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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련 2차 고향방문단 119명 17~22일 訪韓

    재일 조선인총연합회(총련) 동포 2차 고향방문단 119명이 17일부터22일까지 5박6일간 고국을 방문한다.지난 9월 1차방문 때 2박3일이었던 가족 친지 방문도 3박4일로 늘어난다. 전경하기자 lark3@
  • 제20회 농어촌청소년 대상발표/ 본상

    * 농업 宋海東씨. ■93년 군제대후 영농에 정착,가평의 특산물인 포도 과수원 조성으로소득증대에 노력해왔다.98년에는 포도착즙기 설치,천연포도즙 생산가공 판매로 부가가치를 올리고,인근 농가에까지 파급해 소득향상에기여했다.화학비료 사용을 줄이고 유기농법으로 저공해 농산물을 생산해오고 있다.가평군 특수사업으로 민족문화계승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농업 韓在順씨. ■91년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4-H회 총무를 맡으면서 참깨 과제포 600평을 운영하고 공동자금 200만원을 조성했다.96년 집중호우가 일어났을때는 4-H회원 50여명으로 특별구호반을 편성,10ha의 농경지를 복구하고 수재물품 200점을 전달했다. 내고장 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꽃길 2㎞를 조성하기도 했다. * 농업 愼在明씨. ■93년부터 4-H면회장,도총무,도감사를 맡아 면 연합회 사무실에서 학생회원 공부방을 운영하고,학교 4-H지원을 위한 국화를 가꿔왔다. 무연고 묘 벌초 작업용 기계 5대 구입을 지원하고,야영교육용 텐트20조를 구입해 군연합회에 기증하는 등 봉사활동을 펼쳤다.복숭아 2,000그루를 심어 진안군 도화원 조성사업에 기여했다. * 농업 金原坤씨. ■한우,개,멧돼지 사육 및 참외·밤·벼 재배로 1억3,35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97년 2,000평,98년 2,200평,99년 3,000평,올해 1,200평 등 휴경답경작을 왕성하게 펼쳐왔다. 무의탁노인과 소년소녀 가장을 매월 방문하는 등 봉사활동도 꾸준하게 하고 있다. * 농업 劉允吾씨. ■비닐하우스 시설을 이용한 고랭지배추 육묘 상업화를 시도,고소득을올렸다. 자가톱밥 시설을 갖추고 지력증진을 바탕으로 한 고품질 우수농산물생산기반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5년주기 객토 실시와 토양유기물 함량 향상을 위하여 매년 300평당 2t의 우드칩을 전면살포하고 있다.농업신기술 도입 등으로 농가간 농업기술 격차해소에 주력해왔다. * 농업 盧載相씨. ■청풍명월 주말농장 기반조성 사업을 대행하여 농협 청년부 공동기금을 조성했다.휴경논을 이용한 유기농업 시범포운영으로 친환경농업을보급했다.농협청년부 기금으로 관내 초등학교에 매년 40만원씩을 기탁,결식아동을 지원했다. 수박 작목반을 결성하여 품질좋은 우수 농산물을 생산해 농가소득을높이고,소비자와 생산자가 직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 농업 裵權世씨. ■92년 영지버섯을 장흥군에 최초로 도입,고소득 작목으로 정착시켰다. 이후 영지버섯 작목반을 만들어 규모화 영농 및 조직력을 강화했다. 향유 원료의 100% 국산화 추진으로 외화 절약에 일익을 담당했다. 전남 농협 벤처농업인 연구클럽 감사를 지내는 등 ‘벤처농업 연구클럽’을 조직,연구하는 농업인상을 정립했다. *농업 韓盛弼씨. ■국내 최초로 새송이버섯 동굴 시험재배에 성공,새로운 소득자원으로농업인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안전하고 품질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친환경농업을 실천해왔다. 지역의 농업경영인과 함께 휴경지 3,000평을 경작하여 경영인 공동기금으로 적립하는 등 식량생산 증대에 노력해왔다. 청년부 공동소득사업을 높이고,지역개발 사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수산 金鎭萬씨. ■96년도 어업인 후계자로 선정되어 3,000만원의 지원자금 등으로 현대화된 어선을 구입,소득증대에 힘썼다.어입인후계자가 되기전 소득이 1,850만원에서,99년에는 무려 8,500만원으로 늘었다.94년부터 청년회장을 맡아오면서 매년 마을과 항포구에 쌓여있는 각종 쓰레기 제거지도로 50t을 수거처리하는 한편 마을 하수도 정비 등 해양오염 방지 등에 노력했다. *수산 許吉浩씨. ■대학졸업후 다른 취업의 기회도,어촌생활에 반대하는 부모님의 만류도 뿌리치고 고향 앞바다를 가꾸겠다는 일념으로 어촌에 정착했다. 80년 후반부터 침체에 빠진 피조개양식사업을 어장 환경개선과 적정시설 준수로 생산성을 크게 늘렸다. 97년 ha당 2,200만원이던 수익이 98년에는 2,300만원,99년에는 3,500만원으로 늘었다. *수산 趙薰基씨. ■당초 굴양식을 하던 것을 지역 특성에 맞는 전복 육상양식으로 바꿔고소득을 올렸다. 고소득 품종 양식으로 98년 1,800㎏이던 생산량이 99년에는 3,000㎏으로 늘어났다.순수익도 98년 1억100만원에서 99년에는 1억8,000만원으로 증대됐다.지역의 청년들을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하도록 기술을전수하고 숙식을 제공,어촌에 정착할수있는 기반확보에 기여했다. *수산 金長石씨. ■집안의 가장,청년회 총무,마을의 반장 등을 겸하면서 낮에는 조업하고,밤에는 야간에 학교를 다니는 성실성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또한 다른 어업인들에게도 정보를 제공,고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마을의 치안 및 환경정화,불법어업 근절 등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기고] 역사의 허구는 공허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현해탄 너머에 있는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시마네대학 국제회의장.지난 3일부터 사흘간에 걸쳐 한·일 양국의 인문·사회과학 연구자가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그러나 둘째날인4일 뜻밖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가미타카모리(上高森)구석기 유적조작사건이 공표되었다. 일본사를 무려 70만년까지 끌어올려 영웅으로 부상한 도후쿠(東北)고고학연구소의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미타카모리 발굴단장이자신이 1주일 전에 묻어 놓은 석기를 새로 발굴한 것처럼 조작한 자작극이 탄로난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은 이미 80여년 전 베이징(北京) 근처의 주구점(周口店)동굴유적에서‘북경원인’이라고 명명된 50만년 이전의 화석 인류를 발견하여 ‘아시아인의 원고향’이라고 까지 일컬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 이후 남북한이 약속이나 한듯이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다.북한은 평양 근처 검은모루 동굴유적이 각광을 받았고,남한은 아프리카·유럽형에 속하는 전기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와 자르개를 전곡리에서 발굴해 세계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구석기시대의 존재조차 불분명했던 일본은 경제적 번영에 도취한 나머지 상상조차 못할 역사 미화를 서슴지 않았다.일본 학계는1946년 군마(群馬)현에서 발견한 2만5,000년 전의 석기를 보고 흥분하였다.이때 문제의 후지무라가 등장한다.1981년 발굴 조사를 벌인미야기(宮城)현 이와데야마마치 유적이 적어도 5만년 전까지 연대가올라간다고 극적인 발표를 했다.이후 그가 수십개의 구석기 유적 발굴에 손을 댈 때마다 연대가 올라가는 유물이 계속 나왔다. 드디어는 가미타카모리 유적을 70만년 전으로 끌어올리고,중국의 북경원인과 결부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후지무라의 발굴을 통해 일본은 선사문화를 70만년 전으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찬란한 문화로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이집트문명과 맞먹는 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내용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일본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라고까지 허구에 찬 주장에 맞장구를 친 일본 국민의 한결 같은 성원도 가세되었다.나아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구석기시대 조작사건을 오랫동안 묵인한 일본 학계의 학문적 양심도 오늘과 같은 사건을 일어나게 한 요인으로 지적할수 있다. 일본 고고학자들은 우리를 가미타카모리 유적지로 초청하는 계획을세워놓았다고 한다.일본 역사의 서장을 알리는 유적을 방문하지 않고서는 좀더 진전된 한·일 고고학 교류가 불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그런데 이 유적 조작사건이 공표되자 언제 그런 계획이 있었냐는식으로 조용하기만 하였다. 심포지엄이 끝난 5일 일본은 문제의 조작사건을 시인하면서 이를 속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일본 교육부도 조작되고 왜곡된 교과서를고쳐 나가겠다는 재빠른 조처로 뒤따랐다. 일련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머리 속에는 우리의 옛날 모습이 스쳐갔다.1981년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구석기 학자 클라크(D.Clark)박사가 충남 공주 석장리,충북 점말 구석기유적을 실사한 뒤 연대 문제와 문화유적의 진위에 의문점을 제기한 일이 있다. 그후 20년 동안 우리 학계는 구석기 연구에서 과학에 바탕을 두지않고 무작정 연대를올리는 등 적지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유적의 진위 문제,깨진 돌 조각을 석기로 간주하여 성과를 과대 발표하는 문제,저절로 깨진 뼈 조각 따위를 인공 예술품으로 해석하는 문제 등 숙고해야 할 일은 한둘이 아니다. 가미타카모리 유적의 유물 조작사건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나아가 그동안 수없이 이루어진 일본의 고고학적발굴 결과나 역사 교과서의 왜곡 기술, 그리고 일그러진 한·일관계사를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역사의 허구(虛構)는 결국 공허할 뿐이다. 임효재 서울대 교수·선사고고학회장
  • [사설] 이산 상봉 비용 줄여야

