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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고장 NGO] 광주 ‘소사모’

    소외와 한숨으로 쓸쓸히 살아가는 나환자들을 돕기 위한 모임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소사모·공동대표 金信坤 전남대 교수)은 일제 때부터 가족들과 강제 격리된 채외딴 섬에 방치된 한센병 환자의 인권과 복지 개선을 위해밤낮으로 뛰고 있다. 소사모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눔의 공동체를 실현하자는 목적으로 광주지역의 학계·종교계·언론계 인사 등 80여명이 참여해 지난 3월 창립됐다.현재 회원수가 250여명으로 늘었다. 소사모는 일반인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없는 환자들의 인권 및 삶의 질 향상에 활동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첫 사업으로 지난 6월 대구·경북이 고향인 고령의 환자 7명을 선정,이들이 꿈에도 그리던 고향방문을 실현시켰고 앞으로 각 지역별로 고향방문을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회원과 그 가족들이 녹동 청년회의소와 공동으로소록도 중앙공원에 철쭉동산을 조성하고 환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호남대 신문방송학과 학생 등도 정기적으로소록도를 방문해 청소와 정원 가꾸기,환자 돌보기 등의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나눔의 철학과 공동체의식 함양을 위해 연구·조사·출판 활동을 펼치고 일본 등 국내외 관련단체와 연대를 통해이들의 인권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회원들은 최근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제기된 한센병 환자의 강제 격리에 대한 승소판결 결과 자료수집 및 수용시설에 대한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으며,이를 소록도 환자의 인권개선 운동의 기초자료로 활용키로 했다.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호남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김덕모(金德模·39)교수는 “한센병은 전염병도,유전병도 아닌 만큼 이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을 바로 잡는 게 급선무”라며 “이들의 한서린 삶의 궤적이 묻어 있는 소록도에 인권센터 건립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소록도 병원은 1916년 일제 총독부에 의해 건립된 이래 1만2,000여명이 수용됐으며,현재 850여명의 환자가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소사모 홈페이지는 www.cafe.daum.net//ilovesosamo, 전화(062)940-5264.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녹번1파출소 전직원 독거노인과 1대1 결연

    파출소 직원 전원이 박봉을 털어 동네에 혼자 사는 노인들을 보살피고 있다. 서울 은평경찰서 녹번1파출소 직원 17명은 응암동과 녹번동 일대 75세 이상의 독거(獨居)노인 15명과 1대1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지난 2월 부임한 박광신(朴光信·53·경위 파출소장은 부임하자마자 직원들에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어려운처지의 노인들을 모시자”고 제안,독거노인 명단을 만들었다. 직원들은 월급에서 몇푼씩 떼 내 비번 일에 각자 결연을맺은 노인들의 집을 찾아 위문품을 전하고 말벗이 돼 주고있다.지난 추석 연휴에는 박 경위가 노인 15명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 모두 쌀 1포대와 라면 1상자씩 전달했다.고령인탓에 갑자기 몸이 아픈 노인들을 112 순찰차로 병원에 모셨다. 박 경위는 “8년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고향에 홀로 계시는 80대 아버지를 생각하면 모든 노인들이 부모님 같다”고 말했다. 녹번동에서 30여년을 살았다는 신극수씨(69)는 “박 소장의 바른 심성을 직원들 모두가 본받아 선행에 보람을 느끼고 있으며,동네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병규기자 cbk91065@
  • “나이 먹을수록 고향 밤섬 그리워”

    “고향인 밤섬에 들어갈 설렌 마음에 어젯밤 잠을 설쳤습니다” 젊어서 배 만드는 일을 했다는 김길선씨(71·마포구 창전동)는 실향민 200여명과 함께 1년 만에 밤섬을 다시 찾는배 위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고향 생각은 더 간절해진다’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한강 밤섬에서 살다가 지난 1968년 섬 폭파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 12일 밤섬을 다시 찾았다.이들은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 선착장에서 황포돛배와 바지선 등에 나눠타고 밤섬을 방문,당시 선착장 부근(현 서강대교 아래)에서 귀향제를 지냈다.이어 섬을 구석구석 둘러본 뒤 ‘2002 월드컵 성공 기원문’을 강물에 띄우는 행사를 가졌다. 섬의 모양이 밤(栗)을 닮아서 ‘밤섬’으로 이름붙여진이 섬은 당시 여의도개발에 필요한 석재조달을 위해 폭파돼 섬의 형체가 망가졌다.62세대,443명의 주민들도 마포구창전동 와우산 기슭 등지로 이주했다. 그러나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한강 상류의 퇴적물이 쌓여이 섬에는 천혜의 자연생태계가 형성됐다.오늘날엔 청둥오리나 해오라기 등 25종 이상의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고남생이,자라 등 거북류의 산란처로 이용되는 서울에서 찾기 힘든 생태계의 보고로 자리잡았다.서울시는 99년 이곳을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김만유씨, 55년만의 성묘 ‘회한’

