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골동품
    2026-02-23
    검색기록 지우기
  • 맨해튼
    2026-02-23
    검색기록 지우기
  • 美 충돌
    2026-02-23
    검색기록 지우기
  • 예산 전쟁
    2026-02-23
    검색기록 지우기
  • 건물주
    2026-02-2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92
  • 외화보험 약관대출 허용

    외화로 보험을 들고 보험금도 외화로 받을 수 있는 ‘외화보험’에 대해서도 다른 보험처럼 약관대출이 허용된다. 약관대출은 보험계약을 해지할 때 받을 수 있는 환급금 범위에서 이뤄지는 대출을 의미한다. 금융감독원은 6일 이같은 내용의 보험업 감독규정 개정안을 예고했으며 다음주 금융감독위원회 의결을 거쳐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외화보험은 현재 AIG,ING,PCA 등 외국보험사들이 주로 달러보험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금감원은 또 개정안에 보험사들이 공익사업 차원에서 골동품과 서화 등을 최대 100억원까지 매입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딸과 함께 가는 당일치기 논개축제

    딸과 함께 가는 당일치기 논개축제

    경남 진주는 문화예술에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의 정서를 촉촉하게 적셔줄 단비와 같은 여행지다. 무색무취한 일상에서 벗어나 ‘느낌’ 있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제격이다. 예로부터 ‘북평양 남진주’로 불릴 정도로 전통 문화가 융성한 고장이자 방년 19세의 나이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작은 도시에 ‘진주 8경’이 숨어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초여름의 푸름 속에서 27∼29일 열리는 논개축제를 비롯해 한달에 두차례 열리는 소싸움, 조선 기생의 맥을 잇는 교방문화체험, 실크밸리 탐방, 유등축제 등 일년내내 문화 축제가 마련돼 있다. 특히 ‘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논개의 영혼이 녹아 있는 남강과 진양호의 석양은 일상의 답답함을 시원스레 날려준다. 진주(眞珠)처럼 작지만 아름답고 커다란 빛을 뿜어내는 도시 진주로 안내한다. ●푸른 강바람에 가슴이 활짝 가슴이 활짝 열린다. 진주 IC를 빠져 나오자 진주 시내를 휘감고 흘러가는 남강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강가의 아찔한 바위절벽에 우뚝 서 있는 진주성의 풍광은 한폭의 수채화다. 임진왜란(1592년) 당시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충절을 다했던 그 강물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유유히 흘러가는 물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곳은 진주성(사적 118호).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3800여명의 적은 군사로 2만여명의 왜군을 물리친 3대 대첩지 가운데 하나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이며, 주차료는 30분에 500원, 추가 10분당 200원이다. 진주성 관광안내센터(055-749-2485). 논개의 기상이 서려 있는 촉석루에 올랐다. 녹음이 우거진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이자 진주 8경중 제 1경이다. 초여름 햇살에 비친 남강은 어딘가에 논개의 넋이 흐르는 듯했다. 촉석루 아래에 있는 의암은 원래 ‘위험한 바위’라는 뜻의 ‘위암’이라고 불렸으나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의암’으로 불리게 됐다.11m 높이의 절벽위에 서면 ‘19세의 어린 나이로 어떻게 죽음의 고통을 견뎌냈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온다. 진주성 안에 있는 논개사당 의기사에 있는 ‘논개 영정’은 이 지역 시민단체가 친일파 화가가 영정을 그렸다는 이유로 지난 10일 강제로 뜯어내는 등 논란을 빚기도 했다. 촉석루를 나와 1760m 길이의 성벽을 따라 걸으면 멋진 산책로가 펼쳐진다. 서장대와 북장대 등 누각과 임진왜란을 주제로 꾸민 진주박물관, 김시민 장군 전공비, 호국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진주는 특히 남강의 야경이 일품이다. 논개축제를 앞두고 최근 성벽을 오렌지색으로 밝히는 야간 조명공사가 끝나 남강에 비친 진주성의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체적인 야경을 감상하려면 진주성 맞은편의 남강 둔치나 진주교, 천수교가 좋다. 남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면 석양이 아름다운 진양호가 나온다. 덕유산과 지리산 계곡에서 내려온 남강물이 잠시 머무는 낭만의 호수. 저녁 노을이 질 무렵 황금물살을 가르는 보트의 모습은 마치 달력의 그림처럼 환상적이다. 진양호 내 시원하게 트인 널찍한 진양호반과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휴게전망대는 일년 계단과 연결돼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다. 남인수 광장에는 진주 출신 대중가수인 고 남인수씨의 ‘애수의 소야곡’이 구성지게 울려퍼져 호반의 정취를 더해준다. 백두산 호랑이와 사자, 기린 등 40여종 300여마리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동물원은 어린이들의 인기 명소다. 진양호공원관리사업소(749-2510).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문화 진주는 전통 예술의 도시답게 진주만의 독특한 문화행사가 즐비하다. 대표적인 축제는 27∼29일 열리는 제4회 논개제로 어느 지역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진주만이 가지고 있는 소재로 구성됐다. 여성들만이 제관이 될 수 있는 제례인 의암별제와 진주오광대, 교방굿거리춤, 화포발사시연, 기생사진전 등이 펼쳐진다.27일 오후 9시와 28일 오후 7시30분에는 의암 주변에서 ‘논개 투신장면’이 재현된다. 논개축제준비위원회(755-9111). 논개를 정점으로 한 진주 기생의 맥을 잇는 교방문화는 일제시대 천한 기녀들의 생산물로 치부되면서 사라졌다가 복원된 전통문화. 교방춤 따라 배우기와 악기다루기 등 다양한 교방문화 체험도 가능하다. 비용은 1만원, 진주민속예술보존회(746-6282). 천수교 다리 아래 남강 백사장의 ‘상설투우장’에서는 한달에 두차례 소싸움이 열린다. 진주 소싸움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 지역 축제다. 첫째, 셋째 토요일이면 머리를 맞대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맞부딪치는 소들의 혈투를 즐길 수 있다.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싸움소의 불끈대는 근육은 생명의 약동을 느끼게 한다. 입장료는 무료. 진주투우협회(742-6150). 진주성 서쪽 공북문에서 서문까지 600m에 이르는 인사동 골동품 거리는 꼭 들러 봐야 할 곳.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거리에는 20여개 업소가 몰려 있는데 고문서와 전적, 서화, 탁본류, 민속자료, 도자기, 조각품, 공예품, 석물 등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이 저렴해 일반관광객도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다. 진주는 또한 우리나라 실크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130여개의 견사업체에서 국내 생산량의 80%를 생산하고 있다. 올 10월에는 세계의상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선진국형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중이다. 한국견직연구원(www.ksri.re.kr)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견직업체 현황 등 진주 견직산업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 진주성 앞 실키안(747-9841)과 진주시청사내 특산품 판매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진주의 먹을거리 진주 비빔밥과 진주장어구이가 유명하다. 진주성 전투때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진주비빔밥은 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음식이다. 동황색의 둥근 놋그릇과 쌀밥, 그리고 다섯가지의 나물이 어우러져 칠보화반으로도 불린다. 천황식당(741-2646)과 설야(762-0585)가 유명하다. 진주 장어는 비린내가 없고 담백하며 깻잎에 싸 먹는 맛이 일품이다. 유정장어본점(746-9235)과 남강장어(747-0888)가 맛있다. ■ 이렇게 가세요 ●수도권에서 당일 여행도 충분 진주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1박 2일 일정이 적당하지만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면 수도권에서 당일 여행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전~통영속도로를 타면 대전에서 서진주IC까지 1시간30분 정도로 길이 막히지 않으면 서울에서 3시간30분이면 갈 수 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오전 6시부터 20∼50분 간격으로 진주행 고속버스가 있으며,3시간50분 정도 소요된다. 요금은 일반 1만 56000원, 우등 2만 3200원. 항공편은 김포~사천 공항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하루 6차례 왕복 운항하며, 도착시간에 맞춰 시내까지 공항버스가 운행된다. 전남·경남 부산 등지에서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 IC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진주시 문화관광과(749-2055). 진주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色色남녀] 씹히는 걸 누가 바래?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개인이 성적인 건강(sexual health)을 유지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성적인 건강을 개인의 인성, 의사교환능력 및 사랑의 감정을 키워주기 위한 신체적·정신적·정서적 및 사회적 영역 등에서 개인이 성적인 존재(sexual being)로 통합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얼마나 성적으로 건강한 것일까? 성(性)은 마음(心)과 생(生)으로 표현되듯 정신과 육체가 함께 하는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성은 섹스(sex), 젠더(gender), 섹슈얼리티(sexualty)의 3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섹스는 생물학적인 성을, 젠더는 사회적 성을, 섹슈얼리티는 개인의 성적인 존재 및 성별을 나타내주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성의 개념을 주로 생물학적인 섹스에 한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성은 곧 섹스를 의미하고 섹스의 화두는 어느새 수컷인 남성의 능력(?)이 키워드가 되었다. 바꿔 말하면 섹스의 주체는 남성이 되고 여성은 수동적인 객체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섹스를 뜻하는 전통적인 속어인 ‘씹’을 사전에서 찾으면 여자의 성기, 혹은 성교를 하다라는 2가지 뜻이 나타나 있다. 속담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다.‘씹에 길 나자 과부된다더니’(되는 일이 없을 때) ‘이 호강 저 호강 해도 씹 호강이 제일이다’ ‘봄 씹 세 번에 초상난다’(봄에는 여자의 정력이 강하다) ‘고기는 씹는 맛, 씹은 박는 맛이다’ ‘토끼 씹하듯 한다’(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는 등등에서 나타나듯 여성이 피동적인 수혜자(受惠者)로 묘사되고 있다. 섹스의 또 다른 표현인 ‘떡 친다’는 말도 방아타령의 방아찧기에서 나왔는데, 절구에 떡을 넣고 메공이로 찧어내는 것이 성교와 형태가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이 표현을 남성들이 주로 쓰는 것도 은연중에 자신들이 섹스에 주도권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남성 중심의 성 의식을 고집하는 한 성적인 건강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성기능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의 공통요소에는 성교육이 있는데, 발기장애는 잘못된 성 지식과 성 심리에 대한 중재효과가 중요하다고 할 정도이다. 또한 남성 중심의 성 이데올로기에 억압된 여성은 억압된 오르가슴으로 죄의식을 유발하고, 성적 죄의식과 왜곡된 성 의식을 갖는다고 한다. 한편 성 행동의 초점을 파트너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말하자면 남성은 골동품 같은 ‘박는다’는 의식을 폐기처분하고 ‘잘 박히도록’ 여성의 감성을 깨우는 데 촉각을 세워야 할 것이다. 물론 여성도 더 이상 ‘엑스레이 찍듯’ 하면서 냉동참치처럼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상대와 자신을 동시에 모욕하는 일이 된다. 침실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공간이지 ‘얼차려’ 훈련받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하면 상대 남성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이 성적 주체로 존재하고자 한다면 상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건강한 섹스의 출발점은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일상의 자연’ 강렬한 색채로 재창조

