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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생일기념 특별배급 대폭 줄어(오늘의 북한)

    ◎경제난에 외화달려 식품·피복류 조달 극히 저조 「멸균이불」을 개발하라.세계적 대섬유회사의 산하연구소에 부과된 연구과제가 아니다.지난해 북한의 김일성 80회생일을 맞아 그의 건강과 장수문제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장수문제연구소」에 떨어진 지상명령이었다. 이처럼 북한의 최대명절로 치부되는 김일성의 생일(4월15일)을 전후해 북한전역이 각종 요란한 축하 및 우상화행사로 뒤덮이게 마련이다. 그의 81회생일을 앞둔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지난 1일 연례행사인 「만경대상 체육경기대회」를 개막한데 이어 6일 「4·15경축 중앙사진전람회」와 미술작품전시회 등을 잇따라 열어 본격적인 81회생일행사에 들어간 것이다. 현재 북한의 명절은 이른바 8대 국가명절과 4대 민속명절이 있다.8대 국가명절은 김일성·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당일 등 김부자 우상화 및 체제선전에 맞추어 지정하고 있고,4대 민속명절은 음력설을 비롯해 한식,단오,추석 등 우리 전래의 민속절등이다. 8대 국가명절 중 김일성 생일이 가장 중시되는 것은 물론이다.이른바 충성의 편지 이어달리기 행사를 비롯해 각종 예술공연,체육행사,토론회,전시회등이 북한전역에서 개최된다.특히 김정일 생일(2월16일)부터 김일성생일까지의 두달 동안은 각종 행사가 집중적으로 열려 공산주의사상 고취는 물론 김부자 세습체제를 굳히기 위한 분위기 조성의 기회로 활용된다. 김일성 생일행사는 연례행사와 해마다 새로 추가되는 행사로 구분된다.「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과 「만경대상 체육대회」등이 대표적 연례행사다. 이에 비해 올해 새로 추가된 행사로는 「만경대 고향집 찾기운동」과「김일성화 온실참관」행사가 눈에 띈다. 만경대 고향집은 김일성생가를 가리키는 말로 북한은 소년단원들을 대상으로 「배움의 천리길」행사를 통해 사상무장의 계기로 삼고 있는 것이다.평양 대성산에 자리잡은 중앙식물원내에 개관한 김일성화 온실을 찾는 「김일성화」참관행사도 같은 취지로 진행된다.김일성화는 지난 65년 인도네시아 방문때 수카르노대통령으로부터 선물받은 난초과 식물로 김일성의 63회 생일인 75년에 최초로 명명된 이름이다. 북한의 국제핵확산조약(NPT)탈퇴에 따른 국제적 압력과 당면한 경제난 등 북한을 둘러싼 내외의 환경변화 속에 열리는 올해 행사는 이외에도 예년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81회 생일행사의 또 다른 특징은 주민들을 위한 선심용으로 제공되던 이른바「생일 특별공급」의 절대량이 대폭 감소됐다는 점이다.김일성의 생일에 즈음해 식품류·피복류·생필품류 등을 특별 공급할 방침을 세우고 지난해말부터 조달사업을 추진해왔으나 실적이 극히 저조하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특별배급 계획이 큰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은 북한이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즉 외화부족과 대외신용도의 실추 등이 겹쳐 주민들에 대한 충성심 고양이라는 당초 의도 자체가 크게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선물명목으로 여성 1명당 팬티 1장을 지급하려는 계획이 중국측에서 현금거래를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 열반의 땅 「보드가야」 「불교의 바타칸」으로

    ◎아시아 11개국,사원 등 앞다퉈 건립/“세계 중심지 만들자” 국제단체 나서 부처 열반의 땅­보드가야.아쇼카대왕이 부처의 득도를 기려 세운 마하보디사원으로 유명한 인도 중북부 비하르주 황무지의 작은 도시가 세계불교의 최고성지인 「불교의 바티칸」으로 가꾸어진다. 이는 최근 10여년 사이에 경제적 부를 이루기 시작한 아시아의 불교국가들이 마하보디사원 주변에 자국의 성지순례객들을 위한 자체 사원과 인도인을 위한 빈민구제시설 등을 다투어 건립하고 있기 때문이다.인도는 힌두교를 주종교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불교유적지들은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돼 왔다. 현재 이곳에 진출해있는 국가들은 스리랑카 미얀마 티베트 중국 타일란드 일본 부탄 베트남 네팔 방글라데시 등과 가장 늦게 진출한 한국 등 11개국.각기 고유의 문화적 배경에 입각,건축양식 등을 달리하고 있어 시가지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띠고 있다. 스리랑카는 이 도시에 최근 1천만루피(4억원 상당)를 들여 부랑아 보호시설을 갖춘 부다가마 사원을 건립했다.이의 준공식 참석차 최근 방문한 라나싱게 프레마다사 스리랑카대통령은 『보드가야를 개신교의 예루살렘이나 카톨릭의 바티칸과 같이 불교의 고향으로 꾸며,동서양을 잇는 정신의 교량이 되게하자』고 주창했다.이곳에 진출한 국가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국가는 일본.두개의 사원과 빈민구제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국제불교기구인 마하야나보존재단(FPMT)은 모두 2억 루피(80억원)를 투입,이 도시에 불교공원인 마이트레야공원 건립계획을 세우고 있다.이 공원에는 명상센터와 평화정원 등이 꾸며지고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과 같은 규모의 거대한 불상 건립도 포함돼 있다.
  • 불모지에 뿌리내린 극단 「토지」

    ◎전북 등지 대학연극 주도 최솔씨,87년 이리서 창단/사무실도 없어 한동안 “동가식 서가숙”/4년만에 전국연극제서 우수상 수상/최근 문예진흥원서 「우수극단」 선정… 주민 큰 기대 문화의 토양이 척박한 전북 이리시를 중심으로 활동중인 극단 토지(대표 최솔)가 지난91년 전국연극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한데 이어 최근 문예진흥원이 뽑는 지방우수극단으로 선정돼 지역주민들 사이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실험성이 강한 극단으로 알려진 토지의 이같은 두드러진 성과는 지방문화의 활로가 새롭게 트이고 있다는 측면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있다. 지난 10여년간 대전 군산등지의 대학연극을 주도해온 극단대표 최씨는 지난 87년2월 평소 연극을 통해 알고 지내던 동호인 10여명과 함께 연극 불모지이자 자신의 고향인 이리에 극단을 창립했다. 이리지역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당시 이리에서 유일한 백화점의 사무실 한켠을 무료로 얻어 쓰는등 출발이 다소 순조로웠던 토지는 그해 네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의욕을 보였다.침체된 이 지역 연극문화 활성화에 한 몫을 하는듯 했으나 그 독지가의 뜻하지 않은 사정으로 지원이 끊기면서 극단은 1년만에 거리에 나앉는 운명을 맞게 됐다. 토지는 이때부터 약2년간을 동가숙 서가식하면서 연극연습과 공연을 펼쳐 이리지역에서는 「거리의 극단」으로 더 잘 알려졌다. 당시 이리역 광장에서의 연습도중에는 『너무 시끄럽게 한다』며 경찰관에게 내몰렸고,일부 시민들에게는 미친 사람 취급까지 받는등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이들은 지난 90년4월 드디어 지금의 이리시 동산동 20평짜리 건물지하에 보금자리를 틀게 됐다. 이사직후 이지역 무대에 올려진 「어린 왕자」(생 텍쥐페리작)와 「굿나잇 마더」(마샤로만작)는 보기 드물게 많은 관객이 모여들어 이들의 「터잡음」을 축하해 주었다. 특히 지난 91년6월 전국의 70여개 극단들이 참가한 가운데 경남 진주에서 열린 전국연극제에서는 당시 처녀 출전한 토지의 「삼포가는 길」(황석영작)이 전북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우수작품상을 수상,관록의 여타 극단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이와함께 지난 2월에는 문예진흥원이 선정하는 우수극단으로 뽑혀 연극계로서 결코 적지않은 돈인 2천5백만원의 예산을 올해 지원받게 됐다. 요즘 13명의 토지단원들은 오는 4월초 무대에 올려질 현대인의 심리적 불안정을 그린 부조리극「누군들 광대가 아니랴」의(박평목작)연습에 몰두,10여평 남짓의 연습장은 온통 열기로 가득하다. 이태주한국연극평론가협회장(단국대교수)은 이 극단에 대해 『지역문화의 색깔을 고수하는 고집이 있으면서도 작품 하나하나에 추구하는 표현양식이 아주 다양한 독특한 실험극단』이라고 평했다. 한편 부인 최희영씨가 이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고있어 연극인부부이기도 한 극단대표 최씨는 『좋은 연극을 만드는 극단이 꼭 무대많은 서울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고 못박은 뒤 『이리지역 문화예술발전을 위해 순수민간차원의 예술제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며 옹골찬 포부를 내보였다.
  • 「사퇴러시」에 보선대책 부심/민자·민주의 「미니총선」전략

