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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도도한 클래식의 고향… 아찔한 대륙의 용광로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도도한 클래식의 고향… 아찔한 대륙의 용광로

    비행기로 장거리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누구나 환승을 경험하게 됩니다. 보통 서너 시간 안팎이지만 더 길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대개는 공항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일쑤인데, 몇몇 공항에서는 환승 시간 동안 경유 도시를 돌아보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보통 각 지역의 허브를 자처하는 공항, 혹은 항공사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내놓습니다. 이게 환승 여행입니다. 본인이 원해서 24시간 이상 체류하는 ‘스톱 오버’와는 다소 다릅니다. 스톱 오버의 경우 화물을 내렸다 다시 실어야 하는 불편이 따릅니다. 반면 환승 여행은 짐을 뺄 필요없이 단출하게 여행에 나설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시간을 쪼개 한 번에 두 도시를 여행하는 횡재를 하는 거지요. 그렇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터키 이스탄불을 돌아봤습니다. 뭐 수박 겉핥기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여태 대륙의 용광로라는 이스탄불에 발을 딛지 못한 ‘촌놈’으로서는 그마저도 감동이었습니다.잘츠부르크의 키워드를 꼽자면 소금, 모차르트, 그리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정도다. 잘츠부르크의 명소로 꼽히는 곳은 거의 어김없이 세 키워드와 연관이 깊다. 익히 알려졌듯 ‘잘츠’(Salz)는 소금, ‘부르크’(Burg)는 성(城)이다. 지금도 이 일대의 소금은 ‘명품’ 대접을 받으며 공급되고 있다. 잘츠부르크엔 유난히 멋쟁이들이 많다. 차 한 잔 마시러 외출하면서도 드레스에 정장 갖춰 입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이 더위에 말이다. 흰색 재킷에 갈색 구두 맞춰 신고 시가를 입에 문 노신사를 만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래 고풍스러운 걸 좋아하는 건지, 옛 제국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건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도시 전체에서 턱을 치켜들고 도도하게 걷는 귀족의 풍모가 느껴지는 건 분명하다.●모차르트와 카라얀을 길러낸 음악의 고장 잘츠부르크는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모차르트를 길러냈고, 지휘자 카라얀도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거리의 속삭임’(Street Whispers)이라 불리는 거리의 악사들조차 시험 보고 뽑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할 만큼 클래식 음악은 도시 전체에 두루 퍼져 있다. 잘츠부르크 도시 여행의 들머리는 미라벨 정원이다. 아름다운 분수와 조각상, 그리고 빼어난 전망을 가진 정원이다. 정원의 중심이 되는 미라벨 궁전은 1606년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와 자녀를 위해 지었다. 소금무역을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쌓은 그는 결혼할 수 없는 성직자의 신분이면서도 이를 무시할 만큼 절대자로 군림했다. 종국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고, 미라벨 궁전이란 현재 이름은 후임 대주교가 바꾼 것이다. 현재는 시 청사와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미라벨 궁전 옆의 페가수스 분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여주인공인 마리아와 아이들이 부른 ‘도레미 송’의 촬영 장소로 널리 알려졌다.카라얀의 생가가 있는 훔멜 거리를 지나면 잘자흐강이다. 신구 시가지를 가르는 강이다. 옥빛 강물 위로 옛 시가지로 들어가는 다리가 놓여 있다. 마카르트 다리다. 난간 곳곳엔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숱한 연인들의 약속들이 단단하게 매달려 있다. 자물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다리가 무너진 적도 있다니, 간절함의 무게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던 게다. 다리를 넘어서면 게트라이데 거리다. 여기서부터 옛 시가지가 펼쳐진다. ‘성당의 도시’로 불리는 옛 시가지는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이 좁은 길에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다. 외벽이 노란색인 데다 오스트리아 국기를 길게 늘어뜨려 단장한 덕에 멀리서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모차르트는 이 집에서 1756년 태어나 17세 되던 해까지 살았다. 모차르트의 유년기 작품 대부분이 이 집에서 작곡됐다고 한다. 모차르트 생가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모차르트 카페’가 있다. 모차르트와 별 관계는 없지만 미모의 남성들이 서빙을 한다고 알려지면서 명소 대접을 받는 곳이다. 눈요기를 겸해 쉬어 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곧잘 찾았다는 카페 토마셀리는 생가에서 한 블록 정도 떨어져 있다. 1703년 세워져 여태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일대에 가장 오래된 약국, 초콜릿 가게 등이 어울려 있다. 옛 시가지의 구심점은 대성당이다. 모차르트도 이 성당에서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했다. 성당과 성당 앞 무대에서는 거의 매일 모차르트 음악을 중심으로 음악회가 열린다. 1920년 모차르트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연주회는 지금까지 잘츠부르크페스티벌로 이어져 오고 있다.●호엔잘츠부르크성 아래로 흐르는 ‘보리수’ 카피텔 광장으로 간다. 호엔잘츠부르크성으로 오르는 푸니쿨라를 타기 위해서다. 광장에는 설치미술 작품 ‘발켄홀-모차르트 공’이 세워져 있다. 독일 조각가 슈테판 발켄홀의 작품이다. 황금빛 공 위에 남자 조각상이 서 있는 모양새다. 푸니쿨라를 타고 오르면 호엔잘츠부르크성이다. 묀히스베르크산(542m)을 타고 앉은 덕에 잘츠부르크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성문 앞 우물 곁엔 보리수가 서 있다.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의 내용 그대로다. 쉬어 갈 겸 보리수나무 그늘 아래 들어 단꿈을 꾸는 것도 좋겠다. 성채 북쪽은 독일이다. 멀리 베르히테스가덴 일대가 아련하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아돌프 히틀러가 자신의 별장인 ‘독수리 둥지’를 세웠던 곳이다. 차가운 피를 가진 그였지만 고향 가까이 머물고 싶은 마음은 장삼이사와 다르지 않았던 게다.●두 시간 비행 후 짧지만 알찬 ‘환승 여행’ 그리고 두어 시간의 비행 뒤 마주한 이스탄불. 항공사에서 마련한 투어 버스에 오른다. 아라스타 바자르가 짧은 여정의 출발점이다. 수다스러워 보이는 터키 아줌마가 가이드다. 향료 등을 파는 작은 바자르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거대한 건축물이 시선을 잡아끈다. 아야 소피아다. 화엄사 보제루를 지나 각황전을 눈에 담았을 때의 감동이랄까. 나지막한 탄성이 무의식 중에 목젖을 스친다. 아야 소피아는 원래 성당이었다. 1453년 오스만튀르크의 젊은 술탄 메흐메드 2세가 점령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리고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젊은 술탄은 가장 먼저 아야 소피아를 찾았고 수많은 기독교인 앞에서 “알라 외에 신은 없다”고 외쳤다고 한다. 젊은 술탄은 십자가를 떼고 네 개의 첨탑을 세워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인다.오후 5시 10분. 아잔이 나지막하게 울려 퍼진다. 무슬림 국가에 왔다는 걸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아야 소피아 맞은편은 술탄 아흐메트 사원이다. ‘블루 모스크’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왜 ‘블루’ 모스크인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알게 된다. 아야 소피아를 능가하는 모스크를 열망했던 술탄 아흐메트 1세는 사원 내부를 수십만 개의 푸른색 타일로 장식했다. 블루 모스크란 이름은 여기서 비롯됐다. 극적으로 열린 중앙의 너른 공간이 인상적이다. 이교도인 탓에 벽 모서리에 기댄 채 목을 빼고 봐야 했다. 여기저기서 땀냄새와 발냄새가 진동했지만, 그 무엇도 옛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가리지는 못했다. 사원 밖은 히포드롬 광장이다. 한때 10만명이 들어차는 전차 경기장이었다는 곳.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와 델피에서 가져온 기둥이 바늘처럼 솟아 있다. 이른바 ‘지하 궁전’이라 불리는 예레바탄 사라이를 보지 못한 것은 많이 아쉽다. 영화 ‘인터내셔널’ 마지막 장면에서 강렬한 인상을 안겨줬던 곳이다. 무려 7000여명의 노예가 동원돼 여러 신전에서 가져온 336개의 아름다운 대리석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아쉬운 곳이 어디 여기뿐일까. 짧은 하루해가 유럽 서쪽으로 진다. 잘츠부르크·이스탄불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이스탄불 시티투어는 터키항공에서 환승 시간이 긴 승객을 위해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교통과 식사 등 일체가 무료다. 이스탄불 환승 대기시간이 6시간 이상인 승객만 이용할 수 있다. 신청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아 누구나 도전해 볼 만하다. 투어 프로그램은 요일별로 다르다. 매일 5가지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오전 8시 30분~11시, 오전 9시~오후 3시, 오전 9시~오후 6시, 낮 12시~오후 6시, 오후 4~9시 등이다. 현지 교통 상황에 따라 여정이 다소 단축될 수 있다. 신청자가 많아 최소 1시간 전에 신청해야 한다. 적정 인원이 차면 이용할 수 없다. 아타튀르크 공항의 1층 오른쪽 호텔 데스크에서 신청을 받는다. 유료 소지품 보관소도 옆에 있다. 인천~잘츠부르크 노선의 경우 잘츠부르크행은 화, 목, 금, 일요일(현지 기준) 운항편의 환승 시간이 약 11시간이다. 이스탄불에 오전 5시 5분에 도착해 오전 8시 30분~11시 또는 오전 9시~오후 3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인천 복귀 때는 월, 수, 토요일 운항편이 환승 시간 약 10시간 30분이다. 이스탄불 도착 시간이 오후 2시 50분으로, 이번 여정에선 오후 4~9시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 [world 특파원] 日 ‘고향세’ 유치 과열… 진주귀걸이 답례까지

