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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간 50만명 도전…100만 달러 ‘보물 찾기’ 주인공 탄생

    10년 간 50만명 도전…100만 달러 ‘보물 찾기’ 주인공 탄생

    로키산맥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100만 달러어치의 보물을 둘러싼 ‘보물찾기’가 10년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거주하는 골동품 거래상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억만장자인 포레스트 펜(89)은 1988년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자신이 평생 모은 금괴와 보석, 황금 동전 등을 가로 25㎝·세로 25㎝·높이 25㎝의 상자에 담아 로키산맥 어딘가에 숨겨놓았다. 그리고 10년 전인 2010년, 보물을 찾는 단서를 담은 자서전 ‘스릴 넘치는 추억’(The Thrill of the Chase)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보물이 묻힌 장소에 관한 9개의 힌트를 담은 시(詩)가 포함돼 있었다.싯구의 내용은 따뜻한 물이 정체된 곳(where warm waters halt) / 협곡으로 떨어져 (And take it in the canyon down) / 멀지는 않지만 걷기에는 먼 곳(Not far, but too far to walk) / 브라운의 고향 아래에 묻힌 곳(Put in below the home of Brown) 등이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7일, 펜은 현지 언론인 산타페뉴멕시코와 한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50만 명의 사람들이 찾아 헤맨 보물을 찾은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다”고 밝혔다. 펜에 따르면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행운의 주인공은 로키산맥에서 자신이 찾은 보물의 흔적을 펜에게 사진으로 전송했고, 펜은 그것이 10년 전 사진이 숨긴 보물이 맞다는 것을 완벽하게 확인했다. 펜은 “50만 명이 참여했던 지난 10년은 내게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면서 “(보물이 찾아진 현재는) 내 기분이 기쁜지 슬픈지 나도 잘 모르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펜은 자신이 보물을 숨긴 장소와 이 보물을 찾은 사람 등의 정보를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현지 언론은 보물의 가치가 100만 달러, 한화로 12억 원은 훌쩍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펜이 시작한 ‘보물찾기’는 목숨을 건 위험한 도전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험난한 산에서 보물찾기에 나섰다가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2017년에는 31세의 보물 사냥꾼이 실종됐다가 그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같은 해 6월에는 50대 목사가 보물을 찾아 나섰다가 숨졌고, 랜디 빌리유 라는 이름의 보물 사냥꾼 역시 2016년 실종된 뒤 1년 후에야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에 보물을 직접 숨겼다고 밝힌 펜은 “나처럼 여든 살이 넘은 사람이 가기 어려운 곳에 숨긴게 아니다”라며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과거와 미래 잇는 2代째 문화사랑방

    과거와 미래 잇는 2代째 문화사랑방

    종로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꺾어져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붙어 선 한 구역을 지나면 인사동길로 접어든다. 길 오른편 1, 2층짜리 구옥들 사이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채 서 있는 ‘통인가게’가 나온다. 1973년에 지어진 7층짜리 건물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1, 2층의 외벽이 유리로 마감된 반면 3층 이상은 벽으로 처리돼 시각적인 상층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고가구들이 햇볕을 많이 받으면 뒤틀려 변형되기 때문에 창을 거의 내지 않고 지었어요.” 통인화랑 주인 김완규씨의 설명이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통인가게는 1924년 김씨의 부친 김정환씨가 창업해 2대째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명함에는 회장, 대표가 아니라 주인이라고 당당하게 새겨져 있다. 1961년 종로구 통인동에서 현재 위치인 인사동으로 이전했다. 화랑이 없었던 1970년대부터 골동품 애호가와 다양한 예술인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 오고 있다. “한국을 찾는 주한 대사관의 외교사절은 물론 해외 명사들까지 우리 화랑을 방문해 전통 고가구 및 공예품을 즐겨 찾고 있어요.”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좋은 작가를 발굴한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500회 이상의 전시를 해 오고 있다. 1970년대 화랑을 통한 작품전시가 지름길이었던 시대, 우리 공예품의 우수함을 널리 알리고자 시작했던 화랑이 이제는 도예, 섬유, 회화까지 범위를 넓혀 전시를 이어 오고 있다. “어떤 불황이 닥쳐도 전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통인화랑을 찾는 손님뿐 아니라 작가와의 약속을 지키고 통인을 지탱하게 하는 힘입니다.” 김씨의 부인 이계선 관장은 안주인이다. 좋은 작가를 찾아 육성하는 일에 집중한다. 2002년 뉴욕통인갤러리를 탄생시켰고 한국 공예 작가 60명을 소개하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계간지 ‘통인미술’을 발행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좋은 작가를 알아보는 게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게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이유가 아닐까요.” 통인화랑은 4년 후면 창업 100년을 맞이한다. 강화도에 통인미술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통인의 숨결이 흐르는 걸 느낀다. 김희병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한양 심장에 모인 백년점포… 열한 개 골목 따라 시간여행

