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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라터 “인판티노 FIFA 현 회장 전화도 안 받고, 존경심이 없다”

    블라터 “인판티노 FIFA 현 회장 전화도 안 받고, 존경심이 없다”

     제프 블라터(80) 국제축구연맹(FIFA) 전 회장이 잔니 인판티노(46) 현 회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도 않더라고 넋두리를 했다.    블라터는 9일 공개된 BBC 프로그램 ´월드 풋볼´과의 인터뷰를 통해 FIFA의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인판티노 회장과 만난 일이 있지만 “할 일이 있다며 자리를 뜬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더라”고 어이없어했다. 그는 얼마 전 6년 동안 축구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것은 부당하다며 낸 재심 청구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로부터 기각된 바 있다.    그는 이어 “분명히 난 FIFA에서 일어난 일들과 관련해 행복한 남자가 아니다”면서 “새 회장에게서 어떤 동료애도 보지 못했으며 그는 나이든 회장에게 어떤 존경심도 표하지 않더라”고 덧붙였다. 또 “선거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는 우리 집에 들러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난 이전에 결코 해결하지 못했으나 FIFA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의 긴 목록을 그에게 얘기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판티노에게 요청하기도 했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으며 그가 개인적으로 쓰는 휴대전화 번호도 갖고 있고 그게 맞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는 결코 전화를 받지 않더라”면서 “여전히 과제 목록을 갖고 있는데 이제는 변호사들하고만 얘기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말 FIFA에 의해 직무 정지를 당한 뒤 몇주 동안 ´경미한 정신적 붕괴´를 겪었던 사실도 고백했다. “그해 11월 가족 묘지가 있는 고향 마을에서 지냈는데 몸이 아주 좋지 않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가족들이 날 취리히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들은 내가 몇 시간 뒤 숨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우 심각했다.”   여자 의사가 “누구에게 전화할까요?”라고 물었고, 그는 “아니, 아니, 아니, 난 오늘밤 집에 갈거야”라고 답했더니 그녀는 “안돼요”라고 대꾸했다. 그 뒤 불려온 다른 의사가 “OK.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라고 말했다. 블라터는 “난 축구보다 인생이 길다고 생각하며 병원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고 돌아봤다.    블라터 전 회장은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전 회장에게 130만파운드(약 19억원)의 “부당한 지불”을 한 혐의로 FIFA에서 축출됐다. 물론 둘 다 비위 혐의를 부인했다. 둘 모두 지난해 12월 FIFA로부터 8년 동안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항소가 받아들여져 6년으로 감경됐다. 지난 5월에는 CAS가 플라티니의 항소를 받아들여 4년으로 자격 정지 기간을 줄여줬다.    두 사람은 1998년과 2002년 플라티니가 자문한 대가를 뒤늦게 지불한 것이며 신사협정에 따른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현재 스위스 검찰이 수사 중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이건식 김제시장, 법정구속…“특정 사료 업체에 특혜”

    이건식 김제시장, 법정구속…“특정 사료 업체에 특혜”

    특정 사료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건식 김제시장이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이로써 당분간 시정운영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주지법 형사4단독 김선용 부장판사는 8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 시장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 시장은 2009년 10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농가에 무상으로 가축면역 증강제를 나눠주는 사업을 벌이며 단가가 비싼 정모(62·구속) 회사의 가축 보조사료 14억 6000여만원 어치를 납품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013년 11월부터 2개월간 시 예산으로 정씨 업체로부터 1억 4000여만원 상당의 토양개량제를 사들이기도 했다. 정씨는 지난 선거 과정에서 이 시장을 도운 고향 후배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이 시장은 “개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며 범행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시장이 사적인 이유로 시 예산을 사용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적인 인연에 얽매여 예산을 집행한 데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을 수밖에 없다”며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 법정구속이 맞는다고 생각되고 자치단체장이라도 예외로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시장이 이날 법정구속 됨에 따라 이승복 김제시 부시장이 직무를 대행하게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1>MC계의 ‘팔방미인’ 허참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31>MC계의 ‘팔방미인’ 허참

