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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흐이후 화란의 거장/몬드리안 불서 재조명

    ◎파리 현대미술관,사후50년 특별전/신조형주의 창조,미술사에 큰 획/20세기 건축·그래픽디자인 영향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 몬드리안(1872∼1944)이 사후 50년을 맞아 파리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은 몬드리안 특별전을 계획하고 있다.이유는 두가지다.첫째는 네덜란드 미술계의 부활이라는 역사적인 의미 때문이다.반 고흐 이후 종말을 고했던 네덜란드 미술계가 그의 등장으로 활기를 찾았다고 보고 있다.또 하나는 신조형주의로 미술사에 큰 획을 긋기에 이르기까지 이 작가가 걸어온 탐구적 발자취를 작품들을 통해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바다와 네덜란드 매립지의 습지,운하및 나무들을 그린 그의 화법에서는 반 고흐를 연상하게 된다.모래언덕과 농촌 교회를 화폭에 옮긴 그는 점묘화법을 구사했다.색조는 살아 있는 듯하면서 이미지는 낙천적이고 서정적이다. 그러나 관람객들은 그 후에 그가 창조한 신조형주의 작품들에 더욱 경탄하게 될 것이다.직각으로 된 선과 흑백및 회색의 조화에서 새로운 네덜란드 미술을 발견하게된다. 몬드리안은 당시의 모든 스타일과 경향을 예외없이 모두 실행해보고 새로운 미술 창작을 이해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다.그처럼 끊임없이 실험적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변화시켜간 화가는 흔하지 않다. 몬드리안의 풍경화들은 풍만함을 그렸던 당시의 조류에 반해 일그러진 거울을 통해 보는 것처럼 가냘프게 그렸던 점이 특징이다.또한 신조형주의의 새로운 미술방식은 종래와는 다른 감성과 존재의 방식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꼽힌다.그가 20세기 추상회화와 건축,그리고 특히 그래픽 디자인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크다. 그는 1911년 파리의 현실주의와 인상주의,야수주의및 입체주의를 모두 경험했다.몬드리안만큼 미술에 대해 학술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 미술사가들의 평가다. 그가 활약할 당시인 1911년에는 모든 예술조류가 뒤바뀔 때였는데 그는 이때 입체주의를 발견했다.친구인 철학자 스훈마케르스의 영향을 받아 기하학적인 추상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며 1912년부터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꽃핀 사과나무」를 시작으로 조용하면서도 단순한 추상적 표현으로 돌아선다.그로서는 엄청난 대변환이었다. 제1차세계대전으로 파리를 떠나 네덜란드로 돌아온 그는 테오 반 두스뷔르흐와 함께 잡지 데 스테일을 창간,새로운 추상미술운동을 선도해 갔다. 기존의 화법을 과감히 변화시켜 나간 용기있는 시도는 사후 50년을 계기로 재조명되면서 다시금 「몬드리안의 승리」라고 극찬되고 있다.
  • “회화의 시인” 미로 작품 국내 첫 나들이

    ◎가나화랑 20일부터·줄리아나 아트캘러리 5월말 기획전/가나화랑/조각·세라믹 등 60년대작품 조명/줄리아나/장르 대표작 모아 세계관 한눈에 「회화의 시인」「피카소 이후 세계최대의 화가」등으로 불리다 지난 83년 타계한 초현실주의작가 호안 미로(1893∼1983년)의 작품전을 국내에서 잇따라 볼수있게 됐다. 가나화랑이 오는 20일부터 5월7일까지 마련하는 「미로작품전」과 줄리아나 아트갤러리가 5월말부터 한달동안 기획할 예정인 「호안 미로 종합전」이 그것으로 국내 화랑이 주선하는 미로의 첫 한국전이란 점에서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미로 탄생 1백주년인 지난해부터 경쟁적으로 추진해온 두 화랑의 미로전은 같은 미로 회고전의 성격이면서도 시기와 양식별 차이를 보이는 기획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 모을 전망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출신인 호안 미로는 빈센트 반 고흐,폴 세잔,앙리 루소로부터 예술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면서 시어와 음조를 색으로 나타내려 애썼던 독특한 초현실주의작가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미로 탄생 1백주년을 맞아 뉴욕현대미술관에서는 대규모 미로회고전이 열려 1백56점의 회화와 1백46점의 드로잉,조각작품,도자기등 미로의 대표작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가나화랑이 봄전시로 설정,의욕적으로 추진해 성사시킨 「미로작품전」은 지난해 미로회고전에 가장 많은 작품을 출품했던 뉴욕 아쿠아벨라화랑과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컬렉션등이 소장한 작품중 조각 22점,회화 5점,판화 10점등 모두 37점을 소개한다.미로가 회화보다는 조각,세라믹,판화제작에 치중했던 60년대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40년대와 70년대 작품들도 일부 전시한다.이중 대표적 조각인 「새」와 3백호짜리 대형유화 「여인과 새」는 특히 눈에띄는 작품. 지난해 가나화랑과 비슷한 시기부터 국내 미로전을 추진해온 줄리아나아트갤러리의 「호안 미로 종합전」은 파리의 를롱화랑과 호안 미로재단이 소장한 작품중 대표작들을 선보이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로가 생존할때의 전속화랑이자 사후 그의 유작을 관리해온 를롱화랑과 호안 미로재단의 소장품가운데 선별한 작품전이란 점에서 미로의 작품세계와 특징을 소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회화 조각 판화 드로잉등 미로가 전 생애에 걸쳐 몰두했던 다양한 양식에 걸쳐 50여점이 소개되는데 2백호 크기의 대형판화와 대형조각도 공개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모네서 피카소까지/불 인상파 명작전 모스크바서 성황

    ◎1백20점 한자리에… 연일 대만원/러시아 부호가 수집… 26년간 창고서 썩다 “햇빛” 피카소,모네,세잔,고갱,고흐,앙리 마티스 등 프랑스 초기인상파 화가 20여명의 작품 1백20점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되고 있다.전시장인 모스크바시내 중심가의 푸시킨 미술관은 러시아전역과 유럽각지에서 몰려온 미술애호가들로 연일 대만원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12월1일 시작돼 오는 2월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여러면에서 단순한 인상파전이 아니다.전시작품들은 모두 러시아국내에 소장돼 있는 작품들인데 초기인상파의 명작 대부분이 러시아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이 작품들의 원소장자가 러시아제국말기 2명의 러시아 부호였다는 점도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거부로 미술에 뛰어난 안목을 가졌던 이반 모로조프,세르게이 슈힌 두 사람은 20세기초 틈만나면 프랑스를 드나들며 작품들을 사모았는데 이번 전시회는 바로 작품의 원소장자인 이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전시회 이름도 「러시아의 수집가,모로조프와 슈힌­모네부터 피카소까지」. 1871년생인 모로조프는 벨벳과 실크무역을 해 섬유왕국을 건설한 조부의 부를 물려받은 당대 러시아의 거부.예술에 뛰어난 안목을 가졌던 그는 1921년 사망할때까지 초기인상파 화가들의 예술실험을 높이 사 친구이기도 한 슈힌과 함께 파리를 오가며 이 작품들을 사모았다.두 사람은 이렇게 모은 그림들을 집에다 전시했는데 방마다 「모네홀」 「고갱홀」하는 식으로 꾸며져 당시 이들의 집은 미술관을 방불케했다.볼셰비키혁명 직후인 1918년 레닌은 모로조프의 집을 몰수해 「새서구미술관」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두사람이 수집한 그림들을 함께 소장케 했다. 그뒤 이 그림들은 48년 스탈린이 「부르주아적」이라는 이유로 전시를 영구 금지시키면서 에르미타주박물관과 푸슈킨미술관의 지하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된다.이 그림들이 다시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74년에 가서이다. 푸슈킨미술관 관장인 마리나 베소노바여사는 『이 두사람이 아니었다면 20세기 미술계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것』이라고 말한다.마티스는 인상파실험을하던 무명일때 슈힌이 사준 그림값으로 화실을 열고 작업을 계속할수 있었다.슈힌은 당시 미친사람 취급받던 고갱의 재능을 인정해준 사람으로도 유명하다.고갱의 그림을 산뒤 그가 『미친 화가의 그림을 미친 수집가가 샀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모로조프는 피카소가 큐비즘이라는 생소한 실험을 할때 1905년작 「공위의 소녀」등 유화 수점을 사주어 큐비즘운동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러시아 미술비평가들은 또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당시 러시아미술계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카지미르 말레비치,바실리 칸딘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 전위미술 「아방가르드운동」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모은 작품들은 러시아에 남아있지만 두사람은 혁명뒤 모두 유럽으로 망명,고국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슈힌은 1936년 프랑스에서 사망직전 소련을 상대로 작품반환소송을 내라는 주위의 권고에 대해 『나는 러시아국민 모두를 위해 작품들을 모았다.내가 어디에 있건 그 작품들은 러시아땅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 조각가 유영교씨(이세기의 인물탐구:39)

