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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림성 이도강촌(압록강 2천리:4)

    ◎해발 1,260m… “하늘아래 첫 동네”/일제때 독립군 순병지… 9월말이면 눈발/해방후 조선족 70가구… 현재 1천명 거주 길림성 장백현 용강향 이도강촌은 하늘 아래 첫 동네다.그토록 외지고 높은 고원의 산골이어서 일찍부터 일제에 항거한 독립군의 활동무대였다.1915년에 이미 독립군 군비총단이 들어와 둔병을 마련하고 자리잡은 지역이다.또 1936년에는 항일연군 제2군 제6사가 홍두산에 밀영을 세우고 일본군과 만주군을 호되게 족쳐댔다. 일본도 이에 질세라 서둘러 경찰서와 토벌대,산림경찰대를 만들고 헌병대까지 주둔시켰다.그리고 장백진으로부터 이도강까지 길을 냈다.1945년 이후 이 길을 넓히고 손질했으나 길은 여전히 험로였다.일제가 항일연군을 토벌하기 위해 닦아놓은 길을 버스가 구불부불 기어갔다.장백진에서 고작 28㎞ 밖에 안되는 지척인데도 이도강촌까지 2시간이 실히 걸렸다. ○후천적 고산족으로 장백현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데가 용강현으로 전체인구 2천6백27명 중에 1천88명이 조선족이다.비교적 낮은 지역이라는 해발 1천2백60m의 이강촌을 중심으로 해발 2천12m나 되는 홍두산자락 여러 골짜기에까지 조선족들이 흩어져 살고있다.그러고 보면 용강현 조선족들은 후천적으로 고산족이 된 셈이다.백두산 천지와는 90㎞가 떨어져 있으나 쾌청한 날씨에는 흰눈을 머리에 인 백두산이 망망한 숲 위로 아련히 떠올랐다. 그런 고산지대인지라 서리가 내리지 않는 무상기래야 1년에 90여일이 고작이다.장백현의 다른 저지대에 비해 철이 한달 이상 차이가 나기때문에 벌써 가을을 느꼈다.눈이 빨리 내리면 9월말께 첫눈이 온다고 했다.마침 점심 때가 되어 향장,당서기와 어울려 간부식당을 찾았다.시금치국 한 사발에 만두와 김치 한 접시가 나왔다.식당 일을 하는 원채봉아주머니가 애써 식단내용을 설명했다. 『그래도 향간부들의 식사는 괜찮은 편이꾸마.이 시금치도 현성에서 사왔디요.아무 집에나 들어가 봅소.이만큼 먹나….고산디대라 옥수수나 콩도 안됩꾸마.봅소,벌써 긴팔 옷을 입고들 있지 않슴둥』 여름이 아무리 빨리 간다한들 설마 했던 것은 오산이었다.그날 밤에 향장의 안내로 마을 터주격인 허용학(73)노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한기를 느꼈다.장백진 여관에 맡긴 짐보따리 속의 두꺼운 옷이 그리웠다.노인의 집에는 이미 군불을 지펴놓아 한기를 녹였다.꿈과 젊음을 고산지대 이도강촌에 묻어둔 노인의 얼굴에는 산골 밭뙈기 이랑 같은 주름이 가득했다. 노인의 본래 고향은 이도강촌에서 멀다 할 수 없는 함경남도 삼수군(현재 북한지명은 양강도 삼수군)자산면이다.세살 때 모친이 세상을 뜨자 부친이 두 형을 데리고 장백현을 들어가면서 본인은 갑산 누이집에 맡겼다.18살 나던 해에 형님이 와서 장백현으로 데리고 와서 곧 바로 남의 집 데릴사위로 주었다.석달을 살고 장인허락을 얻어 조선으로 돈벌러갔다가 징병에 끌려 일본 규슈로 갔는데,해방 석달 전의 일이었다. ○민요 「사냥 아리랑」 구전 『일본에 있을 때 미군 비행기 무서운 꼴 봤꾸마.매일 폭격을 해대서리 부상까지 입었지비.그날이 7월2일인데 미군 비행기 수십대가 가물가물 떠와서 폭탄을 내리 퍼부었다 이거우다.해방 이듬해 3월 일본에 온 함남 대표를 따라고향을 들렀다가 이리 다시 와서 붙박혀 사우다』 해방 후에만 해도 이도강촌에는 조선족 70가구가 살았다고 한다.한족은 2가구 뿐이었는데,지금은 2백가구 중에 절반이 한족이다.모두가 농사랍시고 짓지만 고산지대라 소출은 보잘 것이 없다.보리는 1무(2백평)에 1백근(60㎏),귀밀은 1백50근,밀은 작황이 썩 좋아야 3백근을 먹는다.그러나 감자는 잘되는 편이다.지금은 짐승이 덜 하지만 10여년전만 해도 멧돼지와 곰 등쌀에 애를 먹었다.7월부터 돼지가 감자밭에 덤벼들면 온통 요절을 내버렸다.귀밀과 밀밭은 곰이 압발로 이삭을 끌어안고 훑어먹기 시작하면 잠깐만에 거덜이 났다. 그래서 사냥감 짐승들이 많다.겨울이면 마을 장정들은 너나없이 사냥을 떠나 용강향에는 「사냥 아리랑」이 지금도 구전되고 있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우리 낭군 영을 넘어 사냥 가네/낭군님 무사히 돌아오세요/대보름 달빛 아래 술을 듭시다」라는 민요가 그것이다.허용학노인의 백두산 겨울철 사냥 이야기는 간이 큰 사나이들의 모험담으로 들렸다. 『한번은 돼디(돼지)사냥을 갔는데 모리꾼들이 돼디간다고 소리를 티데우.돼디 여러마리가 곧추내려오는데 던댕판(전쟁판)에 당꾸(탱크)돌격하듯 달려왔지비.다섯마리 사냥개가 걸구(큰돼지)뒷 다리를 물고 늘어지자 속도가 늦어뎠디우다.그 때 최길환이가 꺾음대(화승촌)를 탕 놓았디우.앞 섰던 놈이 쓰러디니까 뒷 놈들은 샛길로 도망쳤으니 말이디 그냥 달려왔으면 다 황천객 됐을 거우다.거 안포수란 사냥꾼은 곰을 쏘았다가 선불을 맞아 끌안았디우.같이 간 다른 포수가 곰의 머리를 쏘아 떼 놓았는데,곰한테 할퀸 안포수 머리가죽이 벗겨뎠디…』 사냥을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면 마을에는 잔치판이 벌어졌다.아낙네들은 국수를 누르고 남정네들은 잡아온 짐승을 삶았다.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함지물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장단을 맞추었다.중국 전역이 한 장기판이라고 하지만 이도강촌 산골마을은 문화대혁명을 수월하게 맞았다.다른 지역에서는 이른바 대식품이라는 풀뿌리 나무껍질을 먹었지만 이도강촌 사람들은 감자를 갈아 떡도 해먹고 분을 내어 국수도 눌러먹었다는 것이다.○아직도 인정만은 부자 그러다가 조사라도 나오면 겨로 음식을 해서 대접하고 조사 나온 간부들이 돌아가면 감자는 배불리 먹었다.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이도강촌을 20세기의 별천지라고 불렀다.아직도 인정 만큼은 부자다.다만 농사만으로 돈 벌이가 시원치 않아 금전적으로 빈자나 각박한 문명세계와는 다른 삶을 살고있다.흠이라면 입쌀이 없다는 것뿐이다.밀 1근 80전,귀밀 30전,감자 30전에 팔아 1근에 2원하는 입쌀을 사먹기는 사실상 힘이 겨웠다. 그럼에도 교육열은 대단했다.조선족과 한족 아이들이 같이 다니던 한조연합학교가 있었는데 지난 1988년 조선족기숙제소학교 하나를 더 만들었다.기숙생들의 한달식비 90원 중에 20원을 기꺼이 물면서도 조선족기숙제소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 칼라로바 마을(시베리아 대탐방:11)

    ◎외국인 관광지로 변한 “노동자 휴양지”/물가고에 발길 뜸해지자 “외화벌이”나서/「주문형」관광개발… 고객 원하는 레포츠 제공/한때 브레즈네프·고위 당간부 별장지로 유명 시베리아 중부 톰스크시내에서 북쪽으로 60㎞쯤 가면 시베리아 공장노동자의 휴양장소인 「시니우체스」라는 곳이 나온다.우리식으로 말하면 콘도미니엄 같은 곳이다.이곳이 특히 외부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옛소련의 변화를 가장 잘 감지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봄·가을엔 사냥놀이 20년전인 70년대 초반.시니우체스는 브레즈네프 전공산당 서기장의 별장이었다.자작나무 숲을 뒤로하고 강을 낀 언덕위에 위치한 이곳에서 그는 각종 스포츠와 레저를 즐겼다.공산당 간부들도 그와 함께 했다.여름에는 낚시와 수영을,봄 가을로는 사냥을 즐겼다.톰강의 지류가 별장 양쪽으로 흐르면서 한껏 정취를 자아내는 곳이다. 브레즈네프가 죽자 이곳은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지로,다시 페레스트로이카가 본격 전개되면서는 톰스크의 최대 화학공장「세베르스크」 노동자들의 휴양소로바뀌었다.노동자의 휴양소가 최근에는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경제적인 이유에서 이다. 서기장 별장이 공산당 간부휴양지로,공산당 간부휴양지가 노동자휴양소로 변한 것은 전적으로 개방화·자유화 바람의 덕택이었다.