    “아버님,어머님,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반세기 만에 고향 제주를 찾은 재일동포 김만유(金萬有·87)씨는 28일 낮 부인 변옥배 여사와 함께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부모 묘소를 찾아 성묘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 못난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건강이 허락하는한 자주 찾아와 뵙겠습니다.” 고이 잠든 부모 앞에서 흐느낌 속에 간간이 이어진 김씨의 독백은 반세기 동안 갈라놓은 이데올로기의 장벽과 우리 민족의 아픔을 실감케 했다. 조총련계의 거물로서 86년 북한에 현대식 병원인 ‘김만유병원’을 짓고 김일성훈장까지 받았던 김씨는 그만큼 고향땅 제주도가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36년 도일한 뒤 46년잠시 고향에 다녀갔던 김씨로서는 55년 만의 고향 방문이었다. 성묘 후 상모리 3775 생가를 찾은 김씨는 주변 환경이 많이 변한 가운데도 골목길 등에 옛 정취가 남아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눈시울을 적시며 “100살까지는 살아야겠다”는 독백으로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김씨는 다음 달 1일까지 제주에머물며 친인척 상봉,관광,지역 유지들과의 만찬 등의 행사를 갖고 2일 상경,5일에는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자서전 ‘김만유집’ 등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뒤 9일 일본으로 건너갈 예정이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성인 40% “추석 즐겁지 않다”

    국민의 10명 가운데 4명은 ‘추석이 즐겁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남성은 ‘경제적 부담감’, 여성은 ‘가사노동의 부담감’ 때문이다.또 추석 때 가장 인기 있는 오락은 ‘고스톱’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은 지난 6∼17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만 20세 이상 성인 남녀 1,501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추석이 즐겁지 않다’고 밝힌 응답자는 39. 8%로 조사됐다고 27일 밝혔다.지난해에는 ‘즐겁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30.8%였다. 이유에 대해 남성의 66.3%가 ‘경제적 부담감 때문’이라고 대답했다.여성은 ‘가사노동 때문’이라는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48.8%를,‘경제적 부담 때문’이 31.7%를 각각 차지했다. 추석연휴 때 ‘1박 이상의 고향방문을 계획하고 있다’는응답자는 전체의 36.7%로 지난해 38.2%보다 다소 줄었다. 귀향 교통편은 자가용이 79.6%로 가장 많았다. 또 귀향자가운데 46.6%가 30일에 귀향할 예정이라고 대답해 이날 교통정체가 가장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지난해 추석때 한 놀이는‘고스톱’이 31.5%로 가장 많았고 2위는 윷놀이(24.2%)였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귀성길 보험들고 가세요”

    추석 귀향·귀경길 사고를 보장하는 ‘여행보험상품’ 판매경쟁이 치열하다. 26일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대부분의 손보사들은 불의의 사고로 인한 사망·후유장애와 상해,질병 등을 종합적으로 보장해주는 국내 여행보험을 시판하고 있다. 보험료는 소멸성 국내여행 상품을 파는 손보사가 3,000∼5,000원대로 저렴하다.생보사 상품은 2만∼4만원대로 다소 비싸지만 국내외 여행을 모두 보장해준다. 보험금은 사망·후유장애시 최고 1억원을 지급한다.치료비는 500만원,질병사망 및 배상책임 1,000만원,휴대품손해 100만원 등을 보상한다.성별과 연령에 관계없고 3일 보장일 때는 3,760원,5일 5,750원,7일 7,080원 등이다. 손보협회는 “고향으로 떠나기 2∼3일 전에 손보사의 지점이나 영업소,대리점을 방문,가입하면 즉시 보험증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해외여행보험상품은 보험료가 1만4,100원(5일 기준)이다. 문소영기자
  • 농산물 잔류농약 검사 나선 주부 이양옥씨

    추석을 앞두고 채소류 생산농가를 직접 돌아다니며 잔류농약 검사에 나서고 있는 주부가 있어 화제다. ‘고향주부모임’ 용인시지부장 이양옥씨(54)가 안전 농산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농수산물 명예감시위원으로선정된 4년전. 당시에는 700평의 벼농사를 짓는 생산자 입장에서 얼마나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면 소비자를 안심시킬 수 있을까가관심이었다. 그러나 생산자 전체의 노력 없이는 농가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서 농산물지킴이 운동에 적극참여하게 됐다. 이씨는 지난 7월부터 일일이 생산농가를 방문,시료를 채취해 잔류농약 검사기가 있는 전문단체에 보내고 있다. 추석 1주일 전부터는 생산농가 뿐아니라 대형 백화점과 할인점 등의 채소를 대상으로도 잔류농약 검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같은 생산자 입장에서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원망어린 시선에 대해 이씨는 단호한 한마디를 건넨다. “물론 순간의 욕심에 출하 직전 농산물에 농약을 뿌릴 수는 있지요.하지만 그것은 한번의 만족일뿐 결국 신뢰도가떨어진 농산물은 소비될 수 없습니다.” 이씨는 반면 ‘특혜’라는 표현을 써가며 안전한 농산물을생산하는 농가는 판로 알선 등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안전 농산물을 위해 이씨는 오늘도 농약 시료 봉투를 들고 부지런히 농가를돌고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CLEAN 3D/ 유용태 노동장관 인터뷰