    ‘후루사토 납세’의 기부자 유치를 위한 일본 각 지방자치단체의 묘안이 백출하고 있다. 답례품 과열 및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일본 중앙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내놓자, 각 지자체는 이를 비켜 나갈 묘안을 짜내면서 새로운 답례품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후루사토 납세는 고향이나 자신이 원하는 소도시에 대한 기부 및 기부자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다. 후루사토는 일본말로 고향(故鄕)이란 뜻이다. ●“선물 챙기려고 기부자 많아져” 5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총무성은 최근 후루사토 납세와 관련, 기부액의 3할 이내로 답례품을 제한해 달라는 가이드라인을 각 지자체에 보냈다. 지자체가 기부자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는 답례품의 호화·고가 경쟁이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에서다. 각 지자체는 처음에는 기부자들에 대한 감사 표시로 각 지역이 생산한 해산물, 소주, 농식품 등 소박한 특산품을 보냈다. 그러나 곧 지역 간 답례품의 호화·고가 경쟁이 시작되면서 수만엔대의 홋카이도산 게와 수만엔대의 고가 어류인 긴메다이 등 해산물 등 기부액의 6~7할가량에 해당되는 특산품이 답례품으로 기부자들에게 돌아가는 일도 일반적이 돼 버렸다. 종류도 450여종으로 늘었다. 미야자키현의 경우 기부액의 5~6할대의 와규(일본소고기)나 고가 소주 등의 답례품으로 대박을 친 바 있다. 답례품의 위력은 대단했다. 홋카이도의 네무로시는 2015년 6월부터 꽁치나 게, 성게 등 신선한 것으로 이름난 지역 해산물을 답례한 뒤 기부액이 전년도에 비해 380배가 뛰어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기부액 전국 11위를 기록한 지바현 가쓰우라시는 기부액의 7할 상당에 해당하는, 시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의 답례를 일단 중단했다. 대신 다이빙이나 낚시, 숙박 등 기부자들이 지역을 방문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체험형 답례’ 등의 준비에 여념이 없다. 진주 양식이 주산업의 하나인 미에현 시마시와 토바시는 목걸이, 귀걸이 등 진주 제품을 답례로 기부자들에게 돌려 지난해 각각 7억 8700만엔(약 80억원), 5억 4700만엔의 기부금을 기록했다. 중앙정부가 진주 제품 답례에 “자산성이 높다”며 문제를 지적했지만, 대표적인 지역 특산품이라며 버티고 있다. ●기부액도 4년째 사상 최고 기록 일본 총무성은 4일 2016년도의 후루사토 기부액이 2844억엔으로 4년 연속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총무성의 “기부금 3할 이하의 답례품”이란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실행되기 전에 기부해 세금 감면도 받고, 고가 답례품을 챙기려고 최근 기부가 많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고향 경제를 살리고, 지방과 도시의 세수 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 2008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한국의 지자체들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인간 장벽 세워진 골대서 프리킥 골 성공시킨 축구선수

    인간 장벽 세워진 골대서 프리킥 골 성공시킨 축구선수

    축구 경기에서 놀라운 프리킥을 선보인 축구선수가 있어 화제다. 그 주인공은 유벤투스 FC 공격수 ‘파울로 디발라’. 4일(현지시간) 허프포스트코리아는 지난 1일 디발라의 고향 아르헨티나 라구나 라르가에서 열린 자선 축구경기에서 멋진 프리킥을 연출한 파울로 디발라의 영상을 소개했다. 경기 도중 프리킥을 얻은 디발라. 그가 프리킥을 차려하자 상대팀 선수들이 골대로 달려가 벽 쌓기를 시작했다. 자선 경기라는 잇점을 살려 관중석의 사람들도 달려나와 벽 쌓기에 나섰다. 잠시 뒤,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디발라가 골대의 빈틈으로 프리킥을 차 골로 성공시킨다. 관중들과 선수들이 디발라에게 달려와 축하와 환호를 보내며 그를 축하했다. 디발라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모두에게 정말 놀라운 날이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 1일 유튜브에 게재된 그의 영상은 현재 129만 32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영상= Futbol Total 3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아들 데리고 IS 합류한 백인 여성, “다시 고향 갈래”

    아들 데리고 IS 합류한 백인 여성, “다시 고향 갈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조직원으로 합류해 활발히 활동하던 영국 여성이 최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 등 현지언론은 IS의 주요조직원으로 활동 중인 영국인 여성 샐리 존스(49)의 근황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존스의 절친한 친구인 아이샤는 "얼마 전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샐리가 울면서 전화했다"면서 "IS 측이 귀국을 막고 있다"고 밝혔다. 한때 평범한 싱글맘이었던 존스는 지금은 미 국방부의 제거 1순위로 꼽힐 만큼 국제 테러범 적색 리스트에 올라있다. 영미권 정보당국에 따르면 버밍엄 출신의 백인 여성인 존스는 펑크밴드에서 활동한 이색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두 아들을 둔 싱글맘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왔다. 평범한 여성이 국제 테러범이라는 무시무시한 타이틀을 갖게 된 것은 채팅을 통해 컴퓨터 해커인 주나이드 후세인과 친해지면다. 그녀는 지난 2013년 9살인 둘째 아들만 데리고 시리아로 건너가 IS에 합류했으며 이어 후세인과 결혼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본격적인 국제 테러에 나섰다. 존스는 서방에 대한 공격을 담당하는 외국인들을 온라인을 통해 모집했으며 특히 이들에게 테러와 자살 공격 방법 등을 가르쳤다. 그녀가 다시 언론에 주목을 받게된 것은 지난 2015년 남편 후세인이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하면서다. 이후 존스는 서방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쳐 안와르 알-왈라키라고 불리는 비밀 여성부대를 맡아 운영했다. 이 부대는 여성 외국인들로만 구성된 비밀 조직으로 서방에서의 테러를 목적으로 창설됐다. 현지언론은 "존스는 IS 내 여성 중 2인자로 대접받을 만큼 영향력있는 인물"이라면서 "함께 시리아로 간 아들은 14세 미만 소년들을 훈련시키는 IS 캠프로 보내져 훈련받았다"고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J리그 휩쓰는 ‘윤정환 기적’

