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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맥그리거에 의학적 출전 정지 한달, 대회 뒤 으레 있는 일

    맥그리거에 의학적 출전 정지 한달, 대회 뒤 으레 있는 일

    하빕 누르마고메도프(러시아)에게 황망한 패배를 당한 코너 맥그리거(이상 30·아일랜드)가 의학적인 이유로 한달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네바다주 체육위원회(NASC)는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T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 누르마고메도프와의 UFC 229 메인 이벤트인 라이트급 타이틀 매치 4라운드 상대의 리어 네이키드 초크 기술에 걸려 서브미션 패배를 당한 맥그리거에게 오는 28일까지 어떤 계약도 맺지 못하게 하고 다음달 6일까지 어떤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게 막았다. 의학적인 출전 정지 처분은 UFC에서는 의례적인 일이다. 이번 대회에 출전했던 선수 가운데 맥그리거 외에 12명이나 같은 조치를 받았다.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누르마고메도프는 케이지를 뛰어 넘어 맥그리거 팀원 한 명과 드잡이를 벌였다. 맥그리거 자신은 누르마고메도프 팀원 3명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이에 맞대응했다는 이유로 둘 다 징계에 회부될 것이라고 미국 ESPN이 보도했다. 옥타곤 안에 들어온 누르마고메도프 팀원에게 주먹을 휘둘러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NSCA는 보고 있다. 누르마고메도프의 사촌이며 전직 UFC 파이터인 주바이라 투쿠고프는 맥그리거를 뒤에서 붙잡아 자신의 팀원들이 그를 가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들 셋은 체포됐다가 나중에 풀려났는데 맥그리거가 처벌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맥그리거는 대전료 300만 달러를 찾아간 반면, 누르마고메도프의 대전료 200만 달러는NSAC 조사가 끝날 때까지 압류됐다. 8일 고향인 러시아 다게스탄 공화국 중심지인 마카흐칼라에 도착해 대대적인 환영을 받은 누르마고메도프는 앞서 경기 뒤 기자회견을 통해 맥그리거가 경기 전 “내 종교와 나라, 아버지에 대해 떠벌여” 응징했을 뿐이라며 사과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국민 썸남’ 5급 사무관… ‘9급 올킬’ 프로게이머

    ‘국민 썸남’ 5급 사무관… ‘9급 올킬’ 프로게이머

    누구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길 원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고 있다.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자리에 있다가 ‘무색무취’한 공직사회를 모두 경험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들이 있다. 재경직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얻고도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규빈(25·지난해 5급 공채 합격)씨와 프로게이머라는 화려한 삶을 뒤로한 채 교육 공무원으로 살아 가는 박영민(34·군산남초) 주무관이 대표적이다. 9일 이들로부터 화려했던 전 직장, 힘들었던 수험 생활, 공직에 대한 기대감 등을 들어봤다.●하트시그널 ‘직진 연하남’… 합격 향해 ‘직진’ “어릴 때부터 무척 활동적이었어요. 수험 기간 동안 많이 차분해지기는 했지만 합격한 마당에 (방송 출연을)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단 생각이 들었죠. 다른 직업군은 TV에 많이 나오는데 공무원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나 싶었어요.” 지난 6월 종영한 예능 방송에 출연해 ‘직진 연하남’으로 큰 인기를 끈 이씨에게 방송 출연 계기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지난해 국가직 5급 공채(재경직)에 합격했다. 올해 연수를 받고 내년에 신입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이씨가 5급 공채를 준비한 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교 시절 의사를 꿈꿨던 것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서였단다. 그는 “대학 입학 뒤 사람들의 삶에 와닿는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단 생각을 했고 그게 공무원이란 생각이 들었다”면서 “활달한 제 성격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염려했지만 일단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 뒤부터는 앞만 보고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족사관고 졸업 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진학한 이력이 알려지자 ‘엄친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머리가 좋으니 공채에도 손쉽게 붙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이씨는 “진짜 빨리 합격하는 사람들은 1년 만에 붙기도 하지만 저는 두 번 낙방했고, 세 번째 응시할 때는 ‘이번에 떨어지면 그만두자’고 마음먹기도 했다”면서 “수험생활을 보내면서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려울 게 없던 이전과는 달리 (수험 기간에는) 심리적으로 위축돼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렵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집과 학교,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한 이씨는 1학기 땐 수험 공부에만 매진하고 2학기 땐 학교를 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다른 수험생들처럼 수험 기간 내내 휴학 상태에서 공부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살다간 감정이 격해져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그간 쌓아둔 외로움 등을 2학기 때 사진을 찍으며 해소하는 등 나름의 ‘완급 조절’을 했다”고 덧붙였다. 시험에 임박하면 컨디션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지만 이씨는 달랐다. 첫 시험을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해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험을 치른 경험이 있어서다. 그는 “큰 시험을 앞두고 긴장을 많이 하다 보니 잠을 3~4시간밖에 못 잘 게 뻔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런 패턴을 몸에 익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면서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피곤한 상태에서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려고 일부러 늦게 잤다.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합격 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걸 다 해봐야겠단 생각에 방송 출연에 나섰지만 이씨 역시 공직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입직한 순간부터는 지금처럼 방송 활동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고 시간이 지나면 저 또한 주어진 부처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씨는 “시간이 갈수록 ‘국민과의 소통’이나 ‘정책 홍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지금의 흐름이 지속된다면 공직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며 “그때가 되면 지금의 경험이 국가를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교육 공무원이 된 프로게이머 “프로게이머였던 20대에는 또래 친구들보다 많은 돈을 벌었고 번 만큼 많이 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군에서 전역하고 나니 어느새 서른이 눈앞이었어요. 막다른 골목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00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 박영민 주무관에게 공무원에 된 이유를 묻자 담담하게 자신의 20대를 이렇게 밝혔다. 박 주무관은 대학생이던 2004년 KBC 파워게임쇼 신인왕전으로 데뷔했다. e스포츠 최초의 신인 드래프트였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신인 드래프트’(2005년)를 통해 프로게임단에 입단했다. 2009년에는 공군 프로게임단에서 복무했다. 2011년 전역 뒤 은퇴를 선언해 영원히 사라진 듯했던 박 주무관의 소식이 다시 들려온 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였다. 인터넷상에 ‘박영민 노량진 목격담’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는 “프로게이머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간은 매우 짧았고 은퇴 뒤 코치나 지도자로 남아 있는 사례도 매우 드물었다”면서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프로게이머보다는) 좀더 안정된 직장이 필요하다고 결심해 공무원이 되기로 했다”고 회상했다. 박 주무관은 수험 생활을 시작하면서 휴대전화를 구식 2세대(G)폰으로 바꾸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최대한 줄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만나기보다는 합격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프로게이머 시절 연습을 위해 하루 10~12시간씩 앉아 있던 저력이 수험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합격의 문턱은 높았고 응시 첫해 고배를 마셨다.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할 때는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돌아왔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과목은 영어였다. 박 주무관은 “점수가 잘 안 나와 부담이 컸고 공부할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본능에 맡겨두면 나도 모르게 영어 학습량을 줄일 게 뻔해서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어머니로부터 ‘제발 영어공부 좀 그만하라’는 소리가 나올 때쯤부터 점수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결국 박 주무관은 국가직과 서울시, 지방직 교육행정(9급)을 ‘올킬’(싹쓸이)했다. 이 가운데 지방직을 택한 건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단다. 초창기에는 연수원에서 만난 동료들과 게임을 즐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는 “관중들 사이에서 승부를 겨뤘던 프로게이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삶의 방식에서 차이가 크지만 그래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고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생활에 보람을 느낀다”고 미소를 지었다. 10, 20대가 꿈꾸는 두 직업을 모두 섭렵해 부럽다는 시선을 받는 것이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박 주무관은 “계획된 일들이었다기보다는 그 순간 제가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일에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밝혔다. 미래의 아이가 프로게이머와 공무원 가운데 무엇을 했으면 좋겠냐고 묻자 그는 “머리로는 ‘공무원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프로게이머를 하라’고 외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행시 합격 노하우 공유한 ‘직진 연하남’ 이규빈…교육공무원된 전 프로게이머 박영민