    한양 심장에 모인 백년점포… 열한 개 골목 따라 시간여행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가 다음달 4일 돛을 올립니다.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예년보다 3개월가량 늦어졌습니다. 불가피하게 답사 횟수를 20회로 줄였고 참가자 수도 20명 이내로 제한합니다. 이에 앞서 서울신문 지면 투어로 갈증을 풀어 드립니다. 1회 인사동(4일), 2회 대학로(10일), 3회 여의도(17일), 4회 동대문(24일), 5회 성수동(7월 1일) 등 5개 지역을 찾아갑니다. 이들 지역의 유·무형 서울미래유산을 집중 탐구하고 ‘장소인문학’의 비밀을 풀어 줄 것입니다. 장태동, 최석호, 권기봉씨 등 서울역사 여행가들이 해설자와 집필자로 새롭게 나섭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이소영 동화작가, 함혜리 문화칼럼니스트, 서동철 문화재위원, 손성진 서울신문 논설고문 등 역대급 필진을 초빙해 투어의 격을 높였습니다. 답사투어는 다음달 4일부터 11월 4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진행하고 예약은 투어 전주에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 홈페이지에 하면 됩니다. 관련 기사는 매주 수요일 서울신문 지면에 게재됩니다.●700m 거리에 예술가들의 자취·혼 가득 “여덟 사람이 앉아 있다/두 사람은 시인이고/두 사람은 화가다/한 사람은 조각가고/한 사람은 무용가/저쪽 구석에 앉은 두 사람은 작가라는데 /무슨 작가인지 알 바가 아니다/시인은 기타를 치고/화가는 손뼉을 치고” 이생진(1929~) 시인의 시집 ‘인사동’(우리글·2006년)에 수록된 ‘시인과 화가1’이다. 2000년 겨울부터 2005년 겨울까지 쓴 65편의 시에 인사동의 민낯을 담았다. 인사동 곳곳에는 예술혼이 잠겨 있다. 예술가의 자취가 묻어 있다. 이들이 보고 듣고 즐긴 것들이 서울미래유산이 돼 보석처럼 점점이 박혀 있다. 고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가 인사동에서 운영한 카페 ‘귀천’은 서울미래유산이다. “귀천에 목 여사는 없고/걸레스님만 걸려 있다/천 시인은 목 여사와 나란히 앉은 사진틀에서/생진아, 너 아직 스무 살이제이 한다/내가 쉰한 살 때 하던 소리다/지금은/내가 먼저 하늘에 왔데이 하고 웃는다/천 시인은 나보다 한 살 아래인데/먼저 하늘에 왔다고 자랑한다” 목씨 사후 조카 목영선씨가 2호점을 내 명맥을 잇고 있다. 오래된 서점 통문관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이생진 시인의 시에 등장한다. “통문관 앞을 지나는데/노란 은행잎 속에서 이겸노 옹이 바스락거린다/그의 생애가 인사동이다” 인사동의 중앙통인 인사동길에 있는 통문관은 1934년에 문을 열었다. 출입문은 대개 닫혀 있다. 창에 붙은 서화 틈새로 기웃거려 보지만 천장까지 쌓은 책 때문에 안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통문관 주인 이종운씨는 이겸노씨의 손자다. ‘월인석보’, ‘청구영언’ 같은 보물급 전적을 비롯해 수많은 고서를 발굴·수집한 할아버지에게서 천자문을 배웠다. 수많은 자료 중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기관지로 발행한 항일투쟁지 ‘상해독립신문’ 창간호 등 170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할아버지께서 여든여덟 살이 되셨을 때 ‘통문관책방비화’라는 책을 냈는데 나도 그 나이쯤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조선의 근대가 태동한 문화·정치 일번지 인사동에서 가장 오래된 필방 구하산방은 ‘첩첩산중 신선들의 집’이라는 뜻이다.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1913년에 문을 열어 3대째 이어 온 필방에는 종이, 먹, 붓, 물감 등 2000종이 넘는 서화 재료가 가득하다. 필방에는 그림을 공부하는 학생에서부터 전국의 화가들이 몰린다. 홍수희 대표는 “우리 집 모르면 작가가 아니지”라고 말한다. 본래 일본 상인이 개업한 가게였으나 우당 홍기대 선생이 1935년에 점원으로 들어가 광복 이후에 인수했다. 3대인 홍수희 대표는 2대 홍문희씨의 동생이다. 서울미래유산 수도약국은 광복 직후인 1946년 8월 15일 임명용씨가 개업했다. 약국에서 심부름하다 약종상 면허를 취득했으니 적수공권으로 자수성가한 약업계 1세대다. 세간에 “수도약국에는 없는 약이 없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됐지만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약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적도 있었다. 약국을 가업으로 이어받은 약사는 셋째 아들 임준석씨다. 종로구 인사동 194 하나로빌딩 1층에는 서울미래유산 서울중심점 표지석이 말없이 서 있다. 1896년 한양의 중심 지점을 나타내기 위해 고종이 세웠다. 101년 전 3·1운동의 주역인 민족대표 33인은 태화빌딩과 하나로빌딩 사이 주차장 자리인 태화관 별유천지 6호실에서 독립선언을 했다. 서울이 10배 이상 확장되면서 옛 서울의 남쪽 경계였던 남산이 서울의 중심부가 됐다. 흘러간 옛 중심점이다. 이 밖에 인사동 일대의 서울미래유산은 조선중앙일보 옛 사옥, 보신각 지하철 수준점, 낙원악기상가, 허리우드극장, 이문설렁탕, 낙원떡집, 유진식당, 빈대떡전문 열차집 등이 있다. 인사동은 서울의 근대가 태동한 곳이다. 서울의 첫 대학로였고, 서울의 첫 정치 일번지였으며, 서울의 예술과 음식문화가 잉태된 곳이다. 서울의 미래유산 집결지대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일제강점기 몰락한 왕족 고미술품 팔아 인사동은 서울에서 가장 고풍스런 거리이자 미술품과 골동품의 향기가 진동하는 공간이다. 서울에서 가장 한국적인 거리여서 외국인 친구나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교포나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장소이다. 서울의 명소이자 예술가들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골동품과 도자기, 고서 등 한국의 전통 상품이 거래되는 상징적인 동네이면서도 ‘중국산 짝퉁’이 소비되는 자본주의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인사동길은 종로구 인사동 63번지에서 관훈동 136번지로 이어진다. 삼청동~관훈동~인사동~청계천 광통교까지 흐르는 개천을 복개하면서 생긴 신작로다. 북쪽으로는 관훈동, 동쪽으로는 낙원동, 남쪽으로는 종로2가 적선동 그리고 서쪽으로는 공평동과 접하는 700여m의 길이다. 일반적으로 인사동이라고 하면 골동품, 화랑, 표구, 필방, 전통 공예품,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등이 모여 있는 인사동 인접 지역을 통칭한다. 안국역이나 종로3가역에서 들어오는 두 갈래 통로로 이뤄진 인사동의 몸통 인사동길은 모두 11개의 실핏줄 같은 골목을 통해 이웃 동네와 연결돼 있다. 인사동의 역사는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계사 바로 옆 터에는 화가를 양성하고 선발하던 도화서가 있었다. 도화서에는 전국의 화원 지망생이 몰려들었고 지필묵을 파는 가게들이 생겼다. 인사동에 처음 고미술품 시장이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이때부터 인사동은 ‘한국 전통 문화재 유출의 현장’이 됐다. 몰락한 왕족과 양반들이 고미술품을 일본인에게 내다 판 시기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인 대신 미군과 유럽인들로 고객이 바뀌었다. 1970~80년대부터 인사동에 화랑·표구사 등의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화랑이 들어섰다. 필방이 속속 진을 쳤다. “인사동에 와서도 인사동을 찾지 못하는 것은/동서남북에 서 있어도/동서남북이 보이지 않기 때문/그렇게 찾기 어려운 인사동이/동은 낙원동으로 빠지고/서는 공평동으로/남은 종로2가에서/북은 관훈동으로 사라지니/인사동이 인사동에 있을 리가 없다…” 이생진 시인은 시집 ‘인사동’에 인사동의 역사와 상처를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고 “시혼이 상혼에게 혼을 빼앗긴 지 오래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미 14년 전의 일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의료진에 마지막 작품 남긴 佛 국민만화 작가

    의료진에 마지막 작품 남긴 佛 국민만화 작가

    프랑스의 국민만화 ‘아스테릭스’의 삽화가인 고 알베르 우데르조가 남긴 네 점의 만화 드로잉 작품이 경매를 통해 39만 유로(약 5억 2000만원)에 팔렸다고 AFP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에 팔린 작품은 ‘아스테릭스와 라 트라비아타’ 등의 제목으로 고인이 생전에 그린 오리지널 삽화들로, 유족 측은 앞서 감사의 뜻으로 고인이 진료를 받던 병원에 기증한 바 있다. 고인의 부인 아다 우데르조는 “남편은 의료진의 헌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며 “그는 떠났지만, 프랑스의 영웅인 의료진에게 지지와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작품을 기증한 이유를 설명했다. 병원 측은 이 작품을 경매에 부쳤으며, 수익금 전액을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을 위해 쓰기로 했다. 지난 3월 24일 92세의 나이에 사망한 우데르조는 ‘꼬마 니콜라’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르네 고시니와 함께 ‘아스테릭스’를 창조한 작가다. ‘아스테릭스’는 프랑스인의 조상인 골족의 전사 아스테릭스와 단짝 오벨릭스가 로마 제국에 대항해 펼치는 모험을 그린 이야기로, 1959년 프랑스 만화잡지 ‘필로트’에 처음 발표해 큰 성공을 거뒀다. 1977년 고시니의 사망 이후에는 고인이 단독으로 시리즈를 이어 오다가 2013년 은퇴했다. 앞서 유족은 그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코로나19와 무관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프랑스는 이 밖에도 최근 자국 내 병원과 의료진을 지원하기 위해 골동품과 유명 작품 등을 경매에 부쳐 수익금을 모으고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의료진 위해 써달라” 아스테릭스 삽화가 작품 5억원에 낙찰

