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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픽] 아베 ‘위드 코로나’…긴급사태 대신 여행권장

    [이슈픽] 아베 ‘위드 코로나’…긴급사태 대신 여행권장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도쿄를 중심으로 새로운 타입의 유전자 배열을 지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갑자기 등장했다. 최근 일본 각지에서 확진자 다수가 이런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고, 확진자는 5만명에 육박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관관산업 살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베 총리는 9일 나가사키(長崎)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긴급사태 선언이 고용이나 생활에 주는 영향을 생각하면 감염을 컨트롤하면서 가능한 한 재선포를 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긴급사태 선언은 가능한 하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는 관광산업을 살리겠다며 국내 여행을 장려하는 ‘고투 트래블’(Go To Travel) 정책을 강행 중이다. 이날 일본의 확진자는 하루 동안 1444명이 새로 파악됐다고 현지 공영방송 NHK가 10일 보도했다. 일본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6일 연속 1000명을 훌쩍 넘었고, 누적 확진자는 4만9622명, 사망자는 5명 늘어 1061명이 됐다. 질문있다는 기자 무시하고 나가버려 아베 총리는 소통 없는 ‘마이웨이’ 정치로 비판을 받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9일 회견에서 약 10분 동안 코로나19 상황 등 현안에 관한 의견을 밝힌 뒤 취재진 질문을 단 2개 받고 현장을 떠났다. “아직 질문이 있다”는 기자들의 고함이 이어졌지만 아베 총리는 이를 무시하고 자리를 떴다.아베 총리는 여행경비 보조 정책인 ‘고 투(Go To) 트래블’과 관련 ‘위드 코로나(코로나와 함께하는)’ 시대에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새로운 여행 스타일을 정착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내주 일본 ‘오봉’ 명절 기간의 귀성 문제에 대해서도 “일률적 자숙을 요청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日유권자 55% “올해 여행 계획없다” 아베 정부는 여행을 장려하고 있지만 유권자의 과반은 올해 여행 계획이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9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여론조사회가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올해 6∼7월 실시한 우편 여론조사에서 올해 연말까지 고향 방문이나 해외여행을 포함해 여행을 생각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55%가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응했다. 여행을 생각한다고 답한 이들은 43%였다. 코로나19 대책에서 경제와 건강 중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84%가 건강을 선택했고 14%만 경제를 골랐다. 응답자의 83%는 도시 봉쇄와 같은 강제성 있는 조치를 사용하지 않고 당국의 요청과 시민의 자제를 축으로 하는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 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반응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잔망스런 소녀와 마주칠 듯… 순수한 서정이 숨쉬는 ‘소설의 땅’

    잔망스런 소녀와 마주칠 듯… 순수한 서정이 숨쉬는 ‘소설의 땅’

    황순원 생전 자주 찾던 ‘소나기’ 의 배경작가 유년시절 보낸 평양과 빼닮아 설립소설 배경의 지명 이용한 산책코스 눈길 일제 민족성 말살 정책 꿋꿋하게 이겨내우리말 소설의 순수성 지킨 문학혼 정수국내 첫 문학관 AR 등 실감 콘텐츠 사업촘촘한 버드나무 뿌리 사이에 첫사랑이 있다. 소나기처럼 삽시간에 왔다가 비구름이 바람에 흩어지듯이 떠나거나 사라져버린 무방비의 사랑이다. 비 갠 자리의 흔적이 나무뿌리 사이로 오롯하게 새겨지는 고장, 경기도 양평. 이 지명은 양근군과 지평군이 합하여 만들어졌으며 양근군은 버드나무의 뿌리, 지평은 날카롭게 벼리는 숫돌과 공평할 평자가 만난 글자다. 그곳을 배경으로 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니! 그렇다면 흡사 버드나무 뿌리가 비 맞은 숫돌을 감싸쥔 형상을 소설에서는 사랑이라 부른 것일까.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1953년 작품인 소설 ‘소나기’ 이야기다. 한국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발표한 소설이자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독자들에게 첫사랑의 풋풋하고도 아련한 이미지로 굳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소나기처럼 스치듯 지나갔지만 강렬하게 남은 빗방울의 흔적만으로도 일생을 회고할 수 있는 사랑이자 소설의 배경이 된 고장에 다녀왔다. 어른들 눈에 ‘여간 잔망스럽지 않다’던 소녀의 흔적과 그를 기억하는 소년의 애틋함이 새겨진 소설 속의 ‘조약돌’ 혹은 지평의 숫돌은 지금 버드나무 뿌리 어디쯤 닿아 있을까 생각하면서.●황순원 문학적 지류는 평양과 양평의 모든 길 평남 대동군 재경면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수학한 황순원 선생의 고향 대신에 소설의 배경이자 선생이 즐겨 찾은 양평에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이 들어선 것은 2003년 일이다. 양평군 지원과 선생이 혼신을 다해 제자들을 길러 냈던 경희대의 결연으로 이곳에 테마공원이 조성된 것이다.‘유년의 내 고향을 빼닮았다’며 찾은 곳에 온전히 그의 소설로만 탄생한 마을이라니. 선생의 제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황순원문학촌장은 ‘선생의 문학적 지류는 평양과 양평 사이에 있는 모든 길’이라 회고했다. 양평과 평양은 단순한 지명 자체를 벗어나 남과 북을 가로지르고,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는 인간애가 펼쳐지는 삶의 길이자 소설의 땅인 셈이다. 단편소설 ‘소나기’가 수록된 소설집 ‘학’에 실린 동명 소설에는 이념을 뛰어넘는 사람들의 인간애가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던 교과서 속 소설은 시대의 모진 칼날 속에서도 소설의 명맥과 한글 문장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선생의 고투가 새겨진 산물이다. 서슬 퍼런 일본의 한글 말살 정책에도 우리말로 쓴 소설의 순수성을 지켜 내려던 선생의 문학혼이 빛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의 소설사가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관하여 김종회 문학촌장은 다시 이렇게 소회했다. “세상의 명리에 타협하지 않으시고 그렇다고 세상과 절연하지도 않으셨으며, 있을 자리와 할 말, 물러설 때와 취해야 할 행위에 망설임도 구김살도 없으셨던, 삶과 글의 양면에 걸쳐 뜻깊고 아름다운 족적을 남기고 떠난 작가셨습니다.” 그 엄혹하고도 핍진했던 시대에 어찌하여 ‘첫사랑’이었던 걸까. ‘소나기’가 발표된 시기인 1953년은 특히나 6·25전쟁이 막바지였던 때가 아닌가. 전란의 여파로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사람이 사람됨을 잃을 수밖에 없던 시대에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피어난 첫사랑의 이야기라니. 이는 선생이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에 대한 서정적 표현이자 사랑’을 말하고자 함이었다고 후대는 평가하고 있다. “소설이 정말로 선생님의 사랑 이야기냐”고 당돌하게 물어오던 제자에게 선생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답한 우문현답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해서 아직도 회자되는 중이다.●매시 정각마다 분수쇼… 소설 속 주인공 된 듯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이념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은 작가의 ‘사랑’ 이야기가 오늘날 홀연히 피어난 공간이 바로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이다. 이곳은 황순원문학관을 비롯해 황순원 묘역, 수숫단 오솔길, 고향의 숲, 해와 달의 숲, 들꽃마을, 학의 숲, 송아지 들판, 너와 나만의 길, 목넘이 고개, 징검다리 등으로 꾸려져 있다. 이 소나기 마을을 에두르는 산책코스는 선생의 소설에 나오는 배경지에서 이름한 것들이다. 오솔길을 걷다 매 시각 정시가 되면, 소나기 광장에 난데없는 분수쇼가 펼쳐지는 모습 또한 빠트릴 수 없는 볼거리이자 온몸을 흠뻑 적실 수 있는 문학촌 체험 중의 백미다. 이 또한 그곳을 찾은 연인들의 사랑을 위한 장치인 것일까. 문학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소설의 흔적을 종합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상 모든 첫사랑의 흔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람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다 보면 광장에서 분수에 몸이 젖듯이 마음도 사랑에 젖어가고, 또 소설의 한 대목처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이 마을에 온 연인들의 사랑은 꼭 이루어진다는 말도 떠돈다고 한다.“선생님, 사랑이 뭘까요?” 또 “첫사랑은 뭘까요?” 소녀가 소년에게 조약돌을 던지듯 질문을 하고 나면 돌아오는 대답은 물론 없겠지만 그 질문의 자리에 내 스스로 찾아낸 대답이 스며들겠지. 이쯤 해서 첫사랑의 정의를 ‘첫 번째 한 사랑’보다는 ‘그녀 혹은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랑이 첫 번째’라 말하면 어떨까. 왜 이리도 ‘첫사랑’에 마음을 두느냐 질문한다면 나는 지금 ‘첫사랑의 마을’에 다녀왔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다. ‘소나기 마을의 테마가 ‘첫사랑’인 까닭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잠시 공사가 중단됐지만, 개관 10주년을 넘긴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은 지금 대대적인 탈바꿈을 앞두고 있다. 바로 ‘실감콘텐츠 사업’이다. 실감 콘텐츠는 사용자에게 가상 환경에서 현실 같은 생생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시각, 청각, 촉각, 운동감각 등의 모든 감각 정보를 전달해 가상체험(AR)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소설의 영화화나 드라마화는 익숙하지만 가상 체험은 익숙하지 않은 독자와 방문자들에게 ‘실제 소설 속으로 들어간 듯한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문학작품 속의 이야기(스토리)가 나에게 다가와 다시 한번 ‘텔링’되는 순간. 전국 문학관 중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사업이다. 마치 지금 현실의 이 순간에 저 공간으로 들어서면, 소년과 소녀가 사랑이 사랑인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책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니, 어떤 느낌일까. 조만간 그 시스템이 완성되면 다시 한번 소나기 마을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늘어버렸다. 소설 한 편이 한 마을을 조성했고, 그 마을 속에서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문학의 외연이 문장과 미학을 넘어선 것을 대변한다. 작품 속의 문장들이 ‘현재’와 ‘스토리 텔링’을 넘어서서 ‘현실’이 된 순간이라면 1950년대와 2020년을 잇는 일쯤은 너끈히 해내고도 남을 것이다. 1950년대의 소설 속의 문장이 2020년으로 스며와 새로운 목소리와 물리적인 몸체를 갖는 공간에서라면 ‘첫사랑’을 더 궁금해해도 되겠다. 떠나간 이들,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들을 마음껏 불러내어 못내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을 성 싶다. ‘소나기’ 증강현실을 넘어서면 소나기 마을 뒤편에 ‘첫사랑 테마 로드’가 펼쳐질 예정이라고도 했다. 첫사랑의 산실인 이곳에서 세계 문학 속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마지막으로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 주요 테마로 준비되고 있다.●첨단 과학 통해 다시 노작가 모습 만나게 되길 AR 속에서 ‘소나기’의 첫사랑과 만나고 나오면 ‘별’의 목동과 어린 왕자의 우주적인 사랑 그리고 톰 소여가 모험을 떠나던 도중에 만난 가슴 설레는 사랑 이야기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 열리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증강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분수에서 물을 쏘듯이 내게 다가오면 가랑비와 소낙비에 옷이 젖듯이 내 마음도 젖어들 수밖에 없을 터이다. 바라건데 그 현실 속에서는 첫사랑뿐만 아니라 황순원 선생의 모습도 만나뵐 수 있길. 소년과 소녀를 넌지시 바라보는 마을의 인자한 할아버지의 형상에서부터 현실의 풍파를 날카롭게 그려내되 사람의 됨됨이를 끝내 잃지 않으려는 모습 그리고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밤이 깊도록 원고를 써내려 가는 노작가의 뒷모습으로라도 선생을 만난다면 어떨까. 선생께 언제까지라도 ‘당돌한 질문’을 건네고 싶은 제자의 바람과 독자들의 ‘첫사랑’에 대한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소나기 마을’은 또 어떤 모습으로 현실을 비추게 될까 궁금해지는 지점이다.한 편의 소설이 시대와 손잡고 만들어낸 가장 최신의 시스템 속에서 사람의 제일 오래된 마음인 ‘사랑’ 이야기가 버드나무 뿌리 안에서부터 툭 불거져 나와 우리에게 손짓하는 마을. 자,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증강현실이든 1950년대의 사랑이든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이곳을 다녀온 나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게 되고야 말았다. 당신에게도 오늘은 첫 번째 사랑의 감정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기를! 첫사랑에 관해서라면 조금 더 잔망스러워져도 괜찮겠다. 소나기처럼. 소설가 이은선
  • 해남군, 대중국 교류협력 새 장 연다

