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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국토기행] 살아있는 갯벌 스며드는 풍광 모여드는 사람

    [新국토기행] 살아있는 갯벌 스며드는 풍광 모여드는 사람

    전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무안군은 동쪽은 영암군과 나주시, 서쪽은 신안군의 많은 도서와 접하고, 남쪽은 목포시, 북쪽은 함평군과 연결된다. 400m가 넘는 산지는 없고, 낮은 구릉과 평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다와 접해 있어 무안반도와 해제반도, 망운반도를 형성하고 있다. 무안 땅 절반은 게르마늄과 칼륨이 많은 붉은 황토밭이다. 여기서 나는 양파와 마늘은 최고의 보약으로 쳐준다. 서쪽에 있는 220㎞에 달하는 긴 굽이굽이 리아스식 해안은 가는 곳마다 유원지이자 해돋이와 해맞이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현경면과 해제면 사이 갯벌에서 나는 세발낙지는 천하명물로 소문나 있다. 무안은 2005년 광주시에 있던 전남도청이 이전해 오고, 전남경찰청과 전남교육청, 농협 전남본부 등이 옮겨와 전남의 중심이 되고 있다. 도청이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로 이전하면서 목포시의 옥암지구를 편입해 추진 중인 남악신도시는 15만명(4만 5000가구) 목표로 개발이 한창이다. 공무원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8만 200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서해안고속도로, 광주~무안 고속도로, 무안국제공항까지 문을 열어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서남권의 신관광허브로 자리잡고 있다.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인 회산백련지와 대한민국 최초 갯벌습지보호지역인 무안생태갯벌센터로 유명한 고장이다. [볼거리] ●동양 최대 백련 자생지, 회산백련지 무안군 일로읍 복용리에 소재한 ‘회산백련지’는 33만㎡(약 10만평)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이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연꽃이 가득한 저수지로 인근 농경지를 기름지게 했다. 당시 인근 주민이 백련 12주를 구해 심은 뒤 그날 밤 꿈에 하늘에서 학 12마리가 내려와 앉는 모습이 나타났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이곳 백련지에서 자라는 백련은 홍련처럼 일시에 피지 않고 7월부터 9월까지 수줍어 잎사귀 아래 보일 듯 말 듯 숨어서 핀다. 3개월 동안 연못을 가득 메운다. 꽃송이가 주먹만 하고 연잎 지름은 1m나 된다. 최근 멸종 식물로 알려진 가시연꽃 집단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수련, 노랑어리연, 개연꽃 등 30여종의 연꽃과 50여종의 수중식물·수변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백련지 내에 오토캐러밴과 오토캠핑장이 설치돼 있고 매년 7~8월에는 연꽃축제가 열린다. ●전국최대 갯벌 체험의 장, 무안생태갯벌센터 자연 침식된 황토와 사구의 영향으로 형성된 무안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2001년 전국 최초 습지보호지역지정, 2006년 람사르습지 등록, 2008년 6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생물인 흰발농게, 대추귀고둥을 비롯한 245종 저서생물, 칠면초 갯잔디 등 45종 염생식물, 혹부리오리, 알락꼬리마도요 등 52종의 철새 등 많은 생명체가 무안갯벌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109.2㎞의 해안선이 원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무안군 해제면 유월리에 있는 무안생태갯벌센터는 이러한 무안갯벌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2011년 전국 최대 규모 갯벌센터로 개장했다. 람사르습지 1732호인 무안갯벌의 가치를 소개하는 홍보, 교육, 전시 기능과 생태체험학습을 통한 해양환경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무안생태갯벌 유원지 조성사업에 따라 국민여가캠핑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매년 9~10월에 황토갯벌축제가 열린다. ●다도순례 성지, 초의선사탄생지 초의 대선사는 조선 후기 침체된 당시의 불교계에 새로운 선풍을 일으킨 선승으로, 근근이 명맥만 유지해 오던 한국의 다도를 중흥시킨 다성이다.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에 있는 초의선사 탄생지는 초의선사의 생가와 추모각을 복원하고 기념전시관, 차 문화관, 차 역사관, 다정 등을 건립해 명실상부한 다인들의 다도순례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초의선사 탄생일인 음력 4월 5일을 전후로 매년 초의선사탄생 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호담항공우주전시장’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에 있는 호담항공우주전시장은 몽탄면 출신 호담 옥만호 전 공군참모총장이 고향사랑 실천과 우리 공군의 발전 과정을 소개하고 후세들의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사재를 들여 2003년 건립해 무안군에 기부채납했다. 이후 무안군이 꾸준하게 관리하고 투자해 현재는 실물항공기와 북한 전투기 등이 전시돼 있다. 실내 전시관에는 우주항공분야의 발전상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가 있어 전국 학교들의 수학여행 코스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물의 기운 가득한 식영정 몽탄면 이산리에 있는 식영정은 한호 임연 선생이 1630년 무안에 입향한 후 당대 많은 시묵객들이 즐겨 찾은 시의 경연장이었고, 석학들의 토론장이었다. 담양의 식영정이 ‘그림자가 쉬어가는 정자’라면, 무안의 식영정은 ‘강학교류의 장소’다. 식영정이 위치한 이산리는 조선시대까지 영산강물이 마을 앞까지 들어와 물의 기운이 가득한 수태극 자리라고 한다. ● 일출·일몰 한번에 볼 수 있는 도리포 도리포는 서해안의 자그마한 포구로 해변에는 횟집이 늘어서 있고, 인근 영광군과 함평군을 경계로 하는 칠산바다와 연접해 도미, 농어 등을 낚을 수 있는 바다 낚시터로 유명하다. 겨울철에는 함평의 바다 쪽에서 해가 뜨고, 여름철에는 영광의 산 쪽에서 해가 뜬다. 또한 도리포 포구 반대편 칠산바다 쪽의 일몰 또한 장관을 이뤄 일출과 일몰을 같은 장소에서 즐길 수 있다. ●서해·영산강 절경이 한눈에 ‘승달산 등산로’ 승달산(해발 333m)은 서해와 영산강을 끼고 있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승달산 산행은 목포대 정문을 기점으로 매봉, 깃봉, 하루재, 천지골을 거쳐 정문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산행코스가 가장 인기가 많다. 등산보다 가벼운 산책을 원한다면 목포대 뒤편으로 난 길을 올랐다가 목우암에 들러 약수로 목을 축인 후 잠시 숨을 돌렸다가 올랐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도 좋다. ●윈드서핑의 최적지 홀통해수욕장 홀통해수욕장은 천혜의 자연발생적 유원지로 울창한 해송과 긴 백사장이 장관을 이룬다. 해수욕, 야영, 바다낚시, 해수찜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청정해역으로 병풍처럼 둘러싼 섬들 사이로 부는 바람이 잔잔한 물결을 만들고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 해양 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윈드서핑의 최적지로 불린다. 매년 4~5월이면 전국단위 윈드서핑 대회가 열린다. [먹거리] ●기절할 만한 갯벌의 맛 세발낙지 살아 있는 갯벌에서 잡혀 전국에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발이 세 개가 아니고, 발이 가늘어 세발낙지라 불린다. 무안지역의 갯벌은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돼 있어 각종 생선회의 맛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다. 세발낙지는 발이 가늘어 부드럽고 쫄깃쫄깃하면서 향미가 있어 입안에 착 감기는 낙지 특유의 맛이 있고, 일을 하다 쓰러진 소에게 먹일 경우 소가 바로 일어난다는 스태미나 식품이다. 무안읍 공용터미널 뒷골목은 낙지골목으로 유명하며 낙지를 깨끗하게 씻어 식초에 찍어 먹는 일명 ‘기절낙지’의 맛은 무안 지역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별미다. ●고단백 건강식품 명산장어구이 호남의 젖줄 영산강변에 위치한 몽탄면 명산리는 명산 하면 장어구이를 연상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영산강 하류 갯벌에서 나는 장어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다량 함유된 건강식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일제강점기에는 명산에 장어 통조림 공장이 설치돼 200여척의 장어잡이가 성황을 이뤘으나 영산강 하굿둑 축조 이후 장어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어린이 입맛도 사로잡은 양파한우고기 양파한우고기는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해 어린이, 노약자도 선호한다. 인체 생장 발육의 필요 요소인 필수지방산이 풍부하고 간 지방축적과 피부조직 각질화 예방 등 성인병 예방과 여성미에 좋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파김치·게장과 함께 먹는 돼지짚불구이 돼지짚불구이는 암퇘지의 삼겹살을 석쇠에 가지런히 깔고 볏짚을 지펴 그 불씨로 고기를 구운 것이다. 볏짚 특유의 향이 고기에 스며들어 느끼하지 않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함께 나오는 양파김치와 칠게를 갈아 만든 게장과 함께 싸 먹으면 고소한 맛이 더하고 개운한 ‘짚불삼합’이 된다. ●감성돔 안 부러운 도리포 숭어회 도리포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특히 도리포 앞바다에서 갓 잡아 온 생선회의 맛은 천하일품이다. 이곳 겨울 생선회는 자연산으로 유명해 주말이면 광주 등 인근 지역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다. 눈이 내려야 숭어 맛이 제대로 드는데 겨울 숭어의 쫄깃함은 천하의 감성돔과도 비교할 바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그의 집은 ‘와초문학뜰’이다. 뜰 바로 아래에는 조용히 출렁이는 탑정호(塔亭湖)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잔디 마당에는 조각가 류훈의 작품 ‘오늘 저녁 술 한잔 어때요’가 있다. 이 조각은 세 명의 인간형상이다. 하나는 담배를 피우며 시름에 빠진 중년의 노동자이고 나머지 둘은 서로 떠들다가 ‘술 한잔 하자’는 자세를 취하며 어른을 바라보는 젊은 노동자이다. 집 뒤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다’(流留亭)라는 문패가 그럴듯하게 걸려 있다. 그가 직접 쓴 글씨로 새겨넣었다. 얼핏 보아도 붓글씨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부인은 10년 동안 서예공부를 했다. 부인이 그가 쓴 ‘흐르고 머무니~’를 보더니 “10년 공부한 사람보다 더 잘쓰면 어떡하느냐”며 한동안 삐쳤다(?)고 한다. 정자 바로 앞에는 앙증맞은 작은 계곡이 있다. 