    행시 합격 노하우 공유한 ‘직진 연하남’ 이규빈…교육공무원된 전 프로게이머 박영민

    행시 합격 후 ‘하트시그널’·‘문제적 남자’ 출연“공무원이라고 TV 출연 못하란 법 없다 느껴”공군 ACE 전역 후 ‘노량진’에 급 출몰한 박영민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인생 2막 시작 누구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길 원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고 있다.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자리에 있다가 ‘무색무취’한 공직사회를 모두 경험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들이 있다. 재경직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얻고도 방송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규빈(25·2017 5급 공채 합격)씨와 프로게이머라는 화려한 삶을 뒤로한 채 교육 공무원으로 살아 가는 박영민(34·군산남초) 주무관이 대표적이다. 9일 이들로부터 화려했던 전 직장, 힘들었던 수험 생활, 공직에 대한 기대감 등을 들어봤다.●일편단심 ‘직진 연하남’…3년간 합격 향해 ‘직진’? “어릴 때부터 무척 활동적이었어요. 수험 기간 동안 많이 차분해지기는 했지만 합격한 마당에 (방송 출연을)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단 생각이 들었죠. 다른 직업군은 TV에 많이 나오는데 공무원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나 싶었어요.” 지난 6월 종영한 한 예능 방송에 출연해 ‘직진 연하남’으로 큰 인기를 끈 이씨에게 방송 출연 계기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지난해 국가직 5급 공채(재경직)에 합격했다. 올해 연수를 받고 내년에 신입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이씨가 5급 공채를 준비한 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교 시절 의사를 꿈꿨던 것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서였단다. 그는 “대학 입학 뒤 사람들의 삶에 와닿는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단 생각을 했고 그게 공무원이란 생각이 들었다”면서 “활달한 제 성격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염려했지만 일단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 뒤부터는 앞만 보고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족사관고 졸업 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진학한 이력이 알려지자 ‘엄친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머리가 좋으니 공채에도 손쉽게 붙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이씨는 “진짜 빨리 합격하는 사람들은 1년 만에 붙기도 하지만 저는 두 번 낙방했고, 세 번째 응시할 때는 ‘이번에 떨어지면 그만두자’고 마음먹기도 했다”면서 “수험생활을 보내면서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려울 게 없던 이전과는 달리 (수험 기간에는) 심리적으로 위축돼 남들 앞에 서는 게 두렵기도 했다”고 털어놨다.집과 학교,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한 이씨는 1학기 땐 수험 공부에만 매진하고 2학기 땐 학교를 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다른 수험생들처럼 수험 기간 내내 휴학 상태에서 공부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살다간 감정이 격해져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그간 쌓아둔 외로움 등을 2학기 때 사진을 찍으며 해소하는 등 나름의 ‘완급 조절’을 했다”고 덧붙였다. 시험에 임박하면 컨디션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지만 이씨는 달랐다. 첫 시험을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해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험을 치른 경험이 있어서다. 그는 “큰 시험을 앞두고 긴장을 많이 하다 보니 잠을 3~4시간밖에 못 잘 게 뻔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런 패턴을 몸에 익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면서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피곤한 상태에서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려고 일부러 늦게 잤다.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합격 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걸 다 해봐야겠단 생각에 방송 출연에 나섰지만 이씨 역시 공직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입직한 순간부터는 지금처럼 방송 활동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고 시간이 지나면 저 또한 주어진 부처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씨는 “시간이 갈수록 ‘국민과의 소통’이나 ‘정책 홍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지금의 흐름이 지속된다면 공직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며 “그때가 되면 지금의 경험이 국가를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공무원이 된 프로게이머…“조용한 삶에 만족” “프로게이머였던 20대에는 또래 친구들보다 많은 돈을 벌었고 번 만큼 많이 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군에서 전역하고 나니 어느새 서른이 눈앞이었어요. 막다른 골목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00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 박영민 주무관에게 공무원에 된 이유를 묻자 담담하게 자신의 20대를 이렇게 밝혔다. 박 주무관은 대학생이던 2004년 KBC 파워게임쇼 신인왕전으로 데뷔했다. e스포츠 최초의 신인 드래프트였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신인 드래프트’(2005년)를 통해 프로게임단에 입단했다. 2009년에는 공군 프로게임단에서 복무했다. 2011년 전역 뒤 은퇴를 선언해 영원히 사라진 듯했던 박 주무관의 소식이 다시 들려온 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였다. 인터넷상에 ‘박영민 노량진 목격담’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는 “프로게이머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간은 매우 짧았고 은퇴 뒤 코치나 지도자로 남아 있는 사례도 매우 드물었다”면서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프로게이머보다는) 좀더 안정된 직장이 필요하다고 결심해 공무원이 되기로 했다”고 회상했다.박 주무관은 수험 생활을 시작하면서 휴대전화를 구식 2세대(G)폰으로 바꾸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최대한 줄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만나기보다는 합격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프로게이머 시절 연습을 위해 하루 10~12시간씩 앉아 있던 저력이 수험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합격의 문턱은 높았고 응시 첫해 고배를 마셨다.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할 때는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돌아왔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과목은 영어였다. 박 주무관은 “점수가 잘 안 나와 부담이 컸고 공부할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본능에 맡겨두면 나도 모르게 영어 학습량을 줄일 게 뻔해서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어머니로부터 ‘제발 영어공부 좀 그만하라’는 소리가 나올 때쯤부터 점수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결국 박 주무관은 국가직과 서울시, 지방직 교육행정(9급)을 ‘올킬’(싹쓸이)했다. 이 가운데 지방직을 택한 건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단다. 초창기에는 연수원에서 만난 동료들과 게임을 즐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는 “관중들 사이에서 승부를 겨뤘던 프로게이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삶의 방식에서 차이가 크지만 그래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고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생활에 보람을 느낀다”고 미소를 지었다. 10, 20대가 꿈꾸는 두 직업을 모두 섭렵해 부럽다는 시선을 받는 것이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박 주무관은 “계획된 일들이었다기보다는 그 순간 제가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일에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밝혔다. 미래의 아이가 프로게이머와 공무원 가운데 무엇을 했으면 좋겠냐고 묻자 그는 “머리로는 ‘공무원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프로게이머를 하라’고 외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김동연,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에 대해서는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지원하겠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에 대해서는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고용·산업위기지역 간담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 경제는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엄중한 상황”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재부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에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일자리 정책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중앙정부가 적극 지원하기 위해 간담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총리는 “위기지역의 일자리 문제가 다른 지역보다 심각하다”면서 “특히 거제, 통영, 고성, 울산 순서로 실업률이 전국 평균을 뛰어넘고 있고 이들 지역 경제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부총리는 고용·위기지역 지원은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지난달 군산을 방문했을 때 군산시장이 조선 기자재·자동차 부품업체에 대한 신용보증, 고향사랑 상품권 추가 지원 등의 아이디어를 냈다는 사례를 들며 “일률적인 대책이 아닌, 지역별로 특화된 내용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별로 특화된 대책 지원에 재정 당국이 적극 나설 것”이라면서 “행정안전부도 같은 생각으로 9개(고용·산업위기지역) 지자체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김부겸 행안부 장관과 거제시, 군산시, 목포시, 창원시, 통영시, 고성군, 영암군, 해남군, 울산시 동구 등 9곳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 등이 참석했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의용수비대의 독도 수호 의지 알릴 수 있어 보람”

    “의용수비대의 독도 수호 의지 알릴 수 있어 보람”