    허참(67)은 얼마 전 경기 남양주에 있는 자기 농장을 일반에 오픈했다. 음식을 먹고 노래를 듣는 전원형 레스토랑으로 꾸미고 ‘참스팜스’라는 간판을 세웠다. 2층은 일종의 기록실로 만들었다. 자신의 예능 40여년 역사가 담긴 사진, 포스터, 앨범들을 여기에 모았다. 자기 그림 작품들도 여러 점 걸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서울 여의도 KBS 녹화홀에서 25년 동안 실제로 썼던 ‘가족오락관’ 네온사인이다. “창고에 처박아 두면 그냥 썩는다고, 방송국에서 선물로 주더군요. 그걸 여기 가져와서 전원을 연결하니까 불이 들어오는데, 눈물이 납디다. 그 오랜 시간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느라 고생했다. 이제는 내가 널 지켜봐 줄게, 이렇게 다짐했어요.” ●1973년 여동생 결혼 밑천인 3만원 들고 ‘무작정 상경’ -기차가 덜컹거리며 부산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아무 대책 없는 ‘무작정 상경’의 주인공이 내가 되다니…. 군에서 막 제대한 1973년 어느 날이었다. 지갑 속엔 3만원이 들어 있었다. “오빠가 나중에 돈 벌면 몇 배로 갚아줄게.” 결혼 밑천 삼는다고 고이 모아 온 여동생의 돈이었다. -서울살이는 예상보다도 힘들었다. 집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으니 군대나 고향 친구들 집을 번갈아가며 하루하루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정동 MBC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됐는데, 자전거로 채소나 생선 같은 것들을 배달해 주며 공짜 숙식의 대가를 치렀다. 그러고 있다 보면 코미디언이 됐든, MC가 됐든, DJ가 됐든 뭐라도 하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왔다. 그해 겨울 군대 친구와 함께 종로에 나갔다가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를 지나치게 됐다. 문앞에 탄산음료 ‘오란씨’ 시음 행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한 잔 얻어먹을 요량으로 안에 들어갔다. (입구에 유난히 코가 큰 사람이 서 있었는데, 쉘부르의 주인이자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PD 겸 DJ로 활동하던 이종환 선생이었다) 무대에서는 이태원, 전언수씨로 구성된 통기타 듀오 ‘쉐그린’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래를 마친 뒤 객석 손님들에게 경품을 주는 행운권 추첨을 시작했다. 내가 딱 걸렸다. “무대로 잠깐 올라오세요.”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내 몇 마디에 공연장은 폭소와 박수로 가득 찼다. 정신없이 웃던 이태원씨가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그게…기억이 안 나네요.” “허 참, 자기 이름도 몰라요?” “앗,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나요? 저는 허참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이종환 선생이 나를 불렀다. “여기에서 일해볼 생각 없나?” -월급은 없었다. 먹여주고 재워주면 그걸로 족했다.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면서 틈틈이 손님들 신청곡 받아 노래를 틀어주는 게 나의 일이었다. 그러다 잠깐씩 무대에 올라 짤막하게 MC를 볼 일이 생겼는데, 차츰 “쉘부르에 명물이 하나 들어왔다”고 입소문이 났다. 날 보러 오는 손님들이 하나둘 늘면서 몇 달 후에는 어니언스, 쉐그린, 김정호, 김세화, 권태수 같은 포크 스타들의 공연을 진행하는 정식 MC로 승격이 됐다. 스탠딩 코미디와 노래를 섞은 ‘허참쇼’라는 코너도 만들어졌다. -MBC의 라디오 PD 겸 DJ였던 박원웅 선생이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우리 회사에서 ‘청춘은 즐거워’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DJ 해볼 생각 없나.” 현기증이 났다. ‘얼마 전까지 자전거에 동태 궤짝이나 채소 꾸러미를 싣고 지날 때마다 그토록 높게 보였던 MBC 사옥. 그곳에 내가 입성한다.’ 나는 그때까지도 쉘부르의 객석에서 소파 몇 개 붙여놓고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는 신세였다. 노래 ‘편지’의 성공으로 형편이 나아진 어니언스 임창제가 물려준 슬리핑백이었다. 방송 DJ를 시작하면서 동대문 근처에 방을 얻은 나는 임창제의 슬리핑백을 의기양양하게 다른 친구에게 물려주고 쉘부르 시대를 마감했다. ●남다른 입담…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서 운명의 MC 제안 -우리 집안의 뿌리는 황해도다. 나도 거기에서 태어났는데, 이듬해 6·25 전쟁이 났고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월남을 했다. 어쩌다가 땅끝인 부산까지 와서 부민동에 터를 잡고, 법원 공무원으로 취직했다. 그 덕에 적당히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소고기 반찬을 싸 주면 나보다 못사는 아이가 배급받아온 옥수수빵과 바꿔 먹기도 했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1956년 부민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가 여러 번 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그려 팔아 용돈을 벌기도 했다. 미술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었다면 남다른 끼와 말솜씨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소풍 가서 사회자는 늘 내 차지였다. 그래선지 말이나 행동에 남다른 스타 의식이 강했다. 이를테면 아침에 교문에서부터 영화배우처럼 겉멋을 부리며 걸었다. 저 멀리 3층 교실 창문에서 나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여자애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웅변대회에도 단골로 나갔다. 주위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만들었던 것은 나의 성우 흉내였다. ‘삼국지’, ‘수호지’,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라디오 드라마를 듣고 외워 목소리 흉내를 내면 식구들, 친구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국어 시간에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으로 시작하는 고전 ‘조침문’을 ‘전설 따라 삼천리’의 성우 유기현씨 목소리로 읽어주면 교실은 난리가 났다. -공부는 못했다.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영남상고에 들어갔는데, 막상 졸업을 할 때가 되니 아버지는 “네가 장남인데 대학을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재수를 시작했는데, 길게 하지는 못했다. 공부 의욕도 떨어졌지만 집안 형편이 크게 기울어졌다. 안 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공부에 대한 아쉬움은 지금도 크다. -1972년 군 복무 중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박정희 정부는 전군에 ‘문화선전대 경연 행사’를 열어 유신의 필요성을 병사들에게 홍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사단 웅변대회 선수로 뽑힌 나를 대대장이 불렀다. “이상용, 너는 오늘부터 웅변 대신에 문선대 경연 준비를 해라.” 유신헌법이 뭔지를 내가 알 리 없었다.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우리 몸에는 우리 옷을 입어야 하는데, 유신헌법이야말로 우리 몸에 맞는 옷이다’를 주제로 코미디를 구성해 연기했고, 사단에서 1등을 했다. 그때부터 MC 겸 코미디 담당으로 예하부대를 돌며 유신 홍보 공연을 다녔다. MC와 코미디언으로서 능력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얼마 후에는 사단 내 방송 DJ도 맡게 됐는데, ‘쌀’을 ‘살’로 발음하고 ‘의사’를 ‘어사’라고 말하는 억센 부산 사투리가 문제가 됐다. 문선대 공연에서야 사투리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수단이었지만, 아무래도 방송에선 아니었다. 교정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매일 책과 신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 또한 나중에 사회에 나와 큰 도움이 됐다. ●‘수그려라’가 제 좌우명… 저를 방송인으로 남게 한 건 8할이 ‘노력’ -박원웅 선생의 스카우트로 MBC 라디오 데뷔를 한 이후 몇몇 프로그램이 나를 더 따라왔다. 사람들은 나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리듬감 있는 말투를 좋아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위기가 찾아왔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가요계를 평정할 때였으니 1976년쯤인 듯한데, MBC 라디오의 간부 한 분이 나를 호출했다. “라디오 진행자를 전부 아나운서로 교체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 미안하다.” 교통정보 프로그램 ‘푸른 신호등’에서 하차하라는 말이었다. 방 한 칸 신혼살림에 아내는 첫아이를 임신한 상태. 세간이라곤 쌀통 하나뿐이고, 찬장도 없어 사과상자로 대신하고 있던 우리 부부였다. “저, 좀 더 잘하겠습니다. 이거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집니다.” 소용없었다. 다시 실업자가 됐다. 폭음을 하고 들어가 아내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방송하는 사람은 방송국에서 안 불러 주면 끝이다. ‘푸른 신호등’에서 졸지에 잘린 뒤 나는 장사를 하기로 했다. MBC 근처에 신발가게를 차렸다. 동대문 시장에서 패션구두 같은 것을 떼어다 아내와 같이 팔았다. 조용필이나 이은하 같은 스타들이 찾아와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6개월도 안 돼 망했다. 장사는 말주변만 갖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었다. 묘하게도 신발가게를 폐업하자 방송 요청이 연달아 들어왔다. 잠깐 동안의 실업자 생활과 신발가게 실패를 통해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에 간단한 것은 없다.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라디오로 주가가 오르면서 TBC ‘7대 가수쇼’ MC로 TV 데뷔를 했다. 운현궁 공개홀에서 남진, 나훈아, 이미자 등 당대의 스타들과 인사를 했다. ‘내가 여기까지 왔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시 고려진씨와 짝을 이뤘는데 최초의 남녀 공동 MC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150명 정도의 여성 MC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얼마 후에는 MBC ‘토요일 밤에’와 함께 주말 저녁을 양분하고 있던 TBC ‘쇼쇼쇼’의 MC로 위키리(이한필)의 뒤를 이어 발탁됐다. 쇼쇼쇼에서 나와 최고의 콤비를 이뤘던 정소녀씨를 만났다. ‘허참’ 하면 ‘정소녀’, ‘정소녀’ 하면 ‘허참’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나와 같이 MC를 보던 정혜경씨는 내 이름에 이어 자기 이름을 말하는 순서에서 돌연 ‘정소녀’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보기 드문 방송사고를 내기도 했다. -한창 때에는 새벽부터 심야까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방송을 했다. 방송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극심한 스트레스다. 수십년을 해도 마찬가지다. 거기에서 오는 긴장과 피로, 고독감을 술로 달래면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한밤중 방송이 끝나면 심신이 허기져서 무교동 낙지골목 등을 훑고 다녔다. 그렇게 일에 술에 파김치가 돼서 집에 갔다가 새벽에 나오는 생활이 이어졌는데, 방송국에서 쓰러져 응급차로 실려간 적도 있었다. -나를 대표하는 ‘가족오락관’은 1984년 4월 3일 벚꽃이 한창일 때 처음 전파를 탔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공교롭게 마지막 1237회 녹화일이 2009년 4월 2일이었다. 하루도 어긋나지 않는 만 25년. 나의 청춘과 중장년이 그대로 녹아 있는 사반세기와 좀 더 따뜻하게 이별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은 참 아쉽다. 새로운 포맷의 참신한 가족오락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해서 갑자기 관두게 됐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KBS는 가족오락관 후속으로 ‘가정오락관’이란 프로그램을 편성했지만, 몇 번 내보내고는 시청자 반응이 안 좋다며 폐지해 버렸다. 지금은 온 가족이 모여 볼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수그려라’가 나의 좌우명이다. 남을 존중하고 경청하려고 애쓴다. 남들 앞에 과하게 나서지 않으려 한다. 나는 항상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염두에 두고 무대에 오른다. 후배들한테 말한다. 분위기 뜨고 흥겹다고 해서 객석에 마이크 들이대며 반말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방송인으로서 나의 능력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끼’는 타고났을지 몰라도 나머지를 채운 것은 나의 부단한 노력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젊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 위해 시중에 있는 거의 모든 유머집을 구입해 외우고 또 외웠다. 소설이건 수필이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중요한 부분을 메모해 암기했다. 교수, 의사, 성악가, 요리사, 언론인 등 자기 분야의 고수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다. 그들과의 얘기는 모두가 살아 있는 공부였고, 나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단련될 수 있었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허참은 누구 본명은 이상용. 194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MC’ 중 한 명이다. TBC 동양방송, KBS 한국방송, MBC 문화방송에서 수많은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26년 동안 진행한 KBS ‘가족오락관’은 그의 이름과 동일시된다. 코미디언, 가수,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영남상고, 동아대,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수료 ▲TV 프로그램 TBC ‘7대 가수쇼’ ‘쇼쇼쇼’ ‘전국 TOP10 가요쇼’, KBS ‘가족오락관’ ‘도전! 주부가요스타’ ‘왕건오락관’ ‘지구촌 노래자랑’, MBC ‘젊음은 가득히’ ‘지붕뚫고 하이킥’, 대전MBC ‘허참의 토크&조이’, SBS ‘빙글빙글 퀴즈’ ‘잉꼬부부 재치부부’, MBN ‘엄지의 제왕’ ▲라디오 프로그램 MBC ‘싱글벙글쇼’ ‘푸른 신호등’ ‘청춘은 즐거워’, SBS ‘허참의 즐거운 저녁길’ ▲음반 ‘왜 몰라주나’(1976년) ‘추억의 여자·소낙비’(2007년) ▲제29회 한국방송대상(2002년) 제12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2005년) KBS 연예대상(2006년)
  • [新국토기행] 눈꽃에 숨은 장성의 푸름