물이 졸졸 흐르고 붕어새끼들이 이리저리 뛰놀기에 딱이다. 정자에서 몇 발짝 걸어가면 텃밭이 있다. 상추와 고추 등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글을 쓰다가 소일거리로 잠깐씩 들러 자라는 식물과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곳이다.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 곳,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 있는 집’이다. 이 집은 팬들을 위해 ‘행복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1년에 봄, 가을 두 번 공개한다. 그럴 때면 전국 각지에서 200여명이 찾아온다. 글을 써서 인세로 장만한 집일까. “논산시에서 임대해 준 것이고 임대료는 내지 않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집필실은 1층과 2층에 있다. 1층은 정자가 바라보이는 곳이고 2층은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최근 ‘와초문학뜰’에서 문단 데뷔 40년이 되는 해에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을 썼다. ‘은교’ 이후 홀연히 고향 논산으로 내려간 그가 2년여의 침묵 끝에 발표한 작품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비즈니스’로 연결되면서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모아 펴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거대한 자본의 세계 속에서 가족들을 위해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달 26일 고향에서 첫 작품을 쓴 박씨와 와초문학뜰에서 만났다. 늘 그렇듯이 편하고 허름한 옷차림이다. 마당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다 보니 정자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원래는 마음 심(心)자를 써서 ‘심유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머무는 적은 없어요. 그래서 흐를 유(流)자로 바꿨더니 뻥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요. 원래 붓글씨를 배워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직접 먹을 갈고 화선지에 쓰고 현판에 새겨 달아놓았습니다.” 머물고 흐르는 것이 곧 마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잠시 후 배도 고픈데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미리 와 있던 두 명의 손님과 함께 인근 민물고기 매운탕집으로 옮겼다. 식당 주인이 그를 단골손님처럼 반긴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닭도리탕’과 ‘매운탕’을 주문하고 “막걸리 두 병과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했다. 주종과 주량을 물었더니 “오늘은 속이 별로 안 좋아 막걸리 두어 잔만 하겠다”고 말한다.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하지만 잠자기 전 소주 반 병 정도나 과실주를 주로 마신다고 했다. 2년 동안 고향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원래는 고향으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는데 하루는 40대의 젊은 시장이 ‘형님, 고향으로 오시죠’라고 해요. 그 형님 소리가 듣기 좋더라구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서 2년 동안 살면서 금강문화권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탑정호수 건너편에 황산벌이 있습니다. 계백이 깨진 곳이지요. 이 금강문화권은 또 백제와 후백제의 멸망, 그리고 동학군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원혼이 많아 한밤중에 귀신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단다. 밤에 술을 마시고 마당에 앉아 있는데 누가 절뚝거리며 다가오더라는 것. 누구냐고 했더니 ‘계백 장군 똘마니 장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안 가고 그러고 있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장수는 ‘계백 장군을 버리고 갈 수 없어서’라고 했단다. 얘기를 흥미롭게 듣다가 웃으면서 패망한 군인들의 원혼과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겠다고 했더니 “뼛골만 있어도 생명을 불어넣고 그런 것이 작가가 아니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는 곳이다. 2년 동안 고향사랑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술 한 잔을 마시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추억만 가지고 있어서 고향에 오기가 싫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며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에 대해 얘기한다. “과거에는 어머니들이 희생했다면 요즘은 아버지들입니다. 베이비부머 시대의 아버지들이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가부장의 권위도 해체되고, 아버지는 늘 자식을 위해 과실을 따오고 30대의 장성한 자식조차 여전히 아버지 등에 빨대를 꽂아 과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거대한 소비문명이 자식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부랑하고 있는지, 지난 반 세기동안 무엇을 얻었고 잃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들이 젊었을 때에는 자식을 위해 수시로 돈을 뺄 수 있는 통장 역할을 하고 나이 들어서는 보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소설은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거대한 폭력과 쓸쓸함을 비판하면서 특정한 아버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1~아버지10’을 다루고 있다. 애당초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시작한 소설인데 정작 젊은이들에게 반발을 일으킬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며 웃는다. ‘은교’의 경우 시간의 반란을 그리기 위해 남자 주인공을 원래 77세로 설정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젊은이들이 읽지 않는다며 65세로 해달라고 했다. 겨우 타협점을 찾은 것이 70세. 뚜껑을 열었더니 예상과 달리 20대 여자들이 책을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번에 쓴 ‘소금’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소금’은 지금까지 7만부를 찍었다. “요즘 글을 쓰는 사람은 많고 독서 인구는 그에 비해 적어요. 예를 들어 문학책이 10만부가 팔렸다고 할 때 문학을 알고 사는 사람은 2만명, 나머지 8만명은 사회적 이슈이거나 자극적인 데서 책을 구입합니다. 5만 독자를 유지한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문학은 작업”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수준이 문화적으로 높아져야 잘못된 제도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소설이란 마라톤과 같으며 빈틈없는 전략으로 뒤집기를 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즘 작가들은 스타트는 좋으나 체력이 문제라면서 “소설이란 걸어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해야 하며 달의 뒷면, 어두운 면까지 가는 것이 문학”이라고 설명한다. 정신적인 끈기와 투지가 있어야 하며 작가의 뒷심이 약하면 시대를 바라보는 뒷심 또한 약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정보에 의존해 쓰다 보니 이야기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문을 잘 안 본다고 했다. 나머지 인생을 굳이 정보에 의존해서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순간 달의 뒷면을 볼 수 있는 직관력으로 살아가려고 한단다. “30대에는 사랑받고 싶어 넓이에 정체성을 두고 글을 썼고 40대를 넘기면서 깊이를 추구했습니다. 치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글을 써오는 동안 벌써 40년 연애한 것처럼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저 자신에게 아직도 순정주의 문학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연애한다고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그는 히말라야 등정을 15차례나 했다. 존재의 등반이다. 자신의 내면 속으로 걷기, 초월적인 세계를 실감하기, 인간의 갈망이 있는 그곳에서 불멸과 순간, 현세적 삶과 초월적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비우니 향기롭다’, ‘나마스테’, ‘촐라체’ 등이 이 같은 산악 세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금도 걷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있어 한다. 앞으로 그의 ‘문학적 걷기’는 어떻게 될까. “여기 올 때 고전소설 몇십 권을 가져왔는데 다시 틈틈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밀란 쿤데라 작품도 읽어봤고, 아마 다음은 역사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조선 후기 노론의 기반이 되는 곳이 바로 논산이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생활의 모토에 대해 물었더니 ‘가난한 밥상’과 ‘쓸쓸한 배회’라고 했다. 달랑 물에 만 밥과 김치를 먹으며 육체와 정신의 기름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범신은 누구 194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원광대 국문과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까지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문제작가로 주목받았다. 1979년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 주요 장편소설로는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비즈니스’ 등이 있다. 김동리문학상(2001년), 만해문학상(2003년), 한무숙문학상(2005년), 대상문학상(2009년) 등을 수상했다.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로 있다.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5)경북 영양 지훈길·두들마을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5)경북 영양 지훈길·두들마을길