    강렬한 색채와 힘찬 붓놀림으로 자연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색채화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Joy of Colors’(색채의 향연)라는 기치 아래 모인 한국 구상회화의 대표적인 색채화가 김종학, 김용철, 사석원. 이들의 3인전이 오는 12일부터 25일까지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꽃과 나무, 새, 당나귀, 병아리 등 자연이 주인공들이다. 김종학의 ‘붓꽃’‘달과 나팔꽃’, 김용철의 ‘온수리 매화’‘모란꽃’, 사석원의 ‘꽃과 당나귀’‘매화와 병아리’등 작품 모두 한결같이 자연의 아름다움이 넘쳐난다. 밝고 생동감 넘치는 필치와 색감들로 그려진 자연의 모습은 아름다움에 빠져 자칫 놓치기 쉬운 자연의 내재적인 미(美)와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양한 원색의 색채로 자연의 기쁨을 표현해 내는 김종학은 이번 전시회에서 꽃들의 다양한 세계로 안내할 예정이다. 작품 ‘붓꽃’은 짙은 초록색 잎·줄기에 매달린 보랏빛 꽃과 파란 나비가 처절할 정도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25년전 서울을 떠나 설악산 인근에서 칩거하며 설악산의 야생화등을 화폭에 담아내기에 그는 ‘설악산의 화가’로 불린다.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에는 목기, 자수등 골동품 수집에 열심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색채를 보다 현대적으로 승화시켜 세련되게 구사하는 그의 색채감은 이런 그의 취미와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김용철은 발광하는 듯한 강렬한 색채와 거침없는 선을 구사하는 작가다. 우리 고유의 민화와 화조도, 수탉, 장승, 해와 달 등의 소재를 즐긴다. 작품 ‘모란꽃’을 보면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시집올때 가져 온 베갯머리에 수놓은 모란꽃을 연상시킬 정도로 ‘과거적’인 색채감이 두드러진다. 그렇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는 묘한 울림이 있다. 그는 현재 홍대 미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보니 전업작가만큼 작품활동이 활발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보다 본격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젊은 작가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사석원의 작품은 동물과 산수의 모습을 친근하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스타일이다. 꽃을 등에 한짐 지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듯한 ‘꽃과 당나귀’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즐거운 당나귀의 눈과 입을 통해 작가의 ‘따뜻함’이 전달된다. 그는 두껍게 덧칠을 하는 마티에르를 이용, 색채의 풍부함과 생동감을 표현해 낸다. 마치 꿈틀거리는 붓터치와 역동적인 분위기는 고흐의 작품과 이미지가 상통한다. 그는 오지여행을 즐기며 자유분방함에 뛰어난 글솜씨까지 갖췄다. 이화익 대표는 “60대(김종학),50대(김용철),40대(사석원)의 세대는 다르지만 이들은 다양하고 강렬한 색채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색채화가로 구상미술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인사동에서 선재미술관 옆 송현동으로 갤러리를 이전하면서 마련한 이화익갤러이의 재개관전이다.(02)730-7818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30] “우리는 21세기 노마드(유목민)”

    [20&30] “우리는 21세기 노마드(유목민)”

    “구속은 그만, 소유도 그만.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거 유목민들이 비옥한 목초지를 찾아 떠돌았던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도전과 방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노마드(nomad)족’ 3명을 만나봤다. ●세계 누비며 삶의 의미 찾는 21세기 유목민 ‘원조 노마드족’은 뭐니뭐니해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한 곳에 뿌리박고 살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과거 유목민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 곳곳을 누빈다. 박동식(39·프리랜서 여행가)씨는 10년 경력의 여행 전문가다. 그는 마음이 동하면 언제나 배낭에 옷 한 벌, 필기도구와 세면도구만 챙겨넣고 훌쩍 길을 나선다. 길에서 배운 경험과 느낌을 글로 옮기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이를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여행 자금을 번다. 그는 현재 월간지 페이퍼와 행복한 세상, 농협사보 등 3개 매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하며 한 달에 150만원 정도 벌고 있다. 박씨는 1995년 다니던 전자회사를 그만두고 인도 여행을 떠나면서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약 2년 주기로 한번에 3∼6개월씩 여행을 다녔다. 중국, 홍콩,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팔, 티베트 등 아시아 국가를 대부분 섭렵했다. 박씨는 “10년이 지나도 항상 똑같은 유럽과 달리 아시아 나라들은 한 달이 다르고 1년이 다를 만큼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를 놓치고 싶지 않아 아시아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여행의 정의는 ‘일상을 포기하는 것’. 훌쩍 인도로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대단해서가 아니라 책임져야 하는 가정도, 포기하기 힘들 만큼 절실하게 원했던 직장도 없었기 때문이란다. “광고카피 중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란 말이 있잖아요. 하지만 정말로 절실하다면 열심히 일하지 않았어도 떠나야 하는 거죠.” 열심히 일하지 않았어도 떠나고 싶을 때 떠난 뒤 돌아와서 다시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또 가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절실함을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다면 충분히 허락을 구할 수 있는데, 용기가 부족할 뿐이라는 것이다. 박씨는 오는 6월 다시 티베트로 떠날 예정이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여행다닐 때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 걸 보니 이제 방랑이 천성으로 굳어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직업도 맞춤형 “그때그때 달라요.” 평생 직장을 거부하고 자기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직업을 개척하거나 아예 직업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수시로 맡겨진 일에 대한 대가만 받는 ‘잡 노마드(job nomad)족’도 늘고 있다. 김병문(36·벤처기업 운영)씨는 홈페이지 제작 전문가. 그는 97년 대학졸업 이후 홈페이지 제작 벤처기업을 전전해 왔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단위로 직장을 옮겨 지난해 3월 창업을 하기까지 4∼5곳의 직장을 옮겨다녔다. 돈을 더 준다고 해서 따라간 적도 있었고,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어 직장을 옮긴 적도 있었다. 김씨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 이런 ‘잡 노마드족’들이 부쩍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누구나 거대한 조직에서 안정된 생활을 원하고 있지만, 이미 나이가 들면 독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제환경이 찾아왔다.”면서 “직업이 아니라 일을 좇아 그 일을 수행하고 대가를 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위해 마음의 준비와 함께 전문적인 실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지난해 1주일에 2∼3권씩 모두 135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그는 ‘잡 노마드족’으로 살면 일할 때에는 일에 몰두하고 남는 시간에는 다른 데 신경을 끈 채 자기계발에만 매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6개월 정도 서울시청 홈페이지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공무원 생활을 옆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안정적인 생활에 자부심이 높아 보였지만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은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조직에 속해 있으면 조직을 위한 것밖에 보이지 않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은 적다.”면서 “지금 일하고 있는 홈페이지 제작회사에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내게 되면 구인구직 전문회사라는 새로운 일로 또다른 모험을 시작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온·오프라인 상점서 ‘알짜’만 골라내는 쇼핑 9단 치밀한 사전정보 수집으로 온·오프라인의 상점들을 찾아다니며 값싸고 질좋은 상품만을 낚아채는 ‘쇼핑 노마드족’도 늘고 있다. 김민지(25·여·방송작가 교육원)씨의 쇼핑 실력은 웬만한 상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상품별로 애용하는 상점은 따로 있고, 수시로 정보를 업데이트해 새로운 ‘필드’를 개척한다. 김씨는 화장품을 살 때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온라인 매장을 주로 이용한다. 하지만 온라인 구입은 직접 향을 맡아보거나 자기 피부에 맞는지 확인해 볼 수 없는 게 맹점. 김씨는 “자신의 피부 특성을 정확히 점검하고, 이미 상품을 써본 소비자들이 올리는 제품사용 후기를 ‘간접 테스트’로 이용해야 한다.”면서 “후기를 통해 더욱 저렴한 쇼핑몰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판매자들이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최저가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경매전문 인터넷사이트 ‘옥션’이나 매일 제한된 시간 동안만 저렴한 상품을 내놓는 인터넷 쇼핑몰의 ‘타임 세일’도 자주 이용한다. 회원 공지메일 등을 통해 정보를 얻어 꼼꼼히 챙겨뒀다가 세일 시간대에 접속, 실속있는 쇼핑을 한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재래시장에 가더라도 소매상부터 먼저 찾지 않는다. 오후 10시 이후 도매상에 가면 소매업자들이 물건을 구입하러 많이 오기 때문에 거기서 오가는 대화 속에 물건 값을 파악하고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옷을 입어보지 못해 구입하기 꺼려진다면 소매상으로 간다.”면서 “이미 도매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격 흥정에 훨씬 유리하다.”고 귀띔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 노마드족도 가지가지 ‘노마드족’이 확산되면서 그 종류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우선 노마드족의 대명사격이었던 ‘디지털 노마드족’은 ‘유비 노마드(ubi nomad)족’으로 진화하고 있다. 무선랜 노트북과 PDA(개인휴대단말기)폰, 외장형 하드디스크 등 최신 전자제품으로 무장하고 공간 제약 없이 업무를 처리하는 디지털 노마드족의 개념이 컴퓨터 접속 네트워크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환경에 맞게 더욱 정교화된 것. 유비 노마드족은 텔레매틱스가 장착된 자동차로 처음 가는 곳도 지름길로 척척 찾아가고, 무선전파식별(FRID)장치가 내장된 휴대전화로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버스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알아본다. 밖에서도 휴대전화로 집 안의 가스밸브를 잠글 수 있고, 목욕물도 미리 데워 놓는다. 유비 노마드족에게는 멀리 있는 친구에게 자기 위치를 알려주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겉치레 문화를 거부하고 경험을 존중하는 ‘노블레스 노마드(noblesse nomad)족’도 각광받고 있다. 명품, 골동품 등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여행, 레저, 공연 관람 등 무형의 경험을 수집하는 새로운 소비자층이다. 비싼 물건으로 치장하기보다는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을 재산으로 삼는 ‘귀족형 유목민’이다. 이들은 더 많이 보고, 느끼는 체험적인 삶을 통해 자기계발을 하고, 궁극적으로는 자기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이 만든 슬픈 신조어도 있다. 이른바 ‘강의 노마드족’으로 불리는 취업 준비생들. 취업 경쟁에서 자격증과 영어 점수 등이 중요해지자 전공 과목 외에 ‘실용형’ 강의를 들으러 이곳저곳 유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토익, 취업 강좌, 경영학 강좌 등에 가 보면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주말화제] 문화재 유출 딱! 걸렸어

