앙망한다.”고호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국내문제로 더 이상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후 헤이그밀사파견(1907) 등 고종의 거듭되는 친서와 러시아에로의 정치망명 요청 등에 대해 러시아는 포츠머스강화조약(1905) 준수와 극동질서를 강조하는 등 계속 딴전을 피웠다.1905년 ‘피의 일요일’사건으로 러시아혁명이라는 폭풍앞에 선 니콜라이 2세로서도 동방의 소국에 더이상의 잔정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종황제는 병이 들어 나약하고 병력이 없는 군부대신은 허수아비처럼 서 있고 다른 각부 대신은 일본인에 복종하고 있다.노쇠한 황제는 고통스러운 감금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대궐안팎은 일본인의 감시와 경비가 삼엄하다. 알현이 제한된 것은 물론 제3자를 통한 연락도 제한을 받고 있다.”는 1908년 12월8일자 소모프 총영사의 고종 및 대한제국에 대한 근황보고서는 두 마지막 황제의 관계가 대한제국의 몰락과 함께 종극(終劇)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주석기자 joo@ ■러시아가 본 조선王家 서울에 주재한 제정 러시아의 외교관들은 대한제국의 왕가(王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이번에 새로 발굴된 제정 러시아시대의 외교문서를 보면 러시아 외교관들은 고종과 주위의 대신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순종을 비롯해 엄비와 대원군,다음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을 못마땅해 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오래전에 자주적인 통치력을 상실한 고종은 측근에게조차 권위가 없다.또 우유부단한 상태에서 대한제국 지배계급의 어느 한 집단이나 혹은 끊임없이 교체되는 명칭만 요란한 독립협회,황국협회,만민공동회,친러파,친일파,친미파,친영파 그리고 친독파로 구성되는 대신들에 의지하고 있다.(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 고종황제 자신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물이나 많이 쇠약해져 있다.황실에서는 고위직과 하위직을 막론하고 음모,뇌물수수,매수가 만연돼 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서 임용이 결정된다.(1903년 베베르 초대 대리공사) 명성황후의 시해이후 10여년동안 사실상 왕비의 역할을 한 엄비(嚴妃)가 서거하자 “엄비는 평민출신으로 양반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당의 굿에 의존했다.(1903년 베베르).”고 힐난한 대목도 나온다. 대원군에 대해서는 실제 이상으로 부정적이다.틈만 나면 고종 암살기도설 등을 정보보고하고 있다.1896년 베베르는 “고종은 부친 대원군을 숙청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러시아가 대원군을 아무르주 혹은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주기를 바라는 고종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일이다.”라고 적고 있다.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황제의 친모인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민씨가 80세를 일기로 서거하자 “고종은 모친을 몹시 사랑했다.고종은 성품이 선량하고 동정심이 많고 나약한 점이 모친을 닮았다.(1898년 쉬테인)”고 애도하기도 했다. 1898년 대원군이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그로데코프에게 보낸 편지도 흥미롭다.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편지에서 대원군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부모와 자식간에는 화목하게 산다.그런데 수십년전 4명의 신하가 고종 임금앞에서 늙은 아비를 비방한 일이 있었다.하늘에 맹세코 말하지만 우둔한 자들이 음모를 꾸며 부자지간을 이간시켜 놓음으로써 나는 지금도 아비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종은 천성은 선량하나 나쁜 신하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러시아에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고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러시아 외교관들의 차가운 시선에는 애처로움이 느껴질 정도다. 순종의 즉위식이 8월27일 거행됐으나 고종과 세자는 참석하지 않았다.순종은 카키색의 군복을 입고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꺼렸다.황제의 인상은 침울하고 창백하며 놀란 듯한 두 눈에 얼굴은 병으로 부어 환자처럼 보였다.(1908년 소모프 총영사). 고종황제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에 대해 주목하면서 일일이 인물평을 늘어놓았다. 의화군 이강(李堈·후의 의친왕)을 유럽파견 공사로 임명했다고 조선정부가 통보해왔다.이강은 왕비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궁인(귀인 장씨)에게서 얻은 왕자로 젊고 유능하며 쾌할한 성격이다.일부 사람들은 그가 앞으로 세자로 책봉될 것이며 좀 우둔한 세자(순종)보다는 덕망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고종은 세자를 더 사랑한다.(1895년 베베르) 또 1906년 1월1일 고종황제와 황실가족과의 신년 경축 알현식에 참석한 플란손 총영사는 “장자인 황태자는 30세로 명성황후의 적자이며 법통 후계자다.의친왕(李堈))은 17세이며 명성황후 생존시 상궁소생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삼자 영친왕(李垠)은 9세이며 엄비 소생으로 영특하고 야심만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노주석기자
  • 阿해상서 한국어선 실종