    ◎“지지 높다” 4월 완승뒤 대세몰이/민자/“완패 면하자” 지도부 총력전 태세/민주 민자당의원들의 재산공개결과 엄청난 물의를 빚은 의원들이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출당되면서 조만간 「보궐선거 러시현상」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현재 유학성(경북 예천)·김문기(강원 명주·양양)의원이 사퇴를 공식표명했고 당진상조사특위의 활동이 최종 매듭되는 이번 주초까지는 의원직을 자진 사퇴할 숫자가 3∼4명 더 늘어나 모두 5∼6명이 「김배지」를 반납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다음달 6일 재산을 공개하는 민주당의원들 중에서도 몇명정도는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 이래저래 보선실시지역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따라 해당지역의 정치지망생이나 와신상담 재기를 노리는 전직의원들의 물밑 활동이 활발해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민자당◁ ○…민자당지도부는 아직까지 재산공개파문 진정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 보선실시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보선지역이 10여군데에 달한다면 소폭적이나마 「정치권 물갈이」로서의 의미부여도 충분한 만큼 민자당은 전력투구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은 특히 4월20일쯤 실시예정인 경기 광명·부산 동래갑및 사하등 3곳의 보선을 완승으로 이끌고 그 여세를 몰아 다른 지역에서도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특히 민자당은 보선을 계기로 깨끗한 정치구현을 위한 돈 안드는 선거문화를 반드시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때문에 공천자를 결정하면서 부정비리나 권력형 축재혐의가 조금이라도 있는 인사는 아예 초장부터 배제되리란 전망이다. ○…이미 보선이 확정된 예천과 명주·양양을 희망하는 정치지망생들이 최형우총장등 실력자집을 방문,자신의 홍보에 열을 올리는등 벌써부터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또한 다른 보선예상지역출신 인사들도 온갖 채널을 동원,유리한 고지선점에 동분서주하는 실정이다. 이때문에 몇몇지역은 벌써부터 예상후보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선거분위기가 움트고 있다. 예천의 경우 이대희전병무청장,박영환 청와대공보비서관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고 번형식전의원도 재기를 노리고 있다. 이와함께 명주·양양을 비롯,보선예상지역인 대구 동을및 경남 의령·함안등지에도 김배지를 노리는 인사들의 발길이 점차 분주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 ○…재산공개의 파문으로 전국적인 「미니총선」이 불가피하게 되자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민주당은 새로 보궐선거가 실시될 가능성이 큰 강원도 명주·양양이나 경북 예천,혹은 대구 동을 지역등에서 당선자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어서 큰 기대를 걸지는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히 김영삼대통령의 개혁드라이브로 현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80%에 육박하는 상황이어서 우선 다음달실시되는 경기도 광명,부산시 사하,동래갑선거구 가운데 적어도 한 곳이라도 당선자를 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광명뿐 아니라 부산에서도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로 노무현최고위원과 김정길전최고위원을 공천신청여부와 관계없이 공천,총력전을 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기택대표는이날 부산에 내려가 시지부현판식을 가진뒤 지역 언론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섰다. 이대표로서는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참패할 경우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없는 입장이다. 광명은 지난 13,14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후보가 1위를 차지한 지역이어서 부산과는 달리 6명의 공천자가 쇄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실시된 정당별 여론조사 결과 민자당이 50%,민주당이 20%의 지지율을 기록,당선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문기의원이 떠난 강원 명주·양양에는 최욱철위원장이,유학성의원이 물러선경북 예천에는 재야출신의 안희대위원장이 조직책을 맡고 있으나 아직 뚜렷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 문화학교 주최 청주권 문학예술기행 현장을 가다

    ◎정지용 생가앞 실개천 졸졸 흐르고/동학교도 「척양척위」 외친 삼가천 방문/보은출신 오장환의 시세계·작품 음미 서울을 떠나 중부고속도로를 2시간 남짓 달려 어스름할 무렵에 도착한 곳은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장내리.그 유명한 「동학보은취회」현장이다.문학예술기행에 참석한 일단의 순례자들은 18 93년 3월11일 2만이 훨씬 넘는 동학교도들이 20일동안 「척양척위」를 외쳤던 시위의 함성을 듣는듯 했다.한국문화학교 주최 문학예술기행 참석자들이 찾은 청주권 일대 문학예술기행의 첫 기착지.이암산 자락은 아직도 의연했고 삼가천은 유유히 물구비를 돌렸다.서원대 김정기교수(국사학)의 현장설명은 1백년전 일어난 「보은취회」를 곱씹게했다. 문학예술기행은 역사적인 현장들과 문인들의 생가,작품배경이 된 곳들을 찾아다니며 시인·작가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기행에서는 작고시인 오장환을 생전에 직접 만나본 적이 있는 원로시인 이기형씨의 증언과 충북대 김승환교수의 시세계에 대한 설명을 통해 만났다.자신에게는 고향이 아직까지 이상한 「죄의식」의 형태로 남아있다는 시인 김사인의 가슴저린 「고백」을 들으며,충북지역 시인들의 시낭송을 감상하며 참석자들은 날새는 줄 몰랐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신새벽을 맞은 기행참석자들.보은이 고향인 시인 김사인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오장환의 생가를 찾았다.「접시꽃 당신」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도종환씨의 안내로 찾은 오장환 생가.가옥구조가 불편해 올봄 개축할 처지에 놓인 오장환 생가.그래서 원형 그대로 보존된 생가를 볼 수 있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거라는 집주인의 설명을 들으며 참석자들은 안타까움을 달래야했다. 이어 등위로 쏟아지는 따뜻한 봄볕을 맞으며 시인 정지용의 모교 옥천국민학교와 10분 거리에 있는 생가를 찾았다.오래전 집을 헐고 새로 지어 옛모습은 간데없고 「정지용 생가가 있던 곳」을 알리는 동표지만 담벼락에 붙어있었다.대표작 「향수」에 등장하는 집앞 실개천만 졸졸 흐르고 있었다.88년 해금된뒤 고향인 옥천공원의 새명소가 된 시비.「향수」가 새겨진 지용시비앞에서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정지용의 생애와 문학을 이야기했다. 옥천시내를 내려다보는 참석자들의 표정은 감개무량하다.살살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40대 한 남자가 낮은 바리톤으로 최근 대중가요로 작곡돼 애창되고 있는 「향수」를 부르기 시작했다.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참석자들은 콧노래로 따라부르기 시작했다.수십년만에 되찾은 우리시대 시인의 주옥같은 시를 음미하면서…. 우리를 태운 두대의 버스는 옛터를 떠났다.이른 봄날 21일 저녁의 버스속에서 사람들은 고향을 「잃어버린」 오늘의 모습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그것은 내면의 자아를 잃어버린 초라한 행색이었는지도 모른다.
  • 영 그리니치천문대 “새단장”