    J리그 휩쓰는 ‘윤정환 기적’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에서 두 시즌을 힘겹게 보냈던 왕년의 국가대표 ‘꾀돌이’ 윤정환(44) 세레소 오사카 감독이 일본 J리그 팀과는 아무래도 ‘찰떡궁합’인 것 같다.세레소 오사카는 지난 2일 J리그 17라운드에서 FC도쿄를 3-1로 누르고 10승5무2패(승점 35)를 기록, 가시와 레이솔(승점 34)을 끌어내리고 선두로 올라섰다. 2005년 이후 12년 만이다. 1999~2002년 이곳에서 뛴 윤 감독으로선 고향과도 같다. 지난 시즌까지 2부 리그를 맴돌던 팀이기에 1부 승격과 함께 챔피언까지 노리는 모습은 대단해 보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선 윤 감독의 리더십에 주목한다. 산케이신문은 ‘윤정환 감독의 빛나는 수완, 세레소 오사카 12년 만에 1위’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드필더로 뛰었던 그는 미니 게임에 직접 참가하는 등 선수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한다. 선수의 장점과 능력을 꼼꼼히 파악해 기용한다”고 설명했다. 윤 감독은 세레소 오사카에서 파격적인 용병술을 뽐냈다.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 야마무라 가즈야를 공격수로 활용해 재미를 꽤 봤다. 야마무라는 올 시즌 7골로 J리그 득점 공동 2위를 달린다. 당장의 성적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산케이 신문은 “윤 감독은 과감한 선수 육성으로 팀의 미래를 꾀한다”고 소개했다. 만 17세인 유스팀 소속 세코 아유무에게 출전 기회를 주는 등 결단력도 보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고속도로 타고… 영동북부 경제 ‘부활의 꿈’

    고속도로 타고… 영동북부 경제 ‘부활의 꿈’

    금강산 관광 중단 후 어려움 겪던 고성·속초·주문진 관광객 북적 양양TG 이용 차량 5배 늘어 교통체증 심해… 대체 도로 필요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던 강원 영동북부권 주민들이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으로 활짝 웃고 있다. 3일 강원도에 따르면 이 고속도로 개통으로 양양뿐 아니라 고성·속초·주문진 등 영동북부권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동해안 횟집들과 일부 숙박업소는 예년 피서철과 주말 때보다 30% 이상 늘어난 손님들을 소화하지 못해 돌려보내는 일까지 생겨났다. 고성 봉포항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모(57)씨는 “금강산 관광길이 막힌 이후 어려움을 겪던 고성 지역 상경기가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면서 “피서철에도 썰렁했는데 고속도로 개통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줘 반갑다”고 말했다. 숙박업소들도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속초 설악동 인근의 한 펜션업주는 “양양고속도로 개통 소식이 알려지면서 2주 전부터 예약이 폭주했다”면서 “1980년대 이후 수학여행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쇠락의 길을 걷던 설악동 관광경기가 이번 고속도로 개통으로 다시 살아나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속초~삼척을 잇는 동해고속도로와 7번 국도 등으로 이어지면서 강릉 주문진까지 관광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주말마다 주문진 어항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지난 주말에는 더 많이 찾아 인산인해를 이뤘다. 주말 동안 서울에서 가족들과 주문진을 찾은 조영란(58·여)씨는 “평소 영동고속도로로 고향 강릉을 찾았지만 새로운 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해 주문진을 찾았다”면서 “서울에서 가까워져서 앞으로 고향을 더 자주 찾을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이후 첫 주말인 지난 1일 양양톨게이트를 빠져나온 차량은 1만 2000여대로 동해고속도로만 있을 때의 2500여대보다 5배가량 늘었다. 양양톨게이트를 빠져나온 차량들이 7번 국도를 이용해 속초 방면으로 이동하면서 이 구간에 있는 낙산, 설악, 정암리 해수욕장 등에는 평소보다 30%가량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서울~양양고속도로는 개통 첫날에만 34만대의 차량이 몰려 교통체증을 빚고 터널사고 위험 등이 불거지는 등 문제점도 드러났다. 서울~춘천 구간은 양양까지 완전 개통으로 지·정체가 더 극심해졌다. 장인기 강원도 국가도로철도계장은 “고속도로에서 국도와 지방도로를 연계하는 도로망이 빠른 시일 내에 이어지고 용역에 들어간 제2경춘고속도로 건설이 조기에 추진되면 지금과 같은 극심한 지·정체 현상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메시 결혼식, 9000원 와인 등 검소한 답례품 화제

    메시 결혼식, 9000원 와인 등 검소한 답례품 화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고향에서 결혼식을 치른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와 안토넬라 로쿠소. 두 사람이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준비한 답례선물은 무엇일까? 현지 언론은 메시 부부가 하객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나눠준 답례품 세트를 입수해 내용물을 공개했다. 선물을 공개한 사람은 결혼식에 초청을 받은 행운의 아르헨티나 기자 리오 페코라로. 기자가 공개한 선물세트는 평소 메시의 생활처럼 검소한 편이었다. 나무상자로 포장된 선물세트를 열면 가장 눈에 띄는 건 말벡 와인이다. 말벡은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포도종으로 말백 와인은 수출품으로도 인기다. 와인은 메시 부부가 특별히 주문한 듯 병에 '리오넬 2014'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 그렇다고 와인이 고가의 제품은 아닌 듯하다. 현지 언론은 시중에서 130페소(9000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와인으로 평가했다. 와인오프너도 들어 있다. 은으로 겉옷을 입힌 와인오프너엔 신랑신부(메시와 로쿠소)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평가액은 약 400페소, 우리돈 2만8000원 정도로 내용물 중 가장 고가의 제품이다. 이와 함께 선물세트엔 수제 초콜릿(약 8300원), 견과류로 만든 캔디(약 1400원) 그리고 둘세데레체(아르헨티나의 전통 크림, 약 5500원)가 들어 있었다. 선물세트의 내용물 평가액을 다 합치면 아르헨티나 돈으로 750페소(약 5만2000원)가 된다. 김영란법(?) 같은 제한이 없는 아르헨티나에서, 슈퍼스타의 선물치고는 검소한 편이다. 메시 부부는 결혼식 때 축의금을 전혀 받지 않았다. 대신 메시 부부는 “어려운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재단에 도움을 달라”면서 ‘리오넬 메시 재단’에 기부를 당부했다. 현지 언론은 “메시 부부의 결혼식은 비교적 검소하게 치러졌다”면서 “하객들에게 나눠준 선물도 일반인이 받았을 때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고 보도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公슐랭 가이드] 집나간 입맛도 귀가 시키는 고향 내음