    1989년 작고한 조상달 대원의 아들 개관 1주년 불구 벌써 1만여명 방문 “日 도발 야욕 심화… 체험교육장 활용”“독도의용수비대원 33인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고 후세에 계승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경북 울릉군 북면 석포마을에 둥지를 튼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 초대 관장인 조석종(62)씨는 8일 개관 1년을 맞아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렇게 밝혔다. 또 조 관장은 “일본의 독도 도발 야욕이 더욱 심해지는 이때에 우리 정부가 일본 침략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낸 의용수비대원들의 공적을 인정해 기념관을 마련하고 다음 세대가 독도 영토주권을 확고히 하는 체험교육장으로 활용하도록 해 준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했다. 조 관장의 아버지는 1989년 세상을 떠난 독도의용수비대 조상달 대원이다. 조 관장은 울릉군에서 38년간 근무하고 정년퇴직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53년 4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독도를 지키기 위해 활동한 순수 민간조직이다. 독도경비 임무를 경찰에 이관하고 해산할 때까지 33명의 대원이 당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함을 격퇴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현재 생존자는 모두 6명이며 대부분 80대 이상 고령이다. 국가보훈처는 독도의용수비대원 정신을 계승하고자 지난해 국비 129억원을 들여 석포마을 2만 4000여㎡ 땅에 지상 2층 규모로 기념관을 지었다. 1층에는 일본의 불법적인 독도 점거 시도를 저지하고 영토 표지판 설치, 경비초소 건립 등 독도의 영토주권 강화를 위해 노력한 수비대원의 활약상을 고증해 전시해 놨고, 2층은 33인 개인 프로필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그는 “애초 기념관을 평일에만 관람하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많은 국민이 방문하도록 주말과 휴일에도 문을 열고 있으며,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다녀간 1만여명의 방문객 가운데 다수가 학생이며, 이들이 독도의용수비대들의 영토 수호 의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나라 사랑 정신을 깨우치는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소개했다. 내년 3월쯤 울릉도 일주도로가 완전히 개통되면 현재 울릉도에서도 가장 오지로 꼽히는 곳에 있는 기념관에도 연간 10만명 이상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30만~40만명이다. 하지만 기념관에 직원 숙소가 없이 고향을 뭍에 둔 일부 직원이 불편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관장은 “독도의용수비대 활동 기간과 상황, 대원 수에 대해 일부에서 다른 주장을 펴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면서 “현재까지도 독도의용수비대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 공식 입장은 ‘3년 8개월 동안 33명이 활동’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울릉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여기는 중국] 어느 쪽이 진짜 에펠탑?… ‘짝퉁도시’ 쏟아지는 중국

    [여기는 중국] 어느 쪽이 진짜 에펠탑?… ‘짝퉁도시’ 쏟아지는 중국

    중국의 모방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스마트 기기는 물론이고, 중국 곳곳에서 세계 유명 도시와 랜드마크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7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여러 도시에 세계 유명 랜드마크를 복사한 듯 똑같은 건축물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중국 남부 쑤저우에 셰익스피어의 고향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쑤저우 지방정부 관계자는 런던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인 타워브릿지를 포함,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을 고스란히 복제할 것이며, 이는 중국 내 그 어떤 ‘복제품’보다 더욱 정교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중국 남부에 위치한 저장성(省) 항저우 인근에는 ‘프랑스 파리’가 있다. 이곳에는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이 서 있는데, 비록 높이는 실제 에펠탑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멀리서 보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다. 뿐만 아니라 파리에서 볼 수 있는 19세기 유럽풍의 쇼핑거리까지 그대로 복제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밖에도 광둥성(省) 후이저우에 무려 10억 위안(한화 1637억 9000만원)을 들여 조성한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와 랴오닝성(省) 다롄에 세운 이탈리아 베니스, 쓰촨성(省) 청두에 세운 영국 도체스터 등 사진만으로는 차이점을 찾기가 어려운 복제 도시들이 들어서 있다. 중국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쏟아 이러한 ‘복제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중국인들의 국내 여행을 독려하고 내수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당국의 의지와 연관이 깊다. 중국 공안부에 따르면 현재 중국 국민 중 해외여행이 가능한 여권을 보유한 사람은 전체의 8.7%에 불과하다. 또 중국 국가관광청에 따르면 2017년 중국 국내여행업계에서 발생한 수익은 9조 1300만 위안(한화 약 1500조)에 달할 만큼, 중국 경제 성장의 주요 원동력으로 손꼽힌다. SCMP는 여권이 없는 등 다양한 이유로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겨냥한 ‘복제 도시’ 사업은 중국 내수경제를 활성화시켜 외국 관광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울 초선 구청장에게 듣는다] “소확행 중시… 행복발전소 등 마을공동체 시설 내실화”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소확행 전도사’다. 먼 곳의 행복이 아닌 지금 당장 피부로 느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중시한다. 지하철 4호선 차량기지와 운전면허시험장 이전 사업 등 노원의 가치를 높이는 중장기 도시발전에도 정성을 쏟지만 구의 힘만으로 되지 않고 시간이 걸리는 문제는 투 트랙으로 하자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전임 청장의 업무 스타일과 다르다. 전임 김성환 구청장은 구에 필요한 다양한 시설들을 유치하고 건립했다. 지구온난화에 대비한 자치구 차원의 실천을 강조해 에코센터 등 환경관련 시설물, 자살예방 사업과 사라져가는 마을공동체 의식을 되살리기 위한 지역 곳곳의 행복발전소와 도서관 건립 등이 대표적이다. 오 구청장은 구에 필요한 시설들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보고 있다. 이제는 기존 시설들을 관리하면서 내실을 기하고 힐링의 삶을 통한 주민 행복도를 더 높이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폭염에 지친 어르신들을 위한 야간 무더위쉼터, 반려견 때문에 고향을 잘 찾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한 추석 반려견 돌봄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업들이다. 지역의 국회의원과 시의원 구의원과도 긴밀히 상의해 하나라도 더 구 살림에 보탬이 되는 방법을 찾는 오 구청장의 노원 발전을 위한 발걸음은 현재 진행형이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레알과 이탈리아 공격수 지낸 A 카사노 3부 리그 팀과 훈련

    레알과 이탈리아 공격수 지낸 A 카사노 3부 리그 팀과 훈련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고 이탈리아 대표팀의 공격수로도 39경기에 출전했던 안토니오 카사노(36)가 뜻밖의 장소에서 팬들의 눈에 띄었다. 지난해 선수로 은퇴했던 카사노는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C(3부 리그) 비르투스 엔텔라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뒤늦게 영국 BBC가 6일 전했다. 비르투스 엔텔라 구단은 카사노가 어떤 계약도 맺지 않은 상태에서 함께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먼저 로베르토 보스카글리아 1군 감독에게 함께 훈련을 하겠다고 제안해 구단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팀은 시즌 1승만 거둬 리그 12위에 머물러 있다. 레알을 비롯해 AS로마, 인터 밀란, AC 밀란 등 메이저 4개 구단을 거친 그는 지난해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헬라스 베로나에 영입됐지만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않고 여드레 만에 은퇴를 선언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마음이 바뀌었다며 잔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도전을 위해 일어서 미친 시즌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프리시즌 두 경기에 나선 지 엿새 뒤 다시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5월이 마지막 리그 출장 기록이었다. 베로나는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세리에B(2부 리그)로 강등됐다. 카사노는 고향 클럽인 바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AS로마에서 이름을 떨쳤다. 118경기 출장에 39골을 기록했다. 레알로 이적한 뒤에는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나중에 삼프도리아, AC 밀란, 인터 밀란, 파르마 등을 전전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10골을 기록한 그는 심장 결함으로 2011년 11월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다. 2012년 유럽축구선수권(유로)에 출전하는 이탈리아 대표팀 스쿼드에 동성애자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발언해 유럽축구연맹(UEFA)로부터 벌금 징계를 받은 일도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손 the guest’ 허율, 영매로 등장...역대급 빙의에 ‘소름’ 엔딩