    ◎17세기 건립… 15개월 보수 끝내고 오늘 공개 그리니치 표준시(GMT)와 동서 자오선의 고향인 영국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가 24일부터 말끔히 단장한 새 모습을 선보인다. 지난 17세기에 건립된 이 천문대는 런던 동남부 그리니치 지구에 자리잡고 있다.해마다 이 천문대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은 50만명이나 된다.그러나 지난 15개월동안 자료정리및 천장과 실내장식의 변경,전화선교체등 보수공사를 하느라 일반공개를 삼가야 했다.천문대측이 이처럼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나선 것은 복잡한 시간산정 방법을 방문객들에게 알기쉽게 풀이해 설명해 주고 이 천문대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천문대측은 이번 공사를 통해 앞으로 새로운 심벌이 될 국제 자오선 표시기도 만들었다.빛을 이용해 동서를 가르는 이 표시기는 방문객이 남반구 또는 북반구에 들어갈 때면 신호를 보내어 반구가 바뀜을 알려주게 돼 있다. 12개의 전시실도 새로 만들었다.여기에서는 영국 최대의 광선굴절 망원경을 보여준다.아동용 전시물들도 따로 전시한다.이밖에 빛과 음향으로 천문과 기상의 발달사를 설명해 주는 등 천문대와 일반시민들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쓴 흔적이 많다. 천문대측이 24일을 개관일로 잡은 것은 이날이 영국 발명가 존 해리슨의 탄생 3백주년을 맞는 날이기 때문이다. 해리슨은 선박 항해사들로 하여금 그들의 항해 위치를 정확히 조정할 수 있는 해상 측정기를 발명했다.그때 국왕 찰스 2세는 이 발명에 감동해 천문대를 하나 만들어야 겠다는 과학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인다.그 결과 그리니치 천문대가 탄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때의 항해사들은 남북의 위치를 알리는 위도 측정은 쉽게 했다.다만 동서의 위치를 알리는 경도 측정을 하지 못해 애를 먹어 경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알아내는게 큰 과제였다. 찰스 2세는 최초의 천문대장으로 존 플램스테드를 임명,그리니치 천문대로부터 별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토록 명령했다. 플램스테드및 그 가족이 살던 방과 밤에 별자리를 찾던 집무실도 이번에 복원돼 일반에 공개된다.그가 연구와 분석에 쓰던 자료들도 입던 옷가지와 함께 전시된다. 천문대가 세워졌을 때 그리니치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그뒤 이 마을 주변에 공장과 집들이 들어섰고 결국 런던 시내가 되고 말았다. 물론 이번에 보수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개관하는 곳은 바로 이 옛 그리니치 천문대다.현대적인 영국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의 본부는 런던 동북부 케임브리지로 옮겨져 있다.
  • 이씨 송환이후,이제 북이 할 차례다(사설)

    남북간의 문제는 합의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남북은 1년전 남북한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을 발효시켰었다.그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고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관계로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남북간 합의는 실천단계에서 북한의 일방적인 대화거부와 핵개발등 적대적 태도로 한발짝도 진전을 보지못하고 있다.특히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한데 이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선언함으로써 한반도에 긴장상태를 조성하고 전세계인들의 우려를 자아내기에 이른 것이다.세계평화는 물론이고 한민주의 장래를 위해서도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정부는 단절된 남북대화를 재개하기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그중의 실천적 본보기가 바로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 노인의 조건없는 북송이었다.이노인의 신분으로 보거나 남북간 상호주의원칙으로 볼 때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남북간 신뢰회복을 위해 초법적인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다시말해 우리정부의 숨김없는 인도주의 원칙의 발로인것이다. 그런데도 북한당국은 예상한대로 이노인이 북송되자 이를 체제유지를 위한 대내선전용으로 최대한 활용하는 등 이노인 무조건 북송의 순수한 취지를 왜곡시키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이노인은 분명히 말해서 우리가 강제로 납치해온 것이 아니다.이노인은 평양집단이 남침했을 때 그 대열에 끼였던 인물이다.그리고 그는 40여년간 공산주의 신봉자로 전향을 거부해왔다.그런데 어떻게 그가 「통일의 영웅」이며 그의 북송이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란 말인가.그뿐만이 아니다.북한은 NPT탈퇴의 정당성을 억지 주장하면서 신문과 방송등 선전매체를 총동원해 대남비방에 치중하고 있다. 북한은 이제 더는 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 선언등 무모한 군사 및 정치중심의 전략적인 민족문제 접근방식을 중단해야 한다.북한은 이와함께 남북간에 이미 합의한 이산가족 고향방문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이노인의 우선 송환을 고집하면서 이산가족 고향방문 사업을 무산시킨 것은 북한당국이다.더이상 이산가족의 재회를 막는다면 그것은 인륜을 거역하는 행위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우리정부가 취한 것 만큼이라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빠른 시일안에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이제 그들이 무언가 행동할 차례이다.아울러 다른 남북간 합의사항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남북대화의 마당으로 나와야 한다.
  • 이인모씨 송환의 교훈/김인철 북한부기자(오늘의 눈)

    지난해 1월부터 거듭된 북측의 송환요구로 우리 사회의 관심있는 이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과 동정을 동시에 받아온 이인모노인.그가 19일 판문점에서 북녘가족의 품에 안김으로써 15개월여에 걸친 지루한 「북송찬반논쟁」은 막을 내리게 됐다. 비록 병든 몸이나마 이노인은 휠체어에 실려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그러나 바로 그 시각 1천만 이산가족은 통한의 가슴을 씻어내릴 그 어떤 가능성도 엿보이지 않는 오늘의 현실에서 또다른 좌절감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그간 「형평의 문제」등을 제기하며 송환에 반대해왔던 많은 이들은 『이노인의 송환으로 얻어낸 것이 무엇이냐』며 정부를 겨냥한 또다른 공격을 준비할지 모른다.그러나 기자는 너무도 당연히 예측되는 이러한 불만에서 이노인문제가 남긴 교훈을 얻고자 한다. 사실 이노인의 송환은 『김영삼대통령의 용단에 감사한다』고 한 이노인의 말에서 드러나듯 대북자신감을 토대로 한 문민정부의 결단으로 실현됐지만 그는 이미 지난해 가을 북행길에 오를 수도 있었다. 잘 알려졌듯 남북한은 지난해9월 8차 평양고위급회담시 이노인송환과 관련,▲이산가족 고향방문교환사업의 정례화 ▲판문점면회소설치 ▲납북 동진호 어부송환등 우리측이 내세운 3개 요구조건을 놓고 본격적인 협상을 벌였으나 북측의 세번째 요구수용 거부로 절충에 실패했었다.그리고 당시 우리측 관련부처들은 이 조건의 철회여부를 놓고 마찰을 빚었으며 최고결정권자는 이 논쟁에 대한 결론을 유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말해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협상방식과 최고결정권자의 어정쩡한 태도가 우리 사회내부의 불필요한 마찰만 증폭시켰으며 이미 지난해 가을 북으로 돌아갔어야 할 이노인의 발걸음을 늦추게 했던 것이다.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이미 북측이 동의했던 2개의 조건마저 얻어내지 못한채 이노인을 돌려보내고만 것이다. 정치는 「차선의 선택」이라고 했다.이는 쌍방의 주장이 그 어느 경우보다 첨예하게 대립해온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때 더욱 그 뜻을 곰새겨야할 말인 듯하다. 그러나 다행히도새 정부는 이번 이노인의 송환에서 드러났듯 대세를 따르는 결단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이제 필요한 것은 남북간은 물론 우리 내부간의 협상에 있어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극단론보다 「차선의 타협안」을 찾아 한걸음 전진하는 선택에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용기이다.
  • 호지명과 김일성/안필준 전 보사부장관(굄돌)

    베트남참전 20년만에 필자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솔직히 말해 하노이에는 관광거리가 별로 없는데 그나마 있다면 베트남사람들이 자랑하는 호지명성전과 전쟁기념관정도다. 전쟁기념관은 중학교 건물하나를 고쳐 만든 것으로 호지명의 일생과 전쟁지도에 관한 이야기,충성스러운 호지명군대의 이야기(디엔비엠푸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내던 이야기),호지명의 작전지시에 의해 그가 죽은 후 사이공을 탈환했던 이야기들이 음악과 더불어 절정을 이루는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호지명성전은 호지명의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어 뉘어놓고 모든 국민들이 참배하도록 해놓은 곳과 호지명이 2차대전이후 30년간 집무했던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청와대 같은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이 건축물은 2층 목조였는데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수 있게 한장의 유리로 막혀 있을 뿐,1층에는 칸막이도 없는 30평 남짓한 한개의 방만 있었다.그방엔 긴 책상과 의자만 덩그렇게 놓여 있었는데 이 방이 바로 국무회의실을 겸한 통치자의 집무실이었다.방 입구에는 비서실장이 사용했다는 조그마한 책상과 의자가 1개씩 놓여 있었다.2층방으로 올라가려면 바깥으로 나와 나무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침실과 서재가 있을 뿐이었다. 필자가 호지명의 가족관계를 묻자 그곳의 안내원은 『그분은 월남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쳤을 뿐,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사신 분』이라고 대꾸하였다.필자가 또 호지명의 별장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성인을 욕되게 하는 외람된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고,동상이라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하자 『많은 다리와 건물이 있지만 어느 한곳에도 그분의 서명이 없으며 동상을 세우는 것은 오히려 그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만 호지명이 유언으로 『시신을 셋으로 나누어 하나는 하노이,하나는 나의 고향,하나는 사이공에 각각 묻어달라』고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이곳 하노이에 묻었노라고 했다.그러면서 안내원은 왜 그분이 공산주의를 민족의 이념으로 택했는지 그것이 의문일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필자는 안내원의 얘기를 듣고 자주로선이라는 점만가지고툭하면 김일성과 호지명이 동격화되었던 생각이 떠올라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 연극배우 최종원씨(이세기의 인물탐구:20)

