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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격 세몰이 나선 이수성 고문

    ◎지지자 1천명 참석… 열띤 출정식 거행/‘국민대통합’ 등 3개항 정책목표 제시 신한국당의 이수성 고문이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대통령후보 경선 출정식을 열어 세를 과시했다.김호일 의원(마산 합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이고문을 지지하는 의원과 지구당위원장 91명을 포함,1천여명의 지지자들이 참석해 열띤 분위기속에서 1시간동안 진행됐다. 이고문은 이날 그동안의 강연식 연설을 탈피한 정치연설 스타일의 인사말을 통해 “이 나라 정치에 화평하고 신선한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면서 국민대통합,선진경제,문화대국,통일한국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했다. 이에앞서 최형우 고문을 지지하는 원외위원장 모임인 ‘정동포럼’의 송천영 회장(대전 동구을지구당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몰표를 가진 야당후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몰표를 모을수 있는 인물이 후보가 돼야 한다˝면서 “이수성대통령을 만드는데 함께 진군하자』고 호소했다.또 이현도 위원장(전주덕진)과 임인배 의원(경북 김천)이 호남과 영남을 대표해 “지역을 초월해 이수성고문을 밀어주자˝고 역설했다. 이고문은 출정식이 끝난뒤 여의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정발협이 특정후보를 지지하지 않기로 했는데. ▲정발협이든 나라회든 어디에 기대고 하지는 않는다.담담하게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하자는 마음뿐이다. ­최근 대구·경북지역을 방문한 것이 지역정서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는데. ▲지역감정에 호소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향에 가서도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으면 그를 선택하라고 했다.그러나 같은 값이라면 고향사람과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회창 고문이 승리하면 승복하지 않을 것인가. ▲이제 공정성이 담보됐으니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 샤갈/75년만에 교향 ‘방문’

    ◎22년 35세때 러 혁명후 탈출… 생애 마감때까지 불서 활동/스위스 손녀가 작품71점 벨로루시의 민스크서 전시회 마르크 샤갈이 고향인 벨로루시에서 쫓겨난지 75년만에 고향을 찾았다.유태인이면서 옛소련공화국인 벨로루시 태생인 그는 35세때인 1922년 러시아혁명후 소련을 탈출한다.당시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피하려 외국으로 나가려는 지성인의 물결에 합류,이후 프랑스에 정착한다.그가 고향을 등지자 소련당국은 고향인 벨로루시는 물론 소련 전지역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을 영구금지시켰다.물론 소련은 샤갈이 미처 갖고 나가지 못한 작품을 반출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샤갈의 작품이 고향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스위스에 사는 손녀 메이어 그라버씨(55)의 주선때문이다.그녀는 『샤갈 작품의 정신세계는 알게 모르게 그의 고향이 표현돼 있어 고향을 찾지 않고는 그의 영혼을 달래주기 힘들었다』며 전시회의 의미를 설명한다. 6월 초부터 민스크박물관에서 시작된 전시회의 또 다른 의미는 이를 계기로 옛소련때문에 ‘문화 황무지’로 남을수 밖에 없었던 벨로루시 공화국에 국가자존심을 회복시켜줄 것이라는 점이다.아직도 상당수의 예술인들은 샤갈이 벨로루시에서 청소년기와 중년을 보냈다는 사실을 모른다.당시 소련당국은 그가 유럽으로 탈출하면서 모든 백과사전과 예술관련사전에서 그의 이름을 지웠거나 벨로루시태생이라는 것을 나타내지 못하게 한 때문이다. 샤갈이 고향 벨로루시에서 얼마나 탄압을 받았는가는 샤갈탄생100주년 기념을 즈음한 옛소련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1987년 이스라엘이 탄생100주년 기념전을 화려하게 열자,소련의 지방정부였던 벨로루시는 일부 백과사전편집진들에게 압력을 넣어 반유태인 논조로 글을 싣도록 강요했다.한 편집인이 법적소송을 걸다 강제사직 당했고 한 영화인은 샤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제작했으나 벨로루시정부는 시사회조차 갖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의 미술인들은 『우리가 알기론 샤갈이 레닌의 초상화를 그리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오히려 레닌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그림을 그려 당국에서 추방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가 반공산주의자의 선봉이었음을 지적했다. 그라버씨가 가져올 작품은 구아슈 수채화물 8점,샤갈작품모음집에서의 수채화 4점,파리 현대미술관과 그의 생애 대부분을 보냈던 프랑스 니스의 샤갈미술관에서 빌려온 석판화 59점이다.샤갈이 해금돼 그의 기념관이 벨로루시 수도 민스크에서 동쪽으로 250킬로미터 떨어진 비테브스크 포크로브스카야거리 한 구석에 세워진 것은 1992년이었다.
  • 이수성 고문 “TK에 막판 승부”

    ◎한달새 두번째 대구·경북지구당 순례/인기 안뜨자 “반이회창” 바람몰이 강공 신한국당의 이수성 고문이 29일 또다시 TK(대구·경북)지역 순방에 들어갔다.지난달 28일 대통령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한뒤 한달새 두번째이다.이고문은 이날 아침 일찍 버스편으로 서울을 떠나 경북 문경·예천(위원장 황병태)·안동갑(김길홍)·안동을지구당(권정달)을 거친뒤 왜관에서 칠곡·성주·김천지구당 합동간담회를 갖고 구미에 도착했다.이고문은 30일 아침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할 예정이다.박대통령의 뜻을 잇는 「진짜 TK」는 이고문 자신임을 강조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이고문은 박대통령 생가에서 곧바로 대구로 향해 13개 지구당 가운데 9개 지구당을 샅샅이 훑는다.이고문은 특히 이회창 대표 진영에 가담한 강재섭 의원·김해석·박세환·강신성일·김종신 위원장의 지구당을 집중 방문,대의원들을 직접 상대로 「반이회창」바람을 일으켜 고향표를 움켜잡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고문측은 이번 TK 순방을 경선의 승부를 결정하는 중요한분수령으로 보고 있다.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미흡하고,정치발전협의회에서의 후보추대도 여의치 않은 것은 고향인 TK에서 지지세가 뜨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이고문측은 분석하고 있다. 이고문이 이번 순방에 앞서 28일 TK의 정치적 「대부」로 자임해오던 김윤환 고문을 이대표와 묶어 강력히 비난한 것도 이 지역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신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 구체적 신원 못밝혀/프놈펜방문단 2차면담