    한국인 선원 4명 등 모두 24명의 선원이 타고 있는 부산선적 트롤어선이 아프리카 해역에서 실종됐다. 3일 부산해경에 따르면 “2일 오후 1시40분께 아프리카 모잠비크 동쪽 60마일 해상에서 부산 모스코 해운 소속 베이라 5호(132t)가 악천후 속에서 ‘갑판에 물이차 오른다.’는 교신을 마지막으로 통신이 두절되면서 실종됐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베이라5호에는 선장 이정용(48)씨 등 한국인 선원 4명을 포함,모두 24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모잠비크 겸임 공관인 짐바브웨와 인근 남아공 대사관을 통해모잠비크 해경 등에 실종자 수색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높은 파도와 강풍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亞정상회담 “印·파 핵전쟁 막아라”

    핵전쟁을 막아라.국제사회가 인류의 ‘대재앙’ 핵전쟁을 막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3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사흘간의 일정으로 개막된 아시아 16개국 정상회담에서는 양국간 전쟁 방지가 최대 이슈로 논의됐다. 회담에 앞서 미,영,프랑스 등 서방국가들은 물론 유엔까지 인도와 파키스탄에 주재하는 자국 국민들 및 비필수 공관원들에게 철수령을 내렸다.양국에 전쟁을 일으키면 안된다는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다.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핵전쟁을 일으킬 만큼 비이성적이지는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고조될 대로 고조된 전쟁 위험성에 견줘볼 때 이같은 양국의 말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게 국제사회의 시각이다. 이같은 우려를 입증이라도 하듯 인도 국방부의 한 고위관리는 2일 인도는 지체없이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인도도 핵무기로 보복할 것이며 양국은 ‘상호파괴’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번 회담에서 양국간에 전쟁을 피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될 것으로 기대한다.인도는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를 만날 용의가 있다는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제의를 거부하고 있다.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4일 바지파이 총리와 무샤라프 대통령과 따로따로 회담을 갖는다. 양자간 직접회담은 아닐지라도 이같은 순차회담을 통해 해결책이 찾아질 수 있지않겠느냐는 희망적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이 국경을 넘어 이뤄지는 인도령 카슈미르 테러 공격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국제사회로부터 테러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는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이미 인도에 대한 테러 공격을 비난하고 파키스탄은 테러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그러나 인도는 말이 아닌 행동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양국간 전쟁을 막기 위해 이번 주 내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을 각각 인도와 파키스탄에 파견하는 등 무샤라프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도 타협점모색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관측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3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인 바 있으며 이중 두 차례가 카슈미르를 둘러싼 이유에서였다.양국은 지난해 12월 파키스탄 이슬람단체의 인도 의회에 대한 테러 공격 이후 사실상 전쟁상태에 들어갔다.5월14일 인도군 기지에 대한 테러 공격 이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포격전이 이어지는 등 긴장이 고조돼 왔다. 유세진기자 yujin@
  • 인도·파키스탄 전쟁위기 고조 美·英등 자국인 철수령

    [싱가포르 AFP AP 연합] 인도와 파키스탄간 긴장 고조로 미국,영국,캐나다 등 서방국가들이 자국 시민과 공관 직원들에 대해 철수령을 내린 가운데 유엔도 파키스탄과 인도 주재 직원 가족들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외교 소식통이 1일 전했다. 소식통은 “신속히 철수 작업을 진행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전하고 “철수시한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며칠 안에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유엔 관계자도 이같은 움직임을 확인하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양국에 있는 외국인 직원들을 줄이기 위한 계획이라고 말했다.프랑스 정부도 자국 시민과 필수 인력을 제외한 공관 직원들에 대해 인도를 떠나라고 이날 촉구했다.프랑스 외무부는 또 자국 시민들에게 인도 국경 지역을 피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여행 일정은 줄이라고 권고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 위기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면서 인도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 시민 6만여명과 공관 직원 및 가족 600여명에게 인도 철수를 당부했다. 영국과 캐나다도 미 국무부의 철수령이 나온 직후 인도와 파키스탄군의 대치가 위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하고 자국민들에 대해 인도에서 떠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권고했다. 포르투갈도 파키스탄 주재 외교관 가족들을 귀국시킬 것이라고 포르투갈 외교관이 밝혔다.
  • [사설] 미국의 두 얼굴, 탈북자 인권

