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고향 방문
    2026-09-19
    검색기록 지우기
  • 교류 협력
    2026-09-19
    검색기록 지우기
  • 다문화 이해
    2026-09-19
    검색기록 지우기
  • 지하철 사고
    2026-09-19
    검색기록 지우기
  • 유권자 참여
    2026-09-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712
  • 최경주 또 체육훈장 받는다

    ‘탱크’ 최경주(37·나이키골프) 선수가 두번째로 체육훈장을 받는다. 정부는 20일 오전 한덕수 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경주 선수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여하는 안건을 상정, 이를 심의한 뒤 의결했다. 청룡장은 5개 등급으로 나눠진 체육훈장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 최경주는 지난 2002년 박세리(1998년) 김미현(1999년)에 이어 골프선수로는 세번째로 맹호장을 받았지만 가장 상위의 청룡장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경주는 지난 2002년 5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컴팩클래식을 시작으로 지난 7월 AT&T내셔널까지 모두 여섯 차례 우승컵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로 성장했다. 각종 국내·외 골프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국위를 선양하는 등 체육진흥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최근 3개 아시안투어 대회를 마치고 지난 19일 귀국, 이날 고향인 전남 완도를 방문한 최경주는 “내 골프 생애 가운데 가장 영광된 일”이라면서 “물론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열심히 한 대가로 생각하고 있고, 곁에서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고 말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이명박 “박근혜는 큰 정치인”

    이명박 “박근혜는 큰 정치인”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정권 창출하고 동반자가 되어 함께 나아갈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대구·경북에서 무소속 이회창 후보 출마에 따른 이른바 ‘창풍(昌風)’ 잠재우기에 나섰다. 진압 카드는 역시 박근혜 전 대표와의 화합이었다. 이 후보는 12일 오후 박 전 대표의 정치적 고향인 경북 구미로 달려갔다.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성공대장정-대구·경북 대회’에서 그는 박 전 대표를 ‘큰 정치인’이라 일컬었다.“경선을 통해 깨끗이 승복하는 박 전 대표처럼 크나큰 정치인을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막노동하던 시절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있었는데 그 소원을 풀어준 사람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도 했다. 한반도대운하가 박 전 대통령의 ‘미완의 꿈’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박정희 향수와 지역발전의 기대감을 동시에 자극하기도 했다. 앞서 오전엔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방문, 방명록에 ‘한강 기적에 이어 낙동강, 영산강 기적을 이루겠습니다. 그러하여 대한민국 제2의 경제도약 이루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강재섭 대표는 연설 도중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을 단상으로 올려 함께 손을 맞잡기도 했다. 그는 “오늘 박 전 대표의 손을 잡아 올리려 했는데, 원본이나 사본이 똑같으니 비서실장 손이라도 한번 잡아 올려보자.”며 ‘박심(朴心)’에 한껏 기댔다. 이날 행사는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에서 치러졌던 다른 대회와 달리 1만 5000여명의 당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격정적으로 치러졌다. 박 전 대표를 향한 이 후보의 적극적 ‘구애’에는 무엇보다 김경준씨 귀국을 앞두고 언제든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박 전 대표가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를 정도가 아니라고 했으나 자신에 대한 지지를 명확히 언급한 것은 아니다. 당내 갈등 역시 소멸한 것이 아니라 잠복해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박 전 대표의 언급에도 불구,BBK변수가 남아 있어 당장 지지율 변화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김경준 귀국 이후 여론이 어떻게 흐르느냐가 마지막 변수”라고 말했다. 구미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이지운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가슴 설레는 무연고 조선족동포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드디어 부자가 될 수 있는 열쇠를 받았습니다.” 40대 초반의 조선족 교포 전모씨. 최근 ‘무연고 동포 방문취업사증’ 발급 대상자로 선정된 뒤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 가서 돈을 벌어올 때 그는 답답한 속만 삭여야 했다. 산업연수생의 문은 너무 좁았고, 친척도 없어 남들처럼 초청을 받지도 못하는 형편이 더욱 안타까웠다.그는 “헤이룽장(黑龍江)성 고향에서 ‘한국에 사는 친척’은 부(富)를 가르는 기준이었다.”고 말한다. 친척 초청으로 한국에 간 이웃들은 돈을 벌어오면서 점점 부자가 됐다.갈수록 그들과의 소득 격차가 커졌고, 아예 별도의 계층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무연고 동포 방문취업사증은 전씨 같은 이들을 위해 탄생했다. 만 25세 이상 중국·구소련 동포에게 5년간 유효한 복수사증을 발급,1회 3년간 체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대상은 한국어 시험을 치른 뒤 전산추첨을 통해 선발된다. 이번에는 모두 2만 6000여명이 신청,2만 2863명이 선정됐다.재미·재일동포 등 선진국 동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중국 동포 등에게 기회를 넓혀주자는 취지도 있다. 제도 도입에 우여곡절도 많았다.우선 중국 정부는 아직도 이 제도가 마뜩지 않다.“왜 다같은 중국 공민인데 조선족만 우대하느냐. 한족을 포함한 모든 중국 소수민족에게 동등한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 인사는 “심지어 일부 중국측 관계자들이 ‘한국이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 대해 분열·이간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과거 산업연수생 제도를 중국인에게도 확대하는 ‘고용허가제’가 양국간에 논의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어 시험 선발과정에서 학원 과열 등 부작용도 야기됐다. 하얼빈(哈爾濱)의 한 학원에서는 학비가 몇 개월치 월급 수준인 5000위안(약 60만원) 이상으로 치솟을 정도로 과열 양상을 빚기도 했다. 오는 12일부터 방문취업사증 신청이 시작된다. 지금 무연고 동포들의 마음은 설렌다.jj@seoul.co.kr
  • 내일~13일 전주 천년의 맛 잔치