    면적은 서울의 1.3배이지만, 인구는 1만 8000명. 경북 영양은 중부고속도로 입구에서 차로 1시간 30분을 더 가야 닿을 수 있는 두메산골이다. 흔한 4차선 도로나 신호등조차 이곳에선 사치다. 하지만 영양은 오일도·조지훈·이문열 등 내로라하는 대가들을 연거푸 배출한 넉넉한 ‘문향’(文鄕)이다. 옛 이름 고은(古隱)처럼 수백 년 된 고택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밤이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내리는 별 무리에 없던 감수성도 살포시 샘솟는 곳. 권오승 영양군 부군수는 “영양의 이런 특이점이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문인을 배출하게 한 원인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조지훈의 주실마을과 이문열의 두들마을을 찾았다. 지난 9일 정오 영양 북단 일월면에 있는 주실마을. 노()신사가 발길을 멈추고 울컥, “선생님….” 외마디만 던지고 눈물을 훔쳤다. “고려대에서 문학을 가르친 조동탁(호 지훈) 선생의 흔적을 찾아 1960년대 학번 제자들이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양희 조지훈문학관 해설사가 말했다. 어디 제자들뿐이랴. 조지훈을 기억하고 그와 같은 시인이 되기를 꿈꿨던 이들에게 이 마을을 다녀간다는 건, 곧 성지순례다. 문학을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승무)’ 한 구절쯤은 읊는다. 시인의 생전 모습과 그가 남긴 작품에 흠뻑 취해 걷는 길. 1017m 지훈길엔 시인이 나고 자란 고택(호은종택·壺隱宗宅)과 문학 공원의 20여개의 시비가 길 따라 놓여 있다. 호은종택은 겹겹이 쌓아올린 담에 口자 모양이다. 폐쇄적인 가옥 형태다. 이에 대해 김민자 문화해설사는 “당시 경상도 양반가는 자신을 꽁꽁 감춰 남을 배려하고 체통을 지켰다.”면서 “삼불차(三不借·빌리지 않는 세 가지)는 조선중기 환란을 피해 주실마을에 온 한양 조씨의 가훈”이라고 말했다. 재(財)불차·문(文)불차·인(人)불차로 재물·문장·양자를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백 년을 이어져 온 이 원칙 때문에 주실마을 조씨를 ‘칼 같은 남인(南人)’이라 하여 검남(劍南)이라 불렀다. 퇴계학풍을 계승한 남인은 지금으로 치면 수백 년간 정권을 잡은 적이 없는 ‘만년야당’이라고 할 수 있다. 호은종택 뒤로는 시인이 17세까지 지냈던 ‘방우산장’(放牛山莊)이 있다. 시인은 이곳과 서울 성북동 자택은 물론 자신이 기거했던 곳은 모두 방우산장이라고 불렀다. 위치가 산도 아닐뿐더러 소를 키우지도 않아 이런 이름을 지은 까닭이 궁금하다. 그는 1953년 신천지에 기고한 ‘방우산장기’에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내가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만 있으면 그 소가 지금 어디에 가 있든지 내가 아랑곳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월산 전설이 조지훈의 ‘석문’ 소재 그 옆 지훈 문학관. 시인의 손때 묻은 자필 원고와 담배파이프·안경·모자 등 소품들이 눈에 띈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닥아서다(낙화의 한 부분)”. 생전에 여동생과 함께 육성으로 녹음한 시낭송도 들을 수 있다. 이 시는 창작 의도와 상관없이 한 정치인에 의해 더 널리 알려졌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2003년 구속될 때 자신의 심경을 이 시를 인용해 표현했다. 문인에게 고향이란 창작 소재이기도 하다. 일월산을 배경으로 전승되고 있는 황씨부인당 전설은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떠나버린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한 규수의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바로 조지훈의 ‘석문’(石門)의 모티브다. 이문열의 대표 소설인 ‘젊은 날의 초상’에도 영양에서 영덕으로 넘어가는 창수령이 등장한다. 영양군 남단 석보면 두들마을은 이문열이 나고 자란 곳이다. 이 마을을 관통하는 1787m 두들마을길은 석천서당·석계고택·유우당 등 ‘문화재투성이’다. 작가가 집필하고 후학양성을 위해 지은 한옥집 광산문우(匡山文宇) 담 아래에는 백일홍이 심어져 있다. 그의 문중인 재령이씨 사람들이 대대로 좋아하는 꽃이다. “내가 이만큼 글을 쓰는 것도 고향을 잘 만났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고향사랑이 묻어난다. 이르면 올해 말 이문열이 이곳으로 영구이주할 것이라고 군의 한 관계자가 귀띔했다.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는 재령이씨의 두들마을 전통 중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음식디미방이다. 조선조 대학자 석계 이시명의 정부인 장계향이 380여년 전 지은 동아시아 최초의 조리서다. 종부 조귀분(63)씨가 이 조리서에 담긴 146가지 음식을 재현했다. 꿩·해삼·전복은 물론 곰바닥까지 이용해 화려하다. 특이한 점은 조리법의 51가지가 술 빚는 법이라는 점이다. 이 중 감향주(甘香酒)는 걸쭉해서 숟가락으로 떠먹는 술이다. 찹쌀·멥쌀·누룩·물 등 4가지 재료로만 만드는데, 도수는 13~14도 정도로 적포도주와 비슷하다. 박승길 군 전통음식육성담당은 “당시 재령이씨 문중을 찾아온 손님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그들에게 정성껏 술상을 차려 대접하는 것이 아녀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문향’에 술이 발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지훈도 소문난 애주가였다. 1958년 ‘신태양’에 기고한 ‘삼도주’(三道酒)라는 글에서 그는 “술의 진미를 완미(玩味·음식을 잘 씹어서 맛봄)하는 심경이면 탁주·소주·약주 할 것 없이 가위 도주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재령이씨 음식디미방 술 빚는 법이 30% 장계향은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가부장사회인 조선시대, 시문에 뛰어났던 그가 아녀자로서 자식 양육과 집안일에 충실했던 것이 ‘강요’가 아닌 ‘선택’이었다는 것을 일생을 짚어가며 설명한다. 이 때문에 1997년 연재 당시 ‘반페미니즘 소설’로 낙인 찍혀 공격을 받았다. 작가 자신도 인정하듯 “페미니즘에 저항할 논리는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작가는 “선입견 없이 읽어 보면 거기서 비판되고 있는 것은 저속하게 이해되고 천박하게 추구되는 페미니즘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논쟁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고집스러움은 1960년 4월 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큰일을 위해 죽음을 공부하라.”고 한 조지훈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대학교수였던 시인은 학생들에게 “내가 죽음을 공부하라는 것은 군중 속에 휩싸여서 군중과 함께 여러 사람에 싸여서 죽는 공부가 아니라 혼자서라도 죽을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는 “(4월 혁명이) 무질서화되고 소인배들의 명리로 전락할 기미가 보이자 강경한 어조로 그들을 깨우쳤던 것”이라면서 “선생의 위치에서 떳떳이 설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지훈의 이와 같은 꾸짖음은 더욱 빛났다.”고 평가했다. 겹겹이 쌓아올린 경상도 양반가 담벼락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대가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순 없다. 하지만 껍질이 두꺼워 고춧가루가 많이 나오는 영양고추처럼 이곳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유난히 실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글 사진 영양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16회는 대전시 대덕구 동춘당로를 소개합니다.
  • GS 고향사랑?… 계열사 잇단 진주행