    ‘클린3D’ 사업의 총사령탑 유용태(劉容泰)노동부장관은“올해 안에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위험작업 중지 등 행정명령 미이행시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고 행정형벌 위주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벌칙을 과태료로 대폭 전환해 나갈방침”이라고 밝혔다. ■취임 소감은. 80년 노동부를 떠났다가 21년 2개월 만에 다시 노동부에 돌아오니 고향에 온 느낌이다.노동부 출신의 첫 장관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될 수있도록 열심히 소임을 다할 생각이다. ■앞으로 역점을 두고 추진할 노동정책은. 98년 이후 강도높게 추진해 온 실업대책의 경우 어느 정도 틀이 잡혔으므로 실업대책도 양적 실업감소에서 탈피,질적 측면에서 접근하도록 기조를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평소 철학은. 재해로부터 근로자의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은 어떠한 경우라도 소홀히 해서는안될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며 근로자의 안전문제는 현재의일자리를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앞으로 추진할 산업안전보건 정책에 대한 구상은. 노동부의 산재예방 행정력으로는 모든 사업장의 재해와 직업병 문제를 직접 지도·감독을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없다.따라서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노동부와 재해 예방단체 등의 행정력을 집중시켜 시설개선이나 기술지원을 통해 유해·위험요인을 제거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아울러 재해예방을위해 꼭 필요한 규제에 대해서는 복원을 추진할 계획이다. 안전보건투자 촉진을 위해서는 산업재해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의 심각성과 예방을 통한 경제적 이익에 대해 사업주가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하면서 법 위반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실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올해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위험작업 중지 등 행정명령 미이행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행정형벌 위주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벌칙을 과태료로 대폭 전환해 나갈 방침이다. ■클린 3D사업을 통해 기존의 재해예방 정책을 어떤 형식으로 보완할 것인지. 지금까지 경제적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소규모 사업장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클린 3D사업은 사업장에서 필요로 하는 시설개선 및 기술을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것을 기본방침으로한다. 앞으로 기술지원 사업은 대상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의 특성에 따라 차등지원하며 해당 유해·위험요인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전문화·특화해 정기적으로 기술요원이 방문,집중적으로 지도할 계획이다. ■산재예방을 위해 근로자와 사업주,안전보건 관계자에게 당부할 사항은. 산업 재해를 얼마나 줄이느냐 하는 것은 사업주의 의지와 근로자의 협조 여하에 달려 있다.사업주는 안전제일을 경영의 목표로 설정하고,인명존중의 확고한 의지를가져야 하며 안전보건에 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근로자의 참여와 협조도 필수적이다.
  • ‘김정일 답방’ 논의 묵묵부답

    제5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해 이렇다할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남측도 공식 거론한 적이 없다고 한다. 남측 대표단의 이봉조(李鳳朝) 대변인은 18일 공식브리핑에서 “이번에 6·15공동선언의 미이행 과제들을 점검하고향후 추진계획을 세우는데 역점을 뒀다”면서 “북측의 특별한 언급이 없어 이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북측 김령성 단장도 지난 15일 “(답방문제는)우리가소관할 사항이 아니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청와대 역시 17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 단장의 면담에서 “답방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가 공개한 대화록에는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 있다. 김 단장의 발언 가운데 김 대통령의 안부를 묻는김 위원장의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김일철 인민무력상이나 전금진 내각 책임참사의 대통령 예방시와 대비될뿐 아니라 의전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공개 대화 중 답방 문제가 들어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홍순영(洪淳瑛) 통일부 장관과 임동원(林東源)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김하중(金夏中) 외교안보수석 등대북정책의 핵심인사 3명이 모두 배석한 점도 “단순한 환담 이상의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낳는다. 김위원장의 친서가 전달됐거나,김 대통령의 친서 또는 구두 메시지가 건네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진경호기자 jade@
  • 국보급 그림 돌아온다

    시가 50억원을 호가하는 16세기 조선시대 국보급 회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가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재일교포 사업가 김용두(金龍斗·77) 덴리(天理)개발회장은 최근 일본을 방문한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에게 자신의소장품 ‘소상팔경도’를 기증하겠다고 밝혔다.국공립박물관에 기증되는 단일 문화재로는 가장 비싼 수준인 이 그림은 91×47.7cm 크기의 그림 8폭으로 이뤄졌다. 박물관측은 지난 97년과 지난 해에 이어 세번째로 소장품을 기증한 김회장의 뜻에 따라 그의 고향인 경남 사천 근처의 국립진주박물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이종수기자 vielee@
  • ‘잔류설’이총리 행보 “국정이 우선”

    총리직 사퇴서를 제출한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가 4일오후 고향인 경기도 포천을 찾아 향후 거취에 대한 생각을가다듬었다.이 총리가 정치적 고비 때마다 들른 곳이다. 이 총리는 생가와 선영을 차례로 방문한 뒤 저녁 산정호수 한화콘도에서 열린 ‘경기북부 11개 시·군의원 연찬회’에 참석,국정 홍보에 열을 올림으로써 최근 심경을 대변했다.그는 DJP공조 파기까지 불러온 대북포용정책에 대해“지난해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는 전쟁공포와위험성에서 해방된 상태”라면서 “그것만으로도 대북포용정책은 성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임동원(林東源) 장관 해임안 가결과 관련,“평양에서 어설픈 짓을 한 단체는 엄단하면 되고 (북한과) 대화는계속해서 전쟁이 영원히 추방되도록 해야 한다”며 임 장관 자진 사퇴를 주장해온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와 차별화했다.이어 20여분에 걸쳐 세계경제 침체속에서도 지속되는 경제성장,생산적 복지,전자정부 구현,유엔 의장국 선출 등 현 정부의 치적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 총리는 이와함께 “선거에서 승리한 사람이 모든 것을얻고 패배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잃는 한국형 대통령제가 국민을 양분화시키는 원인”이라며 새삼 내각제 개헌을 주장했다. 하지만 거취를 묻는 질문에는 “당에 총재직 사퇴서를 낸사람이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말해 탈당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 총리는 지난 해 1월 자민련에 입당,2월에 총재로 선출됐다가 그해 5월부터 총리를 맡아왔다. 최광숙기자 bori@
  • 고향 제주에 희망 심은 재일교포