    남북이 오는 30일 제2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때부터 가족간 현금및 선물 교환을 제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북한 적십자회의 제안을대한적십자사가 받아들인 것이다.이같은 합의가 최선은 아니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한다.어렵사리 물꼬가 트인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지속하고,좀더 발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차원에서다. 반세기 만에 만나는 가족이 정표를 교환하거나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쪽에 금전적 지원을 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하지만 이산가족끼리 현금을 주거나 선물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체제 안정에 위기감을 느낀다면 문제가 달라진다.지난 8·15 1차 상봉때 북한 가족에게 3만달러를 준 이산가족도 있었다는 믿기 어려운 보도가 있으니 하는 말이다.결과적으로 북측이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뒷걸음질 칠 소지를 주는 것은 남북 이산가족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8·15 이산가족 상봉때 3박4일동안 지출한 우리측 경비가 총 18억여원에 이른다.북측 방문단의 서울 체류 중 숙식·관광비,그리고 방북한 남쪽 방문단의 항공료와 선물 지원비 등으로 쓰인 돈이다.특히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북측 방문단과 남쪽 가족 및 남측 지원단이 먹은 한끼 음식값만 해도 무려 5,700여만원이었다니 지나쳤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대부분 국민세금으로 충당되는 돈을 헤프게 써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까지 비용은 이산가족 교류사업을 궤도에 올리기 전 불가피한초기 인프라 구축 비용이라고 치자.앞으로는 이산가족 개인이 지출하는 사적 비용뿐만 아니라 이같은 공식 비용도 줄여나가지 않으면 안된다.어차피 이산가족 상봉이 한두 차례 하고 그만둘 일과성 행사는아니지 않은가.따라서 서울이나 평양의 호텔에서 이뤄지는 상봉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돈 많이 드는 호텔 방이나 컨벤션센터보다는 짧은 시간이라도 고향집을 방문해 가족간 정을 나누도록 하는 게 인륜에 부합하고 돈도 적게 드는 길이다.오랜 생이별의 아픔을 견뎌온 가족의 만남이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바뀌도록 남북한 관계자들은뜻을 모아야 한다.내년에는 이산가족 가정방문도 실시하겠다고 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악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남북은 하루속히 우편물 교환이나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문제의 제도적 해결에 합의해야 할 것이다.북측은 비용 절감을 위해서도 이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남북 적십자는 장충식(張忠植)한적 총재의 월간지 인터뷰로 빚어진 불필요한 신경전을빨리 마무리하고 이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4)항일운동 총본거지 上海·嘉興