    ‘손 the guest’ 허율, 영매로 등장...역대급 빙의에 ‘소름’ 엔딩

    ‘손 the guest’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소름’ 엔딩으로 안방을 사로잡았다. 4일 방송된 OCN 수목 오리지널 ‘손 the guest’ 8회에서는 다시 시작되는 ‘손’의 그림자를 막으려는 윤화평(김동욱 분), 최윤(김재욱 분), 강길영(정은채 분)의 고군분투가 펼쳐졌다. 박일도로 의심되는 박홍주(김혜은 분)를 공격하려다 경찰에 붙잡힌 윤화평은 최윤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박홍주의 벽에 가로막혀 추격전이 난항을 맞는 듯했지만, 윤화평에게 ‘손’의 기운이 다시 다가왔다. 고향의 이웃 할머니(이주실 분)가 손녀 정서윤(허율 분)이 박일도에 빙의됐을 때 윤화평과 증상과 비슷하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 정서윤을 찾아간 윤화평은 엄마 이혜경(심이영 분)에게 문전박대당하고 돌아가던 길에 한 남자가 위층에서 떨어진 돌을 맞고 사망하는 사고를 목격했다. 사망자는 정서윤의 아빠 정현수(김형민 분)였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정서윤은 오래전부터 귀신이 보였고, 최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꾸 따라온다고 했다. 심지어 귀신들이 박일도가 지켜주니 괜찮다며 다 죽이자고 했다고 언급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정서윤을 살펴본 최윤은 빙의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며 영매인 것이 도움이 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윤화평과 최윤을 내쫓으려던 이혜경이 현관문을 여는 순간 정서윤이 악령에 사로잡혔다. 최윤은 급히 기도문을 외워 악령을 쫓았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정서윤에게 ‘손’이 찾아온 이유를 밝히려면 정현수의 차를 쫓아다녔다는 여자 귀신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강길영은 정현수 사망 사건 수사에 나섰다. 정현수의 휴대폰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 수십 장 담겨 있었다. 사진을 찍은 장소는 뺑소니 사건이 발생했던 곳. 현수막에 적힌 피해자의 인상착의는 정서윤이 봤다던 귀신의 모습과 일치했다. 무언가 직감한 윤화평, 최윤, 강길영은 아파트 CCTV에서 별거 후에는 집에 온 적이 없다던 정현수를 확인했다. 목격자는 정서윤이 아빠를 보고 귀신이라며 비명을 질렀다고 증언했다. 단서를 조합한 결과 정서윤을 쫓아다닌 건 빙의된 정현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빙의체가 죽어 사라졌지만 정서윤은 여전히 귀신을 보고 있었다. 완벽한 빙의체인 영매 정서윤에게 깃들기 위해 악령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던 것. 정서윤은 지난번처럼 귀신을 쫓겠다며 가방에서 돌을 꺼내려 했다. 이를 지켜본 이혜경은 “네가 지난번에 없앤 게 뭔지 알고 그래?”라며 정서윤을 막았다. 아빠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과 “이제 쟤가 무서워, 내 딸이지만 소름 끼친다고”라는 엄마와 할머니의 대화를 엿들은 정서윤은 스스로 악령에게 문을 열어주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한층 더 강력해진 ‘손’의 무도함은 서늘한 공포의 폭발력을 더하는 동시에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사람의 약한 마음을 파고들어 범죄를 저지르는 ‘손’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인간의 본질적인 악함에 질문을 던져왔다. 아빠의 범죄로 ‘손’이 찾아오고, 영매라는 운명의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정서윤의 아픔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처연한 공포를 수놓으며 ‘소름 엔딩’을 완성했다. 또 윤화평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섣불리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엮어내며 흡인력을 높였다. 영매의 운명을 타고난 윤화평과 정서윤의 같지만 다른 평행이론이 이어지며 윤화평, 최윤, 강길영의 공조도 전환점을 맞았다. 윤화평 역시 가족이 자신 때문에 죽음을 맞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윤화평의 과거사를 전해 들은 최윤은 정현수의 사망이 정서윤 때문일까 봐 마음 졸였고, 윤화평의 죄책감과 아픔을 이해했다. 박홍주에게 가로막혔지만, 또다시 ‘손’ 박일도 추격에 나서게 될 세 사람의 운명은 확고해진 공조 속에 어떤 극적인 상황을 맞게 될지 궁금증을 높였다. 한편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손 the guest’ 8회 시청률은 케이블, 위성, IPTV 통합된 유료플랫폼 가구 평균 3.2%, 최고 3.5%를 기록했다. ‘손 the guest’는 매주 수, 목요일 밤 11시 방송된다. 사진=OCN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민담의 역설, 그리고 삶의 역설… 그 안의 부조리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민담의 역설, 그리고 삶의 역설… 그 안의 부조리

    민담의 심층/가와이 하야오 지음/고향옥 옮김/문학과지성사/399쪽/1만 5000원‘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이라는 조건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놀랍다. 고정돼 있지 않은 바람결 같은 과정을 통해 이야기는 깎여 나가고 덧붙여진다. 그러나 가장 강렬한 장면, 인상적인 부분은 이야기의 척추처럼 깊고 단단하게 남는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가. 그 기준은 논리도 아니고 교훈도 아니다. 그렇다면 민담을 오늘까지 전해지게 하는, 계속 읽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저자 가와이 하야오는 일본에 융 심리학을 최초로 소개한 임상심리학자다. 일본 문화청 장관을 역임하는 등 일본 지성계의 거목으로 인정받던 그는 특히 아동문학, 그림책, 신화, 민담에 주목했다. 그 안에서 인간의 삶을, 무의식의 세계를 찾아보려 했다. 이 책에서는 그중에서도 그림동화 열 편을 핵심적으로 다룬다. ‘트루데 부인’, ‘헨젤과 그레텔’, ‘게으른 세 아들’, ‘두 형제’, ‘들장미 공주’, ‘충신 요하네스’, ‘황금새’, ‘수수께끼’, ‘지빠귀 부리 왕’, ‘세 개의 깃털’이 차례차례 관찰대 위에 오른다. 저자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자기실현을 이루는 삶의 과정 하나하나를 민담과 견주어 이야기한다. 그는 이야기 속의 대화와 행동, 도구, 숫자 등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상징을 찾아내고 해석한다. 아무 말 대잔치 같던 이야기가 사실은 대단히 정교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게 드러난다. 민담의 역설은 삶의 역설을 반영하고, 민담의 부조리는 삶의 부조리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민담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삶에서 늘 접하게 되는 선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자는 말한다. “민담은 어떠한 물음에 대해서도 대답을 마련해 두고 있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도 있고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도 있다. 주로 다루는 이야기는 뒤편의 부록에 따로 실어,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도왔다. 그러나 그 이야기 말고도 동서양을 망라하는 무수한 이야기가 불쑥불쑥 올라온다. 거기에 자신이 심리치료를 하면서 만났던 내담자들과의 경험이 겹치면서 이야기는 생생한 의미를 띤다. 민담이 그토록 강조하듯, 삶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위험과 고난을 기꺼이 지불할 때 이루어지는 성장과 자기실현에 대해 민담처럼 효과적으로 알려 주는 장치는 흔치 않다. 이 책은 1977년에 출간돼 40년의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으며 일본인들의 ‘인생의 처방전’ 역할을 해 왔다. 이 책을 계속 찾게 하는 힘은 또 무엇일까. 민담의 힘은 이 책 안에도 담겨 있다.
  • “평양 1호 은행 지점장 되는 꿈 매일 꿉니다”

    “평양 1호 은행 지점장 되는 꿈 매일 꿉니다”

