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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책속 이미지] 佛 제국주의가 본 중국의 일상

    [그 책속 이미지] 佛 제국주의가 본 중국의 일상

    주르날 제국주의/자오성웨이·리샤오위 지음/이성현 옮김/현실문화연구/624쪽/4만 8000원 서양 여자들이 중국 전통 옷을 입어 보며 즐겁게 웃고 있다. 변발을 한 중국 상인은 비위를 맞추느라 애쓴다. 도자기를 파는 다른 중국 상인은 아예 쭈그려 앉아 상품을 소개한다. 서양인들은 의자에 걸터앉아 상인을 내려다보며 살까 말까 고민한다. 당당한 서양인과 비굴해 보이기까지 한 중국 상인의 대비가 뚜렷하다. 강대국이 함대와 화포로 약소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당시 제국주의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 ‘육국호텔의 골동품 상인’이다. 1913년 3월 1일자 ‘일뤼스트라시옹’에 실린 사바티에가 그린 화보들 가운데 하나다. ‘르 프티 주르날’, ‘르 프티 파리지앵’을 비롯한 프랑스 신문의 화보는 그 인기가 상당했다. 당시 첨단 기술인 석판인쇄로 화려하고 생동감 있는 필치를 자랑했다. ‘화보’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전쟁 소식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 많았다. 책은 1850~1937년 발행한 신문 화보들 가운데 중국과 아시아의 시대상을 담은 컬러 삽화 400여점을 수록하고 설명을 붙였다. 생생한 화보를 넘겨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천길 올라야 만나는 신선의 땅… 천길 아래 무지개는 신선의 눈물

    천길 올라야 만나는 신선의 땅… 천길 아래 무지개는 신선의 눈물

    저장성(浙江省)은 중국 동해안가에 위치한 곳이다. 성도(省都)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항저우. 상하이에서 3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상하이~쑤저우~항저우’로 이어지는 여행코스는 중국여행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지만 저장성은 아직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행지는 아니다. 요즘 신선거와 설두산 등이 언론과 중국여행 마니아들에 의해 소개되면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타이저우(台州)시 셴쥐현(仙居縣)에 있는 신선거는 중국 사람에게는 꽤 유명하다. 신선거의 원래 이름은 영안(永安)이지만 이곳을 찾은 북송의 진종 황제가 산세의 기이함과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신선거’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신선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신선이 살 만할 정도로 압도적인 풍경을 지닌 곳이다. 중국인들은 이곳에 대해 “장자제의 기이함과 화산의 험준함, 태항산의 웅장함과 황산의 수려함을 고루 갖췄다”고 표현한다. 신선거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상하이 공항에 내려 3시간 정도 이동해야 한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중국 사람들에게 3시간 거리는 옆 동네일 뿐이다. 신선거 가는 도중 왕복 6차로의 항저우 대교를 지나는데, 2003년 공사를 시작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개통한 이 다리는 총연장 35.7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해상대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다리 길이만 32km에 달하며 수심 7~12m 바다 한가운데 1428개의 교각을 세운 뒤 70m 길이의 상판 540개를 끼워 맞췄다. 졸음 운전을 방지하기 위해 다리 위 분리대를 무지개색으로 칠한 것이 특징. 이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닝보와 상하이를 오가는 시간이 평균 6시간에 달했지만 지금은 2시간 정도로 단축됐다고 한다. 신선거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가든, 아니면 케이블카를 타고 편하게 신선거를 즐기든. 어느 것을 선택하든 자유다. 하지만 걸어가려면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두자. 3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데, 만만하게 볼 코스가 아니다. 대부분의 코스가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개를 뒤로 최대한 젖혀야만 까마득한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바라보기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10분 정도만 걸어도 ‘케이블카를 탈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케이블카를 타더라도 신선거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으니 등산을 좋아하는 이가 아니라면 굳이 걸어서 오르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걸어서 걷는 코스를 따르다 보면 케이블카를 타고 볼 수 있는 북관대, 하관대, 동승대, 낙수대의 절경을 놓칠 수 있다. 신선거 입구에서 케이블카 승강장까지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가 걸린다. 길 주위에 편백나무가 울창하다. 걷기에 딱 좋다. 심호흡을 하면 상쾌한 편백나무 향이 가슴 깊이 스민다. 걷는 동안 편백나무 위로 신선거의 삐죽삐죽 솟은 기암괴석이 눈에 들어온다. 남자의 성기와 비슷하게 생겨 ‘여자를 부끄럽게 하는 봉우리’라는 뜻의 수녀봉(羞女峰)을 지나는 중에는 아주머니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진다. 수녀봉을 지나면 일범풍순(一帆風順)이라는 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는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바뀐다고 해 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금계보효(金鷄報曉), 선옹축복(仙翁祝福), 천마행공(天馬行空), 우후춘순(雨後春筍), 신필화천(神筆畵天)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돛단배가 됐다가 황금닭벼슬, 신선, 천마, 비온 후의 죽순, 붓모양으로 바뀌는 것이다. 10분쯤 케이블카를 타고 가서 내리면 불해범음(佛海梵音)과 화병연운(畵屛煙云)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화병연운 쪽으로 가야 북관대, 하관대가 있는 전망대로 갈 수 있다. 북관대와 하관대를 돌아보고 불해법음 지역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다. 북관대에서 하관대를 가는 길은 아찔하다. 아찔한 절벽을 따라 허공에 붕 떠 있는 잔도(棧道)길을 따라가야 한다. 가파른 벼랑에 골격을 세우고 철근을 박고 콘크리트를 쏟아부어 만들었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다리가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관대의 하이라이트는 불조봉(佛祖峰)이다. 부처님의 옆 얼굴을 꼭 닮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참선에 든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불조봉을 지나 불해범음 지역으로 들어서면 거판애(鋸板崖)~소요협(逍遙峽)~동승대(東升台)~낙수대(樂壽台)~북해관(北海館) 순서로 돌아본다. 처음에 신상음간(象飮澗)이라는 커다란 바위가 나오는데 코끼리가 코를 늘여 계곡물을 마시는 것 같아 이렇게 이름 붙었다. 동쪽을 바라보는 동승대 역시 거대한 바위 덩어리. 곡식을 쌓아 놓은 창고를 닮아 천하양창(天下糧倉)이라고도 불린다. 이런 기이한 바위들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남천교에 닿는다. 120m의 출렁다리다. 천길 낭떠러지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남천교 오른쪽으로 망봉대와 천마분등(天馬噴騰)이라는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남천교를 건너면 관음봉이 보인다. 높이 919m를 자랑하는 이 바위는 신선거 대표 경관 중 하나다. 영락없이 부처님이 합장하는 모습이다. 이 풍경이 신선거의 하이라이트기도 하다. 남천교 앞에 자리한 거대한 바위가 신주항모(神州航母)인데, 이는 신이 타고 다니는 항공모함이라는 뜻이다. 이곳부터는 남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면 된다. 케이블카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북송의 황제가 이곳에 신선이 살고 있을 거라며 ‘신선거’라는 이름을 지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신선거는 무협영화 ‘천룡팔부’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설두산 골짜기마다 숨은 폭포의 아름다움 신선거와 쌍벽을 이루는 여행지가 설두산(雪山)이다. 닝보(波)시 서북 9㎞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국가급풍경명승구로 지정돼 있다. 산 정상 유봉(乳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백색이어서 샘의 이름을 눈이 흘러나오는 구멍이라는 뜻의 설두(雪)라고 불렀고 이 때문에 설두산이라 불린다.설두산은 폭포로 유명하다. 모두 15개의 폭포가 숨어있다. 이 가운데 가장 높고 아름다운 폭포는 천장암(千丈岩) 폭포다. 역시 케이블카를 이용해 관람할 수 있다. 높이가 156m에 달한다. 무지개를 피워 올리는 폭포의 광경 앞에서 모두가 감탄사를 쏟아낸다. 삼은담(三潭)에도 가보자.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 그곳에 폭포가 있다는 걸 모른다’는 의미다. 설두산 묘고봉에는 대만의 국부라 불리는 장제스의 별장 묘고대(妙高台)가 있다. ‘오묘한 경치를 자랑하는 높은 자리의 건물’이라는 뜻이다. 설두산은 예부터 곳곳에 사찰이 많았는데, 묘고대가 있던 곳도 원래 사찰이 있었지만 장제스가 1930년에 이곳을 별장으로 꾸몄다. 풍수지리에 심취했던 장제스는 이곳 묘고대 자리가 천하의 명당임을 알고 절을 없애고 개인 별장을 지었다. 장제스는 정치에서 물러나 있을 때도 이 별장에 있으면서 측근들을 통해 정치를 막후 조정했다고 한다. 묘고대 덕분인지는 몰라도 대만으로 가서 총통이 됐고 아들도 대를 이어 총통이 됐다. 묘고대는 전망을 잘 볼 수 있도록 앞쪽으로 ‘ㄷ’자 형태로 테라스를 만들어 전망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실에는 장제스가 다닐 때 사용하던 가마도 전시돼 있고 그가 묘고대 주변의 명소를 다니면서 찍은 사진도 걸려 있다.설두산에서 내려와 설두사에 들른다. 설두산은 구화산, 오대산, 보타산, 아미산과 더불어 불교 5대 명산 중 하나. 미래에 올 부처인 미륵보살을 모시는 미륵성지로 이름이 높다. 설두사는 1700년 전 진(晋)나라 때 건립된 거대한 고찰로 수차례에 걸쳐 중건했다. 최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08년 저장성 성장으로 있을 때 개축했다. 설두사에는 56m의 거대한 미륵보살상이 볼거리다. 높이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500여t의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미륵불이 발아래로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데 전망대인 연꽃 좌대까지는 별도로 요금을 내고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역사의 흔적 속을 산책하다 닝보시에는 장제스의 흔적이 또 남아 있다. 장제스 가족 일가의 주거지역인 장씨고거(氏故居)다. 장제스는 이곳에서 16세까지 살았다. 그의 아들 장징궈도 여기서 태어났다. 장제스의 아내 4명에 대한 스토리도 깃들어 있다. 중국 통일 후 마오쩌둥은 이곳 장제스 생가를 비롯해 사당 등 기타 고 건축물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특별히 지시했다. 1930~40년대 지은 풍호방, 소양방 등 건축물과 장제스의 아버지가 경영했던 소금판매상점인 염포도 아직 남아 있다. 양쯔강 하구에 자리한 저장성은 중국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절강에 풍년이 들면 천하가 그해에는 굶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저장성 동쪽 해안에 자리한 닝보는 당나라 때는 ‘명주’(明州)라 불렸던 곳으로 한반도와 가장 교류가 많았던 중국 항구 중 하나다. 당나라로 향한 거점항이었던 까닭에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항구이기도 하다. 닝보 자체가 한국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관광지는 아니지만 자성고진(慈城古陣)은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명청시대 시가지로, 오래된 낡은 건물과 고목들, 녹슨 대문, 좁은 도로, 울창한 가로수 아래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래된 집들이 이 도시의 긴 역사를 반영한다. 고을을 다스렸던 관아, 서당이었던 명륜당, 옛 공공건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오르는 것만 같다. 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여행수첩 신선거를 찾은 여행객들 대부분이 상하이로 들어간다. 항저우를 거쳐도 되지만 상하이가 항공편이 더 많다. 저장성에서는 토란을 꼭 먹어보자. 크기가 멜론만 하다. 상하이 훙차오 공항에서 3㎞ 떨어진 칠보노가(七寶老街)는 강남의 오래된 마을이다. 온갖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공예품, 골동품 등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가게도 많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 화장실이 많이 달라졌다. 상하이와 닝보를 오가며 고속도로 휴게소에 자주 들렀는데, 모두가 깨끗했다. 휴게소에서 파는 다양한 음식도 먹을 만하다.
  • 가평 쁘띠프랑스, 제2회 인스타그램 사진공모전 개최