    ◎돌로 빚어내는 생명력… 인간미 “물씬”/풍만한 인체·단순화된 형태의 구상 즐겨 표출/연속 국전특선… 완벽한 조형술로 정상의 명성/요즘은 고난·번뇌 초월한 「평화의 표정」 형상화에 집착 「인생은 석재다.그것으로 신의 모습을 조각하든가 악마의 모습을 새기든가 모든것은 자유다.그러나 다만 생명이 깃든 조각인가?」이는 영국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말이다. 유영교는 강한 석재로 생명이 깃든,살아있는 사람의 표정을 만드는 작가다. 알찬 마스(양괴)와 신선한 정감표출의 단아한 나부상,예술가가 품은 그 어떤 상념도 돌이라는 재료에 의해서 표현되지 않는것은 없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그는 작품화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데생하고 데생한다.또는 수채화로 그리거나 유화나 파스텔로 그린다.그리고 하나의 회화로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보였을때 이번엔 점토로 이를 빚는다. ○실패확률 거의 없어 형태의 완성과 완벽성을 석고 모형으로 경험한다음 비로소 돌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실패의 확률은 거의 없다.표정조차도 이미 모형에서 이미지를 또렷하게 살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이 조각에 닮아있으면 그것은 대부분 성공적인 것이지만 만일 조각이 그림에 닮아있을땐 이건 낭패일수밖에 없을 것이다.작품에 관한한 완벽추구자이며 영원히 만족을 모를수도 있다. 작품에서 그가 중점적으로 파고드는 테마는 언제나 인간의 이야기다.인간의 고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여러형태의 모습을 어디서 찾느냐는 것과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조각으로 표현하느냐는 것이 과제다. 같은 고뇌라도 성자의 고뇌인가 범상한 인간의 가족애적인 것인가.사랑도 신의 사랑과 남녀의 사랑,자비는 베풀때와 베풀음을 받은 은총일때가 다르듯이. 한때는 구도자나 수도자의 얼굴을 만들기도 했다.또는 어둡고 그늘진 어부나 농부의 삶에 찌든 표정이 그의 작품의 한 구릉을 이루기도 한다.그러나 「삶의 이야기」시리즈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아들을 보고 기절한 어머니의 모습,가톨릭의 고통과 고난과 수난은 끝이 없음을 그는 새삼 느낄수밖에 없었나보다. 이에비해 경주 불상에서 온화한 평정의 모습을 발견했다.미술이론을 모르는 이름모를 석공이 원만함과 무심과 풍요를 그려낸 것이다. 이때부터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를 다시 읽고 노자·장자에 심취하면서 초탈·초월의 경지를 갈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풍만감이 넘치는 인체에다 반가사유상의 양식을 적용한 극기와 무상,번뇌를 떨쳐버린 초월적 명상,마음의 갈등씻긴 평화로운 표정을 작품마다에 햇살처럼 아로새겨 나갔다. 유영교는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일류작가의 대열에서 한치도 뒤처진 적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첫 개인전 찬사 일색 아직 대학2학년때인 66년 국전 3회 연속 입선,이어서 목우회 공모전서 문공부장관상 국전 국무총리상 국회의장상 국전 연속특선으로 삼십을 갓넘긴 나이에 국전추천작가·초대작가등 남보다 배나 빠른 정상가도를 똑바로만 달려왔다. 추천작가가 되던해인 77년 첫개인전과 함께 수많은 찬사·호평에 둘러싸여 다음해 이탈리아로 유학,국립로마미술아카데미와 르네상스 조각의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 카라라에서도 거장 에밀리오 그레코와 페레클레 파시니를 사사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때 「지중해」 「일드 프랑스」의 작가인 마욜과 아르프,오슬로의 후로그넬 공원에 있는 비게란드의 화강암으로 된 「조각군」을 보고 그는 자신의 구상조각에 대한 집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부조에서 환조에 다다른 아르프의 아르 콩쿨레(구체예술)를 수용하면서 구상·추상 사이를 넘나들다가 차츰 추상의 경지를 뛰어넘어 그만의 구상인체에 망설이지 않고 정착할수 있었다.진위를 가릴수없는 모호한 추상의 세계보다 손으로 만져지는 구상세계가 그의 투명한 성격에도 거부감이 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가 아끼는 재질인 대리석도 인체의 아름다움과 당당함,사유와 풍요를 표현하는데 어떤 부족감도 없었다. 2년전 선보인 성숙·풍요·동반 시리즈에 이어 최근에는 점점 더 불교적으로 된 작품의 표정들이 무심을 지나 열반의 경지를 보이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더구나 밑그림이 철저하게 뒷받침된 표정들은 하나하나가 서로 다르고 하나하나마다에 생동감이 담긴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빈 무심이 아니라 청순이라든가 순백·환희가 눈부신 것도 특징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이미 다른 작가가 그려온 소재를 그는 그 나름대로의 천진무구를 강조하여 행복의 꽃다발로 재창조한 경우도 있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이를 「회고」와 「번안」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유홍준은 『살아숨쉬는 듯한 생명체의 덩어리』라든가 자신의 작품을 되물으며 의식을 심화시켜 나가는 자세는 『예술의 성실성』내지 『예술의 진지함』이라 평하고 있다. 그의 작업장은 금강 남쪽,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살고 있는 대전시내에서 버스로 20분거리.많은 조각가들이 교외별장과도 같은 아기자기한 건물을 지닌 것과는 달리 야산을 깎아 만든 2천평 대지에 세운 이 간이작업장은 거대한 석물공장을 방불케한다. 10t의 무게를 들어올릴수 있는 빔설치,돌을 썰거나 마광할수 있는 전기모터와 체인 블록,바이트와 드릴과 리머와 탭 등 수백가지의 절삭공구들과 마당구석구석에 사람의 키만한 대리석 화강암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는 이리나 문경,여수를 돌며 자연석을 직접 사오기도 하고 이탈리아 대리석을 현지에서 주문해다 쓰기도 한다. 남들이 직장에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8시에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데생에서 흙반죽,석고 뜨고 돌자르고 드릴로 뚫고 다듬고 깎고 하루종일 돌가루와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채 중노동에 시달리다 밤9시가 넘어서야 귀가한다. 사방이 청명한 가을인 요즘,드넓은 벌판엔 외딴 작업실에서 내는 그의 기계소리 돌을 다듬는 소리외엔 주변은 온통 적막강산이다. 간간이 브론즈나 나무를 다루기도 하지만 돌만이 갖는 차갑고 강한 느낌,정발 하나하나로 확실하게 작가의 손에서 작업이 끝나는 확인은 돌이 아니고서는 맛볼수 없는 희열의 하나다. 유영교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세속에 물들거나 부당함에 타협하지 않는 결벽증이다. 일찍이 그가 국전추천작가가 됐을때 화단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평론가 원동석씨는 「평론가 10인이 추천하는 신예작가」의 한 사람으로 유영교를 추천하면서 「아집이나 고집때문이 아니라 그의 천성적인 순결과 자신감은 세파에 쉽사리 물들거나 외세에 섣불리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대로다. 스승·선배들에게 예의 바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관철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엉뚱한 말을 들으면 그의 의도를 명료히 제시하여 시정을 요구한다. 또 대학의 전임강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가르치는데 시간을 뺏기다보면 그의 예술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세속의 욕망을 거부 돈이 될수 있는 모뉴망이나 설치미술등의 주문에도 응하지 않는다.건물주의 몰취미에 억지로 맞추기도 싫고 번거로운 계약과정이나 브로커들이 중간에 끼는 것도 마땅치 않다. 그는 언제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온 몸과 마음으로 몰두할수 있는 대상에만 철저하게 파고든다. 그는 충북 제천군 청풍면장이던 유상종씨와 정효옥여사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면소재지이긴 하지만 국민학교 3학년때 마을에 들어온 버스를 처음 볼만큼 산골동네에서 투박하게 자라났다. 국민학교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충주고 2학년때 홍대가주최한 전국고교미술실기대회에서 1등상 수상.그날 조각실에서 작업복을 입고 흙을 만지는 선배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조각과를 지망하게 됐다. 이탈리아 유학중 그곳의 조각가들이 야외작업장을 가진 것을 부러워한 나머지 고향청풍에다 작업장을 짓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되어 목원대교수인 부인 이은기씨(서양미술사)를 따라 86년 대전에 정착했다.슬하엔 3남매. 유영교조각은 양감의 풍요에서는 마욜,극도의 단순한 형태추구면에서는 때때로 아르프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그가 다다르고 싶은 것은 순연한 조각이다. 그러나 연전에 그의 작품전을 보고 이탈리아 카라라 아카데미 교수이자 평론가인 피에르 카를로 산티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형태면에서는 영혼의 영원과 가치에 대한 신념』,『작업의 전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은 투명한 영감의 세계』라고. 남보다 빨리 화단에 입문해서 일사천리로 예술의 정상에 이른 것처럼 그는 남보다 빠르게 그가 원하는 순정한 순연의 경지에 이미 이르고 있음을 산티니는 예고하고 있는것 같다. □연보 ▲1946년 충북 제천 출생 ▲1964년 충주 고교졸업 ▲1965년 홍대 미대조각과 입학 ▲1966∼68년 국전연속3회 입선(대학재학중) ▲1969년 홍대 미대졸업 ▲1975년 국전 특선 ▲1976년 국전 특선,홍대대학원 졸업 ▲1977년 국전 추천작가및 초대작가,전국조각가초대전 목우회초대전출품 ▲1977년 제1회 개인전(미술회관) ▲1978년 제2회 개인전(진화랑),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유학 ▲1980년 제3회 개인전(로마) ▲1980년 제4회 개인전(진화랑) ▲1982년 제5회 개인전(미라노),국제청년작가 야외전(미라노) ▲1983년 제6회 개인전(현대화랑) ▲1984년 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조소과졸업(거장 에밀리오 그레코 펠리클레 화시니 사사),한국조각가 13인전 한·이조각가교류전,재이한국조각가전출품 ▲1985년 재이한국조각가15인전,토스카넬로의조각전,국제청년조각가전 ▲1986년2월 귀국개인전(제7회·강남현대화랑) ▲1986년10월 제8회 개인전(현대화랑) ▲1987년 이탈리아 문화원개원기념 초대전,재이 한국조각가초대전(갤러리 현대및 이탈리아 뤼기 루소) ▲1988년 제9회 개인전(현대화랑),현대조각 초대전 ▲1991년 제10회 개인전(현대화랑) ▲1992년 제11회 개인전(갤러리 신현대)홍대및 목원대 서울교대강사 현재 충남대 예술대 출강 미술회관 개관기념초대전·한국 현대조각초대대전·목우회초대전·평론가10인이 추천한 신예작가초대전·한국구상조각회 로마전 주관·국제청년작가 야외전·한이조각가교류전·한국조각가협회전및 해마다 홍익조각회전·한국구상조각회전·국전초대작가전·현대미술초대전·원로중진조각초대전·MBC구상조각대전·대한민국 미술대전초대작가 국내외 그룹초대전에 수십차례 참가 목우회공모전 동아일보사장상·목우회공모전 문교부장관상·국전국무총리상·목우회공모전 최고상·국전 국회의장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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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 표현주의 화가 재조명 작업/히틀러때 박해받은 「화폭」