    ‘돈자리’가 무엇일까. ‘예금계좌’를 뜻하는 북한 용어다. 그렇다면 ‘수면 돈자리’는? 잠자는 계좌, 즉 ‘휴면 예금계좌’를 의미한다. ‘연체독촉’은 ‘빚단련’, 상계는 ‘맞비기기 결제’로 부른다. 알듯 모를 듯 알쏭달쏭하다.올해만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남북 관계도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그러나 남과 북의 금융은 여전히 거리가 멀다. 용어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금융인 출신 북한학 박사 1호’ 김희철(56) 북한연구소 감사가 ‘남북경제 금융상식 용어 해설’(수류책방)을 쓴 이유다. “북한에서 온 친구와 약속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1시간이나 늦었습니다. 계좌를 개설했던 은행까지 찾아가 돈을 찾아오느라 그랬다 하더군요. 국내 어느 지점에서나 예금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거죠.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남과 북의 금융 용어를 풀이한 책부터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책은 예금, 대출, 전자금융 등의 금융 분야를 모두 10개 카테고리로 나누고, 카테고리마다 북한의 단어와 짝이 맞는 우리 단어를 함께 수록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북한 재정금융사전과 북한 경제사전, 통일부와 통계청의 북한말 사전, ‘남녘 말 북녘 말’ 등 각종 서적을 5개월 동안 밤낮으로 뒤졌다. “북한 사전에는 우리 자료를 가지고 연구하거나, 외국 말을 북한식으로 바꿔 수록한 사례가 많습니다. 그래서 단어 중에는 북한 주민이 실생활에서 쓰지 않는 단어도 있습니다. 예컨대 북한에는 ‘인터넷뱅킹’을 안 씁니다. 그러나 북한 사전에는 ‘전자환치체계’라 수록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조차도 ‘이런 단어가 있나?’ 생각할 겁니다. 그렇다고 북한 주민들이 바로 인터넷뱅킹이란 단어를 이해하기는 어려워 중요한 단어는 이런 식으로 풀이해 넣었습니다.” 김 감사는 핀란드 헬싱키 경제대학원에서 금융산업공학 MBA를 거치고 KB국민은행 건대역, 장안동 등에서 지점장을 지냈다. 그가 2008년 동국대 북한대학원에 입학하겠다고 했을 때 교수들마저 “왜 오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앞으로 남과 북의 경제 교류가 활성화할 겁니다. 우리 기업을 비롯해 외국 기업도 북한에 들어가겠죠. 그러면 외화송금을 비롯해 은행 업무도 활발해질 겁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의 은행으로선 많이 벅찹니다. 독일이 통일될 때 서독의 도이체방크가 영업망을 깔면서 통일 독일의 제1 은행이 됐듯, 우리도 비슷한 절차를 밟을 겁니다. 그러면 제 꿈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그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김 감사는 책을 들어 보이며 빙긋 웃었다.“아버님 고향이 평양 인근의 강서라는 곳인데, 통일이 되면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요즘 ‘평양 1호 은행 지점장’이 되는 꿈을 매일 꿉니다. ” 글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사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제주의 바람마저 화폭에 담다… 故 변시지 작가 전시회

    제주의 바람마저 화폭에 담다… 故 변시지 작가 전시회

    제주 출신으로 고향의 자연과 풍물을 주로 그린 고 변시지(1926~2013) 작가의 전시가 서울에서 열렸다. 공익재단법인 아트시지(이사장 변정훈)와 에스팩토리(대표 이호규)는 ‘변시지의 작가노트’전을 오는 7일까지 서울 성동구 에스팩토리 A동 전시실에서 개최한다.고 변시지 작가는 바람, 파도, 바다, 오름, 초가집, 정랑, 말, 까마귀 등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과 풍물을 주로 그린 작가이다. 이번 전시는 2013년 작고한 작가의 작품 80여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회다. 황토색과 거침없는 필치를 구사함으로써 제주의 자연과 생명력을 드러내는 작가 특유의 독창적인 화법을 이번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2007년 6월부터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전시한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작품 뿐만 아니라 작가노트 및 원고에 남긴 글을 함께 감상함으로써 작가의 예술관을 엿보고 작품이 탄생한 사유의 과정을 추적한다. 전시는 3개의 섹션으로 구성한다. 첫 번째 섹션 ‘제주에 산다’에서는 제주의 자연환경에 주목하고 그것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시도들을 전시한다. 두 번째 섹션 ‘바다를 묵상하다’는 자연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시선과 태도를 보다 드러내는 작품으로 구성된다. 세 번째 섹션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은 하나가 된다’에서는 제주의 자연 풍경을 빌어 철학적 사유와 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던지는 작품들을 전시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남도의 가락과 여성의 처연함을 읊은 허수경 시인 타계···수목장