    GS그룹이 창업주인 고 허만정 회장의 고향 경남 진주에 유통시설과 복합수지공장 등을 세우는 등 잇단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진주시는 2일 GS그룹의 주력 업체인 GS리테일(부회장 허승조)이 정촌일반산업단지 내 물류시설용지에 입주하기로 최근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GS리테일은 용지 4필지(6만 4102㎡) 가운데 1필지(1만 5210㎡)를 매입하고 이달 중에 물류시설 건립공사를 시작, 내년 2월 준공한 뒤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총 투자금액은 250여억원이다. 진주시는 GS리테일 물류시설 영업이 시작되면 상시 종사자 120명을 비롯해 250여명의 고용창출이 생기고, 특히 진주시가 남부권 물류 유통 중심지로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입주할 물류유통시설단지에는 앞서 ㈜보광훼미리마트가 1필지에 입주계약을 체결했으며 1필지는 진주시가 중소유통 공동 도매물류센터 건립예정부지로 계획하고 있다. 앞서 GS그룹의 GS칼텍스㈜는 진주시 압사리 14만㎡에 800여억원을 들여 복합수지 공장을 짓기 위해 지난 1월 진주시와 투자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산업단지계획 승인을 신청했다. 진주시 관계자는 “GS그룹이 창업주 고향인 진주지역에 애착을 갖고 잇달아 대규모 투자에 나섬에 따라 투자 활성화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진주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농협-교통안전공단 행복나눔 협약

    농협과 교통안전공단은 26일 경기 오산시 농협 오산시지부에서 ‘고향사랑 두배로! 지역공동체 행복나눔운동’ 협약식을 가졌다. 교통안전공단 직원들이 농협의 ‘고향사랑 두배로 통장’에 가입하면 농협은 적립된 금액에 일정 액수를 추가 적립해 소외계층 지원과 농촌지역사회 발전에 쓰게 된다.
  • [나눔경영 특집] 롯데-장학사업·외국인 근로자 복지 힘써

    [나눔경영 특집] 롯데-장학사업·외국인 근로자 복지 힘써

    롯데는 1980년대부터 청소년 장학사업을 비롯해 외국인 근로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계열사들이 사업 성격에 맞춰 특화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롯데장학재단은 기초과학 분야의 학술지원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학금 혜택을 받은 학생은 3만여명, 지원액은 594억원에 이른다. 롯데복지재단은 외국인 근로자와 중국동포 등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4억 5000만원의 지원 사업을 전개했으며, 올해는 규모를 늘려 5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설립된 삼동복지재단은 ‘이웃사랑과 고향사랑의 실천’이라는 취지로 다양한 지원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울산 저소득층 중·고교 신입생들에게 1억 2000만원 상당의 교복을 지원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은 협력업체들과의 의사소통 활성화를 위해 해마다 ‘협력회사 초청 컨벤션’을 진행하고 있으며 ‘상생기금’을 마련해 중소협력업체에 단기자금으로 지원한다. 여기에 베트남에 교육시설을 지원하는 ‘롯데스쿨’ 사업도 추진 중이다. 현재 내년 초 개교를 목표로 두번째 학교 건립을 위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씨줄날줄]고향세/육철수 논설위원