    [公슐랭 가이드] 집나간 입맛도 귀가 시키는 고향 내음

    ‘이열치열’. 더운 날씨에는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이 고역이다. 1순위는 냉면·콩국수 등 시원한 음식이지만 때를 못 맞추면 기다려야 하는 불편과 기대하기 힘든 서비스 등으로 선뜻 추천하기가 꺼려진다. 삼계탕과 영양탕은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린다.#어릴 적 자주 먹던 익숙한 ‘고향의 맛’ 사계절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식당이 정부대전청사 근처에 있다. 버섯과 나물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산내음’이다. 건강식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어릴 적에 자주 먹었던, 익숙한 음식이라 그런지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한다. 대전청사 남문에서 5분거리, 오피스텔 1층에서 반층 정도를 더 올라가야 하는 식당의 입구가 산에 오르는 기분이 들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듯한 착각을 준다.이곳의 주 메뉴는 국물이 맑은 ’능이버섯찌개’와 얼큰한 맛의 ‘자연산버섯찌개’다. 양이나 가격에 부담이 있는 점심에는 능이버섯 뚝배기(8000원)와 자연산버섯 뚝배기(7000원)가 제격이다. 비수기인 요런 때 가야 대우를 잘 받고, 버섯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산내음에서 찌개와 뚝배기는 반찬 수의 차이일 뿐 들어가는 버섯의 종류는 같다. 능이버섯에는 능이·표고·느타리버섯이, 자연산버섯에는 표고·느타리·싸리·목이·밤버섯이 들어간다. 뚝배기에는 밥이 제공되나 찌개는 별도로 시켜야 한다는 것도 차이. 상 위로 차곡차곡 놓인 반찬을 보노라면 흐뭇해진다. 따뜻하게 막 부쳐낸 전부터 더덕구이, 두부, 버섯과 가지전, 열무김치와 다양한 버섯 반찬에 나물까지 전부 모이면 한 상 푸짐하게 받는 느낌이 든다. 일명 ‘혜자스럽다’(음식의 구성이 푸짐하고 알차다)는 표현이랄까. “모자라면 말해 달라”는 사장님의 친절함이 더해져 더욱 풍족하다. 음식의 맛은 깔끔하다. 까다로운 친구들과 동행했는데 “모두 맛있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식당이 크지 않지만 가게 분위기가 정갈해 소모임을 하기에는 적합하다. 버섯찌개 외에도 더덕구이·감자전·버섯만두 등 서브메뉴도 다양하다. 쓰지 않고 향긋한 더덕에 새콤달콤한 고추장을 버무려 구운 더덕구이(1만 5000원)는 별미다.#버섯찌개 외에도 다양한 반찬 ‘풍성’ 안주류로 분류돼 있지만 식사 메뉴로는 훌륭한 숨겨진 밥도둑이다. 퇴근 후에는 동동주나 막걸리를 벗 삼아 간단히 술잔을 기울이기에 좋은 안주다. 건강과 미각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산내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영업한다. 제대로 버섯 요리를 맛보려면 예약이 필수다. 청사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을 뿐 아니라 식사 후 청사 주변이나 자연마당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도 선사한다.김현미 명예기자(관세청 대변인실 웹디자이너)
  • [나태주의 풀꽃 편지] 풀꽃문학관의 손님

    [나태주의 풀꽃 편지] 풀꽃문학관의 손님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이다. 특별한 공휴일이므로 문학관을 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문화원에 가서 일을 하면서 문학관에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로 했다. 원장실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11시 조금 넘어 핸드폰이 울렸다. 뜻밖에도 장선숙 교도관이었다. 장선숙 교도관은 서울 성동구치소에 근무하는데 내가 ‘장선숙 교감’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지난해 1월이었던가. 그의 직장으로 문학 강연을 갔던 일이 있었다. 문학 강연 중 가장 힘든 강연은 교도소나 구치소같이 특별한 장소에 있는 청중을 상대하는 강연이다. 말하기도 힘들고 드나드는 절차도 까다로워 마치 내가 수감자가 됐다가 나온 양 힘들다. 하지만 그날의 강연은 비교적 성공적이었고 그 뒤로 장선숙씨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됐다. 솔선수범과 봉사정신이 특출해 지지난해에 교정대상을 받아 교감으로 특진했다고 한다. 우뚝하고 잘생겼다는 느낌이 강한 여성이다. 그 장선숙씨가 문학관에 왔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한번 와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왔다는 것이다. 서둘러 문학관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올라서니 저만큼 문학관 잔디밭에 누군가가 보인다. 장선숙씨겠지. 그런데 구부정하게 엎드려 무언가 하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을 하는 걸까? 서둘러 문학관에 도착하니 장선숙씨는 맞는데 그의 한 손에 들려 있는 것이 궁금했다. 문학관의 꽃이나 풀은 그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나의 운영 방책이다. 더러는 남겨 두는 풀도 있고 일부러 뽑아 주는 꽃도 있기 때문이다. 장 선생, 손에 들고 있는 게 뭡니까? 아, 이거요. 잡초예요. 선생님 뽑기 힘드실까 봐 대신 뽑았어요. 과연 그의 손에는 풀이 가득 들려 있었다. 장 선생, 그 풀들 좀 보여 줘요. 장선숙씨 손에서 나온 풀 가운데는 봄맞이꽃이란 이름의 풀도 있었다. 그 풀은 이른 봄에 새하얀 꽃을 피워 내년 봄에 다시 꽃을 보기 위해 일부러 뽑지 않고 기르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풀을 장선숙씨가 뽑아 버린 것이다. 아이, 그걸 뽑으면 어떻게 해요. 내년에 보려고 기르던 건데. 그럼 어떻게 하지요? 괜찮아요. 다시 심으면 되니까. 우리는 매화나무 아래로 가 방금 뽑은 풀을 다시 심었다. 봄맞이꽃을 심고 돌아서니 그 자리에 손님이 사 가지고 온 화분이 있었다. 화분의 꽃은 수국. 분홍빛 예쁜 수국이었다. 내가 수국을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는 다시 풀밭으로 가 수국을 심었다. 수국을 심고 방으로 들어와 장선숙씨의 성장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길고 길었다. 고향이 전남 비금도라는 섬이라는 것. 집안이 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직장에 들어왔다는 것. 고등학교 시절 대학을 갓 졸업한 여자 선생님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 지금도 그 여선생님이 인생의 멘토라는 것. 누구의 인생이나 마찬가지이듯 장선숙씨의 인생도 한 편의 드라마였다. 씩씩하게 살자고, 아직도 세상은 희망이 있고 이루어야 할 꿈이 남았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공주의 한 음식점에 들어가 7000원짜리 김치찌개로 점심을 나눴다. 사흘쯤 지났을까. 집으로 소금 두 포대가 배달돼 왔다. 발신지는 비금도. 비금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발신자인 장미희씨는 도통 모르겠는 이름이다. 누굴까?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바로 장선숙씨의 언니 되는 분이었다. 동생한테 대접을 잘 해 줘서 고마워서 부쳤노란다. 7000원짜리 김치찌개 한 그릇이 무슨 대단한 대접이란 말인가. 혹시 비금도에 올 기회가 있으면 꼭 연락을 달란다. 동생 대신 자기가 대접을 하겠단다. 이건 참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다. 비금도. 한 번도 가 본 일이 없는 남해의 섬. 그곳에 이렇게 고운 마음씨를 지닌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비금도란 섬이 갑자기 가까워진 느낌이고 정다워진 느낌이다. 그러하다. 이제 비금도는 나에게 그리운 곳이고 그리운 사람이 사는 섬이다.
  • 독일 ‘통일 총리’ 떠나는 길… 유럽은 하나였다