    해남군, 대중국 교류협력 새 장 연다

    명현관 해남군수가 4일 서울 주한중국대사관을 방문,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와 만남을 가졌다. 국내 최초로 중국유기인증을 받은 해남 친환경 쌀의 중국 수출을 계기로 중국측이 해남군과의 교류협력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싱하이밍 대사가 명 군수를 초청해 전격 성사됐다. 해남군은 이달 쌀전문 재배단지에서 재배한 ‘친환경 가바쌀’ 10t을 처음으로 중국 수출한다. 땅끝황토친환경영농법인의 친환경 가바쌀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중국 국가 유기농 인증을 받은 최고급쌀이다. 2018년부터 미국으로도 수출되고 있다. 이날 한중경제문화교육협회 관계자 등 10여명이 참석한 접견 자리에서는 전국 최대 농업군인 해남의 현황을 소개하고, 대중국 농수산물 수출확대와 한중문화 경제교류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명 군수는 “중국은 우리의 중요한 교역 파트너로 친환경 농식품의 투자확대를 통한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며 “조만간 싱하이밍 대사를 해남군에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싱하이밍 대사는 “초청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해남 방문을 약속드린다”며 “해남군과 중국 간 투자유치와 경제 교류를 더욱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싱 대사는 해남 황조별묘 등 400년 이상 이어져오고 있는 해남과 중국 간의 인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해남군 산이면 황조마을에는 정유재란(1597년 8월~1598년 12월) 당시 수군 도독으로 출병해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군을 물리친 진린 장군의 후손들이 이주·정착해 광동진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진린 장군 사당인 황조별묘가 있다. 2014년 7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 서울대 강연 시 “명나라 때 등자룡 장군과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각각 순직했으며, 오늘날 여전히 명나라 장군 진린의 후손이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언급해 큰 관심을 모은바 있다. 이후 2015년에는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황조별묘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군은 1999년 진린장군의 고향인 중국 옹원현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이후 상호방문과 함께 매년 명량대첩축제에 진린장군 후손 등을 초청해 교류하는 등 우호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해남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코로나19 대응 우왕좌왕 일본, 이제는 정부안에서도 다른 소리

    코로나19 대응 우왕좌왕 일본, 이제는 정부안에서도 다른 소리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 우왕좌왕하며 대응의 갈피를 못잡고 있는 일본 정부가 이달 중순 시작되는 ‘오봉’(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 연휴기간 귀성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엇갈린 메시지를 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4일 “(코로나19 대책을 총괄하는)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상과 (일본 정부 2인자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사이에 연휴기간 귀성을 둘러싸고 엇박자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니시무라 경제재생상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연휴 귀성과 관련해 “무증상의 젊은이나 어린이로부터 고령자에게 감염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고향집에 고령자가 있다면 귀성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다음날에도 그는 고령의 조부모가 손자와 함께 지내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고향 방문에 주의를 당부했다.그러나 스가 관방장관은 3일 “정부가 광역단체간 (장거리) 이동을 일률적으로 삼가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니시무라 경제재생상 발언의 의미를 수정했다. 그는 “(니시무라는) 귀성을 제한하겠다거나 제한하지 않겠다거나 하는 방향성을 말한 것이 아니고 귀성에 관한 주의사항에 대해 전문가로부터 들은 의견을 전달한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이어 “기본적인 방역대책을 철저히 하면 감염 위험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면서 이동을 장려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고령자의 감염 위험과 경제에 대한 악영향 최소화라는 전혀 다른 취지의 말이 정권 핵심 관계자들로부터 나온 데 대해 국민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고이케 아키라 일본공산당 서기국장은 “장관에 따라 말들이 다르게 나오고 있다”며 “이는 위기관리의 측면에서 최악”이라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울산시청 1호 여성 청원경찰 탄생

    울산시청 1호 여성 청원경찰 탄생

    울산시청 개청 이후 1호 여성 청원경찰이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여효정(30·여)씨다. 울산시는 이달 초 진행된 청원경찰 공개 채용에서 여씨가 성별 구분없이 진행된 경쟁을 뚫고 최종 합격했다고 31일 밝혔다. 여씨는 체력검정과 면접 등 채용 과정 전반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고, 특히 높은 직무 이해도와 다양한 경험 등이 채용 결정에 주효하게 작용했다. 여씨는 청소년 유도 국가대표를 거쳐 대전 서구청 소속 실업팀 유도선수로 활동한 바 있다. 이후 고향인 울산으로 내려와 중학교 체육 교사로 4년간 근무하다가, 청원경찰이 되기로 결심하고 경기도의 한 소년원에서 감호실무관으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는 최근 시청 청사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청사 전반의 안전·보안 관리, 집회·시위 현장 질서 유지, 방문객 안내 등을 수행하고 있다. 여씨는 “울산시의 청원경찰로서 언제나 당당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일하고 싶다”라면서 “준비된 실력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단순 경비 업무와 차별화한 청원경찰만의 전문성을 발휘하겠다”고 말했다. 시는 남성 청원경찰만으로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여성 참가자 안전관리 등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이번 1호 채용을 시작으로 여성 청원경찰 증원을 적극적 검토하고 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여행부터 스포츠까지…랜선으로 ‘대리만족’ 해볼까