    필자가 상해를 찾기는 이번이 네번째이다.홍교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를 향해 달리는 동안 눈길을 끈 것은 30∼40층짜리 신축빌딩들이었다.거의 수직으로 치솟고 있는 중국경제를 상징하는듯 했다.이도시에 숱하게 많은 우리의 항일유적들이 또 몇개 사라졌겠구나 생각하며 곧장 옛 프랑스 조계(租界)인 회해중로(淮海中路)를 향해 달렸다.우리의 항일운동 유적들이 그 거리와 근방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상해는 국제교통의 요충지이며 각 국의 조계가 설정돼 국제정세 파악이 쉬워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우리 항일투사들은 최우선의 활동근거지로 삼았다.취재팀은 마당로(馬當路) 보경리(寶慶里)의 임정청사부터 찾아갔다.전체면적 16평.공간은 비좁지만 당시 집무실이 복원되어 있다.주중(駐中) 한국대사관 인터넷 홈페이지 ‘중국내 독립운동사적 안내’를 보면 98년 한해동안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무려 8만여명이라고 한다.대부분 이곳이 첫 임정청사라고 생각하고독립운동의 성지(聖地)처럼 여기는 듯하다.그러나 이곳은 임정이 여덟번째로 자리잡아,1926년부터 1932년까지 머문 장소이다. 임정청사에서 5분쯤 걸어 옛 흥륭다원(興隆茶園)을 찾아갔다.윤봉길 의사가 김구 주석과 의거를 밀의한 장소였다.건물은 그대로인 듯하고 ‘상청(常靑)식품’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헐리지 않고 70년이지나도록 남아 있는 게 고마워 취재팀은 그 집에서 생수를 사 마셨다. 차를 타고 윤봉길 의사의 열혈이 서린 홍구공원(현재의 노신공원)을 항해 달렸다.임정은 1919년 4월 13일 조직된 이후 모든 항일세력을결집하지 못했다.김구 주석은 임정의 침체를 극복하고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암살과 폭파 전문의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다.이 조직의 첫 성공이 이봉창 의사의 동경 사쿠라다몬(瓔田門) 의거였다.일왕의 마차에 폭탄이 미치지 못해 근위병들만 죽고 말았지만 적에게준 충격은 컸다. 다음 의거의 주인공이 윤봉길 의사였다.고향의 아내에게 “丈夫出家生不還(장부출가생불환.장부가 집을 나가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유언을 남기고 상해로 망명한 윤의사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일제가 전승기념행사겸 일왕의 생일축하 행사를 벌인다는 정보를 입수한 김구 주석의 명을 받고 의거를 결심하였다.1932년 4월 29일 11시40분,행사장의 전원 묵도시간 단상을 향해 폭탄을 던져 상해 점령 일군 총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대장 등 침략의 원흉들을 폭살했다. 1개 군단이 한달동안 저항하고도 상해를 일본군에 빼앗겨 치욕감에빠져있던 중국인들은 일제히 환호를 올렸다.중국군 총사령관 장개석은 “중국의 백만대병도 불가능한 거사를 한국 용사가 단행하였다”고 극찬했다.중국인들은 때로 일제의 눈치를 보며 비협조적이었고 만보산사건 이후 한인들에게 악감정을 가졌으나 이 때부터 한인 애국지사들을 동지의 정으로 포용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임정은 침체국면을벗어나 강력한 투쟁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교통체증으로 많은 시간을 소비한 뒤에 노신공원에 도착했다.윤 의사의 의거현장에는 중국 근대사상가인 노신의 동상이 드넓은 잔디광장을 바라보며 앉아있다.기록을 보면 동상자리가 단상,그리고 그 앞잔디밭이 시작되는 곳이 윤 의사가 물병폭탄을 던진 곳이다.의거현장에서 가까운 언덕에는 윤 의사의 충혼을 기려 1994년에 세운 ‘매정(梅亭)’이 의젓하게 자리잡고 있다. 필자는 그곳에서 묵념하고 있는 한국관광객들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경남 창원에서 온 교사들이었다.진영고교 성정수 교사(40)는 “자랑스런 항일전쟁의 역사가 잊혀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하며화단에 핀 상사화(想思花)를 바라보았다.윤의사의 단심(丹心)을 상징하는 걸까.석양을 받아 상사화는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윤의사의거 이후 악에 바친 일제는 광란하듯 임정인사들을 쫓기 시작했다. 김구 선생은 60만원의 현상금이 붙은채 아슬아슬하게 피신했고,임정은 이후 여러 곳을 이동해야 했다. 취재팀은 상해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 김구 선생의 피신처였던 가흥으로 향했다.중국이 독일 폭스바겐사(社)와 합작생산한 산타나 승용차는 항주로 가는 고속도로를 질풍처럼 내달렸다.장강(長江)으로 통하는 운하의 수로가 띠를 두르듯 뻗어있고 이따금 물소들이보이는 비옥한 평야가 스쳐 지나갔다.가흥이 호수를 낀 조용한 농촌일 것이라고 짐작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6차선이 넘는 큰길이 뻗어가고 깨끗한 신축건물이 임립하고 있었다. 김 주석은 전 강소성장(江蘇省長) 저보성의 목숨을 건 비호 아래 그의 양아들 진동생(陳桐生)이 반 양식으로 지은 호반별장에 은신했다. 낮에는 뒷문으로 나가 여자 뱃사공 주애보(周愛寶)가 젓는 거룻배를타고 남호(南湖)로 나가 거미줄같은 운하망을 타고 오르내리며 피해다녔고 밤이면 별장에 빨래가 널린 안전신호를 보고 들어가 잠을 잤다.배를 타고 남경까지 간 적도 있었다.김 주석이 은신했던 매만가(梅灣街) 76호 별장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남호를 동남쪽에 등지고 앉았는데 호수 쪽으로 큰 들창이 나있고 뒷문이 만들어져 있다. 차를 돌려 남호 선착장 유원지로 가보았다.1935년 10월,15명의 임정 지도자들이 유람선을 타고 비밀의정원 회의를 열었던 남호는 그리깨끗하지는 않았지만 풍광은 아름다웠다.바람에 밀려오는 물비린내를 맡으며 캔맥주를 사 마시는데 ‘중국혁명의 요람’이라 쓴 안내판이 보였다.1921년 모택동이상해에서 공산당 창당대회를 열려다가 정보가 새 나가자 이곳 남호에서 유람선을 빌어 대회를 마쳤다는 기록이다. 상해로 돌아온 취재팀은 황포탄(黃浦灘) 의거현장을 찾아갔다.황포탄은 수천리를 흘러온 양자강이 황해로 빠져나가는 하류로 바다나 다름이 없다.1922년 3월,의열단원들은 일본군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를 저격하였다.필리핀에서 오는 기선에서 내리는 순간을 노렸다.명사수인 오성륜(吳成崙)이 권총을 발사했으나 그 자가 갑자기몸을 숙이는 바람에 뒤따라 내리던 영국인 여자가 맞았다.이어 김익상(金益相)이 또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고 이종암(李鐘岩)도 폭탄을던졌지만 다나카는 마차를 타고 피신했다.이종암은 현장탈출에 성공했으나 김익상과 오성륜은 체포당했다.김익상은 조선총독부 폭파사건의 주인공.의거에 성공하고 수십 개의 포위망을 뚫어 중국으로 탈출해온지 반 년만에 다시 나섰으나 이번엔 탈출하지 못하고 붙잡혀 20년을 복역했다. 의열단원들이 수천 명의 일본군과 인파들 속을 달리며 용맹을 떨친의거현장은 지금의외탄(外灘)공원의 북단이다.상해에서 황포탄 풍광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중국이 자랑하는 포동(浦洞)개발지구가 건너다보인다.거기서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육삼정(六三亭) 의거현장으로 갔다.무정부주의 계열의 비밀결사 남화(南華) 한인청년연맹의 백정기·이강훈·원심창·이규창 등은 여기서 아리요시(有吉) 주중 일본공사를 폭살하려다가 사전 누설되어 모두 옥에 갇혔다.당시 유명했던 육삼정은 헐리고 그 자리에 방향(芳香)·영안(永安)·부옹(富翁)등주점들이 들어서 세월의 무상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상해 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북한관광 서해뱃길 추진