    [주말화제] 문화재 유출 딱! 걸렸어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 8번 출구 앞 5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24시간 문화재의 반출을 감시하는 지킴이가 있다. 공항 문화재감정관실에 근무하는 감정위원 8명이 주인공. ●8인의 석·박사 문화재 지킴이 22일 오후 1시 인천국제공항 출국수화물 검사장. 미국행 승객의 짐 속에서 문화재로 추정되는 20여점의 도자기가 세관 엑스레이에 잡혔다는 연락이 오자 감정관실이 분주해진다. 정진희(40·여)·오기복(51) 감정위원이 곧장 검사장으로 향했다.5분 남짓 감정을 하는 동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진품으로 판정나면 화물 주인은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이다.“전부 모조품입니다.”감정위원의 한마디에 상황은 끝났다. 문화재가 아닌 것으로 판정난 물건은 반출이 가능하다는 표시를 한 뒤 봉인된다. 감정 이후 진품과 바꿔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정 위원은 “최근에는 특수약품 등을 이용해 고색(古色)처리한 진짜 같은 모조품이 많다.”고 말했다. 감정위원은 모두 회화, 서적, 공예, 도예 등 문화재 관련 석·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밥공기·수저도 문화재 판정날 수 있어” 우리의 문화재 판정이나 반출 금지기준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엄격한 편이다. 전란이 잦았고, 일본 등으로 문화재가 반출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형우(50) 실장은 “역사·문화·예술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물건은 모두 문화재로 분류된다.”면서 “20만∼30만원대의 골동품이 문화재로 판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감정품목도 다양하다. 서적이나 편지, 공문서 등 고문서부터 현판이나 기둥 등에 글을 새긴 주련, 회화나 조각, 공예품, 칼, 창, 방패 등에 이르기까지 수천종에 이른다. 비록 깨진 도자기라도 복원이 가능한 상태라면 반출할 수 없고, 조상이 사용하던 밥공기나 수저도 문화재로 판정될 수 있다. 인사동 등의 골동품상에서 무심코 선물용 기념품을 샀다가 공항에서 문화재로 판정돼 곤란을 겪는 일도 있다. 김 실장은 “한 이민자가 제사용 병풍이나 선친이 사용하던 그릇 등을 갖고 나가려다 문화재로 판정받아 반출을 포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미심쩍으면 출국 전 감정관실에 들러 감정을 받으면 되지만, 세관에서 적발되면 문화재 밀반출 사범으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문화재보호법에는 밀반출사범은 징역 5년, 중개업자는 징역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지난해 5071점 감정 지난해 감정관실은 5071점을 감정해 이 가운데 7점을 문화재로 판정, 반출을 금지시켰다. 지난해 5월에는 한 재미교포가 6세기쯤 만들어진 술잔 등 신라토기 4점을 짐 속에 몰래 숨겨 나가려다 적발됐다. 감정관실은 “1500년전 신라시대 토기양식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유출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달에 500점 안팎을 판정하다 보니 “이민 가는데 천연기념물인 진돗개를 데리고 갈 수 있느냐.”,“박제된 천연기념물도 반출금지 품목이냐.”는 등 황당한 문의도 들어온다. 진돗개는 진도에서 키우는 것만 천연기념물이다. 천연기념물이라도 죽은 것은 문화재가 아니다. 문화재감정관실은 인천과 김포·부산·광주·군산 등 공항과 항만에서 10여곳에서 운영되고 있다.1968년 개설 당시에는 문화재관리국이 관장했으나,1983년부터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바뀌었다. 김 실장은 “지자체끼리 정보교류가 부족해 감정관실별로 감정기준이 다를 때가 있다.”면서 “문화재청이 통합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현대인의 초라한 삶 별은 다시 돌아올까

    장편소설 ‘민통선 사람들’ ‘기억의 집’을 써낸 작가 임동헌(48)이 새 소설집 ‘별’(문이당)을 냈다.‘편지를 읽는 시간’ 이후 소설집을 내기는 꼭 10년만이다. 작가는 “수정될 수 없는 가치관이 있듯 수정될 수 없는 작법”으로 썼노라고, 새 작품집의 맥락을 책 들머리에 미리 밝혀두었다. 부박한 변두리 삶에 유별나게 애정을 쏟는 자신의 글세계는 이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통제의 사슬에 묶인 남북 접경마을(‘민통선 사람들’)이나 사북탄광촌(‘기억의 집’)의 인간군상을 작품에 담아왔던 그다. ‘별’에는 6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빈부 격차를 현기증나게 벌여나가는 자본주의의 폐해, 문명의 진보에 보폭을 맞추지 못해 사회에서 스스로 낙오되고마는 빈핍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근간을 이룬다. 표제작인 ‘별’은 중심에서 밀려난 현대인의 왜소증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두 남녀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의 균열을 키워가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의도된 포석일 것이다. 증권 투자분석가로 일하던 남자는 멀쩡한 직업을 포기하고 운전기사를 선택하고, 여자는 골동품을 불법복제하는 회사를 운영한다. 우연히 만나 끝이 빤히 보이는 관계를 엮어가는 두 인물은, 허망한 한숨을 뱉어내게 만든다는 점에서 갈수록 닮은꼴로 굳어간다. 고등교육의 혜택을 받고도 지리멸렬한 일상에 휘둘리는 주인공이 등장하기는 ‘아이 러브 토일럿’이나 ‘나는 풍란을 키운다네’에서도 마찬가지.7년째 대학조교를 면치 못하는 남자는 사기꾼들에게 집을 뺏긴 뒤 그들을 쫓아다니고(‘아이 러브 토일럿’), 유학을 다녀와 대학강사 자리와 떠나간 아내를 찾아 헤맨다(‘나는 풍란을 키운다네’). 끊임없이 주류를 기웃거리지만 뜻을 펴지 못하는 주인공들에게 연민을 보낼 법도 한데, 작가는 끝까지 냉소로 일관한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시달리는 ‘아이 러브 토일럿’의 주인공은 기차 화장실에서만 쾌변을 볼 수 있으며,‘나는 풍란을‘의 남자는 자신의 방에서 번번이 죽어나가는 풍란을 보며 초라한 삶의 현주소를 절감한다. 작가는 “소수자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내 소설 안에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삶이 들어있다.”고 고백했다. 작가는 1985년 ‘월간문학’에 단편 ‘묘약을 지으며’로 등단했다.9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우리동네 이야기] 동대문구 답십리동

    [우리동네 이야기] 동대문구 답십리동

    답십리와 왕십리는 과연 ‘형제 동네’인가, 전혀 딴판인가? 답부터 말하면 똑같이 동대문(흥인지문)에서 10리쯤 떨어졌다는 유래를 지녀 형제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 리(里)자를 단 곳은 이 두 동네 빼고는 동대문구 청량리동뿐이다. 그만큼 역사가 깊다는 뜻도 된다. ●골동품 무료 감정 서비스도 답십리동 952 일대에는 자동차용품 유통업체,961 및 530 일대엔 고미술 거리가 들어서 있다. 자동차 부품 거리는 20여년 전인 1983년 생겨나기 시작했다. 종로·을지로 쪽에 있던 업체들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지금은 750여개나 몰려 최대의 상권을 이룬 것이다. 도·소매를 겸하기 때문에 가격이 다른 곳보다 30∼40% 싸 들러볼 만하다. 햇빛 가리개, 왕골 시트부터 화물차 부속품, 중장비·버스 부품에 이르기까지 1200여종의 품목을 갖췄다. 자동차 용품에 관한 한 없는 것 빼고는 죄다 있다는 ‘도깨비 시장’으로 불린다.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4번 출구로 나와 걸어서 7∼8분이면 닿는다. 자동차부품연합회 (02)2249-3241. 고미술 거리에서는 해마다 6월이면 특유의 문화축제가 열린다. 재현·체험·상설·전시·공연·장터 등 6개 마당으로 나뉘어 목공예품 만들기, 풍구 돌리기, 공중의상 입어보기, 꽃가마 타기, 떡메치기 등을 직접 해볼 수 있으며, 골동품을 무료로 감정해주는 ‘진품명품’코너도 눈길을 끈다. 한국고미술협회 동대문구지회 2244-6120. ●청량리 촉진지구와 함께 지역발전 이끌어 답십리는 전농동과 더불어 뉴타운 지구로 지정돼 상전벽해의 꿈에 부풀어 있다. 1·3·5동 약 13만 6400평에 대한 개발은 천호대로에 인접하고 지하철 등 천혜의 교통망을 바탕으로 동대문구 전체에 ‘개발 도미노’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뉴타운이 조성되면 고미술 거리도 단장돼 한국을 대표하는 고급 문화의 명소로 거듭난다. 답십리는 서울의 정도(定都) 600년과 궤를 같이하는 긴 역사 이래 최대의 변신을 꾀하는 셈이다.77년 현재의 5개 동으로 분리된 답십리는 2만 2250여가구에 인구 6만 4300여명을 품고 있다. 답십리2동 관계자는 “국민기초수급자의 장례비 중 국고지원금 뺀 전액을 지원하는 등 주민들 사이에 이웃사랑이 살아 숨쉬는 고장”이라고 뽐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3D 애니메이션 ‘로봇’ 들고 방한한 크리스 웨지 감독