    “의료진 위해 써달라” 아스테릭스 삽화가 작품 5억원에 낙찰

    프랑스의 국민만화 ‘아스테릭스’의 삽화가인 고 알베르 우데르조(사진)가 남긴 네 점의 만화 드로잉 작품이 경매를 통해 39만 유로(약 5억 2000만원)에 팔렸다고 AFP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에 팔린 작품은 ‘아스테릭스와 라 트라비아타’ 등의 제목으로 고인이 생전에 그린 오리지널 삽화들로, 유족 측은 앞서 감사의 뜻으로 고인이 진료를 받던 병원에 기증한 바 있다. 고인의 부인 아다 우데르조는 “남편은 의료진의 헌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며 “그는 떠났지만, 프랑스의 영웅인 의료진에게 지지와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작품을 기증한 이유를 설명했다. 병원 측은 이 작품을 경매에 부쳤으며, 수익금 전액을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을 위해 쓰기로 했다. 지난 3월 24일 92세의 나이에 사망한 우데르조는 ‘꼬마 니콜라’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르네 고시니와 함께 ‘아스테릭스’를 창조한 작가다. ‘아스테릭스’는 프랑스인의 조상인 골족의 전사 아스테릭스와 단짝 오벨릭스가 로마 제국에 대항해 펼치는 모험을 그린 이야기로, 1959년 프랑스 만화잡지 ‘필로트’에 처음 발표해 큰 성공을 거뒀다. 1977년 고시니의 사망 이후에는 고인이 단독으로 시리즈를 이어 오다가 2013년 은퇴했다. 앞서 유족은 그의 별세 소식을 알리며 코로나19와 무관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프랑스는 이 밖에도 최근 자국 내 병원과 의료진을 지원하기 위해 골동품과 유명 작품 등을 경매에 부쳐 수익금을 모으고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바다 밑 ‘보물’ 들고와 먹이 달라는 신비한 돌고래 화제 (영상)

    바다 밑 ‘보물’ 들고와 먹이 달라는 신비한 돌고래 화제 (영상)

    바다 밑에 있는 '보물'을 물고와 먹이를 달라는 돌고래 사연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일 호주 ABC뉴스는 호주 퀸즈랜드 주에 등장하는 이름도 신비스러운 ‘미스틱’이라는 돌고래 사연을 보도했다. 올해 나이 29살이 된 미스틱은 퀸즈랜드 주 쿨롤라 코스트에 위치한 틴칸 베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돌고래다. 이 돌고래는 바다 밑에서 산호초라든가, 조개, 심지어는 오래된 병이나 나무같은 것들을 들고 나와서는 해변에 있는 사람들 앞에 그 물건들을 놓고는 먹이를 받아간다. 마치 잘 훈련된 반려견이 공을 물고 오면 간식을 상으로 받아 먹는 경우와 비슷하다. 반려견과 다르다면 미스틱은 그러한 훈련 없이 스스로 체득했다는 것과 다른 돌고래 무리가 있지만 오직 미스틱만이 이러한 행동을 한다는 것. 돌고래 먹이를 주는 자원봉사자 린 맥퍼슨은 “돌고래가 물건을 가지고 오면 우리는 물고기를 상으로 주곤 했다”며 “우리가 돌고래를 훈련시킨 것이 아니라 돌고래가 우리를 훈련시킨 느낌”이라고 회상했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이 사라진 후로는 이러한 행동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어떤 날은 하루에 10개의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맥퍼슨은 “미스틱은 바다 밑에 자신만의 보물창고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아니야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미스틱은 쏜살같이 바다밑으로 들어가 다른 물건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 미스틱이 가지고 나오는 '보물'들은 다양하다. 산호초, 조개부터 시작해 인간이 버린 유리병, 나무등이 있다. 자신의 주둥아리에 무게중심을 맞추어 들고 나오는 것도 신기한 장면중 하나이다. 돌고래 무리 중에는 미스틱이 물건을 가지고 나올 때면 항상 같이 따라 와서는 먹이를 같이 받아 먹어가는 영악한(?) 친구도 있다. 한편 이 지역에 돌고래가 등장해 인간과 교류를 시작한 것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상처를 입은 돌고래 한마리가 해변가로 떠올랐다. 지역주민들이 이 돌고래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먹이를 챙겨주곤 했다. 주민들의 보살핌으로 기운을 차린 이 돌고래는 어느날 바다로 돌아 갔다. 지역주민들은 그것이 이 돌고래와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 돌고래는 다른 돌고래 무리를 이끌고 이 해안으로 돌아왔고, 그로부터 돌고래와 인간들과의 교류가 시작됐다. 미스틱은 지난 1991년 엄마 돌고래와 함께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나타나 그 이후 이 연안을 떠나지 않고 인간과 교류를 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돌고래들이 먹이를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과 교류를 하기 위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미스틱이 언제가는 값어치 나는 골동품같은 진짜 보물을 들고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주말 콕! 이 전시]꿈꾸는 오브제·마음의 흐름

    [주말 콕! 이 전시]꿈꾸는 오브제·마음의 흐름

    꿈꾸는 오브제: 4월 26일까지 서울 평창로 가나아트센터. 무료. 화분, 시계, 사과, 지구본, 책…. 신록이 가득한 숲과 계곡 풍경을 그린 화폭 위로 일상의 오브제들이 허공을 유영한다. 마치 마법사의 손짓에 방 안 물건들이 한꺼번에 두둥실 떠오르는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한다. 전시 제목이 왜 ‘꿈꾸는 오브제’인지 단박에 이해가 된다. 유선태(63)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해 초현실적 세계를 구현하는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도 자유로운 상상력과 은근한 유머가 어우러진 회화와 설치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의 그림에는 문이나 창문, 거울이 자주 등장한다. 하나의 풍경에서 끝나지 않고 그림 너머의 또다른 세상을 기대하게 하는 비밀 통로다. 동시에 평면 회화를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착시 효과를 전달한다. 거의 모든 그림에 빠지지 않는 ‘자전거 타는 신사’도 흥미롭다. 두 바퀴로 작품 속 시·공간을 여행하며 현실과 상상의 균형을 조율하고, 삶의 순환을 보여주는 작가의 분신 같은 존재다. 여행가방, 색소폰, 바이올린 등 풍물시장에서 구한 골동품에 그림을 그리거나 소형 여인 조각상을 3m 크기의 대형 조각으로 확대한 오브제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달러 지폐 안에 버락 오마바, 마더 테레사 등 유명인의 얼굴을 그려넣은 작품은 선과 악, 욕망을 이야기한다. 유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국립8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3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열린 유럽미술박람회(TEFAF)에 참가해 큰 호응을 얻었다.마음의 흐름: 5월 2일까지 서울 율곡로 아트선재센터. 성인 5000원·학생 3000원. 한국 최초의 세계적 스타를 꼽으라면 단연 무용가 최승희(1911~1969)다. 열여섯살에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한국에 신무용을 최초로 소개한 이시이 바쿠를 사사하고, 승무의 대가 한성준에게 전통무용을 배웠다. 탁월한 재능으로 일본은 물론 미국, 프랑스, 스위스에서 공연할 정도로 명성을 얻었지만 친일 행적과 월북 감행에 대한 비판은 오랫동안 그를 잊혀진 존재로 남게 했다. 남화연(41) 작가는 그런 최승희의 삶과 예술에 8년 째 사로잡혔다. 2012년 페스티벌 봄에서 최승희를 주제로 한 극장 퍼포먼스 ‘이태리의 정원’을 선보였고, 2014년 아르코예술자료원에서 ‘마음의 흐름’을 전시했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도 최승희 관련 작품을 출품했다. ‘마음의 흐름’은 최승희가 안무한 작품 제목이다. 6년 전 남 작가는 남아있는 사진 2장과 공연 평론만 보고 최승희의 무용 동선을 유추해 드로잉 6점과 사운드, 포스터로 구성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때와 같은 제목의 이번 전시에는 한층 깊어지고, 넓어진 최승희와 작가 사이의 교감을 확인할 수 있는 신작들이 선보인다. 조명을 이용한 빛과 사운드 설치 작품으로 새롭게 구현한 ‘마음의 흐름’을 비롯해 최승희에 관한 아카이브 자료를 작가만의 관점으로 풀어낸 조각 설치 ‘습작’, 영상 작업 ‘세레나데’ 등이 관람객과 만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다이아몬드 반지 3000만원… 신라석탑·도자기 10억

