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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대 서울시의원, 고향사랑기부제 홍보 개선 필요

    임춘대 서울시의원, 고향사랑기부제 홍보 개선 필요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임춘대 의원(국민의힘·송파3)은 2일 기획경제위원회 기획조정실 행정사무감사에서 고향사랑기부제의 홍보방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3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서울시에서 모금한 기부액은 총 6천 7백 38만 8000원으로 올해 모금액 목표였던 1억 2천 3백만 5000원의 54.8%에 불과해 목표 달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서울시가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를 위해 9월 현재까지 집행한 비용은 총 6천 3백 19만 7000원으로 누적 모금액 6천 7백 38만 8000원과 큰 차이가 없다. 임 의원은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비용과 누적 모금액을 비교해 보았을 때, 서울시의 홍보가 기부금 모금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임 의원은 “홍보라는 것이 단기적인 효과뿐 아니라 장기적인 효과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현재까지의 고향사랑기부제에 대한 홍보는 투입된 비용에 비해 결과가 매우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진행한 홍보의 효과를 분석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당부했다.
  • 왕정순 서울시의원, 고향사랑기부 시 답례품 예약 제공 시스템 도입 제안

    왕정순 서울시의원, 고향사랑기부 시 답례품 예약 제공 시스템 도입 제안

    서울시의회 왕정순 의원(더불어민주당·관악2)이 고향사랑기부에 대한 답례품 제공 시 ‘예약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서울시에 제안했다. 왕 의원은 지난 2일 열린 기획조정실 행정사무감사에서 “서울시의 대표 농산물 브랜드인 ‘경복궁 쌀’과 ‘황실배’가 고향사랑기부에 대한 답례품으로 선정된 것은 아주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수확 및 확보 시기가 맞지 않아 답례품으로 받고 싶어도 ‘품절’이라는 표시 앞에서 실망하는 기부자들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왕 의원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답례품 예약 선택 제공 시스템’ 도입을 서울시에 제안했다. 즉, 추수나 수확시기 등이 맞지 않아 제때 공급할 수 없는 농산물 답례품의 경우, 물량이 확보됐을 때 원하는 기부자에게 우선 전달할 수 있도록 예약 선택 시스템을 답례품 제공 플랫폼에 추가하자는 것이다. 왕 의원은 “많은 시민도, 서울시에 기부하는 많은 기부자도 서울시가 우수한 농산물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라며 “답례품 예약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서울시의 농산물 브랜드의 인지도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브랜드 개발의 동기 유인책으로 활용하는 등 여러 순기능을 부수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상한 기획조정실장은 “답례품 예약 제도는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라며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청춘 갈아넣은 애증의 구로공단, 여전히 젊음이 떠받치네”[내년 60년 맞는 G밸리]

    “청춘 갈아넣은 애증의 구로공단, 여전히 젊음이 떠받치네”[내년 60년 맞는 G밸리]

    전남 순천에서 나고 자란 조창엽(75)씨는 구로공단이 생긴 이듬해인 1965년 언니를 따라 들어온 ‘공순이’ 1세대이다. 그의 나이 열일곱, 기계를 돌려 니트 스웨터를 짜는 링킹사(사시사)가 직업이었다. 집 한 채에 서른 개가 넘는 방이 미로처럼 놓인 구로동의 벌집, 이른바 닭장집이 조씨의 거처였다. 작업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였지만 수출 물량을 맞추려 새벽 2시까지 밤새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하루 18시간의 청춘을 갈아 넣은 대가는 2만원이 채 안 됐다. “새벽까지 일하면 공장에 스웨터를 펼치고 잤는데 몸니가 어찌나 많던지… 혹시나 물건 빼돌릴까 봐 공장 밖에 나갈 땐 몸수색도 심했죠. 집에 가면 몸이 편키나 한가. 같은 방 쓰던 친구는 연탄가스 맡고 죽고….” 서울 유일의 국가산업단지, 구로공단의 번성을 이끈 주역은 공순이라 불리던 여성들이었다. 1987년 공단 노동자는 7만 4000명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61%가 여성이었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 ‘금천 순이의 집’이 수집한 1970~1975년 통계에 따르면 구로공단 여공의 절반이 20세 미만이었고 51%가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생이었다. 오빠와 동생들의 학비를 대려고 초등교육만 마치고 상경한 10대 농촌 소녀들은 구로공단에서 저임금 중노동을 견디며 가발과 섬유, 완구 등을 만들었다. 군사정권은 한때 수출액의 10%를 견인한 이들을 ‘수출역군’, ‘수출의 여인들’이라며 치켜세웠다. 애국적인 수식어에 여공들의 피와 땀, 눈물은 가려졌다. 소작농의 셋째 딸인 강명자(61)씨는 열여섯 때 고향인 전남 나주를 떠났다. 가난한 집을 벗어나 낮에는 일해서 돈 벌고 밤에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1982년 미싱사로 구로공단에 발을 디뎠다. 사글세 낼 돈이 없어 벌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공장에 딸린 기숙사에 묵었다. “그때는 순진해서 공장에서 재워 주는 게 고마웠어요. 외출, 외박도 안 되고 밤 10시면 불 끄고 자야 했지요. 내일 일찍 일어나 미싱을 돌려야 하는 기계였으니까요.” 강씨의 하루도 조씨의 일과와 다를 바 없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본업을 마치고 2시간 더 잔업을 했으며 새벽 5시까지 철야도 부지기수였다. 한 달간 초과근무만 120시간 한 적도 있었다. 싸구려 각성제 ‘타이밍’을 먹으며 쏟아지는 잠을 쫓았다. “유럽 가는 화물선 출항일이 임박하면 무조건 철야죠 뭐. 작업반장은 돌아다니면서 쪼아대지, 에어컨도 없으니 땀은 뻘뻘 나지…. 먼지 구덩이 속에서 쉴 새 없이 미싱을 돌렸어요. 생리대 갈 시간도 없이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기면서요.” 강씨의 삶을 바꾼 건 책이었다. 야학에서 만난 대학생 언니들이 건넨 ‘전태일 평전’, 노동 수기인 ‘어느 돌멩이의 외침’,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기숙사 사감 눈을 피해 창가에 비친 가로등 불빛과 달빛에 의지하며 밤새워 책을 읽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독재정권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동료들을 설득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운동을 시작한 것은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강씨는 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발단이 된 대우어패럴 노조간부 3인 구속사건의 주인공이다. 그의 구속 이후 대우어패럴과 가리봉전자, 효성물산, 선일섬유 노조가 함께 파업에 나섰다. 농성 과정에 43명이 구속되고 370명이 구류됐으며 700여명이 해고당했다. 노동운동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사건이었지만 파업 이후 강씨의 삶은 더욱 곤궁해졌다. 노동운동을 했다는 주홍글씨 탓에 구로공단 안에선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공단 변두리의 영세한 작업장에서 열악한 처우를 받으며 일해야 했다. 나이 든 여공들의 삶은 여전히 신산하다. 조씨는 5년 전 70살이 될 때까지 공장 일을 계속했다. 아이를 출산하고 한 달 남짓 쉬었던 걸 빼면 반세기 이상 스웨터를 짰다. 2018년 그의 마지막 일당은 4만 5000원, 월급으로 따지면 100만원 남짓이다. 강씨는 아직도 비정규직 미싱사로 일한다.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일이 있을 때만 불러 주는 작은 일터지만 노후에 대한 불안이 그를 재봉틀 앞으로 떠민다. 첨단 지식산업단지 G밸리로 변모한 구로공단은 여전히 청춘 노동자들의 무대다. 출퇴근 시간 가산디지털단지와 남구로역에는 20~30대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구로공단 미싱사 출신으로 노동운동을 거쳐 정치에 발을 디딘 노경숙(63) 구로구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공순이, 공돌이들이 다니던 해피랜드 길이 있었어요. 출퇴근 시간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죠. G밸리가 들어서면서 그 길을 IT 직종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어요.” 강씨는 게임기업 넷마블 사옥인 39층 높이 G타워에 복잡한 감정이 든다. “넷마블은 구로공단의 등대예요. 24시간 환하게 불이 켜져 있죠. 구로공단은 여전히 20대가 꿈꾸고 선망하는 공간인 듯해요. 가끔 저들이 사라지고 난 다음의 구로공단은 누가, 어떤 모습으로 채울까 궁금해요.” 노 의원은 G밸리의 배후 지역도 동반 성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단을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숙제가 남았어요. 가리봉동 벌집촌도 해결해야죠. 여공들이 머물던 열악한 공간에 이제는 중국 교포, 일용직들이 살아요. 주거 여건을 개선하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 한국선수권 테니스 ‘역전 우승’ 이재문 “돌아가신 아버지께 영광을”