하지만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자유화 때문만은 아니었다.그것은 「빵」,즉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화학공장「세베르스크」의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회사측은 종업원의 월급을 걱정했는데 바로 적자를 메우기 위한 방편으로 회사측이 생각해낸 것이 「관광객의 유치」였던 것이다. 말은 「휴양지」지만 시설은 서방의 콘도미님엄 못지 않다.1,2층에는 식당과 디스코장이 갖춰져 있고 각종 운동시설로 가득찬 헬스방도 인기가 높다.1층 디스코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방문객의 귀를 때린다.호텔 뒷마당으로 나가면 확 트인 톰강줄기를 배경으로 낚시꾼들의 여유있는 모습도 보인다. ○원시적 분위기 즐겨 관리인격인 나제스타 코롤요바씨(29)는 『인플레가 심해 노동자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면서『이전에는 방문때마다 10일정도씩 묶고 갔지만 현재는 한번 오면 2∼3일 정도 휴식을 취하다 돌아간다』고 말했다.화학공장 종업원 대부분이 이전보다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코롤요바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사뭇 대조적이다.사냥개와 사냥총을 들고 호텔문을 나서는 외국인의 모습이 눈에 띈다.이들의 사냥대상은 다양했다.곰과 순록·멧돼지·사슴·오리등이 그것이다.톰스크시내에는 최근 외국관광객의 사냥을 알선해주는 관광회사도 생겨났다.관광객들이 그만큼 늘고 있기 때문이다.코롤요바씨는 『휴양지를 찾은 손님이 색다른 관광을 원하면 시내의 관광회사와 연결시켜주기도 한다』면서 『노동자들의 휴양지가 이제는 외국관광객이 찾는 관광지로 변해가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주문형 관광」이란 톰스크만의 독특한 「관광형태」도 생겨났다.주문형 관광이란 손님들이 자신이 원하는 레저의 종류·일정등을 관광회사에 알려주면 거기에 맞춰 일체의 관광장비와 인원,부대서비스등이 제공되는 여행형태이다. 예를 들면 『곰사냥을 하고 싶다』며 손님들의 수를 알려주면 자세한 시간계획을 마련,거기에 맞춰 가격을 산정한 뒤 차량과 안내자(전문사냥꾼)등을 보내준다.스코틀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론 줄씨(44)는『한 친구의 소개로 이곳 옛 공산당 간부휴게소를 찾았다』면서『각종 스포츠·레저를 원시적인 분위기에서 즐기는 맛이 환상적』이라고 거들었다. 아직 서방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관광객들은 매번 오는 사람들만 온다는 것이 관리자들의 얘기였다.영국 스코틀랜드 캐나다 일본인들이 최대 고객이고 이들은 한번 올때마다 2백∼3백명까지 함께 온다는 것이다.그러나 아직은 러시아어교사라든지 학자라든지 하는 세미나를 겸한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다. 「옛것」이 「새것」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은 이곳 뿐만 아니다.시니우체스 이웃 「칼라로바」마을도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다.하지만 집주인이 거의 바뀌는 등 변화의 바람이 한창 이다.옛 공산당 간부들이 모여 살던 이곳은 사유재산이 인정되면서 이제 돈 많은 사람들의 거처로 변해가고 있다.물론기득권을 가진 옛공산당 간부층이 집주인의 상당수다.이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이곳에 별장 같은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이 마을 사람들의 얘기다.하지만 뇌물이 판을 치던 관공서가 이제는 시민을 위한 서비스행정에도 서서히 관심을 기울여 가고 있다.변하고 있는 것이다.70년 이상 교회가 인정되지 않던 이 마을에 여기저기서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퍼진다.아직은 신도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층들이다.예배당의 신축붐이 일어나는 것도 페레스트로이카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예배당 신축붐 일어 톰스크시내에서 이곳 공산당 간부마을인 「칼라로바」까지 오는 동안 안내자를 따라 「기도소」라는 곳을 찾았다.10여명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예배공간이었다.대형 교회건물을 짓는데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게 마련이어서 예산이 마련될때까지 임시로 기도만 할 수 있도록 만든 「작은공간」이라는 것이다.내부벽에는 십자가와 성모마리아상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공간 가운데에는 촛불로 신성함을 유지하고 있었다.「작은 공간」한쪽에는 성화 십자가목걸이 엽서등을 팔며 예배당 건축을 위한 성금도 모으고 있었다. 변화의 바람도 바람이지만 개혁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시니우체스에서 국영 바를 관리하는 에두아르 레베제프씨(29)는 지난 91년이후 직업을 세번 바꾼사람.의류생산업체를 소유했던 레베제프씨는 세금때문에 사업체가 망했다고 했다.그는 『현재의 조세제도는 1백루블어치를 판매하면 1백10루블의 세금을 내도록 돼 있다』면서『공무원들은 법적·제도적 틀을 바꾸지는 않고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바를 관리하면서 아르바이트로 관광안내자로 일하는 두 직업을 가진 사나이다.시베리아 지역에는 둘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레베제프씨말고도 많다.
  • 원주민 한티족/원추형 움막「춤」서 수렵생활(시베리아 대탐방:5)

    ◎북부 시베리아에 1백 75가구 8백93명 거주/순록 몰고 다니며 물고기·곰·북극여우 등 사냥 상오 10시. 튜멘주 수르구트시에서 북쪽으로 1백30㎞ 떨어진 루스킨스카야마을 중심가.어른키가 1백50㎝쯤 되고 이마가 불쑥 튀어나온 한티족 원주민들이 눈에 들어왔다.중심가에는 이웃 유전개발에 힘입은 탓인지 러시아의 현대식 주택들이 한참 건설중이었다. 취재팀은 이 마을 행정책임자 프로살로브 블라디미르로비치씨(36·동장격)와 함께 원주민 거주지역들을 방문하기 위해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다.사무실 테이블위에는 행정전화와 가정전화등 모두 4대의 전화가 가설돼 있었고 러시아연방기가 꽂혀 있었다.비디오를 겸한 텔레비전도 눈에 들어왔다.그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30분쯤 뒤 헬리콥터 한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무실 이웃 공터에 도착했다.20명이 족히 탈 수 있는 화물운송용 헬기(MI­8)였다.루스킨스카야 중심가에서 2백㎞까지 떨어진 원주민마을(1백75가구 8백93명)에 생필품을 전달해주는 수단이었다.원주민가옥들은 서로 수십㎞씩 떨어져 있어 이웃간 교통수단은 한달에 두번 뜨는 헬리콥터에 의존하고 있었다.한달에 두번이라는 것은 시정부가 헬기를 지원,원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날이라는 것이 동장의 설명이었다. ○취재팀에 헬기제공 그는 『당신들의 취재를 위해 예정 배급일을 사흘 앞당겨 헬기를 불렀다』며 으쓱거렸다.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취재진은 모터썰매를 타고 수십㎞씩 살을 에는 찬바람을 맞아야만 원주민 취재가 가능했을 터였다. 헬기가 도착하자 헬기장쪽으로 30대와 50대쯤으로 보이는 한티족여인 두사람이 모였다.