    文, ‘문재인의 운명’ 등 책 9권 저작권 신고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6일 공개한 ‘정기 재산변동사항 신고 내역’을 살펴보면 낯선 재산목록이 눈에 띈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다이아몬드 등 보석류다.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다이아몬드 반지(1000만원)와 골드바(5200만원)를, 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은 다이아몬드 반지와 루비 반지(2000만원)를,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은 다이아몬드 반지(1450만원)를 신고했다. 장호현 한국은행 감사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에메랄드 반지(각 3000만원) 등 모두 6500만원을 신고했다. 윤정석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원장 역시 부인 명의로 금(3300만원)과 다이아몬드(3300만원)를 재산으로 올렸다. 예술품이나 악기를 재산으로 신고한 사례도 눈에 띄었다. 정승일 차관은 동양화 산수도와 병풍 6점(6400만원)을 신고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김춘수 작가의 ‘울트라-마린’ 등 3점을 신고하며 가액으로 1억원을 신고했다. 박재민 지방자치인재개발원장은 어머니가 소유한 추상미술 선구자 김환기 작품 등을 신고하며 1억 6000만원을 가액으로 적었다. 유천호 인천 강화군수는 신라석탑과 도자기 27점 등 10억 500만원 상당의 예술품·골동품을 신고했다. 고흥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은 비올라(2500만원)·활(1500만원)을 등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포토에세이 ‘문재인이 드립니다’,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 국가경영 청사진을 담은 ‘대한민국이 묻는다’ 등 자신이 펴낸 책 9권에 대한 저작권을 신고했다. 학자 출신인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본인과 배우자, 장녀 명의로 펴낸 책 46권을 등록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에 이어 배우자 명의의 세일링 요트(8.55t급·2519만원)와 수상오토바이(364만원)를 신고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다이아몬드 반지 3000만원…신라석탑·도자기 10억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동양화, 도자기, 요트에 저작권까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6일 공개한 ‘정기 재산변동사항 신고 내역’을 살펴보면 낯선 재산목록이 눈에 띈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다이아몬드 등 보석류다.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다이아몬드 반지(1000만원)와 골드바(5200만원)를, 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은 다이아몬드 반지와 루비 반지(2000만원)를,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은 다이아몬드 반지(1450만원)를 신고했다. 장호현 한국은행 감사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에메랄드 반지(각 3000만원) 등 모두 6500만원을 신고했다. 윤정석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원장 역시 부인 명의로 금(3300만원)과 다이아몬드(3300만원)를 재산으로 올렸다. 예술품이나 악기를 재산으로 신고한 사례도 눈에 띄었다. 정승일 차관은 동양화 산수도와 병풍 6점(6400만원)을 신고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김춘수 작가의 ‘울트라-마린’ 등 3점을 신고하며 가액으로 1억원을 신고했다. 박재민 지방자치인재개발원장은 어머니가 소유한 추상미술 선구자 김환기 작품 등을 신고하며 1억 6000만원을 가액으로 적었다. 유천호 인천 강화군수는 신라석탑과 도자기 27점 등 10억 500만원 상당의 예술품·골동품을 신고했다. 고흥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은 비올라(2500만원)·활(1500만원)을 등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포토에세이 ‘문재인이 드립니다’,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 국가경영 청사진을 담은 ‘대한민국이 묻는다’ 등 자신이 펴낸 책 9권에 대한 저작권을 신고했다. 학자 출신인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본인과 배우자, 장녀 명의로 펴낸 책 46권을 등록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에 이어 배우자 명의의 세일링 요트(8.55t급·2519만원)와 수상오토바이(364만원)를 신고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워싱턴 DC의 성경박물관 ‘사해 문서’ 조각들 모두 가짜

    워싱턴 DC의 성경박물관 ‘사해 문서’ 조각들 모두 가짜

    1947년 이스라엘 사해 북서쪽 기슭의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문서’는 기독교 역사에 가장 대단한 고고학적 발견이란 평가를 들었다. 기원 전 100년부터 기원 후 135년까지 발간된 히브리어 구약성서 일부를 포함한 두루마리인데 미국 워싱턴 DC에 2017년 11월 17일 문을 연 성경박물관에도 16개 조각이 소장, 전시돼 있다. 그런데 6개월에 걸쳐 16개 조각의 진위를 조사한 ‘예술 사기 통찰’(Art Fraud Insights)의 콜렉트 롤은 200쪽에 이르는 보고서와 함께 성명을 발표해 “모두 의도적으로 꾸민 가짜들”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16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문서들은 원래 잃어버린 양을 찾으려던 젊은 베두인족 양치기가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두루마리는 에리코에서 남동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쿰란 일대에서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기 70년대 로마 제국에 대항해 일어난 유대인들의 반란 중에 숨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발견된 유물은 1만점에 이르렀으며 대부분은 이스라엘 정부가 소장하고 있지만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도이자 억만장자 스티브 그린이 2017년 4명의 개인 수집가들로부터 16개 조각을 사들여 자신이 5억 달러를 들여 지은 성경박물관에 전시해 왔다. 그린은 이들 조각을 사들이며 얼마를 지불했는지 밝히지 않았는데 진품이라면 수백만 달러에 팔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방송은 전했다. 2002년 이후 사해 문서에 포함된 것으로 믿어지는 알려지지 않은 성서 유물이 골동품 시장에 출몰했다. 2016년에도 13개 조각의 진위를 살펴본 학자 등은 진품이라고 판명한 적이 있는데 롤은 “당시는 어떤 과학적 조사도 하지 않고 결론을 내린 것이며 그 뒤 오히려 많은 학자들이 진품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품었다”고 설명했다.위조꾼들은 호박의 반짝이는 성분을 입히거나 동물 살갗으로 만든 아교 같은 자국들을 입혔다고 했다. 감정 팀은 3D 현미경, 열감지 카메라, 에너지를 산란시키는 엑스레이 분석 등 과학적 방법들을 동원했다고 했다. 또 나머지 3개 조각은 박물관 자체적으로 2018년 10월 여러 차례 테스트를 통해 진품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해 이미 전시되지 않고 있었다고 방송은 전했다. 그린의 소장품이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가 만든 회사 ‘호비 로비(Hobby Lobby)는 이라크 유물을 밀수입했다가 미국 국무부에 벌금 300만 달러를 납부하고 이라크에 되돌려준 일도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쓰레기통에서 나온 ‘9.11테러’ 세계무역센터 최초 개장 당시 설계도