    3D 애니메이션 ‘로봇’ 들고 방한한 크리스 웨지 감독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터가 꿈이었고, 열 두살때 이미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으며, 고교시절엔 보고서 대신 애니메이션을 제출했다는 크리스 웨지(47) 감독. 그가 하나의 꿈을 향해 달려온 자신의 모습과 꼭 닮은 3D 애니메이션 ‘로봇(Robots)’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발명가를 꿈꾸는 로봇 로드니가 꿈을 이루기 위해 거대한 로봇시티로 떠난 뒤 겪는 모험을 다룬 작품. 그 안엔 인간세계와 비슷하지만 이를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새롭게 채색된 기계들만의 세계가 있다. 어떤 세상을 그릴까를 생각한 뒤 이에 기반해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어간다는 웨지 감독은 ‘기계들의 세상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로봇’을 출발시켰다.“단순하고 재미있고 색감이 풍부하며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함께 온 스티브 마티노 미술 감독은 “폐품처리장, 골동품 가게, 쓰레기통, 장난감, 기계 부품 등 을 뒤지면서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회중시계 뒷면의 복잡한 부품들은 로봇시티의 모형이 됐고, 용수철 장남감은 로봇시티의 교통수단으로 재탄생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웨지 감독은 “‘로봇’을 만든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엔 재능있는 한국인 애니메이터 2명이 있다.”면서 “미국 TV에서 방영하는 많은 애니메이션의 외주 작업이 한국에서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상깊은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마리이야기’와 올해 아카데미 단편 후보에 오른 ‘버스데이 보이’를 꼽았다.‘마리이야기’는 아름답고 조용한 분위기가 미국 애니메이션과 다른 매력이 있었고,‘버스데이‘는 웨지 감독의 단편 ‘버니’와 비슷해 특히 애착이 갔단다.“애니메이션은 많은 노력과 돈이 드는 작업이어서 신념이 없이는 못합니다. 한국에서도 애니메이션을 하는 모든 분들이 자신의 비전을 좇아 열심히 노력하길 바랍니다.” “머릿속에 그려낸 상상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완벽하고도 유일한 방법”이어서 애니메이션에 매료됐다는 웨지 감독. 그는 1999년 ‘버니’로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을 수상했고,2002년 ‘아이스 에이지’로 성공적인 장편 데뷔를 치렀다. 이번 작품 ‘로봇’도 최근 미국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7월29일 개봉할 예정이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VJ특공대 연출조작 시비

    “‘VJ특공대’가 아니라 ‘연출 특공대’냐?” KBS 2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VJ특공대’가 ‘연출 조작’ 논란에 휩싸여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18일 방송된 ‘다 줘도 안 바꾼다! 천정부지 몸값 열전’의 한 방송 출연자가 “실제상황이 아니라 사전에 연출됐다.”는 사실을 폭로한 뒤 시청자들의 비난이 폭주하고 있는 것.21일 현재 KBS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는 제작진의 사과 등을 요구하는 6000여건의 대글이 올라왔다. 일부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폐지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문제가 된 부분은 골동품 수집가 정모씨가 시골 농가에서 우표 수집책을 4만원에 구입한 뒤 되팔아 몇 배에 달하는 폭리를 취하는 과정을 소개한 장면. 그러나 정모씨는 방송이 나간 뒤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제작진이 흥정하는 장면을 연출하라기에 가격을 4만원으로 책정하고 흥정하는 장면을 촬영했다.”고 밝혔다. 파문이 확산되자 제작진은 “값비싼 우표가 아니었으며, 촬영 직후 우표책을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롯데백화점 VIP3만명 전담관리

    ‘명품·골동품 무료 감정, 재산관리·포트폴리오 상담….’ 백화점 업계가 최근 강화한 VIP용 마케팅 내용들이다. 주요 백화점들이 경기 침체로 소비양극화 현상을 보이자 ‘큰손’인 최우수 고객 모시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최우량 고객에게 명품·골동품 무료 감정, 재산관리·포트폴리오 상담, 골프 클리닉 등 기존의 혜택보다 향상된 서비스를 다음 달부터 도입한다. 롯데백화점은 VIP 고객수를 2만여명에서 연말까지로 1만여명 더 늘리고, 이들을 관리하는 전담 조직을 신설하기로 했다. 신세계백화점은 VIP 마케팅 전략을 ‘문화 마케팅’ 강화로 잡았다. 패션쇼 및 음악회 초대권 발송, 생일 등 각종 기념일 꽃바구니 배달 등으로 차별화할 방침이다. 명품 잡지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이 2001년 처음 시도한 VIP용 명품 잡지 ‘퍼스트 레이디’가 인기를 끌자 롯데·현대·갤러리아백화점도 다음 달부터 비슷한 명품 잡지를 낼 예정이다. 명품 잡지는 명품 정보, 최신 유행 트렌드 소개 등 최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종합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으로 꾸며진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28일 “전체 매출은 줄어들고 있지만 이들 VIP의 씀씀이가 오히려 커지고 있는데다 롯데·신세계백화점은 새로운 명품관 개관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VIP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NYT가 반한 서울의 ‘멋’ 서울의 ‘맛’

    NYT가 반한 서울의 ‘멋’ 서울의 ‘맛’

    서울 사람에게 서울은 단지 무덤덤한 생활 공간이다. 아니, 탈출하고 싶은 답답한 도시일 뿐이다. 매일 스쳐 지나가는 남산타워의 모습과 인사동·청담동 거리는 회색도시의 프로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무관심에서 비롯된 우리의 오만이나 착각이 아닐까.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우리가 무심했던 서울을 꼼꼼하게 되짚었다. 그것도 ‘도쿄에 버금가는 화려한 볼거리와 재미가 있다.’며 서울 관광을 적극 추천했다. 서울은 많은 볼거리 먹을거리를 품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NYT가 찾아낸 서울의 볼거리와 먹을거리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다시 돌아봤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NYT가 반한 서울의 ‘멋’ ●“왜 서울에 가야 하는가” NYT는 이 같은 물음을 던지며 서울 관광을 적극 권했다. 신문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더불어 서울의 마천루는 나날이 화려해지고 있으며 문화시설도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했다. 압구정동과 청담동, 이태원 등은 미국 웨스트 할리우드나 일본 하라주쿠 못지않다고 칭찬했다. 관광 코스로는 낮에는 인사동 갤러리와 남산 서울타워,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을 돌아보고, 밤에는 청담동 재즈바나 클럽, 이태원 나이트클럽을 가보라고 권했다. 이 가운데 삼성미술관 리움(www.leeum.org)은 지난해 10월 13일 개관한 세계 수준의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으로 예약제로 운영돼 아직 일반인에겐 생소한 곳이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가(家)가 수집한 1만 5000여점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리움은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어서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곳이다. 리움은 뮤지엄1과 뮤지엄2, 삼성 아동교육문화센터 등 3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뮤지엄1은 세계적인 건축가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의 작품.‘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국보 133호)와 ‘고려 금동대탑’(국보 213호),‘고려 불화 아미타삼존도’(국보 218호) 등 국보 25점과 보물 35점이 전시돼 있다. 뮤지엄2는 천재 건축가 프랑스의 장 누벨의 작품이며,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는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가 설계했다. 그러나 사전에 예약(2014-6901)을 해야만 볼 수 있으며, 예약시간도 오전 10∼12시까지로 예약이 쉽지 않다. 한국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인사동도 꼼꼼히 살펴 보면 새롭게 다가온다. 종로구 안국동 로터리에서 종로 2가 방향으로 뻗어 있는 400여m의 좁은 골목길에는 수백여개의 골동품 판매점과 고서적 전문점, 공방, 전통찻집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최근에는 인사아트센터 맞은편에 복합문화쇼핑몰 쌈지길이 개관했다. 쌈지길 1층 첫걸음길 마당엔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며,3층에는 무형문화재 및 전승작가의 공방이 들어서 있다.2층과 4층에는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찻집과 식당이 있다. ■ NYT가 혹한 서울의 ‘맛’ ●“이곳이 맛 있대요” 서울의 먹을거리로 장충동의 한국요리 전문점 지화자와 청담동 이탈리아식 퓨전 레스토랑 카페 74, 논현동의 미스터 차우가 첫번째에 꼽혔다. 국립중앙극장 1층에 있는 지화자(2269-5834·www.jihawajafood.co.kr)는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요 무형문화재 38호로 지정돼 있는 황혜성 교수의 맏딸 한복려씨가 운영하는 한정식집. 전통음식을 지키는 일을 일생 업으로 삼고 살아온 황 교수는 자신에게 궁중음식을 가르치던 스승인 궁궐 상궁이 돌아가신 후부터 궐안에서 배운 궁중음식 요리법을 전수해 지난 71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됐다. 음식은 구절판과 신선로를 비롯해 생과방의 떡과 한과 등 다양한 식단이 마련돼 있다. 궁중만찬(9만 9000원)과 궁중진상(7만 2000원), 점심에만 하는 낮것상(2만 5000원), 진짓상(1만 5000원) 등이 있다.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예약해야 한다. 최근 삼청동(733-5834)에 분점을 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차이니즈 레스토랑 미스터 차우(517-2100·www.mrchowseoul.com)는 다양한 딤섬요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시금치즙으로 색을 낸 새우만두와 물냉이와 마른새우가 들어 있는 딤섬, 파인애플을 넣은 볶음밥이 일품이다. 호텔로비와 같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런치코스는 2만 5000원부터 시작하며, 디너코스는 3만 5000원부터다. 특히 저녁식사후 새벽 3시까지 운영하는 분위기 좋은 3층 클럽으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실 수 있다. 청담동 골목에 있는 카페74(542-7412)는 식사는 물론 커피, 와인까지 즐길 수 있는 복합 레스토랑. 이 곳에서는 신선한 과일과 오렌지 필렛, 아이스크림을 토핑해서 먹는 바삭한 와플 브런치, 웰빙족을 위해 오븐에서 가장 맛있게 구워낸 아몬드 크러스트를 씌운 농어구이,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자랑하는 모차렐라 치즈를 덮은 크림 스파게티 등을 먹을 수 있다. 아울러 W서울 워커힐 호텔의 우바(2022-0333)는 이색적인 카페. 독특한 UFO 모양의 DJ부스, 천장에서부터 연결되는 달걀 모양의 의자 등을 갖추고 있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바는 40여종의 다양한 보드카와 60여 종이 넘는 와인, 다양한 양주와 칵테일이 준비돼 있다. 서울 힐튼호텔의 나이트클럽 아레노(317-3244)와 청담동 재즈클럽 화수목(548-5429)은 서울의 밤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소개했다. 이 밖에 서울내 추천할 만한 숙소로는 워키힐호텔과 신라호텔, 인터컨티넨탈호텔 등을 권했다.
  • [우리동네 이야기] 종로구 삼첨동