    [新국토기행] 눈꽃에 숨은 장성의 푸름

    서울에서 내려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전남의 관문인 장성군은 호남의 중심이다. 전북과는 경계를 이루고 광주시와 접해 있고 사통팔달 도로가 연결돼 있어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예로부터 장성은 ‘산이 둘러 있고 물이 굽이쳐 스스로 하늘을 이뤘다’고 표현하듯 자연이 만들어 낸 빼어난 경관과 수려한 풍광이 으뜸인 고장이다.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 선생을 기리는 필암서원을 비롯해 고산서원, 봉암서원 등 유서 깊은 문화자원이 곳곳에 남아 있는 문향의 고장으로 알려졌다. 소설 홍길동이 실제 살았다는 아치곡, 동학농민군이 싸웠던 황룡전적지 등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장성은 최근에는 ‘옐로시티’라는 새 이름으로 불린다. 옐로시티는 사계절 내내 노란색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를 의미하는 것으로, 장성이 꿈꾸는 미래다. 밝은 노란빛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예술적 감성이 가득한, 사계절 활력과 매력이 넘치는 고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자연의 멋과 문화 그리고 노란색의 감성이 가득한 팔색매력 장성은 찾을수록 푹 빠지는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인구는 4만 7000여명이다. >>볼거리 ●피톤치드향 가득한 치유의 숲 축령산 편백림 전북 고창과 경계를 이룬 축령산에는 40~50년생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림대가 1150㏊에 걸쳐 울창하게 펼쳐져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건강한 나뭇잎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는 특유의 향을 풍기며 산을 찾은 이들에게 청량한 기분을 선물한다. 축령산은 전국 최대의 조림 성공지로도 유명하다. 춘원 임종국 선생이 한국전쟁 뒤 폐허가 된 벌거숭이 산에 30년간 사재를 털어 묘목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꾸며 편백림을 직접 일궜다. 촘촘히 뿌리 내린 편백나무마다 산을 사랑했던 그의 열정이 느껴진다. 산을 오르다 보면 중턱에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조림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잠시 쉬면서 임 선생 평생에 걸쳐 보여 준 헌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삼림욕을 즐기기 가장 좋은 곳인 축령산은 2014년 사단법인 생명의 숲 국민운동으로부터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축령산에는 널찍한 임도가 곳곳으로 뻗어 있어 가벼운 산책이 가능하다. 안내도를 따라 오솔길로 들어서면 더욱 진한 피톤치드향이 온몸을 감싸며 상쾌한 기분을 선사하고 곧게 뻗은 나무들로 편백림이 만들어 내는 이국적 정취에 흠뻑 빠지기도 한다. 천천히 걸으며 삼림욕을 즐기는 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취향에 따라 숲속에 조성된 데크에 누워 독서나 명상을 즐길 수도 있다. 축령산의 매력을 더 깊게 느껴 보고 싶으면 산림청 ‘장성편백 치유의 숲’에서 운영하는 ‘산림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특히 청소년, 환우, 임산부 등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고 숲 해설가가 함께해 더욱 알차게 숲의 속살을 체험할 수 있다. ●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백양사 백암산을 뒤로하고 가인봉과 백학봉 사이 골짜기에 자리잡은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애기단풍과 비자나무 숲, 고불매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장성의 대표 관광지다. 백양사에는 보물인 소요대사부도를 비롯한 극락보전, 대웅전, 사천왕문, 청류암, 관음전 등의 국가 문화재들이 가득하다. 담장에 기대어 있는 고불매와 비자나무 숲과 같은 천연기념물도 볼 수 있다. 이곳은 사계절 내내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지만 특히 가을에는 색이 고운 애기단풍이 사찰과 백암산을 물들이기 시작하면 백양사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단풍객들과 추억을 만들려는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백양사로 향하는 길에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백학봉을 배경 삼아 맑은 연못에 비치는 쌍계루와 붉은 단풍이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가을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고 가을 햇살이 더해지면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돼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최고의 단풍 사진 촬영지로 손꼽는다. 백양사를 품은 백암산은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명산 중 하나로 사계절 사랑받는다. 특히 전남대수련원에서 오르는 등산길 중간에는 장성 8경 중 하나인 입암산성 일부가 온전히 보존돼 있어 역사의 발자취도 느껴볼 수 있다. 입암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전라도를 지키려는 군사 목적으로 쌓은 성으로 계곡능선을 따라 3.2㎞의 성이 남아 있다. 정연하게 쌓은 성벽이 무너지지 않고 많이 남아 있는 데다 남·북쪽 두문의 흔적까지 있어 웅장했던 성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피와 땀으로 나라를 지키려던 조상들의 숨결이 들리는 듯한 매우 유서 깊은 호국유적지다. 지금은 그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성곽과 윤진의 순의비가 있고, 가을 억새는 장관을 이룬다. ●호수를 품은 숲길, 장성호 호반길 장성호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씻어 주는 기분 좋은 숲길이다. 호수를 배경으로 울창한 숲이 이어지는 장성호 호반길은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입소문 난 트레킹 명소다. 장성읍내와 넉넉한 들녘 풍경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고즈넉한 숲길로부터 시작되는 호반길은 댐이 만들어지기 오래전, 마을주민들이 오갔던 길이다. 한동안 사람의 발자취가 사라졌지만 최근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간직한 아름다운 길로 다시 주목받는다. 지금은 장성군이 호수를 중심으로 명품 둘레길을 만들기 위해 곳곳에 끊겨 있는 길을 나무 데크로 잇고 쉼터를 만들어 걷기 좋은 길로 다듬고 있다. 숲길 군데군데 쉼터도 만들었다. 모두 호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힘든 길은 아니지만, 잠깐잠깐 멈춰 서서 풍광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적을 깨며 호수를 가르는 보트의 자태도 멋스럽다. 장성호 건설로 대를 이어 살아온 고향을 등져야 했던 이들을 위한 수몰문화관이 있어 장성호의 과거도 잠깐 엿볼 수 있다. 또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라고 인정받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세계를 만날 수 있는 임권택 시네마테크도 이곳에 있다. 시와 글, 그림과 어록을 주제로 갖가지 조각 작품이 세워진 조각공원도 있어 예술을 즐기며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홍길동 테마파크 홍길동의 고장으로도 유명한 장성 황룡면 아곡마을에 ‘홍길동 테마파크’가 넓게 조성돼 있다. 테마파크는 홍길동 생가를 비롯해 산채, 전시장, 야영장 등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홍길동 생가는 자리를 옮겨 원형대로 복원했고 전시관에는 출토된 유물과 홍길동 관련 자료인 영상물, 연구논문, 문학작품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또한 테마파크 곳곳에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예쁜 쉼터, 꽃밭이 꾸며져 있고 광장에는 분수대가 있어 한여름 어린아이들의 단골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4D 영상관’은 장성군이 제작한 홍길동 애니메이션 ‘홍길동2084’와 ‘Let’s go 활빈당’을 상시 상영하고 있어 어린이들로 북적인다. 이 밖에도 풋살경기장같이 가볍게 몸을 풀고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많아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더욱 큰 사랑을 받는다. 많은 이들이 홍길동 테마파크를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캠핑장이다. 테마파크에 있는 야영장은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나무데크가 25개 조성돼 있고 주변에 취사장, 샤워장, 화장실, 매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최적의 캠핑장으로 손꼽힌다. 기본적인 캠핑시설은 저렴한 가격에 대여가 가능하고 바로 옆에도 오토캠핑장이 있어 개성에 따라 선택해 즐길 수 있다. 바로 옆에는 이 마을에서 태어난 박수량 선생의 청백리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청백당’이라는 한옥펜션이 지어져 고즈넉한 하룻밤을 보내기에도 좋은 곳으로 한번쯤 가족과 함께 머무르기 좋다. ●영화계 거장의 작품 조명한 임권택 시네마테크 장성호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장성이 낳은 영화계 거장인 임권택 감독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임권택 시네마테크’가 들어서 있다. 2014년 개관한 이곳은 상영관과 전시관, 영화 관련 연구 및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이 있다. 2018년까지는 무료로 개방할 예정이다. 시네마테크가 있는 문화예술공원은 넓게 펼쳐진 장성호를 배경으로 103점의 시·서·화 어록을 새긴 멋진 조각작품이 설치돼 관광객들이 공원을 거닐며 문학적 재미를 느끼도록 해 준다. ●오솔길의 낭만 찾는 캠핑족들의 천국, 남창계곡 입암산 남쪽에 있는 남창계곡은 은선동, 자하동 등 여섯 갈래로 이뤄져 길이가 십여리에 이른다. 계곡마다 크고 작은 폭포와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마치 선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온갖 새소리가 그치지 않는 울창한 수목과 산천어의 작은 움직임까지 들여다보이는 수정처럼 맑은 계곡물과 계곡을 따라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오솔길은 남창계곡이 자랑하는 가장 빼어난 멋이다. 여름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대표적인 피서지로 인기가 높고 최근에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캠핑을 즐기려는 레저족의 발길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먹거리 ●단풍나무 수액으로 만든 흑두부 단풍나무 수액으로 만든 전통 손두부가 별미로 꼽힌다. 두부가 들어간 버섯전골과 단풍두부묵 등을 즐길 수 있고, 청국장도 맛이 좋아 백양사를 찾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여름엔 꿩 샤부샤부, 겨울엔 꿩 떡국 꿩은 예로부터 기력을 증강시키고 소화기능을 돕고 간 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피부의 염증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심이나 등심 같은 부위는 적당한 두께로 썰어 샤부샤부와 육회, 탕수육, 떡국 등으로 먹는다. 여름에는 샤부샤부, 겨울에는 떡국을 즐겨 먹는다. ●얼었다 녹았다 반복해 달달한 장성 곶감 맛이 달기로 유명하다. 품종은 주로 대봉이며 감나무들의 수령이 높아 열매가 크고, 육질이 단단하다. 자연 바람으로 말리는 이곳 곶감은 다른 지역과 달리 빛깔이 그리 곱지 않다. 늦가을부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당도가 높다. 특히 절반만 말린 반건시가 부드러워 인기를 끌고 있다. ●자양 강장의 아이콘 메기찜·메기매운탕 강에서 갓 잡은 메기에 온갖 채소를 넣고 끊인 메기매운탕은 향긋하고 비린내도 나지 않아 식욕을 돋워 주는 음식이다. 자연산 메기에 각종 양념으로 맛을 낸 메기찜은 담백하고 향긋해 맛을 아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메기찜은 담백하고 칼칼하며 매콤한 맛은 물론 자양 강장의 효과까지 뛰어나다. ●축령산 경치와 함께 즐기는 한방약오리 축령산 자락에서는 황귀, 녹각, 예덕나무 등 각종 약재를 넣어 끓여 낸 한방약오리를 맛볼 수 있다. 축령산 계곡물에 발을 담글 수 있어 더운 여름날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깔끔하게 나오는 신선한 나물 등 담백한 밑반찬과 함께 오리백숙과 닭백숙, 떡갈비까지 기호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 장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 별세…남은 생존자는 39명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 별세…남은 생존자는 39명