    한국선수권 테니스 ‘역전 우승’ 이재문 “돌아가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아가신 아버지께 우승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이재문(30·KDB산업은행)이 제78회 한국테니스선수권대회 남자 단식에서 1년 만에 설욕전을 펼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재문은 5일 경북 김천 종합스포츠타운에서 열린 남자 단식 결승에서 정윤성(의정부시청)에게 2-1(1-6 6-3 7-5)로 이겼다. 지난해 결승에서 정윤성에게 0-2(3-6 2-6)로 졌던 이재문은 1세트를 내주고도 기여코 역전 우승을 했다.이재문은 경기 후 “우승이 정말 간절했다. 지난해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는데 올해 극복한 것 같아서 좋다”면서 “복식에서도 우승했으면 정홍 선수와 함께 트로피를 들었을텐데 2관왕을 못해 아쉽지만 행복하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일본 유학 중에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생전에 농담 삼아 윔블던에서 트로피 들고 있는 걸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고향 김천에서 트로피를 들고 있으니 잘 컸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다. 내년 말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는 이재문은 “내년 챌린저 예선에 도전한 후 내후년 그랜드슬램 예선에서 뛰는 걸 목표로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백다연(21·NH농협은행)은 이날 김나리(수원시청)와 여자 단식 결승에서 1세트 게임스코어 5-0으로 앞선 상황에서 김나리가 왼쪽 허벅지 부상으로 기권해 우승이 확정됐다. 백다연은 “나리 언니의 부상으로 우승하게 돼 마음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우승해서 기쁘다”면서 “언니와 최고의 컨디션으로 해보고 싶었는데 언니가 이번 대회에서 복식 혼복까지 다 하느라 몸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승하면 슬랩백 세리머니를 해보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웃어 보였다.한국선수권에서 처음 우승한 백다연은 오는 10일부터 11일까지 이틀간 열리는 여자 국가대항전인 빌리진킹컵 플레이오프 브라질 원정 경기 출전을 위해 6일 오전 1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한다. 백다연은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여자 복식에서 정보영(NH농협은행)과 한 조로 동메달을 딴 순간을 꼽았다. 백다연은 “(4강에서 져서) 너무 아깝기도 했고 복식하면서 워낙 재미있었다”면서 “아시안게임 숙소 TV에 성적 낸 사람만 메달과 사진이 함께 뜬다. 나도 저 TV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돼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 해남미남축제 ‘맛과 멋에 반하다’ 대성황

    해남미남축제 ‘맛과 멋에 반하다’ 대성황

    올해 해남미남축제는 ‘땅끝 해남’의 맛과 멋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열린 축제는 화창한 날씨에 첫날부터 6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축제의 절정인 4일 14만명이 축제장을 방문해 축제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기록을 세웠다. 해남미남축제 3일 동안 총24만여명이 축제장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축제는 전국에서 가장 큰 농어업군 해남에서 생산되는 농수특산물과 이를 활용한 맛있는 먹거리와 즐길거리가 풍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미남주제관’에서는 해남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스토리푸드’ 100선을 선보였다. 이를 테마밥상으로 활용한 ‘미남다이닝’ 행사가 처음 열려 큰 호응을 얻었다. 해남의 외식업체들이 참여한 ‘미남푸드관’과 읍면 단체들이 해남농수특산물로 만든 주전부리를 선보이는 ‘미남주전부리관’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관람객들의 입이 즐거웠다. 축제기간 두륜산 주변 상가와 음식점들은 음료수를 무료로 제공하고 친절 서비스에 나섰다. 음식 재료가 일찌감치 떨어질 정도였다. 모처럼 지역경제가 활기를 띄는 순간이었다. 개막행사에서는 해남 먹거리 축제를 찾은 관람객들을 위해 해남군 14개 읍면 주민들은 특산물과 대표음식을 내놓고 해남의 맛 퍼레이드를 벌이고 ‘진상 퍼포먼스’를 펼쳐 큰 박수를 받았다. 야간에 열린 개막축하쇼와 낭만콘서트에도 사상 최대 인파가 몰려 깊어가는 두륜산의 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추억의 구이터’ 등 먹거리 체험장과 다채롭게 마련된 가족단위 체험행사장도 하루 종일 관람객으로 북적였다.해를 거듭하면서 숙달된 행사 운영도 돋보였다. 관광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축제기간에 단 한건의 안전사고가 나지 않았다. 소방서와 경찰서의 협조가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시음장과 차봉사장에서는 일회용품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탄소중립 실천·참여부스를 운영했다. 친환경 축제가 된 셈이다. 명현관 군수는“땅끝 해남의 풍요로운 계절을 담은 해남미남축제가 많은 관광객이 찾은 가운데서도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며, 친절한 축제로 마무리됐다. 내년에는 전국의 모든 국민들께 더욱 건강한 해남의 맛과 멋을 전하는 축제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 제12회 충무로영화제 폐막…6일간 여정 마무리