    가평 쁘띠프랑스, 제2회 인스타그램 사진공모전 개최

    어린 왕자와 프랑스 마을을 테마로 한 복합문화공간 쁘띠프랑스에서 인스타그램 사진공모전이 열린다. 쁘띠프랑스는 오는 10일부터 5월 10일까지 두 달간 ‘제2회 쁘띠 인스타그램 사진공모전’을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쁘띠프랑스의 어린 왕자 체험존, 하트포토존, 새롭게 단장한 건물 외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추억의 사진을 찍어 응모하면 당첨 기회를 얻는다. 1등을 하면 상금 1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총 107명에게 쁘띠프랑스 숙박권 등 다양한 상품이 주어진다. 지난해 열린 첫 회 공모전에는 1000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과 상자 속의 양 등 소설 속 이야기를 실제로 구현한 조형물 사이에서 어린 왕자 의상을 입고 인생샷을 남길 수도 있다. 이밖에 프랑스 전통의 ‘기뇰 손인형극’, 기념품으로 간직할 수 있는 ‘어린 왕자 석고아트’ 등 다양한 체험 행사도 즐길 수 있다. 청평댐에서 남이섬 방향 호숫가 인근에 위치한 쁘띠프랑스는 2008년 개장해 생텍쥐페리 재단으로부터 공식 라이선스를 받은 문화공간이다. 프랑스 가옥을 그대로 옮겨온 ‘전통주택 전시관’, 프랑스 벼룩시장 분위기를 재현한 ‘골동품 전시관’, 생텍쥐페리의 생애와 유품 등을 볼 수 있는 ‘생텍쥐페리 기념관’ 등이 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도굴 드라마 인기로 희귀종 천산갑 수난당해

    도굴 드라마 인기로 희귀종 천산갑 수난당해

    중국에서 도굴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악의 기운을 쫓기 위해 천산갑으로 만든 부적을 사는 것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천산갑은 멸종 위기 2등급의 희귀 동물로 불법적으로 사냥하거나 판매하다 적발될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6일 ‘세계 천산갑의 날’을 맞아 발행된 보고서에 따르면 천산갑으로 만든 제품이 도굴을 주제로 한 드라마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천산갑의 발톱은 장식품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발톱 장식품은 ‘귀취등(鬼吹燈)’이란 판타지 소설에서 악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비록 불법이지만 천산갑으로 만든 장식품과 부적, 빗 등은 중국 골동품 시장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가격은 2000 위안(약 34만원)에 이른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 상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에서도 늑대나 개의 이빨로 만든 부적이 팔리는데 가격은 개당 10~100위안 정도다. 2007~2016년에는 모두 209건의 천산갑 밀수 사건이 적발된 바 있다. 도굴을 주제로 한 ‘귀취등’과 ‘도묘필기’(盜墓筆記) 등의 소설과 드라마는 2006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다양한 인터넷 드라마와 영화가 2015년부터 등장하면서 천산갑 부적은 더욱 자주 드라마에 나왔다. 중국에서 부적을 만들기 위해 천산갑을 소비하는 양은 매우 적으며, 대부분의 천산갑은 약의 재료로 쓰인다. ‘도묘필기’는 50년 전 창사의 도굴꾼들이 보물을 찾으려 시도하다 모두 죽음을 맞고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의 젊은 손자가 할아버지의 노트에서 비밀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할아버지의 노트에 따라 보물을 찾으려 시도하면서 온갖 미스터리와 모험을 겪게 된다는 것이 내용이다. 처음에는 만화로 시작해 이어 소설과 영화로 제작됐으며 9편으로 구성된 소설은 2000만부 이상 팔렸다. 2006년 발매된 소설 ‘귀취등’은 50만 권의 판매고를 올렸다. 중국 공산당은 기독교, 이슬람교 등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미신은 철저하게 탄압한다. 관영 신화통신은 공산당원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지지하고 미신을 믿거나 초자연적 풍습을 따르면 안 된다고 27일 보도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미신을 믿는 풍습은 오래된 전통으로 2015년 반부패 처단에 따라 무기징역형을 받은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도 국가 기밀을 점쟁이에게 이야기한 바 있다. 유명한 점쟁이이자 풍수가인 차오융정은 공산당의 실세인 저우와의 인맥을 이용해 다양한 이권 사업에 개입했다가 둘다 반부패의 철퇴를 맞았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美 선교사 집 창고에서 원주민 뼛조각 2000여 개 발견

    美 선교사 집 창고에서 원주민 뼛조각 2000여 개 발견

    미 연방수사국 FBI가 한 가정집에서 수천 개의 뼛조각을 발견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현지시간으로 26일 미국 CBS 방송사는 FBI가 지난 2014년 인디애나주 시골마을에 거주하던 선교사 돈 밀러 씨의 집에서 2000여 개의 뼛조각을 압수했다고 보도했다. 2015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한 돈 밀러 씨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엔지니어로 일하다 아이티에서 포교 활동을 한 선교사다. FBI는 밀러가 수십년 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불법적으로 수집한 4만2000여개의 유물을 집 안에 보관해왔다고 설명했다. CBS는 보도에서 밀러가 집 전체를 박물관처럼 만들고 지역주민은 물론 보이스카우트와 언론에까지 수집품을 자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집품 중 사람의 뼈가 섞여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FBI는 수사에 착수했고, 밀러의 집에서 2000여 개의 뼛조각을 압수했다. FBI 예술범죄단장 팀 카펜터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밀러의 집을 찾았을 때 그의 수집품 규모에 압도당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개인수집품 중 규모가 가장 컸다”고 밝혔다.밀러의 집에서 압수된 유골은 대략 500여 명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FBI의 설명이다. 선교사 출신 미국인의 주거지에서 다량의 유골이 발견됐다는 사실에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고고학 교수 홀리 쿠삭 멕베이는 "밀러가 수집한 유골은 노스다코타를 중심으로 거주한 아리카라 인디언 등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천 년 전 미국 원주민의 매장지는 고고학자들에게 매혹적인 연구 대상이었다면서, 수세기에 걸쳐 도굴의 표적이 된 무덤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홀리 교수는 “이것은 미국 사회에 뿌리깊은 인종차별주의를 방증한다. ‘하얀 무덤’ 즉 백인의 무덤이 파헤쳐지는 일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FBI 카펜터 단장은 “이 유골은 우리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일 수도 있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유골이 개인 수집품으로 묻혀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지금 FBI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 미국 원주민 조상들의 유골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카펜터는 “이 유골은 사람의 것이다. 우리 FBI는 이들을 품위 있게 대할 것이다. 인디언들은 우리에게, 우리의 미래에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뒤늦게 밝혀진 돈 밀러의 수집품에는 콜림비아아와 이탈리아의 골동품은 물론 기원전 500년의 중국 보석이라고 쓰여 있는 유물 등 4만2000여 점도 포함돼 있다. 보도에 따르면 밀러 씨는 사망 전 자신의 수집품 중 일부가 불법적으로 수집됐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5000여점의 유물에 대한 압수를 받아들였다. CBS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밀러의 수집품 중 일부가 캄보디아, 캐나다, 콜롬비아, 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 반환됐다고 보도했다. 중국 대표단 역시 이번 주 인디애나주를 방문해 유물을 회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FBI는 앞으로 몇 달 안에 인디언 부족을 찾아 대규모 유해 송환 작업을 벌일 방침이라고 전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조선 문인석 한 쌍 36년 만에 돌아온다