    인천과 북한 황해도를 잇는 서해 관광뱃길이 열릴 전망이다. 인천시는 인천∼백령도∼황해도 장산곶∼구월산∼백천온천∼성불사를 잇는 3박4일의 관광코스를 개발하기로 하고 현재 사업타당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 박상은(朴商銀) 인천시 정무부시장은 “인천시의 서해 관광코스 개발사업에 대해 통일부가 지원하고 있고,북한도 긍정적 반응을 보여늦어도 내년 말까지 관광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시는 백령도와 북한의 구월산·백천온천 등에서 각각 숙박을 하는 3박4일 코스를 계획하고 있으며 우선 숙박이 가능한 유람선을 띄운 뒤 이들 3곳에 호텔을 건립해 육지에서 숙박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있다. 시는 이를 위해 15∼17일 관련부서 직원들을 연평·백령도에 파견,주민의견을 수렴하고 호텔 건립부지를 물색할 계획이다. 인천시는 서해 관광뱃길 사업에 대해 통일부가 허가하고 북한이 최종 합의하면 관광업체 선정에 나설 방침이다. 구월산에서는 평양은 물론 남포와 해주·개성 등이 내려다 보이며,백천온천은 한반도내 최고의 온천으로 꼽혀 서해 뱃길관광이 인기를끌 것으로 보인다. 박 정무부시장은 “서해 관광코스는 황해도와 평안남도를 볼 수 있어 관광여행이라기 보다는 고향방문길이 될 것”이라며 “특히 인천은 서울·경기도와 가까워 많은 실향민과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총련동포 2차 고향방문 새달 17~22일까지 실시

    지난 9월에 이어 내달 17일부터 22일까지 5박6일간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동포 2차 고향방문이 실시된다. 30일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이번 2차 방문단 인원은 순수방문단 106명,기자 4명,수행원 10명을 포함해 120명으로 1차때의 두배에 가깝다. 1차때는 수행원 7명과 기자 6명 등 13명을 포함,63명이 고향을 방문했었다. 2차 방문단 단장은 총련 중앙 상임위원인 최병조씨(76)이며 방문자구성 및 방문 일정은 한적과 총련측이 협의중이나 일정은 1차 때와비슷하게 짜인다고 한적측은 설명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환갑노년 “아이러브 스쿨”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릴적 꿈을 더듬으며 지극한 모교사랑을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서울에서 금형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최수근(崔秀根·57·영등포구 당산동)씨.최씨는 최근 경북 포항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동창생 이명룡(李明龍·56·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호리)씨와 함께모교인 강원도 양양군 양양초등학교를 방문,합창단원 50명에게 250만원 상당의 단복과 모자를 전달했다. 이밖에도 모교로부터 요청이 있을 때마다 교기와 교문 현판,피아노를 기꺼이 기증하는 등 도움을 주어왔다. 최씨가 이처럼 모교사랑 실천에 발벗고 나선 것은 5년여전부터.서울에 사는 동창생들을 수소문해 모임을 결성한 뒤 고향찾기와 모교돕기를 제안했다.친구들의 흔쾌한 동의를 얻은 최씨는 이때부터 4년간 회장을 맡으면서 동창들의 정성을 모아 매년 졸업식 때마다 모교를 방문,후배들의 고사리 손에 장학금을 전달해 왔다. 양양 조한종기자 bell21@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가을에 온 편지

    며칠 전의 일이다.집무실에 들어와 보니 책상 위의 낯선 편지 한 통이 눈에 띄었다.강원도 원주에 사시는 어떤 분이 보내신 편지로 조금은 서투른 글씨로 수고하신다는 말과 함께 남북간 화해와 교류협력을 위한 몇 가지 방안들이 적혀 있었다.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그 내용의 중요성이나 참신성이 아니다.바쁜 생활 속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정성,그리고 ‘작은 실천’이 나에게 ‘큰 감동’으로 밀려오면서,실천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이러한 소중한 실천들이 분단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고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는 ‘징검다리’가되었으며,나아가 통일을 향한 큰 물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작은 실천이 세상을 변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가지의 실천이다.정상회담 이후 남과 북이 추상적인 합의서를 양산하기보다는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각종 회담에서 서로가 수용할 수 있고실현 가능한사안을 중심으로 협의·이행해 나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편지를 접으면서 입각 후 업무에 쫓겨 편지 한 통 쓸 여유도 없이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누구에게든 편지를 띄우리라 마음을 먹고 창 밖의 하늘을 보는 순간 문뜩 이산가족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디에 사는지,죽었는지 살아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반세기 동안,그리운 가족과 친지,친구들과 헤어진 후 하루도 잊지 않고 북녘 고향을 향해 마음의 편지를 써온 이산가족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왔다. 정부는 이러한 이산가족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삼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오고있다.8·15를 계기로 온 겨레의 심금을 울린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있었으며,올해 안에 두 차례 더 방문단 추가 상봉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현재 남과 북 각각 100명씩 생사 및 주소확인이 진행중에 있으며,생사와 주소가 확인된 사람부터 서신교환을 실시해 나가기로 북한측과 합의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조치들이 이산가족들의 기대에는흡족하지 않으리라는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혹은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이 될지도몰라 늘 천근 만근의 무게로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정부는 모든 이산가족들의 생사 및 주소확인,서신교환,그리고 상봉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북한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며,국군포로·납북자 문제도 포괄적인 이산가족 문제의 범주에 넣어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고향이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생각나는 계절,이산가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희망이 담긴 편지 한 통이 배달되는 그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편지가 머물렀던 자리에서는 지금도 은은한 향기가 묻어 나오고 있다. 朴在圭 통일부장관
  • 白基玩씨 평양서 누님 만났다