    제12회 충무로영화제 폐막…6일간 여정 마무리

    서울 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센터(사장 조세현)와 한국영화인총연합회(회장 양윤호)가 주최·주관하는 ‘제12회 서울충무로영화제’가 지난 1일 폐막식을 끝으로 6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지난달 27일 충무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이번 영화제는 충무아트센터와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등 서울 중구 일대에서 6일간 진행됐다. 고전 영화부터 최근 화제작까지 36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4000여명의 관객과 함께 했다. 양윤호 집행위원장은 이번 서울충무로영화제가 “한국영화의 고향 충무로에서 선배 영화인들과 빛나는 신예 영화인들 그리고 시민들 모두가 함께 즐기는 영화제로 재도약했다”고 평가했다. 폐막식은 지난 1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렸다. 폐막식에서는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에게 공로상을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상자로는 이장호 영화감독과 송길한 작가, 이석구 배우, 강대영 분장사, 이우석 영화제작자가 선정됐다. 또 일본 영화계 명장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최신작 ‘배드랜드’(Bad Lands)가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하라다 마사토 감독과 하라다 유진 프로듀서가 한국을 찾았다. 김아론 수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서울충무로영화제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했다고 밝혔다. 김 프로그래머는 “이번 영화제에서 충무로 콜렉티브, 포커스 온 충무로, 충무로 초이스, 마스터스 노트를 대표 섹션으로 만들었다”며 “섹션들이 영속성 있고 다양하게 성장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 70년대 ‘오빠 부대’ 원조…‘행복의 나라로’ 포크 가수 홍민 별세

    70년대 ‘오빠 부대’ 원조…‘행복의 나라로’ 포크 가수 홍민 별세

    대표곡 ‘고별’·‘행복의 나라로’·‘고향초’ 등을 부른 포크 가수 홍민이 2일 별세했다. 76세. 1947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1년 장미라와 듀엣으로 발표한 김동주 작곡 ‘그리운 사람’으로 데뷔했다. 그는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로 부른 번안곡 ‘고별’과 박시춘 작곡의 ‘고향초’ 등 여러 히트곡을 내며 1970년대를 풍미했다. 홍민은 한 때 이수만, 장현과 함께 ‘마삼(馬三)트리오’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고, 가수 김도향은 그를 가리켜 “오빠 부대의 원조”라고 칭했다. 고인은 지난 7월 KBS 1TV의 ‘가요무대’에 출연해 기타를 메고 ‘행복의 나라로’를 열창했다. 홍민은 당시 암 투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출연을 자청해 “나의 마지막 고별무대가 될 것 같으니 많은 분이 시청해달라”라고 마지막 무대를 예고했다. 2013년 제천시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고인은 올해 제천시에 장학금 3000만원을 기부한 바 있다. 빈소는 충북 제천시 제천세종장례식장. 발인은 4일 오전 7시.
  • ‘중국 2인자’ 앞 허리 세번 굽힌 시진핑…리커창 전 총리 애도

    ‘중국 2인자’ 앞 허리 세번 굽힌 시진핑…리커창 전 총리 애도

    지난달 27일 중국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한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의 영결식과 화장(火葬)이 2일 베이징에서 엄수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애도를 표했다. 신화통신은 이날 오후 3시(현지시간)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노련하고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 국무원 전 총리인 리커창 동지의 시신이 2일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원에서 화장됐다”고 밝혔다. 중국중앙TV(CCTV)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리 전 총리 시신은 검은 정장 차림에 안경을 쓴 채 흰색 침구 위에 누워 있었다. 시신은 붉은색 중국공산당 깃발로 덮인 상태로, 주변엔 화초가 둘렸다.시 주석은 오전 9시쯤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들은 리 전 총리 시신 앞에서 세 차례 허리를 굽혀 조의를 표한 뒤 유족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리창 현 총리와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비롯해 왕후닝·차이치·딩쉐샹·리시·한정 등 당정 지도자들도 시 주석에 이어 묵념했다. 리 전 총리와 함께 중국공산당 내 주요 파벌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계를 이끌었던 후진타오 전 주석은 추모 화환을 보냈다. 신화통신은 “당과 국가의 관련 지도 동지들이 차례로 (리 전 총리를) 송별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애도를 표했다”며 “당 중앙과 국가기관 관련 부문 책임 동지, 리커창 동지의 생전 친구, 고향 대표 또한 송별했다”고 설명했다. 중화권 매체들은 이번 장례가 지난해 말과 2019년 7월 각각 엄수된 장쩌민 전 주석, 리펑 전 총리의 영결식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전했다.1955년생인 리 전 총리는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공청단 제1서기와 허난성 당위원회 서기 겸 성장, 랴오닝성 당위원회 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중국공산당 내 주요 파벌인 공청단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당내에선 비슷한 연배 가운데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그는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기 전에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 서기와 함께 후 전 주석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태자당(혁명 원로 자제 그룹)계와 장쩌민계인 상하이방이 연합해 시 주석을 밀어주면서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전 총리는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뒤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 2인자’인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영향력이 갈수록 약해지자 올해 3월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넘기고 퇴임했다.
  • 라파 국경 넘는 2번째 명단 발표… 유니세프 “어린이 하루 400명씩 사상”

    라파 국경 넘는 2번째 명단 발표… 유니세프 “어린이 하루 400명씩 사상”