원주민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아주기 위한 간호원이라는 설명이었다.결핵예방약등 각종 약품가방을 들고 그녀들이 헬기에 올랐다.동장과 취재진들도 함께 탑승했다.곧 헬기는 북쪽으로 1백50㎞쯤 떨어진 첫 「춤」(한티족이 사는 움막이름)을 향해 이륙했다.공중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하얀색의 눈과 검은 갈색의 숲뿐이었다.이따금씩 강으로 보이는 S자형의 굴곡만이 나타날 뿐,말로만 듣던 시베리아벌판이 계속 이어졌다. 40분쯤 비행하자 「춤」 두채가 나타났다.헬기는 이곳 첫마을 상공에서 착륙하지 않고 밀가루 13부대를 던져 떨어뜨렸다.약 70㎏ 정도 되는 빵 제조용이었다.블라디미르로비치씨는 『이곳에 떨어뜨려 놓으면 며칠안에 주위에서 원주민이 모여들어 서로 나눠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헬기가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그는 『헬기의 연료때문에 원주민 마을을 일일이 방문할 수 없다』면서 『전체 1백75가구를 일곱지역으로 나눠 헬기가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직경 5m 넓은 공간 다시 15분쯤이 지난 낮 12시 40분.헬기는 두번째 마을에 완전 착륙했다.마을이라야 원추형 「춤」 두채가 고작이다.헬기에서 내려 그곳 주인 포카초브 니콜라예비치씨(20)의 안내를 받아 움막에 도착했다.헬기가 착륙한 곳에서 움막까지 거리는 2백m 정도.눈 깊이는 1.5m 이상 됐다.바깥기온 영하38도.바람만 조금 불면 면돗날 조각이 얼굴에 와 박히는 것 같았다.취재팀은 거의 나아가지 못했다.하지만 니콜라예비치씨는 눈을 가슴에 안고 기는 자세로 잘도 빠져나갔다.그를 따라 비슷한 자세를 취하니 의외로 움직이기가 쉬웠다.움막안은 무척 따뜻했다.장작을 피우고 있었는데 온도계의 온도는 2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바깥기온과의 차가 무려 63도나 되는 셈이었다. 여러가지 짐승가죽을 이어 만든 천막은 원추형이었고 직경은 약 5m.실내는 무척 넓어보였다.이런 움막에서 4∼10명의 가족들이 함께 지낸다는 것이다.니콜라예비치씨 가족은 모두 5명.할머니(50)와 부인,아이 둘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움막안의 현대식시설은 연통이 달린 페치카와 재봉틀이 전부였다.천장에는 사슴등 짐승가죽이 걸려있었고 침실로 보이는 나무바닥도 여러가지 짐승가죽을 꿰매놓은 것이 깔려 있었다.차 대접을 받고 선물로 보드카 한상자와 초콜릿등을 놓고 나왔다.가족들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 간호원들이 2살,5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을 붙잡아 결핵예방주사를 놓았다.아이들은 주사를 맞지않으려고 도망다녔고 할머니가 아이들을 붙잡아 주자 간호원들은 간신히 주사를 마쳤다.얘기를 더 하려하자 조종사들이 『시간이 없다』고 갈길을 재촉했다. 니콜라예비치씨가 움막 주위에 세워져 있던 현대식 모터썰매로 헬기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 줬다. ○생필품과 가죽 교환 낮 12시 55분.첫번째 마을에서 40㎞쯤 떨어진 두번째 「춤」에 도착했다.역시 두 채가 있었다.헬기에서 내려 움막으로 들어갔다.집주인 포카초브 알렉세예비치씨(70)는 보드카에 취해 있었다.그는 『아들이 순록을 몰고 사냥하러 나갔다』며 가족들을 소개했다.그의 말에 의하면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고 살며 여름철인 6∼9월까지는 곰·북극여우·족제비·고슴도치·거위등을 잡는다고 했다.수렵생활이 전부였다.이들은 짐승가죽을 루스킨스카야 중심가에 가지고 가 생필품과 교환하거나 판매를 한다는 것이 알렉세예비치씨의 설명이었다.알렉세예비치씨는 『귀한 손님이 왔다』며 「라바스」로 불리는 창고쪽에서 사슴고기를 꺼내 요리했다.그는 그릇을 들고 천막 밖으로 나가 주위의 눈을 담아 들어왔다.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양념없이 끓는 물에 푹 삶아낸 사슴고기는 쇠고기처럼 맛있고 연했다.별미였다.간호원들은 이곳에서 역시 아이들을 붙잡아 예방주사를 놓았다.할아버지는 『사는 것이 재미있느냐』고 묻자 『만족한다.우리는 물과 먹을 음식만 있으면 살 수 있다』며 흡족해했다.자신은 보드카에 연일 취해 있다고 했고 우리들의 보드카선물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순록 수를 묻자 『우리는 그 수를 세지 않는다.수를 세면 순록수가 줄어든다』며 대강 1백70마리정도 된다고 했다.알렉세예비치씨가 다시 음식창고 옆의 또다른 창고로 갔다.연장창고였는데 거기서 칼집에 들어있는 사냥칼을 갖고 움막으로 들어왔다.취재진이 깜짝 놀라자 『선물로 칼집을 주겠다』며 칼을 빼들었다.그리고는 가죽으로 된 칼집만 손에 쥐어주었다.사냥용 칼을 줄 수 없느냐며 웃어보이자 『생활수단…』이라며 멈칫거렸다.차대접까지 받고 다음 「춤」으로 향했다. 이런식으로 7개마을을 방문하고 난 시간이 하오 4시.날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한티족/서시베리아 북북 우고르­핀계 종족/성인 키 150㎝정도… 고집 센 소수민족 청동기시대부터 러시아 서시베리아 북부 이루튀시 강변에 거주하던 우고르­핀계의 종족.어른 키가 1백50㎝정도.검거나 푸른 눈동자를 하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회색이 대부분이다.일부는 한티­만시스크시 등에서 개화된 도시생활을 하고 있으며 다른 일부는 시베리아 북극 근처에서 원시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비율은 8:2정도.수줍음을 잘 타고 고집이 센 소수민족이다. 16 37년 이반 3세가 당시 한티족 공작이던 「사마라」가 살고 있는 지역을 평정,동방으로 진출하기 위한 마차역을 세운 곳이 지금의 한티­만시스크시다.마차역은 모피상인들이 오가면서 부유한 상인마을 「사마로보」를 탄생시켰고 이 마을은 19 30년부터 「한티­만시스크 자치구」로 개칭돼 인구 30만명의 도시로 발전했다.
  • “일본고기 씨말리려 낚시”/카터가 본 「인간 김일성」

    ◎일제때 복역중 목사가 구명… 기독교에 호감 지난 6월 평양을 방문했던 지미 카터 전대통령이 김일성과의 대화에서 종교와 취미에 관한 많은 얘기를 나눴으며 김의 인간적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레코드지 주말판 퍼레이드가 보도했다. 퍼레이드는 김일성이 『나는 신실한 감리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만주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돼 징역을 살 때 기독교 목사들의 도움으로 구출된 적도 있다』고 회상하고 『기독교에 많은 호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은 또 사냥을 즐긴다고 건강을 과시했으며 카터에게 『작년에만 곰 두마리,멧돼지 2백마리를 잡았다』고 자랑했다고 퍼레이드는 전했다. 김은 특히 낚시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김은 『해방 뒤 일본에 대한 증오에서 당시 「일본고기」의 씨를 말리려고 마구 잡아들였는데 알고보니 그 고기는 구한말 미국 광산노동자들이 가져온 무지개송어였다』고 말하고 『이제 그 송어들을 다시 살리기 위해 국가적으로 계획을 세워 노력하고 있으나 잘 안된다』고 밝혔다. 카터 전대통령은이에대해 미국의 어류학자와 송어양식 전문가를 북한에 보내줄 것을 주선해 주기로 약속했다고 퍼레이드는 전했다. 그러나 이제 클린턴 행정부가 김의 아들 김정일과 독자적 협정을 체결한 상황에서 그들의 의제 안에 송어양식기술 이전 문제가 포함돼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퍼레이드는 덧붙였다.