    [우리동네 이야기] 종로구 삼첨동

    삼청동(三淸洞)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문화동네’이다. 이곳에서는 수백년 된 전통 한옥과 서구의 전위예술 전시관이 담을 맞대고 있는 게 익숙한 풍경이다.‘현대와 과거’가 한데 어우러진, 한국 문화의 ‘비빔밥’이 삼청동 거리에 펼쳐져 있는 셈. 거기다 맛집 거리까지 조성돼 있어 연령과 성별, 국적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삼청동은 북악산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다.1.49㎢ 면적에 1838세대 4480명이 거주한다. 동 이름은 조선 시대 때 여기에 도교(道敎)의 태청(太淸)·상청(上淸)·옥청(玉淸) 3위(位)를 모신 삼청전(三淸殿)이 있었던 데서 유래됐다. 이곳의 산과 물, 인심이 맑고 좋아 삼청이라 불렸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행정동인 삼청동은 삼청동·팔판동(八判洞)·안국동(安國洞)·소격동(昭格洞)·화동(花洞)·사간동(司諫洞)·송현동(松峴洞) 등 7개 법정동을 끼고 있다. 팔판동은 조선시대에 8명의 판서(判書)가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안국동은 조선 초부터 불리던 안국방(安國坊)이란 호칭에서 따왔다. 화동은 조선시대에 화초를 기르던 관아인 장원서(掌苑署)가, 사간동은 사간원(司諫院)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삼청전의 제사를 지내는 소격서(昭格署)가 있던 곳은 소격동,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섰던 곳은 송현동이라 불린다. 삼청동의 ‘꽃’은 삼청동 문화거리. 청와대 후문에서 팔각정 쪽으로 향한 길이다. 경복궁 등 고궁을 둘러싼 거리와 함께 화랑과 박물관, 골동품 가게들이 뿜어내는 호젓한 아취가 일품이다. 국제갤러리, 금산갤러리, 학고재, 금호미술관 등 각종 미술관이 경복궁 맞은 편에 몰려있다. 동십자각 근처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책·DVD 카페 서울셀렉션, 청와대 후문 근처에는 야외 테라스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진선북카페가 거리의 멋을 북돋운다. 진선북카페부터 삼청공원 근처까지는 ‘맛거리’. 수제비로 명물이 된 삼청동 수제비, 홍합밥으로 유명한 청수정, 개성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 용수산 등이 대표 음식점이다. 스파게티 전문점 수와레, 정통 이탈리아 음식점 빵앤빵, 김치말이국수가 일품인 눈나무집 등은 젊은 층의 단골집.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에서는 단팥죽을, 와인바 까브와 재즈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바 클레 등에서는 술 한잔도 기울일 수 있다. 삼청동 거리 구석구석에도 ‘문화의 보석’이 숨어있다. 삼청동길에서 헌법재판소 쪽으로 걷다 보면 정독도서관 맞은 편에 미술과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아트선재센터가 나온다. 또 정독도서관 옆 서울교육사료관은 삼국시대 이후의 수천여점의 도서와 옷 등을 선보이고 있다. 또 정독도서관 맞은 편 골목길로 올라가면 티베트박물관이 있다. 라마승려의 의상과 복장, 사람가죽과 두개골로 만든 북 등이 전시돼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세계의 명차 한눈에

    세계의 명차 한눈에

    세계적으로 희귀한 자동차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2004 세계명차 모터쇼’가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된다. 한·불합작 전시 기획사인 ‘유로스카이’가 마련한 이번 전시회에는 1800년대 말부터 1940년대 말까지 제작된 ‘골동품’ 명차에서부터 미래의 첨단 컨셉트카가 총출동한다. 비행기 엔진을 장착해 가격이 50억원을 넘나드는 ‘부아쟁(VOISIN) C28’이 단연 최대 관심사. 전 세계를 통틀어 2대밖에 없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던 캐딜락도 구경할 수 있다.1889년 좌석을 마주보게 배치해 4명이 탈 수 있도록 제작된 ‘비자비(Vis-a-Vis)’와 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70년대 말까지 영국의 스포츠카 전성기를 이끌었던 MG의 미지트, 트라이엄프의 TR6 등도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소장가들에게 보험을 들고 빌려온 차들이 대부분이어서 보험료 비용만도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시대별로 7개 권역으로 나눠 각각의 상징 배경 세트까지 곁들여놓아 자동차산업 변천사 이해에 도움을 준다. 전시회는 내년 1월5일까지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인사동을 가다]고서적·미술품 가게

    [인사동을 가다]고서적·미술품 가게

    “This is not Korean!(이건 한국의 것이 아니잖아요)” 인사동에서 지난 30년 동안 고미술품 가게 ‘동예헌’을 지키고 있는 안성철씨는 “인사동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실망하며 이런 말을 자주 한다.”고 말한다. 골동품가게와 고서점, 필방이 즐비하던 인사동이 국적을 알 수 없는 먹을거리와 볼거리로 뒤덮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10여년 전부터 ‘전통’을 표방한 음식점과 관광상품 가게가 인사동길을 따라 빼곡히 들어서는 바람에, 진짜 한국의 전통 물건들을 파는 가게는 하나 둘 자취를 감추거나 후미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느끼러 인사동에 온다고 하지만,‘진품’ 가게를 찾는 일은 ‘숨은 그림 찾기’나 다름 없다. 수십년이 흐르도록 우리 고유의 손때 묻은 물건을 팔며 인사동길을 지키는 고서점과 고미술품 가게 4곳을 찾았다. 인사동은 한때 출판의 중심지였다. 한국전쟁 전후 서점 20여군데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을 정도로 성시를 이뤘는데, 그중 삼중당·동광당·일성당 등이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거나 자리를 옮겼고, 고서점 5군데만 남아 있다. 인사동 고서점의 자존심격인 ‘통문관’과 ‘승문각’은 2대에 걸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통문관, 희귀본도 부탁하면 구해줘 ‘통문관’은 생긴 지 60여년이 넘은 대표적인 고서점이다. 안국역 쪽에서 인사동길에 접어들어 스무걸음 정도만 걸으면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면,‘작은 도서관’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방에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수백년된 고서적부터 최근 출판됐지만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어려운 희귀본까지 소장하고 있다. 아버지 이겸로씨의 뒤를 이어 이곳을 지키는 이종운씨가 수집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구하기 어려운 책이라도 이씨에게 말해 두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도 있다. 이씨는 “소중한 책은 아끼는 마음과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만 판매한다.”며 “무조건 높은 가격을 제시한다고 해서 팔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승문각, 인터넷 통해 소장본 판매도 통문관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책들이 쌓여 있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승문각’이 나온다. 오전에는 원래 주인인 김지헌씨, 오후에는 김씨의 딸인 김혜정씨가 이곳을 지킨다. 홈페이지(www.seungmunkak.co.kr)를 통한 판매를 본격화하고 있다. 김혜정씨는 “아버지가 평생 모은 책이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아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오후 6시쯤이면 문을 닫고 주말에는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은 만큼, 바쁜 직장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주요 소장본들을 구경하고 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흔히 ‘골동품가게’라고 불리는 고미술품 판매점은 수도약국에서 탑골공원 쪽으로 나가는 길에서 곁가지로 뻗어 있는 골목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의 고미술품 판매점은 소장하고 있는 물건의 일부분만 전시해 놓기 때문에, 구입보다는 구경이 목적인 사람들은 ‘고도사’와 ‘동예헌 갤러리’처럼 전시가 잘 된 곳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예헌, 3개월에 2번 기획 전시회 수도약국에서 50m 정도를 올라오면 ‘동예헌 갤러리’가 나온다. 지하에는 고가구 및 생활소품들,1층에는 종합적으로 전시돼 있다.2층에는 도자기,3층에는 고서화가 진열돼 있다. 평소에는 1층과 2층을 개방되고 있다. 하지만, 관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공개하며,3개월에 2번꼴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는 ‘우리 민예와 고가구전’을 열렸다. ●고도사, 모든 전시품에 가격 표시 수도약국 건너편에서 좁은 샛길에 자리잡은 고미술품점 ‘고도사’.2·3층은 전시 때만 개방하고 1층은 항시 열어 놓는다. 주로 고가구와 생활소품이 많으며 대부분의 전시품에 가격을 표시해 고미술품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글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본업으로 돌아온 소설가 김홍신 ‘21세기 장총찬’ 쓴다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본업으로 돌아온 소설가 김홍신 ‘21세기 장총찬’ 쓴다