    미국 국무부는 탈북자 등이 이미 입국했거나 국경에 있을 경우에만 정치적 망명신청 자격이 있다고 못을 박았다.국무부 대변인은 탈북자 김한미양 가족의 미국 망명 희망과 관련한 질문에 “대사관은 미국 내에 있지 않으며 미국 국토도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탈북자들의 미국 망명 요청 불허를 공식 선언한 셈이다. 문제의 한미양 가족은 중국 주재 미국대사관에 간 것이 아니라 선양 주재 일본영사관에 진입했다가 일본측의 방조로 중국에 체포됐었다.이 가족은 이후 한국행에성공했으나 일본에 이어 미국 정부로부터 벼랑아래로 떠밀린 듯한 배신감을 느낄것이다.우리 국민을 비롯한 수많은 세계인들도 그럴 것이다. 외국공관은 주재국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불가침권은 있으나 정치범 또는 난민을보호할 수 있는 비호권이 없다는 국제법 및 관례,그리고 ‘대사관은 망명신청지가될 수 없다.’는 방침 등이 미국의 기존 입장이라고 설명한다.그러나 누구도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매년 세계 각국의 인권실태를 점수 매기듯 시시콜콜 따져온 ‘인권 챔피언’ 미국이 법조문과 관례를 들어 탈북자의 미국행을 막는 것은 인권에 관한 이중성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과 같다. 미국은 탈북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중국정부에 인도적 처우를 강력 요청했었다.그래서 탈북자의 미국행 요청과 관련,우리는 지난 톈안먼사태 당시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한 후 1년 이상 버티다 영국으로 망명하는 데 성공한 중국 물리학자 팡리즈 박사의 전례가 되풀이될 것으로 기대해 왔다.중국의 팡 박사가 영국아닌 미국을 택했으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다,5년 전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도 파리로 빠져나와 워싱턴에 무사히 와서야 망명이 허가됐다고 미국정부는 말할지 모른다.미국에 오고 싶으면,미국 외교공관에 와봐야 헛것이고 워싱턴행 비행기를 일단 탄 뒤 말을 꺼내야 한다는 미국정부의 말에서는 인권에 대한 배려가 전혀 느껴지지않는다.
  • 한국공관 진입 탈북4명 이르면 다음주중 한국행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서 한국으로의 망명을 요구중인 탈북자 4명은 이르면 다음 주중 제3국 경유 한국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국정부의 요구대로 이들의 신병을 중국측에 넘겨서 신원확인 조사를 받게 한 뒤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데려오는 데 동의한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국 정부는 이들 탈북자 4명에대해 신원을 확인한 후 북한에 강제 송환하지 않고,그들이 희망하는 대로 한국행을 허용해줄 방침인 것으로 안다.”며 “중국은 이들을 인도받아 북한 사람들인지 여부를 확인하고,중국 내에서 범죄행위를 저질렀는지 여부 등에 대해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 정부는 이에 따라 이들 4명의 신병 인도 및 조사 방법 등에 대해 외교채널을통해 구체적으로 협의할 계획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khkim@
  • 美 난민지위 외면 ‘눈총’

    [워싱턴 연합] 미국이 29일 미국에 이미 입국했거나 국경에 있을 경우에만 정치적 망명 신청자격이 있다고 밝힌 것은 탈북자에 대한 미국 망명 불허 입장을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미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지난 8일 선양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진입했다가 중국 당국에 체포된 김한미(2)양 가족 5명이 미국의 디펜스포럼재단을 통해 제출한 망명신청서 처리방식을 두고 비난을 받아온 이후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 망명을 신청한 탈북자 대책을 묻는 질문에 “”대사관은 미국내에 있지 않다.””고 못박음으로써 탈북자의 미국 망명을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분명히 했다. 바우처 대변인의 발언이 미국 법률이나 국제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지 만 있다면 얼마든지 길이 있는데도 외면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국무부 관계자가 “”재외공관은 망명 신청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적용되고 있는 방침””이라고 강조하고 유엔고등난민판무관(UNHCR)이 미국 정부에 요청할 경우에 한해 난민지위 인정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사관을 비롯한 외교공관이 망명 신청지가 아니며 정치범 또는 난민을 보호할 수 있는 비호권이 없다는 게 국제적으로도 확립된 관례다. 그렇지만 주재국의 사법권이 적용되지 않는 불가침권이 있어 관내로 들어온 사람을 보호할 능력은 얼마든지 있다. 비호권과 불가침권이라는 상충되는 원칙이 충돌하면 교착상태가 장기화하기 마련이고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흔하다.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베이징(北京) 주재 미국대사관으로 피신, 1년 이상 버티다 1990년 6월 영국으로 망명하는 데 성공한 중국의 반체제 물리학자 팡리즈(方勵之) 박사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UNHCR 워싱턴사무소 관계자는 “”유엔을 통하지 않고도 미국 법률로도 탈북자들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며 “”그렇게 할 정치적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재외공관에 비호권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제기한 것은 한국에 정착한 뒤에도 한미양 가족의 미국행 시도에 쐐기를 박는 동시에 탈북자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신들은 탈북자의 정치적 난민지위를 도외시하면서 중국에 대해서만 인도적 처우를 요구하는 미국식 이중잣대는 국제적 비난을 면키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한국공관진입 탈북 4명…中, 조사뒤 한국 보낼것