    쓰레기통에서 나온 ‘9.11테러’ 세계무역센터 최초 개장 당시 설계도

    쓰레기통에서 나온 세계무역센터(월드트레이드센터)의 설계도 일부가 거액에 판매되고 있다. 7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는 9.11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의 최초 개장 당시 설계도가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도면은 지금까지 판매된 세계무역센터 설계도 중 가장 방대한 양이다. 설계도는 1973년 세계무역센터 최초 개장 당시 건축에 참여했던 조셉 솔로몬이라는 남성의 것으로, 2018년 한 골동품 수집가가 쓰레기통에서 발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70년대 건설업계 불황으로 뉴욕을 떠난 솔로몬이 콜로라도 덴버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설계도를 기념 삼아 들고 갔다고 전했다. 솔로몬은 콜로라도에서 건축업을 계속하다 2017년 11월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이듬해 5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딸이 설계도를 발견했지만 그 가치를 알지 못했고, 설계도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대로 소각장에 갈 운명이었던 설계도는 그러나 현지 골동품 수집가가 발견해 다시 빛을 발했다. 골동품 수집가는 도면에 그려진 쌍둥이 빌딩을 보고 세계무역센터의 설계도임을 알아차렸고, 지역 전당포 운영자에게 설계도를 판매했다. 전당포 주인은 이 설계도를 다시 희귀서점에 위탁판매 방식으로 넘겼고, 5일 도서전에서 일반에 공개됐다. 500개 이상의 설계안이 포함된 도면의 가격은 25만 달러, 우리 돈 약 2억9775만 원에 책정됐다. 9.11테러 추모 박물관 역시 세계무역센터 전체 설계도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과거 판매된 설계도 역시 1993년 폭탄 테러 이후 재건된 건물의 설계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설계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현지언론은 전망하고 있다.솔로몬의 딸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차고 안 낡은 상자에서 여러 설계도를 발견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아버지의 유품이 고가에 판매돼 다소 억울할 법도 했지만 그녀는 “세계무역센터 건설은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아버지의 공헌이 인정받는 것 같다”라고 기뻐했다. 1964년 공모를 통해 채택된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 야마사키 미노루의 설계안으로 건설된 세계무역센터는 1970년 12월과 이듬해 7월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 완공 후 1973년 4월 정식 개장했다. 1993년 2월 한 차례 폭탄테러로 10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2001년 9월 11일에는 테러단체가 납치한 항공기 2대가 돌진해 수천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참사 후 완전히 철거된 세계무역센터는 2014년 1월 재개장됐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사람 피부로 만든 ‘나치의 사진앨범’ 발견…강제수용소 희생자의 비극

    사람 피부로 만든 ‘나치의 사진앨범’ 발견…강제수용소 희생자의 비극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됐던 사람의 피부로 만들어진 끔찍한 사진앨범이 발견됐다.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현지언론은 사람의 피부로 제작된 2차대전 당시 사진을 담은 앨범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믿기 힘들만큼 충격적인 이 사진앨범은 한 수집자가 폴란드의 골동품 시장에서 구매한 것이다. 이 수집가는 앨범 커버에서 문신과 머리카락 그리고 심한 악취가 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이를 아우슈비츠 박물관에 넘겼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분석을 통해 앨범 커버의 재료가 사람의 피부이며 특히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 머물던 희생자의 것으로 추측했다. 나치가 1937년 독일 바이마르 교외에 세운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는 우리말로 ‘너도밤나무 숲’이라는 아름다운 뜻이지만 무려 5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은 악명높은 곳이다. 전문가들이 이 앨범의 재료를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희생자의 것으로 보는 이유는 있다. 바로 ‘부헨발트의 마녀’로 불렸던 일제 코흐(1906~1967) 때문. 코흐는 히틀러 친위대의 여성대원이자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소장을 지낸 카를 오토의 아내다. 특히 코흐가 마녀로 불린 이유는 수용자를 대상으로 잔혹하고 엽기적인 범죄 행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체 해부를 배워 재미삼아 시신을 훼손했으며, 피부 등을 벗겨 전등갓, 책표지, 장갑 등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나치 패망 후 종신형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그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측은 "이 앨범은 반인륜적인 범죄의 증거"라면서 "이는 참혹한 살인자 역사에 이름을 새긴 코흐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레넌과 해리슨 공동 소유했던 ‘야릇한’ 기타 “경매하면 6억원 거뜬”

    레넌과 해리슨 공동 소유했던 ‘야릇한’ 기타 “경매하면 6억원 거뜬”

    비틀스의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이 함께 소유했던 ‘야릇한’ 기타가 영국 BBC의 인기 프로그램 ‘골동품 로드쇼’(우리네 ‘진품명품’과 비슷)에서 40만 파운드(약 6억 1700만원)의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레이란 이름의 남성은 1일(이하 현지시간) 방송에 기타를 들고 나와 1960년대 해리슨이 공동으로 자금을 댄 영화 회사를 위해 기타 세션 연주를 하던 중 해리슨이 자신에게 기타를 건네며 한 번 연주해보라고 말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몇 소절을 연주하자 해리슨은 “음, 확실히 나보다 이 기타에서 많은 것을 끄집어내는군요. 당신이 갖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안 가질래요”라고 말하길래 자신이 갖게 됐다는 것이었다. 바르텔스 오브 캘리포니아가 제작한 이 악기에 대해 레이는 “연주하기 야릇한 오래 된 물건”이라고 말했다. 시제품으로 만들어져 프렛(줄받이)이 없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프로그램에 전문가로 출연하는 존 바델레이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출처가 확실하다는 점이다. 조지 해리슨 콜렉션 사진에도 분명히 등장한다. 와우,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0만~40만 파운드 값어치는 있다며 “내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아온) 어떤 골동품보다 최고로 비싼 값어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지금까지 비틀스 멤버들이 연주하거나 소장했던 기타 가운데 가장 비싸게 경매된 것은 리버풀의 캐번 클럽에서 해리슨이 마지막 은퇴 무대에 들고 나간 기타로 34만 7000 파운드에 팔렸다고 방송은 전했다. 서식스주 배틀 어베이에서 이 프로그램을 녹화하던 중 바델레이는 “기타 수집가에게 이 기타는 아주 희귀한 것”이라면서 “한때 레넌과 해리슨이 함께 소유했던 기타를 소유한다는 건, 특히 팬이 그걸 갖는다면 그보다 나은 방법으로 역사를 간직할 수 있겠는가? 둘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록 스타들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레이는 아직도 정기적으로 이 기타로 연주를 한다며 “그 값어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조지는 그저 친구일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정도 돈이 된다고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운이 좋으면 집에 보관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좋아라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가정집 선반 위에 있던 中 찻주전자, 무려 15억원에 낙찰