    조선 문인석 한 쌍 36년 만에 돌아온다

    獨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 새달 반환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시대 문인석 한 쌍이 3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로텐바움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문인석 2점을 다음달 말 한국에 반환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문인석은 16세기 말~17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한 점은 높이 131㎝·가로 40㎝·세로 32㎝이고, 다른 한 점은 높이 123㎝·가로 37㎝·세로 37㎝다. 이 문인석들은 1983년 독일인 헬무트 페퍼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골동품상에게 구입해 독일로 반출했고, 1987년 로텐바움박물관이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 14~16년 로텐바움박물관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에 대해 총 세 차례에 걸쳐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박물관이 먼저 조선시대 문인석의 유물 출처 여부에 대해 ‘불법성이 의심된다’는 의견을 국립문화재연구소 측에 전달했다. 박물관은 별도 조사에서 문인석이 컨테이너에 숨겨진 채 독일로 불법 반출된 사실을 확인한 뒤 함부르크주정부와 독일 연방정부를 통해 반환 절차를 진행했다. 문인석은 다음달 19일 로텐바움박물관에서 열리는 반환식 이후 국내에 돌아와 4월쯤 국립민속박물관에 양도돼 일반에 공개된다. 바르바라 플랑켄슈타이너 로텐바움박물관장은 21일 독일 현지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민국에 귀중한 유물을 돌려주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측은 “이번 환수 사례가 유물의 출처 확인 의무를 철저히 살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독일서 韓문화재 발굴’ 김영자 박사가 말하는 ‘북한 전쟁고아’“한반도 현대사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아픔, 잊혀진 이들이 있다. 바로 북한의 전쟁고아야. 남편이 먼저 시작한 일인데 요즘은 그게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6·25 한국전쟁에서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전쟁고아가 많이 발생했지. 이들이 동유럽에서 위탁교육을 받다가 어느 날 하룻밤 새 갑자기 싹 사라졌거든. 이들에 대한 기록 정리가 여생의 일이 됐어.” 독일에 반출된 한국 문화재 발굴과 보존의 중심에 섰던 베커스 김영자(80) 박사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청했더니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했다. 김 박사는 “서울 지리를 잘 몰라 다른 곳은 잘 찾아갈 수 없어. 그런데 민속박물관은 찾아갈 수 있어.”라며 “1층 안쪽 커피숍에서 만나자.”라고 했다. 독일에서 50년째 사는 그가 박물관 1층에 커피숍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의 이력대로 문화재에 조예가 깊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민속박물관을 찾나 생각하고 설날 연휴인 지난 2일 약속 장소로 갔다.(※독일로 먼저 돌아간 남편이 북한 전쟁고아 사진을 보내주기까지 기사 발행이 미뤄졌다.) “체코의 北전쟁고아, 남편이 먼저 발굴60여명 작은 궁전서 5년간 위탁교육한국 모르는 남편 탓에 이 일에 빠져”‘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김 박사는 “나이가 이제 80인데 쉬어야지.”라며 잠시 뜸을 들였다. “남편(베커스 크리스토퍼·76)이 2015년 봄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체코의 어느 제후 궁전에서 북한 고아들이 1953~1958년까지 살았다는 기사를 읽은 거야. 아내의 조국 ‘코리아’라는 단어가 등장하니 솔깃했던 가봐. 남편이 당장에 차를 몰고 달려가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봤대. 60년이 훌쩍 지났으니 동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렵사리 수소문해서 기숙사 사감을 지냈다는 여성을 만났다고 해. 요양병원에 있는 그 여성이 나이가 많아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 정도였고, 정신이 오락가락했는데, 남편이 그 여성이 돌보고 교육했던 북한 고아들의 사진과 앨범, 이들이 돌아가서 그녀에게 보낸 엽서 등을 전달받았거든. 이 여성이 돌아가신다면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한 귀중한 자료도 그냥 재로 사라질뻔한 것이지. 그런데 남편이 한국말과 한국 사정을 잘 몰라 한계가 있으니, 내가 이 일에 끌려들어 간 거지.” “北전쟁고아 1958년 하룻밤에 귀국가서 ‘보고싶어’ ‘그곳이 천국’ 편지도1962년 이후엔 서신 왕래도 뚝 끊겨” 팔순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발음은 또랑또랑했고, 말은 박력이 있었고 빨랐다. 기억은 엊그제 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러더니 대뜸 김 박사가 “남한에선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한국에선 북한 전쟁고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잘 모르고 있다.”라고 답했다. 사실 기자도 수년 전 여자배우 추상미가 감독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북한 전쟁고아들을 다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한국 기자들이 우리 집에 많이 왔었어. 그때마다 남편이 북한 고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기자들이 ‘네, 네.’라고 대답했지. 그런데 기사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아 남편도 거의 포기했어.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도 있고 해서인지 한국에선 도통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 북한 고아 문제는 외국에서 더 관심이 있었어. 폴란드에서 북한 전쟁고아를 다룬 다큐 영화 ‘김귀덕(Kim Ki Dok)’이 2006년도에 먼저 제작됐거든.” 영화 ‘김귀덕’은 폴란드에서 무덤이 하나 있는데 이걸 파버릴까 하다 동양인 무덤이 여기에 왜 있지 하고 조사를 하다 보니 북한 전쟁고아였다는 이야기다. ‘김귀덕’은 유튜브로 검색하니 나왔지만, 한글이나 영어 자막이 달려있지 않아 보기가 쉽지 않았다.체코에 있던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했다. “체코의 작고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인 발리치(Valec Valech)에 북한 고아 60여명이 위탁 교육을 받았어. 이 궁전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공공건물로, 보육원으로 쓰였거든. 전쟁고아를 남쪽 한국에선 나쁘게 말하면 선진국에 팔았지만, 북한에선 우방인 동유럽 국가에 위탁교육을 했던 거야. 최근에 한국 PD 한 사람이 취재차 왔었어. 이 궁전에 전쟁고아들이 있었다는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궁전 정원 한쪽 구석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에 전쟁고아들이 위험하게도 올라가 영문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게 있거든. 글자가 많이 부식되고 상하고 있어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빨리 보존 조치를 취해야 해.” “北전쟁고아,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들 북한서 어떻게 됐는지 문득 생각위탁 부모도 고령, 구술 정리도 시급” 김 박사의 설명은 계속됐다. 전쟁 직후 여력이 없던 북한은 1951년부터 전쟁고아들은 체코를 비롯해 구동독,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으로 위탁교육 명목으로 보냈다. 정확한 조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북한 전쟁고아는 몇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1958년 어느 날 김일성의 명령에 의해 북한 고아들이 어느 날 싹 귀국했어. 주위 사람들도 모르게 밤새 다 데려갔다고 해. 정성 들여 애들을 교육하고 돌본 엄마들은 ‘지금도 보고 싶어서 운다.’라고 해. 그리고 그 아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서 ‘엄마, 보고 싶어요.’, ‘그곳이 천국이었어요.’라는 내용의 엽서를 보냈지. 1962년 이후 편지 왕래마저 끊겼고, 그리곤 사라진 거지. 북한 전쟁고아들을 돌봤던 이들이 아주 고령이지. 더 늦기 전에 이들로부터 구술받지 않으면 전쟁고아의 기록은 사라질 수 있어.”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대개 6~12살쯤 되어 동유럽에 와서 몇 년 살았어. 돌아갈 때 나이가 많은 아이는 스무 살가량 됐고, 유럽 문화를 알고, 한창 정이 들 무렵이었지. 그때 동유럽이 사회주의 체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북한보다는 자유스럽고, 풍족했지.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수용소로 끌려가서 자유스럽지도 못하고 혹사를 당한 것으로 추정돼. 북한에서 적응을 잘한 아이들은 동유럽 언어가 되니 고급 인력으로, 외교관으로 살아남았을 거야. 북한 전쟁고아들의 나이가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랄까 연민이 느껴져.” “발리치 궁박물관장이 전시실 한 두 개를 내줄 테니 한국관 전시실로 꾸미라고 우리한테 제안했어. 이 궁전이 1976년 화재로 불탔는데, 문화유산이어서 EU가 겉모습은 복원해 줬거든. 내부는 아직 텅텅 비어 있어서 주로 콘서트나 미술관으로 이용해. 여기에 ‘당시 아이들이 입었던 옷, 당시 영상물, 동요 등을 전시하면 좋겠다.’라고 나랑 남편이 이야기하지. 전시관 기획 잘해서 신청하면 (발리치궁이) 자국 문화재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도 하더라.” 김 박사 부부의 집에서 발리치까지는 차로 3~4시간 거리여서 체코 문화와 맥주를 좋아하는 남편이 종종 놀러 간다고 했다.“1968년 장학금 받는다는 말에 獨유학레겐스부르크大 한국어문화 강좌 맡아직접 쓴 문법책 기초한국어 인기 여전” 베커스 김영자 박사는 어떻게 독일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193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그는 꽃다운 25살 때인 1965년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1년 장학금을 받게 해주겠다는 신부님의 말에 “아무것도 모르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땐 외국 나간다는 말에 무조건 좋았거든. 처음 수녀원에 도착해서 어학연수를 받는 동안 말이 안 통하니 많이 울었지. 뮌헨대학에 서양사와 독문학을 전공하고, 레겐스부르크대학에 입학해 서양사를 전공했지. 건축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애를 키우다 1975년에 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 1979년부터 레겐스부르크 시립박물관의 학예사로 근무하면서 인맥이 넓어졌고, 그때부터 한국과의 인연이 깊어졌지. 그러다 모교에 한국어문화 강좌가 개설되면서 교수가 된 거야. 1987년부터 정년퇴직한 2005년 9월까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쳤지. 자매결연을 한 동국대에 독일 학생들을 보내 문화교류도 시키고 했어. 동국대가 독일 대학과 자매결연을 한 첫 한국의 대학일 거야.” 그가 사는 레겐스부르크는 뭔헨에서 동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맡을 사람으로 내가 뽑힐 때 독일어와 한국어가 되니, 한국사람이 한국어 가르치는 것을 처음엔 아주 쉽게 생각했어. 그런데 말은 잘해도 한국 문법을 모르니, 독일 학생들은 문법적으로 명확하게 설명이 안 되면 이해는커녕 공부하려고도 하지 않아. 얼마나 깐깐하고, 황당한 질문이 많이 날아들었는지. 한국에 들어와 시중의 문법책을 다 보고, 한국어학당을 다 가봤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 오죽 답답했으면 교육부에 들어가 ‘제대로 된 문법책 하나 내 놓으라.’라고 닦달했을까. 나중에 고등학교 국어 문법책을 하나 구해, 문법을 연구하면서 ‘기초한국어’를 썼어. 여전히 인기 좋아 지금도 잘 팔리고 있어. 한국으로 발령나서 가는 독일 외교관들이 ‘이 책을 들고가면 걱정이 없다.’라고 할 정도야. 한국어의 심화 과정과 한국 문화까지 소개하는 ‘한국어 플러스’도 냈어.” ‘삼국유사’ 독일어 번역…도서전서 호평“韓정체성 보여주는 역사책 내고파 번역” ‘삼국유사(국보 306호)를 독일어로 번역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김 박사는 그 뒷이야기부터 꺼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한국의 해’여서 삼국유사를 번역해 내겠다고 했더니 한국문학번역원이 글쎄, ‘삼국유사는 문학이 아닌 역사’여서 지원금 지원이 안 된다고 했거든요. 이런 소식을 들었던 당시 경북 군위군의 인각사 주지가 백방으로 뛰고 해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통하니 지원금이 나왔지. 당시 문학 100선이었는데 삼국유사가 더 들어가는 바람에 101선이 됐지. 출판기념회를 도서전에서 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문학번역원조차도 ‘선생님 번역 책이 최고.’라고 했지. 유럽에선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덜 알려진 게 아쉬웠는데,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역사책을 유럽에 내보이고 싶었거든. 그게 번역에 나서게 된 계기였어.” 국립민속박물관이 약속 장소로 정한 이유도 나왔다. 김 박사가 한국에서 가장 자신 있게 잘 아는 곳이기에 그렇다. 1906년 한국을 방문해 기록 사진을 남긴 독일군 장교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 대위의 사진 기증전시회가 2006년 4월 여기서 열렸다. 당시 김 박사가 사진과 함께 전시된 문서와 관련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해 줬다. 또 2008년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전시회가 민속박물관에서 열릴 때도 김 박사가 깊이 관여했다. 그가 유럽에서 수십년간 수집한 근대조선 사료를 고스란히 민속박물관에 기증했고, 베를린 등 유럽 골동품 가게나 벼룩시장 등에서 취미로 사모았던 인형 600여점을 2009년 기탁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독일 문화재를 발굴해 정리할 때 민속박물관 학예사들의 도움도 컸다. “겸재 금강산 화첩 발견도 드라마틱수도원 ‘한국에 귀한 것…팔 수 없어’왜관수도원에 영구임대 형식 반환돼”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그녀가 1999년 번역한 ‘수도사와 금강산’(노르베르트 베버 지음)을 꼽았다. “이 책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조선시대 미술사를 다시 쓰게 했거든.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장을 지낸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년)는 1925년부터 4개월간 선교차 방한해 금강산을 돌아보고 가면서 ‘금강산을 잘 그린 그림을 하나 사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금강산 등정에 동행한 독일인 헹켈이 나한테 선물을 했다. 수도원 박물관에 두었다.’라는 기록만 남겼지. 어디에서 어떻게 샀다는 말은 남기지 않았어. 어쩌면 이 선물이 금강산 화첩이었는지도 몰라. 그리곤 아프리카 선교를 가서, 그곳에서 선종하셨거든. 그러면서 그림이 책에 실렸어. 원서에 실린 이 그림을 본 한국의 한 미술사학자가 수도원에 편지를 써서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이 있느냐.’라고 하니 당시 수도원장은 ‘모른다.’라고 딱 잡아뗐다는 이야기 전해. 수년이 흘러, 그런데도 아주 이상하니 국립박물관 학예관 한 명이 직접 가서 보겠다며 수도원을 방문한 거야. 그리고 갔더니 직사광선을 받는 곳에서 그림이 빛바랜 채 다 죽어가고 있는 걸 본거야. 이 학예관이 깜짝 놀라는 것을 본 박물관 신부님이 ‘우리 이런 것 또 있어’하면서 두 폭의 그림을 더 갖고 나왔던 거야. 또다시 놀라자 이번에는 소장한 그림을 모두 갖고 보여준 거야. 이게 모두 21첩,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된 거지. 발견 과정이 드라마틱해.” “이 그림들이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국보급 문화재 반환의 모범 사례지. 이 그림의 존재와 가치가 알려지면서 소더비 등 영국과 미국의 경매 회사들이 수도원에 그림을 팔라고, 그 비용으로 선교사업에 쓰라고 했어. 그렇지만, 예레미아스 슈뢰더 수도원 대원장이 ‘한국에 그렇게 귀한 것이라면 팔 수 없어. 돌려줄 거야.’라고 결심하고 자매관계인 경북 칠곡군에 있는 왜관수도원에 ‘국가에는 주지 마라.’는 단서로 영구임대하지. 난 반환된 겸재 화첩을 한국에서 보려고 겨우 날짜를 잡고 방문하기 1주일 전, 왜관수도원에 큰 불이 났어. 그 소식에 가슴이 철렁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지. 수도원이 거의 몽땅 다 불타버렸지. 다행히도 화첩은 다른 곳에 보관해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거야. 이런 보관의 이유로 반환된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거지.” “韓근대복식 300벌 한꺼번에 나와불상·곤여전도 등 1200여점 보관유럽 최대 한국 유물 소장 박물관”김 박사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는 대학을 정년한 2005년부터 10년간 자원봉사직 학예사로 근무했다. “오틸리엔 수도원장이 한국 유물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합디다. 박물관에 가보니 조선시대 갑옷에 일본 사무라이 투구를 씌워 전시해 일본 유물로 착각하게 된 게 많았어. 설명도 엉터리가 부지기수였고. 동양관에는 한국·일본·중국 유물이 뒤섞여 있었던 거지. 선교박물관의 전시품 80%는 아프리카 것이었고, 나머지는 동양 3국의 유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뒤섞여 있는 거야. 나 혼자 어찌할 수도 없고 해서 민속박물관에 요청하니 학예사 4명이 3주간 파견 나왔지. 우리 다섯이 먼지 속에서 정리했지. 전시실을 정리하니 한국 유물 540점이 나왔지. 다음해에는 지하실 창고를 뒤지니 먼지가 두텁게 쌓이고 거미줄이 쳐진 곳에서 한국 유물이 수두룩하게 나왔어. 17세기 불상과 1869년의 곤여전도(坤輿全圖·세계지도) 등 모두 1200여 점이나 됐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2016년 한국관을 별도로 재개관한 거야.” “하루는 수사님이 불러서 수도원에 갔더니 함을 하나 보여주는 거야. 열어보니 좀벌레가 휙 하고 지나가. 신랑 저고리, 신부 치마를 비롯한 근대 복식 300여벌이 나왔어. 전문가도 아니고, 정리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알고 지내던 조우현 교수(성균관대 복식과)에 연락해 사정을 설명했어. ‘비행기 비용도, 작업비도 못 준다. 그래도 숙식은 제공해 줄 테니 와서 도와다오.’라고 부탁했지. 그가 조교 두 명을 데리고 와서 2주 동안 수도원에서 먹고 자면서 정리해 주고 갔지. 이게 1920년대 복식인데 보기보다 귀한 거야. 우리 한국에선 사람이 죽으면 옷을 불태우는 관습이 있어서 근대 복식이 예상외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거야. 문화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국립민속박물관·서울시립역사박물관의 학예사들과 국외소재문화재단, 문화유산회복재단, 재정 지원을 해준 문화재청 등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야. 감사할 따름이죠.”“내 나이 팔순, 사명감 있는 후배 나서야” “무보수로 선교박물관에서 일할 때 힘들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이 있었어. 훼손되는 귀중한 한국 유물을 복원하려고 독일과 한국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정말 동분서주했거든. 이젠 후배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데…. 한독 문화교류의 지식과 기반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자기 분야가 아니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김 박사의 백발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손혜원 “목포로 박물관 옮기기 위해 대출받아…투기 목적 아니다”