    여행부터 스포츠까지…랜선으로 ‘대리만족’ 해볼까

    국내·해외 여행지 소개 콘텐츠 인기스포츠 웹툰·다큐멘터리도 ‘상위권’본격적인 휴가철이지만 외부 활동은 여전히 우려가 앞선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여행이나 운동이 제한됨에 따라, 랜선으로 대리만족 할 수 있는 콘텐츠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해외 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지방자치단체 스트리밍 채널이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들은 국내 여행지를 적극 소개하고 있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카카오M과 손잡고 걸그룹 에이핑크가 추천하는 경기도 여행기를 7월 한 달 간 선보였다. 시흥 갯골생태공원, 광명동굴, 안산 그랑꼬또 와이너리, 김포 아트빌리지, 화성 제부도 등 여행지 12곳을 에이핑크 멤버들이 직접 알려준다. 관광공사는 “해외 팬들에겐 경기도를 알리고, 국내 팬들에겐 추후 방문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케이팝 스타들이 자신의 고향 등 국내 곳곳을 랜선으로 알려주는 콘텐츠도 방송됐다. SBS MTV ‘트래블 앳 홈’에서는 지난달 아이돌 가수 유빈, 몬스타엑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이 나와 자신의 고향이나 뮤직비디오 속 한국의 명소를 소개했다. 글로벌 MTV를 통해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 157개국과 유튜브 채널에도 공개됐다. OTT에서도 여행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다. 넷플릭스 여행 예능 ‘투게더’는 대만 스타 리우이하오(류이호)와 이승기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6개 도시 곳곳의 풍경을 보여준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코로나19로 여행이 제한된 상황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선보이며 유쾌한 동료애와 미션을 대하는 이들의 열정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위축된 신체 활동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스포츠 콘텐츠도 인기를 얻고 있다. 다양한 운동 종목을 다룬 웹툰들은 코로나19와 함께 순위가 상승했다. 네이버 웹툰에 따르면 엄청난 재능을 가진 복서의 이야기 ‘더 복서’는 공개 직후 요일 상위권에 올랐다. 아마추어 자전거 크루들의 대회를 다룬 ‘윈드브레이커’는 월요웹툰 톱(TOP) 5에 랭크됐고, 한국 고교 농구를 현실적으로 다룬 ‘가비지 타임’ 등도 인기를 얻고 있다. 앞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는 넷플릭스에서 시리즈가 공개된 5~6월 ‘오늘의 톱 10 콘텐츠’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시조시인 김상옥 유품 200여점, 유족 등이 통영시에 기증

    시조시인 김상옥 유품 200여점, 유족 등이 통영시에 기증

    경남 통영출신 시조시인인 초정 김상옥(1920∼2004)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유품 200여점이 고향 통영시로 돌아온다. 통영시는 21일 김상옥 선생 장녀인 김훈정씨 부부가 이날 통영시를 방문해 이들 부부를 비롯한 유족 등이 소유하고 있던 김상옥 선생의 유품과 서화를 포함한 예술작품 등 200여점을 시에 기증했다고 밝혔다.김씨 부부는 유족과 김상옥 선생의 제자인 고(故) 김재승 박사의 유족이 소장한 유품 등을 조건없이 모두 통영시에 내놨다. 김훈정씨는 “고향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 유품과 작품들을 고향인 통영시와 통영시민께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며 “유품 기증이 아버지와 아버지의 문학, 예술을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석주 통영시장은 “유족 뜻을 받들어 유품을 잘 보존하고 앞으로 초정 기념관이 건립되면 전시하겠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통영시는 오는 8월 5일과 21일 두차례로 나누어 유품을 인수한다고 밝혔다.유족 등이 기증한 유품은 김상옥 선생의 시집·시조집·동시집·산문집 초판본,서화전 도록, 친필편지, 육필 원고, 통영 출신 예술인 윤이상·박경리선생이 써 보낸 친필편지, 사진 자료, 직접 쓴 글씨와 그림, 직접 만든 도자기 등 종류가 다양하다. 통영시 항남동에서 태어난 김상옥 선생은 1939년 시조 ‘봉선화’가 ‘문장’(文章)지에 가람 이병기의 추천을 받고, 동아일보 시조 공모에 ‘낙엽’(落葉)이 당선돼 등단했다. 그는 삼절(三絶)로 불릴만큼 시 창작 외에 붓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해방 이후에는 윤이상과 함께 동아대학교, 욕지중학교 등 학교 교가 지어주기 운동을 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20여년간 마산고, 경남여고, 통영중 등에서 교편생활을 하며 박재삼, 이제하, 김병총, 송상옥 등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통영 시내에는 그가 창작한 ‘봉선화’ 시비가 있고 그를 기념하는 초정거리, 초정좌상 등이 있다. 해마다 김상옥 시조문학상도 시상한다. 통영시는 2008년 김상옥 선생 생가가 있는 항남 1번가 골목을 초정거리로 명명하고, 생가를 구입해 기념관으로 활용하는 계획을 세워 추진한다. 통영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고향 그리웠나…美 실종 반려견, 80㎞ 떨어진 옛날집에서 발견

    고향 그리웠나…美 실종 반려견, 80㎞ 떨어진 옛날집에서 발견

    실종 반려견이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발견됐다. 19일(현지시간) CNN은 미국 캔자스주에서 사라진 강아지가 80㎞ 떨어진 미주리주 옛날집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지난주, 미주리주 클레이카운티 로슨 지역에 사는 콜튼 마이클은 집 현관문 앞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다. 마이클은 “퇴근 후 아내와 귀가해 보니 웬 강아지 한 마리가 현관문 앞에 누워 있었다. 처음 보는 개였다”라고 밝혔다. 인식표 목걸이를 걸고 있진 않았으나 털이 잘 관리된 것으로 보아 유기견은 아닌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강아지는 한껏 경계심을 드러냈다. 마이클은 “간신히 개를 달래 수의사에게 데려갔다. 다행히 반려견 일련번호와 주인의 정보를 담은 마이크로칩이 내장돼 있었다”라고 설명했다.그런데 주인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마이클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크로칩에서 개 주인을 확인했는데, 어딘가 익숙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우리 집에 살던 가족의 이름과 같았다”라고 말했다. 마이클 가족은 2018년 11월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마이클 가족이 이사 오기 전까지 그 집에 살던 가족은 캔자스로 이주했다. 혹시나 해 페이스북을 뒤진 마이클은 잃어버린 반려견을 애타게 찾는 옛 집주인의 글을 찾았다. 옛 집주인은 4살 된 래브라도 종 반려견 ‘클레오’가 사라졌다며 제보를 호소하고 있었다.백방으로 반려견을 찾던 옛 집주인은 마이클의 연락을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개 주인은 “캔자스주 존슨카운티 올레이스 새집에서 옛날집까지는 최소 80㎞ 거리”라면서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 미스터리”라고 놀라워했다. 마이클도 “왜 이렇게 사람을 경계하나 했는데, 강아지 입장에서는 자기 집에 웬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겠다”며 웃어 보였다. 개 주인은 “어찌 됐든 클레오를 찾아 다행”이라면서 반려견을 보호해준 마이클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CNN과 AP통신 등은 “혼잡한 교통을 감안하면 산과 들, 강과 다리를 건너 한참을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부캐 몰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부캐 몰라?