    경남 남해에 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93) 할머니가 6일 별세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39명이 됐다. 박숙이 할머니는 1923년 남해군 고현면에서 태어났다. 16살 때 남해군 고현면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다가 외사촌과 함께 일본군에 끌려갔다. 일본 나고야를 거쳐 중국 만주로 끌려간 박 할머니는 그곳에서 7년간 지옥 같은 생활을 강요당했다. 해방을 맞았지만 바로 귀국하지 못하고 만주에서 7년간 더 생활하다 부산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건강이 악화해 남해읍의 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 왔다. 남해군은 광복절 70돌인 작년 8월 15일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열었다. 소녀상은 남해읍 아산리 남해 여성인력개발센터 앞 소공원 487㎡에 건립됐다. 박숙이 할머니의 빈소는 남해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발인은 8일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In&Out] 北이탈주민 3만명 시대 맞은 우리의 인식/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In&Out] 北이탈주민 3만명 시대 맞은 우리의 인식/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달 27일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을 ‘사회통합형’으로 개선하겠다며 7개 추진방향을 제시했다. 북한이탈주민 3만명 시대를 맞아 기존 남한 사회 정착과 지원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관련 정책을 진정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한 방향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취지다. 초기 정착지원이 정착금, 임대보증금 지원 등 보상 위주로 이뤄졌다면,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현금지원 대신 취업교육을 강화하고 자립자활에 목표를 뒀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그들은 탈북자라는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삶의 질이 낮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 왔다. 통일부는 이에 따라 ▲비전 설계 지원 ▲북한이탈주민 멘토링 시스템 구축 ▲생활안정과 자립을 위한 역량 강화 ▲사회진출기회 확대 ▲탈북청소년 인재 육성 ▲지역사회 통합 ▲북한이탈주민정책 협업체계 정비 등 7가지 정책 추진방향을 제시했다. 초기정착을 위해 ‘생애설계과정 운영’과 ‘정착금 및 주거지원금 증액’을 추진하며, 취업강화 차원에서 ‘공공부문 채용 확대’와 ‘취업역량 강화 프로그램’, ‘자산형성제도 개선’, ‘직장·주거 연계 강화’ 등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탈북 청소년과 관련한 정책 역시 사회통합형에 맞춰 개선된다. 통일부는 ‘통일 리더’ 배출을 위해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다. 더불어 그동안 소극적 지원에 머물렀던 제3국 출생 북한이탈주민 자녀에 대한 지원방안도 담고 있다. 이 같은 정책방향은 기존의 생계형 탈북에서 삶의 질을 위한 이주형 탈북이 증가하고 있는 현 추세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정착은 향후 통일시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된다.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생활 중 가장 힘들어하는 요인 중 하나는 그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차별적 시선이다. 북한이탈주민, 새터민, 자유민 등 남한으로 이주해 온 그들을 부르는 용어는 너무나 다양하다. 특정사람을 구별 짓는 이러한 용어야말로 어쩌면 그들의 정체성 혼란과 정착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남한에 입국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은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호칭에 의해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로 구별되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우리의 인식 전환이 필요할 때다. 통일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우리 곁에 와 있는 북한 출신 주민들과 함께 나누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한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겨워하지만 정작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은 미약하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은 제도가 아닌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한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 놓아 부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왜 통일해야 하는지, 통일이 되면 무엇이 좋은지에 대한 논리를 찾는다. 우리에게 통일은 선택의 대상이지만 북한이탈주민에게 통일은 고향에 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먼저 온 미래’, ‘통일의 마중물’이라고 불리는 북한이탈주민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통일의 비전과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우리사회의 시선을 바꿀 필요가 있다. 통일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닌 여럿이 함께 만들어 가는 현재진행형이다.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정착은 교육과 취업, 건강, 법률 등 다양한 서비스가 어우러져 원스톱 지원체계가 이뤄질 때 더욱 효과적이다. 우리 곁에 온 북한이탈주민과의 아름다운 동행이 바로 통일의 시작이다. 먼 훗날 언젠가 다가올 기다리는 통일이 아니라, 지금 나로부터 시작하는 통일이 필요하다. 사회통합형 정책의 실질적 효과는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식변화에서부터 비롯될 것이다. 당신이 통일이다.
  • [탈북 3만명 시대] “10년 넘는 한국 생활에도… 북한식 화법 남아 있어, 시행착오 통한 소중한 경험 ‘통일 이후 역할’ 기대”

    [탈북 3만명 시대] “10년 넘는 한국 생활에도… 북한식 화법 남아 있어, 시행착오 통한 소중한 경험 ‘통일 이후 역할’ 기대”

    2004년 1월, 인천공항을 통해 대한민국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북한을 떠난 지 반년 만의 일이었다. 가족과 함께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던 것이 어제 일처럼 느껴지지만 돌이켜 보니 10년을 훌쩍 넘긴 세월이다. 가변적인 사회형태, 치열한 경쟁, 새로운 환경 등 무엇이든 서툰 외지인이 서울에 정착해 살아가기에는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다. 대입 준비 과정을 거쳐 2006년 대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탈북민이란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특유의 북한 억양은 내가 탈북민임을 이미 말해 주고 있었다. 굳이 억양을 고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게 부끄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의 시간에 과제 발표를 할 때 나를 쳐다보던 학우들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매우 신기한 눈으로 나의 발표를 지켜봤고, 일부 학생은 수업이 끝난 뒤 나를 찾아와 호기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학 생활에 적응했고, 무사히 학업을 마치게 됐다.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해 국회 보좌진을 거쳐 현재는 신문기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지금도 다른 탈북민들과 비슷한 어려움은 늘 뒤따른다. 남한 생활 10년이 넘었어도 ‘외치다’와 ‘웨치다’를 가려 쓰지 못해 질책도 받는다. 북한식 화법과 문법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며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탈북민은 우리 사회에 정착해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들 중 일부는 나와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그로 인해 고통과 좌절을 맛보고 있다. 반대로 상처와 아픔을 자양분 삼아 사회라는 ‘큰 숲’의 ‘나무’로 성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사회의 진입 장벽은 탈북민에게만 높은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20·30대 젊은층이 현재의 한국을 ‘헬조선’이라 부를까.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청년 실신’(청년실업자+신용불량자), ‘7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집·꿈·희망을 포기한 세대) 등 비관적인 현실에 불만은 자자하다. 반면 탈북민들에게는 통일 이후 ‘북한’이라는 돌아갈 곳, 다시 말해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민이다. 탈북민들이 이 사회에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은 북한에 남겨진 동포들의 시행착오를 덜 수 있는 ‘강점’으로 꼽힌다. 모든 탈북민이 좌절하지 않고 ‘통일 이후 나의 역할’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실력을 쌓아 가야 하는 이유다. mk5227@seoul.co.kr
  • 농협순천시지부, 농촌다문화가정 모국방문 항공권 전달식 가져