    내일~13일 전주 천년의 맛 잔치

    “맛의 천국 전주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맛의 대향연이 시작됩니다.” 전북 전주시는 자타가 공인하는 ‘맛과 멋’의 고향이다. 한정식, 비빔밥, 콩나물국밥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주의 대표 음식. 전국 어느 곳에서나 ‘전주’라는 간판을 내걸면 그 음식점의 신뢰도가 높아질 만큼 전주는 맛의 본향이다. 평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맛있게 먹은 한끼의 식사, 그 맛있는 추억의 한 가운데 ‘전주의 맛’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맛의 고장’을 자임하는 전주시가 ‘전주 천년의 맛 잔치’를 연다. ●오감 만족 맛잔치 올해 처음 열리는 이번 한마당 잔치는 전주 음식의 브랜드 가치를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오감 만족 문화관광축제’이다. 축제를 통해 한국 음식의 기준을 세우고 한국의 맛을 세계에 전한다는 야심찬 구상도 하고 있다. 9일부터 13일까지 닷새 동안 한옥마을과 지정음식점 등 전주시 일원에서 열린다. 천년의 맛 잔치는 타 지역에서 열리는 음식축제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 메인 행사장에서 음식을 팔지 않는다. 천막을 치고 임시 주방에서 음식을 제공할 경우 위생적으로 문제가 많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전주 음식 맛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주행사장인 중화산동 화산체육관에서는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전주시내 190여개 유명 음식점을 안내하고 전주의 전통과 맛의 우수성을 소개한다. 축제기간 전주를 찾아온 외지 관광객들이 전주의 참맛과 후덕한 인심을 제공하는 음식점을 직접 방문토록 함으로써 맛집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한다는 전략이다. 유명음식점은 한정식, 비빔밥, 콩나물국밥, 백반, 전주막걸리, 탕·찌개, 면·분식, 구이류, 중화요리, 일식, 경양식 등 12개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맛을 체험하고 싶은 음식을 말하면 유명 음식점마다 특징을 설명해주고 가는 길까지 안내해 준다. 맛뿐만 아니라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인 만큼 정갈한 손맛과 함께 신명나는 우리 가락도 함께 제공된다. 궁, 양반가, 호남각 등 10개 음식점에서는 판소리, 가야금 등 풍악을 즐기며 전라도 음식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음식 조리에 관심이 많은 관광객들은 전주 음식의 비법을 전수받는 체험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고궁, 성미당, 한벽루, 동락원 등에서는 비빔밥 만들기 체험행사가 열린다. 비빔밥 재료 준비에서부터 양념 만들기까지 맛의 비결을 전수해준다. ●부대행사도 풍성 이번 맛 잔치를 위해 전주시내 음식점들은 손님맞이 준비로 분주하다. 한정식집 16곳에서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하고 깊은 맛이 으뜸인 양반상을 받을 수 있다. 통상 30여가지의 전통 요리가 상에 오른다. 해외에서도 유명한 비빔밥과 돌솥밥집 12곳도 손님맞이 준비를 마쳤다. 전주 비빔밥은 업소마다 특색이 있어 약간씩 맛이 다르다. 그러나 전통적인 비빔밥 맛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해장국으로 유명한 콩나물국밥집 5곳, 서민들이 즐겨 찾는 한식백반집 27곳은 물론 탕과 찌개를 잘하는 집 41곳까지 전주시내 유명 음식점들이 이번 축제에 총출동한다. 어느 음식점을 가든 반찬 가지수가 많고 서비스도 좋아 외지인들은 입이 떡 벌어지기 일쑤다. 부대행사도 풍성하다. 경기전 앞에서는 양념을 아끼지 않은 김치와 젓갈류를 전시·판매한다. 공예품 전시관 주변에서는 전통한과 만들기, 전통엿 만들기, 짚풀공예, 윷놀이, 떡메치기 등 전통잔치마당을 선보인다. 화산체육관에서는 수타쇼, 피자도우쇼 등 조리달인열전이 열린다. 세계풍물체험, 음식영화상영, 전통옹기전시, 막걸리 시음회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중앙동 차이나거리 일대에서는 중국 춤공연, 태극권 시연, 중국의상 퍼레이드가 열리고 객사에서는 임금을 공경하고 충성심을 표시하는 망궐례(望闕禮)가 재현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완산칠봉서 전통의 멋 느껴볼까 전주는 먹거리뿐 아니라 볼거리도 많은 전통도시이다. 먹거리 행사가 주로 열리는 경원동 일대 한옥촌에서는 옛 정취에 푹 빠져볼수 있다. 전주 명품관, 공예품 전시관, 최명희 문학관, 한방문화센터, 전통술박물관 등을 도보로 이동하며 두루 살펴 볼 수 있다. 한옥촌 인근 오목대, 이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 전주향교, 전동성당 등도 들러볼 만한 곳이다. 가을색이 완연한 전주천과 삼천을 따라 걷거나 화산공원, 완산칠봉 등에 올라 전주시 전경을 내려다 보는 것도 정겨운 전통도시의 깊은 맛을 느껴 볼 수 있는 기회다. 덕진공원,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전북대학교, 동물원 등이 인접해 있는 건지산 일대에서는 색깔 고운 단풍이 한창이어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들 유럽도 울렸다

    “열세살 때 집앞에서 놀다가 초등학교에 있던 일본군 막사로 끌려갔다. 일본군 두명이 들어와 성폭력을 했다. 저항하자 담뱃불로 목을 지졌다. 목에서 피가 나서 죽는 줄 알았다. 이후 낮에는 청소하고 밥하고, 밤에는 성노리개로 학대당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6일 오후(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의회 의사당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증언이 절절히 이어졌다. 사상 처음으로 유럽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가 열렸다. 한국의 길원옥(79), 네덜란드의 엘렌 판 더 플뢰그(84), 필리핀의 메넨 카스티요(78) 등 세 명의 할머니들은 일제의 만행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이들은 아직도 공식 사과를 안 하고 있는 일본에 유럽 여러 나라들이 압력을 가해달라고 호소했다. 길 할머니는 “열세살 때 고향인 평양에서 돈벌고 기술을 가르쳐 준다기에 철없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따라갔다.”면서 “막상 가보니 공장이 아니라 다다미 한장 깔린 조그만 방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곧 군인들이 차례로 들이닥쳐 몹쓸짓을 했고, 울고 소리지른다고 때렸다. 몹쓸 성병을 얻었다는 기막힌 이유로 집에 돌아올 수 있게 됐다.”고 증언했다. 할머니는 이어 “병에서 회복되자 다시 어떤 사람이 와서 기차에 실어 어디론가 데려갔고, 이번엔 조금 더 컸다고 연속해서 군인들을 들여보냈다.”면서 “열여섯살 때 다시 성병에 걸려 일본군 의사가 자궁을 들어냈을 때 속으로 ‘죽었구나’라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할머니는 끝으로 “그 아픔과 괴로움은 듣는 것만도 힘들 것이다. 몸이 성한 곳이 없다. 배 수술만 네번을 했다.”면서 “(일본이) 한마디 사과하는 말이 없으니까 여러분 힘을 빌려 죽기 전 소원을 풀어볼까 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 많이 도와달라.”고 흐느꼈다. 엘렌 판 더 플뢰그 할머니는 “열일곱살 때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당시 얻은 성병은 일본군이 패배한 후 네덜란드로 돌아와서야 고쳤다.”면서 “이후 62년이나 지났지만 일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항상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열세살 때 일본군에게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메넨 카스티요 할머니는 “도움을 요청하러 여기에 왔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우리 모두 늙고 죽어가고 있다. 가난하게 살고 있고 먹을 것도 부족하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이날 청문회는 국제앰네스티의 주선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유럽 국가를 방문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스피킹 투어’의 일정 중 하나로 이뤄졌다. 오는 25일 국제 여성폭력 근절의 날에 앞서 런던, 베를린 방문도 예정돼 있다. 이날 청문회엔 유럽의회 의원들과 의회관계자, 인권단체 회원, 언론인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교도통신은 7일 일본 사이타마현이 히가시마쓰야마시 평화자료관 내 ‘쇼와(昭和)사 연표’ 가운데 ‘종군위안부’란 표현에서 ‘종군’부분을 삭제하고 ‘위안부’로 바꾼 채 8일부터 공개키로 했다고 보도했다.김성수 이재연기자 sskim@seoul.co.kr
  • 그 아이가 울음 그친 곶감의 맛