    독일 50대 남성 우베 발트너‘차에서 노래하는 인스타 황제’멀티 페르소나 현상 곳곳 관측사회적 가면 강요 문화 균열싹쓰리 등 부캐 속속 등장 #1. 독일의 한 광고대행사 공동대표인 우베 발트너(57)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189만명에 이른다. 2018년 9월부터 출퇴근길 자신의 차 안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50대 남성의 꾸밈없는 표정, 새로운 음악에 대한 도전 정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열창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셈이다. 미국의 R&B 가수 크리스 브라운, 유명 힙합 가수 드레이크도 그의 온라인 친구다. 발트너 대표는 16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런 인기를 얻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일관성과 행운이 결합된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래를 즐기는 나의 다른 모습처럼 첫인상만으로는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또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50대여,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하고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배워라.” 젊은이들에게도 “인터넷에서 여러분이 하는 일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찾고 이들과 소통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2. 서울 A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김진영(47·가명)씨는 사범대를 졸업한 뒤 다시 대학에 들어가 동양화를 전공했다. 2005년 교단에 선 뒤에도 그림을 그렸다. 200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7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소통에 관한 주제를 주로 다뤘다. 올 겨울에는 온라인 수업으로 활용된 아이패드를 이용한 작품 전시회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 김씨는 15년 전과 지금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시선’이라고 말한다. 그때는 학교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말을 아꼈다. 전시장에서 수학 교사라고 굳이 소개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김씨는 10여년 전 교원 연수에서 처음 접한 명상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수학과 미술을 같이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씨는 “(두 영역이) 이질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고정관념”이라면서 “충분히 공존할 수 있고 서로 다르지 않다. 결국 그게 다 ‘나’”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가족, 학생, 동료 교사들도 이런 내 모습을 자연스럽게 바라본다”며 “세상이 바뀌었다”고 했다. 최근 자신의 여러 모습을 상황에 맞게 다채롭게 표현하는 ‘멀티 페르소나’ 현상이 곳곳에서 관측되고 있다. 내 안의 여러 자아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세대의 등장,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의 출현,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 전환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사람들이 써 온 ‘사회적 가면’을 눈치 보지 않고 벗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연예계에 ‘부캐’(부캐릭터) 열풍이 부는 것도 이런 현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나’라는 사람에게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이 있는데도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사회적 역할, 모습만을 강요해 왔다. 한 사람의 개성보다는 출신 학교, 고향, 직업 등 배경과 집단적 규범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수행해 내지 못하면 “너무 튀는 것 아니냐”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일쑤였다.잡코리아가 최근 직장인 5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회사에서의 내 모습이 다른가’라는 질문에 434명(77.6%)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남성보다는 여성, 40대 이상보다는 20대에서 그런 현상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상시 모습과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모습에 맞추기 위해서”란 답변이 41.2%를 차지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가 확산될 것이란 의견이 절반(54.4%)을 넘었고, 그 이유로는 ‘개인 특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61.2%)를 가장 많이 꼽았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가면을 강요하는 문화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 중 하나로 펭수의 등장을 꼽는다. 사람들은 초반에 펭귄 모습을 한 펭수 그 자체보다 펭수 안의 사람이 누군인지에 주목했다. 그러다 직설적이고 당당한 펭수의 말에 귀 기울이며 펭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를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펭수는 그냥 펭수’라는 것이다. 이성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산업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펭수 현상은 다양한 정체성을 표출할 수 있는 디지털 문화가 전면화되고 가시화된 것”이라면서 “이러한 실험이 사회에서 용인되는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이후 연예계에서는 트로트 가수 유산슬(유재석), 둘째이모 김다비(김신영)처럼 기존 캐릭터와 다른 부캐 연기를 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됐다. 이른바 ‘부캐 놀이’가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 낸 것은 자신 안에 있는 다른 자아를 꺼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최근 유두래곤(유재석), 린다G(이효리), 비룡(비·정지훈)으로 구성된 그룹 ‘싹쓰리’에 대한 인기도 같은 맥락이다. 부캐는 부수적으로 사용하는 캐릭터란 의미로 주로 온라인 게임에서 통용돼 왔다. 과거엔 익명성에 기대 나의 부정적이고 은밀한 모습을 몰래 꺼내 놓는 듯한 이미지가 있었다면, 최근 부캐 현상은 나의 장점, 개성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승구 서울대 미술대학 외래교수(작가)는 자신의 논문 ‘사회적 가면의 이탈·회귀를 위한 디지털 설계와 제어’에서 “최근 가면에 가려진 자아성을 노출시키려는 개인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과거에는 가면 뒤에 숨거나 가면을 제거하려는 개인들로 양분된 경향이 있었다”면서 “수많은 개인들이 가면의 착용과 해체를 반복하면 그러한 개인을 포용하기 위한 사회 시스템은 확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일반인 중에도 자신의 다양한 자아를 발산하는 사람이 많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상일(28)씨는 소셜벤처기업에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 사내에서 그는 ‘알파카’란 영어 이름으로 불린다. 하지만 직장을 나서는 순간 ‘윤망’이란 닉네임을 쓰는 사진작가로 변신한다. 김씨는 대학 때부터 인물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취미를 넘어 일상이 됐다. 다른 작가들과 함께 매달 하나의 주제로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모아 전시회도 연다. 그런데도 전업으로 삼지 않는 이유는 돈 때문에 찍기 싫은 사진을 찍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다. 김은하(34·가명) 변호사는 지난해 5월 ‘밀키웨이’란 이름으로 블로그를 개설했다. ‘먹고 마시는 즐거운 인생’이란 소개 글에서 알 수 있듯 맛집 탐방 후기 글이 주를 이룬다. 와인 사진도 종종 올린다. 블로그 활동과 변호사 업무를 ‘분리’하기 위해 블로그에 직업을 공개하진 않았다. 김 변호사가 블로거가 된 이유는 기록을 남기는 동시에 공부하기 위해서다. 사진보다 글에 초점을 둔 것도 이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설명에 팬도 늘고 있다. 하루 방문자는 400~500명. 많을 때는 1000명이 방문한다. 김 변호사는 “누군가 내 글에 댓글을 달거나 공감을 누를 때 ‘내 글이 인정받는다’는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SNS에서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고 꾸미는 게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렇게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을 ‘괜찮은 사람, 멋진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특히 2030 세대에서 이러한 시도를 존중해주는 문화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SNS 계정을 다양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멀티 페르소나 현상이 나타난 원인”이라며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시대가 열리면서 연결 상황에 맞게 정체성을 유연하게 가져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큰 기대 한순간에 무너져 황망하고 서운’, 고 박원순 시장 고향 분위기

    ‘큰 기대 한순간에 무너져 황망하고 서운’, 고 박원순 시장 고향 분위기

    고 박원순 서울시장 고향인 경남 창녕군 장마면 장가1구 마을은 박 시장의 갑작스런 사망을 애도하며 박 시장 장지 예정지인 선영에서 13일 진행될 유해 안치를 돕기 위한 준비를 차분히 진행하고 있다. 박 시장이 유언에서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고 한 부모 산소는 고향 마을 뒷산에 위치해 있다. 마을에서 걸어서 20여분 거리다. 장가1구 마을에는 박 시장이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기와집이 마을 회관 옆에 위치해 있다. 밀양 박씨 집성촌인 장가1구 마을에는 50여 가구에 주민 80여명이 살고 있으며 70~90대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많다. 장가1구 마을 이장 이주태(61)씨는 “마을 주민들은 박원순 시장에 대해 ‘큰 일을 할 인물’이라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한 순간에 기대가 무너지는 황망한 일이 벌어져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회관 옆에 임시로 설치한 천막에 삼삼오오 모여 박 시장의 갑작스런 변고 소식에 애도를 나타내며 마을차원에서 필요한 지원을 수시로 논의하고 진행하고 있다. 이장 이씨는 “13일 박 시장 장지에서 진행될 유해 안치 절차 등에 대비해 주민들이 토요일에는 박 시장 장지로 가는 길을 정리한데 이어 오늘 아침에는 새벽일찍 고 박 시장 집을 비롯해 마을 전체 청소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지에서 유해 안치가 진행되는 12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교통정리를 하며 장지를 찾는 조문객에게 마스크도 나눠주고 40~50대 마을주민 10여명은 장지 일을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을 주민들은 “박 시장이 일년에 1~2번은 고향을 방문해 부모 산소에 들러 인사를 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집과 마을을 둘러보고 갔다”고 회고 했다. 박 시장은 올들어 지난 3~4월에 고향 마을을 방문해 부모 묘소와 고향 집을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가 확산돼 장기화 되는 바람에 결국 방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고 박 시장은 지난해 창녕을 방문했을때 고향 마을 집에 보관돼 있던 초·중학교 시절 공부할 때 사용한 앉아서 공부하는 낡은 책상을 서울로 가지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박 시장 고향마을 옆집에 살며 의형제로 지냈다는 최윤열(63)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안타까운 심정이다”고 슬퍼했다. 고 박 시장 고향 창녕지역 ‘창녕박원순 팬클럽’은 지역 주민들이 조문을 할 수 있도록 창녕읍에 있는 팬글럽 사무실에 지난 11일 오전 분향소를 설치했다. 고인의 영정과 국화꽃, 박 시장이 2017년 쓴 ‘비화가야의 꿈. 내 고향 창녕을 응원합니다. 서울특별시장 박원순’이라는 메시지 등이 놓여 있던 분향소는 이날 자정까지 운영됐다. 김정선 창녕 팬클럽 사무국장은 “회원들이 ‘박 시장을 아끼는 지역 분들이 조문을 할 수 있게 분향소라도 마련하자’고 해서 준비하게 됐다”며 회원들이 박 시장의 비보에 애통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녕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광주 125번 확진자 전북 남원 골프장 방문