    ◎강렬한 원색… 탐미주의 경향/칸딘스키 등 유명… 불 현대미술관서 4백점 전시 예술의 생명력은 영원한 것인가.독일에서는 요즘 극우세력이 기승을 떨치고 있는 가운데 1차대전 당시 히틀러치하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은 표현주의 화가들에 대한 재조명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20세기초 이래 독일에서 일어난 이 예술운동은 「자연」보다는 작가의 「정신적 체험」을 바탕으로 강렬한 원색을 사용,선이나 윤곽의 표현력을 유별나게 강조했다. 표현주의 그룹에 속한 일단의 화가들은 그러나 미술사에 빛나는 자신들의 업적과는 달리 적극적인 현실참여로 인해 해외로 망명을 떠나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프랑스·독일등 유럽화단에서는 뒤늦게나마 이들의 공적을 추모하는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파리 현대미술관에서는 나치점령시절(1905∼14) 몰수당한 표현주의 예술인들의 작품을 발굴,이 가운데 그림·조각·판화 4백여점을 전시하는 등 이들에 대한 재평가작업에 들어갔다. 그런가하면 독일에서도이 유파에 소속된 대부분의 젊은 화가들이 1914년 1차대전 발발과 동시에 「늙은 유럽」 재건을 위해 참전한점을 높이 평가,이들의 유작·유품 발굴에 나서고 있다.최근 나치 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베를린 비밀경찰책임자가 1933년 작성한 메모에는 『거추장스런 퇴폐주의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를 제거하라.그의 타락한 정신세계는 전체 인민들에게 해악을 끼친다』고 적혀 있다.나치당국의 끈질긴 추적을 받은 칸딘스키는 친지들의 도움으로 파리로 망명했다.베를린에서 당시 암울했던 삶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해온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는 추방된 스위스에서 1938년 5월 자살했으며 표현주의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던 뮌헨파의 마르크와 아우구스트 마케도 남의나라 프랑스 전선에서 생을 마감했다. 반면 이번에 현대미술관의 한 전시실을 가득 메울정도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한 에밀 놀데는 나치에 협력한 장본인.독일 홀스타인지방 농부의 아들인 그는 표현주의에 참여하기 전까지 풍경화를 주로 그려 「엘베강의 예인선」「가을바다」 등의 걸작을 남겼다.미술사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표현주의는 1905년 에리히 헤켈,키르히너 등 당시 드레스덴(구동독)에 거주하던 일단의 젊은 건축가들로부터 비롯됐다.이들은 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건축학을 택했지만 미술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처음에는 자신들의 모임명칭을 「다리파」(교파)라고 불렀다.다리는 이들의 전공과는 또다른 예술의 세계를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마침내 다리파는 베를린 근교의 허름한 건물로 옮겨와 공동예술작업을 하게 되지만 새로운 회원들이 참여하면서 현대미술사에 획기적인 여러 운동으로 진전,제1차대전후 나치가 대두할 때까지 유럽의 예술계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예술의 추상성을 내세우는 「신뮌헨 미술가협회」,「푸른기사의 화가들」 등이 바로 그들이다. 또한 색채의 자유로운 표현을 내세운 반 고흐,고갱 등은 야수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다리파의 창립멤버들은 사회적 변혁을 추구하는 한편으로 「자연」에 대한 탐미주의에 빠져들었는데 헤켈의 「갈대숲에서 목욕하는 사람들」,페흐슈타인의 「하늘 가득히」 등의 누드작품들은 그당시의 시점에서 보면 다소 타락한 작품들이었다.이런 퇴폐주의는 나치치하의 인종우월주의와 맞물려 결국 박해를 자초하고 말았다.
  • 한때 1불 1백엔대/도쿄외환시장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의 엔화가 17일 도쿄외환시장에서 1달러에 1백.40엔까지 오르는 사상 최고가격을 기록하며 한때 「1달러 1백엔대」에 진입했었으나 하오에 접어들면서 엔고에 대한 경계감으로 전일보다 0.30엔이 떨어져 1달러에 1백1.55엔에 마감됐다. 이날 엔은 1달러에 1백1.41엔으로 거래가 시작됐으나 미국이 엔고를 용인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엔매입 움직임이 활발해져 상오 한때 1백.40엔까지 폭등했다.일본중앙은행은 이날 상오에도 엔을 팔고 달러를 사는 시장개입에 나섰으나 엔고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하오에 들어서며 엔고흐름이 반전,결국 종가는 1달러에 1백1.55엔을 기록했다.
  • 한국­박수근/외국­고흐/미술애호가들 좋아하는 작가