    【프놈펜 연합】 캄보디아의 프놈펜을 방문한 일본군 위안부 출신 김복동 할머니(72)와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소재) 원장 혜진 스님(32),한국정신대연구회 총무 이상화씨(33) 등 일행 3명은 18일 훈 할머니와 두번째 면담을 가졌다.그러나 그가 일제때 끌려왔다는 사실과 가족이 1남3녀로 둘째딸이며 고향이 진동이라는 것 등 지금까지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만 확인했을뿐 구체적인 신원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 훈할머니 “한국에 가고 싶다”

    ◎위안부 출신 김복동 할머니 만나 눈물만/가족수 4명… 김남조씨는 동생 아닌듯 【프놈펜 연합】 일본군 위안부로 추정되는 캄보디아의 「훈」할머니(73)는 18일 그가 일제말기 한국에서 선편으로 캄디아에 끌려온 후 한번도 고국을 방문한 적이 없으며 초등(보통)학교도 고향에서 2∼3년만 다니고 중퇴했다고 밝혀 그가 현재 부산에 살고 있는 김남조씨(62)의 누이일 가능성을 부인했다. 훈 할머니는 이날 『17 또는 18세(1942년 또는 1943년) 되던때 부산으로 추정되는 항구에서 다른 한국여성들과 함께 배를 타고가다 풍랑을 만나 대만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으나 이곳에서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 하루밤만 머물렀다』고 말해 「고향 진동을 떠난 누이가 대만에 살면서 1년후 한국을 이틀간 방문하고 동생 김남조씨와 만난 자리에서 일본군 장교와 결혼해 잘 살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했다」는 일부 보도는 자신의 얘기가 아니라고 밝혔다. 훈 할머니는 또 그의 형제자매가 여동생,남동생을 포함 1남3녀라고 거듭 밝혀 호적상 5남5녀라는 부산거주 김남조씨의주장과는 다르게 말했다. 한편 전날 『고향 진동에 살았던 남동생의 이름이 100% 자신할 수는 없지만 「김남조」로 어렴풋이 기억된다』고 밝혔던 훈 할머니는 누군가가 「동생이 김남조라고 하는데 아느냐」고 물어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느낌이 그렇게 간다』라고 대답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정황을 고려할 때 현재 부산의 김남조씨가 주장하는 누이 김남아는 대만으로 끌려갔던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이날 하오 「훈」할머니는 18일 프놈펜에서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복동 할머니(72)를 만났으나 끝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한채 망각의 세월에 대한 「설움이 북받쳐 오르는 듯」 눈물울 흘리기만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훈 할머니는 이날 이곳 두싯 호텔에서 김할머니와 혜진 스님(32·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원장),이상화 한국정신대연구회 총무(여·33) 등 그를 위로하고 돕기위해 캄보디아를 방문한 한국측 인사 3명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의 고향이 진동으로 바다와 가까운 곳이라고만밝힐뿐 자신과 가족의 이름,한때 같은 처지에 있었던 한국여성을 만난 소감,위안소 장소 등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 답변하지 못하거나 기억해내지 못했다. 훈 할머니는 그러나 김할머니로부터 『한국으로 가서 「나눔의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한국에 가고 싶다』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 이수성 고문 이 대표 공격 포문

    ◎대구·경북 방문중 “이 대표 자리 집착” 비난/고향사람 지지 호소… 공세적 경선전략 펴 신한국당의 이수성 고문이 이회창 대표를 본격적으로 「건드리기」 시작했다.16일 지역기반인 대구·경북(TK)지역 방문에 나선 이고문은 시·도지부 및 지구당 방문,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이대표가 대표직 사퇴와 관련한 신사협정을 위반했다』고 포문을 연뒤 『자리집착』『현실정치에 물들어』『말을 바꾸고』『4개월 총리』 등의 표현을 통해 이대표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이고문측으로서는 TK지역 방문을 계기로 보다 적극적인 경선전략을 펴나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지난달 26일 경선출마를 선언한뒤 나타났던 상승세가 TV토론등을 거치며 한풀 꺾이면서 이고문 캠프에서는 『우리만 점잔을 빼서는 아무 일도 안되겠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이고문측은 고향인 대구·경북 지역에서 입지를 확실하게 다진뒤 17일 밤 개최하는 대규모 출판기념회를 통해 세를 최대한 과시,「지지율 10%이상」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고문은 그러나 『지역을 볼모로 이기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나를 TK(대구·경북)의 대표성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부정한다』고 말했다. 이고문은 다만 『좋은 사람이 여럿일 경우 그 가운데 고향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이고문은 또 강재섭 의원(대구 서을) 등 친이대표측 위원장들이 『대구전체가 한 목소리를 내자』고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과 관련,『선거책략으로 TK의 분란을 이용하는 것은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실향민들 북에 식량 500t 기탁