    그 아이가 울음 그친 곶감의 맛

    낙동강삼백축제가 9일부터 나흘간 경북 상주시 북천시민공원과 시내 일원에서 열린다. 삼백축제는 상주의 특산물인 삼백(쌀·명주·곶감)을 테마로 한 축제다. 특히 이번 축제기간에 전래동화를 주제로 ‘꿈이 있는 전래동화마을’을 운영해 눈길을 끈다. 이 지역 출신 시인이나 이야기꾼들이 축제기간에 고향을 방문해 직접 전래 동화를 들려준다. 또 삼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곶감 주생산지인 상주읍 남장리에서 곶감 만들기 작업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상주 명주생산협의회가 있는 함창읍 허씨비단을 방문하면 누에가 고치를 짓는 장면부터 실을 뽑아 명주를 만드는 전 과정을 둘러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산발적으로 열리던 상주예술제, 상주문화제, 경상감사도임순력행사 재현, 상주곶감전국마라톤대회, 전국민요경창대회, 전국동호인테니스대회, 산악자전거대회, 명주패션디자인대회 등도 축제 기간에 맞춰 열어 낙동강삼백축제를 지역 대표축제로 육성키로 했다. 상주시는 그동안 자전거축제를 대표축제로 육성했으나 2005년 10월3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자전거축제 행사의 하나인 MBC 가요콘서트 녹화현장에서 11명이 숨지고 162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난 뒤 자전거축제를 폐지했다. 이 밖에 국화전시회, 한약재·한약초 전시회, 특산물 전시·판매 행사도 진행한다. 상주시 관계자는 “낙동강삼백축제 때 모든 문화·예술 행사를 열어 상주를 대표하는 종합축제로 만들기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상주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昌측 “행동으로 설명”

    昌측 “행동으로 설명”

    대선 출마를 위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이 전 총재는 2일 서빙고동 자택에서 측근들과 만나 대책을 논의하면서도 기자들에게는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이 전 총재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이흥주 특보는 이날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이 전 총재가 행동으로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특보는 이날 서울 남대문로 이 전 총재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선자금 문제는 이 전 총재의 걸림돌도, 족쇄도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이 전 총재가 복귀해 대선후보로 활동하게 되면 대선자금 문제 등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행동으로 설명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선자금 문제를 끄집어낸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에 대해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면서 “(대선자금에서) 한나라당 다수 국회의원은 물론 이방호 총장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서빙고동 자택에 있던 이 전 총재는 이날도 함구했다. 오후에 부인 한인옥씨와 외출하려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이자 “아직 드릴 말씀이 없다. 때가 되면 말씀 드리겠다.”고 말한 게 전부다. 측근은 이날 외출에 대해 “지방의 친척 집에 갔다. 오늘은 안 들어온다.”며 취재진의 ‘철수’를 권고하기도 했다. ●昌 “아직 드릴 말씀 없다”함구 이 전 총재의 침묵과 달리 측근들은 분주했다. 이날도 이 전 총재의 자택을 들락거리며 ‘결단’을 거듭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에 이 전 총재의 남대문 사무실 관계자가 자택을 방문, 무언가를 보고하고 돌아가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오후에는 이 전 총재의 고향인 충남 예산에서 지지자 20여명이 몰려와 이 전 총재를 면담하기도 했다. 자신을 예산농고 총동창회장이라고 밝힌 오민환씨는 “대통령이 돼서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처럼 우리나라를 깨끗하고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 달라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총재는 ‘여러분의 충정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 찾아와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총재를 면담한 또 다른 인사는 “주로 우리가 이야기하고 이 전 총재는 얘기를 듣고 웃으시기만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인사는 “이 전 총재의 표정이 밝고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고 덧붙였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대선정국 다자구도 급속 재편