    손혜원 “목포로 박물관 옮기기 위해 대출받아…투기 목적 아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권에서 11억원을 대출받아 목포 지역 부동산을 투기 목적으로 사들였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손혜원 의원은 18일 자료를 내고 “남산에 있는 본인 소유의 나전칠기 박물관을 목포로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이뤄진 대출”이라면서 “남산 박물관 건물을 팔려고 내놨고, 팔리면 변제할 계획으로 대출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출액 11억원 중 7억 1000만원은 남편이 이사장인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에 기부했고, 나머지 약 4억원은 기존 금융권 대출을 갚는 데 썼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직자 등록 재산 중 현금과 주식은 모두 재단 이사장인 남편 재산이며 본인의 재산으로는 용산의 건물 두 채와 아파트, 통영 땅, 골동품이 있다”고 했다. 손혜원 의원 측 관계자는 “목포에 박물관을 짓겠다고 누누히 밝혀왔고, 의원 본인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을 재단에 기부한 것은 오히려 사적 재산을 공공화한 것”이라면서 “부동산 투기 목적용 대출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한 언론은 손혜원 의원이 지난해 3월초 11억원 규모의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아 이 가운데 7억 1000만원을 크로스포인트재단에 기부한 뒤 재단 이름으로 투기 목적의 부동산 매입이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눈부시거나 황홀하거나… 빛나는 부산