    “헤어져 살았던 세월이 한스럽고 만난 기쁨이 너무 커 누나를 부둥켜안고 울기만하다 돌아왔습니다”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행사 참관차 방북했다가 누나 인숙씨(72)를 55년 만에 만나고 돌아온 백기완(白基玩·67) 통일문제연구소장은 15일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강화도 마니산을 찾았다. 황해도 은율 출신인 백 소장이 누나와 헤어지게 된 것은 45년 광복직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축구유학차 서울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듬해 작은형과 여동생도 뒤따라 월남했으나 6·25전쟁이 나는 바람에 어머니,누나,큰형과는 생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백 소장은 “누이와의 만남이 처음에는 북한 당국에 의해 거절당했지만 같이 갔던 방문단원들이 ‘백 선생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을 가해 결국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인 13일 낮과 밤에 평양 시내 한 음식점에서 누님을 만날 수 있었다”고귀띔했다. 감격적인 만남에서 누나는 “기완아,어머니는 너의 이름을 부르다 37년 전에 돌아가셨단다.도토리처럼 귀엽게 생겼던 네가 왜 이리 늙고말랐느냐”며 절규했고 백 소장도 “어머니, 불효자를 용서하세요.그곱던 누나의 얼굴은 어디 갔어요”라며 울부짖었다. 급하게 방북길에 오르느라 선물 준비를 하지 못해 동료 방북단원들의 도움으로 시계,목도리 등을 급히 구해 누님에게 선물했다는 백소장은 “앞으로 건립할 통일박물관에 기증하기 위해 누님과 나의 눈물젖은 손수건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맑은 대동강물이 오염될까봐5박6일 동안 비누를 한 번도 안썼고 고향의 먼지와 냄새를 담기 위해속옷도 갈아입지 않고 돌아왔다”는 백 소장의 목소리는 통일의 염원이 가득 담긴 듯 더없이 힘찼다. 이창구기자 window2@
  • 中교포 32명 62년만에 고향방문 “꿈인지 생시인지…”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 꿈을 꾸기는 했지만 그래도 믿어지지않아요.고향 땅을 밟은 것도,혈육을 만난 것도 모두 꿈만 같습니다” 9일 오전 11시 충북도청 대회의실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 못지않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1938년 일제의 만주 개발정책에 따라 중국 길림성 도문시 정암촌(亭岩村)에 강제 이주된 32명의 중국 교포들이 62년 만에 고향을 찾아온것이다. 이날 7개팀 32명의 충북 옥천,청원,보은 출신 중국 교포 가운데 3개팀은 자매나 오누이 등 가족을 만났고 나머지는 숙부와 조카,사촌 등을 상봉했다. 이번 만남은 청주농악보존회(회장 林東喆·충북대 국문과 교수)와충북도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옥천 출생으로 이번에 5명의 가족과 함께 친누나와 사촌을 찾아온이용안(李龍安·73)씨는 “곱디곱던 누님을 다 늙어 만났지만 이제는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토로했다. 보은 출생의 박복식(朴福植·72),정순(貞順·70)씨 자매는 이주 당시 부모들이 언니 복순(福順·76)씨를 시집 보내고 가는 바람에 생이별한 사연을 거미줄 내듯 풀어놨다.언니 복순씨도 “어린 나이에 출가시켜 놓고 가족들이 나만 놔둔 채 떠나 혼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며 눈물을 삼켰다. 상봉식 도중 일제때의 대표적인 저항시인 윤동주의‘별 헤는 밤’이낭송되고 이어 상봉 가족들이‘고향의 봄’을 합창할 무렵 장내는 또한번 흐느낌이 이어졌다. 한편 이들은 이날 환영 행사를 시작으로 오는 15일까지 고향 방문과농악 협연,산업 시찰 등의 일정을 갖게 된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 [‘6.15’이후의 북한] (6)인민예술가 정창모씨