  • 핀란드에선:3(녹색환경 가꾸자:44)

    ◎육림 100년… 벌림보다 더 심는다/입목면적 해마다 1백만㏊ 늘어나/전국토의 10% 자연보호권역 지정/제지·펄프업 번창… 수출물량의 50%를 임업이 차지 핀란드는 하계휴가가 한달가량 된다.여름이면 핀란드인들은 해외로 나가는 대신 자국의 호수가를 찾아 숲속 통나무집에서 수영을 하고 낚시를 즐긴다. 이 나라의 호수는 19만여개로 국민 25명당 한개의 호수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산림면적은 국토의 65%로 1인당 4.1㏊의 숲을 소유하고 있는 꼴이다.유럽의 다른 임업국가들이 0.5㏊인 것과 비교하면 8배를 웃도는 것이다. 핀란드는 어디를 가나 호수와 숲이다.아침 저녁 호젓한 호수가에서 개를 끌고 산책을 하거나 조깅이나 자전거 하이킹을 하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처럼 풍부한 산림은 핀란드인들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그래서 이들은 『우리나라에 나무가 없다면 털없는 곰과 같다』고 자랑한다. 핀란드는 이미 알려진대로 목재를 기반으로 하는 제지·펄프업으로 번영을 누려오고 있다. 20세기초만해도수출물량의 85%가 임업이었으며 현재도 임업은 전체 수출물량의 절반 가까이 된다. 전세계적으로 산림은 매년 1천7백㏊정도씩이 사라지고 있다.그러나 핀란드는 목재소비량이 많은 산업구조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나무가 늘어나고 있다.벌목하는 나무보다 계속 자라는 나무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이들은 브라질의 산림은 방치될 경우 언젠가는 없어지겠지만 핀란드에서 나무가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국토의 65%가 산림 핀란드의 전체 입목면적은 1억9천만㏊.50년대초와 비교할 때 25%가량 늘어난 것이다.연간 벌목되는 양은 7백만㏊이지만 8백만㏊의 나무가 새로 생겨난다. 핀란드의 산림정책은 「지속적인 육림」이라는 말로 대변된다.19세기에 제정된 최초의 산림법에 명시된 이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다시말해 벌채한 만큼 나무를 심는 것을 말한다.이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벌목업자들이 나무를 벌채하면 그만큼 나무를 심어야 한다.또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는 고목 원시림등은 베어내지 않는다.산림은현세대의 재산이기도 하지만 후손의 재산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어서다. 식목 뿐만아니라 육림도 산림소유자·정부관계자·기업등 3자의 긴밀한 협력하에 이루어지고 있다.정부의 지원을 받는 산림위원회는 육림가는 물론 사유림소유자들에 대한 기술지도를 하고 행정지도를 편다. ○낚시도 면허제 실시 벌목하는 만큼 나무를 심고 육림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풍부한 자연림의 감소,도로건설등 각종 개발행위는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자연생태계를 있는 그대로 보호하자는 움직임은 20세기초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1916년 절대자연보전지역이 지정됐고 1923년 자연보전법이 제정됐다. 현재 핀란드는 자연보전법에 따라 국토 면적의 10% 가까이 되는 2백80만여㏊가 자연보전권역으로 지정돼 있다.이 가운데 1백30만㏊는 국립공원·원시공원·특별보호산림지대·습지보전지역등 6등급으로 구분·지정돼 있으며 1백50만㏊는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자연보전권역에서는 등급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유재산이라 하더라도 나무 한그루,풀 한포기도 마음대로 할수 없는등 각종 「반산림」행위가 엄격히 규제된다. 빙하시대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북부 쿠사모국립공원은 이 나라에서 드물게 산을 끼고 있는 지역으로 국민들로부터 4계절 휴양지로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개펄 등 습지도 보호 겨울에는 스키어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으며 얼음이 녹는 봄부터 여름까지 계곡과 야영지등에서 낚시·카누·등산·캠핑활동이 수를 놓는다. 특히 가을에는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구경거리다.이 나라에서는 수질보호를 위해 낚시 면허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면허가 없는 사람은 낚시를 할 수 없다. 쿠사모 국립공원은 1차대전이후 나무를 벌목하지 않았다.연간 2백일가량 눈이 오고 연평균 기온이 섭씨 0도를 유지할 정도로 추워 나무의 생장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은 또 순록 곰 여우등 야생동물의 서식지다.야생동물은 4개 조합이 지역별로 관리하고 있는며 이들 조합의 회원외에는 어느 누구도 사냥을 할 수 없다.이들은 추운 겨울 먹이를 구하지 못한 야생동물을 위해 양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개펄등 습지가 물새들의 서식지로 중요하다는 인식은 60년대 후반부터 생겨나면서 70년대말 전국 습지보호계획이 수립됐다.현재 습지보전지역은 1백73개 지정돼 있다. 천연의 자연혜택을 누리고 있는 핀란드는 인공적인 노력을 더해서 지구상에서 가장 멋있는 환경을 가꿔가고 있는 것이다.
  • 외화벌이에 내몰리는 북노동자(시베리아 북한벌목장:6)

    ◎벌목은 뒷전… 밀렵·공사장부업 몰두/일감 크게 줄자 웅담·사향 채취 혈안/8백명 아파트공사… 탄광 품팔이도/불법취업 사회문제화… 러시아,한국기업 진출 바라 노동자들의 대거 탈출등으로 벌목사업이 갈수록 쇠락해지자 북한측은 러시아에서 또 다른 외화벌이에 몰두하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사냥과 건설,그리고 탄광에서의 채탄작업이다. 가장 오래된 벌목노동자의 부업은 사향노루와 곰의 사냥이다.벌목장으로 들어가는 비포장도로에는 「노루주의」라는 표지판이 따로 설치될 정도로 극동 러시아의 벌판에는 사향노루가 많다.바로 그 사향노루와 겨울잠을 자는 곰을 마구 잡아 사향과 웅담을 채취해 북한으로 보내는 것이다.일부는 러시아 사냥꾼들로부터 비교적 싼값으로 사향과 웅담을 사들이기도 한다. 북한벌목장이 있는 튀르마시에서 30년동안 곰사냥을 해왔다는 크리오보르스키 예르게니 블라디미로이슈씨(59)는 『북한노동자들이 불법사냥을 자행,곰과 사향노루의 숫자가 크게 줄고 있다』고 밝히고 『튀르마에는 러시아인 직업사냥꾼이 많아 북한노동자들과 무척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월급 제대로 안줘 북한노동자들은 러시아와 북한 사이의 벌목협정 시한이 연말로 끝나는데도 벌목장의 인권문제가 떠오르면서 재협정이 타결되지 않아 지난해 8월쯤부터 사실상 일손을 놓은 상태이다.무료해진 벌목노동자들은 소일거리로 이웃 공사장이나 농가에서 품을 팔기 시작했다.공사장에서는 주로 러시아주민의 집을 짓는 일을 했으며 농가에서는 채소재배를 도왔다. 일부는 이웃 군부대에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베어주기도 했다.이런데서 제법 수입이 생기자 북한노동자들은 아예 본격적으로 부업에 매달렸다. 당시 북한벌목장의 지도부는 노동자들의 월급도 제대로 줄 수 없는 지경에서 돈을 벌 길이 보이자 노동자들에게 통행증을 발급,벌목장 밖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하바로프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나가 한국에서 온 종교인이나 기업인,고려인등으로부터 금품을 마련해 벌목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일부 돈을 마련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등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더욱이 돈을 벌러 내보낸 노동자 가운데서도 탈출자가 나타나곤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있는 윤모목사는 『6개월전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 갑자기 북한의 벌목노동자들이 몰려온 적이 있었다』면서 『이들은 돈을 구걸하기도 했지만 일부는 탈출자와 마찬가지로 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망명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총영사관측도 그당시 망명허용 여부를 문의하는 북한인의 전화가 잇따랐었다고 밝혔다. ○러시아 상점 털기도 급기야 지난 2월말부터 북한의 벌목노동자들이 한국공관에 무더기로 망명을 요청했다는 모스크바발 보도가 터져나왔다. 이로써 북한노동자들의 이른바 「앵벌이」는 일체 중단되고 말았다.또한 북한노동자들에 대한 외출통제가 한층 강화됐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북한측은 최근들어 좀더 합법적인 외화벌이의 방편으로 건설공사에 나서고 있다.블라디보스토크의 테로마이스키구역에 짓고 있는 25층짜리 아파트가 대표적인 공사현장이다.북한측은 러시아와 무역거래에서 발생한 차액을 루블화로 갚는 대신 아파트공사를 해주고 있다.이곳을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는 8백명가량의 북한 건설노동자가 일하고 있다고 관계기관은 밝혔다. 시내 한복판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통제는 매우 삼엄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한 간부는 『식당에서 우연히 북한 건설노동자를 알게돼 한국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주었는데 그가 그 노래를 듣다가 본국으로 소환됐다』고 말했다.기자가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에게 다가가 『몇 층짜리 건물이냐』고 말을 걸자 『당신 누구냐』『그런 걸 왜 묻느냐』는등 냉정한 답변만 돌아왔다. 이들과는 달리 중부시베리아의 공업지대 구스바스에서는 수백명의 북한 광부들이 석탄을 캐내는데 한창이다.구스바스탄광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기업이 자본을 대고 있으나 노동조건등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이 「제2의 외화벌이」에 나서는데 대해 러시아인들은 매우 차가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하바로프스크주에서 발행되는 「지호오겐스크스카야 즈베즈다(태평양의 별)」지는 최근 북한의 불법취업을 비난하는 기사를 게제했다.『조선노동자들이 개인집에서 밭을 갈거나 기업소에서 건설을 하고 군대의 나무 베는 일을 돕고 있다』면서 『이는 그들의 봉급이 적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기사는 이어 『이들을 강력하게 단속하지 않으면 불법취업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라면서 『러시아정부는 조선측이 노동자들에게 합당한 월급을 주도록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매우 아이로니컬한 것은 러시아가 벌목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북한의 자리를 한국이 메워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물론 한국측에 바라는 것은 북한에게처럼 노동력이 아니다.우리의 자본과 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벌써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무더기로 망명 요청 러시아의 대표적인 북한벌목장이 있는 체그도민을 방문했을 때 페트로 티티코프시장은 매우 흥미로운 말을 했다.한국에서 기자가 방문한 것은 처음이지만 이미 많은 기업인들이 체그도민을 다녀갔다는 것이었다.티티코프시장이 자랑삼아 보여준 명함철에는 현대 고려합섬 한라 대우 한국중공업 한전등 국내 대기업의 사장으로부터 대리에 이르는 기업인들의 명함이 9장이나 꽂혀 있었다.물론 일본회사의 명함도 많았다.티티코프시장은 『한국기업인 가운데 두명은 북한측과도 만나 대화를 나눴다』고 일러줬다. 이 지역 주민들은 한국과 서울에 관심이 많아 서울에서 기자가 왔다고 하자 「노동자의 말」이라는 지방신문의 편집장이 인터뷰를 요청했다.그는 한국이 체그도민에 관심을 갖는 이유와 함께 서울신문이 다루는 기사의 주요테마및 발행부수,기자수,근무시간등을 물었다. 벌목장의 러시아측 업무를 맡고 있는 우르갈레스의 발레리 수크노발렌코 총지배인은 『지난해말 북한과의 벌목재협정을 앞두고 주민들이 재계약을 하지 말도록 정부에 강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그는 『이미 한국의 한 중소기업으로부터 서울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고 밝히고 『러시아법만 준수하면 누구와도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우르갈레스의 아나톨리 체 부지배인은 『최근 북한측에합작생산을 제안하고 있으나 북한측이 거부하고 있다』면서 『아마도 합작생산을 하면 합작기업소가 설립돼야 하고 거기서 이익을 나눠야하니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러시아인의 벌목기술에 발전이 없고 노동자수도 절대부족해 당분간 북한노동자의 인력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기업 계약 추진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러시아측 벌목회사인 달리레스프럼의 필리펜코 바실리비츠 부사장은 『러시아에는 나무를 벨 수 있는 벌목장이 12구역이나 된다』면서 『북한벌목장은 그 가운데 1개 구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달리레스프럼의 대외관계업무를 맡은 사람은 윤 예르게니 세르게이츠(37)라는 한국인2세였다.그는 『현재 서울의 중소규모 기업 3군데와 벌목 계약을 추진중』이라면서 『한국사람들이 일처리를 빨리빨리 하기 때문에 일본사람들보다 한국사람들과 일하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북한노동자들이 철수해버린 비르비잔벌목장의 콜리에프 비크토르 그리고리비츠지배인의 사정은 더 다급한 것 같았다.그는 기자가 『서울에서왔다』고 인사를 하자마자 『목재를 합작생산할만 한 회사가 없겠느냐』고 묻더니 『서울로 돌아가면 꼭 회사를 소개해달라』면서 명함을 내밀었다.그가 내민 명함의 뒤쪽에는 「아라사 피라비첨목재가공창 창장 고소설부」라고 적혀 있었다.중국이나 한국,일본등과의 합작을 생각하고 한자로 명함을 새겼다는 것이었다.