    이집트 시나이 반도와 연결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 국경 검문소를 두번째로 건너는 사람들의 명단이 발표된 가운데 가자지구 내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가자지구 국경관리 당국은 2일(현지시간) 오전 일찍 라파 국경 검문소를 통해 이집트로 떠날 수 있는 외국인 약 600명의 명단을 추가로 발표했다. 이 명단에는 미국인 400명을 포함해 대한민국, 멕시코, 헝가리, 크로아티아, 아제르바이잔, 그리스, 차드, 바레인, 이탈리아, 스위스, 스리랑카, 네덜란드, 벨기에, 북마케도니아 출신이 포함되었다. 앞서 이집트 국영 텔레비전 채널인 알 카헤라(Al Qahera)은 전날 이집트 소식통과 팔레스타인 관리를 인용해 최소 361명의 외국 여권 소지자와 중상을 입은 45명의 팔레스타인인과 그 가족을 포함한 500명이 탄 버스가 이집트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 국경인 라파 건널목을 지나 이집트의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보도했다. 이번 라파 국경 개방은 지난달 31일 밤 늦게 이스라엘, 이집트, 미국, 카타르, 하마스가 참여한 협상이 타결되며 이루어졌다. 이집트의 가자지구 국경 개방 계획을 알고 있는 한 익명의 외교 소식통은 “외국 여권 소지자를 포함해 약 7500명이 약 2주간 가자 지구에서 이집트로 빠져나올 것”이라고 말했다.NYT는 이날 일부 외국 여권 소지자들은 라파 국경에 도착했으나 가족들이 공식 피난민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들과 슬픈 작별 인사를 나눠야했다고 보도했다. 가자지구가 고향이지만 호주 시드니에서 오래 산 압달라 다할란(76)은 1년 전 재혼한 팔레스타인 아내를 두고 갈 수 없어 다시 라파 국경검문소 앞까지 갔따가 칸 유니스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갔다. 나디아 살라(53)는 불가리아 국적을 가진 장녀 라마 엘딘이 안전하게 국경을 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작별인사를 했다. 오스트리아 시민권자 하이탐 슈랍(54)은 외국 국적이 없는 남편과 최근 결혼한 딸 다야나(23)를 두고 세 아들과 아내와 국경을 넘어야 했다. 이날 가자지구로 떠날 수 있게 된 사람들 중에는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직원 22명 전원이 포함됐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성명에서 “전문 의료팀을 포함한 새로운 국제 직원 팀이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가자지구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도 “300명의 팔레스타인 직원과 그 가족은 여전히 가자지구에 갇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가자 지구를 떠나고 싶은 사람들은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떠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하는 동시에 다시 가자지구로 돌아올 권리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소수의 미국인이 라파 국경을 통해 이집트로 건너가는 가자 지구를 떠날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좋은 단계”라며 “미국인들을 가자지구에서 최대한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전날부터 또다시 정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NYT가 보도했다. 가자지구의 주요 통신 사업자는 오전 4시경 서비스가 중단되었다고 밝혔다. 지난 주말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시작하며 34시간 동안의 정전을 겪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수요일 라파 국경 교차로에서 이집트에서 물, 식량, 의료품이 담긴 트럭 55대를 받았다고 밝혔으나 이스라엘이 여전히 연료를 공갑하지 않아 구급차, 발전기는 멈춰 있다고 밝혔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사무부총장은 “전투를 중단하는 것이 가자지구에 식량, 물, 의약품, 연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인질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했다. 아울러 가자 보건부는 10월 7일 이후 이날까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어린이 3648명을 포함해 좁은 해안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 최소 8796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이날 또다시 가자지구 자발리야 난민캠프에 공습을 가했다. IDF는 “가자지구의 자발리아 난민 캠프에 대한 두 번째 공격을 가해 하마스의 대전차 미사일부대장인 무함마드 아사르를 사살했다”며 “하마스는 의도적으로 민간인 건주 건물 아래와 주변에 테러 인프라를 구축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아동기구(UNICEF)는 이날 성명에서 “가자지구의 자발리야 캠프에서 어제와 오늘 또다시 공격으로 인한 학살 장면은 끔찍하고 끔찍하다”고 비판했다. 유니세프는 이날 지난 25일간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의 공습이 지속되면서 매일 평균 400명의 어린이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유니세프는 “이것은 뉴노멀(New normal)이 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가자지구 내 노르웨이 구호기관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인 유세프 함마쉬는 자신이 나고 자란 자발리야 난민 캠프가 파괴된 것을 슬퍼했다. 현재 칸 유니스에 있는 피난처에서 머물고 있는 그는 NYT에 보낸 음성 메모에서 “자신의 가족이 여러 세대에 걸쳐 그곳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발리야는 저에게 큰 의미가 있다”며 “캠프 그 이상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십 년 전 이스라엘 건국으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세워진 이 캠프가 촘촘하고 단단하게 짜여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곳은 그는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콘크리트 단층집들이 서로 나란히 붙어 있는 주거지구”라며 “넓은 길은 1미터도 채 안 되고, 그들이 폭격을 가한 곳은 수용소의 중부”라고 설명했다. NYT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가자지구 자발리야 난민캠프 인근에서 약 0.5마일(약 800m) 떨어진 곳에서 이스라엘의 또 다른 공습이 발생했다. 파괴 규모는 비슷한 수준으로 대형 건물 몇 채가 완전히 붕괴됐다. 이 영상에는 구조대원과 주민들이 잔해를 파헤치고, 사상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잔해 속에서 끄집어 는 모습이 포착됐다.
  • “사람과 사람을 잇는 제주 올레 걸으며 새 삶을 얻었어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제주 올레 걸으며 새 삶을 얻었어요”

    “병마와 싸우던 지난 2011년 사람과 사람을 잇는 제주올레길을 걸으며 제2의 인생을 얻었어요.” 김호진(63) 사단법인 인제천리길 대표가 제주올레걷기축제 마지막날인 오는 4일 폐막식에서 제주올레상 가치부문에서 수상하게 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김 대표의 제주올레길과의 인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2009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30개월간 병마와 싸우면서 몸을 추스르기 위해 2011년 3월 15일부터 추운 강원도 대신 따뜻한 제주에서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걷다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몸도 좋아지는 것 같고. 아껴서 걷기 위해 1년에 4코스씩만 걸으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설상가상 2013년 이맘때 축제날 16코스를 걷다가 소변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나와 급하게 서울병원으로 갔더니 방광암 3기 진단을 받았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오래 못 살것 같아 부지런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면서 “못다 건 16코스부터 다시 걸었다. 병마와 싸우며 치료받는 중간중간 걷고 또 걸어 결국 2014년 마침내 완주하게 됐다”고 웃었다. 특히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스페인 산티아고길에서 고향 제주를 봤듯이, 나도 제주올레길에서 고향 인제를 떠올렸다”면서 “2015년 인제 천리길을 열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2014년부터 2년간 인제천리길을 탐사를 끝내고 마침내 2016년 세상에 선보였다. 제주올레길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치유의 길이라면 인제천리길은 자연과 공생공존하는 공존의 길이란다. 탐사때 곰 발자국 발견했으며 자연상태의 곰 6마리가 산다는 사실을 발견해 언론의 이슈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총 36개 코스 505㎞의 길이 완성됐다. 만해(한용운) 의병의 길, 백담사가는 길 처럼 400명의 독립운동가의 길이라는 스토리까지 입히며 인제천리길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도 했다. 그는 “제주 올레길을 처음에 걸을 땐 서 이사장이 왜 자꾸 동네 골목골목을 돌아가게 만드는지 이해가 안됐지만 동네 구석구석 돌게 한 이유를 지금은 알 것 같다”면서 “저도 인제천리길을 만들면서 철저하게 동네를 연결하는 원칙을 지켜갔다”며 웃었다. 길은 곧 삶이고 삶은 곧 사람이기 때문이다.현재도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와 팔이 마비증세가 있어 보조기구를 차고 다니지만 그는 쿨하게 “아무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이후 2017년 한 번 더 완주했다. 두번째 걸을 땐 안 보이던 풍경도 보였단다. 제주올레길 12개코스를 휠체어 타고 돌았는데 버스 탔을 때와 택시 탔을 때 보이는 풍경이 다르듯, 안 보이던 풍경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인제천리길을 안심하게 다닐수 있도록 리본을 더욱 촘촘하게 내걸기도 했다. 그는 길에서 병마를 이겨냈고 아픔을 치유했다. 주위 사람들도 그에게 “제주올레가 그를 살렸다”라는 말할 정도였다. 이번 수상금으로 사무실 얻는 중도금내게 돼 기쁘다는 그는 “걸으면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면서 “자연과 대화하고 자기자신과 대화하고 함께 걷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힐링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4일 제주올레걷기축제 폐막일 제주올레상 시상식에서는 10년 넘게 클린올레와 ‘아카자봉 함께걷기’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태수 씨가 기여부문에서 수상한다. 제5회 제주올레상 위원회 이병남 위원장(전 LG인화원 원장)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제주올레는 지속가능한 길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제주올레의 가치가 길 위에서 오랫동안 지켜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 남방큰돌고래와 공존하기… 제주 ‘플로깅’ 바람