    독일 ‘통일 총리’ 떠나는 길… 유럽은 하나였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87세의 나이로 작고한 독일 ‘통일총리’ 헬무트 콜의 장례식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에서 1일(현지시간) 치러졌다. 첫 유럽연합(EU)장으로 치러진 이날 장례식은 독일과 유럽의 주요 정치인은 물론 그가 총리로 재직했던 당시 함께했던 전 세계 파트너들의 발길이 이어져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명예유럽시민 콜의 역대 첫 ‘유럽연합장’ 아이디어를 낸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안토니오 타야니 유럽의회 의장은 상주 격으로 조문객들을 맞았다. 독일과 특수관계인 이스라엘에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부인과 함께 자리했고 EU를 떠나는 영국은 테리사 메이 총리와 존 메이저 전 총리가 나란히 추도행렬에 동참했다. 독일과 더불어 유럽의 구심 역할을 하는 프랑스 역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조문 명단에 같이 이름을 올렸다. 최근 유럽과 긴장이 높아진 러시아에서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조문 대표로 왔다.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각별한 당부를 받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문 사절로 나서 고인의 넋을 기렸다. 콜 전 총리가 안치된 관은 EU 깃발로 덮인 채 의사당 전면에 자리했고, 그 앞에는 독일, EU, 그리고 콜의 둘째 부인 마이케 이름의 조화가 놓였다. 유럽의회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관은 고인이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루트비히스하펜으로 옮겨진 뒤 배에 올려져 라인 강을 따라 슈파이어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후 고인의 ‘고향성당’으로도 불린 슈파이어대성당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 미사가 열린 데 이어 사적인 추모 모임이 끝나고서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의 이름을 딴 공원 묘지에 안장됐다. 구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는 “콜 총리가 없었다면 나를 포함해 1990년 전까지 베를린 장벽의 뒤편에서 살았던 수백만명의 삶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라며 고인의 통일 업적을 기렸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초대받지 못한 마라도나의 뒤끝?…“메시 결혼식 초대장 분실”

    초대받지 못한 마라도나의 뒤끝?…“메시 결혼식 초대장 분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57)가 그의 제자인 리오넬 메시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마라도나는 지난 1일 러시아 소비에츠키 스포르트와의 인터뷰에서 “내 초대권이 어딘가에서 분실된 것 같지만 메시를 향한 내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라면서 “메시의 결혼을 축하한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메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2일 전했다. 앞서 메시는 전날 고향인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한 카지노 호텔에서 안토넬라 로쿠소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결혼식엔 초대받은 250여명의 하객들이 참석해 메시 부부의 결혼을 축하했다. 그러나 평소 메시를 입이 닳도록 칭찬하던 마라도나의 모습은 결혼식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마라도나는 “내 초대권이 어딘가에서 분실된 것 같지만 메시를 향한 내 마음은 변치 않을 것”라는 말로 우회적으로 메시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마라도나는 그동안 메시에 관한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논란이 될 법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 1월엔 “평생 메시 같은 선수를 보지 못했다”라고 칭찬하면서도 “메시가 월드컵 우승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부담을 주지 말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메시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사실상 마지막 우승에 도전한다. 언론에서는 위의 마라도나의 발언이 월드컵을 앞둔 메시에게 우승에 관한 부담을 더 안기는 꼴이 됐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메시, 드디어 품절남…어마어마한 거물급 하객들 보니

    메시, 드디어 품절남…어마어마한 거물급 하객들 보니

    리오넬 메시(30·바르셀로나)와 안토넬라 로쿠소(29)가 드디어 결혼식을 치렀다.메시는 1일(한국시간) 고향인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한 카지노 호텔에서 5살 때부터 알고 지내다가 2008년부터 연인으로 발전한 로쿠소와 결혼식을 거행했다. 결혼식이 치러진 로사리오는 메시와 로쿠소의 고향이다. 메시는 2012년 첫아들 티아고를, 2015년에는 둘째 아들 마테오까지 얻으며 사실상 ‘부부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이번에 공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세기의 결혼식에는 250여 명의 ‘초특급 스타’ 하객들이 참석했다. 결혼식장 입구에는 영화제를 방불케 하듯 레드카펫이 깔렸고, 150여 명의 취재진이 연방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날 결혼식장에는 바르셀로나에서 ‘MSN 트리오’로 불리는 루이스 수아레스와 네이마르를 비롯해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뛰었던 세스크 파브레가스(첼시), 아르헨티나 대표팀 동료인 세르히오 아궤로(맨체스터 시티)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메시의 결혼식을 지켰다. 더불어 헤라르드 피케(바르셀로나)의 부인이자 팝스타인 샤키라도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 애초에 샤키라는 로쿠소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불참’ 소문이 돌았으나, 피케와 함께 참석해 ‘불화설’을 일축했다. 로쿠소는 여배우 에바 롱고리아와 스페인 왕비인 레티시아 등의 드레스를 제작한 스페인 디자이너 로사 클라라가 만든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었고, 메시는 짙은 회색 정장을 차려입고 레드카펫에 등장해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하며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광장] ‘교육난민’ 양산하는 한국 교육/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교육난민’ 양산하는 한국 교육/최광숙 논설위원

    요즘 강릉에 사는 50대 중반 최씨는 고민이 많다. 초교 6학년인 늦둥이 아들이 강릉에서 중·고교로 진학할 경우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부인과 함께 아들을 서울로 보내고 자신은 직장이 있는 고향에서 ‘기러기 아빠’가 될 각오를 하고 있다. 사실 최씨 가족처럼 자식 교육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예전에도 인근 도시에서 많은 학생들이 교육환경이 좋은 강릉으로 유학을 왔다. 최씨가 고교에 다닐 때만 해도 강릉은 비평준화 지역이었다. 그가 다닌 강릉고의 경우 한 해 서울대에 40여명이 합격했다. 고려대·연세대를 합하면 100여명에 이르렀다. 졸업생 600여명 가운데 3분의1이 ‘인서울’ 대학에 갔다. 학원 하나 없는 도시에서 오로지 공교육으로 일군 성적이다. 하지만 강릉고가 ‘뺑뺑이’로 불리는 평준화 이후 서울대 진학은 3~4명으로 줄었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고향을 떠나지 못하던 이들이 하나둘 보따리를 싸서 해외로, 서울로 향하고 있다. 강릉뿐만 아니라 이른바 지역 명문고가 있던 다른 지역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교육 당국은 고교 서열화를 없앤다며 평준화를 도입했지만 결과는 점점 벌어지는 서울과 지방 간 학력 격차다. 2012년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과 지방 고교의 서울대 진학률 격차가 11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났다. 해마다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명문고로 자리잡은 자사고·외고의 서울?경기(절반 이상) 집중이 꼽힌다. 2014년 기준으로 수능 응시자의 10%에 불과한 자사고·특목고 학생들이 서울대 신입생의 48%를 차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식 교육을 위해 고향을 떠나는 ‘교육난민’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나마 서울·경기 외에 15개 시?도의 자사고·외고가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에게 숨통을 틔워 주고 있다. 그런데 새 정부 들어 지역의 자랑인 자사고·외고마저 없어질 판이다. 이 학교들이 일반고를 황폐화한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비평준화에서 평준화 정책으로 돌아설 때와 같은 논리다. 하지만 서울과 지방 간 학력 격차, 교육난민 양산, 그로 인한 가족·지역 공동체의 결속력 약화 등 고교 평준화 정책이 초래한 ‘불편한 진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각 지역별로 몇 개씩 남아 있는 자사고·외고를 없애는 것은 지방분권이나 지방균형발전의 차원에서도 문제다.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교육 집중이 더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낙후된 지방을 발전시키기 위해 혁신도시니 기업도시니 하며 공공기관, 기업을 한두 개 지방으로 보낸다고 그 지역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공기업이나 공장이 없어도 제대로 된 학교만 있어도 지방은 발전할 수 있다. 외국에도 유명한 학교 덕분에 명맥을 이어 가는 교육도시들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제를 만들겠다”고 했다.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과 나누겠다면서 한편으로 자사고·외고를 폐지하는 것은 지방의 엘리트 교육을 죽여 지역 인재를 유출시키는 엇박자 정책이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아칸소주 주지사 시절 다른 주에 비해 열악했던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교육환경 개선 카드를 꺼냈다. 거센 반발에도 현직 교사들에게 자격 시험을 보게 해 실력 없는 교사들을 수천명 퇴출시켰다. 그 결과 하위에 머물던 학생들의 성적이 확 올랐다. 영재 학생들을 위한 특별학교까지 설립했다. 이런 과감한 교육개혁이 클린턴을 촌뜨기 시골 주지사에서 일약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정치인으로 성장시키는 큰 원동력이 됐다. 교육개혁을 하려면 잘하는 학교를 죽일게 아니라 클린턴처럼 우수 학생과 학교를 키우고, 공교육을 살리는 쪽으로 진검승부를 걸어야 한다. 과거 지방 학생들은 대학 입시에서 농어촌 전형 등의 배려가 없어도 명문대에 자력으로 대거 입학했다. 하지만 정부의 하향 평준화 정책으로 똑똑한 지방 학생들이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공정한 교육이고, 진정 지역균형발전으로 가는 길인가? bori@seoul.co.kr
  • 펜스 미국 부통령, 한국과 특별한 인연…‘6·25 참전용사 아들’