  • 몰락한 벌목장 비르비잔(무너지는 생지옥 시베리아 북한벌목장:3)

    ◎탈출 잇따르자 북서 노동자 소환/벌목계약 작년말에 종료… 연장 포기/한때 1천여명 작업… 현재는 10명뿐/술주정에 사향노루 사냥 일삼아 러시아주민들도 반감 극동 러시아의 중심도시인 하바로프스크시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서쪽으로 3시간쯤 달리면 비르비잔이란 곳에 닿게 된다. 비르비잔은 하바로프스크주 예브레이스카야구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10만명의 주민 가운데 유태인이 30%를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 체그도민이 러시아에 남아 있는 북한벌목장의 건재를 확인하는 곳이라면 비르비잔은 몰락해가는 북한벌목장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르비잔의 거리에서는 작업복을 입은 북한노동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시의 북서쪽에 자리잡은 벌목장본부와 목재가공공장,이웃 벌목장등에서 1천여명의 북한노동자들이 일했기 때문이다. 특히 목재가공공장은 비르비잔시내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벌목노동자들이 간부들에게 뇌물을 써서라도 가려하는 인기좋은 작업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곳에서 북한노동자들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지난해말로 비르비잔벌목장의 벌목계약기간이 끝나 북한노동자 대부분이 이미 철수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취재팀은 3월18일 새벽 비르비잔에 도착했다.비르비잔역에 내려 북한벌목장을 돌아보기 위해 20만루블(약10만원)을 주고 전세낸 택시의 운전사가 운좋게도 목재가공공장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유태인이었다. 그의 안내로 시내의 목재가공공장을 찾았다.정문에 「출입금지」 표시가 붙어 있었으나 러시아인 직원들은 『서울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별다른 절차 없이 출입을 허락했다.공장은 총규모가 5천평 정도로 정문에 들어서니 벌목현장에서 베어온 나무를 쌓아놓은 야적장과 이를 운반하는 대형 크레인,굴삭기,대형트럭이 줄지어 있었다.또 통나무를 절단하는 기계와 목재를 네모나게 자르는 기계,전기톱,대패등 각종 공구를 비치한 커다란 가건물이 10여채 늘어서 있었다.공장의 동쪽 끝에는 북한노동자의 숙소가 있었다. ○가장 인기 좋았던 곳 공장 곳곳에는 북한노동자들이사용하던 깃발등의 물품이 널려있었지만 일하는 북한노동자는 한 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고 러시아 노동자들만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다른 목재공장과 벌목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과 간판도 거의 눈에 띄질 않았다. 공장본부에서 만난 비크토프 그리고리스비츠 러시아측 지배인은 『비르비잔지역의 벌목계약은 지난해로 완전히 끝나 연초부터 북한 노동자들의 철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비르비잔벌목장은 러시아와 북한간에 나머지 벌목장들과는 따로 벌목계약이 체결됐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데도 비르비잔에서 철수를 결정한 것은 다른 벌목장보다 눈에 띌 정도로 탈출자가 많이 나왔기 때문인 것으로도 보였다.비크토프지배인은 최근에도 이곳에서 몇명의 노동자가 탈출했다고 밝혔으며 그 가운데 세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다른데보다 좋은 작업여건인데도 노동자들의 탈출이 많은 것은 러시아사회와 잦은 접촉기회를 가지면서 그동안 통제된 북한에서의 삶이 허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것이었다. 벌목장본부의 한 간부는 『벌목계약기간이 끝나갈 무렵 주민들이 정부당국에 계약연장을 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했고 신문에서도 그런 기사를 많이 썼다』고도 했다.벌목노동자들의 행색이 남루한데다 술을 마시고 러시아인들과 패싸움을 하거나 불법으로 사향노루와 곰을 마구 사냥하는등 문제가 계속 발생했기 때문에 러시아주민들이 북한사람들을 싫어했다는 설명이였다. 비크토프지배인은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북한인은 행정간부와 안전요원,그리고 통역원등 10명뿐으로 본국에서의 마지막 철수명령만 기다리고 있다』면서 『음식을 사러가는 것을 빼놓고는 숙소 밖으로 일체 나오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살아 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불과 10명정도라는 말에 취재팀은 그들의 숙소 안에 한번 들어가보기로 했다.비크토프지배인등 러시아관계자들은 『사고가 생겨도 책임질 수 없다』고 말렸다.하지만 우리는 일단 부딪쳐보기로 하고 북한측에 아무런 사전통보 없이 숙소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최근에도 몇명 탈출 숙소는 블록과시멘트로 지은 2층건물이었다.층마다 공동화장실과 세면장이 있고 긴 복도 양쪽에 방들이 줄지어선,한국 대학가의 하숙집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비르비잔역의 기차시간을 적은 표가 입구에 걸려있었다.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이따금씩 시간을 내어 하바로프스크까지 여행을 하는 자유도 누리곤 했다고 한다. 1층의 모든 방을 열어보았지만 비어있었다.빈채로 방치해둔 탓인지 냉기가 감돌았다.2층으로 올라서면서부터는 사뭇 긴장감이 감돌았다.분명히 사람이 사는 곳인데도 인기척이 없이 조용하기만 한 까닭이었다. 계단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TV 소리였다.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가 문을 열어젖혔다. 방에서 축구경기를 보고있던 5명의 북한인과 마주쳤다.그들은 흠칫 놀라며 쏘아봤다.그들에게 『서울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뜻밖에 그들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 없이 인사를 받았다. 5명 가운데 2명은 옷도 깨끗한 편이었고 점퍼엔 김일성배지를 달고 있었다.행정간부나 국가보위부요원쯤으로 보였다.나머지 3명은 겉으로 보기에도 노동자 냄새가 났다.이들은 『사업 때문에 비르비잔에 왔다가 북한동포들이 있다기에 들러봤다』고 말하자 의자를 내주며 앉도록 권했다. 방안에는 창쪽으로 10개의 침대가 나란히 붙어있었고 장작난로와 흑백TV를 올려놓은 선반,의자등이 가구의 전부였다.나무로 짠 침대에는 색이 바랜 시트와 붉은 나일론 이불이 깔려있었다. ○북서 감옥으로 사용 이들은 왜 비르비잔에서 노동자들이 철수하느냐고 묻자 『계약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대답했다.한강과 대동강의 봄소식을 화제로 5분가량 대화를 나누던 북한인들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기자일행을 앉혀둔채 한사람씩 방을 나가기 시작했다.옆방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더 있다가는 불미스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이만 돌아가겠다』고 일어섰다.마지막까지 방에 남아 있던 김일성배지의 사나이에게 『기념으로 사진 한장 같이 찍자』고 권했더니 『작업복을 입어서 안되겠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비르비잔 목재공장 건너편에는담이 매우 높은 회색건물이 있다.유태인택시운전사는 그곳이 옛소련의 정치범수용소였다고 일러줬다.그곳을 북한측은 벌목노동자의 감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튀르마벌목장을 탈출,러시아에 망명허가를 받은 김호씨가 도주과정에서 붙잡혀 수용됐던 곳이기도 하다. 비르비잔은 국경을 넘어선 남녀간의 애틋한 우정이 꽃핀 곳이기도 하다.지난 91년 이곳에서 일하던 벌목노동자 장모씨는 동료가 남한방송을 들었는데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전요원에게 조사를 받게되자 탈출을 결심했다.장씨는 그 동료와 자주 가던 러시아식당에서 일하던 올냐라는 아가씨에게 사정을 얘기했다.올냐는 장씨를 남편인 것처럼 꾸며 시베리아횡단 열차편으로 모스크바에 데려가 장씨가 헝가리를 통해 남한으로 탈출하도록 도왔다.장씨는 서울에 정착한 지금까지도 올냐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초청장을 보낼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 취재팀은 서울에서 장씨에게 들었던 얘기를 토대로 올냐가 일하던 식당으로 찾아갔다.그러나 그곳에서 올냐를 만날 수는 없었다.식당에서 일하는 중년여인은 『지난해까지 올냐라는 이름의 여성이 식당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지만 지금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 1300년전 정신세계(백제를 다시본다:5)