    농협순천시지부, 농촌다문화가정 모국방문 항공권 전달식 가져

    농협순천시지부가 5일 베트남이 고향인 호튀린(23·순천시 외서면)씨에게 가족과 함께 친정을 방문할 수 있는 왕복항공권과 체재비를 전달했다. 남편 김현우(41)씨와 딸(2)이 동행한다. 모국방문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호튀린씨는 2012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농사일을 도우며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등 지역사회의 모범이 되고 있다. 김충현 지부장은 “이번 다문화가정의 고향방문으로 그리운 가족과 따뜻한 가족의 정을 나누는 행복한 고향방문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다문화가정이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해 마을공동체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농협순천시지부에서는 2007년부터 매년 모국방문 항공권을 지원해 오고 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오스트리아 대선 중도좌파 판 데어 벨렌 승리···극우 물결 차단

    오스트리아 대선 중도좌파 판 데어 벨렌 승리···극우 물결 차단

    오스트리아 대통령 재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녹색당 전 당수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72)이 극우 성향인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45)를 누르고 당선을 사실상 확정 지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개표에 근거한 오스트리아 ORF방송의 1차 추정에 따르면 판 데어 벨렌은 53.6%의 지지를 얻어 46.4%에 그친 극우 호퍼를 큰 격차로 앞섰다. 호퍼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매우 슬프다”며 패배를 인정한 뒤 판 데어 벨렌에게 축하한다는 글을 올렸다. 판 데에 벨렌은 이날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자유와 평등, 연대에 바탕을 둔 유럽을 지지하는 오스트리아의 승리”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의 대선 개표 결과는 이르면 5일 저녁 늦게, 늦으면 6일 오전에 나올 전망이다. 지난 4월 치른 대선에서 1차 투표 때 2위를 차지한 판 데어 벨렌은 지난 5월 결선 투표에서 득표율 0.6% 차이로 호퍼 후보에 승리했다. 그러나 부재자 투표 부정 의혹으로 재선거를 치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면서 이날 다시 선거가 실시됐다. 국민당과 사민당, 노동계도 판 데어 벨렌의 당선을 환영했다. ‘유럽의 오바마’로 불리는 판 데어 벨렌은 이민자 집안 출신이다. 고향은 오스트리아 빈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네덜란드계 러시아인과 에스토니아인이다. 그의 부모는 스탈린 체제 아래에 있던 소련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로 넘어온 난민이었다. 판 데어 벨렌은 1994년 의회에 입성한 뒤 1997년부터 2008년까지 녹색당 대변인과 당수를 지냈다. 이번 대선에는 자유당에 맞선 중도좌파 진영과 무소속 연대 세력의 후보로 나왔다. 그는 대선 결선투표에서도 여론 조사에서 호퍼에 밀렸지만 간발의 차이로 승리한 데 이어 이날 재선거에서는 초반 개표 결과이기는 하지만 큰 격차로 앞서면서 승리를 사실상 눈앞에 두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국민당과 사민당 등 양대 정당 후보가 1차 투표 때 호퍼에게 큰 차이로 밀리면서 결선 투표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다. 자칫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극우 성향의 정당 출신 대통령을 배출하는 나라가 될 뻔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지난 5월 결선 투표 때도 극우 정당이 집권하는 것에 반발해 판 데어 벨렌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호퍼의 당선을 막기 위해 투표했던 유권자들이 다시 판 데어 벨렌에게 표를 몰아준 것으로 보고 있다. 호퍼가 속한 자유당은 나치 부역자들이 세운 정당이다. 영국 BBC는 “내년 선거를 앞둔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에서 반이민, 반주류 기치를 내건 포퓰리즘이 세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나온 오스트리아의 선거 결과는 매우 놀랍다”고 평가했다. 중도 좌파 성향의 판 데어 벨렌이 오스트리아 극우 바람을 잠재우면서 유럽연합(EU)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호퍼가 당선돼 오스트리아까지 EU 탈퇴를 거론하는 국면을 맞게 되면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에 이은 충격파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탈렉시트?…伊국민투표 오늘 오전 윤곽

    이탈렉시트?…伊국민투표 오늘 오전 윤곽

    유럽연합(EU)의 운명을 좌우할 이탈리아의 헌법개정 국민투표가 4일(현지시간) 실시됐다. 투표 결과에 따라 영국의 EU 탈퇴인 브렉시트나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만큼이나 전 세계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국민투표가 부결돼 마테오 렌치 총리가 물러난다면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져 세계 금융시장이 또 한번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탈리아의 EU 탈퇴인 이탈렉시트 움직임이 본격화될지도 주목된다. 렌치는 유세 마지막 날인 2일 고향 피렌체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오는 4일 우리 아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서 “우리를 위한 것도 정당을 위한 것도 아닌 그들을 위한 것”이라며 개헌 지지를 호소했다. 야당은 이번 투표를 렌치 총리의 신임을 묻는 투표로 규정하고 개헌 반대 캠페인을 주도했다. 이탈렉시트를 주장하는 제1야당인 오성운동의 창립자 베페 그릴로는 이날 토리노에서 “우리는 지금 진흙 한가운데 빠졌다”며 렌치에 대한 공세를 펼쳤다. 여론조사 공표가 허용된 마지막 날인 지난달 18일 발표된 조사에서는 개헌 반대가 찬성을 약 8%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부동층이 25%에 달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섣부르게 예측할 수 없다고 AFP는 전했다. 렌치는 경기 회복을 위한 입법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며 개헌안을 내놓았다. 이탈리아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높은 실업률과 막대한 정부부채, 은행 도산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개헌안이 부결돼 렌치 총리가 사임할 경우 과도 내각이 들어서면서 정치·경제적 혼란이 발생할 전망이다. 과도내각을 종식하려면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 조기 총선에서 제1야당인 오성운동이 승리할 경우 유럽 정치에 큰 변수가 된다. 오성운동은 EU 탈퇴뿐만 아니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까지 주장하고 있어 이들이 집권할 경우 이탈리아가 EU 붕괴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국내 유일 순천향대 열차강의 사라진다…급행전철 투입 때문

    순천향대가 진행해온 국내 유일의 열차강의가 사라진다. 4일 이 학교에 따르면 코레일이 서울역과 아산 신창(순천향대)역을 오가는 ‘누리로호’ 열차운행을 오는 9일부터 전면 중단함에 따라 2002년 9월 이후 계속돼 온 ‘열차강의’ 교양수업이 폐강된다. 이 노선에는 급행전철이 투입된다. 누리로호는 객차의 흔들림이 적은데다 새마을호와 같은 극장식 좌석배치, 쾌적한 인테리어 등으로 교수와 학생들이 1시간여 수업을 진행하는 데 제격이었다. 학교 측은 누리로 객차 4칸 가운데 1칸을 빌린 뒤 내부에 모니터 등을 설치해 수업을 해왔다. 하지만 급행전철은 객차의 흔들림이 상대적으로 심하고 가로식 좌석배치라 수업을 진행하기가 매우 어려워 열차강의를 중단하기로 했다. 열차강의는 “기차 안에서 커피나 맥주, 과자도 파는데 강의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한 교수의 ‘농담’이 현실화돼 새마을호 수원-천안 구간에서 처음 시작됐다. 최근에는 ‘재미있는 법정영화이야기’와 ‘시사 이슈 이해 및 분석’, ‘길 위의 문학’, ‘지구환경과 온난화대응-저탄소녹색성장’ ‘명작의 고향’ 등의 강의가 매주 월요일 오전, 혹은 금요일 오후 상·하행선에서 진행됐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열차 안에서 이뤄졌다. 지금까지 열차강의를 들은 학생은 1000명이 넘는다. 순천향대 관계자는 “지난 6월쯤 코레일에 누리로를 계속 운영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며 “통학을 하며 수업을 들어 학생들이 좋아했는데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아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분노한 민심 폭발...더민주 “지지율 4%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 떼라”

    분노한 민심 폭발...더민주 “지지율 4%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 떼라”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2주째 역대 최저치인 4%를 기록하자 더불어민주당 김효은 부대변인은 2일 논평을 내고 “지지율 4%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 떼라”고 밝혔다. 김 부대변인은 “분노한 촛불민심을 거스른 채 ‘나는 죄가 없다’며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대통령을 잘했다고 칭찬할 수는 없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지지율이 저점을 찍었다고 착각하고 반등을 기대한다면 어림없다. 대통령 퇴진을 향한 카운트타운은 시작된 지 오래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35일 만에 고향인 대구로 외출을 했다. 국정복귀를 위한 기운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 흘린 눈물의 의미가 무척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 “요즘 청와대가 은근슬쩍 분주하다. 공석이던 국민통합위원장에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당회장 목사를 임명했다. 경찰 고위직 인사도 단행했다. 분열을 일삼던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통합위원회는 허상이었다”고 지적했다. 김 부대변인은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 떼고 가만히 있는 것이 국민통합의 길이라는 것을 보고도 모르는가. 다음에는 슬그머니 해외순방길에 오른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청와대의 수상한 의약품 구입에 놀란 외신이 한 번 더 기겁할 일을 만들지 말라”고 꼬집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크리스마스 ‘혼자’서도 잘 보내는 방법 4가지