    눈부시거나 황홀하거나… 빛나는 부산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부산은 비교적 온화한 겨울을 즐길 수 있는 휴양도시다. ‘제2의 도시’다운 화려함과 오랫동안 지켜온 역사가 공존한다. 15개 자치구와 1개 자치군을 두고 있는 큰 도시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친다. 바다 위를 오가는 케이블카, 해변을 환하게 밝히는 마천루의 조명에 부산의 바다는 더 특별해진다. 해수온천에 몸을 담갔다 옛날 시장을 구경하고 구석구석 특색 있는 골목을 하나씩 거닐다 보면 몇날 며칠도 짧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가 2시간 40분 만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한반도의 동남쪽 끝에 자리한 도시를 머릿속에 그리면 꽤 멀게 느껴지는데 기차에서 딴짓을 좀 하다 보면 금방이다. 커다란 역사를 빠져나오니 북적한 도시 한복판이다. 도시의 소음 사이로 바람을 타고 온 짭짤한 바다냄새가 뒤섞인다. 광장의 팔각 비둘기집이 과거의 시간 한 토막을 떼어놓은 것 같다. 이곳에서 부산 여행을 시작했다.부산의 바다를 발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2017년 6월 문을 연 송도해상케이블카는 ‘국내 제1호 근대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 옆에 자리하고 있다. 1913년 7월 문을 연 송도해수욕장은 처음에는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위한 휴양시설로 개발됐다. 오랫동안 부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었지만 해운대, 광안리 등의 부상으로 한동안 옛 명성을 잃었다. 1964년 건설됐던 해상케이블카가 1988년 운행을 중단한 것은 시설 노후와 이용객 감소 때문이었다. 29년 만에 재개장한 해상케이블카는 송도해수욕장 부활의 상징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암남공원까지 1.62㎞를 운행한다. 옛 케이블카보다 운행거리가 4배 가까이 늘었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크루즈’에 오른다. 불투명 바닥의 ‘에어크루즈’도 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출발한 케이블카는 이내 거북섬 위를 지나 바다 위로 나아간다. 등 뒤로 송도해수욕장의 백사장, 남항대교, 영도 풍경이 펼쳐진다. 바닥창 밑으로는 에메랄드빛 물결이 넘실댄다. 부산 바다가 이렇게 맑았나 싶다. 8분 30초간 위로 오른 케이블카는 암남공원 내 전망대에 멈춘다. 맑은 날이면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돌아오는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송림공원 앞에 내린다. 바로 앞바다 거북섬은 2016년 5월 해수욕장에서부터 이어지는 구름산책로로 연결됐다. 바다 위 고래조각상 등을 감상하면서 구불구불 난 산책로를 걸으면 작은 암초인 거북섬에 이른다. 바다로 삐죽 솟은 산책로 끝까지 가면 알록달록 방파제 위로 갈매기 떼가 새하얗게 모여 앉은 모습도 보인다. 과자를 꺼내 공중에 손을 휘휘 저으면 시력 좋은 갈매기들이 냉큼 날아와 먹이를 입에 문다. 한창 변신 중인 해수욕장 뒤로는 호텔 등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부산의 바다 하면 해운대를 빼놓을 수 없다. 상전벽해의 아이콘이 된 해운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 나온 사람들, 부산에 놀러온 여행객들로 겨울바다가 조금도 쓸쓸하지 않다. 한편에는 빼곡한 고층빌딩이 화려한 대도시의 면모를 자랑하지만 해변 모래사장에 서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한가로운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급변하고 있는 해운대에는 공사 중인 인근 새 아파트를 홍보하는 아주머니가 “모델하우스를 보고 가라”며 이른 아침부터 전단지를 돌린다. 홍콩을 닮아가는 해운대 야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해수욕장을 조금 벗어나는 것이 좋다. 달맞이언덕 아래 자리잡은 ‘미포끝집’은 유명인들의 사인이 빼곡한 이름난 횟집이다. 야경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도 몰린다. 식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마린시티 쪽 형형색색의 빌딩 조명과 밝게 빛을 내는 광안대교가 만드는 장관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바다 전망을 실컷 즐겼다면 바닷속 여행을 떠나 봐도 좋다. 해운대해수욕장 바로 뒤에 위치한 ‘씨라이프 부산아쿠아리움’에는 상어, 바다거북, 가오리 등 250종 1만여 마리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 열대우림, 심해, 체험존 등 테마별로 꾸며진 아쿠아리움을 구경하면서 신기한 해양생물을 보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카스펭귄, 작은발톱수달 등 귀여운 동물들 앞에서는 아이들이 떠날 줄 모른다. 3000t 메인수조에 투명보트를 타고 들어가 상어를 좀더 가까이에서 볼 수도 있다. 해운대는 해수온천으로도 유명하다. 많은 온천이 영업 중인데 그중 원조는 1935년 문을 연 ‘할매탕’이다. 류머티즘·관절염·신경통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할머니들이 유독 많이 찾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름만 들으면 낡고 허름한 시설일 것 같지만 2016년 최신 시설로 재개장했다. 특히 독립된 온천탕인 가족탕이 있어 인기다. 영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천을 즐기고 싶다면 할매탕 바로 옆 ‘해운대온천센터’를 이용하면 된다. 나날이 변화하고 있는 해운대지만 해운대시장에서는 여전히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좁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은 시장 골목 안에 ‘친구 아이가’, ‘뭐라카노’ 등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머리 위로 빛을 밝힌다. ‘해운대라꼬 빛축제’ 일환이다. 곰장어, 돼지국밥 등 식사부터 어묵, 튀김 등 간식까지 먹거리들이 즐비한 시장을 그냥 지나치긴 힘들다. 설움이 뒤엉킨 미로…단단히 박제된 추억바다를 마음껏 즐겼다면 이제 부산 골목의 매력을 느껴볼 차례다. 국제시장에서 보수산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책방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는 보수동책방골목이 나온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을 때 이북에서 피란 온 손정린씨 부부가 현재 중구 보수동사거리 입구에 ‘보문서점’을 연 것이 시초다. 손씨 부부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잡지, 고물상에서 수집한 각종 헌책을 팔기 시작했다. 그 시절 천막교실로 향하던 많은 학생들의 통학로가 된 이곳에 다른 피란민들도 하나씩 비슷한 서점을 열면서 책방골목으로 거듭났다. 골목 중간 지점에는 책을 한아름 품에 안은 사람의 동상이 서 있다. 1970년대 70여 점포가 성행했던 골목의 상징이다. 전성기 때만큼 붐비지는 않지만 여전히 천천히 책방들을 둘러보면서 헌책을 고르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부산의 명소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어 타지에서 온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골목 한편에 자리잡은 ‘우진스낵’은 4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이어 온 분식집이다. 지금도 처음 문을 연 사장님이 온종일 고로케와 도넛을 튀겨낸다. 부담 없는 가격에 사먹는 ‘추억의 맛’은 빛바랜 사진 같은 책방골목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책방골목 사이로 난 더 좁은 골목의 오르막 계단을 따라 산 쪽으로 올라가 본다. 수십 계단을 올라도 다시 그만큼의 계단이 남아 있다. 낮고 작은 계단이지만 개수 때문에 만만찮다. 계단을 다 오르면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다시 계단이 나온다. 겨울이지만 햇살이 따뜻한 낮이라 계단과 오르막길을 반복하다 보니 땀까지 맺힌다.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걸어야 한다. 행정구역상 대청동인 비탈진 동네에는 주차장을 머리에 이고 있는 집들이 많다. 지형을 이용한 공간 활용이 눈길을 끈다. 알록달록한 공영주차장 건물 옆으로 난 60여 계단을 또 오르니 전망대다.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너머 남항대교, 부산항 뒤 부산항대교 등이 내려다보인다. 여행자들이 찾아도 좋을 전망대지만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으로 더 인기인 것 같다. 전망대 벤치에 둥그렇게 앉은 할머니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공영주차장 전망대에서 영주동 방향으로 난 산동네 주택가 골목에는 예쁜20여점이 자칫 우울할 수 있는 골목 곳곳에 산뜻한 색을 더한다. 고래, 사슴, 호랑이가 뛰놀고 꽃이 만발한 골목 사이로 동네 고양이가 햇볕을 쬐며 한가롭게 뒹군다. 주택가 아담한 카페에서 잠시 쉬어 가도 좋다. 길 중간쯤엔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다. 관광용 모노레일이 아니라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힘든 지역 주민들에게 에스컬레이터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무작정 부산의 골목을 누비는 것도 좋지만 부산의 역사를 알고 나면 그냥 지나칠 사소한 것도 재미로 느껴질 수 있다. 보수동책방골목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는 부산근대역사관이 있다.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건설된 건물은 그 자체가 역사적 건축물이다. 6·25 때는 미국대사관으로 쓰였고 전쟁 후엔 미국 해외공보처 부산문화원으로 활용됐다. 1999년 한국 정부에 반환됐고 이후 부산시가 인수해 근대역사관으로 조성했다. 1876년 근대 개항부터 시작된 일제 수탈의 역사를 중심으로 부산의 근대사가 사진, 지도, 책자 등과 함께 흥미롭게 전시돼 있다. 옛 개항장 시가지의 가구점, 과자점, 미곡취인소 등 일본식 건물도 재현돼 있다. 관람은 무료다.부산역 앞 초량차이나타운(상해거리)과 텍사스거리도 이색적인 풍경을 더해 주는 골목이다. 텍사스거리는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 과거 미군들을 상대로 한 유흥가였다. 한때는 청소년 출입이 제한되기도 했고 호황을 누렸지만 현재는 쇠락한 모습이 뚜렷하다. 1990년대부터 교역을 위해 온 러시아인들의 방문과 거주가 늘었고 지금은 텍사스거리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러시아어 간판이 빼곡하다. 이런 변화는 이어진 차이나타운에서도 발견된다. 300m 거리 양옆으로 홍등이 쭉 매달려 있는 거리는 빨갛게 빛을 내는 등불과 노란색 불빛 간판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다. 항우와 우희 동상이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고 삼국지 벽화가 길게 이어져 있다. 중국 상점·음식점 사이사이로 러시아어 간판들도 보인다. 러시아어로 빨갛고 노랗게 칠해져 있는 게 재미있다. 중국인들이 아침으로 먹는 콩국과 밀가루반죽튀김 등으로 유명한 오래된 중국집들 사이로 러시아의 보르시(수프), 샤슬릭(꼬치), 빵과 케이크 등을 파는 음식점들이 들어서 국제적인 거리의 느낌을 준다.최근 부산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 골목으로는 서면 옆 동네인 전포동의 전포카페거리가 있다. 예전에 철공소 등이 밀집돼 있던 동네에 개성 있는 카페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10년 전쯤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일대에 300곳가량의 카페가 있다고 한다. 부산지하철 2호선 전포역 7번 출구 부근에는 지난해 6월 ‘부산커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김동규(41)씨가 7년 전부터 모은 커피 관련 골동품 420여점이 전시돼 있다. 1850년에 포르투갈에서 만들어진 대형 커피분쇄기를 비롯해 각국의 분쇄기, 드립머신, 주전자와 커피잔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입장료가 없고 커피 판매도 하지 않는다. 김 관장은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거리가 상업화되고 있다”며 “전포카페거리의 특색을 지키고 싶어 박물관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떠들썩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다면 기존 카페거리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떨어진 ‘전리단길’을 추천한다. 부산진소방서 뒤로 난 골목들에는 전포카페거리가 처음 생길 때의 분위기가 새롭게 피어오르고 있다. 페인트 냄새가 나고 철을 깎는 쇳소리가 울리는 골목에는 예쁜 카페, 디저트 가게 등이 다소곳이 자리잡았다. 그 사이로 들어선 인문학 서점과 사진관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작은 가죽공방, 목공소, 은세공 가게에서는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글 사진 부산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여행수첩 →잘 곳 :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 부산’이 지난달 해운대에 문을 열었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셀렉트 서비스 브랜드로 지난해 4월 서울 영등포에 이은 두 번째 오픈이다. 지하 2층, 지상 22층 건물에 총 225개 객실이 있다. 23㎡ 크기의 스탠다드룸으로 구성됐다. 10만원 이하의 가격대로 가성비가 뛰어나다. 풀서비스 대신 필요한 서비스에 집중했다. 작지만 알찬 피트니스센터, 코인세탁실 등이 구비돼 있다. 2호선 해운대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바닷가에서 3분 거리로 주변 관광지를 걸어다닐 수 있는 입지가 최대 장점이다.
  • 담요 한 장 팔아 77초 만에 백만장자 된 남자의 사연

    담요 한 장 팔아 77초 만에 백만장자 된 남자의 사연

    6년 전 장애수당을 받으며 근근히 살아가던 남자에게 기적같은 행운이 찾아왔다. 할머니가 물려준 담요가 경매에 나와 무려 150만 달러(약 16억 7000만원)에 낙찰된 것. 이 담요는 그의 조상인 나바호족이 남긴 가보로 1800년대 유물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로렌 크라이처(54)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조부모 집을 찾았다가 그 담요를 발견했다. 로렌은 “다른 건 이미 어머니와 여동생이 쓸어담은 뒤였다”고 회상했다. 할머니 집에 남은 것은 증조모의 가방 하나가 전부. 그 가방에는 담요가 들어있었는데, 증조모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 깔아준 것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 누구도 담요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로렌은 그 담요를 집으로 가져와 옷장 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로렌은 교통사고로 왼쪽 발을 절단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사고 이후 장애를 얻은 로렌은 캘리포니아 촌구석인 레오나 벨리의 친구 오두막에서 우리 돈으로 월 20만원 정도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TV에서 할머니의 담요와 비슷한 골동품을 보게 된다. PBS 방송사의 ‘앤티크 로드쇼’에 나온 미국 원주민 박물관의 수집가는 나바호족의 담요를 소개하며 최소 50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할머니의 담요를 들고 곧장 골동품 가게로 달려간 그는 평범한 담요에 불과하다며 퇴짜를 맞는다. 그러나 로렌은 포기하지 않고 경매회사로 달려갔고, 한 감정평가사에게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희귀한 나바호족의 담요”라는 감정 결과를 받아들었다.  2012년 11월 우여곡절 끝에 경매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로렌의 담요는 단 77초만에 무려 150만 달러에 낙찰되는 기적을 만들었다. 담요 한 장으로 로렌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이후 로렌의 담요를 낙찰받은 화랑 주인은 지난 2016년 한 수집가 커플에게 다시 180만 달러에 담요를 되팔았다. 이 수집가 커플이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로렌의 담요를 포함한 원주민 유물 100점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로렌의 사연도 세상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됐다.로렌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경매 후 많은 것이 변했다”고 털어놨다. 친구 오두막에 얹혀 살던 그는 캘리포니아 중심부에 집 두 채를 사들여 내집 마련의 꿈도 이뤘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로렌은 “백만장자가 된 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친척들이 자기 몫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또 할머니 유품을 정리할 당시에는 담요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여동생이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한 일화도 공개했다. 로렌은 “처음 돈이 생겼을 때는 나도 그들을 도왔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는 끝이 없었고, 내가 몇십억씩을 혼자 쥐고 있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했다”며 속상함을 내비쳤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네일숍 등 5개 업종 내년부터 현금영수증 의무화