    ◎「월간미술」 320명 조사… 김환기·피카소 각2위 미술애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한국작가 박수근,외국작가 고흐인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월간미술 7월호특집 「한국의 미술애호가는 누구인가,그들의 문화의식을 말한다」에서 밝혀진 것으로 월간미술 애독자 3백20명을 대상으로한 조사결과이다. 이 조사는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응답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한데 2년전 현역작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와 그 순위가 대체로 일치한다. 한국작가는 박수근(22명)김환기(12명)이중섭(11명)장욱진(10명)등의 순이며 남관(8명)천경자(8명)김기창(7명)김흥수(7명)유영국(7명)등이 그 뒤를 잇고있으며 이종상 이대원 변관식 박생광 이두식 이왈종 이우환 백남준이 각각 6표로 그다음 순위에 들었다.한국작가에 대한 선호도는 한국적인 내용과 형식으로 뚜렷한 예술적 성과를 남긴 유명작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작가는 고흐(24명)와 피카소(23명) 마티스(14명)에곤 실레(7명)의 순이며 그뒤를 고갱·타피에스·샤갈·르누아르·스텔라·보나르·클림트·롱고·달리·호크니가 각 6표로 나타났다.거론된 외국작가들은 현역작가들보다는 대부분 서구 근대미술작가들이 주류를 이뤘고 동양권 작가는 단 한명도 30위안에 들지 못했다. 한편 작고작가를 포함해 국제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고있는 한국작가로는 백남준(71명)을 꼽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고 김흥수(28명) 김환기(16명) 이두식(16명) 김기창(12명) 박수근(11명) 남관(10명) 이중섭(9명)등이 차례로 올라있다.
  • 초현실주의화가 호안 미로/탄생 1백돌 맞아 스페인 “떠들썩”

    ◎강한 색조·6환각적 유명/각국소장 4백80여점 전시… 9월엔 뉴욕으로 초현실주의 화가 주안 미로(1893∼1983)탄생 1백주년을 맞아 그의 출생지 스페인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지고 있다.스페인당국은 올해를 「미로의 해」로 정하고 그가 태어난 카탈루냐 지방의 수도 바르셀로나를 비롯,마드리드,말년을 보낸 마요카르 등지에서 요즘 크고 작은 미로 전시회와 세미나·심포지엄 등을 열고 있다.특히 오는 8월말까지 계속되는 바르셀로나 전시회에는 30만명의 관람객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미로재단 소장품들 뿐만아니라 유럽·미국·일본 등지의 미술관·화랑들로부터 대여해온 회화 1백80점과 드로잉 3백여점이 연대별로 전시돼 미로의 작품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천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하고 있다.오는 9월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으로 장소를 옮겨 전시회를 갖는다.이번 전시회를 주최한 미로재단의 코디네이터 로사 마리아 말레트여사는 미로를 가리켜 『가장 세계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카탈루냐 지방의 색채가 강한 작가』라고 평했다. 미로의 초기작품은 고향의 농촌풍경을 낭만적 기법으로 표현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그는 카탈루냐문화와 언어에 깊은 애착을 갖고 사물에 대한 정밀한 형태적 감수성과 친밀감이 느껴지는 서정적인 작품을 많이 그렸다. 그래서 그는 풀잎 하나까지 세밀히 그리는 시기를 맞게 되는데 대표작은 1922년에 그린 「농장」이다.미로가 『내 시골생활의 이력서』라고 불렀던 이 작품은 풍경·태양·생활집기·자연의 세밀한 움직임 등 젊은 시절의 미로가 즐겨 택했던 소재들을 화려한 색채로 묘사하고 있다. 1924년 미로는 프랑스 작가 앙드레 브르통이 초안한 초현실주의 선언서에 서명하고 그의 최초의 초현실주의 회화 「베니스의 축제」를 그렸다.미술평론가들은 여러가지 상징들을 환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을 두고 『초현실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초현실적인 작가』라고 평했다. 파블로 피카소와는 달리 미로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프랑코독재체제 아래서도 망설이지 않고 스페인으로 돌아가 창작활동에 몰두했다.이때 미로는 「농장」과 함께 자신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낡은 구두가 있는 정물」(1937)을 그렸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폴 세잔·앙리 루소로부터 예술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며 『시어와 음조를 색채로 표현하려고 애썼다』고 말년에 회고한 적이 있다. 회화 말고도 그는 판화 조각 도자기등 다방면에 걸쳐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발휘,54년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전에서 판화대상을 받기도 했다.
  • 미공개「반즈걸렉션」전시회 성황/미국인 소장 세기적 미술품(미술)

    ◎르누아르·세잔 등 걸작 다수/워싱턴 국립박물관서 8월까지… 명국 순회 요즈음 워싱턴의 국립미술관에는 다른 곳과 달리 관람객들이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전시장이 있다.지난달 2일 개장,오는 8월15일까지 계속될「반즈재단 소장의 세기적 미술대작 전시회」의 전시장이 바로 그곳이다.이곳에서는 르누아르·모네·마네·세잔·고흐·고갱·로트렉·루소·피카소·모딜리아니·마티스 등의 인상파,후기 인상파,초기 모던작가들의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 주변의 플래카드에『당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위대한 예술』이라고 씌어있듯이 이번 전시회는 반즈가 죽은지 41년만에 처음으로 그의 소장품이 일반에게 공개되는 세계순회전시회의 첫번째 전시이다. 화학자이자 의사이며 사업가인 앨버트 반즈(1872∼1951)가 생전에 수집한 진귀한 미술품들은 모두 2천5백점이나 되는데 여기에는 르누아르 1백80점,세잔 69점,마티스 60점,피카소 44점 등 8백여점의 그림을 비롯해 아프리카,그리스,이집트,아메리칸 인디언의 골동품과 조각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 전시회는 반즈 컬렉션을 관리하는 반즈재단이 소장품의 보전장소인 필라델피아 인근 미리언에 있는 건물의 보수공사자금 7백만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마련한 사업의 하나다.생전에 반즈는 자신의 소장품을 한번도 다른 미술관에 빌려주거나 컬러인쇄를 허용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미술품을 이 건물 바깥으로 가져갈 수 없도록 하는 규칙까지 만들어 사후에도 적용토록 했다.따라서 재단측은 법원의 판결을 얻은 뒤에야 순회전시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번에 전시된 세기적 대작들 가운데는 르누아르의「콩세르바토와르의 입구」(파리공연학교 바깥의 거리에서 성장한 남녀들이 얘기하고 있는 광경),세잔의「카드놀이하는 사람들」(1870년 이후 세잔이 프랑스남부 시골집으로 돌아온 뒤 일상생활을 소재로 그린 대작),슈라의「모델들」(수많은 점을 찍는 화법으로 그린 1888년의 작품.벌거벗은 모델 3명이 의상을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있다),피카소의「곡예사와 어린 어릿광대」(1905년의 작품으로 부드러운 파스텔색조,약간 우울한 표정의 곡예사가 인상적),마티스의「생의 환희」(1905년의 작품,원시적인 에너지가 화폭에 물씬 풍기는 가운데 여러명의 남녀가 벌거벗은채 낙원에서 뒹굴고 있다)등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 지식암기보다 지혜·창의력에 중점/유태민족 영재교육 본받자