    9월 7일 평양 국제문화회관 2층에서는 ‘인민예술가 정창모 그림전람회’가 개막됐다.주최는 조선미술가협회. 정창모 선생(68)은 지난 8월 15일 이산가족 북측 방문단의 일원으로서울을 방문했던 인물이다.전주북중 재학중 19세의 나이로 월북한 한의용군 소년이 북의 화가중 최고봉인 ‘인민예술가’가 되어 돌아옴으로써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개막식은 오후 4시였다.전람회장 앞홀에는 200∼300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정 선생과 가족들,조선미술가협회 관계자들,북의 대표적 전문미술창작단인 만수대창작사 관계자들,학생들,그리고 일반 관람객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개막식에선 문화성 부상(차관)의 축사가 있었는데 “장군님께서 정창모 선생의 ‘비봉폭포의 가을’(김주석의 집무실이었던 금수산의사당에 전시되어 기념촬영 배경으로 사용되던 작품)을 높이 평가하셨다”는 언급에서도 북 화단에서 그의 위치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개막식이 끝나자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그와 문화성 부상을 선두로 전시회장에 입장했다.서울에서 온 취재기자임을 밝히고 그 옆에 따라붙었다. 문화성 부상은 전시된 그림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돌아보았다.황량한군사분계선 위를 철새 떼가 날아가는 그림(‘장벽을 넘는 철새들’)앞에서 그가 물었다. “이 그림은 무슨 생각하면서 그렸소?” “분단의 아픔을 안고… 빨리 통일이 돼야 되겠다는 염원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개성,금강산,임진강 등 군사분계선 일대를 그린 것이많았다.수없이 현지를 답사했다고 했다.설악산을 그린 ‘설악만봉’(1998년)도 있었다.부상은 “고향을 그리는 심경과 통일의 염원이 절절히 묻어나는 그림들이구만”하고 감탄했다.백두산,묘향산,압록강등 국내는 물론 일본,폴란드 등을 현지 답사해 그린 작품도 눈에 띄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은 생명’이라는 서예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낙관의 날짜는 2000년 8월 18일.서울에서 돌아오자마자 쓴 것이었다. “모처럼의 전시회에 그림만 있으면 관람객들이 심심할까봐 써봤다”는 말이었으나 독특하고 힘있는 필치였다.화풍이 조금 다른 그림도보였다.대학생 시절의 습작품이라고옆에 있던 해설강사가 설명했다. ‘분계선의 옛 집터’란 작품 앞에서 모두들 멈춰섰다.대단한 그림이었다.군사분계선이 가로질러 폐허가 된 집안풍경을 그린 것이었다. 돌담은 다 무너지고 우물가에 깨진 장독들이 구르고 있었다.우물은메워져 그 안에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자랐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복숭아나무의 열매가 땅에 떨어지고 또 떨어져 바닥에는 씨가 수북이쌓여 있었다.그가 설명했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깨진 독들이 나무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단말입니다. 바닥에 구르던 독들이 나무가지가 자라면서 거기에 걸려나무가지에 열린 거지요.너무 가슴아프고 비참해서 이 모습은 뺐습니다” 그가 기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남에 살건 북에 살건 이제는 이런가슴아픈 분단의 상처를 걷어내고 조국을 빨리 통일해야 한다는 뜻을담고자 했습니다. 신 선생,이 그림 좀 남쪽에 많이 소개해 주십시오” 전시된 그림을 돌아본 후 그와 회견할 기회를 얻었다. “이번 전람회는 어떻게 마련되었습니까?” “나는 전라북도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9세때 의용군으로 북에 들어왔습니다.이번 전람회는 내가 북에 들어온지 50년이 된것을 기념해서 마련되었습니다” “남쪽에 계실 때부터 그림에 뜻을 두셨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고,북에 들어와 군사하면서 취미로 그림도 그리고 서클활동이 있을 때면 무대배경도 그렸습니다.그때 제 재능을 인정해주셨는지 57년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게 됐습니다.그 어려운 시기에 귀한 외화를 들여 화구와 종이,지우개까지 우방국가에서 사다 공급해주셨습니다.대학을 졸업한 후 40년간 만수대창작사에서활동해 왔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에서 전통적인 동양화와 일치하면서도 뭔가 다른 점을 느끼게 되는데 그 점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우리 화가들에게는 조선화의 전통적 기법을 더 풍부히 발전시켜서 새로운 세대들에게 넘겨줄 의무가 있습니다.옛날 것 그대로 모방해서 후대들에게 넘겨준다면 예술가로서의 내 몫은 없다고 생각해요.제 나름대로 한 평생을 바쳐서 조선화의 몰골(沒骨)기법을 더욱 현대화하고 화법에서 필치,색깔 문제들을 늙은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시대젊은 사람들의 감정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제 그림은 전통의 바탕에 서 있으면서도 선은 예리하고 질감이나 색채감각이 좀더 부드럽고 선명해서 어딘지 모르게 시적 감흥을 자아내는 면에서 남다른 개성이 있다고들 합니다.물론 모두가 대중이 평가할 문제입니다” “서울에 계신 동생들이 와서 보면 무척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다른 이들에게 너무 미안하지요.아직 한번도 만나지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선생님의 이번 서울방문을 기해서 전람회가 준비됐다가 취소됐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서울의 경인미술관에서 화첩도 출판하고 준비를 다 했는데 중간에 선 중국미술상이 협잡을 했는지 내가 가서 보니 54점중 대여섯개만내 그림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어요.섭섭하지만 잘되든 못되든 진짜 내 얼굴을 가지고 해야 하니까 전람회를 열 수가 없었지요.마음같아서는 이 그림들 그대로 다 가져가서 서울에 가서 했으면 싶어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있어서 인터뷰는 여기서 마쳤다. 전람회장을 나서면서 기자는 산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군사분계선 위를 줄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의 그림을 다시 한번 보았다.‘새들은 날아가건만’ 남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50년간 찾지 못했던 화가의 아픔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신준영기자 junyoung@
  • 적십자사, 할일은 많고 회비는 줄고

    남북이산가족 교환방문,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동포 고향방문 등어느 때보다 할 일이 많은 대한적십자사가 고민에 빠졌다.회비가 잘걷히지 않기 때문이다. 적십자사는 사업의 90% 이상을 국민이 자발적으로 내는 회비에 의존한다.이산가족 추가 상봉,생사 확인작업,면회소 설치 등 산적한 현안에 드는 자금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적십자사는 특히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8·15 이산가족 상봉이끝난 뒤부터는 격려보다는 예산을 낭비했다는 항의 전화가 많이 걸려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1차 이산상봉 비용으로 30억원이 들었다는 발표가 나오자 “이산가족 100명씩 오가는데 어떻게 30억원을 쓸 수가 있느냐.몇명을 위해세금과도 같은 적십자사회비를 흥청망청 써도 되는냐”는 등의 전화가 빗발쳤다.적십자사 직원들은 “상봉 비용이 적십자사 예산이 아닌정부의 남북협력기금에서 나갔다”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올해부터 적십자사는 통·반장을 통해 모금하던 회비를 자발적인 은행지로 납부 방식으로 바꿨다.시에 거주하는 세대주에게는 1만원,군단위 세대주에게는 2,500원을 납부해 달라는 지로용지를 보내고 적극홍보도 했으나 지난달까지의 모금액은 360여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슷한 수준에 그쳤다. 적십자사는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후원회원을모집,매월 1,000원 이상의 후원회비 자동이체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실적이 저조해 애를 태우고 있다.올해에만 10만명의 후원 회원을 모집할 계획이었지만 지난해부터 올해 9월까지 5만7,000여명이가입해 4억원을 모으는데 그쳤다. 적십자사 회원팀 김영철(金榮喆·48)씨는 “후원 회원 대부분이 기존의 적십자사 자원봉사자들인 점을 감안하면 자발적으로 후원회에참여한 인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 놓았다. 적십자사는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것을 계기로 후원 회원이급증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가입자 수는 되레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정상회담 이후 겨우 3,000여명이 새로 가입했다.그나마 이 가운데 2,000여명은 장충식(張忠植·68) 신임 총재가 지인 등을 통해 모집한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회비 모금실적을 토대로 이듬해 예산을 짜야 하는데 올해처럼 부진하면 앞으로 있을 남북 교류사업을 추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진다”고 걱정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생사확인·서신교환 대폭확대