    광주 125번째 코로나19 확진자인 50대 A씨가 전북 남원시 골프장과 인근 식당을 방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8일 전북도에 따르면 A씨가 지난 4일 오전 5시 20분부터 낮 12시 10분까지 남원시 대산면 상록골프장을 다녀갔다. 이어 인근 고향맛집 식당에서 12시 20분부터 50분가량 머물렀다. 전북도는 같은 시간대 골프장과 이 식당을 다녀간 이용객을 파악하기 위해 “골프장과 식당 방문자들은 남원시 보건소(☎ 063-625-1339)로 연락해 달라”는 안내문자를 도민에게 발송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 독립군 양성… 만주 독립운동의 ‘숨은 공신’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 독립군 양성… 만주 독립운동의 ‘숨은 공신’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며 근대교육자인 임면수는 이회영이나 이상룡과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다. 전 재산을 털어 수원 삼일학교를 설립했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재원 조달에 몸바치는 등 만주독립운동을 뒤에서 도운 숨은 조력자이기도 하다. 신흥무관학교 분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결사대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가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돼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기거할 방 한 칸도 없었다. 임면수 선생은 1874년 6월 13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매향리(현 화성시)에서 아버지 임진엽과 어머니 송씨 사이에서 2남으로 출생했다. 삼일학교 설립에 기부한 재산을 보면 그의 가계는 중농 이상의 부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는 필동(必東) 또는 필동(弼東)을 사용했다. 임면수는 19세 때 나중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돌본 전현석과 결혼했다.선생은 어려서는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했지만 늦은 나이에 근대 교육을 받았다. 수원양잠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화성학교에 진학, 2년 동안 공부했다. 당시 화성학교 학생들은 일본군 군자금을 기부하는 등 일본에 협력하는 자세를 보였다. 러일전쟁에 통역으로 참가하는가 하면 각종 기관의 일어 통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은 항일투쟁이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주시경·이동휘 등 애국지사들과 교류 선생은 1905년 서울로 와서 한국사와 한국지리 등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던 상동청년학원에 입학했다. 선생은 국어강습회를 열었던 주시경과 이동휘 등 애국지사들을 그곳에서 만나 교류했다. 경기 강화에서 사학을 30여곳 설립해 교육 사업을 하고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는 선생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선생은 수원에서 이하영, 김태제 등과 함께 국채보상운동에 뛰어들었다. 국한문 취지서를 자비로 발간해 동참을 호소하고 경기도 각 지역에 배포했다. 반향은 컸다. 수원에서는 취지서 발표 2~3일 만에 당시로서는 거금인 500여원이 모금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1903년 29세의 선생은 젊은 동지들과 함께 유명한 신여성 화가 나혜석이 졸업한 수원 삼일여학교를 설립했다. 학교는 북감리교회로 운영권이 넘어가면서 설립 후 3년이 지나자 재정난을 겪게 됐다. 부호 강석호는 1906년 5월 거금을 기부했고 나중석도 부지 900여평을 기증했다. 선생도 집터와 토지, 과수원을 내놓았다. 현 매향정보중고등학교가 자리잡은 곳이 그가 희사한 땅이다. 1909년 선생은 삼일학교 교장이 됐고 다른 사립학교 설립도 도왔다. 선생은 1907년 기호지방 출신 인사들이 조직한 기호흥학회에서도 활동했다. 서우학회, 교남교육회, 호남학회와 같은 교육진흥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역마다 학회가 조직됐는데 기호흥학회도 그중 하나였다. 광주와 수원 등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19개 지부가 있었고 수원 지역 교육자로서 선생은 교육과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선생은 서울로 올라와 신민회에 가입하고 양기탁의 집에서 열렸던 구국운동회의에 참여했다. 신민회의 결의에 따라 모국을 떠나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기로 결심했다. 삼일학교 운영은 나홍석에게 위탁했다.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 10월 초 선생은 극비리에 가족을 이끌고 만주 봉천성 환인현 횡도촌으로 망명했다. 그곳에 먼저 정착한 이회영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1911년 6월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농가 2칸을 빌려서 신흥강습소를 개설했고 1912년 통화현 합니하로 이전, 신흥중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신흥중학은 후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는데 수만 평의 연병장과 수십 칸의 내무실은 생도들이 합심해 만들었다. 통화현 합니하는 독립군 무관 양성의 본영이 됐다. 선생의 역할은 재원 조달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유지비와 군사훈련비를 조달하고자 영하 40도의 한파와 폭설을 무릅쓰고 썩은 좁쌀, 강냉이, 풀나무 죽으로 연명하면서 동포들의 도움을 구하러 다녔다. 선생 부부는 객주업에 종사했는데 독립군의 연락소, 휴식소, 무기보관소, 회의실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독립운동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부인 전 여사는 수시로 방문하는 별동대, 특파대 등의 식사를 하루에 대여섯 번이나 내놓았고, 그들의 보따리와 총기를 맡아 챙겨 주는 등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독립군으로서 전 여사의 밥을 안 먹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전 여사의 인내심과 온순함, 예의 바른 행동에 누구나 머리를 숙였고 ‘독립의 어머니’로 칭송을 받았다. 선생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 당시 독립운동가로 선생댁에서 잠을 안 잔 이가 별로 없고, 그 부인 전현석 여사의 손수 지은 밥을 안 먹은 이가 없으니 실로 선생댁은 독립군 본영의 중계 연락소이며 독립운동객의 휴식처요, 무기보관소요, 회의실이며 참모실이며 기밀 산실이었으니….” 만주의 한인자치기관 부민단에서는 1916년 3월 16일 독립운동가들의 근거지를 위협할 일본영사관 분관 설치를 제지할 방안을 논의했다. 그 방책으로 결사대 200명을 편성했고 7~8명은 통화현 시가에 잠입했는데 선생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1916년 9월 9일 안동 주재 일본영사가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낸 ‘재만 조선인 비밀결사 취조의 건에 대한 회답’ 등에 선생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지(통화현)의 배일자 중 유력자인 결사대원 임필동”이란 표현에서 당시 만주 독립운동계에서의 선생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양성중학교 교장 일하며 제2 신흥무관학교로 선생은 1910년대 중반 통화현 합니하에 설립된 민족학교인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활동했는데 이 학교는 제2 신흥무관학교 격이었다. 교수로 재직한 이세영과 재무감독 이동녕 등은 신흥무관학교의 실질적인 중심인물이었다. 3·1운동 이후 일본군들은 1920년 간도로 출병해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체포·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선생은 1920년 6월 12일 밤 해룡현 북산성자 삼도가 김강의 집에서 체포됐다. 일본 경찰관과 친일 조선인을 암살하고 동지들을 통해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송금하려 한 혐의였다. 선생은 압송돼 가던 중 한국인 경찰 유태철의 도움으로 여관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선생은 낮에는 숨고 밤이 되면 걸어서 14일 만에 길림성 이통현 고유수 한인 농촌마을에 도착해 동포 박씨 집에 은둔했다. 그곳에 머물다 장춘을 거쳐 부여현에 도착해 안승식의 도움을 받았고 그의 집에서 겨울을 보냈다.●아담스기념관 건축 감독… 고문 후유증에 타계 그러나 1921년 2월쯤 길림시내에 잠입해 활동하다 밀정의 고발로 길림영사관에 체포된 뒤 평양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다. 전신이 마비될 정도의 위중한 상태가 되자 일제는 선생을 석방했고 수원으로 귀향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의 가족사도 불운했다. 만주에서 20세가 돼 독립운동에 가담한 장남 우상이 1919년 국내에 잠입해 군자금을 마련하고 만주로 돌아가다 동상을 입어 객사한 것이다. 선생은 1923년 삼일학교 아담스기념관 건축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1930년 11월 29일 5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64년 세류동 공동묘지에 안장됐던 선생의 유골은 삼일상고 동산으로 옮겨졌고 기념비도 세워졌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고 묘소는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졌다. 2015년 기념사업회가 발족했으며 손자 임병무씨도 유품을 수원박물관에 기증하고 조부의 업적을 기리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열린 사저 꿈꿨던 盧… 현실 정치 끊고픈 文