    남도의 가락과 여성의 처연함을 읊은 허수경 시인 타계···수목장

    위암 말기 투병하다 별세···이달말 고향 진주서 추모행사 예정독일에서 꾸준히 우리 말로 시를 쓴 허수경 시인이 지난 3일 오후 7시 50분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시인의 작품을 편집·출간한 출판사 난다 김민정 대표는 4일 “어제저녁 시인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택에서 밤새 병세가 악화해 다음 날 아침(현지 시간)에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장례는 현지에서 수목장으로 치른다고 한다”고 전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54세. 시인은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했으며, 이 사실을 지난 2월 김 대표에게 알린 뒤 자신의 작품 정리에 들어갔다. 지난 8월에는 2003년 나온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15년 만에 새롭게 편집해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라는 제목으로 내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마지막으로 펴낸 이 산문집 개정판에 서문으로 이렇게 썼다. “내가 누군가를 ‘너’라고 부른다./내 안에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를 그리움이 손에 잡히는 순간이다.//불안하고,/초조하고,/황홀하고,/외로운,/이 나비 같은 시간들.//그리움은 네가 나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나더라도…”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경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상경해 방송국 스크립터 등으로 일하다 1987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뒤 1992년 돌연 독일로 건너갔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와중에도 꾸준히 시를 써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까지 총 6권의 시집을 냈다.시인은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 그리움을 노래했다. 또 독일에서 오랫동안 이방인으로 지낸 삶은 그의 시에 고독과 쓸쓸함의 정서를 짙게 드리우게 했으며,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 연구 이력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독보적인 시 세계를 만들어냈다.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문학평론가)는 “시인의 시 세계는 독일로 가기 전엔 고향인 남도 가락과 정서, 여성적인 처연함이 결합해 최고의 사랑 시로 볼 만한 작품을 남겼다. 독일에 가서는 먼 나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며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줬다. 고고학이 시간의 오래된 지층,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어서 그런지 시에서도 아주 긴 시간을 사유하는 상상력이 두드러졌다. 유고시집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보면 오래된 시간에 대한 상상력, 현생의 이전과 이후 시간까지 함께 상상하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고인은 동서문학상(2001년), 전숙희 문학상(2016년), 이육사 시문학상(2018년)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독일에서 지도교수로 만나 결혼한 남편이 있다. 한편 고인의 유해는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10월말쯤 진주에서 허수경 시인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근대의 새벽을 깨운 마지막 왕조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근대의 새벽을 깨운 마지막 왕조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1회 정동(대한제국을 기억하며)편과 제22회 서초동(우면산의 가을)편이 2회 연속 진행됐다. 추석 연휴 특별프로그램으로 마련된 이번 미래투어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달 26일 정동과 덕수궁 일대, 29일은 서초동 우면산 일대에서 각각 열렸다. 한가위 연휴와 맞물린 황금주말을 맞아 서울미래유산의 향기를 맡고자 하는 참가자들이 대거 몰렸다. 사전 온라인 예약이 일주일 전에 매진돼 준비한 오디오 가이드시스템 40개가 동났다. 예약 없이 현장을 찾아온 러시아와 루마니아 출신의 금발머리 외국인 여학생 2명은 진행자가 양보한 이어폰을 사이좋게 사용했다. 2회 차를 1개 지면에 갈무리했다.정동투어는 지난달 26일 오전 10시 시청역 4번 출구에서 시작했다. 서울시의회(옛 국회의사당)~성공회성당(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세실극장~주한영국대사관~유림면~덕수궁~정동극장~작은형제회 한국관구(프란치스코 수도원) 순서로 진행됐다. 추석 연휴를 맞은 정동과 덕수궁에는 근대 새벽을 느끼려는 순례자들로 붐볐다. 특히 이날 코스 중 성공회 성당에서는 정창진 신부가 사대문 안에 조성된 유일한 묘역인 지하 세례자 요한 성당의 조마가 주교 유해를 참배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또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프란치스코 정동수도원도 요한 수도원장이 나서서 내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앞둔 성당 내부를 공개했다. 이날 코스 중 세실극장, 주한영국대사관, 유림면, 정동극장, 프란치스코 수도원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명절에 어울리는 한복 차림으로 능숙하게 답사단을 안내했다.정동과 덕수궁은 대한제국에 대한 처연한 기억이 머문 곳이다. 대한제국은 1897년부터 1910년까지 13년 동안 존재했던 이 땅의 마지막 왕조다. 우리가 세운 첫 황제국이자 마지막 황제국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면 일제에 국권을 상실한 나라는 조선이 아니라 대한제국이다. 대한제국을 인정하지 않는 일제가 자신들이 합병한 나라를 조선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우리도 덩달아 패망한 나라를 조선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또한 13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기를 ‘대한제국 시기’라고 하지 않고 ‘구한말’이라고 부르는 우를 범하고 있다. 대한제국의 법궁, 경운궁(덕수궁 전신)이 자리한 정동은 근대의 고향이다. 이 땅에 근대정신을 알린 학교, 병원, 외국공관, 종교시설이 빼곡했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옛 독일공사관(서울시립미술관), 정동제일교회, 옛 러시아공사관, 하비브하우스(미국대사관저), 영국대사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등이 120여년 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종은 왜 경복궁과 창덕궁을 버리고 대한제국 황궁으로 경운궁을 선택했을까.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에게 경운궁은 기회의 땅이었다. 외국공사관에 둘러싸여 신변 안전에 유리하다고 여겼다. 중국과 일본의 핍박으로부터 벗어나 대한제국을 선포하기에 적소라고 여겼다. 1년의 러시아공사관 생활(아관파천)을 청산하고 경운궁으로 환궁하면서 근대국가를 열겠다는 일념에 가득 차 있었다.원래 경운궁은 지금의 덕수궁보다 3배 이상 넓었다. 옛 경기여고 터는 역대 왕의 초상화를 모신 선원전이었고, 정동극장과 예원학교 자리에는 황실의 생활공간인 수옥헌이 있었다. 지금의 경향신문사와 서울역사박물관 사이에 세워진 구름다리(홍교)는 옛 경운궁과 경희궁을 잇는 다리였다. 경운궁을 둘러싼 정동 일대는 개화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대한제국은 정동에서 불길이 타올라 정동에서 꺼졌다. 고종은 경운궁 동문 대안문(대한문) 앞에 환구단(웨스틴조선호텔)과 황궁우를 세워 새로운 나라를 선포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황제의 격을 과시했다. 서울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한 현대 서울 도심의 방사상 도로망이 이때 구축됐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기울어진 국운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1900년 선원전 화재에 이은 1904년 대화재로 경운궁 주요 건물이 홀랑 타버렸다. 중화전, 즉조당, 석어당을 중건하는 동안 본궁에서 떨어진 중명전에 머물던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었다. 경운궁은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첫 황제였던 고종의 궁이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강제 퇴위당한 고종이 1919년 68세로 회한의 임종을 맞은 궁이다. 새로 즉위한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 가면서 부왕에게 ‘덕수’라는 칭호를 바쳤다. 이때부터 고종황제의 칭호는 ‘덕수궁 이태왕’으로 격하됐다. 덕수궁 시대의 시작이다. 한때 황궁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경운궁은 나라를 잃은 ‘뒷방 늙은이’의 거처로 급전직하했다. 경운궁 시대가 그냥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고종의 인산일(장례식)을 기해 3·1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돼 대한민국의 국통을 세웠다. 우리가 국권을 상실한 나라는 조선이 아니라 대한제국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대한제국과 고종황제의 전성기가 담긴 10년간의 경운궁 시대(1897~1907)와 덕수궁 이태왕이 기거한 12년간의 덕수궁 시대(1907~1919)는 분리돼야 한다. 덕수궁에는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대한제국의 혼이 깃들어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 청와대 앞 중학생들의 외침 “난민 친구를 구해주세요”

    청와대 앞 중학생들의 외침 “난민 친구를 구해주세요”

    “천주교로 개종… 본국 추방 땐 박해 위협” 2개월간 국민청원·집회·모금 등 함께해 “8년 전 한국 와… 생각·문화 우리와 같아 여기서 모델의 꿈 이룰 수 있게 도와달라” “그 친구는 저희와 잘 어울리는 진짜 ‘인싸’(조직의 주류인 인사이더를 뜻하는 10대 은어)예요. 친구가 이틀 뒤면 마지막 심사를 받는다니 도와주세요.” 개천절인 3일, 한산했던 청와대 앞 분수대에 앳된 10대 학생 16명이 모였다. 송파구의 한 중학교 3학년생들이었다. ‘그 친구’는 이란 출신인 A(15)군이다. 학생들이 주섬주섬 꺼내 펴든 현수막에는 ‘제 이란 친구를 난민으로 인정해 주세요’ 등이 적혀 있었다. 8년 전 한국에 온 A군은 난민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A군은 7살이던 2010년 사업하는 아버지 B(52)씨와 함께 이란 테헤란을 떠나 한국에 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한국에서 다녔다. 친구들에 따르면 A군은 이란어는 겨우 말만 할 뿐 읽을 줄도 모르고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익숙한 평범한 중3이다.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면 종교다. A군은 천주교 신자다. 아버지가 무슬림이라 이슬람 율법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무슬림이었지만 한국에서 친구들과 성당에 다니다 천주교 신자가 됐다. 어느 날 독실한 무슬림인 고모와 통화하다가 ‘네가 개종하고도 사람이라 할 수 있느냐’는 얘길 들은 뒤 연락이 끊겼다. 이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박해당할 수 있다”며 2016년 난민 신청을 했지만 ‘개종했더라도 이란 당국이 주목할 활동을 하지 않아 박해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불인정됐다. 이후 행정소송을 내 1심에서 이겼지만 2심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심리불속행 기각(2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이 없어 더 판단하지 않고 곧바로 기각하는 처분) 판결을 받았다. 이런 사연은 A군 친구가 지난 7월 11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알려졌고 3만 1000여명의 지지를 받았다. A군의 친구들은 “5일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릴 난민 인정 재심사가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A군의 비자가 오는 16일 만료돼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추방당할 가능성이 있다. 친구들은 A군이 본국으로 추방되면 신변에 큰 위협을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인구 99%가 이슬람교도인 이란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한 이슬람교도는 배교(背敎)죄로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다. 이날 집회는 친구들이 A군과 함께 해온 2개월간 동행의 마무리였다. 국민청원 이후 7월에는 출입국·외국인청에서도 집회를 열었다. 학교 교사와 성당·교회 등에서는 500여만원을 모금해 A군에게 전달했다. 집회에 참여한 여학생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반장을 할 만큼 성격이 진짜 좋았다”면서 “부모 동의서를 받은 사람만 오늘 나올 수 있었는데 우리 부모님은 ‘친구 돕는 일이니 다녀오라’고 허락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회장인 김지유(15)양은 “친구의 꿈이 모델인데 키도 크고 개성 있어 한국에 머물 수 있다면 멋진 모델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청와대 민원실을 통해 의견서를 전달했다. 김양은 “행정관이 ‘대통령께 잘 보고하겠다’고 해 엄청 떨렸다”며 웃었다. 조희연 서울 교육감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도 글을 통해 A군과 친구들을 격려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청와대 앞 중학생들의 외침 “난민 친구 구해주세요”

    청와대 앞 중학생들의 외침 “난민 친구 구해주세요”