    ◎상징동물은 바로 백제인의 소우주/향로엔 짐승 39마리·수중생물 26마리/사슴은 영생·재생·원숭이는 장수의미/처음 나타난 기마무인상… 천리를 달리는 진취적기상 돋보여 백제의 동물에 대해서는 별로 전해진 것이 없다.선사시대 암각화나 고구려 고분벽화,신라 토우에는 많이 나타났지만 백제쪽으로 오면 동물이 상대적으로 희귀하였다.그런데 웬 일인가….부여 능산리 출토 금동향로에서 백제의 동물들이 한꺼번에 달려나왔다.1300여년전 백제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보게 하는 이들 동물은 고고민속학적 해석을 바닥낼 정도가 되었다. 향로에는 봉황을 비롯하여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현실세계에 실재하는 호랑이·사슴·코끼리·원숭이 등 39마리의 동물상이 표현되고 있다.또 연꽃사이에는 두 신선과 수중생물인 듯한 26마리의 동물이 보인다.특히 이 향로의 기마인물상들은 백제미술품에서는 처음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곰은 모신적존재 전체적인 구성원리는 음양의 체계를 이루어 아래로 수중동물의 대표격인 용을 등장시키고,그 위로 연꽃과 수중의 생물,지상계에는 산악과 짐승 및 신선,천상계의 정상부는 원앙과 봉황을 배치하였는데,봉황은 양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동물이다. 백제금동향로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 가운데 특히 백제와 관련이 많은 곰,남방계 동물인 원숭이와 코끼리,백제미술품에서 처음 나타나는 기마상,신령스런 영매로서 영생과 재생의 상징인 사슴등이 민속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곰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한민주의 모신적 존재로서 한국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곰은 단군신화와 민간설화에서 여성으로 등장한다.환웅과 혼인한 융녀의 몸에서 단군이 태어난 건국신화,삼국유사에 신라 김대성이 토함산에 올라가 곰을 잡고 곰의 징벌이 두려워 그 자리에 곰을 위해 장수사를 지었고,고구려의 해모수는 유화를 웅신산 기슭 압록으로 유인했다는 역사문헌기록,여인으로 변한 곰이 나무꾼을 유혹해 동거한 금강(곰강)의 전설 등 곰은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곰 웅자」 붙은 지명이 웅천,웅촌,웅진,웅강,웅산 등으로 많다.특히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금강이 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명으로 흥미를 끈다.이 곰이 백제향로 정면에서 왼쪽에 꼬리를 치켜세우고 걸어가다 도인을 향에 되돌아 보고 있다. 선계의 산에 나타난 원숭이·코끼리·연꽃 등은 불교 문화를 수용한 세계관의 한 표현이다.입에 앞발을 대고 있는 원숭이가 뭐라고 귓속말을 전하는 듯하다.예로부터 「동국무원」이라 하여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던 것으로 원숭이와 얽힌 내용은 그리 흔치 않다.원숭이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는지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신라 토우의 원숭이는 부적으로 휴대하거나,부장품 혹은 각종 용기의 장식으로 사용되었고,십이지신상의 원숭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당당한 시간신이며 방위신으로 나타난다.청자,백자로 만든 원숭이는 도장,작은 항아리,연적,걸상에서 자연에서의 모습과 모자뉴대의 형상을 띠고 있다.옛 그림 속에서는 원숭이가 십장생과 함께 장수의 상징으로,자손 번창의 상징으로 스님을 보좌하는 역할로 묘사되고 있다. 기마인물상은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백제무인이 두발을 곧추세운 사나운 기세의 말을 타고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수평적으로 내닫고 있는 정적인 신라의 마각문토기·마형토기·기마인물토기·천마도등과 고구려 고분벽화의 말을 타고가는 기사도,말을 타고 활을 쏘는 수엽도,죽은 사람의 영혼이 타고 가는 개마도등과는 다르다.45도 각도로 위로 치고 나가는 금동향로의 백제 기마무인상에서는 천리를 달리는 진취적 기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말에 대한 표현방식은 시대에 따라서 문헌·유물·설화·신앙·놀이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말에 대해서 느끼는 관념은 변함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 같다.말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은 「신성한 동물」「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으로 수렴되었다.그래서 하늘의 사자,중요한 인물의 탄생을 알리고 얘기할 줄 아는 동물,예언자적 구실,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승용동물,장수·신랑·선구자 등이 타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사슴과 새 그리고 맹호가 평화롭게 뚜껑의 맨 아랫부분에 부조되어 있다.사슴이 유유자적하며 선계의 산으로 오른다.사슴아래 나뭇가지에는 새가 앉아 노래하고 나무아래로 맹호가 포효하고 있다.백제인의 여유와 취미와 예술,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오늘날의 민속이나 무속에서는 사슴이 중요한 신앙소로 등장하지는 않는다.그러나 상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정이 다르다.우리 민족은 사슴을 상상의 동물인 기린에 준하는 거룩한 동물로 숭상하였다. ○영원의 세계표현 사슴뿔은 남권의 상징이자 가부장및 공동체 수장의 상징일 수 있다.사슴뿔은 나뭇가지 모양을 하고 있고 봄에 돋아나 자라면서 딱딱한 각질로 되었다가 이듬해 봄에 떨어진다.그리고 다시 뿔이 난다.이러한 순환기능과 나무를 머리에 돋게 하고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동물은 사슴뿐이다.따라서 사슴은 대지의 원이를 갖춘 동물로 여겼다고 할 수 있다. 사슴의 출현은 좋은 일이 생길 징조로 보았다.청학이 신선의 벗이자 짝이듯이 사슴도 신선의 벗이자 시종이었다.사슴은 호랑이와 더불어 신선의 탈것으로 생각되었다.사슴은 상상의 동물인 기린과 닮아 작은 기린으로 여겼으며 신선으로 도인의 품성을 갖춘 것으로 인식했다. 금동향로의 1백개 부조상은 영원불멸의 하늘 세계의 상징으로서 봉황과 북방 설원에서 설매 끄는 사슴,상상의 동물인 공작,하늘을 나는 천마의 신성함,사람과 가장 가까운 영물로서 원숭이 등등 고대 백제인의 이상과 꿈,영원의 세계를 표현한 소우주라 할수있다. ◎백제인의 신앙생활/한국인 심성속에 자리잡은 동물/거북·학·기린 등 신령으로 모셔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삶을 지키기 위한 원초적 본능으로 신앙미술을 창조했다.선사암 각화등이 그 초보적인 신앙미술이다.신앙미술은 곧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된 동물상징으로 발전함으로써 생활문화와 사상,관념,종교등을 표현하기에 이른다.그리고 동물은 원시시대이래 인간에게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가하면 먹거리이기도 했다.그 힘은 노동력으로도 이용되어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한반도에서도 바위그림이나 동물벽화를 비롯해 토우,토기,고분벽화 등에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한다.이 동물들에도 제각기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제각기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상징이 숨겨져있는 것은 물론이다.청동기시대의 반구대암각화에는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과 사냥장면,개,사슴,호랑이,곰,물고기,거북,고래등이 묘사되어 있다.이 바위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생산활동인 고기잡이와 사냥,그리고 그 대상이된 동물들을 표현했다. 동물그림이 선사시대 바위그림에 못지않게 자주 나타난다.대상이 된 새는 학 꿩 공작 갈매기 부엉이 봉황 주작 닭등으로 현실의 새도 있고 상상속의 새도 등장한다.동물로는 범과 사슴 멧돼지 토끼 여우 곰등 산짐승과 소 말 개등 집짐승들이 그려져 있다. 신라의 동물상징은 주로 토우라 불리는 흙인형에서 나타난다.얼핏 살펴보아도 개 말 소 물소 돼지 양 사슴 원숭이 토끼 호랑이 거북 용 닭 물고기 게 뱀 개구리등이 눈에 뛴다.그런가하면 십장생 가운데 거북 학 사슴과 상상의 동물인 용봉황 기린등은 현재도 신령스런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고대인이 지녔던 정신세계의 일단이기도 한 동물의 세계가 이번에는 금동향로에 한꺼번에 나타나 백제인의 내면적 사상과 의식을 새롭게 조명할수 있게 되었다.