    크리스마스 ‘혼자’서도 잘 보내는 방법 4가지

    다들 한 번쯤은 크리스마스에 우울한 기분이 들었던 경험이 있다. 온세상이 한껏 들떠있는데, 나만 혼자인 것 같아 외롭기도 하고, 나에게만 즐거운 일이 안 생긴 것 같은 느낌들이다. 실제 연인과 이별했거나 사정이 있어 가족에게 가지 못하는 등 여러 이유로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면 우울한 기분이 들 수 있다. 이처럼 크리스마스와 같은 휴일에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미국의 생활전문 사이트인 라이프해커가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 4가지를 공개했다. ■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라 혼자 있게 되면, 곧 과거에 속상했던 기억을 떠올리기 쉽다. 어떤 이는 옛 애인을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고향이 그리워 향수병까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대부분 안정감과 친밀감이 그리운 것이 원인이다. 영국 심리치료 클리닉인 ‘다이나믹 유’의 인지행동 심리치료사인 알렉스 헤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인간은 혼자 있으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걱정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만일 혼자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의식을 돌려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즐겁게 보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하라. 즉, 자신에게 조금 관대해지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여행을 가는 것도 좋다. 짧게 가까운 곳에 가는 것도 좋다. 새로운 곳을 보면 과거로부터 얽매이지 않는다. 그게 아니면,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요리를 하거나 해본 적이 없는 일에 도전하는 것도 좋다. 알렉스 헤저는 또 크리스마스 휴일에 할 일을 정하기 위해 ‘삶의 가치’를 목록으로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삶의 가치’는 삶에 특별한 의미를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족과 친구’ ‘취미와 관심사’ ‘마음과 몸’ ‘일과 배움’ ‘인생과 생활’ 등의 항목을 만들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각각 생각한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있는 것을 생각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하게 정한다” 이런 목록에 크리스마스에 할 수 있는 계획을 넣는 것이다. ■ 비현실적인 기대는 하지 말라 TV 광고나 예전부터 전해져 온 이야기들의 영향으로 크리스마스에는 마법 같은 일이 있을 것으로 상상하기 쉽다. 상당히 큰 것을 기대했지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기대의 크기 탓에 필요 없는 실망을 하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 진심으로 밝고 즐거운 기분이 될 필요도 없다. 크리스마스에 슬픈 기분이 들어도 좋은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이 빠지지 않도록 하라. 기대하지 않으면 크리스마스에도 차분한 상태로 있을 수 있다. 임상 심리학자인 일레인 로디노 박사도 ‘사이크센트럴’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때문에 가족과 스트레스, 불안, 섭식장애, 음주, 자부심, 능력 등에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에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내 어디가 어때서?’라고 자신에게 따진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에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낸 적이 여러 번 있다는 CBS 방송국 임원 출신 작가 짐 맥카이르네스는 다음과 같은 팁을 제시한다. “추수감사절(11월 넷째주 목요일)이 다가오면 난 TV를 생방송이 아닌 VOD로 바꿔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을 보지 않는다. 난 스크루지가 아니며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너무 과한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본래 가치가 없어질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에 대한 생각도 왜곡될 수 있다. 특집 방송이나 영화, 광고 등이 너무 많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에 혼자일 때 우울한 기분이 드는 이유다” 이런 사소한 일로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과가 있다. 크리스마스에 마법이 일어나면 그대로 즐겁고 멋진 일이지만, 이는 과장 광고와 같은 것으로, 아주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자. 영화와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다. ■ 다른 사람을 도와 신경을 돌려라 그래도 여전히 우울할 것 같다면 자원봉사를 통해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쓰거나, 도움을 주고, 기분을 달래보자. 노숙자 지원, 식사 배급 및 제공, 요양 시설이나 고아원 방문 등 봉사 활동도 여러가지가 있다. 자원 봉사를 하면 행복한 기분이 될 수 있다. 독일 노동자 연구소에 따르면, 자원 봉사를 한 뒤, 자원 봉사의 기회가 없어져 버리면 전체적으로 행복 기분이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 자신만의 습관을 만들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는 친구나 지인이 있으면 함께 무언가를 하라. 집에 초대해 파티를 하는 것도 좋다. 또한 자신만의 습관을 만드는 것도 좋다. 한 예로 크리스마스에 가족을 영화관에 데려가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했던 크리스마스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과거의 경험 때문일 수 있다. 알렉스 헤저는 위와 같은 것은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크리스마스 자체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 크리스마스가 될 때까지 계획을 미루기 쉽상이다. 그런 생각이라면 아무런 계획도 못세우고 우울한 기분이 들거나 망칠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면, 크리스마스에 커플로 붐빌 것 같은 장소나 시간대를 피하도록 계획을 세워라” 이렇게 하더라도 막상 크리스마스가 되면 혼자라는 이유로 외로운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크리스마스에 혼자 있으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지 않고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면 기분이 조금 괜찮아질 것이다. 사진=타라 자코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치매 앓는 어머니와 행복하게 사는법

    치매 앓는 어머니와 행복하게 사는법

    페코로스, 어머니가 주신 선물/오카노 유이치/양윤옥 옮김/라이팅하우스/216쪽/1만 2500원 ‘한나절 행방이 묘연했던 어머니가 녹초가 되어 현관에 앉아 있었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때와 비슷하다. 어딘가 먼곳에서 허덕허덕 돌아온 것처럼 어머니는 잠들었다. 언제든 그렇게…돌아오실 줄 알았다. 끝내 돌아오시지 않는 때가 딱 한 번 찾아온다. 어머니는 8월 24일 오후 2시 20분, 91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노쇠.’ 40대 대머리 아들이 치매에 걸린 80대 노모와의 일상을 가슴 뭉클하게 그린 페코로스 시리즈의 완결판이 출간됐다. ‘페코로스,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다. 노모가 세상을 뜬 뒤 주간 아사히에 연재했던 최신작 62편과 미수록작 88편을 묶었다. 앞서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와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에서 그랬던 것처럼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인 치매를, 저자는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낙천적으로 만화 컷 속에 담아낸다. 이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저자가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는 시간을 ‘선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페코로스는 ‘작은 양파’라는 뜻으로 대머리를 빗댄 저자의 별명. 전쟁과 재해, 가난과 가정폭력 등으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면서도 “살아야지, 어떡허든 살아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던 노모는 치매에 걸려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 어떤 때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아주던 시절을 오가며 아름답고 소소한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오래전 곁을 떠난 남편을 만나기도 한다. 스무살 때 고향을 떠났다가 마흔 넘어 이혼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저자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며 트라우마로 남아 있던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다. 처음엔 지역 정보지에 볼품없이 연재됐고, 자비를 들여 단행본을 출간할 정도였던 이 만화가 일본을 넘어 한국에서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은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노노(老老) 간병 시대를 앞둔 우리 현실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저자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간병 피로에 빠지면 부모와 본인이 함께 무너진다”며 여러 제도와 시스템을 활용해 환자와 거리를 두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권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길섶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서동철 논설위원

    출근하면 밤새 들어온 메일을 하나하나 지워 나가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정기적으로 들어와 쌓이는데도 지우지 못하는 메일이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보내 주는 ‘고전산책’이다. 시간에 쫓겨 열어 보지 못할 때는 미안할 만큼 수준 높으면서 재미있다. ‘허균이 세운 공공도서관’이라는 제목의 엊그제 글도 흥미로웠다. 스토리인즉 이렇다. 강릉부사가 임기를 미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공물로 바치고 남은 명삼(明蔘) 32냥을 허균에게 주었다. 허균은 사신으로 명나라 연경에 간 길에 그것을 ‘육경’, ‘사서’, ‘통감’을 비롯한 온갖 책으로 바꿔 왔다. 고향 강릉의 향교에 책을 실어 보냈지만, 사양하자 별장 누각을 비워 수장하게 했다. 선비들이 읽고자 하면 빌려 주었고, 다 읽으면 반납하게 했다.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없었을 뿐 완벽하게 현대적인 개념의 도서관이다. 글이 여기서 끝났으면 재미는 덜했을 것이다. 지난 9월 경포호 주변 초당 소나무 숲 아래 허균의 도서관인 ‘호서장서각’(湖西藏書閣) 안내판이 세워졌다는 소식이 더해졌다. 글쓴이는 ‘벌써 호서장서각이 복원될 날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황새, 또 뒤집을까