    한 재일동포가 제주도에 쾌척한 사재 4억원이 심장병과만성신부전증 환자 6,000여명에게 희망과 용기의 씨앗이되고 있다. 22일 도 관계자들에 따르면 남제주군 대정읍 출신인 고재천(55·일본 오사카 거주)씨는 지난 89·90년 고향을 방문,“제주를 심장병과 신부전증 환자가 없는 곳으로 만들고싶다”며 4억원의 성금을 제주도에 기탁했다. 도는 이 돈을 은행에 예치,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의 경우 시장·군수의 추천을 받아 검사비와 수술비 중 본인 부담액 전체와 교통비 20만원,만성신부전증 환자의 경우 혈액및 복막 투석자중 의료보호 1종환자에게 매월 5만원씩 지원했다. 그 결과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심장병환자 168명에게 2억 4,800만원,만성신부전증환자 5,919명에게 2억5,400만원등 모두 6,087명에게 5억 200만원을 지원해 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줬다. 김씨가 기탁한 성금은 이자수입으로 아직 1억4,754만원이남아있다. 제주에서 3살때 어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김씨는온갖 고생을 하다 자수성가해 제조업체인 생도(生島)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지난 86년부터 ▲학생장학금 8억8,000만원 ▲제주도 역사만화 제작비 1억5,000만원 등 모두 16억원의 각종 성금을고향발전을 위해 쾌척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4)식민지 저항적 지식인