    가정집 선반 위에 있던 中 찻주전자, 무려 15억원에 낙찰

    가정집 선반 위에 놓여있던 중국제 찻주전자가 최근 영국 도싯에서 열린 경매에 나와 예상가의 1000배를 뛰어넘는 거액에 낙찰됐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 현지언론은 배 모양의 찻주전자가 수수료를 포함 총 104만 파운드(약 15억 6000만원)에 낙찰됐다고 보도했다. 높이 13㎝에 이 찻주전자는 은은한 녹색빛을 띄는 것이 특색으로 청나라 6대 황제인 건륭제(1735-1795) 때 제작된 것이다. 이 찻주전자가 경매에 나오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당초 이 주전자는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평범한 가정집의 선반 위에 놓여있었다. 이후 듀크 경매에 아시아 미술품 전문가인 리 영이 골동품 감정 차 이 가정집에 방문하면서 찻주전자가 진짜 가치를 찾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당초 전문가가 예측한 이 찻주전자의 낙찰 예상가격이 1000~2000파운드였다는 점. 결과적으로 주인은 기대했던 가격보다 무려 1000배나 넘는 돈을 움켜져 그야말로 '로또'에 당첨된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찻주전자는 경매 시작 직후 가격이 치솟기 시작해 불과 10분 만에 낙찰됐으며 새주인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듀크 경매 측은 "이 찻주전자는 전문가의 집 방문을 통해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면서 "판매자 역시 믿기힘들 정도의 낙찰 가격이 나와 너무나 기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건륭제 시기의 물품은 최근 글로벌 경매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핫’한 작품들로 꼽힌다. 건륭제가 쓰던 옥새부터 조총, 악기 고금 등은 글로벌 수집가들을 대상으로 한 경매에서 연이어 수 십~수백 억 원의 낙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단돈 1500원 주고산 中 화병, 경매서 7억2000만원에 팔렸다

    단돈 1500원 주고산 中 화병, 경매서 7억2000만원에 팔렸다

    중고품 가게에서 단돈 1파운드(약 1500원)를 주고 산 꽃병 한 점이 중국 청나라 황제의 도자기로 밝혀진 뒤 한 경매에서 48만 배가 넘는 거액에 팔려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야후뉴스 등에 따르면, 지난 9일(현지시간) 에식스주 스탠스테드 마운트피쳇에 있는 경매회사 ‘소더스 파인 아트 옥셔니어스’ 경매소에서 열린 경매에서 청나라 제6대 황제 건륭제의 화병 한 점이 나와 한 중국인 입찰자에게 48만4800파운드(약 7억2000만원)에 팔렸다. 이는 최대 8만 파운드라는 예상 낙찰가보다 6배나 많은 금액인 것이다. 이로써 화병을 경매에 내놓은 원래 주인은 수수료를 제외하고 38만 파운드(약 5억6400만원)를 받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아이러니하게도 이번 경매는 주인이 처음에 화병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온라인 경매업체 이베이에 올렸던 것이 화제를 모아 더욱더 큰 관심을 끌게 된 것이었다. 과거 잉글랜드 남동부 하트퍼드셔의 한 중고품 가게에서 화병을 단돈 1파운드에 구매했다는 주인은 골동품에 대한 조예가 전혀 없어 이베이에 싼값에 올렸다가 입찰이 쇄도해 경매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그는 꽃병의 실제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해당 경매회사를 찾아가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 꽃병의 문양은 황제를 위한 것이고 노란색으로 칠해는 배경 역시 황실의 물건임을 입증하는 것이며 건륭제가 직접 쓴 비문과 인장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아시아 미술품 감정위원인 예쉐 리는 “의뢰인은 골동품 가게에서 꽃병을 산 이유는 순전히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였다”면서 “익명을 원한 의뢰인은 판매 결과에 흡족해 하면서도 그 돈을 세 살짜리 딸의 미래를 위해 쓰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사진=소더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中의 속살 ‘후통’서 건져 올린 망각의 역사

    中의 속살 ‘후통’서 건져 올린 망각의 역사

    자금성을 중심으로 3000여개가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중국 베이징의 전통 뒷골목 후통(胡同). 1980년대부터 추진된 개혁개방 정책으로 재개발되면서 옛 모습을 대부분 잃었지만 원(元)대 이후 800년간 이어져 온 중국 역사의 수장고이자 삶의 터전이다. 자금성이며 만리장성, 천안문 같은 걸출한 명소에 가려져 건성건성 보고 지나치는 관광지쯤으로 여겨지는 곳. ‘베이징 후통의 중국사’는 그 먼지에 뒤덮인 수장고를 열어젖혀 역사 속에 숨었던 공간과 인물들을 생생하게 복원해 놓은 노작(勞作)이다. 저자는 2015년부터 3년 6개월간 베이징 특파원을 지냈던 현 서울신문 사회부장 이창구씨. ‘유서 깊은 후통에서 중국의 다른 면을 보게 될 것’이라는 지인의 권유로 매주 토요일 자전거를 타고 후통 곳곳을 누볐다. 그 발굴 작업(?)을 통해 건져 올린 망각과 방치의 역사며 인물들의 면면이 방대하고 흥미롭다. 맨 앞에 배치한 ‘독립운동가의 거리’에선 우리 독립운동사의 숨은 명장면이 숱하다. 이육사 선생이 순국한 둥창 후통 28호, 김원봉의 의열단이 암약했던 와이자오부제 후통, 신채호 선생의 활동상이 혁혁한 난뤄구샹과 진스팡제…. 특히 허우구러우위안 후통의 이회영 선생 집이 독립투사의 아지트였음이 밝혀져 놀랍다. 매일 적게는 10명, 많게는 40명이 찾아왔다는 증언을 보면 이회영의 집은 독립운동가들의 집합처이자 망명객들의 사랑방, 독립운동 본부였음에 틀림없다. 발굴 작업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깃든 이색적인 거리로 이어진다. 전통 담뱃대 가게며 골동품 가게, 고서점, 표구방이 즐비한 옌다이셰제, 공묘와 국자감이 있는 궈쯔젠제….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후통은 중국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공간이다. 타 후통에선 늘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는 루쉰의 연민과 동심 가득한 얼굴을 찾아내고, 화 후통에서는 청을 멸망시킨 장군 차이어가 위안스카이에 의해 가택 연금당했던 고통을 읽는다. 신문기자답게 순례의 자전거 페달은 베이징의 진보 신문 징바오를 창간해 ‘중국 기자정신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사오피아오핑(邵萍)의 혼이 깃든 웨이란 후통 30호에서 멈춘다. 5·4운동의 발기인이었던 사오피아오핑은 결국 총살당했다고 한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징바오의 옛 건물 앞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언론의 감시를 받지 않는 권력은 내부 모순과 부패에 스스로 쓰러질 가능성이 크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개인 기록물도 ‘새 숨’… 희미해지는 역사, 후대에 알린다