    남방큰돌고래와 공존하기… 제주 ‘플로깅’ 바람

    “남방큰돌고래와 공존하려면 제주해양 환경 정화활동부터 해야죠.” 제주도는 고향사랑기부금 제1호 사업으로 ‘제주남방큰돌고래 친구와 함께하는 플로깅’을 제주 곳곳에서 잇달아 진행한다고 1일 밝혔다. 이번 릴레이 플로깅은 남방큰돌고래 등 해양생물을 보호하고 청정한 제주바다를 지키는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해 진행된다. 오는 4일 오전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에서 출발한다. 전문 다이버들 50여명이 바닷속 해양쓰레기를 수거하는 ‘플로빙’을 한다. 영락리는 신도리 바다와 함께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출몰하는 바다 중 한 곳이다. 현재 개체수가 120여마리밖에 남지 않아 멸종위기 국제보호종인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연안 난개발로 인한 서식처 감소와 오염물질 해양 유입, 낚싯줄과 폐그물 같은 해양쓰레기 등으로 인해 등지느러미가 손상되고, 꼬리지느러미가 잘리는 등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8월 15일에는 어미 돌고래가 새끼 사체를 힘겹게 업고 다니는 안타까운 모습이 포착됐음에도 대정읍 인근에선 관광선박 4척이 동시에 돌고래 관광을 하는 모습이 목격돼 공분을 산 바 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와 함께하는 플로깅을 고향사랑기부금 1호사업으로 정한 것은 도외인들이 제주환경에 관심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9월 기준 지금까지 6억 6900만원의 기금이 모였는데 이 가운데 1억원을 플로깅사업에 투입한다. 11일에는 함덕해변에서, 25일에는 협재해변에서 오후 1~4시 플로깅이 열리며 관광객과 도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미션을 통한 플로깅, 비치코밍, 어싱, 바다 자율감각 쾌감 반응(ASMR), 바다환경교실도 함께 진행된다. 또 다음달 3일에는 남방큰돌고래 친구와 함께하는 해양환경 콘서트가 웰컴센터에서 열린다. ‘과학의 통역사’로 불리는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이 강사로 나서 토크쇼 형식으로 펼쳐진다. 정재철 제주도 해양수산국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고향사랑기부금이 제주의 청정 바다 보전을 위해 소중하게 쓰이기를기 바란다”며 “앞으로도 청정 제주바다를 지키고 가꾸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우크라 전쟁 피해서 이스라엘로 왔는데 여기서 또 전쟁 만나”

    우크라이나에서 살다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이스라엘로 들어간 유대인 아이들이 새로운 전쟁으로 더 큰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3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서쪽 알루밈 보육원에서 지내던 2~18세 아이 100명은 지난해 3월 초 두 나라의 전쟁을 피해 이스라엘 남부 지중해 인근 아슈켈론에 자리를 잡았다. 일주일 내내 산맥을 넘고 루마니아를 지나 탈출한 터였다. 그나마 안도하던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미사일 수백 발이 마을에 떨어졌다. 가자지구에서 북쪽으로 13㎞ 정도 떨어진 곳이라 하마스 대원들이 쳐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금세 평온을 빼앗기고 말았다. 아이들은 다시 이스라엘 중부 크파르 차바드의 임시 시설로 옮겨졌다. 이들을 우크라이나에서 데려온 구호단체 국제기독유대펠로십(IFCJ)이 도움을 줬다. 이곳에 머무는 열세 살 마샤(가명)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만 전쟁 중이고, 앉아서 안전하게 있을 곳도 없어서 힘들다”면서 “부모님, 학교, 친구들 모두 그립다”며 울상을 지었다. 마샤의 친구 차니(가명)는 “하마스 공격 전에는 이스라엘을 고향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어디가 안전한지 모르겠다”면서 “전쟁을 피하려면 또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게 너무 무섭다”며 고개를 떨궜다. 아이들을 인솔해 이스라엘로 온 시설 관리자는 “전쟁이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진다”면서 “로켓 공격 몇분 만에 뭔가 상황이 아주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과 직원들은 엄청난 공포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날 경보음이 멈추질 않아서 대피소에서 6시간이나 있었다”며 “사방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고 사방에 불이 나고 파괴됐다”고 돌이켰다.
  • 남방큰돌고래와의 공존을 위하여… 플로깅 함께 해요

    남방큰돌고래와의 공존을 위하여… 플로깅 함께 해요

    “남방큰돌고래와 공존하려면 제주해양 환경 정화활동부터 해야죠.” 제주특별자치도는 고향사랑기부금 제1호 사업으로 ‘제주남방큰돌고래 친구와 함께하는 플로깅’을 제주 곳곳에서 잇달아 진행한다고 1일 밝혔다. 이번 릴레이 플로깅은 남방큰돌고래 등 해양생물을 보호하고 청정한 제주바다를 지키는 분위기 확산을 위한 것으로 오는 4일 오전 10시 30분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에서 출발한다. 전문 다이버들 50여명이 바다 속 해양쓰레기를 수거하는 ‘플로빙’ 활동을 한다. 대정읍 영락리는 신도리 바다와 함께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출몰하는 바다 중 한 곳이다. 현재 개체수가 120여마리 밖에 남지 않아 멸종위기 국제보호종인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연안 난개발에 따른 서식처의 감소와 오염물질의 지속적인 해양 유입에 따른 서식 환경 악화, 해수온도의 급격한 상승, 낚시줄과 폐그물 그리고 어구를 비롯한 해양쓰레기 등으로 인해 등지느러미가 손상되고, 꼬리지느러미가 잘려나가는 등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8월 15일에는 어미 돌고래가 새끼 사체를 힘겹게 업고 다니는 안타까운 모습이 포착됐음에도 불구하고 대정읍 인근에선 관광선박 4척이 동시에 돌고래 관광을 하는 모습이 목격돼 공분을 산 바 있다.제주남방큰돌고래와 함께 플로깅을 고향사랑기부금 1호사업으로 정한 것은 도외인들이 제주환경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9월말 기준 지금까지 6억 6900만원의 기금이 모였는데 이 가운데 1억원을 플로깅사업에 투입된다. 오는 11일에는 함덕해변에서, 25일에는 협재해변에서 오후 1~4시 관광객과 도민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플로깅도 마련된다. 미션을 통한 플로깅, 비치코밍, 어싱, 바다 자율감각 쾌감 반응(ASMR), 바다환경교실도 함께 진행된다. 체험프로그램으로는 고래꼬리 만들기, 바다환경 책 전시, 청정 제주바다 그리기, 부대행사로는 타투스티커, 환경룰렛퀴즈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또한 12월 3일에는 남방큰돌고래 친구와 함께하는 해양환경 콘서트가 웰컴센터에서 열린다. ‘과학의 통역사’로 불리는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이 강사로 나서 토크쇼 형식으로 펼쳐진다. 정재철 제주도 해양수산국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고향사랑기부금이 제주의 청정 바다 보전을 위해 소중하게 쓰여지기 바란다”며 “앞으로도 청정 제주바다를 지키고 가꾸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연 이자 5000% 폭리 취한 일당 109명 검거