    ◎연백군 화장리 향우회원 6,500만원 전달/“6년전 소식 들어… 굶어 죽지나 않았으면” 황해도 연백군(현재 지명 백천) 화장리 향우회장 이찬주씨(74·서울 광진구 구의동) 등 화장리 향우회원 4명은 16일 서울 용산구 삼각동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 본부에 북한의 고향 사람들에게 옥수수 500t을 전달해 달라며 6천5백만원을 기탁했다. 6·25전쟁때 부인과 아들을 북한에 두고 월남한 이씨는 『6년 전 북한을 방문한 재미교포 친척을 통해 아내와 아들,손자 셋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으로 가족들이 모두 굶어 죽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씨 등은 지정기탁 요건인 식량 1천t 이상을 구매할 수 있는 자금을 모으기 위해 추가 모금운동을 펼칠 계획이다.운동본부측은 그러나 이들의 모금액이 기준에 못미치더라도 공동기금에서 지원,옥수수 1천t이 화장리 지역에 전달되도록 할 방침이다. 한편 지난 9일부터 대북지원 식량 지정기탁 신청을 접수중인 운동본부에는 16일까지 8명의 실향민이 백천 청진 함흥 평강등 4개 지역에 식량을 보내달라며 옥수수 750t분인 9천만원을 기탁했다.
  • 「훈」 할머니 귀국땐 적극지원/정부

    ◎원하면 국적회복 조치·생계 보조도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출신으로 알려진 캄보디아 「훈」 할머니(73)의 한국방문에 대한 모든 절차를 적극 지원하고,영구귀국할 경우 국적회복절차를 밟아 생계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정부는 또 「훈」할머니 경우를 계기로 해외에 거주하는 위안부출신들의 소재를 파악해 지원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외무부 관계자는 이날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표부 박경태 대사가 15일 하오 「훈」할머니와 만난 자리에서,할머니는 고향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영구귀국에 대한 의사도 일부 비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캄보디아 국적인 「훈」할머니가 희망할 경우 우리 국적을 갖도록 한뒤 복지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 지원법에 따라 일시금 5백만원,매달 50만원씩을 지급하고 영구임대주택을 제공할 방침이다.
  • 인도 함피:상(세계 문화유산 순례:34)

    ◎찬란한 힌두문명의 잔해가 숨쉰다/50만 인구 북적이던 제국의 영화 간곳없고 황량한 폐허… 부서진 사원…/성소 비루팍샤 사원 줄잇는 참배객은 맨발로 해탈의 고행/사자머리에 인간의 몸체 흉몰스런 나라심하상에 머리7개 뱀신 「나가」가… 인도 남부의 거대한 유적도시 함피.14세기 중반 힌두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가 함피다.그 도시의 옛 영화를 찾아가는 길은 힌두교의 방랑승려 사두의 고행만큼이나 험난했다.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 남인도 카르나타카주 호스펫에서 북동쪽으로 13㎞ 거리다.소형 3륜차 뒷부분에 2인용 좌석을 단 오토 릭샤를 타고 어둑 새벽길을 40분 남짓 달렸다.탈탈거리는 오토 릭샤의 운전사 어깨 너머로 황토빛 바위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1336년 텔루구 부족의 두 왕자 하리하라와 북카가 세운 힌두왕국 비자야나가르가 남긴 「환상의 도시」 함피다.한때 르네상스기의 로마 인구에 버금가는 50만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함피는 중세 델리의 전성기에 필적할만큼 번성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은 1565년 이슬람세력의 침공으로 멸망하고,함피의 영광은 역사의 어둠속에 묻히고 말았다. ○16세기 이슬람침공에 멸망 함피는 지금은 고작 8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적한 시골마을로 변했다.그 전경을 보기 위해 함피에서 제일 높은 마탕가 언덕에 올랐다.비자야나가르제국의 젖줄인 퉁가바드라강이 한가운데로 흘렀다.강 유역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40여개의 부서진 사원과 바위무더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더없이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무려 26㎢에 걸쳐 있는 이 유적군은 지난 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함피의 폐허」를 더듬는 기자의 발걸음은 역사의 무게 만큼이나 경건했다. 먼저 함피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사원으로 꼽히는 비루팍샤 사원으로 향했다.제국시절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들이 달렸던 함피의 옛시장 바자르 길을 따라 한동안 걷자 높이가 52m나 되는 거대한 9층 고푸람(gopuram)이 나그네를 반겼다.고푸람은 도시나 궁궐 또는 사원의 입구에 세우는 층이 있는 힌두교식 탑이다.온갖 형상의 조각들로 뒤덮힌 고푸람을 뒤로 하고 비루팍샤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사원 안에서는 모두 맨발로 다녀야 했다.발을 내디딜 때마다 인두로 지지듯 뜨거운 땅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팜파파티 사원으로도 불리는 비루팍샤 사원은 비자야나가르 왕조 이전 호이살라 시대 말기에 처음 세워졌다.그리고 나서 1510년 툴루바 왕조의 크리슈나 데바 라야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개조됐다.비루팍샤 사원은 전형적인 비자야나가르 건축양식에 따라 널찍한 안뜰을 뒀다.장방형의 경내에는 현란한 만다파(mandapa,홀)와 묘당들이 즐비했다.그중에서 창조의 신인 브라마의 딸 팜파의 결혼을 선포하는 만다파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퉁가바드라강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사원의 노천 베란다를 타고 흘러 들어 부엌을 통해 안마당으로 새나가도록 한 설계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비루팍샤 경내엔 묘당 즐비 「비루팍샤」는 파괴의 신인 시바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시바는 브라만교의 경전 「리그 베다」에서는폭풍의 신 루드라의 존칭으로,길상을 뜻하는 형용사였다.그러나 시바는 훗날 토착적 요소와 결합해 대중적 신앙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예배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비루팍샤 사원 안의 지성소에는 시바 링가(Shiva linga)라는 시바신의 남근상을 신주처럼 모셨다.그 주위는 신상에 예배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댔다.그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야자를 그 자리에서 내리쳐 쪼갠뒤 야자 물을 머리에 바르거나 입술에 슬쩍 댔다가 신상앞에 흘렸다.그리고 무언가 간절히 빌고 있었다.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까.그들을 보니 문득 『해탈의 길은 맨발로 면도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수직으로 솟은 시바 링가와 신의 불꽃을 담은 신성한 불판,버터기름 타는듯한 누릿한 냄새….남인도 어느 힌두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물신숭배 의식이다.하지만 마지막 힌두왕조의 옛 터전에서 베풀고 있는 그 의식은 보는 이들을 한껏 주술적인 신비감의 늪으로 빠뜨렸다.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신의 현현을느낄수 있는 영혼의 나라 인도.인도는 정녕 신들의 고향이다.인도의 모든 마을에는 사원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다.10억 인도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다.아니 믿는다기 보다는 힌두신에 취해 산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3억이 넘는다는 힌두신들의 어지러운 형상을 머리속에 그리며 햇볕 쏟아지는 광야를 끝없이 걸었다. 광야를 지나 물살 빠르기로 소문난 투루투 수로를 만났다.수로를 지나서 바나나밭을 끼고 돌자 사자 머리에 인간 몸통을 한 흉물스런 나라심하상이 유령처럼 나타났다.나라심하는 보존의 신인 비시누의 네번째 화신이다.1528년 크리슈나 데바 라야의 통치 후반기에 세워진 나라심하상은 높이가 6.7m로 함피에서 가장 큰 조각상이라 했다.마치 연화좌에 올라 요가를 수행하는 요기(yogi)처럼 앉아있는 나라심하의 꼭대기에는 머리가 7개 달린 뱀신 나가(naga)가 버티고 있다.기괴하기 짝이 없었다.나라심하의 왼쪽 무릎위에는 원래 비시누신의 배우자이자 행운과 미의 여신인 락슈미상이 있었다.그러나 무슬림의 약탈로 지금은 여신의 오른쪽 팔 흔적만 남아 있다. □여행 가이드 함피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교통의 요충지」 호스펫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제일 편하다.호스펫에서 함피의 중심지인 함피 바자르까지 가는 버스가 상오 6시30분부터 하오 8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요금은 2.50루피(1루피는 우리 돈으로 30원 정도). 오토 릭샤를 이용하려면 50루피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자전거를 빌리는 것도 경제적이다.호스펫,카말라푸람 등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10루피를 주면 하루동안 사용할 수 있다. 함피의 숙소 사정은 여의찮다.세면시설 정도를 갖춘 게스트하우스가 고작이다.그러나 호스펫에는 냉방장치가 된 초보적 단계의 호텔들이 몇군데 있다.호스펫의 숙소들은 모두 24시간제다.
  • 「원조 TK」와 「진짜 TK」가 만났을때…