    그 이름은 ‘권총찬’이었다. 그러나 군부의 사전 보도검열 때문에 ‘장총찬’으로 바뀌었다. 장총찬의 아버지는 서부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장총을 든 주인공들이 악의 무리를 죄다 쓰러뜨리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그래서 아들 이름을 장총찬으로 지었단다. 어쨌든, 그는 1980년대의 ‘인간시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당대를 풍미했다. 소설가 김홍신(57).1년전 이맘 때 국회의원직을 돌연 사퇴했다.4개월 뒤,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재도전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500여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이젠, 정치무대와 완전 고별하고 본업인 작가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시집을 하나 내놓아 ‘시인’으로서 명함을 추가했다. 그는 서슬이 퍼렇던 80년 군사정권 시절에 ‘인간시장’의 장총찬을 배짱으로 등장시켰다. 이는 신군부를 겨냥하는 모습처럼 비쳐졌다. 원고는 살얼음 걷듯이 아슬아슬하게 검열대를 통과했다. 숱한 화제를 뿌리며 결국 우리나라의 출판시장에서도 100만부 이상 팔릴 수 있다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정치판에서 새로운 무공을 쌓은 그가 이제 ‘21세기 장총찬’을 준비 중이다. 이에 앞서 내년 2월 수필집을 낼 예정이다. 소설, 시, 수필 등 장르를 자유자재로 뛰어넘으며 작품세계가 더 깊어지는 듯하다. 지난 3월에는 부인과 사별하는 등 인생의 전환점도 맞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자택에서 2시간 동안 만났다. ●내년 봄 달라이 라마 만날 것 서울고 뒤편에 위치한 그의 집은 2층 단독주택이었다.20년째 살고 있다. 그의 서재에는 1만여권의 각종 서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지하창고에도 골동품 같은 서적들이 1만여권 있단다. 그러나 몇해전 동파이프가 터져 물벼락을 맞는 바람에 소중한 자료들이 못쓰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창밖을 넌지시 바라본다. “빚쟁이로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니 빚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종로구민한테도 그렇고, 부모님, 국가, 민족에게도 빚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에게 빚을 갚을 수가 없어요. 대신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용서하고…. 그렇게 살아갈 생각입니다.” 정치인 8년이면 작가로서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자 소재가 아니냐고 했다. 그는 “이어령씨도 정치판에서 얻은 경험을 잘 살려보라고 권유했지만 실명을 써야 하는 부담감이 뒤따른다.”고 했다. 이어 “작가는 등장인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전지적 능력은 있지만 옳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다.”면서 “선과 악에 대한 공정성과 공평성, 또 작가가 옳다고 하는 확증이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여기, 산이 하나 있습니다. 동쪽에서 보면 서쪽산이요, 서쪽에서 보면 동쪽산입니다. 동과 서, 방향에 따라 주관이 각각 다릅니다. 객관적일 필요가 있지요. 사실, 태양이 뜨고 진 적이 한번이라도 있나요. 지구 자체가 돌고 있을 따름이죠. 인생이라는 것이 갈등이고 목마름입니다. 물이 흐르는 이유는 산과 땅이 꾸불꾸불 삐뚫어져 있기 때문이죠. 우리 인생은 물 흐르듯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도의 경지에 이른 수사(修辭)처럼 느껴졌다. 김씨는 가톨릭 신자이면서 불교철학에도 조회가 깊다. 지난해 3월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과 일주일 동안 같이 지내며 침묵의 걷기 명상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는 또 내년 봄, 티베트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달라이 라마와 직접 만나 초청의사를 전달하고 수행과 정진의 깊이를 몸소 체험할 예정이란다. 그는 이어 책상에 올려진 의정활동을 담은 500쪽짜리 두툼한 책자를 꺼내들며 “이런 책이 여덟권이나 된다.”고 웃었다. “글쓰던 사람이 정치 하니까 처음에는 주위에서 우려와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저는 정말 열심히 (의정활동)했습니다. 옳은 일에 앞장서고 쓴소리도 많이 했지요. 나중에는 ‘저런 사람이 정치를 왜 진작 안했나.’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요즘 문학계 인사들을 만나면 ‘자존심을 세워줘서 고맙다.’는 칭찬을 듣고 있습니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그의 언행은 거의 날마다 매스컴에 보도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칼날같은 매서움으로 공무원들을 몰아붙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가장 미워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가장 믿음직한 정치인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국익을 위해서는 절대 발설하지 않는 신뢰와 관용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트북’ 같은 예쁜소설도 구성중 ‘21세기 장총찬’은 언제 탄생하느냐고 물었다. 즉 ‘신(新)인간시장’이다. 그는 정치판의 이런저런 경험을 살려 책을 쓴다면 적어도 10여권짜리는 되지 않겠느냐고 자신했다. 구상 단계는 이미 끝났음을 암시했다. “(80년대 장총찬보다)정신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인물을 그리고 싶습니다. 가령 아주 매끄러운 정원석이 있지 않습니까. 돌을 깨서 서로 막 돌리면 나중에 예쁜 정원석이 됩니다. 젊어서는 강한 기질로 사회를 비판하고 기존의 윤리와 도덕을 거부하려는 몸짓, 그런 과정을 통해서 숙성됩니다. 이제는 거친 응징이 아닌,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응징을 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담담한 인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이 약간 그려진다. 거침보다는 부드러움, 튀는 것보다는 담담한 인물이 생각났다. 이같은 ‘신인간시장’도 쓰겠지만 영화 ‘노트북’같은 예쁜 소설도 써 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의욕이 새록새록 생긴다는 것. 이미 자료수집이 다 끝난 작가적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최전방 소대장 때 北장교와 총격전 그는 충남 공주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걸레질, 변소청소 등 집안의 온갖 굳은 일은 도맡아 했다. 얼마나 혹독했던지 처음에는 계모로 여길 정도였다. 하루는 친척뻘 되는 아이를 두들겨팬 일이 있었다. 그쪽 집안의 5형제가 와서 보복을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길가 나무에 새끼줄로 꽁꽁 묶어놓고 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하루종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동네사람들이 수십번 만류해서야 겨우 일어섰을 정도였다. 또 한번은 동네의 곱추를 놀렸다가 호되게 맞았다. 그런 다음 장애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보란듯이 음식을 마련해주었다. 거짓말하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용서 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이는 오늘날의 ‘김홍신’을 있게 한 토대가 됐다. 건국대학 3학년때 대학신문 문화상에 소설이 당선됐고 4학년 때는 전국 문화예술축전에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졸업 후 광주보병학교에서 장교훈련을 받고 6사단 최전방 철책근무 때였다.71년 7월 1일 새벽. 그는 북한군 장교 3명을 발견 총격전 끝에 전원 사살하는 무공을 세웠다. 마침 이날은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날. 언론 등에 의해 무공이 부풀려지면서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불행이 곧 닥쳤다. 거적을 아무렇게나 덮어 가매장된 북한 장교의 시신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무를 깎아 십자가를 만들었다. 이어 소대원들과 기도를 했다. 그러자 빨갱이로 몰려 조사를 받았다. 그는 이때 “죽은 자는 흙이다. 영화에도 보면 적장이 죽었을 때 경례를 붙이지 않느냐.”라고 대들었다. 80년대 중반에는 실천문학운동에 뛰어들었다. 고은, 이호철, 신경림, 송기숙, 백낙청, 이문구 등과 인권운동에 매달렸다. 그러던중 하루는 조계종 총무원장이 불러 “머리 깎은 내가 하랴,(정치판에)참신한 젊은이가 있어야 해.”라고 권유했다. “인생은 일회용 휴지와 같습니다.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기에 살아있는 동안 행복해야 합니다.” 부인과 사별한 아픔을 지우지 못해서인지 가급적 외출은 삼가고 있다. 청탁받은 칼럼, 또 소설쓰는 일 등 할 일도 많단다. 집안 일은, 챙겨주는 아주머니가 있어 크게 불편하지 않단다. 주위에서 그를 가리켜 “체형은 왜소하지만 사회를 관통하는 깊이와 날카로움은 무궁무진한 사람”이라고 주저없이 표현한다. 최인호씨 역시 “첫 모습은 작지만 금방 6척장신을 능가하는 풍모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21세기 장총찬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km@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인사동의 작은 맛집들