  • “천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은 호수”

    ◎1886년 영인이 쓴 「장백산­만주기행」에 묘사/삿갓쓰고 한가로이 낚시하는 조선인 모습 그려/백두산 정상 관목지대는 “에덴의 동산”으로 표현/문도이주 조선인의 생활상 등 상세히 기술 만주 간도지역에 이주한 우리 민족의 삶과 민족성을 상세히 묘사한 가운데 민족이 우러러보는 성산 백두산을 기록한 19세기 후반의 자료가 발견됐다.서울대 도서관에서 송기호교수(한국사)가 찾아낸 이 자료는 18 88년 롱맨출판사가 영국 런던에서 간행한 「장백산­만주 기행」(The Long White Mountain).특히 이 책속의 백두산 천지 풍경은 가장 오래된 백두산 실사 컬러스케치로 추정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영령인도제국의 봄베이 사무소에 근무하던 영국인 공무원 H E M 제임스.그는 2년간 휴가를 얻어 중국여행을 계획하던중 우연히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영국왕립근위대의 F E 영허즈밴드 중위를 만나 함께 1886년 3월부터 2년동안 요령성 길림성 흑용강성등 중국 동북부 3성과 러시아의 연해주지방을 여행했다.그 과정에서 그는 백두산을 등정,천지의 신비로움을 감탄했으며 도중에 만난 조선인 이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5백쪽에 달하는 여행기에 상세히 기록했다.특히 동행했던 영허즈밴드는 그림에 솜씨가 있어 많은 삽화를 그렸는데 그 가운데 백두산 천지와 낚시하는 조선인의 모습은 눈길을 끈다. 제임스 일행이 인도의 캘커타항을 떠난것은 1886년3월19일.말레이시아의 페낭과 싱가포르를 거쳐 홍콩에 도착한뒤 바로 광동 상해 북경 천진을 거쳐 요령성의 잉커우(영구)항에 도착했다.그곳에서 준비를 완료,만주여행에 돌입한 것은 2개월후인 5월19일 이었다. 그들이 만주지방을 택한 이유는 남부나 동부보다 기후가 좋고,비옥한 땅에 자원이 풍부하고,인구가 적은데 비해 개발이 거의 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특히 장백산맥 일대에는 호랑이·곰·사슴등 산짐승이 풍부하여 사냥의 천국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요령성의 수도인 목단(오늘날의 심양)을 거쳐 길림성으로 들어온 그들이 조선인을 만난 것은 압록강 부근에 다다라서 이다.압록강의 굽이굽이 완만한 흐름과 풍광은 그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제임스는 개척민으로서의 조선인들의 삶을 정확히 살피고 있다.『상당수의 조선인들이 강을 건너와 살고 있었으며 낚시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크리스천이 많았는데 그들은 1882년 로스라는 선교사가 조선어로 번역한 성경책을 지녔으며 자신들의 교회를 갖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만주식 집을 자신들에게 편리하도록 개량했다』고 기록했다. 그는 또 조선인들이 농업노동자로 많이 와있는 한 마을의 규약중 조선인들에게는 낚시를 금한다는 내용을 소개했다.이는 낚시의 풍류를 즐기다 보면 농사일이 뒷전이 될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그는 등산 도중 많은 지명들이 조선어로 돼있었다면서 그 산을 조선인들은 백두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도 들추어냈다. 천지에 다다를수록 그들이 느끼는 외경감은 더 컸다는 제임스는 정상의 관목지대에 올라서는 「에덴의 동산」을 옮겨온듯 하다고 찬탄했다.정상에서 천지를 대했을때의 감격은 「이 세상에서 가장 투명하고 아름다운 호수」라고 표현하면서 그잔잔함은 마치 스위스의 레만호수같다고 표현했다.그들은 중국인들이 「바다의 눈」이라고 부른다는 천지에서 1주일을 머물면서 각종 조사와 더불어 비경을 즐긴 것으로 돼있다. 이어서 그들은 치치하르와 훈춘을 거쳐 연해주의 노보­키예프스키지방을 여행,그곳에서도 많은 조선인을 만났으며 러시아인들이 조선인들의 근면성과 학덕을 칭찬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술했다.이 여행기는 이렇게 연해주를 끝으로 다시 역순으로 남하,상해에 돌아오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 알래스카/회색늑대 사살계획 찬반논쟁(치구촌)

    ◎주당국서 사슴·순록 등 보호위해 사냥 빙침/자연보호론자 “생태계파괴 초래” 강력반발 미국의 알래스카에서는 늑대사냥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주당국은날로 줄어들고 있는 순록과 사슴을 보호하기위해 이들을 잡아먹는 늑대를 사냥으로라도 줄일 계획이다.반면 자연보호론자들은 「먹이사슬」의 인공적 조절은 결국 생태계의 파괴를 갖고온다는 이유로 주당국의 계획에 강력히 반대하고있다. 회색늑대의 인공조절계획은 새해1월부터 5년동안 시행될 예정이다. 이같은 계획은 앵커러지와 페어뱅크사이 4만3천평방마일의 산림지대를 아프리카의 세렌제티평원처럼 대규모 야생동물의 이동을 관찰할 수 있는 관광명소로 만든다는 마스터플랜아래 추진되고 있다. 자작나무숲과 빙하,툰드라지대가 섞여있는 이 일대에는 현재 6만마리의 순록과 3만마리의 빨간코사슴,2천마리의 회색곰 그리고 7백마리의 회색늑대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주당국은 우선 디날리 국립공원남쪽에 살고있는 순록 5천마리를 오는 2000년까지 1만마리로늘리고 페어뱅크 동쪽에 있는 2만2천마리의 순록을 6만마리로 늘린다는 목표아래 두 지역에 사는 늑대 가운데 모두 3백∼3백25마리를 죽여 없앨 방침이다. 이에대해 야생동물학자들은 이같은 계획은 『대단히 어리석고 잘못된것』이라면서 『늑대들을 대폭 감소시키면 「먹이사슬」관계에 있는 순록이나 사슴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 오히려 먹이(풀)의 부족으로 아사현상이 나타나거나 아니면 괴질이 발생하여 집단폐사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이들은 특히 늑대들이 오래전에 전멸되자 고라니(북미산 큰뿔사슴)의 숫자가 너무 많이 늘어나 근년에 와서는 수백마리의 고라니가 굶주려 죽거나 병들어 죽는 엘로스톤국립공원을 예로 들었다. 자연보존론자들은 또 미국에서 알래스카와 미네소타주 말고 다른 곳에서는 늑대들이 멸종되었거나 절멸위기에 있고 알래스카에도 모두 합쳐야 7천마리밖에 안되기때문에 인위적으로 이를 줄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수렵협회등에서는 늑대수를 줄이지않으면 수만마리의 순록과 무스사슴떼가 이동하는 장관을 볼수있는 관광거리를 결코 만들수 없을 것이며 순록사냥꾼들도 이곳을 더이상 찾지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본업 제치고 “외화벌이 밀렵”골몰(시베리아 북한 벌목장취재기:4)

    ◎3∼4명씩 조편성,사향노루등 마구잡이/금렵기에 활동… “환경파괴” 동물연서 항의 사냥꾼 라시케비치 스테판 세묘뇨비치씨(62)는 사냥오두막문을 심하게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해발 1천5백m의 준봉들이 솟아 있는 하바로프스크 북부 베르히 브렌스키지역,시간은 이미 밤 11시를 넘었다. 왼손에 곰사냥용 엽총을 든 세묘뇨비치씨 앞에 모습을 드러낸 불청객은 뜻밖에도 왜소한 두 사람의 동양인이었다. 러시아말을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이들 두 동양인은 손짓발짓으로 하룻밤 유숙을 부탁한 뒤 다음날 새벽 늦가을 서리가 내린 산줄기를 타고 사라져갔다. 세묘뇨비치씨가 이들의 정확한 정체와 역할을 알게 된 것은 이들이 떠난 지 3일이 지난 뒤였다. 소수 산족인 나나이족 사냥꾼들이 와 4㎞쯤 떨어진 곳에 수십 개의 사냥용 올가미가 설치되었고 이미 여러 마리의 까발가(사향노루)가 죽어 있었다고 이야기한 뒤에야 그는 이들이 북한 벌목인부이며 소문으로만 듣던 사냥행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지난 85년 10월의 이야기다. 북한 인부들의 사냥이야기는 벌목사업소의 비극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베르히 브렌스키지역의 고봉들은 한여름에도 녹지 않는 만년설을 이고 있다. 세묘뇨비치씨가 북한인들을 만났던 지역은 이들 고봉의 북쪽 산자락. 북한의 벌채지역은 고봉 남쪽자락의 강 하나를 건넌 지역에 있다. 한겨울에도 목이 다 드러나는 누비옷과 반장화 한 켤레로 북한 인부들은 만년설을 넘고,소련인들의 감시와 곰의 날카로운 이빨 앞에 올가미 몇 개로 달러벌이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소금과 생쌀 몇 주먹으로 조선인민의 용감성을 자랑하기에는 시베리아의 기후와 지형은 너무 거칠다. 하바로프스크 국립 동물 및 어류연구소는 80년대 이후 해마다 북한 벌목인부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불법사냥 실태와 이에 따른 환경파괴를 관계요로에 진정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동맹관계라는 이유 하나로 이 같은 연구소의 진정은 모두 휴지통으로 들어갔다고 알렉산더 바탈로브 소장은 회고하고 있다. 바탈로브 소장은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여론 반영환경이 달라지면서 중앙정부에서 하바로프스크지역 주민들의 불만에도 귀를 기울이게 됐고 불법사냥에 대한 감시와 밀수품 검색이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인부들의 사냥은 주업인 벌목사업보다 오히려 더 비중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볼멘 설명이다. 바탈로브 소장의 이야기다. 