    ◎김윤환·이수성 고문 무슨 얘기 나눴을까/“된일도 안된 일도 없었다”/오찬 90분… “나라 장래 얘기만 했다” 13일 낮 12시 힐튼호텔 일식당 「겐지」 앞의 작은 정원.먼저 와있던 「진짜 TK」 이수성 고문이 막 도착한 「원조 TK」 김윤환 고문을 맞아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두사람은 사진기자를 위해 정원을 나란히 거니는 모습을 연출한뒤 홀안에서 배석자없이 마주앉았다. 김고문의 다음주로 예정된 경북 안동 방문이 잠시 공개리에 화제가 됐을 뿐이다.곧바로 두 사람은 반주는 겯들이지 않고 1시간30분 동안 오찬하면서 대화를 나눴다.점심값은 회동을 요청한 이고문이 내려했으나,김고문이 선배임을 내세워 끝내 자기가 계산을 치렀다. 이날 회동은 대구·경북 지역의 위원장들이 『한 사람을 밀어주고 TK지분을 확보하자』며 「행동통일」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이뤄져 관심을 끌었다. 회담이 끝난뒤 김고문은 『나라의 장래를 어떻게 끌고가야 하는가를 얘기했다』고만 말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이고문은 『내 고향은 경북이지만 김고문은 전국적인인물이라면서 영남배제론은 나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그는 선입견이 없는 백지상태』라고 강조했다. 이고문은 그러나 『오늘 누굴 돕는 차원의 얘기를 한 것은 아니다』면서 『김고문의 지원을 기대하기보다는 공정하기를 바랄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동에서 어느쪽도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그러나 허주(김고문의 아호)와의 관계개선을 은근히 기대했던 이고문측으로서는 당장 만족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허주는 같은 지역인데다 계산법 또한 「허주계산법」이라고 불릴 만큼 독톡하기 때문이다.
  • 일 총리­한국언론사 정치부장단 일문일답