    일본 참의원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07년 6월 당시 아베 신조 정부는 ‘고향사랑’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집권 자민당이 선거를 한 달 앞두고 후루사토세(고향세)를 도입하겠다고 한 게 발단이었다. 지방자치단체가 걷는 주민세의 10%를 납세자가 원하면 그가 태어난 고향에 나눠주자는 세목이었다. 재정이 취약한 지자체들은 크게 반겼다. 그러나 야당인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세수가 많은 도쿄 등 대도시의 반발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자체 간 재정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명분이었지만 실은 농촌의 환심을 사서 표를 얻으려는 속셈이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았다. 2년 동안 도농(都農) 사이에 밀고 당기는 우여곡절 끝에 이 세금은 지난해부터 시행됐다. 한나라당이 시·군·구에 내는 소득할(所得割; 소득세액을 과세표준으로 함) 주민세액의 30%까지 납세자의 출생지나 5년 이상 거주지 등에 낼 수 있게 하는 ‘고향세’를 신설하기로 했다. 김성조 정책위의장은 이를 더 다듬어서 6·2 지방선거 공약으로 채택하겠다고 한다. 지방 재정의 빈사상태를 고려할 때 고육책이긴 하나, 수도권에 800만명이 외지 전입 인구여서 이들의 주민세 일부를 각자 고향에 보내면 재정자립에 다소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데 하필이면 선거철에 공약으로 들고 나와 뒷맛은 영 개운하지 않다. 지방재정의 궁핍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올해 예산이 140조원이지만 이 중 정부 보조(지방교부세+국고보조금)가 55조원이다. 평균 재정자립도가 53%에 불과하고 부채가 25조원을 넘어 복지향상 등은 엄두도 못 낸다. 정부가 올해부터 국세인 부가가치세 세수의 5%(2조 5000억원)를 지방소비세로 전환한다지만 재정자립도를 2% 끌어올릴 수 있을 뿐이다. 고향세로 일부 전환하려는 주민세만 봐도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심각하다. 인구 1000만명인 서울의 주민세 세수는 2조원(2008년)이다. 반면 최하위인 전남은 인구 200만명에 770억원이다. 서울은 전남보다 인구는 5배인데 주민세액은 무려 25배다. 한나라당이 고향세의 취지를 잘 살리려면 수도권 지자체를 설득해야 하며, 지자체 간 불균등 배분과 이에 따른 지역감정의 심화도 신경 써야 할 대목이다. 시행 1년 동안 장·단점이 드러난 일본의 후루사토세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보다 근원적인 지방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현재의 8대2에서 격차를 크게 줄이는 쪽으로 세제 전반을 손봐야 할 것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춘천 ‘박사마을’에 또 박사… 모두 119명

    강원 춘천 서면 ‘박사마을’에 박사가 또 배출돼 이 마을 출신 박사가 119명으로 늘어났다. 박사마을 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고향이 서면인 이모(36)씨가 19일 중앙대에서 약학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서면 출신 박사학위 취득자는 명예박사 3명을 포함, 모두 119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서면인구가 1800여 가구에 4000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17가구당 1명꼴로 박사가 나온 셈이다. 미국에서 1963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송병덕씨가 서면 출신 박사 1호이고, 국무총리를 역임한 한승수씨가 3호 박사다. 서면은 교육계 인사만 해도 교장급 이상이 90여명이 넘는다. 홍종욱, 한장수씨 등 2명의 전·현직 교육감이 이 지역 출신이다. 5급 이상 고위 공무원도 80여명이나 배출했다. 춘천시내와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마을로 2001년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이던 한 총리 지명자가 유엔총회 의장으로 취임한 날을 기념해 매년 5월 12일을 ‘서면인의 날’로 만들어 행사를 갖고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최선화 박사마을 관리위원은 “부모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학생들의 남다른 향학열이 서면을 박사마을로 탄생시켰다.”며 “후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줘 앞으로 더 많은 인재가 배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롯데삼동복지재단 출범…신격호회장 사재 570억원 출연

    롯데삼동복지재단 출범…신격호회장 사재 570억원 출연

    롯데삼동복지재단이 16일 창립 기념식을 갖고 본격 출범했다. 이 재단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사재 570억원을 출연해 만들었다. 롯데호텔울산 샤롯데룸에서 열린 창립 기념식에는 박맹우 울산시장, 윤명희 울산시의회 의장,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노신영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신격호 회장이 고향인 울산의 발전과 복지사업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로 설립됐다. 삼동이라는 명칭도 신 회장의 고향마을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의 지명에서 땄다. 재단 출연금은 570억원으로 울산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다. 재단은 앞으로 사회복지 관련사업 지원, 소외계층 지원, 농어촌지역 문화수준 향상, 교육 소외의 극복과 공평한 교육기회 제공 및 인재육성, 기타 문화사업 등에 나설 계획이다. 재단 측은 기념식 후 떡 600인분을 지역 사회복지시설에 전달했다. 신영자 재단 이사장은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사랑과 희망의 옷’을 짓기 위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시작하려 한다.”면서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이웃사랑, 고향사랑을 실천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
  • 이원종 경산대추 홍보대사에

    SBS 드라마 ‘토지’에 조연으로 출연, 인기를 모았던 탤런트 이원종씨가 ‘경산 대추’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경북 경산시는 12일 드라마 토지에서 최 참판댁의 수족 노릇 연기로 인기를 끈 이씨에게 ‘경산 대추’ 위촉패를 전달했다. 시는 지역 출신인 이씨가 평소 남다른 애향심으로 고향사랑 실천 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지역 대표 농산물인 대추 홍보대사로 위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시가 주관하는 농·특산물 홍보 및 판촉행사, 홍보물 제작 등에 참여한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올레길 걸음마다 퍼지는 문학의 향기