    대선정국 다자구도 급속 재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정치권이 정계개편의 격랑에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후보 한 명이 추가되는 차원이 아니라 보수 진영이 크게 양분되면서 적게는 3자 구도, 크게는 다자구도로 급속히 개편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국중당 “昌 원하는 대로 할 것” 정치권 관계자는 2일 “이 전 총재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측을 ‘중도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모든 보수층을 아우르는 ‘범보수연합체’ 구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이날 이 전 총재와 박근혜 전 대표, 고건 전 총리를 대상으로 내각제 개헌을 위한 4자 연대를 공개제안하는 등 국중당을 매개로 한 구체적인 정계개편의 시나리오도 등장하고 있다. 연대 대상에는 민주당 조순형 의원도 포함된다는 관측까지 있으나, 조 의원측에서는 일단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부인했다. 국중당 박승국 최고위원은 “우리는 이 전 총재가 원하는 대로 신당 창당이든, 국민중심당의 확대 개편이든 화답을 하기로 내부 정리가 끝났다.”면서 “심대평 후보는 양보하는 자세로 큰 결단(후보 사퇴)을 내려 이 전 총재를 후보로 추대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총재측 이흥주 특보도 심 후보의 제안에 대해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제안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 전 총재가 정치 일선에 복귀하면 그런 모든 사안을 폭넓게 검토할 것”이라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연대 가능성을 열어 뒀다. 이 전 총재의 측근인 백승홍 전 의원은 “내주 목요일(8일)이나 금요일쯤 출마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전직 의원 40∼50명 정도가 돕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출마 결단을 앞두고 이 전 총재는 이날 서빙고동 자택에서 핵심 측근과 지지자들을 면담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전의원 40~50명 도울 것” 오전에는 측근인 지상욱 박사가 자택을 방문했고, 오후에는 이 전 총재의 고향인 충남 예산의 지지자 20여명이 이 전 총재를 면담했다. 이날 오후 서울과 부산, 대구, 대전, 마산, 창원 등 전국 6곳에서 이 전 총재의 출마를 촉구하는 지지자들의 집회가 동시에 열려, 이 전 총재의 출마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김상연 김지훈기자 carlos@seoul.co.kr
  •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임진왜란 때인 1598년 전북 남원에서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400년 이상 흘렀다. 그 핏줄을 이어받은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62)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뿌리찾기에 나섰다. 그는 규슈 가고시마현 미야마 마을에 정착, 지금도 14개 가마에서 그릇을 굽고 있는 조선도공들 가운데 박씨의 후손이다. 한·일관계는 물론 뒤엉킨 현대사의 한복판에 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도고 교수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할아버지 시게노리 2차대전 때 외무대신 역임 도고 교수의 할아버지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개전과 패전시 외무대신을 역임한 도고 시게노리다. 아버지도, 그도 고위외교관 출신으로 3대 외교관 집안이다. 도자기노예인 조선도공 박씨 집안 3대가 일본의 고위 외교직을 차례로 역임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시게노리는 원래 박무덕이었다. 부친 박수승 대까지 도자기노예 후예로서 모진 삶을 이어갔다. 그런데 메이지유신으로 차별이 심화됐다. 수승은 박씨란 성을 자신의 대에서 끊고 귀화했다.1882년생 시게노리가 5살 때이다. 수재 시게노리는 고향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뒤 도쿄대학에 들어가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그 뒤 외교관 시험에 합격했다. 독일 외교관시절 만난 그의 아내는 독일여자였다. 아이가 다섯 있던 그녀의 사별한 남편 게오르그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기본 설계한 건축기사다. 시게노리는 독일과 소련 대사를 역임한 뒤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인 1941년 외무상에 발탁되었다. 군부에 맞서 전쟁을 피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외무상을 그만뒀으나 종전 직전인 45년 4월 외무상에 재기용됐다. 그때 일왕에게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라고 강력 주장, 조기종전으로 일본사람의 전멸을 피하게 했다는 칭송도 받았다. 시게노리는 A급 전범으로 20년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개전 반대 노력 등을 전범재판소가 평가, 사형은 피했다. 도고 교수는 “다섯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막연한 기억밖에 없다. 어머니, 형과 함께 가끔 스가모형무소로 면회갔을 때 낭하에서 검붉은 환자복을 입고 걸어나오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시게노리는 미군병원에서 1950년 7월 숨졌다. 시게노리는 겉으로는 도공 박씨의 후손이라는 것을 숨겼지만 가보지 못한 조선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국장 시절 조선에서 최초로 외교관 시험에 합격, 일본 외무성 과장으로 부임했던 직원에게 자신도 조선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토로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시게노리는 현재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고, 무덤은 도쿄시내 아오야마묘지에 있다. ●DJ납치, 주한미군철수와 아버지 시게노리는 외동딸만을 두었다. 딸과 결혼한 자신의 비서관 출신 사위를 호적에 양자로 입적시켜 도고 후미히코라고 하게 된다. 후미히코의 한국사랑은 유별났다.1973년 한일 각료회의 때 외무성 심의관으로 한국을 방문, 김대중납치사건을 처리했다. 문세광의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뒤 한국을 재방문, 사건수습에 진력했다고 한다. 외무성 차관 때도 한국과 인연을 맺었으며 차관 사임 뒤 부부가 한국을 다시 방문해 판문점과 휴전선 부근의 남침용 땅굴을 보고, 한국의 안보 상황을 체험했다.77년 카터 전 미 대통령 시절에는 주미 일본대사로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자 워싱턴 조야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안보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설득, 한·일 공동외교를 폈다. 부친이 한국과 공동외교전을 폈다는 사실에 대해 도고 교수는 “거의 모르지만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 아버지는 사무차관 때 중국 및 한국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으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참 오래 전부터(400여년전) 한국과 연결됐다.”고 독백처럼 말했다. 후미히코는 20여년 전, 부인은 10여년 전 숨졌다. ●남원의 박씨 집안 후손… 뿌리를 찾아나섰다 후미히코는 태평양전쟁 말기 노약자 소개정책에 따라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을 뒀다. 형 시게히코는 워싱턴포스트지 도쿄특파원을 하다 최근 퇴직했다. 특파원 시절에는 한국도 여러번 방문, 따뜻한 가슴으로 여러편의 기사를 작성해 신문에 실었다.“현재 퇴직후 공부중”이라고 한다. 도고 교수는 도쿄대학 출신 엘리트외교관이었다.17년간 러시아관계 일을 맡아 러시아어, 영어에 능통했다. 한국어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두마디만 할 수 있다. 두 아들(각각 34·30세)은 현재 일본의 회사에 재직중이다. 형도 아들만 둘이다. 도고 교수는 “내 핏속에는 독일인 피도 4분의1이 흐른다. 일부 조선인의 피도 흐른다.”며 자신의 정체성 문제로 고민도 많이 했다고 소개했다. 다만 “일본이 나의 유일한 조국”이라며 단호했다. 그러나 핏줄찾기 열의는 대단하다. 최근의 일본인들에게 핏줄의식은 없지만 자신에게는 “조금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네덜란드 대사로 부임하기 전 고향 미야마 마을을 찾았다고 밝힐 때는 고향·핏줄을 중시하는 조선도공의 영향이 느껴졌다. 그의 조상들이 남원서 왔다는 것은 형의 ‘조부 시게노리’라는 책에 실려 있다.“한국에 있는 4개월 동안 반드시 가보고 싶다.”면서 남원과 ‘춘향전’,‘광한루’ 등이라고 적은, 소중하게 갖고 온 메모지를 보여주었다. 형 시게히코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조선시대 도자기 사발을 가보로 모신다. 자신도 미야마의 조선도공 출신 심수관씨로부터 받은 몇 개의 도자기를 도쿄 미나토구 한국대사관 근처 자택에 “소중히 보관중”이라고 소개했다. 한국과 연결된 끈들이다. ●현대사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도고 교수는 2002년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촉망받던 고위 외교관리였다.1997년 유럽아시아 국장이었다.98년 11월 조선도공들의 가고시마 정착 400주년 기념식장에 당시의 한·일 각료회의에 참석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 김종필 한국 총리 등과 동석하는 큰 영광도 누렸다. 그 해에 ‘시게노리 기념관’이 생겨나는 등 고향 미야마 마을은 온통 조선도공의 열기였다고 회상한다. 특히 양국 총리와 외무장관 등이 시게노리의 동상 등을 방문했을 때는 마을의 지도자와 한국측 참석자들이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를 “아주 독특하고 역사적인 장면”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그는 복잡한 일본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측근인 외무성의 사토 마사루가 2차대전 뒤 일·러간 현안인 북방4개 섬 일본 반환문제를 대화로 풀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다가 2002년 구속되면서다. 그도 네덜란드대사 부임 8개월 만에 해임돼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지난해 6월 사토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까지 4년 이상 일본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은 채 “조국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4개 섬 일괄반환론 틀 안에서 4개 섬의 귀속을 인정해주면 러시아가 언제까지 보유해도 무방하다는 ‘가나와 제안’을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안 되면 우선 2개 섬 반환을 확실히 하고,2개 섬은 다음에 교섭하는 단계론을 펴다 우익 학자와 시민단체들의 맹렬한 공격에 사토가 구속되고 실무 추진 당시 상사였던 그는 해임됐다. 도고 교수는 “북방영토가 일본의 영토라는 원칙은 전후에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단지 교섭 방법론이 문제였다.”며 당시에는 자신도 네덜란드에서 귀국하면 구속될 수 있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아 일본행을 포기하고 네덜란드에 눌러앉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망명은 저널리즘적인 표현이다. 그저 일본이 싫어서 귀국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외무성을 퇴임한 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에서 2년, 미국 프린스턴대학 2년, 타이완 단코대 4개월,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학 6개월 등의 교수를 거쳤다. 지난 7월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부인과 함께 일본 도쿄에 주민등록을 해 영주키로 했다. ●“한국학생들 매우 논리적” 그는 미국에서 맺은 인연으로 이번 학기 초빙교수 자격으로 서울대에서 일주일에 3시간짜리 한 강좌를 맡고 있다. 한국 학생 20명과 외국학생 10명에게 한·일관계 등 동북아 외교 현안을 정면으로 가르친다. 도고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감성적이지 않다. 매우 논리적이다. 이들이 한국지도부에 들어가는 날 한·일 양국관계는 매우 밝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학자, 시민단체 등 새로운 형태의 한·일 교류가 활발한 것도 반기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 정권이 한·일 관계를 잘 해갈 것이라며 급한 국내과제를 해결, 일본 내부 반발을 해소해 정권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최근 정치·경제적으로 ‘자신감’을 가진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자신감이 북한·일본과의 관계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봤다. 대통령선거 뒤 한·일 양국이 정상간 셔틀외교를 재개하길 바랐다. 아울러 ‘일본은 없다’,‘혐한류’ 등 책이 출판돼 양국관계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도고 교수는 일본이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 동북아시아 평화시대를 열어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사회가 우경화됐다지만 우경화되거나 반한사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흐름상으로 한반도는 통일될 시기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도고 가즈히코 교수 ▲1945년 나가노현 출생(태평양전쟁말기 노약자의 소개정책으로 인해 모친이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거주중) ▲68년 도쿄대학 교양학과 졸업 ▲68년 4월 외무성 입성 ▲72년 모스크바 일본대사관 근무(모두 3차례 대사관 근무를 포함 소련과장과 유럽아시아국장 등으로 17년간이나 러시아관계 일을 맡음) ▲91년 워싱턴 일본대사관 총괄공사 ▲98년 외무성 조약국장 ▲99년 유럽아시아 국장 ▲2001년 네덜란드대사 부임 ▲02년4월 네덜란드대사 해임 ▲02년5월 일본을 떠나 유랑 ▲07년7일 5년 만에 일본 귀국 ●최근의 저서 ‘북방영토 교섭비록’(일어) ‘일본외교 1945∼2003’(영어)
  • [그의 삶 그의 꿈] 전통음식 외교사절로 부활한 대장금