    중국 정부는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진입한 탈북자 4명의 신병을 인도받아 조사한 뒤 한국으로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들을 인도받아 북한인 여부와 중국 내에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조사한 후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그들이원하는 대로 한국으로 보낼 것이라고 베이징 소식통들이 29일 말했다. 중국 정부는 한국측과 이들의 신병 인도 장소와 양국 입회등 조사방식 등에 대해 협의할 계획이라고 이 소식통들은 전했다. 중국이 이들 4명의 한국행을 보장하면 한국은 조사를 위해신병을 인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베이징 소식통들은 덧붙였다. 이들은 이르면 다음주중 한국으로 출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탈북자해법 분기점”” 신중접근, ‘4명처리’정부대책

    정부는 중국이 탈북자들의 신병인도를 공개요구한 데 대해 크게 당황해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본격적인 협상 개시 신호로 보는 분위기다. 이에 앞서 28일 쿵취안(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한국 외교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에 대한 신병인도를 공식 요구했다. 정부내에서는 이번 사태가 베이징 내 외국 공관이 아닌 한국 공관에 들어온 일반 탈북자들의 처리를 놓고 한·중간 공개적으로 직접 협상하는 첫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향후 탈북자 문제 해결의 전략적 분기점으로 본다는 인식도 있다. “서두르면 진다.신중하게 하겠다.”는 정부내 한 당국자의 말은 ‘신중하고 정교한 접근으로 어떻게든 성공시키겠다.’는 정부내 대처 방침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정부는 중국측이 의도를 갖고 강하게 반응한 만큼 ‘장기전’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그러나 비관보다는 낙관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1999년 12월 탈북자 7명을 러시아로 추방,결국 북송으로 이어진 사건이 한·중 관계에 큰 부담이 된 것을 중국측도 잘알고 있다는 판단도 한몫하고 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도 중국 정부가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으나 외교공관에 진입한 탈북자 처리 선례(제3국 추방을 거쳐한국행)가 있는 만큼 긍정적인 해결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탈북자 석모씨가 재진입한 27일 이후 현재 탈북자 처리를 둘러싼 양국간 협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본격협상이 시작되기까지 상당한 기일이 소요될 가능성도 있다. 1997년 2월 망명한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황장엽(黃長燁)씨는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서 35일 동안 머무른 뒤 필리핀을 거쳐 한국에 왔다.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당시 반체제 지식인 팡리즈(方勵之) 부부는 1년 20일동안 미국대사관에서 보호받은 뒤 미국 망명을 허용받았다. 중국 정부가 한국 외교공관 진입 탈북자에 대해 강경입장을 천명한 것은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고 남북한 문제에 직접개입하는 인상을 불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로서는 한국 외교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의 한국행에 신속 동의해줄 경우 앞으로 탈북자들의 한국 공관 진입 러시가우려된다는 점이 강경방침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김수정 기자 khkim@
  • 中 ‘한국공관 탈북자’ 인도 요구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 정부는 지난 23·24일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들어간 탈북자 3명과 관련,이들의 신병을 중국에 인도해 달라고 28일 요구했다. 쿵취안(孔泉)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중국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르면 중국내 외교공관이 제3국 국민을 보호할 권리가 없다.”며 “우리는 한국대사관이 보호하고 있는 탈북자 3명을 넘겨주어 우리가 처리할 수 있도록요구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7일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진입,되돌아가는 바람에 한국 망명요청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어오던 탈북자 석모(36)씨가 27일 다시 한국대사관영사부에 들어와 한국 망명을 요청 중이다. 한국대사관은 “탈북자 석씨가 27일 오전 10시35분(한국시간 11시35분)쯤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들어와 한국 망명을요청했다.”며 이날 석씨의 진입 사실을 중국 정부에 통보한 뒤 석씨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탈북자 석씨가 당시 영사부 내에서 3차례에 걸쳐 망명요청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석씨가 17일 영사부에 진입해 여자 직원에게 두번,남자직원에게 한번 등 모두 3차례 망명요청을 했으나 이들은 못 들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석씨는 북한 호위총국 산하 인민군 출신으로 1996년 9월 함경북도 종성군에서 두만강을 건너 지린성(吉林省) 카이산툰(開山屯)을 거쳐 베이징에 거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khkim@
  • 韓中, 탈북자처리 직접협의