    올레길 걸음마다 퍼지는 문학의 향기

    “‘걷는다’는 것은 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바람에 숨어 있는 인생의 진리를 되새겨 주고 항상 과장돼 있는 우리 인생을 진실되게 합니다.” 초가을 아직은 따가운 제주의 햇살을 한참동안 등에 업고 왔지만 제주 서귀포시 성산 알오름 아래 모인 사람들의 눈은 반짝였다. 등산화와 피켈을 든 채 펴내는 소설가 김주영의 ‘길 위의 철학’이 몇 시간 올레길을 따라 온 더위마저도 잊게 한 것이다. ●산악인 엄홍길·탤런트 고두심도 동행 지난 10일 처음 열린 ‘제주올레 녹색문학투어’ 현장은 길과 문학이 함께하는 색다른 문학기행이었다. 문학사랑과 한국관광공사, 진에어가 공동 주최해 10~12일 첫 여정을 시작한 녹색문학투어는 문학과 자연·관광이 어우러진 여행이다. 2박3일 동안 시인, 소설가, 배우, 산악인들이 독자와 나란히 제주 올레길을 걷는다. 첫 여행의 길잡이는 길과 문학이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길 위의 작가’ 김주영. 그는 이 행사를 위해 일흔의 노구를 이끌고 올레길 1~13코스를 수 차례 사전 답사했다고 한다. 거기다 이번에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탤런트 고두심도 합세해 걸음을 맞췄다. 여행의 백미는 역시 문학 낭독회 시간이었다. 낮 12시쯤 알오름 산허리에 모인 일행들은 김주영의 우화집 ‘달나라 도둑’(비채 펴냄)의 수록작들을 낭송했다. ●자연 속에서 펼치는 낭독회 백미 첫 낭송자는 “평소 김주영 작가를 존경했다.”는 겸사로 입을 연 엄홍길 대장. 그는 ‘히말라야 사과나무’를 힘찬 목소리로 읽어 내렸다. 이 작품은 히말라야 산정에 사과나무를 심고 싶은 소녀의 이야기로, 소녀는 산악인인 삼촌과 함께 고난을 이겨내며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룬다. 이후 히말라야에는 산에서 사과를 따먹고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떠돌게 된다. 엄 대장은 작품을 읽는 틈틈이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넘겼던 등반 체험들을 독자들에게 풀어 놓았다. 여기에 김주영은 “엄 대장을 생각하며 썼던 글인데, 그가 그걸 알아보고 이렇게 낭독을 했다.”면서 싱글벙글 웃기도 했다. 독자들의 낭독도 이어졌다. “이 우화의 제목은 바로 제 꿈이기도 하다.”면서 운을 뗀 장영식(51·여·서울 구로구)씨는 ‘서울에서 파리까지 기차로 가기’를 차분한 목소리로 낭독해 주변의 박수를 받았다. 또 탤런트 고두심은 표제작 ‘달나라 도둑’을 낭독하고, 고훈식 시인의 제주방언시 ‘삼다도’를 읊으며 제주 출신으로서의 고향사랑을 뽐냈다. 낭독 행사는 제주 올레길 1코스를 완주한 후 밤까지 이어졌다. ‘문학의 밤’ 행사에서는 시낭송가 김순복씨와 여행객으로 참가한 시조시인 김종두씨 등이 나와 작품을 읊었다. 둘째날에도 제주 올레길 걷기와 낭독회가 이어졌다. ●12월까지 명사와 함께하는 투어 계속 ‘큰길에서 대문에 이르는 좁은 골목길’이란 뜻의 올레는 2007년 9월 처음 관광상품으로 개발됐다. 아직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은 없지만, 올해 상반기만 10만명이 다녀가는 등 호응을 얻어, 이내 우리 문학 속에 자리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주영도 “지금 당장은 힘든 일이겠지만 좀 더 보고 많이 느낀 후에는 올레길을 소재로 작품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녹색문학 투어는 새달에도 계속된다. 10월에는 시인 정호승이, 11월에는 소설가 박범신과 배우 최불암이, 12월에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독자들과 제주 올레길을 걸을 예정이다. 글 서귀포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동백꽃 지다/강요배 그림

    제주에서 나고 자라 쉼없이 고향을 그려온 화가 강요배(56)씨가 4·3항쟁의 처음과 끝을 기어이 그림으로 증언했다. 올해로 60주년을 맞았건만 여전히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고향의 아픈 기억을 붓으로 쓸어내 화집 ‘동백꽃 지다’(보리 펴냄)에 살뜰히 담았다. 제주에서 한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그림을 그릴 만큼 고향사랑이 깊은 작가로서는 오랫동안 별러온 작업이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피의 참극이 빚어진 섬 곳곳의 이야기를 생생한 현장 증언들을 바탕으로 화폭으로 불러냈다. 저항운동의 뿌리가 된 1945∼46년 해방공간의 역사도 함께 그림으로 상기시켰다. 6개 부문으로 나눠 전개되는 화집에 등장하는 그림은 모두 59점. 이 가운데 51점은 4·3항쟁의 전 과정을 시간순으로 묘사한 것들이다. 꼬박 3년을 매달린 결실이다. 4부 ‘항쟁’편에는 4·3항쟁의 잊혀진 기억들이 종이 위의 목탄 그림들로 어제 일인 듯 생생히 불려 나왔다.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무장항쟁 결의 회의, 산으로 피신한 항쟁대원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식량을 나르는 여인들,‘오라리 방화 사건’을 무장대의 책임으로 조작하는 미군들, 군의 무차별 토벌작전 와중에 겁에 질린 채 망을 보는 아이들…. 금방이라도 꿈틀댈 듯한 목탄 터치들이 현장의 비극을 그대로 돋을새김한다. 그림에 덧붙여진 해설 글은 철저히 목격자들의 증언에 근거했다. 전국에 흩어진 70∼80대 현장 증언자들의 구술을 정리하는 작업은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전문위원인 김종민 씨가 맡았다. 제주 4·3연구소 이사장을 맡은 작가는 화집 출간에 즈음해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새달 1일부터 6월30일까지 제주 4·3평화기념관 개관 기념전에서 책에 실린 작품들을 소개한다.2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장학금이 농촌교육·경제 살린다

    장학금이 농촌교육·경제 살린다

    지역 장학금이 농촌 주민을 정주(定住)시키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장학금 제도가 농촌교육을 살리면서 자식교육을 이유로 고향을 등지는 사례가 줄었고 지역경제도 덩달아 좋아지고 있다. 전남 강진군이 올해 관내 30개 초·중·고교에 지원한 장학금은 36억원. 학생 1명당 140여만원이다. 이는 전국 240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지원액으로는 전국 5위 수준이다. 재원은 정부의 교육지원 사업비 8억 5000만원과 군민들이 내고장 인재육성 장학금으로 모은 돈 28억원이다. 이렇게 되자 3년 전까지 정원을 못채우던 관내 5개 고교는 올해 모두 정원을 채웠다. 강진고(신입생 145명)는 개교 23년 만에 서울대 합격자를 내기 시작해 올해까지 2명을 합격시켰다. 성요셉여고(신입생 140명)는 개교 45년 만에 올해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합격자를 냈다. 이 같은 소문이 학부모 사이에 퍼지자 “고향을 지키며 자식을 잘 키워보자.”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났다. 이주자가 2004년 595명에서 올해 174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올해 강진고에 1등으로 합격한 학생은 성적우수 장학금 등 700만원을 받는다. 상위 10%안에 들면 500만원을 받는다. 여기에다 성적 우수자들은 고교 3년동안 해마다 장학금과 방과 후 보충학습비 지원, 기숙사비 면제 등 300만원가량 혜택을 받는다. 또 명문대 합격생들은 장학금 300만원을 따로 받고 서울 명문대와 의예과 합격자에게는 4년 동안의 장학금이 지원된다. 황주홍 군수는 “교육을 살려야만 지역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다.”며 2005년 민간인 주도로 강진군민장학재단을 출범시켰다.4년 동안 80억원을 만든다는 게 목표치였다. 기대 이상의 성원으로 올해까지 내리 3년 동안 해마다 20억원 이상을 모았다. 올해까지 모아진 장학금은 104억원 정도다. 지난 2005년에 장학재단을 만들 때 이월됐던 연관 사업비 32억원에다 2005년 21억원,2006년 20억원,2007년 20억원이다. 여기에 강진군에서 장학재단 출연금 10억원을 합쳤다. 이 돈에서 올해 명문학교 육성사업비 등으로 20억원을 지원하면 남는 장학기금은 85억원이다. 군은 장학금을 100억원까지 채우면 이자로도 장학금을 주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학금 모으기는 5만 군민과 20만 향우들이 발벗고 나서면서 고향사랑운동으로 뜨겁게 점화됐다. 공무원, 출향 향우, 기업인 등 연인원 600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보탰다. 강진군민장학재단 이사장인 황주홍 군수는 “강진군이 재정 자립도가 낮아 학교 지원을 못하는 형편이었으나 장학금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강진교육 전반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8) 강원 영월 모운동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8) 강원 영월 모운동마을