    열린 사저 꿈꿨던 盧… 현실 정치 끊고픈 文

    노무현의 이웃 같은 퇴임 대통령 ‘부메랑’ 비극 지켜본 文 “잊혀진 사람 되고 싶다” “퇴임 이후, 세상과 거리 둘 것” 줄곧 강조 기존 매곡동엔 경호동 들어서기 어려워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부지 최종 낙점“고위공직자들이 퇴임 후에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 스스로 유배 보내는 심정이기도 했다. 시골에 살 곳을 찾았다. 그래서 고른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양산 매곡이다.”(2011년 ‘문재인의 운명’ 중) “대통령 이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대통령으로 끝나고 싶습니다.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이라든지 현실 정치하고 계속 연관을 가진다든지 일체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단 대통령 하는 동안 전력을 다하고, 끝나고 나면 그냥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고요. 대통령 끝나고 난 이후 좋지 않은 모습 이런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 문 대통령이 최근 퇴임 후 머무를 사저 부지(2630.5㎡·795.6평)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에 마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 안팎에선 그 배경에 관심을 쏟고 있다. 사저의 입지나 운영 방식은 퇴임 후 대통령이 현실 정치와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할 것인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본인이 ‘거리두기’를 희망하더라도 정치권과 지지자들이 ‘야인’이 된 대통령을 소환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퇴임 후 양산 매곡동 사저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본래 살림집이 아닌 곳을 공들여 가꿨기에 풀 한 포기, 벽돌 한 장에도 애착이 남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집권 3년차 통상적 절차에 따라 올 초부터 사저와 ‘패키지’로 묶인 경호 부지 물색에 나서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매곡동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탓에 경호동이 들어서기 어렵고 마을 입구에서 외길을 따라 2㎞ 넘게 더 들어가야 하는 등의 이유로 대통령 경호처가 최종 부적합 판정을 내린 것이다. 평산마을은 행정구역상 경남이지만 울산과 인접했다. 사저가 들어설 부지와 경부고속도로는 2㎞가량, KTX 울산역과는 10여㎞ 떨어져 있어 매곡동보다 접근성이 뛰어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 있는 김해 봉하마을까지 차로 50여분 거리, 어머니 묘소와도 비교적 가깝다. 양산의 교통 요지에 들어선 점을 두고 일각에서는 ‘열린 사저’를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일대가 통도사 땅이고, 평산마을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시골길이 이어진 데다 언덕 지형인 탓에 개방형 건물을 짓기는 어렵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취임 3주년 회견 때 퇴임 이후를 너무 상세하게 언급해 놀라기도 했지만, 대부분 초지일관 해왔던 말씀”이라며 “재임 기간 방전될 때까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퇴임 이후 현실 정치와 연을 끊고 잊혀진 사람으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 사저’를 지향했던 노 전 대통령과는 애초 생각이 다르다는 얘기다.‘열린 사저’의 개념이 등장한 건 봉하마을이 처음이었다. 퇴임 대통령이 지방으로 간 것도 처음이다. 국가균형발전과 권력기관 개혁, 실질적 민주주의의 착근을 위해 전력을 다했던 노 전 대통령은 부산·경남 일대에서 살 곳을 찾았지만 2006년 3월쯤 권양숙 여사가 고향인 봉하행을 제안했다고 한다(‘운명이다: 노무현 자서전’ 중). “대통령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시민으로서, 은퇴한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꼭 성공하고 싶었다”고 회고한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의식과 진보적 담론의 토론 공간으로 ‘민주주의 2.0’ 사이트를 개설했고, 봉하를 생태마을로 꾸미는 한편 친환경 농사를 지었다. 국민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웃 같은 퇴임 대통령의 모습을 사랑했고, 주말과 휴일에는 하루 1만여명이 봉하를 찾았다. 결과론이지만 ‘부메랑’이 됐다. 문 대통령은 ‘운명’에서 “봉하에 방문객들이 넘쳐나는 현상, 퇴임 이후 오히려 노 대통령 인기가 올라가는 일들은 하나같이 이명박 정권에게 정치적으로 해석됐다. 이후 시작될 불행한 사태의 전조였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엔딩 후에도 적지 않은 지지자들이 ‘순례’하듯 봉하를 찾고 있으며, 친노·친문 인사들뿐 아니라 많은 정치인들이 주요 변곡점마다 들러 참배하고 권 여사를 만난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못지않은 강력한 ‘정치적 팬덤’을 지닌 데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뒤 적폐청산과 권력기관 개혁,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코로나19의 성공적 대응에 따른 국격 제고 등 ‘레거시’(업적)를 쌓아 가고 있다는 점에서 본인 뜻대로 잊혀지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현실 정치와 연을 끊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결정이 노 전 대통령의 비극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한 친문 인사는 “대통령을 오래 지켜본 이들은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를 잘 알 것”이라며 “퇴임 이후 문재인의 상징성과 무게를 감안하면 이런저런 요구들이 많겠지만, 대통령의 생각이 단호해 기념관 건립 등 기본적 사업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나랏돈으로 생색”… 전국 ‘전두환 흔적’ 지우기

    “나랏돈으로 생색”… 전국 ‘전두환 흔적’ 지우기

    합천, 아호 딴 일해공원 명칭 변경 검토 대전현충원 현판도 안중근 글씨로 대체전두환 전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가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충북도교육청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도내 교육시설 600곳을 전수조사해 초·중·고 7개교에 남은 전두환 관련 건물 준공 표지석을 모두 철거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나랏돈으로 건립된 건물에 마치 개인 돈으로 지은 것처럼 표지석을 만들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표지석엔 ‘이 건물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하사금으로 건립한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앞서 도는 5·18민주화운동단체의 요구를 수용해 청남대에 설치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관련 시설물을 철거하기로 했다. 동상과 이름이 붙여진 산책로, 기록화가 철거 대상이다. 앞서 전날 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합천군도 ‘적폐 청산과 민주사회 건설 경남운동본부’의 요구에 따라 전 전 대통령 아호를 붙인 일해공원의 이름 변경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 단체는 “세월이 많이 흘러 시대가 변했음에도 일해공원 명칭을 유지하는 것은 합천 이미지를 왜곡할 소지가 있다”며 변경을 요청했다. 제주도는 지난달 도청 민원실 앞 정원에 설치돼 있던 전 전 대통령 기념식수 표지석을 제거했다. 1980년 11월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해 비자나무를 식재하며 설치한 것이다. 정부 기관도 동참하고 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지난 8일 대전현충원 현판과 헌시비를 안중근 글씨체로 바꾼다고 밝혔다. 대전현충원 현판과 헌시비는 1985년 준공 당시 전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로 만들어진 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지워도 ‘흔적’이 아직 많다. 합천에 있는 전 전 대통령 생가는 합천군이 1983년 본채와 곳간, 헛간 등 건물 4동을 복원해 현재까지 관리하고 있다. 초기 건립비와 관리비로 지금까지 수억원의 세금이 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 흥륜사 ‘정토원’ 현판, 전남 장성군 상무대 법당의 ‘전두환 범종’ 등도 있다. 일각에서는 “철거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동상의 경우 존치하고 과오를 함께 알려 반면교사로 삼는 것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2@seoul.co.kr
  • [오늘의 눈] 콜센터, 물류센터, 그리고 중국동포쉼터의 공통점/이민영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콜센터, 물류센터, 그리고 중국동포쉼터의 공통점/이민영 사회2부 기자

    중국동포가 많이 사는 서울의 한 자치구 공무원은 코로나19 초기부터 걱정이 많았다. 중국동포 중에 확진자가 많이 나오면 차별과 혐오가 커질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2~3월 해외 유입을 제외하고는 중국동포 가운데 환자가 많지 않았다. 우려하던 일은 6월 들어서 터졌다.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중국동포쉼터에 머물던 60대 남성 A씨가 방문판매업체 ‘리치웨이’에 다녀왔다가 확진 판정을 받았고, 집단감염으로 이어졌다. 10년 전 사회부 사건팀에 있을 때 이 쉼터에 취재를 갔다. 상가건물에 있는 교회에서 쉼터, 급식소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교회와 쉼터를 책임지던 목사는 “중국동포 중에 직장이 없거나 아파서 오갈 데 없는 사람을 위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확진판정을 받은 쉼터 주민은 대부분 60~80대 노인이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곳을 할퀴고 지나갔다. 사회적·경제적 약자가 피해를 더 크게 봤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중국동포, 현대판 ‘여공’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콜센터 여직원, 물류센터의 일용직 노동자가 단체로 피해를 입었다. 서울시가 매일 공개하는 코로나19 현황을 보면 이런 현상은 극명해진다. 발생원인별로 확진자를 분류해 놓은 표는 종교시설이나 모임을 제외하면 부천시 쿠팡물류센터, KB생명보험·AXA손해보험 등 콜센터, 방문판매업체 ‘리치웨이’ 및 중국동포쉼터로 나뉜다.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거나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많았다. 한 친구는 코로나19로 직업 간 계층이 극명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고 했다. ‘인서울´ 대학을 나온 친구는 재택근무를 하고, 전문대를 나온 친구는 여전히 만원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자영업을 하는 친구는 아예 가게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공부 제일 잘하는 의사들은 대구에 내려가서 고생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맞받아쳤지만 코로나19가 노동환경이나 경제수준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지난 2월 말,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70대 여성 중국동포 B씨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B씨는 고향인 칭다오를 방문했다가 한국에 돌아온 뒤 지병 치료차 다니던 대학병원을 방문했다. 별다른 증상은 없었지만 중국 방문 이력이 있는 B씨에게 의료진은 코로나19 검사를 권유했다. 10만원이 훌쩍 넘는 비용 때문에 B씨는 검사를 거부했다. 며칠이 지난 뒤 B씨는 무료로 검사를 해준다는 말을 듣고 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았다. 보건소에서도 증상이 없다면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는 없었다. 때마침 B씨에게 발열 등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검사를 받은 뒤 다음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병을 앓고 있는 B씨는 10만원을 아끼려다 목숨이 위험할 뻔했다. 10만원이 아까워서 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어딘가에 또 있을 수 있다. 콜센터, 물류센터, 중국동포쉼터에. min@seoul.co.kr
  • ‘전두환 전 대통령 아호 딴 ‘일해공원’ 이름 바꿔라’ 기자회견