    내년부터 스크린골프장과 네일숍도 소비자에게 10만원 이상 받으면 반드시 현금영수증을 발행해야 한다. 현금영수증을 끊어 주지 않으면 거래액의 20%를 가산세로 내야 한다. 국세청은 19일 골프연습장과 손·발톱 관리 미용업, 악기 소매업, 자전거 및 기타 운송장비 소매업, 예술·골동품 소매업 등 5개 업종을 내년 1월 1일부터 현금영수증 의무 발행 업종에 추가한다고 밝혔다. 결혼 비디오 촬영으로 한정했던 인물 사진 및 행사용 영상 촬영업은 돌이나 회갑 등 모든 행사 관련 사진 촬영으로 확대된다. 사업자가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국세청에 신고할 수 있고,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미발급액의 20%를 포상금으로 받는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금영수증 미발행 사업자 신고 방법은. -계약서와 영수증, 무통장 입금증 등 거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첨부해 거래일로부터 5년 안에 우편, 전화, 홈택스 홈페이지 등을 통해 신고할 수 있다. 미발급 사실이 확인되면 건당 50만원, 연간 200만원 한도로 포상금을 받는다. →골프연습장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야외에 그물망을 설치한 골프연습장은 물론 실내 스크린골프장도 포함된다. →계좌이체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하나. -사업자는 결제일로부터 5일 안에 발급해야 한다. 5일이 지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총거래액 20만원 중 카드로 15만원, 현금으로 5만원을 받아도 현금영수증을 끊어야 하나. -10만원 이상 거래에서 현금을 한 푼이라도 받았다면 그만큼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한다. 이 사례에서는 현금으로 받은 5만원만 발급하면 된다. →총 10만원을 2만원, 3만원, 5만원 등으로 나눠서 결제해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하나. -미리 계약 내용과 총거래액을 알고 있었다면 나눠서 결제해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한다. 돈을 받을 때마다 2만원, 3만원, 5만원씩 끊어 주면 된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단독]백화점 진열 재봉틀에 다친 아이…법원 “부모도 30% 책임”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간 아이가 의류매장에 진열된 재봉틀 바늘에 찔려 손가락을 다쳤다. 부모는 바늘을 제거하지 않은 재봉틀을 아이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둔 매장에 잘못을 따졌고, 매장 측은 아이가 장난을 못 치게 보호하지 않은 부모 책임도 있다며 맞섰다. 청구 금액이 400만원대의 소액 사건이었던 재판은 양측의 치열한 다툼으로 1년 넘게 진행됐다. 결국 법원은 매장과 부모의 책임을 7대3으로 구분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03단독 성기문 원로법관은 8세인 A군과 부모가 의류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24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지난해 2월 초등학교 1학년이던 A군은 어머니와 할머니 등과 함께 서울의 한 백화점에 있는 여성복 매장을 찾았다. A군은 매장 앞 바닥에 놓인 재봉틀을 만지다 재봉틀 바늘에 오른쪽 검지손가락 첫 마디가 관통되는 사고를 당했다. A군의 부모는 아이가 2주간 치료를 받은 뒤에도 뾰족한 물건을 보면 겁을 내는 등 정신적 트라우마에도 시달렸다며 치료비와 위자료를 요구했다. A군의 부모는 재판 과정에서 의류업체가 사고를 막기 위한 방호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구급차가 오는 동안 매장 직원은 다른 손님을 응대했고 업체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도 받지 못했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업체 측은 “매장을 운영하는 6~7년간 한 번도 이런 사고가 없었다”면서 “사람 손이 쉽게 닿지 않게 마네킹 뒤로 전시했는데 A군이 굳이 옷을 비집고 들어가 재봉틀을 만지고 장난을 쳤다”고 반박했다. 골동품시장에서 산 고가의 재봉틀이라 사람들이 만져서 고장이 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성 원로법관은 “피고가 매장 관리인의 과실에 대해 사용자로서 책임이 있다”면서도 “A군의 과실과 부모들의 보호감독 의무를 게을리한 과실도 참작했다”며 업체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서울광장] 호남 대망론/이종락 논설위원

    [서울광장] 호남 대망론/이종락 논설위원

    아직 섣부른 얘기다. 차기 대선 주자를 거론한다는 것은. 20대 대통령 선거가 3년 이상이나 남은 시점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상 차기 대권에 대한 관심은 늘 있다. 요즘도 그렇다. 그런데 최근 주로 회자되는 것은 ‘호남 대망론’이다.전남 영광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와 전남 장흥생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어서다. 호남 출신이 대권을 움켜쥔다는 호남 대망론은 현실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 유권자 수를 따지면 그렇다는 얘기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10월 현재 광주광역시, 전라남북도를 합친 호남 인구수는 518만 2682명이다. 반면 부산광역시를 비롯해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와 경상남북도를 아우르는 주민수는 1312만 1179명이다. 호남 인구는 영남 인구의 39.4%에 불과하다. 물론 상당수의 호남 출신 사람들이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 거주한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지만 숫자로는 열세다. 어쨌든 출신 후보에 따른 표 대결에서는 호남 대망론이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 실제로 2007년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패한 전북 순창 출신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26.1%를 얻는 데 그쳤다. 호남을 기반으로 대선에 성공한 정치인은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럼에도 호남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가 골동품 취급을 받고, 이념과 정책이 더욱 중요한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요즘 유권자에게 여전히 지역 기반이 유효하지만 머릿수만 계산하는 옛날 방식의 정치 셈법은 사실상 끝난 것 같다”면서 “예를 들어 통일이나 성장, 분배 등 확실한 프레임을 지니고 행동하는 실용주의 정치인이 더욱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차기 대선 주자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부상은 예사롭지 않다. 중도 보수까지 포용할 수 있는 이 총리는 확장성과 안정감이 최대 강점이다. 이 총리는 지난 16일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정대철 상임고문, 무소속 서청원 의원과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같은 날 오찬에서는 시중은행장들과도 회동했다. 지난달 30일에는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지도부와 만찬을 함께 하는 등 각 분야의 인사들과 접촉하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측근인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천거하고, 광주제일고 후배인 노형욱 국무조정실 제2차장을 국무조정실장에 승진시켜 앉히는 등 임명제청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책임총리’의 위상도 굳힌 듯하다. 정치 이력상 친문(친문재인)과 공유할 부분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약점이었다. 하지만 최근 친문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이니’라고 부르듯 이낙연 총리를 ‘여니’라고 부르는 등 호의적으로 보기 시작한 점은 이 총리에게 플러스 요인이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52세라는 젊은 나이에 문재인 정권 2인자로서 또 다른 호남 대망론을 실현할 수 있는 유력 주자다. 친문 본원은 아니지만 신친문 주류로서 문재인 정부 1기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비서실장으로서 민감한 현안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국정 운영 능력으로 문 대통령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은 최대의 강점이다. 또한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세 차례나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준비위원장으로서 차기 대권 주자 면모를 갖춰 가고 있다. 국회를 한창 뜨겁게 달궜던 ‘DMZ 선글라스’ 논란은 임 실장의 정치적 위상을 보여 준 사례다. 임 실장도 청와대에서 나오면 급을 낮춰 통일부 장관을 희망할 정도로 ‘남북 문제 최고 전문가’라는 브랜드로 다음 대선을 준비할 태세다. 이 총리와 임 실장의 쾌속질주에 대해 “현재의 여론조사는 아무 의미 없다”고 폄하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역대 대선이 있는 해 신년 여론조사에서 조차 1등한 주자들 중 그 누구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박찬종(1997년), 이회창(2002년), 고건(2007년), 안철수(2012년), 반기문(2017년) 등이 ‘김칫국만 마셨던’ 후보들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총리와 임 실장은 너무 빨리 주목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역 구도보다는 세대 구도가 강해지고 있는 점도 이들에겐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역설적으로 ‘호남’을 버리고 자신만의 시대정신을 보여야 호남 대망론을 쟁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jrlee@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고려 라마탑형 사리함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빨리 환수해야지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고려 라마탑형 사리함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빨리 환수해야지요”