    [그의 삶 그의 꿈] 전통음식 외교사절로 부활한 대장금

    고궁으로 초대받은 유엔 외교사절단 삼계선, 오절판, 더덕찹쌀구이, 해물잡채, 연저육찜, 월과채, 잣국수, 행적, 전복수삼냉채, 어채, 궁중떡볶이, 감로빈, 보슬단자, 포도화채, 당근정과……. 이름만 들어도 용포 입고 수라상 앞에 앉은 기분이다. 이 한국 전통음식들이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를 보름 동안 점령했다. 자신들의 음식문화에 저마다 길들여진 세계인들에게 한국 음식의 진정한 맛과 멋을 보여 주었다.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에서 ‘제4회 한국 음식 페스티벌’이 열렸다. 지난 7월 16일부터 27일까지 약 2주일 동안 세계 각국의 유엔 대사들과 외교사절들 외에도 많은 뉴요커들이 한국 음식의 맛과 멋을 감상했다. 음식도 어엿한 한 나라의 문화. 이런 점에서 이번 행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고궁에의 초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의 궁중 요리들이 하루 20여 가지씩, 행사 기간 동안 200여 가지가 뷔페식으로 차려졌다. 처음엔 200명 내외의 손님들이 다녀갔다. 한국 음식의 맛과 멋에 매혹된 외국인들이 행사 끝무렵엔 500명을 훌쩍 넘었다. 음식을 맛본 그들이 원더풀과 환타스틱을 연발했다.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한국의 전통 요리를 꼭 다시 맛보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유엔의 현 사무총장은 한국인 반기문. 그 분이 수장으로 있는 유엔 본부에서 한국 전통음식을 세계인에게 소개한 8인의 요리사를 이끈 이가 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 윤숙자. 생에 기록될 만한 보람된 행사를 치루고 미국에서 막 돌아온 분을 만났다. 안내를 받고 들어서니 자신의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환하게 웃으신다. 먹어보지 못했지만 그 이름만으로 선생의 이미지를 빌리자면 청경채 같다. 입고 있는 하얀 한복이 참 잘 어울린다. 문학소녀에서 전통음식의 세계로 “외국이었기 때문에 우수한 식품 재료를 지속적으로 구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뉴욕 한국문화원의 도움으로 행사를 무난하게 치를 수 있었습니다. 뉴욕 한국문화원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그리고 조리했던 유엔 본부 식당의 조리실은 양식 위주의 용기들이어서 높이가 다 높아 고생했어요. 느낀 보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소감을 묻자, 상큼한 대답이 돌아왔다. 계속 물었다. 이것저것, 두서 없이. “고향이 개성입니다. 어머니는 교사셨는데, 원칙을 강조하는 엄격한 분이셨고, 요리를 아주 잘 하셨어요. 다들 그랬겠지만, 저도 소녀 시절엔 문학소녀였지요.” “문학 뿐만 아니라 요리도 사실은 감수성의 결정체가 아니던가요? 제가 보기엔 요리 실력도 유전적으로 물려받으신 것 아닌가요?” “그런 것 같아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요리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어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우리나라 최초로 전통조리학과가 춘천에 있는 한 대학에 생겼는데, 거기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전통요리의 대가셨던 고 왕준연 선생님께도 배웠죠.” 떡ㆍ부엌살림박물관 “이곳 8층까지 올라오기 전에 아랫층에 <떡박물관>과 <부엌살림박물관>이 있어서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고향이 시골인데, 눈에 익은 것들이 많아서 잠시 어린 시절 고향으로 돌아갔다 왔습니다.” “머지 않아 사라질 수도 있을 것들을 모아 놓았는데, 우리 선조들의 삶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져요.” “현실의 부엌 풍경과는 많이 다르던데요?” “부엌도 삶의 공간이니 삶의 변화, 생활의 변화가 부엌에도 오는 건 당연하겠죠. 끊임없이 ‘편리’를 추구하지만 그 ‘편리’가 좋기만 한 건가는 모두가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해요.” 말씀 대로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사라질 지도 모를 것들. 저 달그락거리고 낡아 있는 삶의 뿌리들. 우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진지하게 되물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먹거리들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아야 할 것 같다. 한국 전통음식을 세계인의 먹거리로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에 그치지 않고 만든 이의 철학과 정성과 마음도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선생은 농림부에서 위촉한 한국농식품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우리 전통음식을 세계에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물었다. “음식은 길들여지지 않으면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아요. 이런 점에서 지난 유엔본부 행사와 같이 외국인들에게 지속적인 ‘우리 음식 맛보이기’도 중요하고, 우수한 조리인을 양성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지요. 지역, 문화적인 특성에 따른 세계인의 입맛 연구도 뒤따라야 하겠구요. 조리법의 표준화를 이루어내는 일도 과제의 하나예요. 음식 이름은 같은데 집집마다 맛이 다르면 문제가 되지 않겠어요?” 선생은 조리법 책자의 올바른 해외 번역 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실적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음식 전도사로서의 소명감이 느껴진다. “우리 민족의 좋은 덕목 중의 하나인 은근과 끈기도 음식 문화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해요. 발효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 음식들은 기본 재료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거든요. 오래 기다릴수록 맛의 깊이가 더해지죠. 선조들의 지혜는 시간과 속도의 시대인 현대에도 배울 점이 많아요.” “옛날보다 오래 살지만 그에 비례해서 건강에 대한 관심도 커졌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 비만과 같은 성인병은 특히 심각한데, 저는 ‘식食이 곧 약藥’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좋은 음식은 건강을 담보하는 가장 큰 도우미이자 보증수표가 아닌가 하거든요.” 맛깔스러운 말씀들을 듣지 않고 받아먹은 듯한 느낌. 기분 좋게 배가 부르다. 포만감이 주는 행복을 느낀다. 선생의 말씀대로 음식은 과학이며 철학이며 만병통치약이다. 나설 때 손에 들려주신 떡 상자를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몰래 열어본다. 너무 예뻐서 차마 입에 넣을 수 없을 것 같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음식은 눈맛이기도 한 거로구나. 다시 떠올리는 선생의 모습이 다시 그렇다. 글 최준 시인, 사진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제공     월간 <삶과꿈> 2007.09 구독문의:02-319-3791
  • 부토, 8년만에 고향방문