    근대 여성작가 중 가장 치마폭이 넓었던 최정희는 유파와연령을 초월하여 문우들과 교유했는데 그 중 소중한 것으로는 국제 입찰에 부칠만한 중량급 서간문도 포함되어 있다. 바로 김사량(金史良,본명 時昌,1914∼1950)의 편지이다.일본에서 더 유명한 김사량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야 했던가를 일깨워 준 근대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한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평양에서 1914년에 태어난 그는 평양고보 재학 중 배속장교와 일본인 교사 및 그들에 동조하는 조선인 교사 배척을 위한 동맹휴학을 주도해 퇴학처분을 받고는 형 시명(時明,교토제대 법학부 졸업 후 사법·행정 양과 합격,홍천·평창 군수,조선인 최초의 전매국장,8·15 후에는 중앙산림조합연합회 이사장 등을 지냄)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밀항했다.학창시절에는 연극에 관심이 많아 신협(新協)극단과 연계,장혁주(張赫宙)가 각색한 ‘춘향전’의모국 순회공연에도 참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펼치다 여러이유로 경찰에 자주 구금 당했다. 결혼 직후 하이네에 관한 논문으로 도쿄제대 독문학과를졸업(1939)한 그는 잠시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서울의 하숙집에서 출세작 ‘빛 속에서’를 썼다.이 무렵에 아마 서울의 잡지사와 문인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을것인데,최정희와의 인연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도쿄제대 대학원 입학허가를 받은 그는 6월 아내와 도일,일본과 한국 문단을 잇는 가교 역할을 맡게 된다.편지에서 김사량은 매우 조심스럽게 최정희의 ‘지맥’을 추천했으면 싶었으나,이미 일본의 다른 출판사(赤塚書房)가 추진하고 있던조선문학 선집에 관여하는 장혁주가 손을 댔기에 ‘흉가’로 하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몇 차례 오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는 최정희가 자신의 소설을 일본에 소개되기를 희망한데 대한 답신 내용이 대부분이다. 장혁주는 누구였던가.김사량보다 먼저 등단한 그는 잡지사,문인 등을 후배에게 소개시켜 주는 역할을 했던 재일조선인 문단의 대선배였다.1905년 대구에서 출생한 그의 본명은 은중(恩重),창씨개명은 노구치 가쿠주(野口赫宙,첫 창씨명은 野口이었음)로,불륜사건에 연루되어 도일,본처와 이혼,일본여자와 재혼,8·15후 아예 일본으로 귀화해 버린 인물이다. 그는 초기의 민족적인 성향과는 달리 친일화 정도가아니라 아예 혈통까지도 일본인화 해야된다는 각오로 일본여자와 결혼을 감행한 친일문학인 가운데서도 발군의 활약을 보여주었다.1952년 10월,6·25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변장한 채 일본 ‘부인구락부’ 특파원 신분으로 입국하여 취재활동을 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한국을 힐난하는 글을 써서 당시 문학단체가 법석을 떨게 했던 장본인이다.그는 아예 일본문학보국회에 가입하여 활동에 열을 올렸던 인물로한국을 영원히 등진 조국상실자가 되었다. 최정희의 ‘지맥’은 평론가 한식(韓植)이 번역을 맡은 것으로 드러나며,편지에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김사량은 ‘모던 일본’에다 이광수의 ‘무정’을 번역했는데,아마 이 사실은 고의로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김사량은 ‘조광’에장편 ‘낙조’(1940.2∼1941.1)를 연재하면서 모국어 문제에 대하여 매우 겸허하게 최정희의 조언을 구하고 있지만사실 그는 ‘양국어 작가’로 손색이 없었다.그가 ‘삼천리’에 발표한 글로는 잡문 ‘조선문학과 언어문제’(1941.1)와 소설 ‘지기미’(1941.4)인데,이 두 사실을 편지에 대입해 읽으면 그와 최정희의 교유가 대략 1939∼1941년임을 알 수 있다.중요한 사실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문예춘추’는 1935년 일본최고의 아쿠다가와 (芥川)문학상을 제정했는데,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김사량이 이 상의 후보작으로 뽑혀 일약 일본문단의 유망주가 되었다(1940.2).1941년12월 9일 새벽 진주만 기습에 따른 사상범예방구금법으로감금당했고,유명세만큼 그에게 부하되는 역사적인 책무도커서 친일을 강요받았으나 거절했다. 일본 문학인들의 구명운동으로 이듬해 1월29일 석방된 그는 이내 귀향,조용히 지내려 했지만 강제동원을 피할 수 없었다.이효석(1942년 작고)이 있었던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사가 된 건 1944년 4월.강제 친일에 동원되면서도 일본문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격렬하게 식민통치를 비판하던 이투사는 1945년 2월 조선출신학도병 위문단으로 중국에 파견,일정을 마친 뒤 탈출,화북조선독립동맹에 참여하여 떳떳하게 해방을 맞았다.이때의 탈출 투쟁기는 ‘노마만리(駑馬萬里)’란 제목으로 남아있다. 1945년 11월 서울에서 그의 희곡 ‘호접’이 단성사에서 공연되는 등 광복 후 한국 좌익문단의 정화에 일조했던 그는이듬해 평양으로 돌아가 6·25때 종군작가로 참가,후퇴 도중 원주 부근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낙오된 채 행방불명된 게 그의 최후다(안우식 지음,심원섭 옮김 ‘김사량 평전’ 참고).김사량은 자신의 친일행각이 강제에 의한 것임을 문학인들에게 공공연하게 실토했던 점과 모험을 무릅쓴 극적인 탈출로 민족해방투쟁에 나섰던 문학인이었다는 점에서식민지시대 저항적 지식인의 전형으로 세계 저항문학사에손색이 없는 작가이다. 극적인 생애는 한설야(韓雪野)도 마찬가지다.기생 이름 같은 낭만적인 필명과는 달리 1900년 함주(함흥)에서 태어난그는 1976년 북한에서 사망할 때까지 영욕을 두루 겪은 비극적인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인물인데,유명한 한의학자 이제마(李濟馬)의 제자로,홍범도(洪範圖)등의 의병활동을 무마시키라는 일제의 강요를 거절코 고향을 떠나 피신했다.한설야는 경성제일고보에다니다가 서모(庶母)와 불화로 귀향,함흥고보로 전학,3·1운동에 관련되어 구금 체험을 한다.중국,일본 등지를 떠돌거나 유학 한 뒤 ‘조선문단’으로 등단한 그는 서울에 머물렀다가(1925∼1926),아버지가 많은 빚을 남기고 죽자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1927) 귀국하여 카프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문학과 사상 연구회,‘한설야 문학의 재인식’).한설야가 조선일보에 입사한 것은 1932년경인데 함남지역에 특파됐다가 본사에 왔을 때는 경영권 문제로 매우 복잡 미묘할 때였다.창간 초기부터 경영진의 시국 순응 성향과 편집진의 민족의식 지향이 갈등관계를 유지했던조선일보는 계속 사주가 바뀌면서도 반일논조 때문에 정간과 필화가 잇따랐다.신간회(新幹會)운동으로 안재홍(安在鴻)사장이 구속되는 등 혼란을 틈타 고리대금업을 하던 채권자 임경래(林景來)가 조선일보 경영권을 주장하여 조병옥(趙炳玉)·주요한(朱耀翰)의 정통 편집팀과 대결,두 개의 조선일보 발행이라는 희극이 연출되다가 방응모(方應謨)가 참여,부사장을 거쳐 발행인이 된 것이 1933년 7월(사장은 조만식).이 혼란 속에서 한설야는 학예부에 근무하며 노동 현장소설의 신기원이란 평가를 받은 이북명(李北鳴)을 발굴하여 ‘질소비료공장’을 연재 중단 당하는 등 카프노선에 충실한 언론인으로 활동한 것 같다. 당시 정황을 한설야는 단편 ‘세로(世路)’에서 너무나 자세히 언급하여 한국언론사의 충실한 증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소설은 자신이 회사로부터 해직 통고서를 받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왜 그렇게 됐는가에 대한 자초지종을 회상하고있다.등장인물은 모두 실명이지만 사정상 이니셜을 썼는데,쉽게 알만한 인물들이 그대로 나온다.새 경영진은 기구와인사 개편을 통하여 그때까지 신문사의 주류였던 M일파(투옥 경력자 등으로 묘사)를 약화 시키는데,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배신감과 사회적인 공분이 폭발한 한설야는 술자리에서 변절한 동료의 뺨을 후려친 게 화근이 되어 권고 사직을 당했다. 