    미국서 우리 문화재 추적하는 김정광 이사장이 말하는 환수 운동 “부처님 세 분과 고승 두 분 사리, 한 사리함 모신 聖物”미술관 측 “사리만 반환”…韓정부 “전부 반환”에 무산“문정왕후 어보 환수 위해 美정계 실력자에 편지 전달”“알렌 후손 찾아다녀…15일 알렌 콜렉션 서울시 기증”“미국내 문화재 전수조사 위해 정부 차원 지원 필요”“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있는 라마탑 모양의 고려 사리함 반환이 아직도 해결 못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걸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뜁니다. 나이가 들고 교포라서 한국 유물을 보니 벅찬 감정도 있겠지만 티베트 양식의 불탑에 3명의 부처와 2명의 고승 사리를 한 자리에 안치한 사리탑은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특이합니다. 한국 불교에서는 성물(聖物) 중에 성물입니다. 꼭 찾아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는 게 제 과제입니다.” 미국에서 우리 문화재 환수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정광(75) 한국문화유산보존재단 이사장은 “‘고려 라마탑형 사리함’은 생각만해도 흥분된다”고 말한다. 32년째 미국에서 생활하는 그가 모처럼 귀국한 터에 지난 10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돌아온 문정왕후 어보 환수와 알렌 콜렉션 환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에서 제법 성공한 사업가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법한 그에게 문화재 환수운동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1987년 사업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가 팔리새이즈 파크(Palisades Park)에 살고 있다. “이 사리함은 특이합니다. 큰 사리탑에 5개의 작은 사리탑이 들어있습니다. 다섯 명의 사리가 들어있지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 과거 부처님인 정광불과 연등불, 인도 왕자 출신으로 당나라를 거쳐 고려에서 포교활동을 한 지공선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라는 시를 남긴 나옹선사의 사리지요. 한국 불교의 법맥입니다. 큰 사리함이 높이 22.5cm로 금은제입니다. 이 미술관은 한국관 한 가운데 전시하고 있지요. 가서 보면 가슴이 뛰고 벌렁거리지만 한편으론 약 오릅니다.”이 라마탑형 고려 사리함은 일본인이 개성의 화장사 또는 양주의 회암사에서 불법으로 도굴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스턴미술관은 이를 1939년 일본인으로부터 매입했다. 두 절은 모두 고려시대의 고승 지공선사(?~1363)와 나옹선사(1320~1376)가 주석한 곳이다. 고려 왕실과 관련있는 화장사는 비무장지대(DMZ)에 있어 지금은 폐허가 됐고, 양주 회암사에는 지공선사와 나옹선사, 무학대사(1327~1405)의 부도탑이 같이 있다. 조선 건국에 많은 역할을 한 무학대사가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처님과 지공·나옹 선사로 이어지는 불교 법통을 무학대사가 자신이 이어받았다는 증표로서 부도탑을 한 자리에 모은 것으로 보인다. - 문화재 환수 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2008년쯤 뉴욕주 한국불교신도회장을 지내고 있을 때였지요. 그때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문화재 관계로 뉴욕을 방문했는데 그때 만나서 이야기하고, 미국에서 유랑하는 우리 문화재를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당시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으로 왔던 이상근씨(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를 만났지요. 7명이 왔는데 용비어천가 2권을 소장한 컬럼비아대 도서관과 고려 사리함을 갖고 있는 보스턴미술관을 안내하면서 우리 문화재가 처한 현실을 보게 됐습니다. 환수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과 미국에서 하던 수출, 수입 비즈니스도 다 닫고 난 다음이니깐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고. - 라마탑형 사리함, 그동안의 환수 추진 과정을 설명하면.☞ 이것에 대해 보스턴미술관이 “사리는 한국에 반환하겠다. 그리고 사리함은 한국에 6개월 또는 상당기간 대여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대여 기간에 한국이 똑같은 모형을 만들고나서 돌려달라는 뜻이었지요. 한국 정부의 승인과 보증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런 메시지를 문화재청에 전달하니 당시 이건무 청장이 안된다고 잘라버렸습니다. “사리함 전체를 반환해야지 일부 반환은 안된다”는 것이 이건무 청장의 논지였지요. 음미해 볼 대목은 있지만 해외 유물 가운데 일부만 반환된 사례들도 많습니다. 그 후 미술관 측은 한국 정부가 반대했으니 시민단체는 반환 요청을 할 권리가 없다는 허망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해((遺骸)’인 사리도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계속 반환요청을 하며, 이를 위해 불법 유출을 입증할 사료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미술관을 상대로 소송을 하자고 하지만 불법으로 취득했다는 입증 자료가 없어서 저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소송 비용도 만만찮고. “큰 박물관에서 장물아비처럼 절도품을 보관해서야 되겠나”며 여론의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 사리함이 어떻게 보스턴까지 갔을까.☞ 이게 화장사 것인지, 회암사 것인지는 학계에서 밝혀야 할 사안입니다. 보스턴미술관 토미타 고지로 보고서를 보면 일본인이 이 두 절에서 불법 도굴한 것들을 보스턴미술관이 1939년 매입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는 일본의 조선 골동품 판매회사인 야마나카 상회가 보스턴, 파리 등에 지점을 내고 우리 공예품을 대량으로 팔아치우던 시기죠. 5명의 작은 사리함 가운데 3명은 실존 인물이어서 사리가 들어있고, 정광불과 연등불 사리함에는 사리 대신 구슬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실, 사리는 시신의 일부 내지 인체의 연장으로서 국제법상 매매가 금지돼 있다는 것을 보스턴미술관 측에 계속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 그러면 지난해 문정왕후 어보는 어떻게 환수됐나.☞ 이 때문에 저는 뉴욕에서 어보를 소장한 LA 카운티 박물관(LACMA·라크마)까지 몇차례 왔다갔다 했습니다. 매릴랜드에 있는 미국 국립아카이브(NARA)도 수차례 가서 마이크로필름을 뒤지며 기초작업을 했지요. 제가 사는 곳인 뉴저지주 상원의원이자 친한파 외교분과위원장인 로버트 메넨데스 의원에게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전달해달라며 반환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주자, 그는 편지를 4통이나 더 썼더라구요. LA 상원의원 2명, 국토안전부 장관,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미국 정계 실력자로 상원 외교분과위원장인 그의 편지가 주효했다고 믿습니다. 민간 차원의 운동을 넘어 미국 조야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지요.이 건은 혜문스님이 2009년 뉴욕공립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아낸 비밀문서 ‘아델리아 홀 레코드’를 열어보면서 시작됐습니다. 6·25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한 미 해병대 1시단 병사들이 요충지인 중앙청·경복궁·방송국 등에 대해 경계근무를 서면서 종묘에서 조선왕실 어보 47개를 호주머니에 넣어 가져갔고, 당시 양유찬(1897~1975) 주미 한국대사가 미국 국무부에 분실신고를 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거죠. 이것을 라크마가 소장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보 옆에 쓰인 ‘6실 대왕대비(六室 大王大妃)’가 종묘 6실(중종의 방)에서 나온 것을 입증한 것이지요. 미국 병사의 절도품이란 것인데, 우리 정부가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양유찬 대사가 볼티모어 선과의 인터뷰기사 1953년 11월 17일자에 실렸던거죠. 그 기사를 40달러를 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2016년까지 환수운동이 이었졌고, 도난품이라는 것이 입증되니 미국이 돌려준 거죠. - 오바마 대통령도 국새와 어보 등 9가지 문화재를 돌려줬다.☞ 미국에서 2008년부터 민간 차원의 문화재환수운동이 시작됐고, 문정왕후 어보 사진과 환수 캠페인이 현지 신문에 조그맣게 실렸습니다. 미국 정부가 우리 캠페인을 눈여겨 보던 차에 한 미국인이 “우리집에 어보처럼 생긴 것이 있다”고 신고했고, 그게 다시 보도되니 “옆집에도 보니 그런 게 있더라”는 제보도 나왔습니다. 이런 것들을 미국의 국토안보부가 압수해 보관하고 있다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4년 4월 한국을 방문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통해 반환한 것이지요. 미국은 불법 문화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숨기는 대신 반환을 하지요. 큰 결정입니다.- 알렌 콜렉션 반환에도 큰 역할을 했다.☞ 외교관과 선교사 등을 지냈던 호러스 뉴턴 알렌(1858~1932)의 후손을 찾아낸 거지요. 그가 고종의 주치의를 지냈던 만큼 좋은 문화재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알렌 후손을 찾아보자고 결심했지만 막연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10여년 전 그의 후손을 초청했다는 짧은 기사 한줄을 단서로 더듬어갔지요. 초청자를 찾아보니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허정 박사였습니다.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허정 박사와 통화에 성공했고, 그분이 10여년째 해마다 한번씩 후손들을 초청해 만찬을 베푸시더라고요. ‘그 만찬에 저도 참석해도 되느냐’고 하니 오라고 해서 비행기 2시간 타고가서 후손들과 안면을 텄지요. 후손들을 설득해 매입도 했지요. 알렌과 그 후손들이 어렵게 사는 바람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에 많이 팔아버렸던 거죠. 왕권의 상징인 부채인 ‘화조도접선’과 사진, 편지, 일기 등 30여점을 가져와 15일 서울시청서 기증식을 갖는다. 사실 알렌 증소녀보다는 그 사돈이 더 많이, 더 좋은 문화재를 갖고 있는 것을 파악했는데, 기증하지 않고 팔려고 해서….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문화재입니다. - 문화재청은 미국 124곳에 우리 문화재 4만 4000여점이 있다고 기록했다.☞ 허허, 아무리 적게 잡아도 그 두 배는 될 것입니다. 정부가 미국에서 현장조사한 곳은 6곳 뿐입니다.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러가면서 박물관 사서에게 물어보니 한국 고서 1만 2000여권 있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문화재청은 여기에 5000권이 있다고 기록했지만 배가 넘지요. 브루클린박물관의 도록을 문화재청이 지원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박물관 창고에 들어갈 흔치 않는 기회가 생겨서 가보니 그 안에는 우리 문화재가 수두룩했고, 투구와 갑옷도 있었습니다. 발톱이 3개인 투구로 미루어 왕족의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도록에는 없는 것들이었죠. 박물관 측도 아직 정리조차 못하고 있는데, 그런 것이 무척 많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개인이 소장한 것은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지요.- 우리 문화재의 소재 파악과 유출 경로 조사가 시급하다.☞ 먼저 이런 것을 제안합니다. 미국 공영방송 PBS가 하는 ‘앤틱 로드쇼’처럼 우리 교민을 상대로 하는 문화재나 유물의 가치에 대해 설명해주고 감정 가격도 평가해 주는 겁니다. 교민들이 미국에 이민오면서 가져온 가보나 유물을 조사해 파악하는 것이지요. 고위 관리를 지냈던 가문에는 이런 게 많을 겁니다. 교민들에게 한국 문화재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해 주고, 대학이나 박물관 등에서 본 한국 문화재를 제보하게 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겁니다. 그 다음엔 미국의 큰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를 전수조사하는 것입니다. 큰 프로젝트이니만큼 수년에 걸쳐 정부 차원의 예산과 전문가 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도록도 만들어고 해야 하니 우리 정부와 해당 박물관과의 교섭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버드대도서관이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은 이런 제안에 구두로 “오케이”한 상태입니다. 그는 “부처님과 전생 부처님 둘, 두 명의 고승의 사리가 한 자리에 모여있는 것이 신기하지 않나요. 한국 불교 최고의 성물입니다”라며 “이 사리함을 들여와야 하는데…”라고 되뇌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中 “약재용 호랑이 뼈·코뿔소 뿔 거래 승인”…멸종 앞당길까