    펜스 미국 부통령, 한국과 특별한 인연…‘6·25 참전용사 아들’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전 참전기념비 참배에서 공동 헌화한 펜스 미국 부통령은 6·25참전용사의 아들로 한국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한국전쟁에 소위로 참전했던 그의 아버지 에드워드 펜스는 경기도 연천 북쪽의 고지인 ‘폭찹힐’ 전투에서 사투를 벌인 공로로 1953년 4월 브론즈 스타 메달(동성훈장)을 받았다. 펜스 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에는 이 훈장이 진열돼 있다. 지난 4월 펜스 부통령은 선친이 훈장을 받은 지 64년 만에 트럼프 행정부의 2인자 자격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당시 CNN은 그가 한국으로 가는 전용기 ‘에어포스 2’ 안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고 보도했다. 펜스 부통령은 기내에서 “아버지가 오래전 왔던 곳에 셋째아들이 다시 찾아오는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또 그의 헌신으로 자유롭고 번창한 한국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방한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아버지의 한국전 참전 인연 때문으로 알려졌다. 비무장지대에 가는 길에는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전장을 찾았다. 그는 트위터 계정에 아버지가 훈장을 받는 사진과 함께 “64년 전 한국전쟁 때 아버지가 동성훈장을 받은 DMZ(비무장지대)를 방문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게시했다. 펜스 부통령은 당시 언론발표에서도 “우리는 공동의 희생으로 맺어졌으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한국은 양국 군인들의 희생 덕분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아버지도 포함돼 있다”고 한국과의 인연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그는 “아버지는 집으로 왔지만 아버지의 친구들, 미국군과 한국군은 영원히 목숨을 잃었다. 이런 분들의 희생으로 우리 양국의 자유는 영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펜스 부통령은 인디애나 주 토박이 변호사 출신으로 고향에서 연방 하원의원을 6번 지냈고, 2013년부터 올해 1월까지 주지사를 지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막말과 각종 비하 논란에 휘말린 트럼프 대통령의 든든한 동반자로 주류 공화당 인사와 지지층 이탈을 막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 트럼프 정부 출범의 최대 공신으로 꼽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제동’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제동’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가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30일 뉴스1에 따르면 우표발행심의위원회는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에 대해 재심 결정을 내렸다. 재심 결정은 참석위원 14명 가운데 11명이 찬성, 반대 1명, 기권 2명으로 이뤄졌다. 이에 따라 우표발행심의위원회는 오는 7월 12일 재심의 회의를 열고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 여부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우정사업본부는 재심의 근거가 없다며 당초 결정대로 발행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적폐청산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높아지고 우상화 논란 등이 이어지면서 기존 입장에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시청이 ‘박정희 대통령 생가 보존회’ 요청으로 기념우표 발행 신청서를 4월 8일 우본에 신청했고 우본은 지난해 5월 23일 ‘2016년 제1차 우표발행심의위원회’를 열어 박정희 우표 발행을 결정한 바 있다. 한편 이 문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었다. 당시 신경민, 최명길 의원 등이 우본에서 제출한 우표발행심의위원회 회의록 및 속기록을 토대로 우표 발행의 ‘타당성’에 대한 언급없이 졸속처리됐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 우표발행심의원회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리는 인천에서 내려오는 학도의용대입니다”