조선일보 사사(社史)에 의하면,1934년 1월 1일자로 대폭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는데,특히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된 M(문석준)의 좌천도 바로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미뤄 볼 때 한설야의 퇴직도 이 무렵일 것이다.이 문석준은 1943년 함흥에서 한설야와 함께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한설야는 1944년 5월 석방) 당하는 주인공이다.1934년은 그에게 매우 불행한 한 해였다.해직 후 8월 그는 카프 2차사건으로 구속됐기 때문이다.달필인 한설야의 편지는 함흥에서보낸 것인데,아마 1941∼2년초 경 ‘삼천리’가 ‘대동아’로 개제하기 직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최정희가 한설야에게 잡지에 재수록할만한 짧은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청탁에 대한 회답 형식인 이 편지에서 그는 ‘강아지’와 ‘능금’을 천거했다.앞의 작품은 ‘한설야 단편집’에 실려 있는데,그게 1941년 7월에 나왔으며,뒤의 것은 1940년 간행 단편집 ‘귀향’에 게재된 것으로 볼 때,그리고 ‘대동아’개제가 1942년 3월부터였음을 감안하면 이 편지가 씌어졌던 시기는 밝혀질 것이다.이 무렵 그는 함흥에서 서점·극장·인쇄소 등에 손을 대는 등 생업과 창작에 전념하면서 해방의 날을 준비하고 지냈다.여담이지만 한설야는 광복 후북한에서 ‘김일성장군 전기’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쓴 한편 소련(1947),평화옹호 세계대회 참석차 프랑스(1949) 등지를 방문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하다가 1962년 비판당한 후 불행한 최후를 마치고 작품도 판금,아직도 전면적인 해금이 안된 상태에 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부시 ‘일하는 휴가’ 효과만점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요즘 워싱턴 정가에는 ‘백악관 무용론’이 나돈다.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텍사스주 크로포드 목장에서 ‘휴가 겸 재택근무’에 들어가자 대통령이 백악관에 머물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외교의전상 대통령 집무실이 필요하지만 지금같아선 대통령의 고향에다 ‘제2의 백악관’을 차리는게 낫다는 지적이다.뒤집어 말하면 대통령이 한달간 휴가를 떠나도 행정업무는 빈틈없이 잘 돌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시 대통령은 ‘일하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들이 괜히휴가 운운한다고 말한다.전화나 팩시밀리로 행정 각료들과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특별한 정치일정이 없는 워싱턴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의회도 한달간 휴회,재충전을 위해서 쉬면서 일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이다. 대통령이 텍사스에 있다고 행정부 일정에 차질을 빚지도않는다.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미사일 방어(MD) 협상을 위해 11∼13일 모스크바를 다녀왔다.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워싱턴에 머물며 국내·외 현안을 처리하고 있으며 국방부 등의언론 브리핑도 빠짐없이 열리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안보협상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등 주요한 사항은 그때마다 장관으로부터 직접전화보고를 받는다.나머지는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에게 전화로 지시한다.장관들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하고 아주중요한 사항만 대통령이 결정하는 미국식 통치시스템의 전형이다.다만 대통령이 워싱턴에 없을 뿐이다. 그러나 국론분열이 예상되는 주요한 이슈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선다.부시 대통령이 지난 9일 TV 생중계를 통해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기금 지원의 배경을 설명한 것은 좋은 사례다.대통령이 TV에서 중대발표를 하더라도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 장관은 워싱턴에서 후속조치를 준비했다.16일에도 의료보장제도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부시 대통령은 15일 뉴멕시코 알부퀘르크의 초등학교를 방문,자신의교육관을 피력했다.앞서 14일에는 로키산맥 국립공원에서‘미국정신과 품위있는 공동사회’를 강조한데 이어 저녁에는 덴버에서 공화당 선거기부금 행사에 참석했다. 백악관에 ‘대통령은 휴가중’이라는 팻말을 내걸었지만부시 대통령은 일부 보좌진만 대동하고 ‘이동식 백악관’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대통령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기는 시스템은 대통령의 전문성이나 빡빡한 일정 등을 감안하면 무리다.대통령은 사회의 구심점을 유지하는데더 큰 비중을 두고 아주 중요한 사항이 아니면 각료들에게의사결정권을 위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같다.
  • 이인제, 박근혜에 ‘러브콜’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이 향후 대선 정국의 주요변수로 떠오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부총재와의 회동을은밀히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자신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심한 것으로 간주되는 TK(대구·경북)지역 공략을 위해서다. 이 위원의 측근은 “최근 박 부총재에게 만남을 제의했으며,답신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그는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생가 방문 등 TK방문에 앞서 박 부총재를 만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민국당 김윤환(金潤煥) 대표 등을 만나고,경선 출마를 선언하는 등 심상찮은 행보를 하고 있는 박 부총재가 회동 제의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둘의 만남이 정국 판도변화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특히 ‘이-박 회동’이 성사될 경우 이 위원의 TK 교두보 확보와 박 부총재의 위상제고 효과를 부르면서 이회창 총재의 입지에 타격을 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위원은 이달초 이수성(李壽成) 전 총리와 김윤환 대표도 비밀리에 만난 것으로 알려져 ‘TK행’ 보폭이 생각보다넓다는 느낌을 준다. 이 위원의 행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이회창 총재 등 ‘정적(政敵)’들의 아성을 잇따라 파고들며 ‘정면승부’에나서고 있음이 관측된다. 실제 이 위원은 16일 이회창 총재 부친의 생가가 있는 충남 예산을 방문,농가에서 하룻밤을 묵을 계획이어서 이 총재측을 긴장시키고 있다.앞서 지난 7일에는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의 고향인 충남 부여를 방문,자민련의 반발을 불렀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씨줄날줄] 남북적십자 30년