    ◎혼신다해 역동적 연기하는 “진짜 배우”/주어진 역할에 정열바쳐 특유의 개성표출/「리어왕」서 고뇌하는 내면연기로 주목받아/갖가지 삶의 모습 소화해내며 끝없는 연기변신 시도 거칠고 투박하다.솔직하고 꾸밈이 없다.불같고 칼같은 그의 성격상 중용과 중도를 지키는 모호한 태도는 맞지않는다.기백과 의리,정의감과 정열로 뭉쳐진 연극배우가 최종원이다. 아직은 들판에 풀어논듯한 포효와 폭만이 도사려보인다.그러나 탁탁 부러지기보다 불에 달군 쇠처럼 강인함이 돋보인다.부러지는듯 휘어지고 휘어졌다가도 제자리에 돌아와 설줄아는 투지,꿋꿋한 자존심이 그의 대명사다.만사에 주저함이 없다.한다면 한다.연기를 할때도 몸을 사리지않고 전신을 던진다. TV출연 때문에 연극연습에 소홀한 선배나 후배를 보면 연극만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연극을 그만두어 줄것을 당당히 요구한다.TV인기,연기보충처럼 연극에 참여하는건 연극모독이자 관객모독,처럼부터 연극할 자격도 없다고 못박는다. 또 연출자나 제작자에겐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끌어낼수 있을만큼 완벽하고도 만족한 여건을 갖춰달라고 말한다.그는 언제 어디서나 연극배우의 입장에서 배우의 권한을 옹호하고 주장한다. 한때는 연기자그룹을 발족하고 초대회장이 되어 본격적으로 배우들의 출연료 계약문제를 연극계에 제기한적도 있었다. 91년 연극의 해를 위한 모임에서는 그동안 창작극 활성화와 극단 지원 결과 과연 그 성과가 어땠는가를 따져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그때도 그자리에서 막연하게 단체를 지원하여 지원금의 효력을 희석시키기보다 한사람의 연기자를 집중적으로 지원해보는 방법을 고려해보는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이런식으로 열성적으로 연극무대를 지켜왔다.20년간 1백여편,아마도 그처럼 많은 연극에 출연한 배우도 드물 것이다.최종원이 끼지 않으면 연극이 안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주어진 무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게 밀착하여 그는 이미 「최종원 특유의 색깔과 체취가 물씬 풍기는 살아있는 연기」를 구사한지 오래다. 최종원의 출생과 성장기는 마치 일부러 설정해놓은 무대와 인물구성처럼 파란만장으로 점철되어있다.그것은 어쩌면 소설이나 연극보다 더 가파른 삶의 진실이라 할수 있다. ○탄광촌서 유년기 보내 강원도 태백,광부의 8남매중 막내.태백공고 졸업후 그는 그의 부친이나 형들처럼 함태 탄광에서 탄분석기사로 일한적이 있다. 이 일을 하기위해 3개월동안 갱(갱)속에서 생활하는 연수기간을 거쳐야했다.그리고 3개월 연수를 끝내고 갱속에서 나오던날,동료중의 하나가 지하로 떨어져 죽는 슬픔을 눈앞에서 겪었다.그는 동료의 시체를 찾아내겠다고 울부짖었다.그러나 수직 6백m 지하로 떨어지면서 비좁은 갱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을 시체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낼수 없었다. 동네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이 죽어나갔다.곡소리가 그칠날이 없었다.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은 부인네들의 통곡소리,이런 생활에 지쳐 걸핏하면 보따리를 싸들고 도망치는 가족들,남자들은 대낮부터 술상에 둘러앉아 탄가루에 찌든 목을 술로씻어 내렸다.슬픔은 차라리 사치임을 그는 어린시절에 진작 터득하고 있었나보다.어머니에게 손목을 잡혀초상집에가면 어른들은 술마시고 어린애들은 떡이나 국수를 얻어먹는다.청소년기에는 남의 상가에 가서 상여메는 일을 도맡다시피했다.상여를 멨던 광목한필을 얻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도 나무도 심지어는 빨래줄에 널린 빨래까지도 온통 검은색 뿐인 묵화같은 탄광촌,그는 둘째형이 메탄가스로 질식사하는 사고를 겪은후 더이상 참지못하고 고향을 탈출했다.술집외상,싸움질,비통,울분,가난과 무기력이 집합된듯한 극지의 땅을 떠나지않는한 타고 태어난 운명적 비극을 모면할수 없을것 같았다. 그는 집을 떠나 서울에서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던 손위 누이의 자취방에 얹혀살았다.농무가 눈앞에 쌓인것처럼 막막할뿐,대책도 목적도 없었다.평소 연극을 좋아하던 누이가 갑자기 「연극을 해보는게 어떠냐?」고 물었다. 연극이라면 고등학교때 박종화원작의 「금삼의 피」를 해본적이 있었다.그때 맡았던 「연산군」이 미련처럼 내면에서 꿈틀거렸다.그러나 배고픈 그에겐 연극은 너무나 한가한 소리였다.몇달을 빈둥거리다가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전)에 입학원서를 냈다. 면접하는 날 동랑 유치진선생이 『자네는 왜 연극을 하려는가』고 물었다.그는 대뜸 「연극을 위해서」라고 대답했다.연극을 위해서 왠지 자기자신이 필요한 존재일 것 같았다.남다른 경험을 요구하는 연극무대에서 그는 끝내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70년,전국대학생극협의회가 주최하는 연극 「콜렉터」로 정식 데뷔,그때 협의회 자문으로 있던 유현목 하길종감독이 그의 연기의 가능성을 인정해주었다.그는 차츰 연극무대에 침몰되어갔다.의사 형사 주정뱅이 농부 공사판 감독에서 백만장자 워벅스,무기력한 세일즈맨,에쿠우스와 햄릿,방화범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많은 연기변신을 시도해나갔다.연극평자들로부터 「좋은 재목」「탄탄한 연기자」「능란하고 현란한 연기구사」로 평가되기도 했다. ○70년 「콜렉터」로 데뷔 그러나 모든 역할이 그때마다 절실하게 밀착되는건 아니었다.전혀 엉뚱하고 생소하여 접근이 불가능한 역할은 얼마든지 있었다.83년 안민수연출의 「리어왕」이 그랬다.오랜만에 동랑의 연극에서 타이틀 롤을 맡게됐으나한달반의 연습이 지났는데도 도무지 연기 이미지가 포착되지 않았다.하나의 역할을 끝내고 또다른 새로운 성격을 몸속에 채워야한다.그러나 리어의 모습은 아득한데서 맴돌뿐 이에 탐닉되지 않았다.그는 이 역할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최종원의 잠재된 수많은 가능성을 간파하고있던 연출자는 오히려 그에게 1주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리어는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한 가정에 가장이 있고 회사에는 사장이 있듯이 그는 한나라의 왕이다.너무 부담갖지 말라』고 위로했다.리어왕의 고뇌와 갈등이 전광처럼 뇌리를 스쳤다.결국 「리어왕」은 최종원의 내면연기를 끌어낸 화제작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무슨일에든 망설이는 법이 없다고 했으니 시시때때로 연극이냐 생활이냐,연극에 대한 회의에 시달렸다.연극의 열성만큼이나 다른 일을 했다면 그도 남들처럼 풍요롭게 살수 있었을 것이다.아무리 온몸을 던져 무대를 지켜도 느는건 눈덩이처럼 커지는 빚뿐이었다.연극을 할수록 가난의 공동은 깊이 패어갔다. 연극초기때부터 줄곧 살고있는 명륜동3가 언덕바지에서 부부(부인 정영애씨)와 딸 둘(고1,중3)네식구가 전셋집을 전전하면서 그는 10원을 아끼기 위해 연탄을 직접 날라다 쓴적도 있다.생활때문에 어쩌다 1년에 한두편 TV베스트셀러극장이며 「마유미」등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그의 연극보다 TV나 영화출연을 더 좋아하는 것에 그는 위기감을 느꼈다. 『당신은 연극배우의 아내다.나는 처음부터 연극배우였다.이를 전제하고 결혼했었다』고 단호하게 못박았다. 가족들이 불편해 하더라도 그는 연극을 포기할 순 없었다.다른 동료들처럼 TV나 영화로 돌 생각은 더더군다나 없다.연극은 천직이고 다른일은 생계수단에 지나지 않았다.85년이후 TV출연을 일체 끊어버렸다. 연극무대를 지키는 배우는 드물다.자신의 직업에 자랑스러움과 긍지를 갖게된 그로서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다.관객들이 두시간전부터 극장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일본 연극계가 부러웠다.그는 뜻맞는 동료를 만나면 배우들의 의식개혁을 부르짖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삶을 다양하게 비쳐보는 연극의 매력,어떤 예술과도 견줄수 없다.인간이 전신으로 할수 있는 총체예술은 연극의 수단을 능가할 수 없다고. ○작년 「극발전연」 발족 지난해 그는 연극계의 선배이자 존경해온 연기자인 전무송과 의기투합,순수연극을 지향하는 극발전연구회를 발족하여 첫무대로 이강백작 김광림연출의 「북어대가리」를 동숭동 성좌소극장에 올렸다. 자신의 주어진 삶을 한치의 오차없이 지키려는 창고지기 전무송과 갇혀진 창고속의 삶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출을 꾀하려는 최종원의 거칠고 절박한 모습에는 그 옛날 탄광촌을 벗어날 때의 몸부림이 실려있어 보는이의 가슴에 전율같은 감동을 흐르게 한다. 더구나 23년간 기다려온 대선배 전무송과의 연기대결은 「연염의 조화」에 비유될만큼 그의 성숙을 확인시켜주었다. 이제 어떤 역할에든 책임져야 하는 위치. 심장의 고동소리까지도 생생하게 객석에 전달하고 싶어하는 그의 정열은 모든 고통과 시련을 딛고 이긴 투지의 결정에 틀림없다.머리카락 한올 까지도 혼신을 다해 역동적으로 연기해내는 배우가 우리에게도 있음을 연극계는 물론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 모두는 고마워하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연보 ▲1949년10월 강원도 태백 출생 최석담씨(84)와 김옥녀여사(85)의 4남4녀중 막내 ▲67년 태백공업고 광산과 졸업 ▲68년 함태탄광 탄분석기사 ▲69년 상경,서울 연극학교 (현 서울 예전)연극영화과 입학 ▲70년 서울연극학교 학생회초대회장 ▲〃 전국 대학생 극 협의회 주최 연극 「콜렉터」로 데뷔 ▲〃 수재민 돕기 지방공연 「점을칩니다」 1팬,「교행」 「춘향전」 ▲71년 재경 강원도 학우회주최 연극 「형제」로 강원도 일원 공연 ▲77년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공연(이진순연출 「북벌」) ▲83년 연기자그룹창립(초대·2대·8대 회장역임) 85년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연극영화과 졸업 87년 극단 부활과 이재한작·연출 「배비장전」 미국지역 45일간 순회공연 89년 영화 「마유미」 촬영차 도미 ▲90년 서울연극제 「아버지바다」 개인연기상 수상기념 뉴욕 연수 ▲91년 「연극의해」 기획위원▲〃 배우협회 창립(창립기념공연 윤대성작·정일성연출 「출세기」) ▲92년 일본동경 다이니아이리스 페스티벌 참가(김상열작 「길」) ▲현재 한국연극협회이사·극예술발전연구회 창립멤버(전무송과 발족) 「거룩한 직업」「어린왕자」「달집」「우회」「베니스의상인」「방화광」「노부인의 방문」「날개」「동물원이야기」「그리고 리어든양은 마시기 시작했다」「탱고」「검찰측증인」「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리어왕」「내·물·빛」「에쿠우스」「햄릿」「밤의묵시록」「신화1900」「욕망이라는이름의전차」「꽃을 사절합니다」「지금은 부재중」「티타임의 정사」「세일즈맨의 죽음」「환타스틱」「심판」「출구없는방」「애니」「만리장성」「아가씨와 건달들」「매춘Ⅱ」「헬로 미스터후라이데이」「하나를 위한 이중주」「기막힌 사내들」「아버지바다」「토선생전」「살로메」「누가 버지니아울프를 두려워하랴」「락스트리트」「그리운 앙트완느」「마네킹의축제」「변신」「격정만리」「길((욕)」「아침부터 자정까지」등 앙코르공연외 초총공연만 100여편이상,현재 「북어대가리」공연중.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마유미」「꿈」「나의아내를 슬프게 하는것들」등…. 영화연극상·서울연극제개인연기상·동아연극상대상·서울극평가그룹상
  • 이인모씨,방북신청서 제출

