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화제] 주민들 “행복주는 행정”
“고된 농사일을 끝내고 온탕에 몸을 담그면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집니다.” 전북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의 주민 김모(68)씨는 28일 오후 주민자치센터의 목욕탕을 나섰다. 개운한 뒷맛이다. 그는 안부를 묻자 “공중목욕탕 설치야말로 자치단체가 추진한 사업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민자치센터에 들어서자 아담하고 깔끔하게 단장된 2층 건물이 으레 ‘허름한 산골 면사무소’일 것이란 선입견을 싹 지워버렸다.
지난 2001년 지은 건물의 1층엔 행정사무실과 내과·치과를 겸한 보건소가 있고, 바로 옆에는 목욕탕이 자리하고 있다.2층엔 ‘정보의 바다’란 인터넷카페, 농민사랑방, 여성문화방, 전통솜씨방이 정겹게 주민을 맞이한다.
마침 농번기라 시설을 이용하는 주민이 그리 많지 않지만 겨울철에는 여간 북적거리지 않는단다.
한상오(54) 총무계장은 “주민들이 이곳에서 포크댄스, 한방뜸, 꽹과리 등 사물놀이, 한글 등을 배우거나 쉼터로 사용하고 있다.”며 “특히 목욕탕은 5일장이 열리는 날엔 인근 장수군 주민들까지 이용하는 바람에 늘 만원”이라고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곳만이 아니다. 지난 2월 리모델링을 마친 설천면 주민자치센터와 공중목욕탕은 이용률이 가장 높다.
덕유산 자락의 산골이라 주민들이 문화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최근까지만 해도 20㎞ 이상 떨어진 읍소재지나 대전까지 차량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곳 61평 규모의 목욕탕은 사우나 2개와 냉·온탕 1개, 반신욕탕 1개의 시설을 갖췄다.65세 이상 노인과 청소년·어린이는 이용료가 1000원, 일반인은 1500원을 받아 관리비에 보탠다.
한 관계자는 “목욕탕을 홀수날엔 남자, 짝수날엔 여자용으로 번갈아 운영하고 있다.”며 “인근 충북 영동군 주민들까지 몰려와 하루 500여명이 이용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주민자치센터에는 원어민 교사를 둔 ‘영어교실’과 논술·독서를 지도하는 ‘생각교실’등이 개설돼 주민의 인기를 더하고 있다.
이처럼 무주군이 전체 6개 읍·면사무소를 ‘주민 종합건강·문화센터’로 꾸미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행정자치부에 의해 때마침 ‘시범군’으로 선정되면서부터. 무주군은 덕유산·적상산 등으로 둘러싸인 산골 오지다.
빼어난 경관과 깨끗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생활고통 지수는 어느 농어촌 벽지보다 높았다.
군은 이때부터 사업비 82억원을 들여 안성면·적상면·부남면·무풍면·설천면 사무소를 차례로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사업에 나섰다.
주민자치센터에 목욕탕을 설치한 것은 전국 처음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했다.
자치센터를 설계한 기용건축 정기용 대표는 “당시 주민의 65%가 노인인 안성면의 경우 면접조사를 해보니 모두가 목욕탕을 원해 짓게 됐다.”면서 “효과가 알려진 뒤 너도나도 목욕탕을 지어달라고 해 혼났다.”고 귀띔했다.
주민자치센터가 서서히 문화복지의 전당으로 바뀌면서 보건소, 인터넷카페, 다목적강당, 목욕탕, 이·미용실, 체력단련실, 전통솜씨방, 여성문화교실, 농민회 사무실, 소회의실 등이 들어서게 됐다. 특히 안성면 주민자치센터는 ‘안성 면민의 집’으로 불릴 정도다. 편안한 휴식과 여가활동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전국의 지자체와 민간단체들의 견학이 줄을 잇고 있다.
무주군은 이에 고무돼 모든 공공시설을 ‘주민친화적 공간’으로 꾸며가고 있다. 무주읍 당산리 한풍루 어울터 일대에 조각공원과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이 한창인 것도 같은 맥락. 여기에선 연극, 뮤지컬, 국악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 공연이 열리게 된다.
무주군의 자랑거리 가운데 또 하나는 전국 유일의 등나무 운동장이다. 기존 운동장은 군수 등 VIP석에만 차양막이 설치됐던 터. 이를 일반인이 앉는 객석에도 등나무를 이용해 그늘숲을 만들어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의 논에는 자치센터를 지으면서 천문대도 만들었다. 밤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운 무주의 별빛을 담아내기 위한 배려이다. 홍보관과 대기실, 관람실로 구성된 3층짜리 천문대에는 주망원경, 천체탐색기, 관람용 망원경이 있고 슬라이드 상영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2층엔 50평 콘도를 꾸며 단체관람객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을 정도이다. 자연스레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자치센터의 인기는 그만이다. 무주군은 이런 시설을 활용해 반딧불축제(6월2∼11일) 준비에 한창이다. 설천면 청량리 일대에 ‘반디랜드’를 조성하고 이곳에 곤충박물관까지 세웠다. 김순길 무주군수 권한대행은 “농촌개발 정책은 관광객의 오감을 만족시켜 줄 차별화된 볼거리와 먹을거리, 즐길거리, 살거리의 발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살 만한 시골, 어떤 게 ‘위민행정’인지 하는 느꺼움에 싸여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무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