    “아버지” “내딸 금단아…” 1964년 10월 도쿄에서 15년만에 만난 부녀는 부둥켜 안고 눈물만 흘렸다.도쿄올림픽에 출전한 북한 육상선수 신금단씨(당시 26세)와 아버지 신문준씨(당시 49세,1983년 작고)의 극적인 상봉이었다. 남북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은 7분만에 끝났다.현재 남한에만 이산가족 1세대 123만명,2·3세대까지 합치면 767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1세대는 대부분 70세가 넘는 고령자이다.70세 이상 25만여명의 이산가족들은 죽기 전에한번만이라도 혈육을 만나보고 싶어 한다. 8월12일인 어제는 적십자회담 대북 제의 30돌이 되는 날이었다.1971년 당시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이산가족 재회를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열자”고 제의했고 1971년 9월 20일 분단후 처음으로 남북적십자 1차 예비회담이열렸다.그로부터 30년 동안 숱한 접촉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들의 상봉은 불과 4차례에 그쳤다.1985년 남북 50명씩의 이산가족 고향방문이 있었고,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3차례 서울과 평양에서 200명씩의 상봉이 이루어졌다.1,000만명에 이르는 이산가족 가운데 겨우 1,000여명 남짓이상봉했을 뿐이다. 이산가족들에게 남북대화 중단은 또다시 하늘이 무너지는아픔을 겪게 하는 것이다.이산의 아픔을 달래자는데 북·미관계 악화가 무슨 이유나 변명이 되는가.이산가족 문제는 정치나 국제관계와는 별개로 남북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북한은 하루빨리 적십자회담에 응해야할 것이다. 중국과 타이완의 경우,이산가족 문제는 정치와는 별도로해결했다.중국은 1978년 타이완에 통상,통항,통우(通郵)와경제·문화·체육·과학기술 교류 등 ‘3통4류’를 제의해 1987년에 자유왕래가 보장됐고,1991년에는 중국인 배우자의 타이완 거주를 허용했다.동·서독은 1950년대부터 이산가족 재회와 동독주민의 서독 이주를 추진했고,1981년에는 ‘이주 협정’이 체결됐고 마침내 통일에 이르게 됐다. 우리도 중국이나 독일처럼 못할 이유가 없다.분단이 반세기가 넘고 남북적십자회담을 한 지도 30년이 되었는데 이산가족들의 한맺힌 기다림은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는가. “새들도 자유롭게 남과북을 오가는데 우리는 도대체 뭔가.”[김경홍 논설위원 honk@]
  • 전북지사 출마 행보?