    연 이자 5000% 폭리 취한 일당 109명 검거

    3600여명으로 부터 최고 5000%가 넘는 이자를 받아온 불법 사금융업체 관계자 109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인천미추홀경찰서는 지난 3월 부터 최근 까지 은행대출이 어려윤 경제적 취약계층을 상대로 7000여 회에 걸쳐 150억 원 상당을 무등록 대부 한 불법 사금융업체 57곳을 적발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 중 불법사금융 범죄단체를 조직해 운영한 혐의 등으로 총책 A씨를 포함해 가담 및 불법 정도가 중한 6명을 구속하고, 단순 가담자와 개인 사채업자 103명을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겼다.이들 대부업자들은 고향 선·후배 등 지인들을 모집해 콜팀, 출동·면담팀, 인출팀 등 역할을 분담해 계획적으로 범행을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터넷 광고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연락해 온 피해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원금과 높은 이자를 갚지 않으면 욕설과 함께 죽이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은 미리 확보한 채무자의 개인정보와 사진 등을 이용해 채무자의 가족, 지인들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수법으로 채무자들을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적발업체 대부분은 범행 후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폰, 대포통장을 이용하거나 조직원들 간에는 가명을 사용랬다. 경찰은 끈질긴 추적 끝에 현금 2억 1000만원을 압수한데 이어 은닉재산 1억 7000만원 상당을 처분금지 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업체를 이용할 때에는 반드시 등록업체 여부를 확인하고, 법정이자율 초과를 요구하거나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을 경우 즉시 112에 신고 해 달라고 당부 했다.
  •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인물 10걸 ❿ 1922.10.31 무솔리니, 39세에 총리 등극베니토 무솔리니(1883.7.29~1945.4.18·이탈리아)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독일), 도조 히데키(1884~1948·일본)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 3대 인물로 유명하다. 셋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로 꼽히기도 한다. 3형제 중 맏아들 무솔리니는 아버지의 대장간에 나가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름도 멕시코의 혁명가 베니토 후아레스(1806~1872)를 따라 지었다. 집에선 가톨릭 신앙에 충실한 초등학교 교사 어머니 무릎에 앉아 성경을 배웠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영향을 더 받았다. 1902년 무솔리니는 병역을 피해 스위스로 이민했다. 그는 제네바에서 머물며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조르주 소렐(1847~1922),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의 사상을 깨우쳤다. 그곳에 망명해 있던 안젤리카 발라바노프(1878~1965),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과 같은 러시아 마르크시스트도 만났다. 1904년 스위스는 무솔리니를 이탈리아로 추방했다. 무솔리니는 1905년부터 2년간 군 복무를 마쳤다. 1908년 무솔리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를 받던 트렌토로 가서 노동당 서기에 올랐다. 정치 신문 ‘라보니레 델 라보라토레’(노동자의 미래) 편집진도 맡았다. 1910년엔 고향인 포를리로 돌아가 주간지 ‘로타 디 클라세’(계급 투쟁)의 편집진이 되었다. 이후 무솔리니는 사회주의 운동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11년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리비아 점령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탄했다가 5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석방된 뒤 무솔리니는 사회당에서 전쟁을 지지한 수정주의자와 정쟁에서 승리해 기관지 ‘아반티’(전진)의 편집장에 선임됐다. 무솔리니는 2만명이던 기관지 독자를 10만명으로 늘렸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9개월 뒤 수류탄 폭발로 중상을 입었다. 1917년 8월 병상에서 전역한 무솔리니는 사회당과 결별을 선언했다. 당시 “사회주의 이론은 죽었다. 남은 것은 원한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1919년 3월 무솔리니는 밀라노에서 200여명으로 구성된 최초의 파쇼 ‘파르시 이탈리아니 디 콤바티멘토’(이탈리아 투쟁 결사)를 창립했다. 모든 사회 계급의 구분과 계급 투쟁을 부정하는 이념에 국가 부흥을 염원하던 국민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급격히 세력을 확장한 끝에 1921년 ‘국가 파시스트당’(Partito Nazionale Fascista)을 창당했다. 같은 해 무솔리니는 의회 진출에 성공한다. 더욱 힘을 얻은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은 1922년 10월 27일 로마 진군을 감행했다. 당내 준군사 조직인 ‘검은 셔츠단’을 앞세운 쿠데타로 루이지 팍타(1861~1930)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다음날 무솔리니는 군부, 자본가, 우익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리에 올랐다. 만 39세였다. 2014년 취임한 마테오 렌치(1975.1.11~현재) 전 총리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무솔리니는 권력을 독점했다. 7개 장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비밀경찰인 ‘반파쇼 분자 진압을 위한 조직’(Organizzazione per la Vigilanza e la Repressione dell’Antifascismo, OVRA)을 창설했다. 무솔리니는 이러한 철권통치로 반대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1925년부터 1927년 사이 무솔리니는 권력을 휘두르는 데 걸리적거리는 모든 헌법 조항들을 폐기하고 이탈리아를 경찰국가로 변모시켰다. 1928년엔 파시스트당을 뺀 정당 활동은 금지됐다. 같은 해 의회가 해산되고 파시즘 대의회가 대신했다. 이탈리아 제국은 스스로를 신로마 제국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팽창주의를 추구한 이탈리아 파시즘은 결국 에티오피아를 침략한다. 또 반종교주의, 특히 반가톨릭주의로부터 교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스페인 내전에 개입했다. 1936년 7월 무솔리니는 공군 전투비행단 선발대를 스페인으로 파견했다. 이탈리아군은 1939년까지 반란을 일으킨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를 지원했다. 그 결과 이탈리와와 프랑스, 영국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으며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동맹을 맺는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즉각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이탈리아는 즉각 참전하진 않았다. 1940년 들어 전황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솔리니는 독일의 승전으로 곧 종전을 맞을 것으로 판단해 6월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1941년 6월 무솔리니는 소련에 전쟁을 선포하고 군대를 진군시켰다. 이후 일본 제국이 진주만 사건을 일으키자 이번엔 미국에도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1942년 이후 전황은 이탈리아에 불리해졌다. 대대적인 후퇴가 계속됐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에 이탈리아는 패배를 눈앞에 뒀다. 연합군의 이탈리아 본토 폭격으로 석유, 석탄과 같은 자원을 공급받지 못했다. 여기에다 곡물 수급난으로 가격이 폭등했다. 1943년 들어 무솔리니의 선전술은 더 이상 국민 마음을 붙들 수 없었다. 그들은 바티칸 라디오나 라디오 런던을 들으며 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3월 이탈리아 북부 공업도시에서 1925년 이래 최대의 파업이 벌어졌다. 또한 최대의 공업도시 밀라노와 토리노는 공습을 피해 노동자 가족들을 소개하면서 생산이 멈췄다.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로 인해 이를 묵인하는 무솔리니를 대놓고 반대했다. 일찍이 무솔리니는 아프리카 전선과 튀니지에서 패퇴하자 히틀러에게 서부 전선으로부터 공격해 오는 연합국과의 전쟁에 집중해달라고 간청했다. 아프리카와 튀니지를 얻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겨눌 다음 목표는 당연히 이탈리아 반도 본토이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 며칠 후 무솔리니는 해외 군대의 회군을 지시했다. 이에 놀란 히틀러는 7월 19일 이탈리아 북부에서 무솔리니와 회동했다. 무솔리니는 더 이상 독일의 말만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솔리니는 이날 역사상 최초로 로마가 폭격을 당했다는 최악의 소식을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 안에서마저 무솔리니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무솔리니에 대한 불신임안이 대의회에서 19 대 7로 가결됐다.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1869~1947)는 무솔리니를 왕궁으로 불러 해임을 통고했다. 무솔리니는 왕궁을 나오자마자 근위대에 의해 체포됐다. 호텔에 연금됐던 무솔리니는 9월 12일 나치 독일 무장친위대 72명으로 이뤄진 구조대에 의해 구출된다. 독일군은 왕가와 내각인사를 체포하고 무솔리니의 권력을 회복시키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를 오스트프로이센으로 데려와 회동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로 돌아가 파시스트 국가를 재건하기를 바라면서 독일군이 밀라노, 제노바, 투리노 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동의한 무솔리니는 9월 23일 살로에서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망명 정부의 수반에 오른다. 무솔리니는 자신을 배반한 파시스트 대의회의 요인들을 처형했다. 이 무렵 무솔리니는 1928년 출판한 자서전의 개정판 ‘나의 흥망’ 집필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1945년 4월 패전을 예감한 무솔리니는 연인이었던 클라라 페타치(1912~1945)와 함께 스위스를 거쳐 스페인으로 탈출할 참이었다. 그런데 27일 공산주의 계열의 파르티잔에게 체포됐다. 무솔리니는 병사들과 함께 독일군 장교로 위장하고 있었다. 이튿날 발레리오(실명 왈테르 아우디시오) 대령은 두 사람을 총살했다. 시신은 29일 트럭에 실려 밀라노로 옮겨졌다. 파시스트당에 의해 15명의 반파쇼 운동가들이 처형된 자리였다. 숱한 군중의 발길질에 짓밟힌 두 시체는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렸다.
  • “보장 금액이 리필 되네”… 1만 4000건 판매