    남북은 올 연말부터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 대상자의 수를 대폭 확대하고 내년 초 면회소를 설치키로 의견을 모았다. 또 김영남(金永南)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12월초 서울·제주 방문에 합의했다.이와함께 내년 8·15 등에 서울·평양간 친선축구대회인 ‘경평(京平)축구대회’를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열고 이를정례화하기로 했다. 남북은 3차 장관급회담 3일째인 29일 전체회의와 수석대표 단독접촉및 실무접촉 등을 통해 이같은 내용의 7개항 안팎의 공동보도문에합의했다.남북은 30일 4차 장관급회담의 일정을 포함한 공동보도문을발표할 계획이다. 남북은 회의에서 올해내 남북의 대중가수와 북한의 보천보악단 등대중공연예술단의 교환 공연 및 합동공연을 갖는다는데도 의견 접근을 보았다.이와함께 2001년 오사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아르헨티나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 구성도 긍정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남북은 모든 해외동포의 남북 고향방문을 추진하고,교수·대학생 및문화계 인사로 구성된 시범방문단을 내년초 교환하는등 학술·문화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또 경제위원회에 준하는 차관급 경제협력 실천협의기구를 빠른 시일안에 구성해 가동하고 청산결제,분쟁조정 절차도 시행해 나간다는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남북은 이산가족문제와 관련,금년말부터 생사확인·서신교환과 면회소 설치및 운영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고 구체적인 사안은 오는12월 13일 열리는 3차 적십자회담에서 협의키로 했다. 이와함께 교류 활성화를 위해 방문인사에 대한 신변보호를 제도화하고 남북교류 절차 간소화 방안을 추진해 나간다는데에도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전금진(全今振) 단장 등 북측 대표단은 30일 제주를 떠나 서울·중국 베이징(北京)을 거쳐 평양으로 돌아간다. 서귀포 이석우 오일만 김상연기자 swlee@
  • 南 ‘속도 조절’-北 ‘경협 의욕’

    제주도에서 진행중인 3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양측은 1,2차회담때와는 달리 우리측이 다소 수세적인 반면,북측은 다분히 공세적으로 임하고 있다. 우리측은 이번 회담의 성격을 6·15공동선언의 이행상황을 중간점검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등 ‘속도조절’을 하는 인상이 짙다.이번에새롭게 제기한 의제들도 해외동포 고향방문과 학술·문화교류 추진,경평축구대회 개최 등 비교적 ‘부담 없는’ 아이템들이다. 우리측이 이처럼 한 템포 쉬어가려는 의도는 남한내 여론을 의식한때문으로 해석된다.최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로 대북지원 사업을 벌이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이와함께 현 단계에선 지금까지 합의된 사항을 제대로 정착시키는 게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다. 반면 북측은 경제분야 전문가인 허수림 민경련 총사장을 회담대표로 새로 기용하는 등 경협 분야에서 부쩍 의욕을 드러내고 있다.북측으로서는 1,2차회담에서 ‘표정관리’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돈이 되는’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 같다.이번 회담에서 북측은 추가적인 관광특구 개발이나 합작공단 조성 계획 등을 제시함으로써 남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북측의 의도가 이번회담에서 성과로 나타날 가능성은 미지수다.우리정부가 28일 대북 쌀지원 계획을 공표하는 등 여론이 ‘민감한’ 상황이기 때문.경협 분야의 경우 우리측은 이번에는 ‘경제위원회’ 설치 합의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북측으로선 경협 확대가 난관에 봉착할 경우 생사확인과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에서 획기적인 양보안을 제시함으로써 타결을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 평양서 만난 량태현 장관급회담 대표

    3차 남북 장관급회담에 참석 중인 북측 ‘386세대’ 량태현(37)대표는 28일 제주 지역 인사들을 만나 “제 뿌리가 제주도에 있다”며 자신이 제주 양(梁)씨임을 강조했다.이에앞서 2차 장관급회담 직후인지난 4일 평양시내 보통강호텔에서 그를 어렵게 만났다.양강도 혜산에서 건축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고향에서 인민학교·고등중학교를마치고 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에서 영어를 전공한 량 대표는 연구원(우리의 대학원과정)과정을 마치고 조선학생위원회 연구원으로 사회에 진출했으며 현재 학사논문(우리의 석사논문에 해당)을 제출해놓고 있다.94년부터 내각 사무국에 근무하고 있으며 현 직책은 과장. 90년 중매반 연애반으로 결혼해서 아들 딸 하나씩을 두고 있다.북에서도 대가 세기로 정평 있는 양강도 출신답지 않게 부드러운 인상이었는데 본격 인터뷰로 들어가자 회담 대표다운 차분한 달변을 구사했다. ◆남북 회담사 최초로 30대에 장관급 회담 대표로 선발된 배경은. 그것은 우선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장군님께서 돌려주신 정치적 신임의 결과이며,젊은 세대들이 한몫 맡아 할 것을 요구하는 기대의 표현이라 생각한다.실무적으로는 내각 사무국에서 통일 관련문제를 주로취급하고 있는 직분과 관련되어 있다. ◆서울 방문 소감은. 시대도 변했고 사람도 변했다.장군님에 대한 인식이 엄청나게 달라졌음을 느꼈다.가는 곳마다 남녘 동포들이 손을흔들어 반겼는데 우리를 적이 아니라 동포로 여기고 있다고 느꼈다. 기자가 386세대에 대해 묻자 그는“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자주민주 통일을 위한 학생운동에 헌신한 30대 젊은 지식인 계층이라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동세대로서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분단 2세로 태어났지만 통일 1세로 살아야 할 세대다.6·15공동선언을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철저히 이행하면 통일이 다가온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이소중한 사업에 함께 젊음을 바칠 것을 제안하고 싶다. 평양 신준영기자 junyoung@
  • ‘경협 실천기구’구성 합의