    휴가중인 7일 이무영 경찰청장이 고향인 전북 전주를 방문,쉬지 않고 업무를 챙겨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에서 전북지사 출마설이 파다한 이청장은 휴가기간 도내 일선 시·군 경찰서,파출소,사찰 등을 방문하고 기자간담회도 잇따라 열었다. 8일과 9일 전북지역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는 112신고처리 결과를 민원인에게 통보해주는 ‘민원리콜제’를 도입하고 보험급여를 노린 가짜 환자를 뿌리뽑기 위한 전담 수사팀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월드컵개최도시 가운데 가장 교통사고율이 높은 전주시의 교통대책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획기적으로 개선토록 하겠다고 말했다.아울러 경찰관 신규채용시험과 경찰대 입학시험 응시자의 시력제한 규정을 하향 조정해 우수한 인재들이 경찰에 들어올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북지사 출마설에 대해서는 “오직 현재의 직분에 충실한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도리로 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與 트로이카 ‘대권 삼매경’

    여당 대권주자들의 발걸음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노무현(盧武鉉) 상임고문,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 등 이른바 ‘50대 트로이카’는 7일 각자의 ‘입맛’에 맞게 세확대에 나서는 등 ‘대권 삼매경’에 빠져들기라도 한 듯했다. 시사저널이 최근호에서 민주당 대의원들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대권후보 지지율 33%를 기록,부동의 당내 선두를 확인한 이 위원은 충남지역을 누비며 민심을 훑었다.반면,당내 지지세 확보가 시급한 노 고문은 소장파 의원들을만나 지지를 유도했다.김 위원은 한때 신당추진설이 나돌던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과 만나는 등 노선을 넘나드는포용력을 과시했다. 이 위원은 이날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 명예총재의 고향인 부여를 찾아 “부여는 JP가 나라의 가난을 이겨내고크게 성장시킨 데 대한 자부심이 있는 곳”이라며 JP를 치켜세우는 여유까지 보였다.16일에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 부친의 생가가 있는 예산도 방문,충청권 차기 맹주로서의 위상을 과시할 예정이다. 노 고문은 이날 낮 기자 간담회를 갖고 “당이 개혁주체임을 좀더 분명하게 자임하고 나서야 한다”며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당내 개혁세력들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노 고문은 저녁에는 신기남(辛基南)·정세균(鄭世均) 의원 등 ‘바른정치실천연구회’ 소속 의원 6∼7명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김 위원은 수원에서 정몽준 의원과 국제여자축구대회를 관람한 뒤 저녁을 함께 하며 정국현안 등을 소재로 환담을 나눴다.이날 만남은 김 위원의 제의로 이뤄졌다. 김상연기자 carlos@
  • 워싱턴 정가 개점휴업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백악관이 한달동안 ‘개점휴업’한다.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4일부터 여름휴가에 들어갔다. 부인 로라 부시 여사와 함께 텍사스에 있는 자신의 크로포드 목장에서 노동절인 9월 3일까지 머문다.부시 행정부의 참모들과 백악관 보좌진도 2∼3주씩 휴가를 떠난다. 대통령과 측근들이 한달 가까이 백악관을 비워도 이를 문제삼는 사람은 없다.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휴가 이후의 정국을 조망할 뿐 대통령의 휴가 자체에 이의를 달지는 않는다.대통령이 휴가중이어도 보좌진들이 텍사스에 머물거나 드나들며 현안을 보고하고 논의하기 때문에 국정공백은 없다. 부시 행정부에 대해 줄곧 비판적 논조를 가하는 뉴욕타임스도 사설에서 “텍사스로 갈 때는 즐겁겠지만 돌아올 때는 과소평가해선 안될 난제들이 산적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을 뿐이다.워싱턴 포스트와 USA투데이 등 주요 일간지들은 “9월 정국에 전운이 감돌 것”이라고 예고했다. 부시 대통령도 꺼리김없이 휴가일정을 밝혔다.그는 4일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취임 6개월 동안의성적을 ‘올 A’로자평한 뒤 ‘고향으로의 즐거운 여행’을 떠나겠다고 말했다.휴가 도중 콜로라도와 뉴멕시코,위스콘신,펜실바니아 등을방문할 예정이지만 특별한 사항이 아닌 한 목장에서 지낼 것이라고 측근들은 밝혔다. 부시 대통령의 휴가는 의회의 여름철 휴회 기간과도 일치한다.미 상하 양원은 8월 한달 동안 일손을 놓는다.모든 정치일정이 의회와 맞물려 돌아가는 워싱턴 정가에서 백악관과의회가 동시휴가를 보내는 것은 관례다.로널드 레이건 및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4주간,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주간여름휴가를 보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대통령이 2∼3일 휴가를 가려해도 모든 일정을 살펴야 한다.만약 대통령과 청와대 보좌진들이 일주일 이상 휴가를 떠나면 언론들은 당장 ‘행정공백’ 운운하며 법석을 떨 게 뻔하다.그러다보니 장관등 고위관료들도 일년에 한번뿐인 정기휴가를 다 보내지 않는다.일반기업의 간부들도 정당한 휴가를 눈치보며 간다. 한달 가까이 휴가를 떠나서는 곤란하겠지만 그렇다고 휴가를 무작정포기해서도 안된다.‘일 따로,휴가 따로’를 구분하는 미국적 사고방식을 한번쯤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 [고이즈미 대해부] (2) 대외정책

    지난 4월 26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취임하자 일본 안팎에서는 그의 외교 역량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사실 외교에는 밝지 않다.29년 정치 생활중 자민당이건 정부건 외교와 관련된 직책을 맡아 본 일이한차례도 없다.일본 정치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미국 중시,아시아 무시’의 판박이이다. 그의 친미 성향은 지난 6월 워싱턴 미·일 정상회담,7월 제노바 G8 정상회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기후변화협약인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 대한 일방적 지지로 좀처럼 그를 비판하지 않던 일본 언론들도 ‘미국 추종 외교’라고 야유를 퍼부었다. 미국에는 늘 미소짓는 그이지만 아시아에는 냉담하다.역사왜곡 교과서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로 악화일로인한국,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참배 후에 시도하겠다”는 오만하고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 중시 성향은 성장 배경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고향 요코스카(橫須賀)는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의 이른바 ‘흑선(黑船)’이 찾아온 일본 개국(開國)의 시발점이다.근·현대일본 부흥의 전진기지이기도 한 요코스카에서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포함,3대가 정치생명을 이어 왔다. 요코스카에 미 7함대의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반미 운동의 중심지가 됐을 때도 방위청장관을 지낸 그의 부친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1969년 사망)는 ‘미·일 안보조약’의 중요성을 역설했을 만큼 고이즈미 가(家)의 ‘친미 성향’은대물림이다. 일본 외무성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아시아를 이해한다면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는 언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아시아 지역에 대한 몰이해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놀랍게도 한국이건 중국이건 태어나서 가본 적이 없다.오는 10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회의(APEC) 참가를 위해 상하이(上海)에 가는 게 첫 중국 방문이다.한국과 중국을 모르는 고이즈미 총리가 취임하자 한국 정부는한·일 관계의 앞날이 험난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기우이길 바랐다. 전문이 아니기는 방위 분야도 마찬가지다.총리 취임 후 방위 정책과관련한 그의 언급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그 가운데 유사법제 정비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는 상당히 적극적이다.그는 취임 직후 “일본 근해에서 미군이 공격받았을경우 일본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능한 일인가”면서사실상 검토를 지시했다.일본 정부는 지난 60년 “헌법상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렸으며 이같은 헌법해석은 아직까지 유효한 상태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개헌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미국의 미사일 방위(MD) 구상에도 결국은 미국의 권유를 받아들여 참여할 것으로전망되고 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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