    【부산=이기철기자】 북한송환이 결정된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씨(76)가 15일 하오 북한방문 증명서 발급신청서를 작성,부산에 내려온 통일원 교류2과,대한적십자사 관계자를 통해 통일원에 접수했다. 이씨는 신청서의 방문대상기재란에 평양시 만경대 구역에 사는 부인 김순임씨(66),딸 이현옥씨(44)등 가족 3명을,방문목적은 고향방문과 가족상봉으로 적었다. 한편 이씨가 폐렴증세로 지난달 13일부터 입원해 있는 부산대학병원에는 지난14일부터 서울적십자병원 의료진등이 내려와 송환에 따른 실무작업과 함께 북측에 제공할 이씨에 대한 건강상태와 병상기록등을 수집·정리하고 있다.
  • 지학순주교(외언내언)

    13세기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와 그 제자들의 생활에 대한 전설은 14세기 초 라틴어로 쓰인 다음 이탈리아어로 번역된다.그 책 이름이 「작은 꽃」(이 피오레티)으로서 이탈리아 문학사상 걸작의 하나로 꼽힌다.거기서부터 「작은 꽃」은 성자나 위인의 일화풍 전기를 총칭하고 있다. 지학순주교가 12일 하느님 곁으로 갔다.그는 「정의가 강물처럼」 「내가 겪은 공산주의」등의 저술을 남긴 사제이지만 이제 「작은 꽃」을 펴내 드리는 것이 어떨까 생각케 한다.그만큼 지주교는 우리시대가 안은 고뇌의 역정을 살다가 간 사람이다.그의 생애에는 이 시대의 아픔이 투영된다.오열하는 피땀의 자국이 어린다.항상 억눌린 사람의 편에 있었던 사람 지주교.오늘의 우리 사회가 민주발전을 이룩했다고 한다면 그 밑바탕에는 지주교의 외침과 눈물이 깔린다.「작은 꽃」을 펴낼 만하다는 뜻이 거기에 있다. 85년 남북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방북했던 그는 분단후 처음으로 북한에서 미사를 봉헌한 남한쪽 첫 신부가 되었다.그때 그는 누이동생을 만난다.남매는 부둥켜안고 울었지만 누이동생은 옛날의 누이동생이 아니었다.아니,옛날의 누이동생임에는 틀림없었지만 그 입으로 나오는 마디마디는 누이동생의 말이 아닌 체제의 말이었다.『오빤 죽어 천당가겠다니 돌았구먼요』했던 누이동생.지주교는 그 천당으로 간 것이다. 북한을 다녀온 후의 지주교에게서는 온건의 비중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그는 투쟁 일변도로는 시대의 아픔을 수습할 수 없다면서 화해를 주장했다.가진자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면서 경고도 하고 있다.나만 옳다고 하는 배타주의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병폐라고 지적한 것도 결국 화해의 정신을 널리 펴나가자는 뜻이었다. 그는 영면하는 순간까지 누이동생과의 해후를 잊지 못했을 것이다.그것이 마음의 상처로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염원했던 민주발전의 결과로서 탄생한 새정부를 보고서 눈을 감았다.그 점에서는 행복한 죽음이기도 하다.
  • 김민기/음악생활 22년 결산음반 출반