    남북은 경의선 복원·임진강 공동 수방대책·경제제도화 등 경협문제를 포괄적으로 협의·실천할 ‘남북경제협력 실천기구’의 구성에합의했다. 또 교류활성화를 위해 방문인사에 대한 신변보호를 제도화하고 남북교류 절차 간소화 방안을 추진해 나간다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28일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차 장관급회담 첫날 회의에서 이같이 합의하고 경협 협의기구의 구체적인 명칭과 기능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측은 2001년 오사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및 아르헨티나 청소년 축구대회의 단일팀 구성도 제의,원칙적 합의를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모든 해외동포의 남북 고향방문을 위한 협력 ▲학술·문화교류의 지속적인 확대차원에서 교수·대학생·문화계 인사로 구성된 방문단 상호 시범교환 ▲내년 8·15부터 서울·평양 왕래 경평(京平) 친선 축구대회의 정기 개최 등을 제안했다. 서귀포 이석우 김상연기자 swlee@
  • 3차 장관급회담 성격과 전망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에서 27일 개막된 제3차 남북 장관급회담은6·15선언후 급진전되어온 당국간 협력사업을 전체적으로 검토하고큰 틀에서 조율하는 자리다. 특히 남북관계에 대한 중간평가적인 성격이 짙다.숨가쁘게 달려온그동안의 과정을 살핀 뒤 문제점을 짚고 점검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정부 당국자들은 “새로운 실천사업의 도출보다 내실을 다지는 회담”이라고 말한다.그러나 남측 수석대표인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27일 “새로운 의제 포함이 없을 수 없다”며 일부 새 의제 협의가 시작될 것임을 밝혔다. ■회담 성격 장관급회담을 ‘6·15 공동선언’ 이행 등 남북관계 전반을 총괄하고 현안 전체를 논의하는 중심협의체로 운영한다는 것이정부 방침.장관급회담이란 큰 틀 아래 국방장관·경협·적십자·사회문화회담을 하위 협의체로 진행해 나가겠다는 뜻이다.장관급회담에선 현안과 사업을 도출하고 하위 협의체에 이를 실천하도록 위임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행점검 대상 두차례 장관급회담의 합의사항을 평가·점검한다는점에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거나 미흡한 문제에 대한 협의가 중점 진행된다. 이산가족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협의도 그중 하나다.지난 23일 끝난 2차 적십자회담에서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을 시범적으로 시행해 나가기로 합의했으나 규모·방법에 있어서 그 시급성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여론이 높아 이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한상황이다. 26일 서울에서 끝난 경협 실무회의에서 합의된 원론적인 경협 제도화 문제의 실천방안이 남북관계 전체일정 속에서 협의될 전망이다.경의선의 조속한 복원을 위한 협력방안도 점검대상중 하나다.합의만 있고 실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임진강 공동수방사업 등도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협의체 구성 남북경제위원회 등 실천기구를 조속히 구성·가동하자는 입장으로 정부의 주요 추진목표중 하나다.당초 1차회담때부터 정부는 북측에 ‘경협·군사적 긴장완화·사회문화 등 3개 분과의 실천협의체 구성’을 제의한 바 있다.제도적인 틀에서 남북관계를 정착시키자는 뜻이 담겨 있다.실천기구 구성이 어렵다면 현재 이뤄지고 있는 실무당국자간 협의체를 제도화할 것을 북측에 제의할 방침이다. 북측은 사안별·사업별 교류협력을 선호하고 있다.제도적인 틀에 묶여 행동반경을 제한당하기 싫다는 태도다.정부는 “사안별·사업별로는 협력 진전에 한계가 있다”며 실천기구의 구성을 설득하고 있다. ■새로운 의제 김용순(金容淳) 북한 노동당 비서의 추석방문때 제기된 몇 가지 문제가 심도있게 협의될 전망이다.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한 일정 및 절차 등을 우선 협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연내 방한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원 공동개발 및 전력교류를 위한 경협의 틀을 만드는 방안과 2001년 세계탁구대회 단일팀 구성,2002년 월드컵의 북한내 일부 개최문제도 협의될 전망이다. 남북 학술교류 등 사회문화분야의 교류확대도 주의제가 될 전망이다.휴전선 직항로 이용,모든 해외동포들의 남북고향 방문,휴전선 일대의 말라리아 공동방제 등은 1·2차회담때 제의에 이어 협의로까지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귀포 이석우기자 swlee@
  • “60년만에 둘러본 고국 내생애 최고의 5박6일”

    “내 생애에 가장 기쁜 날들이었지만 함께 이 날을 기다리며 타국땅에서 고생하다 죽은 친구들을 생각하니 목이 메입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고향방문단 중 최고령인 장진섭씨(93)는 26일60년 만에 찾아온 고국에서의 ‘5박6일 여정(旅程)’에 대한 소감을이같이 말했다. 마지막 공식일정으로 이날 서울 종로구 창덕궁을 방문한 그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유산들이 6·25전쟁 때 잿더미가 된 줄로만 알았는데,이렇게 잘 보존돼 있다니 고맙고,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돌아가게돼 너무 기쁘다”며 후손에게 잘 물려줄 것을 당부했다. 장씨는 “고향 경주로 내려간 지난 23일 남동생,사촌 등 친척과 마을사람들이 환영 잔치를 열어줘 눈시울을 적셨다”면서 “반세기 만에 다시 본 고향이 옛 자취를 몰라 볼 만큼 변한 데 놀랐다”고 말했다. 사업 및 관광차 북한도 여러 번 다녀왔다는 장씨는 “만나면 다 똑같고 뿔달린 사람은 없다.지금까지는 문을 닫고 있었지만 앞으로는자유롭게 왕래해야 한다”면서 “이제 경의선까지 놓였으니 서울에서세계 어디든 갈 수있도록 벽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청춘에 먹고 살기 위해 일본 철공장으로 일하러 갔던 장씨는아들과 손녀 둘,손자 하나를 두었고 고손녀까지 보았다. 장씨는 “우리가 잘못해 이렇게 됐다”며 분단된 조국을 물려 준 구세대로서의 아픔을 표시한 뒤 “남과 북이 합친다면 강성대국이 될수 있다”며 젊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통일을 이룰 것을 당부했다. 27일 출국하는 장씨는 앞으로 오래오래 살며 고향을 모르는 아들,손자도 데리고 오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윤창수기자 geo@
  • 총련방문단 사흘째 고향친척과 얘기꽃

    조총련 고향방문단(단장 朴在魯·77)은 고국 방문 사흘째인 24일에도 가족 및 일가친척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는 등 상봉의 기쁨을 이어갔다.고향에서 2박3일을 보낸 이들은 문화유적지 관람 및 산업시설을둘러보기 위해 25일 오후 5시까지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 집결하게 된다.방문단은 26일 롯데월드,용인민속촌 등을 관광한 뒤 27일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전국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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