    “우리는 인천에서 내려오는 학도의용대입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4)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임시로 탈영병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아들 이규원(인천 소재 치과 원장) 씨의 도움으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 1명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는 부산까지 걸어가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000명과 참전 스승(심선택 소위, 신봉순 대위)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권유상 인터뷰 ●일시 1998년 1월 19일 ●장소 인천 부평외국어고등학교 교장실 ●대담 권유상 이경종(6·25 편찬위원) 이규원(6·25 편찬위원장·이경종 아들)[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회] ■권유상 인천학도의용대 제3대대장 서울대 사범대학 2학년생1928년 12월 21일: 인천 화수동 출생 1942년: 인천송림국민학교 5회 졸업 1948년: 인천공업중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입학 1950년 9월 20일: 인천학도의용대 제3대대장 취임 1950년 12월 18일: 경남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를 향해 남하 1951년 1월 10일: 국민방위군 사건을 듣고 최종목적지를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에서 부산의 육군 제2 훈련소로 변경 1951년 1월 15일: 23살의 서울대학교 2학년 학생이어서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고 중학생들과 같이 사병으로 자원입대 1956년 2월 25일: 5년 1개월을 복무하고 만기 제대 #나와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1928년 12월 21일 인천 화수동 147번지에서 태어난 나(권유상)는 인천송림국민학교와 인천공업중학교(현 인천기계공고)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때 6·25 사변이 일어났다. 9·15 인천상륙작전 후 인천지역은 북한 인민군치하에서 학정에 시달리던 우익학생들이 모여서 인천학도의용대를 만들어 활동 중이었고 그 본부는 용동에 있었다. 1950년 9월 20일쯤 인천학도의용대에서 나를 3대대장으로 임명하여 나는 인천주안국민학교를 대대본부로 정하였다. 우리 3대대 구역은 남구, 남동구, 연수구였고 대원은 약 1000명이었다. 우리 3대대의 대대부관은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 조태휘였고 1중대장은 인천상업중학교 6학년 권용훈, 2중대장은 인천중학교 6학년 이용구, 3중대장은 고려대학교 2학년 최수보였다. #국민방위군 소위를 따라 통영을 향해서 남하 1950년 11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UN군이 밀린다는 소문이 들렸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의 전 대원 3000여명이 인천축현국민학교에 모두 모여서 인천 병사구 사령부(현재 병무청)에서 파견 나온 국민방위군 소위의 인도에 따라 경상남도 통영의 충렬국민학교(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를 목표로 남하 행진을 시작했다. 그 날은 함박눈이 왔고 국도를 따라서 수원, 대전, 대구, 청도, 밀양, 삼랑진을 거쳐 통영의 충렬국민학교를 향하여 매일 25㎞(동인천역에서 영등포역 거리 정도)씩 20일간 500㎞ 거리를 인천지역의 6년제 중학교 학생들 약 3000명이 대학생 형들을 따라 도보로 남하했다. #“우리는 인천학도의용대입니다” 우리 인천학도의용대는 걸어서 내려가다가 밤이 되면 농업조합(당시 농민을 위한 기관)을 찾아가 “우리는 인천에서 남하하는 학도의용대입니다”라고 신분을 밝히면 밥을 해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줬다. 우리는 인천을 떠난 지 20일 만에 최종 목적지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에 가까운 마산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나는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고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로 가는 걸 주저한 채 마산에 있으면서 인천학도의용대(대장 이계송) 본부에 보고했다. #국민방위군과 국민방위군 사건 전시에 신속한 병력 동원을 위해 1950년 12월 제정한 국민방위군법에 의한 군대였으나 1951년 1·4 후퇴 때 국민방위군 약 9만명이 굶거나 얼어서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관련 장성 5명이 총살당했고 국민방위군은 1951년 5월에 해체되었다. #“고향 인천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라” 1951년 1월 초 우리 3대대 부관 조태휘가 나에게 마산의 해병대 6기 모집에 관하여 보고했다. 대부분의 우리 3대대 대원들이 해병대에 지원했고 해병 신체검사가 끝난 후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6기 해병대원은 대부분 인천 지역 6년제 중학교 4~6학년 학생들이었다. 나는 우리 3대대의 합격자들에게 “해병대에 가더라도 인천학도의용대의 긍지를 잊지 마라. 그리고 다시 고향 인천에서 만날 때까지 모두 건강하라”는 당부의 말을 하였다. #해병6기는 거의 인천출신 중학교 4~6학년 학생 그때 해병 6기 모집에 합격한 대원은 6년제 중학교 4~6학년 학생들이었고 탈락한 대원들은 2·3학년 학생들이었다. 그때 나도 해병대로 자원입대할까도 생각했지만 나이가 어리거나 작아서 탈락한 대원들 때문에 도저히 해병대에 입대할 수 없었다. 탈락한 어린 대원들이 우리를 버리지 말라는 아우성에 나는 “너희들과 같이 행동 할 테니 우리 다 같이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기자”며 어린 중학생들을 달랬다.#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갑자기 군인으로 통영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로 향하던 인천학도의용대는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인하여 부산 육군 제2 훈련소로 입소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고 우리들은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약 8시간 걸려 부산항에 도착하여 육군 제2 훈련소에 1951년 1월 10일 날 입소했다. 부산진국민학교에 있었던 육군 제2 훈련소에 입소한 날부터 인천학도의용대란 존재는 사라졌고 갑자기 중학생에서 군인이 되었다. 그 후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로 가라 해서 많은 인천지역 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나를 포함하여 통신병 교육을 받고 통신병이 되었다. #인천 여학생들의 은인, 신봉순 대위님 인천에서부터 부산까지 같이 내려왔던 많은 여학생 대원들은 오갈 데가 없어서 매우 어려웠었다. 그때 부산육군통신학교의 신봉순 대위님은 여학생들을 통신학교 행정보조 업무를 하게 하며 보살폈고 4개월 뒤 여학생들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다.#중학교 2·3학년 학생들이 통신병으로 신봉순 대위님은 8·15 해방 후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시다가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고 장교로 임관하여 부산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장으로 있었는데 많은 인천학생들을 통신학교로 입교시켰다. 신 대위님은 지휘관 옆에 있는 통신병이 좀 더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어린 중학생들을 통신병으로 이끌어 주셨다. #“우리 대대장님 누룽지 드세요” 어느 날, 여학생 몇 명이 누룽지를 가져와서 ‘대대장님 드세요’라고 했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렇듯 서로를 감싸주고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아직까지도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 #육군 중위 장교임관을 거절하고 사병으로 입대 1951년 1월 10일 나는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거절하고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고 1956년 2월 만기 제대하였다. 국가위난의 6·25때 나라를 지키겠다고 뭉친 인천의 6년제 중학교 학생들은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자원 입대 후 참전하여 청춘을 채 펴 보지도 못하고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전선에서 보냈다. #“내가 이끌었던 3대대 대원들도 많이 전사”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고 인천학도의용대 3대대장으로서 어린 중학생들을 인천에서 부산까지 내 나름대로 판단하여 한 점 부끄럼 없이 이끌었지만 너무나 큰 국가 위기로 인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힘의 한계는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3대대 1000명 중에서 100명 정도 전사했다는데 시국이 너무 급박하여 형으로서, 대대장으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직까지도 한(恨)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 아무쪼록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 역사 발굴 작업이 성공하기를 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 호에 2회 계속 참전기 1회를 마치며… ●이경종 위원이 전하는 말 권유상 옹은 육군 중위 장교임관 제의를 거절하고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23살에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5년 후 28살에 만기 제대한 인천지역 어린 중학생들의 훌륭한 형이었다. ●이규원 위원장이 전하는 말 살아 계시다면 올해 90살이 되신 권유상 인천학도의용대 3대대장님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 1·4 후퇴 때 인천에 남아있었으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되거나, 국민방위군으로 끌려가서 굶거나 얼어 죽을 운명의 인천학생들을 안전하게 부산까지 이끌어서 훌륭한 일을 해냈다. 하지만 208명이 전사하여 제대 후 고향 인천에서 전사 학생 부모님들로부터 “우리 아들 전쟁터 데려가서 죽었다”라는 비탄의 말을 들었고, 일평생 동안 동생 같았던 전사 학생들을 가슴에 담고 살았던 참전 대학생 형들이 인천에 있었다.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저의 아버지(이경종)를 안전하게 부산까지 이끌어주신 권유상 3대대장님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53세 니겔 벤-52세 스티브 콜린스 21년 만에 재대결 갖는 사연

    53세 니겔 벤-52세 스티브 콜린스 21년 만에 재대결 갖는 사연

    니겔 벤(53)과 스티브 콜린스(52)는 프로복싱 슈퍼미들급에서 이름을 날린 복서들이다. 1990년대 이후 한 번도 링에 오르지 않았던 두 사람이 지천명을 넘겨 세 번째 맞대결을 갖기로 합의했다고 29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더블린 태생의 콜린스는 런던이 고향인 벤을 두 차례나 물리친 적이 있다. 콜린스는 1996년 11월 두 번째 대결을 승리한 뒤 이듬해 7월 은퇴했고, 벤은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콜린스에게 패한 뒤 곧바로 링을 떠났다. 하지만 세 번째 맞대결에 대해선 오는 10월과 11월에 열린다는 것에만 합의했을 뿐 장소나 파이트머니, 중계 여부 등 구체적인 사항은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방송은 전했다. ‘어둠의 파괴자’란 별칭으로 불리던 벤은 WBO 미들급과 WBC 슈퍼미들급 챔피언 타이틀을 보유했으며 아들 코너도 지난해 4월 프로 복서로 데뷔한 뒤 여러 차례 링에 돌아오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참가한 뒤 프로로 전향한 조 코디나에 따르면 벤은 여전히 힘이 넘쳐난다. 젊은 복서들을 조련하고 DJ 경력도 갖고 있어 2002년 ITV의 ‘아임 어 셀레브리티’란 시리즈 첫 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 주인공이며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는 캐릭터 ‘벤저민 버튼’이 자신과 닮은 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벤은 “카나비스(대마의 일종)를 피우고 개인적으로 험난한 시기를 겪은 프로 생활의 정점보다 지금이 훨씬 더 몸이 좋다”며 “30대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1995년 크리스 유뱅크의 무패 기록을 끝장내며 WBO 슈퍼미들급 타이틀을 차지했던 콜린스는 1999년 은퇴를 접고 링에 복귀하려 했다가 스파링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취소한 일이 있다. 아들 스티브 주니어가 2013년 데뷔한 프로 복서인 점도 벤과 비슷하다. 이번에 벤과 재대결을 추진하는 동기를 묻자 그는 “단지 돈 때문이지요. 나로 하여금 좀더 많은 땅을 사게 해줄 거니까요”라고 답했다. ‘켈트 전사’란 별명을 갖고 있는 콜린스는 은퇴 후 배우로도 일해 1998년 영화 두 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벤과 싸우는 데 아무런 의학적 문제가 없으며 “제가 스무살 짜리와 싸우는 건 아니다. 같은 나이의 누군가와 싸우는 것이다. 누구에게든가 꿀릴 것이 없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있고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해도 ‘엑설런트’ 소견을 받는다. 아주 건강하고 몸도 아주 그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콜린스가 오랜 라이벌이었던 크리스 유뱅크와의 재대결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자 서로 맞대결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 확인했는데 의기투합했다. 만약 영국 복싱통제위원회가 대결을 가로막으면 두 복서는 해외에서 복싱 라이선스를 발급받아서라도 재대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벤은 “거의 마지막 장이다. 거의 막장”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文대통령, 장진호 전투기념비에 산사나무를 심은 까닭은 [포토]