    ◎CD·LP·카세트테이프 등으로 제작/그동안 작사·작곡했던 가요 직접 불러/미발표 「철망…」 방송금지곡 「꽃피우는…」도 수록 우리 가요사의 고전으로 평가되는 「아침이슬」의 가수 김민기(41)의 노래가 4장짜리 전집앨범에 수록돼 나왔다.(주)서울음반에서 내놓은 이 결산앨범은 지난 71년 데뷔음반 이후 22년만에 자신의 작품을 직접 불러 출반한 것으로 CD LP 카세트테이프등 모두 3종류로 제작됐다. 80년대 이후 주로 노래극이나 아동용 뮤지컬등을 발표하거나 음악감독으로 활동해온 그가 직접 노래를 부르기는 데뷔앨범 이후 이번이 처음.2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친 그의 이번 앨범에는 그동안 구전으로만 알려진 노래들과 공윤의 심의거부로 음반화되지 못했던 가요·작사 작곡자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됐던 노래등 뮤지컬 형식의 긴 곡들을 제외한 그의 거의 모든 작품 40곡이 실려있다.이 가운데 특히 「철망앞에서」는 지난해 남북예술단 교환방문 계획 당시 피날레곡으로 만들었다가 공연자체가 무산돼 빛을 보지 못했던 유일한 미발표곡이며시인 고은이 노래말을 붙인 「가을편지」와 송창식 작곡의 「내나라 내겨레」를 제외하곤 모두 자신의 작품이다. 이번 음반출반은 오랫동안 「구전」의 문화로서 존재해왔으며 그래서 늘 현실이기보다는 「신화」에 가까웠던 그의 노래들이 작자 자신에 의해 비로소 제모습을 드러내게 됐다는 점에서 특기할만 하다.더욱이 이 음반은 단순히 한 개인의 창작물 정리라는 차원을 넘어 한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주도했던 정신사적 흔적을 살필수 있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이번 전집앨범가운데 1집에는 저항가요의 상징으로 꼽히는 「아침이슬」「을 비롯,그에게 처음으로 방송금지곡의 굴레를 씌운 「꽃피우는 아이」,말의 오염을 경계한 「잃어버린 말」,실천적 인간형을 제시한 「아름다운 사람」,고교시절에 만들었다는 「친구」,가수 최양숙이 부른 「가을편지」등 11곡이 실려있다.2집에는 그 스스로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던 곡을 동료가수 한돌이 찾아내준 「눈산」을 포함,「새벽길」「철망앞에서」「바다」「고향가는 길」등 11곡을 담았다. 가장 대중적인 곡들이 수록된 3집에는 양희은의 목소리로 널리 알려진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로 시작되는 「상록수」,80년이후 「군인」이란 노래 말 대신 부르는 층에 따라 「투사」「교사」「농민」「노동자」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어 불렸던 「늙은 군인의 노래」,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도입부에 나오는 시를 토대로 작곡한 「주여,이제는 여기에」등 9곡이 담겨있다.또 4집에는 구전동요의 분위기를 살린 놀이요 「고무줄놀이」,어린이노래극 「개똥이」중에 나오는 「날개만 있다면」,반전의식을 시적 가사에 담은 「작은 연못」,동화적 선율의 「백구」등 9곡이 수록돼 있다. 이 음반제작에는 조동익(베이스기타),김광민(피아노),노영심(신디사이저),김영석(드럼),김덕수(장구)등이 참여했으며 장필순 한영애 안치환 김광석등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목소리를 보탰다.한편 김민기는 지난 90년 「겨레의 노래」사업단 총감독을 맡아 대중앞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드러냈으며 91년부터는 대학로 학전소극장을 열어 운영해오고 있다.
  • 외국인·해외동포 관광유치 안간힘

    ◎비자발급 간소화·묘향 산 등 추가개방/부족외화 벌고 부정이미지 개선일환/기자 등 체제비판 우려자는 “사양” 북한은 올해 주요 역점사업의 하나로 외국인및 해외동포를 상대로 한 관광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최근 입수된 북한관계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외국인및 해외동포를 대상으로한 관광사업을 해외이산가족의 방북사업보다 우선적으로 추진시켜 나가기로 방침을 세우고 수년내에 연간 1백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은 1백만명 관광객 유치를 위해 ▲여행사를 통해 북한관광을 일괄 신청할 경우 비자발급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관광지역을 종래 평양·남포·금강산·개성으로 재한했던 것을 원산·해주·묘향산·백두산까지로 추가개방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관광활성화 방침과 함께 북한은 「관광단모집수칙」이란 별도의 규칙을 정해놓고 있는데 ▲외국인 기자와 북한체제를 비판할 소지가 있는 자는 절대 관광단에 포함시키지 말 것 ▲남한관광객은 물론 남한출신자는 절대입북시키지 말 것 ▲해외동포는 순수 단체관광만을 허용하되 관광객은 방북기간중 가족·친지상봉및 고향방문등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할 것 등이다. 북한이 올해 주요 역점사업으로 관광사업을 설정한 것은 관광을 통해 부족한 외화를 획득하고,서해갑문 등의 산업시설과 백두산·금강산·묘향산·칠보산 등에 조성된 문화사적지를 통해 북한체제에 대한 외국인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시켜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93해외동포 방북사업 지침」 내용

    ◎초청 1순위는 “투자능력 있는 기업인”/대북공헌도 성향따라 투숙호텔까지 분류/한국상품 반입 단속… 이산가족 방문 억제 북한은 해외동포의 방북사업을 대북기여도 및 성분에 따라 선별적으로 허용하는 「93년도 해외동포 방북사업 지침」을 새로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침은 통일사업 및 경제적 이용이 가능한 해외동포의 방북을 확대하고 이산가족의 방북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방북사업 우선 대상자로 합영사업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기업인,체제에 우호적인 예술인·체육인 등을 꼽고 있다.최근 입수된 해외동포 방북사업의 세부지침은 다음과 같다. ▲기업인은 일정 규모 이상의 투자실적이 있는 사람의 방북을 우선적으로 허가하여 고려호텔에 무료로 투숙시킬 것. ▲예술인·체육인 등은 대북공헌도 및 성향별로 분류하여 보통강호텔 등 일반호텔에 투숙시키되 1주일 기준 3백∼4백달러 정도의 객실료를 지불토록 할 것. ▲종교인 동포가 보내준 선물은 주민들에게 사상적 오염을 미칠수 있으니 선물 접수의 거부 및 휴대품검색을 철저히 할 것. ▲해외동포의 선물들은 한국상표가 부착된 물건이 상당수 있으니 반입되지 않도록 단속할 것. ▲재북가족의 소식만 알려고 하는 동포의 방북신청서는 접수하지 말 것. ▲노년층 이산가족의 방북은 가급적 억제할 것. ▲해외거주 이산가족의 재북가족 상봉 허가시 방북수속은 6개월 전에 방북신청서 5부를 작성하여 재북가족 방문 희망일자를 명시하여 제출토록 할 것. ▲방북서류 접수후 방북희망 4주전까지 재북가족의 주소를 통보해 주고 출발 2주전에 FAX로 방북 허가를 해줄 것. ▲체북기간은 통상 2주 내외로 하고 가족상봉기간은 종전 4박5일에서 3박4일 내지 2박3일로 단축할 것. ▲상봉장소는 고향보다 평양시내로 국한할 것 등이다. 북한이 이같이 방북사업 지침을 새로 마련하여 해외이산동포의 방북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과거 대남통일사업의 일환으로 적극 추진했던 해외동포 방북사업이 주민들에게 자유사상를 유입시키는 등 체제수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 석별의 정 나누고…「신한국」그리며…/가는대통령·오는대통령 이모저모