    “보장 금액이 리필 되네”… 1만 4000건 판매

    NH농협생명이 지난 7월 출시한 ‘병원비든든NH의료비보장보험(갱·무배당)’이 출시 석 달 만에 판매 건수 1만 4000건을 돌파했다. 병원비든든NH의료비보장보험은 질병코드와 수술 여부와 관계없이 급여 의료 본인부담금을 보장하는 건강보험으로 보장금액이 ‘리필’ 된다는 특징이 있다. 보험금 지급 후 소멸하는 기존 건강보험과는 다르게 매년 보장금액이 새롭게 리필돼 최초 가입 시점과 동일한 기준으로 보장금액이 복원된다. 주계약만 가입해도 모든 질병 및 재해로 인한 급여 의료비 본인부담금을 보장하고 치료, 수술, 입원은 물론 통원치료까지 보장한다. 보험금 청구 편의를 위해 병원서류(진단서·영수증) 제출 없이 모바일 간편 동의로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이 상품은 고향사랑기부제 참여 의사만 확인해도 최초 계약의 납입기간 동안 주계약 보험료 5% 할인이 적용된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고향 또는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면 지자체는 이를 모아 주민 복리에 사용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제도다. 기부 한도는 연간 500만원이며, 기부자는 세액공제(10만원 이하 100%, 10만원 초과 16.5%)와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답례품(기부금액 30% 한도)을 받을 수 있다. 기부 정보가 국세청 홈택스에 자동 신고되기 때문에 연말정산 시 편리하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 [씨줄날줄] 슈링크플레이션/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슈링크플레이션/황비웅 논설위원

    100g 중량의 과자를 100원에 파는 제과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경제위기가 닥쳐 회사 비용을 10% 절감해야 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우선 100원짜리 과자 가격을 10% 올린 110원에 팔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은 구매를 꺼려 판매량이 감소할 것이다. 다른 방법은 100g짜리 과자의 양을 10% 줄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자 중량이 줄더라도 체감하기 어렵다. 이런 방법을 ‘슈링크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든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한 용어다.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크기나 수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간접적인 가격 인상 효과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의 여성 경제학자인 피파 맘그렌이 고안했다. ‘질소를 샀는데 과자를 덤으로 준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과자 봉지에 들어 있어야 할 과자의 양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대신 충격보호제 또는 산화방지제로 쓰이는 질소의 양만 늘어났다는 뜻으로 ‘질소과자’라고도 불린다. 질소과자의 탄생 배경을 알아보려면 1997년 외환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식료품 가격이 올라가면서 제과업체들이 높아진 단가를 상쇄하기 위해 질소 과대포장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영국의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에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번져 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뾰족뾰족한 삼각뿔로 유명한 스위스의 토블론 초콜릿이 있다. 이 초콜릿 제조업체인 몬덜리즈는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영국에서 기존의 초콜릿 용량을 줄이면서 삼각뿔 디자인을 점차 넓혔다. 그 결과 기존 무게인 170g이 150g까지 줄었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은 지난해부터 슈링크플레이션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동원F&B는 ‘양반김’의 중량을 기존 5g에서 4.5g으로 낮췄고, 해태제과도 ‘고향만두’ 용량을 기존 415g에서 378g으로 줄였다고 한다. 모두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용량만 줄였다. 기업이 신뢰를 상실하는 건 한순간이다. 제품 용량을 줄이는 꼼수도 적당히 했으면 한다.
  • “I am 만족”…전청조 고향 ‘뉴욕뉴욕’ 오픈런 벌어졌다

    “I am 만족”…전청조 고향 ‘뉴욕뉴욕’ 오픈런 벌어졌다

    남현희 전 펜싱 국가대표의 재혼 상대였던 전청조(27)씨가 ‘뉴욕 출신 재벌 3세’라고 주장한 배경을 두고 강화도 소재 음식점 ‘뉴욕뉴욕’이 지목된 가운데, 해당 음식점을 다녀왔다는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의 고향으로 알려진 강화도엔 유명 돈가스집 ‘뉴욕뉴욕’이 있는데, 여기에 영향을 받아 전씨가 뉴욕 출신임을 강조했다는 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경양식 돈가스를 파는 ‘뉴욕뉴욕’에는 현재 많은 사람이 몰려 ‘오픈런’ 현상까지 벌어졌다. 유튜버 이진호는 27일 생방송을 통해 “강화도 ‘뉴욕뉴욕’에 다녀왔다”며 “(과거) 그 가게가 굉장히 유명해서 많은 여중생이 갔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전씨가) 뉴욕에 한이 맺혀서 (뉴욕 출신이라고 주장한 게 아닌가) 그랬나 싶다”고 했다. 이진호는 “(해당 가게 사장님이) 가게를 내년까지만 하려고 했는데 더 한다고 하셨다”고 덧붙였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전씨의 말투로 ‘뉴욕뉴욕’ 방문 후기가 게재되고 있다. 심지어 개장 전부터 오픈런을 하기 위해 가게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까지 공개됐다. 네티즌들은 “I am 만족했어요. my friend와 함께 방문했어요” “Today 방문하려 했는데 Saturday는 영업을 closed 했네요” 식의 후기를 남기고 있다.
  • “정치 바로잡아 보통사람 불이익 없애는 데 힘쓰겠다”