    8년간의 해외 망명생활을 접고 지난 18일 귀국한 베나지르 부토(54) 전 파키스탄 총리가 잇단 암살 위협에도 불구하고 고향 방문을 강행하는 등 세 번째 총리직을 향한 정치 행보를 본격화했다. 부토는 27일(현지시간) 남부 최대도시 카라치로부터 북쪽으로 480㎞ 떨어진 라르카나의 고향마을을 방문, 아버지인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의 묘소를 참배하고 지지자 수천명을 만났다. 아버지 부토는 1977년 자신이 신임해 기용했던 모하마드 지아 울 하크 육군참모총장의 무혈쿠데타로 총리직에서 쫓겨나고 1979년 처형됐었다. 부토는 지난 18일 귀국길에 그녀를 노린 자살 폭탄 테러에서 천만다행으로 화를 면했다. 대신 그녀의 지지자와 파키스탄인민당(PPP) 당원 등 136명이 희생당했다. 이후 지난 23일에 또다시 살해 협박 편지가 배달되는 등 끝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이에 베르베즈 무샤라프(64) 대통령은 부토에게 당분간 대중앞에 서는 것을 자제해 줄 것을 요구했었다. 그녀의 이번 고향 방문은 내년 1월초 총선을 의식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서두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와 관련, 한국외국어대 이란어과 유달승(42) 교수는 “무샤라프와의 연대는 부토에게 재집권을 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정치 생명의 종지부를 찍는 파멸을 안겨 줄 양날의 칼”이라며 “이번 고향 방문은 지지 세력의 재결집과 동정심을 유발시키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노대통령 “큰 사고 낸 것 없다고 생각”

    노대통령 “큰 사고 낸 것 없다고 생각”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나라와 국민들께 부담을 주는 큰 사고 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낮 김해시청을 방문, 김해지역 주민들과의 오찬 간담회를 갖고 “저 스스로 흡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때로 잘못한 것도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김정섭 청와대 부대변인이 전했다. 고향인 김해시청 방문과 주민 간담회는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다. 김해시청 방문은 예정에 없던 비공식 일정으로 이뤄졌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성심성의껏 많은 일을 했고 바르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면서 “대통령이 된 후 고향분들께 인사를 한번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하는 일에 대해 제일 많이 변호해 주고 때로는 마음고생도 많이 하셨을 줄 알고 있다. 고향 주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이른바 ‘말년’이지만 요즘 엄청 바쁘게 일하고 있다. 한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은 “또 하나의 행복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라며 “퇴임 후 서울에 남기보다는 고향에 돌아오는 것이 국가균형발전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면서 퇴임 후 귀향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는 남북정상회담 소회를 비롯해 고향과 학창시절 회고 등을 주제로 고향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노 대통령은 이어 권양숙 여사와 시청 앞마당에 반송(盤松) 한 그루를 기념식수한 뒤 사저를 짓고 있는 고향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현장을 둘러봤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 발전한 걸 보니 기뻐”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러시아의 고려인 강제 이주 70주년을 맞아 고려인 독립운동가 후손 및 강제 이주 1∼2세대 109명 등 고려인 모국 방문단이 25일 강원 속초항을 통해 5일간 일정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방문단 가운데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 등에서 독립군을 지휘한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 김알라(67·러시아 연해주 스파스코시)씨는 강릉 오죽헌을 방문한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이 이렇게 발전한 걸 보니 기쁘고 감사할 뿐이다.”고 말했다. 김씨의 한 손에는 할아버지 홍범도 장군이 일제를 물리친 공으로 레닌으로부터 권총을 선물받고 전쟁 영웅 칭호를 받은 뒤 찍었던 젊었을 때의 흑백사진 1장이 들려 있었다. 김씨는 “할아버지가 레닌에게 선물받은 권총은 지금 없지만 권총 케이스는 보관하고 있다.”며 “늦게나마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 땅을 밟게 돼 꿈만 같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한 박노순 장군의 아들 박필립(68)씨도 “아버지가 싸워 지킨 나라가 발전한 것을 보니 가슴이 뜨겁다.”며 “아버지가 독립 운동을 해서 후손들의 삶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조국이 이렇게 잘살고 있는 것을 보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옛 소련 시절에 경제학 박사를 받은 강릉 출신인 전인수(84)씨는 “두살 때 강릉을 떠나 82년 만에 찾아왔다.”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매우 즐겁고 반갑다, 한국말 잘 못하지만 감사하고 기분이 최곱니다.”라고 입국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강제 이주 이후 연해주 고려인촌에서 생활하던 1세대와 그 후손들로, 횡성 성우리조트에서 고국 방문 첫날밤을 보낸 뒤 속초와 춘천, 강릉, 삼척, 서울 등의 고향을 찾을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사)고려인돕기운동본부 등이 주관했으며 강원도는 2005년 연해주와 교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추석 명절 송편빚기와 물품기증 등 연해주 고려인 조국문화 전파사업을 펼치고 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지음

    2일 뒤:뉴욕의 지하철역과 통로에 물이 들어차 통행이 불가능해진다. 1년 뒤:무전 송수신탑의 경고등이 꺼지고, 고압전선에 전류가 차단된다. 3년 뒤:도시의 따뜻한 환경에 살던 바퀴벌레들은 멸종된다. 100년 뒤:코끼리의 개체수가 스무배로 늘어난다. 300년 뒤:흙이 차오르면서 세계 곳곳의 댐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500년 뒤:플라스틱은 여전히 멀쩡하다. 50억년 뒤:죽어가는 태양이 내행성들을 감싸면서 지구는 불타 버린다. 이상은 구약성경에서 창조주가 인류와 천지만물을 만드는 7일간의 일지와 정반대로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를 가상한 시나리오다. 이처럼 기발하면서도 끔찍한 생각을 과학적으로 풀어나간 이는 미국 애리조나대 국제 저널리즘 교수인 앨런 와이즈먼. 그는 한국의 비무장지대를 비롯해 폴란드-벨로루시 국경의 원시림, 체르노빌, 미크로네시아, 아프리카, 아마존, 북극 등 지구 곳곳을 발로 누비며 ‘인간 없는 세상(이한중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을 썼다. 인간이 사라진 바로 다음날, 자연은 집 청소부터 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살던 집은 아마도 50년, 길어야 100년이면 주저앉을 것이다. 인간이 없어지면 가장 먼저 혜택을 보는 것은 모기다. 다양한 맛을 즐길 줄 아는 미식가인 모기는 살충제가 사라지고, 고향인 습지가 복원되면서 포유류, 파충류, 새의 피뿐 아니라 꽃의 꿀까지 빨아 먹으며 번성할 것이다. 인간이 없어서 슬퍼할 존재는 우리를 주식으로 해 살도록 진화된 ‘페디쿨루수 후마누스 카피티스’와 ‘페디쿨루수 후마누스 후마누스’다. 전자는 이, 후자는 진드기다. 200여종의 박테리아도 인간을 자기네 집이라 부른다. 수백마리의 작은 포도상구균이 우리 피부 어느 곳에나 살며, 겨드랑이와 가랑이와 발가락 사이에는 더 많이 산다. 대부분 유전적으로 인간한테서만 잘살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가 없어지면 그들도 사라질 것이다. 와이즈먼은 환경운동연합팀과 함께 길이 241㎞에 폭 4㎞의 한국 비무장지대(DMZ)도 방문했다. 인간이 사라지자, 한때 동족이 원수가 돼 싸우던 지옥은 오갈 데 없는 생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변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천만하던 곳이 사라질 뻔했던 야생동물들의 피난처가 된 것이다. 반달가슴곰, 스라소니, 사향노루, 고라니, 담비, 멸종 위기의 산양, 거의 사라졌던 아무르표범이 매우 제한된 이곳의 환경에 의지해 산다. 만일 비무장지대의 남과 북이 모두 인간 없는 세상으로 변한다면, 이들은 다른 곳으로 퍼져 수를 늘리고 번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의 국제연맹 단체 DMZ포럼의 공동 창립자인 하버드대 생물학자 E O 윌슨은 “한국에 게티즈버그와 요세미티를 합친 것 같은 곳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지뢰를 제거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겠지만, 관광 수입은 한층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DMZ가 “한국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유산이자 전세계의 모범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간의 수는 세계적으로 나흘마다 100만명씩 늘고 있다. 우리가 없어도 지구는 계속 남는다. 하지만 지구가 없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50억년 뒤면 파괴될 지구라지만, 그 영겁의 세월 동안 인간이 지구에게 주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지혜를 이 책은 생생하게 전한다.2만 3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해남 명량대첩제 26일부터