    황새, 또 뒤집을까

    서울 1-0 또는 두 골 차 이겨야 데얀·유현 내일 경기 못 뛰지만 K리그 두 차례 역전 우승 ‘뒷심’ 수원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컵 경기 도중 샤페코엔시 추모 묵념 늘 위기에서 기적을 일구는 ‘황새’가 이번에도 반전을 보여줄까. 황선홍(48) FC 서울 감독은 3일 오후 1시 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날쌘돌이’ 서정원(46) 감독이 이끄는 수원을 불러들여 대한축구협회(FA)컵 결승 2차전을 치른다. 1차전을 1-2로 내줘 모든 게 불리하다. 원정 다득점 원칙 때문에 1-0으로 이기거나 두 골 차로 이겨야 한다. 2-1로 이기면 연장에서 승부를 가려야 하고, 3-2나 4-3으로 이기더라도 수원에 우승을 양보하게 된다.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수원 골문을 열어야 한다. 비기기만 해도 수원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 박주영이 부상에서, 다카하기가 징계가 풀려 돌아와 다행이지만 데얀이 1차전 경고 누적으로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데다 골키퍼 유현까지 1차전 상대 선수를 가격한 사실이 적발돼 나서지 못한다. 주세종은 무릎을 다쳐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고 고요한도 시원치 않다. 그러나 절대 유리한 서 감독에게도 떨쳐내지 못하는 불안감이 있다. 황 감독이 두 차례 K리그 클래식을 우승하면서 보여준 뒷심 때문이다. 2013년 황 감독이 지휘하던 포항은 최종전을 앞두고 승점 71이었고 울산은 승점 73이었다. 비기기만 해도 울산이 우승하는데 포항은 후반 추가시간 김원일의 골로 1-0으로 승리, 기적 같은 역전 우승 드라마를 연출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전북이 33경기 무패 행진을 달릴 때 서울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스카우트의 심판 매수로 전북이 승점 9를 삭감당할 때도 많은 이들이 “설마 서울이 우승할까” 했다. 전북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울은 역시 1-0으로 이겨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상대가 비기기만 해도 되는 단판 승부에서 두 차례 모두 1-0 승리를 이끈 황 감독이 이번에도 기적과 같은 역전 우승을 차지하면 2013년에 이어 클래식과 FA컵을 석권하는 ‘더블‘을 두 차례나 달성하며 FA컵을 세 번째 포옹한다. 한편 이날 경기 도중 최근 전세기 추락으로 목숨을 잃은 브라질 프로축구 샤페코엔시 선수단을 추모하는 묵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브라질 출신 아드리아노(서울)는 “어릴 적 프로 데뷔의 꿈을 키웠던 아나니아스가 희생됐다”며 “그는 미드필더로 공격수인 나와 호흡을 맞췄는데 친구를 잃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아디 서울 코치 역시 “수비수 윌리안 티아구와는 휴가 때 고향에서 만나 축구를 하거나 크리스마스에 가족끼리 어울리기도 했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요리 보고 저리 봐도 둘리 둘리~ 테마역사 변신한 도봉구 쌍문역

    요리 보고 저리 봐도 둘리 둘리~ 테마역사 변신한 도봉구 쌍문역

    주변 3㎞ 내년 테마거리로 조성… 원작자 김수정씨가 직접 감수 서울 도봉구의 관문인 지하철 4호선 쌍문역이 1일 둘리테마역으로 탈바꿈했다. 쌍문역 4번 출구에는 둘리와 친구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조형물이 있고 지하철역 안 쉼터에서는 공룡의자에 앉아 한숨 돌릴 수 있다. 역사 내부의 기둥은 둘리 키재기, 둘리 회전목마, 둘리 자이로드롭 등 둘리 테마파크처럼 꾸며졌다. 함석헌 기념관, 김수영 문학관, 둘리뮤지엄, 간송 전형필 가옥 등 도봉구의 문화자산을 소개하는 미디어테이블도 있다. 도봉구 관광안내 정보는 영어와 중국어로도 접할 수 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둘리테마역사에 이어 둘리뮤지엄에 이르는 길을 둘리테마거리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버스정류장, 보도 바닥 등 거리 곳곳에 둘리 조형물을 세워 둘리와 함께 놀러 가는 느낌이 나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쌍문 둘리테마역은 수제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슈스팟’ 성수역, 미술관이 있는 경복궁역, 한국 영화의 역사를 담은 충무로역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테마역사 가운데 하나다. 서울시는 앞으로 6호선 상월곡역은 과학테마역으로, 혜화역은 연극테마역사로 꾸밀 계획이다. 종합운동장역은 야구테마역, 어린이대공원역은 어린이들을 위한 역, 삼각지역은 대중가요 테마역, 녹사평역은 공공미술 테마역, 잠실나루역은 자전거 테마역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지하철역도 지역 특성을 담아 고유의 개성을 지닌 문화공간이 되는 것이다. 도봉구는 둘리테마역을 계기로 쌍문역에서 시작해 둘리뮤지엄과 역사문화 관광벨트의 명소를 둘러보는 답사코스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둘리뮤지엄의 입장료도 주말 5000원으로 40% 할인해 문턱을 낮췄다. 둘리뮤지엄과 연결된 둘리 근린공원의 둘리마을 붕붕도서관과 유아숲체험장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국산 캐릭터 둘리를 즐길 수 있다. 420m의 우이천 둘리벽화는 캐릭터 벽화로는 국내에서 가장 길다. 내년 하반기 둘리뮤지엄과 쌍문역 주변 3㎞가 둘리테마거리로 완성되면 쌍문동은 만화의 배경에서 실질적인 ‘둘리의 고향’이 된다. 둘리 관련 모든 작업은 ‘아기공룡 둘리’의 원작자인 만화가 김수정씨가 직접 감수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35일 만에 靑 밖으로… 서문시장 15분 방문한 朴대통령

    35일 만에 靑 밖으로… 서문시장 15분 방문한 朴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일 대구 서문시장 화재 현장을 15분 동안 방문했다. 박 대통령이 외부 일정을 소화한 것은 최순실 사건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 10월 27일 제4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 참석 이후 35일 만이다. 탄핵 위기에 몰려 임기 단축 의사까지 밝힌 박 대통령이 갑자기 외부 일정을 소화한 것은 정치적 재기를 염두에 둔 의도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 서문시장은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박 대통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방문하는 등 정치적 고비마다 영남 민심을 환기하던 장소다. 하지만 청와대는 정치적 행보가 아니라 인간적 도리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정연국 대변인은 “그동안 대통령에게 힘을 주던 곳에서 일어난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하려는 보답으로 받아들여 달라”며 “청와대 기자단을 대동하지 않고 수행 인원을 최소화해 짧게 현장에 머문 것도 (대통령 자격보다는) 개인적 방문의 취지”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배성례 홍보수석, 강석훈 경제수석, 정 대변인, 천영식 홍보기획비서관, 김계조 재난안전비서관, 정윤모 중소기업비서관과 함께 오후 1시 30분 현장에 도착해 김영오 상인연합회장의 안내로 피해지역을 돌아봤다. 정 대변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서문시장 상인 여러분은 제가 힘들 때마다 힘을 주셨는데 너무 미안하다”며 “현재 상황에서 여기 오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도움을 주신 여러분이 불의의 화재로 큰 아픔 겪고 계신데 찾아뵙는 게 인간적 도리라고 생각해서 오게 됐다”고 했다. 이어 “여러분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정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신속하게 하겠다”고 말한 뒤 강 수석에게 “지원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거리에 나온 시민들과 잠시 인사한 뒤 1시 45분쯤 현장을 떠났다. 정 대변인은 “상인들의 손이라도 잡고 직접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진화작업이 계속 중이고 더 있으면 도움이 안 되고 피해만 줄 수 있는 상황이어서 오래 머물 수 없었다”며 “경호팀에서 들었는데 박 대통령이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울었다”고 전했다. 서문시장에선 응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한 상인은 “현장만 한번 돌아보고 갈 거면 뭐하러 왔느냐. 아픈 가슴을 헤아리고 힘내라는 말 한마디는 하고 가야지”라고 외치기도 했다. 서울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朴대통령, ‘정치적 고향’ 대구 서문시장 화재 현장 방문

    朴대통령, ‘정치적 고향’ 대구 서문시장 화재 현장 방문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 서문시장은 지난달 30일 오전 2시 발생한 큰불로 이틀째 진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불로 시장 건물이 다수 무너지고 소방관 2명이 다쳤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된 점을 의식한 듯 기자단과 동행하지 않고 수행 인원을 최소화해 15분가량 조용히 현장 상황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외부 일정을 소화한 것은 지난 10월27일 제4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이후 35일 만이다. 이번 사건으로 사실상 잠행 모드인 박 대통령이 서문시장을 전격 방문한 것은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큰 재난이 발생한 것을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서문시장은 2012년 대선 직전과 지난해 9월 대구 방문 일정 때 각각 방문하는 등 정치적 고비가 닥칠 때마다 찾았던 곳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3만’에 흔들리는 뿌리 얕은 나무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3만’에 흔들리는 뿌리 얕은 나무