    한국은 지난주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 영사부에 진입,한국 망명을 요청한 3명의 탈북자처리문제를 둘러싸고 27일 중국측과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갔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이날 탈북자들의 신병처리 문제와관련,“주중 한국대사관측은 다양한 외교채널을 통해 중국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 3명 모두 한국으로의 망명을 요청하고 있다고확인하고 “중국이 혈맹관계인 북한과의 관계등을 의식해이들의 신병 처리를 늦출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소식통은 그러나 “이들 3명도 올들어 서방 외교공관에진입한 다른 탈북자들과 같이 제3국 추방형식을 통한 한국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3국추방뒤 한국行 동의 가능성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23∼24일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진입한 탈북자 3명의 처리는 앞으로 한국 공관을 통한 망명여부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는 탈북자 문제는 ‘중국과 북한간의문제’라며 한국 정부와의 직접 협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한국 정부와 이들의 신병처리를 직접 협의해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됐다.따라서 이번 사건의 해결방법은 중국 정부의 탈북자 처리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또다른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7년 2월 황장엽(黃長燁)씨가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들어와 망명한 사건이 있지만,이번 사건과는 근본적으로다른 정치적인 망명이어서 그때의 사례를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한국대사관측은 한국행을 희망하는 탈북자들이 우리 외교공관에 진입하면 이들을 모두 수용하고,중국 정부와 협의에 나선다는 우리 정부방침에 따라 현재 중국측과의 적극적인 협의에 나서고 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26일 “한국 정부는 이들이 다른 서방 외교공관 진입을 통한 한국행 사례와 같이 인도적으로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중국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있다.”고 전했다. 한국대사관측은 이에 따라 이들 3명에 대한 신변안전이 보장되고 안전한 한국행이 이뤄질 때까지 이들을 영사부 관내에 수용하고 중국측과 협의를 계속 벌여 나갈 계획이다.중국 정부는 이들에 대해서도 제3국행으로의 추방 뒤 한국행이라는 형식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들의 신병 처리 시기에 대해서는 베이징 주재 다른 외교공관 진입 탈북자 처리에 대한 선례와 같이 조기처리가될 것이라는 설과 북한을 의식해 다소 시간을 끌 것이라는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khkim@
  • [사설] 한·중 탈북자 처리 주목한다

    한국과 중국 정부의 탈북자 처리문제 조율이 또다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탈북자 3명이 베이징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들어가 한국행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제3국의 공관에 들어가 외국으로 추방하는 형식을 빌려 한국으로 가던 종전의 행태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이번 탈북자 처리 방식에 따라서는 자칫 한국 공관을 통한 탈북자 망명 러시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의 탈북자 처리 조율에서도 인권과 인도적인 해결 원칙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우선 강조한다.그런 점에서 정부가 최근 재외공관에 “탈북자들이 진입할 경우 일단 전원 수용한 뒤 주재국 정부와 적극 교섭해 인도주의적으로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은 적절했다고 평가한다.지금베이징 주재 우리 총영사관에 들어가 있는 탈북자도 같은원칙에서 처리돼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한·중간 조율은 이제부터다.양국간 인식차이가 엄연한 상황에서 우리의 의지만으론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중국은 범죄 혐의가 없는 한 탈북자들을 중국에 머물게 하고,제3국을 통한 한국행을용인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다.지난 21일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담당 부총리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대신 우리공관을 통한 직접적인 한국행에는 난색을 표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인도주의적 차원의 해결 의지를 공감할 수있는 모든 노력을 중국과는 물론 국제 사회와도 해나가야한다.더이상 쉬쉬하는 식의 협상은 곤란하다.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해선 북한을 자극해선 안되고,탈북자 문제로 난처한 입장에 빠질지 모를 중국의 처지를 고려해야하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한다.하지만 이젠 우리가 주도적으로 설득하고,이해시켜나가야 할 때다.경제부흥과 올림픽 개최 등을 통해 세계무대의 중심에 서려는 중국의 입장으로보아 우리가 설득하기에 따라 가시적인 성과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탈북자의 국제적 지위 해석 등과 관련해서는 유엔 고등판무관실 등 국제기구와의 조율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이과정에서 북한에도 우리의 순수한 인도주의 방침을 납득시키도록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 한국공관 ‘탈북창구’ 되나