    이란서 온 A군 마지막 심사 앞두고 호소“천주교로 개종…본국 추방 땐 박해 위협”2개월간 국민청원·집회·모금 등 함께 해“8년 전 한국 와…생각·문화 우리와 같아여기서 모델의 꿈 이룰 수 있게 도와달라” “그 친구는 저희와 잘 어울리는 진짜 ‘인싸’(조직의 주류인 인사이더를 뜻하는 10대 은어)예요. 친구가 이틀 뒤면 마지막 심사를 받는다니 도와주세요.”개천절인 3일, 한산했던 청와대 앞 분수대에 앳된 10대 학생 16명이 모였다. 송파구의 한 중학교 3학년생들이었다. ‘그 친구’는 이란 출신인 A(15)군이다. 학생들이 주섬주섬 꺼내 펴든 현수막에는 ‘제 이란 친구를 난민으로 인정해 주세요’ 등이 적혀 있었다. 8년 전 한국에 온 A군은 난민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A군은 7살이던 2010년 사업하는 아버지 B(52)씨와 함께 이란 테헤란을 떠나 한국에 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한국에서 다녔다. 친구들에 따르면 A군은 이란어는 겨우 말만 할 뿐 읽을 줄도 모르고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익숙한 평범한 중3이다.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면 종교다. A군은 천주교 신자다. 아버지가 무슬림이라 이슬람 율법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무슬림이었지만 한국에서 친구들과 성당에 다니다 천주교 신자가 됐다. 어느 날 독실한 무슬림인 고모와 통화하다가 ‘네가 개종하고도 사람이라 할 수 있느냐’는 얘길 들은 뒤 연락이 끊겼다. 이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박해당할 수 있다”며 2016년 난민 신청을 했지만 ‘개종했더라도 이란 당국이 주목할 활동을 하지 않아 박해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불인정됐다. 이후 행정소송을 내 1심에서 이겼지만 2심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심리불속행 기각(2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이 없어 더 판단하지 않고 곧바로 기각하는 처분) 판결을 받았다. 이런 사연은 A군 친구가 지난 7월 11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알려졌고 3만 1000여건의 지지를 받았다.A군의 친구들은 “5일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릴 난민 인정 재심사가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A군의 비자가 오는 16일 만료돼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추방당할 가능성이 있다. 친구들은 A군이 본국으로 추방되면 신변에 큰 위협을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인구 99%가 이슬람교도인 이란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한 이슬람교도는 배교(背敎)죄로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다. 이날 집회는 친구들이 A군과 함께 해온 2개월간 동행의 마무리였다. 국민청원 이후 7월에는 출입국·외국인청에서도 집회를 열었다. 학교 교사와 성당·교회 등에서는 500여만원을 모금해 A군에게 전달했다. 집회에 참여한 여학생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반장을 할 만큼 성격이 진짜 좋았다”면서 “부모 동의서를 받은 사람만 오늘 나올 수 있었는데 우리 부모님은 ‘친구 돕는 일이니 다녀오라’고 허락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회장인 김지유(15)양은 “친구의 꿈이 모델인데 키도 크고 개성 있어 한국에 머물 수 있다면 멋진 모델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청와대 민원실을 통해 의견서를 전달했다. 김양은 “행정관이 ‘대통령께 잘 보고하겠다’고 해 엄청 떨렸다”며 웃었다. 조희연 서울 교육감은 학생들에게 보낸 격려문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외국 친구에 대해 어른들도 실천하기 어려운 인류애를 행동으로 보여준 같은 학교 학생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면서 “이란 국적의 서울 학생이 서울에서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도 “A군은 가톨릭 신앙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하기에 본국으로 돌아가면 박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면서 “박해의 위협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관계 기관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군산서 전국 최대 전통시장 축제-12일부터

    국내 최대 규모 전통시장 축제인 ‘전국 우수 시장 박람회’가 오는 12일부터 사흘간 전북 군산시 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고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전북도, 군산시가 주관하는 2018 전국우수시장 박람회는 올해로 15회째다. 이번 박람회는 ‘전통시장, 이제는 혁신의 주체, 새로운 천년의 길을 열다!’를 주제로 열린다. 박람회에는 전국 1400여개 전통시장 가운데 엄선된 140여 곳이 참여한다. 전시관 80곳, 먹거리장터 25곳, 청년상인존 25곳, 대학협력관 17곳 등 총 147개 관을 선보인다. 청년 상인들은 20개 푸드트럭과 함께 케이팝(K-POP)을 비롯한 문화공연도 펼친다. 부대행사로 전통한복·교련복 체험, 트로트 공연, 가수왕 선발전, 우리시장 뽐내기와 함께 KBS 6시내고향 생방송도 진행한다. 군산시 관계자는 “고객과 전통시장이 소통하고 공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며 “이번 박람회에 전국에서 20만명 이상이 찾아 군산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의성마늘의 힘 영미~~ 보여줘

    의성마늘의 힘 영미~~ 보여줘

    ‘마늘소녀들의 고향으로 마늘축제 가즈아~!’ 한지형 마늘 전국 최대 주산지인 경북 의성군은 김장철을 앞둔 오는 5~7일 의성읍 일원에서 ‘의성 슈퍼푸드 마늘축제’를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여자 컬링 은메달을 따낸 대표팀 5명 중 4명이 의성 출신이라 ‘마늘소녀’로 불린다.전국 최고의 맛과 향을 자랑하는 의성마늘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의성마늘 가공 식품과 음식을 전시·판매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려고 올해 처음 마련됐다. ‘마늘 요리의 시작과 끝’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첫날 의성읍 의성마늘테마파크에서 읍·면 대항 마늘 까기 및 엮기 대회, 개막식 퍼포먼스, 축하공연이 펼쳐진다. 또 의성전통시장에서는 플리마켓, 주제극 공연, 버스킹 공연과 야시장이 운영된다. 둘째 날에는 마늘테마파크에서 천하제일 의성마늘요리대회, 마늘예술난장, 의성춤신가왕 경연대회 등이 마련된다. 마지막 날에는 의성군청 주차장에서 마늘콘서트가 열린다. 축제 기간 내내 마늘테마파크에서는 슈퍼푸드 장터와 식당, 의성마늘학교, 의성마늘 놀이터 등이 운영돼 다양한 먹거리·볼거리·즐길거리를 제공한다. 슈퍼푸드 식당에서는 마늘뷔페, 마늘레스토랑, 흑마늘카페, 흑마늘펍, 마늘소가든이 운영되고 슈퍼푸드 장터에선 의성마늘과 마늘 가공식품 직거래가 이뤄진다. 의성마늘은 조선 시대인 1526년(중종 21)에 지금의 의성읍 치선리 선암마을에 경주 최씨와 김해 김씨가 터전을 잡으면서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2800여 농가가 1670㏊에서 연간 1만 7000여t의 마늘을 생산하며,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된 의성군 명품 특산품이다. 박희태 축제추진위원장은 “올해 처음 개최되는 의성슈퍼푸드마늘축제에 관광객과 소비자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의성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이달 이산상봉 어려울 듯…판 키워 11월말·12월초 유력

    상봉행사, 최소 한 달 준비기간 필요 정부 “화상상봉·영상편지 교환도 논의” 실질적인 만남 규모 8월보다 커질 듯 이달 안에 제2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위해서는 최소 한 달의 준비기간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남북은 이산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일정을 조율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열린 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행사 2개월 전인 6월 적십자회담에서 일정이 확정됐다. 때문에 22차 이산가족 행사는 11~12월 사이에 열릴 가능성이 크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서는 후보 선정과 이산가족 생사 확인 등 통상 한 달 이상이 걸린다. 정부 관계자는 2일 “이번 달 중에 남북 간 적십자 회담을 열기로 했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이번 달에 여는 것은 힘들어졌다”며 “다만 이번 적십자 회담에서 상봉행사뿐 아니라 화상상봉, 고향방문, 영상편지 교환 등 여러 방안이 협의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남북은 지난 8월 금강산에서 열린 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연내에 상봉행사를 한 차례 더 여는 방안을 협의했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당시 “현재와 비슷한 규모(남북 각각 100명씩)로 연내에 개최한다고 했지만 잘되면 10월 말쯤”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지만 이후 제3차 남북 정상회담 등으로 인해 이산가족 상봉을 둘러싼 남북 간 실무협의는 하지 못했다. 다만 남북은 지난 9월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운영과 화상상봉, 영상편지 교환 등의 내용이 담긴 ‘9월 평양 공동선언문’에 서명해 조만간 이산가족 상봉행사 일정 논의 등을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은 적십자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화상상봉 및 영상편지 교환 등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어서 실질적인 만남의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실제로 정부는 올 3월부터 연말까지 고령 이산가족 1500여명을 대상으로 영상편지를 제작하고 있다. 본인 소개, 헤어진 경위, 옛 추억, 재북가족에게 보내는 메시지 등을 10분 분량의 영상으로 만들어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는 식이다. 남북 간의 화상상봉은 2007년 8월 이후 약 11년 만에 이뤄지게 된다. 현재 전국 9곳에 화상상봉장이 마련돼 있다. 이산가족 상봉의 상시화를 위한 금강산 면회소 개·보수도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면회소로는 동행가족과 진행요원까지 모두 400여명밖에 수용할 수 없어 규모를 늘리려면 공간 확충이 필요하다. 대략 7개월의 공사기간이 필요하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달려서 북녘 들어설 수 있을까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씨 희망가