    [뒷골목 맛세상] 인사동의 작은 맛집들

    인사동은 흔히 ‘거리의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화랑에서부터 공예품이며 골동품을 파는 가게에 이르기까지 고급스러운 문화의 향취가 풍겨난다. 더군다나 얼마 전부터 관광특구로 지정돼 거리 미화작업이 진행되고, 기다렸다는 듯이 문화자본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인사동은 더욱 세련되고, 멋들어졌다. ●음식점 상호엔 멋들어진 우리말 화가나 도예가, 공예인, 문인 같은 예술인들이 터전을 삼아 노니는 곳에 어찌 멋이 뒤따르지 않겠는가. 그들의 발자취가 두루 머무는 곳에 멋이 빠진다면 그야말로 속빈 강정에 다름 아닐 터이다. 멋스러운 거리에 자리를 잡은 먹고 마시는 맛집들 또한 어찌 멋들어지지 않겠는가. 인사동의 맛집들은 우선 상호에서부터 맛이 다르다. ‘오늘같이 좋은 날,千강에 비친 달, 바람 부는 섬, 소금인형, 황금비늘, 두레멍석, 오 자네 왔는가, 툇마루, 놀부가 기가 막혀, 흥부가 기가 막혀, 북치구 장구치구, 사람과 나무, 우리 그리운 날은, 평화만들기, 달고둥, 보릿고개추억, 조각하늘, 좋은 씨앗, 달새는 달만을 생각한다, 뜰 앞에 잣나무, 아빠가 어렸을 적에, 낮에 나온 반달, 완자무늬, 머시 꺽정인가, 모깃불에 달 끄슬릴라, 풍경소리….’ 얼핏 둘러봐도 가히 그 멋들어짐은 시인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멋들어진 것이 어디 상호뿐이랴. 다양한 먹을거리 또한 멋들어져서, 은정이나 선천, 사천, 이모집 같은 전통 한정식에서부터 재첩 요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섬진강, 다슬기 요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풍류사랑, 홍어만을 전문으로 하는 홍어가 막걸리를 만났을 때, 홍어천하, 사찰음식 전문의 산촌, 녹차대나무쌈밥이며 녹차너비아니 등 밥이며 요리에 녹차를 이용한 차이야기, 야채 커리나 마살라 같은 인도 요리의 작은 인디아, 된장비빔밥의 툇마루에 이르기까지 불쑥 어느 집에 들어가도 멋들어지지 않은 요리가 없다. 어쩌면, 인사동에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바로 그 멋들어짐이 너무 지나치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멋이 멋으로만 머물지 않고 멋 자체가 상품화되어 거리에 넘쳐난다면 그런 멋은 이미 멋이 아니다. 멋들어짐이 지나치면 곧바로 건들거리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건들건들, 건들거리면 자칫 사람 냄새를 잃고 만다. 만약 인사동 거리가 죄다 사람 냄새를 잃고 건들거리고 있다면? 인사동에 언제부터인가 40대 언저리의 중년여인이 있는 듯 없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이는 인사동 네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10미터쯤 오르는 왼편 골목에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조그만 맛집을 냈다. 작은 뜨락(02-739-2218)이라는 상호인데, 원래 건물 옆에 버려진 골목이었던 것을 위는 차양으로 가리고, 건물 벽에 의지해 폭 1미터에 길이 5미터 남짓한 공간을 마련했다. 폭이 너무 좁아 일반 탁자를 놓을 수가 없어서 벽에 긴 나무판대기를 붙이고, 바닥에는 겨우 엉덩이를 걸칠 만한 간이의자를 놓았다. 이 집에서 먹고 마시기 위해서는 한껏 몸을 웅숭그린 채 본의 아니게 면벽을 해야 한다. ●인사동 풍류객들의 ‘참새 방앗간’ 한 마디로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맛집에다가 주인 되는 노인자씨도 멋하고는 아예 담을 쌓은 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한 주먹 움켜잡아 뒤통수에 질끈 동여맨 꽁지머리,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차림새. 한 술 더 떠, 먹고 마시는 소위 물장사가 난생 처음이어서 음식을 마련하고 상을 차리고 셈을 헤아리는 일도 서툴다.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손님이 “여기 얼마요.”하면 “몰라요. 먹은 만큼 알아서 주세요.”가 대답이고, 대구와 동태라는 생선을 구별하지 못해 대구를 동태로 파는가 하면 손님이 계산을 않고 나가도 숫제 알아내지를 못했다. 멋대가리라고는 없는 작은 뜨락의 진가를 인사동의 눈 밝은 이들이 못 알아볼리 없었다. 툇마루의 바깥주인이자 ‘집도 절도 주민등록증도 없이’ 떠도는 시인 박중식, 동숭동에서 작가폐업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예사롭지 않은 작가 배평모, 누구나 알아주는 시대의 낭만주의자인 시인 김사인, 한국판 비용으로 통하는 시인 김신용, 인사동 화단의 마당발 화가 장경호,588여인들의 사진전으로 이름을 날린 사진작가 조문호, 십수 년에 걸쳐 인도를 헤맨 끝에 ‘우리는 지금 인도로 간다’는 인도 안내서를 내고 아울러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인도전문가 정무진 등 소위 인사동의 풍류객으로 통하는 이들이 마치 고양이가 생선냄새를 맡고 찾아오듯 차례로 작은 뜨락에 모여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인자씨는 물장사만 난생 처음인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 또한 처음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이라고는 벌어본 적이 없는 노인자씨는 돈을 쓰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화려한 이력이 붙은 이였다. 일찍이 불교계의 내로라하는 큰스님 아래서 포교사 비슷하게 아시아 각국이며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돌아다녔는데, 세 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려가며 아프리카를 종단하여 굶주린 현지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이를테면 몸과 마음 전체를 바쳐 30년 가까이 중생구제라는 보살행을 해온 셈이었다. 그런 그이가 어느 날 획하고 머리가 돌아 그만 맛집을 차려 돈을 버는 일을 하고 말았다. 인사동의 눈 밝은 풍류객들이 맨 먼저 알아본 것은 다름 아닌 주인 되는 이의 사람냄새였을 터이다. 그런 그이들로서는 적어도 작은 뜨락이 그대로 망하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이들은 주인을 대신하여 나름대로 작은 뜨락을 살리는 일에 나섰다. 이를테면 셈이 어두운 주인을 대신해 모자를 돌려 자신들이 먹고 마신 만큼 돈을 거두어 스스로 셈을 헤아리고, 한 접시에 5000원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 입맛에 맞는 안주를 개발해내고, 무엇보다도 작은 뜨락을 연락처 삼아 주인이 있든 없든 하루에 한 두 번은 꼭꼭 들렀다. 그리고 그이들은 마침내 작은 뜨락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술과 안주는 한 사람이 1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1차를 마감한다. 만일 차수를 변경하여 2차로 넘어가면 다시 모자를 돌려 1만원을 추가하는데, 절대로 외상은 없다. ●사찰음식 전수받은 된장찌개·들깨탕 작은 뜨락은 4000원짜리 우거지 해장국이 있어서 식사도 할 수 있다. 술안주는 서산에서 이틀에 한번 꼴로 택배로 부쳐오는 어리굴젓과 자연산 생굴이 있는데, 배춧속에다가 생굴을 쌈 싸먹는 맛이 신선하다. 그밖에 조기며 자반고등어 같은 생선구이며 생선찌개도 있다. 작은 뜨락에 처음 가는 이라면 마땅히 조심해야 할 것은 자칫 요술 같은 시간의 흐름에 휘말리는 일이다. 우연히 합석하게 된 풍류객들과 잠시잠깐 웃었는데, 낮술 한 잔이 어느 새 2차,3차를 넘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인사동 네거리에서 종로 2가 쪽으로 몇 걸음 걷지 않으면 덕원 갤러리 옆 골목 깊숙이 고샅길(02-734-3371)이라는 한식 전문집이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멋 부리지 않고 있다. 한옥의 사랑채를 개량한 듯 주방까지 합쳐 10평 남짓한 실내에 대여섯 개의 식탁이 있는 작은 집이다. 출입문 쪽의 벽을 터서 통유리창을 달고 거기에 진열해놓은 종발 같이 앙증맞은 도기들이 무슨 꽃들이라도 재잘거리며 피어나듯이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좁은 공간에 매달아놓은 화분들이며 실내장식들은 어디에서나 주인의 깔끔하고도 섬세한 손길이 그대로 묻어나와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고샅길 주인 되는 이는 박진숙·경숙 두 자매인데, 이중에서 언니 되는 박진숙씨가 도예가여서 이들 종발이며 요리에 쓰이는 접시와 그릇들을 모두 포천에 있는 작업실에서 직접 구워낸 것이다. 동생인 경숙씨는 식품영양학과 출신으로 원래부터 음식 솜씨가 뛰어났는데, 솜씨를 아낀 언니의 권유로 인사동까지 나서게 되었다. 고샅길의 특징은 요리에서 밑반찬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고샅길된장찌개(5000원)와 산사들깨탕(1만원)이 일품이다. 메주를 쓰지 않고 알콩 자체를 띄워 만드는 절에서만 전해오는 비법으로 담근 된장을 원료로 한 된장찌개는 한 입 넣는 순간,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을까 싶게 그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에 대뜸 매료된다. 스님들의 보양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산사들깨탕 또한 예사로운 맛이 아니다. 곱게 간 들깨에 배추, 호박, 버섯, 두부, 거두절미한 콩나물을 넣고 약간 되직하게 끓인 산사들깨탕은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특히 별미일 터이다. 얼핏 보면 지극히 평범하지만 먹을수록 감탄사가 나오는 이 두 가지 요리는 실제로 쌍계사에 있던 무산스님으로부터 전수받았다는데 무산스님은 출가하기 전에는 한의사 출신으로 평소에도 사찰음식에는 깊은 조예가 있는 이였다. 이밖에도 5000원짜리 동태찌개와 야채비빔밥이 있고, 술안주로는 버섯전골(2만원)이며 닭매운탕(2만원)이 있는데, 서너 명이서 너끈히 즐길 수 있는 양이다. ■ 인정으로 우려내는 전통찻집 인사동 네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한참을 올라와 쌈지박 어름에서 왼편 길로 접어들면 산타페 입구 옆에 초당(02-738-4154)이라는 전통찻집이 또한 있는 듯 없는 듯 멋 부리지 않고 있다. 탁자 세 개가 전부인 작은 공간의 한 쪽에 주인 되는 최정해씨가 평생을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그림 같은 자세로 신비한 미소 지으며 앉아 있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곱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자태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향기와 빛깔이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듯한 자태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마치 오랜 세월을 잊혀졌다가 어느 날 불쑥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고려청자나 이조백자처럼 정지된 시간 속에서 깊어진 향기며 빛깔이다. 삶의 무엇이 한 여인을 저렇듯 깊게 만들었을까. 참으로 막막한 무슨 기다림 같은 것은 아닐까. 손님이야 하루에 한 명이 들든 두 명이 들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바로 최정해씨가 지키고 있는 자리이다. 벌써 20년 가까이 그 자리에서 어쩌다 든 손님들에게 깊은 손길로 차를 만들고 차를 따른다. 아주 잊혀진 듯 참으로 오랜만에 오는 손님이면 연꽃 모양의 작은 촛불을 물이 담긴 자기 잔에 켜서 차와 함께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촛불에 어둑한 실내가 일순 은은하게 밝아지면서, 그것을 지켜보는 손님의 어둑한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이 밝아지기 마련이다. 그렇듯 밝아진 마음으로 차를 들어 한 모금 입안에 넣으면 저 안으로 깊이 흘러들어가는 것은 비단 차만은 아니다. 홍삼말차라는 초당만의 특이한 차가 있다. 녹차 가루에 홍삼가루를 섞어서 약간 되직하게 물을 넣은 흡사 맑은 죽 같은 느낌의 차인데, 이것을 사발에 넉넉하게 마시고, 다음에 바위에서 나는 대나무의 어린 순으로 만든 연둣빛 석죽차와 석류빛 오미자차를 마시고, 이어 솔바람차며 매실차까지 마신다. 차를 바꾸는 틈틈이 편강, 쥐눈이콩강정, 오미자 양갱으로 입가심을 해가며 대여섯 가지의 차를 마시고 나면, 삶의 무엇이 우리를 그다지 애면글면 안타까워하게 하랴. 이런 식으로 차를 순례하고 초당을 나설 때 잠자코 1만원짜리 한 장을 식탁에 놓아두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 캔버스에 담은 일상 한편의 상상