    해남 명량대첩제 26일부터

    ‘제410주년 명량대첩제’가 26∼28일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일대에서 펼쳐진다. 올해 축제는 한국·중국·일본이 함께 참여해 그 의미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들리는가, 울돌목의 북소리가’를 주제로 열리는 명량대첩제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을 도와 활약했던 중국(명나라) 진린 장군의 후예들과 명량대첩에서 대패했던 왜장 구루시마의 후손들이 해남을 찾는다. 진린 장군의 고향이자 해남군과 자매결연한 중국 옹원현 주위왕(朱余旺·42) 현장 등 7명이 방문해 진린 장군 추모관을 참배한다. 일본에서는 시코쿠 에히메현 이마바라시에서 시의원 후쿠모토 다구미(구루시마 장군 현창보존회)씨 등 8명이 방문한다.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명량대첩시 왜선을 이끌었던 우두머리 장수로 명량해전에서 전사했으며, 목이 효시돼 걸리자 왜군의 기세가 꺾여 전세가 역전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루시마 후손들은 위령제 등에 참여한다. 특히 둘째날인 27일 우수영에서는 울돌목을 앞에 두고 명량해전이 재현되면서 축제가 절정을 이룬다. 현지 어민들이 50여척의 선박에 나눠 타고 당시 상황을 그대로 연출한다. 해남군 관계자는 “명량대첩제를 통해 한·중·일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조국 발전상 보니 독일 광부 30년 피로 확 풀려”

    “조국 발전상 보니 독일 광부 30년 피로 확 풀려”

    “말로만 듣던 조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힘들었던 30년 독일 광원생활의 피로가 확 풀립니다.” 경북도의 초청으로 23일 재독 영남향우회 소속 고향 방문단 39명과 함께 고국을 찾은 성규환(69·재독 한인광산근로자협회장·재독 영남향우회 초대회장 역임)씨. 그는 “경북도가 조국이 어려웠던 1960∼70년대에 독일에 파견돼 광원과 간호사로 일하며 고생한 우리들을 초청해 준 데 대해 감사한다.”면서 “이는 우리 정부조차 못했던 일”이라고 거듭 감사해 했다.1977년 광원으로 독일에 간 영천 출신인 성씨는 “우리들은 타국 땅 깊이 1000m의 섭씨 40도가 넘는 막장에서, 함께 갔던 간호사들은 딱딱하게 굳어 버린 시체를 닦는 일로 외화를 벌며 한평생을 살면서 항상 고국 발전을 염원했다.”며 “죽기 전에 고국의 변모상을 둘러 보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그는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에서 광원 등이 벌어 들인 수입은 197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의 ‘종자돈’ 역할을 했다고 자부했다. 이 기간 파독된 광원과 간호원은 1만 8000여명. 파독 계약 조건은 ‘3년간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고 적금과 함께 한 달 봉급의 일정액(70∼90%)은 반드시 송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독 정부는 이를 담보로 1억 5000만 마르크의 상업차관을 한국 정부에 제공했다. 하지만 그는 “재독 교포 1세대들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 연금을 받고 살지만 경제적으로는 대부분 넉넉하지 않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2세들은 학계·법조계·의학계 등에 속속 진출해 한인 사회의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고 했다. 한편 방문단 일행은 이날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및 금오공대 유비쿼터스 체험관, 문경 석탄박물관 등을 방문한 뒤 24일 안동 하회마을과 울진 등을 견학한다.25일에는 포스코와 경주 문화유적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행사장을 찾고 26일 울산의 기업체 시찰로 고향 방문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18일 TV 하이라이트]