    ◎“북,일인 처 모국방문요청 무응답”/여중생 등 행불 10여명 북서 납치 확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는 29일 방일중인 이경형 서울신문 정치부장 등 한국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단과 총리집무실에서 45분동안 회견을 가졌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지다. ­대북식량지원에 대한 입장은. ▲최종방침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60년대 북한에 간 뒤 소식이 없는 「일본인 처」들의 고향방문이나 편지왕래만이라도 할 수 있게 요청했으나 아직 답변이 없다.행방불명된 일본인들 10여명은 객관적으로 북한에 납치됐다고 볼 수 밖에 없다.각성제 밀수사건은 북한 정부가 모른채 대량생산할 수는 없다.북한이 (원료인) 염산에페트린을 대량 수입했다는 근거가 있다. ­대북식량지원과 일본인 처 문제를 분리 처리할 용의는.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나 한국정부가 같은 동포를 위해 협력을 요청하면 자세를 변경할 여지가 있다. ­대북 수교협상에 대한 기본입장은. ▲북한과의 조기 국교수교 교섭을 서두름으로써 한국과의 관계 악화를 원치 않는다.교섭이 재개되면 92년 교섭이 중단됐을때 제기했던 일본인의 안부에 대해 확인을 요구할 것이다.현재 교섭재개의 전망은 없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사업비 부담문제는. ▲일본 전문가들은 사업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일방위협력지침(일명 가이드라인)을 개정중인데. ▲개정작업 결과가 6월 공개된다.미일방위협력을 둘러싼 공해상의 행동등에 대해서는 최종 결정과정에서 한국측의 의견을 듣도록 하겠다. 하시모토 총리는 질문은 없었지만 배타적 경제수역(EEZ) 교섭문제에 스스로 말을 꺼냈다.그는 『한국이 EEZ문제 해결후 어업협정을 교섭하자는 입장을 고집하면 불행해지는 것은 어민들』이라면서 『(일정기한이 돼)어업협정이 끝나면 연안국주의로 단속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식량 지정기탁제 관심끈다(사설)

    남북적십자사 대표가 서명한 대북 식량지원 합의서 내용 가운데 남쪽 주민이 북의 특정 지역이나 대상자를 정해 구호품을 보낼수 있게 한 지정기탁제 대목이 국민의 특별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남쪽 실향민들이 북의 이산가족을 지정하여 직접 도울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북의 친지를 지정하여 구호품을 기탁하려면 무엇보다 그들의 생사 여부를 비롯,주소 및 가족사항등의 확인이 전제되어야 한다.말하자면 남북적십자사가 지정기탁에 합의를 했다는 것은 그동안 중단됐던 남북 이산가족의 고향방문까지는 아니더라도 생사와 주소 확인작업 정도는 후속조치로 논의,실현시킬 용의가 있음을 뜻한다고 본다.따라서 남북 적십자사가 「원칙」에 합의한 지정기탁제의 실현을 위해 조속히 구체적 절차 협의를 벌여 이것이 본격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북한측이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들 주민들이 남쪽 이산가족의 생존을 확인하고 구호품을 전달받게 될때 상당한 심리적 동요를 일으킬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정기탁제에 합의한 진의는 알 수 없다.다만 그들은 일본·미국 등지 교포친척들의 개별적 외화와 물품지원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이에 비추어 남측의 개별 지원도 식량난 해소에 도움이 될뿐 문제를 일으킬 걱정은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는 앞으로 식량지원 과정에서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북한측이 개별 구호품 기탁경쟁으로 남쪽의 대북 식량지원 채널의 혼선을 빚게 하거나 또는 마지못해 원칙에 합의를 해주었을 뿐 실천에 옮길 생각이 없었음이 확인될 경우 그들은 실망한 남쪽 이산가족들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케 될것이며 이후 식량지원은 순탄치 않아질 것이다.지정기탁이 실현되고 그것이 이산가족 재회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성의있는 자세로 후속 협의에 나설것을 북측에 기대한다.
  • 남북이산가족 상봉 86건/89년 「교류지침」 제정후

    ◎편지 왕래 등 경유지 중·미순으로 많아/북 거주 친인척 접촉자 5천여명 추산 미국·중국 등 제3국을 통한 남북이산가족간의 편지왕래 등 교류가 크게 늘고 있다. 23일 통일원에 따르면 89년 6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기본지침」이 만들어진 이후 지난해까지 제3국을 통해 성사된 이산가족 교류는 모두 819건으로 나타났다.이 가운데 86건은 상봉까지 했다. 중국을 통한 교류가 463건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 246건,일본 54건,캐나다 24건,기타 국가 33건 등이다. 통일원 관계자는 『주미 한국대사관이 파악하고 있는 재미교포의 대북교류는 신청자 1천300여명 가운데 800여명 정도가 성사됐다』고 말했다. 최근 자유의 품에 안긴 김경호씨,김원형씨 일가족의 귀순에는 재미교포 친인척들의 서신교환이나 방문 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북한의 친족들과 접촉하는 실향민은 5천여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대부분 중국 조선족들을 매개로 한 민간교류이다. 이달 초 중국을 거쳐 북한을 방문한 재미교포 김모씨(68)는 『평양의 고급호텔에 3일간 머물며고향의 일가족을 대부분 만나고 돌아왔다』고 통일원에 신고했다. 한모씨(61)는 중국 조선족을 내세워 북한의 조기잡이 배와 접촉,지난해 말 평북의 국경도시에 사는 여동생과 중국에서 극적으로 재회,미화 2천 달러를 건넸다.여동생은 최근 서신을 통해 1만 달러를 부쳐달라고 했으나 제대로 전달될 지 의문이어서 송금을 망설이고 있다. 통일원 인도2과 송병각 과장은 『미국을 경유하는 방법으로 이산가족간 접촉이 늘고 있으며 황장엽 비서 망명사건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고 않고 있다』고 밝혔다.
  • 일,북에 식량 1,500만불 지원/새달 유엔통해

    ◎대사급 수교교섭도 재개키로 일본은 다음달 유엔을 통해 북한에 1천5백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식량지원을 한뒤 대사급 수교교섭을 재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교 교섭의 양측 대표는 세키 히로모토 일북수교 담당대사(경수로 대사 겸임)와 이종혁 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이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과 북한은 22일 북경에서 끝난 베쇼 로고 북동아과장과 김철호 아주국 과장간의 재북 일본인 처 고향방문에 대한 협의과정에서 이같이 합의했다고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 북 소수의 일인 처 일시 고향방문 허용/일­북 접촉 전망