    “나는 일본의 천재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는 내가 만약 화가가 된다면 ‘큰 벌판에 바위 하나 그리겠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다섯 차례나 자살을 기도한 끝에 결국 애인과 함께 동반 자살한 그에게는 어쩌면 몰락귀족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몰라요. 내가 그토록 동경해마지 않는 게 바로 나름의 정식대로 살아가는 몰락귀족입니다. 잡초에 묻혀 있는 먼지 쌓인 고성,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골동품 같은 분위기의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판화작가로 널리 알려진 황규백(72) 화백은 21일부터 11월5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앞둔 소감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몰락귀족론’으로 대신했다. 황 화백은 1968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의 에콜 드 루브르 등에서 공부한 뒤 1970년 뉴욕으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며 동판화 작가로 명성을 쌓은 인물.2000년 그는 오랜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국내에서 개인전을 열기는 94년 갤러리 현대 동판화전 이후 10년 만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유화작품으로는 처음 여는 개인전이란 점에서 화단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시장에는 ‘잔디 위의 흰 손수건’‘스카프가 있는 첼로’‘달과 사다리’‘굴렁쇠’ 등 40여점의 작품이 걸린다. 황 화백은 이제 30여년 간의 판화작업을 마무리하고 유화작가로 새롭게 무대에 섰다. 단지 판화에서 유화로 표현 매체만 바뀌었을 뿐이지만, 그는 새로운 예술적 욕구에 적잖이 들떠 있다. “동판화의 메조틴트 기법은 극도로 섬세한, 너무나 힘든 작업입니다. 마치 바느질을 하듯 골이 빠지는 작업이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내는 게 판화입니다. 판화작업은 체력이 달려 더이상 못하겠어요. 유화로 돌아서니 훨훨 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판화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세밀하고 정교한 유화를 그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판화는 좋은데 유화는 아니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황 화백은 손수건, 우산, 시계, 안경 등 일상의 사소한 물건들을 소재로 삼는다. 그의 그림은 섬세하고 여성적이다. 부드러운 빛과 차분하게 가라앉은 색채가 고전적인 우아함을 느끼게 한다. 때로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그림은 논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손수건을 하늘에 걸어 놓든 잔디밭에 놓아두든 상관없지요.” 황 화백은 “현실적인 공간 한편에 비현실적인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상상의 미학’이 나의 그림의 요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02)734-6111.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 놋그릇/심재억 문화부차장

    명절을 앞둔 지금쯤이면 큰며느리였던 어머니는 아예 날을 잡아 놋그릇을 닦곤 하셨다.광 속에서 제기(祭器)광주리를 꺼내고,찬장 시렁에 얹힌 그릇과 놋요강,징을 닮은 방짜유기 세숫대야까지 더해 마당 한 쪽이 놋그릇으로 그득했다.“이렇게 닦아 차례상을 차려야 조상들이 편히 운감(殞感)을 하지.나중에 나 죽고 더라도 니 각시한테 꼭 이게 시켜야 써.” 말이 그릇 닦는 일이지 놋그릇의 묵은 때를 벗겨내기란 ‘어깻죽지에 서리 맞는 일’에 버금했다.검은 흙기와를 부숴 낸 고운 가루를 물에 적신 짚수세미에 묻혀 맨지르한 그릇을 문지르는 일은 보기보다 힘들었다.한참 문지르다 보면 손아귀 힘이 풀려 미끈 빠져나간 그릇이 부딪치며 깡깡 쇳소리를 내곤 했다.꼬박 한나절을 닦아 새암물에 씻은 뒤 깨끗한 광목 천으로 매조지해 쌓아 놓은 놋그릇이 가을 햇빛을 받아 싱싱하게 반짝거렸다. 그 반짝임이 또한 내 핏속에 살아있음을 나중에 알았다.한 날,인사동 골동품전의 유리진열장에 부장품인 듯한 놋그릇이 갇혀 있었다.더는 뜨거운 밥이 담기지 않고,그래서 닦을 일도 없을 그 놋그릇을 어디선가 본듯 해 나는 한참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다. 심재억 문화부차장 jeshim@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佛 릴 벼룩시장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佛 릴 벼룩시장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중세시대 플랑드르 지방의 수도였던 릴(Lille)에서 부호나 귀족들의 시중을 들며 살아가는 하인들은 일년에 몇 차례씩 해가 지면서부터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상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이들은 주인집 다락에 팽개쳐져 있는 헌 옷가지를 내다팔거나 자신들이 일하는 틈틈이 만든 수공예품 등을 가지고 나와 팔면서 소중한 주머닛돈을 마련했다고 한다.밤새 횃불을 밝히고 오래된 옷이나 생활도구를 사고 팔던 이런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 바로 유럽 최대의 벼룩시장인 릴 벼룩시장(La Braderie de Lille)이다.세월이 흘러 지금은 매년 9월 첫째 주말에 열리는 이 벼룩시장은 릴에서 한해의 가장 큰 행사로 자리잡았다.프랑스 전역은 물론 영국,벨기에,독일,네덜란드 등 인근 국가의 골동품 애호가들이 일부러 찾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릴(프랑스) 함혜리특파원| 파리 북역에서 고속열차(TGV)를 타고 1시간5분만에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 도착해 중앙역을 나서는 순간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평상시 자동차로 가득 차 있었던 릴 플랑드르역 앞 파이데르브 대로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곳뿐이 아니었다.주요 도로인 파리가,감베타가,리베르테 대로,빅토르 위고 대로 등과 도시의 골목골목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릴은 초고속열차 유로스타의 출현과 함께 플랑드르 지역의 새로운 상업 중심지로 부상한 도시다.벨기에 브뤼셀에서는 25분이면 도착할 수 있고 파리에서 1시간,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2시간,런던에서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교통의 중심지여서 벼룩시장에 좌판을 벌인 상인도,관광객도 국적이 다양했다.영국 서섹스 지방에서 벼룩시장을 보러 왔다는 켄은 “물건을 이것저것 너무 많이 사서 중간에 호텔에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며 “다양한 물건과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다.”고 말했다. 주최측인 릴시의 추산에 따르면 4일 오후부터 5일 밤 12시까지 열린 올해 릴 벼룩시장에 참가한 사람은 약 300만명에 이른다.릴의 인구가 100만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행사를 찾았는지 한 눈에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릴 시청의 한 행사담당관은 “올해 행사는 ‘릴 2004’(유럽문화도시 행사)와 겹쳐 더욱 방문객이 많다.”고 즐거워했다. ●총 연장 100㎞의 거대한 풍물시장 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벼룩시장이 열리는 지도를 나눠주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행사가 열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차량통행이 전면 금지된 도심의 대부분 대로와 골목들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는 탓이다. 릴시의 허가를 얻어 벼룩시장에 참가한 사람은 약 1만여명이고,도시 전체의 벼룩시장을 연장하면 총 100㎞나 된다.유럽 최대의 벼룩시장이라는 명성이 부끄럽지 않은 규모다.판매되는 물건들은 가짓수와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릴 벼룩시장에서 좌판을 벌인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다.먼저 일반 시민들로,이들은 집에서 쓰지 않는 오래 된 물건들을 이 기회를 이용해 정리하는데 이를 ‘다락 비우기(vide-grenier)’라고 부른다.다음은 전문 골동품 상인들이다.값진 물건들을 갖고 다니며 전국에서 열리는 골동품전시회(brocante)에서 판매한다.마지막으로 아프리카와 아랍,남미지역 출신의 잡상인들이다. 물론 첫째 부류인 일반인들의 다락 비우기가 가장 흥미롭다.도자기,유리잔,은제품,동제품,가구,그림,조명제품,의류 등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다.구식 타자기부터 문고리,사기로 된 변기,밍크 코트,털실,가죽부츠 한 짝 등 이런 게 여기 왜 나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물건들도 수두룩하다.물론 수년 동안 혹은 수세대에 걸쳐 사용했던 손때 묻은 물건들이다. 릴에서 살고 있는 에블린은 매년 구경만 하다가 올해엔 직접 판을 벌였다.할머니가 다락을 좀 비워달라고 부탁했기 때문.그녀는 “큰 돈을 벌 목적이 있어서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벌이도 괜찮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다.”며 내년에는 자신의 다락도 정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상인들이 파는 물건은 값이 비싼데다 골동품이 진짜인지,가짜인지 웬만한 아마추어의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으므로 일단은 피하는 것이 좋다.잡상인들이 파는 물건들은 가짜 명품 선글라스부터 향수,가방,아프리카 가면,목각 기린,북,포스터,허접한 의류 등 파리의 클리냥쿠르 벼룩시장에 가면 지겹도록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일반인들보다 전문상인들과 잡상인들이 늘어나면서 릴 벼룩시장의 전통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다.리베르테 대로에 자리를 잡은 에릭은 “이 자리를 찾느라 2시간을 넘게 헤맸다.”며 “자리를 지키느라 금요일 밤에 이곳에 차를 대놓고 차에서 잠을 잤다.”고 말했다. 값도 지난해에 비해 좀 올랐다고 릴 사람들은 지적한다.만화책을 수집한다는 실뱅은 “근사한 물건들이 많이 있었지만 값이 무척 비싸졌다.”며 전문상인들이 너무 많아진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도시 전체가 축제분위기 돈을 벌 목적으로 나온 사람들은 상인들뿐이다.나머지는 한결같이 축제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다.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이웃과 친지,가족들과 정담을 나누고 포도주를 마시며 즐기는 모습들이다.나름대로 열심히 가짜 명품 향수를 판매하는 상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하다. 드골 장군 광장에서는 토요일 밤과 일요일 하루 종일 유럽1 라디오 방송국이 주최하는 음악공연이 이어져 젊은이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아빠의 어깨에 무동을 탄 아이도 덩달아 신이 난다. 거리의 악사들도 축제 분위기를 띄워주는 데 한몫을 단단히 한다.축제 현장에는 주로 페루의 인디오 악단들이 나타나 ‘엘콘도르파사’ 등을 팬플룻으로 연주하곤 했는데,릴은 에콰도르에서 온 인디언 악단들이 장악한 듯했다.머리에 깃털까지 꽂은 인디언 복장을 하고 얼굴도 그에 걸맞게 분장을 한 4∼5인조의 악단들이 거리 곳곳에서 흥겹고 강렬한 인디언 음악을 연주하며 흥을 돋웠다. 해가 지면서 멀리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지만 손전등을 들고 나온 골동품광들은 ‘보물’ 찾는 재미에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는 듯했다. lotu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