    지난 23∼24일 연이어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 별관에 탈북자 3명이 들어온 사건은 우리 공관이 본격적‘탈북 창구’가 됐다는 점에서 외교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외교통상부 최성홍(崔成泓)장관 등 주요 간부들은 주5일근무 시험휴무일인 25일에도 전원 출근,대책을 숙의했다.이날 밤늦게까지 몇 차례나 구수회의를 갖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감지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26일 “탈북자 3명에 대해서는 신변과 한국행이 보장될 때까지 치외법권 지역인 공관에 수용하고,중국측과 적극적 협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는“제3국 공관진입 때처럼 이번 사건을 순조롭게 빨리 끝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즉 탈북자 문제와 아무런 관계없는 제3국에 대해서는 중국이 눈치를 봐야 할 입장이지만 한국 공관은 경우가 달라 신속한 처리가 어려울 수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제3국 공관진입 때와 마찬가지로 인도적인 신속한 처리를 바란다.”는 입장을 중국측에 전달했으나,중국과의 인도협상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최근 외교경로를 통해 “만일 탈북자들이 (스스로편하게 여기는) 한국 공관에 진입할 경우 사태 해결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중국측은 그동안 탈북자 문제에 대해 ‘중국과 북한의 문제’라면서 한국과의 직접적인 협의를 극도로 꺼리는 모습을 보여왔으나,이번 경우는 우리와 직접 협의해야 하기 때문에 난처한입장이다. 결국 탈북자 3명의 처리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국이 장기전으로 돌입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지난 97년 황장엽(黃長燁)씨가 주중 한국총영사관을 통해 망명을 요청했을 때 중국은 요청을 받은 지 35일만에 제3국 추방에 동의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中 ‘한국공관 탈북자’ 처리 신중

    [베이징 김규환특파원·김수정기자] 정부는 26일 현재 지난 23일과 24일 잇따라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진입해 한국행 망명을 요구중인 탈북자 3명의 신병처리를위한 협의를 중국정부와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26일 “정부는 지난 23일 탈북자 1명이 우리 공관에 진입,망명을 요청한 직후부터 중국정부와 탈북자 처리를 위해 접촉하고 있다.”면서 “우리 공관에 들어온탈북자나 제3국 공관에 들어간 탈북자 처리에 차이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탈북자 김모(35·남)씨와 박모(30·여)씨 등 남녀 2명은지난 24일 오후 4시쯤(한국시간 오후5시) 경비가 전화받는틈을 타 정문을 통과해 보안요원을 밀치고 들어가 영사 면담실로 인도됐다. 앞서 23일에는 탈북자 최모(40)씨가 중국인 신분증을 보이고 보안을 밀치고 대사관 별관 영사부에 진입했다. 탈북자들의 잇따른 기획망명사태를 우려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한국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 처리가 하나의 선례가 될수도 있다고 보고 극도로 신중한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들 탈북자 3명에 대한 처리는 이전에 제3국공관을 통해 한국망명을 요구한 탈북자들보다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khkim@
  • 외교부 미술품 40~50점 실종

    외교통상부가 소장한 미술품 일부가 분실되거나 무단 반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감사원이 확인에 나섰다. 감사원 관계자는 24일 “”외교부에 대한 정기감사 과정에서 기록상 나타난 외교부의 미술품 소장 내역과 실제 전시된 미술품의 전시 장소,등에서 40~50점의 차이가 발견돼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없어진 미술품은 장관 공관과 본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명 화가의 그림,화병,병풍 등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정부중앙청사 안에 있는 외교부 본부를 비롯, 주요 간부 방에 전시된 소장품에 대해 사진촬영 작업을 하는 등 기록 원본과 대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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