    개인 기록물도 ‘새 숨’… 희미해지는 역사, 후대에 알린다

    국가기록원이 ‘맞춤형 복원·복제 지원 사업’의 대상을 공공기관·민간단체를 넘어 개인까지 확대하고 있다. 2008년부터 국가기록원 산하 나라기록관이 10년째 진행 중인 맞춤형 복원·복제 지원 사업은 공공기관이나 민간단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 가운데 훼손 위험성이 높은 것을 선별해 보존·복원해 준다. 나라기록관 관계자는 “위험에 노출된 종이·영상 기록물을 장비·인력 등 좋은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 기록관에서 보존·복원하면서 국가기록 유산을 후대에 잘 전달하기 위해 사업을 진행 중”이라며 “올해는 처음으로 선정 대상을 개인 기록물까지 확대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이전에 생산된 종이 기록물은 바스러지기 쉬운 종이의 재질 특성상 훼손 위험이 크고 시청각 영상물 역시 기술이 급변하면서 기존 장비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라 전문가의 손길이 꼭 필요하다는 게 나라기록관 측의 설명이다. 나라기록관이 밝힌 통계를 보면 최근 10년간(2008~2018년) 처리한 기록물은 종이·시청각 기록물 총 5156매·점이다. 종이 기록물은 3·1 독립선언서, 천안함 피침 기록물, 독도 관련 지도 등 5052매, 시청각 기록물은 손기정 선수의 기록영화인 ‘민족의 제전’ 등 104점이 복원됐다. 시청각 기록물은 2008년부터 복원을 시작한 종이 기록물과 달리 2017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아직 지원 대상량이 종이에 못 미친다. 하지만 올해 지원 대상 17개 기관 가운데 시청각 기록물이 9개 기관으로 나타나 8개 기관인 종이 기록물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나라기록관 관계자는 “시청각 기록물은 2017년만 해도 3개 기관을 지원하는 데 그쳤는데 올해는 3배 수준인 9개 기관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점차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올해 나라기록관이 처음 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개인 기록물 역시 시청각 기록물이다. 7년 전부터 역사 관련 영상 위주로 수집 중이라고 밝힌 황종현(56)씨는 이번에 영상 3가지를 복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이 중국인을 상대로 대규모 학살을 저지른 ‘난징대학살’,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항복한 뒤 진행된 ‘일본항복조인식(서명식)’, 미군이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1950년대의 서울 풍경 등이다. 황씨는 “2014년 미국에 거주할 당시 중고 필름을 취급하는 골동품 상점을 직접 방문해 영상들을 구했고, 전자상거래 업체인 이베이(www.ebay.com)도 이용했다”면서 “영상을 수집만 해 놓고 정확히 어떤 영상이 담겨 있는지 분석 작업을 아직 못 했는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제도에 대해 알게 됐다. 결과물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11월 결과물이 나오면 난징대학살 추모식이 열리는 12월 13일 영상을 대중에 공개할 예정이다. 나라기록관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다양한 매체를 소화할 수 있는 시청각 기록물 보존 복원실을 갖고 있다. 지난해 구입한 8㎜ 영화필름 재생기(8㎜ 영화필름을 디지털 파일로 바꿔 주는 기계)도 나라기록관만 보유 중이다. 나라기록관에 따르면 8㎜ 영화필름을 갖고 있는 기관들로부터 최근 복원 의뢰가 많이 온다고 한다. 재생기를 포함해 시청각 기록물 복원·복제 처리를 위한 장비만 161종 365대(전산실 서버 포함)에 이른다. 정부·공공기관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실제 나라기록관을 방문했을 때도 보존·복원실의 각방을 가득 채운 장비들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시청각 기록물 장비와 별개로 나라기록관은 종이 복원·복제 처리를 위한 장비도 81종 154대를 갖고 있다. 물론 장비들을 관리하거나 수리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영상 기록물의 종류에 따라 사용하는 장비가 모두 다르고, 시간이 오래 흐른 기록물일 경우 그에 맞는 장비가 이미 사라져 구하기 어려운 일이 많기 때문이다. 장비가 고장 났을 때 사용해야 하는 부품도 마찬가지다. 나라기록관 관계자는 “장비든 부품이든 구할 수 있는 곳은 다 찔러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단종 재생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이베이 검색도 하고 몇 년 전 방송국에서 디지털방송으로 전환하며 기존에 쓰던 필름, 테이프류 등의 구형 매체 재생장비를 매각한 적이 있는데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악원, 한국영상자료원 등 다른 기관과 장비를 공유하기도 한다. 나라기록관이 가장 최근에 복원한 기록물은 ‘우토로 마을’ 영상이다. 일본의 강제 퇴거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 싸웠던 우토로 마을 재일한인의 고난의 거주사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영상기록 17점을 디지털로 복원해 동포 지원단체인 지구촌동포연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복원 작업이 잊혀 가는 재일동포들의 아픔과 희생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기록물의 안전한 후대 전승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유아인 애도글 “故 설리, 용기 꺼내며 위대한 삶 살다”[전문]

    유아인 애도글 “故 설리, 용기 꺼내며 위대한 삶 살다”[전문]