    ‘전두환 전 대통령 아호 딴 ‘일해공원’ 이름 바꿔라’ 기자회견

    경남지역 시민단체가 9일 경남 합천출신 전두환 전 대통령 아호 ‘일해’(日海)를 따 지은 합천군 ‘일해공원’ 앞에서 공원명칭변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합천군을 방문해 공원명칭변경을 요청했다.‘적폐청산과 민주사회 건설 경남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합천군을 방문해 문준희 군수와 간담회를 갖고 일해공원 명칭 변경을 요구했다. 적폐청산 경남본부는 “세월이 많이 흘러 시대가 변했음에도 일해공원 명칭을 유지하는 것은 합천 이미지를 왜곡할 소지가 있다. 당장 내일이 아니어도 되니 군수가 결단해서 군민 의견을 수렴하면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며 일해공원 명칭 변경을 건의했다.문 군수는 “시대가 변했으니 공원 명칭 변경과 관련해 군민 의견을 모아 문제를 풀어보겠다”면서 “다만 합천은 전 전 대통령 고향이라 위인이든 죄인이든 군민들은 그에 대해 어머니의 마음을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해달라”며 군민의견을 수렴해서 변경여부를 검토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군수는 “합천은 과거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자부심을 가졌는데 날이 갈수록 꺾여 지금은 바닥 수준”이라며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되지 못해 곤혹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두환 생가를 국·공유 재산 목록에서 제외하라는 시민단체 요청에 대해서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문 군수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수백억짜리 기념관이 있으나 합천은 초가 하나다”면서 “군산에서는 울분이 생기지만 일제시대 흔적을 그대로 보존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는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생가 관리에 해마다 1000만원쯤 들지만 많은 돈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좋은 대통령의 생가인지 나쁜 대통령 생가인지는 사람들의 판단에 맡기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적폐청산 경남본부는 이날 오전 합천읍 일해공원 표지석 앞에서 일해공원 역사왜곡 규탄과 명칭변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표지석을 대형 현수막으로 덮어 가리는 퍼포먼스를 했다.이 시민단체는 “전국 곳곳에서 전두환 흔적 지우기와 역사바로세우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합천에서는 일해공원 명칭이 유지되고, 국민 세금으로 전두환 생가를 보존하고 있으며 생가 안내판에는 ‘국가 위기를 수습해 대통령으로 추대 되었다’는 역사왜곡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적폐청산 경남본부는 “내란 등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전두환 생가를 국·공유 재산 목록에서 삭제하고 일해공원 명칭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참회없는 전두환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으로 전 전 대통령 친필 휘호가 새겨진 공원 표지석을 덮었다.합천군은 2004년 황강변에 ‘새천년 생명의 숲’을 조성해 개원한 뒤 2007년 공원 이름을 전두환 전 대통령 아호를 딴 일해공원으로 바꾸었다. 공원입구에 전 전 대통령 친필휘호가 새겨진 표지석도 설치했다. 표지석 뒷면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출생하신 자랑스러운 고장임을 후세에 영원히 기념하고자 표지석을 세웁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공원 이름을 바꾼 뒤 여러 단체가 일해공원 이름을 반대하는 활동을 하며 명칭변경을 요구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합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다른 유골을 보낸 북한…김현희 “메구미 살아있을 것”

    다른 유골을 보낸 북한…김현희 “메구미 살아있을 것”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일으킨 북한 공작원 출신 김현희 씨가 일본인 납치피해자 요코타 메구미(납치 당시 13세)가 아직도 살아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희 씨는 7일 일본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가 전날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소식에 “딸을 만나지 못해 얼마나 아쉬웠느냐. 가슴이 아프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1984년 6월경 일본어 교육을 받기 위해 메구미를 만난 적이 있었던 김씨는 2010년 7월에는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방문해 메구미 부모와 만나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김씨는 메구미의 아버지가 “나이가 비슷한 나를 딸처럼 대해주면서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메구미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하자 기뻐하셨다”며 “딸에 대한 생각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회상했다. 특히 그는 “메구미가 살아있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흔들림이 없다. 어머니 사키에와 다른 피해자 가족들만이라도 딸들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메구미 부모와 편지나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자유롭게 연락을 취할 수 없었고 요코타 시게루가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최근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되면서 요코타 시게루 부부 등 일본에서 만난 납북자 가족을 떠올리며 건강을 기원하던 중 뉴스에서 갑작스런 부고를 접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는 지난 5일 지병으로 8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메구미는 중학교 1학년이던 1977년 고향인 니가타에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다 실종됐고, 나중에 북한으로 납치된 사실이 드러났다. 북한은 지난 2002년 북일정상회담에서 메구미의 납치 사실을 시인한 바 있다. 또 메구미가 1986년 8월에 김철준과 결혼해 1987년 9월에 딸을 낳았지만, 심각한 산후 우울증을 겪다가 1993년부터 별거에 들어갔고 1994년 4월 13일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발표했다. 2004년 북한은 메구미의 유골을 일본에 넘겨주었으나, 일본 정부가 DNA 감정을 해본 결과 다른 사람의 유골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메구미의 생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일본인 北 납치 피해자 상징 요코다 메구미의 부친 별세

    일본인 北 납치 피해자 상징 요코다 메구미의 부친 별세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건 피해자의 상징적 인물인 요코타 메구미(납치 당시 13세)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가 지난 5일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메구미는 중학교 1학년이던 1977년 11월 고향 니가타에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다가 실종됐고, 나중에 북한으로 납치된 사실이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메구미가 북한에서 결혼해 딸을 낳고 살던 중 1994년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했다. 2004년에는 “메구미의 것”이라며 일본 정부에 유골을 보냈다. 그러나 감정 결과 다른 사람의 것으로 확인되면서 일본 정부와 가족은 “북한의 말을 믿을 수 없다. 메구미는 살아 있다”며 꾸준히 송환 요구를 해 왔다. 아버지 요코타는 1997년 납치피해자가족회 창립 때부터 모임 대표를 맡아 부인 사키에(84)와 일본 전역을 돌며 딸의 송환을 호소하는 서명운동 및 사진전, 1400회 이상의 강연을 했다. 2006년 5월에는 서울을 방문해 북한에서 딸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씨의 어머니 등 가족들과 상봉했다. 이어 2014년 3월에는 북한에서 태어난 메구미의 딸이자 친손녀인 김은경씨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는 2007년 혈소판 관련 난치병 진단을 받고 모임 대표를 그만둔 뒤에도 딸의 송환 노력을 계속해 왔으나 2018년 4월부터 증세가 악화돼 줄곧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을 일으켰던 전 북한 공작원 김현희(58)씨는 요코타의 사망과 관련한 산케이신문의 취재에 고인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메구미가 살아 있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머니(사키에)라도 속히 딸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는 메구미가 북한에서 공작원들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할 때 만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코타가 끝내 딸과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면서 납치 문제를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해 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해 “실제로 이룬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그의 별세와 관련해 “전력을 다해 왔지만 메구미의 귀환을 실현하지 못해 애끊는 심정이다. 정말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경계에 집을 짓다…아버지 삶을 잇다