    文대통령, 장진호 전투기념비에 산사나무를 심은 까닭은 [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첫 방미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를 잡은 것은 장진호 전투가 그의 가족 및 개인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까닭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본래 고향은 함경남도 흥남이다. 문 대통령의 선친 문용형씨는 흥남시청 농업과장까지 지냈다. 광복 후 북한이 공산화되고 남북이 분단됐다. 6·25 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오자 문 대통령의 선친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조국이 통일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고 한다.그러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북한 지역이 다시 공산화될 위기에 처하자 문 대통령의 부모는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바로 흥남철수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흥남철수 당시 미군이 제공한 선박을 통해 약 9만 1000명의 피란민이 흥남에서 남쪽으로 철수했다. 특히 화물선인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단 한 명의 피란민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갑판과 화물칸에 있던 무기와 화물을 바다에 버리고 정원 60명인 배에 무려 300배에 가까운 1만 4000명의 피란민을 태운 뒤 흥남부두를 출발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탄 1만 4000여명의 피란민 중에는 문 대통령의 부모도 타고 있었다. 1951년 12월23일 흥남에서 출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25일 거제항에 도착했고, 문 대통령은 2년 뒤 거제에서 태어났다. 훗날 ‘전쟁사에서 유례없는 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으로 불린 흥남철수 작전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장진호 전투’였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해병1사단이 북측의 임시 수도인 강계 점령 작전을 수행하던 중 중국군 9병단(7개 사단 병력·12만명 규모)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처했다가 2주 만에 극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철수한 전투를 일컫는다. 이 전투로 미 해병1사단은 3명 중에 1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해 5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미군 역사상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됐다. 그러나 미 해병1사단이 2주간 12만명에 달하는 중국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들이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10만명에 달하는 피난민은 북한을 떠날 수 없었다. 물론,문 대통령의 일생도 지금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심혈을 기울여 참전용사들 앞에서 읽을 연설문을 직접 수정했다고 전한다. 연설문에서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 것은 과장없는 사실을 통해 문 대통령의 진심을 표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을 만난 자리에선 직접적인 방식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등병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미 해병대 중장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옴스테드 중장은 장진호 전투 기념비 건립 추진단체의 고문이기도 하다. 옴스테드 중장은 “3일 동안 눈보라가 몰아쳐 길을 찾지 못했는데 새벽 1시쯤 눈이 기치고 별이 보이기 시작해 그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다”며 당시 처절했던 전투 상황을 설명하고 문 대통령에게 기념배지를 선물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일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루니 제독은 “한미동맹은 피로 맺어진 관계”라고 강조하면서 흥남철수 당시 직접 촬영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사진을 선물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갑판에서 찍은 사진인데 갑판 밑 화물칸에도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고 한다”며 부모님께 들은 말을 전했다. 배지와 사진 등을 선물 받은 문 대통령은 “제게는 정말 소중한 선물”이라며 “장진호 전투 생존자들이 이제 50분도 남지 않았다는데 부디 오래 사셔서 통일된 한국을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전용사에게 감사를 표한 후 문 대통령은 ‘숭고한 희생으로 맺어진 동맹.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띠가 매어진 화환을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 헌화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 사령관 등과 함께 장진호 전투 기념비 오른쪽에 산사나무 한 그루를 기념식수했다. 산사나무의 별명은 ‘겨울왕’(Winter King)으로 혹한을 이겨낸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의 용기를 상징한다. 이날 행사는 40분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문 대통령이 참전용사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느라 70분간 진행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정민, 이준익 감독 ‘변산’ 낙점..여주인공은 김고은 ‘유력’

    박정민, 이준익 감독 ‘변산’ 낙점..여주인공은 김고은 ‘유력’

    이준익 감독의 ‘변산’에 박정민 김고은이 호흡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28일 영화계에 따르면 김고은은 최근 ‘변산’의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 제안을 받았으며,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변산’은 힙합에 푹 빠져있던 한 래퍼가 아픈 아버지 때문에 고향에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와 ‘사도’, ‘동주’ 등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앞서 배우 박정민이 남자 주인공 역을 확정했다. 김고은은 극중 박정민의 첫사랑 역을 맡게 된다. 박정민은 영화 ‘동주’에 이어 이준익 감독과 두번째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이준익 감독은 박정민에 대해 “저예산 영화계의 송강호”라고 극찬한 바 있다. 한편 ‘변산’은 하반기 크랭크인 예정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메시의 결혼식’ 앞둔 아르헨, 초특급 경찰작전 개시

    ‘메시의 결혼식’ 앞둔 아르헨, 초특급 경찰작전 개시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30)가 30일(이하 현지시간) 결혼식을 올리는 아르헨티나 지방도시 로사리오에서 초특급 경찰작전이 예고됐다. 아르헨티나 산타페주(州)의 치안부 관계자는 "메시의 결혼식은 올 들어 산타페주에서 열리는 행사 중 가장 중요한 행사"라면서 "경찰이 29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안전을 위한 작전을 시작한다"고 확인했다. 메시의 고향인 로사리오는 아르헨티나 산타페주에 있는 지방도시로 인구수만 보면 아르헨티나에서 세 번째로 큰 곳이다. 대도시인 만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산타페 당국의 판단이다. 이를 위해 경찰력 300명이 투입된다. 일반경찰과 오토바이부대, 특별작전부대 등이 동원되고 군에 준하는 조직인 아르헨티나 국경수비대도 경비작전에 나설 예정이다. 현지 언론은 "산타페 주정부와 아르헨티나 중앙정부가 함께 경찰작전을 디자인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삼엄한 경비가 전개되는 곳은 메인 행사장인 시티센터호텔 주변이다. 경찰은 29일부터 호텔 주변 경비를 개시한다. 결혼식 참석을 위해 로사리오를 방문하는 하객들에겐 특별 편의가 제공된다. 외국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로사리오로 연결되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하객들은 공항 VIP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 경찰은 "하객들이 다른 승객들과 불필요한 접촉을 갖지 않도록 별도의 통로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객들이 결혼식에 참석한 뒤 로사리오 투어를 할 때도 경찰이 따라붙는다. 한편 메시가 결혼식을 앞두고 가장 걱정하는 건 사진 유출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비공개로 열리는 파티의 사진이 유출될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현지 언론은 "호텔 직원들이 파티의 사진을 찍지 않고 유출하지도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메시는 다만 하객들에게 핸드폰을 소지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관계자는 "메시가 정중히 협조를 구하기로 했을 뿐 핸드폰을 갖고 파티장에 입장하는 걸 막진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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