    배우 유아인이 가수 겸 배우 故 설리(본명 최진리·25)를 위한 애도글을 남겼다. 유아인은 16일 새벽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행사장에서 설리와 찍은 사진과 함께 “설리가 죽었다”고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설리에 대해 “그녀는 아이콘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깎아내리고 못마땅해했지만 나는 그녀를 영웅으로 여겼다”며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과감하게 표출하는 신, 신, 신세대의 아이콘. 퀴퀴한 골동품 냄새가 나는 지난날의 윤리강령을 신나게 걷어차는 승리의 게이머. 오지랖과 자기검열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어린 양들을 구하러 온 천사”라고 했다. 유아인은 “그녀가 마냥 좋았다”면서 “천사 같은 미소는 물론이고 브랜드 행사장 같은 자리에서도 판에 박힌 가면을 뒤집어쓰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태도. 논란 덩어리인 내 허리 위로 겁 없이 손을 올리며 포즈를 취하던 당당함이 좋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설리’라는 작자 미상의 가면을 쓸 수밖에 없던 깨끗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모두가 버거운 이름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처럼 설리도 그렇게 살았다. 한편으로는 누구도 가지지 못한 용기를 꺼내며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평했다. 이어 “나는 때때로 그녀를 기만했다. 나는 그녀의 뒤에 숨은 대중이었다. 대중인 것이 편했다. 그녀가 넘나드는 어떤 경계 따위를 나 스스로도 줄타기하며 나는 그녀를 벼랑 끝에 혼자두었다. 그 존재를 내 멋대로 상상하고 오해하고 판단했다. 결사코 나 스스로 나를 의심하면서도 나는 그만큼 야비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는 “그녀는 환자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도, 영웅으로 등 떠밀려야 할 이유도 없다. 그녀라는 수식도, 설리라는 이름도 그의 전부가 아니다. 진리. 그리고 그 이름 너머의 존재. 자유를 향한 저항을 온몸으로, 자신의 인생으로 실천한 인간. 그리고 내가 아는 것보다 삼억배는 더 많을 진리의 진실. 그의 마음”이라고 설리를 추모했다. 또 그는 “설리를 기억하러, 진리를 상기하러 모인 사람들 속에 잠시 머물다 집으로 가는 길”이라며 “비겁한 사람들이라고 속으로 욕하며 못내 미워하던 어른들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들 가진 분들께 당부했다. 부디 회의에 빠지지 마시라고, 세상을 포기하지 마시라고. 지금의 슬픔을 우리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함께 고민하자고 손을 잡았다”고 밝혔다. 이어 “누구도 틀리지 않습니다, 누구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최선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현재에 있습니다. 부디 탓하지 말고, 후회 말고, 반성합시다. 그리고 다시 손 내밀어 마음을 열고 서로 위로하고 함께합시다”라며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설리를, 그 이름을 헛되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2009년 그룹 에프엑스(f(x))로 데뷔해 배우로도 활동한 설리는 지난 14일 성남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설리의 심경이 담긴 메모를 발견했으며,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 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이하 유아인 애도글 전문> 설리가 죽었다. 그녀의 본명의 ‘진리’, 최진리다. 나는 그녀와 업무상 몇 번 마주한 경험이 있고 그녀를 진리 대신 설리라고 부르던 딱딱한 연예계 동료 중 하나였다. 그녀는 아이콘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깎아내리고 못마땅해했지만 나는 그녀를 영웅으로 여겼다.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과감하게 표출하는 신, 신, 신세대의 아이콘. 퀴퀴한 골동품 냄새가 나는 지난날의 윤리강령을 신나게 걷어차는 승리의 게이머. 오지랖과 자기검열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어린 양들을 구하러 온 천사. 나는 그녀가 마냥 좋았다. 천사 같은 미소는 물론이고 브랜드 행사장 같은 자리에서도 판에 박힌 가면을 뒤집어쓰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태도. 논란 덩어리인 내 허리 위로 겁 없이 손을 올리며 포즈를 취하던 당당함이 좋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설리’라는 작자 미상의 가면을 쓸 수밖에 없던 깨끗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모두가 버거운 이름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처럼 설리도 그렇게 살았다. 한편으로는 누구도 가지지 못한 용기를 꺼내며 위대한 삶을 살았다. 나는 때때로 그녀를 기만했다. 나는 그녀의 뒤에 숨은 대중이었다. 대중인 것이 편했다. 그녀가 넘나드는 어떤 경계 따위를 나 스스로도 줄타기하며 나는 그녀를 벼랑 끝에 혼자두었다. 그 존재를 내 멋대로 상상하고 오해하고 판단했다. 결사코 나 스스로 나를 의심하면서도 나는 그만큼 야비했다. 그녀는 환자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도, 영웅으로 등 떠밀려야 할 이유도 없다. 그녀라는 수식도, 설리라는 이름도 그의 전부가 아니다. 진리. 그리고 그 이름 너머의 존재. 자유를 향한 저항을 온몸으로, 자신의 인생으로 실천한 인간. 그리고 내가 아는 것보다 삼억배는 더 많을 진리의 진실. 그의 마음. 사실일까? 주검이 아닌 기사 몇개를 화면으로 보다가 나는 내멋대로. 내 멋대로 쓴다. 화면으로, 화면으로. 2019년 10월 14일 설리를 기억하러, 진리를 상기하러 모인 사람들 속에 잠시 머물다 집으로 가는 길이다. 비겁한 사람들이라고 속으로 욕하며 못내 미워하던 어른들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들 가진 분들께 당부했다. 부디 회의에 빠지지 마시라고, 세상을 포기하지 마시라고. 지금의 슬픔을 우리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함께 고민하자고 손을 잡았다. 조만간 또 해가 뜨겠지. 세속의 삶에 뛰어들어야겠지. 그러한들 무슨 수로 어제와 내일이 같을 수 있나. 존재하던 것이 사라진다면 없던 것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은 달라져야 한다. 달라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염려가 죄송스러워 보내지 못하고 몰래 간직한 글을 여러분께 전한다. 싸우지 마시라. 탓하지 마시라. 부디 설리가 전한 진리를 함께 쓰자고, 여러분께 손 내밀어 부탁한다. 의심이 아니다. 미움이 아니다. 혐오도, 원망도 아니다.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으로 해야 한다. 누구라도 가진 마음이 아닌가. 2019년 10월 16일 당부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누구도 틀리지 않습니다, 누구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최선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현재에 있습니다. 부디 탓하지 말고, 후회 말고, 반성합시다. 그리고 다시 손 내밀어 마음을 열고 서로 위로하고 함께합시다.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설리를, 그 이름을 헛되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문화재청장 “상주본 소장자, 거액 요구…45회 면담 성과 없어”

    문화재청장 “상주본 소장자, 거액 요구…45회 면담 성과 없어”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청 직원들이 훈민정음 혜례본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씨를 45회 면담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고 밝혔다. 정 청장은 한글날을 이틀 앞둔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강제집행을 포함한 상주본 회수 계획에 대해 묻자 “프로파일러를 동원해 소장자의 심리 상태를 짚어내려 했으나 돌려받을 합리적 방법이 없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청장은 이 의원이 상주본 훼손 상태에 대해 묻자 “실물을 보지 않아 얼마나 훼손됐는지 정확하기 설명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어 “소장자가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해 회수를 못 하고 있다”며 “날짜를 못 박을 수 없지만, 검찰과 법원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다각적으로 회수 조치를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훈민정음 상주본은 경북 상주에 거주하는 배씨가 2008년 7월 간송본과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냈다며 일부를 공개해 처음 존재가 알려졌지만 10년 넘게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그는 지난 7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화재청과 본인의 요구 조건(보상 금액)에서 큰 차이가 날 것”이라며 “조건을 타결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배씨는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받았지만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배씨는 2008년 집을 수리하다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간송미술관본)과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며 공개했다. 그러나 상주지역에서 골동품을 판매하는 조모씨가 “배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훔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유권 논쟁이 벌어졌다. 조씨는 배씨를 상대로 물품인도 청구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11년 5월 조씨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조씨는 이듬해인 2012년 문화재청에 상주본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숨졌다. 이에 따라 상주본 소유권은 국가에 있는 상태다. 대법원은 올해 7월 상주본의 법적 소유자인 문화재청이 서적 회수를 강제집행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조속한 유물 반환, 배씨는 형사 사건 관련자 사과와 보상금 1000억원을 각각 요구하며 맞서고 있어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단돈 1500원 주고 산 꽃병 알고보니 억대 중국 도자기

    단돈 1500원 주고 산 꽃병 알고보니 억대 중국 도자기

    과거 중고품 가게에서 단 1파운드(약 1500원)를 주고 산 꽃병이 무려 8만 배나 높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화제가 되고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 등 해외언론은 평범하게 보였던 한 중국 꽃병이 진짜 가치를 평가받아 오는 11월 경매에 나온다고 보도했다. 노란색의 유려한 색감이 인상적인 약 20㎝ 높이의 이 꽃병에 얽힌 사연은 흥미롭다.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주인은 과거 잉글랜드 남동부 하트퍼드셔의 한 중고품 상점에서 이 꽃병을 단돈 1파운드에 구매했다. 사실 골동품에 대한 조예는 전혀 없었으나 꽃병의 모양이 예뻐 '싼 맛'에 구입한 것. 이후 그는 이 꽃병을 온라인 경매업체 이베이에 올리자 놀랍게도 입찰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깜짝놀란 주인은 이 꽃병의 진짜 가치를 알아보고자 소더스 파인 아트 옥셔니어스라는 경매회사를 찾아 전문가의 감정을 받게됐다. 이후 이 꽃병이 청나라 6대 황제인 건륭제(1735-1795)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아시아 미술품 감정위원인 예쉐 리는 "꽃병의 문양이 황제를 위한 것이며 노란색으로 칠해진 것은 황실의 또다른 증명"이라면서 "또한 꽃병에는 건륭제가 쓴 비문이 함께 적혀 있어 더욱 특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꽃병의 주인은 진짜 가치를 뒤늦게 알고 너무나 흥분했다"고 덧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이 꽃병은 오는 11월 8일 경매에 나올 예정으로 예상 낙찰가는 최대 8만 파운드(약 1억 1700만원)로 평가됐다. 그러나 건륭제 시기 물품이 최근 세계 경매시장에서 중국인들에게 가장 '핫'하게 평가받는 것을 고려하면 예상 외의 파격적인 가격에 낙찰될 가능성도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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