    ◎한국우주정보소년단 심포지엄/이스라엘,교육예산 37% 꿈나무 육성 투자 이스라엘은 천연자원도 없고 인구도 우리의 8분의1 밖에 안된다. 세계 인구의 0.4%도 안되는 유태인들이 노벨상 제정이후 경제부문에서 65%,의학 23%,물리학 22%,화학 11%,문학 7%나 휩쓴 배경은 무엇일까. 올해는 과학교육의 해.과학교육의 해를 보내며 한국우주정보소년단(총재 이상희)은 26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이스라엘 영재교육을 중심으로 한 정보·과학 꿈나무육성 심포지엄」을 개최,이스라엘 교육을 모범삼아 21세기 정보화사회에 대비한 우리 청소년들의 과학교육 향상을 꾀해 나가야 할것임을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상희박사는 『2000년대 한나라의 훌륭한 자원은 교육의 경쟁력』이라고 전망,『이스라엘민족이 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등의 세계적 인물을 배출한 데는 한마디로 가정을 중심으로 한 어머니의 자녀교육과 영재육성을 위한 체계적 학교교육에 있다』고 강조했다.이스라엘의 어머니는 예를들어 자녀에게 「종이」를 가르칠 때 단순히 이름(지식)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제조과정과 역사,종류 등 종이에 대한 전반적인 「지혜」를 알려준다.유태인인 아인슈타인은 만년에 회고하기를 『나는 천재가 아니다.다른사람보다 호기심이 많았고 지적탐구를 위한 모험을 즐겼을 뿐』이라고 했다.소아마비 왁친을 발견한 에드워드 소크는 『나는 왁친을 발견하기까지 수천번의 실험을 했다.내가 이같은 실험정신을 갖기까지에는 어머니가 매일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유태인 어머니는 자녀의 창의력과 모험심을 길러 주기 위해 매일 먹는 음식도 메뉴를 달리할 정도로 작은 부분까지 무척 신경을 쓴다.미국의 학교들에서 끈질기게 질문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유태인인 경우가 많다고 할 정도인 것. 이날 세미나에서 아나하임 주한 이스라엘대사는 『유태인의 높은 업적과 성취동기는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이스라엘 정부는 매년 교육예산의 37%를 어린이 영재교육 부문에 투자하고 어머니의 자녀교육을 돕기 위해 중앙정부와 학교,지역사회간의 협조도 긴밀하다.정부는 영재교육전담부서를 두어 10여개의 영재교육 특수학교를 운용한다.이 학교는 전체 학생의 성적상위 15%만 시험을 보게 하고 그 가운데 1∼3%를 특수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영재학생들은 1주일에 5일은 보통학생과 마찬가지로 지역학교에 다니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하루만 영재프로그램이 있는 중앙학교에 나간다.영재과목은 수학,화학,미생물학,예술과 미술조각,신문학,유전공학,컴퓨터 등 20여개이다. 이날의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물리학자 뉴턴이나 상대성원리의 아인슈타인,고흐,자멘호프,수소폭탄의 아버지 오펀하이머,마르크스(유물론)등은 바로 전통적 유태 교육을 배경으로 키워진 인물들임을 재인식,우리도 국가의 자원빈곤을 극복하고 생존전략을 갖추기 위해서는 과학꿈나무를 널리 키워 나가는 영재교육에 보다 힘을 쏟아야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 워싱턴 사교계여왕,외교관 변신

    ◎73세 “여걸” 해리먼여사,주불대사로 부임/민주당 정치자금 모금에 큰 공헌/“권력·돈에 굶주린 여자”로 비난도 워싱턴정가의 「제1귀부인」「사교계의 여왕」「막후의 여걸」로 명성을 날려온 파멜라 해리먼여사(73)가 23일 클린턴 미국대통령에 의해 프랑스대사로 임명돼 화제가 되고있다. 그녀의 정치적 실력은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된뒤 처음으로 워싱턴에 왔을때 조지타운에 있는 그녀의 저택에서 첫 파티를 가졌던데서 잘 나타나고있다.반 고흐와 피카소의 작품들이 즐비하게 걸린 그녀의 저택에서 클린턴의 대통령당선축하파티가 열렸고 당시 언론들은 이 자리에 초대된 사람들이 새 행정부에 영향력을 미칠수있는 인사들이 될것이라며 참석자취재에 열을 올렸었다. 파멜라는 영국에서 딕비경의 딸로 태어났으며 윈스턴 처칠영국수상의 아들인 랜돌프 처칠과 결혼했다.2차대전후 랜돌프와 이혼한 파멜라는 미국의 영화제작자인 리랜드 헤이워드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71년 헤이워드가 죽자 당시 소련대사였던 애브렐 해리먼과 다시 결혼하면서 워싱턴정가의 사교계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새 남편 해리먼은 그후 뉴욕주지사로 민주당내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그가 사망하자 파멜라여사는 남편못지 않게 민주당의 재건과 정치적 단합에 헌신했다.그녀는 남편이 남긴 조지타운의 우아한 저택을 민주당의 정치적 결속의 무대로 제공했다. 그녀가 이끌고있는 정치모금기구인 「팸팩」은 80∼90년사이 1천2백만달러를 모금했고 이 자금을 민주당의 이미지고양작업에 투입했다.클린턴은 자신이 팸팩에 봉사했던 지난 81년이래로 파멜라와 알고지냈는데 그녀는 클린턴­고어선거운동본부의 공동위원장으로도 이름을 걸어놓는 등 민주당의 「막후정치의 대모」로서 아낌없는 지원활동을 벌였다. 파멜라를 두고 한 작가는 『고양이 눈에 천진한 웃음이 가득한 여인』이라고 평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웃음은 언제나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고 말하고있다.그녀에 관한 책은 2권 출간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녀를 「권력과 돈에 굶주린 여자」로 묘사되어있다.
  • 영 리얼리즘화가 시커트/유럽서 회고전 잇따라 열려

    ◎“영 모더니즘운동 대부” 평가/실험정신 탁월… 「에드워드8세」가 대표작 19세기말 영국의 화풍을 유럽대륙에 소개하는데 큰몫을 한 리얼리즘 화가 월터 리처드 시커트(1860∼1942)만큼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된 예술인도 드물 것이다.시커트는 20세기 개막과 동시에 S­F 고어,해럴드 길맨등 영국의 젊은 모더니스트들에게 활기를 북돋웠을 뿐아니라 루시안 프로이드·프랭크 아우에르바흐 등과 같은 조형예술 작가,심지어는 철학가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었다. 요즈음 런던의 왕립예술 아카데미에 이어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시커트의 회고전은 그의 복잡다단한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1887년에 그린 그의 대표작 「우스꽝스런 사자」는 섬세하고 솔직담백한 필치로 당시의 연예계 스타를 잘 묘사한 걸작으로 꼽힌다(사자 또는 맘모스라는 말은 하얀 넥타이를 매고 무대에서 노래에 곁들여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대중가수를 일컫는다).특히 무대에 선 가수의 불룩한 연미복과 배경을 이루는 호수의 묘사는 C 마네의 그림을 연상시켜 주고있다. 어찌 보면 다소 따분한듯한 시커트의 초기 작품세계는 1907년 그가 한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돌변한다.어느날 런던의 하숙집 근처에서 목이 잘린 금발 창녀의 변사체가 발견된 것이다.이 살인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이듬해부터 침대에 드러누운 나부와 정장차림을 한 신사를 등장시킨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거칠고 어두운 이미지를 담은 일련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무겁고 불길해 보인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가 죽은지 20년이되자 창녀 살인사건의 진범이 시커트 자신일것이라는 소문이 나온 것이다. 1880∼1930년 사이에 활발히 진행된 미술분야의 뛰어난 모더니스트 운동가들이 그러하듯 종래와 다른 엉뚱한 발상을 한 시커트도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을 듣고있다.이같은 새로운 시대흐름에 대한 그의 실험정신은 아무래도 그의 성장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같다. 시커트는 덴마크출신 아버지와 영국계의 어머니 사이에 뮌헨에서 태어났다.그런 탓으로 독일어와 프랑스어에도 능통했다. 청년시절 J M 휘슬러 밑에서 작품활동을 했고 83년엔 휘슬러의 소개로 E 드가와 만나 드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그의 초기 화풍은 신인상파적인데 드가는 물론 모네,H T 로트렉 등 프랑스 화가의 착상을 도입하기는 했으나 예술의 바탕은 영국풍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화상을 연상케하는 「아브라함의 하인」(1929년),막장에서 올라오자마자 아내와 열렬히 입맞춤하는 「광부」(1935년)등 그의 후기 작품에선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듯한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고있다.특히 털모자를 들고 리무진 승용차에서 내리는 「에드워드8세」(1936년)의 묘사는 사실주의의 극치를 이룬다는 찬사를 받기도한다.
  • 미 뉴욕근대미술관 소장품/동경나들이 전시