    ◎일선 국제기구 통한 식량지원 택할듯 북한과 일본이 식량과 인도적 문제를 맞바꾸는 일괄처리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방안은 지난 10일과 11일 이틀동안 북경에서 이뤄진 일본외무성의 벳쇼 고로 북동아시아과장과 북한 외교부의 김철호 과장과의 실무접촉에서 협의된 것이다. 북한은 일본이 제기하는 인도적 문제인 납치의혹과 북송된 일본인 처의 귀향문제와 관련 몇 명의 일본인 처의 일시 귀향을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면서 식량지원을 요청했다.일본인 처 귀향문제는 재일동포가 북송되면서 함께 북송된 일본인 처의 고향방문 문제를 일컫는다.북한은 이들의 귀향을 지난 40년동안 허용하지 않았다.이번에 허용하겠다는 것도 「몇 명」을 「일시적으로」 귀향토록 허용하겠다는 것. 실무협의 결과에 대해 일본측은 쉽게 대응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납치의혹과 필로폰 밀수문제는 전혀 진전이 없는데다 귀향이 허용되는 일본인 처의 숫자가 작고 또 반복적으로 실시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 때문에 결과를 수용해 우선 한발이라도 내디디자는 외무성의 의견과 조건을 놓고 더 협의해 나가자는 신중파간의 논란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으로서는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사정을 끝내 외면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우선 미국측이 일본에 대해 식량지원에 나서도록 강력하고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때문에 일본측과 북한은 조건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되 국제기구가 호소하는 인도적 식량지원에 일본이 일부 참여하면서 일본인 처를 귀향시키는 방안의 교환이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 나오고 있다.
  • 대북지원 쌀 민간배급 안해/최근 평양·신의주 방문 중국인들 증언

    ◎아사자 거리 방치… 외국관광객에 구걸·약탈 평양과 신의주를 최근 다녀온 중국인들은 날로 악화되는 식량부족으로 북한의 국가 통제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북한을 자주 드나드는 중국의 무역상,여행사및 외화상점관계자,해당지역 공안관계자등 12명에 따르면 북한에는 최근 심한 영양실조로 급성 소화기 전염병인 파라티푸스가 유행하고 있으며 외국 원조식량 분배에 대한 국제기구의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주민들은 외국 지원식량을 구경도 못했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또 외국여행자들을 보면 벌떼처럼 몰려들어 구걸을 하고 있다.과거에는 외국여행자들에 대한 구걸행위는 잘 통제된 북한 사회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신의주에서는 적지않은 아사자들의 주검이 거리에 방치돼 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이들은 대부분 살기가 더 어려운 고향을 떠나 먹거리를 구하러온 사람들이라고 한 신의주 시민은 말했다.예전에는 「통행증」이라는 족쇄로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했었지만 적지않은 지역에서는 이미 통행증이 유명무실해진 상항이다. 북한 여성들중에는 생존을 위해 단동등 중국의 변경도시로 건너와 몸을 파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그들은 중국돈 50위안∼100위안(5천원∼1만원)에 몸을 팔고 있다.중국인이나 조선족 노총각들중에는 5천위안∼1만위안을 주고 북한여성들을 위한 호적을 사서 같이 사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그러한 현상이 증가하자 북한여성들을 사고파는 인신매매조직도 생겨났다. 북한체제 유지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군의 통제력도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일 장군의 전사」라는 군인들이 군수품을 내다가 식료품과 바꾸는 일도 일반화되고 있다.군인들중에는 무기를 사용,주민들을 약탈하는 일까지 나타나고 있다. 교통·통신분야 등도 대부분 마비상태다.편지·전보가 제대로 배달되지않고 신의주­평양구간의 제1호 전기열차는 편도가 원래 5시간 걸렸는데 지금은 2일만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식량사정의 악화로 아이의 출산이 급격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산부인과병원으로 유명한 「평양산원」은 사실상 개점휴업상태라 한다.장례식도 가족끼리 모여 조촐하게 치르고 사망자들을 관도 없이 묻는 경우가 많다.북한에는 이때문에 직파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북한의 국내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자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김일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는 달리 김정일에 대해서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지난 3월18일 신의주시 제1백화상점 오른쪽 골목에 「김정일을 타도하자」라는 벽보가 나붙었고 「김정일은 망돌을 제가 깔았다」(망할길을 자신이 닦아놓았다라는 뜻)는 말이 돌고 있다. 식량난이 악화되자 모든 직장들은 황무지를 개간,콩과 옥수수를 심는등 자체적인 식량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북한주민들은 「해외에서 지원쌀이 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지만 우리가 만난 북한사람들 가운데는 지원쌀을 구경했다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국제연합에서 분배를 감시한다고 하지만 수박 겉핥기식이어서 감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북한의 요즘 중요한 구호는 「마지막 고난의 행군을 승리로 이룩하자」이다.그런 가운데 김정일은 「전국민이 군사를 배우라」,「고난의 행군을 통한 통일의 위업을 이룩하기 위해 결속하자」 등의 구호를 강조하는 등 전쟁준비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 김 대통령 동아시아경기 개회식 참석안팎

    ◎관중 환호속 입장… “개막 선언”/대회장 오가는길에 문정수 시장 차내독대 김영삼 대통령이 10일 제2회 동아시아대회 개회식 참석을 위해 부산을 방문했다.부산은 김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최근 시련기를 맞은 김대통령으로서는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김대통령이 개회식이 열린 구덕운동장에 들어설때 운동장에서는 「어서 오이소」라는 매스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관중들도 박수와 연호로 대통령을 반겼다.이에 고무된듯 김대통령은 밝은 목소리로 『제2회 부산동아시아경기대회의 개막을 선언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관심은 김대통령과 문정수 부산시장과의 만남.문시장은 한보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아 사법처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문시장은 김대통령이 김해공항에서 구덕운동장으로 이동하는 차안에 동승,30여분간 독대의 기회를 가졌다.한보관련 대화가 있었으리라 짐작됐지만 문시장은 『김대통령께서 날씨가 좋아 다행이라는 것외에는 특별한 말씀이 없었다』고 전했다. 김대통령의 부산방문에 부인 손명순 여사는 동행하지 않았다.대회에는 신한국당의 이회창 대표,박찬종 고문,김덕룡 의원,이인제 경기지사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등 대권주자들도 참석,김대통령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 지방으로 뛰는 여 주자들/부산·광주 주무대… 위원장 동원 세대결