    ●사천만의 경제읽기(EBS 오후 8시20분)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는 한 대선 후보의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렇다면 가정의 살림살이뿐 아니라 나라의 살림살이는 어떨까? 흔히 들어보았지만 정작 그 개념은 잘 알지 못하는 국내총생산(GDP)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의 현 위치를 점검해본다.   ●사육신(KBS2 오후 9시55분) 신숙주가 단종에게 양위를 간했다는 소식을 들은 성삼문은 크게 분노하여 신숙주의 집을 찾는다. 같은 밤, 정인지에 궁인들을 비롯하여 가까운 수족을 모두 잃은 단종은 위협을 느끼며 양위를 결심한다. 수양대군은 단종에게 양위의 부당함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눈을 의식한 것일 뿐, 결국 보위에 오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0분) 미국에서 중국산 장난감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세계적인 완구업체들이 중국산 제품에 대규모 리콜 조치를 내린 데 이어 미국 소비자들은 아예 구입을 기피하고 있다. 동포 부모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연스레 가격은 비싸지만 안전한 미국, 영국, 독일산 장난감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러브 인 아시아-여고생 장수인의 한·러 두 가족!(KBS1 오후 7시30분) 광주 시내 한 여고의 아침.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이 있으니 바로 갈색 눈과 금빛 머리칼을 가진 러시아 소녀 장수인. 이국적 외모에 능숙한 한국어로 학교에서도 단연 인기만점이다. 통역사의 꿈을 안고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는 그녀의 특별한 가족이야기를 들어본다.   ●태왕사신기(MBC 오후 9시55분) 신당에 들어선 담덕이 호개에게 이 모든 것을 혼자서 꾸민 일이냐고 묻자, 호개는 살아서 돌아가진 못할 것이라고 한다. 담덕은 기하의 시선을 외면한 채 대신관에게 어째서 양왕을 죽였는지 기하에게 물어봐달라고 한다. 가우리 검을 받겠다는 담덕의 말에 기하는 신검을 잡아채고는 담덕을 향해 돌아선다.   ●로비스트(SBS 오후 9시55분) 마리아의 고향집을 찾아간 해리는 정순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소영이 친구 주호가 왔다고 말하지만 정순은 해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리아 이모는 미국에서 온 사람은 무조건 멀리 하라는 마리아의 전화를 받고 해리를 경계한다. 에바 생각에 골몰하던 태혁은 미란이 사무실을 방문하지만 냉담하게 대한다.
  • [열린세상] 유럽여왕들이 安東 찾는 까닭은/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열린세상] 유럽여왕들이 安東 찾는 까닭은/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오는 6∼12일 한국을 방문하는 마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이 경북 안동시를 찾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 무렵은, 중세 그 유명한 스페인 화가의 화풍인 ‘벨라스케스 스카이’보다 더 파란 하늘이 마냥 높고 햇살이 아직은 따사로운 한국의 호시절 가을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에 오는 유럽 여왕의 이번 가을 행차에서도 안동이 다시 뜰 모양이다. 유럽 여왕들이 서울로 날아와, 굳이 눈길을 보내는 안동은 전통이 넘치는 고장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네 한국인에게도 진솔한 매무새로 다가오는 원형(原形)의 고향같은 땅이 안동이다. 소백산맥 산자락을 등에 업고, 낙동강 물줄기 한 가닥을 끌어안아 배산임수의 명당이 분명한 마을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 큰마당을 노니는 서너 마리의 닭과 삽사리 하나가 보이는 한 폭의 한국화를 상상해도 좋다. 이렇듯 정한(靜閑)한 안동의 전통마을은 고유문화와 자연경관이 한데 어울린 삶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 내면세계가 아름답다. 더구나 유학에 무게를 두었다는 뜻에서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일컬었거니와, 실제 걸출한 학자를 숱하게 배출한 인재의 곳간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안동은 유학 중심의 한국 지성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문주의의 고장이다. 이를 모두 관인(官人)과 사대부들이 일구었다고는 하지만, 그들만이 독차지한 공간은 아니었다. 엘리트 그룹의 틈새를 산 서민들에게도 익숙한 생활문화가 전통으로 자리매김한 흔적이 도처에서 드러난다. 이는 한국인의 기층적 정서를 깔고 태어난 안동의 민속과 맞물린 대목이다. 그림씨를 기묘하게 가미한 고유명사 ‘물돌이동(河回洞)’과 여기 고대광실이 즐비한 마을 한복판에서 오랜 세월을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그 사례일 것이다. 1999년 안동을 들른 엘리자베스 2세는 이 별신굿탈놀이 한 마당을 구경했고,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등 많은 문화유산을 경내에 둔 봉정사를 찾아 몸소 범종을 울려 청아한 소리를 들었다. 이번에 안동에 오는 마그레테 2세도 거의 같은 코스를 도는 일정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럽 여왕들이 하늘길도 제대로 닿지 않는 내륙 안동으로 달려가는 까닭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바로 한국의 전통문화 때문인 것이다. 이른바 서양문명을 일상으로 누린 유럽인들에게 안동은 동양의 정신세계를 축약한 신비로운 곡두로 다가올 수 있다. 유구한 역사 속에 이루어진 온갖 경험을 내재한 정신능력 내지 그 총량을 전통문화라고 한다. 그러나 전통은 가꾸고 지킬 때 자생력을 유지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고도의 문화정책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를 위한 문화정책의 하나로 2000년 정부가 설립한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충남 부여에서 문을 열었다. 그동안 203명의 졸업생이 나오기는 했지만, 고등교육법상 각종학교로 분류되어 여러가지 불이익이 뒤따른다고 한다. 대학 명칭을 쓰지 못하는 터라, 재학생들이 배움의 열정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더구나 대학원 설립의 길이 막혀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간 전문 연구인력을 키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현대와 미래사회의 정신적인 풍요를 전통문화에서 찾는 추세다. 그래서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과 더불어 전통문화 재창조에 역점을 두어야 할 시기에 도달했다. 이같은 환경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전통문화 교육을 선택이 아닌 필수의 정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 발의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법안’이 여태 국회에 계류 중이고 보면, 답답하다. 안동에서 본 것처럼 한국문화의 세계화는 바로 한국적인 데서 출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2007 남북정상회담] 권여사 역사박물관 등 방문

    [2007 남북정상회담] 권여사 역사박물관 등 방문

    권양숙 여사는 3일 오전 북한 최고의 박물관인 조선중앙역사박물관과 의학 발전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고려의학과학원을 각각 방문했다. 권 여사는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조선중앙박물관에 도착해 박철룡 부관장과 홍선옥 조선민주여성동맹 부위원장의 영접을 받고 한 시간 동안 박물관 유물을 관람했다. 이곳에서 권 여사는 평양시에서 출토된 100만년 된 동물 뼈가 전시된 고대관 등 19개 전시실을 둘러봤다. 광복 직후 세워진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은 석기시대, 고구려, 부여 유물 등 10만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차순용 박물관 여성강사의 안내를 받은 권 여사는 단군릉과 고인돌, 고구려 유물에 대한 설명을 주의 깊게 들었다. 한편 차 강사는 박물관의 전통악기 전시관에 전시된 편종과 편각을 이용해 ‘아리랑’과 ‘고향의 봄’을 연주하는 깜짝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박수로 답례한 권 여사는 박철룡 조선중앙역사박물관 부관장에게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유물 도록 2권을 선물했다. 권 여사는 “서로 보고 싶은 게 많다.”면서 남북 박물관 간의 정기적인 교류와 발전을 기대했다. 권 여사는 곧이어 노 대통령의 한방 주치의인 신현대 경희대 교수와 함께 고려의학과학원에 도착해 최득룡 원장의 안내를 받았다. 이곳에서 권 여사는 복부초음파 검사실, 난치나이치료실, 뜸치료실 등을 둘러봤다. 권 여사는 환자의 상태를 묻는 등 관심을 보였다. 최 원장이 “북과 남이 힘을 합해 고려의학을 발전시켜 나가자.”고 말하자 권 여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961년 세워진 고려의학과학원은 북측의 대표적인 의학 연구기관이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2000년 합의 내용 이행 여부

    [2007 남북정상회담] 2000년 합의 내용 이행 여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통일방안 논의에서부터 당국간 대화 정례화, 이산가족 상봉 등 정치·경제·군사·문화 각 분야에서 다양한 합의를 이끌어냈다.6·15공동선언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남북 정상간 직통전화 설치 등 남북간 긴장 완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공감한 대목도 상당수에 이른다. 하지만 합의사항 가운데 많은 부분이 7년 동안 이행되지 못한 채 후속 정상회담과 실무회담의 과제로 남겨졌다.2002년 미국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나 2004년 서해교전,2006년 북핵사태 등이 합의사항 이행 과정에서 악재로 작용했다. 남북은 1차 정상회담 직후 적십자회담과 장관급회담, 국방장관회담을 잇따라 열어 두 정상의 합의사항에 따른 이행계획을 잡아갔다. 인적·물적 교류가 따라왔다.2000년 8월1일 이후 7년 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이산가족 1만 6000여명이 상봉했다. 상호비방 중지와 군사 핫라인 개설, 비전향장기수의 북송, 남북경협 활성화도 진행됐다. 반면 남북정상 사이 ‘핫라인’을 설치하자던 논의는 서해교전으로 남북이 냉각기를 맞으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산가족 상봉사업도 ‘1회성 만남’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로의 생사와 주소 확인, 고향 방문이 아직도 요원한 상태인 탓이다.2차 회담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북을 방문키로 함에 따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아직 미완의 약속으로 남아 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