    ◎비서·경호실 돌며 아쉬운 악수/노/조깅화 등 단출한 이삿짐 꾸려/김 김영삼새대통령은 취임 하루를 앞둔 24일 취임행사 준비와 새 국정운영구상에 몰두했고 상도동자택은 25일 상오의 이사채비에 하루종일 분주했다.노태우이임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한뒤 국립묘지참배,청와대경내순시등의 바쁜 일정을 보낸뒤 저녁에는 친지들과 식사를 하며 청와대에서의 마지막 날을 마감했다. ▷상도동◁ ○…김새대통령은 상도동에서의 마지막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상오 5시20분 「민주조기회」회원들과의 조깅으로 시작했다. 김새대통령은 이날 문앞에서 당분간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조깅멤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뒤 야호산을 4㎞ 가량 뛰었다.그리고 이들이 마련한 환송모임에 참석,준비한 케이크와 다과를 들며 지난 20여년 이상 조깅을 같이 해준 주민들에게 사의를 표했다. 조깅멤버들의 환송식에서 동네주민 김종운씨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큰 정치가 온 나라에 뻗치고 세계에 퍼져 나가길 기원한다』고 김새대통령의 행운을 빌었으며김새대통령은 『제가 청와대에 가더라도 시간이 나면 여기서 여러분들과 한번 뛰도록 해보겠다』고 석별의 아쉬움을 나타냈다. 주민들과의 환송연이 끝난뒤 김새대통령은 그동안 자택경비를 위해 수고한 김종언노량진경찰서장과 윤두영동작구청장 한선호상도동장등에게 전화를 걸어 노고를 치하했으며 상오 9시10분쯤 자택을 나서 취임전까지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김새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당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시내 모처에서 취임사준비및 각료인선구상을 가다듬었으며 밤 8시40분쯤 귀가해서는 64년부터 30년간 살아온 상도동에서의 밤을 맞았다. ○…김새대통령의 가족들은 이날 취임식 참석과 청와대입주를 위해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으며 부친인 김홍조옹은 하오에 상경했다.상도동측은 이미 주초에 이사짐을 꾸려놓았으며 25일 상오10시 1·5t 트럭 1대로 옮길 예정이다.이사짐은 여행용가방 7개,책을 담은 박스 3개와 액자 몇개가 전부이다. 그러나 간소한 짐에도 불구,김새대통령은 부친과 작고한 어머니 박부련여사의 사진,가족사진과 고향거제도의 전경그림등을 챙겼으며 평소 가까이 하던 붓·벼루·먹과 등산복·조깅화등도 넣었다.또 과자박스에 담은 책속에는 「권력이동」「정관정요」등의 정치학서적과 함께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의 연락처 노트도 들어있다. 김새대통령의 청와대행에는 오랫동안 상도동집을 돌봐온 김상봉·김순재비서와 시래기국을 잘 끓이는 지수할머니가 동행하며,20년간 김새대통령의 차를 몰아온 이충일씨는 대통령전용 1호차를 운전하게 된다. 그리고 상도동집은 지난 17일 귀국한 장남 은철씨 부부가 관리할 예정이다. ▷청와대◁ ○…노태우이임대통령은 임기 마지막날인 24일 상오 청와대에서 현승종국무총리를 비롯한 전국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국무회의를 주재한데 이어 국립묘지를 참배,현직 국가원수로서의 공식일정을 끝냈다. 노이임대통령은 이날 낮에는 청와대에서 정해창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함께 했으며 하오에는 비서실·경호실의 각 방을 돌며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노이임대통령은 이날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임기말의 어려운 상황에서 중립선거 관리내각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다하고 국정현안과제의 마무리,새대통령의 취임준비 등 정부이양작업을 순조롭게 진행시켜온데 대하여 노고를 치하했다. 노이임대통령은 회의를 마치고 본관앞 계단에서 국무위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노이임대통령은 이어 부인 김옥숙여사와 전수석비서관들과 함께 국립묘지에 도착,현충탑에 헌화·분향한뒤 고리승만·박정희전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노이임대통령은 오는 3월초쯤 전례에 따라 최규하·전두환전대통령을 방문,퇴임인사를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노이임대통령의 경내순시에 앞서 정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도 각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과 작별의 악수를 나누었다. 정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이날 사무실 짐정리를 마치는 등 떠날 채비를 완료했는데 25일 상오 노이임대통령 환송행사에 참석한뒤 각자 새생활을 시작할 예정. 그러나 비서관들과 행정관들은 일단 이사짐을 싸둔 상태에서 잔류여부 및 후임자가 확정될 때까지 「불안한」근무를 계속해야할 입장이다. 이들은 청와대를 떠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각오를 밝히면서도 물러난 다음의 생활에 대한 걱정에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25일부터 청와대 앞길이 전면 개방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측은 직원들의 주차장으로 사용했던 경내 분수대주변 차도양편의 주차선을 지우는 등 김새대통령을 맞기 위한 마무리 단장에 부산한 하루를 보냈다.
  • “남북한 분단상황 단편으로 진단”

    ◎중진 이호철씨 단편소설 「보고 드리옵니다」 발표/소 몰락이후 자유바람 부는 동구가 무대/반체제작가·북 교수 대화통해 통일모색 작가생활 40여년동안 분단과 통일문제에 천착해온 중진 소설가 이호철씨(61)가 단편소설 「보고드리옵니다」를 발표했다.그는 또 계간문예가 마련한 문학평론가 정호웅씨와의 대담에서 『당분간 장편보다는 좋은 단편을 쓰는데 주력하겠다』는 뜻을 비추기도 했다. 「계간문예」봄호에 실린 이 작품발표를 계기로 왕성한 작업활동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데뷔작 「탈향」이래 단신 월남민으로서 내 문학의 주제는 남북관계와 통일문제 입니다.이는 세계사적 시각을 가져야만 장편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세계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장편은 엄두가 나질 않더군요』그는 우선 지난해 발표됐던 장편소설 「개화와 척사」및 소련·동구 여행기 성격을 띤 「격변의 현장에 서서」등을 통해 이 문제들을 거칠게나마 점검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단편을 쓰면서 차츰 성숙시켜 나갈 생각을 갖고 있다. 『형식은 어떻든 남과 북의 핵심 성격을 밝혀 드러내 보이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소설은 분단현실에 대한 내 나름의 진단이고 또 현실을 넘어 통일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한 촉구이기도 합니다』 「보고드리옵니다」는 바로 이런 사고의 연장선장에 놓인 단편소설이다.소련이 몰락한뒤 자유화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폴란드를 방문한 주인공 이영호가 바르샤바 대학에 와 있는 북한인 교수 오기남과 만나 나누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고향을 이북에 두고 6·25 당시 월남한 이영호는 국내에서는 「반체제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소설가다. 동구와 소련·중국의 변화에는 아랑곳없이 「주체사상」만을 주장하는 오기남에게 이영호는 자신이 생각하는 통일된 조국에 대해 기탄없이 털어놓는다.『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보통 이웃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터잡이를 해주자는 거』라고 이영호가 운을 뗀다.그리고 말을 잇는다.『미리부터 통일조국의 모양을 자세한 프로그램으로 정하려 들지는 말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그때그때 떠오른 문제만큼으로 밀착해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대응해 가자는 거지요.여러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어느새 통일의 지평에 가닿아 있게 될 겁니다』라고.이는 작가 자신의 「통일관」이기도 하다. 평행선을 달리던 두 사람이 어느새 「한 가솔」처럼 이별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고있다.작가는 왠지 「껄끄러웠던」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진실된 감정의 표현인 눈물로 용해시킴으로써 이 사람,나아가 남북한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내다보고 있다.이 작품은 또 외국에서의 북한인 접촉사실을 국민에게 보고한다는 「풍자적」형식을 취함으로써 한층 개방적인 정부의 통일정책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등산광으로도 알려져있는 그는 자신의 등산체험을 토대로 『언젠가는 「아주 맑은 놈」 하나를 꼭 써볼 욕심』이라고 말해 소설가 이호철씨가 펴낼 등산소설에 대한 기대를 갖게한다.
  • 움직이는 미술관/전시·이론 교육병행… 기능확대 주력