『함정과 올가미를 놓아 잡는 북한 인부들의 사냥은 장난이나 부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3명 또는 4명 단위로 사냥을 다니는 것에서 우선 그렇고 실제로 우리는 이들이 명령과 복종에 의해 사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여러 가지 증거를 갖고 있다. 그 중에는 북한 인부들의 육성증언도 들어 있다』 바탈로브 소장은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몇몇 벌목인부로부터 불법사냥현장에서 이들이 상부의 명령에 의해 사냥에 나서고 있음을 확인하는 녹음을 몇 차례 채증했다고 말했다. 사향노루의 배꼽은 소련에서 기껏 화장품의 재료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아시아권에서 사향은 때론 생명의 영약으로,때론 사랑의 묘약으로 예전부터 한방가의사랑을 받아온 귀물이다. 특히 홍콩과 일본에서 이들 사향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면서 북한 인부들이 조직적으로 사향노루 사냥에 나선 것으로 소련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의 암거래상들은 동양여행객들에게 사향노루 배꼽을 g당 15달러 내지는 20달러에 판매한다. 성장한 사향노루 수컷은 20에서 30g의 사향을 갖고 있고 달러로 치면 산지에서만 3백 내지 6백달러의 값어치가 있는 셈이다. 『북한 벌목인부들은 지나칠 정도로 산을 잘탄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북한이 사향노루 사냥을 위해 특수부대 출신들을 시베리아에 파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한 번은 밤중에 다른 사냥꾼과 함께 뗏배를 타고 강을 내려오다 불을 지피고 있는 북한 인민들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이들은 마치 네발짐승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30대부터 사냥을 하고 있다는 세묘뇨비치씨는 자신이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냥꾼으로부터 북한 벌목인부의 시체가 강가에 밀려나 있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소련당국의 눈을 피해 사냥을 해야 하는 북한 인부들은 간소복차림으로 약간의 생쌀만을 지참하고 사냥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사냥금지기간인 초봄부터 늦은 가을까지에 주로 사냥을 한다. 그래야만 소련 사냥꾼을 만날 가능성이 적고 그만큼 적발의 위험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사냥 오두막을 이용하기도 쉬울 것은 당연하다. 북한 벌목인부들에게는 사냥용 엽총이 없다. 하바로프스크 자연보호 관계자들은 북한의 주사냥구역에 호랑이만 3백마리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그 이상의 곰 역시 서식하고 있다. 북한인들이 나타나고 있는 베르히 브렌스키지역은 도보로 북한의 단위사업소인 중대본부까진 10일 가까이 걸려야 하는 곳이다. 간편한 복장,생쌀만으로 견디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험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중대본부는 5명의 시신이 모이면 본국으로 송환한다고 하바로프스크 거주동포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 동포들은 사망자 중 상당수가 벌목이 아닌 사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 “평양은 지구 최후의 「빙점하 도시」”/영 선데이타임스기자 방북기

    ◎거리마다 김일성동상ㆍ선전용빌딩만/정치범15만ㆍ비참한 주민생활상 감추기 급급 최근 평양을 방문했던 영국 선데이 타임스(더 타임지 발행)의 존 스웨인기자는 『평양은 실제에 있어 낙원이 아니라 잃어버린 낙원에 가깝다』고 말하고 북한주민들은 『거짓말만 계속되는 곳에서는 오직 진실만이 왕』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빙점하의 북한에서 본 조지 오웰의 악몽』이란 제하의 스웨인기자 방문기 요약이다. 평양은 얼핏보기에는 현대적이고 매력적인 도시같이 보인다. 마천루가 있고 넓은 거리가 있고,거대한 체육시설ㆍ문화센터가 있다. 그러나 한꺼풀만 벗기고 나면 이것들이 남한과의 경쟁을 의식한 엄청난 낭비이며 2천만 북한주민들에게 이나라가 노동자의 낙원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려는 기도임을 알수 있다. 실제에 있어서 평양은 낙원이 아니라 「잃어버린 낙원」에 가깝다. 평양은 세계에서 가장 숨기는게 많고 금지된게 많은 황량한 곳이다. 현대식 빌딩의 이면에는 노인들과 지체부자유자들이 시골 변두리에 쫓겨나 살고있는가 하면 15만명의 정치범들이 강제노동수용소를 꽉 채우고 있다는 소름끼치는 사실이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한 외교관은 『북한땅은 세계에서 가장 황량한 곳이며 조지 오웰적 악몽이 현실로 나타난 곳』이라고 미리 나에게 밝혀준 바 있지만 북경을 출발한 열차가 압록강 다리를 건너 북한으로 들어서면서 그 말의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열차가 변경의 한 역에 도착하자 열차안에 있는 북한 승객들은 그들의 옷깃에 김일성배지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배지는 공공장소에서는 꼭 달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김일성의 모습은 어디에나 있었다. 드넓은 광장에는 으레 거대한 그의 동상이 우뚝 서 있으며 빌딩에서도 그의 얼굴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김의 생일은 연중 가장 큰 축제일이며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데 이용되고 있다. 그가 자기선전을 위해 벌인 가장 기묘한 짓은 평양에서 3시간 걸리는 곳에 6만점의 선물을 차려놓은 것이었다. 거대한 탑식궁전에 전시된 선물 가운데는 루마니아의 독재자였던 니콜라이 차우셰스쿠가 보낸 박제된 곰(분명히 차우셰스쿠가 손수 사냥한 것이리라),에티오피아의 하일레 마리암대통령이 보낸 박제된 사자,아프리카에서 보낸 상아와 물소뿔이 있었다. 김은 49세인 그의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임명하여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을 격분시킨바 있다. 한국전쟁후 분단 40년간 김은 한반도의 북쪽을 외계로부터 봉해버렸으며 신문과 방송은 정부선전만 하도록 통제되어 왔다. 그 결과는 조지 오웰적 대중조작이었다. 북한사람들은 외부에 관한 정보를 거의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건 쉽게 믿을 수밖에 없다. 동유럽의 개혁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들은 남한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동구에서 유학중이었던 수백명의 유학생 정도인데 그들은 작년에 갑자기 소환되어 사상교육 캠프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차우셰스쿠의 처형과 루마니아 현지의 격렬한 개혁이 김을 놀라게 했다는 증거가 있다. 평양에는 주로 공산당 핵심분자와 충성분자들만이 살도록 허용되고 있지만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죽던날 김의 거처를 경비하는 군병력이 배로 늘어났다고 외교관들은 귀띰해 주었다. 22일에 끝난 최고인민회의 조기선거도 주민들의 불만을 피해보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이 그의 아들에게 권력을 조기이양할 것이라는 소문들이 나돌았으나 현재로서는 그럴 의사가 없음이 분명하다. 그는 아들 김정일이 신뢰도와 카리스마가 부족하며 당이나 군의 지지도 받고 있지 못한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정일은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몇몇 테러행위에도 연루되어 있다. 『그는 매우 유치하며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와 같다』고 한 외교관은 말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개인 숭배가 김의 사후에까지 계속되지는 않으리라고 보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거짓말만 계속되는 곳에서는 오직 진실만이 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날이 오면 동유럽에 있는 그의 공산주의 친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김씨왕조도 떠내려 갈 것이다.
  • 북한,한­소 접근 비난/“한반도 긴장 조장”

    【도쿄 로이터 연합】 북한은 6일 한국의 대소 수교노력을 격렬히 비난하고 소련이 한국에 대한 인정의 폭을 확대하는 데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북한관영 로동신문은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의 방소사실과 관련,지금까지 지켜온 침묵을 깨고 이날 사설을 통해 『남한측은 김씨가 사냥가 마치 큰 곰이나 한마리 잡아온 듯이 야단법석을 떨며 방소성과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서 『김씨의 모스크바 방문은 남북한간 적대와 긴장을 조장하는 반민족적ㆍ분열주의적 책동』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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