    ◎피카소·샤갈·고흐 등 대표작 망라 미국이 자랑하는 「뉴욕 근대미술관」이 그동안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을 한데 모아 오는 6일부터 5월9일까지 도쿄의 우에노 공원안에 있는 우에노 모리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지난 84년 재개관식때 세계적으로 1백65명의 절음 세대 화가 조각가들의 작품을 선정,8백여점의 새작품을 선보여 신선한 충격을 던진이래 최대규모가 될 이번 전시회는 예술가의 신집단주거지로 알려진 뉴욕을 떠나 일본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피카소의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뉴욕 근대미술관답게 특히 피카소의 작품들을 대거 출품할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시회에는 피카소의 작품만 하더라도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게르니카」를 비롯해 「거울앞의 소녀」등 10여점이 출품될 예정. 그 가운데서 주목되는 작품은 피카소가 연인 마리 텔레스 왈텔을 대상으로 그린 「거울앞의 소녀」.이 작품은 피카소가 1932년 그린 것으로 정면과 측면의 얼굴을 색상으로 대비시킴과 동시에 거울을 통해 숨겨진 여자의 허실을 간파,인간존재의 신비성을 잘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함께 이번 전시회에서는 러시아출신의 프랑스 화가 마크 샤갈의 「나와 마을」(1911년) 「골고타」(1912년)등 4∼5작품과 함께 프랑스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 클라우드 모네의 「둥근다리」(1922년),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총총한 달밤」(1889년) 등도 선보일 예정이다.
  • 일 미술품시장 불황수렁에

    ◎경기침체 여파… 89년 가격 4분의 1로 추락 일본의 미술품시장이 깊은 불황에 빠져있다.거품(버블)경제의 붕괴와 함께 미술시장에 드리우기 시작한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미술품을 담보로 융자해주었던 3천억엔어치의 작품들은 「불량재고」로 금융기관금고에서 잠자고 있다. 일본의 미술품시장은 90년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리며 급속히 팽창했었다.일본경제의 호황으로 세계를 사들일 것 같았던 일본엔화는 뉴욕·런던·파리등 세계적 미술시장에서도 피카소 고흐 등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을 거액으로 마구 사들이며 그 위력을 발휘했다.일본무역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미술품수입총액은 지난 89년 3천4백80억엔에서 90년 6천99억엔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거품경제의 붕괴와 함께 미술품수입액은 91년 1천3백73억엔으로 급락했으며 지난해 9월까지의 수입액은 5백11억엔에 불과했다.일본 미술시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백화점의 미술품 판매도 지난 90년의 3천억엔 규모에서 91년에는 1천6백억엔 정도로 반감되었다. 일본미술시장이 호황을 누릴때의 시장규모는 1조엔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그러나 지금은 2천5백억엔 전후로 그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 구매력의 감소로 미술품의 가격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한편 1억엔 이상을 호가하던 일본 인기화가들의 작품은 89년말에 비해 3분의1에서 4분의1까지 급락했다.더욱이 고액의 작품은 거래도 잘되지 않아 「빙하기」를 맞고 있다고 한 미술평론가는 말한다.비교적 거래가 활발한 미술품은 낮은 가격의 작품이나 판화정도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미술전문잡지 「닛케이 아트」는 일본의 경기가 94년쯤 회복되면 미술시장의 불황은 96년께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경기회복이 95년이후로 늦어지는 최악의 경우 2000년이후나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미술시장 회복의 중요 변수 가운데 하나는 금융기관들이 융자담보로 가지고 있는 미술품들의 행방이다.금융기관들은 미술시장이 호경기일때 많은 미술품들을 담보로 융자를 해주었다.그러나 경기후퇴로 금융기관들의 미술품담보 융자는 거의 중단상태에 빠졌으며 이미 담보로 제공된3천억엔 규모의 미술품들은 금융기관금고에서 「불량재고」로 보관되고 있다.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인상파를 중심으로 한 외국작품이며 경매사상 세계3위인 75억6천만엔을 기록한 피카소의 「피에레트의 결혼」도 포함돼 있다.그러나 현재의 불황상태에서 금융기관들이 보관 작품들을 대량으로 시장에 내놓아 미술시장을 혼란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하지만 회복기에 접어들면 혼란이 나타날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다.한 미술평론가는 금융기관들이 보관하고 있는 미술품들은 미술시장불황 탈출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 외언내언

    1990년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 반 고흐박물관에 3월30일부터 1백22일간 반 고흐 1백주기 회고전을 마련했었다.이때 입장권예매를 외국팀들에 마꼈었다.이 표팔기를 주관했던 미국팀은 뉴욕과 파리에서 무려 1백50만장을 팔았다.전시기간이 4개월뿐인데 표는 1백50만장을 팔았으니까 좀 어이없는 조건까지 붙이게 됐다.표마다 2시간씩 시간을 제한했고 날짜나 시간이 지나면 무효이며 환불도 해주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다.전시회가 마치 영화관처럼 바뀐 것이다.◆그러나 사람들은 이 표를 샀다.그 후일담은 더 신기했다.전시기간중 현장에서는 단 한장의 프리미엄이 붙은 입장권마저도 구할수 없었다.이 프로그램을 보는 관점도 전과는 달랐다.기념비적인 전시회를 꾸려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이제는 문화상품도 산업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네덜란드는 반 고흐작품 3백85점을 한군데에 모음으로써 최소한 1백50만명의 관광산업수요자를 창출했던 것이다.◆그래서 또 오늘의 관광산업은 문화의 소재로 관광적 이벤트 프로그램을조직하는 일에 새롭게 매달리고 있다.모차르트 2백주기 행사들은 마치 열병처럼 세계관광계를 앓게 했고 이렇게 되니까 비발디 사후 2백50주년,부조니 사후 75주년같은 제목들까지 만들어졌다.이런 흐름에 비추어 본다면 서울정도 6백주년이벤트는 실제로 세계적 관광상품에 중요한 자리를 가질수 있다.이를 계기로 정부도 94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설정해 놓고 있다.◆그러나 그 접근방법은 아직 흐름에 좇아가고 있지는 않은것 같다.알려진바 94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항공료·호텔·쇼핑등을 할인해주는 특별인센티브카드제를 운영할 모양이다.세계 어디에나 있는 숙박과 교통료의 할인으로 관광객이 증가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이제는 좀 지나간 관점이다.오히려 돈을 더 받아도 프로그램의 질과 이미지가 더 잘 벌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을 깊이 깨달을 때가 된 것이다.그러고보면 94년 우리의 프로그램준비는 지금도 너무 빈약하고 느리게 조직돼가고 있다.
  • 「혼성 모방」 기법/창작인가 표절인가/국내미술계,진단작업 활발