    달려서 북녘 들어설 수 있을까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씨 희망가

    1년하고도 한달을 쉼 없이 달려 현재 중국 요동반도의 요하를 건너고 있는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62)씨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지난해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하면서부터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 이야기’를 써오고 있는 강씨는 30일 121편 ‘흔들리는 내 슬픈 달리기’를 보내왔다. 그는 이 편에서 센양의 북한영사관에 북한 방문 신청서를 전달하는 과정을 소상히 소개한 뒤 담당자로부터 “일단 상부에 보고는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전했다. 이어 베이징의 북측 민화협에서 자신의 신원 조회를 의뢰했다는 전언을 들었다고 소개했다. 물론 속단할 일은 아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할 일이다. 하지만 이 정도 진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품을 만하다. 강씨는 이달 초순 단둥에 도착해 압록강 철교를 건너길 손꼽아 고대하며 오늘도 여전히 달릴 것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떠나 있어도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 찬바람이 불면 더 사무치게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오지보다 더 오지 같은 곳,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달려왔어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곳이 있다. 탐험심 많은 이조차 한국인이기 때문에 엄두도 못내는 곳이 있다. 몽환의 세계처럼 지척에 있어도 갈 수 없는 곳, 대를 이어서 그리워지는 곳이 있다. 가보지 않은 곳, 그러나 꼭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 역사에 많이 등장하는 강이지만 잘 모르는 강, 요하를 건너면서 아버지의 고향과 타향살이, 그의 그리움을 떠올렸다. 만날 수 없는 것들은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이루지 못한 사랑은 얼마나 절절한지, 가지 못하는 고향이 얼마나 아름답고 절절한지! 할머니와 아버지는 육신의 탈을 벗어버리고서 기어이 그곳에 가 계실 것이다. 갈대 피리의 음색이 구슬픈 것은 잘려나간 갈대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한다. 근원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갈대 피리의 그리움만 못할쏘냐? 자기 근원에서 떨어진 모든 것은 다시 돌아갈 날만 애타게 기다리느니, 갈대피리 소리에도 사람들이 함께 흐느끼는데 내 슬픈 달리기를 어찌 눈물 훔치지 않고 바라만 볼 건가? 갈대밭이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다. 요하의 소택지다. 네이멍구 사막에서 흘러 내리는 유사로 인해 소택지가 형성된 것이다. 요하를 기준으로 서쪽을 요서, 동쪽을 요동이라 하는데 요동반도는 압록강 하구 단둥(丹東)에서 요하 하구에 이르는 축을 북쪽 한계로 하고 황해와 발해를 끼고 있는 반도를 말한다. 당나라 초까지 이 지역은 갈대만 우거진 요택의 진펄로 말과 마차가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부교와 다리를 설치해 요택을 건넜고 19세기 말쯤 요하로 흘러드는 퇴적물이 충적되어 비로소 대륙과 연결되었다고 한다. 갈대는 사람을 가장 닮은 자연의 존재인 것 같다. 파스칼은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라고만 표현했지만 신경림의 ‘갈대’란 시 한편을 같이 읽어 보자.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이렇게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갈대의 울음소리도 흔들리며 달리는 내 울음소리를 덮지는 못했다. 이렇게 먼 길을 달려와서 아버지의 고향, 할아버지의 산소, 내 근원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찾아왔는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머지 반쪽의 조국은 정녕 몽환의 세계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베이징에 거의 다 올 때쯤이면 이미 내 손에 입북허가서가 들려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베이징을 지나고 산해관도 지나고 판진에 도착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더군다나 출발할 당시와 상황이 바뀌어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이미 우리끼리 종전협정, 평화협정 다 맺은 거와 다름없는 상황에서 나의 입북 문제가 아직 결정이 안 난 것이 마음에 걸렸다. 1만 4000㎞를 달려왔는데 신의주를 거쳐 평양을 지나 판문점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다 무슨 소용인가? 이제 달리는 것보다 무언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진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선양에 있는 북한 영사관에 가보기로 마음 먹었다.(중략) 다음날 아침 일찍 북한 영사관으로 갔다. 인공기가 휘날리는 철조망이 처진 건물이 보였는데 중국 경비병이 구석마다 한 명씩 경비를 서고 있을 뿐 썰렁했다.다가가서 입북허가서를 받으러 왔다고 하니 초청장을 보자고 한다. 초청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족 운전기사가 나의 홍보책자를 보여주며 설명하니 10시 반에 다시 오면 안의 사람을 나오라고 해서 만나게는 해준다고 한다. 반은 성공이었다. 초청장이 없으면 십중팔구 문전박대 받는다는 것을 알고 왔다. 알지만 뭐라도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왔다. 발걸음을 옮겨 우리 영사관으로 갔다. 같은 골목에 있었다. 그 골목에 6개국 영사관이 있다고 하는데 그곳은 아침부터 한국비자를 받겠다고 온 사람들로 북적였고 지나가는 동안 여러 명의 비자 브로커가 잡는다. 한국의 영사가 반갑게 나와 맞는다. 선양에서 있을 내 환영 행사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나 입북 문제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북한 영사관 앞은 계속 사람 그림자도 안 보인다. 다행히 아까 그 경비병이 안으로 인터폰 통화를 하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조금 이따가 여자가 굳은 얼굴로 나왔다. 내가 지금까지 달려온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꼭 북한을 통과해서 판문점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니 무뚝뚝한 말투로 잠깐 기다리라고 말한 뒤 들어간다. 이번엔 중년의 남성이 역시 굳은 얼굴로 나와 다시 설명을 하니 초청장을 가져왔냐고 묻는다. 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 통일부장관도 북측에 내 이야기를 전달했고 민화협에서도 내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이제 단둥에 다와 가는데 아직 연락이 없어서 답답해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철문을 열더니 잠시 들어오라고 한다. 앞마당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천지에서 손을 맞잡은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다.그는 위로부터 전달 받은 게 없고 초청장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한다. 초청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왔는데 나는 평양을 거쳐 판문점으로 남북통일을 위해서 뛰어가려고 작년 9월부터 무려 13개월이나 달려왔는데 여기서 내 조국을 달리지 못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냐고 호소했다. 지시 받은 사항은 없어도 거꾸로 여기에서 외무성에 보고할 수는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제야 그가 조금 표정이 부드러워지더니 내 신분증을 보자며 인적사항을 메모한다. “알갔습니다. 위에 보고는 해보겠습니다.” “야호!” 대성공이다. 일단 내가 하루 달리기를 멈추고 온 보람은 있었다. 나는 들고 간 내 홍보 책자와 재외동포 회장이 써준 추천서를 놓고 왔다. 여러 사람들이 내 입북 문제로 여러 방면으로 애를 쓰지만 지금 남북문제가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됐거나 전달이 됐더라도 그쪽의 손이 미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평마사 상임대표 이장희 교수님에게서 베이징의 북측 민화협이 내 인적사항 조회 의뢰가 왔다는 말을 들었다. 아주 좋은 징조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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