    이달말이나 6월초 대선 예비후보군이 자연스럽게 정리되리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용」들의 지방나들이가 부쩍 잦다.부산과 광주가 주 무대다.대통령 지망생으로 한번은 들러야 하는 정치적 상징성이 그 어느 지역보다 큰 곳으로 평가되기 때문인 것 같다.경선 출마에 앞서 지지도도 헤아려 보자는 의지도 깔린듯 하다. 오는 10일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를 비롯,박찬종 고문,김덕룡 의원(서울 서초을),이인제 경기도지사가 동아시아대회 개막식 참석차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을 방문한다.4명의 주자들이 한꺼번에 지방을 찾기는 처음이다.그래서 「부산 회전」으로까지 표현된다. 이들은 공조직은 물론 지지인맥을 통해 「누가 더 많은 인사를 자리에 모을 것이냐」를 놓고 벌써부터 신경전이다.부산출신인 박고문은 물론 충청도 출신의 이대표,이지사와 호남의 김의원은 현 정권의 기반인 부산지역의 지지를 얻는게 경선에서의 최우선목표로 보고 부산시지부 당직자와 지구당위원장을 모셔오는데 바쁜 모습이다.특히 이대표와 김의원의 「세대결」은 새로운 흥미거리다.이대표가 시지부 당직자와 지구당위원장 대부분을 초청,간담회를 갖는데 이어 김의원도 간담회에 불참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부 민주계 중진의원까지 참석시켜 간담회를 갖는다. 광주에는 5·18을 전후로 이대표,박고문,이지사 등이 찾을 예정이다.이대표는 17일 광주로 내려가 전남·광주지역 지구당위원장들을 만나고 18일에는 망월동 5·18묘역을 참배한다.이지사는 부산방문에 이어 11일 광주로 건너가 홍남순 변호사를 만나고 지구당위원장과 만찬을 겸한 간담회를 가진다.12일엔 5·18묘역을 참배하고 윤공희 대주교도 예방한다.박고문도 일정은 정하지 않았으나 18일쯤 광주를 방문할 계획이다. 지난 4월말 광주를 방문한 이수성 고문은 14일에는 대구방송 특별대담,16일에는 대전,20일 경남 양산 통도사 월하종정 예방,27일 춘천 한림대 특강,6월초 군산대 특강 등 외곽 다지기에 바쁘다.
  • 전겸익·증박의 상숙(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7)