    ◎“도용과 달라”­“독창성 부재” 논란/개념혼란속 시대정신 검증여부 과제 잘 알려져 있는 낯익은 명화나 대중적 이미지를 작품에 차용하는 이른바 「혼성모방(pastiche)」기법이 90년대에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진단이 국내미술계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대한민국미술대전의 대상수상작인 조원강씨의 「또다른 꿈」이 표절시비를 낳으면서 포스트모던적 창작기법인 혼성모방과 모더니즘적 기법의 패러디에 대한 논의가 격렬하게 제기된 바 있어 화단의 관심은 더욱 뜨겁다. 「월간미술」은 9월호가 란 주제의 특집을 마련했고 무역센터 현대미술관은 개관 4주년 기념전으로 혼성모방을 주제로 한 특별전 「창작과 인용」전(1∼30일)을 열어 혼성모방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창작방법으로 부상한 혼성모방을 수용하는 작가들은 이 기법에 대해 『남의 작품에서 이미지를 따오되 독창적으로 짜깁기하는 방식』이라면서 『남의 작품을 자기 것처럼 속이는 표절이나 도용과는명백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술을 고전적인 잣대위에 놓고 평가하는 일반인들이 볼때에는 『기존의 작품을 모방하고 소재를 빌려와 수용하는 것은 독창성의 불재』로 비쳐지기도 한다. 세계미술사적으로도 혼성모방에 대한 논의는 엇갈린다.기존의 작품을 모방하여 풍자적으로 화면을 꾸미는 모더니즘시대의 패러디와 비교되면서 미술사적으로 패러디기법은 또하나의 고전적 고급문화의 영역에 남아있는 반면,혼성모방에 대한 개념정의에는 아직 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미술사적인 혼돈속에서 혼성모방의 영역에 진입해 있는 국내작가는 의외로 많다.한만영 홍수자 임봉규 김정명 김훈 고영훈 유창현 이호철 김영진 변종곤 박도철 최한동 예유근 박불똥 박기원 권여현 이상윤 홍성민 한영수등 20여명에 이른다. 이들의 방법론이 과연 전환기적 징후를 드러내고 있는 세기말의 시대정신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느냐에 대한 검증을 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미술계의 한 과제다. 「월간미술」의 특집에서 미술평론가 윤진섭씨는 『한국미술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혼성모방적 경향은 한편으로는 후기산업사회 속으로 진입하고 있는 현단계 문화환경의 급격한 변동에 따른 미감의 반영을,다른 한편으로는 고전의 현대화내지는 재해석이라는 과제를 안고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이들의 작업에서는 동시대의 문화적 조건과 그로인한 예술표현상의 고뇌가 진하게 느껴진다』는 윤씨는 향후 이들 작업의 추이와 전개양상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9월의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회인 「창작과 인용전」에는 혼성모방을 수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 17명의 작품이 소개되고 전시도록에는 이 전시와 함께 진행된 평론가들의 좌담,혼성모방에 대한 세계미술사적 이론 등이 실렸다. 전시작품 가운데는 모딜리아니의 여인,고흐의 자화상,마릴린먼로의 초상 등이 화면의 일부로 차용되어 있다.이같은 혼성모방을 수용하고 있는 작가들이 「창조력의 고갈」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론」으로 이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주체를 상실한 현실속에서 지향성없는 정신의 양상이 반영된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해소하는 탄탄한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혼성모방논의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견해다.
  • 고박수근씨 작품 “DMZ에 묻혀있다”(미술화제)

    ◎부인이 월남도중 금성부근 매장/호당 1억 호가… 수백여점 추산/최근 발간된 「박수근 생애와 예술」서 밝혀져 호당 1억원대를 호가하는 한국최고의 화가 고 박수근화백의 그림 수백점이 중부전선 휴전선상의 비무장지대에 묻혀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1950년 6·25가 발발한 이후 반동으로 몰린 박화백은 북측 지역인 금화군 금성면에 가족을 두고 단신 피신하여 월남했고 공산당의 고문에 못이긴 부인 김복순씨가 뒤이어 월남하면서 수많은 그림을 땅에 묻은 것. 당시 부인 김씨는 박화백이 1935년에서 1950년까지 십여년간 제작한 수백점을 종이로 싸서 단지에 넣어 뚜껑을 덮고 진흙으로 밀봉해 보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위치는 금성과 남대천 중간의 산이며 지금 그곳은 지뢰가 묻혀있는 비무장지대다. 그림을 땅에 묻은 부인 김씨는 지난 79년 병사했고 그무렵 함께 있었던 박화백의 동생 원근씨도 사망했고 제수 김정자씨(64)만 증인으로 남아있다. 김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금성을 지나 원남면 산허리에 있는 중공군이 파놓은 방공호에깊이 묻었는데 현장만 잘 보존돼 있다면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발간된 예술총서 「박수근 생애와 예술」에서 밝혀졌다. 이 책을 쓴 작가 정현웅씨는 현존하는 국내자료와 박씨주변의 친인척,동료화가,예술가들을 광범위하게 만나 여러 증언을 채집한 끝에 이같은 안타까운 사연과 박화백의 예술인생및 인간면모를 상세히 기술했다. 특히 이 책은 1914년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정림리의 유복한 기독교가정에서 태어난 박수근이란 인물이 가세몰락에도 불구하고 독학의 미술학도로 그림에 온 인생을 걸어온 과정을 낱낱이 적고 있다. 1965년 4월 51세의 나이로 병사한 박화백은 고흐,고갱처럼 사후에 그 빛을 발한 한국표현주의 회화의 대가다. 황토빛 색감과 화강석 표면을 연상시키는 마티에르가 갖는 그의 추상성을 놓고 혹자는 피카소의 그것보다도 더 현대적인 구상화가로 평가하기도 하는데 박수근그림의 진가는 무엇보다 토속적이며 서민적인 한국인을 소재로 한 가장 한국적이라는데 있다. 잘 알려진대로 천재화가 박수근은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속에서 가족을 보호하고 끼니를 때우기 위해 미8군 PX초상화매점에 나가 미군들의 얼굴과 그 가족,애인들의 사진얼굴을 그렸다.생계유지를 위해 단순한 초상화작업을 하면서 그는 화가로서의 고뇌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나 다행히 친한 몇몇 미국인 지식층들이 그의 예술성을 인정하고 그를 돕는데 돈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그가 작업한 많은 그림들이 미국인의 손에 넘어갔고 50∼60년대 국내화단에서 별 주목을 받지못한 박수근의 그림이 미국에서는 귀한 평가를 받게 됐다. 박수근을 평가한 대표적인 인물로 당시 한국에 체류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마거릿 밀러여사를 꼽을 수 있는데 박수근그림의 한국적 특성과 독특한 개성에 매혹된 밀러여사는 50년대 후반 미국에 건너가서도 직접 박수근에 관한 기사를 쓰는 한편 그의 미국전시회를 주선했으며 많은 그림을 미국인들이 구매하도록 가교역할도 했다. 이 책에는 그 당시 박화백과 밀러여사가 주고받은 서신이 여러편 실려있다. 박수근 비화가운데 또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문단의 여류중진소설가 박완서씨와의 인간적인 교분이다. 박화백이 미8군 PX 초상화매점에서 일할 무렵 소설가 박씨도 초상화부에서 경리일을 맡고 있었는데 「진짜 화가」박수근을 알게된 박씨는 시대적 아픔을 함께 겪는 말없는 예술가 박수근을 바라보며 자신의 불행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위안을 얻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나는 그때 초상화부에 있는 화가들을 업신여기며 그들의 그림솜씨를 모욕적으로 평가했다.어느날 그가(박수근) 말없이 자신의 화집을 보여줬을 때 내겐 간판장이중에 진짜 화가가 섞여 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나는 부끄러움을 느꼈고 내가 그동안 그다지도 열중한 불행감으로부터 문득 깨어나는 기쁨을 맛보았다』 처녀 박완서씨와 진짜 화가 박수근은 이때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이들의 얘기는 박완서씨의 처녀작 「나목」에서 주인공 경아와 화가 옥희도의 플라토닉한 애정으로 그려지는데 바탕이 됐으며 최근 TV에서 이 이야기는 6·25특집극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생전에 따뜻한 인간미를 잃지않은채 향토적 소박미와 영원한진실미를 추구했던 박수근은 그러나 「사후의 영화」를 상상도 못한채 한쪽 눈이 실명되는 등의 병고에 시달리며 죽어갔다.
  • 불서 개인전열고 귀국 황영성씨