    中 “약재용 호랑이 뼈·코뿔소 뿔 거래 승인”…멸종 앞당길까

    중국 당국이 코뿔소의 뿔과 호랑이의 뼈 등 멸종위기 동물의 신체를 특정 사유에 한해 거래를 25년 만에 허가한다고 밝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29일 보도에 따르면 이날 중국 당국은 “과학 연구용 또는 의료용(약재용)으로 사용되는 호랑이의 뼈와 코뿔소의 뿔, 또는 이러한 것들이 포함된 품목의 거래를 허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호랑이 뼈와 코뿔소의 뿔을 약제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현지 당국에 소속된 전문가들의 승인을 얻으면 된다”면서 “이들로 만든 골동품(예술품) 역시 타인으로부터 선물 받았거나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것이라면 소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국 발표에 따르면 코뿔소 뿔의 경우 인공적으로 번식한 코뿔소에게서만 잘라낼 수 있고, 호랑이의 뼈는 자연사 한 호랑이에게서만 채취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또 선물이나 유산으로 받은 물품에 한해서는 반드시 신고 및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하며, 어길 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자연기금(WWF)는 곧바로 반대 서명을 발표했다. WWF의 마가렛 키네어는 “중국이 25년 동안 이어온 호랑이 뼈와 코뿔소 뿔 거래 금지를 되돌린다면, 전 세계의 야생이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합법적으로 이들 물품의 거래가 재개되면 전 세계에서 호랑이와 코뿔소를 보호하는 움직임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1993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교역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함에 따라 호랑이 뼈와 코뿔소 뿔과 관련한 모든 거래를 전면 금지했었다. 하지만 호랑이 뼈로 담근 술이나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코뿔소 뿔로 만든 약이 암암리에 암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돼 왔다. 호랑이와 코뿔소는 현재 멸종위기 종으로 분류돼 전 세계에서 이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금요칼럼] 이선제 묘지와 백제 관음상/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이선제 묘지와 백제 관음상/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최근 펴낸 ‘이선제 묘지(墓誌) 귀향 이야기’라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필문 이선제(1390~1453)는 지금의 광주광역시 출신 세종시대 문인이다. 호조참판과 예문관 제학을 지내기도 했지만, 무진군으로 강등된 광주를 광주목으로 복귀시키고 광주향약을 처음으로 실시해 지역에서 더욱 추앙받는다. 광주역 동쪽에는 그를 기리는 필문대로가 있다.묘지라면 죽은 사람의 일생을 글로 새겨 무덤에 넣는 기념물이다. 이선제 묘지는 위패 모양으로 빚은 분청사기로 특유의 옅은 푸른색 표면에 흰색 흙으로 글자를 상감해 더욱 인상적이다. 1453년(단종 1) 한양에서 세상을 떠난 필문은 이듬해 광주 남촌 만산동에 묻혔다. 묘지는 분청사기를 왕실에 공납하던 무등산 충효동 요지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런데 무덤에 고이 모셔져 있어야 할 묘지의 ‘귀향 이야기’라니…. ‘불법 반출과 기증, 보물의 탄생’이라는 책의 부제만으로도 묘지가 어떤 역정을 겪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알 수 없는 시기에 도굴되어 1998년 밀반출됐고, 지난 2014년 일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인 소장가는 이것을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 대가 없이 기증했다.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라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반출 문화재 가운데, 돌아오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도 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비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일본으로 반출된 백제 금동관음보살상의 환수 협상이 가격을 둘러싼 견해 차이로 중단됐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선제 묘지는 운이 좋아도 아주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묘지를 소장하고 있던 도도로키 다다시는 협상을 시작할 당시 병상에 있었다. 2016년 그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본격 협상은 부인 구니에와 이루어졌는데, 결과적으로 가장 품위 있게 결론이 내려졌다. 묘지의 명문에 등장하는 이선제의 다섯째 아들 형원이 1479년 조선통신사 정사로 대마도까지 갔다가 풍토병으로 순직한 한ㆍ일 교류의 선구자였다는 역사적 사실도 소장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인연이었을 것이다. 우리 협상 관계자가 2015년 병상의 도도로키와 처음 만나고 헤어지면서 한국식 큰절을 올린 장면도 인상적이다. 도도로키는 그 의미를 궁금해했고, ‘가장 경의를 표하는 한국인의 인사법’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선의의 취득자’이지만, ‘불법 반출 문화재 수장가’라는 불명예가 덧씌워진 상황이다.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협상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다. 협상단을 소장자와 만날 수 있게 연결한 사람이 일본 골동품상이라는 사실은 부럽다. 그는 “불법 반출 문화재를 거래한 사실이 알려지면 결국 문을 닫아야 한다”면서 “고미술상에게도 소장자에게도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 고미술 업계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백제 관음상과 이선제 묘지의 사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선제 묘지에 기품 있고 수준 높은 수장가가 있었다면, 백제 관음상에는 돈만 아는 사업가 수장가가 있다. 매매를 전제로 공개한 탓이겠지만, 문화재청이나 국립중앙박물관도 수장가와 액수 대 액수로 만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백제 관음상을 국내에 소개한 학자들이 처음부터 천문학적 액수를 거론하며 매매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을 서둘러 봉쇄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6월 보물로 지정된 이선제 묘지는 지금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 만날 수 있다.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되새기면서 문화재 환수 전략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 고미술협회 진품명품전, 감정가 11억원 분청자 공개

    고미술협회 진품명품전, 감정가 11억원 분청자 공개

    한국고미술협회 종로지회가 감정가 11억원에 이르는 분청자를 공개했다.오는 16일부터 22일까지 7일간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진품명품전’에서는 회화, 고가구, 도자, 공예품 등 800여점이 전시된다. 감정가 11억을 기록한 조선 분청자 선각박지철재 엽문 편호는 조선 전기의 분청자로 알려졌으며 국보 206호(국립 중앙박물관 소장)에 지정된 분청자 선각박지 철채 모란문 자라병과 같은 기법으로 제작됐다. ‘진품명품전’은 이 외에도 조선 지직화(직조회화)와 갑옷의 사진을 공개했다. 오는 20일 오후 3시~6시에는 KBS 진품명품 감정팀이 ‘진품명품전’을 찾아온다. 이 자리에서는 다양한 고미술품 등을 무료로 개별감정해준다. 이번 ‘진품명품전’에서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과 신경옥이 전시 공간 디자인을 맡아 옛 것들을 현대에 녹여내는 공간 설치미술의 예를 보여줄 예정이다. 강민우 한국고미술협회 종로지회장은 “이번 전시는 그간 골동품으로 인식된 고미술의 예술적 가치와 동시대의 삶을 반추하는 전시회로 거듭날 것”이라며 “설치예술과 결합된 고미술 전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길섶에서] 책연(冊緣)/손성진 논설고문

    남다른 독서열도 없으면서 헌책에 대한 애착심이 있다. 고려, 조선의 고서(古書)는 아니더라도 골동품 같은 책에 대해 솟아나는 막연한 소유욕이다. 묵은 책에의 끌림에는 이유가 있다. 꾹꾹 찍었을 것이나 세월을 못 이겨 흐릿해진 글자는 돋보기를 쓰고 활자를 뽑는 문선공(文選工)의 손길을 느끼게 해 준다. 바스러질 듯 투박한 종이는 잠들었던 감성을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한다. 흘러간 시간의 진한 여운은 퀴퀴한 냄새와 묵은 손때, 더러 있는 낙서에 대한 거부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책갈피에서 바싹 말라 눌러진 네 잎 클로버나 단풍잎을 만날 수도 있다. 나보다 먼저 태어났을지도 모를 생명이 박제돼 있다가 환생하는 순간이다. 누군가의 정신을 살찌워 주고 서가 귀퉁이에 꽂혀 있다가 새 인연을 기다렸을 것이다. 난리통에, 이사 중에 자칫 버려지는 운명도 모면했을 것이다. 책으로서는 모진 풍파를 견뎌내고 과거를 배달해 준 헌책은 그래서 고맙다. 흘러 흘러 내 손에 들어온 책에 애틋한 정이 생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책과의 인연, 책연(冊緣)이다. 전주(前主)는 누구였을까. 책과의 인연만이 아니라 같은 책에 관심을 가진 사람과의 인연 또한 책연이 아닐 수 없다. sonsj@seoul.co.kr
  • 중국 베이징에 창업 역사 기록한 ‘창업박물관’ 들어서

    중국 베이징에 창업 역사 기록한 ‘창업박물관’ 들어서

    중국 베이징 하이덴취(海淀区)에 최근 청년 창업 역사를 기록한 ‘창업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이목이 쏠렸다. 지난달 15일 문을 연 ‘중관춘 창업 박물관’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창업 전문 물품을 기록,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지난 1978~2018년까지 40여 년간 베이징을 중심으로 계속된 청년 창업 열기가 그대로 담겼다는 평가다. 박물관 내에는 40년 동안 중국에서 개발된 각종 신기술을 담은 제품 4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이 가운데는 중국 국내 창업 1세대로 불리는 ‘금산소프트웨어’, ‘레노버’ 등의 창업 초기 제품도 포함됐다. 박물관은 컴퓨터 개발 구역, 휴대폰의 역사 구역, 게임출판물 구역 등 총 3곳의 구역으로 분류돼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는 최근 청년 창업가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빠링허우(80后, 80년대 출생자), 주링허우(90后 ,90년대 출생자) 등에게 익숙하지 않은 중국 자국 기술로 개발된 ‘4통 2401타자기’와 ‘리엔샹한카’(联想汉卡, 중국어 전용 입력 방식의 프로그램) 등이 전시돼 있다. 1980년대 중순 개발, 보급된 해당 프로그램은 ‘중국 사무 자동화의 신기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세를 얻은 바 있다. 또 중국 최초로 대규모 생산이 진행됐던 ‘장성0520 컴퓨터’ 등도 함께 확인해볼 수 있다. 창업 박물관은 지난 3월 건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이후 지난달 중순 개원까지 불과 6개월이라는 빠른 시일 내에 개관이 진행됐다. 이는 최근 중관춘 일대에 몰리는 청년 창업가들이 찾아와 중국 창업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박물관 개원식에 참여한 전시관 건립자 리우베이(刘备) 씨는 “관내에 전시될 제품을 수집하는 데에 약 4개월의 기간이 소요됐다”면서 “대부분의 제품은 경매를 통해 수집, 일부는 창업주들에 의해 기부된 제품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리우 씨는 이어 “박물관에서는 불과 30~40년 전에는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은 불모지였던 중관춘 일대가 현재의 마천루가 빼곡한 도시로 발전하기까지 이 지역 일대에서 창업에 일조한 창업주들의 이야기를 확인해볼 수 있다”면서 “단지 옛일로 치부하기 쉬운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고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박물관이 들어선 하이덴취 중관촌 일대에 대한 현지 언론의 조명도 이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중관춘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며 지난 5년 간 연평균 3000곳 이상의 신생 업체가 생겨나는 곳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중관춘을 기반으로 8700여 곳의 신생 업체가 문을 열었다. 이 가운데 신기술 보유형 신생 업체의 수가 2000여 곳을 넘어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관춘 인근에는 베이징대와 칭화대, 그리고 인민대 등 유수의 대학교가 밀집, 인재 흡수에도 용이한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로 지난 2013년부터 베이징 시정부는 베이징대, 칭화대, 인민대를 잇는 중심가에 ‘이노웨이(Inno way)’로 불리는 창업특구를 지정해 운영 중이다. 이와 관련, 베이징화신그룹 다이환종(戴焕忠) 회장은 “박물관에 전시된 제품들도 한 때는 시대를 풍미했던 혁신 과학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들”이라면서 “지금은 모두 골동품이 되었지만, 이 제품들을 통해 혁신은 끝이 없으며 영원히 멈추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청년 창업가들이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이환종 회장은 1941년 출생자로 베이징을 기반으로 한 화신그룹을 설립, 중국 창업가 1세대이 대표자로 불린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신라의 미소’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보물 된다

    ‘신라의 미소’로 유명한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가 보물이 된다. 기와가 보물로 지정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2일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를 비롯해 군위 법주사 괘불도,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경선사명 청동북, 장철 정사공신녹권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일제강점기 경주 영묘사 터(사적 제15호 흥륜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막새는 추녀나 담장 끝에 마무리용으로 쓰인 둥근 형태의 기와다. 1934년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가 경주의 한 골동품 상점에서 사들이면서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박일훈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끈질긴 노력으로 1972년 10월 국내로 돌아왔다. 이 수막새는 제작틀로 찍어낸 일반적인 제작 방식과 달리 손으로 직접 빚은 작품이다. 오른쪽 하단 일부가 사라졌으나 볼록한 이마와 오뚝한 코, 선한 두 눈 아래 살짝 머금은 잔잔한 미소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문화재청은 “지금까지 알려진 유일한 삼국 시대 얼굴무늬 수막새이자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 주는 신라 와당 기술의 대표작”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이 전국 사찰의 대형 불화(괘불도) 정밀조사 사업을 진행하면서 새로 가치가 알려진 괘불도인 3건도 보물지정 대상에 포함됐다. 1714년(숙종 40년) 화승 9명이 그린 ‘군위 법주사 괘불도’, 비로자나불을 중심에 배치한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 불교의식인 영산재에 사용된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등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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