    “정치 바로잡아 보통사람 불이익 없애는 데 힘쓰겠다”

    ■ 변성완 전 부산시장 권한대행 내년 4·10총선 ‘채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반칙과 특권을 없앰으로써,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일을 막도록 애쓰겠습니다.” 2008년 2월까지 참여정부 마지막 1년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의전팀 행정관으로 근무한 변성완(58) 더불어민주당 부산 북강서을 지역위원장은 30일 이렇게 각오를 다졌다. 그는 지난 28일 부산 북구 화명동 한국방송통신대 부산지역대학에서 ‘부산 바라기’ 출판기념회를 갖고 시민들에게 내년 4월 총선을 맞이하는 청사진을 밝혔다. 행사엔 문정수(84) 전 부산시장, 송영길(60) 전 민주당 대표, 전재수(52) 민주당 부산 강서갑 의원, 최인호(57) 사하갑 의원 등 정치인들과 시민·당원·지지자 등 1500여명이 다녀갔다. 문 전 시장은 인사말에서 “부산뿐 아니라 선거에서 당선하든 아니든 기회만 되면 지역을 떠나버리는 정치인을 흔히 보는데 앞으로 30년을 지킬 수 있겠는가”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전 의원도 “부산에선 한때 선거 때 후보를 찾기도 어려워져 따라다니며 읍소하곤 했는데,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자원해 준 보물같은 존재”이라고 변 위원장을 치켜세웠다. 책 ‘부산 바라기’에는 부산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해운대구청 5급 사무관으로 공직사회에 입문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 위원장의 삶과 고향에 대한 사랑, 지역 발전을 둘러싼고민이 실렸다. 체신부 말단직으로 강한 자부심을 가졌던 부친의 바람으로 공직의 길을 선택한 사연, 부인인 조규영(58) 전 서울시의회 부의장과 얽힌 사연 등 따뜻한 가족 얘기도 담담하게 녹였다. 그는 노무현(1946~2009) 전 대통령으로부터 “민생이란 가슴 아픈 곳”이라는 말을 들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되돌아봤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노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희망의 나무가 잘 자라나 후손들에게 미래를 꿈꾸게 하자는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5월 14주기 추도식 주제인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라는 문구를 떠올렸다. 변 위원장은 “부산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며 무역의 최전선에서 경제 성장을 주도해 왔다. 바다와 인접해 관광·문화도시로서도 훌륭한 곳이고, 이를 바탕으로 인구 400만명을 꿈꾸던 메가시티”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지금은 ‘노인과 바다’ 소리를 듣는다. 우리나라에서 고령화가 가장 심각하며 매해 1만명의 청년이 떠난다. 도심은 노후화하고, 산업 성장 동력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부산을 변화시킬 ‘게임체인저’ 사업으로 가덕도신공항, 2030 월드엑스포 유치, 부울경 메가시티를 꼽았다. 그는 “부울경 메가시티는 사실상 없어졌고 두 가지가 남았다. 가덕도신공항은 특별법이 제정됐기 때문에 무조건 하긴 한다. 중요한 것은 속도와 시기다. 최대한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월드엑스포는 발표까지 꼭 한 달이 남았는데,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준비를 이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고 부산의 확실한 변화·성장을 완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경제자유구역 규제 철폐, 4무(무비자·무관세·무규제·무언어장벽) 실현, 국제자유도시, 부산 전역 또는 부울경 지역을 포함하는 ‘도시국가’, 김해공항 이전, 북극항로 개척·활용을 제시했다. 변 위원장은 “현재로서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말들이다.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힘이 정치라고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의 ‘제2의 부흥’과 부산의 재탄생을 위해서는 먼저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변 위원장은 제37회 행정고시 합격 후 부산 해운대구청 문화공보실장으로 공직을 시작해 행정안전부 교부세과장, 부산시 기획관리실장, 행안부 지역경제지원관 및 대변인, 부산시 행장부시장, 시장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2021년 4월 부산시장 보선에선 당대 경선에서 패배해 이재명 대선 캠프에서 부산 광역선대본부장으로 뛰었다. 지난해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선 부산시장 후보 공천으로 출마했으나 득표율 32.23%로 국민의 힘 박형준(63·66.36%) 후보에게 밀렸다.
  • “中, 리커창 추모열기 막는 듯…제2 톈안먼사태 우려”

    “中, 리커창 추모열기 막는 듯…제2 톈안먼사태 우려”

    중국 정부가 지난 27일 별세한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를 애도를 막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에 대한 추모 움직임이 ‘제2의 톈안먼 사태’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장기 집권과 경제 침체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 지도부에 수 차례 쓴소리를 한 리 전 총리의 사망이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29일(현지시간) 프랑스의 ‘라디오 프랑스 인터내셔널’(RFI) 중국어판은 “리 전 총리의 별세가 ‘제2 톈안먼 사태’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당국이 추모 분위기 확산을 차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역사적으로 중국 지도자의 사망이 대규모 시위로 번진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1976년 저우언라이 당시 총리가 사망하자 청년층을 중심으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1989년 4월 개혁 성향의 후야오방 당시 공산당 총서기가 중난하이에서 소집된 중앙정치국 회의에 참석했다가 심장병 발작으로 돌연사하자 학생과 시민이 톈안먼 광장에 모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생겨났고 이는 6월 민주화운동으로 번졌다. 지난해 11월 말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해 대대적인 추모 열기가 젊은이들이 시진핑 지도부에 대한 반대 여론을 ‘백지 시위’로 표출했고, 중국 당국은 3년 가까이 유지하던 ‘제로 코로나’ 기조를 전면 해제해 이들을 달랬다. 현재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와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 목록에는 29일부터 리 전 총리 별세와 관련 소식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리 전 총리의 사망 관련 보도를 짤막하게 보도하는 등 추모 분위기가 커지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중국 여러 대학도 학생들에게 리 전 총리 추모 집회 금지령을 내렸다.리 전 총리의 고향인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옛 주택에는 28일부터 수많은 주민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참배하고 있다. 리 전 총리는 시진핑 1인 독주 체제가 강화된 상황에서도 한 번씩 소신 발언을 해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골목을 메운 국화꽃 사이로 보이는 추모카드에는 ‘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보고 있다’, ‘(중국 전체 인구 가운데) 6억명의 월평균 소득이 1000위안 이하다’ 등 리 전 총리의 생전 발언이 적혀 있었다. 모두가 ‘경제와 민생 챙기기가 중국 공산당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그의 평소 소신 발언으로, 시 주석과 측근들의 자화자찬식 성과 홍보를 비판한 쓴소리이기도 하다. 르피가로는 “리 전 총리의 별세는 중국의 외교·국방부장(장관)이 면직되고 미중 긴장이 고조되는 ‘혼란의 시기’에 일어났다”며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 시 주석은 미묘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과거 라이벌의 장례식을 존엄하게 치르는 동시에 그것이 잃어버린 황금시대의 상징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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