    뉴 리치 뉴 하이라 하면 자동적으로 올드 리치 올드 하이를 생각한다. 뉴(new)가 있어 올드(old)가 있고, 올드가 있어 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뉴와 올드는 역사에서 과거와 현재처럼 하나가 가면 다른 하나가 오는 순차(順次) 관계가 아니라 나란히 존재하고 나란히 서는 병존(竝存) 병렬(竝列)하는 관계다. 시차가 있다 해도 뉴 있는 곳에 올드가 있고 올드 있는 곳에 뉴가 있다. 그래서 뉴와 올드는 서로 대비(對比)되고, 서로 차별화된다. 뉴와 올드의 구분 시점은 대개 할아버지 대(代)다. 아버지가 어떻게 크나큰 부(富)의 성(城)을 쌓고, 높으나 높은 지위의 탑(塔)에 오르는지 아들은 아버지를 보아서 잘 안다. 물론 아들인 내 대(代)에 와서 그 부와 지위에 이르렀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그 위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그 성과 탑에 이르렀는지는 지금의 나는 알 수가 없다. 모두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드는 누대(代)라 하고 뉴는 당대(當代)라 한다. 주목할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공통적으로 누대 상층인 올드는 높이고 당대 상층인 뉴는 낮춰 보는 것이다. 올드는 자기 능력이나 노력보다는 선대로부터 그야말로 금수저를 물려받아 부도 쌓고 지위도 올라간 것이다. 반대로 뉴는 자기의 피와 땀과 노력과 그리고 출중한 능력에 의해서 리치(rich)도 되고 하이(high)도 된 것이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서도 금수저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이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올리고 낮추는 것은 정반대인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 상식으로는, 특히 한국 사람들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명칭부터 서양 사람들은 뉴 리치 뉴 하이를 업스타트(upstart)라고 한다. 업스타트는 아주 낮은 지위나 낮은 계급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높은 지위에 이른 사람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다. 우리말로 벼락부자, 벼락출세아고, 거기에 건방진 놈 어정뱅이라는 함의(含意)도 있다. 요사이 전문기술 혹은 첨단지식으로 만들어진 기업, 스타트업(startup)도 그런 폄하가 있고, 모험적이며 그래서 위험도도 높은 벤처 비즈니스(venture business)도 비슷한 비하가 있다. 우리도 뉴 리치와 뉴 하이, 이 당대 상층을 졸부며 졸귀라고 부른다. 이 졸부(猝富) 졸귀(猝貴)의 졸(猝)자는 치졸하다는 졸(拙)이 아니고 업스타트처럼 ‘갑자기’라는 의미의 졸이다. 그것도 졸(卒)자 옆에 개견(犬)자가 붙어 있듯이 개(犬)가 갑자기 나타나듯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사람이 별안간 나타났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순수 우리말로는 뉴 리치 졸부는 ‘벼락부자’이고 뉴 하이 졸귀는 ‘벼락감투’다, 우리는 보통 어제 그제 부자 되고 높이 된 사람들로 생각하지만, 그 기간은 짧게는 어제 그제이고, 길게는 2세대, 30년에서 60년이라는 세월이 그사이에 있다. 이 졸부 졸귀는 동양에서는 공자시대 이래 써오던 말이다. 졸부귀불상(猝富貴不詳)이라는 경구가 바로 그것이다. 졸부 졸귀는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다, 물론 상서(祥瑞)롭지도 않고, 길(吉)하지도 않다는 뜻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래로 즐겨 써오던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는 것도 졸부 졸귀의 형태로 본다. 곤궁하기 그지없던 사람이 과거에 합격해서 혹은 갑자기 출세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정작으로 놀라고 부러워하는 사람은 자기와 다름없이 미천했던 범부(凡夫)나 우매한 부녀자들이라는 것이다. 동서양이 왜 이렇게 뉴 리치 뉴 하이를 그들의 노력 그들의 능력에 상관없이 다 같이 낮춰 보느냐. 거기에는 ‘뿌리 깊지 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린다’는 경험론이 동서 공히 작용해서다. 적어도 3대 이상 더 나아가 수수백년의 세월을 견디어 땅속 깊이 내린 뿌리여야 진액을 빨아 올릴 수 있고, 그때 어떤 태풍에도 견뎌낼 수 있는 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나무들은 대개 서구 노()대국들이나 미국, 일본에 있다. 독립한 지 이제 겨우 2세대, 기껏해야 2세대 반 정도의 신생국들은 그런 뿌리 깊은 나무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뉴 리치 뉴 하이가 모든 신생국들의 공통 현상이고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보통 올드 리치 올드 하이는 3장(長)이 있고, 뉴 리치 뉴 하이는 3만(慢)이 있다고 말한다. 기막힌 비유며 기막힌 차별화다. 올드의 3장은 지혜(wisdom)와 자제(temperance)와 용기(courage)라는 세 장점이다. 한 가문이든 기업이든 지혜는 세대를 거듭해야만 축적된다. 이런 위기는 어떻게 대처하고, 저런 딜레마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의 지혜는 세월을 견디어 온 만큼 쌓인다. 그 쌓인 지혜가 바로 현재 상황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이고 해답이 된다. 욕망이며 감정은 쉽게 억제되지 않는다. 많이 가진 자의 욕망은 적게 가진 자의 욕망과 크기가 다르고 무게가 다르다. 감정의 분출도 욕망의 크기만큼 세차다. 그 세참이 만들어 내는 타자 상처의 면적과 깊이는 가난한 자 지위가 낮은 자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고를 한번 저지르면 십년 적공(積功)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새에 무(無)로 돌아간다. 욕망을 억제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자제(自制)가 신조(信條)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자제한 것만큼 오래갈 수 있고 오래가는 것만큼 자제력도 몸에 밴다. 올드는 그 자제의 상징이다. 그냥 늙은 것이 아니라 ‘자제’함으로써 늙은 것이다. 그래서 올드가 ‘올드’ 되는 것이다. 뉴가 가장 따라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올드들의 용기(勇氣)다. 서부 영화를 보면 저렇게 목숨을 내거는 용기가 어디서 나올까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한다. 영화라서 그렇거니 하지만 올드들의 용기는 드라마에서가 아니라 실제에서 그러하다. 그 용기는 불의(不義)를 외면하지 않는 것.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 거기에 생명을 거는 위험이 따라도 생명을 내놓는 것이다. 특히 국가와 공동체의 안위(安危)가 걸리는 것에는 예외가 없다. 지난 수백년간 서구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앞장서 싸우다 가장 많이 죽은 사람들이 바로 이들 ‘올드’들이다. 그래서 헤일 수 없이 많이 선 동상(銅像)들의 나라가 그들 나라인 것이다. 뉴들의 3만은 자만(自慢)과 교만(驕慢)과 오만(傲慢)이다. 이 3개의 어휘 뒤에 붙은 만(慢)이라는 한자의 자전적 의미는 거야(倨也)며 방자(放姿)로 풀이한다. 거야는 거만한 것이고, 방자는 조심함, 삼감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즐겨 쓰는 낭만(慢)의 만(慢)은 이 한자 자전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일본 사람들이 프랑스어 로망(roman)을 처음 표기할 때 한자 글자로 낭만(慢)이 일본 발음으로는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3만의 자만은 스스로 뽐내고 자랑하는 것이고, 교만은 버릇없고 잘난 체하는 것이고, 오만은 남을 업신여기고 예의가 없는 것이다. 올드들의 3장을 한마디로 겸손(謙遜)이라 한다면 이 뉴들의 3만은 거만(倨慢)이다. 겸손과 거만-올드들의 3장에 비하면 뉴들의 3만은 모두 단점이고 그것도 치명적 단점이다. 이런 단점들을 지탄하고 비하하는 것은 차치하고, 그 이전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가 의심된다. 옛날에도 3만필망(三慢必亡)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3만 가진 사람치고 망하지 않는 사람 없다는 말이다. 그래 아니라도 뉴들은 올드들이 사는 세상과 다른 정치며 다른 사회 경제구조 속에 산다. 그들이 날마다 치르는 경쟁은 가열(苛烈)함을 넘어 사생(死生)을 넘나든다. 불공정시비가 그칠 날이 없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상태에서, 또 예측불허의 기상예보를 들으며 폭풍우 치는 험난한 바다를 넘어가야 한다. 그사이 나도 모르게 내 작은 성공을 과시하고 과신하는 3만이 내 안에 솟아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3만은 3장에 이르는 통과의례(passage rites)일 수도 있다. 설혹 그렇다 해도 뉴들은 올드들의 그 3장을 끊임없이 체득해 가야 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세상의 법칙엔 변함이 없다. 올드들의 금수저는 그냥 금수저가 아니라 희생이라는 뿌린 씨앗의 대가다. 그 3장의 덕(德)이 오늘날 너무 큰 득(得)이 된 세상의 원리를 뉴들은 습(習)해야 한다.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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