    ◎청의 말발굽에 굴절한 목재의 회한 가슴저미고/공자의 수제자 자유·개혁주도한 증박의 숨결도 상해에서 서북쪽으로 두시간쯤 달리면 양자강 건너기 앞서 황소처럼 누워 있는 육중한 산을 만난다.제주도 모양의 그 산더미,이름하여 우산,9㎞의 길이에 260m의 높이.이만한 산도 장강 하류에서는 「지상대장군」이다. 북으로 남통,남으로 소주,서로 무석과 연접한 요충지.역사적으로 춘추때 오문화의 발상지,경제적으로 강남의 옥답.지금도 전국 10대농공단지의 하나,이름 그대로 「곡식이 늘 익는 곳(상숙)」이다. 산을 보면 신이 났다.한바퀴 돌 작정인데 웬걸 70리 순환도로는 2천500년이 살아있는 박물관이었다.상숙시는 우산 동쪽에 펼쳐 있기에 우산의 순례 코스로 먼저 우산공원을 기점 삼았다.거기서 잠시 달려 오른편을 보면 우산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스카이웨이의 입구.그 입구를 지나 고개를 산쪽으로 돌리면 거기 언덕배기 파란 상록수.숲속으로 석계와 석물이 층층이 뵈는데 무덤들이 즐비했다. 그중에 공자의 제자 72인중 그중에도 열손가락에 꼽히는 십철의 한분인 자유(BC506∼443 성은 언,이름은 언)의 묘,「언자묘」로 불린다.우산 동쪽 그 반산에 있는 언자묘는 그 묘도나 묘갈,묘표,묘각 등 모두가 창연하고 숙연했다.비록 2천400년이상의 세월이 흘러 그 실체가 한가닥 바람이나 한줌의 흙이 되었을지라도 남송때부터 설단한 묘비와 그 석물들,특히 높이 4.6m,너비 9.7m의 세칸 방문,그 정면에 씌어진 「언자묘도」를 비롯,청나라 건융황제가 남순때 세운 석정이나 어서정 등 자유를 기리는 뜻이 역력했다.자유의 뛰어난 언행에 특히 예악을 강조,이 고장을 현가의 고을로 만들고 줄곧 「남방부자」로 추앙받았던 그 지체를 실감케했다. 언자묘 건너편으론 상숙서 제일 가는 우산관광호텔.그 호텔서 약간 동쪽으로 남송 건염4년(1130)에 세워진 높이 67m의 4면 누각형 9층탑­방탑이 훤칠한 용모로 하늘에 치켜 서 있다. 다시 순환도로의 남단을 돌아 북으로 한참 달리다 차를 멈추었다.오른쪽으로 우산 산정을 보면 하얀 바위들이 엎치락뒤치락 모임을 이루고 그 옆으로 추녀가 날개치는 누각이 아스라히보였다.그게 검각이요,검문기석이라 했다.전설로는 오왕 부차가 그 보검을 시험키 위해 산을 한번 쪼갠 것이 그리되었다는 것이다. 그 순환도로에서 필자를 안내하던 상숙박물관 학예관 장웨이꿔(장위국)는 도로 서켠으로 내려 서서 필자를 귤밭 건너 풀밭으로 데리고 갔다.필자가 오랫동안 연민하던 전겸익(호 목재 1582∼1664)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언제나 그렇듯이 한 사람을 알고 그 사람을 만날 때면 살포시 흥분할 수 밖에.그는 여기서 낳아 명말청초의 시단을 이끌었던 「동남문종」이요,「우산시파」의 우두머리로 군림했었지만 그의 말년은 힐난과 조소로 추락의 비운을 겪었었다. 그 힐난이란 그가 명말에 예부상서의 높은 벼슬을 누린데다 「초학집」 「유학집」 등의 저서에 「두시전주」나 「열조시집」 등의 편주서를 남겼고,더구나 애국우민과 요산요수의 명시를 남겨 동남 제일의 선비였건만 청병이 남하하자 그 말굽에 눌려 그만 반년쯤 예부우시랑이란 감투를 둘러쓰므로서 굴절하고만 것이다. 그 조소란 그가 명말때 당쟁에 휘말려 잠시 은퇴,「명사」를 저술할 무렵,당시 오강」땅 명기였던 유여시(1618∼1664),글쎄 아무리 시재에 뛰어나고 미색이 수려하지만 서른여섯살 아래의 기생에게 홀딱 반해 그를 소첩으로 맞고 「백두홍분지기」의 러브스토리를 남긴 것이다. 유여시는 목재에게 자결을 권했지만 목재는 이를 듣지 않고 다만 칭병끝에 청조의 벼슬을 내던지고 물러났지만 그 굴절을 참회하면서 아프게 살았다.그 일단이 「낙엽」이란 시에 담겨 있다. 추로종산만목희, 조상총속겁진비. 부지옥로양풍급, 지도김능왕기비. 의월소아도유수, 이상청여정무의. 화림참담여사막, 만이한공일안귀. (만추의 자금산에 나무마다 우수수,영락은 본시 억겁의 순환일세. 이슬 방울이 하늬바람에 지는 까닭을 모른채,사람들은 금릉땅 왕기가 쇠진했다하네. 당나라 명황은 가더라도 달속에 소아와 계수나무만 남았고,서리 밟던 여인네는 옷조차 없구려. 궁중의 비원은 모랫벌처럼 참담한데,만리 추운 하늘로 기러기 한마리.) 필자는 그토록 아프게 참회하면서 세상을 등진 목재의 무덤앞에 한참 섰었다.우산으로부터 줄기차게 뻗은 지맥의 한자락을 잡은지라 그 품위도 당당했다.그 묘갈 또한 「명증광록대부궁보례부상서경행전공지묘」청나라의 작록은 한자도 올리지 않았다. 목재의 무덤 서남쪽 30m.열평남짓의 좁은 묘역에 잡초가 무성한 무덤.이것이 350년전,강남의 명기요 전목재시인의 소첩이었던 유여시의 묘,무덤앞 석비에는 「하동군지묘」,하동군은 그녀의 아호였다.목재옆에 나란히 누울수 없었지만 목재와 저만큼 떨어진 자리에 숨은듯 누운 작은 무덤앞에서 필자는 왠지 축축함을 느꼈다.그러나 이 고을 화원촌이란 이름은 우연치 않았다. 화원촌에서 다시 북상,십분쯤 달렸을때 바른편 산자락에 청말 4대 견책소설가의 하나로 꼽히는 증박(1872∼1935)의 무덤이 있다.그는 동아병부의 필명으로 청말의 부패사회와 관료를 폭로하고 국제경험을 썼던 장편 「얼해화」를 발표하여 봉건 타파와 정치 개혁에 공헌하였다. 증박의 무덤에서 다시 10분쯤 북상,우산의 북단쯤 길가에 우뚝 선 「원고사황대치선생묘도」란 방문,옳지! 원대 4대화가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화가 황공망의 무덤.그의 쓸쓸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를 끔찍히 좋아했던 필자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수년에 걸쳐 긴긴 두루마리의 산수화 「부춘산거도」가 자꾸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 DJP/우군 만들기·아군 지키기/충남지역 돌며 대권향한 동상이몽

    ◎DJ­“야권 단일후보로 정권교체” 역설/JP­예산지역 재선거 승리 바람몰이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22일 각각 충남지역을 방문했다.DJ(김대중 총재)는 오는 12월 대선에서 우군을 만들기 위해 찾았다.JP(김종필 총재)는 아군을 지키기 위해 내려갔다.서로가 야권 단일후보의 꿈을 강하게 내비치면서 표밭갈이에 나선 것이다. DJ는 이날 청양·홍성 지구당 개편대회를 시작으로 1박2일동안의 대전·충남지역 나들이에 나섰다.치사를 통해 『야권 단일후보로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서 자민련과 공동집권을 하겠다』고 의지를 표시했다.JP의 안방임을 의식한 듯 자민련측을 향해서는 「좋은말」만 했다. JP는 고향인 부여와 공주 보령 서천 등 4개 지구당 합동 정기대회에 참석했다.행사장인 부여 청소년 수련원 주변은 『JP를 대통령으로』 등의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그의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나 다름 없었다. JP는 이날 방문은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와의 「신경전」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당 소속 조종석 의원의 의원직 상실에따라 곧 치러질 예산지역 재선거를 위해 「바람몰이」의 차원이다.얼마전 이대표가 온양을 방문,외곽으로부터 조여들고 있는데 대해 「맞바람전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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