    안개와 구름 사이로 보이는 마을은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망경대산(1088m)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영월군 하동면 주문2리 모운동(募雲洞).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이다. 하동면 면소재지에서 옥동천을 따라가다 주문교를 건너 산 아래에서 숲길을 오른다. 마을이라곤 없을 것 같은 길을 따라 4킬로미터를 오르면 느닷없이 해발 700미터의 마을이 나타난다. 종종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여 되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32가구 60여명이 살고 있는 산꼭대기 마을이다. 비가 온 다음이면 어김없이 골골이 낀 안개와 구름이 신비함을 더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잡화를 가득 실은 트럭(일명 늴리리차)이 확성기를 통해 유행가를 울리며 찾아오는 오지이지만, 믿기지 않는 전성시대가 있었다. 80년대 말 석탄산업합리화법 발표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민이 1만명에 이르렀다. 현재 영월인구가 4만명 정도이니 어느 정도 규모인지 짐작이 간다.6개 이(里)로 나뉘어졌던 마을이 지금은 1개 이(里)로 통합되었다. 탄부로 일했다는 박효정(67)씨는 “예전에는 이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이 세 번 놀랐다.” 며 “첫 번째는 영월읍에서 몇 시간이고 산길을 타고 오는 데 놀라고, 두 번째는 멀리서 보는 마을의 휘황찬란한 야경에 놀라고, 세 번째는 자고 나서 다닥다닥 붙은 수많은 판잣집에 놀랐다.”고 한다. 전성시대의 흔적은 지금도 찾을 수 있다. 마을 곳곳에는 약국 극장 당구장 목욕탕 이발소 색싯집 등 그 옛날 흥청망청하던 시대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영월읍내에도 들어오지 않던 낭랑쇼단과 여성극단 등이 이 마을엔 들어왔단다. 번성기 때 마을에서 요정을 두 개나 운영했고 지금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문마담’으로 통하는 김할머니는 “영월에서 문마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당시가 좋았어!”라며 “그때는 지긋지긋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어! 광산돈은 햇볕 보면 없어지기라도 하듯이 흥청거렸어.”라고 회상하며 당시 손님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인물평을 했다. 옛날 당구장을 개조한 토박이 김흥식(54) 이장집은 탄광촌의 유물들로 가득하다. 올해 강원도 선행도민 대상을 받은 김 이장은 비록 마을이 폐광촌이지만, 고원휴양지를 만들어 제2전성기를 되찾겠다고 열심이다. 마을 곳곳에 각종 야생화를 심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한테는 집도 무상으로 빌려 주었다. 주민들은 밋밋하던 작은 담장에 동화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가득 채웠다. 수려한 지형을 이용한 트레킹 코스를 만들고, 마을 위를 지나던 무연탄을 나르던 전철길을 되살리고, 폐광산굴을 이용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각종 채탄 장비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만들겠단다.800여명의 학생들이 2부제 수업을 하던 모운초등학교는 지금은 폐교되고 외지인을 맞이하기 위한 숙박시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자연환경이 척박하여 논 한평 없고 변변한 밭도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최근에는 생활환경 개선과 공동체의식 복원을 위해 추진하는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마을로 선정되어 마을을 정비했다. 매년 5월에는 고향을 떠난 수백 명이 마을을 찾아오고, 나무를 심으며 고향사랑을 실천한다. 떠나간 사람이 찾아오고, 터를 잡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가꾸는 마을이다. 마을을 뒤로하면서 상상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구름 모여 있는 마을에 편안한 표정의 여유 있는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사진 글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지자체 발행 상품권 ‘천덕꾸러기’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앞다퉈 발행 중인 상품권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17일 전남도에 따르면 2000년 여수시를 시작으로 나주·곡성군 등이 ‘고향사랑 상품권’을 도입했다. 담양군은 8월쯤 상품권 발행 및 유통을 위해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2000년 도내에서는 가장 먼저 ‘미항여수 상품권’을 발행한 여수시는 올해까지 122억원어치를 팔았다. 2001년부터 ‘곡성심청 상품권’의 판매에 들어간 곡성군은 22억 5000만원의 판매고를 올렸고, 올 2월부터 ‘나주사랑 상품권’을 발행한 나주시는 올해 10억원의 판매 목표를 세웠으나 현재까지 1억 7000만원어치를 팔았다. 이처럼 지자체들이 상품권 발행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상품권을 이용한 지역 특산품 구매 등은 원활히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상품권 구매자에게 특별한 인센티브가 없고, 상인들 역시 환전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등의 불편 때문에 상품권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권 구입시 할인율 1%가 전부인 혜택은 일반 유통업체의 마일리지제나 적립금 지급 카드에 비해 경쟁력이 뒤진다. 이 때문에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일부러 상품권을 구매하는 주민들은 거의 없고, 공무원과 해당 지역의 기업체 직원만 일부 상품권을 구입한다. 거꾸로 상인들은 환전시 부담해야 하는 1%의 수수료 때문에 이를 기피하고 있다. 신용카드를 안 받고 현금영수증도 제대로 발행하지 않는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지자체 발행 상품권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결국 여수시는 2005년부터 상품권 발행을 중단했다. 여수 중앙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 중인 이모(58·여)씨는 “가끔씩 상품권으로 물건을 구입하러 오는 손님이 있지만 환전의 번거로움 때문에 거절했다.”며 “주변 가게들도 아무런 혜택도 없는 상품권 거래를 기피한다.”고 말했다. 여수시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이 상품권을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군청에 사는 공무원?