    ◎“유명한 베르넴 준화랑 전시… 격찬 받아” 중진서양화가 황영성씨(51·조선대교수)가 지난 2월12일부터 3월5일까지 프랑스 파리의 베르넴 준화랑에서 개인전을 갖고 현지 미술인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큰 성과를 올렸다. 뿌듯한 기분으로 최근 귀국한 황씨는 『이번 파리전이야말로 제게 새로운 젊음을 불어넣어준 뜻깊은 자리였습니다.그곳의 권위있는 1급화랑의 초대작가가 된 것도 뜻밖의 일이지만 제 그림에 대해 「감동적」이란 찬사를 받았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지난해 몬테카를로 국제회화제에 참가,특별상을 받게 된 그의 작품을 본 프랑스 미술평론가 로제 부이요씨가 황씨를 격찬하면서 베르넴 준화랑에 추천한 것이 파리데뷔의 계기가 됐다. 우리 작가들이 흔히들 파리나 뉴욕등 외국에서 개인전을 갖고 좋은 성과를 올렸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이는 자화자찬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실상은 현지의 무명화랑에서 작품을 걸어두는 정도에 그치는 예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 그런 점에서 황씨의 이번 파리전은 남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베르뎀준화랑의 명예와 권위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곳인 때문이다. 파리 마티뇽가에 있는 이 화랑은 18세기부터 미술품 취급상을 하던 한 가족의 가업의 터전이 된 곳으로 19 01년에 반 고흐가 이곳에서 첫번째 파리전을 가졌고 세잔,마티스,루소,블라맹크,모딜리아니,고갱,르노아르,달리등 수많은 거장들의 개인전도 여기에서 열렸다. 그는 1백호 중심의 대작위주로 근작24점을 발표했는데 5점을 판매하기도 했다. 호당 60만원선의 황씨가 국내가격의 70∼80%선에서 가격을 매겼는데 그 가격도 현지에서는 A급작가 가격수준이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 대한 파리사람들은 『동양화가들이 그린 서양화를 수없이 봐왔지만 그것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동양적인 서양화이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현지미술잡지 L’OEIL 3월호)고 했다. 지난 90년부터 1년여 남미 마야 잉카문명을 돌아보고 이제 파리전까지 마친 황씨는 『올가을까지 아무 생각없이 작업에만 몰두하겠다』고 밝혔다.
  • 컴퓨터복제 명화 전시회/고흐등 19세기 인상파화가 작품 1백점

    ◎화면요철까지도 흡사… 원화와 구별 힘들어 세계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복사한 복제회화가 국내에 첫 소개 전시된다. 트레이드코리아 주최로 2일부터 서울 동방플라자 미술관에서 열린 「19세기 인상파 명화 복제회화 전시회」(7일까지)는 컴퓨터 아터그래프 공정을 이용한 고흐 고갱 마티스 모네 세잔 피카소 르누아르 등 인상파 대가들의 작품 복제화 1백여점을 전시하고 있다.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고갱의 「물속의 여인들」,세잔의 「포플러가 있는 풍경」,르누아르의 「침실」,드가의 「춤추는 여인」등은 실물크기로 화면의 요철까지도 완벽하게 복사한 복제화.전문가들조차도 원화와의 구별이 힘든 것들이다. 복제화의 제작 유포는 원화의 보존과 미술 대중화 차원에서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널리 보편화된 일.이번에 전시되는 복제화들은 이제까지의 복사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아터그래프 방식을 이용한 것들이다. 레이저광선에 의한 색분해와 특수도료를 사용한 엄밀한 다색인쇄,그리고 주형을 이용한 표면처리 등으로아터그래프는 당시 화가들의 손끝이 컴퓨터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그림의 색감·생동감·요철감뿐만 아니라 화가들이 실수했던 점이나 선·훼손된 부분까지도 그대로 그려내는 복사기술이다. 따라서 원화에 가까운 아터그래프 복제화를 선보이는 이번 전시회는 국내미술애호가들과 세계적인 대가들의 원화와의 간격을 좁힘으로써 미술 감상의 대중화시대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로트레크 사거 100년 파리 회고전 인기

    ◎포스터·판화등 2백여점… 예술세계 재평가 키1백52㎝의 난장이였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 64∼ 19 01)은 날이 가면 갈수록 천재성이 재발견되는 거인으로 추앙되고 있다.그의 사후 1백년을 넘기면서 「로트레크 회고전」이 영국 런던에서 열린데 이어 지난 22일 파리 그랑팔래 국립미술관에서 개막되었다.세계 곳곳에 흩어진 그의 작품 2백여점이 한지붕 아래 모인 이 회고전은 6월1일까지 계속된다. 전시되는 작품 가운데는 회화 70점 외에 그가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포스터와 판화 부문의 작품 그리고 소묘가 포함돼 있다.프랑스 내의 알비 미술관(알비는 그의 출생지임)과 오르새 국립미술관,국외의 런던 시카고 상파울루 런던 모스크바 등지 미술관및 미술품수집가들에게서 빌어온 것들이다. 오늘날 로트레크 작품의 인기는 대단하여 값이 매우 비싸다.그의 생시에 20프랑 하던 판화 1장이 19 91년 12월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2백31만 프랑(1프랑은 1백40원)에 팔렸다.로트레크 작품 가격의 최고 기록은 19 89년 파리 드뤼오 경매장에서 3천35만5천3백96프랑에 팔린 「바티뇰에서」라는 그림(92×65㎝)이 지니고 있다. 파리의 신문들은 여러 차례 로트레크 회고전을 크게 다루었으며 전시장 입장권이 개막 보름전에 이미 4만7천5백장이 팔리는 기세로 보아 예매하지 않고는 이 전시회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일반공개에 앞서 미테랑 대통령이 자크 랑 문화장관과 함께 관람했다. 로트레크는 알비라는 곳에서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그의 가문은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귀족가문의 하나로서 조상들은 대대로 툴루즈 백작이라는 칭호로 불렸다. 스무살 나던 해인 18 84년 파리의 몽마르트르 지역 투르라크 거리 7번지에 정착한 로트레크는 이듬해 근처의 무도장 물랭 루주(빨간 풍차)가 문을 열자 여기 드나들면서 이 업소 선전 포스터를 그리는 한편 이곳의 무희와 가수들을 즐겨 화폭에 담았다.그래서 로트레크 하면 몽마르트르와 물랭 루주를 연상하게 된다. 난장이라는 신체적 결함을 멍에처럼 이고 살아야 했던 그는 술과 불우한 밤의 여인들에게서 위안을 받았다.알코올과 화류병으로 그는 33세때 이미 폐인처럼 되었으며 결국 37세로 죽었다.그가 살았던 때는 이름난 화가와 문인들이 예술의 꽃을 피우던 「좋은 시절」로 일컬어지던 시기였다.동시대인으로는 반 고흐가 로트레크의 재능을 남달리 인정한 사람이었다. 로트레크의 작품은 그가 죽은 뒤에도 수십년 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환락가의 탕아라는 평판 때문이었다.그의 사망 직후 옛 백작부인인 어머니가 파리시와 뤽상부르 미술관에 작품들을 기증하겠다고 했으나 거부당했다.19 20년에 이르러서야 출생지인 알비의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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