    경계에 집을 짓다…아버지 삶을 잇다

    한국인 건축가 유동룡(庾東龍). 그는 일제강점기 때 징용 간 경남 거창 출신의 부모 밑에서 2남 7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당시 한국인들은 대부분 조선학교를 다녔지만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돌봐야 할 책임 때문에 일본학교로 보내졌다. 일본학교를 다녔을지언정 유동룡이라는 한국이름과 한국국적을 고수했던 그였기에 유소년 시절부터 차별이라는 족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1968년 작가 활동을 앞두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국을 찾은 그는 한국의 수려한 강산과 문화에 매료된다. 이후 자연과 조화를 꾀하면서 환경에 순응하는 한국 전통공간의 아름다움은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 근간이 됐다. 민화를 시작으로 가구, 도자기 등 고미술품이 주는 조형의 순수함과 따뜻한 온기에 빠졌다. 틈날 때마다 전국을 여행하면서 전통건축물들을 손수 도면화했다. 일본에서 ‘이조의 민화’(1975), ‘이조의 건축’(1981), ‘조선의 건축과 문화’(1983), ‘한국의 공간’(1985) 등 저서들을 연달아 출간하며 조선의 예술미를 찬미했다. 이 책들은 아직까지도 조선 건축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건축가로서 ‘어머니의 집’이라는 작품 데뷔를 앞두고 성씨인 유가 일본 활자에 없어 곤란해지자 그는 ‘국제인’이 돼 살기로 결심한다. 뿌리를 찾기 위해 고국을 처음 방문할 때 출발했던 이타미공항에서 ‘이타미’라는 성을, 그리고 당시 의형제처럼 지내며 ‘요시아 준’이라는 예명으로 일본에서도 활동하던 작곡가 길옥윤 선생의 ‘준’에서 이름을 따서 작가명 ‘이타미 준’을 만들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일본경제 활황기에 서구화, 근대화를 지향하며 반짝거리는 첨단건축을 선보였던 다른 건축가들과 달리 이타미 준이 본인만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존재의 근원을 질문하는 모노하의 예술가들과 의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모노하의 대부 곽인식(1919~1988) 선생은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곽인식이라는 작가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타미 준은 없다”라는 말을 종종 할 정도였다. 사물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존재의 근원에 도달하려는 모노하의 정신은 이타미 준의 작가세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소재 그 자체의 물성을 찾기 위해 의식적으로 흙, 돌, 금속, 유리, 나무 등의 소재를 콘크리트와 대비시켜 조화와 대립을 꾀했다. 이타미 준이 데뷔한 1980년대 일본 건축계는 유리와 철이 중심을 이루는 획일화된 건축이 주류였다. 그때 그는 “현대건축에 본질적인 무언가가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체온과 야성미일 것”이란 말을 남긴다. 표현할 시대정신마저 잃어버리고 현대건축을 구성하는 건축언어조차 애매하고 뒤죽박죽인 상황은 그에게 표현할 주제의 상실이자 온기의 상실이었다. 당대의 획일화된 산업사회 시스템 속에서 반근대적인 태도로 현대건축을 실천하고자 했던 이타미 준은 “토착 재료를 사용해서 그 땅이 지닌 오래된 가치를 오늘날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면서 산업사회 이전의 조형의 순수성을 추구했다. 돌을 이용한 ‘각인의 탑’, ‘석채의 교회’, ‘M빌딩’, 그 지역의 황토를 현장에서 직접 찍어내어 만든 ‘온양민속박물관’ 등은 자체의 물성만으로 그 존재를 강하게 드러낸다. 도쿄의 아카사카라는 도시 한복판에 세워진 M빌딩에서는 깨어진 면이 살아 있는 돌을 외벽에 그대로 사용해 그 야성이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획일화된 도시의 흐름을 거역하기 위해 도시의 빈틈에 기둥이 되라는 뜻”을 담고자 했다.1990년대 이후 건축에서는 비교적 강인한 조형과 토착 소재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진다. “사람의 생명, 강인한 기원을 투영하지 않는 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태어날 수 없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닥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이타미 준·‘Architecture and Urbanism 1970~2011’ 중에서) 그는 일찍이 한국의 전통 건축이 지닌, 자연과의 조화와 환경에 순응하는 건축물에 매료됐다. 제주도를 포함한 자연을 캔버스 삼아 작업 활동을 펼치며 대지에서 인간과 자연의 매개로서 건축 역할을 고민한다. 그에게 건축은 “자연과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추구해야 하며, 공간과 사람, 자신과 남을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제”여야 했다. 재료 자체가 날것 그대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풍경과 융합될 수 있고 온기가 있는 고요한 작품을 추구했다. 특히 제주에서의 작업들은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환경과 풍경에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바람이 많은 자연환경에도 순응해야 하는 건축을 강조했다. 건축 자체가 주인공이기보다 바람에 의해서 조각된 건축물로 남아 그대로 그 대지에 스며들기를 추구한 것이다. 제주도는 그에게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바닷가에 있는 마을인 시즈오카 시미즈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에게 제주의 바닷가는 말년을 보내고 싶을 만큼 고국의 품과 같은 곳이었다. 이타미 준은 “국제적이며 보편적인 세계에서 독창성이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에서 생성된 사상이 아니면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제주에 건축가로서의 정점을 찍는 대표 작품들을 연달아 남긴다. ‘포도호텔’, ‘수, 풍, 석 미술관’, ‘두손 미술관’, ‘방주의 교회’, ‘비오토피아’ 등은 일본 건축계도 그를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외국인에게는 수상의 기회가 전혀 없었던 무라노 도고 건축상을, 한국에서는 김수근 건축상 등의 영예를 안겨 줬다. 이러한 작품들을 쏟아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지 우연한 건축주와의 만남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긴 세월 간직해 온 제주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이해가 바탕이 되고, 오랜 세월 굳건히 다져온 건축에 대한 그의 확고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풍토, 경치, 지역의 문맥(context) 속에서 어떻게 본질을 뽑아내고 건축에 스며들 수 있게 하는지를 고려합니다. 경치와 건축이 대립해도 좋고 조화가 돼도 좋습니다. 거기서부터 발생해서 새롭게 펼쳐지는 세상을 저는 보고 싶습니다.”(통일일보 이우환 작가와의 대담 중) 이타미 준의 건축에서 시간은 공간만큼이나 중요한 요인이다. 시간의 흐름과 역사성 속에서 유효할 때만 현대에도 유효할 수 있고, 그저 단순히 이념적으로만 말하는 것은 유행에 불과하며, 시간적인 두께가 없는 현재란 시제에만 머물 뿐 정착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새로운 대지를 접할 때나 복잡한 세상에서 새로운 행위를 하고자 할 때면 그 지역의 문화성과 역사성을 배경으로 하여 콘텍스트를 현재로 이끌어 내지 않고서는 사실성을 획득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그 땅이 내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한 신념과 정성이 있었기에 수십 년이 지난 작품에서도 사실성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자연에 저항하지 않는 유기체를 추구하고 그 지역의 풍토와 자연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어 내며 언젠가는 결국 흙으로 다시 돌아갈 건축을 생각하며 시간의 흐름을 담담히 반영한다. “완만한 기복을 보이는 산과 우리 전통의 마을이 조화를 이뤄 춤추는 듯하다”며 예찬했듯이 그는 이 땅에 없지만 그의 건축은 그렇게 바람과 함께 숨 쉬며 넉넉히 살아가고 있다. “나 같은 재일동포 2세들은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일본에서는 한국인으로 늘 경계에 서 왔다. 그러나 가슴속에는 늘 태극기를 품고 살아왔다”고 가슴을 치며 이야기하시는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어눌한 한국말로 ‘조국’이라는 어려운 발음을 하실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이 단어를 끌어내셨다. 건축 이야기를 안 하실 때면 “백자는 나의 스승”이라며 오로지 한국의 도자기 예찬만을 하셨던 분이다. 백자와 같이 따뜻한 온기를 품으며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푸근함과 고귀함을 지닌 건축을 하고 싶으셨던 분이다. 그렇게 한국의 백자는 아타미 준 건축철학의 바탕이 됐고, 대지에 순응하며 겸허한 자세로 존재하는 한국의 전통건축 또한 그의 건축 철학의 근간이 됐다. “시대 조류에 흔들리지 말고 너만의 감성을 키우고 역사 위에 서는 건축가가 되라”라는 말씀은 내게 귀한 유산이 됐다. “예순을 넘으니 이제 건축이 뭔지 알 것 같고, 일흔이 넘으니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신 분. 일흔살까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현재대로 복잡성이 일상화됐고, 그것이 오히려 장르가 돼 가는 이 시대에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찾기 위한 노력은 매우 쉽지 않지만 멈출 수 없는 소명이다. 더이상 도시엔 그 지역의 문맥이나 지역성 따위를 찾아내기 힘들다. 그러나 아버지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와 정신만큼은 이 복잡한 시대에서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나 또한 아버지를 이어 현재도 미래에도 목소리를 내기를 멈추지 않고자 한다. 건축가 유이화
  • “30년 검찰 경험 살려 檢개혁 완수할 것”

    “30년 검찰 경험 살려 檢개혁 완수할 것”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온몸을 바치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병철(62) 당선자는 19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검찰에서 일할 때, 검사를 하려면 소병철처럼 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제 정치를 하려면 소병철처럼 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일하겠다”며 이 같은 각오를 전했다. 소 당선자는 검찰에서 30년간 일하며 대구고검 검사장, 법무연수원장까지 지냈고 은퇴한 뒤에는 전관예우도 마다하고 고향 전남 순천에서 후학을 양성하다 정치에 뛰어들었다.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검찰 개혁 청사진 수립에 참여했던 소 당선자는 “그때 미완의 검찰개혁이 아직도 가슴에 숙제로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월 영입 인재로 민주당에 입당, 지난 총선에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법 꼭 입법 추진” 소 당선자는 “지난해 많은 사람들이 검찰에 대해 걱정과 염려하는 모습을 보며 검찰에 근무했던 선배로서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면서 “국회에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는 법과 제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30년 검찰 경험을 토대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권력기관 개혁에 매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꼭 처리하고 싶은 법안으로는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법’을 꼽았다. 그는 “70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한 여순항쟁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적절한 보상을 해드려야 한다”면서 “전남, 전북, 경남까지 피해자들이 있기에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과 협력해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국회도 상생·협력하는 새 정치 보여줘야” 또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지원 특별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방문객들이 박람회만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순천에 머물며 돈을 쓰고 갈 수 있도록 관광 기반을 조성하겠다”면서 “작은 가게들이 전통을 이어 가는 도시재생이 가능하도록 중앙정부, 전남도와 긴밀하게 협의해 예산을 확충하고 법제를 정비할 것”이라고 했다. 초선 버킷 챌린지 마지막 주자인 소 당선자는 코로나19 이후 위기 극복을 위해 여야가 협력해 새로운 정치를 보여 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경제활동과 사회 교류 방법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중대 전환점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들의 삶의 질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국회도 상생·협력하는 새로운 정치를 보여 드리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에는 “다수의 힘이 아니라 포용성을”, 야당에는 “협치의 정신을 존중해 달라”고 제언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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