    ◎국립현대미술관서 3년째 시행… 올 추진사업을 보면/문화소외지역 중심,강원 등 11곳 순회/광주·전주 등서 소장품전시회도 함께/임영방관장,“국민 모두의 마음속에 파고들도록 심혈” 지난해 연말로 시행 3년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이 전국민의 미술문화 향수권 신장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이에따라 국립미술관은 올해는 「움직이는 미술관」운영의 폭을 문화소외지역으로 집중시키는 한편 단순 미술전시뿐 아니라 이론교육과 시청각교육을 병행해 미술관기능 확대에 더욱 주력할 방침이다. 올해 「움직이는 미술관」이 찾아나설 지역들은 수도권의 중소도시 4곳을 비롯하여 강원도 2곳 충청도 1곳 경상도 3곳 전라도 1곳등 모두 11개 지역.「움직이는 미술관」과는 별도로 전국 대도시에서 미술관 소장품 순회전시를 병행,미술관을 방문하기 힘든 전국의 미술애호가들에게 수준높은 소장품을 접할 기회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소장품전시회는 부산과 광주 전주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펼치게 된다. 지난90년도 문화부 발족과 더불어 출범한 「움직이는 미술관」은 미술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국내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갖고 전국의 문화소외계층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운영됐다.92년도의 경우 한햇동안 이 미술관은 74일간 전국 25개지역을 찾아 25회 전시회를 가졌으며 관람인원은 16만3천9백명을 동원했다.한국화 서양화 조각등 각 장르를 망라하여 1백30여점의 작품을 갖고 학교등 학생대상지역과 산업현장 의료기관과 기업체및 은행,공공기관등을 찾았다. 미술관측의 이같은 이동전시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은 대단히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현장을 찾은 7백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4%가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대답했으며,82%가 생활과 미술에 움직이는 미술관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반응을 보였다.또 이들은 작품기호조사에서 1위로 한국화를 꼽은데 이어 수채화 사진 조각 양화 영상비디오등을 차례로 선호하고 있었다. 응답자들은 또 이 미술관의 문제점도 지적했는데,군단위지역까지의 운영확대,초보자를 위한 작품설명,국내외작품 동시전시,한국추상작품과 지방작가의 참여확대등을 희망했다.이같은 문제점외에도 미술관 관계자들은 전시기간이 2∼4일밖에 안돼 자주 움직이는데 대한 고충과 작품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개선할 부분들로 스스로 지적하고있다. 한편 「움직이는 미술관」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복제품을 보급해온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한해만도 유명작가의 복제품을 국내에 9백65점,국외에 2백65점을 보급한 바있다.국내의 경우 미술품생활화에 기여한 한편 외국 교포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는 조그마한 선물의 역할을 해낸 것으로 평가됐다. 임영방국립현대미술관장은 『움직이는 미술관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게 아니라 국민 모두의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미술관이 되기위해 심혈을 기울이고있다』고 말했다.관장은 『그리고 많은 국민이 일상생활속에서 그림을 감상할수있는 여유를 주기위해 효율적인 미술관 운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앞으로의 운영계획을 털어놓았다.
  • 대북한 정책(신한국 원년:17)

    ◎실질교류폭 확대… 통일태세 완비/화해·협력·동질성 회복 등 단계적 실천/「임기내 이산가족 상봉」 최우선 과제로 김영삼 차기대통령이 제시한 신한국은 향후 5년간을 통일의 바로 전단계로 규정하고 있다.금세기내에 통일을 실현시킨다는 목표아래 화해·협력의 시대정착,동질성 회복및 통일문화 마련,실질적 통일태세 완비라는 단계적 수순을 정해놓고 이를 착실하게 실천에 옮긴다는 계획이다. 김차기대통령이 임기내 통일 대신 굳이 금세기내 통일을 약속한 것은 집권 5년내 통일을 이루기 위해 무리한 정책을 펴는데서 오는 부작용을 방지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또 통일이 우리가 서두른다고 해서 당장 실현가능한 것이 아니라는,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및 국제정세에 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영삼정부는 임기내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책을 수립해놓고 있다. 김영삼정부의 통일정책은 주로 교류·협력의 틀을 다지기 위한 구체적인 개별 사안들로 구성돼 있다.특히 동질성 회복과 통일문화 마련을 위한 획기적 대책 항목에는 문화·체육등 비정치적인 부문의 교류·협력사업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새정부는 우선 남북이 모두 역사적으로 긍지를 느끼고 있는 학술과 언어에 대한 공동조사·연구를 실시함으로써 민족이라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굳게 잠긴 마음의 빗장을 풀겠다는 생각이다.종합국어대사전 편찬 10개년 사업추진과 만주·발해등의 문화유적 공동탐사등은 이같은 의도에서 비롯된 사업이다. 또 생태계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비무장지대에 대한 조사를 통해 우리의 자연에 대한 애착을 공유함으로써 남북 주민들에게 일체의식을 심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인 상호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고 3·1절과 8·15등 남북이 공히 민족적인 기념일로 인정하고 있는 날을 기해 문화예술축전을 개최해 경직된 이데올로기 밑에서 왜곡·변질된 북한내의 민족문화를 순화하는 동시에 점차 문화교류의 폭을 넓히겠다는 생각이다. 또 단일팀으로 출전,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던 탁구·축구등 타부문에 비해 교류가 활발한 체육부문의 교류를 확대 추진,올림픽과 아시안게임등 종합국제대회에 단일팀을 구성해 출전하고 체육교류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공동상설기구를 설치하여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의 공동유치를 교류·협력사업의 범주에 포함시켜놓고 있다.그리고 오는 95년에는 광복 50주년기념 체육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민족의 동질감을 대내외에 과시할 계획이다. 김영삼정부는 또한 점차 고령화되어가는 이산가족 1세대들의 한을 풀어주는데 대북정책의 역점을 두고 있다. 새정부는 이를 위해 고향방문단의 교환을 정례화하고 우편물 교환을 조기에 실시하며 판문점이나 기타 양측이 합의하는 장소에 면회소를 설치해 이산가족의 자유왕래및 접촉,재결합을 시도한다는 계획을 추진할 방침이다. 새정부가 이산가족 재회를 대북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정한 것은 임기내에 최소한 이산가족문제만큼은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따라서 이산가족문제는 김차기대통령의 임기내에 어떤 방식으로든 결말이 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새정부는 이같은 교류·협력을 위한 재원을확보하기 위해 남북한 신뢰구축에 따른 실질적 군축에서 발생하는 국방예산의 여유분을 전용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기존의 남북협력기금을 확충할 예정이다. 김영삼정부는 이같은 비정치적·인도적 차원외에 남북 직교역 실현,나진·선봉등 북한경제특구에의 적극 진출,남북합작사업 확대등 경제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한편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삶의 질을 높여 통일후에 들어갈 비용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또 통일이 장기적으로 이루어질 경우에 대비,국토개발및 산업구조를 재조정하고 단절된 교통망의 복원,금강산과 설악산을 연결하는 국제관광단지 조성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주력함으로써 통일 한국의 경제적 기틀을 다진다는 거시적 청사진을 펼쳐보이고 있다. 김영삼정부는 그러나 북한핵과 북한주민의 인권문제에 관해서는 보다 단호한 입장을 보일 전망이다. 김차기대통령은 북한핵문제를 민족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규정,국제사찰과 함께 남북동시사찰을 반드시 실현시켜야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또 계기가 있을 때마다 북한주민의 인권보장을 촉구할 계획이다.
  • 서울시민 43% “고향방문”/교통편 승용차 47%­버스 36%순

    이번 설날 연휴기간동안 서울 시민의 43%가 귀향길에 나서고 이들의 84%가 고속도로등 육로를 이용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로공사가 20일 동서조사연구소에 의뢰해 서울시민 20∼59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이용할 교통수단은 승용차가 47%로 가장 많았으며 버스가 36%,기차 14% 기타 3%순이었다. 귀향지는 대전이북지역인 중부권 35%,호남권 36% 영남권 25% 강원도 4%로 대전이남으로 귀향하는 호남과 영남의 비율이 6대4로 나타나 이번에도 호남방면 고속도로가 혼잡할 것으로 예상됐다. 출발예정일은 21일과 22일이 각각 37%·38%로,귀경 예정일은 연휴 마지막날인 24일이 54%로 나타나 국도등 우회도로 운행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도로공사는 이 기간동안 우회가 가능한 국도및 지방도를 소개한 「설날 귀성길 교통 안내도」30만부를 제작,20일부터 서울·동서울 요금소에서 귀성객들에게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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