    광주 등지에 실 거주지를 둔 전남 담양군 일부 공무원들이 군이 추진 중인 ‘인구 5만명 지키기 운동’ 등에 동참하기 위해 군청과 읍·면사무소에 살고 있는 것처럼 위장 전입한 것으로 드러나 말썽이다. 5일 담양군에 따르면 이날 현재 담양 군청에 7가구·담양읍 사무소 2가구·봉산면사무소 8가구가 각각 살고 있는 것으로 신고돼 있다.이들은 대부분 군 공무원들로 실제 거주지역은 광주인 것으로 드러났다. 담양군의 한 공무원은 “지난해 10월 우리 군의 인구가 5만명이 무너진 적이 있다.”며 “그 이후로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이 다를 경우 인사상 불이익이 올까 두려워 위장 전입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농촌 지역 대부분의 시·군 단위 인구가 줄고 있어 각 자치단체에서는 인구 늘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이같은 위장 전입사례는 다른 지역도 비슷한 사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담양군의 현재 인구는 5만 63명으로 5만명을 간신히 넘고 있다. 군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최근부터 ‘인구 5만 지키기 범군민운동’,‘고향사랑 주소 제자리 찾기 운동’ 등을 펴고 있다. 군이 이처럼 인구 5만명을 사수하려는 이유는 2년 연속 5만명에 못 미칠 경우 실·과 수와 특별교부세 감소 등 각종 불이익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불법적인 인구 부풀리기를 정당화시키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주민 박모(56)씨는 “아무리 군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지만 공직자들이 나서서 불법행위를 해서야 되겠느냐.”며 “하루빨리 실태조사를 통해 위장전입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담양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군청과 읍사무소 전입자들에게 이전 명령을 내렸으며 앞으로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담양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강원 동해 풍속도 해학적으로 묘사

    지방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 서울에서 주목받기는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향토문인들은 ‘쥐볕’만큼이나 쬐기 어려운 기회 속에서도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지방문단을 지켜나가고 있다. 강원도 동해의 소설가 홍구보(본명 홍준식·53)씨도 그런 향토작가 가운데 한명이다. 지난 1999년 ‘제5회 김유정 소설문학상’ 수상작가인 홍씨는 한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강원도 토박이다. 그런 그가 강원도 정서가 물씬 풍기는 소설집 ‘조통장 난봉기’(청옥 펴냄)를 최근 출간했다. ‘가자미’ ‘두타산이 준 생일선물’ 등 11편의 중·단편을 모아 펴낸 소설집은 그대로 강원도 동해 주변이 주무대다. 작품마다 두타산, 무릉계곡, 추암·망상해수욕장, 전천 하구, 이기령, 북평중앙시장, 동해항, 송정마을 등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뭐여, 거게. 청승맞게 앉아있는 게?” “앙이요. 그저…. 담배 한대 주소. 웃말 밭에 댕겨오는 거유?”(‘선녀와 나무꾼’ 부분) 강원도 사투리와 속담, 부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현장언어 등도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영상이 궁금해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동양화 17편도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역시 동해에서 활동하는 우의화 화백 그림이다. 작가 홍씨는 “고향살이에서 고향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고향에서 겪었던 사건과 추억들을 재미있게 엮어보려 했다.”고 말했다.326쪽,1만원.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용인시, 출생축하 액자 선물

    용인시가 신생아부모들에게 출생 축하액자를 선물해 화제다. 지역별 주민자치위원회와 동사무소가 주축이 돼 벌이고 있는 출생 축하액자 증정행사는 고향사랑과 출산장려 등의 취지를 담고 있어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기의 출산을 축하하기위한 선물은 아기사랑 액자와 출산 축하카드, 주민등록등본 등으로, 시는 지난 4월1일부터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아기사랑 액자’는 A4용지 크기로 출생증명서와 아기사진을 함께 넣을 수 있도록 제작됐으며, 시는 출생신고를 접수하는 부모에게 출산축하카드와 주민등록등본을 함께 넣어 전달한다.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식목일 2題] 재일경남도민회 30년간 나무심기

    [식목일 2題] 재일경남도민회 30년간 나무심기

    나무심기를 통한 재일교포들의 고향사랑이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재일 경남도민회의 고향사랑 나무심기 행사가 식목일인 5일 경남 통영시 정량동에서 열린다.400여명의 식수단은 통영시민들과 함께 연산홍을 비롯해 해풍에 강한 먼나무와 소나무 등 5종류 5500그루를 심는다. 지난 1976년 시작된 재일동포들의 고향사랑 나무심기는 올해로 31번째. 그동안 심은 나무 20만여그루가 고향산천을 푸르게 바꿔 놓았다. 이들의 고향사랑 나무심기는 당시 도민회장이었던 배종성씨(작고)가 청명·한식을 기념해 조상들의 산소에 성묘한 뒤,‘고향에 나무를 심겠다.’는 뜻을 도에 전하자 강영수 지사가 협조를 약속하면서 시작됐다. 이렇게 해서 처음 고향을 방문한 식수단은 양산시 양산읍 신기리 야산에 리기다소나무 4000여그루를 심었다. 지금은 그 키가 15m에 달할 정도다. 당시 도 식수계장이었던 정위현(73)씨는 “외국에서 고생하다 기반을 잡은 재일동포들이 고향을 위해 할 일을 찾은 것이 나무심기였다.”면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나무를 들고 산을 오르내리느라 땀을 뻘뻘 흘렸지만 표정만은 밝았다.”고 회고했다. 초창기 식수단의 연령은 60∼70대 재일동포 1세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20∼30대 3세들도 많이 고향을 찾는단다. 쑥쑥 크는 나무의 길이만큼 재일동포의 고향사랑도 깊어지는 걸까.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고향사랑 4년간 지도에 새겼죠”

    “고향사랑 4년간 지도에 새겼죠”

    “하루 10여 시간씩 4년 동안 지도 제작에 몰두했습니다.” 최근 광주지하철 1호선 금남로4가역 구내에 광주시 전체를 담은 대형 입체지도를 제작해 기증한 한행수(66·인쇄업·서울 은평구 불광동)씨는 “고향에 무언가 남기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시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최근 광주지하철 ‘메트로축제’에 맞춰 공개된 이 지도는 면적 501.44㎢의 광주를 6250분의1로 축소된 모형(가로 4.2m, 세로 6m, 높이 0.16m)으로 옮겨 놓았다. 시민 이모(45)씨는 “광주를 그대로 옮겨놓아 현실감있게 보인다.”며 “제작자의 섬세한 기술이 놀랍다.”고 말했다. 한씨는 지형도에 현재의 시가지와 곧 옮겨 갈 전남도청 부지에 들어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위치를 비롯,‘10년 후 광주’까지 담았다. 그가 이 지도제작에 나선 것은 2001년 8월. 국토지리정보원의 기초자료를 토대로 작업에 들어가 2004년 5월에야 1차 작업을 마쳤다. 그는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서 건물 등 실물을 그대로 표현하는 기법을 적용해 최종 마무리했다. 그가 제작한 지도의 정확성은 전문기관에서도 인정하는 수준으로 그는 신안군 홍도와 우이도 광주 어등산 등의 정밀입체지도를 만들어 국토지리정보원 신안군 등에 기증하기도 했다.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에서 태어난 한 씨는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이 지도를 보면서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깊이 생각해 준다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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